천자백태天姿百態의 형상을 지닌 가부賈府 이외의 사람들: 질박한 촌노파 유劉씨
『홍루몽紅樓夢』에서 유劉노파는 제 6회에서 처음 등장한다. 가부賈府에 찬조 출연한 “객천客串”(임시 출연, 특별 출연, 또는 찬조 출연을 말함)의 축각丑角(희극배우 중의 어릿광대)인데, 대단히 탄복할만한 수단과 재능을 지니고 있고, 또 촌 아녀자의 순박하고 선량함을 잃지 않은 좋은 품성을 지닌 인물이다.
유노파와 가부賈府의 유래
젊어서 배우자를 잃은 유노파는 슬하에 아들이 없어서 사위 왕구아王狗兒에게 의지하여 생활하고 있는 촌 아낙네이다. 예전에 왕王씨 집안의 조상이 관직에 있었을 때, 관직에 있던 왕부인王夫人 친정의 부친 왕씨와 연종聯宗(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한 가족처럼 지내다)하며 친척처럼 가깝게 지냈었는데, 나중에 처지가 빈한해져서 시골로 이주하면서 자연히 왕래가 소원해졌다.
유노파는 사위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보고, 예전에 왕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로 현재는 가부에 시집간 왕부인을 떠올리며, 체면불구하고 외손자 판아板兒를 데리고 가부에 와서 반친攀親(친척 또는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여 더욱 친해지려고 하다)을 말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왕희봉王熙鳳 즉 봉저鳳姐는 왕부인의 질녀로 가부에서 왕부인을 대신하여 집안일을 관장하다가 유노파를 알게 되었는데, 도움을 청하는 유노파에게 일가족이 한 겨울을 지낼만한 은자를 주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유노파는 희봉의 딸 교저巧姐의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중에 희봉이 죽은 뒤에 위험에 처한 교저를 구해주었다. 소설에서 유노파와 희봉의 인연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가부를 3 번 방문한 유노파와 왕희봉의 정황
첫 번째 방문:
유노파는 친척과 같은 관계를 맺었던 인연을 이용해서 경제적인 도움을 청하려고 가부의 영국부榮國府의 왕부인을 찾아 왔다. 유노파는 먼저 주서周瑞댁을 찾아갔는데, 주서댁은 유노파와 판아를 데리고 가서 봉저鳳姐를 만나게 해주었다.
왕희봉은 유노파를 처음 대면했을 때, 매우 거만하게 깔보는 태도로 되는대로 약간의 도움을 줘서 유노파를 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봉저가 왕부인에게 유노파가 왔다는 것을 알렸지만, 왕부인은 바쁘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봉저에게 처리하라고 했다. 봉저는 유노파가 설명하는 의도를 알아채고, 먼저 자기네 집안이 예전보다 못하다고 말한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可巧昨兒太太給我丫頭們做衣裳的二什兩銀子,我還沒動呢,你若不嫌少,就暫且先拿了去吧.”
(마침 마님께서 시녀들 의상을 만들어 주라고 주신 20 냥의 은자가 있는데, 아직 손대지 않았으니, 적다고 마다하지 마시고, 잠시 먼저 가져가세요)
그리하여 유노파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우는 소리로 곤란한 사정을 늘어놓아서 은자 20 량을 얻을 수 있었고, 그녀는 감격해마지 않으며 뒷문으로 나가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방문:
유노파의 두 번째 가부 방문은 제 39회에 나온다. 노파는 왕희봉에게서 얻은 은자로 그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채소와 곡식을 가지고 감사인사를 하러 다시 영국부를 찾아온다. 유노파를 만난 왕희봉은 예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달리 농담까지 하며 그녀를 대해 주었다.
희봉이 그녀를 가모賈母에게 인사시켰을 때, 노마님 가모賈母는 옛날부터 내려온 노인네의 말을 듣고 싶어서, 그녀에서 남아서 며칠 동안 즐겁게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가모는 친히 유노파를 데리고 대관원大觀院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감상하며 즐겼다.
모두 유노파의 천진한 태도에 노마님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자, 일부러 여러 가지 일로 그녀를 즐거움으로 삼았는데, 유노파도 호응을 대단히 잘 해주었다. 식사를 할 때, 봉저는 가모의 시녀 원앙鴛鴦과 미리 짜고 유노파에게만 붉으죽죽한 금으로 상감한 매우 무거운 상아 젓가락 한 쌍을 내어와 그녀에게 쓰게 했다.
“那劉姥姥入了坐,拿起箸來,沈甸甸的不伏手.原是鳳姐和鴛鴦商議定了,單拿一雙老年四楞象牙鑲金的筷子與劉姥姥.劉姥姥見了,說道:‘這叉爬子比俺那里鐵鍁還沈,那里犟的過他’說的衆人都笑起來.”
(유노파가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려고 하니 무거워서 제대로 들 수도 없었다. 왕희봉과 원안이 처음부터 모의하여 금으로 상감하고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상아 젓가락을 유노파 앞에만 놓기로 한 것이다. 유노파는 그것을 보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 댁의 쇠스랑은 우리 집 쇠삽보다도 훨씬 무겁네요. 어디 들 수가 있어야지요.’ 좌중에 있던 사람들은 듣자마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유노파에게 그 젓가락으로 접시 담긴 비둘기 알 요리를 먹어보라고 권했다. 유노파는 일부러 비둘기 알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촌스런 말로 사람들을 웃기는 말까지 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주령酒令(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서 하는 벌주놀이)도 했는데, 유노파는 내내 시골에서 쓰는 속된 말로 모두를 한 바탕 웃게 만들고, 또 벌주를 여러 잔 마셨다.
또 함께 대관원大觀院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했다. 또 사람들과 묘옥妙玉이 거주하는 농취암櫳翠庵에 가서 차도 마셨다. 술에 취한 유노파는 보옥의 거처인지도 모르고 이홍원怡紅院에 들어와 코를 골며 잠들기도 했다.
술취한 유노파가 보옥 침실에서 잠들다-홍루몽도해본
유노파의 소박하고 재미있는 표현은 가부에서 매우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때의 방문에서 많은 물건까지 얻은 유노파는 보람을 느끼고, 심리적으로도 더욱 감격해마지 않았다.
유노파가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봉저는 자신의 딸이 길하게 되도록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했다. 유노파는 “교가아巧哥兒”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앞으로 봉흉화길逢凶化吉(전화위복의 뜻으로 위험을 벗어나서 안전한 상태로 되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鳳姐兒道:‘正是生日的日子不好呢,可巧是七月初七日.’”
(봉저는 말하기를 ‘태어난 날이 안 좋은데, 하필이면 칠월 초이레 날인 바로 칠석날이라니까요’)
劉姥姥忙笑道:“這个正好,就叫他是巧哥兒.這叫作‘以毒攻毒,以火攻火’的法子.姑奶奶定要依我這名字,他必長命百歲.日後大了,各人成家立業,或一時有不遂心的事,必然是遇難成祥,逢凶化吉,却從這“巧”字上來.”
(유노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아예 이렇게 하지요. 아기씨를 교가아巧哥兒라고 부르는 거예요. 이런 걸 갖고 ‘독은 독으로 씻어내고 불은 불로 끄는 법’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고모 아씨님이 제가 지은 이름대로만 쓰신다면 따님께선 틀림없이 백 살까지도 장수하실 것이고, 나중에 커서 시집을 간 뒤에도, 일이 잘 풀릴 것입니다. 혹여나 한때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반드시 어려움이 상서롭게 풀릴 것이고, 흉해졌다가도 길한 운수로 바뀌게 될 것이니, 그게 다 이 교巧자에서 오는 것이지요”)
유노파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가부를 방문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마음에 맞도록 말하여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었는데, 특히 가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노파의 소박하고 재미있는 표현은 가부에서 매우 환영을 받았다.
그래서 이때의 방문에서 유노파는 보람을 느끼고, 심리적으로도 더욱 감격해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각종 방적용 실과 견직물, 여러 종류의 간식, 쌀, 과일과 100 량의 은자, 의복, 털실 등등 많은 은자와 푸짐한 선물까지 받았다.
세 번째 방문:
유노파가 세 번째로 방문했을 때에는 가부는 이미 쇠락해진 상태였다. 이때 그녀는 가부에 드릴 예물을 가지고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방문한 것이다. 유노파가 병이 난 봉저를 보러 오자, 봉저는 유노파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속으로는 자신이 처음에 덕을 베풀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라면 믿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봉저는 딸 교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유노파는 희봉이 장작같이 바짝 마르고 정신은 흐리멍덩하면서도 온 마음으로 딸 교저巧姐만 생각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봉저가 죽은 뒤, 뜻밖에 외숙 왕인王仁, 가운賈芸, 가환賈環 등이 계략을 꾸며서 교저를 멀리 변방으로 팔아넘기려고 했다. 유노파는 교저가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 되자, 비록 아무런 책략은 없었지만 기꺼이 나섰다. 다행이도 유노파의 도움으로 위험에 처한 교저를 구출할 수 있었고, 평아平兒는 몰래 교저를 데리고 유노파가 있는 시골로 도피했다.
두 번째 방문 때에 대관원에서의 유노파의 행적
① 대관원을 구경하러 들어온 유노파에게 심방정沁芳亭으로 가는 길에 봉저 등은 그녀 머리에 가득 꽃을 꽂아 장식해준다.
② 유노파는 소상관瀟湘館의 흙길을 걷다가 푸른 이끼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진다.
③ 유노파는 추상재秋爽齋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 원앙鴛鴦 등에게 놀림을 당하는데, 상아에다 금으로 상감한 한 쌍의 묵직한 젓가락으로 비둘기 알 요리를 집어먹은 일로 좌중에 큰 즐거움을 준다.
④ 가모가 철금각綴錦閣에서 연회를 열었을 때, 연회석상에서 주령을 행하면서, 벌주를 여러 잔 마신다.
⑤ 가모 등이 묘옥의 거처 농취암에서 차를 마실 때, 유노파는 차 맛이 담백하다고 말하여 묘옥에게 멸시를 당한다.
⑥ “성친별서省親別墅”(귀비貴妃 원춘元春이 가부의 친정부모에게 문안을 오게 되어 지은 건물인데, 즉 대관원을 말한다)의 패방牌坊 아래에 이르렀을 때, 유노파는 이 건물을 사당으로 생각하여 곧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⑦ 술에 취한 채 변소에 갔다가 길을 잃은 유노파는 느닷없이 보옥寶玉의 거처 이홍원怡紅院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한참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은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가, 보옥 시녀 습인이 깨워서야 일어났다.
홍루몽이야기 : 천자백태天姿百態의 형상을 지닌 가부賈府 이외의 사람들: “가어촌언假語村言”의 가우촌賈雨村
가우촌賈雨村 즉 “가어촌언假語村言”(거짓되고 졸속한 말)은 진사은甄士隱과 마찬가지로 소설 『홍루몽紅樓夢』 속에서 단서端緖가 되는 인물인데, 가우촌은 가부賈府의 갈등과 충돌 중에 더욱 많이 직접적으로 개입한다.
가우촌은 원래 고소古蘇의 호로묘葫蘆廟에서 기거하면서 글을 써주고 돈을 받아 생활하는 가난한 서생인데, 이웃에 있는 향신鄕紳(퇴직 관리로서 그 지방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 진사은에게서 재물로 도움을 받아 상경하여 과거에 응시한다. 진사進士에 합격한 가우촌은 지부知府로 부임하는데, 비록 재간은 우수하지만 탐욕의 병폐를 면하지 못하여, 얼마 뒤에 파면을 당한다.
청나라 때의 과거시험문제지-홍루몽도해본
옛날 지방의 과거시험장 공원貢院-홍루몽도해본
옛 친구의 추천으로 가우촌은 임대옥林黛玉의 가정교사가 되었다가, 나중에 또 임대옥을 도성에 있는 대옥의 외갓집 영국부榮國府에 데려다 주는데, 그 기회에 가정賈政의 도움을 받아 공석空席인 금릉응천부윤金陵應天府尹 직에 충당된다.
부임한 뒤에 그는 설반薛蟠이 풍연馮淵을 때려죽이고 강제로 영련英蓮(그 뒤에 향릉香菱으로 이름을 고침)을 뺏은 살인사건을 맡게 된다. 그때 한 아전이 베껴서 가지고 있던 호관부護官符(벼슬자리를 지켜주는 부적이라는 뜻)를 보고, 설薛씨 집이 가賈·왕王·사史의 사대가족四大家族 중의 한 집안이고, 그 집안들이 서로 친척으로 얽혀 있고, 한 집이 손해를 입으면 같이 손해를 보고, 영화롭게 되면 함께 영화를 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때 팔려간 영련이가 바로 진사은의 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賈不假,白玉爲堂金作馬가불가,백옥위당금작마
(가씨는 거짓이 아니고, 백옥으로 집을 짓고 금으로 말을 만든다네)
阿房宮,三百里,住不下金陵一個史아방궁,삼백리,주불하금릉일개사
(아방궁이 삼백 리나 된다고 하나, 금릉의 사씨 집안만 못하네)
東海缺少白玉床,龍王來請金陵王동해결소백옥상,용왕래청금릉왕
(동해 용궁에 백옥상이 모자라면, 용왕은 금릉 왕씨 집으로 청하러 온다네)
豊年好大雪,珍珠如土金如鐵풍년호대설,진주여토금여철
(풍년에는 대설이 내리는데, 진주와 금을 흙이나 쇠와 같이 쓴다네)
(『호관부護官符』)
그리하여 가우촌은 사대가족 중 설薛씨 집안의 아들인 설반에게 감히 유죄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그 사건을 종결짓고 말았다. 또 가정賈政과 경영절도사京營節度使 왕자등王子騰에게 친히 서신을 써 보내서 자신의 공을 내세워 상을 바랬다.
그 후 가우촌은 지현知縣에서 어사御史, 이부시랑吏部侍郞,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의 직으로 승진하여 단번에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나중에는 부윤府尹까지 승진한다. 그런도 가우촌은 가씨 집안이 몰락했을 때 매몰찬 태도를 취하여 모른 체했다. 세간 사람들이 하는 대화에서 가우촌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你瞧,這麽个大府,前兒抄了家,不知如今怎麽樣了.”
(보세요, 이렇게나 큰 대갓집이 지난번에 몰수를 당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他家怎麽能敗,聽見說里頭有位娘娘是他家的姑娘,雖是死了,到底有根基的.況且我常見他們來往的都是王公侯伯,那里沒有照應.便是現在的府尹前任的兵部是他們的一家,難道有這些人還護庇不來麻?”
(그런 집안이 어떻게 망할 수 있겠어? 듣기로는 궁중의 어떤 마마가 그 집 따님이었다던데,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그래도 뿌리는 남아있을 것이네. 더구나 그들 집안에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두 왕공이거나 후백 같은 귀족들이니, 도와주지 않았겠어? 지금은 부윤이고 전임 병부상서였던 양반이 그 댁과는 친척이라고 하던데, 아무려면 그런 사람들이 보호해 주지 않았겠어?)
“你白住在這里!別人猶可,獨是那个賈大人更了不得!我常見他在兩府來往,前兒御史雖參了,主子還叫府尹査明實跡再辦.你道他怎麽樣?他本沾過兩府的好處,怕人說他回護一家,他便狠狠的踢了一脚,所以兩府里才到底抄了.你道如今的世情還了得嗎!”
(자네는 여기 헛살았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가대인은 대단히 매몰찬 사람이더군! 나는 그가 양쪽 부중에 드나드는 것을 자주 봐왔는데, 지난번에 어사가 탄핵해서 황제께서 부윤을 불러 다시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이 어땠는지 알아? 그는 본래 양쪽 부중 덕으로 출세를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친척을 비호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모질게 차버려서, 그래서 양쪽 부중이 철저하게 가산을 차압당하고 만 거라네. 지금의 세상인심이 어떤지 알 수 있겠지?)
『홍루몽紅樓夢』은 마지막인 제 120회에서, 가우촌을 통해 작품 전체의 결말을 설명한다.
이때 가우촌은 뇌물 사건으로 조사를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때마침 대사령大赦令이 내려서 사면을 받지만, 삭탈관직을 당하여 평민이 되고 만다. 가우촌은 급류진急流津에 이르러 각미覺迷 나루터에서 진사은甄士隱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진사은에게서 태허환경太虛環境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그는 진사은에게 가보옥賈寶玉의 행방을 물어보는데, 진사은은 보옥의 행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前經茫茫大士渺渺眞人携帶下凡,如今塵緣已滿,仍是此二人携歸本處,這便是寶玉的下落.”
(이전에 망망대사와 묘묘진인이 그 옥을 인간 세상에 데리고 내려왔었는데, 지금 속세의 인연이 다해서, 그 두 사람은 그 옥을 데리고 왔던 곳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옥의 행방입니다)
또 가우촌은 진사은에게 가씨 집안의 미래에 관해서도 물어본다.
“是了,是了.現在他府中有一个名蘭的已中鄕榜,恰好應着‘蘭’.適間老仙翁說‘蘭桂齊芳’,又道寶玉‘高魁子貴’,莫非他有腹之子,可以飛黃騰達的嗎?”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그 부중에 이름이 난蘭이라는 사람이 이미 향시에 합격했는데, 바로 ‘난초’라는 말과 딱 맞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난초와 계화가 함께 피어나다’라고 하신 말씀과 또 보옥이 ‘높은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하고 자식이 귀하게 된다’라는 것은, 그에게 유복자가 있어서, 장차 그 아이가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말입니까?)
“士隱微微笑道:‘此系後事,未便預說.”
(진사은은) 그것은 앞으로의 일이니, 미리는 말할 수 없습니다)
가우촌이 진사은을 만난 그 급류진의 각미도 나루터 초막에서 잠시 쉬다가 잠이 든 장면이 있다. 제 1회에서 조설근은 도홍헌에서 10년간 열람하면서 다섯 차례나 덧붙이고 목록을 만들고 장회를 나누어 이 작품이 나오게 된 사연을 말한 바 있다.
바로 이 소설 마지막에서 가우촌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다. 공공도인空空道人이 청경봉 앞에 여전히 버려져 있는 돌을 보고 그 내용을 베낀 다음에, 몇 겁의 세월을 지내고나서, 그것을 초막에서 자고 있던 가우촌을 깨워서 그 이야기 『석두기石頭記』를 세상에 전하라고 준다. 그런데 가우촌은 그것을 보고는 공공도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這事我已親見儘知.你這抄錄的尙無舛錯,我只指與你一个人,托他傳去,便可歸結這一新鮮公案了’.空空道人忙問何人,那人道:‘你須待某年某日某時到一个悼紅軒,有个曹雪芹先生,只說賈雨村言托他如此如此.’說畢,仍舊睡下了.”
(‘그 일이라면 나는 이미 친히 봐왔기 때문에 다 알고 있습니다. 도인께서 베낀 것은 전혀 틀린 데가 없습니다요. 내가 한 사람을 알려 줄 것이니, 그에게 부탁해서 세상에 전하라고 하면, 이 보기 드믄 사건을 잘 결말지을 수 있을 겁니다.’ 공공도인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다그쳐 묻자, 그 사람이 말했다: ‘반드시 모년 모월 모일 모시에 도홍헌이란 곳에 가셔서, 조설근 선생을 찾아서, 그저 가우촌의 말이라고 하면서 여차여차하게 부탁하면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가우촌의 말을 들은 공공도인은 몇 겁의 세월을 지내고나서, 마침내 조공曹公(조설근)을 만나서 가운촌의 말을 알려주었는데, 조공은 웃으면서 “果然是‘賈雨村言’了!”(정말로 ‘가우촌의 말’이었군요)라고 말했다. 이때에서야 홍루紅樓의 공안公案은 종결되게 되었다.
가우촌의 인생궤적
① 가우촌은 본래 호주湖州 호초胡謅가 본적 출신지이고, 중도에 집안이 몰락했다.
② 도성에 가서 과거를 봐서 출세하려고 생각했으나, 여비를 다 써서 소주성蘇州城 밖에 있는 호로묘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었다.
③가우촌은 진사은의 도움으로 여비를 마련하여 진사에 합격하고, 대여주大如州에 지부知府로 부임한다.
④ 가우촌은 파면을 당한 뒤에 사방을 유람하다가, 양주楊州에서 친구의 추천을 받아 순염어사巡鹽御史 임여해林如海의 딸 임대옥林黛玉의 가정교사를 맡는다.
⑤ 임대옥을 도성에 있는 영국부榮國府에 데려다주어서, 가정賈政의 도움으로 금릉응천부윤金陵應天府尹 직을 얻는다
⑥ 도성에서 어사, 이부시랑, 병부상서를 역임하고, 경조부윤京兆府尹으로 승진하여 세무稅務 직을 겸직한다.
⑦지기현知機縣 급류진 나루터에서 진사은과 우연히 상봉한다. 나중에 또 급류진 각미 나루터에서 다시 진사은을 만나게 되었을 때, 진사은으로부터 태허환경과 가씨 집 정황을 듣게 된다.
홍루몽이야기 : 갖가지 형상을 지닌 가부賈府 이외의 사람들: 진사은거眞事隱去의 진사은甄士隱
진사은甄士隱은 즉 “진사은거眞事隱去”(진짜 일을 숨기고 출가하다)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데, 진사은의 철저한 깨달음은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의 미래와 비슷한 결말을 예시한다.
진사은은 성姓이 진甄, 이름은 비費, 자字는 사은士隱인데, 고소古蘇 창문閶門 성밖 십리가十里街에 있는 호로묘葫蘆廟 옆에 살고 있는 향환鄕宦(향리鄕里에 거주하는 벼슬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그는 천성이 사리사욕이 없어서 공명功名을 구하지 않고, 날마다 그저 꽃과 대나무를 감상하고 가꾸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일을 낙으로 삼았는데, 그러나 사람됨은 선행을 베풀기를 좋아하여, 호로묘 안에서 기거하고 있는 가난한 서생 가우촌賈雨村과 사귀며 지낸다.
진사은은 가우촌이 비록 글을 써주고 생계를 꾸리고 있기는 하나, 재능이 있고, 원대한 포부를 지닌 것을 알고, 자신의 돈을 내어 그를 도와서 서울로 가서 과거를 보게 했다.
진사은은 나이는 반백이나 슬하에는 아들이 없고 다만 영련英蓮이라는 3 살 난 딸만 하나 두었다. 태양이 강하게 내리 쬐던 어느 더운 날, 진사은은 서재에서 스르르 몽롱하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스님 한 사람과 도사 하나가 보였다.
두 사람은 한 준물蠢物(어리석은 놈)의 풍류風流의 일로 담론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낮잠을 깬 뒤에야 일장몽一場夢인 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한 스님과 한 도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진사은이 영련을 안고 있는 것을 보자, 그 스님은 통곡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施主,你把這有命無運,累及爹娘之物,抱在懷里做什麽?”
(시주님, 명은 있고 운이 없어 부모에게 누만 끼치게 될 아이를 안고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舍我罷,舍我罷!”
(차라리) 그 아이를 날 주시오, 나에게 주시란 말이오!)
진사은은 더 이상 듣지 않고 딸아이를 안고 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도사는 큰소리로 웃으면서 4 구절을 읊었다.
慣養嬌生笑你癡관양교생소니치 (귀엽게만 기르고 있는 그대를 보니 웃음이 나는데)
菱花空對雪澌澌능화공대설시시 (마름꽃은 허망하게 눈이 내리는데 피었구나)
好防佳節元宵後호방가절원소후 (정월 대보름날에 잘 조심하지 않으면)
便是煙消火滅時변시연소화멸시 (곧 불바다가 되어 잿더미가 될 터이니)
그 구절을 들은 진사은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의아한 마음이 들어 물어보려는데, 도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你我不必同行,就此分手,各于營生去罷.三劫後,我在北邙山等你,會齊了同往太虛幻境銷號.”
(그대와 나는 동행할 필요는 없으니, 여기서 헤어져서, 각자 일을 보도록 하십시다. 삼겁이 지난 뒤에, 내가 북망산에서 당신을 기다릴 것이니, 모여서 같이 태허환경으로 가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보고합시다)
말을 마치더니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서 원소절原宵節이 되었는데, 한 하인이 영련을 데리고 꽃등 구경을 나갔다가 그만 영련을 잃어버리자, 진사은 부부는 딸을 생각하다가 병이 들고 말았다. 뜻밖에 바로 그 뒤 3월 15일에 호로묘葫蘆廟에 서 불이 나서 그 옆에 있는 진사은의 집도 불타서 재로 변하고 말았는데, 할 수 없이 진사은 일가는 장인 집으로 가서 의탁하게 되었다.
원소절에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노는 모습-홍루몽도해본
그러나 장인 봉숙封肅이 사위의 이런 낭패한 모습을 냉담하게 대하자, 진사은은 점차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진사은은 절뚝발이 도인道人이 중얼거리며 오는 것을 보았다.
“世人都曉神仙好,惟有功名忘不了!古今將相在何方?荒冢一堆草沒了 ....... ”
(사람들은 모두 신선이 좋다고 하면서, 오로지 부귀와 공명을 잊지 못한다네! 고금의 장수와 재상은 다 어디로 갔는가? 거친 무덤에는 풀만 가득 덮여 있구나 ......)
진사은이 곧 앞으로 나아가 물었다.
“你滿口說些什麽‘好’‘了’的?”
(도인께서는 그렇게 온통 ‘호’자니, ‘료’자니로 뭘 말씀하시는 지요?)
도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世上萬物,好便是了,了便是好.若不了,便不好;若要好,須是了.我這歌兒,便名『葫了歌』.”
(세상 만물은, 좋아도 끝이 있는 것이고, 끝났다가도 좋아지는 것이라오. 만일 끝이 나지 않으면, 좋지 않게 되오; 만약 좋으려면, 반드시 끝나야 하오. 그래서 내가 이 노래를 『호료가』라고 이름 지었소)
지혜가 있는 진사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에는 벌써 철저하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곧바로 『호료가』를 해석해보고는, 머리에 부스럼이 난 도인을 따라서 속세를 떠나 표표히 출가했다.
두 곳의 두 가지 고사故事
경도京都
경도는 가부賈府가 있는 도성이고, 가보옥賈寶玉은 여기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곡曲이 끝나 사람들은 흩어지고, 애정은 파멸되고, 집안도 패망하게 되자, 속세의 덧없음을 깨달고 출가하는 비극의 일생에 이른다. 책 전체에서 118 번이나 서술하고 있다.
소주蘇州
소주는 호로묘와 진사은의 집이 소재한 곳으로, 진사은은 이곳에서 의식衣食을 걱정하지 않고 지내다가, 가슴 아프게 딸아이를 잃고, 집도 불타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만다. 처지에 따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따뜻했다가도 차갑게도 변하고 마는 세태世態를 겪고 나서 속세에 미련을 버리고 출가하게 되는 비극적인 일생을 보내게 되는 사람인데, 소설 전체에서는 첫머리 한 회에 그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소설과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나, 작품의 서두와 말미에서 가우촌賈雨村과 함께 가부의 흥망성쇠의 과정과 그 결말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진사은甄士隱의 이름도 “眞事隱”이라는 해음자諧音字로 “진짜 일을 숨기다”라는 뜻이다. 바로 『홍루몽紅樓 』의 핵심 주제인데,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부귀와 공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진실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홍루몽이야기 : 홍루紅樓의 부인네들 (3): 어안정魚眼睛(물고기의 눈)을 가진 할멈들
보옥寶玉은 이런 원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女孩兒未出嫁,是顆無价之寶珠,出了嫁,雖是顆珠子,却沒有光彩寶色,是顆死珠了.再老了,更變的不是珠子,竟是魚眼睛了.”
(시집을 안 간 아가씨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주寶珠인데, 시집을 가면, 비록 주珠이기는 하나, 아름다운 광채가 없어져서, 사주死珠가 되고 만다. 늙게 되면, 더욱 변해서 주가 아니고, 결국은 물고기의 눈이 된다)
이 말은 바로 가부賈府에서 일하는 일부 할멈들을 겨눠서 말한 것인데, 그 예는 왕선보댁(王善保的)과 이마마李嬤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선보댁(王善保的)
왕선보댁은 형부인邢夫人이 시집올 때 데리고 온 몸종이고, 형부인이 도움을 받는 심복인데, 바로 그녀는 주인 형부인과 마찬가지여서, 미리 계산을 세워두는 사람은 아니었다.
형부인은 우연히 대관원大觀院에서 오색 색실로 춘화도를 수놓은 향낭을 주운 사대저傻大姐로부터 받아들고 나서, 곧 그것을 왕부인王夫人에게로 보냈다. 화가 난 왕부인은 대관원을 수색하라고 하는데, 그 김에 왕선보댁을 내세워서 수색하는 일을 맡긴다. 왕선보댁은 대관원의 몸종들이 자기를 잘 받들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해 있던 터라, 이 기회를 틈타서 대관원을 수색하여 단속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탐춘探春의 거처를 수색할 때, 그녀는 탐춘에게 요란하게 떠들어대다가 탐춘에게 따귀를 맞는다. 탐춘은 욕설을 퍼부으며 따끔하게 경고했다.
“你是什麽東西,我不過看着太太的面上,你又有年紀,叫你一聲媽媽,你就狗仗人勢 .....”
(네가 뭐라도 되냐, 마님의 체면을 봐서, 또 나이도 있어서, 아주머니라고 부르고 있는데, 네가 상전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으니 .....)
그러나 이 어리석은 사람은 그래도 곧바로 깨닫지를 못하고, 또 이어서 사람들을 데리고 영춘迎春의 거처에 와서 수색했다. 바로 그때 영춘의 시녀로 있는 자신의 외손녀 사기司棋의 상자 속에서 남자용 비단 허리띠와 양말, 신발 한 켤레가 나오고, 그리고 편지도 한 통이 나왔다.
사기와 번우안이 밀회하다 들키다-홍루몽도해본
본래 진사기秦司棋는 왕선보댁의 딸이 진秦씨 집으로 시집을 가서 낳은 딸로, 영춘의 시녀였다. 진사기의 아버지에게는 남자형제 진현秦顯이 있고, 여자형제 즉 사기의 고모는 반潘씨네로 시집가서 아들 반우안潘又安을 낳았다. 그래서 사기와 반우안은 고종사촌남매가 되는데,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다. 나중에 자라서 사기와 반우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인데, 그 편지는 바로 반우안이 사기에게 쓴 연서戀書였다.
왕선보댁은 스스로 자기 외손녀의 발목을 잡은 격이 되고 말았는데, 이때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치밀어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형부인은 그녀에게 쓸데없는 일에 나섰다고 마땅찮게 생각하며, 한바탕 야단을 쳤다.
이마마李嬤嬤
이마마는 보옥寶玉의 유모이고, 가부의 하인 이귀李貴의 모친이기도 했다. 당시의 사회에서 유모의 지위는 일반 하인보다는 높았으므로, 이 이마마는 늙은 티를 내며 거만하게 굴었다. 한 번은 설이마薛姨媽가 자신의 거처에 온 보옥과 대옥黛玉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이마마는 눈치도 없이 한쪽에서 계속 술을 마시는 것을 본 보옥은 기분이 깨져서, 나중에 할머니 가모賈母에게 이렇게 말했다.
“她比老太太還受用呢!問她作什麽!沒有她只怕我還多活兩日兒.”
(할멈은 노마님보다도 더 누리고 산다니까요! 할멈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물어보세요! 할멈이 없으면 내가 며칠은 더 살 거예요!)
보옥은 시녀 청문晴雯에게 주려고 남겨둔 두부만두를 유모 이마마가 마음대로 집으로 가지고 가버리자, 보옥은 더욱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또 이마마는 시녀들이 보옥에게 주려고 남겨둔 풍로차楓露茶까 마신 것을 알고, 마침내 보옥은 그 동안 쌓였던 화가 한꺼번에 치밀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산산조각을 내고는, 또 벌떡 일어나서 천설茜雪에게 말했다.
“她是你哪一門子的奶奶,你們這麽孝敬她?不過是我小時候吃過她畿口奶罷了,如今慣得比祖宗還大,攆出去大家干淨!”
(할멈이 너희의 누구네 집 할머니 이길래, 너희가 그렇게 효도를 하느냐? 내가 어렸을 때 그녀의 젖을 좀 먹은 것뿐인데, 지금은 노할머님보다도 더 세도를 부리니, 깨끗이 쫓아내고 말테야!)
바로 이렇게 해서 이마마는 하는 수없이 나이가 많다고 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보옥의 인간 구획 이론理論
이론 1: 보옥은 인간을 두 가지의 이론으로 구획지어 생각했는데, 하나는 여자는 물로 골육骨肉이 만들어지고, 남자는 진흙으로 골육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론 2: 여자는 시집을 가기 전까지는 보주寶珠(진귀한 구슬)인데, 즉 설보채薛寶釵나 임대옥林黛玉 같은 아가씨를 말하고, 시집을 가고 나면 사주死珠가 되는데, 즉 이환李紈을 예로 들 수 있다. 오랜 시일이 지나 나이를 먹어 늙으면 어안정魚眼睛(물고기의 눈)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수한 노동 직종 ---유모乳母
유모(내마奶媽)인데, 다른 집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일로 고용된 부녀자를 가리키는데, 이 직업은 중국 역사에서 비교적 일찍 출현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유모를 청할 정도의 집은 모두 부귀한 집인데, 유모가 자기네의 사랑하는 아이에게 젖을 주고 돌봐주므로 대체로 유모에게 잘 대해주었다.
청대淸代에는 더욱 유모를 존경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역사에 기재된 것에 의하면,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曹雪芹의 증조모曾祖母 손孫씨는 실제로 강희황제康熙皇帝의 유모였다. 그래서 강희황제가 손씨를 만났을 때 대단히 기뻐하면서 “此吾家老人也”차오가노인야(이분이 우리 집 어른이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홍루몽이야기 : 홍루紅樓의 부인네들 (2): 곤혹스러운 배역의 첩실들
영국부榮國府의 첩실 조이랑趙姨娘에서부터 우이저尤二姐까지를 두루 살펴보면, 그녀들은 대단히 곤혹스런 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가정賈政의 첩 조이랑趙姨娘
조이랑은 가정賈政의 첩으로 1남1녀를 낳았는데, 장녀 탐춘探春은 어려서부터 노마님 신변에서 커서 그녀와는 아무런 정이 없었지만, 둘째인 아들 가환賈環은 그녀가 정성들여 키웠다. 그러나 조이랑은 행동거지가 저속하고, 지나치게 좀스럽게 따지고, 또 뭐든지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여인인데다가, 첩의 지위가 본래 낮았기 때문에 집안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이랑은 자기 남동생이 죽었을 때, 마침 봉저가 몸이 아파서 자신의 딸 탐춘이 잠시 살림을 맡고 있는 틈을 이용해서 집안의 규정을 어기고서라도 딸 탐춘이 조의금을 많이 주기를 바랐지만, 탐춘이 세밀하게 경우를 따지며 규정대로 지출하려고 하자, 조이랑은 험악하게 대들었다.
“這屋里的人都踩下我的頭去還罷了.姑娘你也想一想,該替我出氣才是.”
(이 집안사람들이 다 내 머리를 밟고 지나가더라도 그만이지만, 탐춘 아가씨만은 잘 생각해서, 이 어미를 위해 한풀이를 해줘야 되지 않겠어)
“姨娘這話說誰,我竟不解.誰踩姨娘的頭?”
(이랑의 이 말씀은 누굴 두고 하시는 건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네요. 누가 이랑의 머리를 짓밟는지, 내게 말씀해주세요!)
趙姨娘道:“姑娘現踩我,我告訴誰!”
(조이랑은 “지금 탐춘 아가씨가 나를 짓밟고 있는데, 내가 누구한테 하소연하겠어!”라고 말했다)
왕부인王夫人은 항상 그녀가 아이를 통제하여 교도하지 못한다고 질책했고, 봉저鳳姐는 언제나 그녀에게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그런데다가 그녀가 낳은 친딸 탐춘조차도 그녀에게 치욕을 주며 근본적으로 이 모친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집안에 있는 어린 시녀들은 더더욱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아서, 말다툼을 하게 되면 함께 맞잡고 싸웠다.
그녀는 가부賈府의 각종 축하모임이 있을 때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결말은 귀신에 들려서 죽고 마는데, 죽은 모습이 대단히 처참하고 무섭다.
가련賈璉의 시첩侍妾 평아平兒
평아는 본래는 봉저鳳姐의 배방아두陪房丫頭(시집갈 때 따라가는 몸종으로, 일반적으로는 신부를 따라가서 1 개월 정도 일을 도와줌.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에 ‘배방아두’라고 함)인데, 봉저의 남편 가련賈璉의 시첩侍妾(귀인이나 벼슬아치의 시중을 드는 첩)이 된다. 그녀는 봉저가 가장 도움을 받는 심복으로 총명하고 유능하며 노련한데, 또 임기응변을 잘했다.
봉저가 병이 나서 탐춘 등이 집안일을 관리했던 기간에, 평아는 탐춘과 조이랑 간의 갈등을 능수능란하게 대처했는데, 그 처리가 대단히 적절했다. 평아는 직설적이고 악랄한 면도 있는 봉저와는 달라서, 그녀는 비록 영국부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그러나 전혀 힘에 기대어 다른 사람을 속인 적이 없었다.
가련이 몰래 우이저尤二姐를 첩으로 삼아 집밖에다 두자, 봉저가 우이저를 영국부로 들어오도록 해서 온갖 학대를 했을 때도, 평아는 여러 번 우이저를 찾아갔다. 우이저가 죽었을 때, 봉저는 장례를 치를 돈이 없다고 핑계를 댔지만, 평아는 몰래 200 량의 은자를 가련에게 주어 우이저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기지가 있는 평아였지만, 첩의 역할은 곤혹스러움을 면치 못했다. 봉저의 단속 아래, 그녀는 늘 숨어서 가련을 가까이해야 했다. 봉저는 자신의 생일날에 뜻밖에 가련이 포이鮑二댁과 간통 장면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질투심을 평아를 때리고 욕을 퍼부었다.
“.......平兒過來!你們淫婦忘八一條藤兒,多嫌着,外面兒你哄我!”
(..... 평아, 네년도 이리 와봐라! 너희 더러운 화냥년들이 한통속이 되어서 나를 미워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내 앞에서 아양을 떨었던 거지)
봉저에게 얻어맞은 평아는 화가 치밀었지만, 하소연할 데도 없자, 울면서 가련과 포이鮑二댁에게 욕을 했다.
“你們做這些沒臉的事,好好的又拉上我做什麽!”
(염치없는 일을 자기네가 저지르면서, 어째서 멀쩡하게 있는 나를 끌어들이는 거예요!)
부끄럽고 난처해진 가련은 또 평아에게 화풀이를 했다. 다행이도 노마님 가모賈母가 공평하게 판단하여 처리를 해주었다.
“因叫琥珀來:‘你出去告訴平兒,就說我的話:我知道他受了委曲,明兒我叫鳳姐替他賠不是.今兒是他主子的好日子,不許他胡闹’.”
(가모는) 그래서 호박을 불러서 말했다: ‘네가 가서 평아에게 내말을 전해라: 그 아이가 억울하게 당한 일을 내가 알고 있으니, 내일 봉저에게 사과하라고 하겠다고 말이다. 오늘은 봉저의 생일날이니까, 더 이상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해라’)
평아는 봉저가 죽은 뒤에 가련과 봉저의 딸 교저巧姐를 마음을 다해서 돌봐주어, 결국은 가련의 정실부인이 된다.
가련賈璉 우이저尤二姐
우이저는 가부賈府의 녕국부寧國府 가진賈珍의 부인 우尤씨의 계모가 데리고 온 딸인데, 가경賈敬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모친을 따라 여동생과 함께 녕국부에 장례식을 도우러 왔다가, 가련賈璉과 사귀게 되었다.
가련의 첩실 우이저-홍루몽도해본
가련은 그녀가 아름답고 온유한 것을 알고, 곧 집 밖에다 거처를 마련해서 그녀를 첩으로 삼았는데, 그녀도 물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가련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봉저는 일부러 그녀를 받아들여서 대관원大觀院에 거주하게 한다. 그녀는 봉저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구박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이 울분을 참으며 감히 아무 말도 못했다. 가련의 아이를 임신한 우이저는 호용의胡庸醫가 아무렇게나 지어준 약을 먹고 뱃속의 있는 남자 태아를 유산하고 만다.
우이저는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살길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되자, 할 수 없이 탄금呑金(중국에는 금을 삼키고 자살했다는 설화가 많음)하여 자살하는 것이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想畢,拃掙起來,打開箱子,找出一塊生金,也不知多重,恨命含淚便呑入口中,幾次狠命直脖,方咽了下去.于是趕忙將衣服首飾穿戴齊整,上炕躺下了.当下人不知,鬼不覺.”
(우이저는) 생각을 마치자, 겨우 몸을 일으켜 장롱을 열어 생금 한 덩어리를 찾아냈는데, 무게가 얼마인 지도 모르면서, 눈물을 머금고 억지로 입안에 집어넣었다. 몇 차례나 힘을 주어서야 목구멍으로 삼킬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장식도 단정하게 하고, 구들 위에 몸을 뉘였다. 그런 우이저의 행동을 하인들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귀신도 몰랐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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