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된 홍루紅樓 남자들 (5): 집안에서 가장 성가신 인물 가환賈環

一字師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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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된 홍루紅樓 남자들 (5): 집안에서 가장 성가신 인물 가환賈環

 

 

가정賈政과 조이랑趙姨娘이 낳은 아들 가환賈環은 그 모친의 영향을 받았는데, 외모, 언행, 인품 등이 가보옥賈寶玉과 선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가환은 가정의 3 번째 아들로 탐춘探春과는 어머니가 같은 남매지간이고, 보옥에게는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가 다른 남동생이다. 그는 보옥과는 뚜렷하게 다른데, 옹졸한 생김새에 행동거지는 거칠고 속되고, 또 어려서부터 조이랑과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모로 충동질을 받았기 때문에 집안사람 모두가 싫어했다.

 

어느 해 정월에 가환은 앵아鶯兒와 노름을 했는데, 노름에 지자 잡아떼며 돈을 주지 않아, 앵아는 화가 치밀었다.

 

一个做爺的,還賴我們這幾个錢,前兒我和寶二爺玩,他輸了那些,也沒着急,下剩的錢,還是幾个小丫子們一搶,他一笑就罷了.”

(도련님이면서, 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의 돈을 다 떼어먹어요. 예전에 보옥 도련님하고 할 때는, 노름에 져도 조급해하지도 않고, 돈이 남게 되면 어린 하녀들이 뺏어도 그냥 웃고 넘기셨어요)

 

가환은 집안의 상하上下 사람 모두가 보옥을 아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언제나 보복할 기회를 노렸다. 한 번은 가환은 왕부인王夫人 처소에서 금강주金剛咒를 베끼고 있었다. 얼마 뒤에 보옥이 들어오더니, 침상에 누워서 시녀 채하彩霞에게 농지거리 한 것을 가환은 눈에 새겨두었다.

 

채하는 평소에 가환과 비교적 마음이 맞았기 때문에, 그래서 가환은 보옥의 말버릇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리하여 일부러 실수를 가장하여, 기름이 가득 찬 등잔을 보옥의 얼굴에다 밀어뜨려서 보옥의 온 얼굴과 머리에 뜨거운 기름이 범벅이 되게 했다.

 

나중에 보옥은 왕부인의 시녀 금천아金釧兒와 농담을 하다가 금천아를 쫓겨나게 만들었는데, 그녀는 우물에 빠져 자살하고 만다. 가환은 그 틈을 타서 이 일에 곁가지를 더 보태서 아버지 가정에게 보고하자, 화가 치민 가정은 사건의 진상을 따져보지도 않고 보옥에게 매질을 가했다.

 

가부賈府가 몰락한 뒤, 가환은 형대구邢大舅, 교저의 외삼촌 왕인王仁, 설반薛蟠 등의 무뢰배들과 어울려서 종일 유곽에서 창기와 놀거나 도박에 빠지는 등 온갖 나쁜 짓을 다했다. 또 그는 왕인 등을 꼬드겨서 왕희봉王熙鳳의 딸 교저巧姐를 팔아먹게 만들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간파되어 대단히 궁지에 몰렸다.

 

가환의 성격을 형성하게 한 환경

1. 부친 가정은 가환이 행동거지가 옹졸하고 서툴다고 생각했다.

2. 왕부인은 養出這樣黑心不知道理的下流種子來!”(이런 흑심을 품고 도리를 모르는 종자種子를 키워내다니!)라고 가환을 말한바 있다.

3. 가모는 한 번도 가환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4. 보옥은 형제들은 모두 부모로부터 가르침과 훈계를 받는데, 내가 간섭하게 되면 오히려 사이가 생소해진다고 생각했다.

5. 봉저鳳姐는 가환에게 老三還這麽慌脚鷄似的,我說你上不得高臺板.”(셋째 도련님은 이렇게 닭처럼 갈팡질팡하니, 높은 자리에는 못 올라갈 거예요)라고 비평의 말을 했다.

6. 가련賈璉不是我攔着,窩心脚早把你的腸子窩出來了.”(내가 막는다고, 진작부터 명치에 쌓인 울분이 너의 창자를 치밀게 오르게 막지는 못할 것이야)라고 가환에게 말했다.

 

가환의 보옥에 대한 보복

1. 등잔기름을 일부러 보옥 얼굴에다 밀어서 자칫하면 보옥의 눈에 화상을 입힐 뻔했다.

2. 마도노파馬道老婆의 모략으로 칭원称愿(주로 미워하는 사람이 불행하게 되었을 때 속이 후련하다는 의미로 쓰임)의 목적을 달성했다.

3. 아버지 가정을 향해 나쁜 말을 날조하여, 보옥을 구타당하게 했다.

 

홍루몽이야기 : 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된 홍루紅樓 남자들 (4): 부인 봉저鳳姐의 후광에 가려진 가련賈璉

 

가련賈璉은 가부賈府의 영국부榮國府 종가宗家의 장손長孫이어서 본래 당연히 가업家業의 계승인이 되어 권력을 장악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가부의 대가족은 자손이 갈수록 못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 악랄한 아내 왕희봉王熙鳳(봉저鳳姐)보다 결단決斷에 능하지 못했다.

 

가련은 가사賈赦의 아들이고, 왕희봉王熙鳳의 남편이며, 교저巧姐의 부친이다. 가모賈母의 큰아들 가사는 황음荒淫하고 평범하고 포부도 없고, 또 그 부인인 대태태大太太(본처) 형부인邢夫人은 또 아직 자식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영국부의 집안 살림살이는 모두 이태태二太太(주인의 동생(차남)의 부인에 대한 칭호) 왕부인王夫人이 처리하고 있었는데, 가련과 그 아내 왕희봉은 숙부叔父인 가정賈政의 집에서 거주하며 영국부의 집안일을 관리했다.

 

가련과 왕희봉-홍루몽채도본

가련은 재간과 머리를 쓰는 방면에 아내 왕희봉보다 못했기 때문에, 그는 집안의 수입과 지출 등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일절 자신의 생각대로 처리하는 결정권을 갖지 못했는데, 사실상 영국부의 대권은 모두 봉저가 수중에 쥐고 있었다.

 

가련은 비록 돈을 주고 산 동지同知라는 관직은 있으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종일 술이나 마시며 쾌락을 쫓아 화류계를 찾아 다녔다. 방탕한 난봉꾼인 그는 영리한 아내 왕희봉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호색하는 본성을 고치지 못했다.

 

딸 교저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그 당시의 풍속을 따라 부부는 각 방을 써야했는데, 가련은 봉저를 떠나 다른 곳에 기거하게 되자 곧 다고랑多姑娘과 사통하여 정당치 못한 관계를 맺는다.

 

또 집안에서 왕희봉의 생일잔치를 할 때, 그는 또 그 틈에 포이鮑二의 아내에게 손을 대어 밀통하다가 봉저에게 뜻하지 않게 붙잡혀서 때리며 싸웠다. 그는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해서 술기운에 시첩侍妾(귀인이나 벼슬아치의 시중을 드는 첩) 평아平兒에게 화풀이를 하며 위엄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할머니 가모賈母의 총애에 의지하여 중대한 문제였지만 사소한 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가련은 풍류가 있고 자태가 아름다운 우이저尤二姐를 본 뒤로, 그 미색을 탐하여 속임수를 써서 첩으로 삼았는데, 또 우이저에게 본처인 봉저의 사람됨과 행동거지까지 다 얘기해주었다.

 

나중에 우이저를 첩으로 삼은 일은 봉저에게 간파되자, 그는 심히 난처해졌다. 봉저는 우이저를 가부로 데려와서 함께 거주하면서, 은밀하게 모함하고 박해를 했는데, 이를 더 견디지 못하게 된 우이저는 마침내 금을 삼키고 자살하고 만다. 가련은 온유하고 자상했던 우이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목이 메어 통곡했다.

 

비록 그는 마음속으로는 우이저의 죽음이 분명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홍루몽40중에는 가부가 가산을 차압당한 뒤, 구속되었던 가련은 비록 황상의 은혜로 석방은 되었으나 집안 재산을 다 잃고 마는데, 나중에 왕희봉이 죽은 뒤에 시첩 평아平兒를 정실부인으로 맞는다.

 

소설에서 가련은 정실부인 왕희봉과 3 명의 첩을 두었다

평아平兒: 배방陪房(시집갈 때 따라가는 몸종. 신부를 따라가서 1 개월 정도 일을 도와주거나, 혹은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에 배방아두陪房丫頭라고 함) 시녀로 가련의 첩이 되었는데, 희봉과 가련 사이에서 중재 역할도 하며, 가부에서는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모두에게 인심을 얻는다.

 

우이저는 녕국부寧國府의 가진賈珍의 처 우씨씨의 동생인데, 아버지는 같으나 어머니가 다른 여동생으로 가련의 첩이 된다.

 

추동秋桐은 본래 아버지 가사의 시녀였는데, 가사가 아들 가련에게 상으로 내려 첩을 삼았다.

 

가련에게는 정당치 못한 관계를 맺은 두 사람이 더 있는데, 영국부의 요리사 다관多官의 아내 다고랑이 있고, 영국부의 노복 포이의 아내 포이댁이 있다.

 

연관捐官

소위 연관捐官이란 바로 상당한 돈이나 양식糧食을 내어서 관직을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관직을 세 가지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었는데, 첫째는 작위를 세습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벼슬자리에 나가고, 그 세 번째가 바로 연관인 것이다.

 

사서史書에 기재된 바에 의하면, 진시황秦始皇 때에 메뚜기 떼로 재해가 생겼을 때, 일반 백성이 1천 석의 곡식을 납부하면 누구라도 일급一級의 작위를 주겠다는 조서를 내렸다고 한다.

 

나중에 한문제漢文帝 , 조착晁着의 주장으로 백성이 곡식을 바쳐서 관작官爵이나 속죄贖罪를 획득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렸는데, 이것이 대략 연관제捐官制의 기원인 것이다. 이때부터 역대 왕조는 대대로 통치자가 이 제도를 계속해서 사용했는데, 특히 명나라 청나라 때에 성했다.

 

홍루몽에 나온 연관의 사례

2회에서 가련은 돈을 내어 동지同知라는 관직을 산다.

 

13회에서는 가진의 아들 가용賈蓉이 아내 진가경秦可卿의 장례를 치를 때에 가진이 아들에게 용금위龍禁尉라는 관직을 돈으로 산다.

장우사는 태의인데, 진가경을 진맥한 적이 있다-홍루몽채도본

24회에서는 가운賈芸의 친구가 통판通判 직을 돈으로 산다. 또 가진이 부인 우씨에게 장우사張友士가 아들에게 연관으로 관직을 사주려고 상경했다고 말하는 장면이나온다.

 

45회에서는뢰상영賴尙榮이 관직을 돈을 내고 사서, 주현관州縣官으로 선발된다.

 

홍루몽이야기: 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남자들 (3): “태패왕呆覇王설반薛蟠

 

황상皇商 씨 집안의 외아들 설반薛蟠은 영락없는 망나니 부잣집 자제의 행동거지를 가진 사람이다. 어머니와 여동생 보채寶釵와 함께 도성으로 와서 가부賈府에 의탁하게 되자, 그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오직 집안 망신을 시키는 일만 저지르며 생활했다.

 

설반의 자는 문룡文龍, 왕부인王夫人의 여동생인 설이마薛姨媽의 아들이고, 보채寶釵의 친오빠인데, 그는 호부戶部에 이름을 올려놓은 황상皇商이다. 설가薛家는 선조의 비호에 의지하여 호부에 이름만 올려놓고 봉록을 수령하는 외에, 도성에 적지 않은 점포를 열고 있고, 외지에는 또 전답과 장원莊園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부친을 잃은 설반을 홀어머니는 애지중지하며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어서, 그는 종일 투계주마斗鷄走馬(닭싸움을 시키고 말을 달리게 하다/빈둥빈둥 놀며 일을 하지 않다)하거나, 산으로 강으로 놀러 다니는 것만 알았다.

 

돈을 마치 흙처럼 마구 낭비하는 설반은 성미도 좋지 않아 화를 잘 냈기 때문에, “태패왕呆覇王”(멍청한 패왕) 또는 설대사자薛大傻子”(왕바보 설반)라고 불렸다. 비록 공부는 한 적은 있으나 그저 글자를 약간 아는 정도이고, 황상皇商이라고는 하나 전혀 경영이나 세상 물정에 대해 알지 못했다.

 

설씨 집안은 설보채가 황실의 지명을 받아 선발되기 위해서 도성으로 옮겨온 것인데, 이때 설반도 모친을 모시고 함께 가부賈府의 영국부榮國府에 의탁하여 거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금릉金陵의 황상인 설씨 집안에 대해 소설에서는 호관부護官符를 통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豊年好大雪풍년호대설 (풍년에는 큰 눈이 내리는데)

珍珠如土金如鐵진주여토금여철 (진주와 금을 흙이나 쇠처럼 마구 쓴다)

 

거만하고 횡포를 잘 부리는 설반은 도성으로 이사하는 길에서도 제멋대로 날뛰며 재물과 권세에 기대어 이미 풍연馮淵에게 팔린 영련英蓮(즉 향릉香菱)을 첩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설반은 주인의 부와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노복에게 큰소리로 풍연을 때려죽이라고 명령했다.

 

이 사건을 판결하게 된 지현知縣 가우촌賈雨村호관부護官符를 보고나서 설씨 집안의 세력이 두려워서 아무렇게나 판결했다. 그리하여 제멋대로 다른 사람을 속여먹던 설반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자유롭게 모친을 모시고 여동생과 함께 도성으로 올라와 가부賈府로 들어갔다.

 

가부에 도착한 설반은 그 뒤로 더욱 내 세상을 만난 듯 날뛰며 생활했는데,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그는 가부의 부잣집 자식들을 거의 알게 되었고, 특히 자기와 비슷한 부류인 가련賈璉, 가용賈蓉과는 더욱 관계가 친밀했다. 설반은 황음무치荒淫無耻하여 남색男色을 좋아하는 버릇도 가지고 있었는데, 가부의 가숙家塾에서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실제로는 학생을 꾀어서 밀통했다.

 

한 번은 뢰대가賴大家가 베푼 주연 석상에서 유상련柳湘蓮을 알게 되었다. 설반은 또 유혹하고 싶은 마음을 먹었다가 유상련에게 거의 반은 죽다시피 얻어맞은 일도 있었다. 집안에 첩으로 향릉을 데려온 설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또 황상皇商 하씨夏氏 집안의 금계金桂를 아내로 맞아 들였고, 또 얼마 되지 않아 또 하금계의 배방아두陪房丫頭(시집갈 때 따라온 몸종을 말하는데, 신부를 따라가서 1 개월 정도 일을 도와주거나,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경우에 배방아두라고 함) 보섬寶蟾과도 사통하여 첩으로 삼았다.

 

그의 부인 하금계는 억지를 쓰며 성질을 부리며 유약한 향릉을 학대하고 구박하여 집에 있는 개나 닭까지도 편안하지 않을 정도로 소란을 피웠지만, 설반은 오히려 남자의 위엄을 전혀 내보이지 못하여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또 한 번은 남쪽으로 물건을 구매하러 가는 도중에 한 작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설반은 심부름꾼이 술을 늦게 가져오자 곧 성질을 부리며 술을 마시던 그릇으로 때려서 단번에 심부름꾼을 죽이고 말았다. 설반은 이 때문에 사형을 판결 받았다가, 나중에 가부와 설씨 집안에서 뇌물을 주어 석방되어 풀려나왔다. 사면된 뒤에 그는 뉘우쳐서 행동거지를 고쳤다.

 

아래의 태패왕呆覇王설반의 말과 그가 지은 주령酒令을 통해서, 그의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설반이 웃으면서 그대가 그림을 보여주니, 내가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어제 내가 춘궁春宮(춘화春畵를 말하는데, 화원畵苑에 춘궁비희도春宮秘戱圖가 있어, 그 후로는 음란한 그림을 춘궁이라 칭하게 되었음) 한 장을 봤는데, 정말 잘 그린 것입디다. 위에는 글자도 많이 있었지만, 자세히 보지는 못하고 단지 낙관落款만 봤는데, ‘경황庚黃’(당인唐寅)이 그린 것입니다. 정말 정말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설반은 풍자영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주령놀이를 할 때, 그는 여아女兒의 비와 수로 주령을 읊었다.

 

女兒悲---嫁了个男人是烏龜여아비---가료개남인시오귀

(여자의 슬픔은 --- 계집 하나 못 지키는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이네)

 

女兒愁---綉房里躥出个大馬猴여아수---수방리찬출개대마후

(여자의 근심은 --- 곱게 단장한 각시방에 말 원숭이 같은 신랑이 들어올 때이네)

 

홍루몽이야기 : 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남자들 (2): 씨 집안에 여전히 존재한 진부한 선비 가정賈政

 

가부賈府의 녕국부寧國府와 영국부榮國府 두 집에는 각기 관직을 세습한 나리가 있는데, 그 중에 가정賈政은 유일한 정통正統의 군자君子라고 말할 수 있다. 홍루몽紅樓夢에서는 가정을 공손하고 겸손하며 무던하고”, “고루한 면이 많이 있는”, “부귀하고 경박하지 않은 벼슬아치로 보여주고 있다.

 

가 존주存周인 가정은 영국공榮國公 가원賈源의 손자로, 사태군史太君 가모賈母의 둘째아들인데, 영국공과 가모의 사랑을 깊이 받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닦는데 힘써서, 벼슬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대단히 열중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줄곧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단지 황제에게 하급관직을 하사받았을 뿐이다.

 

가정은 관운官運이 좋지 않았는데, 맨 처음에는 공부주사工部主事를 맡았다가 나중에는 원외랑員外郞으로 승진했지만, 비록 학차學差로 외지에 근무한 적은 있으나, 다시 승진하여 전임轉任되지는 못했다. 소설 홍루몽40회를 보면, 그는 좋은 관리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다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여 명성과 평판이 나빠지고 만다.

 

자기 자신에 대한 유감이 있었기에 가정은 진정한 과거출신을 특별히 중시했다. 그래서 그가 사람들이 좋지 않게 얘기하는 가우촌賈雨村과 교제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가정은 자기 자손의 후대에 대해서는 더욱 지극한 기대를 품었다. 그는 모두 5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가주賈珠, 원춘元春, 보옥寶玉, 탐춘探春, 가환賈環이다.

 

맏아들 가주는 공부를 좋아했지만 불행하게도 일찍 죽었고, 장녀 원춘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선발되어 입궁하여 현덕비賢德妃에 봉해졌다. 가비賈妃 원춘이 성친省親(귀성歸省하여 친정부모를 문안하다)하러 왔을 때, 가정은 성황성공誠惶誠恐”(신하가 군주에게 장계를 올릴 때 쓰는 상투어)하다며 오직 황은皇恩에 감격해 하며 우러러 받든다. 서녀庶女 탐춘은 비록 재능은 있지만 결국은 여자였고, 서자庶子 가환은 거동이 옹졸하여 큰 인물이 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그는 모든 희망을 아들 보옥에게 걸고 있었다. 그러나 보옥의 반역叛逆적인 성격은 또 그를 대단히 분노하게 했기 때문에 애증이 엇갈렸다. 가정은 걸핏하면 보옥에게 축생畜生”(짐승 같은 놈), “해사적노재該死的奴才”(죽일 놈)이라고 욕을 하고, 친히 커다란 막대기를 보옥을 향해 휘두르며 온 힘을 다해 때리고, 그런 다음에는 또 밧줄로 교살絞殺하려고까지 했으나, 다행이도 보옥의 할머니 가모賈母와 아내 왕부인王夫人이 나서서 극력 저지해서야 그만둔 일도 있었다.

 

성친하러오는 원춘을 위해서 건축한 대관원大觀院을 장식할 대련對聯(한쌍의 대구對句의 글귀를 종이나 천에 쓰거나 대나무 나무 기둥 따위에 새긴 대구, 특히 설날에 쓰이는 것을 춘련春聯이라고 함)과 편액扁額을 정할 때, 가정은 매번 가는 곳마다 아들 보옥에게 문제를 내고 읊어보라고 했다. 아들이 비록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는 글을 짓는 재주가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아들을 저절로 새로운 안목으로 대하게는 되었지만, 표면상으로는 그래도 보옥에게 큰소리로 꾸짖으며 반박을 가했다.

 

소설 작품에서 전통적 유교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인물로 나오는 가정은 봉건의 정통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아 군주에게 충성하고 모친에게 효성스러웠다.

 

22회에서 가정은 원소절原宵節 저녁에 식구들이 하는 놀이에 참가했는데, 어머니가 낸 수수께끼 문제를 알았지만, 가모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하여 일부러 모르는척하며 이것저것 틀린 답을 말해서 그 벌로 많은 물건을 내고서야 겨우 알아맞히고 가모의 물건을 상으로 받는다.

 

또 이번에는 가정이 어머니에게 일상용품 알아맞히기문제를 내어, 가모가 대답할 차례였다. 가정이 낸 문제는 이러했다.

 

身自端方신자단방 (생김새는 네모지고 단정하고)

體自堅硬체자견경 (몸체는 자체가 단단하고 견고하다)

雖不能言수불능언 (비록 말은 할 수 없으나)

有言必應유언필응 (말을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응한다)

 

가정은 문제를 내고는 곧 보옥에게 가만히 일러주었는데, 보옥은 그 뜻을 알아채고 다시 몰래 할머니에게 귀띔해 드렸다. 가모도 정답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여서 곧 벼룻돌이라고 답을 말했다.

 

賈政笑道:‘到底是老太太,一猜就是.’回頭說:‘快把賀彩送上來.’地下婦女答應一聲,大盤小盤一齊捧上.”

(가정이 말했다. ‘과연 노마님은 대단하십니다. 단번에 그냥 딱 알아맞히셨습니다.’ 그리고 뒤를 보고 소리쳤다. ‘어서 빨리 축하 비단을 가져와서 올려라.’ 밑에 있던 어멈들이 대답하면서 일제히 큰 소반과 작은 소반을 올렸다)

 

수수께끼의 답안은 바로 벼루였는데, 가정자신을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엄숙하고 진지하며 완고하고 고집이 세어 변하지 않는 인상을 주는 사람으로, “단방端方견경堅硬으로 형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가정이 시부詩賦의 문제를 잘 내지 못하고 이치도 술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능언不能言이라고 형용한 것이다. 이날 가정은 원소절原宵節에 아가씨들의 등미놀이 내용을 읽어 보고, 희미하지만 민감하게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어서, “수불능언,유언필응雖不能言,有言必應이라고 말한 것이다.

 

制燈謎賈政悲讖語제등미가정비참어”(수수께끼 초롱 놀이에서 가정이 불길한 징조 느끼다)는 제 22회에 나오는 장회章回(장편소설 체재의 하나인데, 매 회마다 표제가 붙어서 소설 전체의 내용을 개괄해서 볼 수 있게 한 체재) 제목인데, 가정은 대관원大觀院 아가씨들이 지은 수수께끼를 본 뒤에 희미하나 불길함을 느끼고 비감해 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한다.

 

賈政心內沈思道:‘娘娘所作爆竹,此乃一響而散之物.迎春所作算盤,是打動亂如麻.探春所作風箏,乃飄飄浮蕩之物.惜春所作海燈,一發淸淨孤獨.今乃上元佳節,如何皆作此不祥之物爲戱耶?”

(귀비께서 지은 수수께끼는 폭죽인데, 이런 물건은 한 번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는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영춘이 지은 주판은 난마처럼 얽혀서 요동치는 것이고, 탐춘이 지은 연은 공중에 날아올라서 표표하게 떠도는 물건이다. 석춘이 지은 해등은 절간에서 고독하고 외롭게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 즐거운 명절인데, 어찌하여 이 아이들이 이렇게 상서롭지 못한 물건들로 수수께끼 놀이를 했단 말인가?)

 

홍루몽紅樓夢75회에 나오는 추석날 저녁 연회 장면에서도, 가정은 모친의 기분을 맞추어서 즐겁게 해드리려고 우스개 얘기를 했다. 어머니에게 술 취한 한 남자가 용서를 받으려고 발을 씻고 있던 아내의 발을 핥았다는 졸렬하고 속된 내용인데, 가모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하며 웃었다.

 

一家子一个人最怕老婆的.”“這个怕老婆的人從不敢多走一步.偏是那日是八月十五,到街上買東西,便遇見了畿个朋友,死活拉到家里去吃酒.不想吃醉了,便在朋友家睡着了,第二日才醒,後悔不及,只得來家賠罪.他老婆正洗脚,:‘旣是這樣,你替我舔舔就饒你.’這男人只得給他舔,未免惡心要吐.他老婆便惱了,要打,:‘你這樣輕狂!’唬得他男人忙跪下求說:‘幷不是奶奶的脚髒.只因昨晩吃多了黃酒,又吃了幾塊月餠餡子,所以今日有些作酸呢.’說的賈母笑了. 賈政忙斟了一杯,送與賈母.”

(“어떤 사람이 아내를 대단히 무서워했습니다.” “이 아내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감히 혼자 한 발짝도 다니지를 못했답니다. 하필이면 그날이 815일인 추석날, 길에서 물건을 사다가 친구 몇을 우연히 만났는데, 죽기 살기로 자기 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만취해서 친구 집에서 잠이 들고 말았는데, 다음날 잠을 깨자, 후회막급이었지만,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용서를 빌었답니다. 그의 아내는 발을 씻고 있다가, ‘이왕에 그렇게 되었으니, 당신이 내 발을 핥아주면 용서해 줄게요라고 말했답니다. 그 남자는 할 수 없이 마누라의 발을 핥았는데 구역질을 하려하자, 그의 마누라는 화가 나서 남편을 때리려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찌 그리 경망스러워요!’ 놀란 남편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당신 발이 더러워서가 아니고, 내가 어제 밤에 황주를 너무 마셨고, 또 월병을 몇 개나 먹었더니, 오늘 신물이 좀 올라온 거요가정의 얘기를 다 들은 가모는 한바탕 웃었다. 가정은 얼른 술을 한잔 따라서 가모에게 올렸다)

 

그러나 잠시 그때뿐 가정이 집안 연회에 참석하면, 언제나 모두들 말을 하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어서 재미가 없어지고 무미해졌기 때문에, 가모도 할 수 없이 가서 쉬라고 가정을 내보냈다.

 

가씨 집안 녕국부寧國府와 영국부榮國府의 후대자손

녕국부는 녕국공寧國公 가연賈演의 아들 가대화賈代化는 경영절도사京營節度使를 세습한 일등신위장군一等神威將軍으로, 두 아들을 두었는데, 가부賈敷와 가경賈敬이다.

 

가부賈敷8,9 살에 요절했다. 그 아들 가경賈敬은 을묘乙卯 과거에서 진사進士가 되었으나, 덮어놓고 도교道敎만 좋아하여 집안을 관리하지 않는다. 가진賈珍은 가경의 아들인데, 삼품의 위열장군威烈將軍을 세습하고 집안을 관리하고, 가진의 아들 가용賈蓉은 응천부장녕현감생應天府將寧縣監生으로 연룡금위捐龍禁尉로 있다.

 

영국부는 영국공榮國公 가원賈源의 아들 가대선賈代善에게는 맏아들 가사賈赦와 둘째아들 가정賈政이 있고, 가사의 아들이 가련賈璉이다.

 

가정에게는 가주賈珠, 가보옥賈寶玉, 가환賈環의 세 아들이 있다. 큰 아들 가주는 요절하고, 가주의 아들 가란賈蘭은 향시에서 130 등으로 합격하여 거인擧人(·청 시대에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이 된다. 가보옥은 가란과 함께 치른 과거시험에서 7 등을 했다. 셋째 가환賈環은 행동거지가 심히 쩨쩨하고, 보옥을 미워하며 해코지한다.

 

녕국공와 영국공 이후부터, 가부 후손의 관직은 세습으로 내려온 사람이 많고, 혹은 연관捐官(청대淸代에서 돈으로 관직이나 공명첩功名帖을 사다)의 형식으로 획득했다. 장남으로 각각 분가한 가대화, 가대선, 가사, 가진은 모두 관직을 세습할 자격을 가진 사람이다. 오직 가경 혼자만 진사 출신이었는데, 그러나 그는 도리어 도가道家에 심취해서 단약丹藥 만드는데 빠져서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홍루몽이야기 : 골육骨肉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남자들(1): 부귀한인富貴閑人 가보옥賈寶玉

 

아래의 두 사(중국 고전문학 중의 운문의 일종. 5언시나 7언시·민간가요에서 발전한 것으로 당나라 때 처음 만들어지고, 송나라 시기에 가장 성했다. 원래는 음악에 맞추어 노래 부르던 일종의 시체詩體였는데, 의 길이가 가조歌調에 따라 바뀌어서 장단구長短句라고도 부르고, 사여詞餘라고도 한다. 소령小令과 만사慢詞2종류가 있고 일반적으로 상하上下 양결兩闋로 나누어짐)는 후인後人이 지은 서강월西江月인데, 소설 홍루몽紅樓夢의 남자주인공 가보옥賈寶玉에 관한 평가로 홍루몽紅樓夢3회에 나온다. 이 사는 정말로 그의 성격적 특징을 잘 대변하고 있는데, 보옥의 약점을 드러내어 세상에 때가 묻지 않은 그의 동심童心을 칭찬하고 있다.

 

無故尋愁覓恨무고심수멱한 (아무 이유도 없이 근심 걱정을 찾아다녀서)

有時似傻如狂유시사사여광 (때로는 바보 같고 때로는 미친 것 같네)

縱然生得好皮襄종연생득호피양 (타고 나기는 번듯하게 하지만)

腹內原來草莽복내원래초망 (뱃속에는 원래 잡초만 들어있네)

潦倒不通世務료도불통세무 (세상일에는 할 줄 아는 게 없고)

行爲偏僻性乖張행위편벽성과장 (하는 짓은 편벽되고 성격은 괴팍하여)

那管世人誹謗!나관세인비방! (세상 사람들의 비방은 상관도 안하네!)

富貴不知樂業부귀불지낙업 (부귀할 때 가업을 지킬 줄 몰라)

貧寒難耐凄凉빈한난내처량 (빈한함을 견디지 못하여 처량하네)

可憐辜負好韶光가련고부호소광 (좋은 세월을 허송하니 가련하여)

于國于家無望우국우가무망 (나라에도 집안에도 희망이 없구나)

天下無能第一천하무능제일 (무능하기로는 천하에 첫째가고)

古今不肖無雙고금불초무쌍 (고금에 불초한 것도 제일가는구나)

寄言紈袴與膏粱기언환고여고량 (부잣집에서 부귀한 자제들에게 전하노니)

莫效此兒形狀!막효차아형상! (이 도련님의 형상을 본받지마오!)

 

소설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曹雪芹은 제 3회에서 가부賈府에 도착한 임대옥林黛玉이 영국부榮國府에 들어가 외조모 가모賈母에게 인사를 드릴 때, 처음으로 보옥과 대면하게 되는데 그녀의 눈에 비친 보옥의 얼굴 생김새를 독자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面若中秋之月,色如春曉之花,鬂若刀裁,眉如墨畵,面如桃瓣,目若秋波.雖怒時而若笑,卽瞋視而有情.頂上金螭瓔珞,又有一根五色絲絛,系着一塊美玉.”

(얼굴 모습은 가을밤의 달과 같고, 얼굴색은 봄날 새벽에 핀 꽃과 같다. 귀밑머리는 칼로 자른듯하고, 눈썹은 먹으로 그린듯하다. 얼굴은 복숭아꽃의 꽃잎처럼 생기고, 눈은 가을날의 물결과 같다. 화낼 때도 웃는 듯하고, 눈을 부릅뜨고 노려볼 때도 정을 머금은 듯했다. 목에는 금빛 교룡의 작은 구슬을 꿴 영락을 걸고, 또 오색영롱한 색실 끈에는 아름다운 옥이 달려 있었다)

 

보옥과 대옥의 첫 대면-홍루몽 채도본

 

보옥의 진명眞名

진명眞名은 말하자면 대명大名인데, 또 학명學名, 관명官名, 본명本名, 족명族名, 보명譜名이라고도 한다.

 

가보옥은 영국부榮國府 가모賈母의 적손嫡孫으로 가정賈政과 왕부인王夫人의 둘째 아들로, 태어날 때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나 이름을 보옥寶玉이라고 지었다. 홍루몽의 남주인공은 가보옥이라고 다 알고 있지만, 그러나 보옥寶玉이 그의 아명(어릴 때 부르던 이름)이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데, 노마님 가모賈母가 아명을 부르는 것이 잘 큰다고 생각하여, 그래서 모두에게 그렇게 부르라고 분부했기 때문이었다.

 

보옥의 대명大名이 무엇인지는 원저原著에는 글자로는 제기한 바 없지만, 씨 집안의 명명命名의 규정에 의거하면, 그의 대명이 자변字邊을 지니고 있을 것은 명백하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로 보옥의 본명을 추측하여 제기한 바 있다.

 

가각賈珏: 보옥이 옥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서 아예 자 옆에 다시 을 하나 더 붙인 이름이다.

 

가영賈瑛: 가보옥은 신영시자神瑛侍者의 화신化身이기 때문에, “은 옥과 비슷한 미석美石이어서 보옥이 가보옥寶玉이라고 암시한 것이다.

 

가기賈璣: 가부賈府座上珠璣昭日月,堂前黼黻煥烟霞좌상주기소일월,당전보불황인하(자리에 앉은 주기珠璣에 일월이 비추고, 안채의 보불은 안개와 노을로 환하네)(“는 둥글지 않은 구슬이고, “는 옛날 예복에다 수놓은 무늬인데, 반은 희색, 반은 검은색으로 서로 등을 대고 있는 도끼 형상을 하고 있고, 은 옛날 예복에 푸른 실과 검은 실로 수놓은 화문花紋을 말함)라고 쓴 대련對聯이 있는데, 보옥의 형이 가주賈珠이니, 그러면 보옥은 자연히 바로 가기賈璣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가부에서 변이 있는 이름을 가진 보옥의 남자 동배同輩(같은 항렬자를 쓰는 사람)으로는 가진賈珍, 가주賈珠, 가련賈璉, 가환賈環이 있다. 그 중에 가진과 가주는 정출이고, 가련과 가환은 서출이다.

 

보옥의 여자형제

가부賈府의 영국부榮國府와 녕국부寧國府에는 보옥의 여자형제가 4 사람이 있다.

 

영국부에는 가정賈政과 왕부인王夫人이 낳은 큰딸 첫째 누나 귀비貴妃 가원춘賈元春이 있고; 가보옥의 큰아버지 가사賈赦와 영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가영춘賈迎春이 둘째 누나가 되고; 가정과 첩 조이낭趙姨娘이 낳은 가탐춘賈探春은 셋째 누이동생이다.

 

녕국부寧國府에는 가경賈敬과 석춘의 어머니가 낳은 딸 가석춘賈惜春이 있는데, 바로 넷째 누이동생이 된다.

 

여자아이는 모두 이름에 을 넣어, 정출正出은 원춘, 석춘이고, 서출庶出은 영춘, 탐춘이다. 그밖에 여주인공 임대옥林黛玉은 고종사촌지간이고, 또 다른 여주인공 설보채薛寶釵는 이종사촌지간이다.

 

가보옥의 별칭別稱은 강동화주絳洞花主, 부귀한인富貴閑人, 이홍공자怡紅公子, 무사망無事忙이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중에서, 남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은 왕손귀족이면서 봉건사회에서의 반역자叛逆者를 대표하고 있다. 그는 가부賈府 가계家系의 명맥命脈이고, 연애고사戀愛故事의 중심이며, 인생철학의 설교자說敎者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보옥을 통해서 가장 자기 주관과 색채를 풍부하게 그려냈는데, 그는 다른 귀족 젊은이보다 더욱 진실한 사랑과 동정심을 중시하여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직감直感으로 그가 처한 시대에 항거한다.

 

보옥이 만 1 살이 되는 돌잔치에서 돌잡이를 할 때, 지묵필연紙墨筆硯 등의 물건은 전혀 쥐지 않고, 오직 연지·비녀·팔찌 등의 여자들 물건만 손에 쥐고 놀았다. 보옥은 어려서부터 여자아이들이 있는 데서 자랐는데, 7 살이 되었을 때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생긴 사촌누이동생 임대옥林黛玉이 영국부에 와서 같이 살게 되었을 때 더욱 경탄해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외사촌 누나 설보채薛寶釵네 식구가 와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는데, 대옥과 보채가 다 하늘의 선녀와 같은 인물이어서 보옥은 좋아하며 그때부터 더욱 공부에는 마음을 두지 않게 되었다.

 

보옥은 어려서는 큰 누나 원춘元春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나중에는 아버지 가정이 가숙家塾에서 한 동안 공부를 하게 했지만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의 지식은 대체로 별도의 여러 가지 잡다한 책을 스스로 읽고 안 것들이다.

 

보옥은 대련對聯(한 쌍의 대구對句의 글귀를 종이나 천에 쓰거나 대나무·나무·기둥 따위에 새긴 대구, 특히 설날에 쓰이는 것을 춘련春聯이라고 함)을 짓는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새로 건축한 대관원大觀院의 각 거처에다 현판을 써서 걸려고 할 때, 보옥을 시험해 본 아버지 가정도 그를 새로운 안목으로 봤을 정도였다. 그가 지은 것으로는 대관원大觀院에 거는 편액扁額과 대련對聯이 있는데, 참선게參禪偈, 사시즉사四時卽事, 방묘옥걸홍매訪妙玉乞紅梅등이 있다.

 

그러나 그는 설보채와 임대옥 등의 재녀才女들 사이에서는 창피를 면하지 못하여 침울할 때가 많았다. 여럿이 모여 해당시海棠詩, 국화시菊花詩를 짓고, 호설암芦雪庵에서 연구聯句(각자가 한 구씩 결연되게 지은 시)를 지을 때에도 시를 썼지만 매번 낙제한 사람은 바로 보옥이었다.

 

특히 벼슬길로 나아가기 위한 경전經典를 공부하는 것을 특히 싫어하고, 권세와 부귀한 사람과의 교제도 원하지 않았다. 보옥은 세속의 나라를 다스리는 경세제민經世濟民에 대한 글에는 전혀 흥취가 없었지만, 종교나 학술이 아닌 이단적인 방문좌도旁門左道방면에는 도리어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서상기西廂記를 읽다가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대옥에게 입이 마르게 칭찬했는데, 곧바로 배운 것을 실제로 대옥에게 인용해서 대옥을 발끈하게 하기도 했다.

 

我就是个多愁多病身’,你就是那傾國傾城貌’”

(나는 바로 근심도 걱정도 많은 병들고 외로운 몸’, 당신은 바로 나라도 성도 넘어지게 한 경국지색이라네)

 

장생과 최앵앵의 애정고사 서상기-홍루몽 채도본

한 번은 중국의 전통연극을 볼 때에 보채가 보옥에게 절묘한 희곡戱曲 몇 구절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그는 대옥과 사상운史湘雲에게 질책을 받고 침울했었지만, 결국은 어느 정도 불교 교리의 참 뜻을 깨닫는다.

 

보옥의 성격적 특징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관심을 두고 자유를 열렬하게 좋아하고 감정을 대단히 중시했다. 그는 본래부터 여자는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우관藕官이 행자음杏子陰에서 적관菂官을 위해 신령 앞에서 지전紙錢을 태우는 것을 본 할멈이 와서 욕하려고 하자, 보옥은 그녀를 위해 감싸주었다.

 

그러나 보옥도 어쩔 수 없는 부잣집도련님이 하는 짓을 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 왕부인 면전에서 금천아金釧兒에게 집적거리다가 졸음이 깬 왕부인이 대노하자, 보옥은 얼른 일찌감치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 길로 금천아는 우물에 빠져 자살하는데, 보옥은 그저 아무 변명도 해주지 않았다. 한 번은 비가 심하게 내린 날에 서둘러 자기 거처에 돌아온 보옥이 문을 두드린 지 한참만에야 시녀 습인襲人이 문을 열어주었을 때에 보옥은 그녀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보옥은 민감하고 의심이 많은 임대옥에게는 언제나 할 말이 있어도 변명을 하지 못하곤 했는데, 또 언제나 그런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했다. 또 대옥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통령보옥通靈寶玉까지도 깨뜨릴 수 있다고 말하며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대옥의 시녀 자견紫鵑이 그에게 대옥이 고향인 소주蘇州로 돌아간다고 거짓말을 하며 보옥의 마음을 떠보려고 했을 때, 그는 그 말을 곧이듣고 상심하여 곧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보옥은 보채에게는 거침이 없이 편안하게 대했는데, 때로는 진심으로 부러워하거나 존경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당면한 자리에서 그녀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부귀한 집 도련님으로 일없이 노는 부귀한인富貴閑人가보옥은 가부가 날로 쇠락해지고, 자매들도 한 사람씩 그를 떠나가자 비할 데 없이 처량하고 적막함을 느낀다. 홍루몽40중에서 통령보옥이 까닭도 없이 사라졌을 때에 그는 곧바로 얼이 빠져 바보처럼 변하여 이미 완전히 옛날의 활발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다가 보옥은 가모의 결정으로 왕희봉王熙鳳도포계掉包計”(가짜를 진짜로 바꾸거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살짝 바꾸는 계책)에 속아서 대옥과 결혼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보채와 결혼을 했던 것이다. 대옥은 보옥의 결혼 소식을 듣고 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는데, 그 사실을 안 보옥은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생각만 하게 된다.

 

보옥은 결국은 마지막에는 부친의 염원에 따라서 과거시험을 보고 합격은 했으나, 그러나 이때의 그는 이미 모든 것에 달관하여 속세를 단념하고, 스님과 도사를 따라 출가하여 불문佛門에 귀의한다.

 

약수삼천弱水三千: 대옥을 향한 보옥의 마음

약수弱水라는 단어는 일찍이 상서尙書·우공禹公導弱水至于合黎도약수지우합려(약수를 인도하여 합려에 이르다)에 보인다.

 

옛날에 많이 얕기는 하나 물살이 센 강물에는 배를 사용할 수 없어서, 다만 피벌皮筏(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뗏목)을 사용하여 건넜다고 한다. 옛사람은 물이 충분하지 못하면 배를 띄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때문에 이런 하류河流를 약수弱水라고 불렀다.

 

소식蘇軾금산묘고대金山妙高臺중에 蓬萊不可到,弱水三萬里동래불가도,약수삼만리(봉래에는 이를 수 없으나, 약수는 3만 리나 갈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에서 약수가 처음으로 구체적인 숫자로 연용連用되었다. 나중에는 소설에 이런 단어를 쓴 것을 때때로 볼 수 있었다.

 

서유기西游記에서 당삼장唐三藏이 사승沙僧을 거둘 때, 유사하流沙河(유사는 강의 바닥이나 어귀에 쌓여 있는 흩어지기 쉬운 모래를 말함)의 지세가 험준한 것을 묘사한 시가 있다.

 

八百流沙界팔백류사계 (팔 백리 모래가 흘러간 경계가)

三千弱水深삼천약수심 (삼천리 약수가 되었네)

鵝毛飄不起아묘표불기 (거위 털은 바람에 날리지 못하고)

蘆花定底沈로화정저침 (갈대꽃은 밑으로 가라앉네)

 

이것은 첫 번째로 정식으로 약수삼천弱水三千의 표현법이 출현한 것이다. “삼천三天은 일반적으로 불가佛家에서 늘 말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구사론俱舍論등에 근거해 광대한 우주를 표현하는 불교용어)를 가리킨 것이다.

 

91회 말미에 대옥과 보옥의 대화에 약수삼천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대옥에 대한 보옥의 마음을 알 수 있다.

 

寶玉呆了半晌,忽然大笑道:‘任凭弱水三千,我只取一瓢飮.’”

(보옥은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웃으면서 약수가 삼천리라 할지라도, 나는 오직 한 바가지의 물만 취할 뿐이야라고 대답했다)

 

黛玉道:‘瓢之漂水奈何’?”

(대옥은 만일 바가지가 물에 떠내려가 버리면 어쩔 건대요?’라고 물었다)

 

寶玉道:‘非瓢漂水,水自流,瓢自漂耳!’”

(보옥이 바가지가 물에 떠내려가는 게 아니고, 물은 물대로 흐르고 바가지는 바가지대로 떠내려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黛玉道:‘水止珠侵,奈何?’”

(대옥이 물이 떠내려가기를 멈추고, 구슬은 가라앉으면 어쩔 건대요?’라고 물었다)

 

寶玉道:‘禪心已作沾泥絮,莫向春風舞鷓鴣.’”

(보옥은 선심禪心이 이미 진흙에 젖은 버들개지 털처럼 되었으니, 봄바람을 향해 자고새도 춤추지는 않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黛玉道:‘禪門第一戒是不打狂語的.’”

(대옥은 선문禪門에서 첫 번째의 계율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랍니다라고 대꾸했다)

 

寶玉道:‘有如三寶.’”

(보옥은 내 마음은 삼보三寶와 같아라고 말했다)

 

黛玉低頭不語.

(대옥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보옥이 말한 선심禪心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진흙에 빠진 버들개지 털에 비유하여 고요해져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자신의 대옥을 향한 애정은 변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보옥의 만약에 대옥에게 뜻밖의 일이 생기게 되면, 자신은 곧 세상사에 미련을 두지 않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겠다는 뜻을 암시한 것이기도 한데, 나중에 대옥이 죽은 뒤에 정말로 보옥은 과거에 합격하여 아버지와 온 집안의 염원을 이루어주고, 자신은 바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리고 삼보三寶는 불교 용어인데, , , 을 말한다. |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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