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은 왜 중국 고전문학의 백미라 하는가?
홍루몽(紅樓夢)은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이 쓴 고전소설이다. 등장인물만 721명에 달하며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홍루몽이 삼국지와 서유기, 수호전에 비해 인지도에 밀리지만 많은 중국 학자들도 홍루몽에 대해 연구해 "홍학"(홍루몽학)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홍루몽은 문학적 가치,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국 고전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홍루몽을 금병매를 제외시킨 '사대명저'의 하나로 친다.
소설의 제목인 '홍루몽(紅樓夢)'의 뜻을 직역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紅樓는 홍등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며 작중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다.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설근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가장 먼저 언급된 제목인 <석두기>는 주인공인 가보옥이 여와가 쓰다가 남은 돌의 화신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승록>은 속세의 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된 <풍월보감>과 <금릉십이차(금릉십이채)>는 각각 작중에서 언급 및 등장한 보물 및 등장인물들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이 <홍루몽>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청대에 일시적으로 홍루몽이 금서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옥연>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홍루몽의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의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1791년 정위원이 기존의 80회본에 고악이 쓴 40회본을 결합해서 120회본으로 간행한 것이 "정갑본"이고, 이듬해에 이 120회본을 개정한 것이 "정을본"이라 한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 이전에는 필사본의 형태로 유포되었는데, 문제는 작가인 조설근이 원고가 출간되기 전에 사망해 버려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설근이 최초로 작성한 원고 중 유실된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정위원은 지인인 고악(1763~1815)에게 흩어진 필사본의 내용을 수집,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1791년과 1792년에 거쳐 '홍루몽'이라는 제목이 붙은 120회본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악은 자신이 쓴 후반부가 조설근의 원고를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고악이 진시를 통과하고 한림원에 들어가기도 할 정도의 정통 한학자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조설근이 쓴 80회본까지만 읽었을 때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조설근이 쓴 부분까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많은 자칭 후속편 동인지들이 나돌았는데, 정위원이 그 가운데 가장 작품성 있는 고악의 버전을 공식 후속편으로 '지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실된 내용이 많았던 탓에, 2006년에는 중국에서 고악이 후반부 40회의 내용을 변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기사 링크 그러다가 최근에는 고악과 정위원 이전에 이미 120회본 홍루몽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데다가 조설근의 판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여러 종류가 드러남으로써 어느 쪽이 '원본'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홍루몽의 줄거리는 오늘날의 난징인 금릉을 기원으로 한 부유한 가(賈)씨 가문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는 영국공(榮國公)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남자 주인공)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채의 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폭정들[7]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쓸모없는 이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남성 가문원들이 대부분 무능력하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고,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만을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임대옥은 돌이 가보옥으로 태어나기 전에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을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하였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미소녀였으나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설보차(설보채)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태어났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고 두 명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의 봉호를 받은 가원춘은 특별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 공간으로 두기 아깝다고 여겨 가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가보옥은 임대옥, 설보차와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각각 거처를 두게 되어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나이를 먹게 되자, 가보옥은 설보채에게도 일정한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치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차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왕희봉과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 통령보옥이 돌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 가보옥은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귀비 가원춘도 같은 시기에 병사하였다. 이에, 사태군 등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보옥의 측근 시녀였던 화습인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감정이 보통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것을 알게된 가보옥은 엄청난 충격으로 인한 허탈상태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문원들의 폐단이 겹친 결과 가씨 가문은 공작위들과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렸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가보옥은 한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한채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에 진비는 낙향하는 가화와 함께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아이를 낳자마자 죽은 딸 영련의 영혼을 천계로 보낸 뒤 망망대사와 묘묘진인과 함께 이야기를 끝마친다. 후일담에 보차는 보옥의 아들을 홀로 키우며 수절하고 있다고 한다.
『홍루몽』은 조설근이 호사스러운 생활과 궁핍을 거치면서 인간과 세상을 통찰한 후에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과 역량을 기울여 완성해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부귀영화를 누리던 귀족 가문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는데 다양한 성격, 외모, 운명을 지닌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조설근은 시사(詩詞) 와 금석(金石), 서화, 의학, 건축, 요리, 직조, 염색 등 다 방면에 정통하였으므로 귀족 가문의 음식, 주거 문화와 건축 원예, 생활 용품, 의복과 인테리어 그리고 교통 수단과 연회장의 풍경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무려 700명이 넘는 등장인물로 구성된 방대한 스케일의 구도 속에 역사적 흥망성쇠를 겪는 거대한 귀족가문을 설정하고, 다시 그곳을 무대로 하여 신화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신비로운 사랑의 삼각관계를 깊이 그려내어 마침내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우주적 이법과 실재에 대한 사유에만 몰두했던 고전철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표상과 필멸의 욕망의 세계와 영원한 진리의 세계의 대립이 아닌,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사상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이후에 꽃피게 되는 현대 중국문학의 초석을 쌓았으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중국의 무협작가들인 이수민, 왕도려, 양우생, 김용, 고룡 등등 홍루몽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홍루몽은 인물창조에 있어서 전형적 인물들을 대거 창조해냈다. 홍루몽의 인물은 더 이상 완전하게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며 도덕관념의 화신도 아니고 다측면, 다각도, 다변화의 입체감을 지닌 인물들로 그들 모두의 내면에는 풍부한 현실성이 담겨 있다. 홍루몽에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은 진실 될 뿐만 아니라 독특하고도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하였다. 소설사적으로 보아서 홍루몽의 인물창조가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각계각층의 인물, 특히 하층인물들의 각성과 분노를 큰 비중으로 다르고 있으며, 하녀들도 자각적이며 독특한 개성의 긍정적 인물로 그리고 있다는 데에서 참으로 특기할 만한 전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홍루몽의 인물들은 모두 뛰어난 전형성과 진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긍정적 인물들을 대거 창조하여 작가의 희망과 이상을 기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설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홍루몽은 금병매가 비록 인정세태를 다각적으로 묘사했다고는 하나, 묘사한 현상의 본질적 의의를 드러낼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여, 삶의 모든 현상을 취사선택하고 가공하여 세세한 장면마다 자신의 이상과 감정을 불어넣었고, 자신의 이상과 비판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서 홍루몽의 섬세한 묘사는 핍진하고 진실 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삶 자체에 대한 재현에다 삶의 본질에 대한 해부와 비판을 결합시킴으로써 객관적 묘사 가운데 본질적 의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섬세한 묘사는 진실하고 심각한데서 그치지 않고 전체 작품의 구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뛰어나며, 작품의 주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주제의 심각성을 한층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 금병매보다 훨씬 풍부하고 생동적이다. 이러한 섬세한 묘사의 풍부성, 정련성, 진실성 등으로 말미암아 홍루몽은 중국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풍부하나 예술적 매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작품의 주제 또한 한층 더 부각될 수 있었다. 홍루몽은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고 심도있게 묘사하였다. 보옥이 사상운과 습인을 보고 “대옥은 종래로 자기에게 벼슬을 하라는 얼빠진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칭찬하는 것을 엿들은 대옥의 당시의 심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언어운용의 측면에서 보면, 홍루몽의 언어는 자연스럽고 유창할 뿐만 아니라 당시 북경지대의 구두어에 기초하여 순수하고 세련된 문학 언어를 사용하여 간결하고 정확하고 소박하면서도 생동적이다. 따라서 다양하고도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평범한 언어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형상을 적절하고도 생동적으로 묘사해 냄으로써 강렬한 예술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사의 삽입 면에서 보면, 홍루몽에 삽입된 시사(時詞), 그리고 곡부(曲賦)등은 예술적 효과는 물론이요 주제의 전개와 인물 및 환경묘사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홍루몽중의 시사 자체가 비록 당시와 송시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를 더 아름답게 보는 이유는 독자들이 홍루몽중의 시사를 읽으면서 인물과 스토리를 함께 결합시켜 보충하고 상상하는 까닭이다.
可歎停機德, 堪憐咏絮才 베틀 거둔 부덕(婦德)이여, 눈꽃 읊던 재주여
玉帶林中掛, 金簪雪裏埋 옥띠는 숲속에 걸리고, 금비녀는 눈 속에 묻혔구나
홍루몽의 표현기법상의 또 다른 특징은 명말 청초의 인정소설에 보편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은폐수법(隱蔽手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종종 작품 서두에 일단의 주장을 늘어놓아 그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말리거나, 혹은 회말 등에 유불관념이 지배하는 주제를 개괄해 놓기도 하며, 줄거리의 전개 도중에 의론성 문장을 끼워 넣음으로써 인물과 사건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인정소설은 창작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교묘히 감춤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세심하게 살펴 숨은 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인데 홍루몽에도 이러한 수법이 사용되었다. 조설근은 은폐수법의 운용으로 인해 예술성이 저하된 인정소설의 보편적 결함을 극복하고 이를 고도의 창조적 역량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효과를 거두었다.
홍루몽은 중국인의 문화와 중화미의 비극전통인 심리방식, 심미관까지도 그려내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상을 현실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는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학 작품이다. 역사상 가치 있는 것이 소멸됨을 보여주는 것이 비극이라는 노신의 정의에 입각해 볼 때, 홍루몽을 이루는 중심적 비극 구조는 애정혼인 비극구조이다. 이러한 애정 혼인비극은 봉건제가 흔들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변모하는 사회의 많은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보옥과 금릉십이채로 대표되는 작가의 이상을 기탁한 인물들이 대부분 불행한 결국은 홍루몽 비극성 자체를 한층 더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홍루몽은 기존의 중국 고전 비극미학의 전통인 희비교집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원주의의 타파와 그로 인한 비극성의 제고라는 새로운 미학적 면모를 보여주는 훌륭한 비극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홍루몽의 뛰어난 성취는 주로 금병매와 재자가인소설에 나타나는 부족함을 창조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파악될 수 있었는데, 그러한 보완과 혁신이 너무도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홍루몽이 출현한 이래 전통적 사상과 작법이 타파되었다고 하는 최고의 평가까지 받은 듯하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현실인식이 뚜렷했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품고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예술적 구상이 뛰어났던 치열한 작가정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 중엽의 홍루몽은 명대의 금병매와 청초의 재자가인소설의 전통을 계승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전에 없는 참신하고도 대담한 중국 인정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홍루몽은 주제, 제재, 구성, 인물묘사, 언어의 운용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소설뿐만 아니라 홍루몽 이후의 인정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경지를 이룩한 중국소설의 최고봉으로 자리 매김을 한다. 이러한 성취는 작가 조설근의 진보적 세계관과 탁월한 작가적 역량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는 청초 인정소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혁신이자 쇠퇴에 대한 반동의 결과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홍루몽은 청 중엽 인정소설을 고조기로 끌어올리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청 중엽의 소설은 삼엄한 사상통제로 인해 풍정과 일사에만 주력했기 때문에 사실상 청초보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중엽을 인정소설의 고조기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고도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지닌 홍루몽의 문학성 때문이다.
사대명저중 <홍루몽>이 가장 늦게 쓰였다. 그러나 후래거상(後來居上)이라고, 그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공인받고 있다. 중국고전문학의 최고봉이다. 다만, <홍루몽>이 이런 지위를 획득한 것은 확실히 기니간 과정을 겪었다. 구파홍학가중에서 최초의 홍학가인 지연재(脂硯齋) 그리고 청나라때의 왕희렴(王希廉), 장신지(張新之) 및 요섭(姚燮)등은 모두 "평점파(評點派)"라고 할 수 있다. <홍루몽색은>을 저술한 왕몽완(王夢阮), 심병암(沈甁庵)등은 "색은파(索隱派)"의 대표이다. 건륭시대에 <홍루몽제사(紅樓夢題詞)>를 쓴 섭숭륜(葉崇侖)등등은 개략 "제영파(題詠派)"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홍학(紅學)"이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광서초기 <홍루몽>을 즐겨읽던 경사의 사대부들 입에서이다. 반은 농담식으로 붙인 말이다. 민국초기에 이르러, 소설을 읽기 좋아하던 주창정(朱昌鼎)이라는 사람이 <홍루몽>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친구가 어느 날 방문했을 때 그가 머리를 쳐박고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선생은 무슨 경전을 공부하시는지요?" 주창정이 답한다: "딴 것이 아니고, 내가 전공하는 것은 '홍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널리 알려진 후, "홍학"이라는 단어는 점차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의 전용명칭이 된다. 중국에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이처럼 그 소설만을 연구한 학문이 생길정도의 소설은 전무후무하다. 이는 홍루몽이 중국 소설사상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홍루몽은 중국의 대표 고전이다. 중국 문화의 백과사전, 중국인의 자존심,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평가받는다.
중국의 4대 소설 중 하나인 홍루몽의 인기는 중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베이징시 대학교 입학 필수 시험과목으로 지정됐다.# 홍루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분야, ‘홍학(紅學)’도 형성되어 학술 전문가부터 일반인 동호회를 아우르며 다양한 접근과 이해가 이뤄지고 있다. 홍루몽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을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홍루몽의 인기는 중국 역사공동체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과 사랑을 반영한다. 동시에 멀지않은 과거로부터 오늘날 중국인 자신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습속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첩경이 홍루몽 속에 담겨있다.
홍루몽은 사실주의 문학의 높은 성과로써 그 후의 문학에 풍부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했으며 큰 영향을 남겨 홍루몽을 제재로 쓴 시, 사, 희곡, 소설, 영화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홍루몽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홍학(紅學)'이라는 전문적인 학문으로 형성되었는데 '구홍학'의 대표는 '색은파'이며, 5.4시기에 실험주의와 주관적 관념론의 고증방법으로 '색은파'를 비평하는 '신홍학파'가 나왔으나 이들도 극단으로 나갔다. 해방 후에 와서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의한 홍루몽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봉건문인들은 《후홍루》, 《홍루보》, 《홍루복몽》, 《홍루원몽》등 홍루몽의 뒷부분이라고 하는 작품들을 대량적으로 써냈으나 이런 작품 등은 모두 재자가인들의 대단원 이야기를 쓴 것으로써 홍루몽의 주제 사상을 엄중히 왜곡하였으며 소설 발전중의 한 갈래 역류가 되었다. 중국민중에게 홍루몽은 아직도 고문서보다 생기 있는 대중소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홍루몽의 무대나 인명등을 즐겨 상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홍루몽은 지금도 발표 당시의 문장 그대로 읽히고 있다. 그뿐아니라 18세기 말엽 북경주변에서는 홍루몽의 내용을 그린 카드, 가구 등이 날개돋힌 듯 팔렸고, 심지어는 연인들 사이에 대옥처럼 폐결핵에 걸려죽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풍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식자들은 홍미( 紅迷, 홍루몽에 미쳤다는 뜻) 라하여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근대 시기 이후 중국에서는 다들 『홍루몽』에 열광을 했다. 민중에서 시작된 홍학의 열기가 급기야 지식인 계층으로 옮아갔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홍루몽』을 언급하지 않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황중헌(黃遵憲)은 청 말 주일대사관의 참사로서 조선통사로 파견된 김홍집에게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조언하는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써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 문인들과 필담을 통한 대화에서 중일 양국 간의 문학을 비교하다가 중국 최고의 작품으로 『홍루몽』을 내세우기도 했다. 일본인은 당연히 자기네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를 강조하였다. 황준헌은 개의치 않고 『홍루몽』의 장점을 내세우며 “천지개벽 이래 고금을 통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하였다. 외국인과의 문화 대결이라는 점에서 자국의 작품을 내세우는 과장된 점도 있었겠지만 시문을 위주로 쓰고 있던 정통 문인의 입에서 당시에 소설을 이만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드문 일이었다.
중국 현대소설의 아버지 루쉰은 “《홍루몽》이 나타난 이후로 전통소설의 모든 사상과 작법이 타파되었다.”고 말했다. 홍루몽은 기존 중국 고전 소설의 주류를 이루던 남존여비, 입신양명 등의 가치를 타파하고 영웅호걸과는 거리가 먼 가보옥을 남자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는 남성중심 혹은 유교중심의 봉건사회에 반항하는 이단아이며 섬세하고 여성적인 가치를 인생의 진리로 여긴다. 홍루몽 속 여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은 남성에게 종속적인 모습, 혹은 작품 속 부수적 역할에서 탈피하여 주체적인 인물로 생동한다.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라고 불리는 여주인공들은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으며 시를 나누며 우애를 쌓는다. 또 작품 속 변화하는 그녀들의 감성의 농담을 관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홍루몽은 그야말로 세상의 약자인 여성이 중심이 되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 유토피아 그 자체인 것이다. 홍루몽에는 시대 배경이 언급이 안된다. 작가가 일부러 말을 안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귀족이라고 하나 그 정도 귀족들은 많았다. 시녀와 하인들 같은 보통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 거다. 홍루몽은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두는 기존의 작법을 깨뜨렸다. 이는 ‘술이부작(述而不作·서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이란 공자(孔子)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기도 했다. 홍루몽이 나오기 전만 해도 ‘술이부작’이란 말은 중국에서 소설 창작에 있어 일종의 족쇄였다. 대신 홍루몽의 작가는 소설의 초점을 개개인에 맞췄다. 그에 따르면 중국 소설은 크게 시대별로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홍루몽 순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삼국지가 역사와 국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수호전은 사회 체제 변혁, 서유기는 권위에 대한 반항, 금병매는 기혼 남녀 간의 사랑에 주목했다. 홍루몽은 금병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혼 남녀의 사랑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작품이다.
‘홍루몽’은 청(淸)조의 전성기이자 봉건전제통치가 삼엄했던 건륭(乾隆)년간에 창작된 장편 백화소설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한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등과는 달리, 가부(賈府)라는 귀족 대가정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상층 귀족사회의 삶과 갈등을 깊이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린다. 그러는 가운데 18세기 중엽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제 방면에 걸친 당시의 사회상을 광범위하고도 여실히 반영함으로써 ‘중국 봉건사회의 백과전서’라고 일컬어진다. 그러한 우수성과 함께 더욱 강조하고 싶은 점은 ‘홍루몽’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킨 뛰어난 휴머니즘 작품이다. 휴머니즘이란 인간성에 대한 왜곡과 억압에 저항하는 흐름으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위협받는 순간에 항상 모습을 드러내왔다. 특히 작가들은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동원하여 휴머니즘 정신을 풍부하고도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의 작자 조설근은 바로 그러한 작가였다.
‘홍루몽’의 시대는 암울했다. 조설근이 살았던 때는 청조의 봉건 전제통치가 극에 달할 정도로 강력했으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봉건사상과 제도의 억압하에 짓눌려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홍루몽’에서 각성(覺醒)된 주인공의 눈을 통해 봉건체제에 물들지 않고 천부(天賦)의 인성(人性)을 지닌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들 중심의 스토리를 통해 개성, 해방을 추구하고 인욕(人欲)을 긍정하였으며 평등사상을 발현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추구는 당시로서는 실현될 수 없는 ‘꿈’이었으므로 결국 ‘홍루몽’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러한 바람과 추구는 더없이 값진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의 원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중국의 류짜이푸[14](劉再復) 교수는 ‘쌍전(雙典)’이라는 책에서 ‘삼국지’와 ‘수호전’을 비판하면서, “홍루몽이야말로 중국 고전소설에서 영적인 횃불을 진정으로 높이 쳐든 위대한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쌍전-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글항아리)라는 제목으로 번역·소개됐다. 류 교수는 “당신의 아이들이 ‘수호전’의 영웅들을 모방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삼국지’ 영웅들이 사용하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권모술수를 모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호전이나 삼국지는 읽더라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대신 ‘홍루몽(紅樓夢)’을 가까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류 교수는 이 책에서 ‘삼국지’와 ‘수호전’은 모두 상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지만, 권모술수와 폭력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500여년간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해악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류 교수는 ‘홍루몽’에 대해 “사실 ‘홍루몽’은 중국 대지 위에 생산된, 인간과 관련된 위대한 깃발이었다. 녜간누(聶紺弩)는 ‘홍루몽은 인간의 책이다. 인간을 발견한 책이고, 사람들이 인간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매우 깊이 있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쌍전’ 62쪽)라고 했다.
왕궈웨이는 “《홍루몽》은 ‘욕망의 비극’이자 ‘인생의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이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인생의 진리가 보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을 것이다. 잔잔한 선율과도 같은 홍루몽은 거창한 명분이나 이론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궁극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애잔한 느낌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실에서의 패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권이 480쪽에 달하는 책이 무려 여섯 권, 《홍루몽》을 한 마디로 전체를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핵심 줄거리를 크게 두 축으로 말하자면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라 할 수 있다. 당대 최고 귀족집안의 귀공자 가보옥과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차, 가씨 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가 선택한 보옥의 사촌 누이 임대옥. 이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를 구성한다. 홍루몽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붉은 누각에서 꾸는 짧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꿈, 봄날의 꿈은, 봄꽃이 지듯 소리없이 사라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비극적 죽음, 가문의 몰락 등 인생의 모든 꿈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늘 애통해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의 지극한 이치를 깨닫는다.
나는 『홍루몽』을 적어도 다섯 번을 보았다. 나는 이 책을 역사로 본다. 보기 시작할 때는 이야기책(소설)으로 보다가 뒤에는 실제 역사로 알고 읽게 된다. 『홍루몽』 제4회에 대해서는 대부분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이 책의 강령이라고 본다. 또 냉자흥이 영국부를 소개하는 대목이나 도사의 ‘호료가’ 및 진사은의 ‘호료가주’도 주목해야 한다. 제4회 호로묘의 중이 판결하는 사건에서 호관부가 나오는데 네 귀족 가문을 말하고 있다. …… 『홍루몽』의 사대 가문의 계급투쟁은 격렬하여 수십 명의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르주아의 지배자는 20여 명인데 (혹자는 33명이라고도 하지만) 나머지 노비들은 300여 명이나 된다. 역사를 말하면서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 마오쩌둥, 1964년 8월 18일, 북대하(北戴河)에서 철학 연구자들과의 대화
중국에서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고전소설이다. 홍루몽은 중화권에서는 줄곧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중국의 어떤 서점에 가면 한쪽 벽면 전체가 홍루몽에 관한 서적며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코너에 서 있을 정도다. 실제 홍루몽은 중국에서 여성과 청소년에게 인기가 더 많다고 한다. 홍루몽은 여성 세계의 종합세트다. 작품 속에는 강인한 여성과 우둔한 여성, 슬기로운 여성과 간교한 여성, 심약하고 감성적인 여성과 둔감한 여성이 모두 등장한다. 최용철 고려대 교수는 “인생살이의 세밀하고 정교한 일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며 “남녀 주인공도 인생의 풍파를 헤쳐나가야 하는 오늘날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열기는 대륙과 대만, 홍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차이위안페이·후스와 같은 중국 근대의 대학자들은 물론 마오쩌둥 역시 홍루몽 팬이었다. 최용철 교수에 의하면 “홍루몽이 뜬 것은 공교롭게도 문화대혁명 때입니다. 마오쩌둥과 그의 부인 장칭(江靑)은 홍루몽의 팬이었어요. 문화대혁명 때 허용한 책이 딱 두 권인데 빨간색 ‘마오쩌둥 어록’과 ‘홍루몽’이에요. ‘마오쩌둥 어록’은 읽어봤자 재미가 없는데 그걸 읽었겠어요. 그러다 보니 문화대혁명 때 하방(下放)당한 젊은이들도 시골에서 홍루몽을 읽었던 것이죠.” 최용철 교수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홍루몽의 반(反)봉건적 측면에 주목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시녀에 불과한 여성들이 가보옥 등 주인공 가씨 집안에 거침없이 대드는 데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것. 이에 마오쩌둥은 “귀족 집안 출신의 작가가 어찌 이 같은 반봉건적 작품을 쓸 수 있었냐”면서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자아카데미를 세계 각지의 대학에 만들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물론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삼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전 총리 원자바오는 영국 국빈 방문 중 셰익스피어 한 권을 받았을 때, 신임 중국대사 푸잉은 여왕에게 홍루몽의 호크스 번역을 주었다. 2010년 원자바오가 한국 방문 때 주한중국 문화원에서 한국의 중국어 학습자 및 『홍루몽』 애호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방문 활동에 ‘홍루몽과 중국 문화’를 제목으로 한중 간의 민간 토론을 주도한 것은 역시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대표 작품으로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당서기와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중국몽(中國夢)을 국가발전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대대적인 국민 계몽 운동을 펼쳐나갔다. 당과 국가의 창립을 기념하는 두 개의 백 년을 향후 발전의 목표 지점으로 정하고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986년 하북(河北)성 석가장(石家莊)시 정정(正定)현의 당서기로 있으면서 『홍루몽』의 무대인 영국부(榮國府)를 청나라 당시의 고전 건축으로 재현하여 CCTV의 「홍루몽」 연속극 촬영세트로 활용한 뒤에 일반에 공개하여 이 작은 지방 도시를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시진핑은 이후 기회 있을 때 마다 『홍루몽』을 언급하였고 또 『홍루몽』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2014년 프랑스를 방문할 때는 『홍루몽』의 프랑스어 번역자인 당시 이미 99세에 이른 이치화(李治華)를 직접 만나 치하하였고, 2015년 미국을 방문할 때는 『홍루몽』을 가져가 링컨고등학교에 직접 기증하며 중국 문화의 전파에 신경을 쓰기도 하였다.
다만 이러한 고평가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는 미비한 편이다. 중국 대륙, 심지어 천계와 저승세계라는 넓은 무대에서 먼치킨들이 활약하는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와는 달리 홍루몽의 이야기 여러 가문의 일상적인 집안일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극적인 컨텐츠가 부족하고 질려버리기 쉽다. 게다가 게임이나 애니 등의 분야에서 상당수의 인기 창작물들이 여전히 전투, 전쟁 등을 다룬다는 점도 평화로운 일상물인 홍루몽에게 있어서는 인기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김경주의 시 ‘非情聖市’ 안에는 “귀신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생들이 있다”고 쓰여 있다. 이 프랑켄슈타인 문법이 인간의 생애에 비하여 더 서글픈 서사구조를 가진다는 보장은 없다.
홍루몽의 서사구조는 중층적이다. 신화의 서사구조는 꿈의 서사구조와 수평선 상에 존재하며 현실의 서사는 꿈에 의하여 지배되는 착종된 구조로 되어 있다. 대국적으로는 꿈과 현실의 서사는 태고의 신화 속에 버려진 돌덩이(石頭) 위에 중과 도사가 오래 전 새겨놓은 이야기(石頭記)와 같다.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는 예정조화인 셈이다.
또 지나던 공공도인이 이 석두기(石頭記)를 읽게 된다. 이야기를 읽고서 공(空)에서 색(色)을 보고, 색에서 정(情)이 생기고 정을 전해 다시 색에 들고 색에서 다시 공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정승(情僧)’이라 고치고 ‘석두기’를 고쳐 ‘정승록’이라 한다. 그 뒤 이 이야기는 오옥봉(吳玉峰)의 손을 거쳐 ‘홍루몽(紅樓夢)’이라 하고, 동노(東魯)의 공매계(孔梅溪)는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 제목을 지었다. 다시 그 뒤에 조설근이라는 사람이 도홍헌에서 이 책을 십년동안 연구하면서 다섯번 고쳐 쓴 다음(曹雪芹于悼紅軒中披閱十載, 增刪五次) 목록을 엮고 장회(章回)를 나누어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라 이름하고 책머리에 시 한 수를 적어 넣는다.
1. 홍루몽 줄거리
滿紙荒唐言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一把辛酸淚 실로 피눈물로 쓰여진 것이어늘
都云作者癡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誰解其中味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요
신화시대에 공공과 전욱이 싸우다가 하늘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중국의 창세신인 여와(女媧)가 하늘을 떠받치기 위하여 대황산 무해애에서 3만6천5백1덩이의 석두(石頭)를 연단한다. 하늘을 떠받친 후, 남은 1덩이의 석두를 청경봉 아래 버린다. 이 석두가 통령보옥(通靈寶玉)으로 다년간의 수련 끝에 영혼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떠받치는데 쓰이지 못한 채, 청경봉 아래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늘 서운했다.
이 곳을 지나던 중과 도사가 이 석두를 보자 영혼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앞으로 좋은 시절, 좋은 집에 태어나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될 것임을 넌즈시 알려주고 석두에 겪게 될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한참 후 공공도인이 지나가던 중 석두에 새겨진 이야기를 읽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정승이라고 바꾸고 이야기(情僧錄)를 전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신화의 시대를 벗어난다. 고소(姑蘇=蘇州)의 창문성(閶門城) 안 인청 골목(仁淸巷)의 호로묘(葫蘆廟) 옆에 사는 진사은(甄士隱 : 진짜 사실은 감추어져 있다는 眞事隱과 동일한 소리)이 꿈 속에서 중과 도사가 석두 통령보옥을 경환선자(警幻仙子 : 太虛幻境의 주관자로 남녀의 치정관계를 맡아봄)의 적하궁(赤霞宮)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다. 경환선자는 통령보옥을 신영시자(神瑛侍子)로 임명한다. 이 신영시자는 강주선초에 물을 주곤 한다. 진사은이 중과 도사 등이 어리석은 물건(蠢物)이라고 하는 석두를 집어서 보니 통령보옥이라고 새겨져 있고 자세한 글을 읽어보려 하니 이미 환경에 들어섰노라고 하여 눈을 들어보니 누각문에 태허환경(太虛幻境 : 아무 것도 없는 꿈 속)이라고 쓰여 있고 양쪽에 대련이 있다.
假作眞時眞亦假 헛 것(夢)이 참된 것을 만드는 때(시간)는 참된 것 역시 헛 것이요
無爲有處有還無 없음(太虛)이 있는 것이 되는 곳(공간)에서는 있음 또한 없음이라.
이 대련을 보는 순간, 그만 뇌성벽력이 나며 진사은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태허환경을 좀더 들어가보면 중문에 얼해정천(孼海情天 : 수심과 애정의 바다와 하늘)에 쓰여 있고 대련에는
厚地高天堪歎古今情不盡 하늘 땅에 사무치는 고금의 정 다할 날이 없고
癡男怨女可憐風月債難酬 치정에 빠진 남녀의 안타까운 회포 풀 길이 없다
즉 꿈과 풍월(애정이야기)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태허환경의 주소는 Lihentien Guanchouhai Fangchunshan Qianxiangdong(離恨天 灌愁海 放春山 遣香同)이다. 한마디로 이별의 원망으로 가득한 하늘과 근심이 흘러드는 바다를 건너 봄이 풀린 뫼 안의 향기가 풀린 동네인데, 얼빠진나루(迷津)를 건너야 한다.
결국 태허환경의 신영시자(석두)는 통령보옥을 입에 물고 남경의 영국부(榮國府)라는 가(賈)씨의 대갓집에 가보옥(賈寶玉)이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네 누이와 임대옥, 설보채, 사상운, 왕희봉, 습인 등의 열두미녀와 함께 대관원이라는 영국부의 비원에서 보내며 시를 짓기도 하고 서로의 정을 나눈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중 여자들은 시집을 가거나 죽고 가씨 집안을 비롯 왕씨, 사씨, 설씨 등의 금릉 네 대가는 갖은 치정사건과 고리대, 폭력, 살인, 이권 개입등의 사건으로 서서히 영락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통령보옥을 잃어버리고 반백치가 된 보옥은 태허환경의 강추선초의 화신인 임대옥과 목석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그만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임대옥은 죽고, 잃어버렸던 통령보옥을 찾게 되고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그만 보옥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다. 아버지의 강권에 마지 못해 과거를 보고 합격했지만, 중과 도사를 따라 홀연히 속세를 떠난다.
위와 같은 석두에 쓰여진 이야기가 한 차례 끝난 후, 공공도인 즉 정승이 다시 청경봉 밑을 지나다가 석두를 마주하게 된다. 돌에 적힌 글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기왕의 게문 뒤에 새로 여러가지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석두가 세상에 내려가 단련을 받은 끝에 밝은 빛을 내고 수도를 하여 원만하게 각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왕이면 자기 손으로 다시 한번 옮겨서 누구든 한가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널리 전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이 기이하면서도 기이하지 않고 속되면서도 속되지 않고 진짜이면서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면서도 가짜가 아닌 이야기를 알게 되리라며,
說到辛酸處 피눈물로 씌여진 이 이야기는
荒唐愈可悲 황당할수록 더욱 슬프다
由來同一夢 애당초 다 같은 꿈이었던 것을
休笑世人癡 세인들의 어리석음 비웃으며 어쩌랴!
고 다시 계송을 단다.
2. 홍루몽이라는 소설
홍루몽이란 소설 속에서 중과 도사가 돌 위에 쓴 것을 공공도인이 베껴쓰고 이를 전하여 오옥봉, 공매계 등을 거쳐 조설근(대략 1715~1763)이 십년이란 기간동안 다섯차례 고쳐쓰고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의 사실 유무는 차치하고 조설근은 홍루몽의 가보옥처럼 금릉(남경)의 대갓집에 태어났지만 옹정제의 즉위 후 조부의 해직과 가산의 몰수로 가문이 영락하면서 어렸을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요절한 다음 해, 석두기 80회 전편과 후편 약간 만 완성된 상태의 원고를 남긴 후 48세의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다.
나머지 부분은 고악(高顎 : 1738~1815 추정)이 40회를 지어 석두기 80회와 함께 120회 전편 홍루몽으로 이름을 단다.
조설근이 남긴 후편의 내용에는 ‘가보옥은 몰락하여 거지가 되고, 가교저는 기녀가 되며, 왕희봉은 인심을 잃고 몸종이 되어 쓸쓸하게 죽어간다'(천지인 刊 그림으로 읽는 중국고전 335쪽)고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악의 40회의 내용은 내가 읽은 텍스트나 정갑본이나 가씨의 ‘영국부’가 완전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 직전 황제의 은사로 가문이 다시 회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홍루몽의 저자는 두 사람, 조설근과 고악인 셈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홍루몽은 3가지다.
하나는 홍콩 三民書局의 완판 홍루몽으로 120회본 정갑본(程甲本)을 저본으로 한 홍루몽이다. 분량은 상하 두책 1400쪽에 달한다.
정갑본(程偉元이 쓴 첫 판본)은 1791년(乾隆 辛亥 冬至 後 5日)에 출간한다. 그 다음 해 정갑본을 개정한 정을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정갑본 출간에 즈음하여 고악이 쓴 서문에 보면, 홍루몽이 인구에 회자되기 이십여년이 지났다고 되어 있는 바, 원작과 시간 간격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위원이 쓴 120회본의 서(序)를 보면, “석두기(石頭記)가 원명이며, 작자는 서로 전하되 하나가 아니다. 오로지 책 안에 조설근이 잘못된 글귀를 지우고 바르게 하기(刪改)를 수차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조설근이 작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하나는 홍콩 中華書局의 그림과 글이 함께 들어 있는 간사본(簡寫本 : 다이제스트판)이다.
마지막으로는 간자체로 된 연환화(만화) 홍루몽이다.
중국어나 한문을 읽지도 못하면서 욕심으로 산 책들이라 읽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 만 있다.
이번에 읽은 12권 짜리 홍루몽은 청계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 판본은 척료생이 서문을 단 석두기 80회에 고악의 40회를 더한 판본이다. 척서본은 후대의 가감을 거친 정갑본보다 원작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 본 책의 서문에 강조하고 있다.
번역자는 안의운, 김광렬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다 북경중앙민족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북경외문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중국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사람들로 자세한 내용은 없으나 조선족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번역이 여간 잘된 것이 아니다. 딱딱하고 생경한 표현이 없다. 필요할 경우 의역을 함으로써 직역이 지닌 이질감을 덜어낸 탓으로 보인다. 때때로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나 격언같은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본래 북한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먼저 번역했던 것을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교정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남은 흔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문화의 총체라고 할 홍루몽에 나오는 모르는 개념이나 낱말 등에 대한 주석이 깔끔하여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홍루몽에 대한 연구를 홍학이라고 한다. 세익스피어 이후 하나의 작품에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연구를 하는 예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홍루몽은 정을본(정위원의 두번째 판본)이 출간된 이후 백여종의 간본에 30종의 속작이 나와 판본에 대한 연구도 연구지만, 홍루몽 자체가 중국문화를 읽을 수 있는 거대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유불선이 혼효된 문화 그리고 융성기의 청대의 문물과 천문, 역법, 시계 등 서양외래문물 등이 유입되어 뒤섞이는 당시의 상황 또한 연구과제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모택동은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중국의 근대사회에서 상류층의 생활이 어떠했으며, 그로 인해 인민들이 얼마나 피폐했는가를 홍루몽이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겠으나, 홍루몽이 써질 무렵의 중국은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3대 황제의 치세가 융성하여 팍스 차이나를 구가하던 시절로 우리나라로는 정조 때였고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 도착하면 유리창 거리에서 서적과 각종 문물을 수집하기에 바빴고 조선으로 돌아와 청나라에서 배우자는 북학을 주장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홍루몽에 나오는 단어나 시, 그리고 서사구조 만을 연구하여도 유교, 불교, 도교 뿐 아니라, 시 그리고 서상기 등의 연극, 그리고 축적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온 중국문학의 대체를 감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문화의 보고로 이런 사정 상 홍학이라는 것이 나왔다.
4. 다시 홍루몽으로
홍루몽의 마지막 부분에 금릉의 미녀들이 태허환경으로 돌아가고 가보옥마저 속세를 떠난 후
天外書傳天外事 하늘 밖의 책은 하늘 밖의 일을 전하고
兩番人作一番人 두 세상(현실과 태허환경) 사람은 한 세상(태허환경) 사람이 되었다.
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호접몽은 나비가 장자를 꿈꾸었던 것이 맞는다. 물론 나비는 악몽을 꾼 것이다.
또 하늘 밖의 책을 하늘 밖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라 이 세상에서 읽을 수 없듯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고 쓴 고대 시인 침연이 없는 만큼 김경주의 이 프랑켄슈타인 언어는 진여복지(眞如福地)의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다.
태허환경에 반하는 진여복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련이 씌여 있다.
假去眞來眞勝假 가짜가 가고 진짜가 오매 진짜가 가짜를 누르고
無原有時有非無 없음은 본시 있는 것임에 있음은 없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진여복지보다는 태허환경 쪽이 마음에 든다.
'千里眼---名作評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옥寶玉은 어찌하여 우尤 씨 자매가 한 쌍의 우물尤物이라고 말했을까? (2) | 2023.05.25 |
---|---|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파벌분석 및 연구 (2) | 2023.05.25 |
曹雪芹與紅樓夢 (0) | 2023.05.24 |
자비의 여신 관음보살 신화 속 음악의 유래 역사가 된 신화를 시작하며 (4) | 2023.05.24 |
봉건예절과 도덕제도 무너진 대관원大觀院 수색의 원인에는 어떤 것이 있나? (0) | 2023.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