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가보옥賈寶玉이와 탐춘探春이는 둘 다 하늘을 메우지 못한 완석頑石이다

一字師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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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옥賈寶玉이와 탐춘探春이는 둘 다 하늘을 메우지 못한 완석頑石이다

 

 

조설근曹雪芹은 소설 홍루몽紅樓夢을 창작하면서, “하늘을 메우는데 쓰이지 못한 자재가, 속세에 들어가서 헛되이 몇 년을 보낸완석頑石을 자기 자신에 비유했다.

 

가부賈府에서 태어나 대관원大觀院에서 생활하고 있는, 하늘을 메우다 남은 유석遺石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일에 대하여 세심하고 똑똑하며 높은 의지를 지녔지만, 말세에 운수가 기울게 태어난가부의 영국부榮國府의 둘째 아들 가정賈政의 첩이 낳은 딸 탐춘探春이다.

 

가부에서 세 번째 아가씨인 탐춘은 대관원의 아가씨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분 공개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면, 일찍 세상에 나가서 틀림없이 큰일을 해냈을 것인데, 그때에는 나름대로 대책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대관원에서 대장부의 기풍을 띤 시사詩詞를 열게 된 것도 바로 탐춘이 제안한 것인데, 그녀는 제안서에서 호기스럽게 제창했다.

 

재능이 뛰어난 단체를 만드는 데는, 수염 난 남자들만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제 이곳 동산東山의 아회雅會를 여자들이 만들겠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마음속에 있는 것을 말로도 잘 표현할 수 있는 준재俊才인데, 비록 하늘을 메울 인연은 없었으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영국부의 살림을 맡고 있던 봉저鳳姐가 유산하게 되어 집안일을 처리할 사람이 없게 되자, 왕부인王夫人은 그녀에게 며느리 이환李紈과 같이 판단하여 처리하게 했는데, 부친인 가정은 학문적으로도 뛰어나고 민첩하게 주위의 상황을 판단하는 이 소녀에게 한 차례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사양하기가 어려운 때인지라 탐춘은 어른들의 명령을 받들게 되었지만 곧 난처한 일에 부딪치게 된다. 바로 그녀의 생모 조이랑趙姨娘의 형제가 죽어, 부조금을 내줘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조이랑이 모녀지간이라는 것으로 생트집을 잡아, 탐춘에게 전례를 깨뜨리고 그녀에게 다 부조금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오신등呉新登댁은 일부러 그녀를 곤란에 빠뜨리려고, 거짓으로 전례를 잊었다고 하며 탐춘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했다. 이때에 탐춘은 그녀가 일을 똑똑하게 세심하게 처리하는 능력과 결단력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는데, 우선 오신등댁의 저의를 폭로했다.

 

그렇게 오래 일을 처리해왔으면서, 그래도 기억을 못했단 말야? 우리를 곤란하게 하려고 한 것이겠지. 너는 평소에도 둘째마님(봉저)께 그렇게 아뢰었어?”

 

이렇게 오등신댁이 한 짓을 드러내서, 교활하고 악랄한 일을 일으키려고 하는 그런 관가管家(집안을 위해 재무나 일상생활을 관리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의 호칭)의 아낙네들의 위풍을 꺾어 버리고는, 냉랭하고 무정하게 조이랑의 무리한 요구를 반박했다.

 

탐춘이 한 번에 두 가지의 잘못을 가로막아, 첫 시작부터 호된 맛을 보여주자, 그런 아낙네들도 차츰차츰 본분을 지키며 일을 하게 되고, 감히 앞서처럼 가볍게 얕보지를 못하게 되었다.

 

탐춘이 두 번째로 한 일은 영국부의 폐단을 제거하고 이로운 것을 일으킨 것이다. 소위 말하는 폐단이란, 바로 보옥寶玉과 가환賈環과 가란賈蘭 등이 학당에서 간식을 사먹는 돈 8 냥과 아가씨들에게 매월 2 냥씩 실속 없이 지불하는 것을 없애버렸다.

 

소위 이로운 것을 일으키는 것이란 바로 대관원 내에서 각 방면에 흥취가 있는 집사 의 아낙네들에게 도급경영책임제를 실시한 것인데, 매년 4백 냥의 수입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4,5백 냥의 은자가 가부의 집안에서는 얼마 되지 않아 별거 아니지만, 탐춘이 가족을 위하여 고심하며 계획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잠시 집안일을 처리한 귀하게 자란 아가씨여서, 권한 역시 다만 얕게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정도의 계책에 지나지 않았다.

 

조설근이 고명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그의 붓 아래에서는 한 인물마다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하나가 규정을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탐춘에게 반드시 대단한 계책을 펼치게 하여, 영국부를 크게 진작시키는 어떤 개혁을 하게 했다면, 그것은 조설근이 지은 홍루몽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탐춘이 꿰뚫어 보고, 통솔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말세에 태어났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탐춘이 집안일을 관장했을 때는, 가부는 이미 녹이나서 부식된 그릇과 같아서, 이미 아무도 끝내 파손되고 말게 될 그 결말을 고칠 수 없는 국면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탐춘이 집안을 관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대관원을 수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탐춘은 애통해 하며 지적했다.

이런 대가족의 집안에서, 만약에 밖에서 죽이러 들어온다면, 단번에 죽이지는 못할 것이에요. 이것을 옛 사람들은, ‘百足之蟲,死而不僵백족지충,사이불강(노래기는 몸이 잘려도 여전히 꿈틀거릴 수 있다/권세가 있던 사람이나 집단은 몰락 후에도 여전히 위세와 영향력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는데, 필시 먼저 집안사람부터 죽이기 시작하여, 철저히 실패하여 돌이킬 수 없게 할 겁니다!”

 

그녀는 가부 전체가 수색을 받고 몰수당하게 될 날짜가 멀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소제대주小題大做(작은 제목으로 큰 문장을 만들다/별 것 아니 것을 큰일인 것처럼 떠들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探春坐下, 便問: “才剛誰在這里說話? 倒像拌聚似的.” 迎春笑道: “沒有說甚麽, 在不過是他們小題大做罷了. 何必問他.” (第七十三回)

 

[해석문]

탐춘探春이 앉더니 물었다.

방금 전에 누가 여기서 떠든 거예요? 말다툼하는 것 같던데.”

 

영춘迎春이 웃으면서 말했다.

별 말한 것 없는데, 괜히 걔네들이 별 것 아닌 것을 큰일인 것처럼 소란을 피운 거야. 그런 건 뭘 물어봐.” (73)

 

[명언고사]

영춘은 가사賈赦와 첩의 소생으로 가부賈府에서의 자매 중에서 두 번째 아가씨이다. 그녀는 천성은 온순하나 무능하고 유약하여 시비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이목두二木頭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매들보다 재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처세에서 단지 양보할 줄만 아는 사람이어서 누구나 그녀를 업신여겼다. 그녀의 유모는 그녀가 연약하여 만만하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모아둔 것 중에서 금실로 된 머리장식을 꺼내서 도박 밑천으로 써버렸는데도, 영춘은 추궁하지 않았다.

 

형부인형부인이 그 유모를 따끔하게 나무라지 않았다고 영춘을 질책한 일은 집안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다. 그녀의 시녀들인 수귤綉橘과 사기司棋가 그녀를 위해 도로 찾아오려고 했지만, 영춘은 오히려, “이미 없어졌는데, 뭣 하러 화를 내나라고 말했다.

 

그 유모의 며느리 왕주아王住兒는 그녀가 시어머니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영춘에게 사정하러 오자, 수귤과 사기 두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다투며 해결이 나지 않자, 보채寶釵, 대옥黛玉 보금寶琴, 탐춘 등은 서로 약속하여 영춘을 위안하러 왔다. 탐춘이 웃으면서 물었다.

 

““방금 전에 누가 여기서 떠든 거예요? 말다툼하는 것 같던데.”

 

영춘迎春이 웃으면서 말했다.

별 말한 것 없는데, 괜히 걔네들이 별 것 아닌 것을 큰일인 것처럼 소란을 피운 거야. 그런 건 뭘 물어봐.”

 

탐춘이 말했다.

방금 전에 금실 봉황비녀이라니, 또 무슨 돈이 없어 우리 하인한테 달라고 한다는 둥 그런 말이 들리던데, 누사 하인에게 돈을 달라고 한 거예요? 언니가 하인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언니도 우리와 똑같이 일정하게 매달 받는 월급이 있고 또 나가는 돈도 그 쓰임새가 다르지도 않을 거잖아요?”

 

사기와 수귤이 대답했다.

아가씨 말씀이 맞아요. 아가씨들은 모두 같지요. 어느 아가씨나 모두 유모들이 돈을 취급해서 저희들조차 어찌 쓰이는지 모르고 있으면서도 물건이 필요할 때만 얘기해서 타서 쓰고 있다니까요. 요새 저 사람은 아가씨가 자기네 돈까지 써서 많이 손해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답니다. 어쨌든 아가씨가 언제 그녀에게 얻어 썼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탐춘은 그리하여 사람을 시켜 평아平兒를 불러서 이 일을 처리하게 했는데, 일부러 별 것도 아닌 것을 큰일인 것처럼 소란을 피워서, 영춘을 대신하여 악한 하인을 겁주는데 나섰다.

 

홍루몽이야기

탐춘探春은 자기를 낳아준 생모를 왜 이랑姨娘이라고 부르나?

 

조설근曹雪芹의 소설 홍루몽紅樓夢55회에는, 조이랑趙姨娘의 남동생 조국기赵國基가 죽었을 때, 봉저鳳姐를 대신하여 집안일을 처리하고 있던 탐춘探春은 부조금으로 24 냥을 준다. 이 때문에, 조이랑은 누군가 그녀의 머리를 짓밟았다고 울면서 얘기한다.

 

탐춘은, “이랑의 말씀은 누구를 말하시는지, 저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누가 이랑의 머리를 밟았다고요? 말씀하시면, 제가 대신 화풀이 해드리게요라고 말했다.

 

탐춘은 조이랑의 친딸인데, 그녀는 왜 낳아준 생모를 이랑姨娘이라고 불렀을까? 이것은 조이랑의 가부에서의 지위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봉건가족의 예법과 도덕에 의거하면, 가정 안에서, 와 첩의 지위는 천양지차이다. 가정賈政의 가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왕부인王夫人은 그의 정실正室부인이고, 조이랑과 주이랑周姨娘은 그의 첩(작은 부인)이다.

 

가정의 자녀는 21녀의 가보옥賈寶玉, 가탐춘과 가환賈環이 있는데, 보옥은 왕부인이 낳았고, 탐춘과 가환은 조이랑이 낳았다. 왕부인을 대할 때에는, 보옥은 물론이고 탐춘과 가환 역시 부인”(太太)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들의 정당한 명분과 이치에 맞는 모친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조이랑은 아버지의 첩이고 절반은 노비여서, 그녀가 비록 탐춘이나 가환을 낳았어도, “이랑이 되어 주인과 노비를 구별하여 표시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은 공적으로 말한 것이고, 탐춘이 이랑이라고 완강하게 주장한 것에는 또한 구체적인 원인이 있다. 남존여비의 사회 안에서는, 첩의 딸은 혼수로 딸려 보내는데 불과하지만, 남자아이는 가업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탐춘과 가환은 모두 조이랑이 낳았지만, 왕부인이 진정으로 경계하는 것은 가환이어서, 여러 모로 그를 잘 대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조이랑이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도 가환이어서, 어디에서든지 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여자아이인 탐춘은 이런 싸움의 초점을 벗어나려고 애써서, 그래서 어려서부터 원춘元春, 영춘迎春, 석춘惜春 세 자매와 함께 가모를 따르면서 생활해왔던 것이다.

 

비록 서출庶出의 지위에 있으나, 느슨한 가부의 환경은 일에 세심하고 똑똑하며 높은 의지를 가진 재주 있는 소녀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고상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명성이 있고 평판이 좋아 누구나 다 좋아했는데, 때로는 가시로 찌르기도 하는 한 송이 장미꽃이 되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단성 있고 단호하게, “저는 오직 나리와 부인 두 사람만 알 뿐이어서, 다른 사람은 일체 상관하지 않아요라고 선포했던 것이다.

 

바로 그녀가 가진 서출이라는 마음의 상처를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그녀에게 책임을 물어 악성 종기처럼 치욕의 표시를 남게 하여, 그녀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이런 출생으로 운명이 정해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이런 치욕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단호하고 분명하게 그의 생모를 이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현대적인 심리에서 볼 때, 탐춘이 이기적이고 냉혹하고 무정하게 또 고의로 꾸며댄 것을 질책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예법과 도덕이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조성된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진 기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가정에서 한 여자로서, 탐춘 그녀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었을까? 탐춘이 결연하게 자신의 생모를 이랑이라고 부른 것과 그녀가 왕선보王善保댁의 뺨을 때린 것은, 오늘날에는 그럴 필요가 크게 없어졌지만, 비록 이 추구가 기형적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당시로는 도리어 일종의 사람에 대한 존엄성의 추구였기 때문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호풍빈자력,송아상청운好風頻借力,送我上靑雲 (산들바람의 힘을 빌려서, 푸른 구름 위로 나를 보내주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白玉堂前春解舞, 東風卷得均勻. 蜂團蝶陣亂紛紛. 畿曾隨逝水, 豈必委芳塵.

萬縷千絲終不改, 任他隨聚隨分. 韶華休笑本無根, 好風頻借力,送我上靑雲! (第七十回)

 

[해석문]

백옥당 앞에 봄바람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데

동풍에 휘감겨서 이리저리 퍼지네

벌들과 나비무리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는데

물을 따라 서서히 흘러가고 있네

먼지처럼 가라앉지도 않고

만 갈래 천 갈래가 언제나 같이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마음대로라네

세월은 뿌리가 없다고 비웃지 않고

산들바람의 힘을 빌려서

푸른 구름 위로 나를 보내주네

(69)

 

[명언고사]

봄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상운湘雲이 유서사柳絮詞(버들개지사)를 써넣었는데, 그리하여 대옥黛玉은 사람들에게 각자 유서사를 써넣게 했다. 보채寶釵 등은 유서柳絮를 제목으로 해서 몇 곡조를 분별하여 사를 써넣었다.

 

써넣기를 다하고, 모두 평론評論을 했다. 사람들은 대옥의 당다령唐多令이 너무나 슬프다고 말했고, 보채는 또 보금寶琴의 것도 너무나 비장하다고 말했다. 보채는 자기가 지은 임강선臨江仙을 집어 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너무 비장함을 면치 못했네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서는 원래 뿌리도 없고 줄기도 없는 것이라서 경박하게 날아다니는 것인데,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굳이 그것을 좋다고 말해야 상투적인 모양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한 번 읊어봤는데, 자기들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다들 웃으면서, “너무 겸손해하지 마세요. 우리 감상이나 해보죠. 물론 잘 지었겠지만요라고 말했다.

 

모두들 보채가 지은 임강선을 봤는데, 첫 두 구절은 이러했다.

 

白玉堂前春解舞 (백옥당 앞에 봄바람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데)

東風卷得均勻 (동풍에 휘감겨서 이리저리 퍼지네)

 

상운이 먼저, “‘東風卷得均勻라는 표현이 정말 멋진데, 다른 사람은 생각해내지도 못하는 말이에요라며 칭찬의 말을 했다.

 

또 밑에 있는 구절을 다 읽었다.

 

蜂團蝶陣亂紛紛 (벌들과 나비무리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는데)

畿曾隨逝水 (물을 따라 서서히 흘러가고 있네)

豈必委芳塵 (먼지처럼 가라앉지도 않고)

萬縷千絲終不改 (만 갈래 천 갈래가 언제나 같이)

任他隨聚隨分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마음대로라네)

韶華休笑本無根 (세월은 뿌리가 없다고 비웃지 않고)

好風頻借力 (산들바람의 힘을 빌려서)

送我上靑雲! (푸른 구름 위로 나를 보내주네)

 

모두 탁자를 치며 대단히 훌륭하다고 극도의 칭찬을 했다.

 

과연 정말로 기력氣力을 잘 드러냈는데, 이 사가 으뜸이에요. 멋들어지고 구슬픈 것은 소상비자瀟湘妃子(대옥)가 최고이고, 정취를 아름답게 잘 표현하는 것은 침하枕霞(상운)이 으뜸인데, 오늘은 소설小薛(보금)과 초객蕉客(탐춘探春)은 낙제이니, 벌을 받아야 해요.”

 

홍루몽이야기

오진효烏進孝 장두莊頭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어찌하여 가부賈府에 물품을 납부했나?

 

조설근曹雪芹의 소설 홍루몽紅樓夢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가부賈府의 생활이 호화롭고 사치한데 대하여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는다.

 

가부 같은 봉건귀족은 언제나 호의호식하며, 구슬이나 비취 등의 장신구를 몸에 가득 두르고 지낸다. 그들은 계화桂花를 감상하고 연회를 열어 게를 한번 먹는데, 농촌 사람들이 1 년을 지낼 수 있는 돈을 썼다. 또 시아버지 가진賈珍은 며느리 진가경秦可卿이 죽자, 그녀를 위해 돈이 있어도 쉽게 사기조차 어려운 장목檣木으로 만든 관을, 1,000 냥의 은자를 내어 구입한다. 게다가 가정賈政은 맏딸 귀비貴妃 원춘元春省親(부모를 문안하러 방문하다)을 위하여 별장을 짓는데, 흘러내려가는 물같이 돈을 썼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부는 이처럼 절도 없이 돈을 쓰면서도 생활은 어떻게 유지해왔을까? 설날을 쇠기 전에, 오진효烏進孝가 녕국부寧國府에 소작료를 가져다 납부하는 내용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진효는 녕국부의 장전莊田(대농원)이 있는 흑산촌黑山村의 장두莊頭(봉건시대의 지주의 전장田莊 관리인의 호칭)이다. 어떤 것을 장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원래 청군淸軍은 산해관山海關으로 중국 관내로 들어갈 초기에는 말위의 채찍 이외에는, 아무런 가산이 없었다. 천하를 장악하고 나서, 나라를 세우는데 공을 세운 신하에게 장전을 주어, 이것으로 름록廩祿, 즉 녹봉을 대신한 것이다.

 

정백기正白旗에 속해 있던 조씨 집을 예로 들어보면, 세 차례에 나누어서 땅 346,000여 상(토지면적의 단위로, 1 상은 6 이고, 옛날에는 5평방 척1평방 보로 하고 240 평방보를 1 묘로 했음. 지금은 60평방 장, 6,000 평방척을 1 묘로 하고 있음. 1묘는 6,667 아르(a))을 받았는데, 경기京畿, 하북河北, 요동遙東 일대의 토지가 거의 다 팔기八旗의 장전이 되었다.

 

만주滿洲 귀족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마음대로 손짓으로 토지를 구획하여 자기 것으로 했다. “청 왕조가 강제적으로 토지를 몰수하면서, 지주를 즉시 내쫓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사돈史惇 통여잡기慟余雜記·권전圈田) 이것이 바로 장전인 것이다.

 

녕국부의 이름 아래 오진효는 8,9개의 촌락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의 형제는 영국부榮國府에서 8 곳의 토지를 관리하여 이쪽보다 몇 배나 많았다. 눈이 많이 와서 오는 길이 비록 어려웠다고는 하나, 오진효는 오는데 한 달하고도 이틀이나 걸렸으니, 이 장원은 가부에서 최소한 천 리나 되는 먼 길이었다.

 

공물로 가져온 물건 중에는 곰발바닥, 사슴고기, 사슴혓바닥, 여러 가지 곡물과 잣 등이 있는데, 이 장전이 먼 북쪽에 있다고 설명해 주고 있다. 이렇게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니, 자연히 가부의 나리와 도련님들이 앉아서 지킬 수가 없었으므로, 이렇게 오진효와 같은 장두莊頭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오진효는 가부의 노비일까? 그가 가진賈珍에게 보고를 올린 내용에 문하장두門下莊頭라고 스스로를 칭한 것으로 보아 아닌 것 같으나, 그렇지만 촌사람이어서 아무렇게나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상 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은 가노家奴가 많았다. 7회에서 봉저鳳姐는 집의 늙은 하인 초대焦大에게, “그를 아주 멀리 있는 장원에 보내버리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장원을 가리킨 것이다.

 

오진효는 한 번에 녕국부에 각종 야생 동물과 기른 새 종류를 거의 천 마리, 석탄 3만 근, 각종 양곡 1천여 석(주로 곡식 등의 용량을 재는 단위)를 은으로 환산하여 2,500 냥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물론 가부가 1 년 동안 쓰기에는 모자라는 액수이다.

 

88회에서 영국부의 집사 주서周瑞, “제가 여기에서 소작료를 관리해 오면서, 은전 거래는 매년 30만에서 50만 냥이 오고갔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록 제 88회의 내용은 조설근이 쓴 부분이 아닌 속서續書에 속하나, 아마도 훨씬 더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륭황제乾隆皇帝 시절의 쌀값으로 계산한다면, 30,50만 냥으로는 백미 30만 석을 살 수가 있었는데, 대략 10만 명이 1 년을 먹을 수 있는 돈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원을 관리하는 가부의 장두는 오진효 한 사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贾探春给贾宝玉写的信,短短二百多字,连用了哪八个典故?

贾探春给贾宝玉写的信,短短二百多字,连用了哪八个典故?

  

  如果说《红楼梦》里人物的文章,第一第二是林黛玉之《葬花吟》、贾宝玉之《芙蓉女儿诔》,或许不会有争议,那么第三篇是什么呢?

  我以为当推贾探春写给贾宝玉的一封信。第三十七回,探春欲发起诗社,郑重其事地给宝玉写了信,差翠墨送去。信不长,照录于下。

  “娣探谨奉二兄文几:

  前夕新霁,月色如洗,因惜清景难逢,讵忍就卧,时漏已三转,犹徘徊于桐槛之下,未防风露所欺,致获采薪之患。昨蒙亲劳抚嘱,复又数遣侍儿问切,兼以鲜荔并真卿墨迹见赐,何瘝痌惠爱之深哉!

  今因伏几凭床处默之时,因思及历来古人中,处名攻利夺之场,犹置一些山滴水之区,远招近揖,投辖攀辕,务结二三同志,盘桓于其中,或竖词坛,或开吟社。虽一时之偶兴,遂成千古之佳谈。

  娣虽不才,窃同叨栖处于泉石之间,而兼慕薛、林之技。风庭月榭,惜未宴集诗人;帘杏溪桃,或可醉飞吟盏。孰谓莲社之雄才,独许须眉,直以东山之雅会,让余脂粉。若蒙棹雪而来,娣则扫花以待。此谨奉。”

  探春似乎并不在诗赋上见长,但这一篇写得真好。不过二百余字,骈散错落,辞彩可观,内蕴深厚,值得反复品读。

  

  (一)先叙兄妹之情

  首先交代生病的原因,是前天晚上雪后初晴,月光雪色一片晶莹澄澈,自己贪看美景,不小心着了凉。只此一句,一个热爱生活、情趣高雅的少女形象已跃然纸上。

  这里用了一个典故:“采薪之患”。意思是担心打不了柴,是说自己生病的一种婉辞。语出《孟子·公孙丑下》:“昔者有王命,有采薪之忧,不能造朝。”

  接着感谢贾宝玉的关心:又是探望,又遣人问候,还送来“鲜荔并真卿墨迹”。鲜荔枝乃南方水果,不易保鲜,物流成本极大,不是寻常吃得着的东西,所以杜牧曾云:“一骑红尘妃子笑,无人知是荔枝来。”宝玉得着好东西想到送给妹妹,可见真心;而探春特意在信里点出,可知领情:兄妹情谊,于此可见。

  

  (贾探春,贾宝玉)

  “真卿墨迹”这个礼物就更有意趣了,谁见过探病有送书法作品的?宝玉之不俗、探春之风流就在这里了。

  探春是贾府的书法家,她的屋子里“案上磊着各种名人法帖,并数十方宝砚、各色笔筒,笔海内插的笔如树林一般……西墙上当中挂着一大幅米襄阳《烟雨图》,左右挂着一副对联,乃是颜鲁公墨迹,其词云:‘烟霞闲骨格,泉石野生涯。’”女子善书者,本也不稀奇;但是颜体端庄大气,古朴雅重,与一般闺阁体大异其趣,所以女子专研颜体的,还真是不多。

  可知探春与颜真卿在精神气质上,必有相互呼应之处。颜真卿是有唐一代铁骨铮铮的名臣,动乱之中节操凛然,可钦可敬。而贾探春也是贾家少有的大气之人,虽然庶出,却有志气有理想;她目光深远,看到了贾家的弊病与宿命,只恨自己不是男儿身,不能去闯荡天下建功立业。我们常说人如其字,字如其人,探春在书法上的审美追求,体现出她的气魄;而宝玉能欣赏探春的追求,亦可见宝玉的胸怀。

  

  (二)再写病中所思

  探春在卧病之中,都想些什么呢?不是顾影自怜,而是逸兴横飞,追想古人种种风雅的聚会。古人即便处于名利场中,也要设置“些山滴水”(微小的山水园区),招引同好,既悠游山水,亦寄情翰墨,留下多少佳话!

  “虽一时之偶兴,遂成千古之佳谈。”这一句,令人不由想起梁孝王睢园诗会、石崇金谷盛筵、王羲之兰亭雅集、谢安东山雅会、李白桃花园春宴……说不尽的文采风流、翰墨英华。

  身处闺阁之内、病榻之间,而探春的精神世界却实现了极大自由,思接千载,神追古人,没有丝毫小儿女的气息,却以逍遥游般的精神境界,自由翱翔,欲与古人比肩。

  

  所以,大观园的女丈夫贾探春要发起诗社:“窃同叨栖处于泉石之间,而兼慕薛、林之技。风庭月榭,惜未宴集诗人;帘杏溪桃,或可醉飞吟盏。孰谓莲社之雄才,独许须眉;直以东山之雅会,让余脂粉。若蒙棹雪而来,娣则扫花以待。”

  这一段最是“文彩精华,见之忘俗”,充满巾帼不让须眉的豪情,与未许古人专美的自信。诗情盎然,神采飞扬,堪比李白之《春夜宴桃花园序》。

  这里用了几个典故。

  

  “帘杏溪桃”,“帘杏”是个新典,扣时事,指大观园题匾时的“杏帘在望”(即后来的“稻香村”),也是旧典,出自明代唐寅《题杏林春燕》中“红杏梢头挂酒旗”;而“溪桃”出自东晋陶渊明《桃花源记》中的“沿溪行,忘路之远近”。两个典故合用,畅想烂漫春光,亦体现出寄情田园之趣味。

  “醉飞吟盏”,出自李白《春夜宴桃花园序》:“开琼筵以坐花,飞羽觞而醉月。”令人联想到诗仙豪迈奔放、浪漫飘逸的风采。

  “莲社”,东晋高僧慧远,于庐山结社念佛,中有白莲池,因号莲社,亦曰白莲社,乃净土宗的源头。这里不是谈宗教信仰,而是突出“雄才”,充满自信。

  

  “东山之雅会”,指东晋时期,谢安在东山隐居,常有文人雅士来访,共同饮酒赋诗。 谢安号称“江左风流宰相”,其实不仅才华横溢,而且功勋卓著,历史上著名的“淝水之战”,以弱胜强,大破前秦,正是出自谢安之运筹帷幄。探春以谢安的东山雅会比拟自己发起的诗社,其英雄气概、豪情壮志可见一斑。

  “棹雪而来”,是用《世说新语》中王子猷故事,说在一个大雪夜,王子猷忽然想朋友戴安道了,于是连夜乘船冒雪前往,过了一宿才到,却掉头就回去了。人家问他为什么,他说:“吾本乘兴而行,兴尽而返,何必见戴!”魏晋人物之潇洒任诞、不拘形迹,于此可见一斑。探春用这个典故来描述离经叛道的贾宝玉,真是心有灵犀。

  “扫花以待”,出自杜甫《客至》:“花径不曾缘客扫,蓬门今始为君开。”杜甫说自己生性疏懒,待客不周。探春反用其意,表达自己殷勤待客的诚意。

  这封信短短二百多字,既有豪情,亦有雅趣;既充满浪漫气息,亦饱含真心真意。连用八个典故,可见人物文化积累之深厚;而且运用得自然融浑,如盐入水,了无痕迹,更见才情。最可贵者,字里行间洋溢着自信洒脱的精神,真是令人称羡,令人钦服。

  

  作者: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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