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西遊記주제에 대한 연구 心字로 분석한 인물구조 이시찬
I. 서론
明代 吳承恩이 편찬한 《서유기》는 고대 중국이 낳은 ‘四大奇書’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소설은 물론이고 만화, 영화, 게임 등다양한 장르로 그 인기를 여전히 구가하고 있다. 《서유기》가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작품으로 추앙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각도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서유기》를 읽으면서 이 작품의 전체 줄거리를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여행이라기보다는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여행으로 독해했다. 그 관념적 공간은 다름 아닌 ‘心’字 한 글자로 대변되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나서는 긴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는 것을 佛家식으로 얘기하자면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儒家식으로 얘기하자면 ‘求放心’, 즉 ‘本性을 구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각각 그 ‘本性’이 가려진 채 사사로운 ‘情’에 치우쳐 우왕좌왕하는 우리 자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게 되면 이 인물들이 지닌 각자의 캐릭터와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게 된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를 통해 《서유기》에 등장하는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孫悟空과 豬八戒, 그리고 沙悟淨을 ‘心’字를 가지고 분석하되 그것이 지니고 있는 다원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본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진행할 것이다.
첫째, ‘心’字가 지니고 있는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출발하여 사상적 의미까지 차례로 정리하고 고찰할 것이다. 가령 본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心猿意馬’라고 하는 구절의 ‘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意’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또한 모두 ‘心’字의 의미로부터 출발한 ‘性’이나 ‘情’과 같은 글자들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字意에서부터 사상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까지 정리하고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 字意 분석에서 출발하여 이 소설의 사상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 ‘放心’⋅‘定心’⋅‘求心’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찰을 하고자 한다.
둘째, 孫悟空과 豬八戒, 그리고 沙悟淨이라고 하는 주요 인물에 투영된 ‘心’의 실체를 고찰하고자 한다. 孫悟空은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한 이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이고, 豬八戒는 욕심으로 대변될 수 있는 세속적 인간의 집합체로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沙悟淨 또한 불교의 이상으로 불리어지는 淨土 세계를 꿈꾸는 평범한 대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소설은 그들을 통해 어떤 메시지 전달하려고 하는가도 살펴보고자 한다.
《서유기》는 중국소설사에서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神魔小說’로 분류된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노신으로부터 시작된 ‘神魔’라는 개념은 이 소설의 특징을 개괄하기에 매우 편협하다. 노신이 ‘神魔’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은 사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이 觀音으로 대표되는 神들의 그룹과 牛魔王으로 대표되는 妖魔들의 그룹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유기》와 같은 소설은 루쉰 저, 조관희 역주, 《중국소설사》: 「노신은 ‘神魔’라는 명칭을 쓴 이유에 대해 《中國小說史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明代) 成化 연간에 방사 李孜와 불승인繼曉가 나왔고, 正德 연간에는 색모인 于泳이 나왔는데, 모두 방사의 환술 등의 잡된기예로 관직을 받아 부귀영화의 권세를 누렸으니, 세상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받았다.이에 요망한 주술이 자연스럽게 성행하였고, 문장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 게다가‘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주제의 사상적 지평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神魔’라는 개념은 이 소설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는 분명 부족하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서유기》를 읽는 讀法의 일환으로 ‘心’字를 가지고 주요 인물들의 특징을 분석함과 동시에 향후 다른 논문에서 사상적 주제의식의 전반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연구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다.
Ⅱ. 관념적 공간으로서의 ‘心’
1. 心, 性, 情, 意
1) 心
《서유기》 원본에서는 孫悟空을 다른 말로 ‘心猿’이라고 자주 지칭한다. ‘心’은 인체 五臟 가운데 심장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로 心房과 心室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이 글자는 갑골문에는 빠져 있고, 金文에 최초의 형태가 보이는데, 그림 1은 바로 小篆體의 형태이며 金文의 형태도 이와 비슷하다.
許愼의 《說文解字》에서는 ‘心’이란 글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역대로 이어져 온 三敎의 다툼은 모두 해결되지 않은 채 서로를 수용하여, ‘근원이 같다(同源)’고 하였으니, 이른바, 義理, 邪正, 善惡, 是非, 眞妄 등의 여러 가지 대립적인 개념들이 모두 혼합된 데다 다시 이것을 분석하여 二元으로 통합하였다. 비록 전문적인 명칭은 없지만 神魔라 하면 대개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소설사》, 서울, 소명출판, 2004), 385-386쪽. 노신의 ‘神魔’에 대한 개념 설명은 물론 일리가 있지만 이는 《서유기》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독해의 지평을 축소시키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함을 밝혀 둔다.
2) 필자는 《서유기》와 관련된 3가지 연구를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우선 《서유기》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서유기》 전체의 사상구조를 분석하는 연구이다. 《서유기》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필자가 2016년 8월에 발표한 <소설 《서유기》 형성과정 연구>, 《人文科學論集》 第53輯을 참고하기 바란다.
심장이며 土藏으로 사람 몸의 가운데에 있다.(人心, 土藏, 在人身之中.)”3) 《古文尙書》에서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인간 신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로써 五臟을 ‘脾木⋅肺火⋅心土⋅肝金⋅腎水’로 구분하였다. 五行說에 의하면 심장은 곧 土藏에 해당하며 이는 곧 五行의 중심이 된다. 즉 만물이 모두 땅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심장을 土藏이라고 한 것이다.
‘心’은 동물의 체내에서도 혈액을 관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며, 식물에서는 주로 중심 또는 뿌리가 되는 부분을 지칭한다. 관련되는 단어를 몇 가지 예로 들자면, ‘虎狼心’⋅‘蛇蝎心’⋅‘人面獸心’⋅‘花心’⋅‘樹心’ 등이 있다. 이처럼 ‘心’이란 글자는 사람의 신체 기관으로부터 출발해서 천지만물의 중심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정신활동의 요체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사상적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지칭할 때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心’이란 글자가 핵심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가령, ‘性理學’과 ‘心學’은 중국 儒家思想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며, 불교 교리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一切唯心造’란 말은 신라 승려 元曉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그래서 宋代에는 心法의 전수가 요체가 되는 《大學》과 《中庸》이 유학자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급기야는 《心經》이라는 책이 따로 묶여져 나오기도 했다. 朱熹가 集註한 《中庸章句》의 첫 장을 보면 ‘中庸’이라는 말을 정의함과 동시에 程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책은 바로 孔子의 문하에서 전수해 온 心法이다.”라고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宋代 유학자들이 말하는 ‘心’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以心傳心’이라든가 ‘不立文字’와 같은 것들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이치로 중국에서는 《般若心經》이 가장 핵심적인 불교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이는 소설 《서유기》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오늘날에도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듯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心’은 특히 동양적 사상의 핵심이 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heart’나 ‘mind’와 같은 단어가 있으나 전자는 신체 기관으로서(漢)許愼 撰, (淸)段玉裁 注, 《說文解字注》, 台北, 黎明文化事業股份有限公司,
4) 高樹藩 編纂, 《正中形音義綜合大字典》, 台北, 正中書局, 1974, 482쪽 참고.
5) ‘思想’이란 단어에도 모두 ‘心’字가 포함되어 있다. ‘思’는 ‘囟’(정수리 신)과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로 마음이 먹은 바를 머리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의 ‘심장’이 먼저 떠오르고, 후자는 뇌라는 기관과 연결된 정신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동양에서 말하는 ‘心’과는 분명 약간의 괴리가 있다. 아래에서는 ‘心’과 관련하여 중국철학에서 중요시하는 글자들의 의미를 정리하고자 한다. 그것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무수한 ‘心’의 의미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2) 性
‘性’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外物에 저촉하여 발양되기 이전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四書章句》 가운데 하나인 《中庸》의 첫 장은 바로 이 ‘性’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된다. 하늘이 명한 것을 ‘性’이라고 말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道’라고 말하며, 등급에 맞게 조절해나가는 것을 ‘敎’라고 말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朱子는 이 구절에 주를 달았는데, ‘性’은 ‘理’라고 정의했다. ‘理’는 이치를 말하는데 그것은 곧 천지가 만물을 변화시켜서 태어나게 해주는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생명은 탄생의 과정에서 ‘化生’을 하게 된다. ‘化生’이란 말은 佛家에서 나비나 매미가 굼벵이에서 탈피를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가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포유류는 胎生을 하고, 조류는 주로 卵生을 하며, 파충류는 濕生을 하는 따위인데, 모든 생명체가 ‘化生’의 각기 다른 과정을 거치는 것을 분류한 것이다. 인간은 胎生을 하는 존재이자 만물의 중심에 해당하며 최초에 인간이 하늘, 천지, 또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 바로 ‘性’이라는 것이다. 이 ‘性’은 그 어느 것에도 때가 묻지 않은 상태인데, 소위 ‘本性’이라고 하는 것은 음양오행설에 적용시킬 때 ‘仁義禮智信’이 된다. 또한 우리가 흔히 ‘本性’, ‘心性’, ‘人性’을 언급하는 것은 모두 ‘仁義禮智信’이라고 하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天性’을 의미하며, 정통 儒家에서는 그 ‘天性’은 본래 선하다고 하는 ‘性善說’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서유기》 제1회에서 孫悟空의 탄생을 묘사하는 과정은 바로 위에서 얘기한 ‘性’ 十三經注疏本, 《禮記⋅中庸》 第三十一, 台北, 藝文印書館, 1997, 879쪽.과 ‘化生’의 이치로부터 시작된다. 제1회에서는 태초에 혼돈의 시기부터 신화적 인물인 盤古가 그 혼돈을 깨뜨리고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고 땅의 기운이 하늘로 올라가 그 기운이 합쳐져서 만물이 생겨났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큰 산 꼭대기에 신령한 돌이 하나 있었는데 신선의 胎를 키우면서 바람에 깎이다가 마침내 그 모양새가 돌 원숭이처럼 변했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제1회의 제목에 그대로 함축되어 있다.
靈根育孕源流出, 정령의 뿌리가 길러지니 원류가 흘러나오고
心性修持大道生. 心性이 닦여지고 간직되니 大道가 생겨나다.
여기서 앞 구절은 바로 하늘로부터 本性을 부여받은 孫悟空의 탄생을 의미하고, 뒤의 구절은 장차 取經이라는 수도의 길을 떠나면서 本性을 회복해 마침내 인생의 큰 道理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心’과 ‘性’의 문제는 《서유기》의 시작부터 끝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소설 전체에 시종일관 제기된다.
3) 情
‘性’이 孫悟空의 탄생을 빌어 제기된 개념이라면 ‘情’은 豬八戒의 인물형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 훈고학적으로 정의하는 ‘情’의 개념은 바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本性이 ‘외물에 저촉되어 발양된 이후의 마음상태’라고 할 수 있다. 주희의 注에 의하면 「희노애락은 情이요, 그것이 발양되기 전의 상태는 性이다.(喜怒哀樂, 情也. 其未發, 則性.)」라고 풀이했다. 다시 말하면, ‘性’은 ‘未發之心’이고, ‘情’은 ‘旣發之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자는 우리말로 하나 더 풀이하면 ‘마음 씀씀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中庸》에서 말하는 ‘中’은 性의 德이고, ‘和’는 情의 德에 해당한다. 즉 표출된 마음으로써의 情은 잘 조절되고 남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적절히 조절되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豬八戒는 흔히 ‘五慾七情’의 화신으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정제되지 않고 함부 로 분출되는 모습으로 묘사된 캐릭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豬八戒가 《서유기》에 吳承恩 著, 《西遊記》, 上海, 上海古籍出版社, 1997, 3쪽.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이유는 바로 수양되지 않은 우리 일반인들의 모습을 잘 투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情’이라는 것은 ‘性’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서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感情’은 함부로 분출되어서는 안 되고, ‘理性’의 통제를 받을 때에만 바른 인간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4) 意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서유기》에서는 孫悟空을 ‘心猿’이라고 부르는 한편 여기에 등장하는 白馬는 ‘意馬’라고 부르기도 한다. ‘心猿’과 ‘意馬’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바로 인간의 마음은 원숭이처럼 종잡을 수 없이 마구 날뛰는 것을 형용하고, 또 인간의 생각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하기 힘든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心猿’은 정서적인 측면을, ‘意馬’는 의식적인 측면을 표상하는 것이다. ‘心猿意馬’라는 네 글자에서 보이듯이 원숭이와 말과의 관계는 ‘心’과 ‘意’가 짝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서유기》 제7회에 삽입된 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猿猴道體配人心, 원숭이의 몸을 사람의 마음과 짝을 지어 놓았으니,
心卽猿猴意思深. 마음이 곧 원숭이라는 그 의미가 깊네.
大聖齊天非假論, 대성제천이라 불리는 것도 꾸며낸 말이 아니니
官封弼馬是知音. 필마온이란 관직을 준 것도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네.
馬猿合作心和意, 말과 원숭이가 心과 意로 합쳐졌으니
緊搏牢拴莫外尋. 단단히 묶어둘 일이지 밖에서 찾을 일 없다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孫悟空이나 白馬도 모두 인간의 마음을 형상화한 캐릭터이며 이 둘은 특별히 긴밀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제30회의 제목을 보면 ‘意馬憶心猿’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孫悟空이 빠진 상황에서 난관에 봉착한 일행 가운데 白馬가 孫悟空의 부재를 가장 아쉬워하고 그리워한다. 이로써 이 둘의 관계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정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철학적으로 고찰할 때같은 책, 《西遊記》, 82쪽. 도 구성적으로 매우 세심하고 치밀한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意’字의 의미를 「意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발양된 것이다.(意者, 心之所發也.)」로 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밝힌 「性이 발양된 것이 情이다.
(性之所發, 情)」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즉 ‘心’은 ‘意’로 발양되고, ‘性’은 ‘情’으로 발양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性情’은 ‘이성과 감정’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라고 한다면, ‘心意’에서의 ‘意’는 특별히 사물을 분별하는 지식 또는 의식적인 측면을 중시한 것이다. 곧 ‘意馬’라고 하는 것은 분별없이 마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意馬’의 출생 배경은 제15회에 보인다. 三藏法師 일행은 白馬를 끌고 가다가 蛇盤山 鷹愁澗이라는 계곡에서 못된 용을 만났는데, 그 용이 白馬를 통째로 잡아먹게 된다. 그 용은 원래 서해 용왕의 아들인데, 불장난을 하다가 하늘 궁전의 明珠를 태워버렸기 때문에 그의 부친이 그를 불효죄로 상소하게 된다. 이는 하늘나라에서는 사형죄에 해당되었으나 관세음보살이 옥황상제를 만나 아래 세상으로 보내 당나라 승려의 탈것으로 삼자고 부탁드리게 된 것이다.
《大學》에서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선행조건으로 ‘格物致知誠意正心’의 단계를 강조했다. 소위 8조목이라고 하는 단계에서 가장 먼저 행해야 할 것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지식을 지극하게 하는 ‘格物致知’이다. 이것은 바로 학문을 하는 단계가 된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생각을 진실하게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는 ‘誠意正心’이다. 이것은 학문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공부한 다음 德行을 쌓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서상으로 보자면 뜻을 진실하게 해야 마음을 바른 곳으로 모을 수 있게 된다. 白馬는 三藏法師 일행을 수행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되는데, 이 白馬가 진실한 마음으로 바른 길을 가야만 나머지 일행이 마음을 수양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의식적인 사고가 먼저 선행되어야 마음을 잡는 수양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은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의식의 각성(意)이 없이는 마음(心)을 수양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없다는 것은 중국의 사상사적 배경이 매우 적절하게 반영된 것이다.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2. 放心, 定心, 求心
1) 放心
《서유기》의 전체 구조는 ‘心’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볼 때, 대체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孫悟空이 하늘 궁궐에서 한바탕 소동을 부리기까지의 내용이고, 둘째는 석가여래에 의해 五行山에 갇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며, 셋째는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과정을 간략하게 ‘放心’, ‘定心’, ‘求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放心’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해보기로 한다. 우선 맹자는 인간이 학문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애처롭다. 사람이 닭과 개가 도망가면 찾을 줄을 알되, 마음을 잃고서는 찾을 줄을 알지 못한다. 학문을 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孟子曰, 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鷄犬放, 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 孫悟空의 탄생은 천지간의 가장 빼어난 것과 일월간의 정화를 받은 돌덩어리에서 시작된다. 천지는 공간적인 개념이고 일월은 시간적인 개념으로 보면 시공을 초월해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孫悟空을 우리 개인에 비유하자면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가장 소중한 정기를 받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각자의 한 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는 緣起의 법칙이 작용했다. 즉 나라는 몸은 무수한 시공 속에서 수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자연과 교감하며 인연을 주고받은 최고의 결정체인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처럼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本性’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선한 것인데, 이 마음을 놓치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고행의 길로 접 十三經注疏本, 《孟子⋅告子上》, 台北, 藝文印書館, 1997, 202쪽. 어들게 된다. 孫悟空은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천당과 지옥은 물론이고 모든 종교를 초월해 좌충우돌하며 날뛰고 말썽을 부린다. 《서유기》를 구조적으로 내부적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를 소우주의 공간에 두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특히 孫悟空의 방종은 물리적으로 몸 밖의 외부 세계와의 갈등과 충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내면세계의 불안정함을 더 절실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심리상태는 제4회의 제목에 있는 ‘心何足’, ‘意未寧’라는 구절에 집약되어 있다.
2) 定心
《서유기》에는 儒⋅佛⋅道라고 하는 중국 전통의 三敎 思想이 혼재되어 있지만 외연적으로 가장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불교이다. 孫悟空은 蟠桃대회에서 천도복숭아와 선단 등을 훔쳐 먹고 하늘에서 난동을 부리게 된다. 옥황상제는 격노하여 하늘나라의 모든 신을 동원하였으나 그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太上老君의 도움을 받은 顯聖二郞眞君에게 붙잡히게 되지만 孫悟空은 다시 탈출에 성공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석가여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는 孫悟空을 오행산 아래에 가두어 버린다. 이것이 소위 ‘定心’에 해당하며 제7회에서는 ‘五行山下定心猿’으로 표제를 달았다.
한편 옥황상제는 孫悟空을 완벽하게 진압한 석가여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후에 석가여래는 동방에 불법이 전해지지 않은 것을 혼란의 근원으로 파악하고 관세음보살을 시켜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갈 사람들을 모으도록 한다. 흥미로운 것은 ‘五行山’의 ‘五行’이 음양오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면서도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일행의 숫자도 다섯에 맞추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三藏法師⋅孫悟空⋅豬八戒⋅沙悟淨⋅白馬이다. 이 다섯 인물은 곧 인간의 여러 가지 마음을 표현한 것들이기 때문에 결국 ‘心猿’이라는 원숭이를 가둔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 된다. 즉 날뛰는 마음(放心)과 그것을 눌러 앉히는 마음(定心)도 모두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결코 바깥 세계에서 찾는 게 아닌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는 항상 마음속에 있으며(佛在心中)’,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이라고 설법한다. 이것은 마음속에 부처가 원래 존재한다라는 일차원적인 의미‘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보다는 인간이 수양을 하는 과정은 외면보다 내면으로 향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孫悟空은 ‘定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定心’은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임과 동시에 ‘決心’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放心’한 마음과 결별하고 ‘求心’을 실행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인 것이다. 흔히 가장 큰 결심은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것인데, 이런 마음 상태를 지니게 되면 어떤 번뇌도 물리칠 수가 있게 된다. 제8회에서 석가여래가 孫悟空을 五行山에 가둔 후 첫 불법을 펼친 경전이 바로 《楞嚴經》인데,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禪心朗照千江月, 참선하는 마음은 온 강에 달이 뜬 듯 맑고 환하게 비추고,
眞性淸涵萬里天. 순수한 본성은 온 하늘을 맑게 적시네.
‘定心’은 불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법을 깨닫기 위해 참선을 시작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흰 벽을 향하고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으면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그때부터 깨달음을 향한 마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孫悟空이 五行山에 갇힌 것은 비록 타의에 의해서기는 하지만 참선의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3) 求心
‘求心’은 본격적으로 수행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제14회의 ‘心猿歸正’나 제51회의 ‘煉魔’, 그리고 제99회에 보이는 ‘道歸根’과 같은 표현들은 바로 ‘求心’의 과정과 목적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서유기》에서는 孫悟空 일행이 겪는 험난한 과정을 ‘八十一難’으로 설정하고 있다. 81이란 숫자는 9를 두 번 곱한 숫자인데, 주지하다시피 9는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많은 수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八十一難’은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제99회의제목은 ‘九九數完魔剗盡’으로 표제하고 있다. 이 ‘八十一難’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귀와 요괴들 역시 마음을 수양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우리의 또 다른 마음의 표상이다. 그리고 孫悟空 일행은 한편으로는 이러한 요괴들과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일행 각자가 지니고 있는 치우친 마음들과 서로 갈등하고 분쟁을 조정해 나간다. 그러고 보면 《서유기》 스토리의 전체가 결국 모두 ‘心’字 한 글자로 집약된다. 그런데 일행이 마지막에 얻은 《心經》은 정작 글자가 하나도 없는 ‘無字經’이었다.
이것은 ‘求心’의 종착역이 결국은 ‘空’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교에서 설파하는 ‘空’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 결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다. 그 유명한 《般若心經》의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하는 구절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舍利子, 사리불이여,
色不異空, 色이 空과 다르지 않고
空不異色, 空이 色과 다르지 않으니,
色卽是空, 色이 곧 空이고
空卽是色. 空이 곧 色이니라.
베트남의 유명한 승려인 틱낫한은 이 구절과 관련하여 ‘얇은 종이’나 ‘물결과 물’, ‘옥수수 씨앗’, ‘우리 자신’ 등 다양한 비유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인용하기로 한다.
만일 우리가 비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한 덩어리의 물질입니다. 우리는 숨을 쉴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空은 살아있다는 것,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空은 無常(모든 것이 늘 변해 계속 머무는 것이 없음)하므로 변화합니다. …… 당신에게 옥수수씨 하나가 있다면, 당신은 그 씨를 땅에 맡기고 옥수수가 자라기를 바랄 것입니다. 만일 무상하지 않다면 그것은 영원히 씨앗으로 남을 것이고, 결국 옥수수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無常은 모든 생명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無常에 대해 불평하는 대신 “무상이여 영원하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無常함으로써 모든 생명이 존재할 수 있으니 無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광덕, 《반야심경 강의》, 서울, 불광출판사, 2014, 12쪽.
틱낫한 지음, 강옥구 옮김,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서울, 도서출판 장경각, 2016,
38-39쪽.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色’과 ‘空’은 관계론적 설정으로 삼라만상 모든 것이 다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한 진리로써 ‘탄생과 죽음도 없다’라는 의미와 직결된다. 가령 우리는 잉태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반은 아버지 안에서, 반은 어머니 안에서 존재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또 그 이전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지속할 뿐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출생신고가 곧 사망신고이고 사망신고가 곧 출생신고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다. 결론적으로 孫悟空 일행이 ‘求心’의 결과물로 얻은 《心經》이 텅 빈 ‘空’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바로 위에서 얘기한 불교의 깨달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Ⅲ. ‘心’字로 본 주요인물의 특징
1. 孫悟空
孫悟空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본 논문에서 나열하지 않아도 이미 적지 않은 연구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본 논문에서 ‘心’字를 중심에 두고 주로 불교의 관점에서 그 이름이 내포하고 있는 사상적 의미를 좀 더 고찰해보고자 한다. 우선 《서유기》 본문에 나오는 孫悟空이라는 法名의 유래를 살펴보기로 하자.
(須菩提)祖師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 몸이 비록 비루하긴 해도, 어쨌든 잣과 과일을 먹고 사는 원숭이(猢猻)를 닮았구나. 내 너의 모습을 따라 성씨를 붙여주마. 무슨 뜻이냐 하면 이렇다. 네 성을 ‘猢’라고 하면, 그 글자에서 짐승을 뜻하는 변을 빼버렸을 때 ‘古月’이 된다. ‘古’라는 것은 늙었다는 뜻이요, ‘月’ 즉 달은 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늙고 음에 속한 것은 가르쳐 변화시킬 수 없으니, 네 성을 ‘猻’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 글자에서 짐승을 뜻하는 변을 빼버리면 ‘子系’가 되는데, ‘子’는 아들이라는 뜻이요 ‘系’라는 것은 ‘嬰細’, 즉 어리고 작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애의 본령과 딱 들어맞으니, 네 성을 ‘孫’이라고 하자.”
이름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내 문중에는 열두 개의 글자로 문파를 나눠서 이름을 짓는데, 너는 바로 열 번째 무리에 속한 제자가 될 것이다. …… 그것은 바로 廣⋅大⋅智⋅慧⋅眞⋅如⋅性⋅海⋅穎⋅悟⋅圓⋅覺의 열두 글자이다. 너에게 안배한 것은 바로 ‘悟’자이니라. 너에게 ‘孫悟空’이라는 법명을 줄까 하는데, 어떠냐?
위에서 孫悟空의 스승이자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 須菩提는 석가모니의 十大弟子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별칭은 ‘解空第一’이라고 불리었다. 따라서 그가 ‘悟空’이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바로 설명이 된다. 또 ‘悟’라고 하는 한자의 의미는 마음으로 내 자신을 깨닫거나 스스로 깨우친다는 뜻이다. 따라서 ‘孫悟空’이란 이름은 바로 儒家에서 말하는 태어날 때의 本性을 깨닫는다는 것과14) 佛家에서 말하는 세상만물의 이치는 ‘空’이라는 것에서 출발함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三藏法師는 나중에 孫悟空이 《心經》 속에 글자가 없는 것을 보고 「말과 문자가 하나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이다.(無言語文字, 乃是眞解)」라고 한것을 칭찬하게 된다. 불교 禪宗에서 가르침을 전수하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不立文字’와 ‘拈華微笑’로 대변된다. 즉 문자가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心法’으로 전수하는 것인데 작품 속에서 豬八戒와 沙悟淨은 아직 깨닫지 못했으나 三藏法師와 孫悟空은 이미 마음으로 통했기 때문에 불경 속의 문자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三藏法師 일행의 의무가 중국에 불법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문자가 적혀 있는 불경을 구해서 당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孫悟空이란 인물과 관련해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三藏法師와 須菩提祖師와의 관계이다. 《서유기》에서는 三藏法師가 석가모니의 두 번째 제자인 金蟬子가 같은 책, 《西遊記》: 「祖师笑道: “你身躯虽是鄙陋,却像個食松果的猢狲. 我與你就身上取個姓氏,意思教你姓‘猢’. 猢字去了箇兽傍,乃是箇古月. 古者, 老也, 月者, 阴也.老阴不能化育, 教你姓‘狲’倒好. 狲字去了兽傍,乃是箇子系. 子者, 儿男也, 系者, 婴细也. 正合婴儿之本论. 教你姓‘孙’罢.” 猴王聽说, 满心欢喜, 朝上叩头道: “好!好!好!今日方知姓也. 萬望师父慈悲! 既然有姓, 再乞赐箇名字, 却好呼唤.” 祖师道: “我门中有十二箇字, 分派起名到你乃第十辈之小徒矣.” 猴王道: “那十二箇字?” 祖师道:“乃廣、大、智、慧、真、如、性、海、颖、悟、圆、觉十二字. 排到你, 正當‘悟’字. 與你起个法名叫做‘孙悟空’好麽?”」, 《西遊記》, 13쪽.
태어날 때의 본성을 중시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宋代 朱子學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明代에 유행한 王陽明의 ‘心學’ 가운데 ‘童心說’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환생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석가모니의 十大弟子 가운데 金蟬子라는 인물은 없다. 오히려 위에서 밝힌 것처럼 須菩提는 석가모니의 十大弟子가운데 한 명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孫悟空이 五行山에 갇힐 때가 王莽이 漢나라를 찬탈했던 시점이라는 것이다. 즉 孫悟空은 그때로부터 오백년 동안 구도의 과정을 거쳤으며 또 그로부터 몇 십 년 동안 더 수도를 했기 때문에 계산상으로는 불법이 중국에 전래되는 시기와 비슷하게 된다. 또한 이것은 一世를 60년으로 놓고 볼 때 삼장법사가 九世에 걸쳐 수행하는 기간과도 비슷하기 때문에 시간적인 계산상으로 본다면 이 세 인물은 결국 하나의 인물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게 된다. 즉 수보리 조사가 곧 삼장법사고 또 孫悟空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작자의 인물 설정은 매우 세심하고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사실 孫悟空은 일행 가운데 가장 능력이 뛰어나며 외모도 금빛 털에 금빛 머리 테두리를 하고 있으며 그의 무기인 여의봉도 끝부분이 금으로 둘러 싸여 있어 가장 화려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 오만방자하며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불가에서는 검소함을 수행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 유가에서도 사치스러우면 불손하기 쉽기 때문에 사치스럽기보다는다소 고루하더라도 검약한 삶을 강조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스러우면 공손하지 못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니, 공손하지 못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공교롭게도 孫悟空의 姓인 孫은 恭遜의 의미를 담고 있다. 孫悟空은 어찌 보면 인간 세계에서 재주가 뛰어나고 똑똑한 이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작자는 孫悟空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잘난 체하고 공손하지 못한 이들이 깨달아야 하는 덕목의 하나로 부귀하고 능력이 있을수록 공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十三經注疏本, 《論語⋅述而》, 台北, 藝文印書館, 1997, 65쪽.
2. 猪悟能
猪悟能은 豬八戒의 法名이다. ‘八戒’라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불교 수행자가 지켜야 할 여덟 가지의 계율을 말한다. 그 내용은 대개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훔치지 말라(不偸盜)’, ‘간음하지 말라(不婬)’,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고, 가무를 즐기지 말라(不以华鬘装饰自身, 不歌舞观聽)’, ‘크고 화려한 침상 또는 좌석에 앉거나 눕지 말라(不坐卧高廣华丽牀座)’, ‘정해진 식사 시간 외에는 먹지 말라(不非時食)’ 등으로 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猪悟能의 직책은 원래 하늘나라의 天蓬元帥였다. 그의 주된 임무는 天蓬星의 休門, 즉 서북쪽 문을 지키면서 水軍을 지휘해 天川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西王母가 주최한 파티에 나갔다가 술에 만취돼 天界의 법을 어기고 달나라의 仙女를 성희롱했다. 그 벌로 下界로 쫓겨나 돼지몰골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天蓬元帥가 어긴 법은 먹는 것(食)과 여자를 밝히는 것(色)으로 대표되는 세속적 욕망의 경계를 상징한다. 세속적 욕망의 경계를 넘게 되면 한 개인의 삶은 人道에서 멀어져 결국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동물의 삶에 가깝게 된다. ‘食’과 ‘色’이라는 본능에 가장 충실한 동물로 가장 쉽게 연상되는 것이 돼지이다. 따라서 본능적인 욕망에만 충실한 동물계의 길을 벗어나 바른 인간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계율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豬八戒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서양식 격언으로 보자면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豬八戒가 ‘食色’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투영한 인물이라는 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 문제는 관세음보살이 그에게 지어준 ‘猪悟能’이라는 法名에 있다. ‘悟能’을 字意대로만 풀이하자면 ‘悟’라는 글자는 ‘깨달음’을 뜻하는 것이고, ‘能’은 ‘능력’ 또는 ‘가능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能’이란 어떤 능력과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 ‘八戒’와 ‘悟能’은 어떤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우선 豬八戒가 ‘悟能’이라는 法名을 받게 된 장면을 살펴보자.
관세음보살은 곧 그에게 이마를 만지며 지켜야 할 계율을 내려주는 摩頂受戒를 慈怡 主編, 《佛光大辭典》 제1권, 北京, 北京圖書館出版社, 1989, 318쪽.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39
베풀어주고, 돼지인 몸을 따서 성을 猪氏라 하고 법명을 ‘猪悟能’이라고 지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猪悟能은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길로 돌아가,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며 素食을 하고, 五葷三厭을 끊은 채, 오로지 경전을 가지러 올 사람을 기다리게 되었다.
‘八戒’와 ‘悟能’을 단순하게 연결시켜 보자면 豬八戒는 계율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그와 동시에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 외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동물적 속성으로서의 본능 외에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고유의 능력을 되찾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豬八戒는 주로 식탐이 많고 유난히 색을 밝히며 재물에 대한 욕심도 무리 중에서 가장 많으며, 고자질과 거짓말을 일삼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또 게으르고 두려움도 많으며 孫悟空의 공적까지도 가로채는 등 공명심으로 충만해 있다. 이처럼 豬八戒는 인간이 지닌 부정적인 측면을 한 몸에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독자들로부터 가장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랑받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즉 ‘悟能’은 우리 개개인처럼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범인들도 소위 불교에서 내세우는 계율을 실천해나가면 참된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豬八戒는 物慾⋅色慾⋅名譽慾 등 인간의 참된 능력을 적재적소에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慾心’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제거함으로써 자신이 타고난 고유의 능력, 즉 本性을 회복하고자 하는 상징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3. 沙悟淨
沙悟淨의 姓은 모래를 뜻하는 ‘沙’이고, 法名은 순정함을 깨닫는다는 뜻의 ‘悟淨’이다. 이 이름의 유래는 우선 《取經詩話》에서 찾을 수 있다. 《取經詩話》에서 그의 이름은 ‘深沙神’이며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여러 차례 승려를 잡아먹은 전력이 있 같은 책, 《西遊記》: 「菩萨纔與他摩顶受戒, 指身为姓, 就姓了猪, 替他起個法名, 就叫做猪悟能. 遂此领命归真, 持斋把素, 断绝了五荤三厌, 专候那取经人.」, 《西遊記》, 100쪽. 다고 기록되어 있다.19) 또 《西遊記》에서도 그는 과거 아홉 번에 걸쳐 불교를 구하러 가는 승려를 잡아먹은 적이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살해한 승려의 해골을 목걸이로 만들어 항상 걸고 다녔다고 말한다.20) 살인이라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에 속한다. 즉 과거 행적으로만 보자면 沙悟淨은 비유하자면 도저히 구제받기 힘든 연쇄살인범과 같은 인간에 해당한다. 그러나 佛敎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홉 명의 승려를 먹었다는 비유는 그 아홉 명의 깨끗한 영혼과 ‘善緣’을 맺어서 그 역시 깨끗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緣起說이 바탕에 깔려 있다. 즉 ‘悟淨’에 내포된 깊은 의미는 살인과 같은 악업을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깨달아서 가장 깨끗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유기》에서 沙悟淨은 무리 중에서 가장 과묵하고 성실하며, 求道를 향한 여정 중에 다른 유혹에 빠진 적이 없다. 또한 작품 속에서 孫悟空이나 豬八戒와는 달리 작자가 그를 직접적으로 희롱하는 묘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沙悟淨은 결말 부분에서 三藏法師를 위해 산을 오르고 말을 끈 공로로 인해 ‘羅漢’으로 추존된다. 羅漢은 小乘佛敎(上座部佛敎)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말한다. 그 의미는 모든 탐욕과 분노 및 어리석음 등의 일체 번뇌를 끊고 생사의 윤회를 완전히 초월한 것을 말한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取經詩話》에서 沙悟淨의 과거 악행을 알려준 것이 바로 羅漢이다. 그런 의미에서 沙悟淨과 羅漢은 곧 동일한 존재이며, 이 역시 이른바 세상 만물이 모두 인연하고 있다는 ‘緣起說’에 근거하는 불교식 인물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沙悟淨은 승려를 살해하고 그 해골을 목걸이로 만들어 쓰는 악한으로 묘사되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하늘나라에서 옥황상제의 수레를 모는 卷帘大將으로봉직하고 있었는데, 실수로 인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李時人 校注, 《大唐三藏取經詩話校注》: 「羅漢이 말했다: “법사는 일찍이 두 번에 걸쳐 西天으로 불경을 구하러 갔었으나 불법이 온전하지 못해서 매번 深沙神에게 사로잡혀 생명을 잃었습니다.”(羅漢曰: “師曾兩迴往西天取經, 爲佛法未全, 常被深沙神作孽,損害性命.”)」 《大唐三藏取經詩話校注》, 北京, 中華書局, 1997, 6쪽.같은 책, 《西遊記》: 「이 물에서는 거위 털조차 뜰 수 없는데, 경전을 가지러 가는 아홉사람의 해골은 물 위에 떠서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이한 물건으로 여겨서 끈으로 한 데 꿰어 심심할 때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这箇水, 鹅毛也不能浮, 惟有九個取经人的骷髅, 浮在水面, 再不能沉. 我以为異物, 将索兒穿在一处, 闲时拿来顽耍.)」,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다. 옥황상제는 그를 도무지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막 땅에 유배를 보냈고, 7일에 한 번씩 그를 검으로 찌르는 잔인한 형벌을 가했다. 이러한 장면은 어떤 측면에서 위정자가 지나치게 가혹하면 백성을 살인까지 내몰 수도 있다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沙悟淨은 다시 초지일관 수행을 통해 덕업을 쌓고 서역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불교 ‘淨土宗’의 중심 사상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시 그가 법명을 받는 장면을 살펴보자.
관세음보살은 그에게 이마를 만지며 지켜야 할 계율을 내려주는 摩頂受戒를 베풀어주고, 流沙河의 ‘沙’를 따서 성을 沙氏로 하고 법명을 ‘沙悟淨’이라고 지어주었다. 불제자가 되어 관세음보살이 강을 건너는 것을 배웅하고 나자, 그는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하고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오로지 경전을 가지러 올 사람을 기다리게 되었다.
불교의 緣起說에 의거하자면, 우리들 자신도 과거에 누군가를 살생했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본의와는 무관하게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식적으로 던진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를 물리적 죽음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悟淨’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인간이 끊임없이 저지를 수 있는 악업의 고리를 끊고, 개과천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張錦池는 沙悟淨의형상에 대해 다음처럼 규정했다.
孫悟空은 여정 중에 욕망을 억제하고 요괴들을 물리치며 명예를 탐했으나 이익을 탐한 적은 없다. 豬八戒는 여정 내내 이익을 탐했으나 명예를 탐하지는 않았다. 설령 聖僧인 三藏法師라 하더라도 西行에 뜻을 둔 이유는 역시 “唐 太宗의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진충보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명예도 이익도 탐하지 않고, 사심이 없이 오로지 그 직분에 충실하여 담박하고 조용했지만 西天 여행에서 오로지 正果를 이루고자 한 사람은 沙悟淨 한 명뿐이다.
같은 책, 《西遊記》: 「菩萨卽與他摩项受戒, 指沙为姓, 就姓了沙, 起箇法名, 叫做箇沙悟净. 當时入了沙门, 送菩萨过了河, 他洗心滌虑, 再不伤生, 专等取经人.」, 《西遊記》, 98쪽.
張錦池, <論沙和尙形象的演化>: 「孫悟空一路煉魔降怪, 圖名不圖利. 豬八戒一路所作所爲, 圖利不圖名. 縱然是聖僧唐三藏, 其所以矢志西行, 亦“大抵是受王恩寵, 不得不沙悟淨은 그 어떤 명예나 이익도 탐하지 않고 오로지 한 마음으로 서역으로 향했던 유일한 인물이다. 즉 여행의 목적과 순수함으로 따지면 그를 능가할 인물은 없는 것이다. 가령 불경을 구하러 떠나는 여정 가운데서 孫悟空은 자주 花果山으로의 귀향을 꿈꾸고, 豬八戒 또한 高老莊으로 돌아가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사위가 되기를 꿈꾸었으며, 심지어 三藏法師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자주 사무치곤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沙悟淨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역으로 불법을 구하러 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구도의 마음이 일행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法名이 ‘悟淨’이 된 것은 아주 적절한 배치이다. 설령 등장인물 가운데 그 역할이 미미하다고 해서 沙悟淨의 상징성이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Ⅳ. 결론
‘心’字를 가지고 《서유기》의 핵심 인물을 분석한 결과 孫悟空의 인물형상은 주로 인간의 자만심과 공명심에 대한 경계를 표상하고, 豬八戒는 食色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를 표상함을 알 수 있었다. 또 沙悟淨은 불교식으로 얘기하면, 우리 개개인은 전생의 수많은 악업과 덕업 속에서 윤회하는 존재인데, 종국에는 그 緣起의 사슬마저도 끊고 정토의 땅에서 본성을 되찾는 순수한 존재로 환원되고자 하는 의지를 표상한다.
孫悟空을 비롯한 《서유기》의 주요 인물은 사람처럼 행세하되 사람의 형상이 아니며 또 동물의 정령으로만 볼 수도 없다. ‘心’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 형상을 규정하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서 하루에도 수없이 생겨나는 욕망의 다른 모습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러한 욕망으로 인해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불행과 장애에 직면한다. 욕망이라는 마음의 작용은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커지기 때문에 그 갈증은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을 억누르고 평정한 마음으로 돌아와야 우리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사람의 길(人道)을 자연스럽게 걸 盡忠以報國耳.” 旣不爲名, 又不爲利, 心無二念, 忠於厥職, 淡泊寧靜, 但求正果西天者亦沙僧一人而已.」, 《文學遺産》, 1996년 제3기, 104쪽.
‘心’字로 분석한 《서유기》의 인물구조
어갈 수 있게 된다. 수행의 길은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성 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마음을 바로 잡고 본성을 회복하여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孫悟空이 하늘나라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것은 바로 순수한 우리 마음(天性)에 동요가 일어나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마음 상태(放心)를 의미한다. 또 석가여래가 손바닥으로 孫悟空을 진압하는 장면은 우리가 흔히 마음을 진정시킬 때(定心) 손을 가슴에 대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三藏法師, 孫悟空, 豬八戒, 沙悟淨, 白馬 일행이 서역으로 불경을 찾으러 가는 행위는 바로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떠나는 ‘求心’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 등장하는 ‘無字經’은 ‘空’을 깨닫는다는 의미로 집약된다.
三藏法師 일행이 천신만고 끝에 손에 넣은 《般若心經》의 핵심을 하나로 모으면 ‘空’이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그 이름이 가진 의미만을 놓고 보자면, 이 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주인공으로 단연 ‘孫悟空’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소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孫悟空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도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하나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心’字라는 글자를 가지고 소설 전반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면 소설 《서유기》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여행보다는 심리적 공간으로서의 ‘마음 여행’에 더욱 큰 사상적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잃어버린 인간의 본성을 찾아 떠나는 것을 주선율로 하되, 등장인물들을 마음을 잃어버린 형상으로 대체한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서사구조라고 할 수 있다.
논문을 쓰는 내내 孫悟空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에 필자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느끼는 한편 이 소설이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수련을 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경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孫悟空, 猪悟能, 沙悟淨이라는 세 인물의 法名 가운데 끝 글자를 연결하면 ‘空能淨’이 된다. 즉 세상만사가 ‘色卽是空’을 깨달으면 이 세상이 깨끗한 땅인 ‘淨土’로 변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참된 인간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參考文獻】
루쉰 저, 조관희 역주 《중국소설사》, 소명출판, 2004.
틱낫한 지음, 강옥구 옮김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도서출판 장경각, 2016.
이시찬 <소설 《서유기》 형성과정 연구>, 《人文科學論集》 第53輯,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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