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옥도령 보옥이 아버지 가정에게 매를 맞은 원인은 어디에 있나?

一字師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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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도령 보옥이 아버지 가정에게 매를 맞은 원인은 어디에 있나?

 

 

 

왕부인王夫人의 하녀 금천아金釧兒가 보옥寶玉과 농담을 하다가, 왕부인에게 쫓겨나 우물에 투신하여 죽자, 가보옥은 정신적으로 대단히 자극을 받는다.

 

말할 수 없이 양심에 가책을 느낀 보옥은 근심이 얼굴에 가득하여, 가우촌賈雨村을 만났을 때도 이전처럼 말쑥하고 멋스러운 기개가 전혀 없었다.

 

바로 그러고 있을 때에, 충순친왕부忠顺亲王府의 장사관長史官이 가정賈政을 찾아와 기관琪官의 에 대한 대질을 거쳐, 가보옥과 장옥함蔣玉菡이 모종의 관계를 확인하려 찾아 왔다. 충순친왕부 장사관을 전송하고 돌아오는 아버지 가정을 본 가환賈環이 보옥이 강간 미수로 금천아를 죽게 했다고 모함했다. 노기충천한 가정은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터지도록 가보옥을 때렸는데, 할머니 가모賈母를 비롯하여 가부賈府의 온 집안사람을 놀랐다.

 

홍루몽33회 회목回目, 가보옥을 여러 가지로 불초를 저지르다”(不肖种种)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래서 보옥이 저지른 잘못을 다 합해서 더 심하게 때리게 된 것이다. 그 불초한 행위는 모두 어떤 것들인가?

 

가정의 마음속에는 보옥이 돌잔치에서 돌잡이 물건을 집어 들 때부터 아들 보옥에게 호감이 안 가기 시작했다. 놓여 있는 많은 물건 중에서 하필이면 보옥은 여자의 화장품과 장신구만 집어서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옥은 커서는 공부를 싫어하고, 통속적이고 선정적인 사부詞賦만 좋아하며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보옥이 불초하게 된 것과 관련하여 집안에 있는 원인으로 말한다면, 형제들이 호시탐탐 보옥의 언행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일찍부터 알던 일이고, 가보옥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환은 확실하게 불난데 부채질을 하여, 가정의 화를 더 크게 돋우게 만들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에, 왕부인은 가환이 이 일에 민감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설이마薛姨媽와 설보채薛寶釵는 설반薛蟠이 그랬다고 했는데, 당연히 지나친 추측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만 그 원인은 설반이 못된 악행을 상당히 많이 해왔기에, 쉽게 사람들의 의심을 사게 된 것이다. 실제상으로, 이번에 가보옥이 매를 맞은 것은, 설반과는 무관했다. 이점은 가보옥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한 층 더 깊이 말하자면, 가보옥이 맞은 것은, 기관 때문이었다. 기관은 충순친왕을 모시는 사람으로 연극배우이다. 왕부인은 방관芳官, “연극하는 계집애들은 말할 것도 없이 여우들이다라고 말했다. 기관은 남자 예인藝人으로, 상식적으로 추리해 보면, 그런 평가를 받을만한 배우들이 적지는 않다.

 

가보옥과 같은 신분으로 이런 사람들과 왕래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스스로 자신을 멸시하고 천대하는 것이 된다. 밖에서는 배우와 다니고, 집에서는 학업을 소홀히 한 것 등으로 보옥이 매 맞은 원인이라고 말하면, 사리에 모두 맞다.

 

기실, 가보옥이 매를 맞은 가장 정확한 원인은, 가정은 아들 보옥이 한 행위로 인해 가부에 화근을 가져올까봐 걱정해서이다.

 

가부賈府는 개국開國으로 봉공封公된 가문의 하나인데, 많은 왕족과 제후 가문들과 모두 교제를 하고 있다. 가부는 조정에서의 지위도 특별하여, 특히 가정의 딸이 원비元妃에서 현덕비賢德妃로 승진하고 나서는, 더욱 금상첨화가 되고, 범의 등에 날개를 단듯하였다. 그런데, 가부와 충순친왕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작품에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충순친왕부의 장사관이 영국부에서의 묘사를 다시 한 번 보자. 부리는 사람이 와서 충순친왕부의 어떤 분이 오셔서 나리를 뵙겠다고 합니다라고 아뢸 때, 가정의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시작되었는데, “평소에 충순부와 내왕이 없었는데, 어째서 오늘 사람을 보내왔을까?”라고 말 이것이 가정의 반응이었다.

 

장사관은 총리부總理府 내에서 사무를 보는 관원이다. 그는 왕명을 받들고 왔으므로, 가정을 안중에도 안 두며 인사도 마치기도 전에,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며 기관을 돌아오게 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일에 가정은 역력하게 두려워하여, “극악무도한 일이고, “오늘 나에게 화가 미치는구나라고 말하며, 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이지러졌던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해봐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장사관이 영국부에 온 것은 기관을 찾으러 온 것인데, 그래도 눈치를 살펴야 할까? 장사관은 보옥이 붉은 땀수건까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미 그 속사정을 모두 알게 되었을 것인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기관은 이미 찾아서 돌아갔는데, 그가 이일로 핍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 또 하나는 충순부에서 기관을 어떻게 처리할 지인데, 그러나 남의 이목이 있으니 가부의 사정을 좀 알아야 했을 것이다. 앞의 사정은, 당연히 대단할 것은 없는 셈이고, 만약에 후자라면, 그렇다면 충순왕부는 항상 가부의 거동을 주시해 왔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서로 연관 지어서 불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고, 또 집안 문제에 권력을 써서 간섭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정은 독한 마음으로, 이왕에 아들 보옥을 죽을 만큼 때릴 바에는, 더욱 흠씬 때려서, “장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우환을 없애려고했던 것이다.

 

가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운수가 이미 다 하여서, 이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터인데,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므로, 사람의 노력으로는 면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설사 가보옥을 때려서 죽인다고 하여도, 우환은 장래에 똑같이 존재하고 발생할 것이었다.

 

어떤 문제에 이르러 가부의 비참한 결말을 일으킬 지는, 아마도 원인은 여러 가지 종류와 모양으로 나타날 터이지만, 그러나 충순친왕부와의 관계는 그중에서 최고로 중요한 원인이 될 것이다.

 

가부가 충순친왕과 역사상으로 무슨 갈등이 있었는 지를 탐구하고 토론할 필요는 없으며, 이것은 조설근曹雪芹의 미완성 소설 홍루몽紅樓夢후반에서 본래 설명되어야 할 것임은 의심할 바가 없다.

 

보옥이 매를 맞은 것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동시에 하나의 수수께끼도 남겨 주는데, 이 요소가 가부에 더욱 심각한 우환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폭진천물暴殄天物(함부로 낭비하다/(자연계 생물을) 멸종시키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探春因又接着說道: “們這園子只算比他們的多一半, 加一培算, 一年就有四百銀子的利息. 若此時也出脫生發銀子, 自然小器, 不是們這樣人家的事. 若派出兩个一定的人來, 旣有許多値錢之物, 一味任人作踐, 也似乎暴殄天物.” (第五十六回)

 

[해석문]

탐춘探春이 이어서 또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의 저 대관원大觀院 정원은 그네들에 비하면 많아서 아마 두 배는 될 거예요. 그러면 일 년에 사백 냥의 이윤은 될 것인데, 만약 지금 남에게 주어 돈벌이를 한다면 우리 같은 대갓집으로서는 옹졸한 일이 될 것이니까요. 가령 두 사람 정도 보내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관리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그냥 놔두면 천혜의 보물을 썩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명언고사]

설날이 지나간 뒤에, 왕희봉王熙鳳은 과로로 그만 유산이 되고 말았는데, 왕부인王夫人은 셋째 아가씨 탐춘探春에게 집안 살림을 협조하여 처리하게 했다.

 

탐춘은 영국부榮國府의 생활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생각하여, 이로운 것들은 더 일으키고 폐단은 제거하는 큰일을 해보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영국부의 총관總管 뢰대가賴大家가 그녀들을 식사에 초대했는데, 탐춘은 뢰대의 소화원小花園 안에 많은 채소와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봤다. 파하破荷 잎사귀나 고초枯草 뿌리는 돈이 될 만한 것이어서, 매년 몇 백 량의 은자 수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환李紈과 보채寶釵, 그리고 평아平兒도 참여하여 함께 대관원에 이익이 될 만한 일과 폐단에 대해 상의했다.

 

가슴속에 계획을 품은 탐춘이 얘기를 꺼냈다.

우리의 저 대관원大觀院 정원은 그네들에 비하면 많아서 아마 두 배는 될 거예요. 그러면 일 년에 사백 냥의 이윤은 될 것인데, 만약 지금 남에게 주어 돈벌이를 한다면 우리 같은 대갓집으로서는 옹졸한 일이 될 것이니까요. 가령 두 사람 정도 보내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관리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그냥 놔두면 천혜의 보물을 썩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차라리 대관원 안에서 일하는 할멈 중에서 성실하고 원예에 대해서 좀 아는 이를 몇 사람 골라서 그들에게 맡기는 게 나을 거예요. 그렇지만 도지세를 일정하게 내게 할 필요는 없고, 그저 일 년에 성의나 좀 표시할 수 있게 하면 될 거예요. 첫째는 정원에 전문 관리자가 있게 되니, 자연히 화초나 나무는 시간이 가면 더 잘 가꿔져서, 두서없이 그러지는 않을 것예요. 둘째는 함부로 짓밟아서 못쓰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고요. 셋째는 할멈들도 이것으로 약간 보탬이 될 것이니, 대관원 안에서 일 년 내내 고생하는 것이 헛되지 않을 것이에요. 넷째는 화초를 가꾸거나 정원의 산을 가꾸는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나 청소에 드는 비용도 절감될 것이잖아요. 그 남은 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할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이죠!”

 

보채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감상하고 있다가, 탐춘의 조리정연한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계획이네! 삼 년 내로 배를 곪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겠네요!”

 

홍루몽이야기

보옥寶玉이 주운 금기린金麒麟은 어떤 우의寓意일까?

 

조설근曹雪芹이 창작한 소설 홍루몽紅樓夢29회에서, 가모賈母는 보옥寶玉 등을 데리고 청허관淸虛觀에서 손녀딸 원춘元春을 위하여 3 일간 기도를 올린다. 청허관의 장도사张道士는 가보옥의 통령보옥通靈寶玉을 가져가 제자 도사들과 그 제자의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빙자하여 수십 개가 넘는 법기法器를 거둬들이는데, 그것들은 도사들이 축하드리려고 가져온 물건들이었다.

 

그중에는 금에다가 비취 새의 깃을 넣어 세공한 기린麒麟이 있었는데, 가모와 가보옥의 주의를 끌었다. 가모는 마치 뉘 집 자식이 이런 물건을 차고 있는 지를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보채寶釵가 가모에게, “사상운史湘雲이 하나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가보옥은 사상운이 이런 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옷 안에 금기린을 간직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따지지 않았지만, 유독 임대옥林黛玉만이 가보옥의 이 거동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이 금기린은 통령보옥으로 해서 생긴 것이어서, 청허관에서 기도를 올린 뒤로 임대옥은 마음의 병이 들었다. 그녀는 전설 야사를 통해, 대개 재자가인들이 작은 완물玩物로 인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옥은 가보옥과 사상운도 그와 같은 연애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느 날, 사상운은 습인襲人 등에게 진홍색 무늬의 반지를 선물을 보내고, 일부러 동태를 살피러 왔다. 이 일은 임대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실제로는 공연한 걱정이었지만, 아마도 금기린을 금옥론”(金玉之論)과 관련지어 결혼의 인연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가보옥이 옷 속에 간직했던 금기린을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대관원大觀院 안에 떨어져 있던 것을 사상운의 하녀 취루翠縷가 주었다. 사상운이 달라고 하여서 보니, 자기가 차고 다니던 것보다 더 크고 화려했다. 사상운은 진중하고 조용하게,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는, 다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취루가 금기린을 주웠을 때에, 바로 주인과 노비 두 사람이 음양陰陽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던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홍원에 온 가보옥은 사상운에게 금기린을 보여주려고 할 때에야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가보옥은 금기린을 잃어버린 것이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아 대단히 심각하게, “도장을 잃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이걸 잃어버리니 나는 죽고만 싶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잃어버린 기린과의 관계가 적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보옥은 금기린을 왜 그렇게 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사상운은 왜 묵묵부답이었을까?

 

사상운이 영국부榮國府에 왔을 때, 습인이 그녀에게 아가씨. 요전에 혼담이 있으셨다면서요?”라고 질문한 것을 보면, 사상운에게 이미 혼담이 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상운은 얼굴만 붉힌 채 차를 마시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바로 말없이 인정했던 것이다.

 

경진본庚辰本의 제 31회에서 지연재脂硯齋, “(소설의)수십 회 뒤에 위약란衛若蘭이 화원에서 기린을 차고 다니다가 떨어뜨리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그 기린일 것이다. 대강 이 회에 매복되어 있는 것은, 소위 말하는 대단히 먼 곳에 뱀이 풀숲을 지나간 회색선이다라고 비어批語를 달았다.

 

지연재는 비어에서, 가보옥의 이 기린은 위약란衛若蘭에게로 돌아왔다고 말하고 있다. 이 회의 회목回目기린에는 백발의 쌍별이 숨어 있기 때문에”(因麒麟伏白首双星)라고 한 것은, 은밀하게 함축된 뜻을 가지고 있어, 마치 사상운과 위약란의 관계를 빗대고 있는 듯하다.

 

태허환경太虛幻境박명사薄命司정책正冊에 근거하면, 사상운의 판결문은 이러하다.

富贵又何为 (부귀한데 어찌하여)

襁褓之间父母违 (강보에 싸인 채 부모를 잃었네)

转眼吊斜晖 (순식간에 저녁 해가 걸렸으니)

湘江水逝楚云飞 (상강湘江에 고초를 날려 보내네)

 

끝의 한 마디에 상운湘雲두 자를 숨겨 놓았던 것인데, 뒤의 두 마디는 좋은 시절이 매우 빨리지나가 버리고 만 것을 비유한 것이다.

 

홍루몽의 가락 락중비樂中悲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廝配得才貌仙郞 (서로 잘 어울리는 재주와 외모를 가진 훌륭한 낭군을 만나)

博得个地久天長 (둘이 함께 백년해로 살아가리)

.........

終久是雲散高唐 (결국에는 사랑은 흩어지고)

水涸湘江 (상강에는 강물이 말라버렸네)

 

이런 내용은 사상운에게 마음에 맞는 남편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녀도 인연이 아름답고 원만하기를 바라며, 유년시절에 불우했던 형상을 바꿔지기를 희망한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로 사정은 염원을 따라주지 않아, 사상운은 백발이 되도록 해로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다. “백발의 쌍별백수쌍성(白首雙星)”은 두 사람의 노인을 가리키는데, “사랑을 흩어지게 하고, 상강은 말라버리게”(雲散高唐,水涸湘江)한다는 두 노인을 말한다.

 

다른 견해로는, “쌍성은 견우와 직녀성을 가리킨다는 것인데, 사상운의 혼인이 마치 견우와 직녀성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 사상운의 운명은 유년시절에도 불우할 뿐만 아니라, 일생 전체가 비참했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공견축배拱肩縮背(어깨를 웅크리고 등을 굽히다/몸을 움츠린 모양)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平兒笑道, “你那這猩猩. 把這件順手那將出來, 叫人給邢大姑娘送去. 昨兒那麽大雪, 人人都是有的, 不是猩猩就是羽緞羽紗的, 十來件大紅衣裳, 映着大雪好不齊整. 就只他穿着那件舊毡斗蓬, 越發顯的拱肩縮背, 好不可怜見的. 如今把這件給他罷.” (第五十一回)

 

[해석문]

평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는 붉은색 털외투를 가져가. 이것은 마침 손에 잡히기에 같이 가지고 나온 건데, 형수연邢岫烟 아가씨한테 보내도록 해. 어제 그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씨에 다른 사람들은 다 붉은 털외투나 우단羽緞 아니면 우사로 된 것을 입었는데, 열 벌 가까이 되는 붉은 옷이 눈빛에 비치니 대단히 잘 어울렸어. 그런데 수연 아가씨만 오래된 털 망토를 걸쳤는데, 몸을 구부정하게 움츠린 모습이 어찌나 안 되어 보이던지. 이 옷은 아가씨에게 드리도록 해.”

 

[명언고사]

습인襲人의 본명은 화예주花蕊珠인데, 집안이 빈한하여 가부賈府에 하녀로 팔려왔다. 그녀는 처음에는 가모賈母의 시중을 들었는데, 나중에는 사상운史湘雲의 시중을 들었다.

 

가모는 보옥寶玉이가 하녀 때문에 혹시라도 불편한 데가 있을까봐, 또 그녀를 보옥에게 주었는데, 보옥은 그녀의 이름을 습인으로 개명했다.

 

습인의 모친의 병이 위중하자, 그녀의 오라비 화자방花自芳이 가부에 와서 습인을 집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왕부인王夫人은 왕희봉王熙鳳에게 상황을 잘 참작하여 조치하라고 했다.

 

왕희봉은 평아에게 분부하여 석청색 비단바탕에 금실로 여덟 개의 둥근 도안을 수놓은 천마피天馬皮(사막여우의 가죽) 가죽으로 만든 저고리를 꺼내 습인에게 보내라고 했다.

 

습인의 옷 보따리를 보니 고작 검은 먹물을 뿌린 무늬의 명주에 연붉은 비단으로 안감을 댄 것이 있고, 그 안에는 평소에 입던 솜저고리와 가죽 적삼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왕희봉은 곧 평아에게 일러서 옥색비단을 안감으로 댄 견직물 보자기를 가져오게 하고, 또 눈 올 때 입는 마고자를 한 벌 싸라고 했다.

 

평아는 들어가더니 두 가지를 가지고 나왔는데, 하나는 붉은 털외투이고, 또 하나는 붉은 우사羽紗로 만든 저고리였다.

 

습인이, “하나만 해도 과분한 걸요하고 말하자, 평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는 붉은색 털외투를 가져가. 이것은 마침 손에 잡히기에 같이 가지고 나온 건데, 형수연 아가씨한테 보내도록 해. 어제 그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씨에 다른 사람들은 다 붉은 털외투나 우단羽緞 아니면 우사로 된 것을 입었는데, 열 벌 가까이 되는 붉은 옷이 눈빛에 비치니 대단히 잘 어울렸어. 그런데 수연 아가씨만 오래된 털 망토를 걸쳤는데, 몸을 구부정하게 움츠린 모습이 어찌나 안 되어 보이던지. 이 옷은 아가씨에게 드리도록 해.”

 

왕희봉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물건인데, 쟤가 마음대로 남에게 주고 있네. 나 혼자 내다 주는 것도 아직 모자라서, 너까지 끼어들다니, 잘하는 짓이구나!”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이와전와以訛傳訛(헛소문이 꼬리를 물고 번져 가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李紈又道, “況且他原是到過這个地方的. 這兩件事雖無考, 古往今來, 以訛傳訛, 好事者竟故意的弄出這古迹來以愚人. 比如那年上京的時節, 單是關夫子的墳倒見了三四處. 關夫子一生事業皆是有据的, 如何又有許多的墳? 自然是後來人敬愛他生前爲人, 只怕從這敬愛上穿鑿出來, 也是有的.” (第五十一回)

 

[해석문]

이환이 또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이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얘기는 와전되어 근거가 없는 것인데도, 호사가들은 일부러 이런 유적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도성으로 올라오면서 보니까 관부자(關羽)의 묘만 하더라도 서너 군데나 되더군요. 관우의 일생의 사적은 그 사적이 뚜렷한 근거가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묘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요? 그건 모두 후세 사람들이 관우의 생전의 사람됨을 존경하고 사모하여서 자연히 그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51)

 

[명언고사]

보금寶琴은 설이마薛姨媽의 조카딸로 설과薛蝌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상당한 미모를 지녔는데, 가모賈母 등이 그녀를 대단히 좋아했다.

 

보금의 부친은 황상皇商이어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다닌 곳이 많고, 그녀는 또 천성적으로 영민하여 지식이 있고 시를 잘 지었는데, 대관원大觀院에 온 뒤에 각 성의 고적古迹을 제목을 제목으로 하여 회고절구십수懷古絶句十首를 지었다. 사람들은 이 십수十首의 시를 보고 모두 정말로 참신하고 절묘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그 중에 한 수 포동사회고蒲東寺懷古를 쓴 것이 있다

小紅骨賤最身輕(홍낭은 비천하지만 민첩하게 행동하여)

私掖偸携强撮成(살며시 두 손을 끌어 만나게 만들었네)

雖被夫人時弔起(부인에게 들켜서 혼찌검이 났지만)

已經句引彼同行(이미 어느새 깊은 인연이 맺어졌네)

 

매화관회고梅花觀懷古를 쓴 것이 있다

不在梅邊在柳邊(매화 곁에 있어도 버들 옆에 있어도)

个中誰拾畵嬋娟(그 속에서 예쁜 모습 거둘 것이네)

團圓莫憶春香到(님과의 만남에 봄의 향기 잊게 되니)

一別西風又一年(서풍에 이별한지 또 일 년이 되었네)

 

모두들 보고서 기묘하다고 칭찬했다. 보채寶釵가 먼저 말했다.

나머지 여덟 수도 모두 역사에 귀감이 되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인데, 이 두 수는 근거할 고증이 없으니, 우리도 제대로 잘 알 수는 없으니, 차라리 두 수를 더 짓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대옥黛玉은 이 두 수가 비록 역사에 귀감이 되는 근거는 없으나, 이미 널리 전해지고 있으니 다시 새로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탐춘探春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했다. 이환李紈이 또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이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얘기는 와전되어 근거가 없는 것인데도, 호사가들은 일부러 이런 유적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도성으로 올라오면서 보니까 관부자(關羽)의 묘만 하더라도 서너 군데나 되더군요. 관우의 일생의 사적은 그 사적이 뚜렷한 근거가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묘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요? 그건 모두 후세 사람들이 관우의 생전의 사람됨을 존경하고 사모하여서 자연히 그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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