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중국 명나라 때 장편소설 금병매金甁梅

一字師 2023.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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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때 장편소설 금병매金甁梅

 

 

중국 명 나라 때(13681644)의 장편소설로 전편 100회로 되어 있다. 작자에 관하여 왕세정이 지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결국 확실한 것은 미상이다.

 

다만 글 속에 산둥(山東) 사투리가 씌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산둥 사람이 지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15681582년 무렵 기고하고, 16021626년 무렵 탈고, 1610년 무렵 쑤저우(蘇州)]에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은 송나라로 하고 있지만 사실 명나라 말의 암울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루쉰은 동시대에 나온 작품들 중 금병매를 따를 작품이 없다는 말로 금병매를 평가하기도 했다.

내용은 서문경과 그의 6명의 부인에 대해 쓴 성담론에 관한 대담한 일대기이다. <수호전>2425회에 나오는 서문경과 반금련의 이야기에서 확대생산하여 전개된다. 문제의 불량배 서문경이 주인공이다. 인간의 욕망덩어리 같은 이 인물이 집에서는 많은 여자들과 향락을 일삼고, 밖에 나가서는 시정잡배의 보스 노릇을 하여 관계에까지 들어가 무뢰한들과 패를 지어 유락에 빠진다. 그는 악랄한 수법으로 돈을 모으고 주변인들을 괴롭히는 등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이후 서문경은 음락의 도를 넘어 급사하므로, 처첩들은 비참한 운명에 빠지고, 그 자식들은 출가하여 중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시대는 북송의 휘종 임금의 치세 1113년에서부터 시작되어 1126년 금 나라의 침입으로 끝난다.

 

<수호전>의 서문경과 반금련의 정사에 이야기를 보태어 명대 사회의 상류층과 관료, 그리고 무뢰한의 어둡고 추악한 작태를 폭로한 소설이다. 책 이름은 주인공 서문경의 첩 반금련이병아(李甁兒), 그리고 반금련의 시녀 춘매(春梅)에서 한 글자씩 땄다. , 에로틱한 장면을 삭제한 <진본금병매(眞本金甁梅)>도 있다. 중국에 등장한 최초의 사실적인 사회소설로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칭허현(淸河縣) 현청의 문 앞에서 생약상을 경영하는 불량배 서문경은 악질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관리와 결탁하여 그 지역의 실력자로 올라선다.

 

많은 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추남인 만두장수 무대의 처 반금련과 밀통하고 남편을 독살하게 하고 그녀를 첩으로 삼는다. 무대의 아우 무송은 형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 다른 사람을 살해하여 유죄1(流罪)에 처해진다.

 

서문경은 다시 친구의 처 이병아를 첩으로 만들고 그 재산을 빼앗는다. 이윽고, 이병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금련에게 구박을 받다가 어린 나이에 죽고, 이병아도 죽는다. 서문경은 음탕한 생활 끝에 급사한다. 금련은 쫓겨나고 마침내 무송에게 살해된다. 서문경의 처 오월랑은 금 나라 군대의 침입을 피해 절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인과응보의 이치를 깨닫고, 유복자 효가는 출가한다.

 

작자는 무대를 칭하현, 그것도 주로 서문경의 저택 내로 설정하여 서문가의 흥망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작자의 목적은 동 시대의 사회와 인물을 그리는 데 있으며, 작중의 인물은 서문경과 그의 가족하인하녀를 비롯하여 서문경 집을 출입하는 크고 작은 벼슬아치군인학자환관장사꾼중개업자점쟁이의사산파도사승려기생광대뚜쟁이 등 온갖 계층의 사람이 다 망라되어 있다.

 

작자는 이러한 서문가를 그려냄으로써 이 고을, 더 넓게는 중국의 축도를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동 시대의 사회와 인간을 그린 소설로 종래에 단편은 있었으나, 장편으로서는 <금병매>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런 뜻에서 이 작품은 중국문학사의 한 시기를 그은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 봉건시대의 부패한 사회상을 잘 나타내고 있으나 비판정신은 약하다. 인물의 성격묘사에 뛰어났으며, 뒤에 나온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이 소설의 전편에서는 가정 말만력 중기의 부패한 사회상과 어린 여자아이를 매매하는 밑바닥 서민생활을 폭로하여, 명대의 도시상업자본의 발전 양상과 시민계급의 의식형태가 반영되어 있다. 정밀한 묘사와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많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묘파한 수법은, 뒤에 나온 장편소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냉혹함과 절망이 전편에 넘쳐흐르고 봉건사회의 죄악상이 대담하게 폭로되고 있으나, 비판정신은 희박하며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의 묘사가 많다.

 

이 소설은 성욕 묘사에 있어서 적나라한 것은 더욱 유명하며, 그 때문에 음서(淫書)라고 하여 자주 발매금지되었다. 당시의 사회 사정이나 가정생활의 세부에까지 걸쳐서 정밀하고, 무서울 정도로 당시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한 면에 있어서는 전편의 구성도 조금도 빈틈이 없다. 다만, 무대가 산동(山東) 지방인 까닭에 그 지방 방언이 많이 섞여 난해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중평이다.

 

이 소설은 민간전설이나 역사적 사건에서 유래하지 않은 첫 번째 중국소설로, 부유한 상인 서문경 가문의 일대기를 자연주의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

 

<금병매>는 서문경의 난잡한 성생활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많은 독자들에게 외설로 여겨져 배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적인 부분들은 쾌락의 덧없음을 나타내려는 작가의 도덕적 의도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여기는 견해도 있다.

 

보통 <제일기서(第一奇書)>라고 하는 판본은 청 나라 시대 초(17세기 후반)의 장죽파가 평어를 붙여서 출판한 것이다. <속 금병매><격렴화영>은 모두 후세 사람의 속작이며, <훙루몽>도 이의 영향을 받았다.

 

서문경.반금련과 변강쇠.옹녀

 

중국 명나라 때 섹스소설 금병매(金甁梅)’의 여주인공 반금련(潘金蓮)은 요부 중의 요부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자신의 색욕을 채우고자 남편인 무대(武大)를 살해하고 돈 많은 서문경(西門慶)의 다섯 째 첩으로 들어가, 갖은 음욕을 만끽한다.

 

서문경도 식욕.색욕.권욕.명예욕을 충족시키는 데 수단을 가리지 않고 법과 도덕을 유린하며 욕심을 충족시킨다.

 

그러나 서문경은 반금련이 먹인 강력한 음약 때문에 죽고 반금련도 그녀가 죽인 남편의 동생 무공에 의해 참살 당한다.

 

금병매는 그 외설스러움으로 인해 근대에 이르기까지 금서가 돼 왔다.

 

이 책이 1980년대에 이르러 공산당 정권에 의해 달리 평가된다.

요부 반금련은 고루한 전통에 얽매이기를 거부한 선각자요, 봉건주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 여성 해방을 부르짖은 혁명가로 부각시킨 것이다.

중국공산당 정권 창립 후 마오쩌둥에 의해 여성들은 셔츠 윗단추 하나 풀고 다녀도 외설로 지탄을 받았는데, 이제 반금련이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현재에 이르러 중국에서 가사와 육아의 일이 남편의 몫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21세기 중국은 섹스산업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매매춘이 금기시됐으나 이제는 전국으로 매매춘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언론은 이런 섹스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황써냥쯔쥔(黃色娘子軍)’이란 그럴 듯한 이름으로 부르면서도 여간 곤혹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이 황써냥쯔쥔이 3000만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사회에서 가장 큰 국가의 골칫거리를 뜻하는 용어인 황두두(黃毒賭)’는 다름 아닌 매춘.마약.도박을 말한다.

황써냥쯔쥔 가운데도 춤추고, 노래하고, 술마실 때까지만 동석하는샨페이샤오제(三陪小姐)’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이른바 4번째 접대인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쓰페어(四陪)샤오제가 많아져 문제라는 것이다.

 

일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우리나라 전통소설 변강쇠전이 새롭게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허허웃음이 나왔다. 천하의 잡놈 변강쇠와 잡년 옹녀를 재평가한다니 세상이 변해도 상당히 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일종의 변강쇠 신드롬과 옹녀 신드롬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변강쇠와 옹녀가 남성과 여성의 상징 대상이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정력이 절륜해 나쁠 것 없고 색깔이 있어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칫 우리 사회의 척도를 왜곡 전도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29강 최용철 고려대 교수의 「『홍루몽과 변혁의 중국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2017년 강연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이 강연 4섹션 문학영역으로 이동했다.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강연은 34강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가능케 한 역사적 인물 혹은 작품을 선정해 혁신적 사유를 조명해보는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네 번째 강연 시리즈다. 두 번째 문학강연을 맡은 최용철 고려대 교수(중어중문학과)의 제29「『홍루몽과 변혁의 중국발표문 일부를 요약 발췌했다.

 

홍루몽은 어떤 책인가. 무엇을 노래하고 어떤 사람을 그려낸 책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여성을 그리고 노래하는 책이다. 그들의 사랑과 꿈을 노래했다. 홍루몽보다 앞서 나온 수호전이나 금병매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또한 결말을 더욱 비참하게 묘사했다. 등장하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남성을 유혹해 대사를 그르치도록 하고 남성의 앞길을 막는 음란하고 악독한 여자로만 그려내고 있다. 반금련이 무송을 살인자로 만들고, 염파석이 송강을 살인자로 만들어 결국 양산박으로 입산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서문경의 포악한 행동이나 재물을 후리는 모리배적인 성격도 물론 문제이지만 반금련과 이병아와 춘매는 모두 음란한 악녀의 대표들이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전통 사상의 좁은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상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 중에는 나라를 망치고 남자를 패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 많다. 달기와 포사는 은나라와 서주를 망하게 했고 우희는 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을 허망하게 무너지게 했다고 기록했다. 나라가 망하고 영웅이 패한 것을 한 여성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미인박명의 여성관

그러나 홍루몽에서의 여성관은 달랐다. 여성은 거칠고 험악한 남성 사회에서 핍박받는 희생자라는 것이다. 미인은 박명이라는 입장에서 무한한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아름답고 재주있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 작자는 노골적으로 천명했다. 규중에서 진솔한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재주와 덕성을 밝혀내겠다는 것이었다. 조설근의 경험이 십분 발휘된 듯 하지만 기본으로 여성의 才德에 대한 최대한의 긍정과 칭송이었다.

홍루몽갑술본범례에서 이 책의 이름이 많지만 홍루몽이 그 총체적인 이름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러하다. ‘홍루의 꿈으로 번역되는 그 이름은 과연 이 소설의 방대한 내용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제목으로 적절하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고대광실의 집을 홍루라고 할 수 있고 또 귀족 여성들이 살고 있는 규중의 방을 홍루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부귀영화의 여성의 삶이 모두 허망한 꿈으로 스러지고 만다는 의미는 전체 작품의 표제로 내세울 만할 것이다. 홍루몽5회에 가보옥이 꿈꾸는 태허환경 속에서 경환선녀는 가보옥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선녀들로 하여금 홍루몽십이곡을 연주해 들려준다. 바로 이 대목이 홍루몽의 제목을 유추하는 결정적인 대목이 될 것이다. 영어 제목으로 서양에서는 주로 ‘The Dream of the Red Chamber’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홍루의 실질적 의미가 작은 누각이 아니라 거대한 저택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A Dream of Red Mansions’라고 번역하고 있다.

20세기 현대사에서 홍루몽은 중국 문화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신문학 운동의 기수인 호적의 홍루몽고증이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신중국에서 홍루몽은 정치 운동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신중국 성립 직전에 북경대 총장으로 있던 호적이 대륙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을 하자 대륙에서는 호적 비판 운동이 전개됐다. 당시 모택동의 신중국이 성립됐지만 지식인 계층에는 여전히 호적으로부터 받은 자유주의 학술 사상의 영향이 지대한 상황이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새로운 사회주의 신중국의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호적의 사상과 학술을 철저히 부정하고자 운동을 일으켰다.

 

정치 사건으로 변질된 홍학 연구

1954년의 홍루몽연구사건은 홍학사에서는 물론 중국 인문학 사상 정치의 학술 간섭과 학술 연구의 정치경향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모택동의 의도는 분명했다. 5·4 운동은 전통적인 고전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운동이었지만 보수적 권위를 말살하고 새로운 세대의 자유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문화 운동이었다. 호적과 노신이 바로 그 기수였다. 그중에서 호적은 미국의 정치 체제와 민주 제도를 신봉하면서 중국의 학술과 문화의 새로운 혁신에 30여 년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제 모택동은 사회주의 신중국의 건설에 있어서 호적의 사상을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겼다. 그는 청년 학자의 연구 논문을 이용해 호적의 학술사항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는 유평백을 비판하게 했으며 이어서 본격적으로 호적의 사상과 문화의 흔적을 지우려는 목표를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홍루몽은 바로 가장 상징적인 고전문학 작품이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중국은 대대적인 고전 비판 운동을 시작했다. 예를 들면 사대명저에 대해 각각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삼국지연의에 나타나는 권모술수와 사기성 농후한 전술에 대한 비판, 수호전에 나타나는 불법과 부정을 자행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투항주의에 대한 비판, 서유기의 불교나 도교의 황당한 신들에 대한 비판, 홍루몽에서 나오는 가족 간의 불륜과 음행에 대한 비판 등을 들 수 있다. 본래 사대기서의 하나인 금병매는 제외되고 홍루몽을 넣어 사대명저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말하면 당시 대부분의 고전 명저들이 금서가 된 마당에 모택동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홍루몽만은 액운을 면하고 널리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모택동은 가보옥이나 임대옥과 같은 인물을 좋은 인물 계열로 보고 가모와 가정, 왕희봉과 같은 인물을 나쁜 인물의 계파를 보면서 가보옥을 중국 역사상 제일의 혁명가라고까지 칭송했다.

 

모택동이 홍루몽을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는 말은 후에 許世友와의 대화에서도 나온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중국인들은 물론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홍루몽의 성가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소설을 보는 관점은 정치적 왜곡을 거쳐 순수문학과 학술에 대한 정치적 간섭의 나쁜 선례를 남겨 오랜 악영향을 끼치게 됐다.

 

상술에 짓밟히는 순정한 감성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기가 도래하자 마침내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학술계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돼 연구소가 설립되고 학회가 결성됐다. 특히 중국예술연구원에 조설근과 홍루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홍루몽연구소가 설립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79년 설립된 본 연구소는 본래 문화부 산하 홍루몽 校注 小組였다. 본래 맡아왔던 홍루몽의 교주 작업은 경진본(庚辰本)을 저본으로 해 신교주본으로 완성돼 1982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간행됐다. 일찍이 1927년 호적의 추천으로 시작된 정을본저본의 교감본 시대를 50여 년 만에 마감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소에서는 또 수많은 전문가를 동원해 홍루몽대사전을 편찬했다. 기존에 일부 사전류 편찬이 있었지만 종합적이고 가장 방대한 전문 사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본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사업의 하나는 전문 학술지 홍루몽학간을 정기 발행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간으로, 근년에는 격월간으로 나오는데 중국 최고의 홍학 연구의 권위를 갖고 있으며 오늘날 여전히 홍학 연구의 붐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중국 문화의 재현 붐에 힘입어 홍루몽을 이용한 다양한 돈벌이가 한창이다. 우리가 생각하면 너무나 놀라울 만큼의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문화의 이름 아래 돈을 향한 현대인들의 저속한 집념이 뜻있는 많은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고전 문화를 활성화시킨다는 미명을 버젓이 내세우는 문화 상인들의 상술에 가보옥과 임대옥의 순정한 감성이 여지없이 짓밟히는 듯싶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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