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인도 구법 여행기 속에 중생의 성불 과정 담아낸 서유기를 통한 불교사상의 이해

一字師 2023.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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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구법 여행기 속에 중생의 성불 과정 담아낸 서유기를 통한 불교사상의 이해

 

 

: 묵향

불교는 너무 관념적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 자연적인 현상과 우주적인 현상까지 파고들어 윤회와 환생, 그리고 우주력에 이르기 까지 먹고사는 문제와 생산력, 생산관계와는 전혀 다른 별천지의 세계다. 사상자체의 깊이도 일반 범인이 접근하기 어려워 우상화되고 미신화 되기 십상이다.

 

마음을 이해하고 다스려 인간화하고 그 생명사상이 미물에게 까지 미치는 자연주의적 생명사상의 정수이자 인간만의 이기적인 모습이 아닌 만물은 하나다는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실천하는 미래적인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하기에는 많은 부조리한 부문이 존재한다.

 

서유기는 인간을 위하면서도 인간자체를 너무 하잘 것 없는 부문으로 묘사하고 신들과 요괴들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묘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서유기를 통한 가르침은 각자의 욕망과 개성에서 오는 난관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는 다섯가지 힘을 주인공들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믿음(신)과 정진, 계율, 선정, 지혜를 삼장법사, 백마, 저팔계, 사오정, 손오공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불교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다섯 가지 힘 즉 오력(五力)>이란 게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① 믿음(信), ② 정진(精進), ③ 깨어있음(念), ④ 선정(定), ⑤ 지혜(慧)> 이렇게 다섯 가지이다. 이런 <오력>이 바로 5명의 삼장법사(三藏法師) 일행의 모델이다.

 

그래서 <서유기>에선 <① 믿음(信), ② 정진(精進), ③ 계율(戒), ④ 선정(定), ⑤ 지혜(慧)> 이렇게 다섯 가지 능력을 바탕으로 서(西)방에 있는 부처님을 만나서 불법을 얻고 모두 부처가 되죠. 이렇게 볼 때, 다섯 캐릭터는 한 사람의 구도자(求道者)가 도(道)를 이루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다섯 가지 능력이다.

 

한명씩 캐릭터를 분석해 보죠. 먼저 <삼장법사>는 <① 믿음(信)>을 상징한다. 작품 내내 현실적은 파워는 없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들이 81난을 거치며 본래 목적을 상실할 때도 항상 <목표>를 분명히 하여 결국 부처님이 계신 서방 낙토에 도달하게 하는 근원적 원동력이 된다. 구도(求道)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언제 어디서나 이 <목표>을 잃어버리지 않는 철저한 믿음이다.

 

다음 <백마>는 말이 필요 없다. 바로 천 리 만 리를 쉬지 않고 달리는 <② 정진력(精進力)>의 상징이다. 그런데 백마는 작품에서 삼장법사를 항상 태우고 다닌다. 그건 아마도 <믿음>은 쉼 없는 <정진>에 의해서만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상징 같다.

 

다음 <저팔계(豬八戒)> 이는 돼지다. 돼지는 인간의 탐욕 욕망을 상징한다. 이러한 탐욕을 제거하는 것은 바로 3학중에서 <③ 계율(戒)>이다. 저팔계는 작품 내내 틈만 나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 욕망이 식욕이건 성욕이건 결코 멈추지 않는다. 손오공에 질투를 보내며. 그러나 그 이름에 나와 있는 <계율>을 완전히 익히면 이를 제어할 수가 있어서 결국 마지막에는 서방 낙토에 도달한다. 그래서 저팔계의 이름은 <오능(悟能: 뭐든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다)> 이다.

 

다음 <사오정(沙悟靜)> 이는 물귀신이다. 본래 물속에 산다. 그 자신은 요동치는 물의 요괴이지만 사는 곳인 물은 본래 고요한 물이다. 그래서 그는 요동치는 마음을 나타내며 고요함을 얻어야 하는 존재다. 그가 얻어야 하는 것은 <④ 선정(禪定)>이다. 그래서 이름이 <오정(悟靜: 고요함을 깨닫다)>이다. 마음의 안정을 지향하는 존재라서 그런지 작품 전체를 통해 독자적인 행보가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행자 <손오공(孫悟空)> 그는 <⑤ 지혜(知慧)>를 상징한다. 그가 이 극의 주인공인 이유는 부처님도 말씀하셨지만, 인간의 모든 번뇌의 근원인 <무명(無明)>은 <지혜>에 의해서만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수행의 시작이지만 그 완성은 바로 <반야 즉 지혜>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내용은 <공(空)> 도리다. 그래서 그 이름이 <오공(悟空: 공을 깨닫다)>이다. 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권선징악의 대표자로서 엄청난 지혜와 신통력을 발휘한다.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를 원숭이로 표현한 것은 인간의 생각과 사려는 원숭이와 같아서 쉬지 않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상을 척결해주는 것은 바로 <지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삼장법사 일행은 <불법(佛法)>을 얻게 된다.

 

불법(佛法)은 무한하고 짧은 인생에서 다 알기도 어렵다 그러나 불타가 이야기한 과거에도 별처럼 많은 부처가 있었고 미래에도 별처럼 많은 부처가 나타날 것이다라는 말을 명심하자. 현상을 쫓아 너무 많이 알려는 자세보다 마음을 다스려 스스로 우주(宇宙)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인간의 탐욕(貪慾)이 아닌 자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미물에 까지 마음이 미쳐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서유기>는 바로 이러한 한 사람이 다섯 가지 능력을 극대화 시켜서 도(道)를 얻어내는 <81난의 역경>을 그린 명작이다. 아주 대단한 소설이다. 또한 이러한 불법적 상징 외에도 도교(道敎)적 상징도 곳곳에 내포되어 있다.

 

사상체질로 본 서유기

우리가 사상체질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서유기를 통해 알아보자. 중국 4대 기서 중의 하나인 서유기에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다혈질이고 영웅적인 손오공.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한결같은 지조를 지키며 서역으로 떠나는 삼장법사. 주색이라면 누구보다도 용감한 저팔계, 늘 의형제들의 분쟁을 중재하는 사오정. 바로 이 네 명이 사상체질에 하나씩 해당한다.

 

손오공은 태양인

손오공은 두뇌 회전이 빠르고 상황 판단이 정확하다. 남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에 정의심이 발동하여 종횡무진 일처리를 한다. 다만 급한 성격 때문에 사부인 삼장법사와 갈등이 자주 생기며 욱하는 성미로 여러번 고생을 한다. 의지가 강하고 거만함에 빠지는 성향이 있다. 바로 이러한 캐릭터는 태양인에 해당한다. 손오공은 요괴들과 싸울때 동료들에게 따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혼자만 알고 모두 무찌르고 난후에 의기양양 잘난척 하면서 설명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삼장법사와 동료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손오공을 오해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태양인의 단점이다. 자기 세계에 빠져서 혼자서만 해결하려고 하는 영웅심리가 있다.

 

삼장법사는 소음인

삼장법사는 자비심이 많고 마음이 선량하다. 심지어 요괴에게조차도 그러하다. 머나먼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오겠다는 일심으로 고행길을 떠난다. 지나는 사찰마다 꼭 들려 예불하는 성실함이 있다. 그런데 자신의 견문이 부족하여 요괴들의 교활한 술책에 늘상 속는다. 그 때마다 위험한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어 한다. 삼장법사는 겁이 많아서 요괴가 나타나면 그저 손오공만 찾는다. 그런데 일처리를 잘 하는 손오공에게 과격하다고 꾸짖기만 한다. 정말 비겁하다. 삼장법사는 소음인에 해당한다. 소음인은 자신의 주변은 상세히 아는 반면 일처리에 서툴다. 요괴가 분장을 하고 그럴싸한 말을 하면 바로 속아버린다. 제자들을 통솔하고 주변 정리는 잘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상황 판단이 어두워 매번 손오공과 충돌하는데 늘 삼장법사가 잘못 판단했다.

 

저팔계는 태음인

모두 저팔계를 게으른 욕심쟁이로만 안다. 하지만 현실적인 목표가 있을 때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여인같은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으면 놀랄만큼 용감하고 적극적이다. 이를 본 손오공이 감탄할 정도이다. 저팔계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식, 술, 여자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삼장법사의 비위를 잘 맞춰서 신임을 받는 재간이 있다. 저팔계가 바로 태음인이다. 태음인은 윗사람에게 참 잘한다. 현실적인 성취를 이루어 내고 남보다 욕심이 많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나 물건에는 지극한 정성을 기울인다. 그래서인지 애처가나 가정적인 사람 중에 태음인이 많다.

 

사오정은 소양인

사오정은 별다른 개성이 없다. 늘 의형제들 간의 불화를 걱정하며 별탈없이 지내기를 원한다. 중용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일처리를 좋아한다. 용감한 손오공, 지조의 삼장법사, 뚝심의 저팔계를 잘 조화시키기 위해 애쓴다. 손오공이 삼장법사와 다툴 때 사오정은 삼장법사 편을 들었다. 그러나 요괴가 나타나 삼장법사를 잡아가면 고민하다가 다시 손오공을 찾아가 사정을 한다. 이 때 미안해하며 민망해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양인이다.

 

매스컴에서 소양인은 활달하고 말수가 많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틀린 것이다. 대부분의 소양인은 말수가 적고 신중하며 침착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번 말하면 객관적이면서 분명하다.

 

인도 구법 여행기 속에 중생의 성불 과정 담아내

명(明)대의 오승은(吳承恩, 1500-1582)이 지은 소설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하나이며 대표적인 신마소설(神魔小說)이다. 현장법사가 천축(天竺, 현재의 인도)에 가서불경을 구해온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다. 오승은이 모두 지은 것은 아니고, 당(唐)대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송(宋)대의 〈대당삼장취경시화(大唐三藏取經詩話)〉 등 민간에 전해 오던 각종 설화·전설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허균(許筠)·홍만종(洪萬宗)·이규경(李圭景) 등 많은 문인이 탐독하고 비평했다. 한글로도 번역돼 널리 읽혔다.

 

문학의 예술성과 불교

예술은 사람의 감성에 작용하기에 그 마음을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감동을 바탕으로 건강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예술의 여러 영역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오고 큰 영향을 끼치는 예술형태는 문학이다. 시·수필·소설·희곡 등 언어 문자를 매개로 미(美)를 창조하는 문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는 인간의 예술 활동에 근본이 되고, 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유구한 역사 속에 세계로 퍼져나간 불교는 여러 형태로 문학에 반영됐고, 가공되었다. 그렇게 문학 속에 구현된 불교는 다시 불교의 역사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문학은 예술의 한 형태이고, 예술은 미(美)를 창조하는 분야이기에 불교가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속에 갈무리되고 표현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아름다움 속에 표현된 불교는 그 아름다움을 통해 강렬하게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지만, 그러한 미적인 감동 속에 정확히 불교의 어떤 측면이 갈무리되고 표현되었는가는 알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예술성 속에 표현된 내용을 분석하고 쪼갠다면 정말 재미없는 결과가 나오겠다.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재미’라는 것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가장 큰 힘이고, 문학의 예술성 또한 ‘재미’라는 측면을 통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에 삭막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재미’를 죽여버리는 참혹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면 단지 분석을 위한 분석이 아니라, 그 예술성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고,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을 더 크게 느끼기 위한 앎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학 속에 불교의 어떤 가르침과 정신이 갈무리되었고 표현되었는가를 알게 되면 문학의 예술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감동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본다면,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에 표현된 불교가 반드시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의 불교 이해가 깊지 않으면 문학성·예술성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불교 정신은 천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의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불교적 측면에서의 평가는 낮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은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문학 속의 불교에 대해 올바르고 깊이 있는 이해를 해보려는 시도이다. 문학적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진 평론을 넘어서 문학 속에 표현된 불교의 심층을 제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의 예술성 속에 혹시 불교가 왜곡돼 있지는 않은가?’하는 관점을 적용하면서, 조금은 엄하게 불교를 중심으로 한 평론까지 나가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의 큰 원칙은 ‘재미’이다. 재미를 통해 감동을 전달하는 문학예술의 장점을 없애가면서 불교적인 요소를 탐색한다는 것은 본말의 전도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대상이 된 문학작품을 읽으면 더 재미있고, 그래서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써 보려고 한다. 그리고 부담 없지만, 재미있는 방식으로 써보려 한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재미있는 문학작품의 불교적 측면을 탐색하고자 한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련다.

 

인격 형상화한 세 주인공

서론이 길었다. 이제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앞서 언급했듯 오승은이 지은 〈서유기(西遊記)〉가 첫 번째 작품이다. 〈서유기〉를 모르시는 분 없으시죠? 불자가 아니어도 모두 아실 것이다. 혹 〈서유기〉를 모르더라도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은 아실 거다. 그만큼 만화·애니메이션·영화 등으로 많이 소개된 작품이다. 그 친숙한 우리의 친구들이 주인공인 〈서유기〉를 불교적인 눈으로 한번 뜯어보도록 하겠다.

 

〈서유기〉는 〈삼국지〉·〈수호지〉·〈금병매〉와 함께 중국 사대기서로 꼽힌다. 그런데 〈서유기〉는 불교적 관점에서 제대로 뜯어보고 읽으면 재미가 몇 배로 올라가는 소설이다. 반대로 그 속에 갈무리된 불교적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정말 수박 겉핥기가 되는 책이다. 그래서 이번 연재의 첫 소재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불교에 대해 조금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하!”하고 무릎을 칠만한 대목, 즉 〈서유기〉가 정말로 불교를 알면 몇 배나 재미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몇 대목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 먼저 손오공·저팔계·사오정은 여러 가지 인격 중 어떤 측면을 요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임을 알려드린다. 그중 손오공은 우리 마음을 대표하는 존재로, 어리석음과 지혜라는 두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음이다, 깨달으면 지혜인 것이다. 손오공은 원숭이 왕이 되어 영화를 누리다가, 삶이 영원하지 않으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수없이 먼 길을 헤매다가 드디어 수보리 조사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10대 제자 중 수보리존자가 아니다. 신선술을 가르쳐주는 신선이다.)

 

그런데 수보리 조사가 사는 곳이 어디일까? ‘영대방촌산(靈臺方寸山)’,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이라고 한다. ‘신령스런 누대, 사방 한치의 산’, 그 속에 있는 ‘기운 달에 삼형제 별 뜬 골짜기’. 이 장소 자체가 손오공이 무슨 공부를 하는가를 시사한다. 이 지명은 모두 ‘마음’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표현이다. ‘신령스런 누대’라는 말은 ‘마음이 신령하여 모든 일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먼저 이 말이 등장한 기록은 〈장자(莊子)〉 ‘경상초’ 편이다. 그리고 ‘사방 한치’라는 말도 ‘우리 마음이 우리 가슴의 좁은 곳에 머무른다.’는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기운 달에 삼형제 별 뜬 골짜기’라는 말은 ‘마음 심(心)’자를 의미한다. ‘마음 심’자를 보세요. 점 세 개는 삼형제 별과 같고, 비스듬하게 굽어서 삐친 획은 바로 기운 달의 모습이다? 이런 것을 글자를 깨뜨린다[破字]고 한다. 자, 이 정도 되면 무릎 한번 치셔야죠? ‘아하, 수보리 조사라는 스승이 계시는 곳은 마음의 골짜기구나. 결국 마음을 닦았다는 것을 그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로구나!’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꼭 불교에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불교에서 주로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불교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그런데 조금 더 나가보면 정말 확실하게 〈서유기〉가 어떤 책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 나온다.

 

불교 소재로 풍부한 상상력 담아

손오공이 수보리 조사한테 도술을 배운 후 여차저차하다가 결국 천상세계를 어지럽히는 큰 싸움을 벌인다. “옥황상제는 꼭 누가 하라는 법 있느냐?”고 큰소리치며 힘을 뽐낸다. 그러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맞닥뜨리고, 재주 내기를 하게 된다. 손오공은 장기인 근두운(筋斗雲)을 타고 10만 8,000리를 휘익 날아갔는데 이상한 다섯 봉우리 산이 보여서, 가운데 봉우리에 원숭이 방식으로 표식을 남기고 돌아온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 가운뎃손가락에 원숭이가 오줌을 눈 표식이 남아있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겠지요? 조그만 재주를 믿고 오만에 빠져, 큰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존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반성의 시간이 500년. 그리고 현장삼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에 수행원이 된다. 그런데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목에 첫 번째로 등장한 장애, 바로 여섯 도둑이 등장한다. 여섯 도둑의 이름과 이 대목의 제목을 보면 다시 무릎을 치게 된다.

 

여섯 도둑의 이름은 이렇다. ‘안간희(眼看喜)·이청노(耳聽怒)·비후애(鼻嗅愛)·설상사(舌嘗思)·신본우(身本憂)·의견욕(意見欲)’. 뜻을 풀어보면 첫 번째 도둑 안간희는 ‘눈 안’·‘볼 간’·‘기쁠 희’구요, 두 번째 도둑 이청노는 ‘귀 이’·‘들을 청’·‘성낼 노’, 그 다음은 ‘코 비’·‘냄새맡을 후’·‘사랑 애’입니다. 이쯤 되면 아시겠죠? 이 도둑들 이름의 첫 글자를 모으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인간의 여섯 감각기관이 된다. 가운데 글자는 그 감각기관의 역할과 활동을 나타내고, 마지막 글자는 기뻐하고 성내고 하는 인간의 감정을 말하고 있다. 굳이 이름을 풀어서 말한다면 이렇게 되겠다.

 

눈은 보고 기뻐한다.

귀는 듣고 성낸다.

코는 냄새 맡고 사랑한다.

혀는 맛보고 생각한다.

몸은 본디 근심한다.

뜻은 보고 욕심낸다.

 

이렇게 여섯 도둑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느끼고, 이 여섯 도둑이 나오는 대목의 제목을 보고 나면 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제목이 무엇이냐고요? ‘마음 원숭이가 바른길로 돌아오니, 여섯 도둑이 자취가 없네![心猿歸正 六賊無蹤]’이다. 이 정도 되면 불교적 상식이 있는 분들은 모르실 수가 없다.

 

‘손오공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로구나! 그리고 손오공이 첫 번째 만나서 물리치는 도둑이 바로 이 여섯이라는 것은 그냥 도둑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섯 감각기관의 유혹을 이겨내며, 감정의 파도를 다스리는 것이 수행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로구나!’한다.

 

자, 이렇게 출발한 여행이라면 종착점은 어디일까? 당연히 수행의 궁극목적, 바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서유기〉는 현장법사와 손오공 등 일행이 올바른 수행의 과보를 받아 부처가 되고 아라한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서유기〉의 큰 구도를 턱 잡고 나면, 〈서유기〉 전체가 다르게 보인다. 〈서유기〉를 ‘부처를 이루기 위한 수행기’라는 관점으로 보게 된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요괴와 마왕들, 그것은 수행과정에서 부딪히는 장애인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로 인도로 가는 여정 중에 부딪히는 지리적인 험난함과 요괴를 묶어놓은 대목도 있다. 그렇게 여행기와 수행기를 절묘하게 짜 맞추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표현으로 우리를 매혹시키는 책, 바로 〈서유기〉이다.

 

그렇다고 〈서유기〉가 온전히 불교 수행기인 것은 아니다. 불교뿐이 아니라 도교적인 요소가 매우 많이 들어가 있다. 소재 자체가 현장법사가 경전을 구해오는 것이기에 불교가 중심에 놓여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도교와 신선 사상, 그밖에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절묘하게 배합된다. 그것이 〈서유기〉의 재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서유기〉는 워낙 방대한 작품이기에, 이번 회에서는 〈서유기〉의 특징과 큰 얼개만을 우선 소개한다. 다음 회에 서유기 가운데서도 가장 큰 감동을 주는 대목들을 몇 군데 짚어가며 음미해보도록 하겠다. 또 불교적 관점에서 좀 불만스러운 대목들도 한두 군데 짚어 보고자 한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겠다는 말씀이다. 이상적인 불교의 눈을 적용한 비판도 곁들이겠다는 것이다.

 

첫회에 어려운 약속을 남발하는 것 같아 갑자기 두려워지게 된다. 그래도 일단 큰소리부터 쳐놓고, 그 큰소리의 반이라도 실현하려 애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저에 대한 다짐 삼아 약속드리면서 이번 이야기를 마친다.

 

성태용

전 건국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한학자 양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故임창순 선생에게 한학을 배웠다. EBS에서 ‘주역과 21세기’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으며, 한국철학회 회장과 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주역과 21세기〉·〈어른의 서유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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