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 제 19회 왕희봉 남을 이용하여 사람을 해치다

一字師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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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제 19회 왕희봉 남을 이용하여 사람을 해치다

 

                               图片来源 | 宝钗的衣服妆裹死去的金钏儿,真的没忌讳?留下的玉钏成了活死人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얼마 후, 가련은 또 멀리 길을 떠나, 평안平安으로 일을 보러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봉저의 큰 시녀 평아는 심부름을 해주는 하녀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문지기 둘이서 얘기하는데, 둘째 새 마님이 그들의 둘째 헌 마님보다 더 예쁘고, 성격도 좋다는 등의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평아로부터 이 보고를 받은 봉저는 의심이 들었다.

 

봉저는 흥아興兒를 불렀다. 흥아는 봉저가 단번에 둘째 새 마님의 일을 묻자, 놀라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하나도 남김없이 사실대로 가련이 밖에다 몰래 우이저를 취한 일의 모든 경과를 설명했다.

 

침상에 누운 봉저는 이 일을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그 “새 둘째 마님”을 즉시 사지에 빠뜨리고 싶었다.

 

봉저에게는 사람을 해치는 방책이 적지 않아, 잠시 생각한 끝에 서서히 애먹여서 사람을 죽일 악랄한 계책을 생각해내자, 소화지 골목에 있는 우이저의 거처를 찾아갔다.

 

우이저는 크게 놀랬지만 그래도 얼른 맞이하러 나와서, “형님”이라고 부르며,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봉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서방님께 진작부터 이 일을 하시라고 권했네. 만약에 아들을 하나 낳아, 장래에 의지할 데가 생기게 되면, 자네가 서방님께 나를 위해 좋은 말을 해주어 내가 설 자리를 주게.”

 

말을 마친 봉저는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우이저는 마음이 착하고 손끝이 약한 사람이라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봉저를 지기로 생각하고 반드시 그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다.

 

우이저는 물건들을 챙겨, 잠시 대관원에 들어가 머물기로 했다. 봉저는 우이저 신변의 하녀를 방법을 써서, 자기의 하녀로 바꿔서 시중을 들게 했다. 그녀는 또 남몰래 대관원에 있는 아낙네들에게 그녀를 잘 보살펴서,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고 분부했다.

 

대관원에 거처하게 된 우이저는 스스로 평온무사하다고 여겼는데, 3 일이 지나자, 하녀 선저善姐가 조금씩 말을 안 들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녀에게 머릿기름을 가져 오라고 했는데 가지를 않았고, 나중에는 밥조차 제 시간에 주지를 않고, 차려오는 것도 모두 먹다 남은 것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저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분수를 모른다고 할까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봉저는 며칠에 한 번씩 우이저를 보러와, 상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만약에 하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게 바로 알려 주면, 내가 그들을 때려주겠네.”

 

이저는 그녀의 이런 호의를 보고, 하녀가 나쁜 것은 봉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봉저는 왕아旺兒에게 돈을 주어 원래 우이저와 정혼했던 장화張華의 집으로 가서 관부에 고소를 하도록 선동하게 했다.

 

고소의 내용은 가련이 국상과 집안에 상을 당한 기간에, 강제로 다른 사람을 퇴혼하게 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봉저는 또 녕국부에 와서 극도로 비통하게 대성통곡하며, 소란을 피웠다.

 

결국은 가진으로부터 500 냥을 색출해냈는데, 자기가 관부에 가서 정에 호소하는데 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 중 일부만 내어서 관부에 주어 소송을 결말지었다.

 

그 후에 봉저는 가모와 왕부인을 설득하여, 우이저를 자기 거처에 같이 거주하게 하여, 집안 식구 전체의 찬사를 받았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가련은 가사에게 칭찬을 들었다. 가사는 그에게 100 냥의 은자를 주며, 자기가 데리고 있는 17,8 명의 시녀들 중에서 추동秋桐이라는 시녀를 상으로 주어 첩을 삼게 했다.

 

추동은 자기가 가사의 사람인 것을 등에 업고, 입만 열면 우이저에게 “창녀”라고 욕을 해댔다. 봉저는 속으로 좋아하며, 그녀는 이 추동이라는 검을 빌려 먼저 우이저를 죽이고, 그런 후에 다시 추동을 처단하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봉저는 은밀한 곳에서 수차례 추동을 충동질했다. 추동의 말을 들은 우이저는 화가 나서 자기 방에서 내내 울며 식욕까지 없어졌다. 이저는 한 달이 못가서 병이 나고 말아, 사지가 나른하고 차도 밥도 먹을 수가 없어, 날이 갈수록 여위었다.

 

하루는, 이저가 가련에게 임신했다고 말하며, 몸이 좋지 않아 아이를 잃을까봐 두렵다고 했다.

 

가련은 서둘러 사람을 보내 의사를 청했는데, 호胡 태의太醫는 돌팔이 의사인지라, 혈액을 순환시키고 마음을 편히 하는 강한 약제를 처방했다.

 

약을 먹은 우이저는 밤새 복통이 그치지 않더니, 결국은 형체가 다 생긴 사내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가련은 화가 나서 사람을 보내 호 태의를 찾았는데, 호 태의는 벌써 그 소식을 듣고 도망쳐버린 뒤였다.

 

봉저는 일부러 물을 끓여 이저에게 보내는 한편, 사람을 보내 점을 쳤다. 점을 보고 온 사람이 보고하기를, 이저는 토끼띠를 가진 사람에게 미움을 사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모두들 헤아려보니, 오직 추동이 토끼띠였다.

 

추동은 화가나 이저의 창문 밑에 와서, 심하게 욕을 퍼부었다. 이저는 병으로 몸이 허약해졌기 때문에 울분을 참으며 감히 아무 말도 못했다.

 

기실 그 호 태의나 점쟁이는 모두 봉저가 주선한 것으로, 일체 모두가 그녀의 책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날 밤, 우이저는 한참을 울고 나서, 죽으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억지로 기어서 몸을 일으켜서 상자를 열고 금덩어리를 찾아내,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삼켜 한 많은 인간세계를 떠나고 말았다.

 

다음날, 가련과 평아는 우이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체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 봉저는 거짓으로 몇 번 울다가, 가모 앞에 와서 이저가 폐병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

 

가모는 우이저의 관을 가부의 묘지에 매장하지 못하게 했다. 가련은 방법이 없자, 할 수 없이 우이저의 관을 삼저가 묻힌 성 밖에다 묻었다.

 

홍루몽이야기

홍루몽 제 18회 : 원앙검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어느 날, 가진은 가련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심복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몰래 소화지 골목에 스며들었다.

 

우이저는 가진을 크게 꺼리지 않고 사랑채에다 주연을 차려놓고, 노모와 우삼저와 함께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우이저는 말울음 소리가 들리자, 가련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맞으러 나갔다. 우이저는 가련에게 가진이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라고 얘기했다.

 

방안에 가진과 우삼저 두 사람만 남아있게 되자, 가진은 웃으며 우삼저와 얘기를 했다. 가련이 안으로 들어오자, 가진은 있기가 조금 불편해졌다. 가련은 다만 못 본 척 하며, 기분 좋은 얼굴로 우삼저에게 말했다.

 

“어떻게 큰 형님과 둘이서만 술을 마시고 있지? 나도 형님과 우삼저에게 한잔 드리죠!”

 

삼저의 성격은 이저와 달라, 그녀는 비록 방탕하고 용모가 아름답게 생겼지만, 그러나 절대로 가진과 바람둥이 가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련이 이렇게 경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일어나더니, 손으로 가진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제게 당치 않은 말 하지 말고, 내가 당신들이 집에서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다고 여기지 마세요! 냄새나는 돈을 써서, 우리 두 자매를 기생으로 생각하고 쾌락을 구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 부인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만약에 그녀가 우리 언니를 괴롭히게 된다면, 저는 먼저 당신들 두 사람의 진귀한 물건을 뽑아버릴 것이고, 그 다음에 그 기가 센 여자와 목숨을 걸고 맞붙을 겁니다! 술 마시는 게 뭐가 무섭다고, 마시면 마시는 게지!”

 

그렇게 소리쳐 말하고는 술잔을 가져와 스스로 반잔 정도를 마시고 나서, 가련의 목을 잡아당겨 부으면서 말했다.

 

“저와 당신 형님은 이미 마셨으니, 지금은 우리 둘이 다정해질 차례네요.”

 

가진은 예상 밖으로 삼저가 이렇게 성질이 사나울 줄 몰라, 두 사람은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서,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우삼저는 한바탕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두 어리석은 사람을 마음껏 농락하며, 마음이 대단히 통쾌했다. 흥취가 다 하자, 그들을 내쫓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잠들었다.

 

그때부터, 우삼저는 매일같이 가진, 가련과 가용에게 매섭게 욕설을 퍼부었다. 노모와 우이저는 그녀에게 그러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막말을 해댔다.

 

“언니도 어리석기는, 우리는 귀하게 생겼는데, 도리어 아무 쓸모없는 저 두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어. 그 사람 집에 대단한 부인이 있다던데, 어느 날 그녀가 이 일을 알게 된다고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하게 소란을 피울 거예요! 그때는 누가 죽고 누가 살지 몰라요. 그래서 지금 이 기회를 틈타, 나는 그들을 있는 힘을 다해 조롱하고 욕을 퍼붓고 짓밟고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그때 가서 나쁜 평판을 얻게 될 터이니, 후회해도 늦을 거예요.”

 

우 씨 모녀는 그녀가 권고를 듣지 않자,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다. 우삼저는 매일 맛있는 음식을 골라먹고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마음대로 탁자를 엎어버리며, 의상이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비싼 천으로 만들었더라도, 가위를 가지고 잘라버리거나 찢으며 욕을 해대다가 화가 가라앉아야 그만두었다.

 

이때, 가련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사람을 골라 처제를 시집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우이저는 좋은 사람을 골라야 되고, 또 동생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래야 일찍 세상을 떠난 부친에게 면목이 선다고 했다.

 

이저는 돌연 5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외조모의 생신 때, 한 극단을 초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 극단의 연극에서 소생小生(중국 전통극의 젊은 남자 배역을 말함) 역을 맡은 유상련이라는 사람이 연기를 보고 반한 우삼저는 줄곧 연모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인품과 재능과 용모를 칭찬하며, 그가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저는 이런 일을 가련에게 말했다. 이때, 삼저가 들어오며 말했다.

 

“형부, 저 우삼저는 절대로 겉과 속마음이 다르지 않아요. 저는 현재 정진결재하며 염불을 하고 있고, 어머니를 시중들며, 유 공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가 오면, 저는 그에게 시집가겠어요. 그가 만약 백년이 되도록 오지 않으면, 저는 츨가해서 비구니가 되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에 꽂은 옥비녀를 빼어 반으로 쪼갰다.

 

“제가 말한 대로 하지 않으면, 이 옥비녀처럼 될 거예요!”

 

가련은 얼른 유상련의 소식을 알아보러 평안주平安州로 길을 떠났다. 가는 도중에 갑자기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바로 유상련과 설반이었다.

 

원래 설반은 물건을 해오는 중에 평안주 관내에서 강도를 만나 위급한 중에, 공교롭게도 유상련이 지나가다가 칼을 휘둘러 설반 일행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설반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격해서, 상련에게 황금으로 사례를 하려 했다. 상련은 필요 없다고 하며, 설반과 생사를 같이 하는 의형제를 맺었다.

 

가련은 우삼저의 일을 상기하며, 유상련에게 청혼을 했고, 다만 우삼저가 그가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고 한 말은 하지 않았다.

 

“저는 원래 절세미인을 취하고 싶었는데, 공자의 말씀을 들으니 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 원앙검鴛鴦劍을 꺼내, 약혼의 예물로 건네주었다.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온 가련은 가는 길에 유상련을 우연히 만난 일을 모두에게 다 말하고, 원앙검을 꺼내 우삼저에게 주었다. 우삼저는 뜻밖의 일을 만나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녀는 자기 방의 침상 위에 원앙검을 걸어놓고, 매일 보검을 바라보며 남모르게 평생 의지할 데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얼마 뒤에 지방에서 서울로 돌아온 상련은 보옥을 만나, 길에서 우연히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얘기했다. 보옥은 웃으며 축하를 했다.

 

“큰 경사요! 정말로 고금의 절색인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얻기 어려운데, 자네와 잘 어울리네.”

 

상련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미모가 있는 그녀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는 아주 쉬울 것인데, 어떻게 오직 나만 생각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일을 너무 급작스럽게 한 것이 후회가 되어, 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

 

보옥이 말했다.

“자네는 세심한 사람인데, 기왕에 혼사를 정해놓고, 어찌 또 의심을 하나? 자네는 원래 절색을 취하고 싶다고 말하고는, 절색인 그녀를 가 바로 절색인데, 또 어째서 후회한단 말인가?”

 

상련이 말했다. “자네는 그녀가 절색인지 어떻게 알았나?”

 

보옥이 대답했다. “그녀는 가진 형수님의 계모가 데려온 동생으로 내게는 이모가 되는데, 어떻게 내가 모를 수가 있겠나?”

 

상련은 듣고서 발을 구르며 말했다. “망쳤네! 이 일은 절대로 다시는 말하지 말게. 자네네 동부東府(녕국부를 가리킴)는 문 앞에 있는 2 개의 석사자만 깨끗하지, 아마도 깨끗한 사람은 다시 찾기 어려우니, 나는 수치를 모르는 놈은 되지 않겠네.”

 

말을 마치고, 보옥에게 작별을 고하고, 가련을 찾아갔다. 상련은 가련에게 집안의 큰 어머니가 이미 정혼을 해두었다고 말하며, 삼저와 약혼을 해제해 주고 보검을 돌려달라고 했다.

 

상련과 가련이 하는 말을 전부 다 들은 우삼저는 반드시 가부에 있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얘기해, 자기가 음란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된 것으로 단정을 지었다. 그가 만약에 퇴혼을 해오면, 자기는 무슨 면목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는가?

 

그리하여 그녀는 방문을 나가 말했다.

 

“당신들이 다시 의논할 필요 없이, 정혼 예물을 돌려드리겠어요!”

 

말을 마치자, 왼손으로는 칼집과 원앙검을 상련에게 내밀며, 오른손으로는 팔꿈치를 돌려 목을 단번에 그었는데, 즉시 피가 온 땅에 흘러내리며 쓰러져 죽고 말았다.

 

상련은 삼저의 시체 옆에 꿇어 앉아, 실성하며 통곡했다.

 

“당신이 이렇게 강렬한 사람이라니 정말로 뜻밖입니다. 정말로 경탄합니다! 제가 당신을 잘못 봤습니다!”

 

그는 삼저가 그를 5 년이나 기다려왔고, 그가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는 것을 알고 나자 더욱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삼저를 입관할 때에, 그는 관을 부여잡고 크게 통곡을 하고, 가련 등에게 작별을 고하고, 발길 가는대로 걸어갔다. 나중에 그는 도사를 따라 갔다고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홍루몽』의 인물보人物譜 (1) : 1대 - 3대

 

제 1 대

가연賈演 : 녕국공寧國公

가원賈源 : 영국공榮國公

 

제 2 대

가대화賈代化 : 녕국공 가연의 아들로 원래 경영절도사京營節度使를 지낸 일등신위장군一等神威將軍 직을 세습했다.

 

가대선賈代善 : 영국공 가원의 아들.

사태군史太君 : 즉 가모賈母이다. 금릉세훈사후金陵世勛史侯의 규수로, 영국공 가원의 맏아들 가대선의 아내이다. 가사賈赦, 가정賈政, 가민賈敏의 모친이고, 가보옥賈寶玉의 할머니이고, 임대옥林黛玉의 외할머니인데, 가부賈府에서는 통칭 "노태태老太太", "노조종老祖宗"이라고 부른다.

 

영리하고 노련하며 도량이 넓은 “세상일에 통찰하고 경륜이 넓으며 인심이 후한” 인물이고, 가부에서 가장 지위가 높다.

 

그녀는 기실 대관원大觀園의 진정한 후견인으로 많은 아들딸들이 진심으로 미더운 존재로 여기며 따른다.

 

가모는 가보옥의 성격 형성과 성장에 불가결한 사람이다. 보옥은 부친 가정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요구를 좋아하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모는 핑계를 만들어 억지로 공부하여 더 나아지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가모의 비호가 없었다면, 가보옥은 자유분방한 천성을 펼쳐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홍루몽』 중에서 가모 자신의 단독적인 이야기는 없지만,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는데, 인물 관계의 사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연결고리이다.

 

가대유賈代儒 : 가부의 방계로, “대代” 자 항렬이다. 가서가서의 할아버지이고, 가부 집안에 있는 글방을 관장하고 있는데, 가부에서는 통칭 "학리태야學里太爺"라고 부른다.

 

제 3 대

가경賈敬 : 녕국공 가연의 손자로 가대화의 둘째 아들이고, 가진의 부친인데, 을묘년에 진사進士에 급제했다.

 

가사賈赦 : 자는 은후恩侯이고, 가모의 맏아들로 가련賈璉과 영춘迎春의 부친인데 일등장군一等將軍 직을 세습했다. 가부에서는 통칭 "대노야大老爺" 라고 부른다.

 

평소에 관리의 권세를 등에 업고 남을 잘 괴롭히고,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 가우촌과 결탁하여 강제로 석대자의 골동부채를 뺏어서 분개한 석대자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그는 가모 방에 있는 원앙鴛鴦에게 눈독을 들여 고집스럽게 첩을 삼으려 했다.

 

원앙이 단호하게 거절했는데도, 여전히 첩을 들이려는 생각을 그만두지 않고, 결국은 8백 량이나 들여서 17 살 난 어린 아이를 첩으로 사들여 곁에 두었다.

 

그는 가모가 동생 가정을 편애하는데 불만을 가져, 가모와 가정에게 겉으로는 친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고 있었다. 후40회속서에서, 가사는 가산이 몰수당한 뒤에, 파직당하고 변방으로 유배를 갔다.

 

가정賈政 : 자는 존주存周이고 가모의 둘째 아들로, 보옥, 가환賈環, 원춘元春, 탐춘探春의 아버지이다. 초임으로 공부주사工部主事을 지내고, 나중에 원외랑員外郞으로 승진했는데, 지방에 학차學差를 나간 적도 있다.

 

가부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노야二老爺" 라고 부른다. 그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공부했는데, 황제의 은덕으로 관직을 하사하여, 처음에는 주사主事를 맡았다가, 나중에 공부원외랑으로 승진한다.

 

그는 봉건의 정통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했다. 딸 원춘이 친정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오직 황은에 감격하여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황송해 했다.

 

제 75 회에서 중추절의 집안 연회에서, 그는 모친을 기쁘게 하고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아첨의 말로 농담을 했다. 그는 대단히 정통적인 관념을 가진 가장인데, 반역정신을 가진 가보옥과 첨예하게 부딪쳐서, 이런 충돌도 『홍루몽』 사상의 근거의 요지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된다. 그는 자녀에게 엄하게 대했지만, 내심으로는 비교적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보옥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던 그는 대관원의 편액을 지을 때에 시험했는데, 이르는 곳마다 바로 보옥에게 문제를 내어 읊으라고 하고, 비록 준엄하게 꾸짖으며 반박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내심으로는 만족해했다. 질책하고 때리고 욕하기는 했지만, 훌륭한 재목이 되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제 22 회의 “제등미가정비참어制燈迷賈政悲讖語”에서, 여러 자매는 수수께끼를 상서롭지 않은 것에다 연계시켜, 깊고 슬픈 생각에 빠져 잠을 설쳤다.

 

그는 단정하고 공손하며 관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또 지나치게 진부했다. 후40회속서에 그는 좋은 관리가 되고 싶지만 세정을 잘 알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해 평판이 나빠지고 만다.

 

임여해林如海 : 이름은 해海, 자는 여해如海이다. 가모의 사위이고 임대옥의 부친이다. 전시殿試에서 탐화探花를 차지해 난태사대부蘭台寺大夫에 임명되고, 황제가 직접 순염어사巡鹽御史로 내보냈고, 가부에서는 “고노야姑老爺”로 부른다.

 

형부인邢夫人 : 가사의 처로 형수연邢岫烟의 고모이다. 가부에서는 "대태태大太太" 라고 부른다. 본성이 어리석고 덕과 재주가 없는 그녀는 단지 가사를 받들 줄만 알아서 집안일 일체를 가사가 좌지우지했다.

 

그녀의 손을 거쳐 금전이 출입할 때면, 그녀는 가로채서 탐욕을 채웠다. 자녀와 노복도 전혀 믿지 않아 한 마디도 듣지 않아서 인심을 얻지 못한다.

 

가부의 맏며느리이나 시어머니 가모의 환심을 사지 못하여 집안일을 도맡는 권력을 쥐지 못하고, 며느리 왕희봉王熙鳳은 무턱대고 가모와 왕부인만 받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극도의 불만을 가졌지만, 어쩔 수 없이 그저 며느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를 빌미로 창피를 주어 난감하게 만들곤 한다.

 

왕부인王夫人 : 가정의 아내로, 원춘과 보옥의 모친이고, 왕희봉의 고모이다. 경영절도사 왕자등王子騰의 여동생이고, 설이마薛姨媽와는 친자매지간이다. 가부에서는 통칭 "이태태二太太" 라고 부른다.

 

가부의 둘째 며느리이나, 가모의 신임이 두터워서, 가부의 실질적인 안살림을 다 맡고 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염불을 외고 채식을 하며, 집안일은 봉저鳳姐에게 대신 맡기고 자기는 그저 조용히 지낸다. 그녀의 성격의 핵심은 특별나게 아들을 사랑하여 가보옥에게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비호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지 간에, 보옥과 무관하면, 그녀는 언제나 이성과 지혜로 평정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지만, 그러나 보옥과 연관이 있게 되면, 그녀의 신경은 즉각 극도로 민감하게 변한다.

 

그녀는 누구든지 보옥에게 잘하면, 곧 대단히 중시하고 신임하고, 만약 그녀가 보기에 보옥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곧 평상시의 온화하고 대범함이 정상이 아닌 흉악하게 변하곤 했는데, 금천아金釧兒와 청문晴雯의 두 목숨을 모두 그녀의 손으로 보내버린다.

 

그녀가 “목석인연木石因緣”을 파멸시키는 주된 원흉인 것이다. 그녀는 가부에서 가장 위선적이고 최고로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설이마薛姨媽

왕부인의 여동생으로, 설반薛蟠과 보차寶𨥁의 모친이다. 가부에서는 통상 "이태태姨太太" 라고 부른다. 설 씨 집안은 백만장자의 황상皇商이나, 설이마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과부가 되었다.

 

아들을 제대로 잘 가르치지 못한 그녀는 아들 설반을 지나치게 응석받이로 방관하였기 때문에, 설반은 사나운 고집쟁이로 말을 잘 듣지 않고, 배운 것이 없이 그냥 기생집만 출입하여 도처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방탕한 자제였다.

 

그녀는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로, 향릉香菱을 잘 대해 주고, 언제나 왕부인과 함께 가모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녀는 딸 보차의 혼사에 관심이 많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이 금쇄金鎖는 옥玉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게 어울린다”

 

마지막에 보차는 비록 보옥과 “금옥양연金玉良緣”을 이루었지만, 궁극적으로 공허한 결혼이 되고 말았다.

 

조이낭趙姨娘 : 가정의 첩으로 탐춘과 가환의 모친이다. 가부에서는 "조이내내趙姨奶奶" 라고 부른다. 첩이기 때문에, 그녀는 왕부인과 봉저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데, 친딸까지도 그녀를 모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거지가 저속한 그녀는 가부에서 반은 주인이고 반은 노비인 계면쩍고 가련한 지위에 있다. 설사 그녀가 하녀 앞에서는 언제나 주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장 말단의 하녀와 연극배우들까지도 모두 그녀에게 말대꾸를 한다.

 

그녀는 또 마음이 음흉하고 속이 좁으며 마음속에 꿍꿍이가 없어서 자질구레한 일도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가부에서 대인 관계기 좋지 않다. 후40회속서에서 급사하고 만다.

 

홍루몽 제 17회 : 가련이 몰래 우이저를 첩으로 삼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가진의 부친 가경賈敬은 도교 사원에서 수련을 하며 선약을 만들어 먹으며 지냈다다. 그런 것은 소위 “선단仙丹”이라는 것인데 독이 들어 있어, 가경은 늘 복용하다가 마침내 중독되어 죽었던 것이다.

 

가경의 장례는 철함사鐵檻寺에서 치르기로 했는데, 가진의 아내 우尤 씨는 집안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그녀의 노모 우 씨와 두 여동생인 우이저尤二姐와 우삼저尤三姐를 녕국부에 데려와 대신 집안일을 돌보게 했다.

 

가련은 일찍부터 우이저가 아름답게 생겼다는 것을 듣고 있어, 자주 가용 앞에서 우이저를 칭찬해왔다. 가용은 이미 가련의 심사를 알고 있었다.

 

“숙부님이 이렇게 둘째 이모를 좋아하시니, 제가 중매를 서서, 우리 둘째 이모를 숙부의 첩을 삼도록 말해볼 게요.”

 

그 말을 들은 가련은 진지하게 가용에게 물었다.

 

“네 말이 농담이냐 아니면 정말이냐?”

 

가용은 “진담”이라고 대답했다. 가련은 처음에 기뻐하다가, 나중에 봉저를 생각하니, 다시금 좀 두려웠다. 가용은 가련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렇게 말했다.

 

“숙부가 담대하기만 하면 되는데, 밖에 집 한 채를 마련하여, 우리 둘째 이모를 데려다 살게 하면, 한 마디 소문도 안 나게 될 것이니, 어떻게 형수가 알 수가 있겠어요? 이렇게 몇 년 지내면, 형수가 알게 되더라도,‘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후입니다.”

 

그 말에 가련은 매우 기뻐하며, 가용에게 고맙다고 했다. 가련은 곧바로 우이저를 찾아가 남모르게 얘기를 나누고, 가련은 자기의 옥패를 살며시 그녀에게 쥐어주었다.

 

다음날, 가용은 노모 우 씨를 찾아와 가련에 대한 얘기를 번지르르하게 했는데, 가련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봉저의 병이 가볍지 않아 봉저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우이저를 영국부로 데려가 정실을 삼을 것이라는 등등의 말을 했다. 노모 우 씨는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고 말았다.

 

가련은 이 소식을 듣자,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며 사람을 시켜 녕국부와 영국부의 뒤쪽에서 멀지 않은 소화지小花枝 골목에 집을 한 채 사고, 또 우이저에게 혼수로 장신구를 보내고, 길일을 택해 새벽에 우이저를 작은 가마에 태워 살그머니 데려왔다. 하늘과 땅에 절을 올리고 화촉을 밝혀 부부가 되었던 것이다.

 

홍루몽의 판본 (4) : 靖藏本, 程甲本, 刻本, 佚本, 評本, 飜譯本

 

정장본靖藏本

이 본은 정식으로 드러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유일하게 60년대 초에, 남경의 독자가 지비脂批 150 개의 조목을 베껴서 북경의 몇몇 홍학가에게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이 본의 존재가 알려졌다. 그러나 1964년 뒤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본은 정靖 씨 가문의 후손과 훑어본 사람이 소개하고 베낀 지비를 분석했는데, 갑술본과 비슷한 비교적 이른 저본底本이다. 그 지비와 현존하는 각 본과 비교할 때, 서로 다른 점과 같은 점이 있는데, 깊이 있는 연구를 제공할 가치가 있다.

 

정갑본程甲本

신해년辛亥年(1791년)에 “췌문서옥활자본萃文書屋活字本”의 간칭이다.

 

표지에 “수상홍루몽綉像紅樓夢”이라는 제목과, 속표지에 “신전전부수상홍루몽新鐫全部綉像紅樓夢, 췌문서옥萃文書屋”이라고 제목이 쓰여 있는데, 회回의 시작과 중간에 모두 “홍루몽”이라고 제목이 있다.

 

이 본은 전부 120 회로 한 페이지가 10 줄이고 한 줄은 24 자字로 되어 있다. 머리말에 정위원程偉元과 고악高鶚의 서문이 차례로 있고, 그 다음에 석두의 수상綉像(섬세하게 그린 인물화나 삽화를 말하는데, 명청명청 대부터 장회소설의 권두에 그린 인물화나 매 장장 첫 머리의 삽화를 가리키고, 그림이 자수와 같이 아주 섬세하여 붙여진 명칭임)이, 보옥寶玉, 가賈 씨의 사당, 사태군史太君, 가정賈政, 왕王 부인 등 모두 24 페이지에 달하는 그림과 설명이 있고, 그 뒤에 목록이 있다.

 

정위원의 서문에는 연월의 서명이 없고, 고악의 서문에는 서명이 없이 “시건륭신해동지후오일철령고악서승서時乾隆辛亥冬至後五日鐵岭高鶚叙丞書”라고 되어 있다.

 

이 책은 모두 120 회이고, 첫 회가 “견사은몽환식통령甄士隱夢幻識通靈, 가우촌풍진회규수賈雨村風塵懷閨秀”이고, 끝 회는 “견사은상설태허정甄士隱祥說太虛情, 가우촌귀결홍루몽賈雨村歸結紅樓夢”이라고 되어 있다.

 

정위원과 고악의 배인본排印本인 이 본은 이듬해, 즉 건륭 57년 임자년壬子年(1792년)에 나오고, 또 초인본初印本을 고쳐서 다시 출판했는데, 전후의 두 종류를 구별하기 위하여, 호적胡適은 초인본을 “정갑본”, 임자년의 중인본重印本을 “정을본程乙本”으로 칭해, 그 후 줄곧 사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근거하면, 정본程本 계통은 갑본甲本과 을본乙本 외에 또 병본丙本과 정본丁本이 발견되었는데, 말하자면 을본을 변경한 뒤에 또 두 차례나 고쳐서 중인重印했던 것이다.

 

정갑본은 처음으로 필사의 방식을 벗어나 목활자를 사용하여 조판 인쇄한 『홍루몽』의 인쇄본인 것이다.

 

기타 각본刻本

청나라 후기에, 홍루몽은 공개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대량으로 인쇄본이 출현했다. 예를 들어 건륭 말년에 동관각간본東觀閣刊本, 가경嘉慶 11년의 보흥당간본寶興堂刊本, 도광道光 연간의 응취초당간본凝翠草堂刊本, 삼양당간본三讓堂刊本, 함풍咸豊 9년의 오운간본五云刊本, 동치同治 연간의 보문당간본寶文堂刊本, 운향각간본耘香閣刊本과 어고헌간본漁古軒刊本 등 수십 종이 있다.

 

일본佚本

조기早期에 『홍루몽』은 전파되는 과정 중에 많이 유실되었다. 기타의 문헌 중에서 일부 자잘한 기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현존하는 판본과 때로는 다르지만, 일부 자료는 홍학연구자들이 채용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 비교적 유명한 유주춘有周春의 소견초본所見抄本, 소계어은笤溪漁隱의 소견구초본所見舊抄本, 서돈舒敦의 소견초본所見抄本, 이자명李慈銘의 소기초본所記抄本, 『속열미초당필기續閱微草堂筆記』의 소기초본所記抄本, 유전복劉銓福의 소기초본所記抄本, 유아발唯我跋의 소기초본所記抄本, 서척산초犀脊山樵의 소기초본所記抄本, 동강董康의 소견초본所見抄本, 부종린傅種麟의 소견초본所見抄本 등 수십 종이 있다.

 

소계어은의 소견구초본 교기校記 중에 약 1,800 자의 초본抄本 문자가 남아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초본, 인본의 제 67 회의 회목回目과는 같지 않은 것 외에, 그 나머지는 모두 간단한 말들이다.

 

평본評本

『홍루몽』이 세상에 나온 뒤에, 역대 문인학자들은 다투어서 읽고 깊이 연구했다. 또한 대량으로 검토하고 평가하여 체험을 남겨 독특한 평본評本 일조一組를 형성했다.

 

비교적 이름난 사람으로는 장여집張汝執, 국포평본菊圃評本과 범원형평본范元亨評本, 서전경평본徐傳經評本, 유리분평본劉履芬評本, 왕희렴王希廉의 쌍청선관평본双淸仙館評本, 취진당평본聚珍堂評本, 장신지障新之의 묘복헌평본妙復軒評本, 왕희렴, 장신지와 요섭姚燮의 동문서국평본同文書局評本, 왕백항평본王伯沆評本 등이 있는데, 모두 수십 종에 달한다.

 

번역본飜譯本

『홍루몽』은 중국고전문학의 거작 중에서 가장 널리 전파된 작품으로 여러 문자로 번역되어, 그 영향의 범위가 중국어권역보다 더 널리 퍼져나갔다.

 

고증을 거친 번역본 중에는, 소수민족의 문자인 만주어, 몽고어, 석백어錫伯語(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신강新疆 요녕遙寧, 흑룡강 등지에 분포함) 카자흐어과 위그르어가 있다.

 

외국어 번역본으로는 한글, 태국어, 미얀마어, 루마니아어, 헝가리어, 희랍어, 체코스로바키아어, 이태리어, 네델란드어, 러시아어, 독일어, 일어, 영어, 프랑스어 등 20여 종의 문자가 있고, 그 중에 언어역권이 큰 경우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있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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