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소오강호 2-4 김용

一字師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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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소오강호 2-4 김용

 

                                                          图片来源 | 《笑傲江湖》多人有声剧重磅上线_哔哩哔哩

 

 

영호충은 그가 중독되어 있어 이번에 산을 내려가면 얼마 후 독이 퍼져 죽게 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영호충은 그와 며칠간 악투를 치른 끝에 전백광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다음의 말을 하고 싶었다.

 

[내 그대를 따라 산에서 내려가겠소.]

 

그러나 자기는 사과애에서 벌을 받고 있는 몸이라서 사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걸음도 떠나갈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은 나쁜 짓만 저지르는 채화음적이 아닌가? 그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궁한 화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전백광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호충은 그가 산을 내려가자 즉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풍청양 앞에 엎드려 말했다.

 

[사숙조께선 비단 이 사손의 목숨을 구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승의 검술을 전수해 주셨읍니다. 이 은덕은 영원히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풍청양은 미소했다.

 

[상승검술이라, 상승검술이라, 허허허...... 아직도 멀었다.]

그의 웃음에는 쓸쓸하고 외로운 감이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이 사손이 외람되게 사숙조님께 독고구검을 모조리 전수해 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네가 독고구검을 배운 이후에 후회하지 않겠느냐?]

 

영호충은 어리둥절해졌다. 장래 내가 왜 후회를 해야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짚히는 바가 있었다.

 

(그렇다. 독고구검은 본문의 검법이 아니다. 사숙조께선 사부님께서 이 일을 알고 나를 꾸짖지 않을까 염려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은 내가 다른 파의 검법을 섭렵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으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옥(玉)을 공격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더군다나 나는 이미 석벽의 도형 가운데 적지 않은 항산, 태산, 형산, 숭산 각파의 검법을 물론 마교 십장로의 무공까지도 배웠다. 이 독고구검은 이처럼 신묘하니 무공을 배우는 사람으로선 몽매에도 구하려는 절세의 묘기가 아닌가? 내가 만약 본문의 선배님으로부터 전수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다시 없는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을 한 그는 즉시 절을 했다.

 

[이것은 이 사손이 한평생 다행스럽게 여기는 일로서 장래 고마워할 뿐이지 결코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풍청양은 말했다.

 

[좋다. 너에게 전수해 주마. 이 독고구검을 너에게 전수해 주지 않는다면 몇년 후에는 영원히 이 검법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할 때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전백광은 결코 이대로 물러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온다 해도 열흘이나 보름 후가 될 것이다. 너의 무공은 이미 그를 능가하고 있고 음모가 간계에 있어서도 그보다 뛰어나니 영우너히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제 시간이 충분하니 처음부터 익히면서 기틀을 튼튼히 쌓도록 하라.]

 

그리고 그는 독고구검 제일검의 총결식을 구결과 순서에 따라 한 마디씩 해석해 주었다. 그리고 구결에 따르는 변화를 일일이 전수해 주었다.

영호충은 처음에는 구결을 억지로 외웠을 뿐 그 가운데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알지 못했다. 지금 풍청양으로부터 시간의 여유를 두고 지적을 받게 되자 시시각각 수준 높은 상승무학을 깨우칠 수 있었고, 기이하고 오묘한 변화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탄성을 지르곤 했다.

이리하여 한 쌍의 젊은이와 늙은이는 바로 사과애에서 독고구검의 정묘한 겁법을 전수하고 전수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총결식으로부터 파검식, 파도식, 파창식(破槍式), 파편식(破鞭式), 파색식(破索式), 파장식(破掌式), 파전식(破箭式),.저구검 파기식(破氣式)을 차례로 배우기에 이르렀다. 파창식은 장창, 대극(大戟), 사모(蛇矛), 제미곤(齊眉棍), 낭아봉(狼牙棒), 백락간(白?桿), 선창, 방편산, 기타 여러가지 기다란 무기를 깨뜨리는 방법이었다.

파편식은 철편, 철간(鐵?), 점혈궐(點穴?), 괴자(拐子), 아미자, 비수, 판장(板?), 철패(鐵牌), 팔각추(八角鎚), 철추(鐵椎) 등의 짧은 무기를 깨뜨리는 초식이었다. 파색식은 장색(長索), 연편, 삼철곤, 연자창, 철연, 어망, 비추유성(飛鎚流星) 등의 부드러운 무기를 깨뜨리는 일초 일식마다 변화가 무궁무진했다. 배워가면 갈수록 전후의 검식을 융합시켜 위력이 증대해갔다.

나중에는 갈수록 더욱 더 배우기 어려워졌다. 파장식은 주먹, 발길, 손가락, 손바닥으로 쓰는 무공을 깨뜨리는 방법이었다. 상대방이 맨손으로 자기의 예리한 검과 싸운다면 상대방의 무공은 지극히 높은 조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잇을 것이며 손에 무기를 들지 않았다고 해도 무기를 든 것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천하의 검법, 퇴법, 지법, 장법은 복잡하지만 파장식은 장권단타(長拳短打), 금나점혈(擒拿點穴), 응조호조(鷹爪虎爪), 철사신장(鐵沙神掌) 등 여러가지 권각법의 무공을 모조리 깨뜨릴 수 있는 수법이었다.

파전식은 여러가지 암기를 총 망라하고 있었다. 이 방법을 연마 할 때는 반드시 먼저 바람소리를 듣고 암기를 분간할 수 있는 수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야 한 자루 장검으로 적이 쏘아대는 여러가지 암기를 쳐서 쓰러뜨릴 뿐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빌려 오히려공격할 수 있고 적이 던진 암기를 되돌려 보내 적을 해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제구검 파기식을 익힐 때 풍청양은 구결과 연마하는 방법을 말한 다음 설명을 덧붙였다.

 

[이 식은 몸에 상승내공을 지니고 있는 적들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것인데 신(神)이 맑아야 하며 오로지 정신으로 적을 제압해야 한다. 독고 선배님은 과거 한 자루의 검을 지닌 채 천하를 횡햐하였고 한번 패하고 싶었으나 패할 수 없었다. 이는 독고구검을 출신입화(出神入化)의 경지까지 연마하였기 때문이다. 똑같은 화산검법도 펼치는 사람에 따라 위력이 크게 달라졌는데 이 독고구검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가 설사 이 검법을 터득한다 해도 검을 펼칠 때 검법이 순수하지 못한다면 역시 당금 천하의 많은 고수들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에 입문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많이 이기고 적게 패하려고 한다면 다시 이십년 간 고된 수련을 해야 할 것이고 그때는 천하의 영웅들과 한번 겨루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호충은 배우면 배울수록 구검의 변화가 무궁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동안 배워야 모든 오묘한 이치를 깨달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사숙조가 이십 년 간 고된 연마를 쌓아야 한다고 했으나 조금도 놀랍거나 의아하게 여기지 않고 말했다.

 

[이 사손이 만약 이십 년만에 독고 노선배님이 과거 이 구검을 창안한 뜻을 모조리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대견한 일이 아니겠읍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너는 너무 겸손해 할 필요 없다. 물론 독고대협은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검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터득할 오(悟)자에 있으며 결코 억지로 기억한다고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이 구검의 뜻을 완전히 통달하게 되어 마음대로 펼친다면 모든 변화를 깡그리 잊어도 상관이 없다. 더군다나 적을 상대하게 되었을 때는 깨끗하고 철저하게 잊어 검법의 구속을 받지 않아야 한다.

너는 자질이 무척 뛰어나 구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당금 세상에는 대단한 영웅이 있다고는 허허허...... 아마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너는 열심히 무공을 익히도록 해라. 나는 이제 가 봐야겠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었다.

 

[사숙조, 어르신께선...... 어디로 가시려고 합니까?]

풍청양은 말했다.

 

[나는 뒷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미 수십 년을 거기서 살아 왔다. 며칠 전 나는 일시적인 기분으로 동굴을 나와 너에게 이 같은 검법을 전수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고 선배의 절세무공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영호충은 말했다.

 

[원래 사숙조께선 뒷산에서 거주하고 계셨군요. 그거 잘 되었읍니다. 이 사손이 조석으로 받들어 모시며 사숙조님의 외로움을 달래 드리겠읍니다.]

 

풍청양은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다시는 화산파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 너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영호충은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자 풍청양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충아, 나는 너와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마음도 서로 통한다. 말년에 너같이 훌륭한 자제에게 나의 검법을 전수했으니 나는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너의 마음속에 이 사숙조가 존재하는 걸로 나는 만족한다. 네가 나를 찾아 온다면 내가 난처해진다.]

영호충은 마음이 쓰라렸다.

 

[사숙조, 그것은 또 무엇 때문입니까?]

 

풍청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나의 일에 대해서 사부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영호충은 눈물을 머금고 대답했다.

 

[알겠읍니다. 사숙조님의 분부를 받들겠읍니다.]

 

풍청양은 가볍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는 역시 착하다. 착해!]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벼랑 아래로 내려갔다. 영호충도 벼랑가까지 배웅했다. 비쩍마른 뒷모습이 표연히 사라진 이후 그는 슬픔이 북받쳐오르는 것을 느꼈다.

영호충은 풍청양과 십여 일 간 지냈을 뿐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모두 검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풍모는 영호충으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했다. 그는 친근감을 느꼈고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을 느꼈다. 풍청양은 그보다 항렬이 두 단계나 높은 사숙조이지만 영호충은 같은 항렬의 지기를 만난 듯했고 늦게 만나게 된 것이 한스럽게 생각되었다. 은사 악불군 보다도 더욱 풍청양 사숙조에게 정이 갔다.

 

(이 사숙조의 젊었을 때 성격은 아마도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무서운 줄 모르고 멋대로 일을 처리하는 성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검법을 가르칠 때 언제나 사람이 검법을 사용하는 것이며, 검법이 사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며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고, 검법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검법에 구속되어선 안 된다고 하셨다. 이 도리야말로 천번 만번 옳은 말씀이 아닌가?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어째서 한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그는 잠시 생각해 본 이후 결론을 내렸다.

 

(이 도리를 어찌 사부께서 모르고 계시겠는가? 다만 나의성격이 멋대로여서 내가 그 같은 도리를 듣는다면 내가 멋대로 놀아나고 검법을 함부로 익혀서 규칙에 따르지 못할까봐 염려하셨을테지. 이후 검술을 어느 정도 성취하게 된다면 사부는 자연히 설명을 해주실 것이다. 사제와 사매들은 무공의 조예가 부족하니 상승의 검리(劍理)를 모르고 있다. 그들에겐 말해봐야 헛소리에 불과하니 말씀하시지 않을 게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사숙조의 검술은 이미 출신입마의 경지에 도달하셨으니 애석하게도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지 못해 나의 시야를 넓히지 못했구나! 안타깝구나! 어찌 되었든 사숙조의 검법이 사부님보다 한수 더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는 풍청양의 얼굴이 병색을 띄고 있음을 상기했다.

 

(이 십여 일 동안 그는 때때로 한숨을 불어내곤 했다. 매우 슬픈 일이 있는 모양인데 어떤 일인지 모르겠구나.)

 

그는 장검을 들고 나와 검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연마한 이후 아무렇게나 일검을 펼쳤다. 놀랍게도 화산검파의 유봉래의가 아닌가? 그는 어리둥절해졌으나 곧 고개를 흔들며 쓰디쓰게 웃었다. 그리고 중얼거리 듯 말했다.

 

[틀렸다.]

 

곧이어 그는 다시 연마를 했다. 얼마후 아무렇게나 휘두른 일검은 역시 유봉래의였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 생각했다.

 

(나는 본문의 검법을 익숙하도록 연마했기 때문에 이미 내 마음속에 뿌리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다. 검을 펼칠 때 조금이라도 정신을 팔게 된다면 익숙해진 본문의 검초가 섞이게 되니 이것은 결코 독고검법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별안간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숙조께선 내가 펼칠 때 반드시 마음으로 머뭇거리지 말고 순리대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본문의 검법을 펼친다고 안 될 것이 뭐가 있는가? 심지어 형산 태산의 여러 검법과 마교 십장로의 무공을 그 가운데 쓴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다. 만약 억지로 구분하여 어떤 검법을 펼칠 수 있고 어떤 검법은 펼칠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고지식하게 구속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 그는 임의로 초식을 펼쳐냈다. 순조롭게 펼쳐질 때는 본문의 검버은 물론이고 석벽의 여러가지 초식도 섞여 펼쳐졌다. 그는 매우 재미가 났다. 그러나 오악검파의 검법은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마교 십장로의 무공은 더욱 다른 몇개의 문파의 무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그같이 많은 수법이 다른 무학을 한 덩어리로 융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는 한참 동안 연마했으나 시종 융화시킬 수 없었다.

(한 덩어리로 융화시키지 못한다면 또 어떻단 말인가?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어떤 초식이건 분별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검초를 독고구검 가운데 섞어 넣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펼쳐 본 결과 유봉래의를 펼칠 때가 가장 많았다. 다시 한동안 휘두른 후 아무렇게나 일검을 찔러내자 그 일초 역시 유봉래의 였다. 그는 생각했다.

 

(소사매는 내가 유봉래의를 이렇게 펼치는 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구나.)

 

그는 검을 쳐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 며칠 동안 그는 검 술 연마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생각나는 것은 독고구검의 여러가지 변화였다. 이때 갑자기 그는 악영산을 생각하게 되었고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좀처럼 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몰래 임 사제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것일까? 사부님의 명령이 엄하긴하나 소사매는 퍽 대담하고 사모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 어쩌면 검법을 다시 가르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사 가르치지 않는대도 조석으로 만나는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좋아졌을 것이다.)

 

점차 그의 표정이 쓰디쓰게 이그러졌다.

그는 의기소침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이때 육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사형! 대사형!]

 

부르는 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영호충은 깜짝 놀랐다.

 

(아차! 야단났구나! 전백광 그 녀석이 나의 손에 패해 산을 내려갈 때 끝까지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를 이기지 못하자 소사매를 사로잡아가 협박을 하려는 게 아닐까?)

 

급히 벼랑가로 다가가 보니 육후아가 밥바구니를 들고 달려오며 다급하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대...... 대사형! 대...... 대사형! 큰...... 큰일 났소!]

영호충은 더욱 초조해져 재빨리 물었다.

 

[무슨 일이지? 소사매가 어떻게 되었나?]

 

육후아는 벼랑 위로 올라와 밥바구니를 벼랑 위에 놓고 말했다.

 

[소사매? 소사매는 아무 일도 없다오. 그런데 내가 볼 때 사태가 심상치 않소.]

 

영호충은 악영산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을 듣자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인가?]

 

육후아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사부와 사모님께서 돌아오셨소.]

 

영호충은 그를 꾸짖었다.

 

[쳇!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돌아오셨다면 좋은 일 아닌가? 어째서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인가? 터무니없는 소리!]

 

육후아가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대사형께선 모르시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돌아오신 이후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숭산, 형산, 태산의 고수들이 찾아 왔소!]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 오악검파는 연맹을 맺고 있으니 숭산파에서 사부님을 찾아뵙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냐?]

 

육후아는 말했다.

 

[아 아니오...... 대사형은 모르시오. 그들과 함께 따라온 사람이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 화산파의 사람이라고 했소. 그런데 사부님께선 그들을 사형이나 제자라고 부르지 않는다오.]

영호충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어? 그 세 사람은 어떻게 생겼던가?]

 

육후아는 말했다.

 

[한 사람은 5얼굴이 싯누랬으며 성명은 봉불평(封不平)이라고 하였소. 그리고 한 사람은 도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난장이인데 모두 다 부(不)자 배분의 사람들인 것 같았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본문의 반도로서 일찌기 우리 문파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아닐까?]

 

육후아는 말했다.

 

[그렇소. 대사형의 짐작이 맞소. 사부님께선 그들을 보시자 매우 언짢게 여기며 말씀 하셨소. '봉형 그대들 세 분은 이미 화산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또 화산으로 올라왔소?' 그러자 그5 봉불평이라는 사람이 말했죠. '화산을 그대 악사형이 샀소? 남이 산 위로 오르는 것을 막다니요. 아니면 황제가 그대에게 내리신 땅이라도 되오?' 이에 사부님께선 살며시 코웃음치며 응수하셨소. '흥! 여러분들이 화산으로 놀러 왔다면 그대들 마음대로 해도 좋으나 이 악불군은 그대들의 사형이 아니니 악 사형이라는 세 자는 그대로 돌려 드리리다.' 그러자 봉불평이라는 사람이 말했소. '과거 그대의 사부가 음모와 간계로 화산일파를 억지로 차지하게 되었소. 이 묵은 빛을 오늘 따져봐야겠소. ?榴?

가 나에게 악 사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면 흥! 흥! 나중에는 그대가 땅바닥에 끓어 엎드려 나에게 한번 더 불러달라고 애걸하더라도 나는 부르지 않을 것이오.']

 

영호충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사부님께선 정말 귀찮은 일을 당하시는가보다!)

 

육후아는 말했다.

 

[우리 제자되는 사람들은 그 같은 말을 듣자 모두 화가 났지요.

소사매가 가장 먼저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모님께선 이번만큼은 성질을 참으시는 듯했으며 소사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사부님은5 그 세사람을 마음에도 두지 않는 듯 말씀하셨죠. '그대가 빚을 갚겠다고? 어떤 빚을 갚아? 어떻게 갚는다는 것인가?' 그러자 봉불평은 큰 소리로 말했죠. '그대가 화산파 장문의 지위를 찬탈한 지 이미 이십여 년이 되었으니 오늘까지 실컷 해 먹었지 않았소? 그러니 이제 마땅히 양보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사부님은 웃으셨소. '여러분이 떼를 지어 화산으로 달려온 것은 알고 보니 불초의 장문 자리를 빼앗겠다는 것이군! 그거야 뭐 대단할 것이 있소? 봉형이 만약 이 장문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5면 불초는 마땅히 양보해 드리리다.' 그러자 그 봉불평은 말했죠. '과거 그대의 사부가 음모와 간계로 본파 장문의 지위를 찬탈한 사실에 대해 오악검파의 좌맹주께서는 묵과하지 않으셨소. 그 분은 영기를 보내시어 화산파의 장문을 교체하라고 하셨소.' 그러면서 그는 품 속에서 한 자루의 조그만 깃발을 꺼내 펼쳤어요. 정말 오악령기였다오.]

 

영호충은 노해 부르짖었다.

 

[좌맹주는 너무 지나치시군! 우리 화산파의 일을 그가 간섭할 까닭이 어디 있어? 그가 무슨 권력을 가졌기에 화산파의 ?亮??폐하고 세우는 것이지?]

 

육후아는 말했다.

 

[바로 그거외다. 사부님께서도 그 당시 그와 같이 말씀하셨소.

그러나 숭산파의 늙은이 선학수 육백은 애써 봉불평의 뒤를 밀어 주는 것이었소. 그리고 화산파의 장문은 마땅히 그 봉가가 해야 된다고 하면서 사모님과 언쟁을 벌였죠. 태산파와 형산파의 두 사람도 정말 울화가 치밀게 만들더군요. 역시 봉불평과 한 패거리였소. 그들 세 파는 한 통속이 되어 화산파를 괴롭히려고 온 것이외다. 다만 항산파에서만 참가하지 않았읍니다. 대...... 5 대사형, 저는 사태가 심상치 않아서 재빨리 달려와 대사형께 알린 것입니다.]

 

영호충은 부르짖었다.

 

[사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 제자되는 사람은 한 가닥 숨만 붙어 있다면 사부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 여섯째 사제, 가세.]

 

육후아는 말했다.

 

[옳아요. 사부님께선 대사형이 사부님을 위해 손을 쓰는 것을 보면 벼랑 아래로 내려왔다고 꾸짖지 않으실 거예요!]

 

영호충은 나는 듯 벼랑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꾸짖으셔도 상관 없어. 사부님은 예의 바른 5군자시니 남과 다투는 것을 싫어하셔. 어쩌면 정말 장문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 줄지도 모르지. 그러면 큰일 아닌가?......]

그는 경신법을 펼쳐 질풍같이 달렸다.

영호충은 한참 달려갈 때 맞은편 언덕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영호충! 영호충! 그대는 어디 있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 누가 나를 부르시오?]

 

그러자 몇 사람이 일제히 외쳤다.

 

[그대가 영호충인가?]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소!]

 

별안간 두 사람의 모습이 흔들하더니 길 앞을 막아섰다. 산길은 매우 ?何老杉? 바로 옆은 만장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였다. 두 사람이 느닷없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영호충은 하마터면 부딪칠뻔 했다. 그들 두 사람의 얼굴은 울퉁불퉁했으며 주름이 잔뜩 잡혀 있어 무척 흉칙했다. 깜짝 놀란 영호충은 뒤로 일장 정도 몸을 날리며 호통쳤다.

 

[누구시오?]

 

그런데 등 뒤에도 추하기 이를데 없는 두 얼굴이 보였다. 뚱뚱했으며 얼굴엔 잔뜩 주름이 져 있었다. 그들은 영호충과 반 자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으며 두 사람의 코가 그의 코와 맞닿을 정도였다.

영호충은5 다시 깜짝 놀라서 옆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고 보니 산길 아래의 낭떠러지 끝에 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도 다른 네 사람처럼 흉칙했다. 별안간 여섯 명의 괴인을 만나게 되자 영호충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삽시간에 여섯 명의 괴인들에 의해 석 자도 되지 않는 산길에서 에워싸였다. 그들은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앞쪽의 두 사람의 숨결이 곧장 그의 얼굴에 뿜어질 정도였다. 뒷덜미에도 뜨거운 김이 훅훅 뿜어지는 것이 뒤의 두 사람 역시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 수 ?羚駭? 그는 재빨리 손을 뻗쳐 검을 뽑아들려고 했다.

그런데 손가락이 검자루에 닿는 순간 여섯 명의 괴인들은 반 걸음씩 내딛어 한복판으로 밀려왔다. 그들은 영호충을 꼼짝 못게 몸으로 밀어 붙였다. 이때 육후아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것 봐요! 이것 봐요! 당신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오?]

아무리 영호충이 임기웅변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찰나 만큼은 놀란 나머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여섯 명의 괴인은 도깨비 같기도 했고 유령 같기도 했다. 얼굴 모습이 흉칙할 뿐 아니라 행5동마저도 이상야릇했다. 영호충은 두 팔을 바깥쪽으로 힘주어 밀어내면서 앞에 선 두 사람을 밀치려고 했다. 그러나 두팔은 두 사람의 몸에 밀착되어 있어 조금도 바깥쪽으로 밀어낼 수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반드시 봉불평과 한패거리의 악당들일 것이다.)

 

이때 전신이 바짝 조여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네 사람의 괴인이 더욱 더 몸을 붙여온 것이었다. 바짝 붙여 오자 영호충의 뼈마디에선 '우두둑'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영호충은 감히 눈 앞 괴인들의 흉칙한 모습을 바5라볼 수 없었다. 급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뾰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영호충! 우리는 너를 한 젊은 여승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알고보니 전백광이라는 녀석과 한패거리였구나!)

 

그는 말했다.

 

[당신들이 날 놔주지 않는다면 나는 자살을 하겠소. 영호충은 죽는다 해도......]

 

그의 두 팔이 조여졌다. 그의 팔을 움켜쥔 손은 마치 쇠갈고리와 같았다. 영호충은 헛되이 독고구검을 배웠을 뿐 일초 반식도 펼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야단났다'고 부르짖을 때5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착하디 착한 여승이 너를 보고 싶어한다. 말을 잘 들으면 너 역시 착한 사람이 된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죽으면 좋지 않아. 만약 그대가 자살을 하게 된다면 나는 그대에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큰 고통을 내리겠다.]

 

먼저번의 그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 죽어버리고 없는데 네가 어떻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내릴 수 있다고 그러지? 그런 말을 하면 그가 놀라지 않아?]

 

먼저번의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겁을 주려는 거야. ?苛?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니?]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내 생각엔 그에게 권고하여 말을 잘 듣도록 타이르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먼저 말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겁을 주겠다고 했으니 겁을 주어야겠다.]

 

다른 한 사람은 말했다.

 

[아니야! 권고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언쟁을 벌이며 티격태격했다.

영호충은 놀라는 한편 울화가 치밀었다. 그들이 그같이 입씨름을 하는 걸 보고 그는 생각했다.

 

(이 여섯 명의 괴인은 무공은 고강하지만 우둔한 것 같다.)

5 그는 큰 소리가 부르짖었다.

 

[겁을 주어도 좋고, 권고해도 좋소! 그대들이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말겠소!]

 

그 순간 갑자기 두 뺨이 아파왔다. 어느덧 괴인들이 그의 두 뺨을 움켜 잡은 것이다. 그러자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 왔다.

 

[이 녀석은 무척 뻔뻔스럽군! 혀를 깨물어 말을 못하게 되면 그 젊은 여승이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혀를 깨물고 죽었는데 어찌 말만 못하겠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꼭 죽는?鳴煮?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으면 네가 혀를 깨물어 보렴.]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죽는다고 했다. 그러니 네가 깨물어 보렴.]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내가 왜 내 혓바닥을 깨물어? 아 되었다. 저 녀석 보고 깨물도록 하면 되겠군!]

 

다음 순간 육후아가 '아' 하는 큰 소리를 냈다. 아마도 그 괴인들에게 붙잡힌 모양이었다. 곧 한 사람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너의 혓바닥을 깨물어봐라. 죽는지 아니면 죽지 않는지, 깨물어! 빨리 깨물어! 깨물어!]

 

5육후아가 말했다.

 

[나는 깨물지 않겠소! 깨물면 반드시 죽게 되오!]

 

한 사람이 말했다.

 

[맞아! 혓바닥을 깨물면 반드시 죽게 돼! 그도 그와 같이 말하고 있잖아?]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죽은 것도 아닌데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는거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혓바닥을 깨물지 않았으니 죽지 않았지. 깨물기만 하면 죽는거야.]

 

영호충은 두 팔에 힘을 주어 떨쳐내려고 했다. 그런데 손목이 부러질 듯 아파올 뿐 조금도 상대방을 밀쳐낼 수 없었다. 그는 다급5한 김에 큰 소리를 낸 후 기절한 척 가장했다. 여섯 명의 괴인들은 일제히 부르짖었다. 그리고 영호충의 뺨을 쥐고 있던 사람도 물러섰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은 놀라 죽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놀라 죽지는 않았을거야!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설사 죽었다 해도 놀라서 죽은건 아닐거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은 걸까?]

 

육후아는 정말 대사형이 그들의 손에 죽은 줄 알고 대성통곡을 했다.

5 한 사람의 괴인이 말했다.

 

[나느 그가 놀라 죽었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네가 너무 힘껏 쥐어서 죽은 거야. 놀라서 죽는 사람은 없어!]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죽었을까?]

 

영호충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스스로 경맥을 폐쇄하여 자살했다!]

 

여섯 명의 괴인들은 그가 말을 하자 깜짝 놀라더니 일제히 말했다.

 

[아, 원래 죽지 않았구나! 그는 죽은 척한거야!]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죽은 척한 게 아니다.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난 것이5오.]

한 괴인이 말했다.

 

[그대는 정말 경맥을 스스로 폐쇄할 줄 아는가? 그 무공은 연마하기가 퍽 힘들다는데 그대가 나에게 좀 가르쳐 주지 그래.]

그러자 다른 한 명의 괴인이 말했다.

 

[그 경맥을 스스로 폐쇄하기는 심히 어려워요. 이 녀석은 알지 못할거야. 그는 너를 속이는 거야.]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모른다고 누가 그러시오? 내가 모른다면 조금 전 어떻게 경맥이 폐쇄되어 죽었겠소?]

 

그 괴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건...... 좀 이상하군!]

 

5 영호충은 이 여섯 괴인이 무공은 무척 고강하나 두뇌는 우둔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경맥을 폐쇄하여 죽을 것이오. 이번엔 다시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오.]

 

그의 손목을 잡고 있던 두 괴인은 대뜸 손목을 놓으며 말했다.

 

[그대는 죽으면 안 돼! 죽으면 큰일이 나!]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죽지 않을테니 당신네들은 길을 비키시오. 중요한 일이 내게 있소.]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두 사람은 고개를 일제히 왼쪽으로 흔들었다가 오른쪽5으로 흔들며 말했다.

 

[안 돼! 안 돼! 그대는 나를 따라가 젊은 여승을 만나봐야 돼.]

영호충은 눈을 뜨고 몸을 솟구쳐 그들의 머리를 뛰어 넘으려고 했다. 그런데 두 괴인은 동시에 그를 따라 뛰어오르는데 동작이 기이하도록 빨랐다. 두 사람의 몸뚱이는 날아다니는 담장처럼 재차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영호충은 두 괴인의 몸과 부딪쳐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몸이 헉허공에 떠올랐을 때 검자루를 쥐고 팔을 바깥쪽으로 뻗치며 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별안간 어깻죽지가 무거워5졌다. 그의 등 뒤에 두 괴인이 각기 한손을 밀어 그의 어깨를 잡은 것이었다. 그의 장검은 칼집에서 겨우 한 자 정도 뽑혀졌는데 더 이상은 뽑혀지지 않았다.

그의 어깻죽지를 누르고 있는 힘은 수백 근이나 되었기 때문에 그는 쭈그려 앉았다가 급기야 엎어지고 말았다.

괴인들은 그를 쓰러뜨린 후 일제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떠메고 가세.]

 

그러자 앞에선 이괴(二怪)가 각기 발목을 잡고 그를 덜렁 들어 올렸다. 육후아가 소리쳤다.

 

[이것 봐요! 이것 봐요! 당신들은 무엇하자는 것이요?]5

한 괴인이 말했다.

 

[이 녀석은 왜 말이 많지? 죽여 버려!]

 

그리고 손을 육후아의 정수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영호충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죽이면 안 되오! 죽이면 안 되오!]

 

그러자 그 괴인은 말했다.

 

[좋아. 네 녀석의 말대로 죽이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혈을 짚어 말을 못하게 해야지.]

 

그는 몸을 돌리지 않고 손을 뒤로 돌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육후아의 아혈을 짚었다. 육후아는 한참 부르짖고 있었다. 그러나 '아' 하는 소리를 지르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누가 ??개의 가위로 그가 부르짖는 소리를 잘라 놓은 것 같았다. 곧이어 그의 몸뚱아리는 한 덩어리로 움츠러 들었다. 영호충은 그 괴인의 점혈수법이 정확하고 고강한지라 흠모하는 마음이 일어 칭찬했다.

 

[훌륭한 무공이군!]

 

그 괴인은 의기양양해 웃었다.

 

[이게 뭐가 대단해? 나에겐 많은 무공이 있는데 그대에게 몇가지 보여주기로 하지.]

 

만약 평소였다면 영호충은 구경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부님의 안위가 걱정되어 초조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부르짖었다.

 

[?망?않겠소!]

 

그 괴인은 노해 말했다.

 

[어째서 보지 않겠다는 것인가? 나는 반드시 보여줘야겠다.]

몸을 훌쩍 날려 영호충을 잡고 있는 네 괴인의 머리를 뛰어 넘었다. 몸은 허공에서 비스듬히 수평이 되어 앞으로 나갔다. 그 모습은 날렵한 제비와 같았고 그 자세의 미묘함은 형용할 수 없었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칭찬의 말을 했다.

 

[훌륭하오!]

 

그 괴인은 가볍게 땅에 내려섰는데 먼지 하나 피어오르지 않았다. 괴인은 몸을 돌리더니 말처럼 기다란 얼굴에 잔뜩 웃음을 띄우고 ?뽀杉?

 

[이것은 별 게 아니야! 더욱 좋은 것이 있다고!]

 

이 사람의 나이는 적어도 육칠십은 돼 보였는데 성격은 마치 어린애와 같았다. 남의 칭찬을 받자 좋아 어쩔줄 모르는 눈치였다.

무공의 고명함과 심후함은 두뇌의 유치함이나 천박함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지금 한찬 대적(大敵)들에게 에워싸여 난처한 지경에 놓여 있겠지? 거기다 상대방은 숭산 및 태산파의 고수들의 도움도 받고 있으니 내가 달려가도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괴?琯湧?꼬드겨 사부님과 사모님의 위기를 타개해야겠다.)

 

그는 즉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신들의 재간을 이곳에서 자랑하기엔 아직도 멀었소.]

그 사람은 말했다.

 

[뭐가 아직도 멀어? 그대는 우리들에게 잡히지 않았는가?]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화산파의 무명소졸이니 나륵띵 잡는 것은 쉬운 노릇이오.

지금 이 산에는 태산, 형산, 숭산, 화산의 각파 고수들이 모여 있는데 당신들이 어찌 감히 그들을 건드릴 수 있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건드리면 건드리는 거야!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들은 어디 있지?]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내기에서 젊은 여승을 이겼고 그 젊은 여승은 우리들 보고 이 녀석을 잡아오라고 했지. 우리 보고 숭산이나 태산의 고수들을 잡아오라고 하지는 않았어. 한번 이겼을 때마다 한번의 부탁을 들어줘야지, 여러가지의 일을 해주면 손해가 크단 말이야.

우리는 그냥 돌아가자.]

 

영호충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원래 이들은 의림 소사매가 보낸 것이니 나의 적이 아니다. 이들은 내기에 져서 나를 잡으러 온 것인데 호승심이 강해 내기에 이겼다고 하는군!)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았소. 그 숭산파의 고수는 말했소. '귤껍질 같은 얼굴 가죽에 말상을 한 늙은 괴물들을 나는 업수이 여기며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즉시 손을 뻗쳐 그들을 마치 개미처럼 눌러 죽이겠다.' 라고 했소. 그러나 그 여섯 며의 괴인들은 그 소리만 듣고도 도망을 쳐버리니 그 숭산파의 고수가 어떻게 그들을 찾아낼 수 있겠소?]

 

여섯 명의 괴인들은 그 소리를 듣자 울화가 치미는 듯 버럭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그리고 영호충을 떠메고 가던 네 괴인도 너 한 마디 나 한마디씩을 하며 나섰다.

 

[그 사람들이 어디 있지? 우리를 안내해라. 그들과 한번 겨뤄 봐야겠다.]

[뭐가 숭산파 태산파야? 도고육선(挑谷六仙)은 정말 그들을 안중에 두지 않아. 그 사람은 간이 부었군! 우리들을 개미처럼 눌러 죽이겠다고?]

[그대들은 도곡육선이라고 자칭하지만 그는 말끝마다 그대들을 도곡육괴(挑谷六?)라고 했으며 어떤 때는 도곡의 여섯 꼬마들이라고 불렀소. 그러니 육선이라는 분들, 내가 권고하건대 일찍 피하는게 좋을거요. 그 사람의 무공은 굉장히 무서워서 당신들도 그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오.]

 

한 괴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안 되겠어! 안 되겠어! 곧장 가서 결판을 내야겠어!]

다른 한 괴인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상태가 심상치 않은걸? 그 숭산파의 고수가 큰 소리치는 것으로 보아 놀라운 기술이 있는가봐! 그가 우리를 도곡의 여섯 꼬마라고 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우리들의 선배일꺼야.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를 이길 수 없을거야. 한 가지 일이 많아지는 것은 한 가지 일이 없어지는 것보다 나빠. 우리들은 빨리 돌아가야 돼.]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여섯째 아우는 가장 담이 적군! 싸워보지도 않고 그가 이긴다고 하면 안 되지. 암! 안 되고말고!]

 

그러자 그 괴인은 말했다.

 

[만약 그가 우리들을 개미처럼 눌러 죽인다면 운수사나운 일이 아니겠어? 싸운 이후 그에게 눌려 죽게 되면 어떻게 도망을 치지?]

 

영호충은 속으로 우스꽝스러웠으나 입을 열었다.

 

[맞았소. 그대들은 빨리 도망치시오. 그 사람이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면 그대들은 도망칠래야 칠 수가 없을 것이오.]

 

그 담이 적은 괴인은 그 말을 듣자나는 듯 달렸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생각했다.

 

(저 사람의 경신법은 정말 뛰어나구나!)

 

그러자 한 괴인이 입을 열었다.

 

[여섯째 동생은 겁이 많으니 도망치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그 숭산파의 고수를 한번 만나보자구!]

 

곧이어 네 괴인도 덩달아 부르짖었다.

 

[갑시다! 도곡육선은 천하무적인데 어지 그를 두려워하겠소?]

한 괴인이 영호충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 주라. 그가 어떻게 우리를 개미처럼 눌러 죽이는지 봐야겠어.]

 

영호충은 말했다.

 

[그대들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건 상관없지만 이 영호충은 당당한 사내대장부로 결코 남의 협박을 받기 싫소. 나는 그 숭산파의 고수가 그대들을 크게 비웃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오. 그대들 여섯분의 무공이 고강하여 나는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있다오. 하지만 그대들이 사람 수가 많은 것을 믿고 억지로 나에게 이것해라 저것해라 시킨다면 이 영호충은 절대로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오.]

 

다섯 명의 괴인은 동시에 손뼉을 치며 부르짖었다.

 

[매우 좋아! 그대는 뼈대가 있고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어! 우리 여섯 형제의 무공이 고강한 것을 알아보니 우리도 탄복하는 바일세.]

 

영호충은 말했다.

 

[그렇다면 난 그대들을 데리고 가겠소. 그러나 그를 만났을 때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아무렇게나 일을 처리해선 안 되오. 그러면 무림의 영웅호한들은 도곡육선이 천박하고 유치하며 세상일을 모른다고 비웃게 될 것이외다. 모든 점에서 나의 지시를 따르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오. 창피막심하게 된다면 좋지 않죠.]

 

그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보려고 그런 말을 했다. 그런데 오괴는 그 말을 듣고 무작정 응낙하고 나섰다.

 

[그거야 더 말할 나위도 없어. 우리는 결코 남이 도곡육선을 천박하고 유치하며 세상 일을 모른다고 말하도록 함부로 까불지 않을거야.]

 

아마도 천박하고 유치하고 세상일을 모른다는 말을 도곡육선은 여러번 들어본 것 같았다.

영호충은 말했다.

 

[좋소. 여러분들은 나를 따라 오시오.]

 

그리고 그는 재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갔다. 오괴는 그 뒤를 따랐다.

수 마장을 나가지 않아 그 담이 적은 괴인이 바위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호충은 이 사람에게도 반드시 용기를 돋우어줘야 되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숭산파의 그 늙은이의 무공은 당신보다 훨씬 떨어지니 두려워 할 것 없소. 우리 모두 그를 찾아 따지러가는 길이니 그대도 함께 갑시다.]

 

그 사람은 크게 기뻐했다.

 

[같이 가지!]

 

그러나 그는 곧이어 물었다.

 

[그대는 그 늙은 고수가 훨씬 뒤떨어진다고 했는데 그가 평범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고명한 것인가?]

 

이 사람은 담이 적을 뿐 아니라 매우 조심성이 많았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대가 고명한 것이오. 조금 전 그대의 경신법은 훌룡했소. 숭산파의 그 늙은 고수도 당신을 뒤쫓아 잡지는 못할 것이오.]

 

그 사람은 크게 기뻐 그의 곁으로 다가왔으나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물었다.

 

[만약 그가 나를 뒤쫓아오면 어떻게 하지?]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그대 곁에서 한 걸음도 떠나지 않겠소. 그대를 쫓아온다면 흥!]

 

영호충은 검을 반자정도 뽑았다가 '탁' 하고 검집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나는 단 일검에 그를 죽여버리겠소.]

 

그 사람은 크게 기뻐 말했다.

 

[정말 좋아! 좋았어! 그대는 한 말을 반드시 지켜야 돼!]

영호충은 말했다.

 

[그거야 물론이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대를 뒤쫓지 못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지 않겠소.]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가 나를 뒤쫓지 못한다면 그대는 그냥 내버려 두게나.]

 

영호충은 웃음을 참아야 했다.

 

(당신이 힘껏 도망치면 그 누가 당신을 잡을 수 있겠소.)

그리고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여섯 명의 노인은 성격이 단순하고 악한 것 같지가 않구나.

사귀어 두어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불초는 오래 전부터 여섯분의 대명을 많이 들어 왔소. 그런데 오늘 만나뵙게 되니 과연 훌룡하신 분들이군요. 여섯 분의 존성 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여섯명의 괸인들은 영호충이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다. 영호충이 오래 전부터 대명을 들었다는 말에 흐뭇해져 어쩔 바를 모르고 말했다.

 

[나는 큰형으로서 도근선(挑根仙)이라고 한다네.]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둘째로서 도간선(挑幹仙)이라네.]

 

또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세째인지 네째인지 잘 모르지만 이름은 도지선(挑枝仙)이라네.]

 

그리고 다른 한 괴인을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그도 세째인지 네째인지 모르는데 이름은 도엽선(挑葉仙)이라고 한다네.]

 

영호충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대들은 누가 세째형이고 네째형인지 자신들도 모르고 있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오?]

 

도지선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잊어버리셨어.]

 

도엽선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대의 어머니가 그대를 낳게 되었을 때 만약 그대를 낳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셨다면 그대는 그 당시 갓난아이에 불과했을 터이니, 이 세상에 그대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모르고 있었을거야!]

 

영호충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옳은 말씀이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나라는 사람을 낳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셨소.]

 

도엽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영호충은 물었다.

 

[그런데 그대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떻게 잊어버리게 되었소?]

도엽선은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우리들을 낳았을 때 누가 크고 작은지 알고 계셨지. 그런데 몇 년 지나게 되었을 때 잊어버렸던 거야. 우리도 누가 세째인지 네째인지 모르게 되었고.]

 

그는 도지선을 손짓해 보이며 말했다.

 

[그는 자기가 세째라고 우겪지. 나느 그에게 양보해 주었어.]

영호충은 말했다.

 

[알고보니 두 분은 형제였군요?]

 

도지선은 말했다.

 

[맞아. 우리들은 여섯 형제야.]

 

영호충은 생각했다.

 

(그처럼 멍청한 부모이니 이 같은 멍청이들을 낳은 것도 무리는 아니군!)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되시오?]

 

담이 적은 괴인이 말했다.

 

[내가 말하지. 내가 여섯째야. 나는 도실선(挑實仙)이야. 우리 다섯째 형은 도화선(挑花仙)이라고 해.]

 

영호충은 참을 수 없어 '픽' 하고 웃었다.

 

(도화선의 모습이 저토록 추악한데 어째서 도화라는 이름을 붙였다지?)

 

도화선은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기뻐서 말했다.

 

[여섯 형제들 가운데 나의 이름이 가장 아름답지? 그 누구의 이름도 나의 이름과는 비교도 되지 않잖아?]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도화선이라는 석자는 듣기에 아름답소. 그러나 도근, 도간, 도지, 도엽, 도실 다섯 이름도 모두 듣기가 좋구료. 정말 잘 지었소! 잘 지었소! 만약 내게도 그같이 아름다운 이름이 있었다면 기뻐서 죽었을 것이오.]

 

도곡육선은 우쭐해졌다. 그들은 손과 발을 들썩거렸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춤이라도 출 것 같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호충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 빨리 갑시다. 그리고 어느 도형께서 나의 사제의 혈도를 풀어 주시겠소? 그대들의 점혈수법이 너무나 고강해 나는 풀 수가 없구료.]

 

도곡육선은 다시 추켜 올려주는 말을 듣자 우르르 몰려가 다투어 육후아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사과애에서 화산파의 건물까지는 산길로 쳐서 십리 남짓했다.

육후아를 제외하면 모두 발걸음이 빨라 삽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정기당(正氣堂) 밖에 이르자 노덕약, 양발, 시대자, 악영산, 임평지 등 수십 명의 사제와 사매들이 모두 정기당 밖에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조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대사형이 달려오자 모두들 기뻐했다.

노덕약은 총총히 달려 나오며 말했다.

 

[대사형,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지금 손님들을 접대하고 계십니다.]

 

영호충은 도곡육선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가서 구경을 하고 올테니 여섯 친구분은 이 일에 끼어들지 마십시오.]

 

영호충은 객청(客廳)으로 다가가 창문에 구멍을 뚫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악불군과 악 부인이 손님을 맞이할 때 제자가 몰래 엿본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화산파가 중대 위기를 맞이했기 때문에 영호충은 그런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영호충은 대청 안을 살펴 보았다.

손님을 맞는 자리에는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맨 윗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한 손에 오악검파(五嶽劍派)의 영기(令旗)를 들고 있었다.

바로 숭산파의 선학수(仙鶴手) 육백(陸柏)이었다.

육백 다음으로 한 중년의 도인(道人)과 오십여 세의 노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복장의 색깔로 볼 때 태산파와 형산파의 인물 같았다.

그들의 아래로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모두 오십여 세 정도로 보였고 허리에는 화산파의 패검(佩劍)을 차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누렇게 뜬 얼굴 피부를 지니고 있었고, 두 눈에서는 흉흉한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육후아가 말했던 봉불평(封不平) 같았다.

사부와 사모는 손님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형산파의 노인은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맛을 본 후 '탕!' 소리가 나도록 다시 내려 놓으며 말했다.

 

[악형(岳兄), 화산파의 일에 다른 사람이 참견하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오. 그러나 오악검파는 결맹을 맺은 사이가 아니겠소? 마땅히 영광과 치욕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할 것이외다. 따라서 화산파의 일은 오악검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따라서 우리 숭산파, 태산파, 형산파가 이 일에 개입하게 되었소이다.]

 

그 노인의 눈동자는 노란색이었다. 황달병에 걸린 인물 같았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원래 그들은 사부님께서 장문인의 직위에서 물러나라고 강요하러 왔군!)

 

이때 악 부인은 말했다.

 

[노사형(魯師兄)의 말씀은 마치 우리 화산파가 일을 잘못 처리하여 오악검파 전파의 명성을 추락시켰다고 헐뜯는 것 같군요.]

그 노인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소문을 들으니 영여협(寧女俠)께서 화산파의 실권자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군!]

 

악 부인은 발끈하여 소리쳤다.

 

[흥! 형산파의 노 사형은 강호에 이름 높은 영웅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헛소문이었군! 나는 막대선생에게 그대의 무례함에 대해 따져야겠어요.]

 

그 노인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나를 죽여야 속이 시원한 듯이 노기 등등하군! 덤빌테면 덤비시구료!]

 

악 부인은 말했다.

 

[나는 그대와 싸우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해요. 우리 화산파가 귀파의 일에 간섭한 적이 있던가요? 형산파에는 마교(魔敎)와 결탁한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어요.]

 

형산파의 유정풍과 마교의 곡장로가 친교를 맺었다가 오악검파 가운데 하나인 숭산파에 의해 죽게 된 사실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악 부인은 은근히 그 일을 들추어 형산파의 인물이 화산파의 일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빗대어 말한 것이었다.

노씨 성의 인물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냅다 호통을 내질렀다.

 

[화산파에는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못된 제자가 없었단 말인가? 오늘 우리가 화산에 온 이유는 바로 공도(公道)를 지켜 봉대형(封大兄)이 문호(門戶)를 정리하고 간사한 무리를 깨끗이 몰아내는 일을 도와주려는 것이오!]

 

악 부인은 검자루를 잡으며 싸늘히 말했다.

 

[누가 간사한 무리라는 거요? 내 남편 악불군은 외호가 군자검(君子劍)이예요. 간사한 사람이 군자라고 불리운 적이 있는가요.

당신의 외호는 어떻게 되시죠?]

 

노씨 성을 가진 노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그는 흉흉한 눈길로 악 부인을 노려볼 뿐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영호충은 옆에 있던 노덕약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저 사람의 더러운 외호는 무엇인가요?]

 

노덕약은 화산파에 입문하기 전에 오랫동안 강호에서 활동을 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견문이 넓었기 때문에 얼른 대답했다.

 

[저 노인의 이름은 노연영(魯連榮)입니다. 외호는 금안조(金眼?)라고 하죠. 그러나 말이 많고 남을 비방하기를 즐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없는 곳에서는 금안오아(金眼烏鴉 : 누런 눈을 가진 까마귀와 거위)라고 하죠.]

 

영호충은 빙그레 웃었다.

 

(매우 적합한 외호로구나! 비록 그가 없는 곳에서만 불렸다고 하지만 그 역시 그런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으렸다? 하하하...... 사모님께서 외호를 물어보신 것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것이었군!)

 

이때 노연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군자검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군자라는 두 글자 앞에 거짓 위(僞)라는 한 글자를 첨가해야 마땅하지!]

 

영호충은 노연영이 사부를 욕하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외쳤다.

 

[누런 눈을 가진 까마귀야! 이리 굴러 나와라!]

 

악불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이 어찌해서 사과애에서 내려왔지?)

 

악불군은 이어 큰 소리로 꾸짖었다.

 

[충아야, 무례해서는 안 된다. 노사백(魯師伯)은 멀리서 오신 손님이다. 네 어찌 상하(上下)를 구별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노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영호충이 형산성 밖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욕설을 퍼부었다.

 

[누군가 했더니 원래 형산성에서 창녀와 놀아났던 녀석이었구나. 화산 문파는 과연 깨끗하군! 암! 깨끗하고 말고!]

 

영호충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맞소. 나는 형산성에서 갈보를 데리고 놀았소. 그 갈보의 성은 바로 노(魯)씨였지. 하하하......]

 

악불군은 노해 부르짖었다.

 

[계속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노연영은 갑자기 몸을 날려 창문으로 다가서더니 발길로 창문을 걷어차 부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창 밖에 늘어서 있는 여러 화산파의 제자들을 보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방금 지껄인 짐승이 누구냐?]

 

화산파의 제자들은 침묵을 지킬 뿐 대답하지 않았다.

노연영은 또 다시 욕을 퍼부었다.

 

[제 에미...... 방금 지껄인 짐승이 어디 있느냐?]

 

영호충은 한 걸음 나서며 빙그레 웃었다.

 

[방금 지저귄 짐승은 바로 당신이 아니오? 그런데 당신이 어떤 짐승인지는 우리도 모르겠구료.]

 

노연영은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일성노갈을 터뜨리며 검을 뽑아들고 영호충을 향해 덮쳐갔다.

영호충은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이때 번쩍하며 한 사람이 대청에서 쏘아 나왔다. 동시에 은광(銀光)이 눈부시게 빛나며 노연영을 향해 공격해갔다. '창창' 하는 소리가 잇달아 울려퍼졌다.

바로 악 부인이었다.

그녀가 대청에서 쏟아져 나와 검을 뽑고 공격하는 동작은 눈깜짝할 찰나에 이루어졌으며 그때의 자태는 몹시 민첩하면서도 우아했다.

악불군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 한 집안 사람이니 싸우지 말고 말로 합시다.]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와 손가는대로 노덕약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허공에 한 번 원을 그리며 휘두르더니 노연영과 악 부인이 검을 겨루고 있는 중앙을 향해 내려 눌러 갔다.

노연영은 팔에 힘을 주고 위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조금도 들어올릴 수가 없는지라 얼굴을 붉혔다.

악불군은 웃으며 말했다.

 

[오악검파는 한 집안과 다름이 없소. 노 사형은 철 없는 아이의 말에 화를 내지 마시구료.]

 

 

이어 영호충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격렬한 어조로 꾸짖었다.

 

[너는 헛소리를 지껄이고도 여전히 노사백께 배례를 올리지 않는구나!]

 

영호충은 사부의 말을 듣고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한 번 아래로 숙였다가 쳐들며 말했다.

 

[노 사백, 제자가 눈이 멀어 냄새 나는 까마귀 새끼처럼 재잘거렸으니 정말 나는 짐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까마귀라고 한 것은 결코 어르신을 가리켜 욕한 게 아니랍니다. 어르신은 버젓한 사람이지 까마귀가 아니잖아요? 나는 어디선가 까마귀가 지저귀고 거위가 꽥꽥 소리를 지르기에 그 짐승들을 욕했던 거랍니다. 결코 노 사백을 욕한 게 아니죠.]

 

영호충은 여전히 까마귀가 어쩌구 저쩌구 하며 노연영을 조롱했다. 그러나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어 그의 얼굴만 보고는 그말이 진정인 것처러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악영산은 참지 못하고 '킥' 하고 웃었다.

이때 악불군이 검을 거두자 노연영은 힘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의 검은 대뜸 하늘을 향해 꼿꼿이 곤두서고 말았으며 하마터면 자신의 눈을 찌를 뻔했다.

이어 '째앵' 하는 소리와 함께 악 부인과 노연영의 장검이 중간에서 부러져 땅 위로 떨어졌다.

악불군이 내력을 거둘 때 암암리에 재주를 부린 것이었다.

노연영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공이 악불군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며 악불군을 노려보았다.

 

[그대는...... 제법이구료!]

 

말을 마치자 검을 쥔 채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때 악불군은 영호충의 뒤에 서 있는 도곡육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생김새가 괴이하기 짝이 없는지라 그는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공손히 읍을 했다.

 

[여섯 분이 화산에 오셨군요. 멀리 나가서 배웅하지 못한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곡육선은 악불군을 멍하니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함부로 말을 하다가 남으로부터 유치하다는 말을 들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호충이 얼른 나섰다.

 

[이분은 나의 사부님이십니다.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으로 계시는 악(岳)......]

 

그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봉불평이 불쑥 끼어들었다.

 

[네 사부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할 수 없다. 악 사형, 당신이 방금 펼칠 자하공(紫霞功)은 매우 훌룡했소. 하지만 기공(氣功)으로는 화산문파를 영도할 자격이 없소. 오악검파는 말 그대로 검파(劍派)가 아니겠소? 그러니 검공(劍功)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이오. 당신은 기공을 수련했는데 그야말로 마도(魔道)로 빠지는 지름길을 당신은 걷고 있는 것이오. 그것은 화산파의 정종심법(正宗心法)이 아니라오.]

 

악불군은 말했다.

 

[봉형은 말을 삼가하시오. 오악검파가 검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외다. 그러나 어떤 검파라고 하더라도 이기어검(以氣御劍)을 중시하지 않소? 기(氣)로써 검(劍)을 제어하는 게 당연하단 말씀 이외다. 검술은 외학(外學)이고 기공(氣功)은 내학인 바 모름지기 내외무학을 함께 갈고 닦아야 할 것이외다. 봉형의 말처럼 검술만 수련한다면 내가고수(內家高手)를 만났을 때 당해내기 힘들 것이외다.]

 

봉불평은 냉소했다.

 

[그렇지 않지요. 천하에서 가장 좋은 것은 구류삼교(九流三敎), 의복성상(醫卜星相), 사서오경(四書五經), 십팔반무예(十八盤武藝)를 한 몸에 갖추는 것이외다. 도법(刀法)도 좋고 창법(槍法)도 좋으며 두각을 나타내기만 하면 나쁘다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사람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오. 어찌 한 사람이 그 많은 재간을 모조리 익힐 수가 있겠소. 한 사람이 검법을 익히는데도 평생이 걸리는데 또 무슨 방문좌도(旁門左道 : 너저분한 문파의 그릇된 무예)의 기술을 익힐 여가가 있단 말이오? 나는 기공을 수련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았소. 다만 화산파의 정종무학(正宗武學 : 올바른 문파의 올바른 무예)은 검법이라고 했을 뿐이오. 당신이 방문좌도의 무공을 섭렵하려고 한다면 하시구료. 마교(魔敎)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익히려고 해도 다른 사람은 말리지 못할 것이외다. 하물며 기공(氣功)을 익히는데 그 누가 간섭을 하겠소이까? 그러나 당신은 알아야 하오. 평범한 사람은 많은 것을 탐한다고 해도 고작 자기 자신만 그르칠 뿐이지만 당신은 화산파를 영도하는 신분이니만큼 제자에게 해를 끼치고 문파 전체를 그르친단 말이외다.]

 

영호충은 그 말을 듣고 생각나는 바가 있었다.

 

(풍태사숙(風太師叔)께서는 단지 검법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분은 검종(劍宗)에 속한 분 같구나. 내가 그어르신께 검법을 배운 것이 혹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닐까?)

그와 같이 생각하자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악불군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자들에게 화(禍)를 끼치고 문파를 그르친다고요? 허허허...... 터무니없는 말씀이시군!]

 

봉불평의 옆에 있던 땅딸한 자가 앞으로 튀어나오며 크게 외쳤다.

 

[뭐가 터무니없단 말이오? 당신이 저같이 쓸모없는 제자를 키워내지 않았소? 이것이야말로 제자에게 해를 끼치고 문파 전체를 그리치게 한 증거가 아니겠소? 봉 사형께서는 당신을 가리켜 화산파의 장문인 자격이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소. 당신은 스스로 물러나겠소 아니며 강제로 물러나도록 만들어 줄까요?]

 

그때 육후아가 허겁지겁 장내에 당도했다. 그는 영호충에게 다가가 귀에 입을 대고 소근거렸다.

 

(저 사람의 이름은 성불우(成不憂)래요. 사부님과 저 녀석들이 대화할 때 엿들었죠. 아이고 숨차!)

 

이때 악불군이 말했다.

 

[성형(成兄), 당신들 검종은 이십 오년 전에 화산파에서 떠나지 않았소? 스스로 다시는 화산파의 제자로 자처하지 않겠다고 하고서 어찌하여 하여 오늘 또 왔소? 당신들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여긴다면 새로 하나의 문파를 세우면 될 게 아니오? 오늘 그같이 몰염치한 말씀을 하시니 불초는 정말 기분이 나쁘구료. 우리 화기(和氣)를 상하지 맙시다.]

 

성불우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악형, 나는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소. 그러나 당신이 화산파의 장문이 되고 제자들에게 기공(氣功)을 닦게 하고 검공(劍功)을 소홀히 하도록 시키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소. 당신은 우리 화산파의 명예와 위세를 날로 쇠퇴시키고 있소. 그 죄를 어찌 작다고 하겠소? 나는 화산파의 제자로서 수수방관하지는 않겠소. 옛날 기종은 비열하고 악랄한 수단을 사용해 검종을 패배시키지 않았소? 나는 검종의 제자로서 그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소. 우리는 이미 이십 오년이나 참아 왔소.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을 결산하도록 합시다.]

 

악불군은 말했다.

 

[본문이 검종과 기종으로 나뉘어 싸운 일은 이미 옛날의 사건이 아니겠소? 그날 두 파는 옥녀봉 위에서 처절하게 싸웠으며 승패는 명백하게 판가름이 났소. 이제 와서 그 일을 거론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

 

성불우가 말했다.

 

[그날의 승패가 어떠했는지 본 사람이 누구요? 있으면 나오라고 하시오. 우리 세 사람은 보지 못했소. 어쨌든 당신은 깨끗하지 못한 방법으로 장문인이 된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오악검파의 맹주이신 좌맹주께서 사람과 영기를 보내 당신을 물러나도록 하셨을 리가 없는 것이외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가운데 깊은 내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좌맹주께서는 항상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오셨소. 돌연히 사람과 영기를 보내 장문인 지위를 박탈하실 분이 아니외다.]

 

성불우는 오악검파의 영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마하니 저 영기가 가짜란 말이오?]

 

악불군은 말했다.

 

[가짜가 아니외다. 그러나 말 못하는 물건에 불과하외다.]

육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악 사형, 영기가 말 못하는 물건이라서 믿을 수 업다고 했소? 그럼 나는 어떤 물건이오? 나 역시 말 못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시오?]

 

악불군은 말했다.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겠소. 이 일은 큰 일이니 나중에 좌맹주를 만났을 때 신중히 처리하도록 합시다.]

 

육백은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나의 말을 믿지 못한단 말이오?]

[어찌 감히! 좌맹주께서는 한쪽 말만 듣고 명령을 하달하셨소.

불군의 말마저 듣고 결정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오. 좌맹주께서는 비록 악검파의 맹주이시지만 오악검파의 공동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태산, 항산, 형산, 화산, 사파(四派)의 사사로운 일에 간섭할 권한은 없는 것이오. 각파 자체의 일은 오로지 각파 장문인만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오.]

성불우는 버럭 소리쳤다.

 

[잔소리는 집어치우시오! 당신은 장문인 자리를 양보하기 싫다이 말 아니오?]

 

그는 '양보' 라는 말을 하면서 검을 뽑아 들었고 '싫다' 라는 말을 하면서 일검을 베어갔고 '아니오' 라는 말을 하면서 제이검을 찌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이 순식간에 사검을 펼쳤던 것이다.

그의 검법은 괘속하기 이를데 없었고 잇달아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이 동시에 검을 찔러내는 듯이 보였다.

제일검은 악불군의 왼쪽 어깨의 의삼(衣衫)을 뚫었고 제이검은 오른쪽 어깨의 의삼을 뚫었으며, 제삼검은 왼쪽 옆구리의 의삼에, 제사검은 오른쪽 옆구리의 옷에 구멍을 뚫었다.

그런데도 검은 의삼을 찢었을 뿐 악불군의 피부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 사검의 빠름과 조준의 정확도는 그야말로 노라울 정도였다.

영호충을 제외한 화산파의 모든 제자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저 사검은 하나같이 화산파의 검법이다! 그런데 위력이 저렇게 클 줄이야! 검종의 고수는 과연 비범하구나!)

 

반면 육백과 봉불평은 악불군에게 감탄하였다.

 

악불군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그 사검을 맞은 것이었다. 그의 수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어서 놀라기도 했지만 그들이 악불군에게 감탄한 진정한 이유는 악불군이 성불우를 우습게 볼 정도로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사검을 고스란히 맞은 것은 언제라도 사검을 피할 자신이 있었고 간일발의 차이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도 능히 몸을 피할 자신이 서 있기 때문이었다.

승리한 사람은 바로 악불군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성불우가 펼친 초식을 석벽의 동굴에서 본 바 있었다.

그 사검은 일초로써 네 가지의 변화가 내포되어 있는 화산파의 검법이었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검종은 검초(劍抄)가 기묘해봤자 석벽에 새겨진 도형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이때 악 부인이 말했다.

 

[성형, 제 남편은 당신들이 손님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이번에 양보를 하셨어요. 당신은 옷에 구멍을 뚫었으니 이제 만족하시겠죠?]

 

성불우가 말했다.

 

[손님이니 양보니 하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악 부인이 나의 사검을 받아낼 용기가 있다면 나는 즉시 물러나겠소. 그리고 다시는 옥녀봉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소.]

 

그는 악불군의 위세에 겁을 집어 먹고 있었기 때문에 악 부인에게 도전을 한 것이었다.

악부인은 방금 사검을 펼치는 광경을 보고 놀라 안색이 변했었다. 성불우는 그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무예가 악불군보다 한참 뒤질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성불우는 검을 똑바로 가슴 앞에 세우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악 부인, 부탁하오. 그대는 화산파 기종의 유명한 고수(高手)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있지 않소? 검종의 성불우가 오늘 그대의 기공을 가르침 받으려 하오.]

 

그는 그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화산파의 검기양종(劍氣兩宗)의 분쟁을 조성하려고 했다.

악 부인은 성불우의 수법을 목격한 이후 그녀 자신이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이토록 자기를 지목하여 도전하는 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슥' 하는 음향과 함께 검을 뽑아 들었다.

영호충이 황급히 나서며 말했다.

 

[사모님, 검종은 무공을 연마할 때 샛길로 들어선 무리들입니다. 어찌 우리 기공의 정당한 무공과 비교될 수 있겠읍니까? 먼저 제자가 검종의 콧대를 꺾어 놓겠읍니다. 제자가 안 되면 그때 사모님께서 그와 싸우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읍니까?]

 

그는 악 부인의 허락을 기다리지도 않고 담장가에 세워져 있는 낡은 빗자루 하나를 집어들고 악 부인의 앞을 가로막고 우뚝섰다.

그는 빗자루를 한 번 흔들어 보이며 성불우에게 말했다.

 

[성형, 당신은 화산파 사람이 될 자격이 없으니 사백이니 어쩌느니 하는 호칭을 붙이지 않겠소. 당신처럼 비열한 사람이 화산파에 들어오려면 새로 입문(入門)을 하여 사부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오. 당신이 화산파에 입문하게 된다면...... 먼저 들어온 대사형(大師兄)인 나를 사형이라고 불러야 하오. 한번 불러보시오.]

 

성불우는 대노하여 외쳤다.

 

[빌어먹을 놈! 마구 지껄이는구나! 네가 나의 사검을 받아낸다면 나는 너를 사부로 모시겠다!]

[나는 당신같이 못된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겠......]

영호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불우는 버럭노호를 터뜨렸다.

 

[검을 뽑아라! 죽여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진기(眞氣)가 이르는 곳에는 초목(草木)이 모두 날카로운 무기로 변하는 법! 성형을 상대하는 데는 몇 초의 하잘것 없는 초식이면 충분하오. 검을 뽑을 필요도 없소.]

[좋아! 네가 그토록 광망하구나! 나의 손이 맵다고 원망하지 마라!]

 

악불군과 악 부인은 성불우의 무공이 영호충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빗자루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검을 뽑아도 시원치 않을 판국이었다. 지금 영호충이 빗자루를 들고 설치는 것은 맨손으로 적을 맞이하려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악불군이 급히 외쳤다.

 

[충아야! 어서 물러서라!]

 

그러나 흰 빛이 번쩍이며 성불우의 장검은 이미 영호충을 찔러가고 있었다.

그 일초는 바로 방금 악불군에게 펼쳤던 그 일초였다.

그가 그 초식을 재차 사용한 것은 그의 가장 익숙한 초식이기도 했지만 그 초식을 사용하겠다고 공언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같은 초식을 거듭 사용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비할 여유를 주려는 것이었다.

이는 선배된 도리이기도 했으며 자신이 병기의 유리함에 편승하여 이겼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호충은 그에게 도전할 때 마음속으로 그 초식을 상대할 방법을 생각해 두었었다.

동굴에 새겨진 도형은 하나같이 기문병기(奇門兵器 : 특이한 무기)로 검(劍)을 파해하는 방법이었다.

만일 영호충 자신이 검을 사용한다면 현재로서는 독고구검(獨孤九劍)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으므로 이길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빗자루는 뇌진당(雷震?)처럼 사용할 수가 있었다.

성불우의 장검이 베어올 때 영호충은 빗자루로 성불우의 얼굴을 향해 쓸어갔다.

영호충은 모험을 한 것이었다.

본래 뇌진당이라는 무기는 절구 방망이처럼 생긴 무기로서 정강(精鋼)으로 주조한 무거운 병기였다. 거기에 한번 맞으면 죽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중상을 입게 된다.

영호충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진짜 뇌진당이라면 상대방은 검을 회수하여 막아내거나 급히몸을 뒤로 날려 피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낡아빠진 빗자루가 어떻게 적을 겁먹게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내공이 이르면 초목이 날카로운 병기로 변한다고 떠들어 댄 것은 모두 허풍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설사 재수가 좋아서 빗자루로 성불우의 얼굴을 후려칠 수가 있다고 해도 몇 줄기의 상처밖에 더 입히겠는가.

그 때 성불우의 검은 자기를 찌를 수가 있다.

하지만 영호충은 성불우가 선배된 체면에 닭똥이나 치는 빗자루에 얼굴을 할퀴는 치욕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과감히 공격해 갔던 것이다.

과연 성불우는 급히 검을 회수하여 빗자루를 베어갔다.

성불우는 공격을 하다가 중도에 수비를 하는 추태를 보이고는 매우 부끄러워했으며 그의 얼굴은 금새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성불우는 방금 영호충이 휘두른 그 수법이 마교 십장로가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창안한 무서운 초식일 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고 다만 영호충이 얼떨결에 휘두른 줄로 알았다.

그러니 그가 느낀 수치가 분노로 변하여 재빨리 두번째의 공격을 감행했다.

이번에도 잇달아 사검을 쾌속하게 펼쳐 영호충의 상하좌우를 노리고 찍듯이 공격했다. 영호충은 몸을 기울이며 빗자루를 왼손에 바꾸어 쥐고는 곧장 성불우의 가슴을 찔러갔다.

빗자루는 길고 검은 짧아 빗자루가 늦게 나갔지만 먼저 성불우의 가슴을 찌르게 되었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닿았다!]

 

그 순간 '싹' 하는 음향이 일며 빗자루의 중간이 검날에 의해 두 동강이 나며 '툭' 소리를 내며 반동강이가 땅 위에 떨어졌다.

옆에 있던 고수들은 생각했다.

 

(먼저 빗자루가 닿았다. 저 빗자루가 진짜 뇌진당이었거나 월아산(月牙?)이었다면 성불우는 이미 갈비뼈가 부러진 채 쓰러졌을 것이다.)

 

성불우는 까마득한 후배에게 빗자루로 얻어맞자 분노할대로 분노했다. 그는 '어헝!' 소리를 내지르며 스스슥 삼검을 펼쳤다. 그검은 살기(殺氣)로 가득했다.

모두 화산파의 검법이었다.

삼초 가운데 이초는 동굴의 석벽에 새겨 있는 검초였다.

다른 일초는 영호충은 처음 보는 초식이었다. 그러나 독고구검을 배운 뒤 영호충은 천하에 있는 온갖 검법을 깨뜨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체를 뒤로 젖혀 피하면서 석벽에 새겨진 곤봉파검법(棍棒破劍法)을 이용해 빗자루 끝으로 성불우가 찔러댄 검의 끝을 마주 찔러갔다.

만일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이 빗자루가 아니고 철로 만든 곤봉 이었다면 곤봉은 견고하고 검은 부드러우니 장검이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고 곤봉은 여세를 몰아 상대방을 찔러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영호충은 위급해지자 손에 잡고 있는 것이 하나의 대나무로 만든 빗자루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얼떨결에 마주쳐 갔던 것이다.

파죽지세(破竹之勢)라고나 할까?

검은 곧장 빗자루를 쪼개며 빗자루 속으로 거침없이뚫고 들어갔다.

영호충은 빗자루를 힘껏 비틀며 옆으로 밀어냈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왼쪽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까스로 위험한 고비를 넘겼을 때 성불우는 좌장(左掌)을 홱 뒤집으며 질풍같이 영호충의 앞가슴을 강타하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영호충의 몸이 뒤로 벌렁 쓰러졌으며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돌연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성불우의 두 팔과 두 다리가 누구에겐가 꽉 잡혀져 허공에 들려졌다.

 

[당겨라!]

[으아악!]

 

처절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선혈과 오장육부가 땅에 질펀하게 뿌려지는 가운데 성불우의 사지는 각기 분리되고 말았다.

양 팔과 양 다리는 네 명의 용모가 추괴한 괴인들의 손에 각기 찢겨진 채 들려 들려 있었다.

도곡육선이 성불우를 산 채로 찢어 죽인 것이었다.

그것을 목격한 모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악영산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대뜸 혼절하고 말았다.

악불군과 육백 같이 견문이 넓은 고수들도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때 도곡육선 중의 도화선과 도실선은 땅에 쓰러진 영호충을 안아들고 질풍같이 산 아래로 달려갔다.

악불군과 봉불평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도간선과 도엽선의 등을 노리고 찔러갔다. 도근선과 도지선이 각기 소매 속에서 단철봉(短鐵棒)을 꺼내 막자 '쨍' '쨍' 하는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도곡육선은 경신법을 펼쳐 산 아래로 내달렸다. 순식간에 여섯 괴인과 영호충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육백, 악불군, 봉불평 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 도곡육선을 추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가득 한 눈길로 땅 위에 널브러진 성불우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육백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고 봉불평은 길게 탄식을 불어냈다.

 

영호충은 성불우의 일장을 맞고 중상을 입은 채 도곡육선에 의해 들려 내려가는 도중 정신을 잃었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눈 앞에 말처럼 긴 얼굴을 한 두 사람의 도곡육선의 모습이 비쳤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근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도화선은 영호충이 눈을 뜨는 것을 보자 기뻐서 소리쳤다.

 

[깨어났다! 깨어났어! 이 녀석은 죽지 않았다.]

 

도실선이 말했다.

 

[죽지 않은게 당연하잖아. 그 사람의 가벼운 일장을 얻어 맞고 죽는 사람이 어디 있니?]

 

도화선이 말했다.

 

[그 일장이 너의 몸에 맞는다면 물론 너는 죽지 않지. 그러나 이 녀석을 때렸을 때는 죽을 가능성도 있단 말이야.]

 

도실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분명 죽지 않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도화선이 말했다.

 

[내가 언제 반드시 죽는다고 했니?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도실선이 말했다.

 

[그는 살아났잖아? 그러니까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아.]

 

도화선이 말했다.

 

[내가 말을 하면 하느거야. 네가 왜 참견을 하니?]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참견하는 이유는 네가 안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야. 너는 눈이 있으나 마나야.]

 

도화선은 화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너는 안목이 있니? 네가 이 녀석이 죽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면 어째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까봐 근심을 했지?]

도실선이 대답했다.

 

[내가 조금 전에 근심을 한 것은 이 녀석이 죽을까봐 그런 게 아니야. 나는 이 녀석의 이런 꼴을 보고 작은 여승이 걱정할까봐 근심을 했던거라구. 그리고 우리는 내기에서 여승을 이긴 다음, 화산에 와서 영호충을 데리고 가 그녀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잖아? 반쯤 죽은 영호충을 데려간다면 작은 여승이 우리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근심했던 거야.]

도화선은 말했다.

 

[네가 영호충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면 그녀에게 걱정말라고 하면 될 게 아니야? 그러면 그녀 또한 걱정하지 않을 게 아니야? 그런데도 너는 근심을 했어.]

 

도실선이 말했다.

 

[틀렸어. 첫째로,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해도 작은 여승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내 말을 듣고 겉으로는 걱정하지 않는 척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을 할지 알게 뭐야. 둘째로, 이 녀석이 죽지 않을 건 뻔하지만 상처가 가볍지 않으니까 걱정스러웠던거야.]

 

영호충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고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걱정을 했다는 말을 듣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말끝마다 작은 여승이 걱정을 한다고 했다. 영호충은 항산파의 막내 제자인 의림의 아리따운 자태를 떠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은 안심하세요. 영호충은 죽지 않아요.]

 

도실선은 크게 기뻐하며 도화선에게 말했다.

 

[들었지? 이 녀석은 스스로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너는 이 녀석이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 네가 틀린거라구!]

도화선은 급히 반박했다.

 

[아니야! 내가 그 말을 할 때 이 녀석은 그 말을 하지 않았어.]

도실선은 즉시 말했다.

 

[쳇! 그가 눈을 떴을 때 너는 그 말을 했어. 눈을 떴으니 당연히 말도 할 게 아니겠어?]

 

영호충은 두 사람의 말다툼이 끝이 없는 걸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본래 죽었을 것이지만 두 분이 나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도곡육선의 이름은...... 하하하...... 강호에선 이름 높으신 도곡육선께서 죽지 말라고 하는데 내 어찌 감히 죽을 수가 있겠읍니까?]

 

도화선과 도실선은 그 말을 듣자 크게 기뻐 소리를 질렀다.

 

[맞다! 맞아! 그 말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우리는 대형(大兄)에게 알리러 가자!]

 

두 사람은 다투어 사라졌다.

영호충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의 침상에 누워 있고 머리 위의 휘장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깨달았다. 어떤 곳인지 살펴보려고 고개를 돌리려 하자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껴졌다. 그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 되지 않아 도근선 등 네 괴인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섯 명은 영호충을 내려다 보며 제각기 한 마디씩 떠들어 댔다. 자신의 공로를 칭찬하기도 했고 영호충이 죽지 않은 걸 보면 참 착한 녀석이라고 하기도 했다.

또한 영호충을 구하느라고 숭산파의 늙은이에게 매운 맛을 보여주지 못해 애석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사지를 찢어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런 다음 찢어진 사지를 개미를 밟아 죽이듯 짓뭉갤 수도 있다고 떠들어 댔다.

영호충은 그들의 말에 몇마디 장단을 맞추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그는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돌아가는 듯한 고통을 느기고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화로(火爐) 속에 들어 간 듯이 화끈화끈 달아 올라 그는 참지 못하고 신음을 질렀다.

한 사람이 부르짖었다.

 

[소리 내지 마라!]

 

영호충은 천천히 눈을 떴다.

탁자 위엔 등불이 밝혀져 있었으며 그는 벌거벗겨진 채 땅 위에 눕혀져 있었다

그의 사지는 도곡사선(挑谷四仙)에 의해 잡혀 있었고 나머지 두 괴인은 각기 아랫배와 머리의 백회혈(百會穴)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었다.

한가닥 뜨거운 열기가 왼발의 족심(足心)을 통해 올라와 왼쪽 다리와 아랫배, 가슴, 오른 팔을 통해 오른손 장심(掌心)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줄기의 뜨거운 기운은 왼쪽 장심에서 시작하여 왼팔, 가슴, 아랫배, 오른 다리를 지나 오른쪽 족심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두 줄기의 열기가 그의 온몸을 마구 휘저어 놓자 온 몸은 불구덩이 속에 들어온 듯 화끈거렸다.

그는 도곡육선이 내공(內功)을 이용해 자기를 치료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격하는 한편 사부가 전수해준 화산파의 내공심법(內功心法)으로 한가닥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 순간 아랫배의 단전혈(丹田穴)에서 칼로 에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왁' 하니 피를 토하고 말았다.

도곡육선이 놀라 부르짖었다.

 

[안 좋다!]

 

도엽선은 손을 뒤집어 영호충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머리가 돌연 시원해지는 걸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귓전으로 도곡육선이 격렬하게 언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도간선이 말했다.

 

[너희들 봐라. 그의 몸에서 나던 땀도 안 나고 눈도 떴지? 이것은 나의 치료 방법이 옳았기 때문이라구! 나의 진기(眞氣)가 풍시(風市), 환도(環跳)에까지 침투하니까 그의 내상이 치료된 거야.]

도근선이 말했다.

 

[헛소리 작작해. 어제 내가 진기로 그의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의 각 혈도(穴道)를 뚫어주지 않았다면 이 녀석은 벌써 죽었을 거야. 오늘 진기를 밀어 넣어서 정신을 차린 줄 아니?]

도지선이 말했다.

 

[맞았어! 대형의 방법은 단지 그의 내상을 치료했을 뿐이라구! 내상을 치료하면 뭘해?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두 다리로 걸어다닐 줄 알아야 해. 네 다리로 걷는다면 짐승에 불과하지.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다면 그 역시 사람이 아니고 나무 토막이라 이거야. 이 녀석은 심포락(心包絡)을 다쳐서 내상을 입었던 거야. 내가 그의 신락삼초(腎絡三焦)를 뚫어주니까 나은 거야.]

 

도근선이 노해 말했다.

 

[웃기지 마. 네가 그의 몸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의 심포락이 고장난 줄 안다고 그래.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세 사람은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 하는 식으로 쉬지 않고 언쟁을 벌였다.

도엽선이 갑자기 말했다.

 

[진기로 연액(淵液) 사이를 뚫는 것은틀린 방법이야! 먼저 그의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을 치료해야 돼.]

 

그리고는 옆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즉시 손을 뻗어 영호충의 왼쪽 무릎에 있는 음곡혈(陰谷穴)을 짚고 뜨거운 진기를 밀어 넣었다.

도간선이 대노하여 외쳤다.

 

[흥! 또 법석을 떠는구나! 우리 다시 누구의 방법이 옳은지 내기를 하자!]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영호충의 현기혈(玄機穴)에 진기를 밀어 넣었다.

그 순간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영호충은 피를 토할 것처럼 아팠지만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끝났구나! 끝났어! 이들 여섯 명은 나를 구하려고 하지만 제각기 의견이 달라 각각 자신의 방법으로 치료하려고 하는구나. 나 영호충은 이번 고비를 넘기기 힘들 것이다!)

 

도근선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녀석은 가슴에 일장을 맞아 내상을 입었다. 그러니까 수태양폐경(手太陽肺經)을 먼저 치료해야 돼! 내가 진기를 그의 중부(中府), 척택(尺澤), 공최(孔最), 열결(列缺), 태연(太淵), 소상(少商) 등의 혈도에 밀어 넣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도간선이 말했다.

 

[대형(大兄), 다른 일은 대형이 나보다 낫지만 진기로 치료하는 재주는 내가 일등이예요. 이 녀석의 몸이 뜨거운 것은 양기(陽氣)가 왕성하기 때문이예요. 모름지기 그의 수태양경(手太陽經)부터 손봐야 해요. 나는 그의 상양(商陽), 합곡(合谷), 수삼리(手三里), 곡지(曲池), 영향(迎香) 등의 혈도를 뚫어주기로 결심했어요.]

 

도지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어! 틀려도 보통 틀린 게 아니야!]

 

도간선은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까짓 게 무얼 안다고 그래! 내 말이 어째서 틀렸다는 거냐?]

도근선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세째의 말이 그럴싸하군!]

 

도엽선이 말했다.

 

[둘째 형이 틀린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형 역시 틀렸어요. 보세요. 이 녀석은 눈을 크게 뜨고 있지만 입은 국 다물고 있잖아요? 둘째 형과 첫째 형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영호충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내가 말을 하기 싫어 못하는 줄 아느냐? 너희들이 진기를 마구 뿜어대 내 몸을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단 말이다!)

 

도엽선은 계속하여 말했다.

 

[기가 막힌다는 것은 머리가 어지럽고 심지(心智)가 몽롱해진 현상이죠. 모름지기 양명위경(陽明胃經)을 치료해야 하는 법이죠.]

 

영호충은 들을수록 화가 치밀었다.

 

(너희들의 머리가 어지럽고 심지가 몽롱해졌다고 하는 게 옳다! 이 밥통같은 작자들아!)

 

도엽선은 갑자기 열 손가락을 펼치더니 영호충의 얼굴을 마구 찔러댔다.

눈 밑의 오목 들어간 곳에 있는 네 개의 혈도를 아프도록 찌르는가 하면 입꼬리의 지창(地倉)을 힘껏 비틀기도 했다. 이어 얼굴에 있는 대영(大迎), 협차(頰車), 머리 위의 두유(頭維), 하관(下關) 등의 혈도를 마구 주물러댔다.

각 혈도는 극렬히 아파왔고 칼로 에이는 듯했으며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기도 했고 망치로 후려치듯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에 따라 영호충의 얼굴은 쉬지 않고 일그러졌다.

도실선은 말했다.

 

[헤헤...... 형이 만져봤자 그는 여전히 말을 못 하잖아?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머리에 병이 있는 게 아니고 혀끝이 굳어진 것 같애. 그것은 허(虛)하다는 증거이지. 나는 내력으로 그의 은백(隱白), 태백(太白), 공손(公孫), 상구(商丘), 지기(地機) 등의 혈도를 치료해야겠어. 그러나...... 그러나...... 내가 치료하지 못했다고 욕을 하면 안 돼.]

 

도화선이 말했다.

 

[치료하지 못하면 그를 죽이게 돼. 그래도 욕을 하지 말라고?]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혀를 부드럽게 만들지 못하는 것에 불과해요. 생명을 잃는 것과는 거리가 멀단 말이예요. 내가 치료하는 도중에 죽는다면 그것은 어떤 녀석이 영호충의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을 잘못 건드려서 죽은 것이지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니라고.]

 

도지선이 외쳤다.

 

[치료를 잘못하면 끝장이다!]

 

도화선이 말을 받았다.

 

[잘못 치료해도 끝장인 건 사실이지. 그러나 치료하지 못해도 끝장이지. 우리는 치료하지 못했어. 그는 마음이 고장난 것 같애.

내 생각엔 수심경(手心經)부터 치료해야 된다고 생각해. 소해(少海), 통리(通理), 신문(神門), 소충(少沖) 네 곳의 혈도를 치료하는게 관건이야.]

 

도실선이 말했다.

 

[어제는 그의 족소음심경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오늘은 소수양심경을 치료해야 된다고 떠드는군. 소양(少陽)은 양기(陽氣)가 처음 생기는 곳이고 소음(少陰)은 음기(陰氣)가 처음 생기는 곳이라고 그 두 가지는 상반되는 데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지?]

 

도화선이 의젓하게 말했다.

 

[원래 음이 변하여 양이 되는 거야. 음과 양은 사물의 두 측면이지.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가 생기고 양의는 태극으로 다시 돌아가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된다. 소음과 소양은 서로 표리(表裏)의 관계가 있으니까 그게 그거야. 뭐 별 차이가 있겠어?]

 

영호충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당신은 헛소리 좀 작작하시오!그런 엉터리 이론은 나의 목숨을 해치게 된단 말이오!)

 

도근선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나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너희들 반대하면 안 돼.]

 

다섯 명의 괴인은 일제히 외쳤다.

 

[무슨 방법인데요?]

 

도근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아주 희귀한 병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혈(奇血)에 손을 대야 한다. 더 이상 경락(經絡)을 가지고 고생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능허점혈지법(凌虛點穴之法)으로 이 녀석의 인당(印堂), 금율(金律), 옥액(玉液), 어요(魚腰), 백노(百勞)와 십이정혈(十二井穴)을 찔러 버리겠다.]

 

다섯 괴인은 일제히 외쳤다.

 

[대형, 그것은 너무 위험해요! 그러지 마세요!]

 

도근선은 크게 노했다.

 

[말리지 마라! 그 방법을 쓰지 않으면 저 녀석은 죽고 만다!]

영호충은 그 순간 인당과 금율 등의 혈도에 칼로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중에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영호충은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으나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뜨거운 열기가 족태음비경을 뚫고 체내에 주입되었고 곧이어 소양심경의 각 혈도에도 뜨거운 열기가 밀려들었다. 곧 이어 또 한 줄기의 열기가 다른 경맥을 뚫고 밀려 들어왔다.

도곡육선은 저마다의 치료방법을 펼치고 있었다. 여섯 줄기의 열기가 영호충의 온몸을 마구 헤치고 돌아다녔으며 진기끼리 충돌하면서 간(肝), 담(膽), 폐(肺), 비(脾), 위(胃), 대장(大腸), 소장(小腸), 방광(膀胱), 심포(心包), 삼초(三焦),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각 부분을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영호충은 화가 날대로 나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내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너희 놈들을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 죽이고 말겠다!)

 

영호충은 역시 도곡육선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의 귀중한 진기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극렬한 고통을 당하게 되자 그들에게 세상의 욕이란 욕은 모조리 퍼부어 대고 싶었다.

도곡육선은 진기를 이용해 치료를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언쟁을 벌였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며칠 동안 영호충의 체내의 경맥은 모조리 뒤엉키고 흩어져서 제 형체를 상실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상승내공(上乘內功)을 닦아 왔지만 그렇게 내공이 고강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배운 내공은 명문정종(名門正宗)의 내가무공(內家武功)으로서 시초가 탄탄했다. 그래서 다행히독고육선의 헛수작 아래에서도 근근이 목숨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도곡육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영호충의 맥박이 미약해지고 호흡이 가냘퍼지며 눈빛이 풀리는 것을 보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도실선이 말했다.

 

[나는 그만둘래. 그가 죽는다면 귀신이 되어 나를 따라올거야.

그러면 나는 놀라서 죽을지도 모르지.]

 

그는 말과 함께 영호충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도근선이 노해 소리쳤다.

 

[이 녀석이 죽는다면 그건 지금 네가 손을 뗐기 때문이다! 그는 귀신으로 변해 너를 잡으려고 할 거야!]

 

도실선은 크게 비명을 지르며 창을 넘어 도망쳐 버렸다.

도간선 등 다섯 괴인도 손을 거두며 눈썹을 찌푸리는가 하면 고개를 저어대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도엽선이 말했다.

 

[이 녀석은 걸음을 걷지 못해. 어떡하면 좋을까?]

 

도근선이 말했다.

 

[너희들은 가서 작은 여승에게 말해라. 이 녀석은 땅딸보의 일장을 맞고 죽었다고. 또 우리들이 이 녀석을 위해 그 땅딸보를 네 조각으로 찢어 죽였다고 말해라.]

 

도간선이 말했다.

 

[우리가 진기로 그의 상처를 치료하던 일도 말해야 하나요?]

도근선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로 안 돼!]

[그러나 작은 여승이 우리보고 왜 치료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하지?]

 

도근선은 도간선의 말을 듣자 즉시 대답했다.

 

[그냥 우리들은 치료하려고 했지만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해.]

도간선은 또 다시 물었다.

 

[그러면 작은 여승은 우리보고 욕을 하지 않을까? 개보다도 쓸모없는 녀석들이라고.]

 

도근선은 대노해서 소리쳤다.

 

[작은 여승이 우리보고 개라고 욕을 해? 그 말은 틀렸어!]

도간선이 말했다.

 

[작은 여승이 욕을 한 게 아니예요. 내가 한 소리예요.]

도근선이 말했다.

 

[그녀가 욕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네가 어떻게 알지?]

도간선이 말했다.

 

[그녀가 욕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요.]

 

도근선이 말했다.

 

[그러나 욕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 자네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군!]

 

도간선이 말했다.

 

[어쨌든 이 녀석이 죽으면 그녀는 화가 나서 욕을 할거야.]

도근선이 말했다.

 

[아냐. 작은 여승은 크게 우느라고 욕을 하지 않을 거야.]

도간선이 말했다.

 

[나는 그녀가 우리보고 개라고 욕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용기가 나지 않아.]

 

도근선이 말했다.

 

[그녀는 욕을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 보고 개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

 

도근선이 물었다.

 

[그럼 무어라고 욕을 할까? 나는 그것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도근선이 말했다.

 

[우리 여섯 형제는 개를 닮지 않았잖아? 정말 조금도 닮은 데가 없지. 그녀는 고양이라고 욕을 할지도 모르지.]

 

도엽선이 끼어들었다.

 

[왜지? 우리가 고양이를 닮은 거야?]

 

도화선도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틀렸어! 사람을 욕하는데 꼭 생김새가 닮아야 하는 건 아야.

우리보고 작은 여승이 사람이라고 욕을 했다면 그건 욕이 아니라구!]

 

도지선이 말했다.

 

[그녀는 우리보고 바보 또는 악당이라고 활지도 몰라. 그건 사람을 의미하지만 욕이 되지.]

 

도화선이 말했다.

 

[개라는 말보다는 낫지.]

 

도지선이 말했다.

 

[만일 여섯 마리의 개가 총명하고 위풍이 있으며 영웅적이라면 그렇다면 사람이 좋을까 개가 좋을까?]

 

영호충은 기식이 엄엄한 중에도 그들의 말다툼을 듣자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돌연 한 줄기 진기가 아랫배에서 용솟음치더니 위로 치밀어 올랐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당신들보다는 개가 더 낫지!]

 

도곡육선이 흠칫하며 영호충을 내려다 보았다.

이때 창 밖에서 도실선이 물었다.

 

[어째서 개가 우리보다 낫다고 하지?]

 

영호충은 욕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힘이 빠져서 끊어질 듯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당...... 당신들은 나를...... 화산으로 되돌려 보내시오. 사부께서...... 내 목숨을...... 구해 주실......]

 

도근선이 벌컥 화를 냈다.

 

[뭐라고? 네 사부는 네 목숨을 구해 줄 수 있고, 도곡육선은 그럴 수 없단 말이냐?]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하려고 했지만 더이상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도엽선이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개가 말을 하는 것보다도 못 하군! 네 사부가 뭔데 우리보다 뛰어나다는 거지?]

 

도화선이 말했다.

 

[흥! 네 사부를 데려와라! 우리와 겨루어 보게.]

 

도간선이 말했다.

 

[우리가 그의 사부의 두 팔과 두 다리를 잡아당기기만 하면 사지가 쪼개지지 않고는 못 배길걸?]

 

도실선이 창문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화산파의 남자 여자를 모조리 네 조각으로 만들자!]

도화선이 말했다.

 

[화산의 개, 고양이, 돼지, 양, 닭, 오리, 거북이, 물고기까지 하나하나 사지를 잡고 네 조각으로 만들자!]

 

도지선이 말했다.

 

[물고기는 사지가 없는데 어떻게 사지를 잡지?]

 

도화선이 흠칫하며 소리쳤다.

 

[흥! 상관할 필요가 뭐가 있어! 사지가 없어도 네 조각으로 만들 수가 있는데!]

 

도지선이 말했다.

 

[어쨌든 너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도화선은 화를 냈다.

 

[앞뒤가 맞지 않다니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도지선이 말했다.

 

[너는 화산의 개, 고양이, 돼지, 양, 오리, 거북이, 물고기를 하나하나 사지를 잡고 네 조각을 내자고 했잖아?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할 테냐? 너의 첫번째로 한 그 말은 분명히 틀렸다고.]

도화선이 대꾸했다.

 

[물론 그 말을 한 건 사실이야. 그러나 첫번째로 한 말은 아니야. 오늘 나는 이미 수천 마디를 했는데 그게 어째서 첫번째의 말이 될 수 있겠어?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한 말을 합한다면 몇만 마디의 말도 더 했을텐데 어째서 그 말이 첫번째 말이라고 그러지?]

 

도지선은 할 말이 없는지 멍하니 서 있었다.

도간선이 도화선을 보고 말했다.

 

[너는 거북이까지 네 조각을 내자고 했지?]

 

도화선은 의기양양해져서 얼른 말했다.

 

[물론 그 말을 했지. 거북이는 앞다리와 뒷다리가 있으니 자연 사지가 있는 셈이지.]

 

도간선이 말했다.

 

[거북이의 사지를 잡아당길 수는 있지. 하지만 네 조각이 나기는 힘들거야.]

[왜? 거북이가 우리보다 힘이 세단 말이야?]

 

도간선이 말했다.

 

[거북이의 사지를 잡아당기는 건 문제가 없어. 그러나 딱딱한 겁질은 어떻게 하지? 거북이의 사지가 떨어지면 껍질 하나가 남게 되는 데 그럼 모두 다섯 조각이 나게 돼. 결코 내 조각이 아니지.]

 

도근선이 끼어들었다.

 

[틀렸어. 거북이의 껍질에는 열 세 개의 홈이 파져 있어. 껍질 하나가 남게 될런지 껍질이 열 세 조각이 될지 누가 알겠어? 그러니 거북이가 네 조각 난다는 말도 틀렸지만 다섯조각이 난다는 말도 옳은 건 아니야.]

 

영호충은 그들이 끊임없이 논쟁하는 소리를 듣고 박장대소라도 터뜨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가소롭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와 같은 괴인들을 만나는 것도 얻기 어려운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들을 만난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호기가 치솟아 올라 그는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나...... 나는 술을 마시고 싶소!]

 

도곡육선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며 일제히 말했다.

 

[좋아, 매우 좋다! 그가 술을 마시려 하는 걸로 보아 죽지는 않을 것이다!]

 

영호충은 신음하듯 말했다.

 

[죽어도...... 좋고...... 죽지 않아도 좋소. 먼저...... 먼저 통괘하게 마시고 다시...... 말합시다.]

 

도지선이 말했다.

 

[그래, 그래! 내 가서 술을 가져오지.]

 

얼마 후 도지선은 큰 술호로를 들고 왔다.

영호충은 술 향기를 맡자 정신이 번쩍 들어 말했다.

 

[나에게 먹여 주시오!]

 

도지선은 술호로를 그의 입에 대고 천천히 술을 부어 주었다.

영호충은 술호로 하나를 깨끗이 비우자 머리가 더욱 영활해 졌다.

 

[내 사부께서...... 평상시 말씀하시길...... 천하대영웅(天下大英雄)은...... 도(桃)...... 도......]

 

도곡육선은 마음을 졸이고 그 말을 듣다가 일제히 물었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대영웅은 도...... 무엇이란 말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그것은...... 도...... 도곡......]

 

육선이 일제히 외쳤다.

 

[도곡육선(桃谷六仙)!]

 

영호충이 말했다.

 

[바로 그렇소. 내 사부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가장 한스럽게 여기는 것은 도곡육선과 함께 몇 잔의 술도 마시지 못하고 친구로 사귀지 못했으며...... 여섯 분의 대...... 대......]

도곡육선은 일제히 소리쳤다.

 

[여섯 분의 대영웅(大英雄)!]

 

영호충이 말했다.

 

[그렇소, 여섯 분의 대영웅을 청하여 제자들 앞에서 절기를 시전(施展)......]

 

도곡육선은 거기까지 듣고 나더니 제각기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이상한 노릇이잖아?]

[네 사부가 어떻게 우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지?] [화산파 장문인은 매우 좋은 자였구나! 우리들은 화산의 초목 하나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연한 거야. 누가 화산파의 초목 하나라도 건드리면 나는 가만두지 않겠다.]

[우리는 너의 사부와 친구가 되고 싶다. 화산에 올라가자!]

영호충은 즉시 말했다.

 

[맞소! 화산에 올라갑시다!]

 

도곡육선은 즉시 그의 몸을 들어올렸다.

반나절 동안 길을 재촉하다가 돌연 도근선이 외쳤다.

 

[앗, 큰일났다! 우리는 이 녀석을 데리고 작은 여승을 만나야 하는데 어째서 화산으로 올라간단 말인가? 이 녀석을 작은 여승에게 데려다 주지 않으면 어찌 내기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도간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대형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먼저 이 녀석을 작은 여승에게 데리고 간 다음에 다시 화산에 올라가는 것이 좋겠어요.]

여섯 명은 몸을 돌려 또 다시 남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영호충은 다급해서 물었다.

 

[여승은 죽은 사람을 보자고, 아니면 산 사람을 보자고 하는 것이오?]

 

도근선이 말했다.

 

[당연히 산 녀석을 보고자 하는 것이지 죽은 녀석을 보려는 것은 아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화산으로 데려가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의 경맥(經脈)을 끊고 죽고 말겠어요.]

 

도실선이 기뻐하며 말했다.

 

[좋았어! 스스로 경맥을 끊는 고심(高深)한 무공을 어떻게 수련하는지 내게 가르쳐주라. 나도 배우고 싶다.]

 

도간선이 말했다.

 

[너는 그 무공을 익히는 순간에 죽을 텐데 무엇때문에 배우려는 거지?]

 

영호충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무공은 만일 협박을 받고...... 사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고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통괘하게...... 자결하고 싶을 때 유용한 것이라오.]

 

도곡육선은 일제히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작은 여승이 너를 보려는 것은 결코 악의가 아니야. 우리도 너에게 협박하는 것이 아니고.]

 

영호충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비록 호의를 가지고 있겠지만 나는 사부님께 보고드리지 않았소. 그분의 허락을 얻지 않고는 죽어도 갈 수가 없어요.

더구나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줄곧 여섯 분의 당세...... 당세...... 무적의...... 대(大)...... 대......]

 

도곡육선은 일제히 외쳤다.

 

[대영웅(大英雄)!]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근선이 말했다.

 

[좋아! 우리는 너를 화산에 데려다 주겠다.]

 

[출처] 소오강호 2-4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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