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소오강호 2-5 김용

一字師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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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소오강호 2-5 김용

 

                                             图片来源 | 霍建华 2013《笑傲江湖》令狐冲-堆糖,美好生活研究所

 

몇 시간 후 일행은 화산에 올랐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칠인(七人)을 보자 날 듯이 악불군에게 보고하러 갔다.

악 부인은 여섯 괴인들이 영호충을 떠메고 다시 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즉시 뭇제자들을 이끌고 나왔다. 악씨부부가 정기당(正氣堂) 밖으로 나오자 도곡육선이 청석대로(靑石大路)를 다려오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의자를 들고 있었는데 영호충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싣고 있었다.

악 부인이 급히 달려가 살펴보니 영호충은 눈이 쑥 들어갔고 안색이 누런지라 손을 뻗어 맥박을 짚어 보았다.

맥박은 약할대로 약했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목숨이 곧 끊어질 듯하자 그녀는 크게 놀라 부르짖었다.

 

[충아, 충아야!]

 

영호충은 눈을 뜨며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 사모님!]

 

악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충아야, 사모님이 너의 복수를 해 주마.]

 

말과 함께 검을 슥 뽑으며 의자를 들고 있는 도화선을 향해 찔러갔다.

 

[잠깐!]

 

악불군은 그녀를 제지하고 도곡육선에게 포권을 하였다.

 

[여섯 분이 화산을 왕림하시는 것도 모르고 마중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섯 분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리고 어느 문파의 인물들이신지요.]

 

도곡육선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고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들은 영호충의 말을 듣고 악불군이 자신들을 정말 존경하는 줄 알았던 것인데 그는 입을 열자마자 이름을 물어오지 않는가? 도곡육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확실했다.

도근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우리 형제를 매우 존경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단 말이오? 당신은 고루과문(孤陋寡聞)하군!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어!]

 

도간선이 말했다.

 

[당신은 천하영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은 도곡육선이라고 말했다는데 ! 그렇군! 당신은 도곡육선의 대명(大名)을 뇌성처럼 들어왔고 존겼했겠지만 우리들 도곡육선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

 

도지선이 말했다.

 

[둘째 형, 그가 도곡육선과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했다는데 어째서 지금 우리 형제가 놀라왔는데도 기쁜 빛을 띠지 않고 또 우리보고 술을 마시자고 청하지 않는 걸까요? 아하! 원래 육선의 이름을 들었지만 육선의 얼굴을 모르고 있어서 였군! 하하!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악불군은 터무니없는 말을 듣고 차갑게 말했다.

 

[여러분은 도곡육선이라 자칭하시지만 악모(岳某)는 필부에 불가 합니다. 어찌 여섯 분 선인(仙人)과 교우를 맺을 수 있겠읍니까?]

 

도곡육선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도지선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 우리들 육선과 당신 제자는 좋은 친구야. 당신과 친구로 사귄다면 더욱 좋은 일이야.]

 

도지선이 말했다.

 

[당신의 무공이 낮아서 자격지심을 갖고 있구만! 우리도 당신을 대단하게 보고 있지는 않으니 그 점은 신경쓰지 말아.]

도화선이 말했다.

 

[당신이 무예를 익힐 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물어보라구. 우리가 가르쳐 주겠어.]

 

악불군은 담담하게 한번 웃고 말했다.

 

[그거 고맙구료.]

 

도간선이 말했다.

 

[고마워할 건 없어. 우리 도곡육선은 당신과 친구이니까.]

도실선이 말했다.

 

[내가 몇 수 시전하여 당신들 화산파 사람들의 견문을 넓혀 주는 게 어떨까?]

 

악 부인은 이들이 천진난만(天眞爛漫)하고 세상일을 모르고 있으며 호의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의 말이 점점 방자하게 변하자 분노가 울컥 치밀어 올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장검을 들어 도실선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요, 내가 당신의 무공을 가르침 받겠어요.]

 

도실선이 웃으며 말했다.

 

[도곡육선은 손을 쓸 때 병기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지. 당신은 우리를 오랫동안 존경해 왔다면서 아직 모르고 있군!]

 

악 부인은 앙칼지게 외쳤다.

 

[나는 모르고 있소.]

 

장검은 튀어오르듯 찔러갔다.

그 일검은 지극히 빨랐고 검의 기세 또한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도실선은 그녀에 대해 조금도 적의(敵意)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말을 하면서 찔러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검끝은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가 막으려고 했다면 그의 무공으로는 별로 어렵지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겁이 많았다. 멍하니 눈을 뜬 채 두려운 눈빛으로 찔러오는 장검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검은 여지없이 도실선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도지선이 황급히 달려들며 일장으로 악 부인의 어깨를 가격했다.

악 부인의 온몸이 흔들리며 두 걸음 밀려났으며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 검은 도실선의 가슴에 꽂힌 채 싸늘한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도근선 등은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도지선은 도실선을 안고 황급히 물러섰다.

남은 네 명은 튀어나가 신속하게 악 부인의 사지를 움켜쥐고 높이 들어올렸다.

악불군은 그들이 힘주어 당기기만 하면 부인의 몸이 네 조각으로 찢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 일을 침착하게 처리하던 그였지만 입을 쩍 벌린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호통을 치며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영호충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사모님이 네 조각으로 찢어지려는 순간 벌떡 일어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분을 찢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경맥을 끊고 자살을 하겠소!]

 

그 두 마디를 지르고는 입으로 피를토하고 혼절하였다.

도근선은 악불군의 일검을 피하며 외쳤다.

 

[저 녀석이 경맥을 끊고 자살하면 큰일난다! 노파를 놓아줘라.]

사선(四仙)은 악 부인을 놓은 후 도실선의 목숨이 걱정되어 도지선과 도실선의 뒤를 쫓아갔다.

 

악불군과 악영산은 악 부인 옆으로 달려가 부축해 일으켰다.

악 부인은 크게 놀란 나머지 창백하게 얼굴빛이 변했으며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악불군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사매는 놀라지 마시오. 우리들이 나중에 혼을 내줍시다. 그들 육인은 강적이지만 당신이 한 사람을 죽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오.]

악 부인은 성불우가 도곡육선에게 분시되던 광경을 떠올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 그...... 그......]

 

몸이 떨리며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악불군은 아내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악영산에게 말했다.

 

[산아야, 너는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가서 휴식을 취하게 해드려라.]

 

악불군이 영호충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과 가슴이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었고 호흡은 미약하여 나오는 기(氣)는 많으나 들어가는 호흡은 적은지라 살아나기가 어렵다고 판단을 내렸다.

악불군은 손을 뻗어 영호충의 등에 있는 영대혈(靈?穴)을 누르고 심후(深厚)한 내공을 밀어 넣어 목숨을 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영호충의 체내에서 갑자기 괴한 내력(內力)이 솟구쳐 악불군의 내공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는 자신의 손이 그힘에 의해 영호충의 몸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몇 가닥의 기괴한 내력이 영호충 체내에서 서로 쉬지 않고 충돌하고 있었다. 악불군은 크게 의아했다.

다시 손바닥을 영호충의 가슴에 있는 단중혈(?中穴) 위에 붙였을 때 장심(掌心)에 또다시 극렬한 통중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통증이 가슴까지 치밀어 오르는지라 악불군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영호충의 체내에서 몇 가닥의 진기가 거꾸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방문좌도의 내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진기는 자신의 자하신공(紫霞神功)보다 약했지만 나머지 다섯줄기의 진기는 악불군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악불군은 더이상 장심을 대고 있을 수 없어 손을 거두며 생각했따.

 

(진기를 여섯 괴인이 충아의 체내에 주입시킨 모양이구나! 육괴는 악독한 마음으로 각기 내력을 여섯 개로 나누어 충아에게 주입시켜 고통을 주면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었구나.)

악불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근명(高根明)과 육후아에게 영호충을 내실(內室)로 데려가라고 명했다. 그리고 부인을 찾아갔다.

악 부인은 아직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녀는 방안으로 악불군이 들어오자 급히 물었다.

 

 

[충아는 어떤가요? 상세(傷勢)가 덧나지는 않았나요?]

악불군은 영호충의 체내에 여섯 줄기의 진기가 서로 싸우고 있는 현상을 설명해 주었다.

악 부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육괴의 진기를 하나하나 제거해야 할텐데 그들이 그때 들이닥치면 어떡하죠?]

[사매,당신의 말은 그 육괴가 충아를 괴롭힌 것에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이오?]

 

악 부인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들은 충아를 고문하여 우리 문파의 비밀을 말하라고 핍박했을 거예요. 충아가 죽어도 굴복하지 않자 그 못난 작자들은 더욱 모진 고문을 가했을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소. 그러나 우리 문파에 무슨 비밀이 있겠소? 육괴들과 우리 부부는 평소 원한도 없소. 그들이 충아를 잡아갔다가 다시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 채 생각에 잠겼다.

악영산이 문득 말했다.

 

[우리 문파에 은밀한 비밀은 없지만 화산파의 무공은 천하에 알려져 있어요. 육괴는 대사형을 잡아 우리 문파의 기공(氣功)과 검법(劍法)의 정묘한 점을 알아내려고 했을 거예요.]

 

악불군이 말했다.

 

[그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 육괴들은 내공이 매우 깊다. 나는 한번의 시험으로 알 수 있었다. 외공(外功)에 있어서는 육괴의 무공과 화산파의 검법은 공통점이 조금도 없다. 따라서 네 말은 타당하지 않다. 더우기 핍박하여 비밀을 캐려면 화산에서 멀리 떠나 천천히 고문을 가했을텐데 어찌하여 그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겠느냐?]

 

악 부인은 그의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럼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그랬을까요?]

 

악불군은 안색을 침중하에 고치며 천천히 말했다.

 

[충아의 상세를 치료하느라고 나의 내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리려는 수작이겠지.]

 

악 부인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맞아요! 당신이 충아의 목숨을 구하려면 반드시 내력(內力)으로 그 여섯 줄기의 진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해요. 그것을 기다렸다가 육괴들은 다시 나타날 것이예요.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수법으로 우리의 목숨을 제거하려는 것이예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그녀는 다시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오괴(五怪)만 남았어요. 사형, 방금 그들은 분명 나를 잡았었는데 어찌하여 충아의 외침을 듣고 나를 풀어주었을까요?]

 

아까의 위험했던 광경이 떠오르자 목소리가 떨려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악불군이 말했다.

 

[나는 그 일을 생각해 보았소. 당신이 그들 가운데 한 명을 죽였으니 얼마나 큰 원한을 갖고 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충아가 스스로 경맥을 끊어 자살하겠다는 소리를 듣고는 당신을 놓아 주었소. 당신 생각해 보오. 만일 큰 음모가 없다면 그들 육괴가 충아의 한 생명을 무엇 때문에 아끼려 하겠소?]

 

악 부인은 중얼거렸다.

 

[음험하기 짝이 없고 독랄하기 그지 없는 속셈이 있겠지요.]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그들 네 괴물은 성불우를 찢어죽였다. 그처럼 악랄한 사람은 무림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틀동안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그들이 소란을 일으키자 봉불평도 장문인 자리를 빼앗으려던 일을 포기하고 육백과 함께 산에서 내려갔다. 그 육괴들은 화산파를 위해 잠시 근심거리를 막아주더니 이번에는 화산파에 우환을 심어 주었구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당신의 내력으로 충아의 상세를 치료해서는 안 돼요. 나의 내력이 비록 당신만 못하지만 그의 생명을 보전시킬 수는 있을 거예요.]

 

말과 함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악불군이 불렀다.

 

[사매!]

 

악 부인이 돌아섰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소. 그 육괴의 방문진기(旁門眞氣)는 매우 지독했소.]

악 부인이 말했다.

 

[단지 당신의 자하신공(紫霞神功)만이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요? 어떻게 하지요?]

 

악불군이 말했다.

 

[눈앞을 조심해야 하니 먼저 충아의 목숨만 이어 놓읍시다. 하지만 내력을 많이 소모해서는 안 되오.]

 

세 사람은 영호충이 누워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악 부인은 그의 호흡이 실날 같은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어 맥박을 짚었다.

악불군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손을 놓자 쌍 장을 영호충의 두 손바닥에 붙이고 내력을 천천히 주입시켰다.

그의 내력과 영호충 체내의 진기가 충돌하였다.

악불군의 몸이 한 차례 진동했따. 얼굴에 자기(紫氣)가 떠오르더니 한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영호충이 돌연 입을 열어 말했다.

 

[임...... 임 사제(林師弟)는?]

 

악영산은 흠칫 놀라며 말했다.

 

[당신은 소림을 찾고 있나요?]

 

영호충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의 부친이...... 죽을 때, 나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그에게 전해 주어야 하오. 나는...... 줄곧 그와 말할 시간이 없어...... 나는 곧...... 빨리 그를 찾아오시오.]

 

악영산은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가린 채 밖으로 나갔다.

그때 화산파의 제자들은 문 밖을 지키고 있었다.

임평지는 악영산의 말을 전해 듣고 즉시 방으로 들어가 영호충 앞에 섰다.

 

[대사형, 몸을 보중하십시오.]

 

영호충이 말.

 

[임 사제인가?]

 

임평지가 말했다.

 

[소제(小弟)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영존이 별세할 때...... 나는 옆에 있었다. 나중에 말을 전해달라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숨소리는 더욱 잦아들었다.

모든 사람은 침통해 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영호충이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향양(向陽)...... 향양항(向陽巷)의 옛집...... 옛집의 물건을 그대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네. 다만...... 다만 절대로 뒤집어 보지 말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후환이 무궁할......]

 

임평지는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향양항의 옛집이라고요? 그곳에는 일찌기 사람이 살지 않았으며 긴요한 물건은 더욱 없었읍니다. 아버지는 무슨 물건을 뒤집어보지 말라 하셨읍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모르네. 그대 아버님은...... 바로 그 말을 하고는...... 죽었네.]

 

음성이 다시 잦아들었다.

네 사람은 한참 기다렸으나 영호충은 끝내 말하지 못했다.

악불군은 탄식을 토하고 임평지와 악영산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대사형아 모시고 있다가 병세에 변화가 보이면 즉시 나에게 알려라.]

 

임, 악 두 사람은 대답하였다.

 

[예.]

 

악불군 부부는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왔다. 영호충의 상세가 무거워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악 부인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악불군이 침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슬퍼하지 마시오. 충아의 복수를 해 줍시다.]

악 부인이 말했다.

 

[그 육괴가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비록 진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악불군은 고개를 저었다.

 

[진다고 할 수 없다고? 아니오. 우리 부부가 그들 삼인을 상대하면 단지 평수(平手)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들 넷이라면 지고 말 것이오. 그들 다섯 명이라면......]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악 부인도 그들 부부가 그들 오괴(五怪)의 적수가 못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근래에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대성(大成)한 뒤 공력이 크게 진보했기에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의 말을 듣자 더욱 불안해졌다.

 

[그...... 그럼 어떻게 하지요? 설마하니 속수무책으로 죽을 수밖에 없단 말인가요?]

 

악불군이 말했다.

 

[낙담하지 마시오. 대장부는 구부릴 때 구부리고 펼 때 펴야 하오. 승부는 결코 일시적인 것이 아니오. 군자(君子)의 복수는 십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 것이오.]

 

악 부인은 흠칫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도망가야 한다고 말을 하는 거예요?]

악불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잠시 피하자는 것이오. 적은 많고 우리는 적소. 우리 부부 두 사람이 어떻게 다섯 명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겠소? 하물며 당신이 이미 한 명을 죽였으니 잠시 피했다고 해서 화산파의 위명이 추락되지는 않소. 더우기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외인(外人)은 결코 이 일을 알지 못할 것이오.]

 

악 부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비록 일괴를 죽이기는 했지만 충아의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워요. 충아는...... 충아는......]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우리는 충아를 함께 데려가 천천히 그를 치료해야 돼요.]

 

악불군이 말이 없자 악 부인은 초조해졌다.

 

[당신은 충아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는 건가요?]

 

악불군은 입을 열었다.

 

[충아의 상세는 극히 중하오. 그를 데리고 길을 재촉하면 반 시진도 못가 목숨을 버리게 될 것이오.]

 

악 부인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정말 그의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는 건가요?]

 

악불군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 그날 나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전수해주려고 결심했는데 그가 헛된 생각을 하고 검종(劍宗)의 마도(魔道)에 빠졌을 줄이야! 당시 그가 비급(秘?)을 익혀 한 두 줄만 연성했다면 지금쯤 스스로 기를 조절하여 상세를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악 부인은 즉시 일어서며 말했다.

 

[일이란 늦으면 안 돼요. 당신은 즉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그에게 전수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자하비급(紫霞秘?)을 주어 책을 보고 익히도록 하세요.]

 

악불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사매, 내가 충아를 사랑하는 마음은 당신과 조금도 다를 바 없소. 그러나 생각해 보시오. 그는 지금 상세가 지독한데 어떻게 내가 전수해 주는 구결(口訣)과 연공법문(練功法門)을 들을 수 있겠소? 내가 비급을 그에게 주고 신지(神智)가 맑을 때 스스로 연습하라고 했을 때 오괴들이 찾아오면 우리 화산파 진산지보(鎭山之寶)인 내공비급(內功秘?)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겠소? 그들 방문좌도(旁門左道)의 무리가 우리 문파의 내공심법(內功心法)을 얻게 되면 호랑이가 날개를 얻는 격이 되어 다시는 제압할 수 없게 되면 나 악불군은 진짜 천고의 죄인이 되고 만다오.]

악 부인은남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악불군이 말했다.

 

[오괴들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이 표홀하오. 늦어서는 안 되니 우리들은 즉시 행동합시다.]

 

악 부인이 말했다.

 

[우리가 정말 충아를 이곳에 남겨두어 그들에게 고통을 받도록 해야 하는가요? 내가 남아 그를 보호하겠어요.]

 

악불군이 타일렀다.

 

[당신이 남아 있어도 헛되이 목숨만 버릴 뿐이오. 당신이 충아를 보호할 수 있겠소? 또한 당신이 남아 있으면 남편과 여식이 어떻게 하산(下山)할 수가 있겠소?]

 

악 부인은 상심하여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악불군은 고개를 저으며 길게 탄식하더니 침상 머리를 뒤집어 하나의 철함(鐵含)을 꺼냈다.

철함을 열고 비단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책자를 꺼내 품속에 갈무리 한 후 문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 악영산이 서 있다가 말했다.

 

[아버지, 대사형은...... 틀린 것 같아요.]

 

악불군은 놀라 물었다.

 

[어떻더냐?]

[그는 갈수록 정신이 흐려져 헛소리를 했어요.]

 

악불군이 물었다.

 

[그가 무슨 헛소리를 하더냐?]

 

악영산은 얼굴을 붉히고는 말했다.

 

[저도 무슨 헛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원래 영호충은 혼미한 가운데 악영산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말했었다.

 

[소사매, 당신은 임 사제를 좋아하고 있으니 내가 죽으면 다시는 나를 생각하지 않겠지?]

 

악영산은 그가 임평지의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얼굴이 달아올랐으며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웠다.

영호충은 또다시 말했다.

 

[소사매, 나와 당신은 어려서부터 함께 컸으며, 같이 놀고, 검을 닦아왔소. 내가 당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없구료.

당신이 화가 났으면 나를 때리고 욕하시오. 그리고 검으로 내 몸을 찌르시오. 나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소. 단지 당신은 나에 대해 그렇게 냉담하게, 무심하게 대하지 마시오.]

 

그 말은 몇개월 동안 그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생각했던 말이었다. 만일 정신이 맑을 때였다면 악영산 한 사람과 같이 있었다 해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자제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말을 토해 낸 것이었다.

임평지는 매우 무안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나가 있겠읍니다.]

 

악영산이 말했다.

 

[안 돼요! 당신은 이곳에서 대사형을 살피고 있어요.]

황급히 밖으로 나와 부모님의 방 밖에 달려갔다가 자하신공(紫霞神功)으로서 치료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부모의 대화를 끊을 수 없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악불군이 말했다.

 

[너는 모두에게 정기당(正氣堂)에 모이라고 전해라.] [대사형은요? 누가 그를 보살피지요?]

 

악불군이 말했다.

 

[육후아에게 돌보도록 해야지.]

 

악영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명령을 전하러 갔다.

 

잠시 후 화산파의 뭇제자들은 정기당에 모였다.

악불군은 교의(交倚)에 앉아 있었고 악 부인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악불군은 영호충과 육후아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모이자 입을 열었다.

 

[우리 파의 윗대 선배 가운데 무공을 배울 때 길을 잘못들어 기공(氣功)을 그만두고 검법(劍法)만을 열심히 수련했던 분들이 있었다. 천하의 상승무공(上乘武功)은 기공(氣功)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만일 기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검법이 아무리 정묘해도 등복조극(登峯?極)의 경지에 이를수 없다. 그들은 이 사실을 망각했다. 한스러운 것은 그 선배들이 깨닫지 못하고 아집에 빠져 뜻밖에도 종파를 이루고 화산파 검종(劍宗)이라고 칭하고, 기존의 화산파 무공을 기종(氣宗)이라고 했다. 기종과 검종의 싸움은 수십년간 이어져 우리 문파의 발전을 저해했다.]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장 탄식을 토해냈다.

악 부인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 요괴들이 눈 앞에 있는데 당신은 이곳에서 옛일이나 들추며 꾸물거리다니 한심하군요!)

 

그녀는 남편을 흘겨보고 다시 정기당(正氣堂)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현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화산파 검법을 처음 배우던 옛날에는 당(堂) 위의 편액은 검기충소(劍氣沖宵) 넉자 였었다. 지금은 정기당(正氣堂)이라 개칭하였고, 원래의 그 편액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구나. 에이, 그때 나는 아직 십삼세의 작은 아이였는데 지금은...... 지금은......)

 

악불군이 말했다.

 

[그러나 정사시비(正邪是非)는 마지막에 분명해졌다. 25년전 검종(劍宗)은 일패도지하여 화산파에서 쫓겨나갔고 그후 이 사부가 문호(門戶)를 집장(執掌 = 집권, 장악)하여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헌데 수일 전에 봉불평과 성불우 등이 오악검파의 좌맹주(左盟主)를 속여 영기(令旗)를 들고 와서 화산장문을 강탈하려 했다.

이 사부가 화산장문이 된 지 어언 25년, 속무(俗務)가 많고 구설수가 많아 일찌 퇴위하여 문하제자에게 물려주고 조용한 마음으로 우리 문파의 상승기공심법(上乘氣功心法)을 연구하고자 했다.]

고근명이 소리쳤다.

 

[사부님, 봉불평 등 쫓겨난 검종의 무리는 일찌기 마도(魔道)에 들었으니 마교와 다를 바 없읍니다! 그들이 다시 우리 문파에 들어오는 것도 안 될 일일진대 어찌 광망스럽게 장문인 자리를 넘본단 말입니까?]

 

노덕약, 양발, 시대자 등 모두가 말했다.

 

[그들 미친 무리에게 양보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악불군은 뭇제자들의 표정이 격앙된 것을 보고 미소지으며 입을 열였다.

 

[나 자신이 장문이고 아니고는 작은 일이다. 검종의 좌도지사(左道之士)가 만일 우리 문파를 통솔하게 된다면 화산파의 수백년 동안 내려온 무학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말터이니 우리들이 죽은 후에 본파의 역대선배(歷代先輩)들을 무슨 면목으로 뵐 수 있겠느냐? 화산파의 이름 또한 장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노덕약 등은 일제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악불군이 말했다.

 

[다만 봉불평 등 쫓겨난 무리는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악검파의 영기(令旗)를 청해오고 또한 숭산(嵩山), 태산(泰山), 형산 등 각파의 인물과 결탁했으니 가볍게 볼 수가 없다. 그와 같은 까닭으로......]

 

그는 제자들을 한번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숭산파로 가서 좌맹주(左盟主)를 만나 따져야 할 것이다.]

 

악불군의 말이 떨어지자 화산파의 모든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숭산파는 오악검파를 영도하는 막강한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숭산파의 장문인 좌랭선(左冷禪)은 당금 천하에서 태양처럼 떠받들려지는 존재였다.

무공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고 지모(智謀)의 뛰어남이 제갈량에 못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강호에서는 좌랭선이라는 석 자를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이름을 듣는 것조차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는 신출귀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제자들은 생각했다.

 

(사부님은 무공이 높다고는 하지만 좌맹주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더구나 좌맹주에게는 사제(師弟)가 십여 명이나 있어 무림에서 숭산십삼태보(嵩山十三太保)라고 불리고 대숭양수(大嵩陽手) 비빈(費彬)이 죽었지만 아직도 열 두 명이 남아 있다. 그들 열두명은 무공이 탁절(卓絶)한 고수(高手)가아닌가? 우리 화산파의 이대제자(二代弟子)들은 숭산십삼태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경솔하게 숭산파로 가 일을 벌인다는 것은 너무 경망스런 짓이 아닐까?)

 

제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누구도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악 부인은 남편의 말을 듣고 속으로 탄복을 금하지 못했다.

 

(사형의 이 계략은 극히 교묘하구나! 우리들이 도곡오괴(桃谷五怪)를 피하기 위해 화산을 버리고 멀리 피했다는 사실이 강호상에 알려지면 우리 화산파의 체면이 어찌되겠는가? 그러나 숭산파로 따지러 갔다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보고 대담하다고 칭찬을 할 것이다. 좌맹주는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숭산에 올라가도 우리와 목숨을 걸고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을 마치고 손뼉을 쳤다.

 

[맞아요! 봉불평은 오악검파의 영기(令旗)를 지니고 와서 소란을 피웠는데 영기를 훔쳤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리고 정말 좌맹주가 보냈다 하더라도 화산파의 일에는 숭산파가 관여할 수 없어요. 숭산파가 비록 사람이 많고 세력이 강하며 좌맹주의 무공이 세상을 덮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화산파는 굴복해서는 안 돼요. 죽음이 두려운 자는 이곳에 남아야지요. 그런 겁장이는 필요 없어요.]

 

제자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사부님과 사모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제자들은 용담호혈 속이라도 뛰어들겠읍니다!]

 

악 부인이 말했다.

 

[일이란 늦으면 안 되니 모두들 짐을 챙기고 즉시 하산(下山)하도록 해라.]

 

말을 마친 그녀는 영호충을 찾아갔다.

영호충은 기식(氣息)이 엄엄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악 부인은 마음이 비통해졌지만 즉시 육후아에게 영호충을 뒤의 작은 집에 옮기라고 명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후아(?兒), 우리는 본파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 숭산파로 가서 좌맹주에게 따지려고 한다. 이 일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너의 사부가 잘 통솔한다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충아는 상세가 매우 중하니 잘 보살피도록 해라. 너희는 욕됨을 참고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말아라.]

 

육후아는 눈물을 머금고 응답했다.

 

육후아는 산 아래까지 사부와 사모, 여러 사형제들을 전송하고 외롭게 영호충이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화산절봉에는 정신을 잃은 대사형과 자신만이 남아 있었다. 점점 어둠이 깊어가는 것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주방에 가서 한 남비의 죽을 끓여 대접에 담아다가 영호충을 일으키고 몇 모금 마시게 했다.

세 모금을 마실 때 영호충은 죽을 토했는데 하얗던 죽은 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선혈(鮮血)을 토해내던 것이다.

육후아는 매우 당황했다. 다시 잠든 영호충을 안은 채 어두운 창 밖을 멍하니 내다 보고 있었다.

멀리서 밤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생각했다.

 

(밤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병든 사람의 눈썹 수와 같으면 병든 사람이 죽는다던데......)

 

갑자기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육후아는 황망히 등불을 끄고 영호충을 침상에 눕히고 검을 뽑아들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으며 곧장 작은 집을 향해 다가왔다. 육후아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적이 대사형이 이곳에서 요양하는 것을 알고 있나보다. 끝났구나! 내가 어떻게 대사형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돌연 여자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육후아(六?兒),당신 거기 있나요?]

 

악영산의 음성이었다.

육후아는 크게 기뻐하며 황급히 말했다.

 

[여기 있어!]

 

황급히 등불에 불을 붙였을 때 악영산이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대사형은 어떤가요?]

 

육후아는 대답했다.

 

[피를 많이 토했어.]

 

악영산은 침상으로 다가가 영호충의 이마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숯불처럼 뜨거웠다. 악영산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어째서 피를 또 토했지요?]

 

영호충이 돌연 입을 열었다.

 

[소사매...... 당신이오?]

[그래요. 대사형, 몸이 어떠세요?]

[그저...... 그래.]

 

악영산은 품 속에서 하나의 보자기를 꺼내며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대사형, 이것은 자하비급(紫霞秘?)이예요. 아버지는 말했어요......]

 

영호충이 말했다.

 

[자하비급(紫霞秘?)?]

[그래요. 아버지는 당신 몸에 방문고수(旁門高手)의 내력(內力)이 주입되어 있다고 했어요. 반드시 본문의 무상심법(無上心法)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육후아, 당신은 한자 한자 대사형이 들을 수 있게 읽어줘요. 그러나 당신 자신이 연성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았다가는 아버지가 아시게 된다면...... 흥흥, 당신 자신도 무슨 결과가 생기는지 알거예요.]

 

육후아는 대단히 기뻐하며 급히 말했다.

 

[내가 어찌 본문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한 내공심법(內功心法)을 훔쳐배울 수 있겠어? 소사매는 안심해도 좋아. 은사께서 대사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를 깨뜨리시고 비급을 전해 주셨으니 대사형은 살 수 있을 거야.]

 

악영산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요. 이 비급은 내가 아버지의 베개 밑에서 훔쳐 온 것이예요.]

 

육후아는 놀라 말했다.

 

[소사매가 사부...... 사부의 내공비급을 훔쳤다고? 어르신네가 알게 되면 어찌하려고?]

 

악영산이 말했다.

 

[뭐 어때요? 설마하니 나를 죽이기야 하겠어요? 꾸중을 하시고 몇 대 때릴 뿐이겠죠. 혹시 대사형을 구하게 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육후아가 말했다.

 

[맞아! 우선 목숨을 구하고 보는 거지 뭐.]

 

영호충이 돌연 말했다.

 

[소사매, 당신은 돌아가서...... 사부님께 돌려 주시오.]

악영산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왜요? 나는 비급을 훔치느라고 여간 고생을 하지 않았다구요.

밤길을 걸어올 때 무서웠지만 꾹 참았어요. 이것은 무공을 훔쳐 배우는게 아니고 목숨을 구하는 일이예요. 당신은 왜 필요없다고 하지요?]

 

육후아도 말했다.

 

[맞아요. 대사형은 전부 익힐 필요가 없어요. 육괴의 사기(邪氣)를 제거하는데 필요한 정도까지만 익히고 비급을 사부님께 돌려 드리면 그때는 사부님께서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대사형에게 자하신공을 전수하실 거예요. 당신은 화산파 장문대제자(掌門大弟子)예요. 사부님께서 자하비급(紫霞秘?)을 대사형께 전수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전수하겠읍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나는...... 죽는다 해도 사부의 명을 어길 수 없다. 사부께서 말씀 하시기를 나는...... 자하신공을 배울 수 없다고 하셨다. 소사매...... 소..... 소사매......]

 

그는 두 마디를 오치고는 또 다시 혼절하였다.

악영산은 한숨을 내쉬며 육후아에게 말했다.

 

[나는 돌아가야 돼요. 날이 밝아질 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초조해서 돌아가실거예요. 당신은 대사형께 권하여 자하비급을 익히도록 해야돼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세요. 부탁이예요.]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하룻동안 분주히 뛰어다닌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요.]

육후아가 말했다.

 

[내 성의를 다해 권해볼께. 소사매, 사부와 사형제들은 어디에 있지?]

[우리는 오늘밤은 백마묘(白馬廟)에서 보내게 됐어요.] [응, 백마묘는 이곳에서 삼십리(三十里) 떨어진 곳이지. 소사매가 육십리(六十里) 길을 분주히 뛰어다닌 노고를 대사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야.]

 

악영산은 눈가를 붉히며 목메인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그가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이예요. 그가 기억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말과 함께 자하비급을 영호충의 침상 머리맡에 놓고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한 시진이 흐르고 나서야 영호충은 다시 깨어났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외쳤다.

 

[소...... 소사매! 소사매!]

 

육후아가 말했다.

 

[소사매는 이미 갔읍니다.]

 

영호충은 크게 외쳤다.

 

[갔다고?]

 

돌연 벌떡 일어나 앉으며 육후아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육후아는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예, 소사매는 산을 내려가며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고 했읍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걱정하신다고 말했읍니다. 대사형, 푹 쉬도록 하십시요.]

 

영호충은 다시 말했다.

 

[소사매는 임 사제와 함께 있느냐?]

[그녀는 사부님과 사모님과 함께 있읍니다.]

 

영호충은 눈을 부릅떴다. 얼굴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육후아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는 대사형께 관심을 갖고 야반 삼경(三更)에 백마묘(白馬廟)에서 돌아왔읍니다. 그녀는 아가씨의 몸으로 육십 리 길을 왔다 돌아갔어요. 대사형에 대해 정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럴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돌아가면서 여러번 당부했어요. 사형이 반드시 자하비급을 익혀, 대사형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저버리지 말기를 바란다고요.]

[그녀가 그런 말까지 했어?]

[그렇다니까요. 설마하니 내가 대사형에게 거짓말을 하겠읍니까?]

 

영호충은 더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졌다.

육후아는 깜짝 놀라 말했다.

 

[대사형, 내가 읽어 드리겠읍니다.]

 

자하비급(紫霞秘?)을 집어든 육후아는 일항(一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천하무공(天下武功)은 기(氣)를 연성(練成)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원래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건만 사람이 올바르게 그것을 기르지 않고 오히려 마음대로 기(氣)를 눌러 버린다. 무부(武夫)의 후환은 성격의 급함과 교만, 잔인, 그리고 교활함에서 비롯되느니라. 폭급정신과 기를 혼란스럽게 하고, 교만함은 기를 뜨게 만들며, 잔인함은 기를 잃게 하고, 교활함은 기를 부족하게 하느니라. 이 네 가지는 모두 기를 끊는......]

영호충이 말했다.

 

[너는 무엇을 일고 있느냐?]

 

육후아가 말했다.

 

[자하비급의 제일장(第一章)입니다. 그 아래 글은......]

그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네 가지를 버리고 오직 부드러움으로 폭급함과 잔인함을 제어하고 정기(正氣)를 기른다.]

[닥쳐라!]

 

영호충은 크게 소리쳤다.

육후아는 멈칫하여 고개를 들었다.

 

[대사형, 왜 그러시오? 어디가 불편합니까?]

 

영호충은 노하여 말했다.

 

[네가 사부님의...... 내공비급을 읽는 소리를 들으니 몸전체가불편하다. 너는 나를......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로 만들려고 하느냐?]

 

육후아는 놀라 말했다.

 

[아닙니다. 무엇이 불충불의하다는 것입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그 자하비급은 전에 사부님께서 사과애(思過崖) 위로 가져와 나에게 전해 주시려고 한 적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연공(練功)의 길을 잘못 들었고 자질(資質)이...... 자질이 떨어진다고 하시고 생각을 바꾸셨다.]

 

거기까지 말하고는 숨이 찬 지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

육후아가 말했다.

 

[이것은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무공을 훔쳐 배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영호충이 말했다.

 

[우리 제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중요시해야 하느냐 아니면 사부님의 가르침을 중요시해야 하느냐?]

 

육후아가 말했다.

[사부님과 사모님은 사형을 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더우기...... 소사매는 밤에 분주히 뛰어 다녔읍니다. 그 정의(情意)를 어떻게 저버릴 수 있읍니까?]

 

영호충은 가슴이 저려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훔쳐왔기 때문에...... 나 영호충은 당당한 대장부인데 어찌 아녀자의 동정을 받겠느냐?]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뇌리 속을 섬광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나 영호충은 구애받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본시 내가 자하신(紫霞神功)을 익히기를 거부한 것은 소사매가 훔쳐왔기 때문이다. 나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소사매와 임 사제에 대하여 한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영호충아, 영호충아, 너는 어찌 그리 소심한가?)

 

그러나 악영산이 임평지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멀리 숭산까지 가는 광경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파와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육후아가 말했다.

 

[대사형, 소사매와 당신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 친자매와 같지 않습니까? 대사형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와 친자매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육후아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다시 읽을테니 사형은 천천히 들으십시오. 일시 기억할 수 없을테니 내가 몇번이고 읽어 드리겠읍니다. 천하무공은 연기(練氣)를 위주로 하느니라.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본시 하늘로부터......]

[그만두어!]

 

영호충은 버럭 소리쳤다.

육후아는 말했다.

 

[예예, 대사형, 상처를 신속하게 치유하기 위해서 오늘 소제는 대사형의 말을 따르지 않겠읍니다. 스승의 명을 거역한 죄는 나 혼자 감당하겠읍니다. 무슨 말을 하든 나 육후아는 읽어야겠읍니다. 이 자하비급(紫霞秘?)에 사형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고 비급에 기록된 심법(心法)을 당신은 한 글자도 보지 않았읍니다. 당신은 병상에 누어 있고 몸도 움직일 수 없읍니다. 나 육후아는 읽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본시 하늘로부터 받은......]

 

육후아는 쉬지 않고 읽어 내려 갔다.

영호충은 듣기 싫어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돌연 큰 소리로 신음했다.

육후아는 놀라 물었다.

 

[대사형, 어찌된 일이오?]

[너는...... 베개를 높여다오.]

[예.]

 

육후아는 두 손으로 베개를 받들어 주었다.

영호충은 손가락을 뻗어 내공(內功)을 끌어올려 육후아의 가슴에 있는 단중혈(?中穴) 위를 찔렀다.

육후아는 소리도 없이 꼬꾸라졌다.

영호충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육 사제, 미안하네. 자네가 침상에 몇 시진 누워 있으면 혈...... 혈도(穴道)가 스스로 풀어질 것이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침상에서 일어나 자하비급을 내려다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문쪽으로 다가가서 문 빗장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며 밖으로 나갔다.

육후아는 매우 다급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대사형...... 어디로...... 가...... 가시오!]

 

영호충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육 사제, 영호충은 자하비급(紫霞秘?)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좋다고 생각하네. 나의 시신 옆에 자하비급이 있으면 신공을 훔쳐 배우려다 죽었다고 할 것이니...... 임 사제가 나를 본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

 

거기까지 말하고는 '왁' 하고 선혈(鮮血)을 토해냈다.

그는 기력을 조절한 다음 빗장으로 몸을 지탱한 채 기침을 해대며 천천히 멀어져 갔다.

영호충은 있는 힘을 다하여 걸음을 옮겼다. 반시진 동안 반리(半里)정도 나갔을 때 눈 앞에 별이 오락가락하고 천지가 도는 것 같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앞의 풀더미 속에서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누구요?]

 

그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영호형(令狐兄)이오? 나는 전백광(田伯光)이오. 아이고! 아이고!]

 

아마도 몹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영호충은 놀랐다.

 

[전...... 전형(田兄), 왜 그러시오?]

[죽을 지경입니다. 영호형, 당신은 좋은 일 해주는 셈치고...... 아이고...... 아이고...... 빨리 나를죽여주시오.]

그는 큰 소리로 고통을 호소했으나 음성은 우렁찼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은...... 상처를 입었소?]

 

그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길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전백광이 놀라 말했다.

 

[당신도 상처를 입었소? 아이고! 아이고! 당신을 해친 사람이 누구요?]

 

영호충은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소? 전...... 형, 누가 당신을 해쳤소?]

전백광은 말했다.

 

[아...... 나도 모른다오.]

 

영호충은 다시 물었다.

 

[어찌 모른다 하시오!]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손 두 발을 사람에게 잡혀 허공에 떠올랐소. 누가 그런 신통력(神通力)을 가졌는지 보지 못했다오.]

 

영호충이 웃으며 말했다.

 

[또 도곡육선(挑谷六仙)이었군...... 아, 전형, 당신은 그들과 일행이 아니었읍니까?]

[일행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의...... 의림(儀琳) 소사매(小師妹)를 보러 가자고 청했고...... 그녀에게 가봐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녀......]

 

숨이 가빠온 영호충은말을 다하지 못했다.

전백광은 숲속에서 기어나와 고개를 저으며 욕을 했다.

 

[제기랄...... 당연히 일행이 아니오. 그들은, '화산에 한 사람을 찾으러 올라왔는데 그 사람이 이곳에 있느냐' 하고 물었소. 나는 그들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물어 보았소. 그들이 말했소. 그들이 이미 나를 잡았으니 당연히 그들이 나에게 물어보아야지 내가 그들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고 했읍니다. 만약 내가 그들을 잡았다면 그때는 마땅히 내가 그들에게 물어볼 수가 있으며 그들은 나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고 했소. 그들은...... 아이고...... 귿르은 말했소. 나에게 재주가 있다면 자신들을 붙잡아 보라고 하면서 그때는 그들에게 물어볼 수가 있다고 했소.]

 

영호충은 껄껄 두번 웃다가 숨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전백광이 말했다.

 

[내 몸은 허공에 떴고 얼굴은 땅으로 향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들을 잡을 수 있었겠소. 그런데도 빌어먹을 자식들은 헛소리만을 지껄여대었소.]

 

영호충이 물었다.

 

[다음에는 어찌 되었읍니까?]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말했소...... '내가 당신들에게 물어보려고 한게 아닙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물어본 것입니다. 빨리 나를 놓아주시오.' 그중의 한 사람이 말했소. '너를 이미 붙잡은 이상 사지를 조각내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 여섯 대영웅(大英雄)의 위명(威名)이 손상되지 않겠느냐.' 다른 한 녀석이 말하더군요...... '사지를 조각낸 후에 그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는 욕을 퍼부어대며 숨을 돌렸다.

영호충이 말했다.

 

[그 여섯 사람의 말은 억지에 불과하니 전형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읍니다.]

 

전백광이 말했다.

 

[제기랄...... 지에미...... 한 놈이 말하기를...... '사지가 조각난 사람은 당연히 말을 못하지. 우리가 네 조각을 낸 자들이 천(千)은 안 돼도 팔백(八百)은 될거야. 그 언제 찢어진 다음에 말을 한 사람이 있었던가?' 또 한 녀석이 말했소...... '네 조각으로 찢겨 죽은 사람이 말을 안 한 이유는 우리들이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물어본 적이 있다면 감히 대답을 안 하지는 않았을거야.' 다른 놈이 말하기를...... '네 조각으로 찢어졌는데 뭐가 두렵고 뭐가 감히 말할 수 있고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거야. 우리가 그를 다시 여덟 조각으로 찢어놓을까봐 두려워한단 말이야?' 먼저 말했던 자가 말했소...... '여덟 조각으로 찢는 무공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들이 옛날에 해 보았지만 지금은 잊고 있었던 것이야.']

 

전백광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는데 중상을 입고도 그들의 헛 소리들을 잘도 기억하고 있었다.

영호충은 탄식조로 말했다.

 

[그들 여섯분 인형(仁兄)들은 정말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오. 나도 그들에게 고약하게 당했소.]

 

전백광은 놀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영호형도 그들에게 당했군!]

 

영호충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아니랍니까?]

 

전백광이 말했다.

 

[나는 몸이 허공에 있을 때 사실은 정말 두려웠소. 나는 큰 소리로 말했소. '나를 잡아 찢으면 나는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오.

입으로는 말을 한다 해도 내 마음은 약이 잔뜩 올라 있으니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오!' 한 사람이 말하더군요. '네 몸이 네 조각으로 찢어진 후 너의 입술은 한 조각에 붙고 마음은 다른 조각에 있는데 마음속의 생각과 입 속의 말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즉시 그들에게 한방을 먹였읍니다. '빨리 물어보도록 하시오. 나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는 독기(毒氣)를 뿜겠읍니다.' 한 사람이 물어오더군요. '무슨 독기를 뿜는단 말이냐?' 내가 말하기를 '나의 방귀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오. 냄새를 맡고 나면 삼일 밤낮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삼일 전에 먹었던 음식도 다 토하고 만다오. 먼저 경고를 했으니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시오.'

 

영호충은 웃었다.

 

[그 몇마디는 어쩌면 쓸모가 있었겠는걸?]

 

전백광이 말했다.

 

[그렇소. 그 네 녀석은 내 말을 듣자 약속이나 한 듯 크게 비명을 지릅디다. 그리고 나를 내팽개치고 흩어졌지요. 내가 몸을 일으키고 바라보니 괴상하게 생긴 여섯 늙은이들은 각자 손으로 코를 틀어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소. 내 방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소. 영호형, 그들이 바로 도곡육선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오?]

영호충이 말했다.

 

[맞소. 아, 애석하게도 나는 전형과 같이 똑똑하지 못해서 당시 그...... 방귀의 계략을 쓰지 못했소. 전형의 그 계략은 옛날 제갈량(諸葛亮)이 사마의(司馬懿)를 놀라게 만든 공성계(空城計)에 뒤지지 않는 것이오.]

 

전백광은 쓰게 웃더니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두번 욕하고 말했다.

 

[나는 그 늙은이들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요. 또한 병기가 당신이 있던 사과애(思過崖) 위에 있는지라 즉시 방향을 바꾸어 도망치려고 했는데 그 육인이 손으로 코를 가린 채 울타리 같이 늘어서서 나의 앞을 가로막았읍니다. 흥!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나의 뒤에 서 있지는 못하더군요. 나는 곧장 몸을 돌렸는데 어찌된 노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육인은 어느새 귀신같이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겠소? 나는 수차례나 방향을 바꾸었지만 피할 수 없었소. 한보 한보 뒤로 후퇴하며 끝내 바위절벽에까지 물러서게 되었읍니다. 그 괴물들은 매우 재미있는지 하하 크게 웃으며 물었소. '그는 어디에 있느냐? 그 사람이 여기에 있느냐?' 나는 물었소. '당신들은 누구를 찾는 것이오?' 여섯 명은 일제히 말했소. '우리가 너를 포위하였고 너는 도망갈 길이 없으니 반드시 우리들 말에 대답해야 한다.' 그 중 한 명이 말하기를 '만약 네가 우리를 포위하고 도망갈 길이 없게 만든 다음 우리에게 물어온다면 우리는 순순히 대답할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소.

'그는 단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우리 여섯 사람을 포위할 수 있겠는가?' 먼저 말한 자가 말했소. '만약 그의 재주가 고강하다면 한 사람일지라도 여섯 명을 이길 수 있지 않은가?' 다른 한 놈이 말했소. '그것은 단지 우리를 기기는 것이지 우리를 포위하는 것은 아니야.' 먼저 말했던 괴인이 말했소. '그러나 우리들을 하나의 동굴 속에 몰아넣고 동굴 입구를 지키고 우리들로 하여금 나오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를 포위한 것이 아닐까?' 다른 한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은 가둔 것이지 포위한 것은 아니야.' 먼저 말한 자가 말했소. '그러나 팔이 긴 사람이 우리를 한꺼번에 감싼다면 포위한 것이 아닐까?' 다른 자가 말했소. '첫째, 세상에 그렇게 긴 팔을 가진 사람이 없고 둘째,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눈 앞에 있는 사람은 그처럼 팔이 길지가 않고 셋째, 그가 우리 여섯 명을 한번에 감싸 안았다 해도 그것은 안은 것이지 포위한 건 아니다.' 먼저 말했던 자가 눈쌀을 찌푸리며 한참고민하더니 갑자기 크게 웃으며 말했소. '있다! 그가 독기를 뿜어 우리들로 하여금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그 방귀가 우리를 에워싼다면 그 또한 포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머지 네 괴인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말했소. '맞다. 이 녀석은 우리를 포위할 방법이 있다.' 나는 영기(靈機)가 움직여 몸을 돌려 도망치며 소리쳤소. '내가...... 너희들을 포위하겠다!' 나는 그들이 나의 방귀를 두려워하고 다시 추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육괴들의 출수는 매우 빨라 내가 두 걸음도 채 옮기지 못했을 때 다시 그들에게 잡혔소. 그들은 나를 큰 바위 위에 앉혀놓고 나를 내리 눌렀소. 설령 방귀를 뀌어도 방귀는 새어나갈 틈이 없었소.]

 

영호충은 껄껄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몇 차례 웃지 않아 가슴에서 피가 용솟음 치는 듯하여 더 웃을 수가 없었다.

전백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육괴는 나를 계속 눌렀소.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물었소.

'방귀가 어디에서 나오지?' 다른 한 명이 물었소. '방귀는 장(腸)에서 나오니 자연 양명대장경(陽明大腸經)에 관계된다. 그러니 그의 상양(商陽), 합곡(合谷), 영향(迎香) 등 각 혈도를 짚어야 한다.' 그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 나의 그 네곳 혈도(穴道)를 짚었는데 출수(出手)의 빠름과 정확함은 나 전모(田某)도 평생 보기 어려운 것이어서 나를 감복케 하였소이다. 그가 혈도를 짚은 후 육괴는 모두 긴 숨을 내쉬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말했소.

'이...... 냄새나는 벌레는 다시는 방귀를 뀌지 못할 것이다.' 혈도를 짚었던 자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소. '이봐,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혈도를 풀어주지 않겠다. 방귀를 뀌지 못하게 하고 배가 퉁퉁 부어오르게 만들겠다.' 나는 생각했소. 이들 여섯 괴물의 무공이 이처럼 고강하니 화산에 와서 평범한 인물을 찾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오. 영호형, 존사(尊師)이신 악선생(岳先生) 부부는 산에 안 계셨고 설령 돌아왔다고 해도 정기당(正氣堂)에 거주하고 있으니 바로 찾을 수 있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육괴가 찾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의 태사숙(太師叔)인 풍 노선배(風老先輩)라고 짐작했지요.]

영호충은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

 

[당신은 그분의 거처를 누설했소?]

 

전백광은 매우 못마땅한 듯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쳇! 당신은 나를 어찌 보는거요? 나는 이미 당신에게 맹세했소. 절대로 풍 노선배의 행적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나 또한 당당한 사내대장부인데 어찌 맹세를 어기겠소?]

 

영호충이 말했다.

 

[맞소이다. 맞아! 소제가 실언했구료! 전형은 욕하지 마시오.]

전백광이 말했다.

 

[당신이 나를 다시 그런 식으로 얕본다면 우리는 금후 서로를 친구라 할 수 없게 될 것이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너는 무림에서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 채화음적(採花淫賊)인데 누가 친구로 사귀겠다고 했느냐? 다만 그대가 수차례나 나를 죽일 수 있는데도 손을 쓰지 않았기에 내가 너에게 정(情)의 빚을 지고 있을 뿐이다.)

 

어둠속이라 전백광은 그의 안색을 살펴볼 수 없었다. 전백광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육괴들이 쉬지 않고 묻기에 나는 큰 소리로 말했소. '나는 그 사람의 소재지를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소. 화산의 산령(山嶺)은 수도 없고 산동(山洞)이 수없이 많소.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한평생 그를 찾을 생각을 그만두어야 할거요.' 그 육괴들은 대노하여 나에게 혹독한 고통을 가하였소. 나는 그런 고통을 받는 것을 돌아보지 않았소. 영호형, 그 육괴의 무공은 괴이(怪異)하고 비상(非常)하니 당신은 빨리 가서 풍 노선배에게 알려 주시오. 그 어르신네의 검법이 비록 고강하다고 하지만 그들을 대항할 방비를 해야 할 것이오.]

 

전백광은 육괴가 자신에게 뼈를 깎는 고통을 가했다는 말을 담담하게 진술했는데 영호충은 혹독한 고통이란 말에 얼마나 많은 독랄한 혹형이 포함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육괴가 자신에 대해 일편의 호의로 상처를 치료해 주었는 데도 지금 그가 이토록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들이 전백광을 고문했다면 수단의 지독함을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형이 죽을망정 풍 태사숙의 거처를 누설하지 않았으니 정말 천하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구료. 그러나...... 도곡육선(桃谷六仙)이 찾은 사람은 나지 풍 태사숙이 아니라오.]

 

전백광은 몸을 한차례 떨고는 말하였다.

 

[당신을 찾은 것이라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당신을 찾은 것이오?]

 

영호충이 말했다.

 

[그들은 당신과 같이 의림 소사부의 부탁을 받고 나를 찾아와 그녀에게 데려가려고 찾아온 것이지요.]

 

전백광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말은 못하고 '어' 하는 소리만 연발할 뿐이었다.

한참 후 전백광은 말했다.

 

[일찌기 육괴들이 찾는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솔직이 알려 주었을 것이오. 육괴가 당신을 보러 갈 때 내가 따라갔다면 극독이 발작하여 화산에 몸을 묻지 않았을 것이오. 그런데 당신이 그들 수중에 떨어졌다면 당신을소사부(小師夫)에게 데려갔을텐데 어찌 혼자 있는 것이오?]

 

영호충은 한숨을 수며 말했따.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렵소. 전형, 당신은 극독이 발작하여 화산에 몸을 묻게 되었다고 했는데?]

 

전백광은 말했다.

 

[내가 일찌기 말했듯이 나는 사혈(死穴)을 짚히고 극독을 복용했소. 한달 내에 당신을 소사부(小師夫)에게 데려가지 못한다면 나는 죽고 만다오. 내가 당신을 청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손가락 꼽아 보니 독이 발작할 날도 10일 밖에 남지 않았구료.]

영호충이 물었다.

 

[의림 소사부는 어디 있읍니까? 이곳에서 간다면 며칠이나 걸리는지 알고 있읍니까?]

 

전배광이 말했다.

 

[당신은 가려고 하는가요?]

 

영호충이 말했다.

 

[당신은 수차례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소. 비록 당신의 행위는 깨끗하지 못하지만, 영호충은 나 때문에 독이 발작하여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가 없구료. 그날 당신이 강함을 믿고 나를 핍박하였기 때문에 나는 차라리 꺾일망정 굴복하지 않았던 것이외다. 지금의 정세는 그때와 다른 것이오.]

 

전백광은 말했다.

 

[소사부는 산서(山西)에 있소. 에이......! 만일 우리 두 사람의 몸이 건재하다면 쾌마(快馬)를 타고 달려 육칠 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지금 두 사람 모두 이 모양으로 상처를 입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소?]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오. 산에 있어 봤자 죽음만을 기다려야 할 판이니 당신과 함께 한번 가봅시다. 반드시 라고 말할 수 없지만 하늘이 보우한다면 산 아래에서 마차를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면 십 일이면 산서(山西)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백광은 웃으며 말했다.

 

[전모는 평생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해쳤는지 알 수 없는데 하늘이 눈이 멀었다면 몰라도 무엇 때문에 나를 보우해 주시겠소?]

 

영호충이 말했다.

 

[하늘이 눈이 머는 일은...... 흥흥...... 그...... 그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오. 어차피 죽을 바에야 한번 시도해 봅시다.]

전백광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렇소. 내가 길에서 죽으나 화산 위에서 죽으나 무엇이 다르겠소? 하산하여 먹을 것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하오. 나는 이곳에서 매일같이 생밤만 먹었더니 입에서 신물이 나올 지경이오. 당신은 일어설 수 있소? 내 부축해 주겠소.]

 

그는 입으로는 부축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스스로도 일어서지 못했다.

영호충은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해 주려했지만 팔에 힘이 없었다.

갑자기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껄껄 웃었다.

전백광은 말했다.

 

[전모가 강호(江湖)를 종횡한 지 오래이나 평생 친구 하나 없었는데 영호형과 더블어 이곳에서 죽게 되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소.]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느날 사부께서 우리 두 사람의 시신을 보게 된다면 두 사람이 악투 끝에 동귀어진(同歸於盡)한 줄로 알 것이오. 누구도 두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호형호제(呼兄呼弟)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오.]

 

전백광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영호형, 우리 손을 잡고 죽읍시다.]

 

영호충은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백광의 말은 자기와 생사지교(生死之交)를 맺자는 것이었다. 그는 악독한 이름을 쌓은 채화대도(採花大盜)이고 자신은 명문대제자(名門大弟子)인데 어찌 그와 친구가 될 수가 있겠는가?

그날 사과애(思過崖) 위에서 그를 몇 차례 이기고도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수차례나 자신을 죽이지 않은 은혜를 보답한 것일 뿐이었다. 이와 같이 생각하자 막 내밀어 가던 손을 다시 움츠리고 말았다.

전백광은 그가 입은 상세가 너무 무거워 팔까지도 움직이지 어려운 줄 알고 크게 소리쳤다.

 

[영호형, 이 전백광이 당신 같은 친구를 사귀었으니...... 당신이 만일 상세가 무거워 먼저 죽는다면 전모 역시 결코 혼자 살아 남지 않겠소.]

 

영호충은 그의 진정에 찬 말을 듣고 마음이 떨려와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는 손을 뻗어 그의 오른손을 잡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따.

 

[전형,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한다면 죽어도 외롭지 않을 것이오.]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음산한 냉소(冷笑)가 들려왔다.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화산파 기종(氣宗)의 수제자가 타락했다더니 정말이었군. 삼류의 음적과 교우를 맺다니!]

 

전백광은 버럭 소리쳤다.

 

[누구냐?]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아차 싶었다.

 

(내가 상처를 치료할 수 없으니 죽어도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부의 명예에 누를 끼쳤으니 큰일났다!)

 

어둠 속에서 몽롱한 인영을 볼 수 있었다.

그 자는 장검을 손에 든 채 광망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는 싸늘히 웃으며 말했다.

 

[영호충(令狐沖), 네가 지금 후회한다면 이 검으로 전가(田家)음적을 죽여라! 너와 그가 교우를 맺은 것을 알 사람은 없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장검이 땅에 꽂혔다.

영호충은 검신(劍身)이 넓은 것을 보고 숭산파(嵩山派)의 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귀하는 숭산파의 누구십니까?]

 

그자는 말했다.

 

[네 안목이 뛰어나구나. 나는 바로 숭산파의 적수(狄修)다.]

영호충은 말했다.

 

[원래 적사형(狄師兄)이구료. 오랫만이오. 귀하가 폐산(?山)에 올줄은 몰랐구료. 무슨 일로 이곳에까지 오셨는지요?]

 

적수가 말했다.

 

[장문사백(掌門師伯)께서는 밖에 떠도는 말처럼 과연 화산파의 제자들이 못난 짓을 하는지 살펴보고 오라고 하셨소. 하지만 흥흥! 화산에 올라와 네가 저 음적과 교우를 맺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전백광은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놈! 너희 숭산파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고나 있느냐? 자신을 조사하지는 않고 쓸데없이 남의 일에간섭하다니!]

적수는 발을 들어 퍽하고 전백광의 머리를 세게 걷어차며 외쳤다.

 

[너는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입이 더럽구나!]

 

전백광은 노해 부르짖었다.

 

[개 같은 도적놈! 지미X할놈! 더러운 잡종놈아!]

 

전백광은 쉬지 않고 욕을 퍼부었다.

적수가 그를 죽이려고 했지면 자신의 주머니 속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만큼이나 쉬웠지만 그는 먼저 그들에게 치욕을 주고 싶었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영호충, 너는 그와 의기투합했으니 절대 그를 죽일 수 없겠지?]

 

영호충은 대노하여 낭랑하게 말했다.

 

[내가 그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씨가 있는 놈이라면 일검으로 나를 죽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꼬리를 말고 화산에서 기어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수가 말했다.

 

[너는 이 음적과 친구를 맺었기에 절대 죽일 수 없다는 것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내가 누구하고 친구를 맺든 네놈과 사귀는 것보다는 낫다.]

전백광은 큰 소리로 갈채를 보냈다.

 

[말 잘했소! 멋지오!]

 

적수가 말했다.

 

[나를 격노케 만들어단검에 너희 두 사람을 죽이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천하에 그처럼 편한 일이란 없을 것이다. 나는 너희 두 사람을 발가벗기고 가죽을 벗긴 다음 함께 묶어서 아혈(啞穴)을 짚은 채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 다니면서 한 놈의 털보와 한 놈의 철면피가 나쁜 짓을 할 때 붙잡혔다고 말하겠다. 하하하! 너희 화산파 악불군(岳不群)은 거짓으로 인자한 척 행세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군자검(君子劍)이라 자칭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영호충은 그 말을 듣자 노화가 치밀어 올라 기절하고 말았다.

전백광은 욕을 퍼부었다.

 

[제기랄...... 지미X할......]

 

적수는 발로 그의 허리에 있는 혈도(穴道)를 걷어찼다.

적수는 껄껄 웃고는 영호충의 의삼(衣衫)을 풀었다.

돌연 등 뒤로부터 청아한 여인의 음성이 울려왔다.

 

[이봐요, 당신은 거기서 뭐하는 거예요?]

 

적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미미한 빛 아래 한 여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적수는 차갑게 말했다.

 

[너는 또 뭐하는 물건이냐?]

 

전백광은 그 여자의 음성을 듣고 바로 의림(儀琳)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 소리쳤다.

 

[소...... 소사부(小師父), 당신이 왔군요! 이 빌어먹을 놈이 당신의 영호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하고 있소!]

 

그는 보시 나를 헤치려고 한다는 말을 하려다가 즉시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이 의림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당신의 영호 오라버니라고 고쳤던 것이다.

의림은 땅에 나뒹굴고 있는 사람이 영호충이라는 말을 듣자 황급히 앞으로 달려나오며 외쳤다.

 

[영호 오라버니! 당신이예요?]

 

적수는 그녀가 온 정신을 영호충에게 집중하느라고 자신에 대해 조금도 방비하지 않는 것을 보자 왼팔을 구부려 식지(食指)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갔다. 손가락이 막 그녀의 의삼에 닿으려고 할 때 돌연 목덜미가 꽉 조여지며 몸이 허공으로 들여올려졌다.

적수는 크게 놀라 오른 팔굽으로 뒤를 후려쳐 갔건만 허공만 때리자 이어 왼발로 뒤를 걷어찼다. 그러나 또 다시 허공만 차고 말았다.

그는 더욱 놀라 두손을 뒤로 뻗쳐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인후(咽喉)가 하나의 큰 손에 의해 눌려졌으며 동시에 호흡이 곤란해지며 전신에서 힘이 빠졌다.

 

영호충이 깨어났을 때 한 여인이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영호 오라버니! 영호 오라버니!]

 

그는 눈을 떴다. 눈 앞에 백설(白雪)처럼 수려(秀麗)한 얼굴이 보였다.

의림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그때 맑고 굉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림아야, 이 병들린 귀신이 바로 영호충이냐?]

 

영호충은 소리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나의 지극히 비대(肥大)하고, 매우 키가 큰 화상(和尙)이 철탑(鐵塔)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그 화상의 키는 적게 잡아도 족히 칠척(七尺)은 될 것 같았으며 왼손으로는 적수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적수는 사지를 축 늘어뜨리고 꼼짝도 않고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의림이 말했다.

 

[아버지, 이분...... 이분이 바로 영호 오라버니예요! 절대로 병든 귀신이 아니예요!]

 

그녀는 말할 때도 영호충을 응시하고 있었으며 눈빛에는 애련(愛憐)의 정(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영호충의 뺨을 어루만지려고 하다가 부끄러운 듯 손을 움츠렸다.

영호충은 크게 의아했다.

 

(너는 비구니인데 어떻게 중놈을 아버지라고 부른단 말인가? 화상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일진대 그 딸마저 비구니라니 더욱 이상하구나! 이상해!)

 

그 비대한 화상은 가가대소하며 말했다.

 

[네가 밤낮으로 그리워하고 마음으로 애를 태우는 영호충이 나는 무슨 건장한 영웅호한(英雄好漢)인 줄로 알았더니 죽은 척 땅에 쓰러져 능욕을 당하고도 손을 쓰지 못하는 얼간이었구나! 나는 절대로 이따금 병든 귀신을 사위로 삼지 않겠다. 우리 상대도 하지 말고 그만 두자!]

 

의림은 부끄럽기도 하고 급하기도 하여 변명을 늘어 놓았다.

 

[누가 밤낮으로 그리워 했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는군요. 가고 싶으면 혼자 가세요. 그는...... 좋은 분이란 말이예요. 아버지, 결코 병든 귀신이 아니라고요.]

하지만 사위로 맞을 수 없다는 말은 종내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영호충은 화상이 병든 귀신이니 쓸모없는 얼간이니 하고 욕을 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화가났다.

 

[갈래면 가시오! 누가 아는 체를 하라고 그랬소?]

 

전백광은 다급하여 소리쳤다.

 

[안 돼! 가서는 안 돼!]

 

영호충이 말했다.

 

[왜 안 된다는 거요!]

 

전백광이 말했다.

 

[나의 혈도를 그는 풀어주어야 하고 독약의 해약도 그의 몸에 있는데 그가 가면 내 어찌......]

 

영호충이 말했다.

 

[뭐가 두렵습니까? 내 이미 말했듯이 당신이 독이 발작하여 죽는다면 나도 즉시 목을 따고 죽을 것이오!]

 

그 비대한 화상은 하하 웃었다.

웃음소리는 산곡(山谷)을 울렸다. 그는 이어 말했다.

 

[좋다, 좋아! 원래 이 녀석은 뼈대가 있는 사내였군! 림아야 그는 나의 비위 맞는구나.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겠다. 그는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

 

의림이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영호충이 소리쳤다.

 

[물론 마시지! 어찌 마시지 않겠소? 이 몸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잠자면서도 마신다오. 당신이 나의 술 마시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같이 술과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살생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화상들은 약이 오를거외다!]

 

그 비대한 화상은 가가대소를 하며 말했다.

 

[림아야, 그에게 아버지의 법명(法名)이 무엇인지 말해 주려므나.]

 

의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 아버지 법명은 불계(不戒)예요. 몸은 비록 불가에 있지만 계율을 지키기를 싫어하세요. 그래서 불계라고 하는 거예요. 술도 마시고 비린 것을 먹으며, 살인(殺人)과 도둑질 등 못하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나를...... 낳기도 했어요.]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풋'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영호충은 껄껄 웃고는 낭랑하게 말했다.

 

[그런 스님이야말로 정말 멋이 있군! 정말 통쾌한 사람이군.]

그는 말을 하며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려고 했으나 결국 힘이 미치지 않았다.

의림은 황급히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해 주었다.

영호충은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무슨 일이건 다 하실 수 있다면서 어찌해서 환속(還俗)을 하지 않고 화상의 옷을 걸치고 계십니까?]

불계화상(不戒和尙)이 말했다.

 

[자네는 모르고 있군!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화상이기 때문이야. 나는 바로 자네처럼 한 아름다운 여승(女僧)을 사랑하여......]

 

의림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허튼 소리를 하지 마세요.]

 

이 말을 할 때 의림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다행히 밤중이라 다른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불계화상이 말했다.

 

[대장부는 광명정대(光明正大)해야 한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남이 비웃든 욕을 하든 개의치 말아야 한다. 나 불계화상은 당당한 사내대장부인데 누구를 두려워하랴?]

 

영호충과 전백광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바로 그것입니다.]

 

불계화상은 두 사람의 칭찬을 듣자 매우 흥이 나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여승을 사랑하였지. 그녀는 바로 이 아이의 엄마였다네.]

 

영호충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의림소사매의 아버지는 화상이고 어머니는 비구니였구나.)

 

불계화상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 나는 돼지를 잡는 백정이었는데 이 아이의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지. 그녀는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네. 나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화상이 되었다네. 그 당시 나는 생각하기를 화상과 비구니는 한 집안 사람이니까 비구니는 일반 사람은 사랑하지 않겠지만 화상은 사랑할거라고 생각했지.]

 

의림은 힐책했다.

 

[아버지, 입을 다물 생각은 않고 크게 떠드니 어린애 같군요.]

불계화상이 말했다.

 

[내가 틀린 말을 했니? 그러나 나는 그 당시 화상이 되면 여인과 가까이 할 없고 비구니 역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네. 어쨌든 그 여인을 사랑할 수 없게 된 나는 화상을 그만두려고 했었지. 하지만 사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정한 불문제자(佛門弟子)는 환속하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말렸어. 저 애의 엄마도 바보스럽게 우직한 나의 진정(眞情)에 감동하게 되어 결국은 어린 비구니를 낳았던거야. 영호충, 자네에게 알려주는데 나의 딸을 좋아한다고 해서 화상이 될 필요는 없다네.]

 

영호충은 속으로 고민했다.

 

(의림 사매가 그 당시 전백광에게 사로잡혀 몸을 더럽히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불의를 보고 검을 뽑아든 것이었다. 그녀는 항산파의 수도하는 여승인데 어쩌다가 나와 같은 속인(俗人)과 이런 정분이 얽히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이해 나와 정을 맺으려 하는걸까? 그녀는 전백광과 도곡육선을 보내어 나를 만나려고 했는데 이는 나이 어린 여인이 생전 처음 남자를 대하게 되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일 게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 만일 화산, 항산 두 문파의 명예를 손상시키신다면 내가 죽은 다음에도 사부께서는 욕을 들으실 것이다. 또 영산 소사매는 나를 여승과 가까이 했다고 깔볼 거야.)

 

이때 의림은 매우 겸연쩍어 말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는 벌써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어찌...... 옆 사람에게 눈길을 돌리겠어요. 다시는...... 다시는 거론하지 마세요. 남에게 비웃음을 받아선 안 돼요.]

 

불계화상이 화를 냈다.

 

[뭐? 이 녀석에게 다른 여인이 있다고? 울화가 치미는군! 울화가 치밀어!]

 

그는 오른발을 성큼 내딛더니 부채처럼 넙적한 손으로 영호충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영호충은 서 있기도 힘드는데 어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의 손에 꽉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들려졌다.

불계화상은 왼손으로는 적수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영호충의 멱살을 잡고 두 팔을 좌우로 꼿꼿이 폈다. 그 모습은 물지게를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호충은 힘이 빠져 낡은 부대처럼 축 늘어졌다.

의림은 다급하게 말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를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지 않으면 나는 화를 내겠어요!]

 

불계화상은 딸이 화를 낸다는 말을 듣자 두려운 일이라도 있는 듯이 즉시 영호충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저 녀석의 마음속에 예쁜 비구니가 있다고? 정말 그럴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없어!]

 

그는 자신이 아름다운 여승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비구니를 제외하고는 사랑할 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의림이 말했다.

 

[영호 오라버니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그저 사매인 악 소저예요.]

 

불계화상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귀를 웅웅거리게 울렸다.

이어 그는 호통을 쳤다.

 

[무슨 소저라고? 제기랄, 어여쁜 비구니가 아니란 말이냐? 비구니가 아니면 예쁘지 않아! 이 다음에 그 계집애를 보게 된다면 나는 단숨에 그 계집애를 죽여 버릴테다!]

 

영호충은 생각했다.

 

(이 불계화상은 노망한 사람이군! 도곡육선과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 단지 염려가 되는 것은 이 화상은 한번 내뱉은 말은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성미인 것 같으니 정말 소사매를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 아...... 정말 큰일이군!)

 

의림은 매우 초조했다.

 

[아버지, 영호 오라버니는 큰 상처를 입었다구요. 빨리 치료해 주세요. 다른 문제는 천천히 강구해도 늦는 게 아니예요.]

불계는 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했다.

 

[상처를 고치는 게 뭐가 어렵겠어?]

 

이어 적수를 뒤로 멀리 던져버리고 영호충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상처를 입었지?]

 

등 뒤에서 '악' 하는 적수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수는 산비탈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가슴에 일장을 맞았소.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불계화상이 말했다.

 

[가슴에 일장을 맞았다면 분명 임맥(任脈)을 다쳤겠군!]

영호충은 말했다.

 

[나는 도곡(挑谷)......]

 

불계화상은 버럭 소리쳤다.

 

[임맥에는 도곡이라는 혈도가 없다! 너희 화산파는 내공이 출중하지 못하여 혈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구나. 사람의 혈도에는 합곡(合谷)이라는 혈도가 있긴 하다. 그것은 수양명대장경에 속하는 것이고 엄지와 식지 사이에 있어. 임맥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좋아 내가 너의 임맥을 치료해 주겠다.]

 

영호충은 말했다.

 

[아니, 아니외다. 그 도곡육......]

 

불계화상이 말했다.

 

[뭐가 도곡육이고 도곡칠(挑谷七)이냐? 온몸의 혈은 오로지 수삼리(手三里), 족삼리(足三里), 음릉천(陰陵泉), 사공죽(絲空竹)이 있을 뿐, 도곡육이나 도곡칠은 없다. 헛소리 작작해라.]

말을 하면서 영호충의 아혈을 짚으며 말했다.

 

[나의 정순(精純)한 내공으로 네 임맥에 속하는 승장(承藏), 천돌(天突), 단중(?中), 구미(鳩尾), 거궐(巨闕), 중완(中脘), 기해(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 중극(中極)의 각 혈도를 뚫어주겠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나을 것이고 칠팔일 정도 휴식을 취하면 거뜬해질 것이다.]

 

그는 부채같이 큰 손을 내밀었다. 우측 손은 그의 아래턱 승장혈을 누르고 왼손으로는 아랫배의 중극혈을 눌렀다. 두 줄기의 진기가 두곳의 혈도를 통해 밀려 들어갔다. 갑자기 이 두 줄기의 진기와 도곡육선이 남긴 여섯줄기의 진기가 서로 부딪쳐 불계의 두손이 마구 진동하기 시작했다.

불계화상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크게 비명을 질렀다.

의림은 급히 물었다.

 

[아버지, 무슨 일이예요?]

 

불계화상이 말했다.

 

[그의 체내에는 몇 줄기의 이상한 진기가 있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네 줄기다. 아니다! 또 한줄기가 있다. 모두 다섯 줄기가 있다. 이 다섯 줄기의 진기가...... 아이고! 또 한 줄기가 있군! 제기랄! 모두 여섯 줄기로군! 나의 진기와 빌어먹을! 여섯 줄기의 진기와 한번 싸워보아야겠다. 도대체 누가 이기는지 보자고 또 있다면 더 좋을텐데 없는가? 하하하! 참 재미 있군! 재미 있어! 흥! 단지 여섯 줄기뿐이라면 나 불계화상이 한번 싸워 볼만 하지!]

 

그는 두 손으로 영호충의 두 혈도를 짓눌렀다. 그의 머리 위에는 흰 기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도 지르고 욕을 하기도 했으나 나중에 내공을 점점 끌어올리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날은 점점 밝아왔다.

그러나 그의 머리 위에 모인 흰 기체는 갈수록 짙어지기만 했다. 결국은 한덩이의 짙은 안개처럼 그의 머리를 완전히 덮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이 지난 후 불계화상은 두 손을 뗐다. 그는 껄껄 소리내어 웃더니 갑자기 쿵 하고 땅 위에 뒤로 벌렁 쓰러져버렸다.

의림은 깜짝 놀라 크게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급히 달려가 그를 품에 안았으나 불계화상의 몸뚱이는 너무도 무거웠다. 의림은 반쯤 일으켜 주다가 두 사람이 같이 나뒹굴고 말았다.

불계화상의 온몸과 의복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입에서는 쉬지 않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 내가...... 제기랄!...... 내가...... 제기랄!]

의림은 그가 욕지거리를 해대자 그때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아버지, 어떻게 된 거예요? 피곤하신가요?]

 

불계화상은 욕을 했다.

 

[제기랄! 이 녀석의 몸에는 여섯 줄기의 무서운 진기가 있었는데 나에게 감히 대들잖아! 제기랄! 이 어르신께서 진기를 뿜어 여섯 줄기의 사악한 진기를 물리쳤지. 헤헤헤...... 안심하거라. 이 놈은 죽지 않는다.]

 

의림은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과연 영호충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화상의 진기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짧은 가간에 영호형의 중상을 치료하셨군요.]

 

불계화상은 그의 칭찬을 듣자 크게 기뻐 말했다.

 

[네 녀석은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단숨에 문질러 죽여야 되겠지만 어쨌든 영호충은 찾았다고 할 수 있으니 약간의 공로가 있다. 그러니 목숨만은 살려 줄테니까 아무 소리도 말고 조용히 꺼져라.]

 

전백광은 대노하여 욕을 했다.

 

[빌어먹을! 무엇이라고 했소? 아무 소리도 말고 조용히 꺼지라고? 제기랄 중놈 같으니! 당신은 말했어. 영호충을 찾아내면 나에게 해독약을 주겠다고.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당신이 혈도를 풀어주지 않고 해독제를 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중놈이지!]

 

전백광의 욕설을 들은 불계화상은 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껄껄 웃었다.

 

[이 녀석 보게! 죽음을 두려워하여 저 모양 저 꼴이니 가소롭구나! 이 불계가 식언을 헐 사람이냐? 빌어먹을 놈 같으니! 너에게 해독약을 주겠다.]

 

말과 함께 손을 품 속에 집어 약을 꺼냈다.

그러나 조금 전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힘을 쓴 나머지 손에서 힘이 빠져 손에 있는 약병을 다시 품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의림은 손을 내밀어 약병을 집어들고 뚜껑을 뽑았다.

불계화상은 말했다.

 

[세 알을 줘라. 한 알을 먹고 삼일 후에 다시 한 알을 먹고 다시 육일 후에 한 알을 먹어라. 구일이 지나가지 못해 남에게 살해된다면 내 탓이 아니다.]

 

전백광은 의림의 손에서 해독약을 받아 들고 말했다.

 

[보시오. 해약만 주면 어떡하오. 사혈을 짚은 것도 풀어주어야 되지 않겠소?]

 

불계화상은 껄껄 웃었다.

 

[내가 짚었던 그 혈도는 이레나 여드레가 지나고 나면 저절로 풀어질 것이다. 이 불계가 정말 너의 사혈을 짚었다면 네가 어찌 오늘까지 살아 있을 수가 있었겠느냐?]

 

전백광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 그는 웃으면서 욕을 했다.

 

[제기랄! 중놈이 사람을 속이다니!]

 

그는 영호충에게 말했다.

 

[영호형, 당신과 소사부는 할 말이 많을 거외다. 난 가겠소.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말을 하면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산 아래로 걸어갔다.

영호충은 급히 말했다.

 

[전형, 잠깐만!]

 

전백광은 몸을 돌렸다.

 

[왜 그러시오?]

 

영호충은 말했다.

 

[전형, 영호충은 수차례 당신 손엣 살아났소. 그리하여 당신과 친구가 되었소. 나는 딱 한가지 당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읍니다.

만약에 당신이 고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제는 계속될 수 없을 거외다.]

 

전백광은 웃으면서 말했다.

 

[말씀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오. 당신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다시는 양가의 아녀자들을 해치지 말라는 것이겠죠. 나는 당신의 말을 따르겠소이다. 이 몸이 비록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얌전한 규수를 욕보이지는 않겠소. 하하하 형산 군옥원의 풍경은 재미있었소?]

 

영호충과 의림은 형산의 군옥원이란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

전백광은 껄껄 웃고 큰 걸음을 내딛어 앞으로 향하다 갑자기 다리를 휘청하더니 산비탈 아래로 몇바퀴 굴러내려갔다.

그는 몸을 허우적거리고 앉더니 한 알의 알약을 꺼내 입속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갑자기 복통이 일어 따위에서 한참이나 신음을 질러대었다.그는 해독이 되느라고 이토록 아프다고 생각하고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꼈다.

조금 전에 불계화상이 영호충을 치료한 이루 영호충은 다리 끝에서부터 천천히 힘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불계화상에게 다가가 공손히 읍을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은 제 생명을 구해주셨읍니다.]

불계화상은 껄껄 웃었다.

 

[감사하기는......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 아닌가? 자네는 내 사위고 나는 자네의 장인이니 감사고 말고가 없네.]

의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버지...... 또...... 또...... 말을 함부로 하시는군요.]

불계화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라고?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너는 아침 저녁으로 그를 사모하지 않았니? 그에게 시집을 가려고 그런 게 아니었니? 설령 시집을 가지는 못한다 해도 그의 씨를 받아 예쁜 비구니 딸 하나를 얻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니?]

 

의림은 골을 냈다.

 

[늙어서 망령이 났군요. 누가...... 누가......]

 

바로 이때 산 아래에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바로 악불군과 악영산 부녀였다.

영호충은 놀랍기도 했고 기쁘기도 해서 급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사부님, 소사매, 돌아오셨군요! 사모님은요?]

 

악불군은 영호충이 정신이 맑아 보이고 왕성한 것을 보고 크게 기뻤다.

그는 불계를 향해 손을 맞잡고 예의를 차리며 물어보았다.

 

[대사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누추한 곳에 왕림하셨는데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십니까?]

 

불계화상은 말했다.

 

[나는 불계라고 하오. 이런 누추한 곳에 왕림한 이유는 내사위를 찾기 위함이었읍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영호충을 가리켰다.

그는 백정 출신이라 인사말을 할 때 문자를 쓸 쭐 몰랐다. 악불군이 '누추한 곳에 왕림했다' 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악불군은 불계화상의 정체를 자세히 몰랐고 그가 '내 사위를 찾으러 왔소.'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단지 일부러 자기를 놀리려고 한 소리인 줄 알고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대사님은 농담을 잘 하시는군요.]

 

의림이 이때 악불군에게 공손히 예를 차렸다. 악불군은 말했다.

 

[의림 사질,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그대가 화산에 온 것은 사부님의 명령을 받들고 온 것인가?]

 

의림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아닙니다. 저는...... 저는......]

 

악불군은 더 이상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백광을 향해 말했다.

 

[전백광, 너는 담도 크구나!]

 

전백광은 말했다.

 

[나는 당신의 제자인 영호충과 말이 잘 통합니다. 나는 두 항아리의 술을 지고 산 위에 올라 그와 통쾌하게 마셨지요. 술을 마시는데는 담이 클 필요는 없더군요?]

 

악불군은 얼굴이 엄숙하게 변했다.

 

[술은?]

 

전백광은 말했다.

 

[이미 사과애 위에서 둘이 깨끗이 마셔버렸지요.]

 

악불군은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냐?]

 

영호충은 말했다.

 

[사부님, 거기에는 사연이 있읍니다. 말을 하자면 기니 이 제자는 천천히 말씀드리겠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전백광은 화상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지?]

 

영호충은 말했다.

 

[약 보름 정도입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 보름 동안 그는 줄곧 이 화산에 있었느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예.]

 

악불군은 매섭게 말했다.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영호충은 대답했다.

 

[그때 사부님과 사모님께서는 산에 계시지 않았읍니다.]

악불군은 말했다.

 

[그럼 나는 그때 어디 있었지?]

 

영호충은 말했다.

 

[장안 부근에 전군(田君)을 죽이려고 쫓아가셨지요.]

악불군은 흥! 하고 코웃음치더니 말했다.

 

[전군? 흥! 전군이라고? 너는 그가 산처럼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째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 설령 싸움을 해서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라도 그에게 죽음을 당했어야 마땅한 일일진대 그러기는 고사하고 그와 교우를 맺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전백광은 일어서려고 했으나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

 

[내가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나에게 죽을 수가 있었겠소? 그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내 앞에서 칼을 물고 자살을 하란 말이오?]

 

악불군은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앞에서 감히 네가 헛소리를 지껄이다니!]

 

악불군은 영호충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충아, 이 악적을 네 손으로 처단하도록 해라.]

 

악영산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아버지! 대사형께서는 중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저 사람과 싸울 수가 있겠어요?]

 

악불군은 말했다.

 

[저 사람 역시 상처를 입었다. 너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가 있는데 어찌 저 악당이 내 제자를 해치도록 내버려 두겠느냐?]

악불군은 평소 영호충이 지혜가 많고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여 얼마전에만 해도 전백광과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영호충이 전백광 같은 악당과 사귀게 된 것도 하나의 계략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즉, 힘으로 이길 수 없어서 지혜를 쓴 것이며 전백광이 상처를 입은 이유도 영호충의 계략에 당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교우를 맺었다는 말을 듣고도 사실 크게 화를 내지 않고 있었다.

영호충에게 전백광을 죽이라고 한 것도 크나 큰 악당을 제거했다는 이름을 영호충이 얻도록 하기 위한 안배였다.

설사 영호충이 당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영호충에게는 결코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호충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 저 사람은 이미 제자에게 맹세를 했읍니다. 개과천선해서 앞으로는 절대로 양가의 아녀자를 능욕하지 않는다고 했읍니다. 제자는 저 사람의 말을 믿습니다. 그러니......]

 

악불군은 크게 놀랐고 또한 크게 화가 났다.

 

[너...... 너는 그의 말을 믿는단 말이냐? 백번 죽어도 마땅한 악당에게 무슨 신의가 있단 말이냐? 그의 저 칼(刀)에 얼마나 많은 선량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알고 있느냐? 저런 음적을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 무예를 익힌 사람은 도대체 뭣 때문에 무예를 익혔단 말이냐? 산아, 너의 패검(佩劍)을 대사형에게 건네 줘라!] [예.]

 

악영산은 대답하고 허리의 장검을 뽑아 검자루를 영호충에게 건네주었다.

영호충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지금까지 사부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 죽음에 임박했을 때 전백광과 손을 꼭 잡고 친구를 맺지 않았는가? 또한 그는 이미 개과천선 하겠다고 맹세했으니 전백광이 과거에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를 죽일 수야 없는 일이었다. 그를 죽인다면 어찌 의롭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는 악영산의 수중에서 장검을 받아 들고 비틀거리며 전백광을 향해 걸어갔다.

십여 보 정도 걸어가던 그는 두 무릎에 힘이 빠지는 척하며 앞으로 쓰러지면서 장검이 자신의 왼쪽 장단지를 찌르게 했다.

이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태였다.

모두들 놀라 '아' 하고 부르짖었다.

의림과 악영산은 동시에 달려나갔다.

의림은 한 발자국을 내딛다가 우뚝 멈추었다. 그녀는 자기는 불문의 제자인데 어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한 젊은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태도를 취하랴 생각한 것이었다.

악영산은 영호충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대사형, 왜 그러세요?]

 

영호충은 눈을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악영산은 검자루를 꼭 쥐고 장검을 뽑았다.

꽂힌 부위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녀는 품 속에서 자기가 쓰는 금창약(金創藥)을 꺼내 영호충의 장단지 위에 발랐다. 악영산은 이때 의림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해 있었고 온 얼굴 가득 관심의 빛을 띠고 영호충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악영산은 내심 흠칫 놀랐다.

 

(이 여승은 대사형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그녀는 검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아버지. 소녀가 저 악적을 죽이도록 해 주세요.]

 

악불군이 말했다.

 

[네가 이 악적을 죽이면 너의 이름이 더럽혀진다. 검을 나에게 다오!]

 

전백광의 음탕한 이름은 천하가 알고 있는데 악씨 소저의 손에 전백광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불량한 무리는 말을 더 보태어 강간(强姦)이니 어쩌니 떠들어댈 것이었다.

악영산은 부친의 그 같은 뜻을 알아채고 즉시 장검의 검자루를 건네주었다.

악불군은 장검을 받아들지 않고 우수를 가볍게 흔들어 장검을 잡았다.

불계화상은 그 광경을 보자 외쳤다.

 

[안 돼!]

 

양쪽 신발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러나 악불군이 소매를 휘젓자 장검은 십여장 밖의 전백광을 향해 쏘아나갔다.

불계화상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 두 손에 힘을 주어 두 개의 신발을 좌우로 나누어 던졌다.

검은 무겁고 신발은 가벼우며 또한 장검은 먼저 쏘아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계화상의 두 승혜(僧鞋)는 늦게 출발하였지만 먼저 도착하여 장검을 때렸다. 장검은 방향이 틀어져 다시 몇장 날아가다 힘이 다하여 떨어지며 땅에 박혔다.

한쌍의 승혜는 검자루 위에 걸려 검을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다.

불계화상은 탄식조로 외쳤다.

 

[다 틀렸군! 틀렸어! 림아야, 아버지는 오늘 사위를 치료하다 내력(內力)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에 장검을 조금밖에 날려보내지 못하고 말았다. 본래 네남편의 사부 앞에 떨어뜨려 그를 좀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아! 이 애비는 부끄럽구나! 부끄러워!]

의림은 악불군의 안색이 극히 좋지 못한 것을 보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빠른 걸음으로 가서 장검에 걸려 있는 신발을 풀고 장검을 뽑아들고는 잠시 주저했다. 영호충이 전배광을 죽이고 싶지 않은 뜻을 알고 있는지라 만일 악영산에게 검을 돌려주면 그녀는 다시 전백광을 죽이려 할 것이니 영호충은 마음이 아프게 되지 않겠는가.

악불군은 소맷자락의 공력으로 장검을 날려 단검에 전백광의 심장을 꿰뚫으려고 했는데 불계화상에게 이 같은 놀라운 재주가 있으며 공력이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화상이 큰 소리로 여승을 대함에 아버지라 자칭하고 영호충을 사위라 부르며 헛소리를 하는 것이 미친 중 같았다.

그러나 무공은 매우 강한 듯 그가 방금 영호충의 중상을 치료하느라고 내력을 크게 소모하였다고 말했는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내공은 더욱 힘차지 않겠는가?

비록 자신이 방금 옷소매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공을 썼다고 해도 화상에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명가고수(名家高手)의 체면에 일격이 실패했다고 어찌 다시 펼칠 수 있겠는가?

그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탄복했소! 대사께서 저 악적을 보호할 뜻이 있다면 불초는 오늘 손을 쓰지 않겠오. 대사의 뜻은 어떠십니까?]

 

의림은 그가 오늘은, 전백광을 죽이지 않겠다는 말을 하자 즉시 두 손으로 장검을 받들고 악영산의 앞으로 가 살짝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언니......]

 

악영산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검을 받아 쥐고 돌아보지도 않으며 '착' 하고 칼을 검집에 꽃아넣었다. 매우 우아한 동작이었다.

불계화상은 하하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좋은 솜씨요! 그 수법은 너무나 멋지군!]

 

이어 영호충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사위, 우리 가자. 그대 사매는 매우 빼어나군! 당신이 그녀와 함께 있다면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네.]

 

영호충은 말했다.

 

[대사께서는 농담을 좋아하시는군요. 그런 말씀은 항산(恒山), 화산(華山) 두 문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니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불계화상이 놀란듯 말했다.

 

[뭐라고? 겨우 너를 찾아 네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너는 내 딸을 맞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냐?]

 

영호충은 정색하며 말했다.

 

[대사님의 은혜를 이 영호충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읍니다.

의림 사매의 항산파는 문규(門規)가엄하니 대사께서 그런 무책임한 농담을 하신다면 정한(定閒), 정일(定逸) 두분 사태(師太)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불계화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림아야, 나의...... 나의...... 이 사위는 도대체 어찌 된 녀석이냐? 이거......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의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아버지, 그만해요, 그만해요! 그는 그고 나는 나인데...... 무슨......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예요!]

 

'왁'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는 산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불계화상은 영문을 알 수 없는지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말했다.

 

[이상하다. 이상해! 그를 못 볼 때는 목숨을 걸고 보려고 하더니 그를 만났을 때는 보지 않으려고 하니...... 제 엄마의 마음과 같구나. 비구니의 마음은 정말 헤아릴 수가 없군!]

 

그는 딸이 점점 멀어져가자 즉시 뒤따라갔다.

전백광은 일어나 영호충을 향해 말했다.

 

[청산(靑山)은 변하지 않고 녹수(綠水)는 쉬임없이 흐르네.]

몸을 돌려 비틀비틀 산을 내려갔다.

악불군은 전백광이 멀어져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충아야, 너는 그 악당에게까지 의리를 지키는구나! 차라리 자기를 찌를 망정 그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더구나!]

 

- 소오강호 제 2 권 끝 -

 

[출처] 소오강호 2-5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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