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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초생에 평안 감영 예방비장은 서울 보낼 세찬을 분별하느라고 여러 날
동안 분주하였다. 세찬 보내는 곳이 많아서 촛궤와 꿀항아리만 서너 짐이 되고
이외에 또 초피, 수달피, 청서피 같은 피물이며, 민어, 광어, 상어 같은 어물이며,
인삼, 복령, 오미자 같은 약재며, 면주, 면포, 실, 칠, 지치, 부레 같은 각색 물종
이 적지 않아서 세찬이 모두 대여섯 짐이 되는데, 여기다가 상감과 중전께 진상
하는 물건과 세도집에 선사하는 물건을 함께 올려보내자면 봉물짐이 굉장하였
다. 세찬을 다 봉해 놓은 뒤에 예방비장이 감사께 들어가서 세찬 봉물 끝마친
사연을 아뢰니 감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인제 일간 곧 올려보내도록 해보세.”
하고 말하였다. “진상 봉물두 함께 올려보내시렵니까?” “그럼 함께 보내려구
두지 않았나.” “소인의 생각에는 따루 올려보내시면 좋을 것 같소이다.” “어
째서 따로 보내는 것이 좋을까.” “함께 보내시면 봉물짐이 너무 굉장할 듯합
니다.” “굉장하니 어떻단 말인가?” “남의 이목에 어떨까 생각합니다.” “남
의 이목에 어떻단 말이야.” 감사의 언사가 불쾌스럽게 나오니 예방비장은 허둥
지둥하며 “아니올시다.” 하고 말하였다. “무에 아니란 말이야. 사람이 말을
좀 똑똑히 하게.” “중로에 적변 같은 것이 염려스러워서 말씀이올시다.” “따
루따루 보내면 적변이 염려스럽지 않은가?” 감사의 반문하는 말에 예방비장은
대답을 못하고 한참 동안 손만 비비고 섰다가 “봉물짐이 굉장하오면 더 염려스
러울 듯하외다.”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누가 짐꾼들만 보낼세말
이지, 군관들 시켜 영거해 보낼 텔세.” “진서위 여맹 김양달이가 맨주먹으루
호랭이 잡은 장사랍니다. 그런 장사 시켜 영거해 보내시면 작은 도적들은 염려
없을 듯하외다.” “그런 손이 좋겠지. 그 손이 사람이 어떤고? 여직을 부르라
게. 좀 자세히 물어보세.” “여직을 지금 곧 부르랍십니까?” “다시 물어볼 것
무어 있나.” “황송하오니다.” 예방비장이 감사 앞에서 물러나간지 한식경쯤
지난 뒤에 진서위 여직이 불려들어와서 선화당 대청에서 문안하는데, 감사가 방
으로 들어오라고 말하여 방 윗간에 들어와 양수거지하고 섰다. “여맹 김양달이
가 장사라지?” “네, 용맹이 놀랍소이다.” “사람은 어떤고? 성실하냐?” “나
이 아직 젊은 까닭에 주색이 과합네다.” “이번에 진상 봉물을 영거해 보내려
고 했더니 사람이 그러면 시원치 못하군.” “그런 중난한 일을 혼자 맡기기는
좀 어려울 것 같소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데리구 가며 단속하면 탈이 없을 줄
압네다.” 여직이 서울 가보고 싶은 눈치로 말하는 것을 감사는 알지도 못하며
“그러면 잘 알겠다.”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감사가 얼마 동안 다른 수
작하다가 여직을 내보내고 다시 예방비장을 불러서 봉물짐 영거해 갈 사람을 상
의하다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자네가 김양달이 데리고 갔다오면 어떻겠나?”
하고 물으니 예방비장은 서울 집에 다녀오는 맛에 “사또께서 갔다오랍시면 갔
다옵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워낙 자네가 가면 세찬들 분전하는 데도 좋겠
네.” “그건 이곳 사람보담 좀 낫겠습니요.” “폐일언하고 자네가 영솔하고 가
도록 준비하게.” 하고 감사가 분부하여 예방비장은 곧 서울 갈 준비를 차리게
되었다. 봉물짐 중에 보물상자 같은 드다루기 조심스러운 것과 꿀 항아리 같은
짐 만들기 거북한 것만 짐꾼에게 지우고 그 나머지 봉물과 길양식은 다 말에 실
리게 되었고, 영거하여 갈 사람으로 김양달이는 저 하나면 족하다고 장담을 하
였지만 마침내 건장한 장교들을 뽑아서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것은 예방비장이
감사께 취품하여 정한 것이다. 길 떠날 준비는 섣달 초이렛날 다 되었으나 팔일
은 화일이자 또 불의출행일이라 하루 지나서 아흐렛날 예방비장이 일행을 영솔
하고 평양서 떠났다. 일행의 사람은 예방비장과 김양달을 수에 넣지 않고 장교
다섯, 말꾼 넷, 짐꾼 셋, 마부 하나 도합 열셋이고 말은 복마 네 필 외에 예방비
장의 부담마 한 필까지 모두 다섯 필이었다. 일행이 첫날은 평양서 늦게 떠난
까닭으로 겨우 오십 리 중화 와서 숙소하고, 이튿날은 황주서 중화하고 봉산와
서 숙소하였다. 동지 섣달 짧은 해에 구십 리 길을 온 까닭에 짐꾼, 말꾼들이 저
녁밥을 먹고 바로 쓰러진 건 말할 것도 없고, 타고 온 예방비장도 종일 얼었던
몸이 녹으며 졸음이 와서 저녁밥도 변변히 먹지 않고 누우며 곧 코를 골았다.
예방비장과 같이 사처방에 들어 있는 김양달은 혼자 봉물 짐짝을 의지하고 앉아
있다가 방 밖에서 누가 “이런 달밤에 술 한잔 먹었으면 좋겠다.” 하고 혼잣말
하는 것을 듣고 술생각이 불현듯이 나서 방문을 고이 열고 밖으로 나오니 마당
에서 달을 치어다보던 젊은 사내가 앞으로 가까이 와서 “손
님 어째 안 주무십니까?” 하고 물었다. “자네가 이 객주에 있는 사람인가?”
“녜, 객주 주인의 동생이올시다.” “지금 술 먹구 싶다구 말한 사람이 자네지.
” “혼자 지껄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그려.” “자네가 술을 잘 먹나?” “왠
걸 잘 먹을 줄두 잘 모릅니다.” “여기 술파는 집이 몇집이나 되나?” “술파
는 집은 여러 집이올시다.” “큰애기가 술파는 집두 있겠네그려.” “큰애기 술
장사는 없습니다만 젊은 여편네 술장사는 더러 있습니다.” “이쁜 술장사 있는
집으루 나를 좀 데려다 주게. 그러면 자네두 술 한잔 줌세.” 김양달은 객주 주
인의 동생을 데리고 술집에 가려고 객주집 문밖에까지 나왔다가 곤히 자는 예방
비장을 믿고 갈 수 없는 생각이 나서 다시 들어와 큰방 문을 열고 짐꾼, 말꾼들
이 가로 세로 쓰러진 옆에 따로 떨어져 누워 자는 장교들을 소리질러 깨웠다.
“어느 새 무슨 잠들이냐? 내가 잠깐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 올테니 그동안 사처
방 좀 살펴라.” “예방 나리두 같이 나가십니까?” “벌써부터 정신 모르구 주
무신다.” “소인들이 번갈아가며 일어 앉았겠습니다.” 장교들의 말을 듣고 김
양달은 마음을 놓고 객주 주인의 동생을 앞세우고 술집을 찾아왔다. 머리에서
기름내나는 술장사 계집이 옆에 와서 부니는 바람에 부어라 먹자, 부어라 먹자
하고 술을 부어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술 먹는 동안에 객주 주인의 동생이 잠
깐 밖에 나갔다 온다고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데, 김양달은 술장사 계집과 농탕
을 치느라고 사람 없는 것을 해롭지 않게 여기어 찾지 아니하였다. 김양달이 술
을 실컷 먹은 뒤에 몸에 지니고 나온 상목으로 술값을 놓고 술집에서 나와 길을
휩쓸며 객주로 돌아나오는 중에 앞길에서 “이놈아!” “도둑놈아!” 하고 고성
치는 소리가 나서 취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앞을 내다보니 사내 하나가 멀지 아
니한 골목길로 뛰어들어가는데 뒤에서 쫓아오는 여러 사람이 장교들인 것 같았
다. 김양달이 봉물 생각이 나며 정신이 번쩍 나서 쏜살같이 걸목길로 쫓아가서
도망하는 사내를 몇 간 안에서 붙들었다. 김양달이 처음에 도적의 저고리 뒷고
대를 움켜잡았더니 도적이 몸을 틀어 빼치려다가 못 빼치고 칼손질로 김양달의
고대 잡은 팔을 번개같이 후려쳤다. 김양달이 비록 술이 억병 취하였더라도 손
에 잡은 도적을 헙헙하게 놓칠 사람이 아니라 “이놈 봐라, 하룻강아지 범 무서
운 줄 모르구, 이놈아,.” 하고 얼른 고대 잡았던 손으로 도적의 팔목을 잡아 뼈
가 으스러지라고 꽉 쥐니 도적의 입에서 “아이구, 아이구.” 소리가 줄달아 나
왔다. “이놈, 이제는 영문을 좀 알겠느냐?” “아이구, 살려줍시오. 죽을 때라
잘못했습니다.” 도적의 말소리가 귀에 설지 아니하여 김양달이 괴이쩍게 생각
하고 다른 손으로 도적의 고대를 뒤로 젖혀서 달 아래 얼굴을 보니 도적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곧 객주 주인의 동생이었다. “아 이놈, 네가 도둑놈이냐?” 하고
말할 때 장교들이 그제사 쫓아왔다. “김여맹 나리십니까?” “나리가 잡으시길
잘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이놈이 봉물 짐 한 짝을 훔쳐냈습니
다.” “봉물짐은 어디 있느냐?” 하고 김양달이 급히 물으니 한 장교가 앞으로
나서며 “소인이 마침 일어 앉았다가 수상한 기척을 알구 뛰어나와 보니 이놈이
벌써 봉물짐 한 짝을 어깨에 매구 대문 밖으루 나가겠지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
구 쫓아나오니까 이놈이 짐짝을 내버리구 도망질을 쳤습니다.” “짐짝을 잃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소인까지 마저 잠이 들었더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
이놈이 객주 주인의 동생이란다. 객주루 끌구 가자.” 김양달이 도적을 장교들에
게 내맡기고 장교들의 앞을 서서 객주에 와서 보니 대문밖에 짐꾼, 말꾼들이 웅
끗쭝끗 나섰는데 객주 주인도 그 틈에 끼어 섰었다. 김양달이 장교들을 돌아보
며 “형놈두 도망하지 못하게 잡아놔라.” 이르고 사처방으로 들어왔다. 앉아 있
는 예방비장이 김양달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말 한마디를 아니하여 김양달은
주저주저하고 섰다가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서 예방비장의 찌푸린 상을 바라보며
“놀라셨지요?” 하고 먼저 말을 붙였다. “여보게 김여맹. 밤중에 어디 갔다 왔
나?” “잠깐 밖에 나갔었습니다.” “장교들의 말을 들으니까 초저녁에 나갔다
는데 지금 정밤중이 지났는데 무슨 놈의 잠깐이 그런가?” “잠깐 밖에 거닐러
나갔다가 술집에 들어가서 술잔 먹으라구 좀 지체가 되었습니다.” “떠날 때
사또께서 무어라구 분부하시든가. 이번에 잘 다녀오면 술을 싫도록 먹여줄 테니
서울 가는 동안 술을 끊으라구 분부하시지 않았나. 사또 분부를 하루 동안에 잊
어버렸단 말인가.” “잘못됐습니다. 이 앞으루는 다시 안 먹겠습니다.” 김양달
은 망건뒤를 긁죽긁죽하며 다시 이어서 “아주 맹세를 치오
리까. 서울땅 밟기 전에 다시 술을 먹거든 제 얼굴에 침을 뱉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어디 보세.” “네, 두구 보십시오.” “도둑놈은 잡아왔나?” “네,
잡아왔습니다. 그놈이 객주 주인의 동생놈이랍니다.” “형제놈이 배가 맞아가지
구 같이 했는지두 모르겠군.” “혹시 그럴는지 몰라서 형놈까지 잡아놔 두라구
일렀습니다.” 예방비장이 객주 주인 형제를 잡아들여서 매질하여 문초를 받아
보니 동생이 술과 노름을 좋아하여 형이 해준 살림을 세번째 떨어마치고 처자는
저가로 보내고 저 한몸만 형에게 와서 얹혀 있는 위인인데, 봉물짐이 굉장한 것
을 보고 일시 불량한 마음이 나서 형도 모르게 한 짓이 분명하므로 형은 놓아주
고 동생만 본관 맡겨 치죄시키려고 결박하여 놓고 밤을 지내었다. 이튿날 식전
길 떠나기 전에 예방비장이 군수를 들어가 보려고 하다가 군수가 독감으로 앓아
서 조사까지 폐하였단 말을 듣고 이방을 보자고 부르러 보냈다. 이때 봉산 이방
은 성이 배가니, 황천왕동이의 장인 백이방이 사위 연좌로 이방이 떨어지며 곧
뒤를 받아 들어선 사람인데 그 집이 쇠전거리 아래라 쇠전거리 위에 있는 백이
방 집에서 동안이 멀지 않았다. 평양 장교가 이방을 부르러 질청에 왔을 때 이
방이 마침 집에 나가고 없어서 평양 장교는 이방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질청에서 그 집 있는 곳을 배워가지고 집으로 찾아나오는데, 쇠전거리를 다 와
서 어떤 사람을 보고 “배이방 집이 어디요?”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이 곧 건너
편 고샅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저 큰 집이오.” 하고 가르쳐주었다. 평양 장
교가 그 큰 집 앞에 와서 기웃거리다가 마당 쓰는 사람을 바라보고 “여보 여
보, 나 좀 보우.” 하고 부르니, 그 사람이 손에 비를 든 채 가까이 나왔다. “여
기가 배이방 집이오?” “녜, 그렇소.” “이방상찰 집에 기시우?” “녜, 기시
우.” “평안 감영서 온 사람이 잠깐 보입잔다구 들어가 말씀 좀 하우.” “아직
기침하실 때가 못 됐으니 좀 기다리시우.” “질청에 다녀나와서 다시 주무시
우?” “이방 내노신 뒤루 질청에 가시지 않소.” “이방을 내놓다니 무슨 소리
요?” “월전에 이방 내노신 걸 모르구 왔소?” “아니 여보, 오늘 죽어서 어제
장사 지냈단 수작이오? 방금 내가 질청에서 다녀가셨단 말을 듣구 왔소.” “배
이방이 다녀나간 걸 잘못 듣구 오지 않았소?” “아니 여기가 배이방 집이 아니
오?” “아니오. 여기는 백이방 집이오.” “아까 배이방 집이냐구 물으니까 그
렇다구 하지 않았소.” “백이방 집이냐구 묻는 줄 알구 그렇다구 했지요.” “
떡먹듯이 배이방 집이냐구 물었는데 백이방 집으루 들었다니 임자 귓구멍이 좀
덜 뚫렸구려.” “자기 말이 똑똑지 못한 건 생각 않구 남의 귀를 나무라우.”
“임자의 귓구멍이 귓구멍이거나 창구멍이거나 그까짓건 그만두구 여기가 전임
이방 백씨의 집이면 신임 이방 배씨의 집은 어디요?” “배이방 집은 이 앞 쇠
전거리 지나가서 물어보우.” “인제 잘 알았소. 어서 가서 마당이나 쓰우. 나는
가우.” 평양장교가 다시 고샅에서 나와서 쇠전거리 아래 배이방 집을 찾아가서
배이방을 보고 온 사연을 말한 뒤에 같이 데리고 객주로 왔다. 예방비장은 길
떠나기 바쁜 때 지체하였다고 장교를 꾸지람하는데 쇠전거리 아래 위에 사는 배
이방, 백이방이 뒤섞인 것을 장교가 이야기하여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고 예방비
장까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배이방이 예방비장 앞에 들어와서 문안한 뒤 예
방비장은 지난 밤에 봉적할 뻔한 것을 대강 이야기하고 잡아놓은 도적을 징치하
여 달라고 부탁하니 이방이 대번에 “그런 놈을 징치하다뿐입니까. 소인이 맡아
기지구 단단히 징치하두룩 하올 터이니 염려 말으십시오. 소인네 골에 옵셔서
그런 변을 당합신 일이 매우 황송하외다.” 하고 선선히 부탁을 받았다. 예방비
장이 옆에 있던 김양달을 돌아보며 “이제 고만 길을 떠나지.” 하고 말하여 김
양달이 사처방에서 나와서 짐꾼, 말꾼을 불러내어 길 떠날 준비를 차리게 하였
다. 짐꾼, 말꾼들이 짐짜 들어내는 것을 배이방이 보고 섰다가 예방비장을 보고
“저 많은 봉물을 영거합시구 청석골 같은 화적패 있는 곳은 지나갑시기 조심스
러우시겠습니다. 숫돌고개루 돌아가시면 모를까 탑고개를 지나가시려면 아무쪼
록 저녁때는 지나가지 마십시오. 화적이 저녁때 제일 잘 난다구 하옵디다.” 하
고 말하니 예방비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숫돌고개루 돌아갈 이야기두 있었지만
돌뿐만 아니라 길이 더 험하구 조심스럽긴 매일반이라 청석골루 가기루 됐네.
서흥, 평산 숙소한 다음에는 금교역말이 대개 숙소참이 될 테니까 청석골은 아
침결에 지나가게 되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일행이 봉산서 떠나서 검수역말 중
화하고 서흥와서 숙소하니 이날 길은 칠십 리요, 서흥서 떠나서
총수산중 중화하고 평산 와서 숙소하니 이날 길은 팔십리다. 평산서 금교는 육
십 리요, 송도는 백여 리니 송도는 대처라 숙소하기 좋지마는 짧은 해에 백여
리를 참 대기도 어렵거니와 화적 나는 청석골을 늦게 지나기 무서워서 예방비장
은 다음 날 숙소 참을 금교역말로 작정하고 있는데, 평산 숙소에 들어서 저녁
밥을 먹은 뒤에 김양달이 예방비장을 보고 “내일 첫새벽 여기서 떠나서 금교역
말 가서 중화하구 송도 가서 숙소하면 숙소두 좋거니와 앞길이 가벼워지니 좋지
않습니까.” 하고 의견을 말하니 예방비장은 들을 만하고 있다가 “송도 가서
숙소하면 서울을 하루 일찍 들어갈 수두 있지마는 송도 백 리가 멀기두 하려니
와 청석골을 늦게 지나가기가 재미없네.” 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화적은
백 명 이백 명이 나오드래두 제가 혼자서 능준히 담당할 테니 염려 말구 가시지
요.” “일 있는 것버덤 일 없는 게 좋으니까 작정하구 온 대루 내일은 금교역
말 가서 숙소하세.” “일이 있으면 제가 신명떨음이나 한번 해보지만 무슨 일
이 있겠습니까. 제 생각엔 내일 꼭 송도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신명떨음이
나 하려구 위태한 걸 무릅쓸 까닭 있나. 내일 숙소참은 금교역말이니 딴소리 말
게.” 김양달이 예방비장과 수작할 때 사처방 밖에서 방안 수작을 엿듣는 사람
이 있었다. 장교 하나가 소변 보러 자는 방에서 나왔다가 사처방 앞에 사람이
붙어섰는 것을 보고 살며시 가까이 오는데 그 사람이 홱 돌아서며 곧 나는 새같
이 바깥 행길로 나가버렸다. 장교가 급히 뒤를 쫓아나와 보니 그 사람은 간 곳
이 없이 없어지고 술취한 사람 두엇이 어깨동무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앞을 지나
갔다. “여보, 지금 여기서 사람 하나 나가는 것 못 보았소?” “어떤 사람이 여
기서 나갔단 말이우?” “못 보았거든 고만두우.” “고만두라니 우리는 고만
갈 테요.” 술취한 사람들이 멀리 가기까지 장교는 사방을 돌아보고 섰다가 사
처방에 와서 사연을 말하니 예방비장이 장교를 보고 “그것이 아마 봉산 객주의
동생놈 같은 불량한 놈인 게다. 오늘 밤엔 우리도 잠을 설잘 게니 너희는 하나
씩 번갈아가며 일어 앉았거라.” 이르고 그 다음엔 김양달을 돌아보며 “오늘
밤엔 봉산서처럼 밖에 나가지 말게.” 하고 말하였다. 상하가 조심하여 무사히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해가 높이 돋은 뒤에 평산서 떠났다. 오조천에 와서 중
화할 때 홍의역말 사람 두서넛이 짐꾼, 말꾼들과 같이 앉아 이야기하게 되었는
데, 그중의 한 사람이 봉물짐이 저같이 굉장한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하니 나이
젊은 짐꾼 하나가 “그까짓 것만 보구 굉장하다구? 속에는 천하 보물이 다 들었
다우.” 하고 자랑같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비영스레 웃으면서 “평안도 사람들
다 살았구려. 등골들을 빼먹히구 무슨 수루 살겠소.” 하고 말하는 것을 예방비
장이 밖에 나왔다가 귓결에 듣고 곧 장교들을 불러서 그 사람을 잡아내어 매를
치는데 뒤에서 오는 행인 대여섯이 발을 멈추고 구경하였다. 평산서 엿듣는 사
람을 튀겨 쫓은 장교가 행인들을 가까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밀어내다가 그중의
두어 사람을 보고는 지난 밤 달빛 아래서 본 술꾼들의 모습을 생각하였다. 예방
비장이 홍의역말 사람을 매 쳐서 내친 뒤에 금교역말 가서 숙소를 미리 잡으라
고 장교 두 사람을 앞서 보내는데, 그 장교들이 행인들과 같이 오며 서로 지껄
이는 중에 금교역말 와서 숙소 잡을 것까지 의논하게 되었다. 그 행인들이 좋
은 사처 하나를 지시하마 하고 장교들과 같이 금교역말 와서 장터 끝에 있는 어
느 집으로 끌고 왔다. 그 집은 술 파는 집이라 안에는 식구가 거처하는 방이 있
고 밖에는 술청으로 쓰는 방이 있는데 거처하는 방은 깨끗하고 술청으로 쓰는
방은 널찍하였다. 그 집 주인 내외는 처음에 사처로 빌리기를 즐겨하지 않는데,
행인 중의 늙은 사람 하나가 친숙한 말씨로 “여게 이 사람들아, 하룻밤 동안에
술을 팔면 얼마나 팔 텐가. 이런 큰 행차에 사처루 빌려 드리구 시중을 잘 들면
상급 나오는 것이 술 파는 데 대겠나. 자네들을 남달리 생각해서 우리가 일부러
뫼시구 왔으니 어서어서 방을 치우게. 그러구 우리가 오늘 밤에 술을 많이 팔아
줌세.” 하고 말하여 주인 내외는 비로소 저희가 건넌방 술독 옆에서 자기로 하
고 안방도 내놓고 바깥방도 치웠다. 뒤의 일행이 다 온 뒤에 예방비장과 김양달
은 안방에 들고 장교들과 짐꾼, 말꾼 들은 행인들과 같이 바깥방에 들고 말들은
따로 마바리집에 갖다 매고 봉물짐과 행구는 모두 안방 안에 들여쌓고 길양식은
조석 두 끼거리를 떠내서 주인 주고 다시 묶어서 안방 밖에 놓아두었다. 이날
평산서 늦게 떠나고 오조천서 늦잡도린 까닭에 저녁밥을 먹고 났을 때 밤이 되
고 달이 높이 올라왔었다. 밤이 깊어져서 거의 삼경이나 되었을 때다. 전
같으면 짐꾼, 말꾼은 말할 것 없고 장교들도 천귀잠담 잠들이 들었을 터인데
바깥방에서 떠들썩하게 지껄이는 소리가 안방에까지 들려서 김양달이 나와 보니
바깥방에 술판이 벌어져서 술사발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뻔찔 도는 중이었
다. 김양달이 체모도 불고하도 “나두 한 사발 먹자. ” 하고 들어앉고 싶은 것
을 억지로 참고 장교들을 불러내서 “내일 식전 일찍 떠날 텐데 자지 않구 술들
을 처먹는단 말이냐? 술판 고만 치워라. ” 하고 일렀다. 김양달이 들어간 뒤에
장교 중에서 “우리 떠들지 말구 가만가만 먹읍시다. ”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
만, 정작 술을 내던 행인들이 모두 흥이 깨어져서 고만 먹겠다고 주인을 시켜
술판을 치우게 하였다. “우리 성주받이 구경이나 가세. ” “뉘 집에서 성주를
받는다든가? ” “어물전 주인 살림하는 집 문 앞에 황토 펴놓은 것 보지 못했
나? ” “황토를 펴놓았기루 꼭 성주를 받는지 어떻게 아나? ” “내가 아까 이
집 주인에게 물어봤네. ” “이 집 안주인이 어딜 가구 없나 했더니 성주받이
구경갔다네그려. ” “우리 가보세. ” 하고 행인들끼리 지껄인 다음에 “성주받
이 구경 안 가실라우? ” “우리 가서 무당년의 낯바대기나 보구 옵시다. ” “
자, 갑시다. 일어들 서시우. ” 하고 장교들을 끌었다. 행인 중의 늙은 사람 하나
와 장교 중의 조심 많은 사람 하나만 떨어지고 그 나머지 행인과 장교가 다 성
주받이 구경을 가는데, 짐꾼, 말꾼 몇 사람까지 함께 묻혀 갔다. 늙은 행인이 남
은 장교를 보고 “우리는 술이나 좀더 먹읍시다. ” 말하고 장교가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주인을 불러서 술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주인이 술을 가져온 뒤에 장
교는 한두 사발 받아먹고 더 못 먹겠다고 누웠으나, 늙은 행인은 짐꾼, 말꾼 자
는 사람까지 잡아 일으켜놓고 술을 권하였다. 늙은 행인이 너부 기탄없이 떠드
는 것을 보고 장교가 “떠드는 소리가 사처방에 들리면 우리가 술 먹으려 떠드
는 줄루 아시기가 쉬우니 너무 떠들지 마시우. ” 하고 말까지 하였건만 늙은
행인은 “녜녜. ” 대답만 하고 짓떠들어서 마침내 김양달이 떠드는 소리를 듣
고 바깥방에를 다시 나오게 되었다. 김양달이 나오는 신발 소리에 장교부터 눈
을 감고 자는 체하고 짐꾼, 말꾼 중에는 자지도 않으면서 흉물스럽게 코까지 고
는 사람이 있었다. 김양달이 바깥방 앞에 와서 “이놈들아, 왜 자지 않구 떠드느
냐! ” 하고 방문을 왈칵 열어젖히니 주인은 분주히 술푼주와 술사발을 한옆으
로 치우고 늙은 행인은 얼른 일어나 문 앞에 향하고 서서 “황송합니다. ” 하
고 허리를 굽실하였다. “지금 떠든 사람들이 누구야? ” “저희들이 술잔간 먹
으면서 지껄였소이다. ” “장교들은 다 어디 갔노? 정녕 딴데루 술 먹으러 간
게시. ” “아니올시다. 성주받이 구경을 갔소이다. ” “성주받이란 게 무슨 구
경이야? ” “무당년들 뛰노는 구경입지요. 이 근방은 송도가 가까운 까닭에 송
도물이 들어서 사람들이 대체루 신귀두 밝읍지요만, 무당들이 원청간 타도 무당
들과 다릅니다. 이 근방 무당년들이 소리하구 뛰노는 건 기생 가무를 제쳐놓구
구경할 만합니다. ” 김양달이 늙은 행인의 말을 듣고 슬며시 성주받이 구경가
고 싶은 마음이 나서 “구경들 간 데가 어디쯤인가. 여기서 가까운가? ” 하고
물으니 늙은 행인은 한번 빙그레 웃고 “윗장터 어물전 집이올시다. 장구 소리
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가만히 들어 보십시오. 저기서 뚱땅뚱땅하는 소리가 거기
서 오는 것입니다. ” 하고 귀를 기울이며 말하였다. “이놈들이 밤늦도록 자지
않구 내일 길을 어떻게 갈라노? 그대로 내버려두면 언제까지 있을는지 모르지.
내가 가서 몰아와야겠군. ” 김양달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늙은 행인이 곧 주
인을 돌아보며 “여보게, 자네 좀 뫼시구 갔다오게. ” 하고 말을 일렸다. “손
님들 주무시거든 구경 갈라구 했더니 이왕 가면 아주 구경하구 오겠소. ” “저
나리는 이곳 성주받이를 처음 구경하실 테니 잠깐이라두 구경 좀 잘 시켜 드리
게. 무당들 쉬일 때 젊은 년 하나 붙들어다가 노랫가락이나 한마디 시켜서 들으
시두룩 하게. ” “내 수루 어떻게 젊은 년을 붙들어내우? ” “주변없는 사람
일세. 그 집 젊은 주인만 충동이면 대번 될 것 아닌가. ” 늙은 행인과 주인 사
이의 수작하는 말을 김양달이 잠자코 듣고 섰다가 주인을 보고 “쓸데없는 소리
고만두구 나를 거기까지 데려다만 주게. 나는 장교를 불러가지구 곧 올 텔세. ”
하고 말하는데 주인이 대답하기 전에 늙은 행인이 나서서 “그러실 것 무어 있
습니까. 기왕 가시면 한동안 구경하시다 오시지요. ” 하고 권하듯 말하니 김양
달이 증을 내며 “내야 구경을 하든 말든 웬 참견이야! ” 하고 늙은 행인을 무
안주었다. 김양달이 예방비장에게 말하고 나와서 주인을 앞세우고 성
주받이하는 집으로 간 뒤에 늙은 행인은 곧 “뒤보구 와서 잠이나 자야겠다. ”
혼잣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뒤보러 간다고 나온 늙은 행인이 쏜살로 주인한 집
뒷집에 와서 불 없는 방 하나를 열어보며 “여기들 있나? ” 하고 말하니 방안
에서 어느 사람이 “녜, 여기 있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가긴 갔네만 곧
올 모양이니 어떻게 하나. ” “우리두 지금 그런 줄 알구 공론하는 중인데 좋
은 수가 있습니다. ” “좋은 수가 무슨 수야? ” “잠깐 들어오십시오. ” 늙은
행인이 방안으로 들어간 뒤에 몇 사람의 쑥덕공론하는 소리가 나더니 쑥덕공론
이 끝나며 곧 늙은 행인은 도로 나와서 주인한 집으로 돌아왔다. 예방비장은 석
후에 바로 잠 한숨을 잤지만 편산서 하룻밤 통히 잠을 설친 까닭에 잠에 취하여
김양달이 장교 부르러 가는 것도 꿈속만 여겼다가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서 봉물짐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김양달이 오기 전에 또 잠이 와서 머리를
벽에 기대고 깜빡깜빡 조는 중에 얼굴에 찬바람이 홱 끼쳐서 운을 언뜻 뜨고 본
즉 방안에 사람이 들어서고 방문이 열리었었다. 들어선 사람을 김양달인 줄만
생각하고 “문을 왜 열어놨어! ” 하고 나무라다가 짚신 감발한 것이 눈에 뜨이
어서 그 사람의 얼궁을 치어다보니 낯모를 사내게 휸증맞게 웃고 서 있다. “네
가 웬놈이냐? ” “아니꼽게 호령 말구 내 말 들어. 우리 대장이 할 말씀이 있
다구 잠깐 오라시니 가세. ” “대장이 누군데 나를 오한단 말이냐? ” “가보
면 자연 알 테니 어서 일어나. ” “가만 있거라. 대님이나 좀 매구. ” 예방비
장이 끌러놓은 대님을 찾는 체하고 슬며시 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환도를
찾아 쥐고 벌떡 일어서며 곧 칼날을 뽑아 앞으로 내밀면서 “이 도적놈아! ”
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그 사내는 미리 다 알고 기다린 것같이 슬쩍 대들어서
환도 쥔 팔을 잡아 환도를 뺏어버리고 품에서 긴 수건을 꺼내서 아갈잡이를 시
키고 또 활시위를 꺼내서 뒷결박을 지웠다. 예방비장이 아갈잡이와 뒷결박을 안
당하려고 항거하였으나, 그 사내는 마치 허수아비나 어린아이를 다루듯 하여 항
거하는 보람이 조금도 없었다. 예방비장이 주저앉아 일어나지 않는 것을 그 사
내가 멱살을 잡아 일으켜세우더니 끌어안아서 방 밖으로 내놓으며 “어서 와서
끌구들 가자. ” 하고 말하였다. 봉당 구석에서 그 사내의 부하 네댓 놈이 우 하
고 몰려나와서 예방비장에게 달려들었다. 앞에서 상투를 풀어잡고 끄는 놈에, 좌
우에서 팔죽지를 끼여들고 끄는 놈에, 뒤에서 등덜미를 짚어서 미는 놈에 예방
비장이 꼼짝 못하고 바깥 행길까지 끌려 나왔을 때 바깥방에서 장교와 말꾼, 짐
꾼 몇 사람이 쫓아나왔다. “어서 와서 끌구들 가자. ” 하고 말하였다. 봉당 구
석에서 그 사내의 부하 네댓 놈이 우 하고 몰려나와서 예방비장에게 달려들었
다. 앞에서 상투를 풀어잡고 끄는 놈에, 좌우에서 팔죽지를 끼여들고 끄는 놈에,
뒤에서 등얼미를 짚어서 미는 놈에 예방비장이 꼼짝 못하고 바깥 행길까지 끌려
나왔을 때 바깥방에서 장교와 말꾼, 짐꾼 몇 사람이 쫓아나왔다. “이놈들, 웬놈
들이냐! ” 장교의 고함치는 소리가 나고 “이놈아, 소리지르지 마라. 시끄럽다.
” 방에 들어왔던 사내의 꾸짖는 소리가 난 뒤에 바로 쿵 소리가 나더니 “아이
쿠! ” 하고 장교가 길바닥에 나가자빠졌다. “이놈들, 모주리 동댕이를 쳐줄 테
니 이리들 오너라. ” 하고 기세 부리는 것은 그 사내요, “아니올시다. 아니올
시다. ” 하고 뒤를 빼는 것은 짐꾼, 말꾼 들이었다. 늙은 행인이 대담하게 앞으
로 나와서 예방비장을 가리키며 “이 양반을 무슨 일루 붙들어가우? ” 하고 물
으니 그 사내가 볼멘 소리로 “상관없는 사람은 저리 가라구. ” 하고 늙은 행
인을 한옆으로 따다밀었다. “떠다밀지 마우. 늙은 사람 자빠지우. ” “잔소리
말구 얼른 저리 비켜! ” “당신이 운달산 박대장패의 젊은 두목 아니시우? ”
“를 언제 봤다구 운달산이니 박달산이니 하구 떠들어. ” “내가 연전에 당신
손에 혼난 일이 있는데 늙은 사람이 눈이 어듭기로서니 당신을 몰라보리까. ”
그 사내가 늙은 행인의 말을 듣고 “음. ” 하고 잠깐 생각하더니 “이 늙은 사
람을 두구 가면 우리 종적을 가르쳐주기 귑다. 귀찮지만 붙들어가지구 가자. ”
하고 부하에게 분부하였다. 늙은 행인이 예방비장 뒤에 붙들려오며 운달산 박대
장패의 운자도 입밖에 내지 않을 터이니 놓아 달라고 그 사내에게 애걸하나, 그
사내는 검다 쓰다 말이 없었다. 예방비장은 늙은 행인의 말을 주워 듣고 ‘늙은
사람의 말을 들으니 운달산 화적패가 분명한데 어째서 나를 잡아갈까. 나를 잡
아다 놓구 봉물짐을 갖다 바치라구 할 셈인가. ’ 속으로 생각하고, 무섭기도 하
고 춥기도 하여 벌벌 떨며 끌려갔다. 김양달이가 성주받이하
는 집에를 와서 보니 남녀노소 구경꾼들이 넓은 마당에 가뜩 들어섰는데 장교는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데리고 온 객주 주인에게 찾아보라고 일러서 주인
이 한두 사람더러 물어본 끝에 뜰아랫방에 들어앉았는 장교들을 불러냈다. 장교
들은 같이 온 행인들의 주선으로 그 집 젊은 주인에게 주식대접을 중이라 불려
나올 때 어떤 장교는 입에 음식을 꺼귀꺼귀 씹으며 나왔다. “일찍 자랬으면 잘
것이지 구경이 무슨 구경이냐! 내일 새벽길들을 어떻게 갈 테냐. ” 김양달이 책
망하는 말에 여러 장교들은 “녜, 곧 가겠습니다. ” “내일 첫새벽에 일어들 납
니다. 염려 맙시오. ” “나리께서 친히 부르러 오셨습니까, 왕송합니다. ” 각인
각색으로 대답하고 뒤를 따라나온 행인들과 그 집 젊은 주인을 돌아보며 “우리
는 면저 갈 테니 구경들 많이 하구 나중들 오시우. ” “잘들 먹구 가우. 이 다
음 또 뵙시다. ” 하고 갈 인사들을 지껄일 때 젊은 주인이 김양달이 앞에 나와
서 문안을 드렸다. “저는 이 집 주인의 아들이올시다. 이왕 누추한 곳에 행차하
셨으니 잠깐 들어 앉으시지요. ” “들어앉을 것 없이 바루 가겠네. ” “술이나
떡이나 좀 잡숫구 가시지요. ” “내가 술은 끊었구 떡은 질기지 않네.” “돼지
다리두 있구 소머리두 있습니다. 고깃점이라두 좀 잡숫구 가십시오.” 김양달이
도야지고기를 즐기는 까닭에 속으로 침은 삼키면서 겉으로 “폐 끼칠 것 없네.
” 하고 말하였더니 “천만의 말씀이지 무슨 폐오리까.” 젊은 주인이 청할 뿐
아니라 “금교 제일 부자집에 폐 좀 끼치셔두 좋습지요.” “젊은 무당의 소리
나 한마디 듣구 가시지요.” “그대루 가신다면 주인이 무안하여 합니다.” 행인
들이 입을 모아 권하여서 김양달은 마침내 장교들을 돌아보며 “주인이 초면에
하두 정답게 하니 잠깐 들어앉았다 가는 게다.” 말하고 젊은 주인의 지도하는
대로 제물상이 놓인 건너편 방에 들어와 앉아서 방문을 열고 무당들의 성주받이
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젊은 주인이 주육상을 내다놓고 “변변치 못한 음식이나
마 좀 잡수십시오.” 권한 뒤에 곧 일어서서 나가더니 젊은 무당 하나를 끌어들
여다 상머리에 앉히면서 “나는 아랫방 손님들을 좀 가봐야겠으니 네가 내 대신
이 손님나리께 음식두 권하여 드리구 또 노랫가락두 한마디 들으시게 해라.”
하고 아랫방으로 내려갔다. 장교들과 행인들과 객주 주인은 아랫방에서 술들을
먹고 김양달은 혼자 건너방에소 무당을 옆에 끼고 도야지고기를 먹는 중에 밖에
서 “김여맹 나리 어디 가십니까?” 하고 큰소리로 찾는 사람이 있었다. 김양달
이 밖에 나와서 짐꾼, 말꾼 두서넛이 온것을 보고 “웬일이냐?” 하고 물으니
짐꾼 하나가 재빠르게 예방비장이 화적에게 붙들려 간 사연을 말하였다. 김양달
이 긴말 묻지 않고 곧 장교들을 불러내서 데리고 달음질을 쳐오는데, 짐꾼, 말꾼
들과 행인들과 객주주인도 다 뒤를 쪼ㅈ아왔다. 김양달이 사처에 와서 봉물짐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고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하며 “봉물짐 잃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예방 나리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도둑놈이 어디루 간지나
알아야 찾아가 보지 건공대매루 찾아나설 수야 있느냐.” 하고 장교들 보고 공
론할 때 행인 하나가 들어와서 “붙들려가신 양반을 찾으러 가시지 않으렵니까.
지금 뒷집 사람의 말을 들으니 도둑놈들이 능안으루 가더랍니다. 저희두 동행
노인을 찾으러 갈 테니까 가실테면 뫼시구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방비장 없는 것이 진상 봉물을 영거하여 가는 데 지장이 되지 않으므로 김
양달은 예방비장을 찾을 마음이 도저치 않으나 행인의 말을 듣고 한번 색책으로
라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어서 “도둑놈들 간 방향을 알면 뒤쫓아 가서 붙
들려간 사람을 뺏어와야지. 이녁내들이 간다니 우리하구 같이 갑세.” 하고 행인
에게 말한 뒤에 장교 세 사람은 안방에서 봉물짐을 지키게 있게 하고 머리통이
깨어진 장교 한 사람은 바깥방에 누워 있게 하고 남은 장교 한 사람만 데리고
행인들과 같이 가기로 하였다. 장교 한 사람이 안방에 떨어져 있는 환도를 집에
꽂아서 김양달에게 바치며 “나리, 이 환두 가지구 가시지요?” 하고 말하니 김
양달이 고개를 가로 흔들며 “환두는 해 무어 하니? 도둑놈 몇 놈쯤 이 주먹으
루 때려눕히지.” 하고 주먹을 내보였다. “그럼 소인이나 가지구 가겠습니다.”
데리고 갈 장교가 말하는 것을 “아무리나 하려무나.” 김양달이 허락하여 환도
는 그 장교가 받아서 허리에 질렀다.
초저녁에 달을 가리던 적은 구름이 한 조각도 남지 않고 없어져서 달빛이 대
낮같이 밝았다. 김양달이 행인들은 앞세우고 장교는 뒤세우고 능안길로 쫓아오
는데 앞선 행인들이 눈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들을 살펴보고 “이거 보게. 사람
을 끌구 간 자국이 환하지 않은가.”
“중간에 한 사람을 양편에서 끌구 간 것 같애. 길이 좁아서 셋이 느런히 서
갈 수 없으니까 이편 놈이 길 밖으루 나갔다 저편 놈이 길 밖으루 나갔다 한 모
양일세.”
“발자국을 보니 종종걸음 들을 친 모양일세.우리가 이렇게 빨리가면 능안 안
짝에서 붙잡겠네.” “그럼 능안까지 갈 게 있나.” 저희끼리 서로 지껄이었다.
김양달이 행인들더러 지껄이지 말고 더 빨리 가자고 재촉하여 오리길을 좋이
왔을 때 여러 사람이 뭉텅이져서 가는 것이 멀리 앞이 보였다. “옳다, 저기 간
다.”
행인하나가 소리치자, 김양달이 곧 행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서 장달음을
놓으니 행인들과 장교가 숨이 턱에 닿게 쫓아왔다. 사람 들을 두 패로 붙들고
가고 사람 하난가 뒤에 따로 가는 것까지 분명히 보이게 되었다. “이놈들 게
있거라!” “이놈들 견데 봐라.” 김양달이 호통 소리에 산골이 울렸다. 앞에 가
는 여러 사람이 가지 않고 서는 듯하더니 즉시 달음박질쳐서 도망을 하는대 주
저앉는 사람 하나만 뒤에 남기었다. 김양달이 주저앉은 사람을 와서 보니 곧 예
방비장이라 얼른 대들어서 아갈잡이와 뒷결박을 풀어놓고 “다치신 데는 없습니
까?” 하고 물으니 예방비장이 긴 숨을 내쉬고 나서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나
그러나 죽을 뻔했네.”하고 기운 없이 말하였다. 김양달이 뒤에 온 장교를 돌아
보며 “예방 나리 뫼시구 찬찬히 가거라. 나는 도둑놈들 쫓아가서 주먹맛 좀 보
이구 오마.”하고 말하는 것을 예방비장이 손을 붙잡고 “김여맹 고만두구 객주
루 가세.”하고 말리었다. 행인 하나가 예방비장을 보고 “늙은이는 도둑놈들이
어째 끌구 갔습니까?”하고 물으니 “도둑놈들 말이 늙은 사람을 내버리구 가면
종적이 탄로나겠다구 하더니 그래서 뜰구 간 게지.”하고 예방비장이 대답하여
주었다. 행인들은 어디까지든지 쫓아가 소 동행을 찾아오겠다고 도적의 뒤를 밟
아가고 김양달은 예방비장이 손을 잡고 놓지 아니하여 장교와 같이 예방비장을
부축하고 돌아왔다.
예방비장이 걸음을 빨리 걷지 못하여 금교까지 돌아오는데 보리밥 한 솥 짓기
착실히 걸렸다. 객주집에 다 왔을 때 바깥방에서 두런두런 지껄지껄하는 소리가
난서 김양달이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김꾼, 말꾼 들이 모두 일어나 앉았었다.
“왜들 안 자구 앉았느냐?” 김양달이 묻는 말에 “아이구, 나리 오셨습니까.”
“어째 이렇게 더디셨습니까.” “나리, 큰일났습니다.”하고 대답들 하며 일어
서는데 누웠던 장교까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며 “예방 나리는 어떻게 되셨습
니까?”하고 물었다. “여기 오신다. 그런데 또 무슨 일이 났느냐?” “나리 가
신 뒤에 얼마 아니 있다가 화적패가 몰려와서 봉물짐을 다 가져갔습니다.” “
무엇이 어째! 봉물짐을 가져가?” 김양달이 펄쩍 뛰어 나서며 장교에게 부축받
고 섰는 예방비장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안으로 쫓아들어왔다. 안방에는 장교
세 사람이 죽은 사람깥이 늘비하게 쓰러져 있다가 김양달이 “이놈들아, 죽어자
빠졌느냐!”하고 소리지르느 바람에 뻘떡뻘떡 일어들 났다. “봉물짐 어디 갔느
냐?” 장교들은 얼빠진 사람들같이 멀거니 서로 보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
이놈들아, 맑은 정신 다 나갔느냐?”하고 김양달이 신발 신운 채 방에 뛰어들어
와서 세 장교의 귀퉁이를 깡그리 쥐어박으니 두 장교는 “아이구!” “아이구머
니!”하고 주저앉는데 한 장교가 꼿꼿이 소소 “김여맹 나리 왜 이러십니까. 우
리들은 아무 죄두 없습니다.”하고 발명하였다. “봉물짐 어떻게 했느냐?” “화
적들이 가져갔습니다.” “너희놈들은 가만히 보구 있었느냐?” “화적들 수효
가 엄청나게 많아서 꼼짝 못하구 결박들을 당했습니다. 나중에 주인의 말을 들
으니 화적들이 삼사십 명이나 되더랍니다. 삼사십 명을 어떻게 당합니까. 제 말
이 거짓말인가 주인 불러 물어보십시오.” “화적들이 어디루 갔느냐?” “그걸
소인들이 어떻게 압니까. 화적들이 다 간 뒤에야 주인이 와서 소인들의 아갈잡
이와 뒷결박을 풀어주었습니다.” “바깥방에 있는 놈들은 다 죽었더냐?” “나
중에 말 들으니까 화적의 괴수 한 놈이 철퇴를 들구 바깥방문을 가루막구 서서
꿈쩍만 하면 때려죽인다구 어르는 통에 짐꾼, 말꾼 들은 끽소리두 못하구 있었
답니다. 화적의 괴수두 한 놈뿐이 아니에요. 안에 들어와 섰던 괴수놈은 큰칼을
쥐구, 안팎으루 드나들던 괴수놈은 긴 창을 짚었습디다.” “너희놈들이 밥병신
이지 사람이냐? 하다못해 여기 찰방한테 가서 말하구 역졸들과 같이 쫓아가 보
지두 못한단 말이냐!”“저희들두 그런 공론을 했습니다만 나리들 오시기를 기
다렸습지요.”“네까지 놈들이 무슨 공론을 했겠느냐. 우리 오기를 기다릴 것 없
이 우리에게루 쫓아오기라두 해야지.”“어디까지 가셨는지 몰라서 못 갔습니다.
”“이놈아, 발명 마라. 그래서 편하게들 자빠져 잤느냐?”“자지들 않았습니다.
”“그래두 발명이냐!”
김양달이 장교의 뺨을 한번 후려갈기니 그 장교는 손으로 뺨을 가리고 한참
쩔쩔매었다. 김양달이 장교하고 말하는 동안에 예방비장은 같이 온 장교를 데리
고 밖에서 들어왔고, 객주 주인은 건넌방에서 뛰어나왔다. 김양달이 먼저 예방비
장을 보고“이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물으니 예방비장은 넋 잃은 사람같이
말대답도 못하고 다음에 주인을 보고 “화적놈들이 지금 얼마나 갔겠나?”하고
물으니 주인은 고개를 비틀면서“글쎄요. 거의 십리길이나 갔을껄요.”하고 대답
하였다.
장교들이 방에서 나가고 예방비장이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환도 가지고 갔던
장교가 환도를 방에 들여놓다가 김양달이 방안에 신발 신고 섰는 것을 보고 “
나리, 왜 신발 안 벗으십니까?”하고 깨우쳐서 김양달이 비로소 짚신을 벗어 내
놓고 주저앉았다. 그 많던 봉물짐과 행구가 하나 남지 않은 것을 김양달이 새삼
스럽게 둘러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예방비장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첫밗에 하는 말이“여보게 김여맹, 올 때 다짐 두구 오지 않았나.”책
잡는 말투로 나오니 김양달이 어이가 없어 대답을 못하고 그 얼굴만 뻔히 바라
보았다. “다짐둘 때 호기가 어디 가구 벌벌 떨기만 하니 웬일인가.”예방비장
다음 말에 김양달이 불끈하며“어떤 밥병신 녀석이 벌벌 떤단 말이오? 벌벌 떠
는 녀석들은 따루 있소.”말씨가 곱지 않게 나왔다. “벌벌 떠는 녀석들이라니?
누구더러 하는 말인가?”“못생긴 녀석들이 눈뜨구 봉물짐을 뺏겼는데 그렇게
말 안해요?”“봉물짐은 성주받이 구경에 날라갔으니 그런 줄이나 알구 말하게.
”“나는 성주받이를 구경가지 않았소.”“성주받이 구경을 안 갔으면 장교들
부르는데 그렇게 동안이 오래 걸렸나. 또 장교들은 꼭 친히 부르러 가야 하나.
그 따위 핑계를 누가 곧이들을 줄 아나.”“핑계라거나 말거나 나만 잘못한 일
이 없으면 고만이오.”“잘못한 일이 없다니, 그런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오나? 봉
산서 술타령한 것이며 여기서 성주받이 구경간 것이 다 잘한 일인성 싶은가.”
“봉물짐 찾을 생각은 않구 비랭이 자루 찢기요?”“봉물짐은 다짐 두구 온 사
람이 찾아놓겠지.” “아무리 다짐 다짐 하구 내게다 허물을 뒤어쓰이려구 해야
나혼자 몸달릴 까닭 없소.” “몸달릴 까닭 없거든 몸달리지 말게. 감영에 돌아
가서두 그런 소리 하구 배기나 어디 보세.” “나를 벼르면 어쩔 테요?” 김양
달이 목자를 부라리니 “내게다 목자를 부라리면 어쩔 테야?” 예방비장이 호령
기 있게 말하였다. “누게다 호령이오?” “네게다 호령이다.” “너는 누구야?
” “네가 너지 누구야.” “아니꼽게 누구더러 너래?” “되지 못한 토관놈이
뉘 앞에서 거센 체하느냐!” 김양달이 속에서 불덩이가 치미는 바람에 벌떡 일
어서며 “주먹맛 좀 보구 싶으냐!” 하고 소리를 지르니 예방비장이 눈결에 환
도를 집어 날을 빼어들고 일어서며 “뉘게다 주먹을 내미느냐. 앞으루 더 내밀
기만 해라. 팔목을 끊어놓을 테니.” 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김양달이 발길로
한번 예방비장의 아랫도리를 걷어차니 예방비장이 허깨비갈이 고꾸라지고 또 한
번 예방비장의 환도 든 팔을 걷어차니 환도가 떨어졌다. “이놈, 사람 죽인다.”
예방비장 고함지르는 소리에 바깥방에 나가 있던 장교들이 뛰어들어오고 그
뒤에 짐꾼, 말꾼 들까지 따라들어왔다. 그러나 모두 마당과 봉당에 몰려섰고 방
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 김양달이 방안에 고꾸라진 예방비장을 내려다보고 또
방 밖에 겹쳐 섰는 여러 사람들을 내다보며 “내가 죽을 운수가 뻗쳐서 너놈들
같은 밥병신하구 같이 왔다.”하고 큰소리로 말한 뒤에 방바닥에 떨어진 환도를
집에들며 곧 자기 목을 찌르고 앞으로 엎드려졌다.
예방비장은 엉겹결에 일어 앉고 장교들은 앞을 다투어 들어왔다. 김양달을 여
러 손으로 떠받들어 반듯이 눕힌 뒤에 목에 박힌 칼을 뽑아주는데 선지피가 내
뿜듯 나와서 칼을 뽑던 장교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나오는 피를 막으려
고 머릿수건을 목을 친친 감아주었더니 눈을 꽉 감은 김양달의 목에 감긴 수건
을 잡아 뜯으며 머리를 흔들다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둘러보며 “나는 죽기
다짐 두구 왔다. 그래서 죽는다. 처자식은 사또께......”말하다가 말끝을 못 마치
고 입을 다물었다. 예방비장이 그제사 앞으로 가까이 앉으며 “김여맹 이게 무
슨 짓인가. 여보게 정신 차리구 내 말 좀 듣게. 내가 말을 과히 했네. 용서하게,
김여맹”하고 지껄였으나 김양달은 흰자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김양달
의 코에 숨이 그치고 김양달의 팔에 맥이 걷히였다. 진서위의 유명한 장사 김양
달이 이와 같이 허무하게 자문하여 죽었다. 김양달이 죽은 뒤에 얼마 아니 있다
가 밤이 새었다. 예방비장과 장교들은 밤을 반짝 새웠으나 화적의 뒤는 수탐해
보지도 못하였다. 이튿날 식전에 예방비장이 금교찰방을 찾아보고 또 강음현에
까지 들어가서 현감을 보고 전후 사정을 말한 뒤 화적패의 종적을 속히 알도록
염탐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김양달 치상하여 갈 부비를 취대하여 달라고 청하니
현감이 두말 않고 허락하였다. 진상 봉물을 경내에서 도적맞은 것이 큰일이라,
강음 현감이 금교에 나와 앉고 금교찰방이 객주에 나와 보고 탈미골 군영에서
군관이 군사를 데리고 내려와서 화적의 종적을 사방으로 수탐하였다. 예방비장
과 같이 잡혀간 늙은 행인이 돌아오면 화적의 종적을 자세히 알까 하고 기다리
었으나, 잡혀간 늙은 행인은 고사하고 동행을 찾으러 간 다른 행인들까지 돌아
오지 아니하였다. 이틀 동안에 치상이 대강 끝나서 금교서 전후 사흘을 묵고 평
양으로 회정하였다.
김양달의 상여는 마주잡인데 짐꾼, 말꾼 들이 번갈아서 상여를 메었다. 상여
앞에는 예방비장이 부담을 타고 가니 부담은 짚부담이요, 상여 뒤에는 말들이
가니 말들은 빈 말들이었다. 일행이 금교서 떠난 지 사흘 되는 날 식전에 평양
에 도달하였는데 예방비장도 바로 감사를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장교들을 데리고
포정문 밖에 대죄하였다. 감사가 이것을 알고 펄펄 뛰며 예방비장 이하 여러 사
람을 선화당 마당에 잡아들여서 죄인같이 문초를 받았다. 예방비장과 장교들은
아무쪼록 자기들의 허물을 적게 하려고 입을 모아가지고 죽은 김양달이 잘못이
많은 양으로 말하였으나 감사는 “너희나 양달이나 죄는 일반이다. 너희도 양달
이처럼 죽었으면 모르되 너희 죄를 그대로 용서할 수 없다.”하고 천둥같이 호
령하였다. 감사는 숙정패를 내걸게 하고 좌기하고 앉아서 예방비장과 장교 다섯
사람을 장령 어긴 죄목으로 효수한다고 엄포하여 여러 사람의 혼을 다 빼어놓은
뒤에, 예방비장은 서울로 쫓아버리고 장교들은 구실을 떼어버리고 김양달이만은
죽은 것이 불쌍하다고 그 처자를 구휼하여 주었다. 감사는 또 화적들을 잡아서
진상 봉물을 찾아달란 사연으로 황해감영에 이문을 부치고 서울 포청에 기별을
띄웠다.
평양 진상 봉물은 빼앗아간 화적이 청석골패요, 전후 꾀를 낸 사람이 서림인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서림이 이 꾀를 낼 때, 평양서 오는 일행이
평산서 숙소한 다음에 금교 와서 숙소하거든 금요서 빼앗고 송도를 숙소참 대거
든 평산서 빼앗자고 말하였건만, 말을 가장 잘 좇는 늙은 오가와 박유복이까지
다 금교 역말은 모르되 평산부중은 자리가 좋지 않다고 평산 가서 일하기를 즐
기지 아니하여 금교를 주장삼아 준비하고 만일 금교를 숙소 않고 지나가거든 차
라리 탑고개에서라도 빼앗아보자고 의논을 정하게 되었었다. 늙은 오가는 작은
두목 너댓 명을 데리고 평산가서 평양 일행을 장맞이하여 가지고 같이 오며 동
정을 살피기로 되었는데 오조천에서 앞서 오는 장교들과 동행한 행인들은 곧 늙
은 오가의 일행이요, 김양달이 성주받이를 오래 구경하지 않을 줄 짐작하고 아
주 멀찍이 끌어내려고 예방비장을 미끼로 붙들어갔는데 예방비장을 어린 아이같
이 다루던 사내는 길막봉이요, 봉물짐을 빼앗아갈 때 바깥방 문을 지키던 두령
은 곽오주요, 짐짝 들어내는 것을 지휘하던 두령은 배돌석이요, 안팎으로 드나들
며 총찰하던 두령은 박유복이니, 모두 평소에 쓰는 병장기는 가지지 아니하였었
고 또 숙소한 술집주인은 청석골의 이목 노릇하는 사람이요, 술집 뒷집은 청석
골서 술집 주인을 사준 집이요, 어물전 젊은 주인은 청석골과 기맥을 통하는 사
람이라, 술집 주인이 청석골 지휘를 받고 어물전 젊은 주인에게 말하여 집안 우
환을 핑계삼고 불시에 성주를 받게 하였었다. 금교역말서 평양 진상 봉물을 빼
앗아간 화적이 왕청된 운달산패보다도 가까운 청석골패가 아닐까 십분 의심하는
사람은 허다하였으나, 청석골 테 밖에 사람으로 참말 속내를 아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평안감영 예방비장이 운달산 박대장패라고 들은 말을 강음현감에게
말하고서 운달산 소문이 퍼져나와 자자한 까닭에 서울 포도군관들과 황해감영
군관들이 금교와서 며칠씩 묵새기며 화적의 종적을 수탐하다가 소득이 없으면
반드시 평산으로 나갔다. 나중에 어명을 받은 선전관이 평산 와서 운달산 적정
을 탐문하고 해주 가서 황해감사에게 어명을 말하여 황해감사가 평산,연안,배천,
강음 네 골에 비감을 발송하였다. 평산부사와 연안부사와 배천현령과 강음현감
이 각각 군병을 조발하여 거느리고 운달산 아래 모여서 적굴을 들이치려고 하는
데, 화적의괴수 박연중이 어떻게 먼저 알고 부하 이삼십 명을 흩어보내고 자기
도 도망하여 관군은 빈 소굴만 소탕하였다. 환갑이 가까운 박연중이 이십여 년
동안 웅거하여 온 소굴을 일조에 빼앗기게 된 것은, 속담에 애매한 두꺼비 돌에
치인 격이었다. 운달산 적굴에서 평양 진상 봉물의 형적도 보지 못하고 네 골
수령이 각기 환관한 뒤에 황해 감사가 연유를 비변사에 보하여더니 조정에서 다
시 개성유수에게 청석골 적굴을 소탕하라고 명하였다. 유수는 아무 계책도 없이
다만 경력에게 군사 몇십 명 주어 내보내고, 경력은 아무 역량도 없이 다만 군
사 몇십 명을 거느리고 청석골로 나갔다. 경력이 탑고개 동네에 결진하고 묵은
까닭에 청석골패는 경력 진중 대소 동정을 손 위에 놓고 보듯이 알고 한번 접전
에 관군을 함몰시킬 승산이 십분 있었지만, 대병이 뒤에 이를 염려가 있으니 접
전을 피하라고 서림이가 늙은 오가와 박유복이를 달래어서 다른 두령들은 누르
고 여러 졸개들을 거두어 나다니지 못하게 하였다. 경력이 십여 일 동안 군사를
놓아 탑고개 근방을 뒤졌으나 화적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송도부중에 돌아와
서, 화적들은 멀리 도망하고 평양 진상 봉물은 형적도 보지 못하였다고 유수께
회보하였다. 유수가 경력의 회보대로 비변사에 보하였더니 조정에서는 평양 진
상 물목을 각도 각관에 보내고 물목 중의 물건을 감춘 집이나 또는 가진 사람을
고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중상을 준다고 각 읍촌에 전령을 돌리게 하였다.
청석골 두령들은 평양서 오는 봉물짐을 송두리째 뺏어다 놓고 여덟 몫에 나누
어서 한 몫은 도중 소용으로 제치고 한 몫은 작은 두목들을 내주어서 나누게 하
고 그 나머지 여섯 몫은 여럿 두령이 한 몫씩 차지하였다. 서림이도 입당하여
두령 한 몫을 보게 되었었다. 이와 같이 도회청에 둘러앉아서 노늠몫을 할 때
야광주란 흰구슬은 도중 몫으로 들어가고 굵은 진주는 늙은 오가의 몫으로 돌아
갔는데 곽오주가 굵은 진주를 집어다가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더니 늙은 오가
더러 “이것을 무엇하실라우?”하고 물었다. “글쎄 무엇했으면 좋을지는 나도
모르겠네. 아직은 그대루 집어두구 보겠네.”“집어두느니 내 몫에 아무거나 하
고 바꿉시다.”“자네는 무어할라나?”“내 앞에 있는 아니놈 줄라우. 이까짓것
막상 보물이래야 어른은 가져서 아무짝에 소용없겠소.”곽오주 옆의 앉은 길막
봉이가 오주의 어깨를 툭 치며 “이번 아이놈은 대단 신통한 모양이군.”하고
웃으니 “사람을 툭툭 치지 않으면 말 못하나.”하고 오주는 눈을 흘기고 곽오
주 건너편에 앉은 배돌석이가 오주를 바라보며 “희한한 보물을 가질 사람이 없
어서 아이놈을 준단 말인가. 아이놈이 그걸 가지면 무어하나. 개발에 주석 편자
지.”하고 말하니 “제기, 남이 바꿈질하려는데 왜들 나서서 헤살을 놓소.”하고
오주는 상을 찌푸렸다. 늙은 오가가 웃으면서 “자네가 가지구 싶다면 혹시 바
꾸어 줄지 모르지만 아이놈 주라구는 바꾸어주지 못하겠네.”하고 말하니 곽오
주는 곧 “내가 가지구 싶소.”하고 싱글싱글 웃었다.“참말인가?”“참말이오.
”“만일 아이놈을 갖다주면 삼천육부지자 노랑개새끼라구 맹세를 치게.”“점
잖지 못하게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맹세를 친다구 노랑개새끼가 되우. 고만두
구 그대루 바꾸어주시우.”“이 사람아, 내가 자네 속을 다 아네. 고만두게.”“
바꾸어주기 싫거든 고만두우.”“아이놈은 무어하라구 갖다 줄 텐가, 어디 말 좀
들어보네.”“주머니끈에 꿰어 차라지요.”곽오주 말끝에 서림이가 웃으면서 “
그 준주가 은 오십 냥이나 주구 산 것이라고. 그것을 주머니끈에 채우기엔 아깝
지요.”하고 말하여 곽오주는 한번 흘끗 서림이를 보고 나서 “미친 놈들이다.
나더러 사라면 상목 한끗두 안주겠다.”하고 혼잣말로 지껄였다.
“준주는 외려두 여차지요. 야광주는 의주부윤이 대국서 사오는데 이백 냥인
지 삼백냥인지 주었답디다.”서림이 말한 뒤에 박유복이가 흰구슬을 집어다가
만작만작해 보며 “지금 이것을 판다면 상목 몇십 동이나 받을 수 있겠소?”하
고 물어서 서림이가 “작자만 있으면 몇십 동만 받겠소.”하고 대답하였다. 곽오
주가 서림의 말을 듣고 잠깐 고개를 비틀었다가 다시 바로세우며 “내가 도중에
할 말이 있소. 도중으루 내논 몫은 우리 양주 꺽정이 형님에게 보내줍시다.”하
고 말을 내놓으니 다른 두령들은 말이 없고 박유복이가 나서서 “도중 몫은 그
냥 두구 우리들 몫에서 모아서 보내는게 좋지 않을까.”하고 말하여 다른 두령
들이 좋다고 찬동할 뿐 아니라 곽오주까지 그것도 좋다고 자기 말을 고집하지
아니하였다. 박유복이가 이봉학에게도 보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 황천왕
동이도 두었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여 각기 친분대로 내서 모으는데, 임꺽정
이 몫에는 다른 두령뿐 아니라 서림이까지 내놓고 황천왕동이 몫에는 서림이만
빠지고 다섯 두령이 다 내놓고 이봉학이 몫에는 박유복이 외에 배돌석이 한 사
람이 내놓았다. 그 뒤에 양주 임꺽정이와 임진 이봉학이게 물건을 보냈더니 꺽
정이는 말없이 받고 봉학이는 받지 않고 돌려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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