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장 길 산 10

一字師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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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길 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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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황석영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봉사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 상 윤, 양 선 희

 

제4부 제2장

송도 사재전 임방회의는 오전부터 시작되어 중화참이 훨씬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있었다.

비록 한양이나 관서의 상인들과 경쟁할 때에는 송상들이 일심 협력하여 상권을 장악하는

것이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상리를 놓고 다툼이 그치질 않았다. 물론 그런 연유로 임방이

있던 것이었다. 좌장 박대근을 비롯하여 송도 각 상단의 접장들이 나와 앉았는데 그들 중에

는 대근이처럼 상단의 행수를 겸하고 있는자도 있었고, 배대인같이 상단의 전주인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박대근이 배대인의 뒤를 이어 접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임방의 좌장은 그보다 나

이 많고 점잖은 이가 되게 마련이라 대근으로서는 회의가 조심스러울밖에 없었다. 임기가

다섯 해이니 대근의 마지막 회의 주재였던 것이다.

때는 늦가을이라 추수도 모두 끝났고 팔도에 온갖 산물이 넘쳐나는 중이었다. 미곡은 물론

이요 각색 과일 건어물 포목 지물 피물 기맹 유기 양태 등속의 거래가 활발한 즈음이었고,

이러한 활기는 세밑까지에 막바지를 이루던 것이다. 임방 회의가 크게는 일 년에 철마다

네 번이요 작게는 다달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는 각 도의 송방에서 내는 물건의 가격이 정

해지고 다루는 물종이 의논되었으며, 각자가 갖고있는 산지의 현 실정을 알렸으니 이는 송

상이 피차의 경쟁을 피하고 전국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무명과 모시

를 갑이 다루기로 정해지면 을은 양보하는 대신 피물을 다루도록 조정이 되는 것이었고, 그

것은 여러 지방에 흩어진 송방에 통지되어 추호의 어김도 없이 엄수되었다. 그러므로 임방

회의에서는 각자가 자기 자본과 물력에 의하여 유리한 물종을 석권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자

신이 적임이라는 것을 내세우며 입씨름하였다. 다른 달 같으면 그저 산지 실정이나 얘기하

고 서로의 어음이나 계산하고 흩어질 작은 모임에 지나지 않을 것을, 임방에서는 사흘 전부

터 접장들은 물론 배대인과 같은 원로들까지 반수로서 참석하시라고 통고했던 터였다. 그것

은 바로 시월에 있게 될 사행에 관하여 논의하려던 것이었다. 사행은 절행과 별행 주행 역

행으로 구별되었으니 대개는 일 년에 네다섯 차례씩 청정이 있는 연경으로 떠나던 것이다.

절행은 정례 사행으로 대개는 매년 말에 연경에 들어간 동지사를 일컬었다. 별행은 임시

사행이었으니 청 황실에 경조할 일이나 나라 안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의 해결을 위하여

보내는 사절이었다. 주행과 역행은 약사로서 풍랑을 만나 오게된 청인이나 월경한 자를 호

송하는 일이라든가, 매년 시월중에 연경에 가서 청의 시헌력을 받아오던 정례행이었다.

실로

송상들에게 사행은 중요한 행사였고, 그 이윤은 막대하여 아무도 빠지려는 자가 없었다.

아랫목에는 도영위로 있는 배대인과 전임 반수등이 원로들이 흰 수염을 늘어뜨리고 앉았

으며, 그들은 각기 놋재떨이 위에 장죽을 얹고 점잖게 태우고 있었다. 좌장 박대근이 모

임의

진행을 끌어나가니 그는 좌장 반수인 셈이었고, 그들의 동료 또래인 여러 접장들 가운

데서

새 좌장이 선임된 것이었다. 그들 접장들은 거의가 사오십대의 장년들이었고 결꾼이나

차인

또는 행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행수가 되고 오랫동안 전국의 송방에 나가

있었거나 상단을 이끌고 돌아다니던 사람들이었다.

방안에는 이십여 명의 접장들이 모였는데 반수와 영위 도영위 등의 원로들은 여섯 사람이며

이들은 송도의 도주공이라 할 만한 상단의 주인들이었다. 원로들은 아랫목의 보료 위에

안석을 놓고 기대 앉았으며 그들 좌우로 접장들이 방석 위에 마주보고 앉았다. 좌장 박대

근은

윗목에 원로들을 향하여 앉았으며 그의 곁에는 임방의 소관사를 맡은 본방이 앉았고

공원

집사가 책상에 종이와 지필묵을 얹어두고 앉았다. 임방 계원의 점고 뒤에 공사가 시작되

었는데 박대근이 사행에 관하여 안을 꺼냈다.

"우선 역행에 관한 논의를 하고 나서 분담이 정해지면 연후에 동지사에 관함 논의를 해보

지요 "

송상은 일 년 중에 이와 같은 두 번의 사행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정관

외에 임시 체아직으로 수행하는 역관의 경우에도 사오년의 차례를 기다려서야 연경에

가게

되는데, 그들은 단 한번으로 만전을 벌어 평생을 요족히 산다 하였으니 장사치들로서는

이상 말할 바가 없었다. 원로 중의 하나가 좌장에게 말하였다.

"두번의 사행을 나누어 의논하는 것 보다는 한데 싸서 말을 하여야 골고루 분담이 되지

않겠나."

배대인은 대근의 안색을 살피고 나서 신중하게 말하였다.

"지금 상단이 모두 여섯인 셈인데 여기 참례치 않고 만상과 평양상고에 부화하여 이를 도

모하는 상고도 있으니 무역별장은 모두 우리 송상이 차지하여야 될 걸세. 그러려면 우선 대

금이 나와야 하고 물건이 좋아야겠지. 역행과 절행을 나누어 이야기 하여야만 기회를 놓

치는

이에게 다시 좋은 소임을 줄 수 있지 않은가."

박대근이 좌중을 둘러보고 말하였다.

" 그러면 권점하기로 하지요. 두 번의 사행을 한번에 논의하자는 안을 가, 부로 정하겠소."

집사가 임방록을 펴들고 출석한 이의 이름자를 불러나갔고, 그들은 가, 또는 부, 라는 의사

표시를 하였다. 가가 반 이상되어서 사행을 한번에 분담하기로 안이 결정되었다. 배대

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앉았더니,

"중화참이 벌써 한참 지났으니 밥이나 좀 먹고 하세."

하며 잠시 쉬기를 청하여 원로들도 이에는 모두 찬성하여 회의는 식후로 미루어졌다. 본

방이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좌중에 대고 말했다.

"국밥과 면이 있으니 알아서 청하시우."

"술은 없는가?"

"화주가 있습니다."

제각기 국밥과 면을 시켰고 임방의 사환이 달려나갔다. 배대인은 소피 보러 가는 척 하면서

박대근에게 눈치를 하였고, 대근은 장인의 뒤를 따라서 마당의 모퉁이에까지 가서 섰다.

장인은 혀를 끌, 하더니 대근에게 꾸중부터 하였다.

"도대체 자네는 임방의 좌장이란 것이 무얼하는 직임인데 접장들 허리춤 하나 잡아놓지

못하였는가.."

" 무슨 말씀이시온지........"

" 벌써 초장을 보면 다 아느니라, 진행하는 꼴을 보니 사발 안의 고기도 놔주겠구나. "

배대인은 모든 상단의 세사를 박대근에게 맡겨는 두었으되 오늘과 같은 큰 이권을 놓고는

조바심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즉 상단의 각 원로가 위에 있다고는 하여도 회의란 것이

미리 찾아다니며 손을 써서 대강의 의견을 맞추어 두는 법이고, 임방 회의의 결정은 형

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작은 상단의 접장들과 짜고서 노른자위와 죽지살을 사이좋게 갈라

먹기로 하고는 서로 상대방의 의견이 결안이 되도록 서로 동조하는 법이었다. 배대인이 두

차례의 사행을 나누어 얘기하는 것은 그 두 번의 기회에서 가장 유리한 역을 모두 차지 하

겠다는 뜻이었다. 먼저 역행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그들과 미리 약속된 상단 쪽에

다른

유리한 자리가 가도록 밀어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사행은 고스란히 그들의 권한속에

들어오는 셈이었다. 배대인은 으레 그러려니 여기고 안을 내었다가 권점에서 부결되어 버

리자

박대근이 전혀 접장들과 약속이 없었다는 눈치를 챘던 것이다.

" 염려 마십시오. 제게두 다 생각이 있습니다."

" 생각은 다 늦게 무슨 생각..... 몽둥이 깎자 도적놈이 뛴다고, 이제 다른데서 다 차지하구

나면 우리에게는 마부 결꾼 차례도 오지 않을 게다. "

" 무역별장 자리 때문에 그러시지요 ? "

" 두말 해서 무얼 하갰느냐. 적어두 우리 상단에서 네다섯 자리는 차지해야 한다. '"

박대근이 빙긋 웃었다.

" 저는 요번에는 별장자리를 모두 남에게 주어 버릴 작정입니다 "

상고가 무역하는 길에는 몇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역관들과 결탁하여 그들의 마부나 곁꾼

자리를 사서 끼여드는 길이 있고, 또는 송도 관향과 운향, 평안 병영 및 감영, 해서 병영

감영 등 지방의 무역별장으로 뽑혀서 관아의 팔도 무역을 대행하면서 상리를 꾀할 수가 있

으며 끝으로 사행이 책문에 들어갈 때와 나올 적에 그들의 짐을 운반한다는 구실로 편승

하는 여마와 연복의 방법이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별장직을 남에게 다 내준다면 우리는 뭣하러 임방 좌장을 했나.

그것도 이번 사행이 마지막 차례가 아니냐."

배대인은 박대근을 몰아 세우다가 차츰 열이 식었으니, 그것은 사위의 성미와 궁량을 평

소에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호박국을 끓이든, 곰을 잡든 미리 방비와 계획이 있

기에

저러겠지 싶어져서 스스로 어조를 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박대근은 목소리를 낮추어 장인에게 소곤거렸다.

"저는 다만 관은의 대하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자리도 원하지 않고, 그저 가

만있어도 책문에 나가는 일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

" 도대체 무슨 도깨비 땅 마련인지 모르겠군."

" 가만 두고만 보시지요."

배대인은 더 이상 말을 내지 못하고 방으로 돌아갔고, 박대근은 다른 접장들 중의 한 사

람을 불렀다.

" 여보게, 그 댁 반수께서는 어찌하시겠다는가. 내 제안이 마음에 드시다던가? "

접장은 벌써부터 희색이 가득이였다.

" 마음에 드시다뿐인가. 역시 박좌장은 경우 밝고 배포 큰 인물이라구 칭찬이 대단하시네.

여하튼 우리에게 무역별장직이 모두 떨어진다면 관은은 자네 상단 쪽에서 모두 빌려

써두 좋네. "

대근은 재삼 다짐받고 나서 임방으로 들어갔다. 점심이 들어오는데 장국밥과 온면이 들어

왔고 수육과 화주가 따로 네 쪽의 소반에 차려져서 들여졌다.

그들은 점심 들고 다시 수육을 안주로 화주를 돌려 마셨다. 원래가 송상의 살림이란 부상

대고의 경우에도 질박하고 검소한 것이 특색이라 하겠으나, 그들의 전에서의 음식치레는 푸

짐하고 길어서 손님이라도 오면 점심상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화를 잘들

벅고 화주로 얼큰해진 좌중은 다시 상을 물리고 나서 회의를 계속하였다. 박대근이 안을 내

어 무역별장 뽑을 논의로 바로 들어갔다.

"별장 직임은 우선 송도부에서 한 자리가 있고 사행이 역행과 절행의 두 번이라 두 사람이

맡을 수가 있으며 평안과 해서에서 각각 두 사람씩이니 우리가 지방 상단과 나누더라도

적어도 네 자리의 기회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까 모두 여섯 자리의 무역별장 직

임이 있소이다. 지물과 피물의 물량에 따라서 무역권의 경중이 나뉘게 되니 그것은 각 상

단에서 스스로 요량하여 자원해 주시오."

전부터 인삼 팔포가 무역의 정액으로 정하였졌듯이 송상의 무역은 거의가 인삼으로 큰 이

익을 보았건만 숙종 팔년 임술부터 인삼의 공식적인 유출을 금하고 은으로 대치하면서는

오직

피물과 지물이 주요한 무역 품목으로 되었다. 송상은 국내 상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품

목을 각 지방의 송방을 통하여 매점하고 있었다. 원래가 팔포라 하는 것은 사행의 수행원들

에게 정한 한도 안에서 사사로이 무역을 하도록 허가한 규정이 었으니, 한 사람에 인삼

팔십 근으로 따져서 열 근씩 여덟 꾸러미를 소지하게 하였던 것이다. 수년 전에 호조에서는

인삼이 비록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있으나 상고 들이 북경과 동래로 빼돌려 여염의 약용이

다 떨어졌으니 남북 두 곳의 교역처 중에서 한 곳은 마땅히 막아야 할 것이라 아뢰였던 터

였다. 이어서 좌의정이던 민정중도 아뢰기를, 동래는 왜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서로 거래

하니 물가의 귀천을 따라 매매하면 되지만 북경에서는 삼을 무역하려 오는 남방 상인이 없

을때는 인삼을 가져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오히려 낭패하고 실리할뿐더러 사사로이 유탁하고

오니 금하는 것이 옳다 하여, 그해 동지사행 때부터 인삼 거래를 금하고 팔포의 정액은 은

으로 충당하게 되었다. 은은 시세에 따라 인삼 한 근당 스물닷 냥으로 쳐서 팔십 근의 인삼

대신에 이천 냥의 은으로 팔포 정액을 삼았다. 대개 당하관이 이천 냥이요, 당상관은 삼천냥

으로 구분하였다. 물론 그것은 삼십 명 남짓의 정관에게 한한 규정이었다. 여하튼 그들의 무

역 자금은 규정된 내역만 따지더라도 모두 칠팔만 냥에 이르렀고 그것은 쌀로 치면 거의 오

만 섬에 이르는 ANFFIDDLJt다. 은 한 량은 돈 넉 냥에 해당하였고 쌀은 열 되였던 것이

다.

그러나 별포라 하여 상의원 내의원 호조 훈련 도감 어영청 금위영 총융청 수어청 등에서

각종 사치품과 약재 방물 및 군복 기치 병기의 제작을 위한 연화를 사들이는 무역이 허용되

었다.

따라서 역관들은 각 관아의 이러한 무역권을 빌려서 무역을 대행하여주고 그 이익을 나누

었다. 관아에서는 규정외에도 그들이 보유한 은을 높은 이자로 놓아 식리를 꾀하여 한양

다섯 군문과 호조, 병조, 그리고 진휼청을 비롯하, 송도 강화부와, 평안 감영과 병영, 해서

감영과 병영, 그리고 의주부에서는 관은을 빌려주었다.관문에서 자금을 빌려줄 때먼저 이자

십분의 이를 공용은으로 제하고 나중에 관은의 전량을 채워서 갚도록 하였는데, 그 기간은

이 년이었다.

따라서 상행 때마다 공인된 무역은만 쳐도 거의 일이십만냥이 되는 셈이었다. 의

부를 통한 대청 무역과 동래 왜관을 통한 대왜 무역은 조선 팔도에서 가장 이문이 큰 상권

이었고, 송상들은 전부터 이를 장악해오고 있었던 터 였다. 임방회의의 가장 중요한 논의점

은 이러한 이권을 어떻게 나누어 가지느냐였고, 각 상단의 무역로나 방법 등에 관하여는 서

로가 발설려 하지 않았으니 국내 상권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 자신들의 재력을 쏟아 넣

어야 했던 까닭이었다.

임방의 회의장으로 쓰는 여섯평의 널찍한 사랑에는 상단의 두령들이 둘러앉았다. 송상은

무명과 목화의 전국적인 가격을 좆동하였는데, 남초와 말총 또한 한양의 시전 상인들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선점을 하였다. 무역의 주요 품복인 수달피는 주로 동해안에서 생

산되었으니 송상은 엽부들에게 미리 돈을 주어 조선의 모든 피물을 장악하였다. 종이는 대

개 전국에 흩어진 절에서 생산 되었고 송상은 그중에 생산량이 많은 여러 곳은 제지사찰과

직접 거래로 질 좋은 한지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좌장 박대근의 말에 따라서 무역할 물량을 확보해놓은 상단이 자원해 나서니 모두 네 군

데나 되었고 다시 권점에 의하여 둘을 가려냈는데, 이는 대근이 미리 몇몇의 접장들과 논

의를 했던 문제였다. 무역별장들은 그들 두 상단에서 스스로 뽑아 보내기로 정하였고 다음

에는 역관들이 마부 곁꾼을 누가 얼마나 내어 끼어드느냐가 결정되었으며, 끝으로 책문저

자의 건이 나오자 대근은 그제서야 자기네 상단의 의사를 표시하였다.

" 이번 두 차례의 사행에서 좌장일을 본 저희가 당연히 무역별장을 내어야겠으나, 우리는

지난해부터 피물과 지물을 취급하지 않고 있어서 부득이 양보를 했소이다. 국내 상품으

로는

목화와 무명만을 취급하기로 결정하였지요. 다만 우리는 청국의 백사를 수입해오기만 원

합니다. 책문저자는 당연히 우리 상단에서 전담해야 할 것이고, 관은의 대하는 마땅히 우리

에게 돌려줘야 할 겁니다. 그쪽에서 반대하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대근이 원로들 쪽을 향하여 물었고, 배대인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만 못마땅하여 침

통하게 장죽을 빨고 있었다. 사실 책문의 저자란 그때까지만 하여도 사행의 파장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권 중에서는 찌꺼기인 셈이었다. 더구나 좌장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박대근이 책문저자나 바라고 있으니 까닭을 알 수 없어서 원로들은 어리둥절한 모양이

었다.

무역별장을 맡기로 정해진 상단쪽의 영위 한사람이 입을 열었다.

" 아무렴, 책문저자는 직임을 받지 못한 박좌장네가 알아서 전담해야 하고 말고, 우리는

물품도 전매되어있고 상단 자금도 충분하니 아문의 이자를 지불해야 되는 관은을 빌릴

뜻이 없네. 그러니 관부의 은을 물론이요 호조나 병조 평안 해서와 의주의 관은도 빌릴테면

빌리게나."

책문저자에 관하여는 아무도 의견을 달리하지 않았으나 관은 대부에 이르러서는 몇몇의

반수가 자기네도 무역자금이 필요하다고 나섰다. 박대근은 흔쾌히 응낙하였다. "

" 좋습니다. 해서와 평안 양도의 관은은 그 쪽에서 하시지요. 우리는 호조와 송도부의 고

나은을 대하받도록 하지요."

대개 황해도와 평안도 의주의 관은은 그 지역 상고들과 경쟁하여야 하고 이자도 더 얹어

주는 것이 상례 였으므로 대근은 그쪽은 선선히 내주기로 했던 것이다.

임방 회의가 끝나고 나서 배대인과 박대근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사랑에서 장인은 사위

속셈을 자세히 물었다. 그는 상단의 운영권을 대근에게 다 떠맡긴 터여서 어떻게 돌아가

는지 그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사행은 일 년에 네다섯 차례가 되고 한번의 교

역에서 만도 은 십만냥에 달하는 물품이 거래되었으니 돈은 거의 사십만냥에 이르는 거대한

사장이었다. 지난 이삼 년간의 대근의 상단은 겨우 명목이나 유지할 정도였는데 대청 대왜

무역에는 매번 다른 상단에 뒤지고 있던 형편이었다. 배대인은 기왕에 모든 운영권이 대근

에게 넘겨졌으므로 죽을 쑤든 떡을 치든 모른체하고 있었으나, 임방에서의 대근의 처사는

누가 보든지 그리 이롭지 않게 보였던 것이다. 배대인은 그러나 사위의 깊은 생각과 행수

시절에 보였던 수완에 대하여는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어서, 지난 몇해 동안 상단의 어음

결제나 장부 내막에 관하여 한마디 묻지도 않앗었다. 장인은 이제는 그의 모든 재산의 상속

자이며 대를 이어갈 아들이나 다름없는 사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그동안 상단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묻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 가끔 넘겨다

보았으되 지난 이 삼년 동안에 우리 상단이 큰 이익을 보았다는 소리를 못 들었고, 또한

무역의 일도 여태 미미하여 물량도 선점하지 못한 듯 하더구나. 오늘 일도 그렇ㅈ디. 아

무리 피물과 지물을 쌓아두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어찌 그렇게 맥없이 무역별장직을 다 내어

주고 말았느냐. 또한 관은을 빌려 백사를 수입해다 겨우 이자나 물리는 일은 상고로서 좀스

런 짓이다. 그간에 뱃보가 물러지고 생각이 안이해졌다고밖에는 달리 볼 수가 없는 일이지."

그러나 박대근은 빙긋이 웃으며 장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대답 대신에 일어섰다.

"아버님, 자깐만 기다리시지요."

하고는 마루로 나가 설렁줄을 당겼고 하인이 달려왔다.

"불러 계십니까."

"음, 아씨 건너오시라구 하여라. 그리고 최서방 보낸 것도 가져오라구 전하고."

하인이 달려나가고 곧이어 안채에서 대근의 아내 귀례가 큰사랑으로 건너왔다. 귀례는 남

편에게 자그만 보퉁이를 건네주고 나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 임방회의는 잘 되었는지요. 아버님두 오랜만에 나가보시니 어떠셨어요?"

배대인은 이것저것 궁금한 판인데 딸이 공연히 부아를 돋우는 것만 같아서 퉁명스럽게 받

았다.

" 내야 이제 상단 일은 떠난 사람이니 어찌 알겠느냐. 네 남편이 다 알아서 잘할 터이지."

대근은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 무역별장직을 떨구었다고 걱정하시네."

귀례는 서슴지 않고 웃으며 말하였다.

"아이, 아버님두....... 지금은 시절이 바뀌고 있답니다. 예전 같은 식으로는 큰 이문을 바라

거나 윈대한 경륜을 펼 수가 없어요."

대근은 보퉁이를 끄르고 종이에 겹겹히 싼 것을 풀어냈다. 손가락 두 개꿁기의 인삼이 열

뿌리쯤 되었다. 배대인은 눈이 휘둥그래하여 중얼거렸다.

" 이게 뭐냐?"

" 인삼이에요, 아버지."

귀례가 그 중 하나를 집어서 아버지 손에 쥐여주었다.

" 그간에 인삼두 잊어버리셨나요?"

" 세닢붙이는 못 되어도 반들개는 훨씬 넘어 보이는 구나. 강계 향산삼이냐?"

배대인은 잔뿌리를 쓰다듬어 보면서 심드렁하게 물었다. 인삼은 무역 품목으로는 금지 되

었을 뿐 아니라 심메마니의 채취 정도로는 무역의 막대한 교역량을 댈 수가 없게 된 것이

었다. 그만때에는 간혹 몇 근이 있다 할지라도 청국 상인들과 교제용으로밖에는 판매를

위한 물량은 감당할 수가 없게끔 되어 있었다. 박대근이 말하였다.

" 우리 인삼입니다."

"뭐. 우리 것이라니, 아니 그러면 윤덕이가 하던 삼포에서 소출을 시작하였단 말이냐?"

"이것이 그 첫 번째 소출이올시다. 우리 송악산 삼포에서는 올해부터 매년 오백 근 이상 낼

수가 있으며경지를 더 잡을 수만 있다면 수천 근을 소출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어언

육년 생이올시다. 그동안 저는 최서방하고 이 일에 몰두하느라고 다른 품목은 거들떠볼 겨

를이 없었습니다. 윤행수가 대충 상단 일을 꾸려갔으니 포물과 목화만으로도 유지는 되었

지요.

"

" 그래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확히 얼마나 낼 수 있겠느냐?"

" 예, 최상품으로 고른다 하더라도 육백 근이 좀 넘을 것입니다."

"요즈음 부르는 것이 값이라던데. 금지되던 해의 값이 근당 은 스물 다섯 냥이었으니 요즘

시세로 넉넉 잡고 오십 냥은 받아야 겠구나. 허어, 삼만 냥이다."

배대인은 인삼을 집어 이것저것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하며 신기해 하였다. 대근이

말하였다.

"아직도 해결할 문제는 많이 남았습니다. 송악산 상수리 골은 대처에서 가까우니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어렵지요. 채전과 약초밭으로 그런대로 눈가림을 하고 있습니다만 일꾼을

마음놓고 부릴 수가 없는 형편이지요. 소문이 나서 나라에서 알게 되면 필시 벼슬 아치

들이 독점하려거나 막중한 조세를 부과시킬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경지도 비좁고 소출에도

한정이 있지요. 아마도 한 삼사 년 내고 나면 곧 바닥이 나게 될 겝니다. 그래서 올해 안에

관서 쪽의 심산에다 새로운 삼포를 갈아둘 작정입니다. "

배대인은 감탄 하였다.

" 내가 장부에서 손을 뗀 지 어언 반 십년이 넘어서 그간에 폐부가 대통같이 좁아지고 말

았고나. 어찌 그리 조바심이었던고. 그래 이만 경륜을 편다면 십 년 을ㅇ 묵묵히 기다린다

하여도 누가 따를 수 없는 대상부고가 해야 될 일이니라. 그래서 자네가 별장직 따위를 사

양한 것을 모르고 공연히 안달이었다."

"지금 나라법이 인삼의 거래를 금단하여 금령이 지엄합니다. 범금자는 사형입니다. 그러나

범 새끼를 잡으러 굴혈에 들어가고 사공질 하려면 헤엄을 배우듯이 , 어려운 일을 처음

하려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안되는 일이지요."

"옳고 말고, 금령이란 피치 못하여 내리는 것이니 극약과도 같은 것이라 오래 쓸 수 없는

법이다. 곧 풀리지 않고는 대세를 더 이상 막을 수가 없게 된다."

배대인이 말하였고 박대근이 뒤를 이었다.

" 인삼의 무역을 금단시킨 것은 거래량이 많아 지면서 산삼의 채취로는 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약용의 삼이 품귀해진 까닭이지요. 그러나 이제 무처럼 밭에 심어 소

출을 보게 되었으니 인삼은 다시 무역품이 될 것이고 팔포의 내용도 변할 것입니다. 그

러나

우리 상단은 이 금령의 때를 잘 타고 가야 할 겝니다. 금령이 풀리기 전 까지 우리의 인

삼재배 방법이 널리 알려져서는 안되고 또 관에도 기찰되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잠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제 동무 중에 관서에 나가 있던 사람이 있어서

다리를 놓아 이미 그 기반을 다져두고 있고 내막도 소상히 알구 있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무역별장으로 뽑혀 다른 상단이나 관아의 눈치를 보면서 연경까지의 먼길에 인원과 재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지요. 우리는 청상과 가까운 곳에서 닿기만 하면 되는 것입

니다.

책문저자가 우리에게는 가장 유리합니다. 인삼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

"음 아주 앞뒤가 이치가 번듯한 생각이로다. 그러면 관은은 무엇하려 몰이를 하려는 게냐?"

박대근은 웃으면서 아내를 돌아보았다. 귀례가 말하였다.

"그건 제 생각이었어요. 성동격서와 견줄 만하지요. 우리가 아무런 이득도 없이 책문저자나

오락가락 한다면 모두 의심을 하겠지요. 그리구 가용으로 쓸 일두 많으니 제 몫으로 식리

라두 하려구요."

박대근이 덧붙였다.

"우리가 잠상을 택한 이상 사행에 끼어 어정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적당한

양의 삼을 조금씩 내어 꾸준히 월경시키는 것이 유리합니다. 좋은 가격을 유지할 수가 있

겠지요. 그러나 사행을 외면해 버린다면 의심을 받겠지요. 관은의 이자는 이할입니다. 그 대

신에 상환 기한은 이 년이지요 작금에 이르러는 대하은이 십오만 냥에 달한다고 합니다.

번의 사행에 대여되는 돈이 이러하니 이것은 또한 큰 이권인 셈입니다. 이할에 오푼을 가

산하여 이자를 내기로 하면 호조와 송도부로 부터 오만 냥의 관은은 충분히 대하받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나중에 은 대신 잡물로 대납할 수도 있고, 몇 번씩 나누어 상환 할 수도 있

으니 이것을 잘 굴리면 오히려 실속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지요.

하나는 최서방을 강계와 의주의 송방 행수로 보내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윤행수를 동래의

송방으로 보낼 계획입니다. 대하받은 관은으로 청상에게서 백사를 수입하여 윤행수로 하

여금 왜인들에게 은을 받고 팔게 합니다. 요즈음 시세를 알아보았더니 왜인이 사가는 백사

의 값이 세 배나 된다고 합니다. 다리 놓아주는 대가로 세 배라면 이할 오푼의 이자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 거참 그런 줄도 몰랐구나. 상단의 일은 너희가 다 알아서 하여라."

배대인이 기쁜 얼굴로 딸에게 말하였다.

" 오랜만에 좌장과 한잔 할 것이니 술을 내어 오너라."

" 평양의 계당주가 있사온데 몸에 좋으실 거예요."

귀례가 이르니 배대인은 손을 저었다.

"아니야, 그거야 아이들 주전부리지 어디 술이라고 하겠느냐. 청국의 백주가 있지 않니. 이

사람두 그걸 좋아한다.."

"백주는 독해서 아버님께 맞지 않아요."

"허, 가져오래두. 오늘 같은 날 사위와 앉아서 모처럼 한잔 하겠다는데 고작 어린 한량들의

기방 술이나 홀짝거리겠느냐. 어서 맥주로 가져오너라."

귀례가 몸소 술상을 보아 들여오는데 백주 한 병과 쇠고기 대추 편포와 생란을 올렸다.

편포는 쇠고기를 다져서 갖은 양념하여 대추 알만하게 빚어서는 실백을 박고 참기름을 발

라서 말린 육포이고, 생란은 생강을 다져 끓인 뒤 꿀에 졸여서 잣가루를 묻힌 과자였다. 부

상의 주안상으로는 간단하고 깔끔하였다. 장인과 사위는 서로 잔을 주고 받았고 귀례는 옆

에서 즐겁게 시중을 들었다. 배대인은 술이 거나해진 뒤에 보료에 기대 잠이 들었고 부부는

노인을 뉘고 베개를 베어 드리고는 큰 사랑에서 나왔다. 대근이 섬돌에서 내려서며 말하였

다." 내 지금 상수리골에 다녀와야 겠소."

"피곤하실 텐데 그냥 쉬시지요. 아니면 사람을 보내어 최서방을 들어오라든지."

" 아니야, 거기 들를 지가 벌써 한달쯤 되는 모양인데 가봐야지. 내가 이를 말도 있고."

"그럼 잠깐 기다리셔요 두 분 고모님 들게 뮐 좀 보내드려야지."

그들은 언실 노모와 윤덕의 노모를 딸이 부르는 대로 고모라고 부르고 있었으니 대근에게는

두 노인네가 누님들이 되는 셈이었다. 귀례가 안채의 찬방에서 유지에 싼 물건을 노끈에

매어 들고 나왔다.

"노루고기에요. 노인들에게는 노루고기가 좋지요. 연하고 부드럽거든요. 소금에 절인 것인데

국에 써두 좋구요. 그냥 포를 떠두 괜찮을 거예요. 언실이는 바쁠 테지만 탄실이는 좀 놀

러오라구 그러셔요. 참 탄실이두 내년엔 시집 가야 겠네. 잊구 있었어요."

" 벌써 그렇게 되었나?"

" 열 일곱이에요. 내년이면 늦었지요."

상수리골은 동북으로 송악산 지맥이 뻗쳐 올라간 나직한 능선 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대략 삼십여호의 초가들이 송림 가운데 숨어 있었다. 숲이 짙고 앞에는 너른 청교벌이 보

이니 동네가 늘 청량한 느낌을 주었다. 서리 내릴 무렵이라 저녁 공기는 벌써부터 써늘

한데,

멀리 소나무 위로 오르는 마을의 파란 연기가 공연히 발길을 재촉하게 하였다. 박대근이

마을의 오른 쪽에 조금 떨어져있는 최윤덕이네 집으로 가는데 크도 작도 않은 조촐한 기

역자 기와집이었다. 밖으로는 기와 올린 나직한 돌담이요 텃밭이 널찍하게 달려 있었다. 돌

담 위로 감이 빨갛게 달려서 저녁 빛에 반들거리고 있었다. 대근아 이리 오너라, 부르니 원

래 그의 집에서 데리고 있던 하녀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기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좌장님 오셨어요."

하녀가 안에다 대고 부르니 제일 먼저 탄실이가 마당으로 달려나왔고, 두 노파는 마루에서

뭔가 채소라도 다듬었는지 손을 치마에 싸쥐며 쫓아 나왔다.

"아이구, 어찌 이리 행보가 더디신가."

"그렇잖아도 궁금하여 내일은 탄실이를 보내려구 하였네."

노인네들은 제각각 말하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처지의 홀사둔이고 딸과 아들로 인연이

되어 한 식구가 되었으므로 마치 자매처럼 보였다.

"옛다, 이거 받아라."

대근이 탄실에게 유지에 싼 것을 내밀어 주었다.

"삼춘, 이거 뭐유?"

탄실이 어머니가 꾸짖었다.

"다 큰 계집애가 철없이 삼춘이 뭐야. 숙부님 해야지 ."

"그럼, 숙부님."

대근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 괜찮다, 괜찮어. 집사람이 저 애 시집보낼 걱정을 합디다."

" 그래 어디 자리라두 났는가?"

탄실이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달아났고, 그 어머니는 반색을 하였다.

"내년에는 여의어야지요. 신랑감은 우리 상단 사람들 가운데두 좋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염려 마셔요. 윤덕이는 또 밭에 나가 있나요 ?"

대근이 윤덕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부부가 하루 종일 농원에 가서 산다네. 거기에 또 너른 헛간까지 지어 두었지."

대근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니 두 노파가 서로 다투어 만류하였다

"좀 있으면 돌아올 텐데 어딜 가려나."

"저녁을 드셔야지."

"같이 와서 먹지요 다녀오겠습니다."

박대근은 집을 나서서 송림을 지나 야산을 넘어갔다. 오솔길 아래로는 송악산의 북편 골

짜기가 내려다 보이는데 민가는 없었으며, 벌써 그 쪽에는 해가 저서 짙은 그늘 속에 골짜

기가 우중충하니 어두웠다. 골짜기로 내려가니 음습한 밭 위에 버팀목과 갈대밭이 죽 펼

쳐진 삼포가 보였고 그것은 다른 약초밭의 가녘에 줄지어 있었다. 기다란 갈대밭 덮힌 밭들

은 뱀처럼 구불거리며 계곡의 나직한 둔덕을 따라서 계속되었다. 후미진 골이라 행인도 없

을뿐더러 간혹 초군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삼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대근

은 그러나 소출이 이미 시작 되었으니 최소의 수직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작부터 윤덕과 그의 아내 언실이가 삼포의 적지로 찍어둔 것을 대근네 상단이 사들였던

터였다. 아무도 그런 응달의 비좁은 골짜기를 무엇 때문에 사려는지 짐작을 못했을 것

이다.

아래로 내려가니 단칸방과 헛간이 딸린 초가집이 나왔다. 마당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며

서성이던 윤덕이 부부가 대근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마주 달려왔다.

"어이구, 숙부께서 여기까지 왠일이우."

대근은 부부의 노중 인사를 받고 나서 말하였다.

"하도 발길이 뜸해져서 오늘은 일부러 맘부터 먹고 예까지 왔다. 그래 별일 없었지?"

한데 두 부부가 어찌 된 건지 희희낙낙하는 얼굴이 었다.

"뭐, 좋은일이라두 있나?"

"숙부, 기뻐하시우 좋은 생각을 해냈지요. 젖은 삼은 먼 여로에 보관도 힘들고 독성도 있

습니다 약효는 그대로 지닌 채로 오랫동안 두어도 상하거나 훼손되지 않게 할 수가 없을까

여러 가지로 궁리해봤지요."

"글쎄, 북어나 곶감처럼 말리면 어떠한가."

"이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해냈지요."

최윤덕은 자랑스럽게 언실을 돌아보았고 언실은 건강하게 그을은 얼굴을 쳐들고 밝게 웃

었다.

"말리는 것두 필요합니다만, 그전에 쪄야 합니다. 감저를 쪄서 말리던 것에서 생각이 났습

니다. 쪄서 말리면 감저의 단맛도 변하지 않았고 곰팡이가 슬거나 썩지도 않았거든요. 김에

쏘이기만 할 뿐 우려내지 않으니 약효는 간직되는 셈이어요."

"거참, 용한 생각이다."

언실은 그에서 그치질 않고 바구니를 들어 보였다. 안에는 꼬들꼬들하게 마른 인삼 대 여섯

뿌리가 있었다.

대근은 이것이 모두 돈이려니 생각하면서도 집어서 깨물어 보았다 좀 질기고 딱딱한 것이

마른 밤을 씹는 것과 같았고 달차근 하면서도 쌉살한 인삼의 맛이 그대로 였다.

"그래, 이런 정도라면 갑에 넣어두고 몇년간이나 보관해두 되겠다. 그리고 윤덕아, 내일

부터는 아이들 몇 보내어 일손도 돕고 수직도 시켜야 겠다. 휑뎅그렁하니 빈 골짜기에 저

귀한 것들을 버려둘 수가 있겠느냐."

"너무 많아두 오히려 번거롭기만 합니다 한 두 사람이면 되겠지요."

"하여튼 어서 집에 가서 더 얘기 하기로 하지 . 너희들과 의논할 일도 있고 하니깐..."

그들이 등성이를 넘어 집에 이르니 이내 늦가을 해가 기울어 캄캄하였다.

안방은 두 할머니가 같이 썼고 건넌방이 윤덕이 부부의 방이었다. 탄실이는 하녀와 함께 저

녁을 먹고 나서 박대근은 윤덕이 언실이 부부에게 임방회의를 열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해

주고 나서 잠상에 관하여 윤덕에게 말해주었다.

" 그래서 이번에는 너를 데리고 의주에까지 나갈 생각이다. 전에두 말했듯이 이곳 삼포는

그대로 두고 따로이 드넓은 삼포를 서북의 산간에다 마련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산

삼이

많이 나오던 강계가 좋을 듯 싶은데, 그쪽이라면 압록강과 의주가 지척이라 여러가지로

유리할 듯하다."

" 예, 아무래도 여기서는 앞으로 삼년 이상은 끌 수가 없을 게요. 또한 삼의 재배 방법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게 알려지게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를 비법으로 고집하느니보다는 적

당한 가격을 받고 재배법과 찌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하우. 나중에는 관에

서두 알게 될테니까요."

"송상에게는 반드시 알려주어야 한다. 그건 우리 송도 사람의 의기이다. 하지만 나중의 일

이고. 앞으로도 두어 해는 여유가 있지. 어떠냐 강계에 삼포를 자리잡아놓고 나서 우리

임방 사람들에게 고루 알려주는 것이 좋겠구나. "

"그럽시다. 그맘때쯤 하여 우리를 쫓아오려면 또 삼사 년은 걸릴 테지요."

"그리고 너를 상단의 행수로 정할까 한다."

부부는 깜짝 놀랬다. 행수라면 바로 상단의 주인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전국의 송방을 돌아 다니기도 하고 직접 장사에 나서야 하니 정신없이 분주하고 고

단한 자리이지만 상단의 이윤은 바로 자기의 것이나 다름 없었다. 상단은 배대인이 일으켜

세웠으나 중흥자인 박대근이 행수를 거쳐서 실질적인 상단의 두령이 되었듯이 상단의 재

산은

그의 권한에 속하게 되는 것이었다. 윤덕은 어안이 벙벙한데 침착한 언실이가 물었다.

"숙부, 저희를 이렇게 까지 하시니 참으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곤경에 빠져 있던 우리

식구들 이ㄹ게 만나게 해 주시고 정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환생하신 듯만 여겨집니다.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나 저희 부부는 선친의 남은 뜻을 이어서 인삼의 재배법을 ㄲ고 이루어

내자는 일념이었어요. 이를 취하는 것이 상고의 천성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생각이 미

치지 못하였습니다. 혹시나 저희 뜻이 다른데 있지 않나 여기시는 게 아닌지요 ?"

언실의 얘기는 대근을 잠깐 부끄럽게 하였으나, 그는 송도 임방의 좌장으로서 마땅히 장

사치답게 경우를 말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대근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나는 너희들이 아는 바와 같이 평생을 조선 팔도의 저자에서 보낸 사람이다. 전장에서

장수는 병법을 알아야 하고 시행하는 군율에는 사사로움이 없는 법이다. 선비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론을 위하여 사생을 걸고, 마찬가지로 자기 소임을 목숨과 같이 하는 것이 대장

부의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나는 이를 구하는 장사치지만 지금껏 재물에 급급하여 사

람의

도리를 저버리는 짓은 저지른 적이 없다. 어찌 나의 마음과 소신을 다 너희들에게 꺼

내어

보여줄 수가 있으랴마는, 우리 송도 사람이 어찌해서 사대부의 손가락 질이나 받는 상인

배가 되었겠느냐. 조선이 개국될 제 전조의 유민이었던 송도인은 스스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고 나라에서도 우리를 등용하지 않았다. 높은 학문과 식견이 있어도 나가지 않고 진작

부터 상고의 직을 택하여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상술을 지닌 장사치가 되는 길이 송도인

바라는 것이 되었다. 우리 송상은 근검 노력하고 백성에게 도둑질하지 않고 먼 산지에서

저자까지 온갖 물산을 가져다가 그 공으로 정직한 상리를 취하려는 것이다. 경강 상인들

처럼

미곡을 부당하게 매점하여 가격을 조종한다든가 백성들의 산물을 폭리로 훔치고 빼앗지

않는다. 우리가 매점하는 물건은 언제나 가난한 백성들의 살림에 직접 해를 주거나 폐단을

지어내는 물건이 아니지. 담배가 그렇고 말총이 그렇고 피물과 종이가 그러하다. 내가 너

희를

내 혈육으로 끌어들인 것은 나의 장사치로서의 소망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

이지.

나는 어느 송도 사람들보다도 인삼의 재배가 실현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이다. 그래

야만 송상은 요 손바락 만한 조선의 상권을 넘어 바깥으로 넘쳐 나갈 수 있거든. 너희들

에게

이런 소중한 일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혈육이 되지는 않았을 게다. 야박하다구 여겨두

할 수 없지만 내 빙장 어른도 육촌간에 수양아들이 되어 쫓겨났다가 장사 수완을 보이고는

상단을 물려받은 분이시다. 나두 그건 마찬가지다. 송상에게는 재산이 남겨지는 것이 중

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살아서 밥 먹고 물 마시고 식식하게 자라게 되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이지. 그런데 이제 너희들은 부부는 이런 큰 일을 해내었다. 언제까지 이 산

야에 숨어서 자라나는 묘목이나 들여다 보고 있겠느냐. 너희가 내게 정색을 하고서 따로이

재배삼을 팔아 부고가 되렵니다 하여도 당연할 노릇이지. 그래서 나는 빙장 어른께 상의를

드렸다. 윤덕이는 내가 환히 알고 있는 저자의 실정을 배워서 대상부고가 되는 길을 밟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우리 상단을 네게 떠맡길작ㅈ벙이다. 내 말을 숙부의 말로 듣느니보

다는 송상의 진정한 말로 듣는 것이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될 게야."

언실이는 눈물이 글썽해졌고 윤덕이는 큰 덩치를 꾸무럭 거리며 일어나더니 넙죽 절하였다.

" 잘 가르쳐주십시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언실이가 다시 물었다.

"윤행수님은 어떻게 되시나요? "

"그 사람은 동래로 내려가게 될 게다. 북에는 네가 있고 송도에는 내가, 그리고 남에는 윤

행수가 있어서 탄탄하게 결연하면 못 사고 못 팔 물건이 없게 될 게다."

윤덕이가 다시 물었다.

"언제쯤 떠납니까?"

"사행이 출발하기 보름쯤 전에 먼저 의주에 땋아야 한다."

"그러면 서둘러서 물ㄹ건을 준비해야 되겠군요."

"괜찮다, 두 번 이나 기회가 있고 또 구차하게 사행에 따라붙을 필요두 없다. 서두르지

말고. 지난번 것과 합하여 얼마나 낼 수 있느냐?"

"이제부터 쪄서 말리자면 기일이 좀 촉박합니다."

"찐 삼은 천천히 내기로 하고 이번에는 그냥 삼백 근만 내기로 하지."

"그냥 낸다면 내일부터 라도 당장 낼수가 있습니다. "

대근이 일어서니 언실이가 밤이 깊었다면서 아랫방을 비워드릴 테니 자고 가라고 말렸다.

그러나 대근은 내일 사람을 보낼 일도 있고 하여 바쁠 터이니 윤덕에게 아침 일찍 들어오

라고 이르고는 그 집에서 나왔다.

박대근이 돌아간 뒤에도 윤덕이 부부는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언실이가 남편을 바라보고

있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은혜를 잊는 사람이 되면 안돼요."

윤덕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은혜를 잊다니. 당신에게두 그렇지만 내게는 친아버지나

언니 같은 분이야. 나야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하늘 아래 벌거벗은 혼잣몸이었지. 숙부가 아

니었다면 당신은 움막에서 굶어죽었거나 나는 지금도 길가에서 나뭇짐 놓고 옥신 각신하고

있겠지. 은혜를 잊다니 그런 말 따위를 함부로 하다니.."

윤덕이가 스스로 말하는 사이에 격양이 되어 차츰 화를 냈고 언실은 부드럽게 말하였다.

"당신이 만심을 가질까 경계하여 이러는 거예요. 아까 숙부님 말씀 잘 들었지요. 사람은

무엇을 하든 업이 천한 것이 아니라 먼저 바르게 마음이 서야 하는 거예요 선비도 그릇된

마음을 가지면 부유라고 하여 천하게 욕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이 훌륭한 상고가 되었으면

했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해나가야지. 나두 송도 사람이오. 인삼의 재배법에서 그 상권까지

모든 송도인이 나누어서 누리려 하오."

"당신이 의주로 가시게 되면 거의 집 떠나 있는 날이 많을텐데."

언실이가 벌써 혼자 남을 일이 걱정되어 얼굴이 흐려졌다. 윤덕이는 볼멘 소리로 말하였다.

" 이 사람 벌써 그런 것부터 생각하네, 이봐, 송도 사람들 가운데 절반 너머가 정월에 집

떠나서 세밑에 돌아오는 이들이오 그래서 생일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구 그러지 않소."

구월 말에 박대근은 최윤덕을 데리고 송도를 출발하였다. 다른 송상들은 시월 중순께가

역행의 출발 날짜였으므로 아직 꾸무럭 대고 있는 형편이 었다. 다만, 행수며 접장들만이

무역 별장의 직임에 따라 한양에 가서 준비중이었다. 또한 임방의 상단에서 또한 임방의 상

단에서는 제각기 서로 다른 연줄로 역관들을 잡고 있어서 그들과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마

필과 물품의 내밀한 계획을 세우느라고 분주하였다. 박대근의 상단에서는 그와 같은 일에

그애됨이 없었으니, 실상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실속없는 상단으로 보일 만 하였다.

대근은 윤행수를 내려보내어 호조의 차대은 삼만 냥과 송도부의 관은 이만 냥 도합 오만

냥을 이할에 오푼의 이자를 더 얹어서 빌렸을 뿐이었다. 짐은 생삼 삼백 근이 전부 여서 말

짐도 필요없이 길 양식짐 가운데 두엇이 지고 끼였을 뿐이 었다. 호조은은 의주서 바꾸어

줄 어음이었고, 송도부의 이만 냥이 집이었다. 말은 상단서 가장 튼튼한 놈으로 이십여 마

리를 부리고 나왔으나 차인은 고작 열둘이라 사람 보다 말이 더 많은 셈이었다. 대금을 지

니고 가게 되니 호종이 따를 법도 학던만 송도서 평산까지만 나아가면 길산네 식구들이 마

중을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산곡마다 행인의 노자나 터는 좀 도둑에서부터 십여명씩 떼를 이룬 명화적들이 득시글 거

리는 형편이라 송상의 상단에는 종종 부장한 곁꾼들이나 호종 무사를 고용하기도 하였고,

특히 사행에 끼기 위하여 단독 출행을 하는 상단에서는 각 군현마다 급주를 앞서 보내어 군

졸들의 호송을 받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대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까이는 경

기도 외곽에서부터 비롯하여 강원도와 평안 함경의 변지에 이르기까지 장길산의 활빈도를

모르는 무뢰배나 녹림당은 하나도 없을 터이었다. 구월산 토포의 뒤에도 장길산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무렵에는 길산네 식구들은 상단 따위나 시골 부잣집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미 예사 화적당이 아니었다. 소문이 낭자한 팀관의 동현을 밤 사이에 짓쳐들어가

벌을 주고는 빈민들을 진휼한 뒤에 벌건 대낮에 유유히 산협 속으로 사라지곤 하였다. 그

들은 단병접전도 별로 치르지 않았고 대부분이 총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길산이 최흥복과

더불어 방포술에 능하게 된 것도 기사에 들어와서였다.

박대근과 윤덕은 행렬의 뒤에서 안장 올린 말을 끌고 갔으며, 전도 차인이 노정을 책임지

고일행을 안내하였다. 그들의 뒤로는 배놓인과 귀례와 어린 딸과 언실이 탄실이 자매오하

두 노파와 집안의 하인 노복들이 배응하러 따라왔다. 입동이 며칠 위이라 새벽 공기는 제

법 싸늘하였고 하늘은 묵지근 하게 흐려 있었다. 빈 들판마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 앉았으며

입김이 닷밭이나 되게 입가에 아른거렸다. 북행로는 세 갈래로 나누어 지는데 오정문을 나

서면 서교가 되는데, 영빈원과 보통원 등의 오리정이 있어 송영의 정을 나누도록 하였다. 오

리정에서 길이 갈리는데 아랫길이 벽란 나루를 건너 연안으로 가는 길이요, 가운데 길이 돈

포 건너서 배천들어가는 길이며, 맨 윗길이 금천 거쳐서 황해도 평산에 닿는 행로가 되었다.

그들이 정자에 이르자 배노인은 행렬을 멈추게 하고 정자 위로 올라 갔다. 하인은 노구와

숯이며 찬합을 짊어지고 왔으며 그는 곧 불을 피워 주전자에 화주를 따끈히 데우고 안주를

구워 내는 것이었다. 마루위에는 따뜻한 초피자리가 펼쳐지고 가운데 깔끔한 해주반이 놓

여졌다.

"어서들 이리 올라오너라. 이런 날씨에 아주 그럴 듯한 어한주가 되겠고나."

배노인이 올라가 앉았고, 대근과 윤덕이 비스듬히 엇갈려서 앉았다. 언실이와 귀례가 하인

밀어내고 술시중 안주 마련을 하는데 노부인들은 하녀들에게 준비시킨 탁주와 건포를 차

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차인들은 모두 두툼한 솜 바지 저고리에, 솜 누비 배자

입고 감발 두툼히 행전 단단히 치고서 머리에는 패랭이 건 듯 하니 쓰고, 띄에 곰방대 찌른

자, 물미장을 짚은 자, 호리병 차고 있는 자, 가지각색으로 서고 앉고 어슬렁 대며 탁배기

를 마셨다. 박대근은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평시의 차림에 창포검 한 자루만 지녔을 뿐이

었고, 윤덕이는 다른 차인들과 같은 행색이었다. 따뜻이 데운 술과 금방 숯불에 구워 올린

산적이 올라왔다. 먼저 배노인이 잔을 내밀며 박대근에게 권하였다. 대근이 사양하니 배노인

은 그냥 재차 잔을 건네고 말하였다.

"배웅에는 떠나는 이가 주가 되는 게 아니냐. 어서 받아라."

대근이 잔을 받으니 배노인은 잔이 넘치도록 부어 주었다.

"이번에 가면 해가 바뀌어서야 오겠고나. 원로에 몸 건강하고 상리를 구하는 데 무리하지도

말며 인의를 저바려서는 송상이 아니니라. 급히 먹는 밥이 체하고 얼른 달군 쇠가 쉬이

식는 법이어든."

"예, 명심하겠습니다."

대근이 조아리고 술을 마시는데 마루 아래 섰던 귀례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배노인이 딸을

돌아보았다.

"넌, 왜 웃니?"

"수십 년 동안 아버님의 송사가 늘 변함없음도 그러하고요, 저희 가장이 언제나 명심한다

는것두 웃음이 나요."

사위와 장인도 껄껄 웃었다. 윤덕이는 멀뚱하니 앉았는데 배노인이 말하였다.

" 내가 이제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런 송사를 너희들에게 외우게 될지 모르겠다. 윤덕이는

원행이 처음이라 그러겠지만 송상이 이런 물록과 인원을 동원하여 떠날 제는 반드시 상

리가

있게 마련이니라. 이득을 보아 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고, 남은 것은 상고 자신의 건

강과 후일을 내다보는 신용을 저바리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이는 곧 떠나 보내면서 돌

아온 다음의 일을 다져두는 뜻이라 어찌 갚지 않겠느냐. 한번의 장삿길로 큰 재물을 모아

오기를 기대한다면그것은 상고를 바라는게 아니라 도적질을 바라는 것이야. 그러므로 송방

의 장책은 대를 물려서 내려오는 것이니라. 윤덕이도 이제는 행수가 되었으니 좌장에게 자

세히 배우도록 하여라. 장책 적는 법과 읽는 법을 먼저 익혀야 자기 상도의 장단처를 반성

할 수 가있고, 신용이 귀함을 알 수가 있고 한 푼의 돈이 귀한 것과 땀흘려 버는 보람을 알

게 되어 상단의 이를 자기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장책이 정직하고 삿됨이 없어야 부상

대고가 되느니라."

"아버님, 술 다 식겠어요."

귀례가 채근하여 주니 노인은 그제서야 말을 끊고 얼른 윤덕이에게도 잔을 채워주었다.

"오냐 오냐, 너희 부부지정을 다 알구 있으니 염려 마라. 아직 서리도 녹지 않았거늘 차례가

안 올까 걱정이구나."

대근과 윤덕이가 다시 연거푸 두 잔을 올리니 배대인은 받고 나서 딸 귀례와 윤덕의 처

언실을 불렀다.

"너희도 송별주를 올리도록 해라."

귀례가 먼저 대근에게 술을 올렸다.

"약주 많이 하지 마시고 행로는 너무 급히 마십시오. 짐 속에 털배자와 남바위를 넣었으니

변방의 추위에 조심 하셔요. 털신도 일습을 준비했어요."

대근은 그저 허허 웃으며 두번째 잔소리를 받아넘겼다. 이들 부부의 인사치레는 그대로

십여 년 이상 해온 남지기라 당부하는 귀례는 조목조목이 분명하였으며 받는 대근의 태

도는 대범ㅎ라여 싱거운 바가 있었다. 윤덕이네 차례가 되어 언실이가 술을 쳐주는데 주전

자 꼭지가 잔가에 부딪혀 달달달 떨리고 언실은 눈물이 그렁그렁 곧 앵두로 떨어질 듯하니

고개를 돌리고는 간신히 한다는 소리가,

"남과 시비하지 마셔요."

이러했다. 배노인은 빙긋 웃었고 대근은 아내와 눈길을 건네었다. 윤덕이가 잔을 받더니

마치 사약이라도 받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비장하게 꿀꺽 들이켰다가 사례 들렸는지

재채기를 심하게 떠뜨렸다. 다른 사람들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배노인은 말

하였다.

" 윤덕이는 소임이 막중하니 이제 가면 해동이 지나서야 오게 되겠구먼. 따로이 좌장이

단속을 할 것이로되 의주는 타관 객지이고 만상의 텃세가 자심한 곳이다. 우리 송방 임원

들과

손발을 맞추어 빈틈 없이 하여라."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그래, 이제는 어서 떠나거라. 오리정에서 백 리를 낭패 본다는 말이 있느니라."

대근과 윤덕이 일어나서 배노인께 큰 절을 올렸고 그는 절을 받고 나서 누 아래로 내려가며

노부인들께 말하였다.

"어서 인사들 받으시오."

"족대부 어른께서 받으셨으니 저희는 사양하겠습니다."

누 아래서 그냥 마다하는 것을 귀례가 억지로 올라오게 하여 윤덕의 어머니와 장모가 앉

아서 아들과 수양동생의 작별 인사를 받았다. 박대근과 윤덕이는 이리 저리 송별주로 서너

잔을 거듭 받고 나서 비로소 아랫배가 따뜻하고 목덜미가 더워졌다. 곧 금천 평산 길로 나

가게 되는가 보았다. 오리정에서부터 다시 오 리를 더 나아가면 멀리 들판을 가로막고섰는

긴 능선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송악산 줄기와 만수산 줄기가 맞닿는 곳이다. 오래 떠나

있을 사람에게는 만수산 언덕까지 눈 배웅을 하게 되나니 길이 툭 터져 있는 까닭이다. 그

러나 배대인은 적당히 끊어 보내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라, 상단의 행렬이 잠시 송림으로 휘

돌아들자마자 소매를 털고 일어나서 가솔들에게 돌아가자고 재촉하였다. 송림은 곧 끝나서

전도를 서는 차인이 앞으로 삐져나온 모양이 보였지만 게서 놓쳤다가는 다시 오래 서 있게

될 형편이던 것이다. 귀례도 그때에는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쓸어냈고 언실이는 벌써 눈이

벌겋게 붉혀 있었다.

행렬은 고개를 넘었는데 윤덕이가 아내를 몇번이나 돌아보다가 대근의 헛기침 소리에 켕

겨서 참고 있던 중에, 마지막 보겠다고 고개를 돌리니 이미 오리정 앞은 텅 비어 있었다. 대

근은 모른 척하고 앞서서 말을 몰아갔고 잠시 후에는 윤덕이도 곧 따라 붙었다. 그들이

다시 평지로 내려 마전원에 이르렀을 때 길가 앙상한 나무에 부담올린 말 세필이 매여 있는

게 보였다. 패랭이 꼭지의 사내가 기웃이 고개를 빼고 행길을 내다보더니 원사로 뛰어 가는

것이었다. 나지막한 초가집의 방문이 열리고 네다섯 사람이 뛰쳐나왔다. 박대근은 혀를 끌

차면서 중얼거렸다. "저 녀석 꼬리 대기 할려구 기다렸구나 ."

맨 뒤에서 아침 해장술에 얼굴이 불쾌해진 사또 학선이가 갓 쓰고 도포 입고 퇴관한 당상

관이라도 되는 듯이 천천히 걸어왔다. 차인들은 모두 그를 알아보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행

렬을 잠시 멈추고 기다려주었다. 박대근은 짜증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서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자네 이른 새벽부터 여기서 뭘 하는가? 화초방을 차려주었군 그래."

도포 자락 안에서 송상의 체장을 꺼내어 보이면서 학선이는 넉살을 부렸다.

"나두 임방원이올시다. 송상은 노름을 하면 상단서 내쫓긴다는 걸 어찌 모르겠수. 성님이

오늘 출행하신다는 말을 넌짓 듣고서 이렇게 원사에 묵어버렸지요."

"어딜 가는데?"

"어디라뇨, 의주엘 가야죠."

박대근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고 네 콩 내 콘 따지기도 전에 역증부터 내었다.

"우리가 지금 의주에 무슨 사또놀은 하러 가는 줄 아나. 자네 그 체장 어디서 얻었나. 어느

임방원인지 내가 다시 살펴서 신표 남발로 혼을 내야 겠다."

"성님, 아무 염려 마시우. 저 아이들에게 물어보슈. 내가 요즈음 전 환상으로 나섰지요. 바로

코앞이 세밑인데 연중 대목인 겹 사행을 놓칠 수야 있나요. 의주 가서 한몫 봐야지요."

학선이도 제딴에는 예전처럼 관인 행세로 남의 뒤통수나 치는 일은 물려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송도서 색주가를 열고, 화초방에서 노름밑천을 꾸어 주었다가 곧 그 판에서 이자

붙여 받아먹는 재미를 보더니만, 드디어 자모전가를 내게 된 것이다. 그는 정식 상단의 임방

원이 아니었으나, 각 상단에 구름같이 있는 차인 곁꾼들에게 돈놀이를 하려는 것이었다. 차

인들은 상단의 장사를 해주면서 따로이 자신의 이익도 도모하였으니, 봇짐 하나가 각자의

밑천인 셈이었다. 그것은 상단 임원들도 말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학선이는 이들에게 대전

하여 이익을 보려는 것이었다. 박대근은 귀찮았으나 곧 마음을 누그러뜨렸으니, 어려운 때에

그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고, 어쩌면 그의 수완을 동원할 일이 생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이

었다.

대근이 물었다.

"그래, 이자는 얼마냐?"

"이자는 받지 않습니다."

대근은 웃음을 떠뜨렸다.

"첩 초상에 큰 마누라 눈물이라더니 사또가 왠일로 이자 없이 대전을 해주느냐?"

"예, 이자는 없고 그 대신에 현물만 받습니다. 침자 한 괴를 열 냥으로 따져서 그 이익을

반분하는 것입지요."

"그게 어찌 전환이냐, 남을 시켜 무역하는 것이지."

"그럼 우리 같은 시정배나 차인 곁꾼 아이들은 상단에서 떨어지는 돈 부스러기 냄세두 맡지

말란 말이우?"

대근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청국 바늘의 시세가 한 괴에 스무 냥이라 이득은 열 냥이

되는 셈이니 곱절 장사였다. 그러면 열냥 꾸어주고 현물로 받아 처리하여 반분하면 닷

냥이 되는 셈이었다.

" 한 사람 앞에 얼마씩이나 빌려줄 수 있느냐?

" 최고로 삼십 냥 까지입니다. 그 이상은 담보를 잡아줘도 못 냅니다."

"허어, 자네가 이제는 철이 다 들었구먼. 밑천은 얼마나 준비해 가는가?"

학선이는 말짐을 돌아보았다.

"천 오백 냥이 올시다."

박대근은 깜짝 놀랬다. 우선 그 이익금이 칠백오십 냥이라, 두어 달에 혼자서 버는 돈으로는

꽤 많은 액수라서 놀랐고, 무엇보다도 사또 학선이가 무슨 수로 천 오백 냥이나 그러

모을 수 있었는지 놀라운 일이었다. 학선이가 자랑하였다.

"성님, 저두 이제 낼모레 오십줄이올시다. 언제나 시정 무뢰배로 지낼 수야 있습니까? 저

유명짜한 길산이 좀 보세요."

대근은 눈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아하.쓸데없는 소리를."

"뭘 어떻습니까 . 온 조선이 천지에서 모으로 눈알 뜨는 놈치고 길산이 모르는 놈 있수? 참

나야 그에 비기면 새벽 호랑이 꼴이 되었지요."

저자나 상것들 모이는 노름방에서 장길산 활빈도의 얘기가 쑤군속닥 들릴 때면 학선이가

김영옥에서 금부도사를 행세하여 탈옥시키던 제공을 자랑해오던 터였다. 박대근은 윤덕

이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원래 장사치란 옥 깎은 태의 선비들 상대가 아니니라. 저 사람 남 속이는데 뒤서라면 발등

딛고 나설 사람이라. 그러나 우리 상ㄱ단과는 속이는 데 뒤서라면 발등 딛고 나설 사람

이다. 그러나 우리 상단과는 각별하여 예전부터 나하고는 한통속이다. 여보게, 새로 행수 났

네 내 조카뻘 되는 사람일세."

윤덕이가 아까부터 순진한 얼굴에 웃음을 띠며 학선이의 좌충우돌 하는 넉살의 입담을 듣고

있더니 마상에서 내려와 인사를 당겼다.

"최윤덕이라구 하우."

"응, 보아하니 아주 사람됨이 돌부처 같구먼, 내가 댁네 외숙보다 다섯 살 아래고 을유생

이어."

학선이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제 식구가 끌어다 준 마상에 올랐다. 박대근이 하는 수

없이 학선이를 상단에 끼워주고도 믿기지 못하여 미리 주의를 주었다.

"금률을 범한다든가 상다늘 빙자하여 타처 상인들께 해를 끼치거나 송상의 신용을 떨구는

짓을 하면, 아예 집에 돌아와 살림할 생각 말게. 착실히 전환업이나 한다면 내가 차인

들을 시켜서 다른 곁꾼 노자 들에게 자네 돈을 쓰도록 해줌세."

"어이구, 그러니 내가 성님을 믿고 예서 기다린 게 아닙니까. 역시 우리 송악산 왈짜들 말

마따나 박좌장은 맹상군 이시오."

지체했던 행렬이 다시 떠나는데 대근은 학선에게 가만히 물어보았다. 자네 주가를 팔았는가,

아니면 남의 가신을 골패로 땄는가, 천 오백이란 대금은 어디서 났나?"

학선이가 대답하였다.

"나두 한양 난전꾼들에게서 배웠지요 기실 내 돈은 삼백 냥 밖에 없습니다 저리를 맡은

거요. 저희 아이들 구역에 있는 행상아치 마부 객점주 할 것 없이 두 냥 세냥씩 제게 맡

기면 이자를 놀려서 불려 주거든요."

"차라리 족제비에 병아리 보라구 하는 격이지....."

"아니올시다, 노는 입 염불이나 배운다고 그런 하찮은 쇠푼이 송도 저자에서 빈대 박혀

있어봤자 뭘하겠습니까. 제가 일 부로 놀려주지요.보십시오. 학선이가 소싯적에 가어사로

시골 아전들 등은 쳤으되 언제 송도 가난한 백성 울린 적 있습니까? 상단만 장사하고 혼자

풀칠하여 먹고 사는 것들은 돈냥 절렁대는 소리도 듣지 말란 법 있습니까. 나 같은 이가

성님 덕을 봐야 음덕이 되는 법입니다."

"거 좋은 일자리로구먼. 나도 힘써 도와줄 테니 아무쪼록 큰 이를 보아 고루 혜택이 돌아

가도록 하게."

상단의 행렬은 금천계로 접어들어 홍의 역서 중화 먹고 돼지 여울 건너서 평산에 짐을 풀어

하룻밤 유숙하여, 이튿날에는 신 새벽에 출발하여 평산서 팔십 리 길인 서흥에는 늦은 중

화참에 당도하였다. 읍내 밖 오 리쯤 떨어진 용천역이 북로의 중요한 역참이라 주막거리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박대근이 이르지 않더라도 전도 차인은 잘 알아서 일행을 이끌고 토담 너머로 다락을 올린

객점으로 찾아들어가는데, 주인과 중노미들이 뛰어나와서 말짐을 내린다. 말을 마구간에

부려 넣는다. 법석이었다. 서흥은 남에 멸악산맥이 막아 있고 북으로는 언진 산맥이 둘려

있어 갈대밭 속에 갇힌 게의 형국이었다. 바로 북으로 사십 리만 나가면 언진 산맥의 자비

령 일대가 되나니, 이는 곡산 수안 방면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서흥 봉산을 거쳐서 황

주의 극성진에 이르러 끝나게 된다. 봉산 방면의 줄기가 동선령 이요, 서흥 방면의 것이 절

령인데 이 흐름을 일컬어서 자비령이라 부르며, 절령과 동선령의 중간 어름에 자비사라는

절이 있어 예전에 과객들이 묵어 가곤 하여 연봉의 속명이 되었던 것이다. 절령의 행로는

끊기고 동선령 쪽 행로만 번창하였으니 자비령 일대의 동북쪽으로는 험하고 인적이 끊겨 있

었다.

길산네 자비령 근거지는 동선령의 서북편 골짜기와 여계산 무초령 사이의 두 군데가 있었

으니, 동선령의 산채는 주로 남정네 들끼리의 일을 위한 곳이었고, 절령 쪽은그 무렵에 장

가를 들기 시작한 산채 식구들의 여염 살림을 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산채는 수안과 곡

산에도 있었고, 낭림산맥과 언진산맥 일대의 녹림당들은 모두 길산네 세력권 안에 들어 있

었다.

"좌장 어른 납시었습니까?"

객점주가 대근에게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올렸고 이곳은 갈산이네서 관여하는 남로의 정

탐소였던 셈이고, 주인도 그전에 구월산에서 부터 식구로 있다가 솔가하여 내려온 자였다.

큰 돌이 또래로 나이가 제법 듬직하여 대근의 연상으로 보였다. 그는 옛날 부터 구월산 출

입을 해왔던 박대근을 잘 알고 있었다.

"식구들 모두 별일 없는가?"

식구들이라면 길산 이하 자비령 일대의 활빈도를 이름이었다.

"여태껏 바쁘다가 이제 입동이라 한숨 돌릴 것입니다. 사냥이나 하며 한겨울 보내게 되겠

지요."

"내가 기별을 하였는데....."

"예, 그래서 우리 아이가 산으로 모시려고 기다린 참입니다. 아마 위에서도 좌장 어른을

기다리구 계실 겁니다."

"그래, 이 사람들 오늘 묵고 내일 봉산 들어갈 것이니 닭이나 잡아주게. 이틀 길에 너무

서둘었으니 곤할 게야."

박대근은 윤덕이를 불러서 일렀다.

"오늘은 예서 푹 쉬고 내일 봉산 반동이네서 만나자. 전도 차인이 잘 알구 있다. 아이들

단속 잘하고....... 나는 근처에서 봉일 보고 내일 그리루 갈 테니까."

마당을 돌아서 앞의 술청으로 나오니 주인이 두건 쓴 젊은이를 데리고 앉아 있었다. 젊은

이가 꾸뻑하였으나 대근이는 잘 알지 못하였다.

"지금 떠나시렵니까?"

주인이 물었다.

"줄곧 말을 타고 왔더니 오랜만에 다리 좀 풀어야지. 가는 길에 들것이니 술 한 병과 포나

조금 싸주게나."

대근이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주인이 주찬을 준비했고 젊은이가 호리병을 차고 찬합은 등에

봇짐을 지어 메고 앞장을 섰다. 상단 사람들은 짐을 부려 봉놋방 안에 들여놓고 아우성

들이었다 하선이는 대근이가 나갈 채비를 하는것을 얼른 눈치채고 따라나왔다.

"성님, 어디 가슈?"

"응, 오래 못 만난 동무가 근처에 사는 고로 가서 회포나 풀려네."

학선이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거 혹시 길산이 만나러 가는 것 아니우 ? 나도 데려가우 ."

"자네 심사가 꽁지벌레로군."

"성님, 지난번에 서흥 일두 내가 알아내었지요. 같이 가십시다."

대근은 잠시 생각하다가 어제부터 마상에서 학선의 쓸모를 따져보던 것이 떠올라서 마지

못한 듯 응낙하였다.

"나중에 네 부하에게 지지재재하지 않겠다면 따라가구 좋다."

"망부석에 말 시키기지 사또를 어찌 알고 그러시우."

젊은이가 길라잡이로 앞서고 둘은 서로간에 시쁘둥하여 같이 길에 나섰다. 치유령을 넘어서

절령 어귀에 이르니 벌써 날이 어둑 어둑 하였다. 대근이 절령 험하다는 말은 들었는

지라 갑자기 자신이 없어져서 말하였다.

"이 시각에 어찌 그 험로를 가려는가. 아예 주막에서 자고 내일 새벽에 출발할 것을 ....."

"염려 마십시오. 고개 중턱에 토막이 있사온데 방도 널찍하고 지낼만 합니다. 저는 거기까

지만 합니다. 저는 거기까지만 바래다 드릴 것입니다."

참나무와 낙엽송이 빽빽한데 좌우로는 험로의 사천왕처럼 암벽이 가파르게 서서 기괴한

형상으로 섰고 돌길은 급하고 비좁아서 길라잡이쪽에서 일일이 가르쳐줄 정도였다. 암석은

마치 수천의 군사가 시립하고 있는 듯하였다. 산채의 연락꾼인 젊은이는 동네 골목이라도

찾아가는 것처럼 익숙하게 어둠속을 헤집고 나아갔으나 대근과 학선이는 몇번이나 돌부

리를 차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하였다. 산의 밤 공기가 이미 한 겨울의 매서운 한기로 코

끝이 시려울 정도였지만 그들은 땀과 열기에 잦어 있었다. 사방은 캄캄하여 주위를 분별할

수 가 없는데 다만 높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별빛이 영롱하게 내다보였다. 이윽고 나무가 별

반 없는 널찍한 반석위로 나아가니 돌연 시야가 툭 터지면서 어둠속에 별 뿌려진 허공만이

눈에 가득들어오는 것이었다.

무진년 여환의 미륵도가 양주에서 무참하게 깨어진 뒤에 관의 징계에서 보이듯이 경기 황해

양도의 여러 백성들이 폐농하여 촌락을 비우고 흩어졌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양도의 감

사로 하여금 백성들은 효유하여 옛 땅에 와서 살도록 하라고 특별히 지시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역률에 얽히면 그 직계 가솔들뿐 아니라 백숙부 형제까지의 혈족들까지도 연좌되는

실정이었고, 요행히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재산은 몰수되며 삼천 리 밖에 유배되는 형편

이라 고향에 남아 있을 자가 별반 없었다. 차라리 관에 잡혀가기 전에 미리 알아서 챙길것

챙겨 가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며, 맨손에 온 가족이 흩어져 유배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던 까

닭이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여염마을을 피하여 궁벽한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아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었고, 생활 수단도 예전 처럼 쉽고 예사스런 일을 택할 수가 없

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흉년의 다른 유민들 처럼 일정한 거주지를 이루고 인근 지방을

떠돌며 각종의 업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개중에는 공장이짓으로 기술을 익혀 물건을 만들

어 살기도 하고 행상도 나다니고 이것저것 안되면 적당히 재간 익혀서 광대 거사배의 일원

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은 덩어리의 집단들이 생겨나자 이들은 자연스레 서로 연계되

었고 길산네 사람들은 이러한 연계를 파악하고 또한 뒤를 밀어주어 새로운 부락이 생겨났

다.

길산네 혈당들은 곡산에 이어 수안 언진산에 새로운 은점을 열었고 원산 쪽에는 여각도 벌

여두고 있었다. 김기가 한 명부를 작성하였으니 그들과 연계된 마을과 혈당이 된 사람들에

관하여 적은 것인데 거의 천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유민 세력의 중심부가 되

어가는 중이었다. 해서 활빈도는 이미 예전과 같은 한줌의 명화적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진작부터 박대근의 도움을 받아왔고 실로 그의 상단에서는 누만 전을 쏟아 수안의

은점을 개설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터였다. 특히 식구들 중에 김선일의 힘이 제일 컸고

봉산 만동이 형제의 경험은 과연 값진 것이 되었다. 식구가 많아 지고 살림이 불어나게 되

니 일이 더욱 확대되는것은 자연스런 추세였다. 박대근은 송도에서 생삼이 산출되기 시작한

소식을 알렸고 그가 두 차례의 사행을 위하여 의주로 나간다는 전갈을 보냈었다. 수안에

나가 있던 길산이도 자비령으로 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동선령 선채에는 선흥이와 흥복이

가 나가 있었으며 수안에는 김선일이 나가 이썽ㅆ다. 김기는 여계산과 무초령 사이의 그들

마 여전히 독서하고 지냈는데 구월산 토포 이후로 그는 아내와 노모를 잃어 예전보다는 많

이 늙어 이썽ㅆ다. 한밤중이 되어 절령토막에서 전달이 닿기를 박대근이 당도하였으나

밤길이 험하여 거기서 묵고 아침에 마을로 오겠다는 사연이었다. 아침은 오랜만에 길산이

네 집에서 모두 같이 들기로 하였다.

박대근과 이학선은 찌를 듯한 절령 산곡의 토막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동틀 무렵 하여

졸개의 안내를 받아 자비령 식구들의 마을이 있는 여계산 아랫녘으로 넘어 갔다. 산골이

그늘진 곳에는 눈이 쌓인 데도 있었고 등성이에는 온갖 색으로 바래고 짙어진 나뭇잎들이

새벽 빛에 만화를 피워내고 있었다 소나무 숲은 더욱 짙었으며 일찍 낙엽을 떨군 활엽수

들은 보기좋은 가지를 구불텅거리며 드러내고 있었다. 여계산과 무초령 사이에 아늑한 골짜

기가 여럿인데 심원계곡이 기중 깊고 수석이 장하였고 일대에는 여계산과 발산행성과 심원

사 남림행성 사인 암성등의 산성이 연이어 있었으니 가히 요충지라 할만하였다. 심원사 계

곡은 진작부터 절도 퇴락하고 인적이 끊긴 곳이라 짐승과 멧새들만이 살더니, 길산이네가

자비령에 터를 이루면서는 하나 둘씩 식구들을 안돈시키기 시작하여 예전 최흥복이네 산채

가 있던곳에 열 채 남짓의 초가가 생겨났던 것이다. 김선일과 끝춘이 부부는 언진산 부근에

서 주막을 열고 있었으나 강선홍과 춘천댁은 이곳에 살았다. 최흥복이도 장가들어 이곳 심

원골에 살았고 길산네 김기업복이 강말득이 그리고 무진년에 미륵도가 흩어질 때 달아났던

정대성이도 영평서 처자를 데려다가 살았다. 김승운은 오계준과 함께 해서 무계원들의 도움

으로 황주에 살았고 오경립 이정명 박귀선은 솔부리의 복만이 달근이네로 합대하였고 조무

인과 이시흥은 길산네 식구들의 손을 거쳐서 언진산의 잠채터에서 김선일과 더불어 번수 노

릇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에 동선령의 산채에는 길산과 몇몇 두령들을 합하여 서른 남짓밖

에 되지 않았다.

수안과 언진산에 또 산채가 있었는데 그곳에 백여 명이 있었고, 함흥 백운산과 원산 고원

일대에도 백여 명이 있는 산채가 있었으며 평안도의 묘향산 부근과 낭림산맥 일대의 녹림

당들도 모두 길산의 수하를 슷로 원하여 왔던 터였다. 그들은 강말득을 통하여 서로 통

문을

주고 받아 해서는 물론 강원 함경 평안 삼도가 그물코 같이 연결되었다.

대근이 계곡에 내려가니 며칠 전 부터 전갈을 받고 언진산에서 와서 기다리던 장길산을

비롯하여 김기와 최흥복과 강선홍 강말득 등이 마중을 나왔다.

"성님, 참 오랜 만이우."

길산과 대근은 서로 손을 덥썩 잡았다. 길산이 이경순을 잠시 피하게 하느라고 들렀던 것이

작년 여름 일이라, 이제 일 년이 넘어서야 만난 셈이었다. 김기는 더욱 오랫동안 자비

령을

떠나지 않아서 대근과는 수년 만에 만났다.

"김 선비님두 흰머리가 많이 느셨소이다."

"하는 일 없이 늙어가구 있지요."

차례로 인사를 하고서 길산네로 가는데 일찍이 최흥복이가 쓰던 본채였다 봉순이는 춘천

댁과 흥복의 아낙과 더불어 노루고기를 너비아니로 굽고 산나물 등속이며 술을 거르느라고

한창 분주하였다. 봉순이가 마당으로 나서면서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님 오셨습니까."

"예, 계수씨 오랜만이올시다."

대근이 마주 인사를 하는데 아이 하나가 달려오더니 봉순의 옆에 나란히 서며 인사를 하

는것이었다.

"평안하시옵니까?"

"가만있자...... 네가 누구더라."

"수복이에요. 얘는 제 누이동생이구요."

아이 곁에는 보다 작은 계집아이가 따라 왔는데 제 오빠가 손가락질하자 부끄러운 듯이

봉순이의 치마를 싸안고 숨어버렸다. 대근이 그제사 길산의 아들임을 알아보고는 덥썩 안

아서

위로 쳐들어 보았다.

"허허, 세월이 빠르기도 하다. 강보에 싸여 울던 놈이 이렇게 크다니."

길산은 멋쩍은 듯 딴전을 피우다가 시큰둥하니 말하였다.

"산속에서 크는 것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성님, 어서 들어가십시다."

대근은 수복이를 내려놓고 큰 사랑으로 들어갔고 김기며 선홍이 흥복이 말득이들도 뒤를

따라 우 하니 몰려들어갔다. 아까 부터 학선이는 대근의 뒤를 따라 묻어 들어와 두리번 거

렸지만 길산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상단의 차인쯤으로 아는 모양이어서 좀 섭섭하전

이었다. 들어가서 앉자 학선이가 제법 격식 차리며 어깨를 숙여서 머리 조아리며 길산

에게

인사를 텄다.

"나 송도 사는 이서방이우."

얼결에 마주 받는 길산에게 그는 다시 덧붙였다.

"일찍이 내 댁네를 잘 알우. 나를 못 알아보시는 모양이군."

길산이 잠시 쏘는 듯한 시선이 되어 상대를 살피다가 대근에게 물었다.

"혹시.......해주에 왔던 금부도사 아니신지?"

대근이 무릎을 치며 껄껄 웃었다.

"맞소, 과연 장두령의 눈은 피할 길이 없구먼. 이 사람이 가어사 학선이요."

"반갑소, 헌데 지난번의 감영 정탐은 어긋나서 공연히 서흥을 들이치구 법석을 하였지."

길산이 구월산 토포 때의 일을 떠올리며 말하였고 학선이는 대꾸하였다.

"글쎄, 그것이 큰 실책이었지요. 좌장 성님이 사흘 말미를 주며 급히 알아내라니 내 재간

으로도 별수가 없습디다."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가 끝났고 이어서 김기가 대근에게 물었다.

"요사이 지방의 수령 방백들이 많이 갈려 나갔다는데 조정의 정국은 어찌 돌아가는 눈

치요?"

"큰 변동이 있었던 모양이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분히 유리하게 된듯 합니다 경신년과

이번 기사년의 환국으로 사대부들은 서로 살륙하여 물고 뜯어 위로는 정승에서 아래로는

고을

원에 이르기까지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니, 그야말로 백성들께 눈도 돌릴 틈이 없소이다.

서인과 남인으로 갈려서 싸우다가 서인은 다시 노론 소론으로 나뉘더니, 이번에는 경신

년에

조정에서 쫓겨났던 남인들이 다시 들어섰지요."

경신년의 남인의 몰락 이래로 조정 정병을 장악해왔던 노론의 기세는 왕권에 까지도 깊은

영향력을 끼칠 만큼 강고한 것이었다. 특히 궁인 장씨는 경신대출척 당시에 연루자로 귀

양간 역관 장현의 종질녀 였으므로, 집권자인 노론 측 에서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왕은

장씨를 총애하고 있었다. 숙종 십이년 병인 십이월에 장씨를 숙원으로 하더니 십사년

무진

시워에 장씨는 왕자를 낳으면서 소의가 되었다. 그러니까 여환네 미륵 도가 깨어지고 난

직후가 되는 셈이었다. 부교리 이징명의 장녀 추방에 관한 상소를 계기로 그는 물론 그를

옹호하던 승지 신엽과 김두명을 가두었고, 이조판서 박세채도 궁중에서 적서를 분명히 하

라며

장씨 측과 가까운 동평군을 배척 하다가 쫓겨났다. 그를 옹호하던 영의정 남구만 우의정

여성재도 북관에 내쳐졌다. 그 무렵에는 이미 노론 뿐 아니라 소론까지도 서인이라고 한묶

음되어서 왕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진 시월에 장씨가

왕자를 낳았고 바로 기사 정월에 숙종은 왕자를 원자로 봉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였다.

그때에 왕은 대신과 육경 삼사 장관들을 불러서 이르기를, 나라의 근본을 정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고단하고 약하며 시사가 어려운 것이 많아서 민심이 의지할 데가 없는데, 현

재의 가장 큰 계책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당장 내가 의논 하려는 왕자의 명호를 정하는

일이라, 만일 머뭇거리고 관망하거나 감히 다른 의도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벼슬을 내놓고

물러가는 것이 옳을 것이니라 하였다. 이조판서 남용익이 아뢰기를, 나라의 형세가 외롭고

위태하며 조야가 몹시 바라던 때에 왕자가 탄생하였으니 신민의 경사스럽고 다행한 일이야

어찌 가히 다 아뢸 수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오늘 내리신 말씀은 의외이며 왕자의 명호를

정하는일도 너무 빠른 감이 있습니다. 지금 중전께옵서 춘추가 한창이시니 이제 왕자의 명

호를 정하는 이런 거조는 너무 급하지 않으시옵니까 하였다. 이 뒤 정궁께서 만일 아들이

없으면 국본이 저절로 정해지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대사간 최구서 영상 김수홍 호판 유

상운

등의의견도 대개 그와 같았으나 임금은 중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자를 원자로 봉하

였던

터였다. 곧이어 재야의 유학인의 집권 재기의 단초가 드러나기 시작 하였다. 즉 장희빈의

나동생 장희재와 종친 동평군 항이 남인 측의 민암 민종도 이의징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인의 집정을 예고하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노론 측에서는 세력을 만회하기 위하여

산림종사로 군림해온 봉조하 송시열이 왕자의 정호가 아직 빠르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상

소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승지 옥당 등의 입직한 신하들과 더불어 이를 논의하였으니, 송시

열은 산림의 영수로 국세가 단약하고 인심이 파탕한 마당에 감히 송나라 철종의 일을 인용

하여 금일의 정호가 태조하다 하였으니, 이르 버려두면 무장지도가 반드시 뒤를 이어 일

어날

것이니 마땅히 원찬 하여야겠으나, 특별히 유신이므로 짐짓 관전에 따라 식탈관작하여 문

외출송케 한다고 명령하였다. 영상 김수홍도 파직시키고, 남인 목내선을 좌상에, 김덕원을

우상에, 여성재를 영상에 임명하고 원자의 외가 삼대에 의정의 작호를 내리니, 승정원과 삼

사에 모두 남인이 등장하여 정국이 바뀌었다.

사간원과 사헌부의 탄핵으로 송시열은 제주에 위리안치되고, 경신대출척의 장본인이던 김

익훈은 형장에서 죽고, 이미 죽은 김석주는 삭탈관작하였다. 경신옥에 죽은 허적, 복선군

남,

윤전, 이원정 등은 오두 복관되고 이사명, 김수항은 경신옥의 보복으로 극형에 처하였다.

원자 정호 문제로 비롯된 정국의 변화는 사월에 접어들어 드디어 남인의 집권으로 본격화

되었다. 민암이 병조판서, 민종도가 예조판서, 유명견이 도승지, 목창명이 대사헌, 이현일이

장령에 올랐다.

삼사 중신들이 어전에서 송시열을 극형에 처할 것을 아뢰는데, 숙종은 폐비의 뜻을 비쳤다.

국가가 불행하고 인심이 약해져서 해괴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경등이 발본색원할 생

각이 없는가, 궁중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병인년에 희빈이 처음 숙원이 될 때에 민씨가 김귀

인과 한당이 되어서 질투하는 형상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게 말하기를,

꿈에

선왕 선후를 뵈었는데 그 말씀에 내전과 귀인은 복록이 길고 또 아들도 많기가 선묘조와

같을 것이나 숙원은 아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복도 없으니 만일 궁중에 오래 두면 반

드시

국가에 불리하리라 하시더라, 하니 예로부터 질투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어찌 거짓말로

선왕 선후를 칭탁하여 공감할 꾀를 내기가 이토록 심한가, 삼척동자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간교하고 사특한 것이 폐 간을 보는 듯하다. 자식이 없을 것이라던 희빈이 원자는 어찌 낳

았는가. 이런 패악한 행실로는 하루도 국모가 될 수 없으니 폐출할 것을 분부한다 하였

으니

임금은 이미 장빈과 남인을 선택한 바 있었고 오월에는 왕비가 폐출되고 잇달아 송시

열은

사사가 되었다.

김기가 물었다.

"소문에 듣자하니 왕비를 폐하고 빈으로 있던 궁녀가 새 왕후가 되었다는데 그것과 환국이

관계가 있는가요?"

"저는 고금의 붕당이란 것도 이렇게 봅니다. 일찍이 공자가 군자와 소인을 논하면서 미쁨과

치우침에 대하여 말을 했지요. 임금이 되어서 위에 오를 자가 진실로 군자와 소인의 구

분을

밝게 분별하여서 왕도 평탕한 다스림을 능히 힘껏 하지 못하면 사정에 치우치고 무리와

친하는 버릇이 저절로 방자하여지며, 갑이 옳다 을이 그르다 하는 논란이 점차 벌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붕당이 일어나게 되는 연유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붕당의 폐단은

임금 자신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몇몇의 세도가로부터 조작되고 부추겨지는 법입니다. 임

금은

스스로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오늘은 이편에 힘을 기울여 저편을 견제하고, 그들

세가

너무 거세어지면 다시 저편을 일으켜 세워 내일은 두둔하던 쪽을 치는 것이지요. 그러

므로

권세의 물골이 흐르게 되면 온갖 송사리떼들은 그 흐름에 휩쓸려 이리 왔다가 저리 쓸였

다가 하게 마련입니다. 요즈음의 정국이란 것도 이를테면 가장이 수신제가 하지 못하여 골

육이 그의 노속들을 갈라가지고 물고 뜯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때의 영화나 권세도 이러한

임금의 기분풀이에 달려서, 사대부라는 것들이 어육이 되고 영화의 몰락이 물거품처럼 부침

하는 게지요."

"아조에서도 예전에는 당초부터 색목이라는 명칭이 없었고 가끔 참혹한 사화가 있었으나

알려지기는 소인이 군자를 일망타진한 것으로 되어 있소이다. 그러나 그것도 박대인의 말뜻

처럼 본다면 임금이 정세의 흐름을 이용하여 부리던 자들을 서로 견제하도록 만든 셈이겠

지요. 계집이 많으면 총애를 투기하고 자식이 많으면 재물을 다투는데 하물며 사대부들이

뱌슬을 차지하려 함과 비교하겠습니까. 나라는 상벌하는 권한을 가지고 조화하는 역에

서서

한번 눙치고 한번 성낸는 것이 따뜻한 해와 찬바람 같은 즉, 모난 것이 깎여서 둥글게

되듯

당폐가 고쳐져서 화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모든 편당의 명분이

백성을 보살피고 백성을 귀히 아는데로 모아져야만 정사가 조화를 얻게 되겠지요. 연전의

예송도 그러하고 경신년 때나 금년일이나 모두들 제 코앞의 이득에 급급하여 싸움을 만들

거나, 임금의 계집질에 정사가 놀아나고 있으니 앞으로 두고 보시오. 다시 뒤집혀질 것입

니다

.뜻있는 이는 초야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소인배들은 그저 그런 것들끼리 앞서

거니 뒤서거니 조약돌 모난 키 자랑하듯 조정에 들락날락할 것이오. 정국은 수백번 바뀔지

언정 백성들의 사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 호란왜란 때에 겪었듯이 조정의 힘이

한양 도성의 허공중에 떠 있는 것과도 같소이다. 태고에 요순우탕 시대에도 억지로 만들

어서

다스림이 아니라 무위로 위정의 근본을 삼았음은, 삼라만상이 모두 제 나름의 귀한 자

리를

균등히 지켜서 대동세상을 이루고자 함이었소."

박대근이 다시 말하였다.

"어쨌든 전 폐비는 아마도 노론의 세가 등을 기댄 것 같고 이번의 장씨는 남인의 무리가

줄을 대고 있는 듯합니다. 소문에는 장씨가 대대로 역관의 집안 사람이라는데 그의 증조부

장현은 연경을 오가며 거금을 벌게 된 역관 출신으로 남인과 편당이었습니다. 장씨녀의 남

동생 역시 임금의 종친이나 남인 등과 돈을 물같이 쓰면서 연락을 가졌다고 그럽디다. 그

것은

아마도 장씨녀가 작년에 아들을 낳은 뒤로 자신을 가지고 더욱 급히 추진된 일일 테

지요.

우리 송도 상단에서도 공공연한 설화는 피차에 조심하여 금하고 있으나 두셋이 모여 술잔

이라도 나누면 각 도 송방의 소식이라든가 한양 시전이나 난전에서 흘러나온 소문들을

주고

받게 됩니다. 특히 난전의 소문은 그들 저자배의 대부분이 세도가의 행랑 것들이나 적

어도

뒷심을 댄 자들이라, 오히려 다른 지방의 방백 수령들께 전해지는 것 보다도 조정의 내

막이

훨씬 소상하고 빠릅니다. 우리에게 이번 정국이 유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역관과 중인의

세력이 남인과 새 왕후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양서 누만금을 지니고 재산으로 유

력한 사대부의일을 돕기도 하고 유생들의 여론을 끌기도 하는 거부들이 있는바, 이들의 거

개가 장사치 역관 부류들입니다. 더구나 왕권이 사대부들의 족벌적인 우세에 시달릴 때

에는

고금에도 보이듯이, 나라 밖에 강력한 사대의 줄을 대어 함부로 반정하지 못하도록 대

국의

신임을 얻으려 하는 법이지요. 이 사대의 연줄이 약할 적에는 광해조때와 마찬가지로

감히

옥좌를 넘보게 되던 것입니다. 그때에는 새로 일어나던 청과 밀리기 시작한 명나라에 겹

눈을 떠서 눈치를 살피던 때였고, 인조반정 뒤에 청에 대한 줄이 약하여 호란을 겪고, 헛된

명분으로 백성들의 은근한 멸시를 막아보려 한 것이 작금에 이를 제까지의 북벌이라는 공론

이었소이다. 이에 지금 조정에서는 바깥과 긴밀한 연결을 가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지 못

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임금은 먼저 외척의 세를 꺾고 이러한 강한 신임을 청국으로

부터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송상들도 누대에 걸쳐서 한양 역관의 사행에 줄을 대어

무역을 해오고 있어서 저간의 청국과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소이다. 북벌론으로 온 나

라가

앙앙불락하고 망해버린 명에 대한 사모의 정이 벼슬아치들 사이에 다투어 일어날 적

에도,

사행에는 온갖 금은 재물과 봉물로써 때로는 칭찬받고 때로는 벌을 받으면서 눈치만 보았

지요. 청이 이제 아조를 대함에 억누르고 조종하려는 뜻은 늘상 변함이 없습니다. 저들은 조

선을 내심 믿지 않았고, 적국 비슷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때리고 얼러 길들

이려

하는 것이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달아나거나 물려고 덤빌 가견쯤으로나 여기는 눈치랍

디다. 청국에서 반출을 금하는 염초나 유황 등물을 사내오면 곧이어 벌은을 부과하고, 저

들의

온갖 잡다한 내외의 일에 대하여 일일이 문후하고 사은하도록 하고 있소. 예전에는 민정

중이 하지사로 갔을 때에 통감을 지녔다가 경을 쳤던 일이 있었고, 임자년에는 복평군이 명

사를 샀다가 추궁받은 적이 있소. 특히 어느 연공사는 각 성의 지도를 지니고 오다가 봉성

에서 수색되어 빼앗기고 공초를 받았습니다. 청의 예부에서는 그랬답니다. 사서를 구하는 것

은금률이 가장 엄격하고 벌은 오천 냥에 해당되지만 아뢰어온 글의 간곡한 뜻에 따라 용서

한다고 그랬지요. 그 대신 지도의 건은 몹시 추궁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변방의

족자나 첩책의 지도를 없애라고 엄령이 왔지요. 하여튼 매해마다 청국에서는 이러한 점

들을

까탈잡아 벌은을 강취합니다. 특히 병인년의 벌은 이만 냥 부과가 내려진 뒤로 청국이 우

리나라를 억누르려는 기색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소. 지난 오월에는 청황이 봉성에까지 나

와서

변방을 둘러보고 심양으로 하여 북경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이것은 저들이 북방에서 몽

고와

충돌이 잦아서 조선에 대한 비변의 경계를 보인 것 입니다.지난번에는 동평군이 갔을 제

우리 상단에서도 여럿이 무역별장으로 뽑혔는데 폐비에 대한 사연을 주청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도 벌은이 나왔는데 글자 몇자가 예에 맞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같이

근년에 들어 청국의 조선에 대한 압력이 더욱 심해지고 있소. 이번의 정세 변화는 송상에

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주상의 관심이 외세와 줄이 닿는 역관 세력들께로 쏠리고 그

들의 권한이 강고해졌으니, 우리도 무역을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좋은 조건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

박대근이 이 손바닥에서 저 손바닥으로 한눈에 보이듯이 조정의 판도에 관하여 펼쳐 보

이자, 모두들 흥미롭게 듣는데 최흥복이가 김기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삼촌, 박대인 말씀 듣구 보니 우리는 관북 쪽으로 나서야겠수. 실상 그쪽은 울 없는 뒤뜰

이나 한가지 아니우?"

"글쎄. 박좌장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우? 우리는 곡산과 수안에서 은과 쇠를 잠채하고 있소

이다. 또한 고원에는 수달피를 모으는 객주와 함흥에는 무명과 목화를 취급하는 객주가

따로

있지요."

대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과 삼은 서북변에서 주요 무역 품목이올시다. 사행 무역의 교역이 모두 그것을 기본으로

이루어지고 있소. 그래서 우리 상단이 언진산의 잠채터에 손을 댔던 게 아닙니까? 중강

에서

의주까지의 압록강변에는 삭주 창성 벽동 초산 위원 강계 등의 강변에 달라붙은 고장이

있어서 잠상의 근거지가 될 만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기왕에 있었던 의주 송방과 함께 강계

에도 새로운 송방을 열어 서북변의 상단 행수를 주재 시킬 것입니다. 또한 쇠와 무명은 동

북변 야인들과의 교역에서 오래 전 부터 주요 거래 품목이었지요. 경원에서는 농기구와 가

마솥이 거래되고, 회령에서는 가축과 무명이 교역되는데 해를 걸러 단개시와 쌍개시라

하여

영고탑과 오랄의 여진인들이 몰려듭니다. 특히 그쪽에서 들어오는 호마는 날래고 장사가

만하여 우리가 꼭 취해두어야 합니다."

김기가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 고원에 객주를 냈다고는 하나 아직도 동북변의 우역에 눈을 뜨지 못하였지요

다만, 무명과 수달피를 모아다 송도 상단에 넘기는 역만 해냈소. 회령과 경원에 객점을 열

어야 할 것입니다."

길산이 말하였다

"무진년 이래로 우리들에게 의부한 도산민들의 부락이 강원도 철원과 횡성 그리고 황주와

곡산 등지에 있소. 그 식구들만 하여도 사오백여 명이 될 것이오. 우리의 명부에 적힌 장

정만 백육십 명이니까. 동선령 산채, 수안 은점, 곡산 수철점 등지에 삼백여 명의 식구가

있소.

여기 심원골이야 우리들뿐이라 따질 것도 없고, 함흥 백운산 산채와 고원 원산 객주의 식

구들이 백여 명, 묘향산 산채에 백여 명, 그리고 낭림산맥 일대에 다섯 군데의 산채가 있

으며

거의 삼백여 명이 됩니다. 그러하니 천여 명이 넘는 이 세력이 평안 함경 강원 황해의 각

도에 걸쳐서 퍼져 있어 고루 먹고 살기도 벅차고 더구나 군장 등물을 마련하여 힘을 기르

려면

명화적당으로는 오래 버틸 수가 없으며 한계도 있소이다. 한편으로 연계를 지어 송도 상

단과 같은 상고의 직제를 짜두어야 병을 키울 수가 있을 것이오."

"장두령, 강계에서 새로운 인삼 묘포를 장만할 것이고 수안 은점의 은의 소출이 늘어날

것이니, 우리가 음과 양으로 손을 잡으면 기세는 여름 장마의 강처럼 불어날 것이외다."

박대근이 말하자 김기가 곧 찬성하여 나섰다.

"총포와 말만 있으면 제 아무리 많은 관군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쉽게 깨뜨릴 수가 있소

이다. 일찍이 북관의 호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였으니 날랜 군사가 방포 돌입하여

군현을 급습하고 일시에 말을 타고 사라진다면 가히 신병이나 다름없겠지요. 박좌장의 말

씀을

들으니 이번 정국의 변화는 잠무역에 호기라 하였소. 이때에 압록강과 두만강 두 강변의

상로를 장악해야 할 것입니다. "

그들은 이어서 대근이 견본으로 가져온 재배 삼을 신기한 듯이 구경하며 만져보고 깨물어도

보았다. 박대근이 물었다.

"우리가 비록 사행의 꼬리에 붙어 책문 뒷자의 이익이나 보려고 무역에 참가하지만, 이것은

청상과의 거래를 트기 위하여 줄을 대려는 뜻이오. 송도에서는 벌써부터 강화의 홍천

수와

석범철을 통하여 우두령에 닿고 있었으니, 우두령은 삼화 마지산에 저들의 마을을 이루

었고

그 앞 가도에 선착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의주 용암포에 여각을 열어두었는데 박성

대가

나가 있지요. 용암포에서 배를 띄워 십 리만 오르면 청국 지역이라 잠상은 그들에게도 손

쉬운 일거리가 될 게요. 우두령은 또한 예전부터 의주의 만상들을 잘 알아왔으니 송방은

ㄱ의

도움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요. 이번에 가는 길에 평양에서 우두령과 만나 동행하

기로 되었소."

길산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탄식하였다

"형제의 결의를 한 지 벌써 십년이 지났거늘, 이제 겨우 몸을 숨길 은신처 구하는 데 그

쳤으니 대동세상은 언제 이룬단 말인가!"

"두령, 먼저 간 사람들을 잊지 않으면 꼭 이루어 집니다."

김기가 말하였다. 길산은 다시 박대근에게 말하였다.

"이번 가시는 길에 나두 성님과 동행하겠수."

"의주는 사방의 상고가 모이는 도방 대처인데 혹시 누구의 눈에 띄어 관에 포착되면 어쩌

려구 그러시우?"

"차라리 성님은 그냥 계시고 삼촌이나 제가 다녀오지요."

강선홍과 최흥복이가 길산을 만류하였다. 대근은 그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이번 역행이 끝나고 동지사가 떠나는 사이에는 근한 달이나 여유가 생기오. 장두령은 그

때에 우리와 함께 강계로 나가서 강변 칠읍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유리할

것이요."

김기도 대근과 같은 생각이었다.

"강서방과 함께 두령은 평안도의 각 산채들을 둘러보고 묘향산에도 올라가 여러 사람드 을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명년 봄까지는 경원과 회령에 우리의 여각 객

주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함흥백운산에 최두령을 보내어 그 기틀을 닦았으면 합니다."

"글쎄......흥복이는 나하구 같이 있어야지. 업복이는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길산의 말에 김기는 생각해보고 나서 말하였다.

"업복이는 구월산에서부터의 식구라 믿을 수가 있겠으나 상고의 일에 관하여는 서툴 것입

니다. 수안 은점에 나가 있는 이시흥은 장사를 하던 사람이고 조무인이는 행상을 다녔다고

하니 그들 중에 하나를 붙여주면 좋을 듯 합니다."

길산이 정하였다.

"업복이를 백운산으로 보내고, 여기 와 있는 정대성이가 원래 기병이라 승마와 양마에 능

하오. 정서방을 동북변 지방으로 보내어 객점을 열도록 합시다."

밖에서 봉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식 다 식겠어요. 먼저 아침 드시고 말씀 나누시지."

"아이구, 배고파 우리 형수님 아니었으면 체면상 밥달란 소리두 못할 자리가 되었수."

강선홍아가 장지문을 드르륵 열며 말하였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방안에 산간의 냉기 서린

아침 공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왔고 음식 냄새도 마루에 그득한 것 같았다. 강선홍의 아내

춘천댁과 흥복의 아내 황주댁이 상을 맞들고 들어왔고 봉순은 대성의 아내와 주인상을 맞

들고

들어왔다. 이제 화제는 바뀌고 밥 먹기 전에 술잔을 주고 받는 일이 먼저 시작 되었다. 학

선이가 주위를 둘러보고 앉았다가 박대근에게 나직히 말하였다.

"여기 와서 보니 나야말로 참 잘기가 쥐 포수요. 내게두 뭐 일감 하나 내주면 안되우?"

"그렇잖아도 최서방 혼자만으로는 만상들을 어찌 당할까 염려하던 터였는데......자네가 호

가호위가 본업이라 믿음성이 없어서 걱정이다."

박대근이 웃는 얼굴로 말하였고 학선이는 얼른 대꾸하였다.

"그러니 범도 여우가 있어야 위세가 생기는 게 아니우. 내 여기 와서 곰곰히 생각하니 저기

장두령과 성님 일을 닿게 하는일만 맡아두 북변의 큰 잠상이 되겠수. 나는 성님 뒤꼭

지만

바라구 따라다닐 라우."

길산이 얼핏 두 사람의 주고받는 말을 듣고 끼여 들었다.

"변방은 송도와는 달리 인적이 드물고 대륙에 면하여 광활하고 막막한 곳이오 옛적에 고

구려가 일어났고 여진이 그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 청을 세웠소. 이서방은 큰 상고가 되어

무얼하실라우?"

"혹시 압니까. 진짜 어사가 되어 탐관오리를 혼내주게 될지.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벼슬

아치들의 사정과 뱃속은 물속처럼 들여다보며, 도방 대처에서 돌아가는 판국은 주사위판

보다

더욱 잘 알고있소.장두령은 서북변의 일을 내게 맡기시우. 좌장 서임과 장두령의 징검

돌이

될터이니.."

길산과 대근은 웃는 낯으로 서로 시선을 주고 받았다. 아침밥을 먹고 술도 거나하게 몇순배

돌아간 뒤에 대근은 봉산 만동이네 객점에 나갈 일이 급하여 곧 떠나기로 하였다. 자

비령

식ㄱ들은 모두들 밖으로 나와 대근을 배웅 하였다. 대근이 길산에게 말하였다.

"시월 말께에 의주 송방으로 오시오. 우두령과 기다리고 있겠소."

길산이 말득이를 돌아보았고, 말득이가 두 뼘짜리 단도를 대근에게 주었다. 길산은 말하

였다.

"통문을 들릴 제 신표로 쓰던 단검입니다. 행로에 혹시 번거로운 일이 생길지 모르니 그

때에는 이것을 내보이십시오. 서북에서는 대개 우리 활빈도를 압니다."

대근은 길산의 단검을 받아서 품안에 간직 하였다. 심원계곡에서 다시 무초령 쪽으로 하여

다른 길로 하산하는데, 이번에는 말득이가 앞장을 섰고 길산이도 검수역말이 내다 보

이는

고갯마루까지 따라 나섰다. 대근이 길산에게 신신 당부하였다.

"십일월 말에 동지사가 떠날 것이니 그 전에 의주로 오시오.의주 송방에 오면 우리를 만날

게요."

"예, 언진산서 일 좀 보고 곧 뒤따라가리다."

말득이는 길안내를 하는데, 무초령서 흘러내린 물이 월당강의 지류구 산하로 흘러들어가

검수천을 이루었고 그 물살이 세차고 빠르기가 살 같았으며, 길은 내 옆을 따라서 십 리쯤

내려갔다. 길에는 마른 갈대와 낙엽이 가로막히듯 쌓였고 냇물에는 다리도 없었다. 검수역

경내는 조용하고 인적이 끊긴 것 같았으니 때가 어중간하여 상고나 행객의 내왕이 드문 까

닭이었다.

"내를 건너면 산수원이고 곧 봉산입니다. "

"잘 아네. 어서 돌아가게"

"그러면 저두 우리 성님 모시고 의주 가서 뵙지요."

학선이와 대근은 곧 봉산에 당도하였고, 일행들은 만동이네 객점에서 떠날 채비를 갖추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윤덕이가 천동이와 함께 점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왔다. 천동이가

꾸벅 인사를 올렸다. 실로 대근이 행수로 나다닐 적부터 알아온 처지라 오랜 벗인 셈이

었다.

천동이 만동이 형제도 그 무렵에는 장터에서 타관 상고들께 행패나 부리는 장터 왈짜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은점과 수철점에 손대어 봉산에서는 내로라 하는 부가옹이 되어

있었다.

이곳은 일테면 길산네 자미령 식구들이 내놓은 눈구멍 구실을 하고 있었으며 만동이는 주로

수안의 언진산 잠재터에 그리고 천동이는 곡산 수철점에 나가 있었으며, 살림집은 향청

부근에 깨끗한 기와집 두채가 나란히 있었다. 만동이는 달포에 한번씩이나 산에서 산에서

내려오고 천동이는 쇠를 캐고 다루고 하는 일이라 바쁠 것이 없어 곡산과 봉산을 오락가락

하였는데, 집에 와 있을 적이면 늘 객점에 나와서 동선관서 내려온 길산네 식구들과 장

기도

두고 투전도 놀면서 지냈다. 대근이 방에 들어가 앉았고 천동이가 중노미에게 술상 들이

라고 일렀다.

"그만두게 곧 중화 들고 떠나야지, 평양서 사처를 정해야 하거든."

"어이 성님두. 평양이라면 바로 재 너머 아닙니까. 날랜 말 타구 가시는데 잠깐이면 대동

가을 건너지요."

"아니, 내가 우두령과 약속을 하였네. 기다리구 있을 게야."

대근이 사양하였으나 이미 술상은 들어왔다. 대근은 최윤덕을 불러서 차인들에게 중화를

먹도록 이르고서 하는 수 없이 천동이와 대작하였다.

"자네 볼일은 제쳐두고 객점에 나와서 빈둥거리는가."

"예, 뭐 태생이 원래 장바닥 것이라 별수가 없습니다. 식구들이 다 알아서 잘들 해나가는데

저야 할 일이 있어야지요. 성님네 송방 차인들 뒷 시중이나 들어주고 수달피와 무명을

모으러 함흥 원산 나들이나 다녀오구 그럽지요."

"그래, 이번에 짐 보낼 게 있는가?"

"별거 없습니다. 언진산 잠채에 힘을 쏟느라구 겨우 수달피 사백 장입니다. 북포는 올해

목면이 흉작이라 손을 대지 않았지요. 그보다는 곡산 수철점에서 솥 나부랭이를 좀 내었

는데

관북으로 보낼 작정입니다."

"음, 산에서 자세한 얘길 들었네. 은은 언제부터나 쏟아져 나오겠나?"

"은도 있지만 사금이 나옵니다. 한양서 온 식구들이 사금 내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지금

모으고 있지요. 우리두 내년 부터는 관북으로 올라갈 작정입니다."

"관북도 물론 중요하지만 강변 칠읍이 기중 낫지. 심양에서 상로가 가깝고 그만큼 거래되는

물목이 다채로우니 시세에 따라 취택하기가 매우 유리하단 말일세."

"우리 큰 성님 께서 뭐라시던가요?"

"동지사행이 떠나기 전에 용만에 오기로 되었다네."

"성님이 의주엘가신대요? 아직 은을 낼 때가 아닌데 맨손으로 뮛허러 가실려구 그러나."

"나중에라두 벌여 놓을 좌판이라면 미리 앉을 터를 둘러봐야지. 나는 의주와 강계를 송도

보다두 더욱 요처로 알고 있네. "

"저어 북도 쪽은 정말 무인지경이지요 우리가 기껏 올라가봤자 길주 명천이 끝입니다. 그

거수 바닷가를 따라서지요. 안으로는 깊은 산맥이 첩첩이라 관에서도 조세두 못 받습니다.

하물며 두만강이나 백두산에는 발도 못들여 놓았ㅎ요."

"우리가 강계에 자리를 잡게 되면 자네들은 ㅍ연히 터전이 생기는 셈일세."

밖에서는 중화를 마친 차인들이 말을 내어 마구를 얹는다 짐을 꾸린다 법석이었고 윤덕이가

와서 말하였다.

"숙부님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래 이젠 일어서자."

그들은 말에 올랐고 천동이는 문밖에서 작별을 하였다

"수달피는 전에 보내주신 잠채 자본에서 제하십시오."

천동이가 말하였고, 대근은 껄껄 웃었다.

"자네가 이러저러할 일이 아닐세. 북관에 객점을 내려면 여러가지 밑천이 들 게야. 자네들

형제는 잠채 일만 잘하면 되지."

"알아 모시겠습니다."

봉산서 동서관을 빠져나가 황주 거쳐서 중화에 당도하니 이미 주위가 어두컴컴한데 행렬을

멈추지 않고 내쳐서 말을 몰아갔다. 행로는 백 삼십여 리 길이지만 모두가 말을 타고

가는

길이라 별로 피곤한 줄으 몰랐다. 기실 파발마는 쉬지 않고 달려서 한나절에 백리 지간의

역을 지나니 사람의 하루 행보의 세 갑절쯤 되는 셈이고 말을 역마다 바꾸어 타는 급파발에

의하면 삼백여 리를 질주할 수가 있었다.여진 옛땅에서 들여오는 호마는 천리마라 하여 쉬

지 않고 천리길을 달린다 하였다. 상단의 말이 비록 짐을 실었다 하나 과하마가 아닌 북방

말이라 지치지 않고 뚜걱뚜걱 잘도 걸었다. 이제 압록가을 건너서 요동 근방까지 나가야 할

말이라 상단서 젊은 놈들을 골라왔던 터였다.

한밤중에 장림서 대동강을 마주 대하니 멀리 강안에 등불들이 까물거렸고 사방 들판으로는

마을의 흩어진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서 반짝이고 있었다 동선령서 평양까지가 산도 별반도

없는 들판가운데 뚫린 직로라 서쪽의 대동강 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초겨울에 접어

든 것처럼 싸늘하고 차가웠다. 이제 입동을 며칠 앞두고 있으니 북으로 오를수록 날씨는 추

워질 것이었다. 일테면 겨울을 맞이하러 찾아가는 격이었다 먼저 말과 짐을 실어 건네고 학

선과 대근은 따로 강을 건넜다. 그들은 곧이어 성내로 들어가지 않고 우대용과 약속한 대동

역으로 로 갔다. 주막에 이르니 벌써 말발굽 소리와 두런두런하는 소리로 길가에는 어느 상

고인가 하여 객점주나 다른 상고들이 나와서 살피고 묻고 법석하였다.

"성님, 이제 오시는구려."

길가에서 누군가 말 아래로 달려들어 대근이 내려다보니 우대용과 낯익은 물치라는 도사

공이었다.

"그래, 좀 늦었네."

대근이 말에서 내리니 대용은 뒷전에 함께 서서 두리번거리던 객점주인에게 일렀다.

"저 앞에 향도 차인을 끌어 상단을 들이게."

"예, 알겠습니다."

주인이 달려갔고, 물치가 대근의 말고삐를 건네받으며 굽신하였다.

"평안하십니까, 좌장 어른."

"잘 있었나. 자넨 요새 송도에는 통 꿈쩍도 않데."

"예, 용만에 나가 있노라구 가 뵙지 못하였습니다."

물치가 고삐를 잡고 앞으로 가고 우대용고 박대근은 어깨를 나란히 주막으로 향하였다.

성내에는 고루거각(高樓巨閣)의 기생 주루가 있건만 대동역의 주막거리에는 여각의 창고

들과

봉놋방과 뱃사람 상대의 창기들이 있엇다.

"장두령 만나구 오는 길이슈?"

"만났소. 곧 의주로 오기루 되었지."

"거참 잘됐습니다."

"일찍 왔소?"

"우리네야 평양이 집동네인 셈이우. 남포에서 배를 띄워 밀물을 타면 급수문(急水門)을 넘

어서게 되고 보산보를 휘돌아 예까지 거슬러 오릅니다. 발에 흙 한점 묻혀본 적이 없수."

대근은 우대용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소싯적부터 갯가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울렁하여 멀미가 쳐오르는데, 내 일찍이

선상(船商)들과 경강에 들어갔다가 며칠 동안 두 다리가 허공을 휘젓는 듯하여 다시는

배를 타지 않을 작정을 하였지."

"나는 그 반대유. 육지에 올라 십 리만 걸어도 발에 물집이 잡히고 엄지발가락이 뒤틀리는

것만 같습니다. 성님만 아니면 우리 아이들 데리구 가도( 島) 선착장서 배를 띄우면 광량

만을 일시에 빠져나가 철산 앞바다에 이르고 곧 용암포에 닿지요. 바람이 건 듯 불어 돛

대가

조금이라도 비뚤어지면 요동입니다. 그야말로 남포서 배를 띄워 장산곶 물마루를 넘어 강

화에 이르는 것과 같은 거리요."

"잘되었군. 우두령 같은 천오 물귀신이 바야흐로 천릿길을 내왕하게 되었으니, 이제 각처의

산신들이 코를 싸쥐고 달아날 게야."

"코를 싸쥐다니 그게 무슨 말이우?"

"비린 갯것이 올랐으니 산신인들 당할 재간이 있겠소?"

두 사람은 농지거리로 웃으면서 객점에 들어섰다. 참으로 대동강변의 여각 객주는 전국에

서도 유명하여 거래의 양이 기백만 냥에 달하였고, 육로의 상고들뿐 아니라 의주와 경강서

내달아 오는 선상들이 초곡방 한내포에 모여들어 각 장시로 물건을 방매하였다. 대동강

변뿐 아니라 중화의 연골개, 열림개, 곤양포의 소금 객점과, 강서의 소금, 삼포와 증산의 면

화 잡곡 객점이며, 광주의 목면과 잡화 객점이 있었고 이름난 장터만 하여도 십여 곳이나

되었다.

가히 서경(西京)이라 유명한 장으로는 한내(漢川)와 태팽이(太平)가 알려져 있었다. 그외

에도 무진장, 모래내, 원장, 원바우, 장수원장, 배나무장, 긴오개, 용못장 등이 있었다. 한내에

서는 어물과 새우젓과 소금을 다루기가 마포 동막과 비슷하고, 나막신 광주리 돗자리 바구

니 등의 초물(草物)과 미곡 무명 면화 등물이 근 만 냥에 이르게 거래되었다. 한내장은 평양

서 서북으로 백 리 못 미쳐서 초곡방에 있었는데, 평양에서의 물가와 객점의 구문은 한내를

기준으로 하였다. 태팽이는 강에 접하여 어물 조개 소금이 흔한 것과는 달리 내륙에서

닿는 미곡과 무명과 면화가 주요 품목이었디. 무진장 역시 그 두 장에 버금 가는 장으로 밤

골에 있는데 내륙의 산물을 다루었다. 여하튼 평양부 인근에만 십여 곳의 큰 장시가 있어서

다른 지방 물화의 수십 배가 몰려들어 거래되었다. 이곳은 또한 경강 상인에게나 송상에게

나 북로에 닿는 중간 집결지인 셈이었다.

객점 안에 들어서니 부엌에서는 너비아니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즐비하게 붙은 방마다 숯이

벌겋게 단 청동 화로가 들여지는 중이었다. 차인들과 객점 곁꾼들은 말을 마구간에 끌어

넣고 짐을 풀어서 봉놋방으로 날라다 쌓아두고 짐의 수효를 점검하느라고 외치고 야단법석

들을 하였다. 곧이어 패랭이 차림에 개가죽 배자 든든히 껴입고 행색에도 장사치임을 꺼

리지 않는 듯한 사내들이 들어서는데 곧 한내에 나와 있는 대근네 송방 사람들이었다. 다른

지방 같으면 송방 차인의 두령만 되어도 갓이요 중치막이요 중인 시늉을 내게 마련이나, 평

양에서는 역시 상고와 돈이 귀한 줄을 알아서 장시치들도 기방에 가면 글 하는 선비와 다를

바 없이 환영을 받던 것이다. 사내들이 차인들게 묻더니 곧 박대근과 우대용이 들어앉은

사랑에 와서 뵈었다.

"좌장 어른 납시었습니까."

"음, 잘 왔네. 여기서 무어 낼 물건이라두 있던가?"

"그래 알았네. 차후로 봉산 천동이 형제 식구들이 기별을 할 걸세, 지체없이 의주로 넘기

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구 이곳 경비는 저희 평양 송방 차지이오니 심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

시오."

"그럴 것까지지야 있겠나. 다 서로간에 자립하여야지."

"아니올시다. 이곳 객점주와는 지난 가을의 경강 미곡 주문이 아직 해결이 안되었으니 이번

숙박으로 일부 지워질 것입니다. 저희 차인 동무들께도 푸짐하게 술 대접을 하렵니다."

"고마우이. 이번에 윤행수는 남로에 내려가게 되었네. 새로 의주로 나가는 행수가 나하구

동행이니 인사하도록 하게나."

"예, 아까 행수께서 먼저 저희를 알아보시고 이따가 자리를 함께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허, 빠르기가 비호 같구먼."

대근은 대수롭잖게 중얼거리면서도 내심으로는 윤덕의 그런 태도에 은근히 기뻐하였다.

윤덕이는 아마도 행로에 대하여 차인들에게 자세히 묻고, 평양이 어떠한 고장이며 상고

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특히 의주 행상로에서는 가장 주요한 길목임을 누누이 들었던 모양이

었다.

평양 송방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는 먼저 알은 체를 하며 스스로 행수임을 밝힌 것이다.

대근은 생각하기를, 윤덕이 고지식하고 대범한 것 같지만 일에는 신실함이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런 뚝심과 성실성으로 의주의 송방을 일으켜 세우고 강계에 서북

상로의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대근은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내가 잠상에서는 우두령 덕을 입겠지마는, 이제 중강의 문을 열게 될 적에는 우리 덕을

입게 될 게야."

우대용은 박대근의 말을 듣고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물었다.

"그야 물론..... 내야 물길이나 살피는 뱃놈이니 천생 도주공 범여와 같으신 성님은 못 따를

테지요. 허나 뭘 믿구 그렇게 큰소리를 치시우?"

"저 사람 좀 보우. 우리 상단의 대들보감이오."

대용이 잠시 어른거리는 등롱 아래서 오락가락하며 차인들에게 지시하는 윤덕이를 내다보

았다.

"아, 연전에 장들였다던 그 총각아이 아닙니까?"

"그래, 나는 저 아이를 의주와 강계의 송방 행수로 정해다오."

하고 나서 그제서야 대근은 윤덕이 언실이 부부가 삼포에서 삼을 내게 된 것과 그에게 인삼

삼백 근이 있음을 알려주고 강계에서 우선 삼포를 갈게 된 것까지 이야기해주었다. 대

용은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인삼을 그렇게 한꺼번에 낼 수 있다면 이미 무역은 성님 손아귀에 있수. 내가 용암포 인

근에 박성대를 내보내어 마안도에서 청상들과 잠무역을 해보았지만, 지물과 피물이 고작

이우."

"어떻게 생각하오? 내가 사행을 따라서 책문에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겠소? 우두령을 통하여

직접 청상과 거래하면 어떨지...."우대용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림도 없수. 마안도에 나오는 청상이란 대개가 심양에 가서 물건을 조금씩 떼어다가 잠

상에 나오는 봉황성의 양민이라, 거금을 가지고 유리한 물목을 내오는 무역상과는 다르

지요.

그들의 취급 품목은 대개가 박물이나 비단 등속이니, 이는 값이 비싸고 부피가 작아서 범

금의 눈을 피하여 작은 배에 싣고 나오기가 쉽기 때문이우. 일단 책문으로 들어갑시다.

가서

청상과 통하고 기중 큰 상고와 줄을 대면 우리 쪽에서 장소를 지정할 수가 있수. 그런 자

라면 중강에도 역시 닿을 수가 있고. 마안도에서 나올 수 있을 겝니다."

"우리는 책문에 들어가서 우선 빌린 은으로 백사를 사야 하오. 그리고 수달피도 팔아 넘길

작정이오. 그리고 인삼은 은밀히 물주를 찾으며 기다렸다가 사행이 떠나간 뒤에 비단과

남방 약재와 옥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석류황을 들여와야지."

대근이 말하자 우대용은 다른 의견을 내었다.

"유황민은 책문에서 들여와서는 안될 게요. 워낙 범금이 엄중한 것이라 다른 품목은 다

눈감아준다 할지라도, 청인들 가운데 뒷전에서 넌지시 관인에게 알리는 자가 있을 거유. 오

히려 그것만은 따로이 은을 준비하여 마안도에서 바꿔 오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학선이가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섰다. 우대용이도 전에 덕을

본 적이 있었고, 송도에 가면 가보잡기도 몇번 같이 했던 적이 있어서 반가워하였다.

"어찌 이사또가 사행 상단엘 다 끼여들었누?"

우대용이 웃으며 말하니 대근이 입을 벌리기 전에 학선이가 한마디 하였다.

"제길헐... 대전(貸錢)이나 할까 하구 좌장 성님께 따라붙었는데, 곁에서 돌아가는 눈치를

보니 이건 고대광실 끄트머리에 행랑살이로군."

"얼마 있는데?"

"자그마치 천오백 냥."

대근은 대용과 학선의 오가는 말을 듣고 앉았다가 하는 수 없이 말하였다.

"내가 자네 꼬리 대는 것이 괘씸하여 가만있었네만, 미우나 고우나 이제는 한식구가 되었

으니 좋은 것을 알려주지. 그 돈으로 우리 차인들게 대전하지 말고 아예 우두령에게 부탁

하여 잠상을 한번 해보게나."

"어이구 참 이제서야 그렇게 나오신단 말요? 소나기가 내려도 처마밑에 비 피하는 길손을

안으로 들이는 법인데, 진작 그러셔야지. 또 이가 남으면 저만 먹습니까. 저리로 맡긴 행

상아치들께두 고루 돌아가얍죠."

대근이 얼른 학선의 입막음 하느라고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우두령이 마안도 건너갈 제 이사람돌 대려다가 청상에 대어주지."

"그러지요, 헌데 뭘 원하시우?"

"글세 내야 뭘 알아야지. 그저 바늘 시세가 좋단 말만 들었거든."

"내가 몇가지 알려드릴까. 우리가 강화에 객점이 있어 한양의 시세에 훤하여 이르는 말이오.

무역이 아니고 혼자서 이를 취하려면 부디 당약재나 박물을 취하시우. 대모 황옥 물소뿔

녹용등이 모두 종류 애오개에서 고가로 팔립니다. 그중에 물소뿔은 물량이 딸려서 천오백

냥이 삼사천 냥으로 불어날 게요."

"허, 세상이 거꾸로구먼. 바람이나 보고 물길을 더듬는 이가 송도 상단의 좌장 되는 이보다

상리를 깨우쳤으니."

그러나 우대용은 학선에게 말하였다.

"잠상으로 사치품이나 들여다가 한양 권세가의 집안 치장이나 해주는 장사는 한정이 있는

법이고, 성님의 인삼 무역은 바야흐로 국내의 상권을 모두 그러쥐게 될 판이라 우리와는

규모가 다르오." 학선이가 불쑥 물었다.

"어디 한번 이런 말이 나온 김에 좀 알아봅시다. 그 많은 돈을 벌어 송도 상단이나 살찌

워서 장차 뭘 어찌하겠다는 말씀이우?"

"너두 잘 알지 않느냐?"

"내가 무엇을 알우. 길산이처럼 활빈한다는 거요?"

우대용과 박대근은 서로 시선을 나누었고 대근이 말하였다.

"네가 어느날, 정말 어사가 되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방 수령이 없는가 암행 규찰하러

떠나는 날이 왔으면 하지."

"까짓 거 한번 시켜만 보시구려. 내 눈썰미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윤덕이와 물치가 들어왔고 곧 뒤이어 늦은 저녁상이 들어왔다. 화로위에는 열구자가 올려

있고, 탕이 끓고 있었다. 동치미가 올랐으며 술은 평양서 유명한 감홍로가 나왔다. 먼

길에

찬바람 쐬며 달려왔으니 그동안 뜨거운 오놀 아랫목에서 몸이 푸근히 녹았건만 술과 열구

자탕으로 그제서야 뱃속의 한기가 녹는 것 같았다. 기장이 나우 섞인 밥이지만 온갖 해

물과 푸성귀가 들어 있는 탕맛이 그만이었다. 대근은 다시 동치미를 사발째로 들고 벌컥벌

컥 마섰다.

"하여튼지 평양 오면 음식치레가 까다롭지 않고 푸짐하여 좋거든."

"너무 대범하지요."

물치가 말하는데 그는 한양 사람이었다. 학선이도 참견하였다.

"내가 조선 팔도를 두루 다녀봤는데 여기는 한가지 맛난 것만 있으면 다른 것은 놓지두

않거든. 우족탕이면 그거, 만두면 달랑 그뿐이야. 대신에 어딜 가든 양껏이야."

밥은 대강 비워버리고, 다시 탕을 청하여 열구자에 부어서 끓이면서 그들은 감홍로를 서로

주고받았다. 상고의 기쁨이란 먼길을 달려와서 낯선 객점의 밥상머리에 둘어앉아 주고

받는

술맛에 있었다. 우대용이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최윤덕에게 잔을 내밀었다.

"최행수 한잔 받게. 나 우대용이여."

윤덕이는 얼른 자세를 고치며 두 손으로 받았다.

"몰라 뵙고 결례하였습니다. 윤덕이라구 합니다."

"음, 자네 숙부와 나는 의형의제 사이라네. 다 한식구니까, 어렵게 생각 말게."

하면서 물치를 돌아다보니 그느 비죽이 웃었다.

"염려 마우. 성님보다두 먼저 아까 마당에서 수인사로 통했지요."

 

가히 서경(西京)이라 유명한 장으로는 한내(漢川)와 태팽이(太平)가 알려져 있었다. 그외

에도 무진장, 모래내, 원장, 원바우, 장수원장, 배나무장, 긴오개, 용못장 등이 있었다. 한내에

서는 어물과 새우젓과 소금을 다루기가 마포 동막과 비슷하고, 나막신 광주리 돗자리 바구

니 등의 초물(草物)과 미곡 무명 면화 등물이 근 만 냥에 이르게 거래되었다. 한내장은 평양

서 서북으로 백 리 못 미쳐서 초곡방에 있었는데, 평양에서의 물가와 객점의 구문은 한내를

기준으로 하였다. 태팽이는 강에 접하여 어물 조개 소금이 흔한 것과는 달리 내륙에서

닿는 미곡과 무명과 면화가 주요 품목이었디. 무진장 역시 그 두 장에 버금 가는 장으로 밤

골에 있는데 내륙의 산물을 다루었다. 여하튼 평양부 인근에만 십여 곳의 큰 장시가 있어서

다른 지방 물화의 수십 배가 몰려들어 거래되었다. 이곳은 또한 경강 상인에게나 송상에게

나 북로에 닿는 중간 집결지인 셈이었다.

객점 안에 들어서니 부엌에서는 너비아니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즐비하게 붙은 방마다 숯이

벌겋게 단 청동 화로가 들여지는 중이었다. 차인들과 객점 곁꾼들은 말을 마구간에 끌어

넣고 짐을 풀어서 봉놋방으로 날라다 쌓아두고 짐의 수효를 점검하느라고 외치고 야단법석

들을 하였다. 곧이어 패랭이 차림에 개가죽 배자 든든히 껴입고 행색에도 장사치임을 꺼

리지 않는 듯한 사내들이 들어서는데 곧 한내에 나와 있는 대근네 송방 사람들이었다. 다른

지방 같으면 송방 차인의 두령만 되어도 갓이요 중치막이요 중인 시늉을 내게 마련이나, 평

양에서는 역시 상고와 돈이 귀한 줄을 알아서 장시치들도 기방에 가면 글 하는 선비와 다를

바 없이 환영을 받던 것이다. 사내들이 차인들게 묻더니 곧 박대근과 우대용이 들어앉은

사랑에 와서 뵈었다.

"좌장 어른 납시었습니까."

"음, 잘 왔네. 여기서 무어 낼 물건이라두 있던가?"

"그래 알았네. 차후로 봉산 천동이 형제 식구들이 기별을 할 걸세, 지체없이 의주로 넘기

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구 이곳 경비는 저희 평양 송방 차지이오니 심려 놓으시고 편히 쉬십

시오."

"그럴 것까지지야 있겠나. 다 서로간에 자립하여야지."

"아니올시다. 이곳 객점주와는 지난 가을의 경강 미곡 주문이 아직 해결이 안되었으니 이번

숙박으로 일부 지워질 것입니다. 저희 차인 동무들께도 푸짐하게 술 대접을 하렵니다."

"고마우이. 이번에 윤행수는 남로에 내려가게 되었네. 새로 의주로 나가는 행수가 나하구

동행이니 인사하도록 하게나."

"예, 아까 행수께서 먼저 저희를 알아보시고 이따가 자리를 함께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허, 빠르기가 비호 같구먼."

대근은 대수롭잖게 중얼거리면서도 내심으로는 윤덕의 그런 태도에 은근히 기뻐하였다.

윤덕이는 아마도 행로에 대하여 차인들에게 자세히 묻고, 평양이 어떠한 고장이며 상고

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특히 의주 행상로에서는 가장 주요한 길목임을 누누이 들었던 모양이

었다.

평양 송방 사람들이 나타나자 그는 먼저 알은 체를 하며 스스로 행수임을 밝힌 것이다.

대근은 생각하기를, 윤덕이 고지식하고 대범한 것 같지만 일에는 신실함이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여겼다. 어쩌면 그런 뚝심과 성실성으로 의주의 송방을 일으켜 세우고 강계에 서북

상로의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터였다. 대근은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내가 잠상에서는 우두령 덕을 입겠지마는, 이제 중강의 문을 열게 될 적에는 우리 덕을

입게 될 게야."

우대용은 박대근의 말을 듣고서 빙글빙글 웃으면서 물었다.

"그야 물론..... 내야 물길이나 살피는 뱃놈이니 천생 도주공 범여와 같으신 성님은 못 따를

테지요. 허나 뭘 믿구 그렇게 큰소리를 치시우?"

"저 사람 좀 보우. 우리 상단의 대들보감이오."

대용이 잠시 어른거리는 등롱 아래서 오락가락하며 차인들에게 지시하는 윤덕이를 내다보

았다.

"아, 연전에 장들였다던 그 총각아이 아닙니까?"

"그래, 나는 저 아이를 의주와 강계의 송방 행수로 정해다오."

하고 나서 그제서야 대근은 윤덕이 언실이 부부가 삼포에서 삼을 내게 된 것과 그에게 인삼

삼백 근이 있음을 알려주고 강계에서 우선 삼포를 갈게 된 것까지 이야기해주었다. 대

용은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인삼을 그렇게 한꺼번에 낼 수 있다면 이미 무역은 성님 손아귀에 있수. 내가 용암포 인

근에 박성대를 내보내어 마안도에서 청상들과 잠무역을 해보았지만, 지물과 피물이 고작

이우."

"어떻게 생각하오? 내가 사행을 따라서 책문에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겠소? 우두령을 통하여

직접 청상과 거래하면 어떨지...."우대용은 고개를 내저었다.

"어림도 없수. 마안도에 나오는 청상이란 대개가 심양에 가서 물건을 조금씩 떼어다가 잠

상에 나오는 봉황성의 양민이라, 거금을 가지고 유리한 물목을 내오는 무역상과는 다르

지요.

그들의 취급 품목은 대개가 박물이나 비단 등속이니, 이는 값이 비싸고 부피가 작아서 범

금의 눈을 피하여 작은 배에 싣고 나오기가 쉽기 때문이우. 일단 책문으로 들어갑시다.

가서

청상과 통하고 기중 큰 상고와 줄을 대면 우리 쪽에서 장소를 지정할 수가 있수. 그런 자

라면 중강에도 역시 닿을 수가 있고. 마안도에서 나올 수 있을 겝니다."

"우리는 책문에 들어가서 우선 빌린 은으로 백사를 사야 하오. 그리고 수달피도 팔아 넘길

작정이오. 그리고 인삼은 은밀히 물주를 찾으며 기다렸다가 사행이 떠나간 뒤에 비단과

남방 약재와 옥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석류황을 들여와야지."

대근이 말하자 우대용은 다른 의견을 내었다.

"유황민은 책문에서 들여와서는 안될 게요. 워낙 범금이 엄중한 것이라 다른 품목은 다

눈감아준다 할지라도, 청인들 가운데 뒷전에서 넌지시 관인에게 알리는 자가 있을 거유. 오

히려 그것만은 따로이 은을 준비하여 마안도에서 바꿔 오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학선이가 헛기침을 하면서 들어섰다. 우대용이도 전에 덕을

본 적이 있었고, 송도에 가면 가보잡기도 몇번 같이 했던 적이 있어서 반가워하였다.

"어찌 이사또가 사행 상단엘 다 끼여들었누?"

우대용이 웃으며 말하니 대근이 입을 벌리기 전에 학선이가 한마디 하였다.

"제길헐... 대전(貸錢)이나 할까 하구 좌장 성님께 따라붙었는데, 곁에서 돌아가는 눈치를

보니 이건 고대광실 끄트머리에 행랑살이로군."

"얼마 있는데?"

"자그마치 천오백 냥."

대근은 대용과 학선의 오가는 말을 듣고 앉았다가 하는 수 없이 말하였다.

"내가 자네 꼬리 대는 것이 괘씸하여 가만있었네만, 미우나 고우나 이제는 한식구가 되었

으니 좋은 것을 알려주지. 그 돈으로 우리 차인들게 대전하지 말고 아예 우두령에게 부탁

하여 잠상을 한번 해보게나."

"어이구 참 이제서야 그렇게 나오신단 말요? 소나기가 내려도 처마밑에 비 피하는 길손을

안으로 들이는 법인데, 진작 그러셔야지. 또 이가 남으면 저만 먹습니까. 저리로 맡긴 행

상아치들께두 고루 돌아가얍죠."

대근이 얼른 학선의 입막음 하느라고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우두령이 마안도 건너갈 제 이사람돌 대려다가 청상에 대어주지."

"그러지요, 헌데 뭘 원하시우?"

"글세 내야 뭘 알아야지. 그저 바늘 시세가 좋단 말만 들었거든."

"내가 몇가지 알려드릴까. 우리가 강화에 객점이 있어 한양의 시세에 훤하여 이르는 말이오.

무역이 아니고 혼자서 이를 취하려면 부디 당약재나 박물을 취하시우. 대모 황옥 물소뿔

녹용등이 모두 종류 애오개에서 고가로 팔립니다. 그중에 물소뿔은 물량이 딸려서 천오백

냥이 삼사천 냥으로 불어날 게요."

"허, 세상이 거꾸로구먼. 바람이나 보고 물길을 더듬는 이가 송도 상단의 좌장 되는 이보다

상리를 깨우쳤으니."

그러나 우대용은 학선에게 말하였다.

"잠상으로 사치품이나 들여다가 한양 권세가의 집안 치장이나 해주는 장사는 한정이 있는

법이고, 성님의 인삼 무역은 바야흐로 국내의 상권을 모두 그러쥐게 될 판이라 우리와는

규모가 다르오." 학선이가 불쑥 물었다.

"어디 한번 이런 말이 나온 김에 좀 알아봅시다. 그 많은 돈을 벌어 송도 상단이나 살찌

워서 장차 뭘 어찌하겠다는 말씀이우?"

"너두 잘 알지 않느냐?"

"내가 무엇을 알우. 길산이처럼 활빈한다는 거요?"

우대용과 박대근은 서로 시선을 나누었고 대근이 말하였다.

"네가 어느날, 정말 어사가 되어 백성들을 괴롭히는 지방 수령이 없는가 암행 규찰하러

떠나는 날이 왔으면 하지."

"까짓 거 한번 시켜만 보시구려. 내 눈썰미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윤덕이와 물치가 들어왔고 곧 뒤이어 늦은 저녁상이 들어왔다. 화로위에는 열구자가 올려

있고, 탕이 끓고 있었다. 동치미가 올랐으며 술은 평양서 유명한 감홍로가 나왔다. 먼

길에

찬바람 쐬며 달려왔으니 그동안 뜨거운 오놀 아랫목에서 몸이 푸근히 녹았건만 술과 열구

자탕으로 그제서야 뱃속의 한기가 녹는 것 같았다. 기장이 나우 섞인 밥이지만 온갖 해

물과 푸성귀가 들어 있는 탕맛이 그만이었다. 대근은 다시 동치미를 사발째로 들고 벌컥벌

컥 마섰다.

"하여튼지 평양 오면 음식치레가 까다롭지 않고 푸짐하여 좋거든."

"너무 대범하지요."

물치가 말하는데 그는 한양 사람이었다. 학선이도 참견하였다.

"내가 조선 팔도를 두루 다녀봤는데 여기는 한가지 맛난 것만 있으면 다른 것은 놓지두

않거든. 우족탕이면 그거, 만두면 달랑 그뿐이야. 대신에 어딜 가든 양껏이야."

밥은 대강 비워버리고, 다시 탕을 청하여 열구자에 부어서 끓이면서 그들은 감홍로를 서로

주고받았다. 상고의 기쁨이란 먼길을 달려와서 낯선 객점의 밥상머리에 둘어앉아 주고

받는

술맛에 있었다. 우대용이 두리번거리다가 얼른 최윤덕에게 잔을 내밀었다.

"최행수 한잔 받게. 나 우대용이여."

윤덕이는 얼른 자세를 고치며 두 손으로 받았다.

"몰라 뵙고 결례하였습니다. 윤덕이라구 합니다."

"음, 자네 숙부와 나는 의형의제 사이라네. 다 한식구니까, 어렵게 생각 말게."

하면서 물치를 돌아다보니 그느 비죽이 웃었다.

"염려 마우. 성님보다두 먼저 아까 마당에서 수인사로 통했지요."

그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북방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이튿날 새벽에 우대용이가 끼여서

대근네 상단은 북으로 출발하였다. 우대용은 말을 타는 것은 걷는 것보다도 서툴러서 처음

에는 고삐를 잡고 쩔쩔맸지만 곁꾼이 견마를 거들었으므로 오후에는 곧 익숙해졌다. 숙천

에서 중화를 먹고 안주를 향하여 떠나는데 희끗희끗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젯밤

평양서 먹던 열구자탕 생각이 간절한데, 이제 안주에 당도하여 청천강을 건너면 목적지에

다 이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두들 피로한 줄 모르고 안장 위에 매달려 있었다.

안주는 바로 묘향산맥의 멧부리가 바다를 향하여 달리다가 멎어버린 발치쯤에 있는 고장

이었다. 그들이 당도한 것은 평양에서보다는 이른 시각이었으되 이미 저녁밥때는 놓쳐버린

뒤였다. 대근은 상로에 나다닌 것이 몇해 지나 있었고, 더구나 우대용은 육로가 초행이어서

아무 주막이나 찾아들어갔다.

모두들 짐을 풀로 나서 늦은 저녁을 드는데, 날씨가 어제보다는 많이 풀려 있었다. 대근과

우대용이 한방에 들고 학선이는 저희 졸개들과 그리고 윤덕이와 물치는 차인들과 봉노에

나가 있었다. 그들은 평양에서와는 달리 일찍들 구들목을 지고 누웠는데, 우대용은 육

로가 처음이라 몸이 천근같이 무거워져서 드러눕자마자 코를 골며 떨어져버렸던 것이다.

객주 주인은 대충 정리를 하고 나서 뒤로 돌아가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두 사내가 곰방

대를 태우고 있었는데 주인이 문을 열자 한 사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뭘 그렇게 꾸물거려. 밤새 먼길 달려갈 사람 생각두 해줘야지."

그는 두툼한 솜누비 배자에 토끼털을 댄 토시를 두 팔뚝에 끼고 얼굴이 길죽한 사내였고,

다른 하나는 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으며 아까 상고들의 말을 익숙하게 마구간에 몰아 넣던

사내였다.

"사행 나가는 상단이 틀림없지요?"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틀림없는 것 같네. 송도서 나왔다더군."

주인이 말하자 나이 든 사내가 다시 물었다.

"뭐 호종 무사나 포수나, 병장기를 가진 것두 없지?"

"글세 뭘 믿구들 그러는지 모두가 맨손이야. 그 좌장이라나 하는 놈 혼자 창포검을 가진 게

고작이야."

"모두 몇 명이지?"

"좌장놈하구, 행수라는 애숭이, 또 시커먼 놈, 또 하나 좌장하구 같이 자는 놈, 양반 비슷

하게 생긴 놈, 모두 다섯이고 차인들이 스물이 채 못 됩니다."

"오랜만에 청천강 목을 지킨 숭어횟값이라두 하겠구먼. 우리끼리 해치워버리자구."

얼굴 긴 사내가 말하였고 주인은 객점에서 막바로 일을 벌이자는 줄로 알았는지 손을 홰홰

내저었다.

"아니, 이 집에서는 못하네. 그렇잖아도 이 객점엔 웬 군식구가 그리 많으냐고 다른 집에서

수군거리는데. 여하튼 자네 둘이서는 일을 못 치르겠던데."

"우리 둘이서야 안되겠지만, 개천 나와 있는 식구들이 삼십여 명 되니까, 그중에 열 명만

병장기 들고 쫓아와도 칼 끝에 비린 냄새 안 묻히고 봉물을 먹을 수가 있을 게야."

"그럼 뭘 꾸물거리나. 냉큼 다녀오지 않구."

주인이 재촉하자 나이 든 사내가 젊은이에게 일렀다.

"산에 가서 자세히 알리고, 날 새기 전에 강건너 장수산 밑에 당도하도록 일러라. 사행 상

고라면 큰산에서도 꿈도 못 꿀 큰 재물이다."

"말 하나 내주오."

젊은이가 일어났다. 주인은 그를 끌고 마구간에 가서 세마로 있던 북방마 한 마리를 내주

었고 젊은 사내는 조용히 말을 끌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일찍이 묘향산에 은거해 있던 서용의 안주 객점 식구들이었다. 용이는 예전 김선

일처럼 땅을 잃고 부모에 이끌려 광산 잠채터에 들어가 돌 쇠 골라내는 일로 밥을 얻어먹

다가, 기골도 커지고 꾀도 생기니 그들 잠채꾼들과 유리하던 장정들을 모아 향산 보현봉

아래 은거하였던 것이다. 그의 식구들은 거의 백여 명에 이르렀는데, 청천간 이북에서는 가

장 세력이 강고하였다. 서용의 향산 녹림당은 영변 개천 안주에 객점과 토막이 있었으며, 특

히 개천 건지산에는 수철점을 열고 있었고 묘향산맥의 깊은 골에서 서쪽에 잇달아 있는 박

천 정주 곽산 선천 등지로 출몰하였다. 서용이 도당을 모은 것은 이제 겨우 삼 년이 지났으

며, 워낙 관서의 지세가 좋고 관군의 힘이 고루 미치지 못하여 그토록 세차게 일어날 수가

있었다.

서용은 그가 일개 잠채꾼으로 고생하고 있을 적부터 낭림산맥의 잠채터를 뒤집은 길산의

이름자를 들은 적이 있었고, 더구나 그가 해서에서 활빈행을 벌인 것은 남북으로 오르

내리는 수많은 행상이나 유민들의 입을 통하여 전해듣고 있었다. 실로 장길산은 그들 녹림

패들에게는 언제든 한번 만나서 생김새라도 보는 것이 원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장

길산은 강원 함경도에도 식구들을 내보냈고, 일찍이 강말득을 향산에 보내어 서용을 찾

았던 적도 있었다. 말득의 전언에 의하면 길산은 산에서 남의 것이나 빼앗아 호강하려는

무도한 도적패가 아니라, 부자의 재산은 반분하고 탐과의 것은 몰수하여, 끼니가 어려운 백

성들을 돕고 나아가서는 모든 관리를 한양으로 쫓아버리자는 얘기였고, 그러기 위하여는 각

지방의 녹림당이 서로 연계를 짜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테면 서로 등을 기대어 관군이 허점을 찌르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는 얘기였다. 서용은

수하의 소두령들과 의논하고 길산에게 의형의제가 되겠다는 말을 전하였다. 누구나 길산의

감영 옥에서의 탈출로부터 그의 해서에서의 신출귀몰하던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껏 부풀려서

들어왔던 중이라, 그를 팔도 녹림다의 총 장수로서 의심치 않았던 터였다. 더구나 서용은 그

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도안스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권유를 받기까지 했었다. 서용은 그의

부하를 지난 여름에 언진산에 나가 있던 길산에게 보내어 자신이 그의 아우임을 자청하였

었다.

안주 주막의 정탐꾼은 밤중에 말을 달려서 개천 건지산 아래 수철점으로 갔다. 산채가 아

니고 쇠를 내는 곳이라 모두들 방안에서 자고 있었는데, 졸개는 건지산 번수를 깨웠다. 졸

개가 안주에서 달려온 까닭을 설명하니 번수는 쾌재를 부르는 것이었다.

"저들이 의주로 가는 길인즉 새벽에 길을 떠날 것이다. 청천강을 건너면 다시 나루머리까

지 삼십 리 길이 무인지경이지. 얼른 털어먹고 돌아와 아침을 지어 먹을 만하겠고나. 그야

말로 껍질 벗긴 황구의 뒷다리로다."

박대근 일행은 객점을 나와 백상루 쪽으로 올라갔다. 백상루를 지나면 곧 나루가 되는 것

이다. 아직 주위는 어둑어둑한데 안개가 강변에 드리워져 있었고 나루 위로는 강의 아래

위로 두 섬이 떠 있어서 마치 호수처럼 강물이 잔잔하였다. 오리떼들도 일찍 나와서 아침

거리를 잡노라고 물장구 소리와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천강 나루에는 크고 작은 배

들이 즐비한데 그들은 거룻배를 불러 탔다. 두 대의 거룻배가 사람과 말과 짐을 번갈아 실

어나르니 잠깐 사이에 풍남 나루에 닿았다. 청천강은 그 근원이 묘향산에서 흘러나오는데,

옛적부터 살수라 하여 청남은 동서가 짧고 청북은 끝간데 없이 길어서 실로 북방과 가르는

요충의 경계선이 되었다. 서쪽으로 삼십여 리를 흘러내려가면 박천강과 합쳐져서 바다로 들

어간다.

강변의 짙은 송림 사이로는 밥짓는 연기들이 파랗게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이십오 리를

나아가야 박천강을 건너는 나루머리에 당도하게 되어 있었다. 박천강을 건너자마자 가산이

었다.

당일 목적지가 정주였으니 어제보다는 일정이 훨씬 가뿐하게 여겨졌다. 풍남나루에서 나

루머리의 박천강 강변까지 가는 길은 대개 길이 평탄하고 풍광이 수려하였다. 특히 장수

산과

송림산이 두 강변을 따라 늘어서 있었으며 마른 왕골로 덮인 들판이 모래사장 너머로 광

대하게 펼쳐졌다. 적현과 장수산 고개도 작은 언덕이라 대개 아침나절에 안주 떠나오는 사

람들은 행렬을 갖추는 데 소홀하기가 쉬웠다. 그것은 나루머리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박천

강을 건너야 하고 종내에는 가산 지경에 가서야 일행이 모두 정돈되던 때문이었다.

간밤에 건지산 수철점에서 떠나온 향산 패거리들은 모두 열두엇이 되었다. 그들은 아직

칠성이 보일 때 나서서 오십 리 길을 걸어와 약속된 대로 장수산 아래 와서 송림 속에 은

신해 있었다. 정탐하던 자의 얘기대로 상단에 병장기가 고작 창포검 한 자루라고 알고 있었

으므로 그들은 모두 짜른 쇠몽치 몇자루를 가지고 나섰다.

대근과 대용이 먼저 나루를 건너와서 지뫄 말이 다 건너오는 것을 보고야 일어나 자기 말에

올랐는데, 낯익은 사내 하나가 굽신하면서 말 옆을 따르는 것이었다.

"자네가 누구던가?"

대근이 물으니 사내는 굽신거리며 말하였다.

"예예, 아까 그 객점의 곁꾼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가산 다녀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상단에

끼여 건너면 뱃삯이 절약되거든요."

대근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천천히 말을 타고 가는 그들의 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잰 걸음으로 따라왔다. 적현을 지날 때 대근은 다시 말을 세

우고 뒤의 일행을 기다렸다.

송림 사이로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 말짐의 행렬리 보이자 대근과 대용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서 고개를 내려갔다. 입김이 허옇게 빠지고 있었건만 구름이 나직하게 드리워진 날

씨는 제법 푸근하게 느껴졌다. 적현서 장수산 고갯마루까지는 거의 십 리 길인데 가운데쯤

에 박천 대 정강으로 빠지는 작은 시내가 있었다. 그들은 저만큼 앞에서 재빠르게 뛰어가는

객점의 곁꾼 사내를 무심코 보았을 뿐이었다. 두 사람을 선두로 윤덕이가 향도 차인과 왔

고 그 뒤로 바짝 붙어서 말짐들이 따랐으며 물치는 학선이네 식구들과 맨 뒤에서 농을 주고

받으며 따라왔다. 아마도 안주에서 나루 건너오는 행객은 대근네 상단이 처음인 듯싶었다.

숲 사이에는 안개가 낮게 깔려서 스물대며 기어다니고 있었다. 시내는 가녘에 화얀 실얼음

이 엷게 붙어 있을 뿐 가운데로는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또랑또랑 흘러

내려갔다.

주막에서 따라붙었던 사내는 행렬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제는 힘껏 내달려서

장수산 고개로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올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먼저 보냈던 자의 이름을

불러대니 송림 사이에서 여럿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는 건지산 번수에게 허리를 굽혀 보

였다.

"바로 요 앞의 송림천에까지 왔수. 맨 앞에 오는 자들이 졸연치 않아 보입니다. 아마 상단의

물주이거나 무슨 호종으로 보입디다."

"그자들이 지나가고 나서 먼저 재빨리 물건부터 빼앗은 뒤에, 달려드는 자들을 차례로 때려

쫓으면 감히 다시 덤벼들지 못할 거요."

"그래, 큰산 성님께서두 기뻐하실 게다. 자, 그러면 빨리 움직여라. 앞서 가는 자들은 나와

자네가 맡고, 너희들은 일시에 달려들어 사람을 말과 봉물에서 떼어놓고 나서 짐만 빼

앗아 반대편 심원산 봉수로 가는 등성이루 내질러라. 우리 둘이는 적당히 빠져나가 언무정

앞에서 기다릴 테니까."

지시하니 패거리들은 길 양쪽의 송림 사이로 들어가 숨고, 번수와 주막 사내는 각각 짜른

칼 한자루씩 가지고 고개 아래로 내려갔다.

박대근과 우대용은 고개 위에 올라서니 다시 행렬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이 반쯤 오른 것을

보고는 말머리를 돌리는데 눈 아래로 나루머리의 흰 모래사장과 대정강변 십여 리의 들

판이 펼쳐졌다. 그들은 의주의 용암포와 마안도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고개를 내려오는데

길 가운데 아까 앞서 갔던 사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는 주춤거리면서 한 옆으로 비켜서

면서 박대근의 곁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조심하십시오. 앞에 수상한 놈들이 있습니다."

하더니 대뜸 말 안장을 움켜쥐며 한 손으로는 칼을 빼들었다.

"어어."대근은 하도 뜻밖의 일이라 고삐를 당기며 움칫하는데 이미 상대편의 칼끝이 위로

치켜져 갈빗대에 닿았다. "얼른 말에서 내려라."

우대요이 그 꼴을 보고 달려나오려는데 번수 되는 사내가 그의 말을 가로막더니 잽싸게

자갈의 혁을 잡아챘다. 말은 고개를 옆으로 비틀며 앞굽을 들고 일어섰으며 그렇잖아도 승

마에 서툴던 우대용은 보기 좋게 말궁둥이를 타고 떨어졌다. 그러나 우대용은 그래도 뭍에

올랐다고는 하나 수적의 와주 되는 사람이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궁둥이를 땅에 대고 상

반신을 일으키는데 곧장 달려든 녹림패의 칼날이 불쑥 그의 코앞에 내밀어졌다. 대용은 왼

쪽으로 구르면서 누운채로 오른발을 휘돌려서 사내의 손모가지를 걷어찼다. 사내의 팔이 휙

돌아가면서 뿌리쳐졌고 칼은 공중에 맴을 그리며 날아갔다.

대용은 그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두 다리를 엇갈려서 사내의 정강이께를 한편은 걸고 한편

은 꺾어 찼다. 사내는 두 동작에 어이쿠, 소리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박대근이 역시 말에

서 내리는 척하다가 그대로 위로부터 쏟아지듯 사내의 목을 껴안고 뒹굴었다. 그들은 껴안

은 채로 땅바닥에 꽂히듯이 넘어갔고 대근은 넘어갈 때 무릎으로 사내의 명치를 차올렸다.

저쪽에서 우대용이 번수 사내의 팔을 꺾어 비틀며 일어났다.

박대근이는 명치 급소를 맞아 숨이 막혀 헐떡이는 사내를 그냥 버려둔 채로 일어나서 떨

어진 칼을 발끝으로 걷어서 나무 사이로 차 던졌다.

"성님, 어디 다친 데 없수?"

우대용은 아직도 그자의 팔을 비틀어 그의 등뒤에 감아 쥐고서 물었다.

"없소, 이 녀석은 혼절한 모양이군,"

대근은 말 위에 안장 옆으로 비스듬히 꽂힌 창포검을 그제서야 뽑았다. 그는 말에 오르며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내가 고개 위로 올라가 아이들 살피고 올 테니 우두령은 이놈을 잡아놓고 기다리시오."

박대근이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장수산 고개 위에 올라보니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차

인들 몇이 쇠몽치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고 윤덕이가 그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봉물짐은

두어 개 흩어져 있는데 나머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냐?"

윤덕이가 대근을 보더니 울먹이며 말하였다.

"여러 놈들이 좌우에서 칼과 쇠를 들고 쫓아나와서 우리를 에워쌌습니다. 우리는 맨손이라

당할 수가 없었는데 놈들이 봉물짐울 내릴 때 저와 이 사람들이 맨손으로 달려들었다가

이렇게 뒤통수를 맞았지요. 저두 기운이 있는데 그냥 당할 수야 있나요. 저기 한 놈의 다

리를 분질러 내동댕이쳤습니다."

박대근이 바라보니 도적 중의 한 놈인 듯 털토시에 배자 입고 두건 바람의 장정 하나가

나무에 기대어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어디 갔느냐?"

"모두들 도적들을 잡겠다면 뒤늦게 작대기 하나씩 꺾어 들고 쫓아갔습니다."

대근이 말에서 내려 산등성이를 타려는데 차인들과 물치가 한데 엉켜서 우 하니 몰려내려

왔다. 그들 중에는 머리가 깨져서 옷자락을 찢어 감싼 자도 있었고 남의 등에 업혀 오는

자도 있었다. 학선이도 제 식구들과 몰려내려오다가 박대근과 마주쳤다.

"어이구 보통 놈들이 아닌걸."

"웬 법석들이냐?"

"저 꼴들 보시우. 닭 쫓던 게 꼴이우. 저 위로는 한 발짝두 떼지 못하겠습니다."

"왜 수가 많더냐?"

"팔매지요. 여기가 어딥니까. 안주 박천 아닙니까. 청천강 일대에서 돌팔매로 수제비돌 날

리면 잔뼈 굵은 놈들만 사는 고장이올시다. 안주 정주서 석전 안해본 놈은 장가두 못 간단

말이 있잖아요."

박대근이 예전부터 그런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직접 당해보기는 처음이어서 열이 머

리칼 끝까지 뻗쳤다.

"그래 봉물은 다 빼앗겼단 말인가. 모두 송도에는 다시 못 돌아갈 줄 알게. 신근을 팔아석

라두 본전은 찬아야지. 어서 다친 사람들 아래로 끌어다 놓고.... 잡힌 놈들에게 말을 캐세."

대근은 다시 부리나케 말을 달려 고개 아래로 내려왔고 우대용은 두 놈을 단단히 결박지

어서 길가에 무릎을 꿇리고 칼을 겨누고 있었다. 박대근이 곁으로 다가드니 우대용은 허

공을 보며 탄식하였다.

"허허, 용이 뭍에 오르니 불개미가 깨문다더디, 꼭 그 격이로군. 이 놈들이 나중에 후회할

거라구 기어코 협박을 하는구려. 인명이 귀한지라 함부로 요절을 낼 수도 없고, 그저 바다

같으면 물속에 처박아놓고 가면 용궁 식구들이 다 알아서 처치하여줄 터인데."

박대근은 스스로 화를 삭이고 그들을 달래는 투로 물었다.

"이것 보게나, 무슨 꼴인가. 우리도 다치고 자네들은 붙잡히고. 자네 식구들이 우리 짐을

모두 빼돌린 모양일세. 자네들을 관가에 넘기기는 싫으니 한 사람이 가서 짐을 찾아오게. 짐

만 찾으면 피차에 얻은 도끼, 잃은 도끼로 손득이 균등하지 않겠나?"

그러나 우대용에게 팔을 꺾였던 번수라는 자는 낯이 새파랗게 되어 으르렁거렸다.

"흥, 우리가 누구인 줄 모르는 모양인데, 너희들이 의주 가고 오는 동안에 안주 가산, 정주

곽산을 마음대로 내왕하는가 두고 보자." 하였더니 우대용이 아니꼬워 어쩔 줄을 모르며

그의 상투를 잡아 뒤로 젖혔다.

"어디 얼마나 무서운가 그 상판 한번 구경하세. 이 사람아, 물론 녹림당이 남의 것을 먹어야

살지. 그렇지만, 의논두 잘할 줄 알아야 또한 살게 되지 않나."

그러나 번수 사내는 눈을 내리깔고 더이산 입을 열지 않았다. 주막의 곁꾼 노릇을 하던

자도 그제는 정신이 돌아와 험악한 눈알을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박대근이 잠깐

생각하다가 짚이는 데가 있어서 곁꾼 사내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 이거 인사가 잘못되었는걸, 허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않나, 좌우지간에

인사는 이런 난장판 격식으로 튼 셈이니 어디 어느 댁 식구들인가 알아두어야지. 그래야

눈치를 보아서 의주 오가는 길에 통행세라도 보태줄 게 아닌가."

"흥, 안주서 어느 당이라니 이제 상고질은 다해먹었군."

번수가 아까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겼는지 코바람까지 핑핑 날리는 판이었고, 우대용은 어

처구니가 없는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놈아, 범을 보고 고기 달라고 해봐라. 호박잎에 청개구리 뛰어오르듯 아무한테나 풀짝

기어오르면 될 줄 알았느냐. 우리 물건을 먹었다가는 너희 굴혈을 갈퀴로 박박 긁어서

이렇게 두름으로 엮을 게야. 우리가 무슨 패랭이에 솜 달고 댕기는 장사치로 아는 모양

인데 너희가 느이들 귀쌈으로 두어 대 때리고 맨손으로 돌아가마."

과연 우대용이 경강서 선주들을 가스르던 재담에 이력이 났던 사람이라 그들을 입심으로

어르는데 들을 만하였다. 뒤이어 절뚝거리는 수철점 패거리 중의 하나를 끌고서 윤덕이와

학선이 물치 등등이 우 하니 고개 아래로 몰려내려왔다.

"이 자식이 토설하기를 자기들은 향산의 서용이네 식구들이랍니다."

학선이가 남보다 앞서서 말을 내었고, 윤덕이도 말하였다.

"건지산에 이놈들의 수철점이 있는 모양입니다."

뒤에 따라오던 하인들은 돌팔매에 머리가 깨진 분풀이를 하느라고 몽둥이로 놈을 흠씬

두드려준 게 분명하였다. 녀석은 윤덕이에게 밟힌 다리를 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데뼈가

터졌고 입술에 피가 맺혔다.

"끼놈들."

하면서 나머지 두 녀석에게 몰매를 주려는 것을 박대근이 말리고 나섰다.

"자자, 이제 그만두게나. 알고 보면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사이가 될 게야. 향산 식구들이

라구 했나?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 없고. 자네들 혹시 언진산과 자비령이 있는 장길산 두령

을 모르느냐?"

번수 사내가 곁눈으로 대근을 흘겨보더니 고개를 돌리며 내뱉었다.

"그래두 장사꾼이라고 명산에 대인 함자만 들이대는구나."

"그러면 이것은 알겠고나."

뒤늦게 생각이 나서 박대근은 자비령서 얻어 넣었던 길산의 단검을 내어 그의 코밑에

들이대었다. 받으면서는 몰랐으나 내밀고 보니 칼자루에 길(吉)자가 새겨져 있었다. 번수와

주막의 곁꾼 사내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번수 사내가 안색이 변하여 물었다.

"그 물건을 어디서 얻었소?"

대근과 우대용은 비로소 그가 마음이 움직이는 양을 보고 아까보다는 조금 느긋해졌다.

우대용이 말하였다. "이 분은 장두령의 의형 되시는 분이다. 그러니 직접 얻지 않고서야 그

칼이 어디서 생겼겠느냐?"

"내가 전해 듣기로 향산의 식구들은 장두령의 동모지간이 되었다는데, 자고 표창을 잘 쓰는

강서방을 잘 아는가?"

박대근이 말득이를 들어서 다시 묻자 번수는 그제사 의심이 사라진 듯하였다. 그는 앉은

채로 머리를 꾸벅하였다.

"어이구 강서방이야 저희 수철점에서 직접 향산의 산채까지 모셨으니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때에도 그 단검을 보아 잘 알지요."

"어서 풀어주게."

대근이 말하자 대용과 윤덕이가 재빨리 그들의 뒷결박을 풀어주었다. 대근이 말하였다.

"내 비록 처지는 송도 임방 좌장으로 녹림당과는 꿩과 매의 그것처럼 다르다 하나, 원래

속은 동색이오. 장두령이 한달 뒤에 향산을 둘러본다 하였고, 나는 북로의 여정을 한시도

늦출 수가 없어 향산의 산주에게는 찾아가 인사를 청할 틈이 없구려. 모처럼 좋은 장물을

차지하였는데 어쩌겠소, 각각 혈당들마다 쓰임새가 있고 녹림의 법도가 있으니 돌려주기

바라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땅히 돌려드려야지요. 만약에 그대로 우리가 물건을 가지고

돌아갔다면 저희 산주께서는 아마도 참수형을 내리셨을 겝니다."

윤덕이가 뒤에서 재촉하였다.

"다른 행인들이 오기 전에 어서 나루머리를 건넜으면 합니다."

"자, 어찌했으면 좋겠소?"

대근이 물었고 번수는 일어서며 말하였다.

"참 아침부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예서 삼십여리 떨어진 언무정에서 식

구들과 만나기루 했습지요. 게서 바로 강을 건너면 저희 건지산 수철점이 나옵니다. 지금 아

마 산마루를 타고 솔오개 큰길로 나서겠지요. 우리가 강변을 따라 언무정으로 질러가면 곧

만날 겁니다. 삼촌들께서는 바로 강 건너 시오리 여름에 가평역말에서 중화참까지 쉬시

지요.

저희가 물건 찾아가지고 곧장 되돌아 오겠습니다."

"고맙소, 우리 차인들과 말을 몇마리 붙여드리지."

"염려 놓으십시오."

향산 패거리는 자기들을 의심하는가 여기고 그렇게 말하였으나, 대근이 껄걸 웃었다.

"어디 계곡을 지난 물이 되돌아오던가. 녹림에서는 한번 발설하면 목이 달아나도 지켜야

하오. 짐을 그냥 가져오는 것보다는 말 등에 실어 오면 편하고 속하지 않겠소?"

"예, 알겠습니다."

"그 다친 식구도 말에 태워 가시오."

윤덕이는 멋쩍게 바라보았고 물치와 학선이가 흠씬 두드려 맞은 졸개를 말 등에 태웠다.

대근에게서 지목받은 차인 둘이서 말 네 마리를 끌고 나섰다. 모두 다섯 마리를 내는 셈이

었다. 대근이 번수에게 말하였다.

"이따가 주막에서 편히 얘기를 합시다. 내가 향산 서두령에게 드릴것도 있으니."

번수는 인사를 하고 나서 말에 올라 장수산 고개를 되돌아 넘어갔다. 윤덕이가 미덥지 못

하여 조심스레 대근에게 물었다.

"이거 말까지 빼앗기는 게 아닙니까."

우대용은 윤덕의 어깨를 치며 시원스럽게 말하는 것이었다.

"길산이와 말득이를 아는 사람들이 잘디잘게 속임수를 쓸 리가 있겠나. 우리 봉물을 게워

내게 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녹림의 협기가 있구나. 한긴, 나두 사행을 털었다가 선착장과

근거지를 잃었으니 잘 알려주어야겠군."

대근의 상단은 나루머리서 대정강을 건너 곧 가평역말에 닿았다. 가평역에서 가산까지는

삼십 리 길이었다. 원래 묵기로 예정했던 곳이 정주였는데 중화 들고 나서 말에 올라도 육

십리 길이라 해가 높직할 때 닿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가평역말서 작은 언덕 아래 늘

어선 객점을 찾아들어갔다. 역사에는 단청이 볼 만하였고 주위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빽빽

하였다. 낮은 토담을 두른 객점에 들어가서 말은 밖에 그냥 메어둔 채로 차인들은 술국이

끓는 화덕 앞으로 모여서 앉거나 서성였고, 대근과 대용과 학선이 등은 신 벗고 봉놋방의

아래목에 들어가 화로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주인이 와서 술을 드시겠냐고 물었으나

아직 중화참이 아닌지라 나중에 들겠다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상고라는 자들이 이른 오전부

터 술을 청하기도 멋쩍은 일이었다.

"이따 점심이나 지어주오."

"얼마나 올릴까요?"

"글세 한 스물 남짓 되겠구먼."

"말죽을 쑬까요?"

"그만두시우. 안주서 먹였으니 배가 가뿐해야 잘 걷지. 정주서 묵을테니까."

"석문령을 넘으시려면 예서 한숨 돌리고 가셔얍지요. 또 그 앞에 구정령이 있으니 산 너머

산이 바로 이를 두고 이른 말입니다."

박대근도 석문형 험한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산 읍내를 벗어나자마

자 바로 첫걸음에 석문령 고개가 가로막혀서, 행보에 길이 들기도 전에 첫판부터 기운을 빼

기 때문에 험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또한 북에서 내려오자면 정주서 올 때 십 리 간격으로 고개를 하나씩 넘다가

구정령을 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이어서 다시 석문령에 이르는데 바로 그

너머가 가산이라 쉴새없이 내쳐서 넘어 읍내에 당도하면 뒤돌아보기가 아득하게 느껴

지는 것이다. 박대근이 예전에 차인 행수로 서도와 북도를 돌아다닐 때 이곳 석문령도 몇

번 넘나들었거니와, 가평역말서 밥을 먹거나 가마내에 있는 납청정에서 민어탕에 술 데워

먹으며 쉰 연후에 석문령 넘기가 봄의 답청놀이처럼 가벼웠던 것이다.

대근은 새벽에 떠나느라고 분주하였고 또한 길목에서 적환까지 당하여 피로했던지, 봉노에

들어간지 잠시 후에 아예 뜨끈한 구들에 등을 지지며 단잠에 빠졌다.

"숙부님..... 짐이 돌아왔습니다."

대근은 향산패에서 말하였다.

"어서 들어와 몸 좀 녹이시오."

그들은 송구스런 듯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 앉았다. 우대용이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 아까 다친 사람은 건지산으루 돌아갔수?"

"예, 뭐 대단치는 않습니다. 다리를 삐고 이마가 좀 깨졌을 뿐이지요."

"아까는 내가 팔을 너무 세게 비틀었던가?"

우대용이 웃으면서 말하니 번수 사내도 겸연쩍게 실긋 웃었다.

"함자가 어찌되시는지요?"

대용이 대답 않고 미적미적하니 박대근이 일러주었다.

"서해 용왕님 바로 아랫수하 되시는 가도의 우두령이오. 해서 장두령과 오랜 동무지간

이지."

"허 이거 얘기로만 듣고 몰라뵈었습니다."

번수 사내가 머리를 긁적였고 곁꾼 사내는 제 동료에게 말하였다.

"성님, 우리가 그러니까 아이들 말로 임자를 만났구려."

"내 한가지 가르쳐줄 게 있소."

박대근이 그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아무리 산간에 숨어 사는 녹림의 무리라 할지라도 포부와 경륜이 바르게 나가지 않으면

오래 지탱할 수가 없소. 제일 무서운 것은 관군이 아니라 백성이오. 먼저 인심을 잃으면 아

무리 강고한 혈당이라 하여도 반드시 패망하게 되어 있소. 장길산 두령이 조선 천지를 들끓

게 하면서도 이제껏 토포되기는커녕 더욱더 강고해져서, 각 도에서부터 식구와 형제가 불어

나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백성의 장수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우리 같은 이익만 취하는

장사치도 그의 뜻에 따라 앞날을 대비하여 거사할 자금을 모으고 있는 셈이오. 명화적으

로 재물을 탈취하기가 가장 쉬운 일이지만 백성의 군사로서는 또한 가장 하책이라 할 수 있

소. 이를테면 이번 사행의 무역상단을 습격하면 쉽게 재물을 얻기는 하겠으나, 우선 자기 무

리가 어디에서 어찌하고 있다는 것을 조정에 막바로 알리는 짓이 되고, 그뿐 아니라 상단에

는 물주 외에도 몇냥씩 적은 자본을 지닌 차인들이 수십 인에 그 식구가 수백이라 민원이

엄청나게 되오. 악독한 개인의 재물이나 백성의 등을 친 탐관의 보울, 또는 백성이 원망하여

마지않는 관부의 재산은 아무리 강취하여도 뒤탈이 없는 법이오.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유

리한 것은 무리를 모아 이를 취하여 한편으로는 백성을 활빈하여주고 다른 쪽으로는 군사의

세를 늘려서 감히 허수아비 같은 적은 군현의 군졸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느 것이라오. 내

진작부터 향산 서용 두령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원래 잠재터에서 고생하던 광부라는

말을 들었소. 그러면 어째서 그 원한이 오래 쌓인 잠재터와 광주들을 그냥 두는 거요?"

"예,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이 사람도 해서 장두령의 덕으로 잠채터에서 구사일생되었

지요. 이러한 곳이 지금도 깊은 산속에는 여러 군데가 있답니다. 실은 저희가 당을 모아 묘

향산 보현봉에 자리를 잡은 지 겨우 세 해가 되었습니다. 거의가 근방에서 논밭 잃고 떠돌

다가 잠채터의 소금밥 얻어먹고 큰 것들이고 평생에 이밥 맛을 한번도 못 본 산간 농군들이

올시다. 병장기라야 환도며 몽둥이며 가지고 다닙니다만 제대로 조련도 하지 못하여 무사

라도 만나면 혼뜨검이 나서 줄행랑을 놓지요. 지금 산채의 세가 숫자는 백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식솔인 아녀자가 반나마 되어서 한번 일어나 어디 부잣집이라도 털자면 영변 개천

식구들이 모두 산에 올라가 합대를 하여야 겨우 오십 명이 조금 넘는 형편입지요. 그런데도

우리 향산 녹림당이 여지껏 세를 버티어온 것은 실로 서북의 지세에 힘입은 것이 사실이지

요. 들이치고 나서 걸음만 재게 놀리면 사방에 둘러싼 깊은 산줄기 속으로 몸을 감출수가

있습니다. 저희 서두령께서는 늘 장두령을 성님으로 마음 깊이 모시고 있습지요. 아마 우리

가 해서 활빈도의 성님들과 연계만 맺을 수 있다면 북변은 거의 우리들의 손아귀에 있는 거

나 다름없습니다." 박대근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중에 장두령이 당신네 산채에 들르겠지만, 기왕에 그 사람과 연계를 맺으려면 큰 물을

잡아야 경륜을 시원스레 펼 수가 있을 게요."

"큰 물이라뇨."

"백두산에서 흘러나오는 압록강과 두만강 말이오. 큰 물을 잡고 백두산에 등을 기댄다면

신병을 기를 수가 있겠지."

"두령께 그대루 아뢰겠습니다."

"가만있자. 내가 장두령의 의형 되는 사람인데 이 또한 혈육이 될 사람을 인사두 없이

지나칠 수야 있나."

박대근은 방문을 열더니 윤덕이를 불렀다.

"최행수, 행수 어디 있나?"

윤덕이가 차인들과 화덕 있는 문간방에서 농을 하다가 급히 뛰어왔다.

"아이들 중화 먹이고 술도 좀 사줘라. 그리고 다친 사람은 고약 붙여 두건을 싸게 하고....."

"별로 심하지는 않습니다. 부엌에서 된장을 얻어 동여맸지요."

"다행이구나. 얼른 짐에서 수달피 열 장과 인삼 한 근만 내어 부담 상자에 넣어서 가지고

오너라."

윤덕이가 잠시 후에 눈치껏 알아서 부담을 다시 홍보에 곱게 싸서 들이밀었다. 대근은

서용에게 몇자 적고 나서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창포검과 부담을 번수에게 내밀어주었다.

"이게 다 오고가는 정이니, 송도의 박대근이가 보내더라도 당신들 가형께 갖다 드리시오."

"어이구 이걸 갖구 가서 오늘 일어난 일을 두령께 아뢸 일이 아득합니다."

번수가 사양하는데 우대용이 참견하였다.

"뭘 그러시오. 아 명화적이 노중에서 상고의 봉물을 먹지 않는다면 아예 산간에 숨어 화

전갈이나 할 것이지. 여하튼 마수는 잘 떼었수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사촌끼리 티격태격

하여 이렇게 싱겁게 끝난 게여. 나두 가만있을 수야 없지. 댁네들 다리품값이라두 내어야 인

정이지."하면서 뒷전의 자기 전대를 더듬더니 은 오십 냥을 툭 던져주었다.

"우두령. 이게 뭡니까?"

번수가 물었고 대용이 말하였다.

"내 노자인데 이렇게 성님 상단에서 차인들과 같이 자고 먹으니 따로 쓸 데가 없소. 이걸루

건지산 식구들 화풀이 술이라두 한잔씩 돌리구려."

"아닙니다. 저희두 수철을 내어 살림은 넉넉한 편입니다. 좌장께서 우리 두령께 보내는 부

담이야 받겠습니다만, 이것은 사양하렵니다."

"허허, 왜 아까 털어갔던 장물에 비하여 째째하단 말이우?"

"원 별말씀을. 자꾸 그러시면 이번에 곽산쯤 가서 다시 덮칠지두 모릅니다."

번수 사내가 농을 하자 우대용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이쿠, 나는 아예 정주 가서 상단과 갈라서야겠군."

그들과 함께 중화 겸하고 사화술 겸하여 얼큰하게 잘 먹은 뒤에 향산패 두 사람은 나루머

리로 돌아갔고,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바로 눈앞에 석산령이 아득하게 올려다보였는데,

읍을 나서자마자 고개가 가로막고 있어서 더욱 높고 가파르게 보였던 것이다. 이제 한바탕

적환도 치르고 또한 길산의 덕으로 앞길의 근심도 없어져서 대근은 한시름을 놓았다. 아마

도 다른 상단에서는 호종을 고용하거나 장교들에게 각 구역 사이의 향도를 요청할 것이다.

가산에서 많이 지체하였느데 해가 아직 훤할 때 정주에 당도하였다. 정주는 청천강 이북의

목으로 한 도회지를 이루었다. 산과 산이 겹쳐서 둘려 있고 말을 달려 마루에 올라서면 그

너머에 또 다른 산이 가로막았다. 벌써 산세의 생김새가 북변에 이른 것을 나타내는 듯 힘

차고 억세어 보였으며 물줄기는 거세고 깊숙하였다. 정주서 일박하고 선천을 거쳐서 직로를

오르지 않고 철산으로 돌아 용천에서 머물렀다.

드디어 용천서 새벽에 떠나 중화 무렵에 박대근의 상단은 남산을 넘어서 의주의 의순역에

당도하였다. 이어 성내로 들어가니 미리 앞서 갔던 향도 차인의 전갈을 듣고 의주에 나와

있는 송방 차인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들은 이미 우대용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통군정 남녘에 의주관이 있고 길 양쪽으로 만상들의 여각과 숱한 점포며 창고들이 열을 지

어 계속되었다. 그외에도 주기를 올린 주막집이며 홍등을 내건 색주가, 작은 바침술집, 온갖

음식이며 잔술을 파는 행상 들병이들도 있었다. 가끔씩은 진귀한 당화 한 가지를 손에 들고

값을 외치면서 지나가는 자도 있었다.

의주 성내는 여느 대처와는 달리 다리 길고 허리 잘룩한 북방마와 수레가 혼천이었다. 운

향고와 관향고 등의 사행의 노자와 칙행의 제반사를 다루는 관부도 객관거리에 있었다. 향

도 차인의 안내로 대근네 상단은 송방의 여각으로 찾아들어갔다. 차인 두 사람이 나와서 그

들을 반겼다. 의주의 송방은 점포 겸하여 밖으로 내달아 지은 본채와, 뒷마당과 창고와 마방

과 안채가 디귿자로 벌려 있는 규모가 큰 집이었다. 송방 차인 중의 하나는 의주 사람으로

만상들의 텃세를 막고 달래느라고 현지인을 들인 것이다.

"벌써 사흘 전에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르신 일도 대강 처리를 했습지요."

송방 차인이 말하였다. 대근과 우대용 등은 점포에 딸린 곁방에 앉아 있었고 송방 차인은

그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대근이 품안에서 어음을 내어 차인에게 주었다.

"호조의 차대은 삼만 냥 어음일세. 서둘러서 운향고에 제출하고 은을 내오도록 하게나."

"좌장 어른,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닙지요마는. 사행 상단으로 이렇게 첫 번째로 오셨으나,

무명도 지물도 없고 그저 수달피 삼백 장과 차대은뿐이라면 너무 보잘것이 없습니다."

박대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말두 일리가 있네. 헌데 이제는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번 사행이 끝나면 자

네는 송도로 돌아가게. 여기에는 안서방 하나면 될 테니까...."

"예? 이제 막 무역로를 열려는 셈인데. 안서방은 의주 출신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스스

로 송방에서 떨어져 나가 만상으로 자립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만 맡겨두었다

가는 오직 전향 운향고의 은냥도 여기에 자기 앞가림하는 데만 쓰일 것입니다."

"그래, 여기에 새로 행수가 나오도록 되어 있네."

"평양 나와 있던 윤행수를 올리시려구요?"

"아닐세. 그 사람은 동래로 내려갈 걸세. 자네는 송도로 가서 임방 접방일을 좀 봐주게

나."

차인은 싱글벙글하였다. 가족들 곁으로 돌아간다는 일도 기쁘려니와 임방의 접장이라면 동

래와 의주를 제외한 각 송방들의 국내 판로를 관장하는 일이어서 행수보다는 못하여도 이를

테면 박대근의 보좌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대근은 이제 송도 임방의 일에 대하여는 별

로 신명을 내지 않고 있었던 터였다. 그는 강계에다가 북관과 서북의 상도를 여는 거점을

마련할 생각이라 의주에 나와 있던 차인 임서방을 송도로 내려보내려는 생각이었다. 차인은

어려서부터 곁꾼으로 시작하였는데, 사람이 근직하고 속임수가 없었다. 그는 일에 기민하거

나 머리를 쓰지는 못하여도 일단 시키는 일에는 차질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어 차인을

접장으로 올려 각 자방에서 모아들이는 특산물들을 관장하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대근이

윤덕이를 불러 임서방에게 인사를 시키고 또한 의주 출신인 안서방과도 인사를 나누도록

하였다. 대근이 안서방에게 말하였다.

"이제부터 최행수와 자네는 한식구고 손발이 잘 맞아야 될 걸세. 자네는 그 누구ㄹ 말도

들을 필요가 없고 최행수의 이르는 대로만 시행하도록 하게."

"예,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임서방이 일어나며,

"저는 그럼 어음을 환전하여 오겠습니다."

하였더니 안서방이 말하였다.

"참, 여기서의 관례 한 가지가 있사옵니다. 의주서는 호방 보는 이의 힘이 막강하여 대개

타처의 상고들은 그에게 도강비조의 인정을 쓰게 됩니다. 한 이백 냥이면 될 듯합니다."

박대근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임서방에게 일렀다.

"환전해올 제. 호방에게 삼백 냥 인정을 내도록 하게나."

곁에 앉았던 우대용이 참견하였다.

"성님. 뭘 그렇게 많이 쓰시려 하시우. 우리가 뭐 범금 물건이나 가지고 도강하려는 것

두 아니구, 더구나 앞으로 의주에서 발을 뻗고자 하는 rjten 아니잖수. 그보다는 우리가 주

로 나가서 강을 뻔질나게 건너다닐 진의 별장들을 손에 넣는 것이 유리하겠지요."

대근은 그러나 대답 않고 임서방에게 말하였다.

"삼백 냥 저나고. 언제 내가 술이나 한잔 낼 터이니 날을 받아서 오게나."

임서방이 머리를 조아리고 바삐 나갔다. 학선이도 잠자코 대근을 바라보다가 임서방과 안

서방이 밖으로나가자 저도 한마디 하였다.

"성님, 저는 우두령 따라서 마안도로 가보라 해놓고 강계에다 송방을 낸다면서, 그깟 목사

도 아닌 호방 녀석에게 삼백냥이나 쓴단 말이우?"

대근이 껄걸 웃었다.

"호방은 이를테면 의주서 출납되는 사행의 노자를 틀어쥐고 있는 사람인지라, 앞으로 우

리가 한양이나 송도서 어음을 빌려다 차대은을 빌려 쓰지 않더라도 수시로 그에게거 대

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호방이란 그런 일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또한 만

상들을 통제할 권한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자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걸세. 앞으로 최행

수와는 막역지우가 되어야지. 자, 우리는 나가서 도성 구경이라두 하세. 그리고 내일쯤에는

강계에 나가봐야지. 우두령은 학선이하구 언제 용암포로 나가려나?"

"인제 포구로 나간 물치가 당도하겠지요."

그들은 의주를 둘러싼 용만성 성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통군정에 올랐다. 바로 북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그 건너에 청국이 땅이 광할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까운 옛날에는 여진의

땅이었다고 하나 오래 전에는 고구려와 옛조선의 땅이었으니 이는 북방 백성들뿐만 아니라

청국인들도 이미 아는 바였다. 강에는 섬들이 이리저리 엎드려 있었고 그 건너편에 산이 보

이는데 대창 소창 송골의 험산준령이 벌판 위로 이리저리 흘러가고 있었다. 압록강은 마자

도는 청하 도는 용만 이라고도 하는데, 그 근원은 장백산맥의 백두산에서 나오고 수백 리를

남서쪽으로 흘러서 함경도의 삼수 갑산을 거쳐 여연 무창 우예 자성을 지나서 강계와 위원

의 지경에 이르러 독로강과 합치고 이산의 산양회에 이르러 포주강과 합치며 아이보에 이르

러 동건강과 합치고 벽동 창성 소삭주를 거쳐서 주의 북쪽에 있는 어적도의 동쪽에 이르러

세 갈래로 나뉘어서 하나는 남으로 흘러 맴돌아 모여서 구룡연이 되는데 이름이 압록강

이다.

강의 물빛이 오리의 머리처럼 파랗다 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졌고, 한갈래는 서쪽으로 흘러

서강이 되고 하나는 가운데로 흐르는데 소서강이라 하였다. 검동도에 이르러 다시 하나로

합쳤다가 수청량에 이르러 또 두 가닥으로 나뉘어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 적강과 합치고

하나는 남으로 흘러 대강이 되고, 위화도를 둘러 암림곶에 이르러서 서쪽으로 흘러 미륵

당에 이르고 다시 적강과 합쳐져서 대총강이 되어 서해로 들어간다.

멀리 망망한 요동벌은 희끗희끗 눈이 쌓였고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통군정에서 내

려와 다시 객점거리에 있는 주막에 들어가 오랜만에 둘러앉아 노래도 부르며 술을 마셨다.

차인 안서방이 송방에서 그들에게 와서 알렸다.

"임서방이 어음을 환전하여 왔고, 호방과는 내일 저녁에 약조를 하였답니다. 그리고 지금

좌장 어른을 뵙겠다는 이가 있어서 제가 밖에 기다리게 해두었습니다."

"그런가. 어떤 사람인데?"

"예, 전부터 제가 좌장 어른께 말씀드리려 하였지요. 삼 캐러 다니던 채삼인입니다. 청어를

잘하지요."

안서방의 안내로 한 사내가 들어서는데 목은 짧고 어깨가 다부지게 벌어졌으며, 다리는

안짱다리였다. 안서방이 박대근을 손으로 가리켜 보이면서 사내에게 말하였다.

"저분이 우리 좌장님이시라네."

사내는 그냥 두건 바람인데 위에다 두툼한 털배자를 걸치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대여섯

먹어 보였다. 모두들 술상 앞에서 멀뚱히 앉았는데 사내가 넙죽 엎드리며 박대근에게 인

사를 올렸다.

"벽동 사는 신서방 문안이오."

"음, 그래 나를 보자는 까닭이 무엇인가?"

사내는 멈칫거리며 좌중을 돌아보았고 박대근이 말하였다.

"괜찮네, 모두 한식구니까."

"예, 그러면 말씀을 드립지요. 저는 벽동의 불암골에 사는 채삼꾼입니다. 저와 같은 심메

나니들이 십여 호 부락을 이루어 사는데 저희는 금령이 내리기 전까지는 채삼을 하여 강

계와

의주의 만상들에게 넘겨왔습지요. 헌데 삼을 가지고 월경했다가는 참수형을 당하게 되는

지라 어쩔 수 없이 요즘은 사냥으로 피물이나 모아서 밥을 먹습니다. 제가 만상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삼을 많이 가지구 있습

니다. 지금 청국에서는 청상들이 인삼을 구하여고 애가 달아서 부르는 게 값이랍니다. 대인

께서 저희 삼을 팔게만 해주시면 삼분의 일만 나누어주셔도 감지덕지하겠습니다."

"얼마나 되는가?"

"예, 팔포가 좀 넘습니다. 백 근은 실히 되지요."

"그렇다면 요즘 시세가 근당 은자 오십 냥이라 하니 오천 냥은 되겠구먼."

하다가 박대근은 짐짓 신가에게 물었다.

"좋은 말이네만 내가 무슨 수로 인삼을 지니고 도강하여 팔아온단 말인가. 금령은 강변의

수검 때만 아니라, 책문에서도 엄중할 것인즉 우리더러 목숨을 걸란 말인가?"

신가는 다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눈치 빠른 학선이가 나직하게 말하였다.

"자네가 원하는 것은 청상이 아닌가? 우리보구 그들을 대어달라는 얘기 같은데...."

신가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청상에게 연줄만 댈 수 있다면 월경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강

계에서부터 의주에 이르는 강변 칠읍에서 강쪽이 좁고 후미진 곳이 여러 군데 됩니다. 저

희는 벽동의 해천동을 으뜸으로 치지요. 이제 곧 추위가 닥치면 강은 꽁꽁 얼어붙고 밤에는

손쉽게 건너갔다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청상은 우리네 따위와는 신용 거래를 하려들질

않지요. 또한 만상들게 부탁하여 하여도 그들은 관과 결탁하였으니 언제 등을 돌려 저희를

핍박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송방에 찾아와 안서방에게 가만히 물으니 좌장 어른은 신

의가 있는 분이라기에 이렇게 와서 여쭙는 것입니다. 인삼 백 근은 저희가 삼 년간 채삼한

것이온데 이것이 팔려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살 수가 있습지요. 청상에게 벽단 건너에 오

도록 할 수만 있다면 잠상은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벽단을 아는가?"

"물론입지요. 벽단은 원래가 여진의 땅이었지요. 그 건너 십여 리 가면 야인들의 작은 마을

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임토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금령이 엄하기 전에는 그곳까지

채삼하러 월경하곤 했습니다. 청상들은 인삼이라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대인께서 사행을

따라 책문에 들어가시거든 유력한 봉황성의 청상에 줄을 대십시오. 거래가 이루어질 제는

대인의 차인들과 동행하여 그 죽시로 은자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박대근은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계로 가서 근거를 잡고 그 지역의

잠상에 경험이 있는 자를 물색하려던 참이었다. 대근은 말없이 잔을 내밀어 신가에게 주

었다.

"한잔 들게나."

"예."

사내는 대근의 대답을 기다리기가 바쁜지 얼른 입속에 털어 넣고는 안주도 집지 않고 다시

대근을 바라보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그 참 좋은 제안일세. 우리는 자네가 나누어주는 은자는 필요없네."

"저는 안서방의 말만 믿고서. 송상은 잠상로를 여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하여 왔는데요."

"이렇게 하는게 어떻겠나? 우리가 그저 자네들과 청상을 대어주는 일로 이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자네들과 동모가 되는 것이 낫겠구먼. 자네들은 채삼을 하여 계속 팔아서 이를 취

하게나. 그 대신에 우리도 자네 마을에다 집을 한채 얻기루 하지. 자네들은 길잡이 하나만

우리에게 붙여주면 되겠군. 어떤가, 자네들이 우리 송상의 상단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그

까짓 청국 은자만으로 그치는 게 아닐세. 그것을 굴려서 더욱 큰 재물을 만질 수가 있네."

"저희들 상단 사람으로 넣어주신다면야 낭림산맥 일대의 심메마니들을 모두 그러모아 일

년에 수백 근의 인삼을 벽동에다 채집해 놓을 수가 있습니다."

"인삼은 걱정 말게, 우리도 삼백 근을 가져왔으니까...."

박대근이 말하자 신가는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고, 우대용과 학선이는 빙긋이 웃었다.

"삼백 근이오? 저희가 강계로 내지 않은 지 여러 해가 되었거늘 송상이 어떻게 삼을 모았

습니까. 더구나 한꺼번에 삼백 근이라니요."

"저어 해서의 골짜기에서 수천 평의 심밭을 봤단 말이지."

우대용이가 농을 하였더니 심메꾼 신서방은 남의 일 같잖게 입을 벌리고 반가워하였다.

"아 거기가 코짤맹이 다니시는 길이 틀림없지요."

"코. 뭐라구?"

박대근이 삼 수집하던 경험이 있어서 한마디 하였다.

"범이란 말이네. 범은 반음반양의 후미진 골을 타구 다니니까 인삼밭이 있기가 쉽거든."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역시 아득령 너머에 그런 데가 많습지요."

대근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벽동의 군수는 어떤 자인가?"

"아니오. 벽동에는 제가 있는 벽단진에는 첨사가 있습니다. 궁벽한 곳이고 농토도 전혀 없

어서 관장 노릇 하기가 빡빡한 곳입니다. 수자리 사는 진의 장교들은 쌀 몇말 무명 몇필로

모두 모른척할 것이오."

"잘 알았네. 오늘은 우리 송방에서 푹 쉬고 사흘 뒤에 같이 떠나도록 해보세. 여기서 얼마나

되나?"

"이백오십여 리 되는데 말 타면 하룻길이올시다. 좋은 호마를 세낼수가 있습니다."

신서방이 말하였고 안서방이 다시 덧붙였다.

"말은 우리 상단 것도 모두 천리마라네. 돌아오실 제는 뗏목을 타고 내려오면 산천 경개도

구경하고 아주 그럴 듯하지요."

"좋은 유람이 되겠네. 사내자식이 바닥은 이만한 데서 놀아보아야지."

학선이도 덩달아 신이 나서 말하였다. 박대근이 안서방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동무이니 알아서 편히 있도록 해주게. 그리고 자네 성은 신가고 이름자가 무언가?"

신서방은 갑자기 난처한 기색이 되더니 그 짧은 목을 더욱 움츠리며 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신거복 올습니다." 짧은 목에 다부진 어깨와 동글동글한 체격이며 안짱다리가 이

름에 꼭 알맞는지라 이름지은 이의 눈썰미를 칭찬할 만하였다. 모두들 소리내어 웃는데 학

선이가 낄낄대며 한마디 덧붙였다.

"차라리 남(男)자 생(生)자 쓰지 그랬나?"

그랬더니 신거복이는 저도 따라 웃으면서 답하였다.

"제가 성미가 무던하여 거복이라는 이름과는 맞는 바가 많고 남생이란 잔망스러워서 아잇

적에도 붙이기가 틀렸던 모양입니다."

학선이와 우대용이 또한 자기 술잔을 내밀어주었더니, 신거복이는 사양 않고 아까처럼 넝

큼넝큼 받아 붓고 나서 절을 꾸벅하고는 안서방을 따라나갔다.

이튿날 우대용과 이학선은 아침을 먹자마자 운량포로 나아갔다. 운량포에는 창고가 셋이

있었고 진이 있었으며, 압록강의 발해로 들어가는 어귀인지라 황해를 거쳐온 선상이며 조운

선들이 들끓었다. 그곳 압록강 어귀의 이름을 대총강이라 하는데 대총강의 앞에는 경강

에서 강화진이 그렇듯이 신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도에는 수군 진이 있었으며 수군

첨사는 사위포의 미곶에 머물렀다. 그들의 배가 병선 일곱 척에 전선 한 척이요 군사는 삼

백오십 명쯤이었다. 신도진의 수군들은 연안 기찰선인 병선으로 대총강 어귀와 신도 서북

방의 발해로 오르는 물길을 지키고 있었다. 마안도는 신도에서 십 리 떨어진 무인도였는데

바닷새와 바위만이 있는 작은 섬이었다. 진의 병선 한 척이 대총강 어귀에서 신도까지 내왕

하며조선의 조운선들과 각종 어선들을 기찰하였는데, 모든 배들은 신도의 남동 방향으로 휘

돌아 항해하게 되어 있었고 신도에서 건너편 양하구 쪽으로 넘어가면 월경 범금에 걸려서

벌을 받았다. 청국의 선박들도 신도와 마안도 사이의 통로를 드나들었으나 신도에 가까이

오면 진에서 신포를 터뜨려 경계하였다. 그러나 청국의 선박들은 비교적 내왕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그들은 마안도 앞에서 닻을 내리고 고기를 잡곤 하였으니 신도와 마안도가 압록

강의 어귀여서 각종의 물고기가 모여들었던 것이다. 밴댕이 조기 넙치 새우 숭어 홍어 굴바

지락 낙지 민어 준치 오징어 상어 등속이 잡히는데, 특히 청인들은 오징어와 새우잡이에 골

몰하였다. 오징어잡이나 새우잡이에는 조선 어민들도 뒤지지 않아서 늘 마안도 앞에서 청선

과 뒤섞여 잡는 것이었다. 물론 마안도 인근은 양국 어선에 모두 금령이 내려져 있었으나,

그곳이 민물과 바닷물이 합치는 곳이요 어종도 풍부하여 고기잡이배들에게는 기찰선들이 대

개 눈감아주던 것이다. 선주들도 이를 알아서 운량포에 나와 있는 수군 장교들에게 출어세

형식을 취한 인정을 바치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청의 수군들과 말썽도 일어났으니 조선

수군들이 쫓아냈고 청국의 수군들은 조선 배를 쫓았던 터였다. 따라서 마안도의 서북방 바

다는 청국 배가, 남동방 바다는 조선 배가 드나들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에

지나지 않아 바람이 불거난 일기가 나쁘다거나 고기떼가 몰리면 그런 약속은 무시되었고 서

로 허물없이 드나들며 마음대로 섞였다. 따라서 수군 진에서는 하는 수 없이 나가는 배들을

엄중히 수검하고 다시 포구로 돌아오면 수검하여 잠상을 막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마안도

로 가는 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각종의 조운선과 상선과 어선들이 의주를 바라고 모여들

어 운량포에 들어왔다가는 신도를 지나쳐서 서한만으로 빠져나가는데, 서한만에는 큰 섬만

다계도 가도 대화도 신미도 삼차도 외장도 등이 있고 작은 섬들은 수백에 이르니 일일이 기

찰할 수도 없었다.

우대용의 식구들에게근 대동강 어귀에서 의주의 운량포에 이르는 뱃길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그들의 벌이 구역인 셈이었다. 박성대와 물치는 정주 앞바다에서 신도진에 이르는 복잡한

섬과 섬 사이의 모든 통로며 조류며 물길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용천계에만 섬이 서른이요,

철산계에는 열여덟, 선천계 즉 선사포 진의 구역에 신미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하여 서른넷

이며, 정주 구역에는 아홉이고, 청천강 이북만 하여도 이렇듯이 아흔이 넘었다. 이들 사이로

박성대가 부리는 대용이네 용선은 고기잡이배나 상선으로 위장하여 빠져다녔다. 그들은

아무 배나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화의 홍천수와 석범철로부터 경강 수로에서의

전갈이 오면 대동강 어귀의 마지산 앞에서 기다리던 용선이 해서의 경계까지 가서 급습하

였고, 의주에서 박성대의 연락이 오면 청천강 이북에까지 배가 마중을 나가곤 하였다. 그들

은 일 년에 대개 두세 번쯤 수적질을 하였으니, 대상은 지방의 봉물을 실은 토호나 권세가

의 배였고 경강 선상과 대동강 선상의 배를 덮칠 때도 있었다. 이미 그 무렵의 평안 해서

관찰사의 장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일어난 바다에서의 적환에 대하여 조정으로 알리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우대용의 수적 일당은 그 정체성마저도 거의 드러나지 않았으니, 바

다는 녹림과도 달라서 딱히 어느 곳이 굴혈이라고 알아낼수도 없었고, 그들의 행적이 때와

상황에 따라 해서나 평안도나 경기도 등지로 달랐으며, 쉽게 해당 지역 수군 진의 관할 구

역 밖으로 바져나갔던 때문이었다. 그들은 직접 배를 습격하는 일이 끝나면 강화와 중화와

운량포의 바닷가 포구나 선창거리에서 여각 객점업을 하면서 다른 벌이에 종사하였다. 박성

대는 주로 운량포에 나가 있었는데 어물 여각을 벌여놓고 있었다.

우대용이 박대근의 권유에 따라서 운량포를 중심으로 잠상로를 트게 된 것은 일 년여에

지나지 않았다. 대용은 전에 강선흥이로부터 몽구미를 중심으로 하여 해서 인근에 청국 어

선들이나 황당선과 더불어 잠상이 간간이 이루어진다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운량

포에서 거둬들인 연화 중에서 조로 약재와 박물 귀중품을 취급하여 경강을 통해 한양에 먹

였다. 그리고 상선을 털어 얻는 장물들은 대근이나 파주 이경순네 주막 아니면 모신이네를

통하여 팔곤 하였다. 하여튼 우대용이네는 명년 봄이 올 때까지 새로운 계획이 서 있질 않

던 것이다. 우대용과 학선이는 물치의 뒤를 따라서 포구로 들어갔다.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드나들어 오히려 바닷가의 포구에 가까웠고, 장목에 말리는 생선들도 모두 비린 것들이었으

며, 의주 성내의 객점거리와는 달리 갯것들과 군기에 소용되는 기치의 장식이며 군복 면직

물 등속이며 비단 모자 함석과 같은 잡물들과 당약재들이 보였다. 이것들이 강을 따라서 흘

러들어온 잠상의 물건들이건만 일단 가가에 넘겨진 뒤에는 단속이 되질 않아 버젓이 그 견

본이 여각 마루에 널려진 채 타처의 화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테면 운량포의 여각거리는

의주의 난전인 셈이었다. 그들이 한 여각 앞에 이르렀는데 입구에는 멍석 위에 건어물 등

속이 더미로 쌓였고 말린 육포가 천장에 일렬로 매달려 있었으며 그물이 여봐란 듯이 마당

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치가 두리번거리는데 포구 쪽에 나가 섰던 박성대가 절뚝이면서 달

려왔다.

"성님, 인제 오시우."

"그래, 갯것이 말 타고 오느라구 궁둥이에 새살이 돋을 지경이다."

"어서, 들어가 앉읍시다."

그들이 바깥채인 가가를 그대로 지나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드 안에 일렬로 봉놋방들이

붙어 있고 맞은편에 성대의 살림집이 있었다. 박성대의 아내 마포댁이 나와서 우대용에게

인사를 하였고 물치에게는 중화 식구들 얘기를 물었다. 들어가 앉자마자 우대용이 성대

에게 학선이를 소개하였고, 성대도 얘기를 들어왔는지라 학선이와 초면이건만 별로 주저없

이 잠상 얘기로 들어갔다.

"어찌, 마안도에 들어갈 수 있겠나?"

"마안도에 들어가는 것쯤이야 하루에도 몇번씩 아무 때나 관계가 없습니다. 운량포 진별

장은 우리에게 철철이 인정을 먹어서 아무 소리 못하지요. 우리에게는 어선을 띄울 적마다

뱃전에 매다는 신기도 있습지요. 무슨 물건을 얼마나 원하는가 하는 것만 알려주면 사흘안

으로 구해올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나가나?"

"성님이 고기잡이 구경을 하신다면 오늘밤에 나가십니다."

"밤에만 나가는가?"

"예, 그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지요. 밤에는 기찰선에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거든요. 고기

잡이배를 일일이 따라다니며 간섭할 수도 없으니 양하구 수로 앞에서 떠다니며 나가고

드는 배를 수검이나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요즈음 무슨 물건이 좋겠나?"

"당약재와 물소뿔이 기중 낫습니다."

하였더니 옆에서 듣고만 있던 학선이가 우대용이 일러주던 말을 잊지 않고서 물정을 잘

아는 듯이 말하였다.

"물소뿔과 녹용이 좋다더군."

"은자는 준비되었겠지요. 청상과 주고받는 것은 물물교환은 피차에 싫어합니다. 팔고 살

때에는 어느 쪽이나 은 외에는 받지 않습니다."

"천오백 냥이 있소이다."

학선이가 가져온 부담을 끄르고 뚜꺼을 열어 보였다. 손가락만큼한 길이의 인절미처럼 생긴

은편이 들어 있었다.

"이거면 됐습니다. 두령, 우리도 물소뿔을 들여올까요?"

"그러지, 한 이천 냥어치면 충분하겠군."

그들은 이어서 운량포에 나와 있던 대용이네 식구들의 인사를 받았다. 경강과 강화에서

우대용이 도사공 해먹던 시절부터 함께 일해왔던 사공들도 있었고 삼화로 옮긴 뒤에 새로

들어온 자들도 있었다. 이곳에는 용선은 없었으나 그 대신에 쌍돛을 올린 만장이와 야거

리의 중선 두 척이 있었다. 사공은 박성대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용선은 삼화의

마지산 근거지 건너편에 있는 가도 선착장에 대어져 있었다. 일이 없을 때는 배를 끌어올

리고 밑에다 통나무를 괴어놓고서 뱃바닥을 불로 그슬리고 송진과 마유를 발라두곤 하였다.

강화와 의주에서 그럴 듯한 먹이가 지나간다는 기별이 전해오면 그들은 용선을 바다위에 띄

워놓고 기다렸다가 그 상선이나 조운선을 습격하였다. 박성대가 대두를 보는 삼금이란 자

에게 일렀다.

"오늘 저녁에 마안도로 새우잡이를 나갈 것이니 준비를 해두어라."

"물건이 옵니까?"

"아니 그냥 그물만 치고 온다."

"예, 그러면 야거리를 내겠습니다."

저녁에 우대용과 학선이 그리고 물치는 박성대를 따라서 선차으로 나갔다. 강바람이 싸늘

하게 몰아치고 있었고, 진에서는 번의 교대가 이루어지는지 태평소와 북 소리가 들려왔다.

선창은 진병곶과 운량포 사이의 우묵하게 팬 만 안에 있었는데 바로 앞에는 박선섬이 가로

막혀서 세찬 물결을 저절로 막아주고 있었다. 섬은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졌는데 수군의 배

만이 정박하도록 되어 있었다. 선창에는 각종의 거룻배와 중선과 대선이 줄을 지어서 대

어져 있었다. 박성대는 중선들 사이로 찾아가서 그들의 야거릿배에 올랐다. 삼금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앉았다가 고물 쪽으로 나왔다. 학선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비린내 맡고 잔

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누가 이르지 않아도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물길을 잘 아는

성대와 삼금이는 키와 돛대의 모릿줄이 있는 고물 쪼에 앉았고 우대용은 이물의 창막이 판

자 위에 걸터앉았으며 학선이도 곁에 앉도록 하였고, 물치는 뱃머리의 덕판에 앉았다.

"자아, 나가볼까?" 성대가 뱃전에다 어망을 보라는 듯이 걸치면서 말하였고 물치는 시키지

않아도 덕판에 앉아 닻줄을 끌어올렸다. 삼금이가 삿대를 들고 곁에 있던 다른 배의 옆구리

나 뱃머리를 찔러대니 그들의 야거리는 선창의 혼잡 속에서 빠져나왔다.

"신기를 올려라."

성대가 석판으로 나와서 물치의 앞쪽에 앉더니 키를 잡은 삼금이에게 일렀다. 삼금이는

모릿줄 옆에 달린 용총줄을 당겼고 도르래 돌아가는 소리가 끼꺽대면서 운량이라는 글과

배의 숫자가 써진 황색 기가 돛대 위로 끌려 올라갔다. 바람을 한껏 받은 야거리는 박선더

앞을 지나서 포구를 빠져나왔다. 주위에는 어둠이 내리고 강변 마을에 불빛이 한점 두점 늘

어나기 시작하였다. 삼금이는 한 손에 키를 잡고 다른 손에는 돛의 바람 방향을 조종하는

아 줄을 잡고서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대용이 창막이 판자에 앉아서 덕판 위의 박성대에게

말하였다.

"수군의 번선은 보이지 않는군."

"우리가 운랑포서 빠져나올 적에 이미 진병곶에서는 배의 신기를 보고 기록하여두었을 것

입니다. 돌아가서 박선도에 대어놓고 수검을 받지 않으면 범금을 저지른 것으로 알게 되

지요."

강폭은 차츰 넓어졌고 물살도 빠르고 물결이 거칠어졌다. 배는 끊임 없이 앞뒤로 춤을 추

면서 나아갔다.

"이제 나아갔다가 밀물 때를 타고 흘러들어야 합니다."

뒤에서 배를 모는 삼금이가 일러주었다.

"양하여울이 가깝습니다. 모두 내려앉으시우."

건너편 청국 땅의 연안 지명이 양구인데 그 맞은편인 이쪽에 도랑강이 크게 입을 벌린 대

총강의 어귀와 만나고 있었다. 양하의 소용돌이와 거센 물살은 뱃사람들 사이에서 임진 수

로보다 더욱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배가 도랑강의 입구인 양하 언덕에서 흘러나오는

지류와 압록강의 본류가 합쳐서 소용돌이를 치는 지점에 이르자 가랑잎처럼 흔들리면서 대

번에 청국 연안쪽을 향하여 미끄러져 나갔다. 삼금이는 키를 틀면서 아딧줄을 왼쪽으로 팽

팽히 당겼다. 배는 미끄러져 나갔다가 서서히 우회하여 강심을 벗어나 조선 쪽 연안으로 가

까워졌다. 바로 앞에 작은 바위섬이 보였고 그 뒤로 여섯의 산봉우리가 울타리처럼 막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성대가 말하였다.

"저 앞의 바위섬이 토끼섬이고 그 뒤가 섶섬입니다. 토끼바위가 보이지요? 저어기 두 귀

처럼 쫑긋 올라왔지요. 저 바위에 수많은 배들이 부딪쳐서 깨어졌습니다."

학선이는 야거리가 물결에 비하여 너무 같잖았고 이렇듯 거칠게 흔들리니 자칫하면 뒤집

힐까 겁을 먹고는 두 손으로 창막이 판자와 뱃전을 꽉 틀어쥐고 있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

키고 나서 성대에게 물었다.

"오른쪽의 강심으로 나가서 섶섬을 돌아서 남행하면 될 터인데 어찌 이런 까다로운 물길을

타시우?"

"섶섬에는 신도진이 있습니다. 수군 병선 한 척과 사후선 네 척이 있습니다. 조선 배는 저기

미륵산과 토끼바위 사이의 물굽이로 빠져나가지 않으면 월경 범금에 걸립니다. 이제 보

시면 알게 되지요. 섶섬 뱃머리에 번드는 수군 사후선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성대가 말하였고 뒷전에서 배를 몰던 삼금이가 외쳤다.

"신기 대신에 이제는 신등을 달아야겠습니다."

이미 날이 어두워 바다는 거무죽죽하였고 봉우리는 새까만데 그 뒤편 하늘만이 아직도 불

그레하였다.

"그래 잊을 뻔하였구나. 번선놈들이 어찌나 까탈이 심한지....."

박성대는 덕판의 매 아래서 수박등을 꺼내어 초에 불을 당겼다. 수박등에도 역시 배의 호

수가 적혀 있었다. 그는 등을 돛대의 용총줄에다 나직하게 매달았으며 바람에 불린 수박

등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앞쪽에서 불빛이 까물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삼금이가 투덜

거렸다.

"사후선 앞에 배를 대야겠습니다. 준비들 하시우."

그러나 성대는 대용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구경 나가는 길이라 별반 문제가 없습니다."

대용과 학선이는 바지 저고리에 털배자와 떨어진 누비 배자를 받쳐 입었고 머리에는 맨두건

바람이었다. 그들은 그물을 뱃전에 걸쳐두고 어부 시늉을 할 참이었다. 물치는 뒷전으로

물러나오고 박성대가 앞으로 나갔다. 그들이 가까이 가니 사후선이 저어 나오면서 소라를

불었다. 그들은 돛을 내리고 기다렸다. 배는 천천히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사후선에는 키잡

이가 하나요 노꾼이 네 명인데 모두 수군 군졸들이었고 장교가 앞에 타고 있었다. 그들은

사방등으로 배를 비춰보고 있었다. 덕판에 앉았던 성대가 웃으면서 아는 체를 하였다.

"새우잡이 나갑니다."

"선원이 몇인가?"

"예, 보시는 대루 다섯이롤시다."

"또, 마안도로 나가는군."

"그렇지요. 거기밖에 어디 새우잡이할 데가 있습니까?"

사후선은 야거리 옆에 바짝 대어졌고 군졸들은 창막이 판자를 들춰보고 고물간과 이물간의

고기 넣는 칸도 샅샅이 조사하였다. 이것은 피차에 무엇하러 마안도로 나가는지 모두 짐

작하는 짓이라서 서로 부드럽기가 마치 이웃 마실꾼들이 만난 양이었다. 박성대는 웃으

면서 말하였다.

"오늘은 그물만 치러 가는 것이니 만선이 되어 올 제 술 한잔 내리다."

"새로들 왔나?" "예, 어염상들이지요. 이번에 새우와 오징어를 몰이해 간답니다."

"좋아, 나가게."

장교가 지시하였고 삼금이는 용총줄을 당겨 돛을 다시 올렸다. 사후선은 노를 저어서 수

직소를 되돌아갔다. 박성대의 야거릿배는 재빨리 수로를 빠져 섶섬의 왼쪽 산허리를 따라서

돌았다. 섬을 돌아가니 그 뒤에 진영과 마을의 불빛들이 보였다. 그들은 신등을 달고서 섬

을 지나서 서북방으로 나아갔다. 바다 위의 곳곳에 어선의 수박등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들은 어둠속에서 마안도의 거뭇한 바위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마안도는 남서향으로 길게

뻗었는데 그 가운데에 손의 아귀처럼 생긴 좁은 만이 있었고 한 스무 평쯤의 모래사장도 있

었다.

다만 그 아귀 속으로 들어가려면 거센 물결과 암초 때문에 배가 깨지는 것은 고사하고 사

람이 헤엄을 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성대가 해주니 우대용이 말하였다.

"그러면 마안도 앞에서 그냥 배끼리 만나서 서로 주고받게 되는가?"

"대개는 그렇게 합니다마는 큰물 때에는 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첫 번 암초 위에

장목을 박아두었는데 거기서부터 바를 매어 해안의 모래사장에다 닻을 깊숙이 박아두었

지요. 줄을 잡고 따라 들어가면 아무리 캄캄한 밤에도 감쪽같이 댈 수가 있습니다."

"사후선이 오면 어쩌나?"

"그러니까 다른 배가 망을 보게 됩니다. 신도 어름만 벗어나면 슬슬 섬에서 나오더라도

늦지 않거든요. 이번에는 삼천 냥이 넘는 장사이니 아무래도 배를 대어놓고 물건을 받아야

겠습니다. 청국놈들도 그걸 좋아하지요. 우리도 물소뿔인가 아닌가 일일이 물건을 살펴야겠

구요."

그들은 마안도 앞에 이르렀고 고깃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쪽에 청선들이 모여 있수."

삼금이가 섬의 모퉁이 쪽을 가리켰고 야거리를 그쪽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돛을 내리고 물

위에 떠서 출렁대며 기다렸고 박성대가 수박등을 끌러서 들고는 뱃전에 서서 좌우로 여러번

흔들어 보였다. 몇번 신호를 보내자마자 저쪽에서 한 배의 불빛이 좌우로 재빨리 오락가

락하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배가 가까이 오자 변발을 한 청인의 모습이 보였고 성대가 짤막

하게 만주어로 부르짖었다. 그들은 서로 몇마디 더 하고 나서 헤어졌다. 삼금이가 말했다.

"물소뿔 삼천 오백 냥어치를 준비해달라고 했습니다."

우대용이 물었다.

"날짜를 받았나?"

"예, 여기서는 보통 육로를 따져서 봉황성 왕래의 길을 사흘로 칩니다. 넉넉잡고 닷새 말

미를 주었습니다. 닷새 뒤에 이곳에서 은자를 건네고 물건을 받으면 되지요."

그리고 나서 성대와 삼금이는 그물을 펴서 물에 던지기 시작하였다. 대용이 말하였다.

"아니······ 정말로 새우잡이를 하려는가."

"잡아가야 수검할 때 의심을 받지 않지요. 일단 배를 띄우고 마안도로 나오면 무엇이든 잡

아서 싣고 가야 합니다. 물건을 살 적에는 저희쌍돛 올린 만장이도 끌고 나오지요. 만장이는

물건을 싣고 야거리는 고기를 잡아서 나누어 싣거든요."

"빈틈이 없군 그래."

"이것으루 아이들 술값이라두 버는 게지요."

물치와 우대용이도 익숙한 솜씨로 그물을 내려뜨렸으나 학선이는 도무지 바닷바람이 차고

끈끈하였고 끝없이 출렁이니 멀미가 나고 말았다. 성대가 그런 눈치를 다 알아차리고 학

선이와 우대용에게 말하였다.

"돌아가는 배를 태워드릴 것이니 먼저 돌아가 쉬십시오. 우리는 새우를 잡고 새벽에 들어

가겠습니다."

삼금이가 그물을 떨구면서 배를 돌리다가 근처의 배에다 대고 외쳤다.

"어이, 포구 들어가는 배 없나?"

"예 있네. 이 배가 돌아간다네."

하는 어선이 있어서 그들은 가까이 대었고 우대용과 이학선은 그 배로 옮겨탔다. 배는 이미

만선이었다. 오후부터 나와서 귀항이 늦은 배였다. 민어와 준치가 선복에 하나 가득이었다

.그들은 다시 섶섬을 돌아서 토끼바위를 지나 양하구 물길을 거슬러 박선도에 대었다. 박

선도의 수직 수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배를 샅샅이 수검하고 나서 운량포로 들여보냈다.

우대용과 학선이는 운량포에서 멍청하니 너른 가울이나 건너다보면서 닷새를 보낼 수는 없

어서 이튿날 의주 성내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들은 다음날 중화를 들고 나서 밀물 때를 타고 오르는 거룻배에 올라탔다. 밀물을 타면

의주는 지척이라 박선도를 지나고 원남(元楠) 추목(秋木) 다지(多智) 신(新) 마(麻) 오몰

정(烏沒亭) 검동(黔同) 등의 섬과 연안 사이에 낀 샛강이 조선 측의 물길이었다. 오몰정과

마의 섬 앞에 있는 것이 위화도(威化島)요 검동과 난자(蘭子)섬 사이가 중강(中江)이니, 의

주성의 구룡연나루에서 샛강을 건너 검동성을 지나 다시 중강을 건너고 난자도를 지나면 삼

강(三江)이 나오니 곧 이곳이 구련성(九蓮城) 가는 사행길이었다.

두어 식경 만에 당도하여 의주 성내 객점거리 송방으로 찾아들어가니 박대근은 푸석푸석한

얼굴로 막 잠이 깨어 일어났고 행수 최윤덕은 우거짓국을 마시며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객점주 안서방과 송방주 임서방이 실실 웃었다.

"어제 두 분이 의주 호방을 내 사람 만든다고 색주가에 가셔서 진을 뽑고 왔답니다."

"어이구 성님, 아주 안색이 낮에 난 도깨비 상이우. 어쩌다가 그리 되셨수."

학선이가 대근의 몰골을 보고 농을 던지니 대근은 신트림만 걱걱 하면서 마당 건너 안서

방에게 말하였다.

"나박침채 국물이 있거든 한사발 갖다 주게. 허, 의주의 화주가 이렇게 센 줄 몰랐는 걸."

안서방이 대접을 들이밀며 말하였다.

"기장으로 빚은 술입지요. 거기다가 오미자를 넣었으니 들어갈 제는 남대문이요 깰 제는

수구문이올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덥석덥석 받아서 윤덕이하구 나하구 도맡아 마셨으니...... 그저 평양의

계당주로만 알았거든."

"오늘은 글렀구만요. 아침부터 벽동 신거복이가 길채비를 한다고 서성거리더니 아예 손놓고

성내루 나갔습니다."

안서방이 일러주었다. 대근은 우대용과 학선에게 물었다.

"그래 자네들 운량포 아가서 재미 보았던가?"

"새우만 실컷 삶아 먹구 왔수."

학선이가 시큰둥하니 말하였고 대용이 덧붙였다.

"잠상을 쉽게 보았더니 제법 까다롭던데. 하여간 해로에서는 많이 해내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람쥐 알밤 나르듯이 바삐 드나들며 물어 날라야 조금 쌓아두겠습니다. 물소뿔을 닷새

후에 넘겨받기루 약조가 되었수."

"우두령네 식구들은 마안도에서 박물이나 약재 거래만 하오. 이제 벽동서 새 길을 트게

되면 규모가 큰 잠무역을 해낼 수가 있을 테니까."

우대용이 대근에게 물었다.

"그래 호방이란 자가 뭐랍디까. 성님 말씀을 들어줄 만합디까?"

"일이 잘 되었소. 호방은 매 철철이로 책문에 드나드는 데 청상들 중에 아는 자도 많고 관

향고와 운향고의 대부은도 관장하고 있습디다. 물론 목사와 관찰사의 간섭을 받지마는 평안

감영의 비장들에 비길 자리가 아니오. 강호방은 대를 물린 자리라서 워낙에 압록강 일대의

만상들에 관하여 모르는 것이 없고 봉황성의 청국 관리들과도 자별하다오. 나는 그저 환

전이나 대부의 편의 정도나 볼까하여 그를 만났던 것인데 의외로 큰 봉을 물었구려."

"무슨 좋은 의논이 있었수?"

학선이가 반색을 하며 다가앉자, 대근이는 그에게 말하였다.

"참, 자네가 있었으면 훨씬 쉽게 말문이 틀 것인데, 그만 과묵한 최행수와, 체면도 차리고

조심도 해야 하는 임방 좌장인 나뿐이라 애꿎게 술만 잔뜩 마시게 되었지. 나는 그 사람에

게 다른 얘기는 않고 그저 인삼의 금령이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를 꺼냈네. 인

삼이 사행이나 무역에 해로워서 금한 것이 아니라 워낙에 채삼의 물량이 한정되어서 거래를

금한 것이 아니냐 그랬다네. 강호방은 실눈을 뜨고서 내게 묻더군. 하오면 좌장께서는 채

삼의 모자라는 수량을 훨씬 넘을 만큼 삼을 확보할 재간이 있으십니까. 그래서 나는 짐짓

웃으면서 말을 피하여, 앞으로 십년 동안 지금까지의 거래삼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인삼을 댈

자신이 있다구만 말했지. 그리구 덧붙여서 삼남의 대산맥에서 수만 평의 삼밭을 찾아냈노

라하였더니 호방은 믿질 않더구먼. 그래 내가 믿든지 안 믿든지 그것은 강호방의 마음이고,

오늘은 내가 송도 임방의 좌장으로서 오랜만에 사행 무역에 직접 나오게 되어, 용만의 전

주(錢主)를 사귀고자 하는 자리이니 더 이상 괘념치 말라고 슬쩍 말을 돌렸지. 이 자가 안달

이나더구먼.

그자의 말로는 지금 인삼의 기근으로 청국에서는 청상들이 사람을 사서 조선 복색을 입히

고 조선인 길잡이를 사서 월경, 채삼까지 한다는 얘기요. 만약에 우리가 삼을 내면 심양성의

모든 물화를 끌어모을 수가 있다는 게지. 그제서야 내가 한 제안을 했소. 우리 상단은 차대

은이나 환전의 편의를 보고자 호방과 사귀려는 것이 아니라, 송도 사람은 한식구가 되기만

하면 믿음이 지켜지는 한 죽게 되더라도 그 자손의 자손까지 관계를 끊지 않고 서로 돕는

다. 그러니 우리 행수와 나와 호방이 형제지의를 맺어서 서로 이와 입술처럼 교우가 결의된

다면 당신을 다른 만상이 따라올 수 없는 큰 부고로 만들어주겠다 하였지.

그자는 당장에 연비라도 할 듯이 흥분하여 팔을 부르걷고 덤비더군. 나는 윤덕이와 미리

의논한 바가 있어서 윤덕이에게 술을 따르라고 잔을 내밀었고, 윤덕이가 인삼 한 뿌리를 내

어 보여주더구먼."

"좌우지간 어떤 약조를 얻어냈느냐 그것만 말하시우. 이거 원 술자리 자랑으로 하루를 보낼

거요?"

학선이가 조바심을 치다 못해 불쑥 대근의 얘기를 잘랐고 박대근은 웃었다.

"하시라도 우리가 원하면 얼마든지 은을 내어주되 국내 소용으로는 의주 운향고 어음을

쓰게 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 첫째일세. 그리고 그 다음은 책문에 나와 있는 봉황성의 소

소한 상고들이 아니라 심양의 대상들과 연줄을 대어주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쇠돈을 가져오면 그것과 따져서 은자로 바꿔주겠다는 얘길세. 그뿐만 아니라 그댁에서 평

안감영의 여러 가지 시책들이나 의주목 안의 일들을 샅샅이 얻어 들을 수가 있지. 우리는

그 대신에 이윤을 나누어주고 그가 원한다면 여기서 백사나 녹각 같은 물품을 들여다가 동

래로 내려보내어 거래하고 그의 이윤을 불려줄 수가 있겠지. 그래서 우리는 호형호제하며

간밤을 꼬박 새웠네. 다른 일보다도 심양의 대상과 연결되는 일은 큰 수확이고, 그 다음에

쇠돈을 은자와 환전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일일세. 지금 곡산 수안에서는 은이

조금 나오고 사금이 나오지만 역시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며 쇠는 끝없이 나오게 되어 있

네. 장두령네 식구들이 농기구와 솥이며 기명 따위를 북관으로 가져다 야인들에게 넘긴다지

만 만약에 함석(含錫)과 썩어서 동철(銅鐵)을 내어 돈을 주조(鑄造)할 수 있게 되면 조선의

상권을 쥐고 흔들 수가 있지. 그 돈을 의주에 와서 은자로 환전하여 동래로 보낼 무역상품

을 사들인다면 말일세."

"사전(私錢)은 참수형을 당하는 큰 죄가 아니우?"

학선이가 눈을 크게 뜨고 외우니 우대용이 코방귀를 핑하니 날렸다.

"흥, 당상관 사칭은 관문 참수가 아닌가?"

잠시 이러쿵저러쿵 농이 오가는 참인데 안서방이 웬 떠꺼머리 하나를 데리고 왔다.

"강호방네서 하인이 왔습니다."

"예, 저희 상전께서 대인 어른을 모시고 저녁을 드시겠다며 여쭙고 오라 하셨습니다."

"아주 분주하구려. 이러다간 돈 갖고 두억시니(痘疫神)를 부리겠수."

학선이가 이죽거렸고 대근이는 술 먹을 걱정이 들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 좋은 말이다마는 내가 내일 식전부터 어디 원행할 데가 있어서 오늘은 안되겠다.

너희 주인에게 아뢰고 내가 다녀와서 행수를 보내마고 전하여라."

"분부대로 하오리다."

하인이 물러간 뒤에 대근은 학선에게 말하였다.

"여보게, 자네는 벼슬아치를 속이는 데에는 재간이 있건마는, 어찌해서 자비령의 장두령처럼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가 생각해본적이 있나?"

"나두 송도 가면 아우들이 많수."

"까짓 대처 소약패나 투전꾼들 말이냐. 우리 사또 학선이는 믿음성이 없어 탈이다. 봐라,

아무리 자기 아름에 들지 않을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안아주려 마음을 먹으면 자기 사람이

되는게야. 강호방을 나는 한번 보고 일단은 이득으로 꾀어들인 격이지만, 정말 내 아우를 만

들겠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곧 눈치를 알게 되는 게야."

대근의 엄숙한 말에 학선이는 표정을 고치고 답하였다.

"성님 말씀이 맞소. 제가 속은 그렇지 않으나 좀 야박한 데가 있지요. 성님 이르시는 대로

하리다." 하고는 그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 눌러앉아 길산이네 북방 행수 노릇을 하겠노라던 것은 헛말이 아니올시다. 이

번에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지요. 송도서는 아무래도 제가 파락호로 내논 형편인지라, 더

눌러 살기가 싫수."

벽동의 신거복이와 불암골에 다녀오기로 하여 박대근과 최윤덕이, 그리고 학선이까지 변

경을 돌아보는 데 빠질수 가 없다 하여 뒤를 따라 나서서, 그들은 말을 타고 순의역에서 수

구진보를 향하여 동북으로 빠져나갔다. 말하자면 압롭강의 흐름을 거슬러 강변을 따라서 올

라가는 셈이었다. 학선이는 이미 마음을 굳히고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믿을 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아예 송도를 떠나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대근과 길산이 사이에 의논만 정해진다면

윤덕이와 함께 북변에 남아 길산이네의 상단행수 노릇을 해볼 작장이었다.

철은 입동이라 주위는 아직도 컴컴한데 서리 앉은 흙덩이가 말굽 아래서 부석부석하며 내

려앉았다. 옥강진보를 자날 즈음하여 해가 멀리 강 건너편 만주 벌판 가운데서 둥그렇게 떠

올랐고, 강물은 붉게 물들었다. 청수까지가 의주에서는 백리길이었는데 가는 데마다 계곡과

개천이요 보이느니 첩첩 산이었다. 아래로는 강을 따라서 강남산맥이 연이어 달리는데 산

너머 또 그 너머로 삐죽삐죽한 연봉이 줄을 달고 서 있었다. 청수에서 중화를 들고 다시 창

성을 급히 지나쳐 오십여 리 더 가서야 벽동군계에 들어섰다. 날씨는 낮은 구름이 깔려 을

씨년스러운데 해는 벌써 자취를 감추었고, 전나무와 소나무 향나무의 빽빽한 숲 사이로

불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주위에 가득차 있었다. 실호령을 넘고 큰 재를 넘으니 이미 캄캄

한 밤이었다. 사방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밤이 되면 말들도 더 이상 행진하려 하지

않았다. 신거복이가 길잡이로 섰다. 싸리묶음을 내주어 앞뒤로 불을 밝히고 일행는 달각산줄

기를 넘어섰다. "저쪽 강변에 벽단진이 있습니다. 불암골은 바로 이 너머올시다." 신거복이

가 말하여 돌아보니 한 시오 리 되는 곳에 작은 불빛의 점들이 내다보였다. 바람소리만 들

릴 뿐 인기척은 물로니요 인가도 없는 듯 하였다. 그들이 달각산의 산줄기를 타고 넘을 때

는 말에서 내려 관목숲 사이로 뚫린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이윽고 기다란 골짜기와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데 저 아래편 어둠속에 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우리 동네지요, 고생들 하셨습니다." 사람도 말도 지친데다 저녁도 아직 먹지를 못하여

모두들 신거북의 그 말에 일시에 기운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들은 가파른 비탈

길을 내려갔고 이어서 짙은 전나무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불빛에 일렁이는 주위로는 모두

어른 서넛이 팔을 둘러야 닿을 만한 둥치의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신거복

이가 만일 자취를 감춘다면 한 발짝도 떼놓을 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양쪽으로는 야

산이건만 산줄기와 골짜기의 갈래가 대처의 전 골목같이 이리저리 뻗어나갔고, 또한 하늘

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묵들의 숲이라 가히 북방의 산맥이 깊고 웅장한 것을 알 만하였다.

"조금만 들어서면 이 지경이니........ 북변은 모두 녹림당의 산채감이로군."

박대근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신거복이는 익숙하게 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대근과 윤

덕이 학선이는 오히려 고삐에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드디어 통나무 셋을 엮은 다리가

나왔고, 계곡의 건너편에 제법 너른 터와 집들의 형체가 어둠 가운데 보였다. 거복의 말대로

십여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벽은 통나무 귀틀집이요 지붕은 너와였다.

"여보게들 내 왔네!"

거복이가 질그릇 깨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길 위로 하나 둘씩 희끗희끗 사람들이

나타났고, 그는 가운데있는 집 앞에 가서 세 사람에게 말하였다.

"여기가 제 집이올시다. 오늘 고생 많으셨소이다." 대근네 일행은 그 말에 맥이 죽 빠지고

어디든 들어가서 네 활개를 펴고 뻗을 심사가 되었다. 마당이 따로 없고 울도 없고 대문도

없으니 바로 한걸음 앞이 방문이었다. 아낙네가 나와 섰다가 얼른 내외를 하며 부엌에 들

어가 관솔에 불을 붙여서 거복이에게 내주었고 그는 거적이 깔린 방에다 손을 대 보았다.

"허, 절절 끓는군. 어서 들어가십시다." 그들이 들어가 앉고 나서 부엌에서는 새로 밥을

짓는지 나뭇가지 꺾는 소리와 연기 냄새가 전해왔다. 학선이가 말하였다.

"어이구 나는 밥두 싫구, 논의도 귀찮소, 눈두덩이 시방 천 근이우." 대근과 윤덕이도 아

랫목에 등을 지지고 드러누웠다. 신거복이는 슬그머니 나가더니 건넌방에서 동네 사람들과

그간의 얘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온몸이 녹적지근하고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더니 그대로 코를 드높게 골며 잠들어버렸다. 신거복이가 박대근을 흔들고 최윤덕을

깨우는데 일어나 보니 밥상이 들어와 있었다. 밥은 수수와 기장을 섞은 것인데 찬은 또한

별미였다. 버섯과 산나물에다 멧돼지고기가 올라 있었다. 대근이 학선이를 흔들며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수저를 잡자마자 정신없이 먹기 시작하였다.

"야. 이거 고을 수령이 부럽지 않겠구먼."

"덫에 걸린 놈입니다. 여기서야 육것이 떨어질 때가 없지요. 하지만 일 나갈제는 절대로

입에 대질 않습니다."

쩝쩝대고 훌쩍이는 소리가 요란해지자 학선이가 눈은 뜨더니 슬그머니 밥상머리에 다가앉았

다. 그들은 초저녁부에 잤는지라 이튿날에는 윤덕이를 선두로 새벽녘부터 깨어 일어났다. 신

거복이는 건넌방에서 그의 가족들과 같이 잤는데 기척을 듣고는 곧 일어나 툇마루로 나왔

다. 초겨울 마을 근처에는 오리나무와 박달나무 자작나무 떡갈나무의 거목들이 가지만 남아

삐죽삐죽 둘러서 있었고 안개 낀 달각산과 실호령 줄기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 등속이

빽빽이 서 있었다. 아직얼어붙지 않은 계곡의 물이 요란한 소리로 바위틈을 흘려내려갔다.

그들이 통나무 다리께에까지 나아가 바라보니 계곡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서 저 입구까지 얼마나 되나?" 대근이 물으니 거복이 말하였다.

"예, 여기서 첫 번째 굽이까지 가는 ㄷ 삼십 리를 내려가야 하고, 거기서 휘어져 두 번째

굽이까지는 다시 사십여 리요, 세 번째 굽이에서 되돌아 압록강까지 또한 사십여 리올시다.

실로 백 리가 넘는 계곡입니다."

"대단하군."

"이건 아무것두 아니올시다. 벽동군내에만도 백 리가 훨씬 넘는 내가 여럿인데 그중에 성

창천은 백오십 리요 학천은 백삼십 리입니다. 초산 위원 강계에는 이백여 리나 되는 내와

하천이 많습니다. 낭림산막을 지나면 온통 높은 산과 무인지경의 골짜기와 수백갈래의 강과

시내입니다."

그들은 거복의 말이 아니더라도 벌써부터 북변의 산세와 수림의규모에 놀라고 있었다. 그

들의 눈앞엔느 아득한 게곡의 저편 굽이는 보이지도 않았고 양쪽에는 물결처럼 오르락내

리락

흐르는 연봉들이 오른쪽에 네 군데 왼쪽에 세 군데 보였다. 그하나 하나가 모두 자비령

만해

보였던 것이다.

"여기가 산두 아닙지요. 가릉령 아득령을 넘어가야 산다운 산이 나옵니다."

"벽단이 어디인가?"

"어제 우리가 왔던 길을 되밟아 달각산 줄기를 넘으면 바로 그 아래입니다. 여기서 북으로

삼십 리입니다."

"가까북먼...... 해천(解川)은 어디인가?"

"실효령이 벽동과 창성의 군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실호령과 큰 재 사이에 한 시오 리 되는

개천과 뻘밭이 있는데 그곳을 게내라고 하고 압록강의 강폭도 좁습니다. 바로 저 서쪽 등

성이 너머에 있습지요. 강을 건너 십여 리 가서 청인 마을이 나옵니다. 벽동서는 우리 마을

이 관아와 군영에서 가장 멀고 후미진 곳이며, 해천동과는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셈이지요."

"참으로 요지에 터를 잡았군. 헌데 이 마을에 우리네 집도 한 채 마련을 해준다더니 어떻게

주선이 되었는가?"

"주선이고 뭣이고 없습니다. 이제 할 일도 없고 노는 손도 많으니 좌장께서 어디라고 짚

기만 하시면 당장에 귀틀집을 지어 올리지요."

"그런데 자네들 농사는 어디다 지어 먹나?"

대근이 물으니 거복이는 빙그레 웃었다.

"아까 말씀 올렸지요. 이 계곡이 백 리가 넘습니다. 아무데나 나무를 베어 넘기고 불을 질러

화전갈이를 합니다. 저희 열 집 농사로는 조금만 지어도 두어 해의 양식이 됩지요. 땅은

기름지고 물도 풍족합니다. 관차도 이곳엔 오지 않습니다. "

"헌데 채삽군이 자네들뿐인가?"

"웬걸요. 이쪽 강남산맥 일대와 낭림산맥 묘향산 일대에 대를 지어 삽니다. 거개가 하전민

입지요. 강계가 삼으로 소문이 낭자해진 것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관의 채삼 수집소가 있

었기 때문이지요. 저희 고장에서는 강계에도 가지만 의주로 내는 것이 훨씬 편하지요."

대근은 윤덕에게 가만히 말하였다.

"이 골에다 삼포를 지으면 되겠구나. 어떠냐 네가 보기에 삼이 나겠느냐?"

"이 이상 좋은 데는 따로이 찾지 못할 것입니다. 강계로 구태여 들어갈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기에 사또 성님 계시라 하고 저는 의주 송방과 벽동간을 내왕하면 편리할 듯합니다."

대근이 다시 학선이에게 물었다.

"어떤가? 이곳에다 우리 거처를 지으면, 자네 여기서 뱃길 만하겠나?"

"글쎄요. 의주라면 몰라도.....아니면 강계에다 송도의 저희 식구를 이사시켜주실 테요? 그

러신다면 아주 여기서 새로 살 자신이 있수."

"그래, 명년 겨울 전에 윤덕이와 자네 식구를 의주와 강계로 옮기도록 해야겠네."

그들은 아침을 먹고 나서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여 집터를 정하였고 신거복이를 따라서 게

내를 살피러 나갔다. 게내에서 모래톱이 형성되어 압록강은 폭이 좁아져 있었고 물살도 약

하고 깊지 않은 듯 보였다. 또한 그곳에는 작은재 봉수대가 있을 뿐 군사는커녕 인가도 없

었다. 얼어붙기만 하면 언제든지 수시로 월경을 할 수가 있었다.

"이뽁에 밧줄을 매고 떼를 타고 건넜다가 줄을 당기며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신거복이가 말했고 대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잠상은 되도록 월경 포착이 되지 않아야 오래 가는 법일세. 얼음이 얼어붙는 한

겨울 동안에 부지런히 나다녀도 일 년 거래량은 충분히 채우게 될 게야."

그들은 벽동 군게인 실호령서 신거복이와 작별하고 창주보에 당도하여 상류에서 내려오는

뗏목에 올라탔다. 기다란 통나무가 줄줄이 엮어진 위에는 집이 지어졌고 솥과 노구도 있

었다. 강의 양안으로는 끝없는 땅과 겹겹의 산줄기가 계속해서 따라왔다.

마침내 사행날이 돌아왔다. 학선이와 우대용은 운량포로 나가 있었고 워낙에 사행에 끼우는

인원이 제한 되어 있어서 차인들도 반으로 줄였다. 박대근 최윤덕 그리고 의주 출신인 안

서방과 차인 열둘 중에 다섯을 넣으니 모두 여덟 사람이었다. 말은 스무 마리가 넘었으나

세 마리에 타고 다섯에 짐을 실으니 나머지 십여 필은 여마의 소용이 될 것이었다. 사행의

관원은 대략 삼십여 명에 이르렀으니 정사, 부사, 서장관, 당상관 둘, 상통사 둘, 질문종사관,

압물종사관 여덟, 압폐종사관 셋, 압미종사관 둘, 청학신체아, 의원, 사자관, 화원, 군관 일곱,

별차, 만상군관 둘 등이었다.

그런데 정부사에 따라붙는 각종 하인 마부 등속이 스물 이상이라 합하여 마흔이며 서장관

에는 여덟이 붙으며, 당상역관에서 상통사와 종사관 만상군관들에 이르면 열다섯에 이르니,

모두 육십여 명에 이르는 셈이었다. 또한 송상과 만상이 다섯 부처의 무역별장 직임을 차지

하였으니, 그 아래 마부하인 곁꾼 차인 등이 수십 인이었다.

여하튼 배가 구룡정 앞에서 방물의 수검과 인마의 점열이 시작되었는데, 서장관과 평안도

도사 의주 부윤이 입회하였다. 각종 말의 장식이며 안장과 비장들의 전립이며 철릭의 치장

과 색깔이 요란하였다. 금문을 표시하는 깃대 셋이 차례로 줄지어서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

다. 검수중에 금제하는 물건이 첫 문에서 발각되면 중곤형이요 물건은 몰수였다. 둘째 문에

서는 귀양을 보내고, 셋째 문에서는 참수 효수형이 되었다. 부윤과 서장관이 장막에 앉았다

지만 그들은 새벽의 어한주를 나누고 있고, 실제로는 의주 호방과 만상군관이 사람과 말을

검열하였다. 강을 건널 사람들의 용모파기와 말의 털색깔을 상세히 적고 깃대 셋을 거치면

서 금제품을 뒤진다. 금제품은 금령이 내려진 인삼과 금과 초과되는 은자였고, 때에 따라 금

령이 풀리거나 새로 묶이기도 하였다.

박대근네 상단에서는 애초부터 인삼을 가지고 나올 생각도 없었고, 다만 이할 오푼의 이

자을 쳐서 빌린 송도와 호조의 차대은 도합 오만냥과 수달피 삼백 장이 그 전부인지라 별

로 골치 썩일 일도 없었고, 호방은 더구나 그와 한통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무역별장을

따낸 송상의 다른 상단 행수 접장들은 각자가 줄을 댄 역관이나 군관들을 통하여 수량이 초

과된 물건이나 은자를 통과시키고 있었다. 온통 강변에는 풀어 헤쳐진 짐과 부담이며 침구

보따리로 난장판이 되었고, 이는 다만 강을 건너기에 앞서 사행의 체통을 세우려는 형식

이 지나지 않았다.

정부사 일행은 의주부윤이 내는 다담상 앞에 둘러앉아 어한주를 마셨고, 각 상단의 무역

별장으로 뽑힌 장사치들은 제각기 수검이 끝난 물품들을 정돈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대근

이네는 은자 오만 냥과 수달피 삼백 장을 건성으로 수검받은 뒤에 깃대를 통과하여 강변에

다 말과 짐을 챙겨두었다.

구룡정 나루터에서 배를 띄웠는데, 각 상단에서는 이미 전날에 귀중품을 빼돌려 삼강 건너

편에 부려놓았으므로 범금에 걸린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깃대의 문을 통과한

물품과 사람과 말이 건너고 정사가 탄 배에는 표문과 자문을 싣고 역관들과 상방의 곁꾼들

이며 부사와 서장관과 그 곁군들이 한배에 같이 탔다. 의주서 나온 관원들이 모두들 뱃머리

에서 하직 인사를 올렸다. 구룡정 나루에서 검동섬을 돌아 난자섬을 넘어서게 되는데, 이 두

섬 사이의 샛강이 중강이요, 난자섬에서 청의 연안에 닿는 곳이 삼강나루이다. 나루에서 곧

바로 구련성으로 가는 직로가 뚫려 있었다. 멀리 강심에서 조선쪽을 바라보면 의주성이 길

게 누워 있고 그 너머로 우뚝 솟은 통군정의 누각이며 기와 지붕이 주발뚜껑만하게 보였다.

섬 주위로는 갈대가 빽빽하고 빠른 물살이 검은 진흙으로 덮인 섬의 가녘을 핥으며 내려갔

다. 장백산에서 내려오는 뗏목들이 줄을 지어서 살같이 흘러 지나갔다. 난자섬을 넘어서 삼

강 어름에 이르러서야 강물이 잔잔해지고 물살도 느려졌다. 청의 연안에 있는 마이산과 송

비산 사이로 흘러내려오던 애라하가 압록강과 만나는 곳이 바로 삼강이었으니, 난자를 끼고

십 리쯤 잔잔하게 내려가다가 위화도 머리에서 급해지게 되는 것이다. 삼강나루터는 봉성에

서 나온 청관이 관리하였는데 청인 일꾼들이 배의 짐과 사람과 말을 마른 땅으로 날라다 주

었다.

구련성까지는 끝간데 없는 벌판이고 소나무와 전나무의 숲이 이어져 있었다. 산세는 곱고

물은 맑았으며 아득한 벌판 가운데 마을이 간간이 나타나곤 하였다. 그러나 거의가 인적 없

는 버려진 땅이었다. 일행은 이른 저녁에 구련성에 당도하여 일부는 인가에 들고 나머지는

가져온 장막을 치고 묵기로 하였다. 박대근네 상단 사람들은 의주의 만상들과 송도의 다른

상인들과 더불어 저녁 준비를 하였고, 관원들과 역관들은 그들과 따로이 인가에서 저녁을

먹었다. 상인들은 거칠 것이 없고, 또한 원로에는 잘 먹고 마시는 게 관례라 닭이며 오리를

잡고 술을 데워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었다. 구련성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책문에 당도하

니 압록강에서 백이십 리 길이건만 짐과 인원의 관리로 늦어졌던 것이다.

구련성에서 삼십 리 길에 금석산이 있고 다시 삼십 리 만에 총유( )에 이르며 봉황산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곧 책문에 당도하게 된다. 봉황산은 모래 위에 세워둔 수석처럼 벌판위

에 우뚝 솟았으니, 손바닥에 손가락을 세워놓은 듯, 반개한 부용 꽃봉오리 같기도 하고, 하

늘가의 여름 구름 같기도 하며, 빼어나고 깍아지른 듯한 기상이 있으되 청윤한 기운은 덜한

것 같았다. 역시 대륙의 산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너른 들판은 끝이 없고 개간지는 없었으나 화전터가 보였다. 양과 돼지가 방복되고 있었다.

책문은 나무로 말뚝을 세워 목책을 지어 경계를 표시하였는데 버드나무 가지를 꺽꽂이하여

채소밭을 두르는 것과도 같았다. 책문은 이엉으로 덮었고 널판문으로 굳게 잠겨져 있었다.

주위에는 밥 짓는 연기가 가득하였고 목책 안으로 청인들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상부사와 서장관 등의 삼사가 먼저 목책 밖에 당도하여 막사를 쳤고, 상고와 곁꾼들은 짐을

부리고 뒤늦게 도착하였다. 청인들은 목책 안에서 내다보는에 모두 곰방대 물고 머리는 변

발이었으며 포를 겉옷으로 걸쳤고 주머니나 담배쌈지를 주렁주렁 차고 있었다.

역관과 무역별장과 곁꾼 역으로 따라온 만상 등의 장사치들이 목책으로 다가가서 그들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아는 체를 하였다. 여마를 인솔한 강호방은 행렬의 맨 뒤에 당도하

였는데 그는 곧 목책으로 다가가서 청인들과 인사를 하였다. 책문이 열리고 봉성장군과 책

문어사가 수세청에 좌정하였다는 전갈이 왔다. 청인 난두배기 줄지어 책문으로 몰려 나왔는

데 그들은 요동과 봉황성 사이의 청부 운수업을 하고 있는 거마꾼들이었다. 이들 요봉차호

들은 청상과 결탁되고 청의 관리들과도 맺어져 있어서 왕래하는 봉물의 운임따위에는 관심

도 없고 오직 무역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다.

책문 안의 집들은 모드 처마가 높다랗고 지붕은 띠로 이엉을 하였으며 용마루가 치솟고

문과 창문이 크고 가지런하였다. 거리는 죽 뻗어나갔으며 번듯번듯하고 바둑판을 가른 듯하

였다. 담은 모두 벽돌이고 사람과 짐을 싣는 수레가 뻔질나게 왕래하였다. 비록 동쪽 끝의

변방인데도 이러하였다. 책문에서 몰려나온 차호 상인들은 모두들 조선 측의 짐의 규모와

무게를 살폈다. 이들에게는 운임에 해당하는 예물을 나누어주고 또한 책문의 제반 업무를

맡은 관리들에게도 일일이 예물을 주게 되어 있었다. 책문 안은 이미 청국 경계의 시작이었

다. 길 오른쪽에 초청 삼 칸이 있어서 관리들은 청국 관리들과 제반 절차를 다지러 가고 박

대근이나 다른 장사치의 일행들은 그 길로 차호들의 안내를 받아 사처에 들었다.

원래가 책문의 뒷장으로 여마와 연복이 성행하게 된 것은 수년래의 일이었다. 몇번이나

엄금하려 하였으나 막을 방법이 없어 의주부에서도 상인들로부터 약간의 장세에 해당하는

은냥을 받고 인원수에 제한을 두지 않고 도강을 허락하게 되었던 터였다. 장사치들은 사행

의 꼬리에 붙어서 거의 공공연하게 책문을 드나들 수가 있었다. 여마는 사행의 방물과 세폐

를 실은 말 가운데 혹시 다치거나 과중하게 되는 일이 있을까 염려하여, 말을 정수 외에 들

여보내는 제도에 편승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연복이란 사행이 돌아올 때에 책문에서 의주

에 이르기까지 봉물을 맞기 위하여 들여보내는 부담마에 편승하는 방법이었다. 예전에 심양

에 성경부를 설치하고부터 압록강을 건너서 책문 봉황성 요양을 거쳐 십리보로 하여 성경에

들르게 되었고, 숙종 오년에 청국에서 국방관계로 우가장에 설보한 뒤로는 기밀을 지키기

위하여 우가장통과를 금하였으므로, 성경부에서 변성 주류하 자기보 이도정 소흑산 광녕으

로 나가도록 되었다. 심양은 청국의 발상지이며 따라서 청제의 선조들이 묻혀 있는 곳이라

하여 사행이 가져가는 공물의 일부는 심양에 분납되었다.

우가장 통과가 금지되기까지는 사행이 우가장에 당도하여 심양에 분납할 공물을 그곳의

관부에 교부하게 되는데 이때에는 조선측의 압불종사관과 청역이 함께 심양에 가서 호부에

바치면 되었다. 그러나 우가장 통과 금지 이후로는 사행이 직접 성경에 들러서 직접 봉물을

분납하였으니 분납품을 싣고 갔던 인마는 도중에 귀환하게 되었고 이 중도 귀환 인마의 인

솔 책임을 진 것이 곧 단련사였다. 단련사의 등에 업혀서 심양과 책문을 오가며 거래할 특

권을 갖게 된 것이 바로 무역별장이었다.

그러나 박대근의 상단에서 무역별장직을 포기해버린 것은 그것이 잠상의 형태는 되었을망

정 역시 관과 결탁된 반공개적 무역이라 한계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한정된 은자

의 액수를 넘게 거래한다거나 수달피 등속의 물량을 늘린다거나 하는 범칙은 할 수가 있었

으나, 인삼과 금 등의 금지된 품목은 절대로 교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근네는

다른 미미한 상고들같이 일정량의 은냥을 의주부에 세로 바치고 여마 연복에 편승하는 시늉

만 냈던 터였다.

객관은 벽돌집이었는데 규모가 크고 터가 넓어서 오고가는 장사꾼들이며 행객이 수없이

드나들고 수레가 수십 대나 건물 안 복판 마당에 대어졌고 마구간은 병영처럼 줄비하였다.

객관마다 창고가 있었고 외실(外室)을 달아 한길 쪽은 점포로 꾸며졌다. 점포의 외양은 조각

한 창문과 비단을 드리운 문이며 그림 그려진 기둥, 붉게 칠한 난간, 푸른 주련(柱聯)과 금

빛 현판으로 화려하였고 물건들은 모두 심양이나 북경에서 온 것들이었다. 이러한 객관이나

상인들의 집은 깨끗하고 화사하여 마치 높은 벼슬아치들의 저택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심양의 청상들은 이곳 책문에다 따로이 지점 비슷한 점포를 내어두고 조선측 상인들과의 교

역에 응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양에서 다시 북경으로 인삼이나 조선의 귀물들을 넘기는 중

도아역을 하는 셈이었다. 강호방이 박대근과 최윤덕을 데리고 청상 오탁(吳卓)의 집으로 같

이 갔다. 그는 심양의 외숙과 연결하여 그의 책문 점포를 운영해주어서 거부가 된 사람이었

다. 그는 심양까지 가는 사행에도 자기 수하의 수레와 수레꾼들을 수십 명 대어주고 있었다.

그의 외숙 되는 사람은 봉천장국(奉天將軍)과 친지 사이며 심양의 대상고였다.

"그에게 대이면 무슨 물건이든 구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인삼이라면 요새 청국

에서 삼이 절품되었는 고로 반드시 만사를 제치고 달려들 것입니다."

강호방이 일렀다. 그들이 깨끗한 민가로 들어가니 가운데는 연못을 파고 그 위로 반월형

다리를 만들었는데, 잎을 떨군 각종 관상수와 바위들이 보였다. 전갈을 받은 심부름하는 아

이가 나와 섰다가 그들을 객실로 안내하였는데 벽돌로 된 담벽 안쪽에 역시 벽돌로 쌓은 구

들이 있고 거기서 열기가 나와 온 방안이 훈훈하였다. 탁자와 의자는 옻칠이 반들거리고 의

자 위에는 바단 방석과 바닥에 융단이 깔렸다. 색색가지의 구슬을 꿴 주렴이 안쪽으로 트인

통로에 드리워져 있었다. 주인이 나오는데 비단 포를 걸치고 그 위에 수달피 배자를 입었다.

강호방과 반가이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만주어 통역에 의하여 상담이 진행되었다.

"우선 우리는 백사 오만 냥어치를 사고자 합니다."

박대근이 말하자 청상 오대인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하였다.

"송도의 좌장이시라면 으레 무역별장이 되셔서 심양으로 가시지 않고 상역을 책문에 그치

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대근이 강호방을 통하여 말하였다.

"우리는 인삼을 팔고 싶기 때문이오."

"인삼이오? 사실 다른 상단에서도 조금씩 내기는 하지만 한두 포를 가지고 거래라고는 할

수가 없지요. 도대체 얼마나 가지고 있기에 그러십니까?"

"우선 첫 거래로 삼백 근이외다."

그제서야 오탁은 누을 둥그렇게 떴다.

"삼백 근! 그것도 첫 거래라는 말씀이면 더 있다는 것입니까?"

박대근이 곁을 돌아보다 윤덕이는 준비해온 작은 합 속에서 인삼 두 뿌리를 내어 탁자 위

에 올려 놓았다. 오대인은 그것을 집어들고 기뻐하였다.

"허어, 물건도 아주 상품이오. 이 정도라면 심양은 물론 북경에서도 좋은 가격에 낼 수가

있소."

그러다가 그는 다시 고개를 들고 강호방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당신네 조선에서는 인삼을 국외롤 반출하면 참수형에 처하도록 정했을 텐데. 그

금령을 어떻게 거역하겠다는 거요?"

박대근이 강호방에게 일렀다.

"어차피 책문의 뒷장은 잠상이기는 마찬가지요. 그런데도 공인된 물품 외에는 거래할 수가

없고, 다만 거래량만 제한을 받지 않을 뿐이지요. 우리가 지정하는 장소로 우리 쪽이 원하는

물건을 대어줄 수만 있다면 인삼은 어느때라도 얼마든지 드릴 수 있소이다."

오탁은 눈을 휘둥그레 굴리면서 물었다.

"채삼이 그렇게 많소?"

"우리 상단에서는 조선의 내륙 산간 지방에서 수십 년을 캐어도 남을 삼밭을 찾아냈습니

다."

"아 굉장한 일이오. 이것이 그중의 하나란 말이지요?"

오탁은 흥분을 감추려는지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 콧날개를 벌름거렸다.

"육년생에서 십년생까지 계속 나올 것입니다."

오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인삼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갑다기 손뼉을 두드렸다. 안내하던 소

년이 나타났고 그가 만주어로 뭐라고 중얼거리자 소년이 읍하고 나갔다. 그는 강호방을 통

하여 다시 말하였다.

"그냥 딱딱한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친분을 나누게 되었으니 한 잔 들면서 상담을

계속합시다."

박대근이 대답하였다.

"오늘 하루 묵고 나서 사행은 심양으로 출발할 것인즉 여마를 핑계대고 책문에 들어온 우

리 상단은 사행이 되돌아올 때까지는 다시 머물지 못하오. 어서 상담을 끝내버립시다."

"좋소, 근당 얼마를 원하시오?"

"먼저 우리가 공공연히 사들일 백사의 가격부터 정하십시다. 백사 백 근을 얼마에 내시겠

소?"

"은자 이십 냥이오.'

박대근은 껄걸 웃었다.

"허허, 아마도 인삼값을 예상하여 백사의 값을 올리시는 듯한데, 지난 봄까지 열 냥이었다

는 걸 잘 알고 있소이다. 우리는 본국의 호조와 송도부에서 이할 오푼의 이자로 관은(官銀)

을 대하(貸下)받았지요. 이미 오만 냥 차대은에서 이자를 제하고 받았으니 높은 가격에는 응

할 수가 없소이다."

박대근은 탁자에 놓았던 인삼을 다시 합에 챙겨 넣었다.

"만약 열 냥에 내주지 않겠다면 달리 무역별장을 맡은 우리 상단에 위임하여 같은 가격으

로 그들이 이익을 취하도록 하겠소. 결국은 조선의 재화가 될 테니까요."

오대인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참 훌륭하신 말씀이오. 하지만, 조선의 대하은(貸下銀)은 원금상환에 이 년이나 기간을

주고 분납이나 잡물 대납도 받는 아주 유리한 조건임을 잘 압니다. 그 뿐 아니고 비록 이

곳 책문에서는 우리 백사를 그런 가격밖에 못 받지만, 당신네가 조선 남쪽에서 왜인(倭人)에

게 팔아 넘길 때에는 두 배 이상 받을 수가 있음도 우리 청상들은 다 알지요."

"삼천리의 상거이니 중로의 수송에 드는 인마의 노자와 왜관의 세금을 제한다면 별 이익이

없지요. 어떻게 하겠소. 열 냥에 내시겠소?" 그래서는 대처에 가면 노상 상사람 취급을 당

하여 아우드이 갓과 도포의 복색을 권하지만 길산은 그것만은 질색이었다. 성님이 그러하니

아우들 또한 맨두건 바람이나 남바위에 말득이나 패랭이를 얹었다. 길산과 말득이는 평안도

를 휘돌아 의주에 가서 박대근과 합께 강변 칠읍을 둘러볼 작정이었고, 업복이는 함흥 백운

산으로, 그리고 경기도서 무진 난리 때 도망온 정대성이는 일단 원산에 들렀다가 함경도 식

구들을 갈라서 회령으로 나갈 작정이었다.

 

길산의 일행은 수철점에서 묵고 울여울의 상류를 향하여 팔십 리를 지나서 평안도 지계를

넘어 양덕에 당도하였다. 양덕에 들판은 거의 없는 편이며 모든 길이 골짜기와 골짜기를

통하여 연결되었다. 또한 길 옆에는 골짜기에 따른 수십 갈래의 개천이 지나갔다. 양덕은 곡

산보다도 궁벽한 곳이었다. 또한 언진산맥과 낭림산맥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였다. 천산

한골

안에 쓸쓸한 여덟아홉 집이라고 양덕의 산촌을 표현한 이도 있었다. 현이라야 스무

집이

될까말까 한 마을에 관가도 여기서는 초가에 지나지 않았다. 논은 한 군데도 없었고 거

의가

메조나 기장을 심어 근근이 양식을 삼았다. 그들은 현내에 있는 주막에 찾아가 봉놋방 신

세를 졌다. 양덕은 적송이 온 산 줄기를 뒤덮은 고장이라 겨울바람이 숲을 몰아치는 소

리로

마치 만경창파가 솟음치는 큰 바다 속에 들어앉은 듯하였다. 저녁밥상이 나왔는 데 밥은

날아가는 서속밥이요, 반찬은 산나물이며 더덕과 송이가 먹음직하였다. 남천서 잡아올린 쏘

가리탕은 반찬보다는 안줏감이었으나 현내는 술은 없었다. 밥 먹고 나서 둘러앉아 곰방

대를

물고 담배를 태우려니 주인이 들어와 말참례를 하였다.

"어디 방이 차지는 않으신가요."

"괜찮소, 절절 끓는데."

"모두들 함경도루 넘어가십니까."

"왜 그러우. 주인은 그걸 알면 밥값이라두 공짜루 해주려우?"

강말득이가 퉁명스럽게 받으니 순박하게 생긴 주막 주인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이구, 손님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희 집은 대처의 객줏집과는 달라서, 그저 가끔씩 북

도로 오르는 이들게 길양식이나 받아 한철 농량으로 보태 먹구 지냅니다. 과객을 거저 먹여

드린다는 것두 철 나름이지요."

농을 받을 줄 모르고 손을 내젓는 주인의 모양이 야박하다기보다는 고지식하게 보여서 길

산은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지금 내일 아침까지의 숙식대를 드리리다. 우리는 공으로 먹고 나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오."

"저런 제 뜻은 그게 아니올시다. 양덕이 원래 궁벽한 고을이라 말씀입지요."

길산이 봇짐 속에서 반 냥짜리 은편 한 개를 꺼내어 주니, 이는 미곡 닷 되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주인은 더욱 놀라는 것이었다.

"이건 좀 과합니다. 이틀 묵어 가시지요."

대처에서라면 쓰다 달다 뒷소리도 없었을 것을 과연 한촌 인심이 순직하였다. 주인은 은

편을 깨물어보고 나서 손에 쥐고 아래위로 추스려 보기도 하였다.

"금이 이만하다면 대단한 재물이겠지요?"

주인의 말에 길산도 이번에는 좀 기분이 언짢아졌고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인데 김선일이가

말하였다.

"금을 가진 사람처럼 얘기하네. 여보슈, 이런 경치 좋고 평안한 골에서 밥 세 때 놓치지

않고 사는 게 태평성대요. 가만 보니 주인은 혼 좀 나야겠소. 집 잃고 땅 잃고 구몰당해

봐야

정신 바싹 차리겠는걸."

"이런 금덩이도 만져봤고, 혼뜨검도 당했지요."

주인 사내는 픽 웃더니 은편을 집어넣고 다시금 사례하며 일어났다.

"말은 솔질도 해주고 마른 풀도 먹였습니다. 아주 훌륭한 말들입니다. 그럼 편히들 쉬십

시오."

하고 나가려는 사내의 옷자락을 말득이가 잡고 늘어졌다.

"허, 남의 애를 태우지 말고 하던 옛날이나 마저 해보시우. 밥값두 푸짐하게 받았겠다. 봉

놋방 재미야 서로 돌려가며 나누는 옛말 재담 맛인데 주인장 소싯적 얘기나 들어봅시다."

이시흥이나 대성이는 그거 좋겠다며 맞장구를 쳤고 길산이도 팔베개를 하고 벽 쪽에 붙어

누워서도 은근히 사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나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 업복이가 말하였다.

"금덩이 만진 얘기 좀 해보시우."

그러나 주인 사내는 좀처럼 얘기를 꺼낼 기색이 아니었다.

"원래가 양덕 태생이 아니시오?"

말을 끌어내려고 선일이가 물었고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박천 살았지요. 진두강 아래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둔전을 부쳐서 갈아먹었습니다. 지난

계해 갑자 흉년에 땅은 모두 불볕 가뭄으로 말라버리고 양식은 없어 대처인 안주나 평양

으로 가겠다고 식솔을 데리고 고향집을 떠났습니다. 뭐 가진 게 있었나요. 식기 두어 개와

옹솥과 이불 보따리 하나뿐이었지요. 더러는 얻어먹고 또는 죽소에도 찾아가고 하면서 연

명을

하다가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잠자코 듣고 있었으나, 김선일이가 그와 같이 정주에서 농사를 근거를 잃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던 경험이 있었느지라,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잠채꾼들이 광부 모집하러 다니지 않습디까?"

"예, 그랬습니다. 어찌 아십니까?"

"가만있어봐라. 금덩이 얘기가 나올 텐데 왜 가로막구 야단이냐."

업복이가 김선일이를 박아놓았고 말득이가 한마디 하였다.

"이 두 사람두 예전에 잠채꾼들의 사노가 되었던 것을 우리 성님이 살려놓아서 지금은 제법

장가들고 팔자도 고친 거요."

"잠채꾼들을 따라서 운산이나 가산 영변 등지의 산골로 따라간 사람들도 있었고, 북도로

올라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만 저희는 운이 좋았지요. 전에 잠채꾼을 따라다녔다는 사내가

말하기를, 성천 비류강에 가서 모래를 뜨면 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

리는

남부여대하여 다른 유민 가족들과 같이 성천으로 가는 데 순안 자산 강동에 이르니 소문을

듣고 천여 명이 넘는 난민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성천에서 사금이 나왔다는 말은 있었소. 그리 크게 볼 것은 못 됩니다."

선일이는 아는 체를 하였고 주인이 이어서 말하였다.

"하여튼 비류강 강가에서 유민들이 하얗게 몰려들어 사금을 떠내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도구라고는 벽채나 끌 같은 쇠꼬챙이에 자루 하나, 체에 쓸 바구니나 고리

뚜껑

따위였지요. 칠팔세 되는 아이에서부터 육순 넘은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변에

달라

붙어 있습디다. 먼저 바가지로 모래를 퍼서 체에 담아 강물에 담갔다가 꺼냈다 하면서

쌀을

일 듯이 하노라면 모래는 물에 씻겨 아래로 흘러나가고 좀 굵은 모래알들이 남게 되

지요.

그 틈에서 금알갱이를 찾아내는 것이지요. 어떤 때엔 두세 개 또 어떤 때에는 허탕을 치

기도 합니다. 대개 경험이 많은 이들은 사구의 생김새만 척 살피고도 좋은 장소를 찾아내

지요."

양덕 주막의 주인이 말하는 방법은 지금 길산이네 언진산 청룡고의 잠채터에서 사금을 떠

내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시흥과 김선일의 말에 의하면 지금 북도와 서도의 중간

경계

지점인 낭림산맥 일대와 북도의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마천령산맥, 그리고 그 두 산맥 사

이의 아득령 너머 허천강 장진강 부전강 일대에는 아무도 발을 디뎌보지 못한 원시림과 심

심산곡이 쌨는데, 농사짓고 화전갈이할 땅이며 덫을 놓고 함정을 파는 사냥터며, 주인이

말한

것과 같은 금과 은의 잠채터가 수없이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이곳 일대는 실로 관의

힘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광대무변의 새로운 고장이었다. 주인은 말을 계속하였다.

"물살이 세어서 상류의 여울이 만들어 놓은 모래톱이라든가, 지류와 본류가 합치는 곳이

라든가 강물이 땅의 양안을 치고 내려와 벽이 가파른 곳이라든가 그런 데가 좋은 장소입

니다.

하여튼 좋은 데에 자리만 잡으면 하루에 열서너 알갱이를 떠낼 수가 있고 못해도 두어

알은

얻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엇씩 짝을 지어 인적이 드문 상류로 올라가 한 달 사이에 줌치

로스무 개를 만들어 일시에 부자가 된 사람두 있습니다. 금 한 알갱이가 작은 것은 좁쌀

만한

것에서 큰 것은 팥알만한 것까지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부지런히 골라내면 두세

냥은

벌었으니 농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때는 흉년이라 밥값을 벌기가 수월

찮은

일이었지요. 자연히 사방에서 무뢰배와 악소패와 노름꾼 창기 들병이들이 몰려와 그때에

성천 강동 순안 일대는 장시가 즐비하게 섰습니다. 그래서 성천부사가 점을 개설하고 호

패가

없는 자들은 모두 외방인이라 하여 작업하지 못하도록 막았지요. 그러나 실상은 지방 부

호나 권세가가 관가의 첩문을 받아내어 모리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지

금도

농한기에 한하여 그 지방 사람들에게만 채금을 허락하고 있지만, 소출이 예전과는 다르

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류강에 연한 어느 산록인가에 금이 무더기로 묻힌 곳이 있

다는

짐작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섯 사람이 작당하여 잠채를 다녔는데 저 양덕의

서쪽

끝에 성천계오 닿는 곳에 있는 개여울에서 석영의 돌 사이에 박힌 계란만한 금덩이를 건져

냈습니다. 그곳에는 온통 자갈과 물돌뿐이었지요. 어느 산의 계곡에 선가 토사에 밀려

쌓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천 금점으로 가서 예전같이 미곡과 무명으로 바꾸려 하였더니, 점주

라는

자가 들락거리고 번수가 살피고 하더니만 장교가 와서 덜커덕 잡아 가두는 것이었습

니다.

범금하였다며, 잠채한 자는 본인에 한하여 삼 년간 섬에 유배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래서

우리는 잠채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누치를 잡으로 강에 갔다가 주웠다고 발명을 했지요.

곤장만 맞고 풀려났으나 늘 잊지 못하여 다시 개나루로 나가서 사금을 떴습니다. 씨알이

굵은

것이 많이 나왔지요. 우리는 그것을 성천으로 내가지 않고 순안에 내다가 팔아 식구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헌데 다시 소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채라는 것은 사람을 버리게

합니다. 한나절 가만히 앉아서 금조각을 골라내면 밥은 근근히 먹게 되니 다시는 농사지를

생각이 없어지게 됩니다. 근근히 밥은 먹으나 어디 사람이 근거가 있어야지요. 더구나 잠채

꾼끼리는 노름이 성하여 그날 하루 번 일당으로 골패를 노는데 재수 없으면 빈털터리가

되어

굶는 날두 있습니다. 마누라가 애걸복걸하고 아이들의 정경도 가엾어서 그만 패거리와 헤

어졌습니다. 한 십 년 이 골에서 남의 땅도 부쳐먹고 이렇게 행객을 받아 호구를 합니다만,

어떠다 쇳조각이라도 보게 되면 기분이 야릇해집니다. 그때에 건졌던 그 금덩이만 있었

으면

저는 부자가 됐을 겁니다."

주인은 은편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김선일이 물었다.

"그러면 그때의 열었다던 금점이 아직도 성천에 있소?"

"다 없어졌지요. 소출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개나루라는 데가 여기서 얼마나 되오?"

"한 백삼십여 리 됩니다. 양덕 일대의 하천이 모두 한 군데로 모이는 곳입니다. 비류강의

사류지요."

"강의 상류가 어디요?"

"글쎄요. 가보진 않았습니다만 저어 낭림산맥의 오강산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길산이가 말하였다.

"내가 잘 알지. 병풍산와 운봉산과 오강산이 한데 모여 있는 곳이다. 운봉산서 산 적이

있다."

"성님과 제가 처음 만난 곳입니다."

김선일이가 옛날 생각이 난 듯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스스로 감탄하였다. 길산이 주인에게

물었다.

"만약에 새로 채금터가 생긴다면 성천이나 양덕 관아에서 또 금전으 독차지하거나 첩문을

내어 누군가에게 넘겨주겠구먼."

"예, 하지만 아전을 끼고 조금씩 인정을 바치면서 해내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

지요."

"그럼 주인이 한번 해보시구려."

"허허, 저희 같은 미미한 것들이 무슨 밑천이 있습니까, 일꾼들이 있습니까, 금줄을 찾았다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입지요."

길산은 더 이상 여러 말하지 않았으나 주인이 물러난 뒤에 아우들에게 말하였다."

"내게 전부터 가슴에 품어온 생각이 있다. 한 해가 멀다 하고 흉년과 역병이 팔도를 휩쓸어

산골마을은 쇠락하고 비워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백성들은 살 길을 찾아 흩어져서

위에서 죽거나 잔명을 보존하려 심산에서 화전이나 갈고 살며, 아직도 가는 곳마다 거

지와

유민들로 길이 메워지고 있다. 호적은커녕 관가에서도 버림을 받아 어린아이들은 누구

든지

밥만 먹여줄 수 있으면 그것이 누구의 자식이건 상관없이 노비로 삼을 수 있다고 정해놓을

정도이다. 우리가 만약 재화를 모으고 그것을 여러 사람을 위하여 경영할 수가 있게 된

다면

곳곳에 우리들의 마을을 이루어놓을 수가 있고, 이런 마을이 퍼져나가면 우리의 힘도 커

지는 것이다. 가령 금은이나 쇠나 그러한 재화를 가지고 북관에 가면 야인들과 가축은 물론

이고 콩과 수수와 조와 같은 양식도 바꿔 올 수가 있으며, 저어 북도의 원시림 가운데 수

많은

마을을 이룰 수가 있게 된다. 지금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양덕과 성천계에 또다시 채금

터가

있을 법하구나. 이런 일은 우리가 직접 나설 것이 아니라 봉산의 만동이나 송도 대근이

성님이 손을 댄다면 수월할 것이다. 먼저 다른 곳의 우리 식구들을 보내어 잠채하게 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또한 식구로 정착시켜서 재화를 모으고 북도에 살 만한 곳을 여러 곳 찾

아서

기틀을 닦는 것이다. 땅도 갈아두고 집도 세워야 할 게야. 이 번에 고원에 나갔다가 돌

아올

제 선일이는 주인을 잘 설득하여 비류강 상류를 더듬어보아라."

"분명히 큰 금광이 있을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명과 청의 조공 관계로 금에 대한 공납이 부담이어서 늘 금은 조선의 산물이

아니라고 간청하여 겨우 모며하였고, 금광산이 발견되더라도 절대로 나라 밖으로 새어나

가지

않도록 조심하였으며, 군현의 수령들은 점이 설치되면 외방인이 많아져서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기고 인심이 각박해지며 양민들은 농사에 게을리한다 하여 있던 점도 폐쇄하는 형

편이었다. 그러나 잠채는 각처에서 끊임이 없어 평안도 북부와 북관의 심산에서는 생산된

은과 금이 강을 건너 청상에게로 흘러들어갔다. 조공의 세폐와는 상관없이 흘러들어간

조선

금은 청인들 옷의 각종 장시과 금박, 그리고 누각의 기와와 입히는 도금에서 심지어는

변발

위에 얹는 둥근 모자의 꼭대기에도 금장식을 하였으니, 잠채된 금의 잠상은 이렇듯 변경

에서 흔한 일이 되고 있었다. 금값은 한 푼쭝에 오십 문이 넘었다.

날이 밝자 김선일 이시홍 정대성 이업복 등은 동북방의 함경도 고원으로 가는 두류산으로

향하였고, 길산과 말득이는 곧장 북쪽의 맹산으로 향하였다. 양덕서 맹산 가는 직로는

줄곧

낭림산맥의 연봉을 동쪽에 두고 따라가는 길이었다. 양덕의 경계가 동남 방향은 짧고

북서

방향은 끝간데를 모르고 길어서 대개 산과 지형의 세을 알 수가 있었다. 황해도 곡산군까

지는 불과 이십 리요, 함경도 고원 경계까지는 삼십 리였으나, 서쪽의 성천부 경계까지는 백

삽십리, 북으로 맹산 경계까지가 백오십 리 길이었다. 길산과 말득이는 하루 종일 말을

달려

맹산으로 넘어가는 오강산 아랫녘에 당도하여 토성진에서 묵었고 이어서 오강산을 넘

으니

동북쪽에 이빨처럼 솟아오른 운봉산과 병풍령이 내다보였다. 이들 연봉들이 함경도와 평

안도를 가르는 벽이 되었고 그 맥은 묘향산맥과 만나면서 개마고원을 이루어 백두산 일

대와

압록강에까지 닿는 것이었다. 청산창이 바로 운봉산 아랫녘이었는데 맹산에서 함경도 영

흥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일찍이 길산이 운봉산에서 수도할 때 병풍산과 운봉산 자

작령

두무령 일대를 범과 같이 오르내려 산세와 길을 훤히 알고 있던 것이다.

"성님, 그냥 맹산 지나 덕천으로 가시려우, 아니면 청산창에서 중화 들고 운봉산 식구들

대면하고 가시겠수."

"그래 잠깐 들러서 점심이나 먹고 가자꾸나."

말득의 물음에 길산은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말을 타고 쓸쓸한 마을로 들어갔다. 두메의

십여 호 될까 말까 한 동네였는데 서쪽으로만 들판이 열려 있을 뿐이요 사방으로 산이 둘러

싸였다. 원래 맹산현 자체가 양덕보다 더욱 산골인데 서북쪽에 제법 집이 많은 마을이

몰려

있었고 낭림산맥 아래쪽은 호랑이나 늑대가 배회하는 깊은 산이었다. 함경도 영흥부에

속한

철옹성이 두무령에 있었다. 길산이 김선일 만나고 잠채터를 습격하여 많은 광부를 구출

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낭림산맥에는 운봉산 병풍산 일대에 녹림당 한 대가 있었고, 낭림산에

대, 그리고 묘향 낭림에 두 줄기가 맞닿는 소백산에 또 한 패거리가 있었으며, 수는 삼

백여

명이었으나 차츰 유민들과 노비들로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운봉산 산

채가

제일 컸으니, 이들은 영흥 함흥 고원 일대와 연결되어 있었다. 운봉산 진대골 예전 심메마

니들의 깊숙한 마을에 산채가 있었는데, 두령은 김선일과 함께 서산이목 유복령이네 잠채터

에서 길산의 구원을 받았던 광부 박산돌이었다. 그 수하 사람들을 다른 광부들과 채삼하던

심메마니 일부와 평안도서 도망온 노비들과 유민들이었다.

마을로 들어가니 울타리는 생솔이요 낮은 초가들인데 초겨울 햇볕이 다사롭게 마당마다

내려않아 있었고, 그들이 들어선 집 안마당에는 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잿더미를 들쑤시고

있었다.

"주인장 계시우?"

말득이가 앞장서서 부엌 앞에 서서 외치니 사내 하나가 뒤꼍에서 돌아 나왔다. 맨상투에

나이는 서른쯤 먹어 보이고 얼굴이 너부죽하였다. 그는 두 사람의 행색부터 살폈다.

"뉘시우?"

"나 모르겠수, 황해도 사는 강서방이라오."

말득이 얘기하니 그제서야 사내가 웃는 낯이 되면서 머리를 숙여 보였다.

"어이구, 난 누구신가 하구 지난 여름에 오셨던 분인 줄도 모르고."

"산식구들은 다들 잘 있소?"

"예, 여전합니다. 지난번에 고원 함흥 쪽으로 다녀들 오셨지요. 어서 올라오십시오. 마침

우리 가장께서 집에 내려와 계십니다."

사내가 말하였고 말득이는 길산을 돌아보고 나서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 큰성님이우. 길산 성님이라면 아실 게요."

"어이구"

사내는 깜짝 놀라더니 아예 길산의 손을 잡아끌며 서둘렀다.

"어서 방에 들어가 앉으시지요. 인사 올리겠습니다."

사내의 뒤를 따라 방안에 들어가 앉자 그는 길산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선성만 익히 듣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산돌 언니 아우 되는 수돌이라고 합니다. 산돌

언니 서산이목에 있을 제 저희는 순안서 살았습지요.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년 전에야 이 골에 모여서 삽니다. 언니가 장두령님 말씀은 늘상 해오셔서 저희뿐만 아

니라

다른 아이들도 모두 알고 있지요. 제가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언니가 그저께 집에 다니러

오셔서 지금 댁에 계시지요."

그는 밖으로 나가서 아내를 부르고 뭔가 소곤거리며 중화 지을 일을 당부하고 부산스럽게

돌아가더니 그의 형 산돌이를 부르러 나갔다.

"지난번에 선일이하구 같이 와서 운봉산에 올라가 닷새나 놀고 온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대근이 성님과의 약조만 없었다면 나두 오랜만에 진대골도 둘러보고 대지붕의 내가

살던 오두막 터도 가보았으면 싶은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운봉산서 사냥을 할 만할

게다."

"다녀올 때 들립시다."

"그래, 이제는 북관에도 자주 나다니게 되었구나."

박산돌이가 선일이만큼은 못 되어도, 그때에 잠채꾼들에게 잡혀서 사노의 지경에 빠졌을

적에 길산의 구원의 받아 진군과 잠채꾼들을 습격할 때 선일이와 더불어 돌팔매를 날려

공을

세웠던 터였다.

"박서방이 팔매를 잘 쳤지."

길산이는 중얼거리자 말득이도 한마디 하였다.

"선일이 동무라니 어련할라구요. 도무지 서도것들은 짚 한단 들 기운만 되어도 자갈을 날

리는 재간이 있단 말이우."

"그래 눈매가 매서운 게다. 이들에게도 총포만 있다면 관군 수천이 와도 겁날 게 없지."

밖에서 발짝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산돌이의 부리부리한 눈이며 광대뼈 나온

몰골이 나타났다. 그는 문턱 옆의 마루에 엎드렸다.

"성님, 산돌이 문안하우."

"그래, 박서방 잘 있었는가."

"이번 동짓달에는 자비령에 찾아가 뵈올 작정이었습니다."

"어서 들어와 앉게나."

그들은 산돌 수돌 형제와 마주 앉았다.

"선일이 잘 있지요?"

"응, 이번에 같이 나왔다가 양덕서 고원으로 나갔다. 백운산 산채와 고원 원산 객점에 힘을

기울일 작정이다."

"제 아우를 북도로 보내주십시오."

산돌이가 말하자 수돌이는 차마 길산에게는 뭐라고 못하고 말득이에게 푸념하였다.

"운봉산 눈구녕이라구 뭐 청산골에다 이렇게 저희들 마을은 이루었습니다만, 갑갑해서 못

견디겠수. 순안에서는 그래두 평양 대처가 지척이라 사람 구경이라두 했는데. 들에 나가

봐야

맨 노루 사슴뿐이우."

"왜 나는 운봉산이 버티구 있으니까 늘 마음이 든든하더구먼. 묘향신 서두령에게두 들러

볼까 한는 참인데, 낭림산 소백산 식구들과는 서로 오삭가삭하는 모양인가?"

길산이는 물었고 산돌이가 답하였다.

"그러믄요. 그쪽이야 먹을 바닥이 좋지요. 상로도 있고 금점 은점이 사방에 깔렸습니다."

"후일에 낭림산맥은 대군을 묻어둘 만한 곳일세. 나두 들어올 테니까 집 지키는 셈치고

들어앉아 있게나. 그리고 산살림 하기 벅차면 언제든지 언진산 선일이에게 통기하게나. 은

자나

돈을 보내줄 걸세."

"지난 가을에도 선일이가 은자를 보내어 북변에 나가서 양식을 구해다 놓았습니다."

"식구들은 얼마나 되는가?"

"산식구들만 팔십여 명이고 딸린 식구들은 백여 명이 넘지요. 이 골에도 살고 자작령 너머

횡천골에도 삽니다."

"음, 여기보다는 그곳이 마을을 이루기가 더욱 좋겠구먼. 이곳이야 맹산현에서 가깝고 노

상이 아닌가."

"저희들두 그렇게 생각하구 있습니다. 횡천골은 함경도 영흥부에 속합니다. 여기서 양덕보다

조금 더 멀지요. 산과 개천이 수백 갈래가 됩니다."

"서산이목은 어떻게 되었나?"

"그때 이후로 폐광이 되어버렸습니다. 산성 진군도 요즈음은 숫자를 채우지 못하여 황폐

하였지요. 말만 철옹산성일 뿐 늙은 향군 몇몇이 산전이나 갈아먹구 있습니다."

"이제는 금이 나오지 않을까?"

"글쎄요, 깊이 땅굴을 파면 나올 겁니다. 허나 그러자면 인원도 많아야 하고 산을 허물든지

해야 될 테니 차라리 사금을 건지느니만 못할 것입니다. 저희 생각으로는 상단을 이루어

함경도를 무른 메주 밟듯이 휘젓고 다니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그래서 수돌이는 내보내

고자

하는 게지요."

"좋은 생각일세마는 내 생각으로는 수돌이가 순안서 토박이로 컸다니 봉산 만동이네 모양

으로 제 바닥에 가서 난전을 휘어잡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밑천이 한 이삼천 냥 있다면, 평양 바깥 장은 주무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청천강 이남에서는 역시 대처는 평양이 아닌가. 함경도서 북포를 그러모아다가

평양서 값을 올려서 청천강 이북으로 올려 보내는 걸세. 역시 남쪽에서는 길도 멀고, 무명이

라면 길주 명천 무명과 목화가 으뜸이 아닌가. 의주의 무명값을 좌지우지할 수가 있을게야.

순안이라면 평양 지척일 뿐 아니라 양덕 맹산을 잇는 거점도 될 수 있네. 그리고 내가

전에

알서해서 재인들이 황주와 순안 일대에두 많이 살구 있네."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

산돌이와 수돌 형제는 곧 길산의 안에 머리를 숙여 응낙하였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첫째는 상고에도 쓰고 거병에도 쓸 수 있는 북방마요, 둘째는 총과

화약이며, 셋째는 믿을 만한 장정들일세. 벌어 먹고 살려고 동서남북으로 서로 돌아다

니다

보면 쉽사리 연계가 이루어질 게야. 함부로 드러내지 말고 착실하게 세를 불려나가도록

하게."

길산은 끝으로 당부하였다. 그들은 청산서 오후까지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나 그날 밤을

덕천서 묵었다. 덕천은 영원과 맹산의 물이 합쳐져 삼탄을 이루고 이것이 삼월강으로서 성

천이 비류강과 만나게 된다. 질펀한 긴 강은 외로운 성을 끌어안고 넓고 깊숙한 골짜기는

한결같이 평평하다는, 옛글이 바로 이 강을 낀 고을의 형세를 이루는 것이다. 덕천서 묘향산

까지가 사십오 리 길이었다. 덕천 개천 영변을 잇는 동서로가 정주와 구성으로 엇갈리니,

몇해

전에 구월산 오지암 법회 때에 들렀던 풍월 큰스님의 도반 되시던 도안스님께서 이르

시듯

이들 골짜기에는 숱한 암자와 불사가 있어 승병이 체결됨직도 하였다. 그리고 길산은

길을

떠날 때부터 명근스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산과 말득이는 묘향산 어귀의 동창골에 이르러 말을 맡겨두고서 향천내를 따라서 보현

사로 찾아들어갔다. 내원계곡의 남서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하여 칠성봉 만궁봉 시

위봉 강선봉 문필봉 왕모봉 등이 파도처럼 일어나서 오르내리며 달리고 있었고, 동북쪽으

로는

원만봉 석가봉 관음봉 가섭봉 아난봉 지장봉 시왕봉 향로봉 법왕봉 등이 불꽃처럼 춤

추며

솟아올랐다. 길산은 간간이 들리는 북소리를 듣고 보현사가 가까워진 것을 알았고 문

안과

문밖의 갈라진 사연을 묻지 말라던 풍연스님의 꾸지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길산은

명근스님이란 분을 꼭 찾아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때의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 사람으로 태

어나 짐승처럼 따로이 팔려 혈육의 정이 끊겼던 속세의 일을 이제 새삼 선승이 되신 분

에게

알려 무엇하겠는가마는, 그분이 끊어버리셨던 그 자리에서 길산이 생겼났고 짧은 순간만

이라도 과거를 이어서 자식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봉세산 중터의 돌무더기 아래

묻힌

생모처럼 지금은 전혀 다른 생을 사는 친부의 기억을 묘향산 골짜기 안에다 묻어버리고

돌아설 작정이었다.

길산과 말득이 보현사를 거쳐서 승려의 안내를 받아 윤필암을 찾으니 도안스님은 곧 길산을

알아보고 풍열이 가평에 옮긴 일이며 운부스님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길산이 안심사의 명

근스님께 뵈일 것을 말하니 도안은 안내한 승려에게 길을 가르쳐라고하고서는 말하는 거이

었다.

"자네가 찾아가는 것은 세속의 도리라 말릴 생각은 없지만, 찾아가지 않느니만 같지 못할

걸세."

그러나 길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튿날에야 보현사 승려의 안내를 받아 안심사를 찾았다. 안심사에 당도하여 명근스님을

찾아온 분이라 이르고 승려는 상좌에게 그들을 소개하고는 돌아갔는데, 상좌는 그들을

작은

방에 들어가 기다리시라 이르더니 말하였다.

"스님께서 참선중이시라 여쭙지 못하겠습니다. 점심공양 드시고 뵙지요."

길산과 말득이 객방에서 기다리는데 말득이는 좀이 쑤셔서 대웅전 마당을 오락가락하기도

하고, 방에 들어와 눕기도 하였지만 길산은 방안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서 전갈이 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득이도 길산의 안색이 풀어지지 않아서 뭐라고 말을 붙이거나 농도 걸지 못하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 해가 칠성봉을 비끼며 넘어갈 무렵해서야 상좌가 다시 방문 앞에 나타나

안에다 대고 말하였다.

"스님께서 선방에서 나오셨습니다. 뵈러 가시지요."

길산은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두리번거렸다. 말득이도 따라서 일어났지만 길산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길산은 두려운 듯이 중얼거렸다.

"괜히 왔지?"

"손님, 스님께서 부르십니다."

다시 재촉하는 상좌의 목소리가 들리자 길산은 일어나며 얼른 답하였다.

"예, 나갑니다."

그는 말득이를 돌아보았다.

"함께 가자꾸나."

"싫우, 성님 혼자 가시우."

말득이가 단호하게 잘랐고 길산은 돌아서서 방문을 열었다.

"이리로"

앞서 사는 동승의 뒤를 따라서 길산은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동쪽의 방을 향하여 걸었다.

방문 앞에서 상좌가 아뢰었다.

"스님, 손님 모시구 왔습니다."

"오냐, 들어오시게 하여라."

안에서 나직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왔다. 길산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기침을 해보고 나서

방문을 열었다. 안에 회새 장삼을 입은 노승의 자취가 보였고 길산은 얼결에 윗목에

가서

삼배를 올렸다. 노승은 마주 합장하여 예에 답하였다. 노승의 좀 자란 삭발머리는 흰빛이

가득하고 눈썹은 희고 길었다. 그러나 눈매는 가늘고 날카로우며 그 안에는 총기있는 눈초

리가 번쩍이고 있었다. 길산은 첫눈에 자기가 그 노승을 빼어내듯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노승은 길산을 무심히 대하였다.

"뉘신고?"

"예, 저저는 불도를 믿으나 신심은 얕고 어리석은 장서방이란 놈입니다."

노승은 한 손에 염주를 감아쥐고 방석 위에 꼿꼿이 앉아서 길산을 건너다보았다.

"도안 스님이 내게 보냈다 하든데, 이 절에는 왜 찾아오셨나. 입산하러 온 것이라면 잘못

왔소. 보현사에 가셔야지."

길산은 차츰 침착을 되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도 허리를 펴고 단정히 앉았다.

"저는 승려가 되려고 온 것은 아닙니다. 스님을 뵈려고 왔습니다."

노승은 그의 말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스님께서는 원래 고향이 해서의 신계가 아니신지요?"

명근스님은 동요하는 빛이 없이 되물었다.

"불가에 몸을 담은 지 하도 오래되어 이 살이 몇 년 묵은 것인지, 속명이 무엇인지 따위는

모두 잊어버렸소만 장서방은 뭣 때문에 그런 것을 내게 묻는 거요?'

"저는 효종조 을미생이올시다. 모친께서 사비이셨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직전에 개성의 전임

부사 댁으로 팔려가셨지요. 부친께서는 따로이 장단으로 팔려가셨다 합니다. 부친은 멀리

도망가시면서 해주 수양산 망해사로 찾아오라고 당부하셨답니다. 모친은 추노하는 자들을

피하여 해서를 향해 달아나시던 노상에서 저를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 길산은 저도 모르게 울컥해져서 목소리가 떨렸고, 무엇보다도 명근

스님의 반응이 기다려졌던 것이다. 노승은 처음과 같은 표정이었으나 염주를 빠르게 헤아려

가고 있었다.

"저는 연안 근처의 물방앗간에서 태어났습니다. 핏덩이를 받아내신 분은 해서 재인패이던

장충이라는 분이시고 저를 길러주신 양부이십니다. 모친은 숨이 넘어갈 때까지 망해사에

있는 역노 다니던......신계 사람을 말씀하셨다고, 제가 장성한 뒤에야 양부께서 일러주셨습

니다.

양부께서는 제 부친 되시는 이를 찾아서 해주 수양산 망해사로 찾아갔으나, 나중에 들었

습니다만 보경이라는 그 노스님께서 수많은 노비들을 입산시킨 분으로 들었지요. 그분은

이미

속세를 떠난 끊긴 인연이라 하여 오히려 저희 양부에게 저의 양육을 당부하셨다지요."

"그만......."

노승이 조용히 길산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끊고 긴 숨을 내쉬었다.

"나무 관세음보살...... 내게 그런 전생이 있었구만. 그래 모친은 어디에 모셨는가?"

길산은 명근스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여 뜻밖에 대답도 못하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명근스님이 말하였다.

"장서방 얘길 들어본즉 내가 자네의 애비일세. 이제는........ 시원한가. 원통한가? 내가 중

시늉하느라고 이러는 것은 아닐세. 나 또한 모친께서 노중 객사하시고, 내가 입산할 제

같이

죽은 게야. 여기 있는 나는 그 이후 서른다섯 해 불가에서 새로 태어났으되, 자네는 저쪽

바깥에서 그 양부모님과 세상이 만들어낸 서른다섯 해가 아니었든가."

길산은 목이 꽉 막혀오르고 눈앞이 흐려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솟아서 볼을 타고 흘러내

렸다. 그는 그대로 놔두었다. 길산이 명근스님을 바라보며 힘없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역시 불법을 들어, 제가 찾아온 것을 탓하십니까?"

"장서방을 탓하지 않네. 제비가 강남에 따르고 구름이 바람에 따르듯, 자네와 나는 혈육

일세. 허나........나는 이 육신을 탓하고 있구먼. 이런한 과보가 있으니 저 세상의 수많은 슬

픔은

어찌하려나. 그래, 서른다섯 해나 잊지 않고 있었단 말인가."

"모친의 유언이라 전해 들었기에............"

길산은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었다. 명근스님의 잔잔한 표정을 더는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뭣을 해먹고 사나?"

길산은 명근의 물음에 아무 덧붙임도 없이 답하였다.

"소싯적에는 재간을 팔아 광대로 지냈고 도적놈이 되었다가 이제는 역적이 되려 합니다."

명근이 다시 물었다.

"장가는 들었는고?"

"아내와 아들 딸이 있습니다."

"육신이 또한 슬픔을 지어낼 것을, 역적은 구족을 멸하는 큰 짐인데 무엇하러 처자녀는 또

생겼단 말인가."

길산이 말하였다.

"먼저 속의 뭇 사내가 그러하듯 살고 먹고 낳고 하는 것이지 다를 바는 없습니다. 대가

끊기지는 않겠지요."

명근은 빙그레 웃음으로 길산에게 답하였다.

"나가 보게나."

"예?"

"저쪽으로, 나는 초저녁잠이 많아서 누워야겠네."

길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모친께서는 연안 봉세산 고개에 묻히셨습니다. 저는 돌무더기만을 뵈었을 뿐입니다. 묘향

산에 와서....... 뵈오니....... 돌무더을 본 것보다 더욱 가슴이 천 근이올시다."

명근스님은 그때의 혀를 쯧, 하고 차더니 염주를 손에다 놓았다.

"허, 잔망스러운 것! 묘향산에 와서 묘향산을 못 보는 놈이로다. 그런 놈이 어찌 무엇을

새로 바꾸겠단 말이냐. 네 어미가 종으로 노중에 죽은 것만 알고 네 아비가 혈육을 건사

하지

못한 설움만을 보게다는 말이냐. 네 이놈, 자기도 부지하지 못할 녀석이 무슨 역적절

이냐.

어느 백성이 네 말을 믿을까. 썩 없어져라."

명근스님의 어조는 나직했지만 차갑고 날카로웠다. 길산은 고개를 숙이고 차마 얼른 일어나

나올 수가 없어 자신의 격정을 억누르려고 애를 썼다. 다시 방바닥에 물기가 떨어져서 번

졌다.

"물러가겠습니다. 그전에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길산은 소매로 얼굴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님이라고 한 번만 부르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명근은 선선히 답하였다.

"그래라."

길산은 아에서 겉소리만 냈을 뿐 버님은 고개를 떨구며 삼켜버리고 말았다. 명근스님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요지부동이었다. 길산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노승은

그의 등뒤에다 대고 중얼거렸다.

"또 오너라."

가지 많은 고목나무 바람 잘 날 하루 없고, 자식 우리 부모 속 편한 날 하루 없네. 이산

저산 산골짝에 우는 부엉새야 네 아무리 섦게 운들 부모 없는 날만 하랴. 산아 산아 높은

산아 눈비 잦은 묘향산아, 저기 저기 구월산에 우리 부모 누웠거늘 계신 부모 가신 부모 생

각하면 무엇하노.

길산이 묘향산 내원계곡을 돌아 내려오는데, 향산천 긴 물은 이리 굽고 저리 굽어서 폭포로

탕탕 되어 흘러내리고 때로는 탕수로 되어 용용 솟구치나니 이들 물소리가 한없이 노래

하는

돗하였다. 말득이는 제 성의 감정의 아는지라 뒷전에서 코가 쑥 빠져서 고개를 숙이고 묵

묵히 따르는 것이었다. 간밤에 안심사에서 하루를 더 묵었고 새벽 예불 소릴에 잠이 깨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느닷없이 봇짐을 걸머지고 길을 나서는 길산의 뒤를 따라나온 말득이

였다.

저 건너가 담장 안에 목단꽃을 심었더니 목단꽃은 아니 나고 부모꽃만 만발하네. 부모 없는

내 친구야 날 따라서 구경가자. 구경이야 가련마는 옷이 없어 못 가겠네. 명주 수건 석자

수건 요리조리 닦고 가지. 산아 산아 높은 산아 네 아무리 높다 한들 우리 부모 날 낳으신

높은 은혜 미칠소냐. 바다 바다 깊은 바다 네 아무리 깊다 한들 우리 부모 날 기르신 깊은

은혜 비길소냐. 수천만석 바위 밑에 어버이 불러 들어가니 그 소리는 간데없고 청산이 돌아

앉아 수천만석 돌아앉아 물과 바위 대답하네.

묘향산의 산허리를 감돌고 있는 향단목과 사철나무들은 울울창창한데 길산이 꽉 막힌 가

슴을 열어 터뜨리고 외쳐서 부르면 만산 봉우리가 아우성치며 그에게로 되돌아 치달려 내

려올

것만 같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가 했더니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하는데 온 산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길산은 바로 그때에 장충 노인과 안무당이야말로 그의 실체와 닿아 있으며, 그

것은

곧 구월산 식구들에서 나아가 온 산천에 떠도는 원혼들과 백성들의 사는 일에 퍼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서러웠다. 그의 살과 피는 이제 그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다.

돌이켜 부모가 낳아준 이 몸을 살피건데 시방 저 허공 속에 한 티끌을 불어 올린 것과

같아

있는 둥 마는 둥하도다. 물이 넘실대는 큰 바다에 한 물거품이 떠도는 것 같아 생기고 없

어짐을 종잡을 수 없도다. 아, 인신이여, 재앙의 몸이여, 괴로움의 그릇이여.

아비의 정과 어미의 피가 모여 몸이 이루어졌거늘, 음식을 받으며 그것이 변하고 또한 수천

번 멸하여 휘돌아 모여들었다가 이내 흩어져서 담즙의 의거처로 돌아가는구나. 끈적한 물

기는 더러운 것이 되었다가 익어서 바람으로 돌아가매 바람이 찌꺼기와 흐르는 성분을 갈라

놓는도다. 찌꺼기는 대변, 소변, 흐르느니 피요, 피가 변하여 살을 이루고 살은 기름을 이

루고

기름은 뼈를 이루고 뼈는 골수를 이르고,. 골수는 정액을 이루는구나. 이들의 윤회가 몸

이니

어찌 번뇌 없으랴.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여 무상하다.

"성님, 어디로 가시려우?"

뒤에서 참다 못한 말득이가 물었다. 길산은 얼굴에 맞부딪쳐오는 눈발을 손으로 훑어내리

면서 답하였다.

"어서, 이 산에서 나가자."

길산은 묘향산이 자꾸만 자신을 둘러싸고 나를 보아라 나를, 하면서 목청을 합쳐 아우성을

치는 것만 같았다. 인은 무엇이며 과는 또한 무언가.

퉁탕거리며 흘러내리는 폭포 위로, 흰눈이 날려서 물인지 눈발이지 분간이 가질 않았고

산봉은 차츰 허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길산은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거냐, 빨리 오지 않구."

"서용이한테 안 가시려우?"

"다음에 꽃 필 제 다시 오자."

그들은 향산천을 따라 묘향산 어귀로 나와서 다시 동창골에 들러 말을 찾아 타고서 길을

떠났다.

길산과 말득이가 운산 거치고 구성 들러서 의주에 당도하니 기다리던 이들이 모두 반가워

하였다. 이미 학선이는 대근과 함께 벽동 불암골에서 해천동 그리고 강 건너 임토대에 이

르는

잠상로를 열기 위하여 길산네의 객점주가 되었노라 자처하였다. 우대용이는 학선이에

게도

용암포에서의 밀상의 이득을 짭짤하게 나눠주었으며, 동지사행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곧

벽동에서의 잠무역이 임토대 청인 마을을 거접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들은 원래 계획대로 백사와 유황과 함석이 손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연말이 될

때까지 벽동과 의주에 있다가 다시 강계에다 객점을 열어두었으며, 윤덕이네는 식구들 데

리고, 그곳으로 이사하여 정착하기로 정하여졌고, 삼밭으로 쓸 산간의 밭까지 장만하였던 것

이다.

기사년은 실로 그들에게는 대전환의 시기였다. 재물이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그들에게 필

요했던 화약과 총포와 동철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여진의 서속과 수수와 콩 등의 곡물이 금

은과 거래되어 들어왔다. 정대성이 회령에서 냈던 객점은 이듬해인 경오년 여름쯤에는 대

단히

번창하였으며 그곳에서는 주로 무명과 쇠를 가지고 말과 거래하는 일을 맡았다. 고원은

이를테면 이들이 북관으로 나가는 관문인 셈이었다.

장길산 혈당들의 연계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경기도에는 송도에서 배대인의 도령자리를

물려받은 박대근이가 있었고, 강화에 우대용의 오른팔인 홍천수, 그리고 경강에는 서강의 모

신이가, 파주 문산포에는 이경순이 있었다. 포천 철원을 덮는 천마산 솔부리 일대에는 복만

이와 고달근이가 있었으며, 살주계의 중길이 식구들은 혜음령에 은거하였다. 황해도로는 황

주에 오계준과 김승운이의 예전 미륵도의 잔여 유민들이 숨어 살았으며 해주 재령에도 무계

원들은 남아 있었다.

봉산에 천동이 만동이네가 있고, 자비령 그때쯤에는 비워졌다. 수안 은점에는 조무인 점주가

되었으며 곡산 수철점은 만동이네 형제가 맡았다. 평안도는 낭림산맥 운봉산 일대를 산돌

이와 수돌이가 맡았으며 들어온 이들로 마을과 산채를 이루었다. 묘향산에는 서용이네 산

채가

있었으며 의주 용암포에는 박성대가 객점을 열어두고 마안도 잠무역을 하였고 벽동 불

암골

해천동 등은 이학선이, 강계에는 최윤덕이 위의 세 곳을 왕래하며 월강 잠상을 하였다. 그

리고 순안과 성천에는 거사패 괴뢰배 등의 재인 광대들이 몰려와 겨울을 나는 골짜기가 수

십여 리에 계속되었다. 이때에 길산네는 자비령에서 식구를 솔가하여 내려와, 처음의 뜻

대로

양덕서 성천 나가는 경계에 있는 초천면에 여염 마을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김

기를

비롯하여 강선흥 최흥복 강말득 등이 포실한 초가를 짓고 오손도손 처자식들 거느리고 살

았다. 함경도에는 원산 객점에 이시흥이, 고원 객점에는 수안 언진산 아랫녘 샘골에는 옮

겨간

김선일 끝춘이 부부가 객점을 열었으며, 함흥 백운산 산채에는 이업복이가 있었다. 그

들은

단천에도 객점을 열어서 북관으로 가는 중간역 구실을 하도록 해두었고, 회령에는 정대서

이가 나가 있었다. 또한 그들이 은거한 지역의 사찰에 있는 각도의 승병 조직과도 자연스

럽게

사촌지간이 되어갔다. 이들 승병의 뇌수라고 할 수 있는 운부를 비롯한 사승들은 강원

도에

많이 몰려 있는 형편이었고, 설유징 선비나 최헌경, 그리고 정학 정신 형제들은 각각

고성

수자리 골과 강릉 간성 등지에서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풍열스님은 가평 현

등사에 있었고 대성법주스님은 회성 덕고산 봉복사에 있었으며, 부근 금굴이 수철점에는 오

경립 이정명 방귀선 번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기사년이 지나고 경오년 그리고 신미, 즉 숙종 십칠년에는 아직도 남인들이 집병하고 있

었으며 장씨녀는 민비를 몰아내고 왕후가 되었으며, 흉년이 거듭되어 아사자의 시체가 도성

에서 수도 없이 수구문으로 빠져나가는 참경이 벌어지던 세월이었다.

경오년의 흉년은 또한 극심하여 미처 기민 구제를 못하였던 조정에서는 공명첩 이만 장을

각 지방에 분송하여, 지방 부호나 지주들로 하여금 신분을 사고 양곡을 내어 돕도록 하

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길산을 위시한 활빈도들은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금과 은 쇠의 교역

으로

잠상을 하여 북부 산간지역에 여러 거점을 이루어놓았고, 각처의 상단으로 연결이 되

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을 거미줄같이 짤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회령에서 들어오던

여진의 북방마였다. 이들을 나라에서도 중히 여겨 각 역의 역마와 군영의 군마는 모두 무

역으로 들어온 호마였고, 그중에서 종마를 골라내어 지방의 목장에 분급하였다.

처음에 영고탑 오랄 두 곳의 사람들이 호부의 품문을 가지고 와서 농우 농기 소금을 무역해

갔는데, 이것이 회령개시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정례가 되어버렸다. 해마다 개시를 하지만

인 진 오 신 술년은 단개시라 하고, 축 묘 사 미 유 해년을 쌍개시라 하였다. 북경 예부에서

두호를 파송하는 자문이 있었고, 소가 백열네 마리, 보습이 이천육백 개이며, 가마솥이 오

십여 좌인데 차관이 오기를 기다려서 차사원이 지방관과 같이 모두 객관에서 시장을 감독하

였다. 그 뒤에 호인 와서 소 보습 가마솥을 경원에서 바꾸어 가니 이것이 경원개시가

되어

전례가 되었던 것이다. 경원에는 한해씩 걸러서 개시하는데 소가 오십여 마리, 보습이 마

흔여섯, 가마솥이 쉰다섯 좌였다. 또한 흉년에는 각 진을 통하여 야인들의 조와 수수를 들여

다가 구휼하였다. 무역하러 오는 호상들도 처음에는 수효가 정해 있더니 차츰 범금이 해이

해져서 수백 명이 한달 이상씩 머무르기도 하고, 개시 기간이 아닐 때에도 서로 강을 건너

교역하였다. 사람은 육백여 명이 드나들고 말 소 낙타가 천백사십여 마리나 되어서 꼴과

양식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또한 경오년에 영의정 권대운이, 북로로 들어오는 청나라의

말이

비록 내구의 소용에는 맞지 않사오나 장사들이 탈 만하오니 이것은 엄금할 필요가 없

다고

아뢰었다. 임금도 이르기를 청나라 말이 교역되어 들어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각 상단이나 부호들은 차인 곁꾼들을 회령 겨원에 보내어 상단의 말과

소를

다투어 사들였고, 길산이네 활빈도들도 사들여서 각처로 보내주었다. 원산에서 고원 함

흥과

단천으로 하여 회령에 이르는 먼길에는 그들의 상단이 꼬리를 물고 왕래하였던 것이다.

경원개시 한 곳의 교역량만 따져도 무명이 수만 필이요 곡식이 만여석에 이르는 막대한

물량이었다. 더구나 변방에 나온 장병들은 과만을 채우고 돌아갈 때까지 별 문제가 없기를

바랐고 문책을 받을 상부 과청도 없었으며, 첨사나 진상 등의 무관들의 그곳이 비변에 중

요한

장소이니만큼 권한은 거의 독자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벽지 부임의 보상을 받기를 원하

였으니 의주나 압록강변에 비하여 교역의 관리 감독은 훨씬 너그러운 편이었다.

길산이네 혈당은 원산으로는 추가령을 넘는 계곡로를 통하여 철원을 거쳐서 포천과 한양에

이르는 상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원산 바로 위의 고원에서는 해서의 수안 곡산과 양덕

성천

평양을 잇는 상로를 연결하고 있었으며, 함흥은 함경도의 수부로서 관찰사가 거주하는 관

복의 대도회라 백운산 일대의 집결지를 겸한 산채와 객주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회령에는

예정대로 정대성이 쌍개시를 위한 객점을 열었는데 워낙에 물량을 미리 확보하고 자체 상

단을

구비하고 있었으므로, 기사년 겨울부터 땅을 산다 집을 짓는다. 서둘러서 경오년을 넘기도

부터는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신미년에 들면서 대성의 객점은 회령에 있던 다른 어느

객점보다도 야인들과의 교역의 범위가 커졌던 것이다.

회령부의 진산인 오산 아랫녘에 저자터가 있었고, 회령 부성의 어귀에 있는 영안역말에

객점거리가 있었다. 정대성은 영평서 달아날 때 자비령 심원골로 데려다 살던 처자를 아예

이곳에 솔가하여다가 살았다. 그는 객주주를 맡고 수하에 다섯 사람의 차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매달 초순에 원산 고원에서 상단이 오는데 많으면 수십 명에서 적을 때에는 네다

섯이

드나들었다.

정대성이네 객점은 다른 도회지의 어느 곳보다도 규모가 컸고 땅도 수천 평을 차지하였다.

집 주위로는 토담이 둘려 있는데 한바퀴 돌아 보는데도 다리가 뻐근할 만큼 둘레가 넓

어서

마치 작은 성곽과도 같았다. 높직하니 초가지붕을 올린 문에는 탄탄한 판자로 짜놓은 문

짝이 그럴 듯하였고, 안으로 들어서면 좌우의 담을 따라서 칸막이 통나무들이 얼기설기 놓

여진 마방들이 줄지어 계속되고 있었다. 문세서 정면으로는 가마솥 농기구 등속을 벌여

놓은

가가채가 기다랗게 지어져 있고, 청진등지에서 들어온 소금가마가 쌓여 있었으며 간혹

야인

땅에는 없는 수달피도 보였다. 여하튼 정대성이네 객점의 주요 물목은 쇠로은 쇠로 다루

어진 솥과 농기구가 대종을 이루었다. 다시 그 뒷편에는 상고들이 묵는 방이 줄지어 달렸고

,또 그 뒤로는 그들 식구들이 사는 임집이 있었으며 ,맨 뒤의 담잔에 붙여서 창고를 지어

놓았다. 창고는 양곡과 무명 등속을 쌓는 곳과 ,꼴과 마초 등 사료가 있는 곳과 , 편자와 마

구를 수리하는 간이 풀뭇간과 ,교역할 비축물들을 간수하는 칸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온 집

안에 말똥 냄새가 떠나질 않았으며, 일꾼들은 때를 맞추어 말죽을 끊이다 짚을 썬다. 우

리를

치운다 하여 눈코 뜰새가 없었다.

북방마는 국내의 제주에서 나는 과하마와 달라서 하루에 천리 길을 나는 듯이 달려도 지

치지를 않고 무예의 한 종목인 격구를 하거나 마상재를 할 적에도 모두 북방마가 아니면

되었다. 상고들도 말을 사용하면 차인과 곁꾼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고 ,말의 수를 오

히려 늘려서 경비는 줄이는 대신 수송 물량은 몇배로 늘릴 수가 있었다. 또한 하루에 가는

거리는 사람이 걸을 때에 비하여 거의 세 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온모미 눈같이 흰 말은

센말,

먹빛으로 검은 말은 사류, 마른 흙 같은 말은 고라, 몸이 희고 갈기와 네 굽이 검은 것은

가리온, 고라보다 연한 색은 황부루, 고라보다 진하 것은 적부루, 짙은 밤색 말이 오류,

연한

밤색은 표절라, 진회색 말은 달가라, 진회색에 갈기와 꼬리가 흰 것이 표가라, 푸른 기

도는

연한 벽돌색이 절라, 진한 것이 부절라, 그 중간쯤을 구렁말이라고 불렀다.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몽고인이나 여진인이 모두 가벼운 가죽 옷에 가죽 방패와 창과 활로 중원의 갑주

입고 중무장한 군사를 쳐부수고 원이나 금 또는 청나라를 세운 것은, 대병력이 일시에 노도

처럼 일어나 하루에 수백 리씩 동서남북 거칠 데 없이 기동하였던 때문이다. 원래 아조에

서는

하천과 산과 계곡이 많아서 기병보다는 주로 진지와 성을 근거로 궁시를 쏘는 싸움을 중

시하고, 더욱 왜란을 겪고부터 단병접전과 총포의 필요를 알아서 진법과 방포술을 첨가

했을

뿐, 기병은 그 편제가 장수 위주요 형식에 지나지 않던 것이었다.

이는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였듯이 아조의 습속이 말을 잘 다루지 못하였고 목마의 이치를

연구하지 아니하였던 때문이다. 대체로 우리의 말 다루는 법은 매우 위태롭다. 우선 옷소

매가 너무 넓고 한삼도 길어서 옆으로 타고 앉아 목을 꺾어서 앞길을 보며 채찍과 고삐를

잡고 가니 그것이 첫째 위태로움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에게 견마를 잡혀가

지고

가야만 하므로 온 나라 말이 병신이 되어버렸으며 견마잡이가 항상 말의 한쪽 눈을 가려서

말은 걸음걸이가 자유롭지 못하니 이것이 둘째 위태로움이다. 말이 길에 나서면 오히려

사람 보다 더 조심하는데, 사람과 말이 의사가 엇갈려서 마부는 자기 편할대로만 발 디딜

자리를 골라 디디므로 말굽과 자꾸 엇가리게 된다. 그래서 말이 피하려는 곳을 사람이 억

지로

딛게 하고, 말이 디디려는 곳은 사람이 억지로 견제하기 때문에, 말이 부림에 따르지

않고

항상 사람에게 노여움을 품으니 이것이 셋쩨 위태로움이다. 말의 한쪽 눈을 가려 다른

한쪽

눈으로만 사람의 기색을 살피느라고 집중하여 길을 살펴 걷지 못하므로 말이 고꾸라지고

넘어지고 하는데, 이것은 짐승의 잘못이 아닌데도 채찍으로 마구 때리니 이것이 넷째 위태

로움이다. 또 우리나라 안장과 배띠의 얼개가 너무 둔하고 무거우며 가슴걸이 밀치등속의

끈과 띠가 몹시 번거러운데, 등에는 한 사람이 타고 있고 입에 또 한 사람이 달려 있으니

이는 말 한 마리의 힘을 써야 하므로 힘에 겨우니 다섯쩨 위태로움이 된다. 사람의 몸놀

림이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편리하여 말 역시 그러할 것인즉, 말의 오른쪽 주둥이가 사람의

당긴

재갈에 눌려 아픔을 참을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이 그쪽으로 몸을 꺾고 옆으로 걷는데,

이를

날랜 모습이라고 하지만 말의 뜻이 아니니 이것이 여섯째 위태로움이다. 말은 언제나 오

른쪽으로 채찍을 맞아서 타고 있는 사람이 방심하고 무심하게 앉았을 때, 무부가 갑자기 채

찍을 후려치면 말이 몸을 뒤채어서 타고 있던 사람이 땅에 떨어 지나니 도리어 말을 꾸지

는데

이는 말의 뜻이 아니니 일곱 번째 위태로움이 된다. 문무관을 막론하고 고위 관리는 왼편

에도 마부가 따르는데, 오른편 견마잡이도 좋지 않기를 하물며 왼편 견마잡이임에랴. 짧은

말굴레도 좋지 않거늘 긴 굴레가 좋을 까닭이 없다. 사사로운 출입에는 위의를 갖추느라

그럴 수도 있을 법하나, 호종하는 시하로서 다섯 발이나 되는 긴 말굴레로 위의를 차

리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문관도 옳지 못한데 무관이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말할 것도 없

으리라. 이는 이른바 스스로 옭아매는 밧줄을 지는 격이니 이것이 여덟째 위태로움인 것

이다.

무장이 입은 철릭은 군복이지만, 세상에 어찌 군복의 소매가 주의 장삼처럼 넓은가. 위

같은

위태로움은 모두 넓은 소매와 긴 한삼 탓인데, 고치려 않고 안락하게 버려둔다. 옛날에 이

일이 상주에 진치고 있을 때, 멀리 숲속에서 연기가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군관 한 사람

에게 명하여 가보라고 하였더니. 군관은 좌우로 견마를 잡히고 거드럭거리고 가다가, 불

의에

다리 아래에서 왜적 두 놈이 뛰쳐나와 칼로 말 배를 베고 군관의 머리를 잘라가버렸다.

어진 재상 서애는 『징비록』에 이 일을 기록하고 비웃었으나 역시 그 폐단을 고치지 못하

였다. 나라의 목장에 있는 말의 종자는 모두 원 이래의 것들이니 사오백 년이 지나도록 종

자를 갈지 아니하여 끝내는 과하같은 작은 조랑말과 관단 따위의 느린 말로 퇴화하였던 것

이다. 그러한 과하마나 관단마를 숙위장사에게까지 주니, 고금 천하에 어느 장사가 그것을

타고 싸움터에 나가 적과 싸울 수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었다. 거마의 일을 맡은 궁중의 내

구에서 기르는 말에서 무장이 타는 말에 이르기까지 토산이 없고 모두가 요양 심양 등지

에서

사오는 것으로 겨우 충당하니 둘째 한심한 노릇이요, 임금을 호종하는 백관이 대개 서로

말을 빌려 타고 또한 나귀를 타고 어가를 호종하여 그 꼴이 우졸하여 셋째로 한심한 노릇

이다. 문신은 종이품 이상은 초헌을 타므로 말을 탈 일이 없고, 또 말을 기르기도 어려움

으로

아예 말을 버리고 그 자제들도 걷는 대신 겨우 조그마한 나귀를 기를 뿐이다. 옛날에 백

리의 나라 대부는 수레 열 대를 갖추어 놓는다 하였으니, 둘레가 몇천 리인 우리나라의 경

상이라면 수레를 백 대쯤 갖우어야 하거늘 몇대도 나올 수 없으니 네 번째 한심한 일이

었다.

세 군영의 초관은 군사 백 명의 우두머리거늘 말을 갖우지 못하여, 한 달 세 번 치르는

조련에 어떤 이는 임시로 세마를 내어 탄다. 군사가 말을 세내어 타고 싸움터로 나간다는

것은 이웃 나라에 알려져서는 안될 일이니 다섯째 한심한 노릇이다. 서울 병영의 장수가 이

러할진대 팔도에 배치해놓았다는 기사는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을 것이 뻔하니 이것이 여

섯째 한심함이다. 나라 안의 역참에는 다 토산물 중에서 좀 나은 것을 배치해두는데, 한번

사신이나 손님이 거쳐 가면 그 말은 죽거나 병이 나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 사신이나 손

님이 앉는 쌍가마부터가 무거운데다, 반드시 하인 네 사람이 가마채를 잡고 좌우에서 눌러

흔들리지 않게 하므로, 말은 이미 실은 것이 무거운 위에 네 사람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부

득이 앞으로 빨리 달릴 수밖에 없고, 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다리는 까닭에 그 말이 죽거나

골병이 들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갈수록 많이 죽어가고 말값은 갈수록 비싸진다. 이것이 일

곱째 한심한 일이다. 말 등에 무거운 짐을 싣고 더운 죽을 먹여 힘을 쓰게 하는 고로 정강

이가 약하고 말굽이 연하여 한번 교미하고 나면 뒤를 가누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교미를

시키지 않는 것이니 말이 생겨날 까닭이 없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말을 다루는 방법이 괴

이하고, 먹여 기르는 방벙이 옳지 못하여 좋은 종자를 받지 못하고, 망아지 거세하는 법에

어둡기 때문이다. 무릇 짐승의 성품이 다 사람과 같아서, 피로하면 평안하기를 생각하고, 답

답하면 유쾌하기를 생각하며, 굽으면 펴지기를 생각하고, 가려우면 긁기를 생각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사람이 마련해주기를 기다리지마는 때로는 스스로 구하는 것을 유쾌하게 생각

하므로 반드시 때때로 그 굴레와 고삐를 풀어 물가에 놓아주어 답답함을 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사믈의 성품에 순응하여 그 뜻에 맞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말 다

루는

법은, 오직 고삐가 단단히 매어지게 않았는가를 두려워하며, 달릴 때에는 끈을 꽉 잡아당

기는 괴로움이 그치지 아니하고 쉴 때에는 땅에 굴러 흙목욕 하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므로

사람과 말의 뜻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 사람은 걸핏하면 꾸짖고 말은 항상 노여움을

품고

있다. 이것이 말 다루는 법의 괴이함인 것이다. 말을 먹여 기르는 방법이 옳지 못한 것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이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생각하는 것

보다

더 간절하데 아국의 말은 찬물을 먹이는 일이 없다. 말의 성질은 익힌 것 먹기를 가장 싫

어하는데, 그것은 더운 것이 병이 되기 때문이다. 콩이나 여물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짜게

해서 물을 마시고 싶게 하려는 것이요, 물을 마시고 싶도록 하려는 것은 오줌을 잘 누게 하

려는 것이다. 그리고 찬물을 마시게 하는 것은 그 정강이를 튼튼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런데

우리나라의 말은 반드시 콩을 삶아서 먹이고 여물의 끓여서 먹이기 때문에, 하루만 달

려도

저절로 열로 인한 병이 나고, 한 끼니만 죽을 걸러도 내내 허약해서 걸음이 느려지는데,

이것은 익힌 것을 먹이기 때문이다. 전마에 죽을 먹이는 것은 더욱 잘못된 일이다. 이것이

말을 먹여 기르는 법이 옳지 못한 점들이다. 좋은 종자를 받지 못하는 이유 또한 한두 가

지가

아니다. 말은 커야 하고 작아서는 안되며 튼튼해야 하고 약해서는 안된며, 날랜 말을 구

해야

하고 노둔한 말을 구해서는 안된다. 무거운 짐을 실어 먼길을 가게 하려면 토산 말은

작고

약하여 쓸데가 없다. 무비과 군용을 소홀히 하려면 모르거니와 무비를 강구하고 군용을

세우려 한다면 토산 말은 더욱 군사의 일에 쓸수가 없다.

이와 같은 아조의 말 다루는 목마법의 우졸함을 잘 아는 것은 장교들이나 찰방 또는 훈련

대장과 같은 벼슬아치가 아니라, 일개 역으 역졸들이나, 말을 직접 먹이고 타는 훈련에 임하

였던 기병들이나, 마을 끌고 먼길을 행보하는 상고 또는 마부들이 더 잘 아는 사항이었다.

그러므로 기병 출신에다 말을 끌고 행상으로 각처를 나다녔던 영평 사람 정대성이야말로 이

른바 이마학사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회령개시에서 야인, 즉 청의 변방 유목민들과 교역할 때 말 고르는 데에 있어 스스로

묘를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나이를 아는 일이며 다리를 보고 힘을 아는 것,

허리를 보아 날램을 판단하고, 갈기와 꼬리를 보고 종을 알고, 눈빛을 보아 사나움과 순종

함을

분간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수말을 고를 때는 종마로서의 가치로 고르되 빼어난 놈

마리에 암놈은 열 마리를 구하였으니, 원래가 암말이 온순하고 참을성이 많아서 기마에

적합한 탓이었다. 그들이 따로 목마장을 두만강 어귀에 끝에 있는 광대한 서수라 들녘에 두

었던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지만, 여하간 정대성이 그의 기병으로서의 값어치를 길산네 혈

당들을 위하여 십분 발휘했던 것은 바로 군관이 말을 제대로 먹이고 기를 줄 몰랐던 데에

있었다. 한 해에 거래되는 말의 수가 회령에서만 천여 마리에 이르렀으니, 이는 물론 관의

역마나 군마에도 소용되었으나 거의 반 이상이 상고들의 수송에 쓰는 상단마로서 팔려 나

갔다.

그와 같은 경기도 이북의 전도에 걸친 연계가 이루어지매, 아무래도 자비령 심원골은 만

약의 일에 대비하기도 취약한 곳이고 또한 해서의 중심부에 치우쳐 있어서 사통팔달한 지

형의

이로움을 취할 곳이 못되었다. 뿐만 아니라 길산이 해서에서 나온 극적이라는 장계와

일차

토포가 진행되었던 바이라, 아무래도 해서에서는 더 이상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었던 터

였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오년에 비류강의 지류인 개여울 상류에서 사금을 떠내고

그곳

금성산에서 김선일이 금광을 찾아내고부터 언진산의 일부 식구들의 왕래가 잦아지게 되

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양덕에서 만났던 객주점의 귀뜸에 의한 것이었고 선일이가 그르 잘 설

득하여 두 사람이 한달 동안이나 비류강 상류로 올라가 더듬은 끝에 찾아냈던 것이었다. 그

들은 금성산 채금굴을 은밀히 감추기 위하여 채금자를 대폭 줄이고, 캐어내기만 하고 야금

일은 언진산으로 보내곤 하였던 것이다. 선일이는 언진산과 곡산 음금동령과 양덕 금성

산을

차례로 나다니며 장채를 관리하였고, 집에 가서 한 열흘쯤 머물렀는데 끝춘이는 언진산

아랫녘 샘골 사거리에서 고원으로 옮겨가서 객점을 열고 있었다. 즉, 모든 산물은 북관으로

가는 것은 고원을 거쳐 회령으로 올라가고, 서북으로 나가는 것은 성천으로하여 순안을 거

쳐서 다시 강계 최윤덕과 벽동의 이학선에게로 나가고 있었다.

양덕 초천은 초라하고 궁벽한 현에서 칠십 리나 더 산골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초천면은

비파산의 줄기가 삼방령으로 갈린 끝에 있었으며 앞으로 초천의 세 갈래 내가 지나고 산

줄기가 겹겹으로 싸인 남향받이의 작은 골이었다. 초천역말이 있던 곳은 옛적 수덕토성이

있던 곳이며 초천면은 거기서 북으로 삼십여리 들어가서 두 산협 안에 내를 끼고 있는 적송

림이 울창한 곳이었다. 금성산 잠채터는 그곳에서 칠십여 리 떨어졌고 성천에서나 양덕 읍

치에서도 백 리 가까이 떨어진 곳이라 벽지인 양덕에서도 또한 한벽한 곳이었다. 양덕 초천

면에 장길산과 그의 혈당 중에서 가장 측근의 사람들만 모인 여염 마을은 다른 식구들에

게는

전혀 알려두지 않았고, 오직 고원에서 언진산과 금성산과 은금도령을 오가는 김선일만이

알뿐이었다. 대개 전갈할 일이 있으면 강말득이가 나다녔고 길산은 출타할 일이 생기면

일단

그 방향을 보아 세 군데로 거점을 정하였다. 즉 북도 쪽이면 고원의 김선일 끝춘이네 객

점으로, 서도 쪽이면 순아 법흥사 아랫마을로, 그리고 해서 방향이면 언진산과 봉산으로 나

간다음에 목적지로 향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식구들은 길산이 각각 다른 거점에서 오는

줄로

알고 있었다. 양덕 초천면이 마을은 그들 식구들에게는 실로 여러 해 만의 여염 사림

하는

재미를 안겨주었고, 길산의 아내 봉순이나 강순흥의 아내 춘천댁, 최흥복의 아내 황주댁

등의 말득의 안내로 평양 대처 구경도 다녀오곤 하였다. 그들 식구들은 차츰 자신들이 세

상을

피하여 사는 녹림당의 가족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다. 길산은 강선흥과 최흥복 그리고

강말득을 데리고 멀리는 북도에서 가까이는 평안도 황해도 등지로, 또한 경기도의 송도나

파주에까지 나갈 적도 있었다. 그들의 혈당들은 모두 상고들로 편제가 되었고, 서로 내왕할

적에는 북관에서 들여온 호마를 이용하였다. 그렇게 나 다니는 가운데 말타기에 익숙해졌

으며

마상재도 벌여보리면 능히 해낼 정도였다. 파주 문산포의 이경순과 전생이네 풀뭇간에

서는

총포를 만들어 산으로 보냈는데, 최흥복이가 명포수가 되었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요, 선

흥이 말득이 그리고 특히 길산은 방포술을 습련하였다. 벽동에서 들여오는 유황으로 화

약은

언제나 질 좋고 화력이 센 것을 생산해낼 수가 있었다. 화약은 언진산에서 직접 만들었다.

화약을 얻으려면 먼저 염초를 조제하여야 한다. 짠맛이 없는 고운 가루흙을 채취하여 재를

섞는다. 재는 쑥이나 볏짚을 태워서 만든 것이 가장 좋으며, 잡초나 잡목을 태운 것도 쓰

이지만 소나무는 안된다. 흙과 재를 같은 열 말씩으로 비율을 균등하게 섞는다. 흙이기가 많

으면 재를 한 말쯤 더 섞고, 모래가 많이 섞인 흙일 때에는 재를 한 말 적게 섞는다. 거기

오줌을 섞고 나서 말똥으로 덮는다. 말똥이 마르면 불을 붙여 태우고 시루에 잿박을 받

치고

물을 부어서 흘러 나오는 물을 가마에 넣고 끓인다. 오줌이나 말똥 대신 아교를 넣어 끓

여도 된다. 물을 부어서 쓰고 잿박에 걸러진 건더기는 다시 모아서 쓸 수가 있었다. 이렇게

얻어진 염초로써 화약을 만들게 된다. 염초 한 근에 버드나무재 석 냥, 유황가루 세 돈쭝을

섞어서 쌀 씻은 맑은 뜨물로 반죽하여 방아에 찧어서 떡처럼 빚었다.

길산은 연환 쟁이고, 화약 넣고, 부시 치고 화승에 당기는 삼보 방포술을 익혔다. 즉 세

걸음에 한 방을 놓는 기술이다. 화승은 대나무 속을 부수어 비벼서 끈으로 만든 것이니 부

시로 이 끝에 불꽃을 일으켜 약실에 대어주면 연환이 터져 날아가는 것이었다. 길산은 경

순이

이십 보 밖의 간장 종지를 박살낸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만한 거리에서 조롱박을 꿰일 정

도가 되었다. 특히 최흥복의 방포술이 우수하였는데, 그는 전통 모양으로 꿰맨 가죽통에다

자루의 화승총을 넣어 엇비슷이 메고 다녔다. 그는 남보다 한 방울 더 먼저 쏠 수가

있는

셈이었다. 최흥보은 손아귀에 연환을 한줌 쥐고 그 손으로 허리끈에 매달린 쇠뿔통 끝

으로

약실에 화약을 넣고는 장정하여 부시로 시척, 하며 화승에 불당기는 솜씨가 비상하게 빨

랐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보 방포와도 같았으나, 남보다 한걸음 앞선 것이었다.

강선흥이는 건성 총포는 들고 다녀도 엄파 쇠몽치를 휘두름만 못하여 동작도 느렸고 잘

맞히지도 못하였다. 또한 강말득이는 워낙 자고를 날리던 솜씨가 있어서 눈매가 날카로운

탓도 있었지만 워낙 영민하여 금방 방포술을 배웠다. 그들이 총포의 필요함을 알게 된

것은

역시 구월산 된목이골의 어이없는 함몰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던 탓이기도 하였다. 김

기는

단병접전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관군은 토포나 범사냥에 늘 포수들을 동원하므로, 먼 거리

에서 둘러싸고 쏘고 들어오면 아무리 창이나 칼의 명인이라도 당해볼 재간이 없다는 것이

었다. 그들은 늘 들기름을 칠하여 윤이 반들거리는 화승총을 누비집이나 가죽집으로 싸서

원행할 때는 다시 그 위에 보자기를 두르든가 돗자리를 둘둘 말아 메고 다녔다. 길산이나

말득이는 허리춤에 자고나 단검을 품고 또한 화승총을 둘러메는 것이었다. 특히 방포를 하

려면 부시가 좋아야하고 그중에서도 돌보다는 쇠가 좋아야 하나니 부시 쇠는 단방이 되

려면

역시 청의 반달쇠가 으뜸이었다. 그 무렵에 압록강의 잠상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함석은

횡성 금굴이로 보내져 사주전을 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돈은 일부분이 덕

고산 봉복사의 대성법주스님에게 보내져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의 승방에 나눠지고 있

었다.

고성에서는 이 돈을 각처의 승병을 기르는 자금의 일부로 썼던 것이다. 오경립 이정명 방

귀선은 검계과 미륵도의 혈당들이 죽어가던 날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전문도주는 살해 인명죄에 해당되는 사형이었으나, 동철을 다룰 줄 아는 자들은 끊임없이

사전을 만들어냈으니, 한양의 장인들이 그러하며 또한 절이나 산곡과 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사주전이 성행하였다.

산간 사찰에는 도망한 공장이 출신의 관노들이 많았고 실제로 종이를 만드는 제시술은 각

처의 절에 보급되어 재원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쉽게 도가니를 짓고 나무로 숯을 만들며 풀뭇간을 이룰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원래가 암자나 부속 사찰에서 불사가 있게 되면 동종이나 불상을 주조하기도 하였으니, 이

것이 바로 이들의 합금 기술이 향상되게 한 원인이었다.

정교한 동종을 만들던 나머지 재간으로 어찌 한닢 엽전을 만들 수가 없겠는가. 경오년의

주전 때에 민종도는 각 아문의 주전 때에 바로 주전장인에 의한 도주가 성행한다고 개탄

하던

것이다. 그는 아뢰었다.

근래에 들으니 공장배가 주조할 때에 몰래 동철을 가지고 사사로이 도주하되, 주석을 쓰지

않고 온전히 연철을 동과 섞어서 저자에 발매하여 때를 타서 이를 노리는 계책으로 생각

하고 있는데, 비단 전품이 매우 저열할 뿐 아니라 무게가 관전에 비하여 조금 가볍다고 합

니다. 이 폐단은 불가불 통혁해야겠으나 이가 있는 것은 방지하기가 심히 어렵고 적발하

기가

쉽지 않아 금하여도 따르지 않으니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차츰 사주전이 시해지자, 조정에서는 최고의 형벌로 논단하였고 부대시처참이라 하여 수

종을 불문하고 교수한다 하였으며, 전문 사주죄인이 많아져서 이를 모두 동률로 처단하

기가

어려우니 수종을 구부케 해달라고 청원하는 형편이었다.

용전 이래로 민간의 간위가 백출하여 폐단이 무한한데 그 가운데 도적이 함부로 날뛰어

더욱이 용전의 폐단이라 하니 참으로 우려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미 일국에 널리 행하여져

실로 정파할 형세가 아니지만 도주현발자는 불가불 대상례에 의하여 처단해야겠습니다. 전

화는 본시 큰 이인즉 금령이 비록 엄하지만 도주를 역시 방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근래에 들

으니 도주현발자로 장인은 처사하고 봉족은 정배하기 때문에 비록 장인과 봉족을 실고 구

별할

길이 없습니다. 또 비록 봉족이라 하더라도 이미 장인과 같이 더불어 동사동리 하였으니

어찌 형률에 차별한 이치가 있겠습니까. 지금 국용이 부족하여 바야흐로 주전을 하려 하

는데

이를 빙자하여 도주자가 상상컨대 더욱 많을 것입니다. 기다림 없이 처단하며, 도주를 포

고한 자에게 논상함이 없다면 도주자가 비록 무리를 지었다. 하더라도 누가 신고하고 체포

하겠습니까.

기사년 이래로 신미에 이르기까지 삼 년 가뭄이 들어서 해마다 흉년이었는데 특히 경오에는

충청도 지방이 극심하여 비워진 마을이 열에 칠팔이라 하는 정도였다. 근기 일대에서는

저마다 다투어 쇠를 녹여서 동철과 섞어서 질이 나쁜 사전을 몰래 만드는 일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특히 유기로 유명한 안성에서는 사주전이 많이 제작되었고, 동래에서 들어오는 동철이 끊

기자 구리와 주석과 쇠를 섞어서 직접 동철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던 것이다. 안성에서 사주

죄인이 잡혔을 적에도 워낙 백성들간에 흔한 범죄이고 보니 죄를 주자, 면해주자하여 의

견이

여러 가지로 엇갈리는 형편이었다.

집에 세든 사람이 주전하다가 정범이 도주하면 집주인이 무죄인데 당초에 집을 빌려 이미

범죄 사실을 알았을 것이니 어찌 죄를 면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하여 두주자는 수종의 구

별없이 사형이라 하더니, 모두 죽일 수는 없는 일이라 다른 안이 나오게 되었다.

죄인이 스스로 하는 말을 믿을 수 없으나 그 말과 기색의 참절함을 보매 원통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형조 문안을 보았더니 포도청에서 심문할 때에 비록 이미 승복하였으나,

장물

중에 이미 사주하다가 발견된 기구가 없고 단지 경철 파철이 있을 뿐입니다. 소위 경

철은

곧 유철인즉 공장이 통용하는 물건이고 소위 파철도 역시 저자에도 혹 있으니 이로써 그

사주를 단정함은 불가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관원이 비록 특별히 다른 주장을 용납할 수 없

으나 계목의 지어에 불쌍한 생각이 없지 않고 또 한 사람은 접주인이기 때문에 모두 수

치를

당하였는데 체포한 군관이 말하기를, 네가 사주 때에 땔감을 대주었다고 공초하면 너는

무죄여서 저절로 석방될 것이라 하기 때문에 그 말대로 납초하였다 합니다. 근래 공을 세

우고

상 받기를 갈구하는 무리가 허위로 꾸며 무협하는 폐단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렇듯이 사전은 흔한 세태가 되어 있었고 근기 일대에 접경한 강원도의 두메에서는 땔감이

있고 인가가 드물어 사전꾼들이 많았으며, 단속에 지친 강원감사는 부상의 사주를 허가

하고

세전꾼들이 많았으며, 단속에 지친 강원감사는 부상의 사주를 허가하고 세전을 징수하

고자

제의하는 판이었다. 이는 즉각 거부되었으나 영의정까지도 당시 도주전자가 너무 많기 때

문에 포도청에서 승복 후에 형조로 이송되면 번복한다고 지적하고, 비록 결당작적하여 인

명을

살해한 자와는 차이가 있으나, 나라의 이병을 도적질하고 무리를 모아 간사한 짓을 함은

극히 중대한 문제라 엄벌하기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횡성 금굴이는 현 서쪽 서천 건너서 갈풍역 지나 초원 근처의 야산에 있었다. 횡성은 강

릉부 경계까지는 시오 리, 홍천까지 사십여리 떨어져 있었다. 바로 지척에 여주와 남한강 줄

기에 닿으니 배를 대어 광주 삼전나루 송파와 용산 삼개 그리고 마포와 서강에 이를 수가

있었다. 검계원이던 오경립 이정명과 시내비골의 미륵당이던 방귀선이는 일찍이 무진년

난리

때에 이정명의 안내를 받아서 금화 수태사의 대성법주스님에게 의탁했던 것이다.

이정명은 여환과 황희 등이 죽을 적에 미륵당에 들었던 형 이원명과 아우 이익명을 잃었

었다. 더구나 그는 황희의 조카였고, 김시도의 동무였던 터였다. 형 원명은 동악상제하였던

여섯 사람 중의 하나여서 여환 황희 원향 계화 정원태 등의 주범 다섯 사람과 함께 처형되

었던 것이다. 정명은 안협 상수리에 살았으므로 재빨리 철원으로하여 금화 수태사로 달

아날

수가 있었다. 그는 장포 사람들에게 대전리 집결을 알리고 돌아다녔던 터였다. 그의 친척

혈육들은 매의 장독이 올라 시름시름 앓다가 죽거나, 남정네는 거의 유배를 당한 형편이

었다.

또한 연천에 살던 오경립은 주범과 동악상제와 상경동행한 중죄인 가운데서 유일하게 모

면하여 달아날 수 있었던 경우였다. 그는 미륵당이었던 형 오계원이 장하에 죽었다는 소식

이며 매부 김돌손과 조카 시동 시금이 형제가 처참하게 죽은 소식이며 매부 김돌손과 조카

시동 시금이 형제가 처참하게 죽은 소식에도 접하였다. 그는 조카 김시동과 같은 나이였

으며,

이정명 방귀선과 비슷한 또래로다 같은 농사꾼이었다. 오경립도 정명과 같이 수태사에 은

신하였다. 그리고 시내비골에서 무기 준비를 맡았던 방귀선은 검계는 아니었으나, 친척이던

방승남을 따라 미륵도에 들었으며 시동의 가장 신임하던 마을 동무였다. 이들은 수태사에

얹혀 있다가 대성법주스님이 횡성의 덕고산으로 옮겨 오면서 그를 따라왔던 것이다. 이

들은

정명을 통하여 해서 무계원들과도 연락이 되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천마산서 내려와 철

원에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던 고달근과도 연결이 되었다. 고달근과 복만이는 이해가 달랐

으나

포천 송우점에서의 난전에는 솔부리 식구들과 더불어 함께 투자하고 있었다.

횡성 금굴이는 관에 세금을 내는 철광이었으므로 잠채가 아니었다. 따라서 소출된 만큼

파먹고 관아에 고하여 적당량의 쇠로 봉납하였다. 이들은 좋은 쇠를 가져갔는데 이곳에 풀

뭇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상번수가 이정명이었다. 오경립과 방귀선은 일꾼 십여 명과

함께

금굴이의 움막에서 지내며 철광석을 캐어 적당량이 모이면 덕고산에 오르는 것이었다.

덕고산에는 오래된 산성이 남아 있었는데 이른바 태평성대라 하여 관장이 돌보지 않은 지

백여 년에 퇴락하였다. 곳곳에 성벽과 우물만 남을 있을 뿐 잡초만 무성하였다. 산성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봉복사가 있었다. 봉복사에는 대성법주와 두 사람의 젊은 승려가 있

었다.

풀뭇간은 바로 산성 안에다 마련을 하였던 터였고 이정명은 번수들과 함께 초가를 짓고

그곳에서 살았다. 노비 출신의 장정들이 모두 여덟 사람이나 되었다. 그중에 직접 주전을

하는

두 사람은 진휼 청과 군기시에서 공장이 역을 지고 있던 관노였다. 그들은 전생이나 마찬

가지로 호조에서 주전이나 군기류를 만들어내던 솜씨 있는 자들이었다. 이들을 횡성으로 보

내준 것은 서강의 장물와주 모신이었던 것이다. 그 또한 주전이 이익에서 빠지고 싶지 않

았던

모양이었다. 사주전은 송우점의 솔부리패들에게도 전해졌으니, 주로 추가령 넘어서 관북쪽

으로 흘러나갈 상업 자금으로 쓰여졌다. 이들 사전이 흘러나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예전 검

계의 조직을 통하여 가능했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봉복사의 젊은 승려 하나는 예전부터

안성에서 범종이나 불상을 만들어 각 암자에 봉안하던 장인 승려와 더불어 기술을 익힌 사

람이었는데, 그는 동래의 박래품인 동철이 없어도 합금해내는 비술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주전이 동철의 합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여 질 나쁜 파쇠로 기포가 표면에 드러

나가나 자체가 선명치 않아서 발각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호조의 상평통보와 똑

같은 사주전을 찍어내고 있었다. 경강의 모신과 송우점 난전이 고달근이네 식구들은 모두

현물을 주고 횡성 덕고산의 상평통보를 사갔다. 동래의 백사값이 너무도 좋아서 처음에는

막대한 양의 왜동이 흘러들어 왔으나, 조정은 직접 동이 산출되는 읍에 널리 알려서 소출해

내기를 명하고, 왜에게 이익을 줄 수가 없으매 동철의 수입을 금지시키도록 하였던 것이다.

덕고산 산성 옛터에는 차츰 초가가 늘어나더니 어엿한 한 부락을 이루게 되었다. 이들의 살

림은 사주전의 이익ㅇ로 그런 삼 년여의 흉황에도 굶주리지 않고 먹고 살 수가 있었다. 궁

벽한 횡성에서도 또한 백여 리쯤 들어간 깊은 산중이고 바로 산을 넘자마자 강릉부에 속한

지역이고, 오대산의 연맥이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곳이라 인가라고 그들뿐이었다. 대성법

주는 여기서 나온 상평통보를 강릉을 거쳐서 고성까지 보내고는 하였다.

 

제3 장 진 인

고달근이가 포천 송우점에 나와 있다가 철원으로 멀찍이 들어갔던 것은 장가들 들었다는

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동북 방면의 상로를 매점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비록 안성

청룡사에서 잔뼈가 굵은 사당패이 모가비였고 한때는 검계에 들었으며 천마산 솔부리의

두령 노릇을 하였으나, 달근은 한번도 자신의 이해를 떠나 위험을 자초하는 짓은 저지르지

않았었다. 그는 산지니의 죽음도 곁에서 지켜보았고, 검계뿐만 아니라 미륵도가 패망하여 여

환은 물론 한때에는 그를 궁지에서 건져준 적도 있는 정원태와 어릴 적부터 함께 고생하며

살아온 동무 황희가 참수되는 일도 겪었다. 그런 일을 통하여 뜻을 가진 자는 더욱 분기

하고 애초에 정하였던 결심을 이루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건만 고달근의 경우는

그와 반대였다. 달근은 이들이 모두 부질없고 실리 없는 허황한 뜻으로 분수에 넘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가 솔부리에서 내려와 포천 송우점에서 복만이와 더

불어 중도아를 하며 지내다가 철원으로 나간 것은 무진년 미륵도의 변이 있던 직후인 팔월

쯤이었다. 그는 식구를 나누어 기중 영악하고 빠릿빠릿한 자들 서넛과 이천 냥의 자본을 떼

어서 철원으로 나가 용담역말에 객점을 열었던 터였다. 그는 일단 황희와 정원태 등이 저지

르고 간 소용돌이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었으며, 솔부리의 패들과도 일찌감치 헤어져서 이

제부터는 부상대고로서 느긋한 말년을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복만이가 가평 현등사로

자주 내왕하는 것도 못마땅했으며, 무진 난리 이래로 수없는 난전꾼들이 양주 관아로 끌려

가 조사를 받은 것도 아슬아슬한 노릇이라 솔부리패들에게 일단 자신은 분가한다고 뜻을 분

명히 밝혔던 것이다. 송우점과 도봉산 아랫녘의 다락원 난전은 주로 동북로의 상품들을 취

급하는 곳이었으니, 그중에서도 어물과 포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다락원 난전이 주로 한양

성내의 배오개와 칠패 애오개 등의 중도아들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포천 송우점은 북관의

이른바 북상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송우점은 생산지에서 다락원으로 집결되기 전에 일단 거

치는 집결처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포천 송우점에서 철원까지 백삼십여 리 길이요, 철원에

서 다시 평강 거쳐 검불랑을 지나 분수령을 넘으면, 바로 낭림산맥의 끝줄기와 언진산맥이

맞닿은 양덕으로부터 다시 황해도로 뻗어나간 마식령산맥의 남은 힘이 휘돌아서, 추가령 구

조곡을 이루어 강원도와 함경도를 가르는 경계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길은 옛적부터

북관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금강산쪽에서는 회양을 거쳐서 철령을 넘으면 함경도였

는데 이들 양로가 만나는 곳이 고산이요 안변 거쳐 원산 포구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추가령을 넘어서 백리 길을 비좁은 협곡과 심천의 좌우로 굽어치는 내를 따라서 끝없이

가게 되는데, 좌우로는 험산준령이 벽처럼 함께 흘러간다. 고달근은 철원에서 추가령의 협곡

으로 통하는 북관상로의 목구멍에 버티고 앉은 셈이었다. 그는 원산의 이시홍이 나가 있는

장길산네 상단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시홍이는 삭녕 장포에서 주막을 열었었고 포천 송우점

에도 물건을 하러 드나들던 자라 고달근이나 황회와도 잘 알던 검계원었다. 달근이 주로 취

급하던 품목은 원산 말뚝으로 유명한 북어와 길주 명천 가는베로 알려진 북도였다. 고기

철이 되면 달근이는 원산 시홍이네로 가서 직접 배떼기로 명태를 매점하여 건조장에 올 때

는 이미 자기가 부리는 일꾼들을 시켜서 마른 북어로 상품화시켰다. 이것을 그는 말짐에 실

어다가 철원에 모아두었고, 다시 포천 송우점으로 내었다. 송우점에서 직접 원산까지 나가는

이들도 있었으나 워낙 물량에 자신있는 고달근에게는 미치지 못하였고, 대개의 중도아

들은 올 적 갈 적의 여비와 수송 인마이 양식과 원산에서의 숙식비 등등을 감안하여 철원에

서 떼어가는 것이 훨씬 손쉽고 유리하였다. 무엇보다도 고달근이 다른 상고를 앞지를 수 있

었던 것은 자금이 융통이 원활하였던 탓이었고, 횡성의 예전 검계원 오경립 이정명 등에게

서 사주전 상평통보를 차용해오던 것이다.

숙종 십팔년 임신 봄에도 고달근이는 차인 두 사람을 데리고 추가령을 넘어갔다. 원산포는

충청도의 강경포와 전라도 법성포와 같이 한 고장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라, 함경도 아

득한

복변에서는 그 끝까지 내려온 셈이요 한양에서 온다 치면 북관의 동구 밖에 당도한 것과도

같았다. 덕원부에 속하였으니, 덕원이 원래는 작은 현에 지나지 않았으나 태조의 선조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시킨 지 수백 년이 지났다. 추가령서 백리 길을 협곡을

빠져나와 안변으로 하여 덕원부 경내의 원산포에 이르기 되는데, 포구 앞에는 큰 섬으로 죽

도와 신도를 비롯하여 곰섬 콩성 드의 작은 섬이 칠팔 군데에 엎드려 있었다.

아래로는 뱀골의 나직한 언덕과 위로 장던산이 띠처럼 두른 가운데 작전내가 포구를 끼고

바다로 흘러나간다. 포구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여 있었고 포구를 끼고 바다로

흘러나간다. 포구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하여 있었고 포구 기슭으로는 여각 객주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진영에서 나온 장교와 군졸이 대여섯 명 있을 뿐

부는 이십 리 밖이요 진영은 안변과의 경계에 십 리쯤 내려가서 있었다. 이시흥이 벌여둔

여각은 좌우로 장시가 서는 가가거리의 초입에 있었는데, 빢으로 트인 점포에는 각종 건

어물이 줄줄이 꿰어져 걸려 있었고 뒤편에는 드넓은 명태 건조장이 있고, 창고에는 무명이

그득하였다.

원산포에는 한달 동안의 건어물 교역량이 사오천 냥이고, 일 년간 판매고는 수만냥에 이

르렀으니 송도에서도 이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시흥이네 여각은 비록 장길산의 혈당

들이 내놓은 창구였으나 송도의 박대근네 상단을 위한 송방의 노릇도 겸하였다.

고달근이 철원서 말 다섯 마리에 차인들을 데리고 시흥이네 원산포 여각에 당도하니 송도의

차인들도 먼저 와 있었다. 달근이가 얼굴이 얽어 풍채는 보잘 것이 없었으나 그래도 체격

살이 붙고 배가 두툼하여 그 위에 갓과 중치막을 입으니, 의젓한 장사치의 우두머리로 보

였다. 그에게서 예전 사당패 모가비의 모습은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이제는 철원

부자 소리도 듣고 밥술깨나 먹을 만하였다.

"이서방 계신가?"

점포 앞에서 부르니 시흥이네 일꾼들이 뛰어나와 인사를 올리고, 시흥이도 안채에서 불려

나와 그를 반겼다.

"이번 행보는 좀 늦으셨습니다."

"때가 흉황이라 북포값이 대단하다네. 물건은 많이 모였나?"

"우리 여각에 물건 딸리는 것 보셨나요 고대인께서두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그야, 어련 하겠는가, 모두들 북관의 터줏대감님인데."

그들은 점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고 대근이네 상단에서 나온 차인들이 모두 꾸벅이며 인

사들을 올렸다.

"그래 박좌장께서도 평안하신가?"

"예 여전하십니다 "

"자네들두 북포인가?"

"아닙니다. 저희는 수달피입니다."

"수달피라면 의주로 내야 겠군 .누굴 기다리나"

"예, 사람을 고원으로 보냈습니다."

고달근이는 거기서 말을 그쳤다. 그는 언젠가 들은 말이 있어서였다. 그는 언젠가 들은 말이

있어서였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이시흥이가 재촉하여 그들은 안채의 시흥이네 점주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문갑이 즐비하

였고 책상 위에는 장부와 주판이 놓였고 방 윗목에는 궤가 차곡차곡 쌓여 있어 이와 같은

여각의 점주의 방이 될 만하였다.

"그러니까 지난 동지 때 떨어진 것이....."

"천이백 냥이네. 천오백 쳐서 가져왔지."

"횡성 돈 이지요?"

"그래 그것 말고 다른 돈이 있겠는가."

"은자라면 몰라도 요즈음 돈 가치가 자꾸 떨어져서, 오히려 미곡은 두 배요 사전은 반값

입니다 실은 저희들도 사전은 해서에서 얼마든지 부어내고 있거든요."

고달근은 이시흥의 말에 성을 벌컥 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자네와 인연을 맺은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 검계

때부터의 구면이 아닌가 내가 없다면 횡성에 있는 오서방이나 이서방과도 연계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내 또한 그들을 도와 사전을 직접 사다가 북관으로 내어 물건을 해가고 미미한 이

윤을 남겨 먹지 않는가."

"화를 내지 마십시오. 제 탓이 아닙니다. 저희는 북관에 다섯 군데의 객점이 있는데 그중

고원의 것이 제일 큽니다. 고원에는 우리 성님뻘 되는 이가 계십니다. 대인께서도 장두령에

대하여 잘 아시잖습니까?"

"길산이 말인가?"

"쉬이,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길산 성님께서 위에 계시니 우리네야 일사불란하게 전체 상

단의 흐름을 쫓는 것입지요."

고달근이도 장길산에 관하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지가 오래 되었다. 실로 천마산

솔부리 시절부터가 아니었던가. 황희나 파주의 이경순이는 그를 직접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

기도 나누었다지만, 고달근이는 전에 경강서 만났던 우대용이란 뱃놈이 그의 동무라는 소리

들었고 그의 혈당은 팔도를 덮을 만 하다는 소문에만 접했을 뿐이었다.

"하면 이제부터 사전은 반값으로 뚝 자른다는 말이렷다."

"예, 맞습니다."

"그러면, 나는 전의 절반의 이익밖에 못 보게 되니 정말로 먹잘 것이 없는 셈이로구먼."

"그런 셈이지요, 이제 북관으로 나가는 사전은 해서를 통하여 고원에서 풀려나갈 모양입

니다. 저희 객점에서는 미곡을 중히 여기고 있지요."

"내가 미곡을 가지고 나오면."

그제서야 이시흥이는 벙글대며 웃는 낯을 보였다.

"바로 그 얘깁니다. 미곡을 가지구 내려오십시오. 그때에는 세 배의 이득을 보시게 될 것

입니다."

"이 사람아, 이득을 보는 거야 요즘 같은 세월에 뻔한 이치가 아닌가. 흉황에 한양에서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오는 판에 어디서 좋은 값으로 곡식을 구하겠는가?"

"모르는 말씀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전조의 큰 흉년에도 경강에는 쌀이 그득하였답니다.

경강에 쌀이 마르면 나라가 망하는 게지요. 서강의 모대인께 가서 의논하시면 다 될 일인데

무엇을 걱정하시우?"

고달근이는 잠시 생각하였다 그는 아무래도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미곡을

구하여 원산까지 나오려면 그 막대한 수송비는 또한 어쩔 것인가 저희들은 가만히 앉아서

사전의 막대한 이익을 북관에서 고스란히 먹겠다는 속셈이 아닌가.

"아무래도 화가 나서 못 참겠네. 사전도 자네들이 해먹고 나더러는 번거로운 미곡을 실어

나르라니, 자네들만 배불리겠다는 겐가?"

그러나 이시흥이는 껄껄 웃는 것이었다.

"허허, 처음에는 손해 보시는 기분이 들 겝니다. 그러나 저희도 상리를 보아 저희 몇몇의

배나 불리자는 것은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서도와 북도지간의 산곡에는 저희 식구들이 근

천여 명이 넘습니다. 여염에 나와서 상도를 따라 돌아다니고 우리처럼 자리잡고 사는 이들

치더라도 수백 명이지요. 저나 경립이나 정명이나 귀선이도 모두 검계에 들던 때의 결심을

져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이제 대인 소리 집어 치우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오늘 성님

어떻게 무사할수 있었습니까. 정대덕님이나 황희 성님이나 시동이가 입다물고 묵묵히 죽

어간 덕분입지요. 우리 계가 보통 화적당과 같았다면 벌써 오래 전에 뿌리가 뽑혔을 겝니다.

이제는 고목나무 등걸같이 되어버렸으나 뿌리만 든든하다면 곧 꽃을 피울 겝니다."

고달근이가 예전부터 실속없는 뜻에 대하여는 코웃음을 쳤으나, 그러한 연계는 자기 개인

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므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시흥이 다시

말하였다.

"좋은 안이 있습니다. 저희는 고원에서 은을 내올 수가 있지요. 금도 있지만 북관으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은자와 쇠가 회령까지 올라갑니다. 고원에서 은자를 차용하여 경강에서 미

곡을 사서 여기까지 실어오면 됩니다. 수송에 대하여도 염려 마십시오. 고원에는 북방마가

수십 필입니다. 많을 제는 삼사십 필이요 적어도 십여 마리가 넘습니다. 철원까지만 운행하

시면 그 뒤에는 저희가 추가령을 넘어서 오가며 말로 수송을 하겠습니다. 은자라면 한양에

서는 못 구할 것이 없습니다."

고달근이는 내심 만족하였다. 이시흥의 새로운 제안은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다만 문

제는 은자의 차용을 확실히 해두는 데에 있었다.

"고원에서 내게 은자를 차용해주라는 언질이 있었는가."

"아직 없었습니다만."

"그러면 우리끼리 헛물켜면 어쩔텐가."

"좋습니다." 고원의 전주 성님이 보름에 집에 돌아오십니다. 이제 닷새 남았으니 여기서

시세나 보시며 푹 쉬시다가 저와 함께 고원으로 가십시다. 저와 같은 계원 이셨고 경강 모

대인과도 오랜 사이가 아닙니까. 윗분들도 성님이라면 신용을 해주실 겝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먼. 은자를 차용할 수만 있다면 내야 횡성 돈을 끊어두 별 불만은

없네."

고달근이 혼자서 따져보기에도 그것은 괜찮은 조건이었다. 다만 철원에서 추가령 목을 지

키고 앉아 한양과 원산포를 연결시키는 일만으로 막대한 이를 볼 수가 있을 것이었다. 즉,

길산이네 해서에서 부어내는 사전은 그들의 은자로 사들인 함석과 캐어낸 철을 합금하여 만

든것이라 동 열 근은 은 두냥에 해당 되지만 그것으로 주전하여도 전문 다섯 냥이 나오게

되니 석 냥 남는 셈이었고, 함석값은 더욱 싸고 철은 스스로 파내니 실은 이문이 칠팔 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전의 이득을 횡성에만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오히려 백성

들에게서 싼 값으로 포물을 사들여서 관가의 조세에 돈으로 반납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각 아문의 주전이 실상은 위와 같은 주전의 이익을 독점하고 그 피해를 백성들에게

돌리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관차배들은 군포와 조세를 거둘 적에 농민들의 생산물을 돈과

바꾸어 주는 한편 그 돈을 다시 세금으로 받았는데, 이들은 나라에서 정한 가치보다 높은

가치로 생산물을 사들였다. 농민들은 하는 수 없이 생산물을 팔아 이를 다시 방납하였으며

중간 이익은 행전 차인들이 가로챘다. 각 아문에서는 지방에 포자를 열어두어 돈장사를

시켰던 것이다. 길산네는 박대근의 안에 따라서 사주전으로써 이에 맞섰다. 그러므로 그들은

횡성의 돈이 더 이상 북쪽으로 흘러들기 보다는 강원 충청 그리고 근기에서 유통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고달근이는 또한 그의 속셈이 다른 데 있어서 이런 제의를 쾌히 받아들이기

하였다.

어차피 목화와 곡물은 흉황이 돌아오면 품귀해진다. 지난 세 해 동안의 목화의 작황은 어

느때보다도 흉작이었으며 더구나 곡물은 더 나쁜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람은 우선 벗고는

살아도 먹어야 사는 것이라 곡물은 날씨를 만나 수확이 나아져도, 목화는 훨씬 뒤에야 수량

채우게 될 것이다. 그는 순순히 고원의 은자를 차용하여, 경강에서 삼남 쌀을 그대로 사다

중도아 이문만 보고 원산포에 넘기는 뜨물 먹다 자빠진 싱거운 놈이 되기는 싫었다. 독한

화주는 못 들이켜도 하다 못해 누룩 냄새라도 맡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은자를 차용

해다가 직접 어느 풀뭇간에선가 유기를 녹여서 사주전을 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경강의 물주들을 통하여 미곡을 사들인다. 원금을 돌려준다 할지라도 주전의 이익은 이쪽으

떨어지며, 최소한 관차배들과 결탁한다면 곱절의 쌓은 자신이 것이 된다. 이를 원산 이시

흥에게 넘기고 북포를 거둬오는 것이다. 무명은 썩지 않고 상하지 않으면 수년간 한정 될

것이니 값이 오를 지언정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는 쇠를 횡성에서 사오고 유철을 안성에서

구한다 하더라도 풀뭇간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뿐 아니라 풀뭇간의 번수들을 믿을 수

있느냐도 문제였고, 주전의 기술을 익힌 장인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난제였다.

그는 순간 자기 이마를 찰싹 때리며 중얼 거렸다.

"파주 이도장 말고 또 누가 있을꼬."

이경순 자신이 살인 도주자요 그들 부부가 오랜 세월 고달근과 친면이 있는 사이였고 이

경순과 군기시 관노였던 전생이는 예전부터 파주 문산포 객점에서 총포를 만들어내는 기술

익힌 자들이 아니던가. 고달근은 따로이 유철과 쇠를 싸게 사다가 그들에게 주전을 시켜서

이를 조금 떼어준 뒤에 경강의 모신과 미곡을 도매하여 원산에 내는 것 이다.

여하간 은자를 융통하여 주전의 이익을 먹는 위에 쌀 귀한 북관 미곡을 올려다가 북포를

바꾸어 내려오면, 그의 철원에서의 수문장 노릇은 경강 상인의 그것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따라서 고달근은 아무군말 없이 이시흥과 함께 고원으로 올라갔던 터였다. 장길산의 활빈도

는 애초의 뜻이 그러했듯이 사주전으로는 관에 타격을 주고 은자로 삼남 양곡을 사들여

북도와 산협의 황민들이며 산간 식구들이 생계를 꾸리는 데 쓰고자 하였고, 양곡의 활빈행

을통하여 사람을 모으고 북도의 고원 지대와 산림 속에 마을을 여럿 세우려는 계획이었다.

고달근과는 뒤통수 가마에서 발 뒤축의 사이처럼 전혀 상반된 뜻이었건만 정 없는 달근이가

이를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는 오직 길산네 일당이 해서의 그 어느 곳엔가 열어두었다는

은광의 잠재터가 부러울 뿐이었다.

원산서 고원까지는 백여 리 길이었지만 해안을 따라 오르는 평탄하고 곧은 길이어서 마상에

앉은 시흥과 달근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중화참도 제때에 찾아 먹고 쉬엄쉬엄 산천 경개도

구경하면서 저녁에 고원 객점에 당도하였다.

이곳의 규모는 원산포보다 더욱 컸으니, 무엇보다도 마방이 많았던 까닭이다. 그것은 회령의

정대성이가 수집하여 보낸 북방마가 각 상단으로 팔려 나가기 전에 모이는 중간역인 셈이

었다. 각종의 농기구와 솥이나 피물 등속도 쌓여 있었다. 끝춘이는 중노미 둘에 부엌댁도 두

심부름 하는 계집아이까지 부렸다.

"아이 어쩌나 , 우리 서방님은 한 이사달 늦어질 게라구 하던데."

"뭐 기왕에 올라왔으니 조진포 나가서 놀다 들어오시지요."

"예 송도 분들은 모두 거기 나가 계시지요. 오늘밤 푹 쉬시고 낼 나가셔서 이틀 밤만 놀고

오시면 애 아버지두 돌아와 계실 거예요."

조진포는 읍에서 십여 리를 서쪽으로 나가면 덕지여울이 나오는데 거기서부터 이십 여리가

운하와 같은 물살 빠른 강이었고, 그 어귀에 포구가 있었다. 조진포 앞바다는 살여울에서

비롯된 문천포의 강물과 더불어 세 갈래로 흘러나와 만을 이루었으며 앞에는 덕원의 원산포

마찬가지로 대소의 섬이 십여 개가 엎드려 있었다. 여기서는 어장의 이익이 도내에서 으

뜸인 곳이었다. 북어는 물론이요, 연어 광어 송어 황어 등속이 무더기로 잡혔으며 새우나 게

조개 등속은 민물이 몰려나오는 포구의 강 어귀에서 들끓었다. 바로 이곳에 해동이 찾아

오면서 수달이 강을 따라 내륙에서 몰려 나오던 것이다. 수달을 잡는 곳은 조진포뿐만 아니

오산 아랫녘의 살여울 에서도 잡아냈다. 수달을 잡아 올리는 것은 고원 문천 덕원 안변

등지에서 온 사냥꾼 들이었고 송상과 경상들은 이들에게서 수달피를 전매하는 것이었다. 특

겨울이 지나면 내륙의 하천에서 바다로 통한 강의 어귀를 찾아 수달의 떼가 모여 들었다.

해동 무렵부터 교미기의 시작이었고 수달이 좋아하는 송어떼와 새우 등속이 얼음 풀린 강

어귀에 몰려드는 때문이다. 이시흥의 안내로 고달근이도 조진포로 따라나갔다. 객점주 김

선일이오는 것을 기다리자니 봉놋방에서 조밥이나 죽이며 앉았기도 답답한 노릇이었고, 이

철에는 조진포의 어계방에 각지의 장정들이 모여 들어 저자를 이루어 시끌덤벙하여 그곳에

가서 투전에 끼어든지 하다못해 뒷전에 앉아 오가는 재담이라도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어계방에 당도하니 송도 차인 몇이 앉았을 뿐 한산하였다. 시흥이가 그들과는 오랜 손님과

주인사이라 허물없이 말하였다.

"이거 내 술 손님이 모두 여기 와있으니 원산포에서 장사가 될게 무어야.'

"원산포야 명태철도 아닌데 날 샌 올빼미 격이지."

"내 자네들하고 가보잡기나 할려구 찾아왔네."

"우리는 벌써 손 털었구, 엽사들한테나 끼이게."

다른 차인이 말하였다.

"지금은 대낮이라 한창 일을 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지만 저녁이 되어 보게. 사당패가 한두

패가 아니더군, 계집들도 각양각색이야."

"일하는 데나 나가볼까."

이시흥이가 달근이에게 말하였다.

"수달피가 북변 무역품이라 국내 상고들은 손을 대지 않지요. 한양 상고들도 물건을 해다가

궁에 약간 먹이고는 대부분 물량을 확보해두었다가 사행 갈 때에 가지고 나갑니다. 우리

백성들이야 한겨울에 솜누비 배자만 걸쳐도 부가옹 소리를 듣지요."

"그래, 거기서 행수는 누가 나왔수?"

이시흥이 물으니 차인들은 서로 시선을 나누더니 우물쭈물 말하였다.

"글쎄 뭐 우리네야 상단서 밥 얻어먹는 주제에."

"북변서 한 사람이 불쑥 내려왔습니다."

이시흥이 안 체를 하였다.

"최행수가 왔습디까?"

차인들은 픽 웃었다.

"허, 꼬치꼬치 묻기는, 직접 강구로 나가보시우. 송도서두 유명짜하던 사람이니 잘 아실

게요."

"자아, 오늘은 우리두 심심파적이라두 하려고 여기 왔으니 이따가 한판 벌입시다."

"돈이야 엽부들이 시방 흥청망청이지. 돈이 있단들 우리 돈인가."

이시흥과 고달근이는 포구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갔는데 물때는 썰물이 나가고 있었으며,

질퍽질퍽한 갯바닥이 양안에 드러나고 있었다. 둑에는 이른 봄풀이 파랗게 돋아 나고 있었

는데 벌써 그곳에 이르기도 전에 잡다한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보기에도 인파가 꽤 많이

몰려 있는듯 싶었다.

"제철을 만났군."

그들은 둑 위로 올라섰다. 덕지여울서 내려오는 물이 중간에 다른 흐름과 합쳐져 세 갈래가

되는 곳이었는데, 거룻배 두어 척은 강변에 박힌 말뚝에 길게 줄을 매어서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두고 낙배에는 두 사람이 탔는데 한 사람은 뒤에서 기다린 삿대로 얕

강 바닥을 짚어 내려왔고 다른 하나는 뱃머리에 작살을 쥐고 물속을 노리는 것이었다. 배

타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으니 그들은 양쪽 기슭에서 허벅지까지 물속으로 들어가서 작살

질을 하였다. 상류쪽에서는 거룻배 두 척에 사람들이 여럿 타고서 작대기로 물을 치고 소리

지르며 천천히 몰아 내려왔다. 달근이 둑 위에서 내려다 보자니 거뭇거뭇한 것들이 솟구쳤

다가는 사라지고 하면서 갈팡질팡 몰려다니는데 온 물속이 꾸물꾸물 하는 것이 수달로 꽉

것 같았다. 둑 아랫쪽에는 뭍에 끌어 올려진 수달들이 미끈한 배를 드러내고 짧은 다리를

모으고, 홍수에 밀린 쥐새끼들처럼 즐비하게 자빠져 있었다.

"자못 굉장하구먼 ."

고달근이가 감탄하자 시흥이가 말하였다.

"성님, 수달 잡는 것 처음 봤수?"

"가죽은 여러번 봤어도 처음일세."

뭍에서는 수달의 가죽을 벗겨서 씻어내고 있었다. 엽부들 중에 머리가 되는 이가 있어 그가

가죽을 내어 점고하여 둑 위로 갖다 놓으면 그것들을 줄로 한 묶음씩 묶었다. 그곳에는

생김새와 의관이 그럴 듯한 사람이 멍석 위에 앉아 감역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여기 물주로 나온 이가 어디 계시우?"

시흥이가 가죽을 날라다 쌓고있는 엽부에게 물으니 그는 턱짓으로 갓쓴 자를 가리켜 보

았다.

"저 이가 기요."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자가 멍석에 앉았다가 그들을 힐끗 처다 보았다. 이시흥은 고달근

이쪽을 돌아보고 나서 그에게 말하였다.

"저어, 나는 원산포의 객점 주인 이서방이올시다. 북변의 송방에서 나오셨다기로 인사를

여쭙는 게요."

그는 이시흥을 빤히 들여다 보더니 앉은 채로 멍석의 한쪽을 내주면서 물러났다.

"어서 앉으슈. 나두 원산 객점 얘기는 많이 들었수. 김서방 만나러 오셨나?"

갓 쓴 자는 나이도 들어 보였고 가슴에 드리운 수염이 훌륭하고 이목구비가 그럴 듯하여

이런 곳에 나와 있을 장사치로는 보이질 않았다. 이시흥이는 그가 작은 개다리소반 위에 생

선횟감과 화주를 올려놓은 것을 보고는 마주 앉기가 황공할 정도였다. 그가 옆으로 비켜나

다시 고달근이를 바라보자 그는 시흥을 밀치고 슬며시 앞자리에 가서 앉는 것이었다.

"이거 실례가 많소이다. 철원서 객점을 하고 있는 고서방이요."

갓 쓰고 풍채가 그럴 듯한 송방의 물주는 그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흥에게

말하였다.

"허허, 주인과 물주가 함께 나들이를 나오셨구먼. 원산포는 명태철이 지났을 텐데."

"예, 이제부터가 북포 모이는 시절인 셈이지요. 박좌장 어른은 송도에 계실 테지요?"

이시흥은 아까 송도 상단 차인들이 새로 나온 북변 송방의 물주에 대하여 시답지 않은 태

도를 보였던 것이 생각났고, 일부러 박대근과 잘 안다는 태를 보여 그의 기를 죽이려 하였

다.

녀석이 송방에서 나온 차인의 우두머리에 지나지 않는 터수에 공연히 갓 쓰고 의관 치장

으로 격에 맞지 않게 점잖은 척하는 것이 밸이 꼴려서였다. 그러나 송방 물주는 점잖게 받

았다.

"아, 나하고는 동무간이지요. 해서 장두령도 내 손아래 사람이고 나는 강계 있는 이선달이

라고 하오."

거기서 이시흥이는 기가 팍 죽고 말았다. 송도 사대전의 좌장이었고 지금은 전국의 상단

에서 가장 실속 있는 배대인네 상단의 실질적인 운영자요 북변 무역로에서 실권을 쥐고 있

다는 박대근과 동무 사이라는 데에 그랬고, 무엇보다도 그의 두령인 장길산의 윗 사람이라

것과 그가 버젓한 무과 출신이라는 것이 그러하였다.

"어이구, 이거 몰라뵙고 그만,"

"괜찮소, 괜찮아. 까짓 한때에 말 타고 화살깨나 날려본 것이 무슨 대수요. 지금은 이렇게

채찍 들고 고달픈 상로에 나온 장사치가 아뇨?"

고달근이도 산전수전에 저자바닥에서 어르고 빰 때리는 술잔깨나 죽여본 이력이 있어서, 이

자가 비록 의관은 그럴 듯하지만 내막은 무뢰 배일시 분명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시흥

이는 곧 하정배라도 드릴 기세로 골방에 주저앉은 곡식자루 모양 스르르 쭈그러 졌지만 고

달근이는 싱긋이 웃고 나서 저도 한마디 건네었다.

"궁귀인도 담 밖에 내치면 파락호요, 똑같은 까마귀 암수 가리기가 어렵다오. 저자에서 만

났으니 이서방 술이나 한잔 주오."

강계 이선달이라 자칭했던 자는 이것 봐라 하는 양으로 눈을 휘둥그레 굴리더니 대뜸 껄껄

웃으며 화주잔을 턱 내주었다.

"아따 그럽시다. 철원 고서방이라구 했수? 자, 이서방도 한잔 받고 까짓 거 나룻이 석 자

라도 먹어야 샌님인데, 귀천이 따로 있나?"

술잔을 돌리면서도 자신이 그들과는 다른 바탕임을 내세우는 것이 못내 아니꼬워서 고달

근이는 술을 쭈욱 들이켜고는 그에게로 내밀며 말하였다.

"보아하니 이리저리 둘러대는 양이 길군악 나갈 제 앞에서 깃대라도 들고 다닌 양반이로군

해서 장두령의 성님이라면 우리 이서방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시흥이가 비록 첫번 인사에는 풀이 죽었으나 생각하고 보니 달근의 말에도 일리가 있

었다.

"강계 최행수 아래 있는 이가 어찌 우리 두령의 성님뻘이 되시우 ? 공연히 이말 저말 흰

소리 하면 봉변 당하리다. 입조심을 해야지 ."

"허 이 작자들이."

상대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이시흥이가 술잔을 소반위에 딱 때려 엎고는 언성을 높혔다.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지. 여기가 어디라구 함부로 흰소리여. 고언 김선일이네

객점 몇 번 드나들었다고 우리 존장님의 함자를 함부로 나대고 다녀?"

"이거 참 난감허군. 이 사람아, 내가 바로 벽동 나가 있는 학선이여. 자네는 모르겠지만서두

말득이나 선일이나 선홍이는 모두 안다네. 그나저나 자네야 원산포 객점 주인이니 별 상

관이 없겠지만, 내가 이거 입을 닫아야 되겠구먼."

이시흥은 식구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자가 패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느꼈다.

또한 언젠가 고원에서 수달피는 의주와 벽동으로 나간다는 말도 들어서 그곳에도 연이 닿

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던 터였다. 이학선이가 비록 벽동의 변지에서 잠상한다고는

하나 예전부터 송도서 내로라 하던 무뢰배요, 낯선 고장에 나와 안면을 세운답시고 길산의

성님 노릇을 하려던 것이 조금 과했다. 그는 곧 표정을 고쳐서 껄껄 웃으며 너스레를 쳤다.

"제길할 가어사 노릇하던 소싯적 버릇이니 양해를 허시우. 다들 한 식구 아니요."

"무진년에 재가 들어 흩어졌지만 우리는 모두 한양 검계원 들이우 나두. 천마산 솥부리에서

산채를 가지구 있던 사람이외다."

고달근이가 말하였고 이시흥이도 이어서 퉁명스럽게 내질렀다.

"처음부터 원산포 아무개라고 인사를 텄으면 우선 한식구인 줄 알아야 할 게 아니요. 북

변에서는 처음 오신 길이지요?"

하여 채근이 심한 고로 할 수 없이 내가 예까지 온 게요. 강계에서 청천강 수로를 타고

회천으로 하여 맹산 거쳐서 왔소. 그러니 저쪽 북도 쪽에만 줄을 대고 계시니 나를 몰라봤

구먼. 내가 송도와 해서의 식구들은 모두 아는데."

학선이는 처음보다는 말이 고분고분해졌고 시흥과 달근이도 차츰 누그러졌다. 학선이가

말하였다.

"김서방이 오늘 올 텐데."

"내일 저녁이나 모레 아침에 온답니다."

"어, 그러면 장두령과 같이 오는 모양이로군."

학선이가 아는 체를 하였다. 시흥이가 물었다.

"큰 성님께서 오신답니까?"

"아마 올 게요. 지난 번에 말득이가 은자를 강계로 가지고 오게 되어 있었는데, 내가 수달

피를 매점하러 고원에 온다는 소식을 전하였더니 오지 않았거든. 김서방네 집에 들으니 그

아주머니가 얘기합디다. 김서방하구 장두령하고 아마 같이 올 테니까 기다리라구 하던데."

고달근이는 귀가 번쩍 열리는 듯 하였다. 그에게 딴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는 오래 전부터 장길산의 이름을 들었으며, 저자 무뢰배로 그의 소문을 모르는 이가 없

어아마도 실물을 보았다면 모두들 혀를 찰 것이 분명하였다. 무엇보다도 고달근은 그의 북

도와 서도에서의 막강한 연결과 재력에 등을 대고 싶었던 것이다. 검계 때 에나 미륵도 때

에나 그는 사실 득을 보았을지언정 손해를 본 적은 없었다. 흠이 있다면 관의 피촉을 받거

위험하다는 점이었지만, 외나무다리나 수렁일지라도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건너면

되는 것이다. 고달근은 중얼거렸다.

"이서방이나 송도 분이 여기 계시지만, 나두 장두령께 한식구로 넣어주도록 좀 밀어 주

시우."

학선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시흥에게 말하였다.

"그야 자네들끼리 서로 잘 알지 않나. 검계 남리라면 나두 잘 아네. 우리 식구들중에도 검

계때 도망온 사람들이 많이 들었다던데."

그러나 시흥은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 하였다.

"그런 일은 저는 잘 모릅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직접 말씀을 올려보십시오."

그들의 얘기는 물에 젖은 수달피를 날라온 엽부들 때문에 잠시 끊겼다. 그가 내려가자 이

시흥이가 뒤늦게 주의를 주었다.

"여기서 이렇게 내놓고 떠들다가 누가 들으면 재미가 적겠소이다. 우리가 무슨 녹림의 활

빈행을 벌이고 있는 것두 아니구, 시방 장사하러 왔으니."

"딴은 그렇지먼, 일도 곧 끝날테니 어계방에 내려가서 한잔 더하지."

학선이도 자신이 많이 떠벌렸음을 깨달았는지 새삼스레 주의를 두리번 거렸다. 사실 고달

근으로서는 은자의 융통이라는 자기 잇속이 있어서 시흥을 따라 나섰던 것이지만 그들 사이

오가는 얘기를 듣고는 꼭 길산과 만나야 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에 기대지 않고서 어

서도와 북도의 좋은 이권을 얻을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에 조진포 어

계방에서 이시흥과 이학선 등과 함께 같이 자면서 고달근은 더욱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해서에 은광과 철광은 물론 양덕의 어딘가에도 금의 잠재터를 갖고 있으며, 산간의

골짜기에는 그들의 마을들이 여러 곳이라는 ㄱ덧과 북방마가 각처에 있어서 서로 그물코

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들이었다. 고달근은 북어와 북포를 포천의 송우점밖에서 매점하여

쌓아두기만 한다면 한양에서의 두가지 물종의 가격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판단

하였다. 그러자면 그는 이시흥이나 이곳 고원의 객점처럼 길산네 패거리와 줄을 대어 그들

객점이 되면 유리하리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다시 고원 끝춘네 객점으로 나왔을 때 학선이도 서북변으로 나가는 은자도 받을 겸

오랜만에 장길산도 만날 겸 하여 함께 따라왔다. 이시홍이 앞장서서 끝춘네 객점에 들어

서니 복도 쪽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방마다 떠들석하였고, 말똥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

다.

먼길을 내려온 말들은 안장과 굴레를 벗고 기다란 마방 안에서 건초를 맛나게 먹는 참이

었다.

"주인장은 아직 안 오셨수?"

시흥이 물으니 부엌에서 요란하게 도마질을 하던 끝춘이가 내다보며 말하였다.

"오늘 밤중에라도 오실 거예요."

"그걸 어찌 아시우?"

"거기서 먼저 떠난 이가 어젯밤에 여기서 묵었지요."

"우리가 묵을 방은 남았수?"

"아이 그러믄요. 주인의 사랑방은 아무에게도 내주지 않는답니다. 어서들 들어가 계셔요. 곧

저녁 올릴게요."

그들은 김선일이가 집에 있을 적에 쓰는 사랑에 들었다. 널찍한 방은 깨끗하니 콩기름 먹인

장판이고, 윗목에는 이불이 두어 채 놓였는데, 장지로 된 벽장에는 두툼한 자물통이 매달려

있었다. 방안에는 온기가 있었으나 아무런 가구나 장식도 없어서 어쩐지 휑뎅그렁한 느낌

이었다.

그들은 목침을 베고 눕기도 하고 방안에서 담배도 태우고 하다가 끝춘이가 정성스럽게 차

려온 저녁밥을 먹었다. 고장이 어염이 풍부한 곳이어서 젓갈등속과 생선이 올랐으니 철원의

푸성귀 산나물과는 또한 다른 맛이라 고달근이는 고봉의 조밥을 단숨에 먹어치웠다. 그리

고는 식곤증이 들어 깊이 잠이 들었더니 귓가에서 두런대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달근이는 어쩐지 그냥 누워서 그들의 속내나 두고 보자는 마음

들었다. 그것은 순간적인 기지였으나, 그들의 반응을 자세히 알아두어야 자신이 앞으로 그

들의 혈당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유리하겠기 때문이었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

렸다.

"어, 이서방 왔나? 헌데 이분들은 누구시던가...."

"조진포 나갔다가, 큰성님 뵌다구 오셨다길래...저어 강계에서 오신 이선달이라면 아신답

니다. 그리구 이 사람은 철원서 내왕하는 우리 중도아인데..."

이시흥의 우물쭈물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학선이가 나서면서 말하였다.

"장대인 어디 계슈. 나 강변 나가 있는 이학선이외다."

"아 예, 나는 주인이오. 강계 최행수나 이선달 말씀은 들었지요."

"저리 자는 모양인데 깨울까요?"

"믿을 만한가?"

주인의 물음에 시흥이 답하였다.

"염려 놓으십시오. 저하구 같은 검계원이었지요."

"음, 그렇다면 뭐.."

다시 신 끄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방문이 다시 열렸다.

"성님, 어서 들어오십시오. 원산포 이서방과 서북변의 이선달이..."

"아이구, 장대인 나 이학선이우."

그들은 방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먼 데서 오시느라구 고생이 많겠소."

하는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고달근이는 그가 바로 장길산이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등이 근질거리고 침이 넘어갔으나 갑자기 일어나 앉을 수도 없어 그대로

벽을 향하여 돌아누운 채로 온 신경을 귓바퀴에 모으고 있었다.

"저 사람이 철원서 왔다고?"

길산이 말하였고 주인 김선일이가 시흥에게 또 물었다.

"자네 계원들이 무진년 미륵도 난리 때에 모두 어육이 되거나 산지 사방으로 흩어졌다더니,

저 사람은 어찌 무사하게 중도아 노릇까지 하구 있나?"

"예, 대성이나 무인이 귀선이 경립이 등등은 이미 국문할 제 이름이 오르내렸고, 저 사람은

일찍부터 경기도 천마산 솔부리에서 녹림당을 엮고 있었지요. 실은 검계에서는 돌아가신

황거사님이나 정대덕님과 함께 우두머리였습지요."

길산이 다시 물었다.

"여염에 있을 제 무슨 업을 하였나?"

"예, 제가 상번병으로 한양 출입을 할 제 같은 어영아병 역을 지던 동무가 있었는데 무진

난리에 죽었지요. 그 사람하구 오래 전에는 재주 팔고 다닌 적두 있답니다."

"깨울까요?"

김선일이 말하자 길산이 응하였는지 곧 이시흥이 달근의 어깨를 흔들었다.

"성님, 달근이 성님 일어나우."

고달근이는 흠칫 놀라는 척하고 나서 하품을 하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았다.

그때에 달근은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사내는 긴

누비 저고리 걸치고 머리에는 패랭이를 얹었으며 팔짱을 끼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사 올리슈. 우리 식구들 가장이시오."

이시흥이가 나직하게 고달근에게 권하였다. 그러나 장길산은 부드럽게 말하였다.

"원로에 곤하실 텐데 단짐을 깨워 죄송합니다. 자, 서로 뵈일까요."

길신이 먼저 방바닥을 짚으며 머리를 조아리자 달근이도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길산의

패랭이와 달근의 갓이 서로 엇갈렸다.

"철원 사는 고달근이올시다."

"녹림에 묻혀 사는 장서방이오."

"함자는 우레와 같이 들어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달근의 말은 진심이었다. 길산이 웃으면서 받았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비루한 것이 숨어 살며 백성들의 노고를 훔쳐 잠시 세 때를 메우고

있습니다. 헌데 재간을 파셨다니 어느 동무이셨는지?"

"안성 청룡사에서 모가비질로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허어, 그렇다면 문화 재인말도 아시겠구려."

"아다마다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큰돌이라구 저희 또래가 있었지요. 해주 관시놀이에두 우리

대가 몇번 참예를 했습니다."

길산은 달근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거 아저씨뻘이 되는 분을 만났습니다. 큰돌 성님은 연전에 작고 하셨습니다. 관군에게

참수당했지요."

고달근이는 그것이 구월산 토포 때에 일어난 일임을 잘 알았다. 그때에 해서의 광대 패거

리가 거의 어육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고, 여환에게서 길산의 소식을 여러번 들어왔던 터

였다.

"여환당, 정원태, 황회, 정겨운 동무들도 모두 갔습니다. 나두 이렇게 오십줄에 접어들어

팔자에 없는 장사치 노릇을 하구 있습니다만..."

하면서 고달근이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재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오. 다 시기가 맞지 않아 그리된 것을 하늘의 뜻이라 알고

애써 준비하십시다. 언젠가는 그들뿐만 아니라, 온 조선 백성들의 포한이 풀리는 날이 오

겠지요."

길산이 추연히 고개를 들며 말하였고 시흥이나 김선일이나 학선이마저도 침통한 낯빛으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달근의 길산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말하였다.

"장두령, 나를 활빈도의 혈당에 넣어주오. 진작에 검계 난리 이후 미륵도의 난리 때에도

천행으로 살아남았으나 이제는 먼저 간 이들께 부끄러워 잠들면 언제나 가위 눌리고 허망한

꿈에 시달린다오."

"아재는 비록 우리와 직접 상면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오래 전부터 우리의 식구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소이다."

길산으로서는 그가 안성 청룡사 사당패의 모가비에서 시작하여 천마산 솔부리패의 두령으로

그리고 검계원으로, 다시 미륵도의 중핵으로 살아남아온 사실이 무엇보다도 눈물겹도록

반가운 일이었고, 재인말에서 함께 잔뼈가 굵었던 큰돌의 동무라는 데서는 콧날이 찡하였다.

길산은 달근의 접은 손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철원서 중도아를 보신다니 어려움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오. 저희가 힘껏 도우리다."

이시흥이가 곁에서 끼였다.

"사실은 그 일 때문에 선일이 성님과 의논하려고 함께 모시구 왔습니다. 두령께서 지난번에

사주전은 군포와 세곡에 대납하는 곳에만 소용이라 하셨고, 강원도와 경기도의 주전은 금

하라 하셨사오나 고대인은 횡성 사주전으로 지난해의 북어를 매점하여 가셨지요."

"그래, 백성들에게서 포물과 어물을 사주전으로 사들이면 우리에게는 큰 이익이 되나 저

들은 손해를 보는 셈이 되지. 이와 같은 흉년에는 마땅히 곡물이 간절히 필요한즉 물물교환

으로 이가 돌아가야 하고, 빈민의 구휼도 양곡이 있어야 하겠네."

"예, 분부를 받잡고 저희가 은자를 융통하여주면 고대인은 그것으로 경강에 나가 삼남의

양곡을 구매하여 철원까지 가져오고, 저희 원산포에서 말짐으로 수송하여 곳간에 쌓아두고

하였습니다. 저희의 뜻에도 부합할 뿐 아니라 고대인의 상리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래서 선일이 성님과 만나서 은자를 융통해줍시사 부탁해보시라고 제가 그만 위에 알리지도

못하고 우선 모셨습지요."

"음, 훌륭한 생각이군. 어떻소 아재, 사주전의 이익보다는 못하겠으나 중도아로서 우리 식

구가 되어 함께 일하는 뜻으로 보아서는 별 손해가 없으시겠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량을 제 날짜에 차질이 없도록 대어드리겠습니다. 또한 이제부터

근기 일대에 남아 있는 검계원들이며 한양 긴근의 난전꾼들은 모두 두령의 수하가 될 것입

니다."

"아니...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소이다. 횡성 봉복사 주승은 내 소싯적의 동무인데, 그가 예전

검계원들을 거두어 숨겨주었다는 말을 들었소."

"예, 오경립 이정명 방귀선이가 그 사람들입니다."

이시흥이가 옆에서 거들었다. 길산은 이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아재와 줄을 대고 있겠소. 서로 위급할 제는 끊고 맺기가 수월하겠지요."

"북변에 나갈 은자는 어떻게 되었소이까?"

학선이가 자기 차례를 놓칠까 하여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길산에게 물었다. 길산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딴전을 보이며 답하였다.

"아, 그 얘기는 내일 하십시다. 일에는 모두 구분이 있으니까..."

길산이 시흥에게 물었다.

"얼마나 융통하면 되겠는가?"

"글쎄요...삼천 냥 정도라면.."

고달근이가 말하였다.

"은자의 융통도 좋지만, 제가 취급하는 품목이 북포와 북어인데, 가을과 봄으로 나누어 번

갈아 구매하게 되지요. 제 생각으로는 은자로 경강의 삼남 곡물을 사서 원산포에 대는 일도

긴요하고, 그 중도아의 이익으로는 애초에 해왔던 북포와 북어의 구매를 했으면 싶습니다."

길산은 빙그레 웃었다.

"아재는 염려 마시오. 그쪽의 식구도 많을 테고 철원은 한양 도성의 뒤통수를 넘겨다보는

요지라 근거가 단단해야 할 게요. 곡물을 사다가 원산포에서 쌓아둔 북포와 북어를 바꿔

가시구려. 이자는 천천히 갚아 나가도 좋소. 우리가 재물을 모아두려는 것은 그것으로 이밥

고루거각에 살며 공명첩이나 사서 사복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니, 아재의 물력이 커지는

것은 곧 우리 힘이 커지는 것이지요."

"제 마지막 신명을 다하여 두령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고달근이는 그때에는 감격하여 진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달근이 워낙에 저자로 돌아다닌

사당패로 남에게 천대받고 제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밥 한사발 얻어 가지기도 어렵던 시절

보낸 자라서, 의심 많고 정 없고 이해에 빠르기로는 한양 구리개의 약장수나 종루의 시정

배나 중인배에 뒤지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속일 수 없었으며, 그 누구도 달근의 차가운 가

슴을 녹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근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는 이상스런 힘이 갈산

에게 있었으니, 그것은 성심으로부터 나오는 떳떳한 도량이었다.

고달근이가 길산네 혈당들의 철원 중도아로 받아들여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는

은자 삼천 냥을 융자받았다.

달근은 그 길로 횡성으로 내려가 금굴이 철광을 찾아갔다. 채취는 기계나 도구도 별반 없고

일손도 많지 않아서 그리 많은 양의 철광을 캐내지는 못하였으나, 워낙에 산세와 입지적

조건이 좋고 광석의 질이 좋아서 꾸준히 캐내고 있었다.

구멍은 두 군데였으며, 한 군데서 파고 나면 반수는 그곳에 들어가 좋은 광석을 골라내고

다른 반수는 다시 한쪽 구멍을 파고 하는 식이었다. 풀뭇간은 덕고산 산성 안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으니 여기서는 쇠를 제련하거나 물건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달근이가 그들이 기거하는 움막으로 찾아가니 질 좋은 철광석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데 오

경립이 다른 일꾼 두 사람을 데리고 그것들을 쇠메로 잘게 부스러뜨리고 있었다.

"수고들 많네."

"아이구, 거사님 웬일이시우. 겨우내 소식이 없어 우리는 또 무슨 탈이 나셨나 하여 사람을

철원으로 보내려던 참이었지요."

경립이가 부스러뜨린 광석 조각을 채롱에 쓸어담고 일어났다. 달근이가 그를 눈짓하여 불

러서는 움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서방은 어디 갔나?"

"굴에 들어갔지요. 일손두 모자라는 터에 이제는 해동이 되었으니 사고가 나면 어쩝니까.

동발을 많이 세워야 변을 미리 막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덕고산에서는 여전들 한가? 사주전도 계속하겠지?"

"예, 별 뾰족한 수가 없지요. 저희들두 이제는 제법 돈이 모였습니다."

"주전의 이익이야 손가락으로 꼽을 필요두 없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일 아닌가."

오경립이가 자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안성과 경강에 우리 돈을 먹이구 있습니다. 덕고산에다 이제는 여염 마을을 이루어

식구들도 데려다 안돈을 시키고 버젓이 살아갈 작정이우. 대성법주스님께서는 아예 강릉

이나 고성 근처로 나가라 하시지만, 그래두 경강이 지척이라 여기처럼 좋은 고장이 없지요."

"그래, 맨땅에서 날마다 돈을 캐내구 있으니 그야말로 돈농사가 아닌가. 내가 이번에 북관에

갔다가 낭패를 만났네그려. 이세 거기서는 이쪽의 사주전은 안 받겠다는 걸세."

달근이 말하자 경립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렇겠지요. 그쪽에야 쇠뿐입니까. 금에 은에 벼라별 쇠가 나오는 산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뭣허러 현물을 마다하고 돈을 쓰겠습니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사주전은 안되겠고....나는 자네들의 쇠를 사다가 농기구나 기맹 따위

라두 만들어서 북관에 내어야지."

달근이 속셈을 감추고 말하였다. 경립이 물었다.

"하오면, 현물로 사시렵니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네. 내가 은자를 준비해 왔지."

현물은 언제든 자신이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은자의 값은 변동이 적은 편이었으나

포물이나 미곡은 철에 따라 등락의 차가 심한지라, 달근과 같은 중도아의 이는 쌀 때에 매

점하였다가 품귀하여 비쌀적에 내는 데에 있었던 것이다. 은자라는 말에 오경립은 입이 벌

어졌다.

"허허, 은과 쇠를 바꾼단 말인가요?"

"하는 수 없지. 그 대신에 나두 이는 보아야겠으니 시세의 세배는 쳐주어야지. 이것 보게,

농기구나 기맹은 야인들이 찾는 물건이라 우선 공장이들 품값 쳐줘야지 회령 경원까지 실

어날라야지, 보통 힘이 들겠는가?"

"우리가 거사님께 쇠를 내지 않고 직접 주전하여 내면 이득이 얼마인지 잘 아시지 않습

니까?"

고달근이는 말하였다.

"이보게, 우리 검계가 지금은 세 불리하여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서 딴전을 피우고 있네마는

우리두 언젠가는 힘을 모아서 갑자년과 무진년의 원한을 갚아야 할 게 아닌가. 나두 이번

원산포서 고원까지 나갔다가 해서의 장길산 두령을 만났다네."

"예? 장길산을 만났어요? 어떻습니까. 키가 구척에 범과 같이 날래고 힘이 천하장사라

던데..."

"듣기보다는 그냥 보통 사람이더구면. 하긴 사람 됨됨이가 점잖더군. 그만한 힘과 식솔을

거느리구 있는 사람이 대단히 겸손하데."

"저희 스님과는 어릴 적부터 가장 친한 동무랍디다. 가끔씩 거기서 보낸 이가 봉복사에

들렀다 가곤 하지요."

오경립이도 은근히 기 죽지 않으려는 듯이 말하였다. 달근이 물었다.

"허어, 그건 또 처음 듣는 말이로군. 내가 자네들과 시흥이 무인이가 한식구들이라 통하는

줄 알았더니..."

"그야 그렇지요. 거사님과는 안 그렇습니까?"

"그것 보게...이것이 다 식구들간의 일이니 내 은자를 세 배로 쳐서 쇠를 좀 주게나."

달근이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으며 오경립이도 하는 수 없이 말하였다.

"까짓 거 그럽시다. 하지만 방서방이나 덕고산 정명이하구 논의를 해서 결정을 보겠습니다.

쇠야 굴속에서 계속 나오는 것이고...아무튼지 그 장두령 얘기나 더 해보시우."

"사람이 나보다 연배는 좀 아래인 것 같든데 들은 바와는 달리 부드럽고 조용하더구먼.

지금 서른여섯 먹었다든가 나보다두 열두 살이나 아래여. 뭐 미주알고주알 따지는 것두 없

식구가 되어달라구 하데. 그래 내가 횡성 있는 자네들 얘기두 했지."

"우리두 검계나 살주계의 동무들을 다시 모아서 세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서와 강원도의 근기 접경지역에서 장두령 식구들과 체결하여 도성으로 밀구 들어가야

지요."

고달근이는 펀뜩 제정신이 들었는지 말을 돌렸다.

"하여튼지 여주서 배에다 싣고 나갈것이니 내일부터라두 쇠를 내주게."

"내일이오? 어디 곁꾼이나 주인가라도 정하셨수?"

"주인가란 따로 없고 포천 송우점의 복만이네 객점으로 보내주어."

"허 그 참, 운송비나 곁꾼들 밥값이야 내가 주어야지. 여주서 사공을 사서 송파까지만 보

내주면 되는 게야. 송파 화초방 벌여두던 삼촌네 생각나나?"

"난 모르우. 그 동네가 어딘지...송파 삼전나루는 고거사님이나 옛적 황거사 놀던 데가 아

니우. 어느 집이라고만 얘길 해주오. 그리로 보내줄 터이니."

경립이가 말하였고 달근이는 다래목 깍정이패 꼭지이던 까마귀네를 떠울렸다. 그는 정원

태가 옮겨갈 때 다시 돌아가서 제 놀던 터에 자리를 잡고 보행 객줏집을 차려두고 밥 끼니

놓치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산지니의 죽음 이래로 고달근이는 광주 송파나 삼전나루를

두어번 들른 적은 있어도 자주 발길이 가지 않던 터였다.

"그래, 까마귀네 집이라구 해여."

"까마구? 거 무슨 이름이 그러우. 그렇게 말하면 압니까?"

"송파서 까마귀 모르면 장꾼이나 왈짜를 폐업해야지. 내가 가는 길에 들러서 맺어두고 갈

터이니 그리루 보내주게."

"은자는?"

"압다, 내가 쇠 가져가구 안 물어낼까봐 안달이여. 사흘걸이로 보내주기만 해라. 값은 그

믐에 가서 계산하여 줄 테니."

"월말마다 여기 오실라우?"

"그래야 핑곗김에 횡성 와서 자네들 얼굴이라두 보구 북관 소식두 전해주고 할 게 아닌가."

"우리 스님 언제 한번 인사라두 하구 댕기슈. 반가워할 겝니다."

"그건 그래. 아마 장두령두 반가위할 테지. 자, 그럼 방서방한테두 안부 전하게. 해 있을 제

가야지."

달근이는 횡성 금굴이서 나와 여주 죽산 거쳐서 안성으로 행로를 정하였다. 안성은 실로

그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고달근은 안성 들러서 청룡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배고프던 시절의 자기 모양을 그

대로 만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유기장에만 들러 대충 시세와 물량을 알아보고는 송파에 있

는 깍정이 꼭지네 객점엘 들렀다. 달근이 번듯한 객점에 들어서니 까마귀는 중노미까지 두

고 마루에 한가히 앉아 곰방대를 물고서 의젓하게 턱짓으로 이리저리 시켜먹는 팔자였다.

그의 차인들로는 다래목에서의 상번수 중에 똑똑한 자들로 셋을 가려 데리고 있었다. 고달

근이가 마당에 들어서자 중노미가 잽싸게 달려나왔고, 까마귀는 마루에서 건너다보기만 하

였다. "어, 까마귀 잘 있었는가?"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마루에서 얼른 내려왔다.

"아니..이게 누, 누구여. 달근이 성님 아닌가."

"왜 죽었는 줄 알았지? 제법 발등에 기름이 올랐겠구먼."

"어서 올라오시우."

까마귀는 달근이 소매를 잡고 대청으로 끌어올렸다.

"무진년 이래로 소문은 여러 군데서 들었수. 정대덕님이나 황서가 성님이 비명에 가신 것두

들었고....산지니는 지금도 여기 아이들이 화초방에서 얘기가 나오면 모두들 혀를 차고 탄

식을 합니다. 그래 어찌 죽지 않구 살아 계슈."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게나. 아무나 잡혀 죽는가."

"그건 그렇구 지금 어디 계슈?"

"철원 사네. 거기서 중도아로 밥 먹구 살."

"포천 송우점에서는 복만이 성님과 헤어졌수?"

"그래, 나두 이젠 좀 조용히 들앉아 여염 살림을 해볼 작정이다. 네까짓 깍정이도 발 씻고

이렇듯 어엿하게 객점주 노릇을 하는 터에.."

까마귀가 마당에 오락가락하는 중노미에게 들릴것이 염려되는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흥, 성님두 그러시는 게 아닙니다. 까마귀 까마귀 하지 마슈, 나두 성이 이가요."

고달근이도 껄걸 웃으며 대꾸하였다.

"허어, 그랬든가. 자네 이가라면 혹시 궁에서 내친 핏덩이가 아닌가. 그러다가 공명첩이라두

얻어 가지면 이제는 내가 하정배를 올려야겠구먼."

"에이 농담 마시우. 그나저나 뭣 땜에 낮도깨비 마실 돌 듯이 불쑥 내 집엘 찾아왔소?"

"이보게, 손님이 객점에 온 것은 술밥에 잠자리를 구하고 장사할 물건을 위탁하러 왔지."

까마귀는 잔뜩 눈을 부라리며 말하였다.

"이젠 장물은 안되우. 송우점에서라면 몰라두 내 집에선 그런 짓 안허우."

"이봐, 강산두 변하고 인걸두 다 가버리고 이제는 깍정이패의 까마귀두 이서방으로 둔갑을

하는 판에 내가 오십 평생이 넘도록 좀도둑의 장물이나 넘기고 다니겠나? 주인가를 정하

는데 자네 집뿐만이 아니여."

고달근이가 점잖게 말하자 까마귀도 얼른 안색을 바꾸었다.

"무슨 물건이우?"

"응, 뭐 간단하다네. 내가 강원도 가서 쇠를 모아가지고 올 것인즉 여주에서 배로 실어 송

파에 대일 걸세. 그것을 자네는 우리가 가지러 올때까지 여기 맡아두고 모아두었다가 내주

기만 하면 되는 게야."

"지불은.."

"까짓 구전이야 몇푼이 되겠수."

"아니..그럴 게 아니라 내가 안성에서 시세를 대충 보고 오는 길인데, 자네가 차인들을 풀

어서 유기나 좀 모아오도록 해주게."

고달근의 말이 여기까지 진행되자 까마귀는 역시 송파 장터에서 장바닥 먼지먹고 자라난

깍정이 출신이라 눈치가 비상하여 쇠와 유기가 어떤 물건인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 우리보고는 쇠나 맡아달래고, 유기나 모아오라니..성님은 어디서 풀뭇간 곁에 불이나

쬐고 앉았다가 큰 이익을 보자는 모양이오. 나두 눈치는 멀쩡한 놈이라 그렇게는 안되겠소.

그래두 옛적에 함께 고생한 의리가 있는 게지...자아, 몇백 몇천 냥이나 부어낼라우?"

고달근은 하는 수 없이 빙긋이 웃고 나서 말하였다.

"그래 좋다...너두 네 몫으로 쇠와 유기 값을 내면 쟁인들 품삯과 신탄값을 따져서 떼고 네

몫을 주도록 하지. 그럼 되겠냐?" "말해 무엇하우. 나두 그 돈 좀 만져봅시다."

"그러면 당장 안성으로 사람을 보내어 유기를 모아오도록 허게. 징도 좋고 바라도 좋고

기명도 좋네." 고달근이 까마귀에게 이르고는 다시 내쳐서 일단 경강으로 나갔나가 모신이

네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모신이네 살림집은 강변의 그의 객점에서 좀 떨어져서 뒤편에 번

듯한 기와집 지어두고 창고도 장대히 지어놓고 살았다. 모신의 곁꾼들은 서강 애오개 만리

재 일대에서 놀던 난전꾼들이었고, 이제는 삼개나 마포 동막의 대를 물려운 여각주들도 모

신이의 시장을 한 손에 쥐고 물가를 쥐락펴락하는 수완에는 당하지 못하였다. 고달근이가

대문간에 가서 하인을 부르니 뛰어나왔던 하인이 대뜸 그를 알아보고는 얼른 안으로 들이며

외쳤다.

"어르신네..포천 고대인 오셨습니다."

모신이가 선상들과 방안에 앉아 얘기하고 있다가 사랑방의 미닫이를 빼꼼히 열고 밖을 내

다보았다. 달근이가 신방돌 아래에서 서성대고 있었으며 그의 등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신

이는 돈피 배자에 탕건 쓰고 이제는 제법 서강의 가장 큰 물상객주답게 희끗희끗해진 수염

을 길게 드리웠다. 그는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마루에 나섰다.

"어서 오시게. 고사방이 서강 출입은 또 웬일인가."

"원 별말씀을 다 허시우. 장어가 제 살던 물로 돌아오는 일이야 다 자연 조화요, 고달근이가

경강에 오는 것이야 모대인을 뵈오러 오는 게지 뭡니까. 중도아가 대 객점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범이 제 골에 돌아온 거올시다."

고달근이 모가비 출신 아니랄까봐서 이리저리 둘러대어 너스레를 떠는 것을 기다려주다가

모신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어찌..철원서 산다는 말은 진작에 들었고, 장가든 살림 재미가 어떻소?"

"늙마에 이런 망신이 없소이다. 딸년 하나를 보았습죠."

"저런...전생에 예쁜 사당 아이들 치맛자락 뒤치레를 하러 다닌 까닭이지. 자아, 어서 올라

오시게."

고달근이가 안을 기웃하며 말하였다.

"우리가 이래봬도 장님 판수는 아니오만 독경할 제 잡인은 일체 금하는 성미라서..."

"알았네, 어서 저 건넌방으루 들어가시게."

그들은 사랑채의 작은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모신이 물었다.

"시방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

"횡성 거쳐 송파로 하여 이리루 왔지요."

"음, 예전 계원들은 모두들 무사하겠지?"

"그럭저럭 다들 제 재간껏 먹구 살아갑디다. 지난달에는 관북에 올라가 장두령 패거리에

들어 있는 식구들도 만났습니다."

"그렇지요. 북도와 서도의 산간에는 그의 혈당이 수천이고 마을들이 수십 군데가 된답니다.

세가 대단 장합디다."

모신은 허, 하면서 입을 벌려 감탄하였다.

"내가 문산포 이도장에게서 얼핏 얘기는 들었지마는, 북변의 이익은 송도의 박좌장이 모두

휩쓸었다더군. 그가 보낸 곁꾼 차인들이 문산포 거쳐서 이리로 내려오지. 그 사람들 길산이

얼굴 보았다는 이가 없더니, 고서방이 직접 만나봤단 말이지."

"실물을 만났고, 하룻밤 꼬박 새도록 여러 가지 얘기도 나누었소."

"그래, 장두령은 인물이 과연 어떻든가?"

"글세 그것이...저는 놀랐습니다. 나이는 서른예닐곱 되었나 본데 명화적질 댕긴 사람치고는

몸집도 그저 보통이고 생김새도 곱상합디다. 무슨 다른 재간이 있는가 하였더니,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상스럽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콧날이 시큰하고 거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더

란 말이지요."

"그 많은 사람들의 가장 노릇을 하노라면 자연히 그리되겠지. 그래 장두령은 장차 어찌하

겠다든가?" 고달근이는 잠깐 생각하였다. 모신은 서강뿐 아니라 칠패와 배오개 애오개 등지

의 난전꾼들 사이에서도 가장 으뜸의 재산을 가진 자이고 오랫동안 검계의 모사 놀음을 해

온 사람인지라 그저 시정 장사치의 타산으로 얘기를 붙이면 퉁겨나갈 것이 분명하였다. 그

러무로 그에게는 살주계 검계 이래로 염원이 되어왔던 도성번복과 역성혁명에의 본뜻을 들

어서 접근을 해야만 마음을 잡을 수 있을 듯하였다. 고달근이 잔뜩 목소리를 낮추어 그의

뺨에다 입김을 불며 속삭였다.

"산간에다 병마를 숨겨온 지 오래인 듯합디다. 말과 양식도 쌓아두었고 금과 은과 쇠의

잠채로 재물도 풍부하여 그들의 활빈행도 이제는 예전처럼 지방 토호나 수령들의 창고를 들

이치고 기민을 구휼하는 방법은 피하는 모양입디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전국에 혈당의 연계

가 철통같이 짜여지면, 성님도 아다시피 향군 수백이 상번하여 지키는 이따위 도성쯤이야

한식경 사이에 점령할 수가 있지요."

"정진인 말씀은 없으시든가?"

"그런 얘기는 아직.."

"지금 해서와 충청도 지방에서는 정진인이 이미 나오셔서 왕조를 넘겨받으려고 때를 기다

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네. 나야, 강변에 앉았으나 물길 타고 전해지는 팔도의 소문을

들을 수가 있지."

"모르지요...저두 이번에 그 식구가 되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두 얘기를 피합디다. 그런

분을 심장하여두고 보호할 세력이 장두령네 활빈도말고 어디에 있겠수?"

"아니...미륵도를 실행하시는 산간 승려들이 있었지 않나. 진작부터 우리와 장두령네 식구와

산간 승려들이 무진년 이전부터 연계되어가고 있었지."

"그러면 여환당이 맺어주었겠군요."

모신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주계 아이들은 지금 거의 남은 힘이 없고...검계의 나머지 계원들도 이제는 뿔뿔이 흩

어져버렸지. 내생각으로는 우리 같은 중인들이나 아니면 식자깨나 든 선비들이 있어야 되겠

데. 그래야만 조정의 내막이며 돌아가는 사정도 정확히 알게 되고, 무엇보다도 저희끼리 싸

우는 틈을 탈 수가 있게 되는 게여."

"좋은 생각입니다. 바로 그래서 제가 횡성 등지와 철원 안협 등지를 중시하는 까닭이 거

기에 있습죠. 그곳은 근기의 문턱에 있어 한양을 기웃이 넘겨다보는 곳입니다. 이곳에 튼튼

한 연결처가 있어야만 강력한 외응이 생겨나지요. 성님은 다시 혈당을 모아나가십시오. 그러

려면 재물이 기중 으뜸입니다." "허어, 고서방이 많이 변했구먼."

모신은 검계 난리와 무진년 난리를 겪어보아서, 달근의 건성건성 넘기는 척하면서도 앞 뒤

재어가는 타산 빠른 행동가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내 친동기간 같은 아우들과 동무들을 잃었는데, 그냥 숨어서 장사치로 여생을 끝낼

수는 없소이다. 나도 이젠 오십줄에 초로의 나이요."

"늦깎이가 먼저 득도한다 하였으니, 겪은 것이 많은 이가 오히려 일을 잘해내는 법이라네,

그래, 자네가 할 일은 뭔가?"

"성님과 나는 양곡을 좀 모아야겠소이다. 지금 북도와 서도에서는 삼남의 양곡이 필요하

답니다. 여러 해 군량을 비축해야 하거든요."

"음, 철원에 운송하면 쉽게 가겠구먼. 포물로 사려는가?"

"아니오, 돈이올시다."

"돈이라면 호조 것이나 오위영 훈련도감 것은 아니겠고...사주전인가? 횡성 것은 기포가

많고 쇠가 거칠어서 우리두 안 쓰구 있네. 상고들도 헌물을 원하여 돈 받기를 싫어한다네."

"그렇지만, 관가에서는 군포세와 세곡 대신에 반반씩 돈으로 대납을 원하구 있습니다. 삼

남에서 돌아다닐 것이니 무에 걱정할 것이 있소?"

모신은 방바닥에다 손가락으로 글씨 쓰는 시늉을 하면서 곰곰 생각하였다. 달근이 말하였다.

"사주의 죄가 역률과 동죄로 참수형에 처해질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하면 계를 다시 짜는

일이며 장두령과의 연계는 역률이 아닙니까. 주전의 이익보다 큰 이가 없습니다. 쟁인들이

자본이 없고 돈 있는 자는 목숨을 귀히 여기며, 설사 주전을 찍어낸다 하더라도 진전과 달

리 조야한 것이라 대번에 포도청에 적간이 되어서 엄두를 못내는 것입지요. 좋습니다..내가

상평통보와 꼭 같은 돈을 가져올 것이니 비교하여보시고 물량을 구해주겠수?"

모신은 그제서야 얼굴이 풀렸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자는 것이 모두 좋은 세상을 보자는 것이지, 칼 물고 외나무다리에서

외발춤 추자는 말이 아닐세. 만약에 우리 서기 아이가 돈을 보아 의심없이 처리를 하게

된다면 그 돈을 쓰겠네. 진전과 꼭 같이..그애두 내게는 거간 이익이 떨어지는 셈이니까."

"자, 이제야 독경이 모두 끝났군." "그래 내 귀가 쇠귀는 아니었지?"

파주 문산포의 이경순네 여각은 무진년 미륵도의 파란 이래로 잠시 침체하는 듯하더니,

경오년부터 차츰 그 세가 늘어나고 신미년에 들어서는 전보다 더욱 활기를 띠어가고 있었

다. 이는 교하와 강화의 우대용이네 식솔드록 연계하여 멀리는 의주의 용암포에서 거래한

잡무역품의 당화가 줄기차게 들어오던 까닭이며, 위로 지척인 송도의 박대근네 상단이 이경

순의 문산포 여각을 한양으로 들어가는 중간 거점으로 사용하였던 때문이었다. 또한 여각의

뒤란에 마련한 풀뭇간에서는 전생이를 숙수로 하여 조역 세 사람이 날마다 쇠를 다루어 화

승총을 제련해냈으니, 아는 화포등록을 머릿속에 환히 외어둔 전생이의 솜씨 탓이기도 했고,

또한 강하고 잡티가 없는 총열을 달구어내는 일은 군기시의 장인들도 못 따라올 솜씨였다.

길산네서는 한 달에도 십여 정의 화승총을 주문하여 전생이는 이경순과 더불어 눈코 뜰 새

가 없었다. 일거리가 많아져서 조역들을 이제는 숙수로 올리고, 해서의 언진산에서 일하던

자들 넷을 조역으로 데려왔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시키는 것이 유희했던 것은 남에게 알리

지 않고 은밀히 해낼 수가 있는 점이며, 그들은 처음부터 길산이나 이들 숨어 사는 자들의

사정에 대하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때문이었다.

묘옥은 예전과 다름없이 여문이를 키우고 장쇠와 전생이 이경순과 한식구로 살라갔다. 여

문이는 포구에서 시로 리 떨어진 대산골의 서당에 천자문을 배우러 다녔다. 장쇠가 업고 갔

다가 데려오고는 하였는데 장쇠도 이제는 훤칠한 장부로 자라났다. 묘옥도 어언간에 서른을

넘긴 나이가 되었으나, 머릿결도 여전하고 몸매며 살결도 젉은 처자와 같이 보였다. 다만,

사당 시절의 열에 들뜬 듯한 활기가 사라졌으며 눈빛에 보이던 깊은 슬픔의 그늘이 없어

졌다. 여문이는 어린아이였지만 숙성해서 말수가 적고 글을 깨쳐가는 진도도 빨라서 서당

훈장은 장사치의 아들임을 탄식할 정도였다. 묘옥은 몇차례 이경순에게 상고의 출입이 번다

한 문산포를 떠나서 연안이나 배천 근방으로 이사가서 농토 장만하여 살자고 졸랐지만, 경

순은 별로 대꾸가 없었다.

 

고달근이가 찾아간 날은 마침 여문이가 천자문을 떼고 책씻이를 하던 날이라, 묘옥이는

떡을 해서 장쇠와 함께 대산골 훈장 댁에 다녀오던 참이었다.

"안녕하시오, 오랜만이외다."

달근이가 장쇠와 여문이를 앞세워서 시루를 이고 오던 묘옥을 만나자 거침없이 노상에서

인사를 던졌다. 묘옥이 쪽에서도 밉다 곱다 하기 전에 고달근이는 가장 참담했던 시절의 고

난을 함께 겪은 옛적의 모가비인지라, 마치 친정오라비를 대하는 양 반가웠다.

"에그머니, 거사님이 웬일이십니까. 철원 사신단 얘기는 들었어요."

"예, 포천에는 가끔 댕기러 나오는데 지척지간에 이거 인사가 아니외다."

고달근이가 인사치레를 하면서 말하였다.

"이도장 계시지요?"

"늘상 계시지요. 잘 나다니지 않으셔요. 송도에도 몇 달에 한번 갔다 오셔요."

그들이 여각에 들어서니 벽이 없이 기둥에다 초가만 올린 헛간에는 여봐란 듯이 건어와

소금짐이 쌓여 있었고 집 왼편의 창고에만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즉 여각은 명목에 지나지

않아서 귀중한 당화나 박래품은 감추어져 있는 셈이었다. 가끔씩 종루나 배오개의 믿을

만한 박물 거간이 오면 시세에 따라 조금 내어주는 것이었다.

"여보, 거사님 오셨어요."

묘옥이가 사랑 앞에 가서 일러주자 이경순은 미닫이를 열며 밖을 내다보았다.

"허허, 오래 살자니 개골산 신선을 만난다고 고서방이 우리 집에 올때가 다 있군."

"평안하셨습니까. 한번 온다온다 하면서도 벌써 삼 년이 지났소이다."

달근이도 서슴없이 일가 친척 집에라도 온 듯이 사랑에 들어가 앉았고, 잠시 후에 소식을

들은 전생이도 와서 얼굴을 비쳤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솔부리 동무들 모두 잘 있겠지요?"

"그래 그래, 흉황에 굶지 않고들 그럭저럭 살아간다네."

전생이가 물러가고 이경순이 말하였다.

"자네를 보니 남의 일 같지 않구먼."

"뭐가요?"

이경순은 접대용의 곰방대를 내주며 씁쓸하게 말하였다.

"자네두 제법 늙었네그려. 백발이 많이 늘었는걸."

"하하하 저야 새치고, 도장 성님이 늙었소."

"뭐 같은 오십줄에...헌데 자네 장가들었다면서?"

고달근이는 쑥스러운지 코를 만지작거렸다.

"공연히 케케묵은 얘길 꺼내서 날 골탕 먹이시려우? 이 나이에 장가가 아니라 그냥 오다

가다 만나서 등 대고 사는 겁지요."

그러나 이경순은 놀리는 투가 아니었다.

"잘했네. 그렇게 한가지씩 자리를 잡아가야지. 하루를 살다 가더라두 남들처럼 일가를 이

루어 살아봐야지. 어떻든가, 가장 노릇 하기가 쉽지는 않지?"

"글세 아직 잘 모르겠수. 전생이도 그렇고 이제는 저 장쇠 녀석두 장가 보낼 때가 지났

지요?" 이경순은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일세. 장쇠는 아직 여유가 있다 하나, 전생이는 낼모레 마흔줄일세. 솔가하여 내

곁에 살더라도 장가는 가야 할 터인데..."

방문이 열리면서 묘옥이가 개다리소반에 북어 찢은 것이며 장국에 탁주를 걸러서 얹어 들

려왔다. "화주는 아니지만 맛 좀 보십시오. 객점에서는 팔지 않지요."

묘옥이 말하였고 달근이는 먼저 이경순에게 한잔 쳐주었다.

"아따, 지금이 어느 세월이라구 그런 말씀이우, 팔도 주막에 술 떨어진 지 오래요. 사대부

가에서도 화주는 못 쓰게 되어 있으니 이나마 탁주 맛도 오랜만에 보는 겁니다."

"고거사...이제 다 늙마에야 자네가 발붙이고 사는 꼴을 보는구먼."

"허허, 제가 모가비 시절에 사당 아이들 여럿 길러냈지요. 지금 어디서 다들 무엇하고 사

는지. 길에다 묻어준 것들도 있구, 아기를 받아낸 것두 있습죠. 아마 다 늙었겠지. 내가 일가

를 이루어 살아보니 새삼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백선이 소화 그리구 홍련이.."

묘옥이가 잔기침을 하고 나서 말하였다.

"그만두셔요. 다 지난 일인데." "아니우. 내가 여문이 엄마 여기 있다구 하는 말이 아닙니

다. 고생은 많이 겪었으나 안성 청룡사 시절에는 그래두 떠들썩하구 사는 재미가 있었지요.

박거사두 지금 포천에 자리를 잡았지만 홍련이 얘기만 나오면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립

니다." "박거사 죄가 많아요." 묘옥이가 말하였다. 경순이 술잔을 내려놓더니 묘옥에게 말하

였다. "당신은 나가보오." 묘옥이 나간 뒤에 이경순은 달근에게 물었다.

"자아, 이제 옛말은 그만두고...자네가 내 집에 그냥 마실 온 것은 아닐 테지. 무슨 일이

있는가?"

"예...제가 그만 옛적 생각이 나서...실은 도장 성님께서 꼭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제

모서방네 서강 여각에 들러서 이리루 오는 길입니다만, 성님두 계원이셨지요?"

이경순은 긴장하여 잔주름 많은 긴 눈꼬리를 빳빳하게 곤두세웠다.

"그래서..."

"사실 모서방이나 도장 성님이나 그리구 저나 죽은 동무들께 빚이 많습니다. 우리는 동무

들이 입을 다물어주었기 때문에 지금 이같이 편안한 여염 살림을 살 수 있습지요. 이 댁의

전생이도 잘 알겠지만 산지니가 종루저자에서 참수당하는 것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

니다."

"그것두 옛날이네. 산지니뿐이 아니야. 아내와 나는 여환당의 죽음 때문에 한 달포 가까이

밥이 넘어가지 않데. 급히 송도 박좌장께로 난을 피하여 의탁했으니 다행히 아무 일이 없

었던 게야."

"그러니까...그들의 포한을 풀어주고 저승에서나마 원이 없도록 우리가 남은 뜻을 실행해야

안 되겠습니까?"

"암 그래야지. 자네는 아직 모르는 일이 많겠으나...매달 초에 해서에서 장두령이 보낸 사

람들이 상고를 짜서 한양 출입도 하고 송도에도 들른다네. 우리 여각에서 꼭 묵어 가지."

"아직도 풀뭇간은 여전하겠지요?"

"눈코 뜰 새가 없지."

"화승총을 내십니까?"

"많이는 못 내지만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 가마가 두 구멍이고, 쇠두 요새는 합금술이 청

국서 많이 들어와서 가볍고 단단한 걸 제련할 수 있다네. 장두령의 독촉이 닫는 말에 채찍

질하기라 전생이는 노상 가마 곁에 붙어 살지."

"제가 여기 온 것은 도장 성님께 뭘 좀 만들어달라구..."

"총포는 안되네. 그 일은 장두령의 것 외에는 내지 않을 작정일세. 자네들 솔부리 식구들

이야 총포를 쓸 일이 없을 게야. 근기 일대에서야 아무리 작당한다 할지라도 창과 환도 몇

자루면 능히 군졸들을 제압할 수 있지 않은가."

고달근이는 모신에게 들이댔던 그대로 이야기의 틀을 잡아나갔다.

"제가 원하는 것은 사주전이올시다."

"사주전?"

이경순은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장두령네 총포를 내지 않는다면 또 모르거니와 사주전은 절대루 안되네. 돈 몇푼으로

큰 일을 망칠 수는 없네."

"저두 이번에 관북 원산포에 들렀다가 고원까지 가서 장두령을 봐었소. 우리가 중도아로 밥

을 먹지마는 아까두 말씀드렀듯이 예전 먼저 죽은 동무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합니다. 제가

돈을 만들어서 보내면 관북에서 펼치는 일들이 훨씬 수월할 겝니다. 조세의 대봉도 그렇고,

군량과 군기도 준비를 해야지요. 저는 거기서 나오는 약간의 이를 헐어서 모서방과 함께

검계를 예전보다 더 강고하게 되살려놓을 작정이우."

"장두령이 그렇게 당부하던가?"

"예, 제게 그런 풀뭇간을 찾아보라 일렀으나 맞춤한 곳이 성님네 집 말고 어디 있겠습니까.

쇠와 유기는 제가 물량이 달리지 않도록 충분히 대어드리지요."

"얼마나 필요한가..."

"글쎄요, 한 만 냥어치는 되어야겠지요."

"전생이와 의논해보겠네. 그리고...신탄값이나 대게. 나는 별루 이를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닙니다. 성님두 맨입으로 숙수 조역들 뒤나 대어줄 수는 없겠지요. 제가 약간의 곡물로

대납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고마울 데가 없겠구먼."

달근이 정작 사주전에 착수하여 돈이 나오고 그것으로 경강서 삼남의 양곡을 그러모아서

철원까지 운송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나 지나서였다. 신미년이 저물 무렵에는

고달근은 이미 북포와 북어로 그리고 주전의 이익으로 큰돈을 벌었다.

철원의 고달근에 창고에는 매점한 어물과 포물과 곡물이 그득히 쌓여 포천을 경유한 난전

꾼들이 줄지어 드나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으면 입도 많은 법이고 귀도 여럿이게 마련이

었다. 무진년에 오계준과 원향이가 함께 짜두었던 해서 무계의 계원들 가운데 해주 사는 차

박수와 재령의 조박수와 서흥 무계원 등이 잡혔는데, 그들은 한양이 장차 망하고 존읍이 흥

한다거나 정진인이 해도 가운데서 나타난다는 등의 변설을 퍼뜨린 죄로 참수당하였다.

그러한 흉언 흉서는 무진년 이래로 널리 퍼져서 이미 일반 백성들도 잘 아는 이야기들이

었다. 그것은 일찍이 미륵도나 검계의 신서로 은밀하게 읽히고 복사되던 것이다. 그들을 심

문할 때 해서에는 아직도 장길산의 도당들이 곳곳에 퍼져 있다는 소문이 재삼 확인되었다.

포청에서도 어렴풋이 그들과 같은 수상한 호적 누락자들이 산간에서 잠채하여 판철역포한다

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던 것이다.

조정은 그 즈음에 내외가 동요하고 있었다. 기사년에 정국이 바뀌고나서 한 해도 풍년 든

해가 없었고, 청국에서는 내란이 일어나 총포를 수천자루나 조공으로 바치라 하였으며 조

정에서도 그 여파를 두려워하여 강화도의 축성을 서둘렀다. 또한 청에 갔던 사신이 돌아와

저들의 동향을 아뢰었다.

장차 저들이 호화의 명을 가탁하여 이자를 보내왔는데 이르기를 장차 오사를 파견하여 의

주로부터 아경을 지나 백두산을 가서 보고 그려 오는데, 우리나라의 지형을 잘 아는 지방민

으로 그 길을 인도하게 할 것이며 반드시 정월 전에 회자하라는 것입니다. 혹 이르기를 일

통지를 만드는데 산천 형세를 두루 살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뜻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조정에서는 그런 설에 충격을 받고 난리가 일어나면 임금이 있을 곳을 삼고자 북한산성을

개축하려 하였다. 왕이 이를 묘당에 이르니 인심이 크게 소란해지고 소문은 흉흉하여 대

번에 날 리가 나는 듯 하였다. 임신 정월에 숙종은 비망기를 내렸다.

나라 습속이 가볍고 민지가 굳세지 못하여 한번 허튼 말을 들으면 문득 들뜨게 되며, 서

울의 사대부가 헛소문에 움직여서 모두 집안 식구들을 몰고 햐향하는 자들로 길이 메워지고

이로써 시골 마을도 소연해졌다 하니, 무식한 우민은 깊이 죄줄 필요가 없으나 사대부의

몸으로 분수를 아는 자들이 마땅히 효유하여 진정시키는데 겨를이 없어야 하거늘, 움직여서

안될 소문에 움직여서 먼저 각자의 보신할 생각만 하니 만약 난리가 있게 되면 어찌 그런

자들이 임금을 위하여 앞장서게 됨을 바랄 수 있으리요.

그렇게 하여 서둘게 된 강화도 성역은 오월에 가서야 완공을 보게 되었고, 남의 오랑캐와

서북에 유경하니 어찌 무기를 게을리할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임금은 습련 열병에도 몸소

나서서 한강 백사지에서의 습진을 지켜보곤 하였다. 장길산 일당들에 대한 의논이 시작되

었던 것은 대략 팔월에서 구월로 접어드는 가을 무렵이었다.

좌포청의 기찰에 의하면 그 무렵에 사주전의 횡행이 부쩍 늘어나 전천의 폐단이 자심해지고

있는데, 이는 유기장이가 많이 살고있는 안성 등지와 근기 일대의 쇠가 나오는 곳을 은밀

히 내사하여야 된다는 공론이 돌았던 것이다.

좌포청 포도부장 박완식은 예전에 등산곶 만호로서 해서 관찰사 신엽의 부름을 받아 구월산

토포에 나섰던 전종사관 최형기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장교였다. 그는 우포청의 보장 백섭

과 더불어 구월산 기찰조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던 것이다. 박원식이가 포졸 두 사람

을 데리고 안성에 내려간 것은 우선 소소한 사전꾼들을 잡아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진전과 거의 다름없는 막대한 사전이 나오는가 그 원류를 파내려는 것이

었다. 선혜청 한 곳의 주전도 한 해에 이만 냥이 될까말까 한 형편이었는데 한양 인근의 난

전과 경강에서 지방으로 풀려나간 돈은 그 몇배나 되는 것처럼 보였다. 나라에서는 전문의

가치와 품위를 지키기 위하여 돈의 배자를 바꾼 지 겨우 일 년이었다. 종전에는 전문배자는

상단에 주전아문의 명칭 한 자를 새기고 아래편에 중량을 표시하는 숫자를 새겼으나 상단

배자는 그대로 두고 하단의 숫자를 없애고 그 대신에 주전야소의 자호를 새기기로 되었

었다. 주전야소는 천자문의 차례로 천지현황 등의 자호를 붙여서 가령 선혜청의 야소가 서

른 군데이면 천자문 서른 자를 각 야소에 배정하여 붙이고, 선혜청은 자호별로 각 야소의

장인 성명을 열서하여 성책으로 보관하게 되었다. 따라서 전문의 상단 배자를 보면 어떤 아

문의 어떤 풀뭇간의 주조인가 알게 되었고 또 장인성책을 보면 어떤 장인이 주조하였는가도

알게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과 각 아문의 주전을 삭수와 노수를 제한하여 시행

하였으므로 사주전의 탐지는 보다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임신년 초부터 정교한 사주

전이 한양 성내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거의 진전과 다름없었다. 다만 그 달에 주조하지

않거나 폐해버린 곳의 배자가 찍혀 있어 조회 결과, 장인성책에서 짚어낸 풀뭇간의 장인은

자기의 것이 아님을 밝혔던 것이다.

박완식에게 기찰의 명이 떨어졌고, 그는 배자를 바꾸지 않은 같은 종류의 사주전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송파라는 설도 있었고 경강이라고도 하였으며 송우점

이라거니 배오개라거니 소문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막연하게 동철이 모이던 곳은 유

기로 알려진 안성이었고 유기의 생산은 주전 이래로 금지되었다고는 하나, 부잣집이나 사대

부가에서 뒤로 맞추어 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므로 안성으로 짚어 내려온 것이었다.

박완식은 주인가를 정하고 포졸을 시켜 장거리로 나다니면서 유기가 어찌 새어나가는가를

살피게 하거나 전에 동철을 무역하던 상인들의 뒤를 캐었으나, 워낙에 금령 무서운 줄을

알아서 좀처럼 고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한 보름이나 지나서 박완식은 실로 귀중한 밀보에

접하였다. 송파에 옛적 유기를 그러모으는 객점이 있다는데 그곳에서는 기맹과 농기구를

만든다며 쇠까지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박완식은 소문을 듣자마자 송파로 옮겨 갔고,

까마귀네 객점을 쉽게 찍어낼 수가 있었다. 박완식은 까마귀네 객점이 마주 바라보이는 곳

에다 거처를 정해두고 참빗이며 부채며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목판에 담아 장거리에 나가

좌고 시늉을 하며 기찰하였다. 그는 물론 까마귀네 집이 중간에 물량을 모아두는 가주접주

인에 지나지 않으며 정범이나 지정매사자를 잡아야 뿌리를 캐게 되리라 생각하였다.

어느날 박완식은 아이들을 행상에 내보내고 늦잠을 자고 있었다. 전날밤에 화초방에서 장

사치들과 주사위를 노느라고 새벽녘에야 돌아왔던 탓이었다. 그는 종종 화초방에서 여러 가

흘러나오는 소문들을 얻어 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수년 전에 이곳에서 검계의 흉적들이

날뛰었다는 얘기도 들었으며 산지니라는 자에 대하여도 화초방의 주인에게서 자세히 들었

다. 박완식은 검계의 잔당들과 사주전이 무슨 관계가 있으리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던 터

였다.

"부장, 얼른 나와보십시오."

부하가 방안에 뛰어들어와 박완식을 흔들어 깨웠고 그는 펀뜻 눈을 떴다.

"까마귀라는 자의 객점에 짐이 들어가는 중입니다."

"어디서 오더냐?"

"물론 나루터에서지요. 거기 지금 배가 대어져 있습니다."

박완식은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까마귀네 객점 앞에 수레가 대어져 있었고, 차인 둘과

까마귀와 중노미까지 달려들어 섬으로 싼 육중한 것을 내려서 안으로 운반하는 중이었다.

박완식이 포졸에게 말하였다.

"너는 슬그머니 끼여서 짐짓 거들어주어보아라."

박완식은 그 길로 바삐 송파나루터로 달렸다. 저들이 되돌아오기 전에 사공에게 말을 시

켜볼 작정이던 것이다.

박포교는 송파나루로 달려갔고, 까마귀네 객점의 곁꾼이 사공과 더불어 섬을 뭍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쉽게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서 나루터의 길을 따라

좌우로 늘어선 들병이들 앞에 가서 멍석자리 위에 끼여 앉았다.

"뭘 드실라우?"

떡이며 팥죽이며를 팔고 있던 아낙네가 물었다.

"내 잠깐 누굴 기다리는데 다리쉬임 좀 하려고 그러우. 중화는 이미 먹어놔서..."

박포교의 말에 아낙네가 다시 나직하게 말하였다.

"탁주가 있는데 한잔 안하시려우."

벌써 저자에서의 주류판매가 범금된 지 세 해가 넘었던 것이다. 세상에서는 기사년 남인

집병 이래로 술지게미 바닥난 지가 석삼 년이라는 농이 오고갔다. 삼남에 유민이 창궐하고

지난 신미 가을에야 겨우 미곡이 나돌기 시작하였으나 새해 경오에 접어들어서도 삼 년 동

안의 흉황의 여파는 가시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박포교가 성내 기찰 같았으면 대번에 포졸

들 시켜서 잡아 형장이라도 때렸을 것이로되, 모른척하며 말하였다.

"허어, 과연 듣던 대로 송파가 으뜸이로구먼. 시방 종루시전에서도 썩은 물 없어진 지 오래

거늘."아낙네는 한술 더 뜨는 것이었다.

"밥은 바빠서 못 먹어도 술은 술술 넘어간답디다. 조밥 피밥이야 목구멍에 걸리지만 이것이

야 탈탈 털어 넣으면 대번에 아수라 천지가 서방 정토가 안 됩니까.""에라, 한잔 주오."

아낙네가 얼른 좌우를 살피더니 좌판 아래에서 통통한 귀때벙을 꺼네어 한 잔을 쳐주었

다. 안주는 따로 없이 퍼런 배추절이 몇가닥이다. 박완식이 수염을 소매로 닦고 앉았는데 까

마귀 등과 곁꾼이 지낙갔고 손수레에 섬을 싣고는 다시 지나갔다. 틈을 놓칠세라 얼른 나루

터에 내려가니 눈여겨두었던 사공은 배를 뭍에다 바짝 끌어올리고 노를 뽑아두고 모래 위에

박아 움직이지 않도록 해두는 참이었다. 박포교는 뒷짐을 지고 섰다가 한마디 던져보았다.

"이 배 올라가지 않을 거요?"

"경강 배가 아니외다."

강의 상하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산 삼개 마포 동막 서강 등지가 선상들의 중심지라

모두들 그곳에 이르는 것을 오른다 함이었다. 포교가 얼른 제 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한마디 더 하였다.

"내가 실언하였소. 실을 여주로 내갈 물건이 있는데...""글쎄요. 오늘 해거름에나 내려갈 작정

이우. 뭘 실을 거요?""미역과 북어요."

"물건이 좋군. 내 배가 여주 배요."

박완식은 여주 사공과 나란히 저자로 오르다가 아까 앉았던 들병이 좌판 앞에 다시 이르

렀다.

"예서 잠깐 나허구 얘기 좀 하구 갑시다."

사공은 그이 아래위를 다시 훑어보더니,"물건이 얼마가 되었든 한 재 값이우. 그건 고치지

못하니 알아서 하슈."하고 잘라 말하였다.

"자아, 나두 여주 이천 안성 등지에 주인가가 있는 사람이우. 여태껏 도사공으루 정해두었던

이가 노를 놓고 동막에 주저앉는 바람에 새 사공을 찾던 중이외다." 사공은 박포교를 따라

서 엉거주춤 앉았다. 박포교가 아낙네에게 술 두 잔을 시켰는데 사공은 저자 술을 많이 먹

었던지 상을 찡그렸다.

"이건 술이 아니라 아예 초가다 되었군. 아무리 세월이 깍정이 같다지만 쉰 술을 판단 말

요."

"흥, 송파 윗머리 장이니까 썩은 물이 있지, 조선 팔도를 다 찾아봐요."사공은 입맛을 다셨

다.

"모르는 말 하지 마우. 도깨비탕은 원래가 경강서 멀수록 진국이 나오는 법이우. 이천 밀주

도가 가보아. 게서는 지금 팔팔 뛰는 화주가 오뉴월 냉천에 샘 솟듯이 나온다오."박완식이

두 사람의 술타령이 오래되려는 것을 자르고 다시 말을 꺼냈다.

"한 배에 얼마나 받으려오?"

"글쎄요, 내 배는 한 달로 계산을 합니다. 세 번씩 열흘마다 내왕을 하는데 미곡과 포만 받

습니다."

"포목과 곡식은 관부에서도 전문대봉을 시행하구 있는데 어찌 댁네는 돈을 받지 않는게요?"

박포교가 물으니 사공은 코방귀를 힝하니 날리는 것이었다.

"지금 전가가 날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겨울이 오면 곡가와 포가는 천장부지로 솟고

돈은 천해질 게요. 나두 물정은 훤히 아는 사람이우. 주인께서도 화물의 값은 반드시 곡식이

나 면포로 받아두시우."

"그건 무슨 이유요?"

사공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내 다 아는 바가 있어서 하는 말이외다."

"그럼 한 배의 선가는 얼마요?"

"쌀로 하여 닷 말, 포로는 반 필, 돈으로는 석 냥을 쳐주시우. 왕복 일 때에 그러하니 그냥

한번 갈 제에는 그 반으로 줄게 되지요."

"예끼, 여보슈. 흉황의 시세라 하여도 포목 한 필 값이 한 냥 반인터에 그 반을 내라면서 돈

으로 석 냥은 또 무슨 말이우. 흥정이 아니로군."

"내 이르는 대로 하시우. 멀지 않아 돈가치가 형편없게 될 터이니... 내가 몇마디 일러주면

주인은 내게 큰 술 한턱 내게 되리다."

"그게 무슨 말이우?"

사공은 더 이상 얘기를 계속하지 않고서 박포교에게 말하였다.

"나중에 내가 찬찬히 일러줄 테요, 좌우지간 배를 쓰겠소 말겠소."박포교는 어른 대답하였

다.

"까짓 거... 한 달에 세 번 왕래하는 것으로 쳐서 면포 세 필을 내겠수."사공은 만족했는지

검은 얼굴을 일그리며 웃었고 박포교가 그에다 더 보탰다.

"내가 주로 해물과 어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콩과 잡곡 등속을 강원도에서 내올 터이

니 그때마다 현물로 지불하고 또한 인정으로 한 달에 열 냥을 얹어 주리다. 도사공이 그쪽

물주가 되어 모아두었다가 내가 가면 실어주오. 구전으로 그만하면 되겠소?""거 시원시원하

기가 자못 대인이시오. 이래야 나두 주인을 정할 맛이 나지요. 아무튼 나와 잘 만났소."

사공은 박포교의 가슴을 탁 치면서 너스레를 떨었으며 박완식은 서둘러 일어나며 말하였

다.

"자아, 말 나온 김에 뚝딱 해치웁시다. 날 따라오시오. 뱃삯을 내리다."사공은 어리벙벙한 몰

골이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자신만만한 자세로 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이쪽 물정을 훤히 꿰고 계시우."

사공이 보기에 주인을 자청한 자는 반들거리는 얼굴이며 만만찮은 눈꼬리로는 제법 한양

시전바닥에서 갖은 먼지 뒤집어쓰고 굴러먹은양이었으나, 겉보기와는 달리 장사에는 영 쑥

맥인 모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원래가 배를 세내는 자들은 먼저 물건을 남기거나 지불을

뒤로 미루어 이쪽의 덜미를 쥐거나, 아니면 어음으로 떼어서 잘해야 두어 달 만에 그것도

절반쯤만 갚아나가게 마련이었다. 녀석이 제 쪽에서 설쳐다는 꼴이 이쪽의 입장에서 보면

꼭 길쌈도 잘하는 첩이 아닌 가.

"저어가 내가 정한 사처에 가서 슬슬 계산도 하고 술도 한잔 먹읍시다." 박완식은 사공을

꼬드겨서 까마귀네 건너편의 객점으로 데리고 가는데 혹시나 그집 곁꾼들이나 까마귀와 마

주칠까봐 샛길로 빙 돌아서 골목으로 하여 객점에 이르렀다. 그는 방문을 열면서 포졸에게

호기있게 일러두었다.

"그 짐 속에 포목을 꺼내어오너라. 면포 세 필이니라.""예에?"

영문을 알 이 없는 포졸이 입을 딱 벌렸다.

"돈은 있으나 포목은 귀하기가 거북털에 토끼뿔이우."

"그래 이번 장삿길에는 돈 가지구 나왔다가 낭패 보는구나. 돈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도사공

을 잡았으니 나가서 포물로 바꿔오너라."

포졸이 나간 뒤에 박포교는 다시 집주인에게 일러 점심상과 귀한 화주 들이라 하여, 도사

공에게 술잔을 연신 쳐주었다. 도사공은 한껏 기분이 올라서 허풍을 떨기 시작하였다.

"내가 남한강 아랫녘에서 비린내나 맡고 사는 처지요만, 이래봬두 경강 선상들보다 벌이가

낫지요. 내가 싣고 오는 것이 사실은 쇠요 쇠. 그뿐이우? 안성서 모아오는 유기도 싣고 오

지요."

"허어, 안성 유기야 맞춤 아니오? 그것을 매점할 수도 없을 테고.""이런 답답하기는, 주인께

서 잘 알아두시우. 내가 아까 말을 하려다가 꿀꺽 삼켰지만 시방 팔도 곳곳에서 돈이 나

오고 있수."

박포교는 일부러 딴청을 부렸다.

"그야 각 군영 아문마다 풀뭇간이 있겠지요."

"압다, 또 먼산 보기는... 사전 말이우. 돈을 부어낸다 그거요.""가만있자, 쇠와 유기라면 거

돈이 되겠구먼. 많이 남겠어. 그 참이고 크겠는걸." 하다가 박포교는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

늉을 하면서 말하였다.

"와주는 물론 종범까지 이렇게 되고, 집을 내준 자나 정을 알고도 발고하지 않은 자도 유배

형이 아니우."

"지금 사방에 나도는 것이 사주전이거늘 어느 야소에서 나온 것인지 누가 알겠소? 또 눈치

를 보니까, 그 돈을 한양 인근에서 쓰는 게 아니라 지방 화주들에게 지불하는 모양입디다.

큰 놈 작은 놈 얽은 놈반반한 놈 하드키 몰골이 있는 사람두 아니요, 맨 상평통보에 그게

그놈으로 콱 찍어 내놓은 쇠를 언놈이 잡아내겠소?"

박완식은 이제는 꼬리가 보였다 싶어서 막무가내로 잡아당기기 시작하였다.

"도사공, 나두 강화에 여각 있고 교하에도 전답이 있소이다. 밥술깨나 먹을 만하지요. 도사

공와 내가 손을 잡아 그 쇠와 유기를 모아서 해물을 구해오면 한양서는 포물과 곡물로 팔아

서 이를 볼 수가 있겠소. 해물이라면 강화뿐 아니라 남양과 당진에도 선주들과 내가 신용이

있지요. 어떠우? 그 쇠와 유기를 내 몫으로도 챙겨주오. 반반씩 어떻겠소?""글세... 쇠만 구

한다구 되는 것이 아니라오."

사공의 말에 박완식은 귀가 번쩍하였으나 일부러 틈을 두었다.

"풀뭇간이야 쇠 다루는 데가 한두 군데요?"

"허허 모르시는 말씀이우. 쟁인 솜씨가 아무데나 같은 줄 아시우. 내가 듣기로는 쇠와 동철

도 중요하지만 풀뭇간이 기중 중요하다구 그럽디다. 누가 보더라도 관문의 돈이라야 값을

쳐주는 게요."

"그러면 그런 풀뭇간도 아시우?"

방문이 열리며 포졸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이고, 포목값이 어찌나 비싼지 겨우 구해왔습니다. 자아, 세 필이오.""그래 수고하였다."

하고는 박완식이 면포를 휙 펼쳐보고 나서 사공에게 내주었다.

"상목이로군. 옜소."

사공은 얼른 둘둘 말아서 제 옆에사 챙겨두었고, 박완식이 말하였다.

"흥정은 빠를수록 좋고, 신용은 길수록 좋다구 합디다. 도사공과 내가 손발을 맞추어 한

가락이 되었으니 그 풀뭇간 정하는 일부터 끝냅시다."

도사공이 겪다 보니 녀석의 하는 일이 시퍼런 작두로 수수깡 자르듯 데꺽뚝딱 하는 것과

덤벙대는 꼴이 굿발 만난 처녀 무당 격이었다. 이제는 상목도 세 필이나 받아놓았겠다, 매달

에 열 냥씩을 구전으로 주겠다 하였고 이에 돈까지 만들어 함께 나누자 하였으니, 쇠와 유

기를 기왕에 실어내는 중 잠깐씩 덜어내었다가 이쪽으로 돌릴 만한 일이었다. 사주전이 칼

물고 뜀 뛰는 일이라 하나, 물량을 대어주고 풀뭇간을 알려주면 저희끼리 할 일이요, 사공

쪽에서야 별 위험이 없을 듯하였다. 그는 까마귀네 곁꾼들과 횡성 금굴이에서 나오는 번수

만을 알뿐이었으나 물주가 철원 산다는 것은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다. 풀뭇간이 어디에 있

는가는 그쪽에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알아내기로 작심하면 쉽게 해낼

것 같았다.

"풀뭇간은 내가 잘 아오. 철원에 있다구 그럽디다."

사공이 자신있게 얘기를 꺼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완신은 픽 웃고 나서 포졸을 돌

아다보았다.

"이놈 모양을 내어라."

포졸이 휙 일어나 허리춤에서 주홍빛 오라를 꺼낼 때까지 사공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

였다. 포졸이 그의 팔을 뒤로 꺽자, 그제서야 그는 일어나려고 힘을 쓰며 외쳤다.

"아, 왜 이러는 거요."

"잔소리 말아."

사공은 뿌리치며 일어나려는 것을 박완식은 주먹을 고권으로 뭉쳐서 그의 관자놀이계를

질러주었다. 사공이 눈앞이 아찔하여 맥없이 푹 쓰러지자 박완식은 그이 상투를 잡아서 일

으켰고, 포졸이 어른 오라를 지웠다. 사공의 상투를 놓으니 그는 그대로 팔을 뒤로 돌린 채

옆으로 넘어졋다.

"어찌할까요?"

"그냥 두었다가 어두워지면 섬에 싸서 배에 싣고 삼개로 올라간다.""도적들이 먼저 알면 어

쩝니까?"

"괜찮다. 사공이 쇠를 실어오는 날짜는 아직 멀었으니까 그전에 모조리 잡을 수가 있겠지.

저 자를 문초하여 풀뭇간을 덮치는 게야."

박완식은 여주 사공을 잡아서 좌포청으로 은밀히 압송하였고, 까마귀네 객점은 포졸들을

시켜서 계속 정탐 기찰하게 하였다. 포청에 압송된 사공은 그의 장담과는 달리 시주전을 하

고 있는 장소를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다만, 쇠와 유철의 물주가 철원 사람이란 것이며 그

가 송파에 와서 물건을 거두어간다는 얘기만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쇠는 횡성에서 사온다는

데 철광에서 나온 번수가 직접 여주에까지 수레로 운반해온다는 것이었다. 횡성이나 송파를

쑤신다면 철원 물주를 체포하는 것은 용이한 일어었다. 그러나 잘못 건드렸다가 저쪽에서

관의 움직임을 알고 미리 방비하거나 달아나게 되면 안되는 일이라, 우선은사공의 다음 운

반이 있기 전에 송파와 횡성에 포교를 보내어 살피게하였다.

송파에서 밀보가 들어오는데 까마귀는 일찍이 갑자년 검계 난리 때에 수괴로 잡혀 죽은

산지니의 동무였고, 미륵도를 숭신한 형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검계 살주계의 흉모는 좌포처

의 기민한 기찰과 활약으로 타진된 바 있었고, 이는 좌포청의 자랑거리가 되어왔다. 무진년

에 여환의 난리 때에도 의금부에서는 좌포청의 장계와 밀보에 힘입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

니었다. 좌포청에서는 검계와 살주계가 그 움직임의 근저에 미륵도를 받들고 있음을 눈치채

고 있었다. 연전의 해서 무계가 잡혀 올라왔을 적에도 그들은 정진인과 미륵의 설을 자백하

였다. 좌포청 대장 신여철은 검계와 살주계를 토포할 때 공을 세웠고 이런 류의 기찰에는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는 최형기의 도움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최형기는 병인년 겨울의 구월산 토포 이후로 이듬해까지 해서에 머물렀다가 정묘년 말에

황해도 관찰사로 신엽이 갈리고 김구가 부임할 때 옷 벗고 군문을 떠났었다. 그에게 무장으

로 출세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고, 기사환국 때에 그이 전정을 막고 있던 광남군 김익훈

도 장항에 죽엇다. 그러나 정국은 바뀌었어도 미미한 무관에 지나지 않던 최형기를 기억하

는 벼슬아치는 한 사람도 없었다. 장길산에 관한 소문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뒤늦세야 그를

토포하려고 구월산을 에워쌌던 감사 신엽과 토포장 최형기의 일들이 포청 무관들 사이에 오

고갔을 뿐이었다. 이제 사주저의 와주를 찾아내려는 즈음에 송파 기찰의 옛적 검계에 관한

밀보는 새삼 그의 이름을 들먹이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형기는 아직도 배오개에 살고 있었다. 그는 갑자년 이래로 포청을 물러나와 다시 잠깐

황해도 관찰사 신엽의 막하에 머물렀던 기간을 빼고는 종루 배오개의 점포에서 당화를 거간

해주거나 직접 의주로부터 박물을 빼어다가 많은 돈을 벌었다. 그 즈음에는 최형기는 아예

벼슬길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박완식이 최형기를 찾아간 것은 좌포청의 결정은 아니었다. 다만 신영철 대장이 갑자년의

거몌 살주계 난리 적에 다루었던 전례를 상고하기를 명하고, 최형기의 유능함을 지적했을

때에 박포교는 그의 도움이필요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박완식은 최형기의 직속 부하 장교였

으며 때때로 그이 가가로 찾아가 시정 얘기도 나누고 점심도 함께 먹고 하던 것이다. 박완

식이 최형기를 만난 것은 거의 일 년 가까이 되고 있었다. 박포교가 꺼린 것이 아니라 최형

기 쪽에서 은근히 그이 출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최형기는 포도청이라든가 무

관들의 기억에서 자신이 말짱하게 잊혀지기를 원하였다. 그것은 갑자년에 상관들이 당색으

로 하여 피혐의 해를 입어 옷을 벗었던 일이며, 해서의 토포 뒤에 가서야 자신이 신엽의 일

시적인 이용을 당했던 사실을 알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최형기는 다만 한가지 포한이 가슴

에 깊이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장길산을 체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구월산 아랫

녘에서 길산의 부하에 지나지 않았던 마감동과 겨루었던 한판 승부를 못내 잊을 수가 없었

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자신의 환로가 계속도지 못할 것을 깨달았고, 포도관으

로서 팔도에 낭자한 소문을 남기고 있는 장길산을 체포하지 못하였다는 자책이 가시지를 않

았던 것이다.

박완식이 최형기를 찾아갔을 때는 그는 여느 때처럼 한량들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가게

는 전보다 더욱 늘었고 삼종이를 비롯한 차인들도다섯이나 되었다. 최형기는 시정의 중인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특히 역관들은 그를 신뢰하여 모든 청국 물화는

그에 게 거간을 당부하는 형편이었다.

"만호 계시오?"

박완식이 가게로 들어서니 최형기가 심드렁하게 내다보았다.

"자네가 웬일인가? 우리 점포에 무슨 범금된 물건이라두 있든가.""어이구 별말씀 다 하십니

다. 제가 이 댁에 오며 가며 들른 것이 한 두 해가 아니옵고, 제딴에는 기간 발길이 뜸하여

사과차 오는 길이어늘 문턱을 밟기도 전에 내치려 하십니까?"최형기는 날카로운 눈으로 박

완식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신대장 여전한신가?"

"예, 실은 저 혼자 그냥 뵈러 온 것입니다.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점심이나 내시지요.""허허,

그냥 연유없이 점심 대접을 받으면 바로 그게 민폐가 되네. 부장포교가 남의 장사하는 집

에 와서 점심을 내라 하면 내가 무슨 구린 거래라두 저지른 줄 알겠는걸.""아따, 그러면 내

기 바둑이 어떠나요. 한판 두십시다."그러나 최형기는 삼종이를 불렀다.

"이거 너무 인색하단 소리를 듣겠군. 내가 박포교와 밥 먹으러 갈 터이니 집에 알리고 오너

라."

누렁다리 못미처서 있던 최형기네 집은 그전의 기와집 자리에다 다시 다른 두 채를 사들여

헐고 그곳에 너근 창고를 지었고, 사랑채를 따로 두었다. 가게는 삼종이가 아예 머무르며 운

영하였고 최형기네 집에는 노비들도 셋이나 불어났다. 그가 무반으로 출세를 못하였다 할지

라도 한양 사람으로서는 살림도 남부럽지 않은 셈이었고, 배오개 최만호라고 제법 사대부가

의 권속들도 드나들었다. 하기는 당화의 매매를 위하여 드나드는 것이었지만 다른 장사치들

로서는 어림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아, 집에 가세. 오랜만에 우리 집 계당주도 한잔 하고." 최형기는 박포교를 데리고 아예

집으로 들어갔다. 이인하가 내쳐지고 신여철이 비록 남인의 눈치를 보며 붙어 있으되 좌상

목래선으로부터는 신임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잘 아는 최형기였다. 아니 그런 모든 형편을

떠나서 박완식은 그가 가장 믿어오던 오른팔의 포도부장이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사랑에

들어가 앉자 최형기는 은근하게 물었다.

"요즈음 무슨 일을 하구 다니나?"

"사주전 기찰로 바빴습니다."

"나두 들었네."

최형기는 저자에 나와 앉아 있으되 포청의 돌아가는 사정에 관하여는 누구보다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오히려 포도청 쪽보다도 그는 한 양 저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훤히 알고 지냈다.

"사주전이라면 강변에 나가보아야 할 걸세. 도성 안에서야 빤하니까.""실은 그 일 때문에 의

논드릴 겸 하여 찾아뵈었습니다.""신대장께서 이르시던가...'

찾아가라 이르신 적은 없으나, 예전에 갑자년 난민 다스릴 적의 일을 상고하여 주도면밀

히 기찰하라 하였습니다. 제가 혼자서 찾아뵙기로 정하고 그동안 적조하였삽기에 그냥 만호

와 정담이라도 나누려고 왔지요."

최형기는 고재를 끄덕였다.

"갑자년 난리라면 검계 얘기가 아닌가? 그 일은 개게 묻지 말게.""만호께서 그 일을 책임지

지 않으셨소?"

최형기는 짜증이 나서 혀를 차고는 말하였다.

"원래가 도적을 잡는다거나 변방을 수비하는 일에는 조정의 정변이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는

법을세. 제아무리 소신껏 소임을 감당한다 할지라도 벼슬아치들의 간섭이 심하면 중도에 그

치게 되는 게야. 내가 일찍이 검계 살주계의 난리가 있었을 제 조금만 더 기간을 끌었더라

면 혈당들을 모졸리 잡아낼을 걸세."

"잡아내지 않으셨습니까?"

"중도에 그쳤지. 내가 옷을 벗게 된 것이 적당들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네만, 구월산 토포 때에도 상부의 눈치만 보느라고 그 뿌리를 캐내지 못하고 말았네."박

완식은 주저하다가 말을 꺼냈다.

"제가 며칠 전에 사주전에 쓰는 쇠와 유기를 송파에 대어주던 사공을 잡았습니다. 여주

사는 자인데 쇠는 횡성서 보내고 유기는 안성서 모아 오는 모양이지요. 그것을 송파의 객점

에다 맡겨두었다가, 철원 사는 물주가 한양 인근의 어딘가에 있는 풀뭇간으로 가져가서 주

전을 하는 게 분명합니다. 기찰을 맡았던 포교에게서 밀보가 들어왔는데, 송파의 객점주가

아무래도 그 뿌리가 깊은 듯합니다. 예전에 송파장에서 깍정이 꼭지 노릇을 하였다는데, 그

자는 예전에 송파에서 살인 도주하였다가 나중에 검계의 수괴로 잡혀 죽은 석산진의 절친한

동무랍니다. 그자가 미륵도를 믿었다는 소문도 있구요. 제가 만호를 찾아뵙게 된 것은... 어

쩌면 검계와 살주계의 잔당을 토포하게 될지 모르기때문입니다. 또한 이들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무진년의 미륵도 난리 때에도 그늘에 가리워 있었던 것 같습니다."최형기는 팔짱을

끼고 혼자 중얼거렸다.

"석산진? 그가 누구였든가"

"분명히 만호께서 그들을 잡았지요."

최형기의 분이 빛났다.

"돌곶이에서 잡았지. 적당들의 간계에 놀아나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들을 모조리 잡아냈을

게야."

"지금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박완식이 힘주어 말하였으나 최형기는 스스로 꼿꼿한 눈초리를 풀어버리며 필 웃었다.

"그런 일은 이젠 나하고는 상관이 없네. 여보게 내가 시정배로 주저 앉은 지 어언 다섯

해가 넘었네. 장사치란 것이 무엔가. 더구나 내 일은 박물의 거간일세. 장사란 구린 짓도 해

야 되고 남의 이목도 가려야 되는 법이야. 내가 포청의 기찰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

보게. 배오개에서 나는 손털고 일어나야지. 누가 내게 오겠는가."최형기는 어림도 없다는 듯

이 껄걸 웃었다.

"나 같은면 경강으로 나가보겠네. 재가 전부터 난전꾼들을 통하여 그쯤은 듣고 있지. 사주전

이 풀려나갈 곳은 한양 인근에선 거기뿐이야. 철원이라면 추가령으로 통할 것이고 위로는

포천 송우점에 닿겠지. 아마 삼남의 곡물과 북포를 교역시키는 중도아가 아닐까. 대번에 물

주가 되었든 사주전의 와주가 되었든 잡아낼 수가 있을 게야."박완식은 초조했는지 입술을

물어 적시고 나서 간곡하게 말하였다.

"조정의 정쟁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올시다. 제가 포장께 말씀올리겠습니다. 이번 한번

만 모셔야겠습니다. 민심은 흉흉하고 사주전은 끊이질 않으며 위에서는 독촉이 추상 같습니

다. 더구나 검계에 관한 물보 때문에 포장께서는 병판에 알리지도 못하고 저희들만 들볶지

요."

퇴창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녀 둘이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상 위에는 이러한

때에도 옥 같은 쌀밥이요 비린 자반이 올라 있고 밑반찬이 깔렸다. 한양 중인들의 음식치레

가 원래 사대부가를 넘보는 양인지라 박완식은 최형기가 어째서 포교들의 가게 출입을 꺼려

하는가 알 만하였다. 최형기의 아내가 따라 들어왔고 박포교는 얼른 일어나는 체하였다.

"부인,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에그 박부장 뵙기가 누년이 지난 듯하구려. 황교와 피자교가 길 하나 사이인데..."최형기의

아내는 얼른 탕기의 뚜껑이며 주발뚜껑들을 벗겨내며 말을이었다.

"참 섭섭합니다. 주인께서 전복을 벗고 나오시자마자 같은 종사님들은 물론이요 포교들도

발길을 딱 끊습니다. 전에 종사 하시던 분들 모두 승급하셨겠지요?""예, 선전관도 되시고 외

직에도 나가고 북변으로 병수사 나간 분들도 있습니다." 박완식은 일부러 정황하게 늘어놓

았다. 최형기가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허거침을 하였다.

"당신은 나가보구려. 점심 먹세."

부인은 못내 아쉬운지 뒤를 돌아보며 나가는데 박완식의 방문이 궁금해 못 견디겠다는 기

색이었다. 사실 살림도 요족하고 남부러울 것이 없겠건만 관직은 그래도 좋은 자리가 분명

하였다. 한양서 포도 종사관이라면 당상관습의 벼슬아치네 옥당이네 청직이네 하여 높고 귀

한 벼슬아치의 집이 많아서 미관말직이라고 하겠지만, 실제 세도란 것은 부리는 자리가 따

로 있게 마련이었다. 즉 시정 사람들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하느냐 하는 점이었으니,

가장 가까이서 부딪치고 눈구멍을 마주 대어 부라리고 하는 것이 포청 군관들이었다.

사모관대에 권마성 높이 외치며 평교자 타고 출퇴청하시는 점잖은 대감님네들이야 얼른

읍하여 하정배를 드리는 것으로 관계가 끝나지만, 포청 군관은 바로 코앞에서 시정배들과

으르딱딱거리는 사이라 먼 산의 범보다 앞집 개가 더 무서운 격이었다. 명절 때나 경기 졸

을 때 또는 사소한 형옥 쟁송 등등의 일로 포더청 종사관의 집은 각종 부담과 봉물이 일봉

서신과 더불어 쌓이던 것이다. 종사관의 울긋불긋한 철릭과 구슬상모며 말 치레며 옆구리에

지른 환도 따위의 행색은 남아 대장부의 늠름한 모습으로 창기들은 물론 여염 아낙들도 눈

부신 듯 구경하게 마련이었다. 박포교는 형기의 아내가 아직도 포도청 윗자리에 대한 미련

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박완식은 슬쩍 말을 걸었다.

"만호, 화승총을 어찌 생가가시우?"

최형기는 무슨 뚱딴지 같은 수작인가 하여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요즈음 산간의 도적들이 화승총을 방포하며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형기는 겉으

로는 자꾸 관심이 없는 척하다가도 반평생을 밥 먹은데가 포청이라, 자기도 모르게 수저를

놓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느 지방에서 말인가?"

"해서와 서북 지방입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와 함께 구월산에 가서 허탕을 쳤지요."

 

최형기는 으음, 하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우물쭈물하다가 우선 물그릇을 당겨 꿀꺽이며 물을

마셨다. 박완식이 연이어 말하였다.

"만호, 어느 쪽에서 집병을 하든 나라는 있는 거이오. 그와 같이 소문이 낭자하여 국본을 흔

들고 관군을 조롱하는 자를 버려둔 채 이 무슨 시정의 장사치 시늉이시우."최형기는 젓가락

을 집어 상 위에 땅 하고 박았다.

"치우게... 내가 만약 다시 포청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꼭 한가지 때문이야. 장길산, 그자

만 잡게 된다면 나는 그 길고 양주 고향으로 내려가 세상 일 잊고 살 것이다. 장적의 토포

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면 다시는 내 앞에서 시시껍절한 기찰 얘기는 꺼내지 말라!" 최형기

로서는 명치에 맺혔던 멍울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었다. 그가 마감동을 군졸의 도움으로 가

까스로 베고 나서 느꼈던 이상야릇한 굴욕감과 두려움은 지금도 그의 마음속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도대체 이러한 자들은 어디서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까. 그들을 이렇게

단단하게 결속시키고 떳떳한 안색으로 토포장을 꾸짖게 하는 힘은 누구로부터 나오는 것일

까. 스스로 물었던 질문은 지금까지도 대답이 없는 채로 문득문득 의심으로 되어 그를 괴롭

히고 있었다. 구월산 이전에는 그의 괴로움은 전정이 막혀서 더 이상 무관으로서 환로를 헤

쳐나갈 수 없는 자신의 입장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토포의 실녹림 두려의 이름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혀왔었다. 탑고개에서의 주민들의 사금파리 저항이며 마을 총대 노인의 의연

한 최후, 그리고 길산의 양아버지라는 노인의 여유있는 부드러운 눈길 등등은 길산의 우람

한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였다. 또한 큰샘골에서의 마지막 결판 때에 마감동의 검은 그를

뛰어넘었고 그가 꾸짖었던 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대가 몇품 벼슬을 지내는가?

고작해야 병수사자리라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칼을 뽑아 너를 보낸 자들에게로 돌려라.

네 등 뒤에는 이 땅에서 살다 죽어간 수도 없는 백성들의 원혼이 있다. 자, 나와 함께 먼저

해서감영을 들이치자.

최형기는 왠지 오한이 들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우람한 길산의 그림자 위에 절명한 마

감동의 부릅뜬 눈동자가 박혀서 떠올랐고, 그 영상은 수년래 그의 뇌리에 박힌 모습이었다.

"정작은 해서에서 관북과 서북지방을 넘나들며 활동중이라도 각도 군영의 비관(秘關)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안에 그들 일당에 관한 논의가 비국(備局) 당상(堂上)에서 있

을 것입니다. 전에 우리가 토포할 때와 같이 숨은 곳을 알아내어 일시에 덮쳐야 하겠으나,지

금 장적의 혈당들은 예전과는 다르겠지요. 최근에 서북 지방에서 방포하며 준동하는 도적들

이 아마도 그들 이외에는 없을 것으로 압니다."

박포교의 말을 들으며 최형기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젠 기런 얘긴 내 앞에서 더 이상 꺼내지 말게."

"포장께서 만호를 부르실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먼저 송파의 이가인가 까마귀인가 하는 객

점주를 잡아들여 문초할 생각입니다. 검계의 얘기가 나온다면 만호께서 꼭 좀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최형기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포청에 다시 들를 일은 없을 걸세. 장적의 토로군이 편성된다면 그 때에는 내가 앞장설

생각은 있네. 검계 살주계의 일이라면 나 아니 어도 얼마든지 유능한 군관들이 많이 있을

게야."

박포교가 처음에는 함께 점심으나 먹고 그런 식으로 말이나 붙여보고 돌아갔으나 까마귀

를 잡아들이고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여주 사공이 잡힌 지 열흘이 채 못 되어 좌포청에서는 기찰하던 포졸과 박포교로 하여금

객점주 이가를 잡아들이도록 명이 내려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까마귀네 객점 마당 안으

로 쏟아져 들어갔고 흉적들의 저항이 심할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광주 관아 군졸들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우선 주인 까마귀는 물론이요 곁꾼으로 있는 자들까지 모조리 결박하여 끌

어냈다. 창고에는 쇠와 유기가 가득 쌓여 있었으니 사주건의 혐의는 분명한 사실이 되어버

렸다. 그날로 좌포청으로 압송하여 심문이 시작되었는데 포장의 지시는 너무 심히 다루지

말고 그의 연루자를 불도록 살살 꾀어내라는 것이었다. 까마귀는 예전과는 달랐다. 송파에서

깍정이로 밥이나 얻어먹던 그가 이제는 장가도 들었고 개점주로 재산도 조금 생겼으나 악착

스럽게 버틸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그는 장물 와주로 돈을 모았을 뿐이요. 무슨

신이 굳게 내려서 미륵도를 믿고 정원태와 황회를 따르던 것이 아니었던 때문이었다. 까마

귀는 포청에서 도적들을 잡도록 해주면 그들의 재물은 물론이요 지금까지의 죄도 모두 사면

해준다는 설명을 듣자 맨 처음에는 횡성의 얘기부터 시작하였고, 고달근이가 처음부터 그

를 믿고 많은 얘기를 해주었던 만큼 얘깃거리가 많았던 것이다.

"횡성 금굴이에 철광이 있사온데 그곳 번수들은 모두가 무진년 미륵도 난리 적에 양주서

달아난 검계원들입니다. 물주 고달근이는 갑자년 검계의 소요가 있을 적부터 소인과 같이

계에 들었고, 처음부터 계를 짰던 두령들 중의 하나입니다. 무진년에 죽은 황회 정원태 등과

는 가장 절친한 동무였지요. 고달근이가 횡성의 예전 혈당들에게서 쇠를 모으고 안성에서

유기를 모아서 어느 곳으로 가져가는지는 모릅니다. 그자가 직접 올 적도 있고 그의 심복인

박거사라는 자가 가지러 올 때도 있었습니다. 고달근이는 철원에 사는데 그가 지나가는 말

로 이르기를 자신은 해서 극적 장길산의 동류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횡성의 일당들도 장

길산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까마귀의 이와 같은 실토는 포도청을 발칵 뒤집어놓았고, 포장은 깜짝 놀라서 이런 사실

을 병판에게 아뢰었다. 좌의정 목래선은 일찍이 살주계의 일로 집안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

었고,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그가 특명을 내려서 우선 횡성을

밀탐하여 그들을 잡아들이고 철원의 고달근이는 포도청에서 잡도록 하였다. 횡성 금굴이는

횡성현감 정익수(丁益壽)로 하여금 덮치도록 하였다.

현감 정익수는 군병을 삼십여 명 조발하여 친히 영솔하고 현의 서쪽 서내를 건너서 초원

근처의 야산에 있는 금굴이로 나아갔다. 장교가 정탐하고 돌아와 아뢰었다.

"지금 반은 굴에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밖에 나와서 철광을 깨고 있습니다. 번수로 있는

오가와 방가는 지금 같이 있습니다. 저들의 식솔이며 다른 혈당들은 덕고산에 있습니다."

그들은 일시에 철광 앞의 움막이 늘어선 빈터로 들어갔다. 인부들은 저항하지 않았으나

방귀선이가 굴 안으로 달아났고 오경립은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움막 안에서 잡혔다. 오경

립이 부르짖으며 항의하였다.

"이 광산은 잠채터가 아니요, 버젓이 세를 내고 하는 수철점이거늘 무슨 까탈을 잡으려고

이러시우. 우리가 무슨 죄가 있소?"

"시끄럽다. 너희들 사주전 죄로 잡아들이라는 명령이시다." 군졸들은 이곳 저곳에 둘러앉아

광석을 잘게 부수던 광부들을 잡아서 모두 묶었다. 형감 정익수가 장교에게 물었다.

"모두 잡았느냐?"

"예, 방가리는 자가 굴 안으로 달아났습니다."

"혹시 뒤로 빠지는 구멍은 없다든가?"

"예, 저기 나란히 뚫린 구멍은 모두 그 끝이 쇠의 맥이 닿는 곳이라 막다른 굴어올시다.""지

체없이 쫓아들어가 잡아내어라. 생포해야지 상하게 하지 말라." 장교 두 사람이 철광에서

쓰던 관솔 횃불에 불을 붙여서 들고 군사들과 더불어 외편 굴로 들어갔다. 굴은 적선으로

가다가 백여 보쯤 들어가서 좌우로 나뉘었다. 장교들은 환도를 가졌고 두 군사는 창과 육

모방망이를 들었는데 그들은 먼저 두 사람이 갈림길을 지켜 서고 다른 장교 하나와 군졸이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그 끝까지 들어갔다가 되돌아왔다.

"저쪽에는 없는데, 굴도 짧고."

"그러면 이쪽이 틀림없네."

그들은 다시 횃불을 쳐들고 왼편 굴로 들어갔다. 굴은 오른편으로 휘돌고 있었으며 군데

군데 버팀목을 바쳐둔 것이 꼭 사람 모양이라 군졸들은 멈칫 서기가 여러번이었다.

방귀선은 광석을 캐는 정과 망치를 손에 잡히는 대로 쥐고서 막장을 향하며 안으로 깊숙

이 들어가 박혔다. 멀리 횃불빛이 일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굴이 오른편으로 다시 구

부러지는 곳에 있는 너른 너구리굴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막장에서 일하다가 나와서

휴식을 위하거나 물도 마시고 샛것도 먹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최초의 공격을 하려는 것

이었다. 맨 앞에서 횃불을 들고 들어오는 자를 망치로 때려 넘기고 안으로 달아날 작정이었

다. 방귀선은 무진년에 달아난 양주 미륵도의 잔당으로서 잡히면 처참하게 국문을 받다가

참수다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내비골의 정다운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간

잘도 목숨을 부지해왔던 것이다. 횃불이 가까워오면서 그 아래로 장교를 선두로 하여 거뭇

거뭇한 군졸들의 더그레 자락이 보였다. 그들은 어둠이 눈에 익지 않고 굴의 지형을 알지

못하여 발걸음이 서투르고 주뼛거리는 걸음걸이였다. 앞섰던 장교가 굴이 구부러진 곳에 이

르러 전방을 살피려고 횃불을 쳐들었다. 그는 왼편에 우묵하게 뚫린 공터를 보지 못하고 몇

걸음 내디뎠고 방귀선이는 뛰쳐나가면서 망치로 장교의 등 한복판을 내리쳤다. 장교가 외마

디 소리를 지르며 넘어졌고 횃불이 땅에 굴러 떨어졌다. 뒷전에 섰던 장교와 군졸들은 미처

달려들지 못하고 뒤로 성큼 물러났으며 방귀선은 횃불을 발로 짓밟아 껐다. 굴 안은 다시

캄캄해졌다. 어둠속에서 방귀선은 악이 찬 소리로 씹어 뱉었다.

"누구든 한 놈이라도 들어오면 모조리 쳐죽이겠다. 이 안에 굴이 수십 갈래다. 죽고 싶으면

들어오너라."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더듬더듬 쓰러진 장교를 일으켜서 떠메고 이리저리

버팀목에 부딪치고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며 가까스로 밖에까지 나올 수가 있었다.

현감 정익수는 장교가 혼절하고 나머지 세 관졸들이 초주검이 되어서 기어나오는 꼴을 보

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즉시 처형할 기세로 일꾼들 몇을 잡아내어 문초하니 굴이 막

다른 구멍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익수는 굴 입구에 생솔나무를 잔뜩 쌓아 불을 질러서

매운 연기를 굴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하였다. 이는 오소리나 곰을 잡을 적에 시골 초동들이

하는 장난과 같아서 짐승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게 되어 있었다. 군사들이 인근

야산에서 생솔나무와 삭정이 등을 긁어다 쌓았고, 불길이 일어났다. 굴 안쪽에 구멍이 메어

지도록 쌓은 생솔나무가 타자 매캐한 연기가 안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어갔다.

방귀선은 곧 연기 속에 둘러싸였다. 그는 연신 기침을 터뜨리면서 막장 끝까지 기어들어

갔다. 연기는 점점 가득 차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소매로 눈과 얼굴을 막고 자세를 낮추고 버티었다. 그러나 연기는 더욱 가득 차고 있었

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버티었다. 그러나 연기는 더욱 가득 차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처

럼 쓰리고 아팠다. 귀선은 나중에는 연기가 그를 잡으려는 사람인 듯 여겨져서 두 팔을 휘

저어 물리치려고 허공을 뿌리치며 허우적거렸다. 그는 버팀목을 끌어안았다. 머릿속이 몽롱

해지고 그것은 그의 삶을 가로막고 짓눌러오던 그림자가 되어 방귀선이를 구멍의 속끝까지

밀어 붙이려는 듯 보였다. 그의 눈앞으로는 대전리에 가득 찬 사람들의 기나긴 행렬들이 지

나갔다. 그들은 작대기와 환도와 쇠스랑을 치켜들고 환호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행렬은 양

주 관아를 향하여 터진 봇물처럼 밀려갔다. 와아, 하는 함성소리가 귓가에 가득하였다. 귀선

은 그들의 선두에 섰다. 관아의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자, 양주목의 양곡은 미륵 군병의

군량이다. 대문을 부숴라. 그는 온 힘을 다하여 문을 밀어냈다. 머리 위에서 흙덩어가 떨어

지기 시작하였고 갱목이 넘어졌다. 흙과 돌멩이가 일시에 무너져 내리면서 방귀선은 그 아

래 깔렸다. 굴이 구부러지는 곳에서 막장까지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한경식이나 지나서 다

시 장교와 군졸들이 다 타버린 생솔가지의 잔해를 밟고 들어가서야 그들은 굴이 무너진 것

을 알았다. 현감 정익수도 방모라는 자가 그 안에서 살아 나올 수 없음을 알았다.

"우선, 덕고산으로 간다. 뒤에 와서 시신을 파내야 할 것이다. 관문에 그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으니 의금부에서는 시신을 확인코자 할 것이다."

그들은 대를 나누어 오경립과 광부들을 횡성 관아의 옥으로 압송하고, 정익수는 친히 군

병 이십을 영솔하여 덕고산으로 향하였다. 초원서 현이 있는 읍내까지가 이십여 리 길이요

금굴이의 소탕으로 이미 중화때가 넘어 있었다. 횡성 군병은 북창에서 주먹밥을 먹고 향군

을 재촉하여 갑천(甲川)을 따라서 올라갔다. 칠십여 리의 덕고산 갑천계곡을 따라 오르는 중

에 중내에서 이미 해가 기울었다. 덕고산성은 태기산(泰岐山)과 덕고산의 연봉에 끼여 있었

으니 돌로 쌓았는데 그 둘레가 삼천육백오십여 척이었다. 군창이 있고 우물과 집터가 있었

으나 오랜 세월을 버려두어 퇴락해 있었다. 그들은 캄캄한 방중에야 덕고산성에 당도하였고,

싸릿대로 횃불을 만들어 밝혀 들고서 일시에 산성터의 숨겨진 마을로 짓쳐들어갔다. 이정명

은 풀뭇간 옆의 초가에서 숙수 조역 일꾼들과 자다가 몽둥이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붙들

렸다. 군병들은 산성 안에 있는 여덟 채의 민가를 샅샅이 뒤져내어 모든 남녀노소를 끌어냈

다. 또한 풀뭇간에서는 요사이 부어냈던 상평통보 수백 냥도 발견이 되었고, 진흙으로 떠두

었던 주전판도 수십 종이 나왔다. 그들이 산성 사람들을 잡아두고 새벽 동이 트기를 기다릴

때, 아낙네 하나가 몰래 빠져 달아나 봉복사에 이르렀다. 봉복사에는 대성법주가 다른 승려

두 사람과 더불어 있었고, 그들은 산성에서 주전된 된을 강원도의 설유징과 정학에게로 보

내 주던 터였다.

"관군이 금굴이와 산성을 급습하여 모두 잡혔습니다."

이르니 대성법주는 다른 중들을 급히 깨워 봇짐을 싸짊어지고는 위로 가평을 향하여 도망길

을 올랐다. 이튿날 포청에서 장교와 군사들이 와서 횡성서 잡힌 사람들을 가려냈으니 기중

에 압송도니 자는 오경립 이정명과 그들의 광부 또는 숙수들로 도랍 여덟이었다. 문초가 시

작되면서 더욱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기 사작하였으니 갑자년의 검계는 잡히지 않은 채로

무진년에까지 그 혈당들을 늘여왔고 무진년 여환의 난리 때에도 검계원들은 깊숙이 관련되

어 있었으며, 해서의 장길산 일당들과도 체결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냈다. 좌상 남구만이 직

접 병판과 좌우 포장을 불러서 장길산의 필포를 엄명하였고, 좌포장 신여철은 그제서야 최

형기의 구월산 토벌이며 갑자년 검계 난리때에 그의 민첩한 토포의 공적에 관하여 아뢰었

다.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을 어째서 지금에야 아뢰는가. 전 좌변 포도종사관 최형기에게 전직을

그대로 내리고 국적을 토포하도록 하명하라."

좌상의 명이 떨어지자 최형기에게 포청으로 헌신하라는 영이 내렸고 형기는 별수없이 구

슬상모에 철릭을 떨쳐 입고 포장께 헌신하였다.

"전 포도 종사관 최형기 헌신이오."

아뢰니 포장 신여철이 호상에서 내려와 그를 위로 이끌어 올렸다.

"내가 자네를 본 지가 여러 해가 되었네. 지금 장적이 북관에서 준동하여 민심이 소요한데

아직도 그의 동당이 각처에서 번성하여 조정에서는 그를 잡아들라는 분부가 추상 같고, 주

상 정하께서도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필포하라 하셨네. 자네를 다시 종사로 쓰는

것은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고 곧 흉적을 잡게 되면 그 공으로 병사는 쉬이 올릴 것이니 너

무 염려 말게."

포장의 말에 최형기는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 분명히 말하였다.

"대장의 하명을 받잡고 거역치 못하여 등처하였으나, 소인은 실로 이같은 막중한 소임을

삼당치 못하겠습니다. 제가 한때 이인하 대장을 모시고 한양 인근의 난민을 잡아 다스리는

작은 공을 쌓았다 하나, 곧 해서에서 장적을 토포할 제 그의 수족만 베었을 뿐 머리는 놓치

고 마아서 오히려 나라에는 죄를 저지르고 상관에게도 누를 끼친 결과가 되었습니다. 소인

이 포장의 직을 떠난 지 여러 해에 이미 시정배로 나가 앉아 장사를 업으로 연명하였으므로

전과 같이 수하 장교들을 부릴 수 있을까 염려되옵니다."신여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

게 말하였다.

"그래서 토포장의 직임을 사양하겠다는 말인가? 만약에 사사로운 이해로써 국명을 어긴다면

적절한 조처가 있을 것이다. 좌포청에서는 그대가 어찌 거간업을 벌이고 있고 누구와 거래

를 하였는지 소상히 알고 있다. 만약에 상명을 받들지 않겠다면 자네도 시정에서 더 이상

장사할 수 없음을 잘 알 테지."

"상명을 받잡자 않겠다는 말씀이 아니올시다. 제가 토포장의 병부를 받들기 전에 몇가지

포장께서 약조를 해주신다면 몸이 가루가 될지언정 힘껏 직무를 맡아 보겠습니다.""어떤 조

약인가?"

"예, 첫째로 소인이 이 직무를 맡게 되면 관직의 고하를 막론하고 토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참견하거나 막지 못하도록 당상비국에서 보장하여주십시오. 다음에 제가 도포하러 외방으

로 나가면 그곳 군현의 수령은 어떤 경우에도 토로장에게 군사를 내주도록 허락해주십시

오. 또한 토포 지역의 백성에 관하여 그곳 수령의 방해나 까탈을 받지 않도록 관문을 적어

주십시오. 그리고 끝으로 제가 일개 무사로 직무를 맡는 것이오며 관직을 제수받는 바가 아

님을 아시옵고, 제게 명화율의 논공행상에 따라 토포의 혜택을 베풀 수 있도록 약조하소서.

이상의 약조만 이루어진다면 소인이 힘껏 해보겠습니다."신여철은 잠깐 생각해보고 나서 응

낙하였다.

"좋다. 처음과 마지막의 두 가지는 내가 허락할 것이요, 각 군현의 군사 거병권이면 토포

지역에서의 치민에 관한 권한에 대하여는 당상께 아뢰어보리라." 횡성서 잡혀 올라온 이정

명과 오경립은 방귀선이 굴속에서 스스로 죽었듯이 살 길을 포기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으

며, 다른 숙수와 조역꾼들이 서로 죄를 덜고자 하여 한 마디 두 마디씩 흘려내기 시작하였

다. 그들의 실토에 따라서 예전 검계의 새로운 조직이 무진년 이래로 장길산의 동류들과

체결되어 있었음이 밝혀졌고, 횡성 봉복사에서 주조된 사전이 강원도 쪽으로 풀려 나갔음도

알려졌던 것이다. 포처에서는 철원의 고달근이를 급히 체포하라고 성화가 불 같았으나 최형

기는 의견이 달랐다. 그는 예전과 같이 기찰에 힘을 기울이는 데서 나아가 달근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만큼 깊이 관여된 자의 마음을 사로잡으

려면 무엇보다도 포청의 상부인 형조나 의금부 쪽의 보장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고달근

에게는 명화율에 따라서 도둑들의 재물을 주고 가자를 내려야 하고 그로하여금 스스로 도적

을 잡는 일에 앞장서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 결정이 정하여지기 전에 최형기는

포청에 출두하지 않고 박완식 포도부장을 통하여 은근히 고달근의 체포를 미루도록 하였다.

최형기는 구월산 때와 같이 혼자서 토포의 모든 책임을 지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가 않

았다. 드디어 상부의 결정이 내려졌고 고달근의 처신 여하에 따라서 그를 죽이고 살리는 권

한을 최형기에게 일임한다는 하명이 떨어졌다. 그는 날씨가 쌀쌀해진 시월 말이 되어서야

철원을 향하여 떠났다. 최형기는 토포 군사나 포교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선달의

공명첩과, 포장이 명화율에 의거하여 도적의 모든 재물은 체포 여하에 따라 고자에게 준다

는 증서를 가지고 단신으로 길을 나섰다. 최형기는 도포 입고 갓을 쓰고 말을 탔는데 어느

외임에 있는 수령을 벗으로 둔 선비의 나들이처럼 한유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일단 포천

까지 가서 하루를 묵었다. 고달근이가 포천의 난전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잘

알았으나 그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고달근의 신변 변화에 대한 어떤 기미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고달근이가 끝까지 이쪽으로 기울지 않게 되면 일단 철원 관아에 잡아들

였다가 그를 급히 서울로 압송하고 그의 체포를 알게 되는 가족은 몰론 친지들까지도 남김

없이 관의 옥에 가두어놓을 작정이었다. 최형기는 짜른 예도 한 자루를 도포 안자락 속에다

지녔으니, 그것도 고달근이를 공겨하는 도적을 상해하는 데 쓰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위협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형기는 철원 관아에 들러서 아전으로부터 철원의

원산포 중도아 고달근에 관하여 물었다. 최형기는 우선 고달근의 의심을 사면 안된는 일이

라 아전을 앞세워 그의 집을 방문하려는 것이었다. 철원 관아에는 고달근이나 장길산 일당

들에 관한 어떠한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 아전은 흔쾌히 한양서 내려온 포도 종사관을 고달

근 집으로 안내하였다. 고달근이는 원산포에 갔다가 돌아온 지 사나흘밖에 안되었고 이제

하루 이틀 쉬고 나서 박거사와 함께 송파 거쳐서 파주 문산포에 나갈 참이었다. 그의 집은

좀 널찍했달 뿐, 초가였고 뒤란에 큼직한 광이 있었으며 호마가 네 필이나 있었다.

"주인 계시오?"

이방이 앞서서 들어가며 불러보는데 달근의 아낙이 빼꼼히 내다보고는 얼른 내외하며 하

녀를 찾았다. 부엌에서 하녀가 나와 어디서 오신 뉘시냐고 물었다. 이방이 이 고을 수리 아

무개가 왔다고 전하라 하니 얼른 따로 지어진 사랑채로 그들을 안내하였다. 고달근이는 박

거사와 함께 그간 들고나간 물품들의 내역을 장부에 적어나가던 중이었다. 역시 곡물은 북

도에 나가서 높음 가격을 받을수가 있었으며 무명은 아직 내지는 않았으나 세밑이 되면 한

양에서는 가장 좋은 시세가 될 것이었다. 그는 고원 객점에서 빌린 은자 천 냥을 반년 이내

에 갚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는 고원 객점에서 빌린 은자 천 냥을 반녀 이내에 갚아낼 자신

이 있었다. 하녀의 목소리에 그는 얼른 장부를 덮고 박거사에게 흘긴 눈짓을 보내고는 미닫

이를 열었다.

"어이구, 이방 어른이 여기까지 웬일이시오?"

"잠깐 뵙자는 분이 계셔서"

고달근이는 아전의 뒤에 서 있는 사내를 넘겨다보았다. 그는 첫눈에 사내가 포청밥 먹는

자임을 알아차렸다. 눈매가 그러하고 탄탄한 어깨며 기골이 그러하였다. 또한 고달근이가 길

에서 사당 거사질로 반편생을 보낸 사람이라 기찰포교 나부랭이들은 시끄러운 장터에서 마

나더라도 마치 콩 가운데 팥 골라내는 일처럼 수월한 노릇이었다.

"들어오시지요. 이거 원 방안에 어수선해서, 이렇게 살구 있습니다."고달근이는 그들이 앉기

를 기다려서 예를 차렸다.

"인사 여쭙겠습니다. 고달근이라구 헙니다."

이방은 최형기가 이른 대로 그의 관직을 얘기하지 않고서 한마디 하였다.

"자아, 나는 두 분이서 이렇게 서로 뵙게 되었으니 편히 말씀 나누도록 자리를 비워야겠소

이다."

"어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막 주안상이 들어올 판이올시다."그때에 최형기는 점잖게

그러나 위압적으로 말하였다.

"자네는 나가 있게. 그리고 고서방 내가 무슨 눈치 살피러 당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오."최

형기는 고달근의 눈 속을 파고들 것처럼 노려보았다.

"명화율을 아시는가?"

"무슨..... 말씀이....."

고달근은 압송으로 중얼거리며 얼른 뒤로 물러나 일어설 기세로 상반신을 젖혔다. 최형기

가 나직하게 말하였다.

"그대로 앉으시지.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려드릴까."

"도대체 뉘시우?"

"최형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최, 최형"

고달근은 되뇌이면서 방안을 잽싸게 둘러보았다. 환도라도 찾는 시늉이었으나 어찌된 일

인지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최형기라는 이름을 그가 잊을 리가 없었던 것이

다. 갑자년 이래로 그것은 살주계와 검계원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이름이었고 더욱 구월산

토포의 얘기는 최형기가 얼음같이 차고 당초처럼 매서운 사나이라는 전설을 무뢰배 사이에

심어놓았던 터였다. 길산의 행적이 구름처럼 부풀어올라 떠도는 그만큼 최형기에 관하여도

별의별 소물이 황당하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둔갑술을 부린다든가 몸이 날래어 벼랑에서 고

공으로 휙휙 날아다닌다든가 검술로는 중원에 내놓아도 그를 당할 자가 없다든가 이런 이야

기들이 봉놋방과 난전을 중심으로 하여 퍼져나갔었다. 고달든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우물쭈물 대꾸하였다.

"나는 그저 포천 원산포 어간의 중도아로 밥술이마 먹구 지내는 사람이우. 댁이 최가인지

김가인지 모르겠소만 내 집에서 뭣허러 오셨소?"

"시치미 떼지 말게. 나는 고서방이 갑자년 이래로 검계원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황회

정원태 그리고 이미 잡혀 죽은 석잔진이와도 동무 사이임을 알구 있네. 내 이름을 자네가

모를 리가 있나. 자네 꿈속에도 여러번 바타났을 텐제""여하튼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알아먹지 못하겠소." 최형기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안주머니에서 사주전 한 닢을

꺼내어 방바닥에 툭 던졌다. 동전은 뱅그르르 돌더니 방바닥에 엎어졌다.

"이게 뉘 것이가? 방귀선 오경립 이정명이를 함께 가서 만나봐야겠나."고달근이는 동전을

들어서 들여다보는 척하였다.

"상평통보 아닙니까. 나허구 이것이 무슨 상관이우?"

"고달근, 자꾸 허위적거리지 마라. 네가 내 손아귀에 들어온 이상 나는 자네를 놓아 보내지

않을 게야. 꽉 쥐어 짤 테니까. 자네가 안성서 유기를 모으고 횡성에서 쇠를 사다가 송파 까

마귀네 객점에 모아 사전 풀뭇간으로 가져가는 것도 다 알고 있으며, 해서 장적과의 체결도

알구 있다. 나는 포장의 명을 받은 게 아니라, 당상비국의 특명을 제수받고 온 사람이다. 지

금이라도 자네를 잡아다가 형틀에 달아매고 내가 몸소 국문한다면 그 돈 따위는 물론이요

장길산의 장처까지 다 불게 될 게야. 그뿐이 아닐세"

하면서 최형기는 도포 자락 안에서 예도를 뽑았다. 시르릉 하는 칼날 소리와 함께 칼끝이

고달근의 면상을 향하여 겨누어졌다. 최형기가 몸을 한 뼘만 내밀면 예리한 칼끝은 고달근

의 눈 속으로 찔러 들어갈 판이었다. 고달근은 얽은 얼굴을 일그리고 벽에 바짝 기대며 물

러나 앉았고 최형기는 성큼 한 무릎을 짚고 상반신을 일으키며 다가들었다. 최형기는 한 손

으로는 구서랍 책사을 짚고서 칼끝을 고달근에게 들이대어 그의 수염을 좌우로 슬슬 건드려

주었다.

"고서방, 네 목숨은 내가 좌지우지하구 있다. 네 따위는 내가 이 칼로 대번에 목을 쳐낸다

하여도 어느 누구 하나 말참견할 사람이 없지. 너의 생살여탈권은 벌써 조정의 모든 당상께

서 내게 내려주셨다. 네 처자의 목숨 또한 마찬가지야. 재산도 모두 압수하여 토포군의 거병

금으로 쓸 수가 있다. 그뿐이 아니야. 네가 모든 것을 실토한 때까지 너의 육신을 찢고 굽고

가르고 베어내며 처자식도 함께 다룰 수가 있다."

최형기는 거기까지 으르대고 나서 칼을 싹 거두어 책상 위에 가만히 놓았다.

"이제는 내 말귀가 조금 통하겠지. 자네를 잡아 말 몇마디 불게 하는 일은 이같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며, 고서방이 별로 쓰임새가 없어 여기서 베어 죽이자면 그 또한 내 손짓 한 번

이면 되다는 뜻일세. 허나 내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네.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나는 달리 원하

는 바가 없네. 자네가 나를 도와 나의 이 어렵잖은 원을 이루도록 해 준다면, 내가 자네의

생명은 물론이요 일세의 부귀를 다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고달근은 눈을 멀뚱히 뜨고

최형기의 움직이는 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달근은 이제까지 최형기가 늘어놓은 말은 모두

가능한 노릇이라고 확신하였다. 개구리가 뱀을 만난 경우처럼 달근이는 평생에 두려워하던

포청의 저승사자 형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 것이다. 이제 그가 쌓아놓은 재물과 철원에서

눌게 된 말년이며 포근한 가정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 참이었다.

"어떤가, 나를 돕겠나?"

최형기가 이번에는 눈썹을 곤두세우며 날카롭게 내뱉었고 고달근은 얼떨결에 손을 내저으

며 말하였다.

"그, 그러면..... 나으리의 원이 무엇이우?"

최형기는 짧게 끊어서 말하였다.

"장길산의 모가지!"

고달근은 자기도 모르게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나는 그자를 모르오."

"거짓말 마라. 이미 횡성 적도들의 입에서도 나왔고 송파 까마귀에게서도 밝혀진 일이다."최

형기는 다시 어조를 바꾸어 그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사주전 와주의 죄로도 자네는 참수 효수 감이다. 그러나 장적의 혈당들과 그를 잡게만

해주면 그대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또한 검계에 관하여도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으

리라. 여보게, 내가 자네를 바라고 철원으로 올 제 이와 같이 포도 군관 하나도 데려오지 않

고 홀로 미행하여 온 것은, 애초부터 자네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는 계책이 있었기 때문일세.

자네를 잡아 죄를 주자면야 내가 한양서 철원까지 먼길을 번거롭게 내왕할 까닭이 있겠는

가. 포도청의 비관 한 장이면 이곳 군교가 군졸 몇 명 데리고 와서 잡아 압송하였겠지."최형

기는 그때쯤 가서야 품안에서 포장이 날인한 증서를 꺼내어 책상 위에 펼쳤다.

"이것은 포장이 자네의 논공행상에 관하여 보장한 증서일세. 이것이 좌변 포도대장의 직인

이고 또한 이것은 선달을 내릴 공명첩이라네. 자네는 대명률 대저의 예를 모르겠지만 내가

일러주지. 만약에 자네가 토포장인 나를 도와서 도적들을 잡게 되면 명화율(明火律)에 나와

있는 대로 상을 받을 걸세. 즉 명화적 다섯 이상을 잡으면 면역 가자(加資)하고, 극적(劇

賊)에 대하여는 한 사람이 강도 다섯에 해당하며, 적의 동당이 자신과 상대자를 발고하여

자수하고 굴복하는 경우에는 면죄하고 은자를 상금으로 내리며, 칠팔구 이상이면 가자하며

으자를 내리고, 포도논상(捕盜論賞) 때에는 도적의 장물을 급여한다고 되어 있네. 만약에 장

길산과 혈당들을 잡게 된다면 자네는 일시에 선달이 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물을

분급받게 되어 있다네."

고달근이 물끄러미 증서를 들여다보다가 집으려고 할 때, 최형기는 그것을 날렵하게 자아

챘다.

"아직은 안돼. 우선 적당이 한 놈이라도 잡힐 적에 이것을 내주겠네." 고달근은 자신이 빠

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더구나 눈앞에 있는 공명첩과 포도논상에 관한 보증서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것이다. 고달근은 머리를 숙이고 한차이나 앉았더니 드디어 한

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

"나으리께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오십 평생에 겨우 요만한 터전이나마 마련하여 장차

노후를 준비할까 하였더니, 관장께서 소인의 팔자를 바꾸려 하시는구려. 그렇게 저를 긴요히

쓰려 하시는데 어찌 제 스스로 묘혈을 파겠습니까. 소인도 장길산이 딱히 어느 골에 숨어

있는가는 잘 모릅니다. 또한 그들의 소굴도 알지 못합니다. 하오나 소인은 수년내 그들과 내

왕한 자들은 몇몇 알고 있지요. 또한 최근에 장길산을 만난 적이 있사온데 그곳을 덮쳐서

추달한다면 그의 정처를 적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관장께서 진실로 이 천 것을 거두시려

면 한 가지 약조를 해주셔야겠습니다."

최형기는 스스로 끓어오르는 흥분을 지그시 눌러 감추고 지리한 듯이 물었다.

"증서 이외에 또 무슨 약조가 필요한가? 이것은 다른 자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네.""까짓 것

지금 당장이라도 검계 살주계의 잔당과 장적과 결탁된 자들을 잡아낼 수가 있습니다. 소

인은 은자의 상금은 원하지 않고 그 재물의 반분을 원합니다.""허락하겠네."

"관장께서 즉시 써주십시오."

고달근이 재촉하였다. 최형기는 책상 위에 놓아던 예도를 접어서 도포 안의 겨드랑이에

꽂아넣었다.

"첫번째 혈당을 잡을 제, 증서는 물론 모든 문건을 적어주겠다. 그 대신 내가 원하는 것은

검계든 살주계든간에 장적의 굴혈로 막바로 들어갈 지금길이다. 공연히 다른 쪽을 들쑤시지

말고 그와 지결된 자들만 골라내어 감쪽같이 토포할 일이다."고달근은 그제야 이마에 송골

송골 맺혔던 식은땀을 소매로 쓱 훔쳤다.

"파주 문산포에 그의 혈당이 한놈 있습니다. 그자는 소인의 사주전을 직접 대행하였지요.

제가 물주인 셈입니다. 그자의 집에는 풀뭇간이 있사온데 한양에 인근에서 가장 솜씨 좋은

타철 숙수들이 있습니다. 돈은 물론이요, 그들은 화승총을 만들어냅니다."최형기는 긴장하였

다.

"화승총이라니 그러면 요사이 관북 서북지방의 도적들이 총포를 들고 날뛴다더니 그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물론입지요. 한 달에 총포를 많이 만들지는 못한답니다. 총열의 쇠를 제련하기가 가장 어렵

다고 합디다. 가끔씩 녹림에서 총포를 가지러 오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개 북쪽의 은자

나 박물을 가지고 오는 모양입니다. 장적의 일당들이 틀림없지요." 고달근은 자산의 근거지

라 할 만한 포천 송우점의 복만이네 패라든가 솔부리 일당들에 관하여는 입을 떼지 않았다.

또한 서강 모신이에 대하여도 침묵을 지켰으나 그와느 따로이 타협하여 이익을 거둘 바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고달근이가 파주 문산포의 이경순을 점찍은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와는 사주전 외에 직접 관련이 없고, 그가 여러 녹림당과의 연계로 장물을 취판하여 파주

일대의 부상이 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내 오늘은 예서 자고 내일 새벽에 지네와 같이 한양으로 올라가야겠네.""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파주로 가서 들이닥쳤다가는 낭패합니다. 우선 제가 사주전을 하러 오가면서 도적들

이 당도하는 날짜가 언제인가 정확하게 알아내얍지요. 관장께서는 그때를 놓치지 마십시

오. 파주에 이어서 곧 원산포와 고원의 객점을 들이치셔야 할 겝니다." 고달근이가 이제는

변심한 고자가 되어서 진언하였고, 최형기도 흡족히 생각하였다. 달근이 최형기를 따라서

한양에 올라가 포장께 헌신하였으며, 달근에게 문산포 기찰의 하명을 내렸다. 그에게는 기

찰포교와 같은 권한과 직첩이 내려졌다. 그는 좌포청의 민완 포교 박완식과 함께 송파서

빼앗겼던 쇠와 유기를 말에 싣고 사주전을 하러 가는 양 이경순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경순

의 집에서 고달근은 마치 묘옥의 친정오라비와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어서, 여문이도 잘

따랐다. 전새이는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으며 장쇠는 달근의 방에 와서 곧잘 내기 장기를 두

곤 하였따. 박완식은 달근의 철원 객점에 새로 온 차인이라고 소개하여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경순네 뒷마당의 풀뭇간에서는 밤낮으로 쇠와 동철을 제련하고 상평통보를

주전해냈다. 전생이가 숙수들에게 지시하고 쇠의 질을 살폈고 우선 견본을 뽑아서 모양의

우수함을 판단하여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치도록 하였다. 제련은 전생이만 알고 있는 비

법이 있어 그가 직접 쇠와 동철을 섞었다. 그는 그냥 눈대중으로 어림잡아서 섞었지만 거

의 틀림이 없었다. 달근이가 풀뭇간에 들어간 전생이의 등뒤에 섰다가 가만히 물었다.

"화승총 한 댓 자루를 만들어줄 수 없겠나?"

"언제까지요?"

"이 일 때문에 정신이 하나두 없어요. 아저씨 일이 끝나면 곧장 다른 일거리가 있습니다.

설 지나구 나서 보십시다."

"이봐 나는 뭐 같은 식구가 아닌가, 해서 동무들이나 우리나 급하기는 매일반이여. 솔부리

아이들두 총포가 있어야 마음을 놓지."

"그럼 사주전 일은 그만두시우. 하지만 화승총은 총열을 뽑아내는 일은 보통 힘든 게 아닙

니다. 달구고 식히는 일을 적어도 열 차례 가까이 해줘야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어 방

놓다 말고 총구가 찢어집니다."

"그래 해서 사람들은 언제까지 총포를 만들어달라든가?""새달 보름께까지입니다."

전생이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산식구들이 당도하는 날짜를 발설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면 그 일이 끝난 다음에 해주면 되지 않나?"

전생이는 의아한 얼굴로 달근이를 올려다보았다.

"아니 그러면 곧 세밑인데 경강의 동절 경기가 가장 좋은 철이 아닙니까. 명년 해동까지는

다시 호시절은 없을 터인데 그 철을 놓치고 화승총을 만들다니요?" 딴은 맞은 말이었다.

고달근이 참말 총포 제작을 당부하려던 게 아니라, 해서의 장길산 일당들이 문산포에 나오

는 날짜를 알아보기 위함인지라 곧 말을 바꾸었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자네 말이 맛군 그래."

"이번에는 배면의 숫자와 글자를 바꿔야겠습니다. 며칠 전에 한양서 들여온 쇠푼을 보니

동활인서에서 주전을 했던 모양인데 그걸 박아야 겠어요. 우리두 자꾸 바꿔야 꼬리를 잡히

지 않겠지요."

"그거야 자네 따라갈 쟁인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자네만 믿네." 달근은 건성으로 그렇게

대답하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이경순네 여각의 널찍한 집터와 집채와 즐비한 창고 마방들을

둘러보았다. 그뿐아니라 배내 근처에서 은산 아랫녘에 이르기까지 이경순의 전장은 백여 마

지기에 달하는 모양이었다. 이것만 하여도 시골 부자로는 제법 포실한 재산이었다. 한양에

서라면 몰라도 파주 양주 인근에서는 고을 수령의 잔치상 근처에 함께 올라앉을 만하였다.

고달근과 박완식이 돌아와서 십일월 보름께에 도적들이 문산포 이경순네 여각에 오게 되었

음을 고하였다. 최형기는 처음부터 포도 군사를 수십 명 발동하여 법석을 떠는 것이 어리

것은 짓이라고 여겼다. 그는 발고자 고달근 외에 경군 다섯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즉, 그와 박완식이 인솔한 포청의 혈기 왕성한 포졸 두 쌍이었다. 최형기와 박완식은 오랫

동안 무예에 단련된 포도관이었고 두 쌍의 포졸도 모두 단병접전에 능한 자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방포술에도 능하였으며 환도와 회몽치를 지닌 것은 물론이요 화승총을 지녔다. 열

나흗날, 그들은 상고의 차림으로 말 두 마리에 봇집을 하나씩 짊어지고 도성을 나섰다. 그

들은 고양을 거쳐서 곧장 파주읍으로 들어갔는데 한양서 팔십리 길이라 짧은 초겨울 해가

우두산 저편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사처를 정하였고 최형기 혼자 파주목 관

아로 들어갔다. 그가 수리에게 명자를 넣고 기다렸다가 목사와 만나자 당상비국의 비관과

병부를 내보여서 토포에 필요한 군사의 조발을 요구하였다. 목사는 매우 당황하여 토포에

차질이 없도록 병방을 불러 문산포의 지형과 수로를 그려두고 논의하였던 것이다.

"적당들이 어느 방향에서 오기로 되어 있습니까?"

병방이 물었고 최형기가 말하였다.

"해서의 적당들은 고자의 말에 의하면 상고 차림으로 각처를 내왕한다고 하니, 무턱대고

나루를 건너오는 자들을 일일이 잡아 검색하기도 곤란한 일일세. 아마도 송도에서 직로를

따라 임진강을 건너겠지."

파주 목사가 말하였다.

"정자포(亭子浦)를 건너오겠지. 토포장은 이가의 객점 근처에 매복하여 기다리실 계획이

오?"

최형기는 병방 비장에게 물었다.

"문신포에 여각이 몇 집이나 되는가?"

"예, 꼭 여섯 집이 있습니다. 배를 가진 선주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들을 믿을 수는 없겠지

요."

최형기가 목사에게 말하였다.

"안전께서는 심려 마시지요. 병방과 저희 경군이 오를 나누어 진을 치겠습니다. 정자포에는

정탐군 한쌍만 내보내고 돼지포 쪽에도 둘을 내보냅니다. 그렇게 한다면 문산포를 향하여

강을 건너거나 오가는 자들은 빠짐없이 살필 수가 있겠지요.이가의 여각 안쪽에는 임진강으

로 굽돌아나가는 샛강이라 동망치지 못할 것이며 장산 쪽의 야산에는 병방이 파주 군병을

묻어두고 기다렸다가 연락을 받으면 이가의 여각을 에워쌉니다. 소장은 경군 다섯 사람을

데리고 인근 객점에서 기다렸다가 도적들을 남김없이 체포할 것입니다." 최형기가 내밀어

보인 비관에는 그가 토포의 모든 권한을 가진다는 것이며 현지의 군현 수령들은 그에게

복명하라는 내용이 당상비국의 명으로 밝혀져 있었고, 그의 병부에는 그가 필요로 하는 만

큼의 군사 조발에 협조하라 되어 있었다. 목사는 포도 종사관보다 상관이었으나, 포적의 임

무에 관한 한 최형기는 비국의 톡명을 받은 상관인 셈이었다. 더구나 그의 관할지에서의

일이라 잘못되어 놓치기라도 한다면 지방 수령으로서 책임을 모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튿날 미명에 병방은 파주목의 군관과 군졸 이십여 명을 차출하여 일반 백성들의 눈에 띄

지 않게 대산 봉수를 돌아 배내를 건너서 장산의 끄트머리 소나무 숲속에 틀어박혔다. 그곳

언덕에서는 문산포의 마을과 샛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고달근과 좌포청 포교 박완식이

먼저 문산포 이경순네 집으로 떠났고, 최형기는 조금 늦춰서 포졸 넷을 데리고 말을 끌고

발정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패랭이에 긴 저고리 차림으로 봇짐을 말등에 얹어 상고의 시늉

을 내었던 것이다. 고달근과 박완식은 지난번에 쇠와 유기를 맡겼으니 맞춰놓은 사주전을

찾으러 가는 셈이었다. 그들은 전생이에게서 해서 식구들이 오는 날짜가 보름이라고 들었으

므로, 그 날짜에 맞추기 위하여 사나흘 늦추었던 것이었다. 날씨는 화창하였다.

임진강에서 밀었던 물이 찰랑거리면서 샛강 수로를 따라 썰고 있었고 마른 갈대들은 바람에

휘청거렸다. 물때를 타고 강화로 돌아 나가 북쪽과 경강으로 갈리는 배들이 강심을 타고 나

갈 시각이었다. 여각에서는 벌써 이른 아침을 지어 먹고 한탄강을 타고 와서 묵었던 배들이

샛강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얼음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석벽의 사이로

흘러갔다. 얼음은 아침 햇빛에 반짝였다. 아래로 육십여 리 흘러가면 예성강과 임진강이 만

나서 교동과 강화로 나뉘는 십자 수로에 이르게 되었다. 이경순네 여각에서는 숙박하는 뱃

사람이나 선주들을 받지 않았고 송도와 해서로부터 또는 우대용에게서 오는 물건들을 위탁

하였다가 경강 쪽으로 넘기고는 하였으므로 교화의 홍천수네 여각과는 달랐다. 홍천수는 경

강과도 일반 상품 거래를 하였으나, 경순은 아는 사람들의 물건 외에는 거두니 않았었다. 그

러므로 그의 물건은 해물이나 어염 등속이라기보다는 강변 칠읍에서 잠상으로 거래된 청국

의 당화들과 잠채된 은자 등속이었다. 그는 요즈음 들어서는 풀뭇간의 일이 더욱 바빠지고

있었다. 묘옥과 부엌댁이 밥상을 보고 있을 적에 고달근과 박완식이 들어섰다. 묘욕은 달근

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말하였다.

"참 제때에 오시네. 닭 잡았어요. 어서 올라가셔요."

"우린 벌써 먹었는걸. 어째 집안이 조용하오. 도장 어른 계시오?""그럼요. 오늘 손님들이 오

신 날인데."

집 뒤에서 벌써 망치 소리가 들리고 있으니 풀뭇간의 작업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달근은

박완식에게 눈짓하고 나서 사랑으로 다가갔다.

"도장 성님 계십니까?"

"천동이 왔는가?"

하면서 내다보던 이경순은 달근이 섰는 걸 보자 웃으면서 말하였다.

"자네 요즈음 아주 발바닥에 곰의 기름이라두 오른 모양일세. 느지막하게 나타나는 걸 보

니."

고달근이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말씀 마슈. 요즈음 철이 어느 철입니까. 원산 말뚝이 제철 만났지요. 명란도 내어야죠, 창젓

도 내야죠, 지금부터 소금 먹은 바닷바람에 말려야 합니다. 철원서 추가령 넘나들기가 추수

철 만난 서생원 파자올시다."

"그렇겠군. 아마 이틀 전에 주전이 모두 나왔지. 내 물건도 좀 해다주게.""여부가 있겠습니

까. 양곡으로 떡억 실어다 드리지요. 선편으로 닿을 겝니다. 서강서 물건 올려두고 이리

오는 길입니다."

"허어 괴이하군. 내 집을 두고 간밤에 어디서 자고 이 시각에 오는가.""말씀 마시우. 혜음령

서 중길이를 만나가지고 분수원에서 함께 술먹구 자벌렸지요. 제가 오후 물때에는 경가

으로 나가야겠기에 이렇게 서둘러서 당도하는 길입니다. 지금은 벌써 늦었지요?"

고달근은 잘도 둘러댔다. 이경순이 말하였다.

"늦었지. 벌써 배들이 강심에 들어섰겠는걸. 자네 우리 물건 좀 보려나."하더니 이경순이 일

어나 한팔 길이의 화승총을 꺼냈다. 거위의 모가지처럼 굽은 개머리 판은 참나무요 그 위

에 박은 총열은 화승을 박을 구멍과 약실로 나뉘어 있었다.

"호오, 이게 화승총이군요."

"그렇다네. 군기시에서도 이렇게 쇠를 다루지는 못할 걸세. 전생이만한 쟁인이 한양에 있을

까. 자네가 화승총을 만들겠다는데 철원서 무엇에 쓰려는가. 자네야 녹림당도 아니고.""저두

한식구죠. 허구 많이는 필요없습니다. 원산포를 오고갈 제 아이들게 들려서 보내면 안심이

될까 해서지요."

고달근이 화승총 가지러 오는 날짜를 알아보려고 말을 냈던 것이라 얼버무렸다.

"걱정 말게. 자네 신표가 있잖은가. 만약에 추가령이나 안변 일대에서 화적을 만나게 되면

장두령이 그냥 내버려두겠는가. 그리고 한양인근에서는 총포를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게야.""

하여튼 이것이 활보다 멀리 나간다네 믿을 수가 없습니다.""활 따위에 비교할 것두 없다네.

대강 표적을 어림잡아 맞추는 게 아니라 눈이면 눈, 콧잔등이면 코 바로 한복판, 이마빡 어

디든 겨냥한 대로 날아가 들어맞지. 철환이라 바람을 타겠는가, 빠르기가 번갯불이니 피할

도리도 없지. 화승총으로 무장한 군사는 예전의 진법으로는 깨뜨릴 수가 없다네."

"아까 들으니 손님이 외루 되어 있다면서요?"

"응, 오늘이 보름이 아닌가? 해서에서 몇사람 오기루 되어 있네. 송도 들러서 올 것이니 중

화참에 당도할 게야."

이경순네 집이 바라보이는 사거리의 북로 쪽에 배를 내는 선주의 집이 있었는데 상고 다

섯 사람이 찾아들었다. 이들은 최형기와 포졸들이었다. 그들은 말 등에 집을 가득 싣고 있었

다. 곁꾼이 나와서 물었다.

"무슨 일루 오셨습니까?"

"실은 우리는 포천 송우점에서 점포를 내고 있는데, 해주로 가는 물품을 탁송하까 하여 찾

아오는 길이오."

"염려 마십시오. 오늘밤에 저희 배가 해주 거쳐서 남포로 하여 평양까지 오르게 되는데 날

짜를 꼭 대어 오셨습니다. 자아, 짐을 부릴까요?"

그들은 화물을 선펴에 탁송한다는 핑계를 대고 저녁때까지 그 집에 머물게 되었던 것이

다. 최형기는 방안에 들어가 앉았고 포졸들은 각자 자기 직무를 수행하러 밖으로 나갔다. 박

완식은 마당에 섰다가 샛강에 물이라도 보러 나온 듯이 집 앞으로 나가서 서 있었다. 아침

햇살이 가녘의 살얼음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왼쪽 길 모퉁이에서 자기의 부하 포졸

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각각 헤어져서 하나는 정자포 쪽으로 다른 하나는 돼지포나

루 쪽으로 걸어갔다. 박완식은 최형기가 이미 당도하여 있다는 걸 알고는 이경순네 여각으

로 들어갔다. 포졸들은 각기 양쪽 나루에 파주목 군사 중에서 뽑힌 정탐꾼이 나갔는가를 확

인하러 가는 길이었고, 돼지포나루에 가는 자는 도중에 장산언덕에 올라 병방 비장에게도

알릴 모양이었다. 정자포가 오리 길 돼지포가 십리 길이었다. 최형기가 새벽잠을 설치고 여

각의 따뜻한 아랫목을 지고 누웠던 참이라 가물가물하다가 깜빡 단잠에 빠졌다. 잠깐 졸았

다고 생각했는데 방물의 칸살이 엇비슷하지 않고 똑바로 비추니 해가 정남에 당도한 것 같

았다. 방물이 열렸다.

"관자 어른, 다녀왔습니다."

"음, 지금 얼마쯤이나 되었느냐?"

"글쎄요. 정오는 아직 안되었을 겝니다. 사시(巳時) 무렵이나 될까요?""나루터에는 아직 별

일이 없더냐?"

"정탐 군사가 이미 마루터에 나가 있었는데 송도 쪽에서는 행객이 아직 건너지 않았답니

다."

"수고하였다."

돼지포나루에 나갔던 포졸이 돌아와서 아뢰었다.

"장단 쪽에서 몇사람 건넜으나 도적들 같지는 않았고 거의가 시골 사람들이랍니다. 장산 언

덕에는 파주목 진영 군사들이 와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이면 뛰어갔다 올 수 있습니다." 이

와 같이 함정을 파고 그 밖으로 촘촘한 명주의 새그물 같은 매복을 둘러쳐놓고 최형기는 기

다렸다. 오후가 되어서야 정자포 쪽의 길에 일단의 상고들이 나타났다. 삽짝사이로 내다보

던 포졸이 최형기에게 들어와 그들이 온다고 속삭였다. 최형기는 밖으로 나가서 길 쪽을

내다보았다. 그는 직감으로 그들이 도적들이란 것을 느꼈다. 머릿수 모두 여덟이었고 한결

같이 말에 올라앉아 있었다. 그들의 행렬 가운데에는 빈 말 두 마리가 부담농을 얹고 끌려

왔다. 맨 앞에서 오는 자는 중치막에 갓을 썼는데 옷자락을 허리 위로 질끈 동였다. 다른

자들은 모두 배자 걸치고 행전을 친 날려한 차림새였다. 최형기는 그들이 이가의 여각 앞에

서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떠들썩하고 왁자지껄하면서 그들은 말짐

도 내리고 말도 끌고 들어갔다. 최형기는 계획대로 고달근과 박완식이 빠져나오기 전까지는

여각을 덮치지 않을 작정이었다. 포구의 네거리는 사방이 휜히 트인 들판이고 갑자기 군사

수십 인이 몰려들면 도적들은 미리 눈치를 채게 될 것이다. 최형기가 염려하는 것은 바로

버들의 총포였다. 그들이 어떤 무기를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이가의 여각이 화승총을 만

들 수 있었다면 분명히 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다. 툭 트인 들판으로 몰려들어가는 군사들

을 향하여 방포해온다면 울타리에 닿기도 전에 많은 수가 살상될터였다. 그는 도적들이 용

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목을 노리기로 하였다. 돼지포나루 쪽이라면 장산 솔숲이 그대로

좋겠고 정자포 쪽이라면 나루터에 몰아넣을 작정이었다. 파주 군영의 군사들 가운데는 활을

가진 살수가 한 오 있으므로 너른 데서 화살을 날리면 여덟 명 가운데 절반은 첫 시위로 쓰

러뜨릴 수가 있을 것이었다. 최형기와 포졸 넷이 한꺼번에 앞마당의 싸리 울타리 가에 서성

대니 여각 주인과 곁꾼은 자못 수상했든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물었다.

"도대체 왜들 그러시우? 배를 기다리려면 저녁이 되어야만 합니다."최형기는 귀찮아서 힐끗

돌아보고 나서 포졸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누구라고 말해주어라. 딴짓 못하도록 단단히 일러두고."포졸이 그들에게로 가더니

마루 위의 여각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댁네가 주인장이슈?"

부릅뜬 눈매며 말본새가 곱질 않아 주인은 아니꼬워서 투명스럽게 답하였다.

"그러우, 까짓 봉물짐 둘 가지구 와서 이 여각 당신네가 샀소? 왜들 남의 마당에서 수군대

고 서성거리는 게야. 딴 손님 오면 어쩌려구."

포졸은 털배자를 좌우로 젖혀 보였다. 안의 허리춤에 주홍빛 오랏줄과 쇠몽치가 보였다.

그는 다시 배자 자락을 여미고 말하였다.

"우리가 여기 놀러 와 있는 게 아니야. 동절에 무슨 꽃놀이 나온 줄 아나. 도적을 잡으러 나

왔으니 주인장도 조력을 해주어야지 만약에 무슨 차질이라도 있게 되면 온 식구가 목에 칼

쓰고 한양 서린방 전옥서로 압송갈 줄 알아.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방구석에 이불 쓰고 엎드

려 있어. 앞았으면 얼른 들어가게나."

주인과 곁꾼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포졸의 말을 듣더니 그가 손짓을 하자마자 불에 덴 것

처럼 화들짝 놀라서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해서로부터 온 길산의 식구들이란 봉산 천둥이 일행이었다.

천동이와 언진산 잠채터에서 나온 조무인 등이 각각 차인 구실을 하는 부하를 데리고 길

을 떠났던 것이다. 천동이 형제들은 전부터 봉산서 해주나 송도까지 내왕한 적이 많았고 한

양 출입도 하였으므로 길도 잘 알고 지방 상인들과도 안면이 넓었다. 그들이 서북과 관북

쪽으로 화승총을 날라가는 일을 맡았는데, 일단 수량이 차면 언진산으로 옮겨가고 각처의

녹림당들은 산에 와서 가지고 갔다. 고달근과 박완식은 건너편의 봉놋방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으며, 그들은 말을 끌어다가 너른 마당의 기둥에 매어둔다, 마구를 끌어내린다, 건초를

갖다 준다 법석이었다.

"송도서 나오는가?"

이경순이가 천동이에게 물었고 천동이는 스스로 부담을 들어다가 사랑 마루에 옮겨놓았

다.

"어제 거기서 잤지요. 아침 먹고 느긋하게 출발해서 지금 오는 길입니다.""박좌장 계시든

가?"

"용만인가 강계인가 가셨다는데 한 열흘 되었답니다."

"그렇군, 결빙철이 아닌가."

"예, 잠상하기 좋은 철이 왔지요. 곧 사행도 있고. 돌아올 때가 되었구먼.""자아, 들어가세."

천둥이가 조무인이를 불러서 사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뒤에 고달근은 뒤

꼍의 전생이에게로 가서 사주전 꿰미를 받야내고 말하였다.

"한식구라지만 인사하면 서로간에 번거로우니 우린 그만 가야겠다. 성님께는 나중에 말씀드

려라."

"허긴 지척에 계시니 나중에 한가할 제 또 오시우."

전생이는 별생각 없이 말하였다. 고달근과 박완식은 말 등에 돈꿰미를 싣고 슬그머니 이

경순네 여각을 빠져나와서 사거리로 내려왔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고 누가 내다보지 않는가

살핀 뒤에 얼른 최형기가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섰다. 밖을 내다보던 포졸이 재빨리 삽짝을

열어 주었다. 최형기는 팔짱을 끼고 마루에 걸터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는 자들이던가?"

최형기가 물었고 고달근이가 말하였다.

"전혀 처음 보는 것들입니다. 아마도 졸개들인 모양입니다. 해서에서 온 장적의 혈당은 분명

합니다. 은자를 부담에 넣어서 총포의 대금으로 가져왔겠지요."최형기는 박포교에게 물었다.

"병장기는 가졌든가?"

"모릅니다. 아마 옷 속에 감췄겠지요. 고작해야 쇠몽치나 환도 등속일 겝니다. 또한 화승총

을 가졌다. 할지라도 일정한 장소에 매복하였다가 에워싸면 미처 부시를 붙일 여유더 없게

됩니다. 어쩌시렵니까?"

"저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린다."

고달근이가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최형기 앞에서는 제법 흉허물없는 태도를 보였

던 것이다.

"관장께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무슨 뜻인가?"

"저들이 타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북방마입니다. 여진의 말은 파발마로 삼백여 리를 지치

지 않고 달리다구 하지요. 만약에 한꺼번에 잡지 못하면 필시 그중에는 탈주에 성공하는 자

들도 있을 게요. 놓치면 우리의 목표인 장길신이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어버리겠지

요."

최형기는 고달근의 말이 이치에 닿는다고 생각하였다.

"저들이 묵게 되다면 밤이 이슥하여 들이치겠지만 금방 떠나버리면 낭패로다."박완식이 의

견을 말하였다.

"글쎄요, 이러면 어떨지요?"

하고 나서 그는 고달근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위험하긴 합니다마는 고성방이 도적들에게로 돌아가 관군들이 정자포에 하얗게 깔리고 파

주 읍내에서도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적당은 영락없이 돼지포나루

쪽으로 달아나게 되겠지요. 장산 솔숲의 양쪽에 매복하여 있던 파주 군사들이 그들을 급습

하면 됩니다."

고달근은 혀를 찼다.

"허허, 그렇게 준마들을 타고 내닫는 무리를 어찌 가로막는단 말이오?"최형기는 방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한참이나 말없이 앉았더니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 방법밖엔 없겠군. 도적들을 총포와 호마를 가지고 있다. 함정을 파지 않으면 우리 쪽이

많이 상하거나 놓치기가 쉽다."

고달근이 말하였다.

"나는 못하겠소이다. 만약 저들이 나를 의심하여 찔러 죽이기라두하면 어쩝니까?"최형기는

냉소를 가득 담고 그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자네는 적당들과 동죄가 되지 않겠나? 공이 없는 혈당을 어찌 사면하며

재물 분급에 공명첩을 내리겠는가."

"예? 아니 그럼 제가 예까지 모셔온 것은 공이 아니란 말씀입니까?""내가 생각하기 나름이

지. 이 여각을 알아낸 것은 박포교의 기찰의 공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 자네는 아직 논상의

보증서를 받지 않았어. 이번 일이 끝나야 모든 문건을 내주겠다."최형기는 여전히 싸늘하게

웃는 얼굴이었고 고달근은 초조해졌는지 박포교와 최형기를 번갈아 돌아보며 입술을 핥았

다.

"허, 이거 소인이 산 미끼올시다. 아무리 토포가 중요하단들 이럴수가 있습니까? 좋소이다,

내 지금 당장 찾아가서 관군이 둘러쌌다고 얘기를 해주지요." 고달근이는 얽은 얼굴을 잔

뜩 일그리더니 씨근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최형기가 조용히 말하였다.

"잠깐 앉아."

"당장 가서 알리라면서요."

"알려야지. 그래야 자네가 공을 세우게 되지. 허나 일에는 순서가 있느니라. 내가 지금 아이

하나를 데리고 장산 고갯마루로 가서 살진을 치고 기달릴 터이니, 박포교는 군졸이 돌아오

면 고서방을 여각으로 보낸다."

"이가와 그들 가족들은 어찌합니까?"

박포교가 물었다.

"저들이 집 밖으로 못 나오도록 둘러싸고 있다가 먼저 이가의 처자식을 잡아 위협하면 쉽사

리 생포하게 될 것이다."

"잘 알아 거행하겠습니다."

최형기가 방에서 나가며 고달근이를 보고 나서 박포교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누구든지 달아나려 하거나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베어버려도 상관없다. 고서방,

나는 자네를 믿네."

최형기는 포졸을 데리고 그들의 여각에서 나와 네거리에서 돼지포나루로 가는 길로 올라

갔다. 그들은 오 리도 못 가서 장산의 언덕에 당도하였고, 들판으로 걸어가던 두 사람을 관

찰하고 있던 병방 비장이 솔숲에서 나와 길 가운데로 나섰다.

"어찌되었습니까. 아이들이 끼니도 놓쳤고 오한이 들어서 불평이 자자합니다.""도적들이 방

금 왔네. 조금 있으면 곧 끝날 게야. 그보다는 자네 오들 가운데 살수가 몇 명이나 되는

가?"

"예, 한 오입니다. 다섯을 뽑아 왔지요."

"솜씨는 어떠한가?"

"조련에 좋은 점을 따낸 군졸들입니다."

"이십 보 밖에서 말을 맞힐 수가 있겠지?"

"물론입죠. 첫 살에 말의 가슴팍을 꿰일 겁니다. 아니, 사람의 눈알에도 꽂을 수 있는 거리

인데 까짓 집채만한 말 몸뚱이를 못 맞추겠습니까?"

최형기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실점하느니 그쪽이 휠씬 낫지. 이쪽 언덕에 살수 한 오와 군사 한 오를 묻어둔다. 말에서

떨어지는 자를 잡되 활은 세 시위 놓는다. 혹시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달려 내려가는 자들

을 잡아야 한다. 고개 아래쪽에 나무 말뚝 사이에다 오라를 줄줄이 묶어서 말이 지나지 못

하도록 해야지. 게서 또한 열 명이 지켰다가 나머지 도적들을 잡고 곧 고개 위의 동료들와

합대한다. 잘 알겠느냐?"

병방 비장이 두 손을 모아 쥐며 군례 올려 답하였다.

"어김없이 봉행하오리다."

"나는 여기서 살진을 칠 터이니 자네는 아래로 내러가서 난항(亂杭)을 쳐두어라." 병방 비

장이 숲속에 있던 군사들을 나누어 아래로 내려갔고, 최형기는 열 사람의 군사를 앞에 늘

어세우고 병장기를 검열하였다. 그는 먼저 살수들을 두어 걸음 나서게 하여 그들의 활과

화살을 살폈다. 그는 절피를 쥐고 시위를 당겨서 강궁인가를 알아보고 전통에서 유엽전(柳

葉箭)을 내어 깃과 촉이 튼튼하고 날카로운가, 하리 화살대는 굽지 않았는가를 살폈다.

그는 그들에게 줌통을 쥔 손의 까지 안에 움켜쥐었다가 쏘고나서 재빨리 화살을 손아귀에서

빼어 연달아 쏘는 습련을 시켰다. 고갯마루에 군사의 매복이 끝났고 아래쪽에서는 파주 병

방이 한줌 굵기의 나무를 쳐내어 토막을 쳐서 말뚝을 만들었다. 군사들은 길 위에다 뾰족히

깎은 말뚝들을 엇갈려서 박고는 그 위에 오랏줄을 이리저리 그물 엮듯 묶어두었다. 말이 뛰

어넘지 못하도록 높낮이와 넓이를 불규칙하게 해두었으니 난항은 원래가 기병을 방해하기

위한 장애물이라 습진할 때 전방에 치는 것이다. 고개 위와 아래의 매복이 끝나자 최형기는

연락하려고 데려왔던 포졸을 박완식에게 보냈다. 포졸은 달려가 박포교에게 알렸고 그가 고

달근에게 말하였다.

"자아, 가서 알리게, 토포장께서 하신 말씀 명심하였겠지.""저들이 의심하면 나는 죽소."

"그럴 겨를이 없을 걸세. 철원의 자네 식구들이야 무사하겠지. 잘 판단해서 공을 세워야지."

고달근이는 끙하고 일어나 삽짝 앞으로 가서 길 건너쪽을 살피다가 다시 말을 끌고 사거리

쪽으로 올라갔다. 이경순네 여각에서는 아무도 내다보는 자가 없었다. 고달근이는 준비하였

던 얘기를 입속을 몇번이나 되뇌이면서 중얼거려보았다. 그가 경순네 여각으로 들어섰으나,

때가 마침 중화참이라 아무도 그에게 주의를 돌리는 이가 없엇다. 이경순의 사랑에는 천동

이와 조무인이가 함께 밥을 먹었고 다른 사람들은 봉놋방에서 떠들썩하며 식사중이었다.

전생이와 장쇠와 두 사람의 풀뭇간 숙수들은 안채의 건너방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고달근이

는 직접 자기가 발설하느니 전생이를 통하여 말을 건네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안채 쪽으로

가서 방문을 열어젖히는데 그제서야 묘옥이가 여문이를 업고 부엌 앞에 섰다가 의아한 표정

으로 바라보았다. 고달근이는 밥을 먹고 있는 전생이에게 재빨리 늘어놓았다.

"이 사람들아 큰탈났네. 관군이 모려오구 있네. 내가 파주 읍내로 나가다가 대산 봉수 앞길

에서 무장한 군사들을 만났는데 마산역의 역졸들이 이르기를 문산포에 해서 녹림당이 왔다

는 적경이 송도에서 왔다네. 그러니 지금 빨리 피해야지." 전생이와 장쇠는 멍하니 바라보

다가 휘닥닥 일어났다. 전생이가 몇마디 더 계속하려고 고달근이를 밀치고 뛰쳐나갔고 고달

근이 따랐으며 묘옥과 장쇠는 달근이 발설한 말을 되씹어 속각였다. 장쇠가 사랑방문을 열

고 말하였다.

"성님, 관군이 몰려오구 있답니다. 송도에서 적경을 받고 파주 관군이 문산포로 오는 것을

고서방이 봤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고서방 다시 말해보게."

이경순이가 장쇠에 뒷전에 섰던 고달근이를 발견하고 그에게 되물었다.

"예, 내가 말을 몰아 대산 봉수대 앞을 지나자니 장교가 수십 명의 군졸을 이끌고 오는데

창검이 번득이고 살기가 등등합디다. 조금 더 내려오자니 곧 마산역인데 어쩐지 께름칙하여

역졸을 가만히 불러서 웬 군사가 출동하느냐고 물으니, 군사들이 주고받는 말 중에 송도에

서 적경이 오기를 해서의 도적들이 문산포 객점거리에 취화중이라 하였답니다. 그래서 정자

포와 마산역 양쪽에서 문산포로 발병하였다구 그랬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드고 마음이 급하

여 말을 달려 되돌아오는데 저들은 보행으로 행군중이라 대번에 앞질렀지요. 지금 오 리 밖

에 오고 있는 중입니다."

"우물쭈물할 시간일 없군."

수저를 놓으면서 천동이와 무인이가 일어났다. 이경순이 고달근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돼지포나루 쪽에는 군사가 없던가?"

"글쎄요. 그건 모르지요."

전생이가 뒷전에서 말하였다.

"여기서는 그쪽밖에 없습니다. 송도에서 적경이 왔다면 이미 강 거너에 군사들이 지키고 있

을 테지요. 여기서 장단을 향하여 돼지포로오르다가 여차직하면 장산을 돌아 종성으로 하여

마전으로 빠지든가 곧장 삭녕으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천동이가 이경순에게 물었다.

"어쩌시겠수? 우리는 지금 출발하렵니다. 뭐 별로 거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말은 한번 굽을

모아 뛰면 수백 리를 쉬지 않고 달립니다."

이경순은 잠시 생각하였다.

"글세 자네들이 떠나고 나면 무슨 증거가 있을까. 우리 여각이야 뭇사라들이 줄지어 들락거

리는 곳이라 화적당의 표시가 난다든가, 양민이 따루 있다든가. 괜찮네, 자네들 달아난 방향

인 알려줄 테니 부지런히 달아빼게나."

조무인과 천동이는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않고 화승총을 묶은 거적짐을 빈 말 들에 꽁꽁

동여매고 부하들은 재촉하여 말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천동이가 마상에서 외쳤다.

"자아, 별일 없으면 산에서 만납시다. 여기도 이제는 더 이상 장사해먹기 글렀으니 산으루

들어오시우."

"글세 우리두 송도에나 나가야겠네."

그들 여덟 명은 말을 타고 짐 지운 말 두 마리를 끌고 서둘러서 돼지나루를 향하여 출발

하였다. 이경순은 장쇠에게 말하였다.

"풀뭇간에 뭐 치울 물건이 있으면 어서 치워둬라. 나도 병장 속의 총포를 다른 데 감춰야겠

다."

"풀뭇간에 사주전판이며 동철이며가 있고 총열 몇 개가 남아 있습니다. 총포를 내주시우. 제

가 한꺼번에 감춰두지요."

그들이 이렇듯 우왕좌왕하는 중인데 장쇠가 집안으로 들어선 장사치 차림의 사내를 발견

하였다. 패랭이에 긴저고리 입고 행전을 친 모습이 장사치는 분명하였으되 짐을 가지고 있

지 않았고, 그 사내 뒤로 또 한 사람이 삽짝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장쇠가 앞으로 나가

면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장사 안합니다. 손님을 받지 않우."

그러나 먼저 들어선 사내는 여각에 들어와 장사를 안한다는데도 어리둥절한 기색이 없이

슬슬 주위를 둘러보며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일행과 만나기로 하였으니 잠시 다리쉬임이나 하십시다." 먼저 들어선 자는 사랑

체 앞에서 안채와 봉놋방 사이의 마당 가녘으로 돌고 다른 자는 그냥 사랑채 앞에 섰다. 그

러지 않아도 관군이 온다 하여 집안이 술렁이던 판이라 전생이가 외팔에 작대기를 집어들

었고 장쇠도 문 앞의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장사 않는다는데 왜 함부로 들어오는 게야."

장쇠가 팔을 부르걷고 문 앞의 사내를 밀쳐내려 하니 사내는 다짜고짜로 발을 들어 장쇠

의 아랫배를 차올렸다. 대번에 장쇠가 어이쿠, 소리지르며 주저앉아버렸다. 전생이가 작대기

를 들어 휘두르면서 봉놋방 툇마루 쪽의 사내 쪽으로 달려드는데 곁에 섰던 고달근이가 슬

쩍 발을 내밀어 딴죽을 걸었다. 전생이가 넘어질 때 워낙 한 팔이라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

을 수가 없어 보기 좋게 땅재주를 넘으며 나뒹굴었다.

"이놈들, 꿈쩍 마라!"

사랑채의 방문턱에 한 발을 내놓고 화승총을 겨누고서 이경순이 외쳤다. 그는 건너편 봉

놋방 앞에 섰는 사내를 겨누고 있었다. 개머리를 쥔 손에 부시가 끼워져 있고, 곧 화승에 시

척하며 불을 당길 자세였다. 삼 보 방포라 하나 장약과 연환이 재어져 있을 터이니 이 보에

불과할 것이다. 박포교와 포졸이 떨어진 거리는 제각기 십여 보가 넘었다.

"발을 조금이라도 떼면 이마빡에 구멍 난다. 너희놈들 관에서 나온놈들이지?" 박포교는 얼

어붙은 듯이 제자리에 섰고 포졸은 여차직하면 다시 삽짝 밖으로 뛰쳐나갈 자세로 연신 곁

눈질이었으며, 고달근이는 이제 자신이 배신을 했던 것이 다 드러나게 되어 안채의 두벌대

위에서 하얗게 질려 엉거주춤하고 섰다. 이경순은 총을 겨눈 채로 장쇠에게 일렀다.

"장쇠야, 어서 일어나거라. 그리고 그놈을 묶어라."

장쇠는 아랫배를 채고는 숨이 콱 질려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주저앉았다가

헐떡이며 일어났고, 전생이는 팔꿈치가 벗겨졌으되 맞은 데는 없어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

때에 안채와 장광 사이에서 환도를 빼어든 포졸이 뛰어나왔고 사랑채와 안채 사잇길로는 쇠

몽치를 든 포졸이 나섰다.

"섰거라, 한 놈이라도 움직이면 네놈은 죽는다."

경순은 곁눈질을 하지 않고 맞은편 봉놋방 앞에 서 있는 자만을 겨누고 있었다.

포졸은 박포교의 눈치만 보면서 병장기를 들고 움찔거렸다. 박완식은 손을 나직하게 들어

서 서 있으라는 시늉을 조심스럽게 보였다. 묘옥은 밥어멈과 함께 부엌 앞에서 여문이를 업

고 떨고 서 있었다. 이경순이 그쪽을 건너다보고 나서 전생이에게 일렀다.

"전생아, 너는 형수와 여문이 데리고 먼저 샛강으로 나가거라. 내 장쇠하구 곧 뒤따라가마."

전생이가 얼른 부엌 쪽으로 가서 묘옥의 팔을 끌고는 좌우로 눈을 돌리며 안채 마당을 지났

다.

"성님, 얼른 따라오슈."

이경순은 쳐다보지도 않고 장쇠를 재촉하였다.

"장쇠야, 그놈을 저쪽 툇마루에다 앉혀라. 너두 앉아"

장쇠가 숨을 돌리고는 일어나서 포졸의 등을 밀었다. 박포교와 포졸이 봉놋방의 툇마루에

앉았고, 그 다음에는 각각 떨어져 있는 고달근과 포졸 그리고 또 다른 포졸 하나를 그 옆에

앉혀야 되었다. 이경순은 대번에 그가 노린 자가 오의 장임을 알아보았고, 포교를 겨누고 있

는 한 다른 자들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을 눈치챘다.

"장쇠는 비켜나라. 네놈이 동무들게 말해라. 나란히 앉도록 해. 딴짓 하지 마라. 마당을 건너

오는 동안에 세 방은 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뒷담을 넘어서 들어온 포졸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먼저 풀뭇간에 들어가

서 숙수 둘을 묶어놓고 삽짝으로 박포교와 포졸이 들어선 다음에 앞마당으로 뛰어들었던 터

였다. 그러나 사랑채의 옆에 바짝 붙어 섰던 포졸 하나는 이경순이 화승총을 겨누고 있음을

알고는 꼼짝 않고 붙어 서서 틈이 보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경순은 그들을 모두 모아다

툇마루에 앉혀둔 다음에 장쇠를 시켜서 차례로 결박하고 나서 빠져나갈 셈이었다. 포졸들과

고달근이가 마당을 건너오고 있을 때 사랑채 옆에 숨었던 포졸이 환도를 휘두르며 이경순의

오른쪽으로 달려들었다. 경순은 얼결에 화승에 불을 당겨 바로 지척에서 환도를 치켜든 포

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포졸이 마루위에 칼을 꽂으며 쓰러졌고 마당에 섰던 포교와 두 포

졸은 그대로 사랑채로 달려갔다. 경순은 미처 장약을 잴 틈도 없이 총대를 휘둘러댔다. 그

앞을 가로막아 서려던 장쇠는 포졸의 쇠몽치에 머리를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다.

박완식은 예도를 빼어들고 마루 위로 뛰어오르고 다른 포졸은 쇠몽치를 휘두르며 이경순의

정명으로 달려들어 갔고 고달근과 함께 섰던 포졸들도 그 뒤를 따랐다. 이경순은 빈 화승총

을 휘두르며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박완식이 포졸들에게 외쳤다.

"생포해라."

박포교는 예도를 이경순에게로 곧장 가리키며 말하였다.

"우리는 한양 포청에서 나온 포도군이다. 항복하여 우리를 도우면 죄를 모면하고 상까지 받

게 된다. 그 자리에 꿇어 포승을 받으라."

그러나 이경순은 마음이 급하여 총대로 앞에 섰던 포졸을 후려치며 달려들었고 쇠몽치를

든 포졸은 옆으로 슬적 비켜났다. 이경순이 그대로 그의 몸을 돌려서 사립문을 향하여 몇발

짝 뛰었을 때 포졸은 뒤에서 쫓아가며 쇠몽치로 이경순의 어깨를 내리쳤다. 이경순이 기우

뚱하더니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아마도 어깨뼈가 부러졌을 터였다. 박완식과 다른 포졸

들이 하늘으 향하여 누워 있는 이경순의 몸 위에 병장기를 들어댔다.

"몸을 묶어라."

이경순은 얼굴을 찌푸리고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경순은 흘깃 저만큼 죽어 넘어진 장쇠의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묘옥과 여문이가 무사히 샛강에 배를 띄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순은 다른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박포교가 부하들에게 지시

하는 중이었다.

"얼른 밖으로 달아난 자들을 쫓아라. 이 집에서 한 놈이라도 놓치면 안된다." 포졸들이 칼

을 경순에게서 거두어 돌아설 때 경순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성한 쪽 손으로 포졸

한 놈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기면서 일어나 그 면상을 들이받았다. 다른 포졸이 제결에 놀라

가지고 있던 환도를 이경순의 옆구리에 찔러넣었다. 경순이 쥐었던 손을 스르르 풀고는 그

대로 넘어졌다. 박완식이 박을 굴렀다.

"이런 못난 것들 다 잡아놓고 죽이다니."

경순은 희미해진 시선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포졸이 그를 살펴보며 말하였다.

"아직 살았습니다."

"글렀다, 어서 달아난 자들을 쫓아라."

그들은 시체를 마당에 버려두고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묘옥과 전생이는 처음에는 문

산포의 네거리에서 어디로 달아나야 할까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고달근의 말을 떠올렸고

묘옥이 천동이 일행이 달아난 돼지포나루 쪽으로 뛰려고 할 대 전생이가 그녕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쪽이 아닙니다. 배를 탑시다."

전생이와 묘옥은 집 앞의 네거리를 가로질러서 그대로 곧장 강둑 아래로 나려갔다.

"배를 배를 찾아야 합니다."

"저기 주낙배가 있어요."

때마침 물때를 따라서 중선이나 큰 배들은 모두 포구를 나간 뒤였고, 각 여각에서 반찬거

리라도 낚느라고 매어둔 주낙배 세 척이 줄에 매어져 풀밭 위에 끌어올려진 것이 보였다.

그들은 아래로 내려갔다. 전생이가 배 한 척을 물 위로 끌어내리고 묘옥에게 일렀다.

"어서 타십시오."

묘옥이 여문이를 업고 배에 오랐고, 전생이는 큰 돌을 집어서 다른 배의 바닥을 부쉈다.

곧 판자가 뚫어졌다. 그때에 여각 쪽에서 총포 소리가 들렸다.

"여문이 아부지"

묘옥이 배에서 내리려 하며 울부짖었다. 전생이는 묘옥의 가슴을 몸으로 막고는 배를 물

가운데로 밀어냈다. 배가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고 전생이가 고물의 뱃전에 허리를 걸친 채

로 딸려 나갔다. 그는 간신히 배 위에 올라앉아 노를 끼우고 바삐 젓기 시작했다. 그들이 샛

강의 강심을 타고 큰 강 어귀로 나갈 때 묘옥은 길로 쏟아져 나오는 포졸들을 바라보았다.

묘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보"

전생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노를 저었다. 그는 쏘는 듯한 눈으로 묘옥을 바라보며 말하

였다.

"뱃전을 꼭 잡고 계십시오. 여문이가 있잖습니까."

묘옥은 여문이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여문이는 놀랐는지 어미에게 안겨서 꼼짝도

않고 있었지만 강물과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포졸들은 배를 찾았으나 모두 바닥의

판자가 뚫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도적의 식구가 탄 배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포졸이

말하였다.

"여기서 말을 달려 정자포나루까지 가서 배를 내어 뒤를 쫓을까요?"박완식은 이미 그런 일

이 부질없는 짓임을 알고는 있었으나 하는 수 없이 말하였다.

"좋다, 나루까지 어서 달려가라."

그러나 나루터는 문산포에서 샛강의 가녘과는 동북방으로 갈라져서 그가 닿기 전에 주낙

배는 벌써 샛강을 벗어나 임진강 본류로 들어설것이었고, 그 인근에는 무인지경에 배를 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이경순네 여각으로 돌아가 경순과 장쇠의

시신을 수습해두고 집뒤짐을 시작하였다. 천동이와 조무인은 여섯 부하들과 함께 나는 듯이

말을 몰아서 되재포나루를 향하였다. 준마들은 대번에 장산 언덕을 뛰어넘고 있는 참이었다.

솔솦 사이에 숨이 있던 파주 군병은 최형기의 지시대로 그들이 거의 언덕 위에 올라섰을 때

를 겨냥하고 있었다. 최형기는 살수들을 거느리고 언덕의 오른편에 비죽이 솟은 바위 뒤에

서 기다렸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최형기가 내다도다가 갓을 쓴 천동이가 가늠해두었

던 소나무 아래로 지나자 손을 들었다. 화살 두 대를 손에 거머쥐고 한 대는 시위에 먹인

살수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최형기가 손을 내렸고 유엽전이 날아가서 천동이의 말과 몸에

박혔다. 다시 두 번째의 화살이 날아가 조무인의 말과 사람 몸에 박혔다. 천동이의 말은 울

부짖으며 앞굽을 번쩍 들더니 모로 넘어졌고 천동이는 허벅지에 살을 맞은 채로 말 위에서

내동댕이쳐졌다. 조무인은 말타기에 익수지 않은 터였는데 어깨와 옆구리에 화살을 맞고 목

덜미와 허리에 세 대의 화살을 맞은 말이 그대로 고꾸라지자 안장에 앉은 채로 한쪽 다리가

말에 깔리며 넘어졌다. 아직 공격받지 않은 부하들이 언덕 정상을 넘어 비탈로 내려설 때에

살수들은 뒤로 돌아서 마지막 화살을 일시에 쏘아 보냈다. 두 사람이 말에서 떨어졌고 나머

지 넷은 정신없이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러나 평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말뚝 사이에

쳐놓은 난항줄에 말발굽이 걸려서 말과 사람이 모두 엉겨버리고 말았다. 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숲에서 장창 들고 매복하여 있던 군사들이 할 일이란 우 하니 몰려나와 부상

을 입은 천동이와 무인을 일으켜 포박하는 일이었고, 짐 지고 왔던 말 두 마리를 끌어 잡아

다 매 놓는 일뿐이었다. 언덕 아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 난항줄에 얽혀서 허우적거리던

천동이의 부하들을 뒷덜미도 잡아채고 칼로 위협도 하여 끌어내는 것이 고작 할 일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날뛰는 말들을 차례로 수습하였으나 말 두 마리는 부상하여 못쓰게 되었으

니 파주 진영 군사들의 술 안줏감이 생긴 셈이었다. 최형기는 병방 비장이 여섯 명의 도적

들을 포박하여 끌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였다. 한 놈도 남김없이 여덟 명의 도적들

을 포득했던 것이다. 최형기가 바로보니 허벅지를 맞은 자는 별로 상처가 심하지 않았으나,

옆구리를 맞은 자는 쉴새없이 어어, 하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등뒤를 정통으로 꿰인

자는 방금 절명하였고 다른 하나는 어깨를 화살에 박힌 채로 끌려왔다. 다른 넷은 까진 데

하나없이 말짱하였다. 최형기는 일렬로 꿇어앉혀진 도적들을 휘둘러보고는 아무 말도 시키

지 않았다. 최형기가 병방에게 말하였다.

"모두들 이가의 여각을 들러서 관아로 돌아간다. 우선 도적들의 물건을 빠짐없이 챙겨서 말

에 실어 관아로 보내두어라."

"부상자는 어찌할까요?"

병방이 조무인과 다른 부하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최형기는 조무인의 옆구리를 살펴보

고 상투를 잡아 머리를 뒤로 젖혀서 희미해진 눈빛을 들여다보았다. 화살이 박힌 옆구리에

서는 피와 내장이 비죽이 빠져나온 게 보였다. 최형기가 상투를 놓아주자 조무인은 신음소

리도 없이 널브러졌다.

"이 자는 곧 죽겠군. 걸을 수 없는 자는 머리와 다리를 들고 운반해라. 시체도 그와 같이 하

고."

최형기가 다시 천동이를 돌아보았다. 그는 병방에게 천동이를 손가락으로 지시하여 말하

였다.

"이 사람은 말에 태워서 관아로 데려가라. 하옥하지 말고 우선 의원을 불러다 화살을 뽑고

잘 치료해주어라. 내가 가서 직접 문초할 것이니 누구를 막론하고 접근시켜서는 안된다."

최형기가 군졸 다섯을 취하여 이가의 여각으로 내려갔고, 병방은 도적들과 말과 시신을

추려서 대산 봉수대 쪽으로 질러서 관아로 향하였다. 최형기가 이가의 여각에 이르니 박포

교는 시무룩한 얼굴로 섰다가 군례를 올리며 전적을 보고하였다.

"아뢰오, 이가는 저항이 심하여 혼전중에 죽고 중노미 하나가 죽었습니다. 집뒤짐을 해보니

화승총이 세 자루가 나왔으며, 풀뭇간에서 사주전 백여 냥과 주전판을 찾아냈습니다. 숙수두

명은 잡아 포박하였으며 이가의 처자식과 하인 되는 놈은 도주하였습니다."최형기가 눈썹을

꿈틀하더니 크게 꾸짖었다.

"이런 못난 놈, 내가 그렇게 일렀거늘 도대체 우리가 얻은 것이 무어란 말이가. 도적들의 장

물 와주 노릇과 총포를 만들어 대었다면 필시 북쪽의 곳곳에 있는 적당들의 굴혈을 소상히

아는 자가 틀림없을 것이다. 박포교 네놈이 죽더라도 이가는 살려서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아직 장길산의 은신처도 모르는데 이가의 처와 하인을 놓쳤다면 그들은 필시 조심하여 꽁꽁

숨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군율은 잘 알렷다?"

"죽여주십시오"

구석에서 질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섰던 고달근이 허리를 굽히며 말하였다.

"이가가 워낙 포악하여 총을 놓으며 저항하였으므로 그 틈에 처자가 달아난 게올시다. 하오

나, 제가 잘 아는 바로는 계집은 장적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또한 그의 혈당들과

도 깊은 연계는 없었사옵니다."

최형기는 못 들은 척하고 달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시체 옆에 가서 얼굴을 내려다보

았다.

"이 자에 대하여 인근 여각에서 샅샅이 알아오라. 그리고 파주 군사 두 사람은 남아 이 집

을 지킨다. 아무도 안으로 들이거나 물건이 없어져서도 안될 것이다." 파주 관아에 들어선

최형기는 다른 자들은 버려두고 천동이를 뒤뜰로 끌어내어 박완식과 단둘이서만 심문하였

다. 천동이는 화살을 뽑아 고약을 발라주고 포승으로 묶거나 의관을 벗기지도 않고 형틀에

매달지도 않았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보아하니 자네가 소두령인 모양인데 내가 알고 싶은 얘기를 해준다면 목숨도 살려주려니와

오히려 부귀를 누리게 될 것이다. 대답하겠는가?"

천동이는 고개를 떨구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박완식이 물었다.

"어디 사는 누구인가?"

천동이는 역시 고개를 들지 않고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네 졸개들에게 한나절만 캐어보면 다 나오게 될 것이고 네게는 나중에 확인을 받으면 되겠

지. 지금은 그냥 하룻밤을 넘기기가 무엇하여 건성 묻는 것이지만, 내일 포청에 닿는 대로

나는 손을 뗄 게야. 포청에 가면 사람을 길들이기에 이골이 난 형리들이 여럿 있다. 자네가

내게 실토할 뜻만 비친다면 나는 자네를 포청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않고서 저 고서방처럼

토포군의 기찰로 일을 시킬 작정이다."

최형기가 부드럽지만 위엄있게 말하자 박완식이가 곁에서 으르렁거렸다.

"어디 사는 누구냐고 물었을 텐데. 너희들 해서에서 왔지?"천동이기 고개를 들었다.

"봉산 가서 천동이를 물으면 다 압니다. 자그마한 풀뭇간으로 먹고 살지요.""너희 혈당들이

은거한 것은 어디인가?"

박완식은 물음에도 천동이가 별로 놀라지 않고서 되물었다.

"혈당이라뇨?"

"네가 해서 도적의 혈당이란 것을 잘 알구 있어."

천동이가 갑자기 땅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제가 은자 약간을 잠채하여 그것 때문에 잡혀온 줄로 알았더니, 도적이란 말씀은 천만 뜻

밖이올시다. 봉산 관아에 파발을 띄워서 알아 보십시오. 저는 어엿이 수철점을 내고 있는 광

주올시다. 이번에 새로이 은줄을 잡았기로 관에 신고하여 세를 물어야 하는데도, 이를 보고

욕심이 생겨서 잠상하려던 것입니다. 저 아이들은 모두 우리 광산의 광부들이구요."최형기는

천동이의 둘러대는 말을 듣고는 껄걸 웃었다.

"그렇겠지, 광주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이가에게서 은자를 주고 샀던 총포는 아마 꿩사냥에

라도 쓰려던 모양이군."

하고 나서 최형기가 박완식에게 이렀다.

"비국의 명이다. 어서 봉산에 파발을 띄워 이 자의 가산을 적목케하고 관군을 보내어 모조

리 토포하도록 일러라."

박완식이 돌아서서 뒤뜰로 나서려고 하자 천동이가 갑자기 그의 바짓가랑이를 거머쥐는

것이었다.

"어이구 잠깐만 기다려주오."

최형기가 눈짓을 하여 박완식은 멈추어 서서 천동이에게 물었다.

"적굴이 어디 있느냐?"

"예, 소인이 그저 잠채로 밥 먹고 산다던 얘기는 거짓이 아니올시다. 다만 산간에서 그러한

재물을 다루다 보면 자연히 무뢰배나 녹림패가 넘보는 터이라, 어느 쪽이든 세에 기대지 않

고서는 이러한 업을 해먹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수철점은 곡산 은금동령에 있는데 버젓이

세금 내고 관가의 허가를 받고 있는 굴이올시다. 다만, 수안 언진산의 은점은 허가를 내지

않은 잠채굴입지요. 저희 두 군데 광산에 광부들이 한 오십 됩니다만 그들의 전력이 어떠

하였는지는 묻지 않지요. 개중에는 나라에 중죄를 저지른 자들도 있을 테고 살인 도주한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시시콜콜히 따졌다가는 아무도 그런 외지고 험

한 산중에서 땅 파먹는 짓은 하려 들지 않습니다. 고향이 어딘지 성자가 무언인지도 모르지

요. 호적의 누락자가 대부분이지요. 그런 사정은 곡산이나 봉산의 수령들이 더 잘 압니다.

지희가 화승총을 구하려던 것은 스스로 자위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끔 은자를 노린 화적들이

노상에 나타날 적도 있고 또 언제 광산을 들이치게 될지 모릅니다. 은금동령의 수철점에는

저희 가형이 나가 있고, 언진산 은점에는 아까 중상을 입었던 조서방이 나가 있었는데 저는

봉산서 작은 객점과 풀뭇간을 열고 있었습니다. 저희 식솔들 가운데 도적이 있다하면 저도

그러려니 여기려니와, 제가 도적의 혈당이라 함은 당치 않소이다." 천동이가 그대로 줄줄

풀어서 이야기하는데 최형기는 초조해하거나 동요하는 낯빛을 얼굴에 들러내지 않았다. 최

형기는 턱수염을 만지면서 일부러 딴전을 피우고 있다가 그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물었다.

"해서에 있는 장길산은 언제 만났나?"

"장길산이라뇨? 그자가 구월산에서 잡혀 죽었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참다 못한 박포도

부장이 천동이의 부상당한 허벅지 위에 목화 신은 발로 얹고서 힘껏 내리누렀고 천동이가

드높게 비명을 내질렀다. 최형기가 손을 내저어 그만두라는 시늉을 보였다. 박완식은 발을

떼었다.

"자꾸 거짓말을 하면 더 이상 묻지는 않겠다. 그러나 포청에 들어가면 너는 꿈에서 본 것까

지 실토하게 될 게야. 고달근이란 자를 아는가?"

"모릅니다. 이경순의 여각에서 처음 보았소."

최형기는 고달근이가 아직은 장적의 굴혈에 닿는 관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최형기는

파주 관아에서 천동이에게 이런 식으로 묻다가는 한 달이 가도 아무 소리도 얻어 듣지 못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이가의 식솔을 추적하려던 군사가 돌아와 이경순의 처자와

하인이 타고 달아난 주낙배만 발견되었다고 아뢰었다. 주낙배는 숯포의 벼랑 아래 바위 틈

에 엎어져 있더라는 것이었다. 경군은 일단 생포된 도적들만 추려서 바삐 한양으로 돌아왔

고, 그날부터 국문이 밤새껏 있었는데 새벽이 되기도 전에 수안 광부들과 천동이의 대질로

써 그들이 장길산과 연계되었음이 드러났다. 천동이는 압슬형을 받아 두 다리가 못쓰게 되

어버렸으니 정강이는 사금파리로 모두 찢겼고 무릅뼈가 부서졌다. 그는 장길산이 전에는 자

비령의 심원골에 마을을 이루어 살다가 몇 년 전에 해서 지경에서 모두 옮겨 갔는데 그곳이

강원도인지 함경도인지 아니면 평안도인지 잘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런 말은 부하들과도 앞

뒤가 맞아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그는 장적과 연루된 자로서 그가 기억할 만한

자들의 이름과 그가 사는 고장을 댔다. 무론 죽은 이경순을 비롯하여 소굴이 평안도 어딘가

의 해변가에 있다는 수적 우대용과 낭림산맥 일대의 녹림당, 함경도 산간 일대의 녹림당, 그

에 덧붙여서 송도 거부 박대근이며 경강의 모신이 이름까지 나왔다. 그러나 천동이의 자백

은 언진산과 곡산 수철점의 얘기 외에는 별로 뚜렷하게 아는 바가 없이 쓸데가 없었다. 최

형기는 박대근이나 우대용이나 모신에 관하여는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만약에 위에서 마

음이 읍하여 우선 그자들부터 잡아들이라고 한다면 명을 거역할 수가 없고 그들을 건드리게

된다면 장길산은 더욱 깊숙하고 먼 곳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길산을 얻은 뒤에

동조자들을 잡는 것이 바른 순서일 듯하였다. 최형기는 그의 기찰첩에 모신 박대근 우대용

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최형기는 다시 포도대장에게 아뢰어 당상비국에서 허락을 하신다면

그믐께에 함경도로 나아가 장적과 직결된 자들을 잡아내어 굴혈을 소탕하겠노라 진언하였

다. 비국에서 답이 내려오기를 경군은 역시 움직일 수 없으며, 최형기에게 내린 각 지방 군

영에서의 발병권과 지휘권이며 생살여탈을 마음대로 하고, 지방 수령은 무조건 그에 협조하

라던 비관은 이번에도 유효하다고 알려왔다. 최형기로서도 그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는 이

번에도 살주계 때부터 그의 가장 믿을 만한 오른팔이었고 구월산 토포 때에는 칼날 같은 기

찰꾼이었던 박완식 포도부장을 대동할 작정이었으며, 포청 포교들 가운데 둘은 무예에 능한

자로 그리고 다른 둘은 방포술에 능한 자를 뽑을 셈이었다. 고달근이가 이제는 장적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미끼였다.

 

2

최형기가 당상비국(堂上備局)의 비관(備關)을 가지고 고달근이를 안내인으로 삼아서, 박완

식 부장포교 등의 경군(京軍) 일개 오(伍)를 거느리고 한양을 출발한 것은, 숙종 십팔년인

인신(壬申) 십일월 말쯤이었다. 최형기는 이미 고달근에게 논공행상의 보증서와 파주 이경순

여각의 재산 반분에 관한 문건을 써주었고, 도적들이 토포될 때마다 그 재산의 반분을 해주

겠다고 약속한 뒤였다. 최형기는 장길산을 잡기 전에는 어떠한 다른 혈당들도 건드리지 않

을 작정이었다. 그를 잡기만 한다면 다른 자들은 저절로 흩어져버리거나 자멸하게 될 것이

다. 고달근은 원산포 객점의 이시흥과 연이어서 고원 객점주를 잡게 되면 장길산의 은신처

는 저절로 알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최형기 일행은 한때 고달근의 거점이 되었던

포천길을 피하여 대탄나루를 건너서 연천으로 하여 철원까지 나아갔다. 철원에 이르자 고달

근은 가족은 물론이요 그의 차인 행수인 박거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최형기와 박포교의 경

군을 경강 장사꾼이라고만 해두었다. 달근은 보통 때와 같이 말을 내어 추가령으로 하여 원

산포에 물건을 하러 간다고 식솔들에게 말하였다. 철원서 평강 거쳐서 분수령 마루턱에 닿

기까지가 백십 리 길이요, 거기서부터 추가령 구조곡의 꼬불꼬불한 계곡을 비집고 나가는

길이 백여 리요, 그곳을 나서야만 겨우 골짜기 초입의 용지원(龍池院)에 당도하게 된다. 용

지원에서 안변(安邊)까지가 다시 오십 리 길이었다. 그들이 분수령을 넘은 것이 십이월 초사

흘이었다. 평강을 지날 때부터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더니 분수령을 넘어 삼방점(三防店)에

이르자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왔다. 최형기는 두툼하게 털을 댄 남바위를 쓰고 솜누비

두루마기를 입었고, 고달근이는 아예 남바위 쓰고 털배자를 걸쳤으며 경군들은 패랭이에 누

비 긴저고리를 입었다. 말은 훈련원의 준마와 달근네서 내어온 호마였으나 눈에 말의 정강

이까지 깊숙이 빠지는 판이라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날씨가 개기를 기

다리며 삼방점의 작은 마을에서 이틀을 허비하였다. 폭풍이 멎자 그들은 부옇게 동트기 시

작할 때 떠나서 중방 하방을 지나 풍류산 어름에 가니 벌써 겨울 골짜기의 짧은 해는 산 너

머로 기울어져버렸다. 인근의 화전민 귀틀집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시 새벽에 떠나 용지

원에 이르니 또한 캄캄한 밤이었다. 그들이 추가령 구조곡을 빠져나오는데 무려 나흘이 걸

린 셈이었다. 최형기 일행은 용지원서부터 평탄한 길을 힘껏 달려서 덕원(德源) 고을에 하루

만에 당도하였다. 최형기는 파주에서처럼 우선 다른 사람들은 주막에 남겨두고 박포교만을

데리고 관아로 찾아갔다. 덕원은 도호부(都護府)라 부사가 있었는데 그는 퇴청하여 잠을 자

다가 병방의 안내를 받은 최형기를 맞았다. 최형기가 마루 아래서 군례를 드리고 비관을 올

리니 부사는 그제서야 최형기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부사는 비관에 적힌 것으로 미루어 앞에 있는 사내가 토포장이라 여겼고, 당상비국에서는

그에게 모든 거병의 지휘 책임을 맡기라고 되어있어 선전관이나 첨사쯤에 버금가는 무인으

로 여기는 눈치였다. 최형기는 공손히 말하였다.

"소인은 전 포도청 종사관이었고 저 해서 등산곶 만호였으며, 지금은 비국의 명에 따라 응

모한 토포장 최형기라고 합니다. 달포 전부터 묵적 장길산의 토포가 시작되어 이미 근기지

방에서 그의 수하 혈당들을 잡아냈습니다. 지금 덕원부의 원산포에 또한 장적의 혈당들이

열어 둔 객점이 있어 안전께 아뢰고 그들을 포득하려 함입니다.""그러신가..... 내가 부임한

지 두 해나 되었으나 도적이 있단 말은 모 듣고, 다만 원산포에 어염의 이를 다투는 객상

과 점주들이 들끓는다고만 알았더니, 토포장은 어디서 그러한 기찰을 얻었소?"

부사가 자못 떨떠름하여 미간을 찌푸리며 아까보다 위압적으로 최형기에게 물었다. 최형

기는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천천히 말하였다.

"사또께서는 비국의 비관을 보셨겠지요. 토포에 관한 것은 모도 저의 책임이고 군병을 발병

하고 지휘하는 일까지 모두 제게 일임하시면 됩니다. 기찰이 어떠한지 그가 어찌어찌 장적

과 연루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사또께서 아실 필요가 없소이다. 장적 포득에 대한

일은 모두 비변의 기밀이올시다. 관찰사께도 장길산이 잡힌 연후에 장계를 올리라는 하명

이오."

부사는 최형기에 비관을 돌려주었다.

"내가 어찌하면 좋겠소?"

"변복 장교 다섯을 내어 원산포의 객점주와 그 가족 및 곁꾼들을 체포하도록 해주십시오.""

내일 등처하자마자 잡아들이면 어떻겠소?"

부상의 어정쩡한 답변에 최형기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윗목에 꿇어앉은 병방을 향하여

말하였다.

"병방은 듣거라. 지금 당장 내가 이른 대로 군관을 거느리고 나아가 날이 새기 전에 잡아들

이도록 하라."

병방은 아절부절 못하면서 부사를 바라보았고 덕원부사도 하는 수 없이 발하였다.

"어서 시행하라."

"안전께서는 소장의 방자함을 꾸짖지 마소서. 군령이 지엄한즉 만에 하나라도 포적에 실수

가 있을까 걱정이올시다. 이만 물러갈겠습니다."

최형기는 병방으로 하여금 곧 장교들을 모아 그들의 뒤를 따르도록 하였다. 최형기는 고

달근의 말을 들어서 이시흥의 원산포 객점에는 북관이나 송도로부터 온 상고와 차인배들이

들끌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해치우지 못하면 오히려 개미굴을 쑤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우선 모두 잡아들여 장적의 토포가 벌어지는 날까지 가두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

러자면 절대로 소문을 내서는 안될 것이었다. 최형기는 이시흥이를 체포하는 죄목을 사주전

의 거래에 관한 건으로 해두고 싶었다. 그러고는 심문이고 무엇이고 기다리지 않고서 고원

의 객점을 점거하여 길산의 굴혈을 향하여 곧바로 쑤시고 들어갈 작정이었다. 최형기는 또

한 이시흥이가 무진년 미륵도의 난리 때에 삭녕 장포에서 도망친 검계원이었음을 고달근에

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김시동과 더불어 어영청 아병이었으며 당시의 그의 소임은 장

포인들을 인솔하여 앙주 관아를 급습하는 일이었다. 횡성서 잡힌 오경립 이정명 등이 이미

그들이 도망한 뒤에 조무인 이시흥 등과 오락가락하며 다시 연계하였음을 실토하였던 터였

다. 살주계와 검계와 그리고 무진년의 미륵도와 장길산의 혈당들이 수년 동안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음을 최형기는 수년 전부터 알아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한낱 포도 종사관으

로서 조정의 파쟁과 인맥에 휩쓸려지 않기 위하여는 공연히 숨어 있는 종기를 건드려서 짜

낼 필요가 없었을 뿐이었다. 최형기는 전과 같이 국본을 받치고 나라의 안위를 튼튼히 하겠

다는 어리숙한 소명감에 불타는 풋내기 무장이 아니었다. 그는 갑자년에 미묘한 조정 대신

들간의 힘의 균형에 의하여 희생되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다만 장길산을 잡아내고 싶었

다. 팔도에 떠들썩한 그의 이름이 최형기의 토포에 의하여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그는 자

신의 검에다 대고 장길산을 언젠가는 꼭 잡아내겠다며 몇번이나 맹세하였던 것이다. 최형기

는 무엇보다도 길산의 아우이며 구월산 두령이던 마감동과 한판을 겨루었던 터였다. 아무리

그 스스로 신명을 바쳐서 지키고 있는 조정에 대한 충심이 있다 할지라도 마감동과 같은 자

의 죽음은 어쩐지 그의 마음을 썰렁하게하는 데가 있었다. 그는 웬일인지 마감동을 베던 자

신의 마지막 칼날이 잊혀지지 않았고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최형기로서는 그때가 자신의 환

로를 열어 출세를 하게 될 유일한 기회였고 이제는 다 사라졌음을 알았다. 이제 와서 병수

사에 오르는 길은 그의 신분으로는 한계가 있는 일이었으며, 그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더구

나 그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광남의 문하였다는 오점이 남아 있진 않은가. 그러나 최형기에

게는 거의 반평생을 포도관으로 살아온 만큼의 집념이 있었다. 그 집념이란 마치 큰 산맥의

산주로 군림하여 무적의 왕이 되어 있는 호랑이를 잡으려는 사냥꾼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었

다. 범의 고기는 맛도 없고 대금이 되지도 않아서 사냥꾼에게 직접 돌아오는 무슨 큰 이득

이 있는 바도 아니지만, 그는 언제나 짐승의 미간에 탄환 구멍을 내어 그것을 쓰러뜨리고

드디어는 무력해진 짐승에게서 가죽을 벗겨내는 것이 원일 뿐이다. 최형기의 바라는 바로는

장길산은 그에게 잡혀서 짧은 칼을 목에 걸치고 형기의 말 궁둥이께에 매달려 압송되는 일

뿐이다. 그런 연후에야 최형기는 마감동에게 날렸던 스스로의 비겁한 칼날을 잊을 수가 있

을 것 같았다. 병방이 장교 한 명을 포함한 덕원부의 군사 다섯을 거느리고 왔으며, 최형기

는 고달근이를 앞세우고 박완식 및 경군 다섯을 데리고 함께 원산포로 나아갔다. 그들은 하

루 종일 용지원에서부터 말 타고 달려왔고 이제는 늦은 밤이라 자시가 가까워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피곤하였다. 그러나 도적들이 기미를 알아채기 전에 포도의 기선을 잡아야 했

으므로 이제 밤을 넘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최형기의 계획으로는 그들을 우선 잡아다 놓

고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곧장 고원으로 달려가 고원 객점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하루도 빈틈을 줄 여유가 없었다. 포구는 어둠에 덮여 있었고 밤 밀물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바다 위에 고깃배에 불빛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으며 명태를 말리는 비린내가 풍

겨왔다.

"모두 자구 있을 겁니다. 제가 이가의 방으로 안내할 터이니 우선 그놈부터 잡아야 합니다."

고달근이가 적전내를 건너면서 최형기에게 말하였다. 그들은 객점거리의 초입에 있는 이시

흥이네 건어물 여각 앞에 당도하였다. 주위는 쥐죽은 듯이 고요했고 불을 켠 집도 보이지

않았다. 바닷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길 가운데를 휩쓸며 지나가고 있었다.

"각 방 앞에마다 두 명씩 가서 지켜라. 박포교는 이 집의 차인배들을 잡아내고 병방은 묵고

있는 자들을 잡아낸다. 이가는 고서방과 내가 맡을 것이다." 최형기가 속삭였다. 그들은 점

포의 곁에 달린 삽짝문을 열고 발소리를 죽여서 여각 마당 안으로 몰려들어갔다.

"저기가 봉놋방이고, 저쪽이 차인들이 기거하는 방입니다. 관장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들은 제각기 맡은 장소를 찾아 흩어졌으며 최형기는 고달근이를 따라서 안채의 점주의

방 앞에 가서 섰다. 최형기가 미닫이를 열었다. 안에서는 높다랗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최형기는 눈짐작으로 주인이 아랫목에서 혼자 자고 있는 것을 알고는 나직하게 말하였다.

"주인장, 일어나슈."

최형기는 자고 있는 자에게로 다가들어 발로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다시 말하였다.

"일어나오, 좀 봅시다."

"어어"

선잠을 깬 이시흥이가 눈을 뜨다가 어둠식에 우뚝 섰는 두 사람의 자취를 보자 벌떡 일어

나 앉으며 부르짖었다.

"누, 누구요"

시흥의 목에 와서 닿는 것이 싸늘하고 뾰족한데 들리는 음성은 더욱 차가웠다.

"모가지를 도려내기 전에 잠자코 앉아 있거라."

이시흥은 그래도 용력이 있는 사내였고 젊은 혈기로는 시동이나 산지니에 못지않던 사람

이었다. 그는 얼결에 시방 여각 안에 명화적이 들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다시 침착해져서 말하였다.

"칼은 거두고 돈이나 포를 내라면 다 내주겠네. 어느 곳 식구들인가?"최형기는 대꾸 않고

달근에게 일렀다.

"불을 켜라"

달근이 쌈지를 내어 부시를 시척하더니 등잔의 불을 켰다. 방안이 어슴푸레하게 밝아지자

이시흥은 불을 켜던 사내가 철원의 고달근임을 알아보았다.

"아니 고대인이"

고달근이는 멀뚱한 시선으로 이시흥을 거넌다보았다. 최형기가 칼을 시흥의 뒷덜미에 갖

다 댄 채로 허리춤에서 오라를 내어 달근에게 던졌다.

"단단히 포승을 지우고 입에다 재갈을 물려라."

달근은 포승을 집어다 시흥의 팔을 뒤로 꺾어서 묶기 시작하였고, 시흥은 그제서야 뒤에

서 칼을 겨누었던 자를 올려다보았다. 시흥이 최형기에게 물었다.

"한양서 왔군. 관군인가?"

"그래, 너희 장길산 혈당들을 모조리 잡혔다. 고성방은 관군의 길잡이가 되어 큰 공을 세웠

으니 너도 투항해서 공을 세우라."

이시흥이 눈을 모로 떠서 달근이를 흘기며 씹어 뱉었다.

"더러운 놈,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고이 살아남을 줄 아느냐. 이제 철원의 너희 식솔들은

젓을 담게 될 것이다."

최형기가 손을 날렵하게 내밀더니 이시흥의 목을 슬쩍 움켜쥐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 사

이에 그의 울대 급소를 쥐고 지그시 힘을 주어 눌렀다. 시흥은 숨이 꽉 막히고 눈앞이 캄캄

해지면서 온 삭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형기가 조용히 말하였다.

"이봐라, 우리는 더 이상 발고자가 필요없다. 두령은 모르거니와 네 따위 하수는 잡히는 대

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 어떤가 원산포 앞바다의 명태밥이 되어 한양 부자들의 밥

산에 오르고 싶은가."

최형기가 이시흥의 목에서 손을 떼자 시흥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긴 숨을 토해냈다. 고

달근이가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시흥의 옷가지를 찢어 뭉치자 최형기가 손을 들어 제

지하고 다시 물었다.

"이 집에 네 혈당들이 몇이나 묵고 있는가?"

"일하는 아이들과 송도 장사치들밖엔 없소."

"장사치들은 몇 명인가?"

"예, 송방 차인 두 사람이오."

"네 식구들은?"

"차인 셋과 아이들 둘입니다."

최형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달근이는 이시흥의 입에 뭉친 헝겊을 틀어넣고 엇갈려서 목

뒤에다 묶었다. 그들이 잠시 앉았더니 미닫이가 열리면서 박완식이 말하였다.

"모두 일곱 놈입니다. 결박을 지어두었습니다."

"음, 이 방의 장부와 재물 등속을 모두 뒤짐하고 나서 부의 방교와 군사를 남겨두고 물려간

다."

그들은 문갑을 부수고 그 안에 있던 장부와 궤 속의 은자며 돈을 모두 뒤져냈다. 고달근

이는 집뒤짐에 가장 열심이어서 관솔불을 밝혀서 광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문건에 의하면

모든 혈달들의 재물의 반은 그의 차지요, 반은 토포금이 되는 까닭이었다. 덕원부 관아에 돌

아와서 다른 자들은 모두 하옥시키고 이시흥은 결박을 지은 채로 경군이 잡아둔 객사의 사

처 방에 함께 데리고 갔다. 뒤늦게 병방이 차려서 갖다 준 다담상이 나와서 그들은 오랜만

에 화주로 속풀이를 하였다.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최형기는 이시흥을 간단히 심문하였

다. 시흥은 길산의 은신처를 아는 자는 고원 객점주 김선일이라고 대답하였다. 선일이 한 달

데 달포쯤은 장길산에게 가서 있다가 돌아온다는 것이었고, 길산이 두어 달에 한번씩 고원

과 원산포를 둘러본다는 얘기였다. 고달근이의 진술과도 부합되는 얘기라 최형기는 이제 장

길산의 발치에 다가서고 있다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미 범의 굴에 가까워서 노린내

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최형기는 또한 이시흥의 진술 끝마다에서 중요한 단서를 잡아

낼 수가 있었다.

"봉산 천동이 형제를 아는가?"

"광주이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들도 잡혔다. 천동이가 말하기를 장적이 자비령 심원골에서도 도계를 넘었다던데 언진산

을 넘으면 양덕(陽德)밖에는 갈 곳이 없다. 길산이 지금 양덕에 은신하고 있다면서?" "아니

오, 그럴 리가 없소!"

이시흥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는데,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뜨거운 물을 삼킨

것 같은 충격의 역연하였다. 최형기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으나 자신이 적굴에 가까이 왔

다는 짐작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최형기 일행은 점심을 먹고 나서 덕원부를 출발하였다.

그는 부사에게 잡혀 있는 도적들은 추후에 장적의 토포가 끝나면 모두 압송할 것이라 알리

고 토포가 성공적으로 끝나기까지 절대로 밖으로 어떠한 풍문이 나돌아서도 안된다는 다짐

을 두었다. 최형기는 마치 바람을 받은 겨울날 야산의 불길처럼 걷잡을 수 없이 길산을 향

하여 죄어들어가는 중이었다. 고원의 끝춘이네 객점에서는 그 즈음에 회령개시를 겪은 뒤판

이라 한 달포 동안 정신들이 없었다. 호마가 수십 마리씩 회령에서 왔고 솥과 농기구 등속

을 모았다가 꾸려 보내야 하였다. 며칠 전에는 정대성이 직접 수하 차인들로 상단을 이루어

다녀갔었다. 김선일이는 그 일 때문에 양덕에 돌아가지 못하고 객점에 붙어 있어야만 하였

다. 그러나 이틀 전에 언진산 은점에서 온 차인은 천동이와 조무인이가 한양 가서 돌아올

날짜가 여러 날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김선일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양덕에 나아가 식구들에게 그 일을 알릴 장적이었고 언진산을 들러 봉산에도 나가

볼 참이었다. 그러나 김선일이도 바로 지척에 있는 원산포의 이시흥이네 여각이 결딴이 나

버린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선일이가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 끝춘이

에게 말하였다.

"내일은 식전에 일어나서 양덕으로 가봐야겠어. 도무지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어

야지."

끝춘이는 마른자반을 찢어서 접시 위에 늘어놓으면서 말하였다.

"이제 곧 세밑인데, 별일이 있겠어요. 또 산에 가시면 멧돼지 사냥이다 술추렴이다 노는 일

밖에 없는데, 그저 당신은 집에서 열흘만 계시면 좀이 쑤셔서 못 견디는 성미이니.""아니야,

성님이 아시는가 모르겠지만 천동이하구 무인이 아저씨하구 한양엘 갔는데 벌써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야.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든지 하여튼 성님과 의논을 해봐야

지."

"아니, 언진산에도 장정이 수십이고 만동이 즈이 성두 있는데 어련히 알아서 아주버님께

기별도 드리고 수소문을 하실라구요. 그냥 집에서 쉬셔요.""아니야, 초천의 우리 식구 마을

은 일반 잠채꾼들이나 천동이 만동이 형제들두 잘 모르거든.

내가 닿지 않으면 언진산과 은금동령에서는 연락을 못하지. 말득이 언니가 가끔 다녀가시지

만, 내게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아직 양덕서는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오.""뭐 별일이야

있겠어요. 천동이란 사람이 갔다면 그이야 봉산 제일 부자요 은자도 있겠다, 장사일로 경

강에 나가 눌러 있거나 하여튼 뭐 좋은 일이겠지요." 저녁나절에 김선일 끝춘이 부부 사이

에는 이런 식으로 걱정의 소리가 오갔는데, 끝춘이네는 서방을 설까지 집에 붙어 있게 하느

라고 달래다 못해 어쨌든 길 떠날 채비를 차려두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가 타고 갈 호마

도 손질을 하고 말굽도 살펴두고 했던 것이다. 그들이 저녁을 먹고 안방에서 아들을 가운

데 두고 누웠는데 밖에서 중노미 총각이 누구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굵직하게 사내

의 목소리가 받았다.

"예, 하룻밤 유숙하려고 그럽니다."

"여긴 여각이지 보행 객주가 아니오. 물주 외에는 안 재워요.""여보, 우리도 물주요. 상목을

해가지고 오는 길이오."건네고 받는 소리를 듣고는 끝춘이가 선일에게 말하였다.

"좀 나가보셔요. 상목은 우리 물건은 아니지만, 밤도 늦었는데 그냥 손님으로 받읍시다.""에

귀찮아. 봉노에 불이나 넣었나."

"아이들에게 시키시우."

김선일이가 투덜대며 나오니 아직도 중노미는 문을 걸어 잠근 채로 건성 대답이고 이어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다, 철원의 고서방 왔다고 느이 주인께 알려드려라." 김선일이가 철원의 고달근이라 하

여 더 이상 묻지 않고 대문을 여는데 상고 차림의 사람들이 일시에 밀고 들어오며 눈앞에

불이 번쩍하였다. 최형기는 경군과 함께 고원 관아의 군사들 다섯을 더 보태어 잠깐 동안에

방뒤짐을 하고 나서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는 몽치에 맞아 흔절했던 김선일을 끌고 안방

으로 들어갔다. 끝춘이가 비록 잽싸고 영리한 서녀라 하나 많은 수의 장정들을 감당할 길

이 없고 무엇보다도 서방과 자식 때문에 음치고 뛰지도 못하고 이부자리 위에서 오라를 받

았다.

"중노미 두 놈과 밥어멈 하나가 식구의 전부입니다. 집안에는 식구들밖에 아무도 없습니다."

박부장포교가 뒤짐을 끝내고 들어와서 최형기에게 보고하였다. 끝춘이는 묶인 채로 그들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다가 비로서 변복한 관군인 것을 알아차렸다. 고달근이는 박완식과 더불

어 부지런히 광과 곡간을 살피고 다녔고, 최형기 혼자 묶여 있는 끝춘이와 혼절한 김선일이

앞에 앉아 있었다.

"여보, 여보"

끝춘이가 용기를 내어 애타게 부르자 선일이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머리를 몇번 흔

들어보고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김선일, 이제 정신이 들었는가?"

"너는 누구냐?"

"글세 나를 알는지 모르겠다마는 전 좌변 포도 종사관 최형기라는 사람이다. 들어본 적이

있는가?"

최형기는 자신이 누구임을 밝히고 나서 말하였다.

"내 일찍이 구월산을 토포할 적에 장길산을 잡지 못하여 전정을 그르친 사람이다. 강원

해서 일대의 너희들 패거리는 모두 내 식구들도 이렇게 되었으니 더 이상 버티지 말고 장적

이 숨은 곳만 안내해주면 목숨은 물론이려니와 그가 가졌던 재물도 모두 네 것이 되고, 가

자도 받게 되는니라. 김선일, 네 처자를 생각하여 우리의 토포하는 일을 돕는 게 어떤가?"

김선일은 아내 끝춘이와 나란히 묶여서 여러 가지로 모면할 길을 생각해보았으나, 이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게 된 판국이 분면하였다. 저들은 선일을 안내자로 세우기 전에 끝춘이

와 아이를 볼모로 잡아둘것이며, 저 혼자 몸을 빼쳐 달아난다 할지라도 처자식을 구할 방도

가 없을 터였다. 선일이 끝춘이를 돌아보고 나서 최형기에게 청하였다.

"기완에 나는 당신에게 잡힌 몸이고 내가 관군을 돕든지 그러지 않게 되든지는 차후의 문제

요. 우선 나와 얘기하기를 원한다면 이 사람을 풀어주고 아이와 함께 내보내시오." 최형기

가 방문을 열더니 밖에 섰던 고달근과 박완식을 불렀다. 박완식이 앞장서서 들어왔고, 달근

이 들어서자 김선일은 그제서야 그를 알아보고 씹어 뱉는 것이었다.

"더러운 놈, 네놈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살아남을 줄 아느냐?"최형기가 껄걸 웃으면서 김

선일을 놀리는 투로 한마디 하였다.

"허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이분은 조정 당상에서 내린 선달직을 받으신 어른이라네. 반상

의 구별이 엄정한데 그렇게 험하게 욕을 하면 쓰는가."고달근이도 최형기의 곁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자네야 장길산의 의제 되느 사람이니 의리도 지켜야 하고 더구나 고원에서 이렇게 번듯한

객점을 열어 호의회식하고 있으니 길산이란 자의 은혜를 입은 바가 많겠지만, 내야 무슨 덕

본 것이 있었는가. 자아, 여러 말 하지 말고 정작이 은거하고 있는 동네로 우리를 안내하시

게나. 나는 다 알구 있네. 자네가 한 달에 달포는 곡산 수안을 둘러보고 양덕 어느 어름에

있는 자네들 형제이 마을에서 보내다 온다는 것을 다 알아. 천동이는 잡혔고 조무인이는 저

항하다 죽었지. 곡산 수안은 벌써 함몰이 되었어. 남을 것은 장길산과 자네들 같은 혈맹을

맺은 형제들뿐이야. 온 조선 팔도에 관군과 향군이 벌떼처럼 발병하여 곳곳의 굴혈을 탕진

시키고 있으니 무슨 수로 모면할 길을 얻겠는가. 자네 두 그만큼 고생하였다니 장적을 넘겨

주고 언진산 은광의 점주가 되어서 편안하게 살아갈 생각이나 하게." 김선일은 더 이상 쓰

다 달다 말이 없었고, 최형기가 박부장포교에게 일렀다.

"아낙과 아이를 빈 방에 모셔다 두고 별명이 있을 때까지 지키고 있거라." 박포교가 끝춘

이의 결박을 풀어주고 팔을 잡아 일으키려 하자, 끝춘이는 선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울

음을 터뜨렸다.

"여보 말하시면 안돼요. 우리가 어육이 되더라도 절대로" 최형기가 잽싸게 무릎걸음으로

다가들더니 끝춘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비틀어 올렸다.

선일이는 묶인 채로 최형기의 가슴팍을 향하여 몸을 던지는데 박포교가 섰다가 사정없이 그

의 명치를 발끝으로 내질렀다. 김선일은 숨이 콱 질려서 벽에 머리를 부딪고 뒤로 넘어졌는

데 박포교는 이어서 그의 가슴팍을 발로 닫고 눌러버렸다. 최형기는 끝춘이의 머리를 잡아

당겨서 팔 안에다 끼워 넣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네 이년! 우리가 관헌이라고 인정 사정 두는 사람들로 여겼다간 큰코 다칠 줄 알아라. 제

서방이 입다물고 우리 일을 훼방놓으면 이 집에서 송장이 되어 나가는 게야. 그러면 너두

서방 따라서 편안하게 죽여줄 것으로 아느냐. 흥, 어림두 없지. 화적당의 가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관노비로 끌려간다. 이년, 군사들에게 내주어 객고를 달래게 하고 나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천릿길도 넘는 궁벽한 진영으로 끌려가 급수비 노릇이나 하겠느냐. 네 새끼도

또한 사대부가의 씨종으로 팔려가게 되느니라. 점잖게 대해주면 서로 체모를 생각하여 제

보신할 생각을 해야지."

최형기는 끝춘이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나서 다시 태도를 표변하여 부드럽게 말하였다.

"다시는 그런 섭섭산 얘길랑 하질 마시오. 남편이 우리를 돕게 될 때까지 한 달 일 년이 걸

리더라도 우리는 이 집에서 안 떠날 것이오. 아기가 너무 우니 저러다 숨이 막히면 어쩌겠

소."

끝춘이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방바닥에서 네 활개를 펴고 울부짖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자아,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남편과 만나서 상의하도록 하시고 방에서 나가기 전에 한가

지 부탁할 것이 있소. 서방님께 우리를 돕는 것이 가족들이 살아날 길이라고 얘기해주오."

박포교가 김선일의 등덜미을 잡아 일으켜 앉혔고, 선일은 두 번이나 급소를 맞아 온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끝춘이는 아이를 안고서 뺨으로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남편의

처참한 모습을 내려다보았따. 끝춘이는 잠시 그 자리에서 망연히 섰다가 결심한 듯 말하였

다.

"우리를 살리시려면 초천에 이분들을 안내하셔요."

"아가리를 찢어놓기 전에 얼른 나가."

김선일이 울부짖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박포교가 끝춘이의 등을 밀어 그들은 밖으로 나갔

다. 방안에는 잔뜩 주눅이 들어버린 고달근과 최형기와 김선일만이 앉아 있었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자아, 이러다가는 새벽닭이 울겠는걸. 길산이와 네 형제들이 양덕초천에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어찌할 텐가, 네가 말을 않겠다면 너의 계집을 쥐어짜서 대번에 알아낼 수 있다."김

선일이가 한숨을 푹 내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물 좀 먹게 해주오."

"그래, 목이 탈 테지"

최형기가 고달근에게 눈짓하였고 달근은 미닫이를 열고 밖에 지키고 섰던 포도청 군사에

게 일렀다. 바가지에 퍼온 물을 최형기가 가져다 김선일의 입에다 대주었고 선일은 개처럼

물을 정신없이 마셨다. 최형기는 다시 아까와 같은 자세로 마주 앉아서 선일이 먼저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선일은 물을 마시고 나서 몇번이나 입술을 핥으며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

다.

"내가 장길산 두령을 잡게 해주면 가족들을 무사하겠지요.""관은 허랑한 말을 하지 않는다.

포도논상은 국법에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엄연한 전례이다. 나라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어느 백성이 따르겠는가. 네 자식은 참봉이나 선달 직첩을 받은 어엿한 양반의 자식으

로서 과거에 응시할 수도 있게 된다.""장두령은 두류산에 계십니다. 두류산 사봉 가운데 화

여령 골짜기의 남면한 곳에 마을을 이루고 있습니다."

"네 아내는 초천이라 하지 않았더냐. 또한 양덕 은거설도 이미 나왔으니 초천이라는 것이

가합하다. 만약 우리를 잠깐 속에서 기일을 끌자고 한다면 너희 식구들의 고초만 늘어나게

되는 게야. 또한 기일을 끌어서 우리의 토포를 실패하게 만들면 내가 다짐하여두겠다. 아까

도 말을 하였듯이 아이는 너희 부부가 보는 앞에서 교살시킬 것이고, 네 아내는 군사들의

놀이갯감이 되었다가 관비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고달근이 곁에서 말하였다.

"김서방, 다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네만, 최종사를 속일 생각은 아예 말게. 장길산이 아무

리 세가 크고 옹호하는 무리가 많다 하나 각 군현에 깔린 관군의 토포를 벗어날 수는 없네.

최종사는 이미 구월산에서도 자네들 혈당들을 구몰시키지 않았던가. 이제 장길산의 코앞에

당도하였고 은신처가 발설되었으니, 자네가 입을 닫고 국법에 의하여 처형된다 할지라도 아

무 쓸모가 없구먼. 어떤가 속시원하게 나처럼 털어놓고 국은을 비는 것이 합당한 일일세""

초천면에서는 그의 식솔들이 있달 뿐 장두령은 두류산에 계시오. 저 처럼 집관 산채를 왕

래하면 사시지요."

끝춘이는 안채의 건너편 사랑채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있었으며 방문 앞에는 경군 둘이

지키고 서 있었다. 끝춘이는 아이를 잠재우고 어둠 가운데 망연하게 앉아 있었다. 남편의 곤

경을 보다 못하여 묻는대로 이르락 당부는 하였건만, 어릴 때부터 오빠 말득이와 더불어 온

갖 짓으로 살아왔던 끝춘이는 이러한 배신으로 목숨을 부지한다는 일이 얼마나 욕스러울 것

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자기 스스로 초천이라는 말이 앞서 나와버렸으니, 토포장은

그 말을 놓치지 않을 것이었다. 끝춘이는 길산이며 흥복이 선흥이 그리고 김기 말득이 오빠

등등의 정다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끝춘이는 김선일이 이제 다시는 관군의 손에 놓여나지

못하리는 것을 알았다. 선일이가 놓여나는 길은 다만 한가지 관군에 협조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끝춘이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다, 우리 식구는 기왕에 죽는 목숨이고 산채 식

구들을 살려야만 한다. 오빠와 길산에게 먼저 알려야만 한다. 끝춘이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 집에서 달아나 관군이 닿기 전에 초천에 먼저 토포를 알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살

그머니 방문 앞으로 다가앉아 창호에 구멍을 내어 밖을 내다보았다. 두 장정이 툇마루 앞에

지켜 서 있었고, 왼편의 봉놋방 앞에도 군사들이 보였다. 끝춘이는 결심하고 나서 아이의 궁

둥이를 힘껏 꼬집었다. 아이는 놀라서 깨어 울기 시작하였고, 끝춘이는 아이를 달래는 듯 안

고 어르면서 방을 나설 때 또 한번 꼬집었다. 아이가 더욱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나오는 거요?"

한양 포졸이 물었고 끝춘이는 발을 동동거리며 말하였다.

"속이 안 좋아서 뒤가 마려워 그럽니다."

"뭐, 뒤가?"

그들은 서로 마주보았다가 한 녀것이 거칠게 물었다.

"딴수작 부릴려고 그러는 게 아니겠지?"

"제 아이가 여기 있는데 이찌 딴전을 피우겠습니까."

딴은 그럴 듯한 말이고 아무리 도적의 아낙이라 하지만 인정상 어쩔수가 없어 다른 포졸

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하였다.

"좋아, 얼른 다녀와."

끝춘이는 일부러 아이를 더욱 꼭 껴안고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질러 갔고, 두 포졸 중의

하나가 두어 발짝 뒤에서 따라왔다. 그 즈음에 박포교는 봉노에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이는

중이었고, 최형기는 고달근과 함께 김선일을 심문하고 있었다. 마당에는 고원 군사 다섯이서

차마 방에 들어가 쉬지는 못하고 장작을 쌓아 모닥불을 피워두고 둘러서서 잡담을 하는 중

이었다. 끝춘이의 위에는 한양서 내려온 평복의 포도 군관이 따라가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끝춘이는 뒷간의 흙벽이 허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곳으

로 빠져나가 그대로 운림(雲林) 쪽으로 달아날 작적이었다. 끝춘이가 아무리 여염 아낙으로

들어앉아 아이 낳고 남편 섬기기 여러 해가 되었건만, 멸악산 아랫녘에서 오공랑 강말득이

와 더불어 서녀라는 별호를 사방에 퍼지게 하였던 때가 있었다. 끝춘이는 일부러 뒷간 앞에

가서 아이의 다리를 또 한번 꼬집어주고 나서 포졸에게 불쑥 내밀어주었다.

"잠깐만"

포졸은 어이가 없고 쑥스럽기도 하여 허허, 건성 웃음을 웃으며 드높게 악을 쓰며 울어대

는 아이를 받아 안았다. 끝춘이는 뒷간으로 들어서자마자 뒷벽을 발로 찼다. 두어 번 차니까

흙이 부스스 떨어지며 수수깡이 들났고. 그녀는 손으로 더듬더듬 다 삭은 수수깡들을 뜯어

냈다. 구멍을 내놓고는 일부러 밭은기침을 여러번 하였다. 뒷간 앞에 걸쳐둔 거적을 들고 밖

을 내다보니 포졸은 바로 아낙이 일보는 앞에 섰기도 민망했는지 저쯤 떨어져서 아이를 안

고 서성대고 있었다. 끝춘이는 이를 악물었고. 만약에 산채에 알려야 할 일만 없었더라면 끝

춘이는 그 방안에서 아이를 먼저 죽였을 것이었다. 김선일이 참수되고 끝춘이 자신은 여비

로 팔려가고 아이는 또 다른 지방의 관노로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보

다는 죽는 것이 나았다. 자, 지금 나서지 않으면 모든 일은 허사가 되고 만다. 끝춘이는 아

직도 어미를 찾으며 울어대는 자식의 목소리를 등뒤로 돌리고 뒷간의 뚫어빈 벽 사이로 빠

져나갔다. 그녀는 방안에서 생각해두었던 방향을 잡아서 밭고랑을 건너고 얼어붙은 개천을

넘어서 뛰었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고 비탈에서 구르기도 하였다. 포졸은 아이를 안고

서성이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오랜 것 같아서 직접 뒷간에다 대고 뭐라고 말도 시키지 못하

고 헛기침만 여러번 하며 오락가락하였다. 그러다가 못내 궁금하여 엇비슷이 고개 돌려 혼

잣말처럼 한다는 소리가 이러하였다.

"안에 있으면 기침이라도 할 것이지. 무에 그리 오래 걸려."그러나 쥐죽은 듯하였다. 포졸은

의심이 더럭 생겨서 거적을 흔들며 말하였다.

"어, 빨리 나와. 관장께서 아시면 곤장감이여."

그래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포졸은 얼른 거적을 들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캄캄한데 인

적이 없었다. 그는 당황하여 손을 뒷간의 사방에다 휘저어보고는 얼른 돌아서서 아이를 안

고 봉놋방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명색이 경군이었다. 그는 호들갑스럽게 외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서 얼른 달려가 아이를 마당 가운데 남겨두고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포

졸이 박부장포교를 흔들어 깨웠고 그는 눈을 퍼뜩뜨더니 무슨 일이 생긴 눈치를 알고는 벌

떡 일어났다.

"뭐냐, 무슨 일인가."

"계집이 달아났습니다."

박부장포교는 추궁하지 않고 가중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언제?"

"바로 금방입니다. 아기를 맡겨두고 뒷간에 가겠다고 하여 마음을 놓았더니." 박완식이 벌

떡 일어났다. 그들은 밖으로 나왔고 박포교는 모닥불 가에 모인 고원 군사들과 경군 넷을

모두 불렀다. 그는 최형기에게는 알이지 않고 집안에 군사 두 사람만을 남겨두어 일꾼들

가둔 곳을 지키게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고원 객점거리는 쥐죽은 듯이 고요했고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바람소리만이 들렸다.

"너희는 저쪽, 그리고 너희는 나를 따르라."

박완식은 한눈에 얼른 서남쪽 길을 손짓해주고 나서 남은 군사들을 데리고 뒷간 쪽의 뚫

어진 구멍 쪽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는 계집이 달아날 만한 방향을 가늠하였다.

"횃불을 준비할까요?"

"그만두어라."

박완식은 이미 계집을 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방에 솔숲이요 길도 없는 들

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사방은 칠흙 같은 어둠이 매리덮여 있었다. 그는 군사들에게 흔적

을 찾으라고 다시 방향을 눈짐작하여 일러주고는 객점으로 돌아왔다. 박포교는 안방 앞에

가서 말하였다.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게 누구냐?"

"박부장올시다."

최형기가 얼른 낌새를 채고 마루로 나왔다. 박완식은 속삭였다.

"계집이 달아났습니다. 아이는 버려둔 쳐 뒷간 벽을 뚫고 달아났답니다.""저런 밥쇠 같은 놈

들을 봤나. 틀림없이 도적에게 알리러 갔을 터이다.""하오나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우리는

말을 타고 갈 것이며 계집은 걸어서 가야만 아지요.""우리는 아직 장적의 굴혈이 딱히 어느

곳인가를 모른다. 김가는 아직도 횡설수설하여 그의 진술은 믿을 바가 못 된다."

최형기가 애가 달아서 발을 구르며 말하였고, 박완식은 역시 나직하게 속삭였다.

"김가를 제게 맡기십시오. 한 식경도 못 되어 다 털어내도록 만들겠습니다."최형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된다, 자기 혈육을 버리고 달아나기까지 하는 것들이니 굴혈을 숨기고 시간을 벌기 위하

여 온갖 잔꾀를 다 써서 우리를 속이려 들 것이다. 저들은 자기네가 죽을 것을 잘 아니까.

그보다는 우리가 김가를 속여야겠다."

고원서 양덕까지만 하여도 백오십 리 길이요 양덕 읍치에서 초천면까지가 또한 백 리 길

이었다. 끝춘이는 무턱대고 캄캄한 들판을 향하여 뛰었으나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알지 못

하였다. 그녀는 송어못내를 따라서 운림쪽으로 나아가 구곡령 너머 평안 도계로 넘어가는

길은 알고 있었지만, 밤새껏 뛴다 하여도 운림에 겨우 당도하면 날이 새어버릴 것이며, 관군

들은 그 사이에 말을 몰아서 이미 그맘때쪽에는 양덕현에 당도할 것이다. 끝춘이는 길양식

도 돈도 없었고 더구나 매서운 추위를 감당할 누비옷이나 털배자도 준비하지 못하였다. 아

마도 노중에서 얼어 죽게 될지도 몰랐다. 끝춘이는 여하튼 남쪽을 바라고 구녕포 쪽으로 뛰

었다. 그러다가 비룡산 언덕 아래에 이르러서야 조진포(漕進浦)의 어계방 생각이 났다. 수달

피 수집을 위하여 송방 차인들과 거래를 해온 곳이며 계방의 점주는 남편 김선일과는 너니

나니 하는 사이였다. 끝춘이는 덕지여울을 따라서 이십여 리 떨어진 조진포로 방향을 돌렸

다. 끝춘이가 닭 울 녘에 되어서야, 어계방 앞에 도착하였고, 굳게 잠긴 판자문을 두드리며

부르니 어둠 가운데 점주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슈?"

"문 좀 열어요. 저 고원 김선일이 아내입니다."

"옛? 아니 이게 어쩐 일이슈."

점주가 황급히 문을 열어주었고 끝춘이는 그제야 몸에 한기가 들고 다리가 떨려서 기둥을

부여잡았다.

"아주머니, 무슨 변이 났습니까?"

"관군이 몰려와서 남편이 잡혀 있어요. 저두 간신히 몸을 빼어 어린 것을 볼모로 잡히고 달

아나온 참입니다.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주인께서두 우린 객점이 활빈도와 연루된 곳인 줄

다 아시지요?"

"아다뿐이오? 장두령도 먼발치서 보았고 송도 박좌장네 차인들이 철마다 와서 일 보고 가는

데."

끝춘이는 점주의 옷깃을 잡아 흔들며 애타게 말하였다.

"어서 알려야만 합니다. 저들은 한양에서 장두령님을 잡으러 나온 토포군입니다.""지금 그분

은 어디 계시우?"

"양덕 초천(草川)에 산채가 있어요. 초천역이 아니구요 역에서 수덕말의 산등성이를 돌아 골

짜기로 시오 리쯤 들어가면 동네가 나오지요. 거기 가셔서 알려주시면 사례를 해주실 겁니

다. 제발 부탁입니다."

주인은 어두운 얼굴로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그의 아내를 불러 말하였다.

"이 아주머니 선일네 아낙이여. 어서 옷 갈아입도록 하고 안방에서 함께 지내게. 자아, 그러

면 나는 길 떠날 채비를 해야지."

조진포 어계방 주인이 말을 빌리고 대충 준비를 갖추어 덕지여울을 건너 것은 이미 아침

동이 트고 난 뒤였다. 그는 다시 삼십여 리를 돌아 나와 해가 번 듯이 떴을 무렵에야 지난

밤에 끝춤이가 방향을 못 잡아 갈팡질팡하던 반룡산 언덕에 당도하였다. 그 무렵에 최형기

의 토포군은 벌써 덕평을 지나 거무재 사거리에 당도하여 화여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끝

춘이가 달아났기 때문에 최형기는 양덕현으로 파발을 먼저 띄웠고, 잠시 한숨 붙이고 나서

인시(寅時) 무렵에 선일이네 집에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파발의 내용은 비국에 관문과 더불

어 장적을 토포하는 데 쓸 포수와 군병의 동원에 관한것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백여 명의

군사를 발병하라 일렀으나 최형기는 다만 도주를 끊으려는 생각이라 향군 모집이 안되면 현

내의 장정들을 불러모을 생각이었다. 최형기는 김선일을 인질로 삼아 뒤로 결박지어서 말을

태워 데리고 갔다. 김선일은 아직도 끝춘이가 몸을 빼쳐 달아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최형

기는 그의 두류산 은거에 관한 횡설수설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장길산이 초천 어딘가

의 골짜기에 숨어 있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이유는 명벽하였다. 두류산이라면 동

북에 너무 치우쳐 있어서 양덕 현내에 은거하여 있다는 말과 틀리고, 해서의 경계인 언진산

맥과도 먼 거리였다. 초천이야말로 양덕현의 복판에 있으면서 바로 지척에 해서가 있는 셈

이었다. 이를테면 평안도의 동쪽 끝이요 해서의 북쪽 끝과 닿고 곧 함경도 도계와 마주 닿

게 되는 곳이다. 북변을 활동의 마당으로 삼는 장길산이 택할 만한 장소가 아닌가. 김선일은

말 위에 앉아 그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올 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관군은 경군 다섯과

고원서 연락차 따라나온 장교가 둘, 그리고 최형기와 고달근을 합하여 모두 아홉이었다. 김

선일까지 열인데 선일이네 북망마가 워낙 굳세고 날랜 놈이라 한달음에 화여령에 당도하였

다. 그들은 준비해온 주먹밥을 마상에서 움켜 먹으며 영을 넘었다. 정오가 지나고 중화참이

지났을 즈음하여 최형기 일해은 양덕현에 당도하였다. 그들이 관아로 들어가니 양덕현감 안

신(安紳)이 안절부절 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동헌에서 군례를 나누었다.

"극적 장길산을 토포하러 나온 전 포도 종사관 전 등산곶 만호 최형기라 하오.""양덕현감 안

신이올시다. 토포장의 비관을 받고 군병 조발을 명하여 이게 겨우 포수 이십여 명을 포함한

향군 일초(一哨)를 그러모았습니다. 중화 드신 뒤에 같이 점열하십시다."최형기가 현감에게

말하였다.

"지금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도적은 지금쯤 관군의 동향을 탐지하고 있는지두 모릅

니다. 그보다는 병방과 현의 장교를 불러주시오."

최형기는 동헌에서 양덕현감 안신과 더불어 병방과 수교를 불러들여 논의를 하였다. 현감

안신이 최형기에게 말하였다.

"토성진(兎城鎭)에도 파발을 보내어 첨사가 진군을 이끌고 오도록 하였소."최형기는 병방이

가져온 양덕현의 경계도를 필쳐두고 들여다보다가 병방에게 물었다.

"초천마을에 누가 가본 가람이 있는가?"

"글쎄요 워낙 멀리 떨어진 골이라서. 초천역에는 여려번 다녀보았으나 게서 또한 삼십리를

산속으로 들어가고, 큰길에서 샛길로 빠져든 곳이라 사람의 행적이 저절로 끊기게 되어 있

습니다. 마을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요."

병방이 말하였고 수교가 뒤를 이었다.

"개나루에서 금성산에 이르는 비류강 상류에는 사금이 나는 곳이 많다는 소문입니다. 성천

계에서 시작하여 그 일대에는 수년 전부터 채금하는 잠채꾼들이 모여들었지요.""개나루에서

초천마을까지는 얼마나 되는가?"

"예, 한 오십여 리 되지만, 초천마을에서는 산등성이 한고개 넘으면 곧바로 금성산 아랫녘의

강이 나옵니다."

"가만있자 우리 고울 수리에게 물을 것이 있소."

현감 안신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수교에게 이방의 현신을 일렀다. 이방이 즉시 달려들어

왔다. 현감은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물었다.

"내가 지난번에 얼핏 흘려듣고 더 묻지는 않았네만, 우리 현내에 번듯한 주막이 있다던데

호마를 타고 오는 상고들이 여럿 묵어 간다면서"

"예, 박천서 살다 온 자인데 잠채꾼들과 내왕이 있다는 눈치는 채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

에 의하면 그자가 예전에 비류강에서 사금을 떠내어 먹고 살았다지요. 우리 현내에서 별

말썽이 없기로 그냥 내버려두고 있습니다만"

이방은 그에게서 철들이로 인정도 받고 함경도의 어물도 받아 먹은 적이 있어서 혹시나

무슨 말썽이 생겼는가 하여 우물쭈물 말하였고, 최형기는 잠자코 앉았다가 호마를 끌고 오

는 상단 운운하는 말에 귀가 번쩍 트이는 듯하였다.

"이 궁벽한 곳에 말을 가진 상단이 드나든다는 것은 잠채한 금을 나르는 일 외에 또 무엇이

있겠소. 필시 적당과 내통한 자가 틀림없으니 어서 잡아들여 물읍시다."안신이 고개를 끄덕

였다.

"그자가 지금 집에 있더냐?"

"일을 겁니다. 대개 가을철에는 그의 아낙과 자식들만 보이더니 겨울이 되면서 집에 눌러앉

아 있는 것 같습니다."

"겨울에 잠채가 없기 때문이오. 수교는 얼른 가서 잡아들여오라." 담배 한죽 태울 상이에

현내로 나갔던 장교가 주막 주인을 끌고 왔다. 동헌 아래 꿇려진 주막 주인을 최형기가 직

접 심문하였다.

"네 이놈, 모가지 하나로는 감당치 못할 큰 죄를 저질렀으니 이실직고하렷다. 지금 장길산이

초천마을에 숨어 있다니 바른 대로 일러라."

"예? 소인은 지금 아무 영문도 모릅니다. 그저 주막집이나 열어두어 오가는 행객들이 떨구

는 길양식이나 얻어먹구 살고 있을 뿐입니다."

"비류강에서 잠채를 하지 않는가?"

"그건 벌써 예전에 유민으로 떠돌아다닐 적의 얘기올시다. 소인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최

형기는 시간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냥 윽박지르기보다는 그가 스스로 관군을 돕게

하는 것이 유리하리라 여겨서 태도를 바꾸었다.

"네 죄를 묻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도적 장길산의 혈당을 잡으려고 한양에서 오 토포

군이다. 내 들으니 너희 객점에 말을 가진 상고들이 드나든다기로 묻는 것이며, 도적들이 초

천마을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거기 간 적이 있었는가?""초천에 갔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 주막에 상고가 드나드는 것은 사실이옵고, 고원 산다는 여각 주인 김서방이 자

주 내왕하였고 그 사람과 금성산에 갔던 적은 여러번이올시다.""거기 잠채터가 있는가?"

주막 주인은 잠시 망설였다. 곁에 섰던 수교가 발로 옆구리를 내지르며 재촉하였다.

"어서 바른 대로 아뢰지 못하겠느냐. 생사가 갈리는 판이다."최형기가 손을 들어 수교에게

때리지 말라 이르고 다시 물었고, 주막 주인은 말하였다.

"저는 다만 김서방이 잠채하는 일을 도와 제가 떠내는 금만 가졌을 뿐입니다. 점주는 제가

아닙니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김서방이란 자는 김선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예, 선일이란 말은 들었습니다."

현감이 말하였다.

"김선일이는 고원서 압송되어 여기에 하옥되어 있다. 네가 할 일은 초천마을의 형편과 지형

을 샅샅이 알려주면 모든 죄는 묻지 않겠다. 또한 도적들을 모조리 토포하게 되면 잠채터를

버젓한 금점으로 개설 할 허가를 해주겠다. 어떤가, 아는 대로 자세히 일러보아라."주막 주

인은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제가 도적의 혈당이 아니 바에 애를 태울 일이 있겠습니까? 초천마을에는 들어가보지 않았

으나, 정확하게 어느 이름이란 것도 알고 있으며 그 안에 장정들과 그 식구들이 산다는 것

두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도적들이라면 제가 열 번도 길라잡이를 서겠습니다.""좋다. 자네

가 기라잡이를 서준다면 금성산의 금전권을 허가해주겠다."최형기가 말하면서 현감 안신을

돌아다보았으며 안신은 속으로 적이 불쾌하였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양덕현감

안신이 비록 궁벽한 고을 수령으로 관아도 초옥에 지나지 않고 현의 소출도 보잘것이 없어

배소에 내려온 귀양객과 마찬가지라 하겠지만, 자신은 과거를 리른 어엿한 종육품의 관직

을 가진 문관이었다.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하던 최형기라는 자가 토포장이라고 나 자기 고을

의 조발 군병의 권한이며 행정에 대하여 마구 휘두르니 기분이 좋을 까닭이 없었다. 최모가

종사관이었다면 이는 종팔품에 참봉에나 비길 자리요 그자가 한미한 무사 출신인 것이 분

명하였다. 현감 안신은 최형기와 만나 서로 인사를 드릴 적부터 속으로 아니꼽게 생각하였

다. 아무리 토포가 급하다 할지라도 발병이며 지휘권에 관한 비관을 보일 적에는 토포장이

해당 고을에 와서 몸소 수령께 현신하여 군기와 시행할 일 전체를 털어놓고 논의하는 예의

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고을의 주인에게는 아무허락도 없이 파발로 당상비국의 명을 들

어 향군과 포수를 발동시키도록 해놓고 멋대로 수리와 병방 수교들을 불러 앞장서서 지시하

며 부리니 현감은 아랫것들 앞에서 체모가 서질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형기가 자신의 전 직임을 밝히면서 만호라고 하였으니 이는 현감보다 두 계

나 높은 자리였고, 흔히 문관은 아무리 아래 직급에 있더라도 천사나 병수사를 대수롭지않

게 여기던 것이다. 언제 한양으로 올라 옥당이나 조정 요직에 앉아 그들의 자리를 요리하게

될지 모르는 일어었다. 하여튼 안신은 그의 향소 군인 백여 명에다 포시 이십여 명을 조하

여도고 이제 자신의 고을에서 장길산을 잡으려 하니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은

토포장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자산에게는 잘해봤자 중앙으로부터의 문책이 없으면 다행

한 일이었다.

"자아, 그러면 이렇게 아십시다. 위로 토성진에서 내려오는 진장의 병력은 비파산(比巴山)에

서 우회하여 초천마을 뒤산 허리를 끊고, 현감께서는 초처내가 두 갈래로 나뉘는 월명산

(月明山) 앞에서 군사를 묻어두고, 나는 포수와 향군을 반으로 나누어 초천마을로 은밀히 숨

어 들어가 일시에 에워싸고 도적들을 잡겠소이다."

그러나 안신은 그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조정에까지 알려진 장

길산을 잡지 못하면 잉어는 놓치고 송사리만 주워 담게 되는 판이라 그의 경내에서 최모에

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셈이었다.

"토포장께서 아직 이곳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하시니 내 의견과는 다른 듯합니다.""무슨 묘책

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지요."

최형기도 다만 길산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 그렇게 말하였고 안신은 주막 주인에게 물었

다.

"마을에는 정장들이 많더냐?"

"잘은 모르겠습니다마는 한 십여 명에서 스무 명 안쪽일 것입니다.""게다가 놈들은 처자식까

지 함께 살고 있겠지?"

"여염 동네와 같지요."

안신은 최형기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우리 경내에서는 어디엘 가든지 적송이 빽빽하여 낮에도 하늘을 보기가 어려운 곳이오. 산

세가 험하고 송림이 울창하니 대낮에도 범이 출몰하지요. 급습하여 당행히 사로잡게 되면

모르거니와 일단 한 놈이라도 놓치면 그 종적을 찾기란 짚단 속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지요.

토포장 말씀대로 멀찍이 매복을 할 수는 없습니다. 토성진 군사들을 비파산을 넘어 진을 치

게 하는 것보다는 직접 초천마을의 배후로 짓쳐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을 앞쪽

은 주머니처럼 움푹 팬 이십여 리의 골짜기라 도적들이 필지 입구로 몰려나올 것이오. 골짜

기 어귀의 양쪽 산등성이에는 토포장과 내가 좌우로 대를 나누어 지켰다가 사로잡자는 말씀

이오."

최형기는 구월산 토포 때의 경험도 있었으므로 무엇보다도 된목이골을 급습하듯이 자신이

직접 산채로 짓쳐들어가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하오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길라잡이를 데리고 초천말 둣산에서 기다렸다가 토성진장과

더불어 마을의 배후를 급습하여 들어갈 것이니, 사또께서는 골짜기 좌우를 막아 지키고 있

으시오."

현감은 빙긋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 향소 군사들은 필요없으시겠군. 토성진군도 일 초가 넘습니다. 아무래도 범

을 잡으려면 범의 굴혈에 들어가야 할 터이니 단병접전이 되겠구려.""현의 수교와 저 자는

내가 데려가겠소이다."

최형기가 토성진장과의 합력 문제도 있고 하여 고을 장교를 지목하고 이어서 주막 주인을

길라잡으로 택하였다. 현감은 쾌히 응낙하더니 물었다.

"언제 발병하는 게 좋겠소?"

"지금 당장 나서야 합니다."

현감은 참을성이 많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허허, 토포장께서는 혼자서 도적을 잡으시려오? 여기서 초천역까지가 칠십 리요. 초천말은

게서 또한 삼십 리이니 백 리 길이오. 시방 미시(未時 )가 지났거늘 준마를 타고 혼자 달리

신다 하여도 유시께가 될 터인즉 이미 사방이 어두워질 거요. 밤에 도적을 잡으실 작정이

오?"

최형기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지금 발정(發程)해야만 포위망을 칠 수가 있소, 철통같이 둘러싸놓고 내일 미명을 기다려야

합니다. 밤새 번을 내세워서 초천말 입구를 지켜야 할 것이오. 우리도 마을 뒷산에서 정탐을

늦추지 않을 작정입니다."

현감 안신도 다른 반대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즉시로 다시 파발을 토성진에 보내어 진군

이 비파산을 넘어 초천말 뒷산까지 진구하여 오도록 청하였다. 최형기는 박완식과 경군들만

거느리고 말을 타고 출발하였다. 그는 장길산의 얼굴을 모르고 있어서 고달근을 데리고 가

서 그에게 확인을 시킬 셈이었다. 김선일은 나중에 도적들이나 그 식솔들이 압송되어 오면

일일이 가려낼 수 있도록 양덕 관아에 하옥시켜두었던 것이다. 최형기는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포소 이십 명만 거느리고 자기네들 경군 다섯이라도 마을로 곧장 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야습은 어둠속에서 놓칠 위험이 많았다. 그뿐 아니라 최형기는 마

감동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십여 명밖에 안된다지만 저들도 훈령원 군사니 포청의 정예에

비길 만큼 무예 조련이 되어 있을 터였다. 마감동의 두령이 될 만한 인물인 장길산과 한판

을 겨루는 상상도 해보았으나, 최형기는 김식과 같은 풋내기는 아니었다. 그는 남의 집 마당

에 들어가서 믿을 곳 하나 없이 장길산 같은 자와 맞서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며 호랑이 앞

에 돌팔매를 맞히려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인성(人城)을 에워싸고 생포해야 할 것이다.

최형기는 밤새워 기다리는 일이 무엇보다도 걱정이었다. 달아난 김선일의 계집이 종내 마음

에 걸렸다. 물론 박완식은 이쪽이 날랜 말을 타고 행군하는데 비하여 계집은 연약한 몸으로

겨울의 험산준령을 넘게 될 것이니 염려할 바 없다고 말하였으나, 최형기는 그렇게만 여기

지는 않았다. 고원에 그만한 터전을 마련해두었다면 틀림없이 두호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계집 대신에 장정이 호마를 내어 달려온다면 이쪽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이에 도적에게 관군

의 토포를 미리 알려줄 수가 있을 것이다. 내일 날이 밝기 전까지 초천말 상공을 떠도는 참

새새끼 한 마리라도 살펴야 할 것이었다. 최형기의 포도청 부하들은 며칠 동안을 번개같이

출몰하여 이놈 저놈 잡아채며 강행군을 거듭하여오느라고, 모두들 쉴 새가 없이 피로 때문

에 누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박완식은 말 위에서 졸았고 최형기 자신도 이제는 예전의

팔팔하던 종사관 시절과도 달라서 객사의 절절 끓는 토방 구들장에다 등을 지지며 한 사나

흘 죽은 듯이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 하룻밤만 넘기면 끝이다. 이번만 고생을 참고 견

디면 그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관이 된다. 환로가 열리든 출세를 하든 그런 따

위는 차후에 생각할 문제요, 김식에 이어서 자신이 구월산에서 받았던 치욕을 씻고 포도관

으로서의 평생의 한이 될 뻔했던 장길산의 전설을 깨부숴야만 하는 것이다. 대적 장길산의

참수효시와 더불어 최형기는 국가의 위엄을 되찾아 세울걱이었다. 그는 모두 변복 차림인

경군을 데리고 온정원(溫井院)을 지나면서 허리춤에 지른 단검의 칼자루를 마상메서 몇번이

나 움켜쥐었다. 현감 안신은 최형기가 먼저 발정한 뒤에 병방과 함께 포수와 향소의 군사를

점열하였다. 군사들은 모두가 장창을 가졌고 기패관은 환도를 찼다. 포수들은 거의 방포에

능하였으니 보통 때에는 함경도와의 경계인 두류산 기사산 재령산 그리고 오라발산 등지에

서 사냥을 하던 엽사들이었다. 그들은 화승총을 메고 털토시에 털행전을 치고 두터운 털배

자를 입고 머리에는 개잘량을 썼다. 포수들은 아마도 호랑이 사냥을 떠나게 되리라고 짐작

을 하고서, 향군들과 다른 열에 서서 자네들이 산 넘고 숲을 헤쳐 뛰어다니며 범을 몰아오

면 우리가 가만히 쉬고 있다가 방포 한 방에 잡게 되리라고 장담을 하며 농을 건네고 있었

다. 안신은 병방에게 이르되 군사들에게는 자하산(紫霞山) 기슭에 칡범이 떼로 모여 있어 사

냥하러 나간다고 짐짓 속이도록 하였다. 자하산 맞은편이 곧 초천역이라 지척에 가서야 장

길산의 토포를 알릴 셈이던 것이다. 양덕현 포수와 향군들이 자하산을 향하여 출발할 때 읍

내의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저희 가장이 대열에 섞여 있어 범사냥을 나간다고 공연히 구경하

며 행렬의 뒤를 따르기도 하였다. 군사의 행령은 온정원에 이르면서부터 뜀박질로 바뀌었으

니 현감이 앞에서 말을 바삐 몰았고 병방은 후미에서 군사들을 계속 재촉하였던 것이다. 현

감 안신이 거느린 군사들은 자하산 방향으로 남진하지 않고 그대로 초천역까지 나아갔다.

부근에는 서창(西倉)이 있었고 역졸 다섯이서너 마리의 역마를 관리하고 있었다. 역이라 해

봤자 쓸쓸하기가 작은 암자와도 같은 곳이었다. 역의 뒤편에는 칠팔 호 남짓의 수덕(樹德)말

이 있었는데 옛 토성 자리가 나아 있는 곳이디. 안신은 일단 군사들을 거기서 쉬게 하였다.

군사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이 자하산의 범을 잡으러 가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자하산이 문자 그대로 자줏빛 놀에 물들 무렵이 되었다. 현감이 병방에게

일렀다.

"마을 사람 중에 장정 두엇을 뽑아 데리고 가서 초천말을 정탐하도록 하고, 또한 초천내

건너편 등성이와 이쪽 등성이에 군사 한 오씩을 올려 보내어 번을 들게 하며, 교대하는 차

례에 실수가 없도록 하라."

수덕말의 산모퉁이를 돌아 초천내 건너편의 골짜기를 바라보니 몇 점씩 실오라기처럼 오

르는 연기가 그 근처에 인가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병방의 명을 받은 기패관이 정탐의

오를 짜서 골짜기로 들어갔고 번 드는 오들은 뽑혀서 양편 산의 등성이로 올랐다. 최형기는

온정원에서 말을 몰아 말등내를 따라 올라 노풍산(露楓山) 고개를 넘어갔다. 그곳이 바로 초

천내의 지류인데 초천말과는 산을 사이에 둔 바로 이웃 골짜기였다. 왼편 산등성이를 올라

산줄기를 타고 서남으로 조금 내려가면 초천말의 뒷산이 되는 셈이었다.

"여깁니다. 비파산에서 삼방(三方) 고개를 넘어 곧장 내려오면 저쪽 계곡의 상류가 되지요.

토성진군은 저리 내려올 것입니다."

수교가 손가락으로 계곡의 오른편 숲을 가리켰다. 길잡이로 나선 주막 주인은 최형기의

명을 따라서 그와 박완식을 이끌고 왼편 산등성이로 올랐다. 그들은 말을 타고 전원이 달렸

으므로 아직은 해가 제법 산끝 두어 뼘 위에 솟아 있을 무렵이었다. 등성이에 올라서니 위

로 북에서 비파산과 삼방령의 줄기가 만나 그 남은 맥이 삐쳐 내려오면서 지금 그들이 섰는

곳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두 줄기의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한 오 리쯤 되는 곳에

두 개의 산봉우리가 젖무덤처럼 봉긋한 데가 보였다. 길라잡이가 말하였다.

"저 밑이 초천말입니다."

최형기는 눈짐작으로 미루어 뒷산에서부터 밀고 내려간다면 도적들이 달아날 곳은 골짜기

의 어귀나 아니면 그들이 서 있는 바로 이 자리라고 생각하였다. 산줄기가 합쳐진 이곳은

매복을 시켜두고 다시 마을을 이중 삼중으로 둘러싸고 나서 마을 가녘의 집에서부터 덮쳐나

갈 작정이었다. 혹시 새어나가는 자가 있게 될지라도 그들은 일단 마을 둘레에 쳐둔 그물을

빠져나가야 할 태고 그리고는 골짜기 어귀와 이쪽 산줄기의 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형기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은 낙엽을 그러모아 구덩이에 두텁게 깔고 또한 몸 위

로 수북하게 덮고는 추위를 견디었다. 응달진 북편 골짜기요 바람길이라서 날이 저물어갈수

록 매섭게 추워지고 있었다. 그들은 현에서 가져온 떡으로 요기를 하였다. 사방이 어두컴컴

하였는데 안기척이 들리며 군사들이 행군해 오는 게 보였다. 그는 파발 군사를 토하여 자세

히 듣고 있어서 가까이 오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물었다.

"어느 분이 토포장이십니까?"

최형기는 같은 무관이라 거리낌없이 말하였다.

"날세, 군사는 모두 몇 몇 명인가?"

"토성진 진장, 명을 받들어 거병했사옵니다. 모두 십 오가 넘습니다.""그래 토성 첨사께서도

무고하신가?"

"예, 비관을 뵙고 소장의 막중한 책무를 신신당부하셨소이다. 포수 이십 명에 진군 사십 명

을 조발하였습니다."

"음, 진군들은 습진조련에 능숙하겠지."

"육화진법을 익힌 군사 다섯 오와 궁수 세 오를 인솔하였습니다."최형기는 만족하여 진장의

뒷전에 섰는 체격이 고른 진군들을 둘러보았다.

끝춘이의 부탁을 받았던 조진포 어계방 점주는 그 무렵에 화여령을 넘어 양덕현 밖 삼십

리 어름에 당도하여 있었다. 그가 닭 울 녘에 훨씬 먼저 출발하였던 최형기의 일행을 이만

큼이라도 따라잡은 것은 워낙 원행의 장삿길에 이력이 났던 송방 차인 출신이고, 단신으로

급히 말을 몰아왔기 때문이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말과 사람은 둘 다 땀으로 젖었다. 어계방

점주 사내는 김선일과는 자별한 동무지간이요 마음속 깊이 장두령과 송도 박좌정을 흠모하

는 바가 있었다. 또한 다른 무엇보다도 선일이가 이미 관군에게 잡혔으며 양덕 산채의 운명

이 경각에 달하였으니 북관과 연결된 상로는 끊기게 될 것이며, 모처럼 차인으로부터 수달

피를 전매하는 점주로 올라선 자신의 생활 터전이 몽땅 없어지게 될 판이었다. 물론 그는

어계방에 위험이 닥치는 것은 훨씬 뒤가 될 서라고 알았으나, 바로 지척이 함흥 백운산이요

그 두령 업복이에게 의탁하면 후환은 그리 염려할 것이 없었다. 그들 식구들은 단천 회령

등지에도 있었고 압록강의 강변 칠읍에도 있었으니 그가 갈 곳은 많았다. 조진포 점주는 이

번에 자신이 맡은 일이 박대근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혼자

말을 달려 양덕현내로 들어간 것은 이미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하루 종일 말을 달려와 거문

재에서 잠시 요기를 때우고 이제 자시 무렵에야 현에 이르렀으니 말과 사람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양덕 행보가 초행길이라 끝춘이에게서 들었던 양덕 초천말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양덕현은 워낙 궁벽한 고장이요 객점이나 저자도 없는 곳이라 그는

이집 저집을 기웃거리다가 길가에 삽짝이 나 있고 그 안쪽 방의 창호에 불이 밝혀진 집을

보자 무조건 말에서 내려 쫓아들어갔다.

"주인 계시오?"

그가 조심스럽게 부르니 방문이 밖으로 밀려지면서 한 사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게 뉘슈?"

"에, 저 성천에 가는 길이온데 그만 날이 저물어 잠시 요기나 하고 갈까 하여 찾았습니다.

상목이 있으니 밥이나 좀 얻어먹읍시다."

"이 밤중에 다른 곳을 찾기도 어려우니 잠시만 신세지도록 해주오. 날이 새자마자 곧 떠날

게요."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지요."

주인도 마지못한 듯이 툇마루로 나와 서면서 일렀다. 조진포 사내는 말고삐를 쥔 채로 말

하였다.

"하온데 제가 다 값을 쳐드릴 것이오니 말죽이라도 쑤어주셨으면 하오.""염려 마시오. 말은

그 나무 밑둥에 매어두시구려."

조진포 사내는 주인의 방에 들어가 앉았다. 윗목에 이불 한 채와 선반이 있었고 관솔불이

조는 듯이 까물대고 있었다. 밖에서 우왕좌왕하던 주인이 그의 내자가 차려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자, 드시구려. 촌이라 반찬이 없어서."

조진포 점주는 두말 할 것 없이 얼른 밥상을 당기고 앉아 조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데 집주인이 물었다.

"도대체 이 밤중에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예? 고원서 오는 길입니다."

"성천까지는 이백 리가 되는 길인데 내일 하룻길로는 좀 벅찰 게요. 보아하니 말도 지친 것

같든데."

"초천이 어디쯤 됩니까?"

"성천 가는 꼭 중간 어름에 있소. 역말이라고는 하여도 마땅한 객점은 없으니 차라리 길양

식 가지고 가서 역에 가서 밥을 붙여 먹는 게 나을 거요. 헌데 지금 우리 고을에 소동이

일어났지요."

조진포 사내는 짚이는 데가 있어서 고개를 쳐들고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우리 경내에 대적이 있답니다. 혹시 장길산이라고 모르슈?""글쎄요 들은 적은 없소."

"모두들 수군거리는데 한양에서 토포장이 내려와 군을 휘동하여 장길산을 잡으려 한답니다.

장길산이라면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해서 활빈도의 두령이지요. 아까 오후에 양덕현의 향

군 포수들이 이미 발정했습니다. 저희들 깐에는 호환으로 범사냥을 나간다지만 모두들 도적

을 잡으러 나갔다고 쑤군거려서 저두 알았지요. 그래 제가 이르는 말씀은 아예 느긋하게 마

음잡숫고 내일 이 고을 사정을 보아 점심때쯤에나 떠나시라 그런 말씀이우. 또 혹시 압니까.

낯선 고장에서 나다니다가 토포군에 피촉되어 곤경을 치르게 될지."조진포 사내는 이미 관

군의 토포가 시작된 것을 알았다.

"고맙소. 하여튼 이걸 받아두시오."

한 끼니 값으로는 좀 과하다 싶게 무명 끝동을 내어주고 나서 조진포 사내는 잠시 구들장

을 지고 쉬었다. 그는 피로와 식곤증으로 까무룩하게 잠들었으나 얼결에 돌아누우면서 눈에

번쩍 뜨였다. 얼마나 되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기왕에 백여 리를 달려왔으니 자신이 맡은

일은 해내야만 한다고 다짐하고서 그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마당에 나가 말을 끌고 어

둠속으로 헤집고 나섰다. 그는 서쪽으로 나 있는 길을 바라고 다시 말 위에 올라 고삐를 당

겼다. 그는 초천역을 바라고 달렸던 것이다. 동녘이 부옇게 트고 있는 가운데 그는 노풍산

고개를 넘었고 고갯마루에서 아래편의 초천역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집이 몇 채 있었고 기

다란 역사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어계방 점주 사내는 이제 초천역이라 그 산마루를 돌

아서 내를 따라 골짜기로 오르면 길산네 산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드디어 당도한 것이다.

그는 말의 배를 가볍게 발로 차면서 노풍산의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가 창고와 역

사가 있는 역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길 위로 장창을 든 군졸 한쌍이 뛰어나와 길 양쪽에

막아섰다.

"게 섰거라!"

군졸 중의 하나가 장창을 앞으로 내질러 겨누면서 외쳤다. 아뿔사, 관군이 먼저 와서 길목

을 지키고 있구나 하면서도 조진포 점주는 말을 멈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

려 말고삐를 왼쪽으로 당기면서 배를 더욱 힘껏 찼다. 말은 길에서 벗어나 역말의 밭두렁

사이를 돌아서 뛰고 있었다. 역말이 대번에 그의 등뒤로 멀어졌다. 산에서 깔리기 시작한 새

벽 안개가 숲 사이에 가득하였다. 그는 곧 두 갈래의 내가 합치는 곳에 이르렀는데 말발굽

아래에서 살얼음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에 골짜기를 울리면서 방포 일성이 일어났

다. 연환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길게 여운을 끌며 지나갔다. 산의 양쪽에 매복하여 있던

기패관의 어느 오에서 잘못 방포한 것이었다. 뒤이어 내키지 않는 듯이 또 한 방이 터졌다.

어계방 점주는 몸을 바싹 구부리고 말을 몰아달려 지나갔다. 그는 골짜기 속으로 계속 달려

들어갔다. 이 총소리는 초천 인근의 모든 사람이 들었다. 먼저 초천역말의 역사에서 자고 있

던 현감 안신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전립 입고 자던 차림대로 신만 꿰며 달려나왔고, 군사

를 정돈하고 현감을 깨우려던 병방이 급히 아뢰었다.

"방금 웬놈이 말을 몰아서 번군 앞을 지났는데, 아마도 복처에서 쏜 모양입니다.""뭐라구 그

놈이 도적들에게 관군의 급습을 알리려는 놈일 텐데 잡지 못했단 말이냐? 왜 나를 깨우지

않았느냐?"

"예, 곤히 주무시기로 지금 깨우려는 참이었습니다."

안신은 앞뒤를 돌아볼 경황이 없었다. 이제 다 지어논 잿밥에 콧물 빠뜨린 격이었다. 자칫

하면 공을 빼앗기게 될지도 몰랐다.

"자아 모두 나서라. 도적의 굴혈로 짓쳐들어간다."

병방이 말을 끌고 오자 그들은 말 위에 올랐으며 일 초의 향군들은 정렬을 하고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골짜기의 어귀에서 매복하여 있던 두 오의 군사들이 기패관의 인솔에 따라 아

래로 뛰어내려왔다. 현감 안신은 화가 나서 기패관의 얼굴을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빈틈없이 짜두었던 그물을 네놈이 찢고 말았다. 만약에 장길산을 놓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초천말에는 길산네 식구와 강선흥 최흥복 강말득 김기 그리고 구월산 분가 때에서부터 자

비령 시저에 이르기까지 충직하게 그들을 따라 왔던 활빈도의 식구들 하여 장정이 열다섯잉

아녀자가 이십여 명쯤 되었다. 마을은 여느 산골마을과 차이가 없었는데 다만 마필이 많고

창고가 두 군데나 있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몇집에서는 일찍 일어나 아침 지을 준비를 하

는 데도 있었지만 역시 아직은 이른 시각이었다. 길산이네도 안방에 길산과 아내 봉순과 구

월이가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길산은 미닫이문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는데 창호가 훤하여

눈을 감은 채로 얼설프게 깨어 있었다. 그때에 총소리가 들렸다. 먼 곳이기는 하였으나 길게

끌리는 여운이 총소리가 틀림없었다. 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두리번거리는데 다시

또 한번 총성이 들려왔다. 길산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앉았다.

"왜 그러셔요?"

봉순이가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길산은 이불은 젖히고는 바지 저고리 위에다 털배자를

걸치고 마루 끝에 나가서 섰다. 바로 이웃집이 선흥이네 집이요 그 뒤가 흥복이 그리고 좀

떨어져서 강말득과 김기가 다른 식구의 집에 방 한칸식 차지하고 살았다. 길산이 옆집의 담

너머로 오락가락하는 선흥의 아내 춘천댁을 보고는 말을 건넸다.

"계수씨, 선흥이 일어났습니까?"

춘천댁은 계면쩍게 웃으며 말하였다.

"새벽잠 못 참는 거야 온 동네가 다 알지요."

"어서 깨우시오."

길산은 보통 때와는 다른 정색한 얼굴을 대하자 춘천댁은 금방 자라목이 되어가지고 방으

로 뛰쳐들어갔다. 이제는 봉순이도 깨어난 수복이와 구월이를 데리고 그의 뒷전에 서 있었

다.

"여보, 총소리였지요?"

"아이들 옷 입히구려."

길산은 그렇게만 대꾸하였고, 놋쇠방울이 떨렁하더니 삽짝이 열리면서 강말득이가 들어섰

다.

"성님, 들으셨지요?"

"그래 식구들 몇 데리구 나가서 둘러보아라."

그들이 긴장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초천말 가까이 포수가 방포할만한 산이라곤 없는 셈

이었다. 초천말 인근은 모두 나지막한 야산이었고 포수들도 언진산맥의 줄기나 낭림산맥의

연봉을 찾아가게 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꿩이나 토끼 덫을 놓는 게 고작이었으며, 인가

라고는 초천말 외에는 사방 삼사십 리에 마을이 없었다. 가장 가까이 있다는 초천역말까지

도 삼십여 리요 그곳도 네댓 호나 될까말까 한 궁벽한 곳이었다. 또한 지금은 방포할 시각

이 아니었다. 길산이 깨어나 서성대는데 그런 기분은 곧 온 마을에 옮아갔다.

"성님, 아침부터 웬일이우?"

담 너머로 강선흥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쑥 내밀어졌고, 길산이 말하였다.

"식구들 모두 병장기 가지고 모이도록 해라."

"왜요, 사냥 가실라우?"

길산은 웃는 낯으로 받았다.

"그래, 동절이라 아랫목만 지키고 있으면 마음이 해이하여 안되겠다. 습련 겸하여 사냥이나

나가나."

"에이 아침이나 먹구 합시다."

길산은 그제서야 좀 짜증이 났다.

"어서 옷 두툼히 입고 나서서 식구들 모으라니까."

"알겠수."

"김선비님 오시라구 하여라."

하는데 벌써 김기가 의관을 단정히 하고서 길산네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령도 들었지요?"

"예, 그래 좀 이상하여 강서방에게 나가보라구 했습니다."김기는 길산이처럼 팽팽하게 긴장

하여 있었다.

"뭐 별일이야 있겠소마는 집안이 접근하는 것도 또한 불리한 일이니, 타지의 포수라면 마땅

히 골짜기 밖으로 내보내야겠지요."

마을이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최흥복이도 들어왔다.

"말득이가 아이들 데리고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초천말은 자루처럼 구부러진 골짜기의 안쪽이라서 먼 곳을 내다보려면 마을 앞으로 휘돌

아들어온 초천내를 건너서 나가보아야 하는 것이다. 무릎 깊이쯤의 내 위에는 마을에서 놓

은 통나무로 역은 다리가 걸려 있었다. 보다 더욱 멀리 드넓게 살피면서 역시 젖무덤처럼

봉긋이 솟아오른 쌍봉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남쪽으로 곧장 자하산까지 보이고 양덕 성

천간이의 길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그리고 뒤로는 성천을 돌아서 양덕 경계의 개나루를 지

나 금성산에 닿는 비류강이 보였다. 쌍봉 파수는 처음에 이곳에 와서는 언제나 두 사람씩

오려 보냈지만 인원도 충분치 않았고 공연히 부녀자들의 기분만 건드리게 될까 염려되어 곧

폐하고 말았던 것이다. 잠시 후에 말득이가 온몸이 흙투성이로 더럽혀지고 눈알이 충혈된

사람과 말을 뒤에 이끌고 왔다. 그의 뒤로는 또한 강선흥이가 모아온 식구들이 대충 병장기

를 챙겨서 몰려들어왔다. 길산은 곧 그 사내를 알아보았다.

"자네가 웬일인가?"

어계방 점주는 마른 입술을 핥으면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말득이가 먼저 말하였

다.

"성님, 토포군이 온답니다. 이미 골짜기로 들어온 모양입니다."길산은 놀라지 않고서 어계방

의 점주 사내에게 물었다.

"어찌된 일인가?"

"원산포의 이시흥이도 잡혔고, 고원 선일이도 잡혔습니다. 그 댁 아주머니가 간신히 빠져나

와 저희 어계방에 와서 알려주어서"

계속되려는 조진포 사내의 말을 막으면서 길산이 말하였다.

"자 우물쭈물할 틈이 없다. 식구들을 둘로 나눈다. 먼저 한쪽이 관군을 막아 싸우는 동안에

다른 식구들은 쌍봉을 오라 삼방령과 비파산을 넘어 오라발산으로 빠져나간다. 일단 오라

발산에서 헤어졌던 식구들이 합하여 낭림산맥의 북맥을 타고 운봉산으로 갈 것이다."김기가

말하였다.

"두령, 그 길은 관군들도 예상을 할 것이오. 또한 토성진이 있으니 진군들이 우리의 퇴로를

끊고 기다릴지도 모릅니다. 한 치라도 멀리 양덕계에서 벗아나야 합니다. 쌍봉을 넘어 곧장

비류강을 건너면 성천계올시다. 박달령에서 모이는 것이 어떨는지요."길산은 김기의 말을 옳

게 받아들여 퇴로를 다시 정하고는 곧 식구들에게 일렀다.

"아녀자들은 약간의 길양식과 옷가지를 챙겨서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집에 있는 세간은 모두

버리시오. 말득이가 식구들의 길안내를 맡는다. 삼촌도 이들을 따라가시고, 도중에 뒤처지

면 부축하고 업고 갈 사람이 둘쯤 더 필요하겠군. 선흥이와 흥복이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나를 따라 관군을 막으러 간다."

누구도 다른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말득이는 사람들에게 어서 봇짐 꾸려 나오라고 외

쳤다. 봉순이도 수복이와 구월이를 데리고 아녀자들 틈에 섰는데 길산은 선흥이와 흥복이를

비롯한 장정 열 사람을 이끌고 동구 쪽으로 달려가버렸다. 봉순이는 그들이 골짜기 저편의

적송숲 사이로 사라지는 것만 눈바라기했을 뿐이었다. 최형기는 전날 밤에 쌍봉의 줄기가

비파산 줄기와 만나는 지점에 토성진의 궁수 한 오와 두 오의 진군을 묻어두고, 내처 행군

하여 쌍봉의 골짜기에서 진을 쳤었다. 그들은 땅을 파고 낙엽을 깔고 위에는 생솔 나무로

덮어 하룻밤 숙영할 움막을 지었던 터였다. 십이월 산속의 추위와 냉기는 혹독하였고 모닥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였으나 모두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밤새 잠들지 못하였다. 번이 두

사람씩 교대로 위에 올라 초천말을 망보았고 최형기는 박완식과 더불어 한 움막에 들어 몸

위에 낙엽을 잔뜩 덮고 누워 있었다. 그들은 피로가 극심하여 서로 말을 나눌 사이도 없이

깊은 잠이 들었던 것이다. 새벽이 되었느데 수교가 와서 급히 찾았다.

"토포장, 일어나십시오."

"어 날이 샜나?"

"방포 소리를 들으셨습니까?"

수교의 말에 눈을 가물거리며 누웠던 최형기는 낙엽을 좌우로 헤치고 일어났다.""방포 소리

라니"

최형기가 되물으며 뛰쳐나오고 곁에 누웠던 박완식도 움막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토

성진 진영장과 양덕현 수교가 나란히 움막 앞에서 있었다.

"방금 번 들던 아이들이 내려와 멀리 골짜기 아래쪽에서 총 놓는 소리가 들렸다고 고하였습

니다."

진영장이 말하였고 수교가 덧붙였다.

"소인도 마침 깨어 있었기에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최형기는 그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는 얼른 고갯마루로 올라갔다. 짙은 송림 아래로

초천말 쪽은 고요해 보였다. 나무 틈 사이로 노란 초가지붕이 몇점 틀어막혀 있는 것이 보

였다.

"짓쳐내려가지요."

박완식이 최형기에게 속삭였다. 최형기는 숨이 막힌 듯 눈을 크게 부릅뜨고서 적송숲을

내려다보았다.

"선수를 빼앗겼다!"

세 사람은 최형기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서로 시선만 주고받았다. 최형기가 분노

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이 입을 꾹 다물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작전의 약조란 목숨보다 더 중여하거늘 안모가 공명심 때문에 나를 배신하는고나. 그자가

공을 탐내어 먼저 산채를 공략하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이제 여기서 몰고 내려간다면 도

적들은 필시 좌우로 빠져 달아나거나 거개가 현감의 향군들에게 잡힐 것이 분명하다."진영

장이 물었다.

"하오면 어찌하시렵니까?"

"어찌하겠나, 자네 같으면"

최형기는 일어났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군사들이 모여 있는 고개 아래로 내려갔다. 박완식

이 뒤따라가며 물었다.

"다 지어놓은 밥을 남에게 밥상째로 내주시렵니까?"

"현감 안신이 선공하여 들어간다면 그자는 제 꾀에 넘어가는 격이다. 우리는 여기서 도적들

의 퇴로를 끊고 기다린다. 이 골짜기에서 큰산의 연맥을 타는 길은 바로 이곳뿐이다. 살진을

벌여두고 입속에 먹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곧 토포장의 뜻을 이해하였고 최형기의 명에 따라서 군사의 오를 나누기 시작하였

다. 쌍봉의 동북 줄기에 다른 매복 군사를 남겼으니, 이제 여기에는 포수 이십과 진군 다섯

오를 합하여 마흔다섯이 있었다. 지군 다섯 오 가운데서 궁수가 열이요 열다섯이 장창 가진

군사들이었다. 먼저 이십 명의 포수는 최형기가 지휘하기로 하였으며 궁수 열 명은 진영장

이, 단병접전할 군사들과 경군 다섯은 박완식이 맡기로 하였다. 그들은 양쪽의 산중턱에 포

수들을 배치하고 다시 고갯마루에 궁수들을, 또한 고개 아래쪽 좌우 숲에 장창수며 환도 가

진 진군 스물을 깔아두었다. 길산과 선흥이 흥복이와 산채 장정들 열 사람은 둥구 밖의 초

천내에 걸린 다리를 건너서 골짜기를 내다보이는 곳까지 달려나갔다. 그들은 골짜기 아래쪽

에서 행군하여 오고 있는 관군들의 거뭇거뭇한 더그레 군복들을 볼 수가 있었다. 길산은 관

군을 이곳에서 막아내며 식솔들이 쌍봉고개를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을 벌어둔 다음

에 오른편 등성이의 울창한 적소숲으로 몸을 감추어 그대로 야산의 산줄기를 타고 개나루까

지 나아갈 참이었다. 그는 밤에 비류강을 건너고 곧장 가고지령(加古之嶺)을 따라서 박달산

돌장승이에 당도할 생각이었다. 관군을 막아내다가 일시에 물이 빠지듯 퇴각하려면 골짜기

양편으로 갈라서는 것보다는 골짜기를 막고 있다가 숲으로 한꺼번에 잠입하는 것이 유리할

듯하였다. 산채 식구들은 모두 화승총을 가지고 있었고 짜른 칼이나 쇠몽치 같은 단병의 병

장기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단방 부시며 화약 연환 등속이 듬뿍이었

고 특히 최흥복이는 왜포 자웅 한쌍을 가죽집에 넣어서 메고 있었다. 방포술에는 최흥복이

뿐만 아니라 장길산이나 다른 식구들도 수년 전부터 숙달되어 있었다. 방포에는 서툴던 강

선흥이도 이제는 제법 솜씨가 늘어서 조롱박을 꿰지는 못하였지만 대독을 박살낼 정도는 되

었다. 길산이 일행은 계곡에 이리 비쭉 저리로 우뚝, 솟고 내려앉고 굴러 있는 바위를 의지

하여 각자의 자리를 잡았다. 맨 앞에는 털벙거지에 구군복 입은 병방이 환도 빼어들고 달려

왔고 향군들은 장창을 든 포수들이 뛰었으며 현감은 맨 뒤에서 행렬을 몰고 있었다. 길산의

바로 곁에 최흥복이 엎드렸고 그 뒤에 강선흥이가 엎드렸다. 다시 좌우로 구월산 때부터의

식구들 여덟 명이 총에 연환을 재고 부시를 붙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행렬은 차츰 다가

왔다. 백 보, 오십 보, 그들의 턱에 닿는 숨소리가 바로 코앞에 들였을까 싶을 적에 최흥복

이가 끊어서 짧게 내뱉었다.

"방포."

시척, 불이 당겨지고 귀청을 찢을 듯한 총소리가 여러 방 불규칙하게 터졌다. 앞장섰던 병

방이 말 위에서 떨어지고 행군하여 오던 군사의 전열이 무너지며 나자빠졌다. 조련을 잘 받

은 군사들이었다면 그 자리에 엎드렸다가 연환을 피하며 산개 포복하여 들어오거나, 아니면

그대로 기세를 몰아 장창을 겨누고 돌겨하여 들어올 터이지만 그들은 급한 대로 향리에서

하룻밤새 그러모은 향소 군사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갑자기 청둥처럼 터지는 총소리에 놀랐

고 사람이 죽어 나뒹구는 꼴을 보자 그만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들은 뒤죽바죽

엉겨서 방향을 모르고 사방으로 뛰었다. 현감 안신은 마상에서 환도를 빼어들고 휘두르며

흩어지는 군사들을 정돈하려고 외치고 다녔다.

"앞으로 나가라. 병장기를 버리지 말라!"

그러나 그 소리가 향군들의 귀에 들어갈 리 만무하였으니, 다시 한 한차례의 총성이 일어

나며 대여섯 명이 쓰러졌고 현감 자신도 총에 맞아 울부짖고 쓰러지는 말 위에서 내동댕이

쳐졌다. 그는 몸을 낮게 숙이고 뒤로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포수들은 오와 열을 갖추라."

기패관이 포수들을 바위 사이사이로 배치하였고 단병접전에 나설 향군들은 그 뒤에 안신

과 더불어 엎드렸다. 안신이 무릎걸음으로 기패관의 곁에 가서 엎드렸다.

"도적들이 얼마나 되는가?"

현감의 물음에 기패관이 헐떡거리며 답하였다.

"글쎄요 화력으로 보아 한 이십여 명은 넘는 것 같소이다."현감은 분통이 터져서 제 무릎을

두드리며 탄하였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라 하나 일 초나 되는 군사가 도적들 이십여 명에 가로막혀 이 지경이

된단 말인가."

"사또, 여기 포수들을 독려하여 일변 총을 쏘면서 적들을 묶어두십시오. 그 사이에 저는 군

사들 다섯 오를 이끌고 저들의 왼쪽 측면으로 기어들어갈 것입니다. 저희들이 찌르며 돌입

하면 나머지 군사들을 앞으로 내몰아주소서."

기패관이 그래도 급료군이라 현감보다는 응변에 대한 재조가 있어 그럴 듯하게 안을 내었

다.

"병방은 어찌되었느냐?"

"예, 저 앞에 쓰러져 있는데 적탕에 맞아 급사한 것 같습니다.""네가 오늘의 전공을 독차지

하겠고나. 나는 너만 믿는다."현감 안신은 뒤로 빠지는 기패관의 모습을 살피고 나서 포수들

에게 명하였다.

"쏘아라."

포수들은 머뭇거리며 총을 쏘지 않았으나 안신이 다시 호통을 쳤다.

"도적들에게 쏘란 말이야."

포수들 중의 누군가가 말하였다.

"사또, 표적 없는 방포란 이치에 닿질 않습니다. 도적들은 모두 바위 뒤에 숨어 있습니다."

현감은 문신이요 습련 훈련마저 해보지 않은 처지라 용병을 어떻게 해야 될지 감감하였

다. 드디어 공격의 오를 짠 기패관이 향군 스물댓명을 이끌고 몸을 낮추어 계곡의 가녘으로

접근하여 갔고 총격은 그쪽으로 가해졌다. 두엇이 총에 맞아 다쳤으나 그들은 꾸준히 기어

서 접근하였다. 길산의 쪽에서도 이쯤은 처음부터 예상하였던 일이라 당황하지 않고서 잽싸

게 이동을 시작하였다. 즉 일방으로 다가드는 자들에게 사격하며 계곡의 야산 등성이로 뒷

걸음질쳤던 것이다.

쌍봉의 고갯마루를 끊고 기다리던 최형기의 토성진군들은 산 애래쪽에서 어지럽게 터지고

있는 총소리를 들었다.

"토포장, 도적들이 올라옵니다."

포수들이 오장이 최형기에게 알렸다. 최형기가 고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마을 뒤로 보퉁

이를 메거나 말을 이끌고 아이들을 업고 걸리고 하면서 초천말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올라오

는 중이었다. 그들이 차츰 가까워지자 형기는 발을 구르며 애타게 중얼거렸다.

"도적들이 어디로 갔는가. 저것은 그들의 식솔들뿐이 아닌가." 그러나 때는 이미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제 군사의 오를 다시 편성하고 이동하고 할 겨를이 없었다. 초천말 사람들

의 행렬은 고개 중턱에 오르는 중이었다. 일단 그들을 덮치고 나서야 군사의 이동이 가능

할 것이었다. 다시 총성이 아랫쪽 골짜기에서 어지럽게 일어났으며 최형기는 장길산이 그

곳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들은 식솔들을 빼돌리고 관군을 가로막아 퇴로가 안전

하도록 사이를 벌자는 것이다. 현감 안신의 용병으로는 노련한 장길산의 혈당을 잡을 수가

없을 게 분명하였다. 충분한 시간을 벌고 나서 길산의 혈당들은 나는 듯이 골자기를 빠져

나갈 터였다. 하나 저들 가운데에는 하다가 최형기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렇다, 틀림없

이 장길산의 가족이 섞여 있을 것이며 그들은 어느 곳에선인가 마나기로 약조가 되어 있

을 것이었다. 좋다, 장길산의 가족을 우선 잡아두고서 길산의 행적을 끝까지 추적한다. 실

패한다면 또한 그들 가족을 미끼로 장길산을 끌어들일 수가 있을 것이다. 최형기는 바람 속

에서 다가오는 행렬의 말의 콧김소리며 서로 부르고 찾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최형기는 눈을 떴고 초천말 식솔들의 인상이며 옷차림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거

리에까지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았다. 맨 앞에 화승총을 멘 자고 올라왔고 중간에 견마를

잡은 자가 둘이었으며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자도 보였다. 그러니까 남자가 모두 네 사람

이요 나머지 여자와 아이들 합쳐서 스무 명 남짓되어 보였다. 최형기가 포수의 오장에게 일

렀다.

"모두 쏠 필요는 없다. 사내들만 쏘되, 죽지 않을 사지를 겨누어라." 초천말 사람들이 빠져

나갈 틈이라곤 하늘 위로 나를밖에 다른 활로가 없었다. 포수와 궁수, 그리고 매복 군사들

이 세 겹으로 그들의 전후좌우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는 말하자면 현감의 향군이 고기를 몰

듯이 초천말을 휩쓸고 나오면 그들의 물속에 잠기게 두었다가 떠낼 그물을 쳐둔 셈이었다.

설사 길산의 범 같은 용맹으로도 최형기의 포위망은 뚫지 못하였을 것이다 총성이 터졌다.

부녀자들의 비명과 아이들을 울음소리가 뒤를 따랐다. 강막득은 멈칫, 하였다가 좌우를 둘

러보고서는 자세를 낮추었다. 김기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말은 사방으로 뛰고 봇짐은 흐트러졌다. 말득이가 김기를 잡아 일으켰다.

"삼촌, 삼촌"

"강서방"

김기는 가슴에 총을 맞았는지 옷 위로 피가 번져가고 있었다.

"내게 업히시우."

그러나 김기는 희미하게 웃었다.

"글렀어. 나두 집사람 곁으루 가야지. 두령께 전해주게" 말득이는 김기를 끌어안아 등 위에

얹고는 사람들 틈을 비집었다. 그러나 몇발짝 가지 못하여 그의 팔이 축 늘어지더니 말득의

어깨를 넘어 떨어졌다. 말득이는 어깨를 기울여 김기의 상반신을 끌어안으며 앞으로 무릎을

꿇었다. 다시 총성이 들리고 고개 아래로 뛰던 여자들 두엇이 쓰러졌다. 숲속에서 찌렁찌렁

한 목소리로 토포장 최형기가 외치고 있었다.

"도적들은 듣거라. 저항하면 누구든 살려두지 않겠다. 살고 싶으면 그 자리에 엎드려라."

아래쪽에서 매복하여 있던 진군들이 길을 가로막고 장창을 겨누며 올라왔다. 길산의 아내

봉순은 첫 번 방포가 있었을 때 아이들과 함께 놀란 말에서 떨어졌다. 견마를 잡았던 장정

은 이마를 정통으로 맞아 숨져 있었고, 구월이가 떨어지며 머리를 부딪쳐서 얼굴이 새파랗

게 되어 울었다. 봉순이는 우는 구월이를 꼭 껴안고 수복이의 등을 한 팔로 감싸고서 땅 위

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던 것이다. 강말득은 오른편 산등성이에서 총을 겨눈 채로 모습을 드

러낸 군사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가운데 남바위를 쓰고 허리에 짜른 환도를 지른 사내가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그가 토포장일 것이었다. 말득이는 왼쪽의 포수

들을 보았으며 그들이 방금 지나온 길 위에 화살을 메겨서 겨누고 섰는 궁수들과 장교를 보

았다. 토포장이 외친 대로 그들은 아무데도 빠져나갈 데가 없었다. 말득이는 김기의 시체 옆

에 웅크리고 있다가 가슴에 손을 넣었다. 바로 옆에는 그가 메었던 화승총이 있었으나 불을

당기기 전에 그는 화살에 꿰일 것이었다. 말득이는 허리춤에서 자신의 단병 무기인 자고 두

대를 꺼내어 손바닥 안에 넣었다. 말득이는 앞으로 그들에게 남은 길은 관군에게 잡혀서 온

갖 초달을 받다가 압송되어 참수 효시형을 받는 것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등덜미에는

김기의 가슴팍에서 흘려나온 피가 벌겋게 묻어 있었다. 말득이는 김기의 희끗한 수염이 바

람에 간들거리고 있는 모양을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눈을 감겼다. 그

리고는 손아귀레 넣은 자고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언덕으로 몸을 돌렸다. 말득이가 언덕

으로 뛰어오른 것은 토포장을 죽이겠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표적으로 네세워 관군

의 총에 맞아 죽겠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고를 나려서 예전의 솜씨대로 포수 하나를

쓰러뜨렸고 다시 자고 쥔 손을 위로 치켜오리면서 뛰어올라갔다. 포수들은 좌우로 물러나며

제각기 방포하였다. 서너 발을 한몸에 맞은 강말득은 언덕에서 뒤로 넘어져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최형기는 높은 곳에서 내려오지 않고 고스란히 잡힌 도적의 식솔들을 내려보았다.

"박부장은 나를 따르라. 그리고 포수 오장은 한 오만 거느리고 나서라." 최형기가 잡힌 아

녀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명하였고 박완식과 진군의 포수 한 오가 올라갔다. 경군 다

섯과 토성진 포수 다섯을 거느리고 최형기는 고개를 넘어 초처말로 내려갔다. 벌써 집뒤짐

이 시작되어 포와 곡물자루를 어깨에 주렁주렁 걸어멘 양덕현의 향군들이 집집마다 들락거

리고 있었다. 최형기는 부담농을 드고 나오던 자의 멱살을 틀어쥐며 물었다.

"너희 안전은 어디 있느냐. 도적들은 어찌도었느나?"

"모 모르오."

"끼놈들 누구 명으로 함부로 뒤짐을 하는가. 모두 나를 따르라. 어기는 놈들은 군율로 다스

린다."

향군들은 근 이십 명쯤이었는데 아마도 마을 사라들을 잡으러 나섰다가 위에서 진군들의

방포 소리를 듣고 마을을 약탈하기로 하였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모두들 통나무다리를 건너

동네의 어귀로 빠져나왔고 거기서 흩어진 시신이며 부상자들을 수습중인 양덕현감을 보았

다. 최형기가 거칠게 물었다.

"장길산은 어디 있소?"

현감 안신은 산등성이의 짙은 숲속을 손가락질하였다.

"그가 거기 죽어 있단 말이오?"

"놓쳤소이다."

안신은 최형기의 이글이글 타는 것 같은 눈길을 피하여 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찌나 방포슬이 귀신 같으지 산 위로 오르다가 여럿이 죽고 다쳤소." 최형기가 한 손으

로 단검의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 다른 손가락으로 곧장 안신의 얼굴을 겨누듯 가리켰다.

"용병작전의 약조를 어긴 것이 누구요. 진군이 마을로 쳐들어가면 사또는 골짜기의 어귀를

지키기로 했지 않소."

"도적들에게 알리는 자가 초천역을 뚫고 들어왔으니, 어쩔 수가 없었소." 최형기는 안신과

는 더 이상 대꾸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당장에 그의 목을 나리고 싶었다.

최형기는 군사들에게 돌아서며 말하였다.

"병방과 기패관은 앞으로 나서라."

온몸이 흙투성이로 더럽혀진 기패관이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병방은 도적들의 총에 전사했소이다."

"너희 목을 차례로 베기 전에 이르겠다. 지금부터 장적의 뒤를 쫓는다. 도적의 총포가 두려

워 처지거나 앞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제부터 내가 몸소 참하리라. 자, 모두 산으로 올라가

라."

골짜기의 오른편 가파른 등성이로 오르니 끝간데 없는 수해(樹海)였다. 아름드리 적송과

전나무며 잣나무 등속이 북록의 희끗희끗한 눈과 더불어 수없이 오르내리며 뻗어갔다. 박완

식이 말하였다.

"도적들은 이 등성이를 타고 나아갔을 것입니다."

최형기가 기패관에게 물었다.

"이 산줄기가 어디까지 뻗어 있는가?"

"예, 성천계인 개나루에 가서 그칩니다. 산길 오십 리가 넘지요." 최형기는 산등성이 저편

에 주춤 일어나 봉긋한 산봉우리들을 네 군데로 모으고 있는 곳을 눈을 주었다. 돌아보며

노풍산, 옆으로 보면 자한산이요 마주보니 마증산이었다.

"저 산이 무슨 산이냐?"

"마증산올시다."

"큰 산이로군."

최형기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이미 길산을 잡을 가망이 없었다. 이 길로 뒤를 추적하여 한

편으로 비류강 일대를 막고 또 한편으로는 마증산을 이 잡듯이 뒤져내야 할 것이었다. 그런

일은 양덕현의 이백여 향군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연맥이 없던 구월산에서도 인근 시읍의

향군이 총동원되어 인성(人城)을 둘렀던 터였다. 최형기가 조용히 말하였다.

"박부장은 도적들의 뒤를 쫓아라. 나는 먼저 가서 개나루를 지킬 것이다." 박완식이 경군들

과 진군 포수 향소 군사들을 기패관과 함께 이끌고 산등성이를 타고 숲 사이로 사라졌고,

최형기는 한꺼번에 몰려온 피로감으로 그 자리에 잠시 쭈그리고 앉았다.

또 놓쳐버렸다! 겨우 장길산의 은신처를 알아내어 턱밑에 당도하였건만, 당상비국에서 내준

막강한 비관에 의하여 군사 조발권에서 지휘에 이르기까지 토포장으로서의 가장 큰 지원을

받았건만, 토포는 다시 실패였다. 그의 혈당 몇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을 뿐이다. 그러나 최

형기는 구월산에서처럼 모든 그의 장래가 발밑에서부터 무너져가는 듯 절망하지는 않았다.

이제 심문하여보면 알 일이나 저들 마을의 식솔들 가운데는 장길산의 혈육들이 틀림없이

끼여 있을 터였다. 최형기의 안타까움과 분노에 값할 만큼 길산에게도 쓰린 심사를 안기게

되는 것이다. 최형기는 어느 쪽이 실리에 가까운가를 따졌다. 토포는 실패란 것이 아니라 이

제 시작일 뿐이다. 자신이 조정 당상들게 나아가 그 사실을 애써 알릴 작정이었다. 장길산과

선흥이 흥복이 드의 열 사람은 오른편 야산으로 퇴각하다가 쌍봉 쪽에서 들리는 총성에 놀

라 그 자리에 멈추었다.

"쌍봉 쪽이 아니냐."

길산이 등뒤를 돌아보았고 최흥복이 말하였다.

"관군입니다. 우리는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성님 식구들이"

강선흥이가 부르짖으며 돌아서서 뛰려 할 때 흥복이가 가로막고 섰다.

"지금 가봐도 늦었수. 우리가 거기 가봤자 관군에게 죽거나 잡히는 길뿐이우."탄환이 몇방

날아왔다. 골짜기 어귀를 공격했던 향군 포수들이 뒤를 쫓는 중이었다.

"우선 급한 것은 저들을 멀찍이 떼어놓는 일이우."

그들은 응사하면서 산등성이를 타고 서북쪽으로 퇴각하였다. 선흥이가 몇번이나 돌어섰지

만 최흥복이가 가로막았고 길산이도 이제는 앞장서서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들은 해가 높

직이 떴을 적에 마증산의 연봉을 타고 올랐다. 추적하던 관군이 보이지 않았다. 길산은 시종

침울한 얼굴로 저만치 떨어져서 앉아 있었고 선흥이가 말하였다.

"나는 이 길루 돌아갈란다. 식구들은 관군에게 잡혔을 거야."흥복이가 소매로 두 눈을 쓱 닦

고 나서 길산이 쪽을 흘깃 돌아보았다.

"돌아가서 어쩔 테유. 혼자서 엄파 쇠몽치를 휘두르다가 포승에 얽히는 게 고작이오. 다행히

빠져나오면 박달령으로 올 것이고"

다른 식구들은 모두 침통한 얼굴로 말들이 없었다. 길산이 말하였다.

"모두 돌아갈 필요는 없다. 너희들은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라. 가족들이 어찌되

었나 살피고 와야겠다."

"나두 가겠수."

선흥이도 나섰고 흥복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선흥이 언니, 정말 어린아이처럼 그럴 거야? 저들은 온 고을의 향군과 포수를 휘동하여 초

천말을 휩쓸었소. 하루 아침에 우리 산채를 알아냈을 리가 없어요. 저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길산이 성니미우. 길산이 성님은 북관과 서도화 해서에 흩어져 있는 활빈도의 가장이시우.

절대로 관군에게 머리카락 한오라기 내주어서도 안됩니다. 지금 가족들을 생각할 때가 아

니오. 성님 못 가십니다. 차라리 나를 베고 가시우. 관군들은 성님을 놓친 것을 알고 해산되

지 않고 끝까지 뒤를 쫓을 겁니다. 우리는 한시바삐 운봉산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정을

살피는 것은 그 뒤에라도 늦지 않고, 지금 가본다 하여도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각처의

식구들에게 관부를 들이치게 하여 우리를 알릴수도 있지 않습니까." 최흥복의 눈은 젖어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선흥이는 입술을 핥으면서 흥복이에게서 길산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는 하였다. 길산이 말하였다.

"그래 흥복이 말이 옳다. 우리가 식구들을 생각하여 여염 마을을 이루려던 것이 잘못이었다.

운봉산으로 가야지. 그러나 식구들의 안위를 알기 전에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구나.""좋습니

다. 어두워지면 제가 한사람 데리고 양덕에 나가보지요. 성님은 오늘밤에 박달산까지 빠져나

가셔야 합니다."

박완식 포도부장은 군사를 이끌고 길산의 일행이 달아난 마증산 방면의 산등성이를 타고

있었으며, 최형기는 한길을 따라 개나루로 나가기 전에 토성 진영장이 몰고 내려오는 도적

들의 식구를 살피고 심문하기로 하였다. 쌍봉고개에서는 여자 하나가 죽었으며 부상당하였

고 도적 둘이 또한 죽고 다른 둘은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으므로 생포되었다. 현감 안신은

오히려 도적들을 놓치고 병방 이하 군사들만 죽고 다친 셈이 되었다. 그는 날카롭게 곤두선

토포장 최형기의 시선을 자꾸 피하였다. 권한만 있다면 군율을 어긴 죄로 그자의 목을 치고

싶었던 최형기였다. 최형기는 양덕현감을 이제 다시는 믿지 않았다. 아무려나 보장은 토포의

직접 책임자인 형기가 쓰게 되어 있었다. 그는 이 수십 명의 죄수들을 허술한 양덕 고을에

남겨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평안도 감영 옥으로 합송하여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대로를 따라 한양까지 압송을 할 작정이었다. 최형기는 죄인들을 웅

크리고 앉은 마을 앞의 공터로 걸어갔다. 둘레에는 토성진군들이 감시하고 있었는데 진영장

이 군례를 올렸다.

"하나도 빠짐없이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저것은 죽은 자들이고 이들은 다친 데 하나 없이

말짱합니다."

최형기는 갓 쓴 자와 자고를 던지며 발악하던 자의 시체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진장 옆에 포박되어 무릎 꿇고 앉은 덩치가 커다란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쪽 놈을 데려오라."

"저 두건 쓴 자 말이오니까?"

최형기가 고매를 끄덕였고 진영장이 그자의 덜미를 잡아 일으켜 최형기의 발 아래로 밀어

냈다.

"나는 토포장이다. 네 두령 장길산의 이 마을에서 살았는가?""그렇소, 아마 멀리 달아났을

게요."

사내는 기가 죽기는커녕 즐겁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대꾸하였다. 최형기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저기 죽은 자들은 누군가?"

"하나는 산채의 모사이신 김선비고 다른 하나는 두령의 아우 강말득이우.""흠 아깝게도 죽어

버렸구먼 너는 누구냐?"

사내가 껄걸 웃었다.

"예전부터 팔도에 이름을 날리던 해서 장길산 활빈도의 군사요."최형기는 따라 웃을밖에 없

었다.

"허 그놈 과연 묵적(默賊)의 졸개답구나. 얘야, 내가 너에게 끝으로 몇가지 묻겠다. 대답을

하면 압송하여 삼천리 유배형을 받게 하여 목숨을 살려주려니와 공연히 객기를 부려서 관군

의 애를 먹이면 지금 당장 본보기로 네 목을 참하여 노중의 객고나 면하게 해주련다. 저것

들 사이에 어떤 것이 장길산의 혈육인가?"

젊은 산채 식구는 안색이 변하고 긴장하는 표정이 되면서 입을 꾹다물었다. 최형기는 언

제나 손아귀에 넣고 다니는 가죽끈 달린 등채의 끝으로 사내의 턱을 치켜올렸다.

"자아, 너하구 입씨름할 틈이 없다. 말하겠느냐?"

그러나 젊은이는 턱을 뿌리치며 고개를 완강하게 흔들었다.

"두령의 식구는 여기에 없다."

"아, 그런가, 어디"

하면서 최형기가 몸소 그의 뒷돌미를 잡아 일으켜 아녀자들이 군사들에 둘러싸여 웅크리

며 앉아 있는 곳까지 그를 밀어나며 나아갔다. 그리고는 그를 사람들의 면전에 다시 꿇어앉

히고는 말하였다.

"나는 토포장이다. 너희들 가운데 장길산의 가족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말하지 않

는다 할지라도 감영에 가서 차례로 국문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이다. 내가 잠깐의 여유를

주겠다. 아무도 반응이 없으면 이 사내를 참한다."

최형기가 혀리에 찬 왜단검을 천천히 뽑았고 서슬 푸른 칼날이 아침 햇살에 번쩍였다. 최

형기가 장교 한 사람을 불러내어 그에게 칼을 주었다.

"내가 수를 열까지 헤아릴 동안 기다렸다가 손을 들면 그자의 목을 베어라." 최형기는 스

물 만짓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부녀자들을 죽 둘러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끊어가며 수를

헤아리기 시작하였다.

"일곱 여덟 아홉"

최형기의 손이 천천히 올라갔고 장교의 칼 잡은 파도 위로 치켜졌다. 그때에 좌중에서 조

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어요."

최형기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매가 가늘고

호리호리한 부녀자가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양쪽에 껴안고 그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것

과 마주쳤다.

"댁네가"

"그래요. 나는 장길산이란 사람의 내자여요."

봉순은 또렷하게 말하였다. 구월이는 어미의 옆구리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지만 수복이는

제 어미와 함께 고개를 쳐들고 최형기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최혀기는 염두에 두고 있었

지만 토포가 실패했다고 일단 낙망이 되었던만큼 놀라서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제 당신의 원대로 우리를 잡았으니 더 이상 사람을 해치치 말아요."최형기는 등채를 뒷

짐 진 손 안에서 계속 두드리며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

최형기는 그를 겁내지 않고 똑바로 노려보고 있는 소년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수복이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제 어미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말하였다.

"활빈도의 두령 장길산이우."

"네 이름은?"

"장수복이우."

"그애는 네 누이 동생이냐?"

"그렇소, 얘는 구월이요."

최형기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최형기가 수복이에게 다시 말하였다.

"내가 네 어머니와 잠시 의논 하련다. 네 어머니와 의논 안되면 너하구 하겠다. 괜찮겠느

냐?"

수복이는 과연 산채의 거친 장정들 틈에서 자랐는지라 당당하게 말하였다.

"나는 관군이 겁나지 않우."

최형기가 돌아서서 장교에게 말하였다.

"저 여자를 데려오라."

그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저만큼 걸어갔고 장교가 봉순을 데리고 따랐다. 수복이는 어

미와 떨어져서 우는 구월이를 달랬다. 봉순은 문화 재인말에서부터 안무당의 신딸이 되어

자라나면서 세상에서 벗어나사는 길이 어떠한 길인가를 겪어서 알고 있었다. 그녀는 길산의

아내가 되어 남편이 종적이 간데없이 이리저리로 문득 사라졌다가, 온다간다 말이 없이 몇

년에서 수개월씩 집을 비우 적에도 여염의 생활을 부러워했던 적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이곳

양덕 초천말에서의 지난 몇 년이야말로 정 있는 사람들끼리의 버젓한 살림살이였고 간혹 수

복이와 구월이가 이제는 길산이나 자신과 같은 삶을 다시는 겪게 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기도 하였던 터였다. 봉순은 명화적 두령의 아내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았다. 그것

은 잠자리에서 길산의 팔을 베고 누워 그가 울적해지면 꺼내던 말이었다. 녹림처사의 식솔

은 그의 가장과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되고, 잡히면 오직 식구들과 더불어 스스로 목숨을 끊

는 길뿐이라던 말을 여러 차례 들었고, 구월산에서의 김기의 가족들이나 다른 마을 사람들

의 뒤소식에서도 봉순은 그런 얘기를 실감하였다. 봉순이 눈앞에서 김기와 강말득이 총탄에

맞아 죽어갈 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였던 것은 수복이와 구월이를 보호해야 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최형기는 앞장서서 마을의 공터 앞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 마루에 앉았고

장교가 마루 밑에 봉순이를 꿇어앉히려 하였다. 최형기가 말하였다.

"올라오게 하여라."

그러나 봉순은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 관장은 거기서 물으시오. 아이들이 어미를 찾을 것이니 속히 하소서." 최형기는 여자가

아무리 나라에 대적한 무리의 괴수 아내라 할지라도, 길산은 바로 자신의 목표였고 당상비

국이 그를 보낼 만큼의 큰 화적 두령이었으니 예를 갖추어 심문하기로 정하였던 것이다.

"비록 부부 일심동체라 하나 안팎이 같은 생각으로 나라에 오늘과 같은 큰 죄를 지게 되었

다고는 믿고 싶지 않소. 남편 되는 장길산으로 이르면 예전에 이미 살인죄로 대시수로 있다

가 탈옥을 하여 도당을 모아 각처의 재물을 탈취하고, 관부와 국본을 받치는 조세창을 습격

하였으며, 나아가 활빈도라 자처하며 유민을 끌어모아 나라에 등을 돌리게 하고, 이제는 모

역을 꾀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그가 있고서는 팔도의 백성이 발을 뻗고 잠들지 못하고 국가

조정은 늘 불안에 흔들리게 되었소.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범도 그 맹수의 성미를 바로잡

아 감분하게 하면 의기를 지키듯이, 국가에서는 장길산이나 그의 수하 도적들이 개심하여

착한 백성으로 돌아가게 하자는 간곡하고 깊은 뜻이 있는 셈이라 토포는 권도의 일이요, 실

로 조정의 재상 대신들께서 원하시는 바는 장길산의 그의 모든 패거리와 도당을 모아 관부

의 다스림에 순응하여 이 나라의 백성으로 순치되는 길이오. 죄와 벌을 따지는 것은 대전의

법에 준거할 일이나 그중에 인재가 있으면 국가의 동량으로 중용 할 것이오."거기까지 최형

기가 말하였을 때에 봉순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관장께서 제게 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기왕에 이렇게 처자식이 관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니 댁네 남편으로 하여금 관군에 투항자

수하도록 하는 방도가 없겠는가 그런 말이오. 짐작하건대 남편과 댁네가 이 부근 어느 산

에선가 만나기로 하였을 터인즉"

봉순은 동요하지 않았다. 무당인 봉순의 눈에는 서릿발 같은 차가움이 번뜩였고 그 눈으

로 최형기의 피로한 얼굴을 정시하였다.

"무지하고 천한 것이라 관장과 같이 조리있게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가장의 뜻이 천한 백성

을 어질지 못한 관부의 핍박에서 구해내고자 하는 데 있음을 보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비

록 나라를 등진 도적이라하오나 뒤집어 보면 관장 또한 백성들의 살 길을 저버린 벼슬아치

들의 수족이라 어찌 제 주인이 능멸을 당해야 하겠습니까. 그분은 팔도 활빈도의 장수이니

일개 잡적(雜賊)이 아닙니다. 저희 가장께서 관장을 사로잡으셨다면 이렇게 욕을 보이지는

않으시리다. 주인의 뜻을 알고 그에 따르는 아녀자가 어떻게 그 뜻을 배반할 수가 있으며

감히 혈당을 팔아 더러운 부귀를 탐하라고 권할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관군에 잡혔다 하

나 아직 죽지 못한 것은 어린 자식들 때문이라 다만 관장께서 받드는 법에 따라 처분되기를

기다릴 뿐이오."

"이런 고이헌"

최형기는 소리를 버럭 내지르려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들을 너무 가벼

이 알아온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마감동의 최후에서도 그는 그런 느낌을 받았

으나 그때에는 구월산 토포가 실패했으며 그의 전정이 그르쳐졌다는 초조감으로 분한 마음

이 더욱 승하였다. 이제 그는 나이도 그르쳐졌다는 초조감으로 분한 마음이 더욱 승하였다

이제 그는 나이도 들었고 실직을 제수받은 것도 아니요 초포에 응모한 한 무인에 지나지 않

았던 것이다. 최형기는 등채를 쥐었던 손을 부르르 떨고는 다시 다른 손바닥을 찰싹이며 두

드렸다.

"내가 그댁을 욕보이려고 말한 것이 아니오. 허나 명화율에 의하면 본인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斬刑)에 처하고 그 처자식에 대하여는 절도(絶島) 잔읍(殘邑)의 노비로 삼게 되어

있소. 그뿐 아니라 장길산은 모역 연루자이며 그 수괴 중의 하나이니 역류에 따라서 댁네

아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자아, 주인과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소?" 봉순은

흘러 솟구치는 눈물을 그대로 닦지도 않아서 가무잡잡한 뺨을 타고 흘러내려 저고리의 앞섶

을 적셨다. 봉순은 얼른 고개를 숙여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어깻죽지를 치켜올려 뺨

과 눈두덩을 부볐다. 최형기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등채로 마루청을 두드리며 재촉하였다.

"어서 대답을 못하겠는가?"

봉순은 입을 조금 벌리고 하,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녀는 젓은 눈을 들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십이월의 겨울 하늘이 얼어붙은 깊은 강물처럼 차갑고 투명하게 펼쳐져 있었

다. 봉순은 혼잣말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남편이며 아버지인 그이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지만 관

장께서는 저희 주인을 꼭 만나게 되겠지요."

"어디서 말이오?"

봉순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다시 눈앞이 흐려져서 봉순은 눈을 분명하게 뜨려고 눈

꺼풀을 힘껏 열고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최형기는 저도 모르게 등채를 두 손에 쥐고 힘껏

휘어서 꺾어버렸던 것이다. 최형기는 서둘렀다. 우선 장교와 군사 몇 명을 보내어 양덕현에

삳힌 김선일을 압송하라 이르고 성천에 파발을 보내어 개나루로 마중 나올 군사를 보내도록

해두었다. 초천에서 그대로 성천까지 도적들의 시구를 압송하여 평양감영에서 관찰사의 일

차 국문을 치르게 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고 초천말의 집뒤짐에서 나온 포목 양곡 등은 장

물이라 하여 토포의 비용에 충당하도록 압류되었다. 성천을 향하여 초천말의 부녀자들이 끌

려갈 때 최형기는 가장 적은 선심으로 구월이와 수복이를 진장과 자신의 말 안장에 태워주

었다. 오후 늦게서야 압송 일행은 개나루에 당도하였고 성천에서 병방이 장교 두 사람과 군

사 다섯 오를 데리고 당도하여 있었다. 병방이 최형기에게 와서 군례를 올렸다.

"파발을 받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성천에 죄인들을 하옥시켜두면 감영 군사들이 명일에 당

도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노약자들이 많고 공연히 노중에서 지체하여 적당이 넘볼까 염려된다. 아직 토포가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마증산을 둘러싸고 수색을 벌일 예정이다. 겨우 두 오의 군사로 압송할 수

있겠는가."

"관장께서는 엽려 마십시오. 저희가 선발로 오느라고 남은 향군들을 뒤에 떨구었습니다. 그

들이 지금은 발정하여 한 이십여 리 지역에 왔을 것입니다. 저희가 이들을 끌고 돌아가노라

면 중로에서 만나게 될 듯합니다."

최형기가 인원 점검을 마치고 나서 죄수들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였다. 개나루의 앞이

바로 별창(別倉) 부근이요 별창에서 멀리 바라 보이는 개천은 비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인

셈인데 이곳을 건너면 바로 성천계였던 것이다. 창에서 그대로 한솥밥을 얼른 지어 소금물

에 간 맞춰서 뭉친 주먹밥이 요깃거리였다. 봉순은 구월이와 수복이에게 주먹밥을 주었고

자신도 꼭꼭 씹어 먹었다. 구월이가 반쯤 먹다가 내미는 것을 다시 입에 대어주면서 봉순은

중얼거렸다.

"구월아, 오늘부터 무엇을 주든지 꼭꼭 씹어서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죽으면 아버지

도 못 만나고 어머니나 오빠도 못 만나게 된다. 어서 먹어야 해."하고는 봉순은 다시 수복이

에게 일렀다.

"수복아, 너는 이제 다 컸으니 에미 말을 잘 알아듣겠지. 관가에서는 네 아버지를 큰 죄를

지은 역적으로 알구 있다. 우리는 역적의 식솔들이야. 이제 어디까지 끌려갈지 모르지만 아

마 한양에 가고 그보다 더 먼 곳으로 가게 될지두 몰라. 아니면 에미나 네 누이하고도 헤어

지게 될지 모른다. 어느 곳에 가 있든지 네가 장길산이란 분의 아들임을 잊지 말고 조금만

더 커서 먼길을 떠날 수 있게 되면 운봉산으로 가서라. 아니면 가평 현등사에 가서 풍열스

님을 찾아라."

봉순은 침착하게 한마디씩 다짐하듯 아들에게 얘기하였고 수복이는 어른스런 얼굴로 고개

를 끄덕였다.

"이런 얘기는 머릿속에만 새겨두고 절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된다. 관군은 아버지를 잡으

려고 우리 식구를 초달할 게야. 그리구 또 한가지 나중에라두 찾을 수 있도록 구월이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두어야 하고, 너는 네 누이를 꼭 찾아내어 아버지께 함께 가야 한다.""

알겠어요, 어머니."

수복이는 주먹밥의 밥알을 입가에 붙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고 봉순은 이들을 다시 한번

가슴에 꼭 껴안아보았다. 요기를 얼른 끝내고 성천 병방이 인수한 양덕 죄인들을 별창을 떠

나 개천을 건너 성천계로 넘어갔다. 최형기는 개나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증산의 서북 사록

일대와 회암산(檜岩山)에서 금성산(金城山)에 이르는 비류강 일대의 들판을 수색하기 시작

하였다. 그는 일단 본진을 나루터에 정하였고 이제는 강변에 모닥불을 피우도록 하였다. 진

장과 마증산에서 도적들의 종적을 잃어 버렸던 박완식 포도부장이 기패관의 향군들과 대를

나누어 이십여 리에 걸친 방변을 막았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말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번 드

는 군사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역시 도적들이 강을 건너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장길산과

강선흥 등의 초천말 식구들은 마증산 깊숙이 틀어박혀 토포군이 물러가기를 기다렸고 최흥

복과 조진포 점주는 연봉을 타고 양덕현 가까이 스며들어 잡힌 사람들이 이미 성천으로 압

송되어 간 것이며 그들 중에 김기와 강말득이 죽은 사실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길산은

밤마다 강변에서 드문드문 빛나고 있는 불빛들을 보았고 그것이 관군들의 초소에서 피워올

리는 모닥불임을 알았다. 이틀째에 더욱 증원된 관군과 향군들이 마증산의 등성이를 타고

정상의 네 봉우리를 모두 밟고 지나갔으나 열 명뿐인 길산의 혈당은 깊은 바위투성이의 계

곡에 깊숙이 틀어박혀 생쌀을 씹으면서 견디었다. 사흘이 지나고 나서 관군은 철수하였다.

날씨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고 함박눈이 오고 나서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이 몰아쳐왔다. 그

드은 한밤중에 강을 건너 그 이튿날에 박달산 돌장승이고개를 넘었다. 거기서부터는 맹산

(孟山)계였으며 운봉산이 지척이었다. 모두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가족들이 지금쯤은 평양

의 감영 옥에 있을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맹산의 외창(外倉)에 이르러 멀리 동쪽에 운봉산

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선흥이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길산에게 물었다.

"성님 이렇게 우리만 산속에 무사히 틀어박힐 작정이우?" 길산은 자신의 처자식뿐 아니라

선흥의 하내 춘천댁과 흥복의 아내 황주댁이 함께 끌려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가족들도

잡힌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길산은 김기와 말득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접하고도 묵묵

부답하여 발치만 내려다보았을 뿐이었다. 길산은 선흥이의 넓적한 등판을 한 손으로 쓸어

내리면서 말하였다.

"선흥아, 혈육과 헤어져 마나지 못하는 백성이 어찌 우리뿐이겠느냐. 관군이 구월산과 이곳

양덕에서도 우리를 잡지 못하였으니 이미 우리가 저들을 이긴 것이다. 애간장이 끊어지는

슬픔이 있다 하여도 식구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어찌하여 할지 잘 알고 있지 않으냐. 우선

급한 일은 다른 식구들이 우리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재빨리 통문을 돌려서 방비하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도 저들을 반격하여 이쪽에서도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는 것이

다. 도처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유리하여 떠돌고 있다. 선흥아, 네가 춘천댁을 흉황에 버려진

흥복이의 고향에서 건져내었고 이제 관군에게 빼앗겼으나 좋은 날에 되찾아오면 될 게 아

니냐. 그간에 우리는 너무 편안히 숨어 살아왔다. 다른 힘없는 이들이 겪은 대로 함께 뼌저

린 세월을 견디는 게야. 들판의 잡풀을 뽑아 던져보아도 바로 그 자리에서 말라죽지 않고

더욱 많은 씨를 풍겨 이듬해에는 꿋꿋이 무리로 되살아나지 않더냐. 우리 활빈도는 절대로

관군에 토로되지 않을 터이다. 우리가 살아남았다가 어느 산골짜기 돌틈에 다리 오므리고

죽어 썩어질지언정 조정의 벼슬아치들이 보낸 어떤 군사에게도 잡혀 죽어서는 안된다. 저기

봐라, 저 늠름하게 섰는 산봉우리들의 연봉을 보아라. 우뚝우뚝 마치 옛말처럼 서서 우리에

게 이야기하는구나. 바람이 몰아쳐오면 저 수많은 산봉우리의 나무들이 일제히 몸부림쳐서

화답하듯 우리의 살아 있음과 스러짐도 그 한 목소리인 게야. 우리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다. 우리는 백성의 군사이기 때문이야."

길산은 가슴속에서부터 쿨럭이며 말이 피처럼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선흥이는 눈을 질끈

감더니 길산의 어깨 위에 얼굴을 묻었고 최흥복과 다른 장정들도 나란히 서서 저녁놀에 물

들어가고 있는 운봉산을 내다보았다. 길산은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아들 수복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수복아, 네 애비가 길에서 태어난 것과 세상으로부터

내쫓긴 연유를 아느냐. 그것을 알아 너희 힘으로 다시 일어나 아버지가 걸어간 길로 되밟아

오너라. 양덕에서 잡힌 죄인들은 평안감영에 하옥되어 한양으로 압송되기 전에 문초를 받았

다. 숙종 십팔년 임신 십이월 십삼일에 좌의정 목내선(睦來善)은 감영의 장계를 받고 비국당

상(備局堂上)을 대표하여 상께 아뢰었다. 승정원의 일기에 기록하였으니 다음과 같았다. 도

적 두목 장길산을 잡으려고 비국에서는 여러 가지로 애를 써오던 중에, 이에 평안감사의 보

장(報狀)을 보니 좌변 포도 종사관이던 무사 최형기가 응모하여 포도부장과 포교 다섯을 거

느리고 길산의 도당 가운데 철원에 살던 고발자를 데리고 북도의 고원지방에서 평안도 양덕

초천면에 이르기까지 적당의 숨은 곳을 탐지하였다 합니다. 최형기가 양덕현감 안신(安神)으

로 하여금 향군과 포수 백여 명을 조발(調發)케 하여 바야흐로 잡을 찰나에 길산이 탈신상

산(脫身上山)하여 산 위에서 군사들에게 발포(發砲)하였으므로 군관들은 길산을 놓치고 말

았습니다. 다만 그의 처자녀(妻子女)와 그의 동당(同黨) 김선일(金先一)을 잡았는데 양덕현

에서는 죄수를 잡아 감영에 압송하였습니다. 감사는 도적을 놓친 것을 통탄하고 황해도와

함경도가 꼭 잡을 수 있는 땅이니 각별히 힘써 잡으라고 관문을 돌렸다고 아뢰어왔습니다.

황해 강원 양도의 여러 읍에서 잡은 일당들이 이르기를, 그의 소굴이 탕진되어 그 처자녀도

잡히고 형세가 궁하고 다급하게 되었다 하니 , 각도에서 착실하게 노력하면 잡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에 영장(營將) 수령(守令)들은 관명을 수행하는 데 태만합니

다. 횡성에서 장길산의 도당들을 잡을 때의 일을 들으니 현감 정익수가 친히 군사를 거느리

고 칠십여 리의 궁벽한 곳에 진입하여 도적 일곱 명을 잡았으나, 이번에 양덕현감 안신은

도적 괴수가 경내에 숨어 있음을 기왕에 알았으면서도 군사를 거느리고 친히 나갔다가 적괴

는 놓치고 적괴의 처자녀와 동당 한 명만을 사로잡았습니다. 저괴가 놓치고 적괴의 처자녀

와 동당 한 명만을 사로잡았습니다. 적괴가 총을 쏘고 두주하였으니 조정을 넘보는 것이 매

우 통탄스럽다고 하겠습니다. 양덕현감 안신을 잡아다가 죄를 주어 다른 읍의 수령들게 경

고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상께서 이르시기를, 안신의 일은 참으로 놀랍고 통탄스럽다. 우선

도적들을 문초하며 정죄하고, 비록 잡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깊은 굴혈에서 빠져나갔다니 궁

지에 몰렸을 것이라 이제부터 착실하게 잡는다면 기대할 수 있는 일이니 각별히 힘써 행할

것이니라. 곧 의금부에서 나장을 파견하여 안신을 잡아오도록 하였고 죄인들은 서울로 압송

되었다. 토포는 계속되었으나 길산의 종적은 간데 없으니 사실상 경군은 움직이지 않았고

최형기도 곧 체직되었다. 잡힌 자들에 의하여 언진산과 곡산 은금동령 부근에서 사흘 동안

의 탐색이 있었으나 관군은 텅 비워진 잠채굴과 헛간만을 발견하였다. 뒤늦게 송도 임방의

박대근과 서강의 상인 모신의 이름도 나와서 해당 관아의 장교들이 가보았으나, 박모는 식

구들과 더불어 북변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모신이란 자는 원행 장삿길에 나가서 오

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그들이 도적들과 거래하였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도적의 일당과 직접 연관된 자들은 아니라 금부에서는 곧 손을 떼고 말

았다. 그리고 박모는 송도부에 처결을 위임하였으며 송도부에서는 박대근의 직분이며 임방

에서의 그의 위치로 보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으며, 그의 상단 임방은 아직도 송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혐의는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군복 기마하여 관

문에서 변을 일으킨 경우에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참형(斬刑)에 처하고 그 처자는 노비로

한다는 역옥(逆獄)의 사례와, 당(黨)을 모아서 인명을 살상하는 경우에는 때를 기다리지 않

고 참형에 처하며 그 처자는 노예로 하며 주종범(主從犯)은 명화율(明火律)에 의하여 참형

과 절도(絶島)의 영속(永屬) 노예로 한다는 데에 준거하여, 양덕 초천말서 잡힌 사람들 가운

데 장정은 모두 참형, 절도 유배되고 아녀자들은 삼남지방의 관노비로 박혀서 차례로 끌려

갔다. 그들은 각자 하나 들씩 분리되어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3

기사년의 남인들의 환국 이래로 왕은 왕비를 바꾸었고 노론 소론들은 밀려나 기회를 엿보

고 있었다. 당색간의 차별과 분재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피를 흘리는 싸움이 되어 그

번복이 거듭되면서는 뼈에 사무친 원수지간으로 되어가던 것이다. 대개 붕당(朋黨)은 선조

이래로 하나가 갈려 둘이 되고, 둘이 갈려서 넷이 되고, 넷이 갈려 또한 여덟이 되었으며,

대대로 이어져 구름처럼 불어났다. 원수가 되어서 혹 죽이기도 하고 함께 조정에 나아가 벼

슬길에 오르며 이웃 동네에서 나란히 살면서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가 없었다. 때문

에 혼인이나 상사(喪事)에 상조하면 다른 당파의 사람과 내통이 있다고 수군수군 비방하고

혼인을 서로 통하게 되면 무리지어 모여서 배척 공박하였다. 심지어 언동(言動)과 의복까지

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길에서 만나더라도 지적하여 구별할 수 있으니 서로 다른 나라 사람

이며 서로 다른 풍속에 사는 것이라고 뜻있는 이들은 이렇듯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명분에

의한 정쟁의 단계에서 벗어나 정병(政柄)을 장악하기 위한 음모와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으

며, 경신 대출척은 노론의 당권적 기세가 왕위를 위협하는 것에 반발한 군왕 자신이 정병을

번복한 것이었다. 왕권의 안정은 일정하게 자라나고 있는 여러 신분 계층의 세력들은 골고

루 장악해나가는 데에 달려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희빈 장씩 왕비가 된 것이며 왕

자 정호가 이루어진 일이며 기사환국에서의 남인의 집권이 가능하였던 터였다. 갑술년(甲戌

年)에 이르니 남인이 집병한 지 다섯 해가 되었고 숙종 이십년이었다. 이 다섯 해 동안 전

국에 흉년이 들지 않은 해가 없었으니 이미 길산이 양덕에서 토포될 즈음에는 유민이 창궐

하고 산골마을들이 비워지고 있던 무렵이었다. 삼월 이십일에 소론과 노론이 각기 환국을

도모한다는 고변 내용을 우의정 민암(閔 )이 밀계로써 왕께 아뢰었다. 천한 백성 함이완(咸

以完)이란 자가 고변한 바에 의하면 소론 쪽에서 중인들을 시켜서 동래 상인과 시전 상인

등의 장사치들에게서 자금을 받아서 무인(武人) 등이 중심이 되어 환관과 총융사 등을 움직

여 정국을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론 쪽에서는 상인 및 무인들과 결탁하여 환국

을 도모한다는데, 소론 측에는 주로 관직에서 물러난 자들이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계유년에

새문 밖에 사는 유생 한중혁(韓重爀)이란 자고 고변한 바에 의하면 소론 쪽에서 중인들을

시켜서 동래 상인과 시전 사인 등의 장사치들에게서 자금을 받아서 무인(武人) 등이 중심이

되어 환관과 총융사 등을 움직여 정국을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론 쪽에서는 상

인 및 무인들과 결탁하여 환국을 도모한다는데, 소론 측에는 주로 관직에서 물러난 자들이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계유년에 새문 밖에 사는 유생 한중혁(韓重爀)과 영남 무인 이사회(李

時檜)가 죽전골 그의 이웃에 사는 최격(崔格)의 집에 와서, 은화를 많이 모아주면 환국을 도

모할 수가 았다면서 최격과 그에게는 일이 성사된 뒤에 좋은 벼슬을 준다고 하여 그 말을

믿고 당에 들어서 자금을 모으는 일에 협력하였다는 것이었다. 은을 모은 자들이란 대개 교

련관이나 동래 상인 시전 상인과 역관들 같은 중인들이었다. 갑술 삼월 말에 함이완(咸以完)

이란 자가 민암(閔 )을 찾아와 김춘택(金春澤) 등의 음모를 고발하여 민암은 국청을 열고

김춘택 한중혁 강만태 최격 이시도 등 수십 인을 체포, 국문하여 그들이 왕비의 복위와 정

국의 환국을 꾀한 사실을 밝혀내고 형을 집행하려 하였다. 그날 발 사월 초하루 이경(二更)

에 임금은 갑자기 정국을 변동시켜서 대신 이하를 삭탈관직하고 귀양 극형에 처하고 이미

죽은 남인들의 관직을 추탈하였던 것이다. 김춘택 등의 음모를 고발한 함이완은 오히려 엄

형을 엄형을 주고 나서 귀양 보내고 음모를 자백하였던 수십 인 가운데 한중혁 등의 네 사

람만 귀양을 보내고 김춘택을 비롯한 수십 인은 방송하였다. 거의 여드레에 걸친 국문에서

한중혁 이시도 최격 강만태 이시회와 고발자 함이완이 전모를 밝혔으며 자금을 준 장와 그

무리들이 드러났던 터였다. 강만태는 이렇게 길토하였다. 저는 의술을 좀 알고 한구(韓構)의

아들 중혁과 서로 친한 터인데, 지난해 십이월에 한구가 비인( 仁)에 있으면서 질병이 있다

칭하고 인마(人馬)를 보내 저를 데려가 간병(看病)할 것을 청하므로, 제가 한구의 집에 내려

가니 그는 병을 앓지 않으므로 머물러 수작할 때에, 한구가 말하기를 임대(任臺)의 말 가운

데, 기(氣)를 보니 해도(海島)중에 정성진인(鄭姓眞人)이 있다고 하니 우리가 장차 가서 맞

으려 하나 적수공권으로 일을 처리하기 곤란하다. 내가 바야흐로 재화를 모으려 하니 그대

도 역시 내라 하므로, 제가 답하기를 본래 심히 빈한하니 어떻게 재물을 내겠습니까 하니,

한구가 말하기를 그대는 가난하니까 재물을 낼 필요가 없고 다만 임대를 가서 보라 하므로

그의 말대로 가서 보니, 탄식하며 말하기를 시운이 이미 다하였다, 정성진인이 이미 해도 중

에 나타났으니 갑을 양년에 나라가 반드시 어지러울 것이다, 이때는 진인이 반드시 출중할

것이니 우리가 마땅히 가서 맞아야 한다, 그런데 반드시 무리가 많아야 하고 재물도 없을

수가 없다, 하고 또 말하기를 먼저 재물을 모아 뇌물을 써서 환국한즉 이것은 노루를 쫓다

가 토끼를 얻는 계책이라 하였습니다. 금년 정월에 한구와 임대가 같이 올라와서 모사(謀事)

하였으며 은을 낸 사람들은 심속(沈涑)이 칠팔백 냥, 박은식(朴恩食)이 이십 냥, 김만령(金萬

玲)이 칠십 냥, 제가 사십 냥, 함이완 최격 이동심 이기정 김보명 등이며 변학령은 김춘택에

게 은을 냈다 합니다. 용은처(用銀處)는 이시회로 하여금 총융사에게 쓰고, 신식(申 )으로

하여금 동평군(東平君)에게 쓰고, 이담(李譚)으로 하여금 관인배에게 써서 이 세 길로 환국

을 도모하였다고하며, 환국시에 우상(右相) 호판(戶判) 훈장(訓將)이 모역한 양으로 상변하

여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이시도에게서 들었습니다. 한중혁이 저희에게 말하기를, 밀지

(密旨)가 남(南)정승과 김석연에 내려졌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환국 후에 노론은 중전을

폐하고 폐비를 복위시킨다고 하고, 소론은 폐비를 별궁에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중혁의

무리는 지난날 김정열(金廷說) 김경함(金景咸)등이 한 바를 따르고, 저는 최격과 친하기 때

문에 무리에 들게 되었는데 일이 이루어지면 뒤에 좋은 벼슬을 준다 하여 돈을 내고 동참하

였습니다. 은을 모은 것은 사실은 환국보다도 해도 중의 정진인(鄭眞人)을 맞기 위한 것이었

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환국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으니, 토끼를 잡는 일

이 환국이요 노루를 잡는 일이 정진인을 맞는 일이 되었던 셈이었다. 실세하여 벼슬자리에

서 물러난 자들과 의생 훈장 등과 서얼 무인 중인 따위의 사람들이 은자를 모으고 서로 연

결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조정에 대한 불신과 원한은 한양 도성에까지 깊숙이 번

져 있었다. 추안(推案)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시도(李時掉), 그대는 총융사 도평군과 상친(相

親)하여 환국을 도모하였다고 하며 세 대장이 사주하고 우상(右相) 호판(戶判) 훈장(訓將)

등이 밤에 장만춘의 집에 머무르는 일을 동평군에게 상의해서 상변(上變)하려 하였으며 정

월에 환국하면 나는 병사(兵使)가 되고 너는 좋은 벼슬을 한다고 함이완 최격에게 분명히

이야기하였으나 너는 발뺌할 수가 없으며, 한구와 그의 아들 한중혁 종제 계( )와 임대가

함께 앉아 말하기를 많은 서인(西人 )이 각각 노자(奴子)를 내면가히 대사를 도모할 수 있

다고 하였는 바 이 말은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으며 수작한 자가 누구인지 대사 도모 절

차를 일일이 직고하라. 금년 정월에 한구가 사람을 보내 저를 데려가거늘 곧 가서 보니 한

구 부자와 임대가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한구가 말하기를 우리가 바야흐로 대사를 도모하

는데 노소(老少)의 당이 각자 하기 때문에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매우 한심하다. 대개

노당(老黨)은 김춘택이 중장하는데 공주가와 최호와 인연하여 도모하고 소당(小黨)은 우리

가 경영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장의동에 사는 서얼 이담(李譚)이 소환(小宦) 등의 학장(學

長)이 되어 여러 환관들과 체결이 많고 또 최호의 사촌매부인 환자 강우주와 친하기 때문에

이담으로 하여금 도모케 하여 일이 이루어지면 재상 이하를 마땅히 모두 제거하게 되는데

다만 춘택 등등에 임 상언하여 일을 청할 수 없을 것이 극히 걱정된다. 만약 일이 혹 이루

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한가지 계책이 있다. 전에 송시열이 죽은 뒤에 우수대(雨水臺)에서 모

여 곡할 적에 참례한 사람들이 거의 수천을 넘었으니 만약 이들이 노자 오륙 명을 내었더면

그 무리들을 가히 쓸 수가 있고 은자를 많이 내놓아 군졸에게 주어 모으면 가히 일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왕으로서는 이미 남인의 집경에 싫증을 내고 있었으며 그간 환국

할 마음을 굳히고 있던 터였다. 특히 김춘택의 환국 기도는 임금의 뜻에 부합되는 바가 많

았다. 김춘택은 숙종의 전비 김씨의 친정 종손이고 광성부원군 김만기의 손자요 김진구의

아들이었다. 숙종의 유모 봉보부인(奉保夫人)이 김씨의 집과 친밀한 때문에 이번 환국에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김춘택이 봉보부인을 통하여 숙빈 최씨와 연락을 취하여 남인의 나쁜

것을 숙종에게 자세히 알려 이번의 환국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숙빈(淑嬪) 최씨는 장희빈

이 왕비가 되던 기사년 후에 숙종의 굄을 받았으나 장씨에게 시샘을 당하여 목숨을 보존키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임금은 사월 초이틀 밤에 전교하였다. 지난날 빈청일차(賓廳日次)는

국기(國忌)일이었는데도 급급히 와서 모이기에 생각하기를 국경에서 온 급보가 아니면 필시

시끄러운 사단을 일으키는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였더니, 입시(入侍)하기를 청하고는 우의

정 민암이 과연 함이완의 일을 금부로 하여금 잡아 가두어 문초하여 죄줄 자는 죄주고 방송

할 자는 방송합시다, 하고 청하기에 내가 그대로 윤허는 하였으나 속으로는 민암이 홀로 함

이완을 위해 수작한 바를 의아하게 여겼었다. 겨우 하루가 지나니 금부당상(禁府堂上)이 돌

연 청대(請對)하여 옥사를 확대하여 전일에 보통으로 문초하던 자를 이제 도리어 극형하여

하루 이틀 동안에 항쇄족쇄(項鎖足鎖)한 죄수가 금오의 금부에 충만되어 서로 연루자라고

끌어대니 항상 면질을 시켜야 한다고 청탁하고 거의 전원을 형벌하기를 청하니, 전후에 끌

어대인 사람까지도 장차 차례로 그물에 걸려들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공주의 집과 한편인

사람들은 그 고문과 죽음의 구덩이를 면하는 자가 드물 것이다. 그들이 군부(君父)를 우롱하

고 조관을 도륙하려는형상이 극히 마음 아프고 개탄스럽다. 참국한 대신 이하의 모든 관작

을 삭탈하고 성문 밖으로 출송(黜送)할 것이며 민암과 금부당사은 모두 절도안치(絶島安置

)하라. 한편으로는 한중혁을 중심으로 은을 모아 조정을 엎으려던 자들의 모의가 있었으니

아는 그 뜻이 군왕까지도 번복의 대상이 되어 있어 춘택 등의 환국 의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공초에 이렇게 진술하였다. 중혁이 시도를 향하여 말하였다. 번국(飜局)의

일은 네가 어찌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하느냐. 너는 늘상 총융사의 집에 왕래하여 교계

(交契)가 은밀하며 근래 조정 벼슬아치가 총융사를 박대하므로 총융사가 자못 온의( 意)가

있어 오히려 향시지인(向時之人)을 생각하니 이 기회를 타서 총융사의 마음을 격동하고 너

의 누이를 총융사에게 준다고 약속하면 번국은 가히 도모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다만 나는

네 말을 들었을 뿐이다. 시도가 중혁의 말을 듣고 발연히 소리 높여 말하였다. 내가 이 일을

먼저 고발하려 해도 이미 믿을 만한 문서를 얻을 수 없고 또 장만춘이 말려서 그만두고 있

었는데 있었는데 이에 이르러 오히려 함이완의 먼저 농(弄)한 바가 되어 알면서도 물고지한

죄를 입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죽는다. 이제 너희들이 한 바를 모두 아뢰어라. 한구와 그의

아들 한중혁, 종제 계와 임대가 동좌하여 말하기를 임대가 천상(天象)을 바라보며 화성(火

星)은 남(南)에 속하고 색(色)이 변하였으며, 금성(金星)은 서(西)에 속하고 광채가 나니 이

는 남인이 반드시 패하고 서인이 반드시 들어설 징조이다. 또 갑술(甲戌)은 남인이 불리하고

너의 상(象)은 지극히 좋고 또 용력도 있으니 가히 일을 맡길 수 있다. 서인은 그 수가 심히

많고 결당(結黨)도 또한 굳으나 남인은 오합지인(烏合之人)과 같으니 족히 두려울 바가 없

다. 서인 한 사람의 집에서 노자(奴子) 네다섯을 내더라도 그 수가 심히 많으니 가히 대사를

)도모하 수가 있다고 운운하였다. 시도가 말하였다. 함이완의 말 가운데 삼대장(三大將) 호

판(戶判)이 남문 밖에서 종적이 수상하므로 이로 상변(上變)하러 간다고 하였고, 중혁의 말

가운데 동평군이 인빈(仁嬪)의 봉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의원군이 놓여 돌아와 봉사(奉

祀)를 다시 빼앗을까 염려하여 의원군을 가장 질시하니 우리 무리가 만약 남인과 의원군이

모역(謀逆)한다 한즉 동평(東平)이 좋아할 것이고, 또한 의원(義原)이 경신옥사로 서인에게

감정이 많아 반드시 그 원수를 무겁게 갚으려 할 것이다. 의원이 만약 들어가면 서인은 반

드시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동평군이 위인이 심히 좋고 또 서인의 외손이니 우리들

이 동평과 일을 한즉 남인을 쳐없앨 수 있을 것이다. 중혁이 다시 말하였다. 내가 어찌 이런

말을 하였겠는가, 네 말이 무상하다. 네가 늘 나에게 말하기를 근래 우상(右相) 호판(戶判)

훈장(訓將)이 밤에 장만춘가(張萬春家)에 모이는데 일이 극히 수상하다. 내가 일변으로써 상

변하면 상께서 반드시 움직일 것이니 번국을 가히 판득할 수 있다 하였는데 이것이 네 말이

아니냐. 시도가 말하였다. 네가 나를 음해라려 하니 내가 어찌 네 부자(父子)의 일을 전부

고하지 않겠는가. 네가 내게 말하기를 구일이 이미 늙었으니 이빈은 가히 대장이 될 수 있

고 유태기는 비록 허겁하나 역시 대장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제가 하지 않았느냐. 함이완이

또 내게 말하기를 대전행수별감(大展行首別監) 한 사람이 전에 김석주에게 왕래하여 내가

서로 친해서 가히 내통할 수 있다, 운운하였으니 이완이 또 내게 이르기를 훈장이 군졸에게

명하여 자루 삼백을 만들게 하였는데 그 일도 극히 수상하니 족히 고변할 만하다고 운운하

였다. 한중혁과 그의 부친 한구 등이 환국을 하려고 한편으로 서인의 종들을 주병력으로 동

원할 계획을 세웠으며, 다른 쪽에서는 동평군과 총유아와 결탁하여 환국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은을 모은 중인과 상인들, 그리고 무사들과 더불어 밑에서 사람을 끌어

모아가던 자들은 서얼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남인의 재상들을 처치하고 조정을 뒤바꾸는

계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비들을 끌어모으고 군병들은 재물로 동원하여 해도(海島) 중

의 진인(眞人)을 맞아 임금까지도 없애려는 계획을 하던중이었다. 이 계획은 바로 사대부가

아닌 중인 장사치 서류들과 같은 세상의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새로운 힘이었다. 숙종의 왕

권 강화를 위한 환국이 이루어지고 수세에 몰렸던 서인들이 집권을 하게 되자 임금까지도

거부하였던 해도지인의 설은 이제는 자신들의 집권의 안정을 위해서 철저히 봉쇄하여야만

되었다. 남구만 등의 소론 조정은 환국이 일어난 사월 초부터 기사년 중전 모해의 사실을

규명하면서 남인들에 대한 보복 숙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서 환국기도의 새로운 흐름이

었던 남해진인이 건을 엄중히 다루어 자신들의 파당적 연계를 끊어버리려는 것이었다. 남구

만이 소를 올려서 이번의 환국과 모역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기사년 변경 후

에 이르러 그때 남인이 정찰한 것은 전 집권자들의 극죄(極罪)로 삼아 독한 형벌과 가혹한

법을 가한 것은 이루 다 기록 할 수 없었사온데, 이제 민암에 미쳐서는 함이완을 달래고 위

협하여 고변케 하여 일을 확대 만연시켜 장차 세상의 반쪽 사람 서인(西人)을 모두 그들의

덫 속으로 몰아넣으려던 것을 다행히 전하의 하늘 같은 밝으심에 의해 사대부를 도륙하려는

그들의 계책이 실행을 얻지 못하고 스스로 큰 죄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하오나 이

길을 한번 열어놓은 뒤에는 나쁜 폐단이 잇달아 뒤를 이어 곧 풍습을 이룰 것이니 만약 이

풍습을 통절히 막아 종전의 버릇을 일변하지 않을 것 같으면 나라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니,

오늘날에 있어 첫째 대사가 이 부정한 길을 일소해버리는 뎅 있고, 그것을 일소해버리는 길

은 다만 함이완을 엄하게 다스리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강만태 최격 이시회 한중혁의 죄

에 대하여도 또한 망땅히 명백히 처리하여 일국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그 범죄의 경중을

밝게 알게 한 연후라야 앞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쾌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초 이완이 고변한 여러 죄수 중에 자복을 받은 자는 곧, 만태 격 사회 세 명이온데 모두

중궁 복위를 도모했다는 것으로 결안을 했사오니, 이것이 어떤 일이라고 저희들이 감히 도

모한다는 것입니까. 그 도모한다고 한 것은 장차 어디에다 도모한다는 말입니까. 조그만한

무뢰의 천한 선비로서 감히 이런 일을 생심했으니 주장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 죄를 어찌 용

서하겠습니까. 인심가 세도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세(國勢)가 어찌 비하하지 않을 수가

있으며 민정이 어찌 물결처럼 일렁거리는 데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오

나 이는 외려 저희들이 스스로 대의(大義)를 칭탁하였지마는 만태 등의 결안 가운데 이른바

임대 한구가 해상의 진인을 맞기로 의논했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무목을 국문할 대에 물은

바도 아닌데 제가 스스로 답하였으니 만약 그 일이 사실이라면 만태 등을 임, 한과 아울러

대역(大逆)으로 논해야 할 것이요, 이를 그냥 둔다면 나라가 어찌 나라꼴이 되며 사람이 어

찌 나라꼴이 되며 사람이 어찌 사람 노릇을 하오리까. 비록 옥관(獄官)은 전후에 변동이 있

었으나 조정은 본래 한조정인데 죄범이 이와 같은데도 귀양가는 데에 그치고 만다면 국민의

의혹이 어찌 더욱 심하지 않겠습니까. 또 생각하오니 전하의 오늘 거조는 천고에 없는 바로

서 억조의 신민이 기뻐하고 날뛰는 까닭은 다만 중궁의 복의를 경사와 다행으로 알 뿐만 아

니라 전하의 행동이 광명하고 결단함이 일식 월식과 같이 털끝만큼의 가리움도 없었음을 더

큰 다행으로 삼는 바입니다. 만약 과연 만태 등 여러 사람의 말과 같음이 있다면 이는 중궁

의 복위가 만태 등에게서 일분의 도움을 얻음이 업지 않은 것이니, 전하의 수치스럽고 누됨

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민암이 만태 등을 죽이려는 것은 중궁의 복위됨이 저희들에게 해

로운 까닭이요, 이제 조정에서 만태 등을 죽이려는 것은 중궁의 복위를 저희들이 도모했던

바라고 하는 것이 욕이 국가에 미치고, 전하의 몸에 무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후의 죄명이

미록 서로 같은 것 같사오나, 법을 쓰는 뜻은 실로 천양지차가 있으니, 어찌 앞 사람 민암의

소위를 답습한다는 것으로 의심하오리까. 중혁 등을 다스려 그 허실을 국문하여 쾌히 죄를

줄 것을 청하옴은 전하에 대한 일반의 의혹을 풀기 위함이요, 중궁을 위하여 복위의 정대함

을 밝히고 사대부의 천고의 수욕을 씻기 위함이니, 이것은 이른바 조정을 일월 위로 높이는

것이옵니다. 환국의 일로 다시 문제를 삼지 않으려는 왕과 자신들의 명분을 왕권과 직결시

키기 위한 서인들의 상소가 엇갈리고 있었다. 윤지완이 우의정에 임명되자마자 경연에 나가

다시 강만태 최력 한중혁의 엄벌으 주장하였다. 남구만은 다시 차자를 올렸다. 신이 여름 사

이에 국옥을 문초하였사온데, 강만태 최격 이시도 한중혁 등의 공사(供辭) 및 서찰을 보오

니, 만태의 해상진인(海上眞人)의 말이 극히 놀랍고 참혹하였습니다. 다른 범죄는 막론하더

라도 다만 이일절만은 불가불 엄중히 처단해야 하오며, 최격이 한중혁 이시도 등과 더불어

은화를 모아서 중궁의 복위를 도모하고, 보정의 번복을 꾀한것과, 이시회가 한중혁 및 그의

형 시도 등과 더불어 서로 결탁하고, 뇌물을 바쳐 정국 번복을 모의했다는 설에 이르러서는

모두 이미 자복하여 결안하였으니 통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한중혁은 비록 자복하지는

않았사오나, 그 발각된 서찰이 석 장 있사온대 시회를 대필하여 그 형 시도에게 부쳐온 편

지에는 "비인(庇人) 승지 댁에 두 차례 사람을 보내어 맞아왔으므로 방금 서울에 와서 총융

사의 본댁 문 앞에 주인하고 있는데 총융사가 극히 친절하게 대접하고, 또 한생원과 더불어

상의한 일이 많았는데 허다한 묘리가 있으니 이 사이의 희행(喜幸)한일을 어찌 다 상달하겠

습니까. 자세히 한생원의 말을 들으니 이번에는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하였고, 시도

의 답세에는 "한생원이 은자 백 냥을 단단히 봉해서 내려보내면 동으로 서로 주선할 계획이

다. 옛말에 이르기를, 비록 진평과 같은 큰 계책으로도 천금을 흩어서 일이 순히 되었다 하

였으니, 하물며 필부의 일이랴. 내 생각에는 한생원과 같이 이편지를 본 연후에 한구 영감께

고해서다시 통지하는 거이 옳다" 하였고, 중혁이 시도에게 부쳐온 편지에는 "영감께서 이와

같이 오랫동안 귀양살잉 있음은 우리들의 불행이요, 모두가 천운이니 다만 탄식할 뿐입니다.

올해 가을부터 한가지 묘리를 얻었으나 영감께서 안 계시어 상의할 길이 없어 부득이 영감

의 계씨를 두 번이나 사람을 보내어 청해와서 방금 나와 더불어 같이 서울에 와서 총융사를

만나보았는데, 본 뒤에는 이미 여러 가지로 친절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 길을 통해 기묘한

좋은 소식이 있으니 다만 영감의 석방이 멀지 않을 뿐만아니라 우리들도 또한 오래지 않아

조정에 들어갈 수 있으니 우리의 희행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이번에는 전일같이 맹랑하지는

않을 것이오니 영감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하였습니다.. 이 석 장이의 서찰을 보면 그 은자

를 모으고 모의한 곡절이 모두 드러나 그의 자백을 기다리지 않고도 가히 알 것이니 이로써

죄를 처단하더라도 저희들이 할 말이 없을 것이므로 신이 요전날에 짤막한 차자를 소매 속

에서 내어 바쳐 만태를 국문하여 그 흉한 말을 캐어내어 쾌히 국법을 시행함을 청하였사온

대 격, 시회도 또한 임금을 속인 죄를 다스려야 하오며, 중혁에 대하여는 그 수찰(手札)을

가지고 단연코 그 죄를 정햐야만 하옵니다. 이와 같이 한 연후에야 조정의 처사가 비로소

명백정대하고 부정한 옆길로 중궁이 복위되었다는 의혹도 영영 없어질 것입니다. 만태는 이

미 자백하여 처단되었사오니 격, 시회는 의금부에서 바야흐로 초사(招辭)를 번부 하고 있어

소위가 괘씸하오니 벌을 써서 문초해야 할 것은 다시 말할 것이 없사오며, 오직 중혁의 일

에 대하여는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도 말이 있사옵니다. 중혁이 은을 모아서 샛길을 통하

여 모의하고 청촉한 형적이 모두 석 장의 편지 속에 있사온대 이번 금부에서 신문할 때에

그 편지 속에 있사온대 이번 금부에서 신문할 때에 그 편지 속에 있는 좋은 묘리라는 말은

방축하는 것이라 돌리고, 기기한 좋은 소식은 시도의 귀향살이의 석방 운동이라 돌리고, 우

리들이 오래지 않아서 조정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 말은 시도들을 위로한 것이라고 돌렸습

니다. 은화를 거두어 모았다는 것은 천만 무근한 낭설로 돌리니 그 허탄한 말로 한사코 잡

아떼는 정상이 소연히 나타나 가리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개 죄인을 심문하여 실정을

토로하지 않으면 마땅히 고문을 청하는 법인데, 금부에서 갑자기 전하의 결재를 청한 것은

이미 법례가 아니요 그 율을 정하는 데는 주변에 원찬을 청하였으니, 그 귀에 죄는 중한데

율이 경하다 하여 다시 절도정배를 청하였사오니, 그 뒤에 죄는 중한데 율이 경하다 하여

다시 절도정배를 청하였사오나, 그자의 허망한 진술에 쫓아 지레 먼저 율을 정한 것은 옥사

에 있어 실로 부당한 바 있습니다. 오늘에 주혁 드의 치죄를 청한 것은 본래 성명전하를 위

하여 일반의 의혹을 풀고 중궁을 위하여 복위의 정대함을 밝히고 조정의 사대부를 위하여

천고의 수욕을 씻고자 함입니다. 지그까지 치죄(治罪)한 것이 이에 그치고 만다면 의혹을 풀

지 못할 것을 깊이 두려워하옵니다. 비옵건대 다시 의금부로 하여금 중혁의 교묘하게 꾸며

숨기고 회피라하는 정상을 심문하여 실정을 캐내어 처치케 하시옵소서. 또 생각하오니, 중혁

은 젖내나는 철없는 것으로 진실로 말할 것도 못 되오나, 한구에 이르러서는 나이도 이미

늙었고 벼슬도 또한 낮지 않사온데, 이제 시도가 그 아우의 편지에 답한 것으로 보오면 주

모자는 실상 한구에게 있사옵니다. 아, 진실로 이 무슨 심사옵니까. 중궁께서 사제(私第)로

물러나 계실 때를 당하여 무릇 신자된 자로서 어느 누가 가슴을 치며 눈물을 삼키지 않았으

리요마는 이 일은 다만 전하의 일조의 각성만을 기다릴 따름이지 어찌 감히 은화를 모아 샛

길을 뚫을 계획을 하오리까. 오늘날 논의하는 자가 혹은 말하기를, 중혁의 마음이 중궁의 복

위에 있었으니 이는 대의의 소재이므로 다른 과실은 깊이 죄줄 수 없다고 하오니, 만약 중

혁의 일을 의거로 삼는다면 참으로 복위에 유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위는 진실

로 좋은 일인데 장차 전하를 어느 땅에 두게 되겠습니까. 논의하는 이가 또 말하기를, 중혁

은 민암이 죽이려던 자이니 지금에 와서 암을 위하여 분을 풀어줄 수는 없다고 하나 암이

죄를 받은 것은 그가 이 일을 빙자하여 서인을 도륙하려는 데에 있고 중혁의 죄는 인심을

의혹케 하여 욕이 전하에게 미치게 한 데 있으니 정상은 비록 같지 않으나 법으로는 마땅히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니 어찌 저쪽은 낮추고 이쪽을 높이며, 왼편은 추방하고 오른편을 들일

수 있겠습니까. 조정의 논의와 쟁점이 분명해졌고 해도진인을 맞아 조정을 번복한다는 중인

과 서얼 장사치들은, 감형 방송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고문에 죽거나 참형당하거나 중형을

받았다. 갑술 구월 중순께에 강만태의 처형을 끝으로 옥사는 결안(結案)되었다. 이러한 정세

의 변화를 일반 백성들도 이미 알고 있었으며, 초야에 묻힌 뜻있는 선비들과 산간의 승려들

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철원의 고달근은 읍내의 한복판에서 드넓은 땅을 차지하여 날

아갈 듯한 기와집 수십 칸에 행랑채가 즐비했고 높다랗게 누각을 올리고 양반이 되어 살아

가고 있었다. 물론 공명첩 양반이라지만, 그는 무과 급제한 자나 다름없는 선달이 되어 있었

다. 그가 선달이 된 것이며 겨우 이 년 만에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장길산 일당의

토포를 돕고 처음으로 발고하였던 공 때문이었다. 도적의 재물을 발고자에게 상으로 분급하

는 일은 명화율에 의한 것이었다. 고달근은 관으로부터 약조받은 대로 이경순의 파주에 있

던 전장과 재물, 그리고 봉산 천동이 만동이 형제의 가산과 철광 은광의 이익이며, 원산포와

고원 객점의 재물 가운데서 일부를 형조를 통하여 분급받았었다. 그뿐 아니라 고달근은 파

주 이경순네 객점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원산포의 객점까지 차지하였던 것이다. 고달근은 한

편으로는 포천 일대에 전장을 마련하였으며 그가 처음부터 원했던 대로 원산포와 철원과 한

양을 잇는 상로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가 있었으며 파주를 통하여 송도의 임방과 통할 수가

있었다. 고달근은 이제 철원뿐만 아니라 인근 금화 삭녕 포천 등지의 관장 수령이나 향반들

과도 사귀며 수만금을 가진 부호와 양반으로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집은 마치 정승의 집 같

았고 하인들도 십여명이나 되었으며, 그전에 살던 중도아의 객점은 따로이 넓혀서 상단을

머무르게 하였다. 그곳에는 박거사가 행수로 나가 살았다. 고달근은 늦장가를 갔지만 아들도

둘이나 보았고 소실은 한냥 어느 서리의 딸로 젊고 아리따웠다. 달근은 일자무식이라 경서

도 읽지 못하였고 양반의 법도를 깊이 헤아리는 바 없었으나 그간에 갈려 가는 수령과 아전

붙이들에게서 배운 눈치로 제법 풍채와 말씨가 그럴 듯하였다. 그는 집안에 다로이 광 옆에

다 사옥까지 두고서 인근 양민들이 그의 뜻에 거슬리면 잡아다가 곤장도 때리고해결될 동안

가두어두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장길산이 관군에게 잡히지 않고 달아난 사실을

잊지 않고 있어서 늘 그를 두려워하였다. 고달근이가 사랑채 건너편에 무사 두 사람을 식객

으로 머무르게 하였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고 음내에 낯선 사람이 오거나 원행 상단이 오면

그들을 은밀히 기찰하게 하고 떠날 때까지 집안을 단속하고 경계하였다. 그는 되도록 멀리

나다니지 않았으며 한양에 갈 일이 있으면 상단이 떠날 때 그를 지키는 무사 두 사람을 데

리고 함께 따라 나서곤 하였다. 그는 장길산이 죽거나 세력을 잃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도

평안도와 함경도의 북쪽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문을 자세히 듣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낭림산맥 길은 골 어딘가에 그의 혈당들이 모여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달근은 그때는 훈련

원의 선전관으로 올라가 있는 최형기에게 봉물과 사람을 보내어 똑독하고 야무진 장교를 한

사람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청했을 정도로 불안에 빠져 있었다.

고달근은 철원이 주거지로서는 매우 불안하였지만 북관과 한양을 연결하는 중요 접점인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철원은 추가령의 병목과도 같은 곳이라 특히 북포와 북어의 물량

과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요지였다. 솔부리 패거리들 중에 거의가 그의 수중으로 들어

왔고 복만이는 송도를 거쳐서 서북으로 나갔다는 후문이 들릴뿐 종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

하튼 최형기는 위에 아뢰어, 한양 인근 난전 무뢰배들이 나라를 등지는 무리로 떨어지지 않

도록 고달근에게서 시시콜콜히 얻어 들은 저자의 물정을 능숙하게 활용하였다. 즉 매우 위

험한 자나 갑자년 천민들이 술렁거리던 때 이래로 제법 관계가 있었던 자들은 전비를 묻지

않고 일단 포청에서 다짐을 주고 나서 포처의 길찰비나 인정을 흠뻑 받아내고 나서 방송하

거나 순순히 토로하지 않는 자들은 전비를 묻지 않고 일단 포청에서 다짐을 주고 나서 포청

의 기찰비나 안정을 흠뻑 받아내고 나서 방송하거나 순순히 토로하지 않는 자들은 문초할

것도 없이 내주었다가 뒤로 그럴 듯한 핑계를 대어 거래에 피해를 주거나 장사를 못하도록

해버렸다. 모신이나 박대근의 경우에도 그들이 길산 일당이나 또 다른 녹림 역적들과 깊은

관련을 가졌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포청에서는 최소한 그런 부상대고들이 녹림당과 적당히

타협하고 있으며 그들의 장물을 취급했으리라는 추측은 하고 있었다. 모신의 경우에는 많은

인정을 썼고 서강에서 장사를 폐하고 수원으로 내려가버렸고, 박대근은 임방에서 물러나 용

만으로 나간다고 한 일년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와서 집에서 바둑이나 두며 놀고 지냈

다. 박대근의 겨우는 모신이와는 달라서 나중에 송도 관아에 출두하여 이경순과 장물의 거

래를 몇차례 가졌던 사실을 털어놓았고 배대인은 수천 냥을 내놓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일

이 흐지부지되고 나서 박대근은 장사에서 손을 뗀다며 식구들을 솔가하여 송도를 떠났던 것

이다. 이제 최형기와 고달근은 서로에게 이해가 걸려 있는 상대가 되었다. 도성 북쪽 근거지

방의 동향이며 북관에서 일어난 일들이 재빨리 고달근의 상단을 통하여 최형기에게 전달되

었다. 최형기는 포청에서 나와 훈련원으로 옮겼으니 한양 수비와 비변의 일에 대하여 관심

이 많아졌다. 최형기는 아무래도 장길산의 활빈도가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서 계속 출몰하

고 있다는 지방 관아의 장계가 마음에 걸렸고 조정에서는 당상대신이 임금의 탄식과 질책을

듣고 무장들을 들볶는 형편이었다. 객사거리에 있던 고달근의 객점에는 상단 사람들 몇 명

만이 남았고 다른 장사치들의 내왕은 한산한 편이었다. 어느날 한 자그마한 사내가 노새에

짐을 싣고 나타났다. 다른 상단에서도 못 보았던 낯선 얼굴이었다. 객점의 주인 노릇 하는

자가 곧 상단의 행수인 박거사에게 가서 알렸고 박거사는 일단 캐어보고 다시 알리라고 말

하였다.

"손님, 오늘 예서 묵어 가시렵니까?"

주인 노릇 하는 자가 목로에 앉은 낯선 장사꾼에게 가서 물었다.

"추가령을 넘어가야 하는데 때가 이러하니 하룻밤 묵어 가야지요. 방이나 하나 치워주슈.""

어디까지 가십니까?"

"글세 함흥으루 나가볼까 하오."

키 작은 장사꾼은 반짝이는 눈을 들어 주인 사내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오히려 자기 쪽에

서 먼저 물었다.

"혹시 믿을 만한 중도아가 없겠소? 내가 본시 장사치는 아니라오. 다만 함흥에 가는 것도

나와 안면 있던 자가 함흥 거부의 행랑에서 서기질을 한다기로 혹시나 하여 가보는 것뿐이

오. 그러니 먼길 가서 헛걸음치는 일보다는 이 고장에서 물건을 넘기고 돌아설까 하지요."주

인 노릇 하는 자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무슨 물건이우?"

그는 사내가 옆구리에 바싹 붙여놓은 보퉁이며 부담을 손으로 눌러 보았는데 장사꾼은 얼

른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하였다.

"허어, 이러지 마우. 중도아를 데려오면 내가 주인께 식대나 후히낼지언정 상관없이 나서지

마시우."

주인은 계면쩍기도 하고 사내의 고지식한 모양이 우습기도 하였으나 내심 몹시 궁금하였

던 것이다. 그는 어른 안으로 들어가 행수 박거사에게 그런 사실을 알렸고 둘은 다시 술청

으로 나왔다.

"이분이 바루 철원 중도아 행수이시우. 찾기는 참 잘 찾아오셨소. 여기가 어디냐 하면 원산

포와 포천 송우점을 잇는 철원의 대 중도아 상단이 있는 객점이라오."주인이 너스레를 떨었

고 박거사가 예전 같지 않은 점잖은 투로 말하였다.

"무슨 물건인지 알아나 보고 원매자를 구하든지 가격을 흥정하든지 해야 할 거 아니오?"장

사꾼 차림의 사내는 아직 보퉁이를 끼고 앉아 대꾸하였다.

"내가 본시 삭녕 사는 양민으로 손바닥만한 땅뙈기나 파먹구 사는데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삼밭을 보았지요. 북편 골자기를 내려가니 켜켜로 낙엽이 쌓이고 썩어 기름진 땅인데 아, 거

기가 모두 삼밭입디다. 삼이 좍 깔렸는데 거기거 대충 열 뿌리만 뽑아다가 이렇게 가지구

나선 길이오. 내가 모두 뽑아서 한꺼번에 갖다가 넘길 수도 있겠으나 잘못 건드렸다가 썩어

지면 수만 냥이 물거품이 되는 판이라, 잘 아는 심메마니들과 의논하고 싶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몇뿌리 내어 가격도 알아보고 그 삼밭을 알려주는 대가만

받는 것이 유리할 듯하여 나섰지요. 나서긴 하였으나 막상 철원까지 당도하고 보니 북관에

까지 오를 일이 아득하여 말을 내어본 것이우."

박거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얼른 사내를 보퉁이에 손을 탰고 사내는 다시 그 손을 뿌

리치고는 조심조심 보퉁이를 끌렀다. 보퉁이 안에는 엄지손가락의 두어 배가 넘어 보이도록

굵은 인삼 열 뿌리가 들어 있었다.

"이것을 캐냈단 말이오? 그 산에 밭이 되어 있더란 말이지 예년 같으면야 장사하는 이들이

눈독을 들이겠지만 이걸 올 같은 천재에 누가 사겠수. 인삼이 아니라 낟알도 없는 형편인

데."

박거사가 장사꾼의 기를 죽여 흥정의 기선을 잡으려고 그런 말을 하였으나, 그해에는 사

실 크게 가물고 찬바람이 불고 냉해에 서리가 겹쳐서 밀 보리는 싹을 내지 못하고 씨를 뿌

리지 못하여 전국이 수확을 거두지 못하였다. 나라에서도 현종 때의 신해(辛亥) 흉년의 곱절

에 이르는 재해라고 의논이 되었다. 가을의 쌀 한 말 값은 오십 푼에서 이백 푼으로 올랐던

것이다. 박거사의 시큰둥한 말을 듣더니 예상대로 사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그러니 자신이 없어 차라리 예서 이것을 보이고 선불을 받고 삼밭을 가르쳐주고 나서 모두

받기로 하고 한몫에 쳐서 양곡 열 섬이나 벌어 갈까 하구 있지요."박거사는 사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내가 한번 알아는 보리다. 하나 시절이 시절인만큼 열 섬은 어림도 없을 게요. 여하튼 여기

서 오늘 묵으시우."

주인이 그제서야 제법 널찍한 봉놋방으로 사내를 안내하였는데 행객이 없어 큰 방안이 휑

뎅그렁하고 썰렁해 보였다. 박거사는 얼른 고달근의 본가로 찾아가 그에게 삭녕 산다는 사

내의 일을 말하였고 달근은 흥미르 보였다.

"어 그것 굴러 들어온 떡이로구나. 시골놈이 시세는 더욱 알 리가 없으니 좁쌀 두어 섬

내주면 삼밭을 알려줄 게다. 장소를 알고 나서 모른 척하면 임자 없는 산에 묻힌 초목을 캐

냈다 하여 관가에 하소를 하겠느냐, 우리에게 행역질을 하겠느냐.""선다님, 열 뿌리만으로도

두만강을 건너면 호인의 콩과 수수를 수십 섬 들여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 네가 아이들 두엇 데리고 다녀오너라. 놈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좁쌀

삼십 섬을 준다 하고 두 섬은 미리 주도록 해라."

의논이 되어서 박거사는 사내에게 흥정을 하였고 사내는 그나마도 얻게 된 것이 기쁜 모

양이었다. 이튿날 사내는 노새에 짐을 싣고 다시 상단의 말 등에도 좁쌀을 나누어 싣고서

박거사와 곁꾼 두 사람이 길을 떠났다.

"삭녕으로 가는 것은 알지만 어느 산인가는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나?"사내가 입을 굳게 다

물고 대답을 않으니 박거사는 다시 꼬드겼다.

"허허, 이런 꼭 막힌 사람 봤나. 우리가 지금 그리루 가서 알게 될게 아니우. 그뿐이우?

그 너른 산의 어느 골이 삼밭인지 어찌 알겠수?"

사내는 뚱한 얼굴로 박거사를 돌아보더니 툭 던지듯이 말하였다.

"흥성산이우"

"음, 그럼 지척이로군."

안심한 박거사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흥성산이라면 철원에서는 사십리 길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서창을 지나서 갈마재[渴馬峴]를 넘는데 온 산은 가을색으로 가득하여 울긋불긋하였

다. 고개 중턱에 이르러 삭녕 사내가 갑자기 노새의 고삐를 바거사에게 내밀며 말하였다.

"아이구 배야 피죽만 먹다가 그 댁 밥을 많이 먹구 나왔더니 배탈이 난 모양이우. 잠깐만

기다려주오."

박거사와 다른 곁꾼들은 하는 수 없이 기다리게 되었고 사내는 바지 허리를 연신 만지작

거리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숲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에 길게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리

더니 장정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박거사가 놀랄 겨를도 없이 고개를 들어보니 장정들은

저마다 환도며 병장기를 들었다. 그들은 삽시에 박거사 일행을 에워쌌고 박거사는 전후 좌

우에 달아날 길이 없어 그 자리에 엎드리며 애원하였다.

"제발 덕분에 목숨만은"

장정들은 철원 상단의 세 사람이 순순히 무릎을 끓자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뒤결박지어서

일으켜 세웠다. 뒤가 마렵다고 숲으로 들어갔던 키 작은 사내가 장정들을 이끌었던 눈 크고

허우대가 건장한 자에게 말하였다.

"선흥이 성님, 혼자만 왔수?"

"아니 모두들 말응산에 있다. 어서 그리루 가자."

열 사람쯤 되는 장정들은 복색들이 상단 사람들 같았으나 그들은 모두가 길산네 활빈도들

이었다. 키 작은 장사꾼 사내란 기실은 최흥복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에 길산은 낭림산맥의

운봉산을 근거지로 하여 예전보다 더욱 강고하고 넓은 활빈도의 연계를 짜두었던 터였다.

해서의 수안 곡산의 잠채터는 관군에게 쑥밭이 되었으나 미리 피하게 하여 마식령산맥의 입

암산에 근거한 일대가 되었다. 낭림산맥에만 하여도 운봉산 당림산 소백산의 세 군데에 산

채가 나뉘어 있었고 묘향산에는 서용의 식구가 장길산 활빈도의 깃발 아래 들어왔다. 박대

근은 강계로 이사가서 있었으며 그들의 잠상 통로는 벽동 해천동과 불암골이 근거지였다.

함경도에서 원산 고원 객점이 관군에게 발각되었다. 하나 함흥 백운산의 업복이는 여전히

건재하였으며 회령 서수라 등지는 정대성이가 관장하였다. 봉사의 만동이 천동이 형제는 가

산이 구몰되고 절도 유배형을 받았으나 다른 잠채꾼들과 해서 무계원드은 입암산으로 모여

들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을해년 봄부터 계속 사방에 출몰하여 관군들을 괴롭혔으며 멀리는

경기도에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철운의 배신자 고달근이를 처단하고 그의 정탐의

눈을 멀게 할 작정이었다. 달근이가 철원을 떠나 가산을 정리하여 삼남으로 내려갔다 하더

라도 그는 무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강선흥과 최흥복은 달근네 박거사와 곁꾼 둘을 잡아

가지고 곧장 북으로 달려 말응산 연맥을 타고 평강계까지 나아갔다. 이는 마식령산맥의 끝

줄기였는데 황해도와 강원도와 경기도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었다. 말응산에서 동남쪽으로

오십 리 내려가면 곧 철원에 닿았다. 선흥이 흥복이 일행이 수청산을 지나 말응산의 동쪽

첫 번째 골짜기로 들어가니 숲 가운데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 장막을 치고 삼사십 명의

장정들이 모였는데 말은 아래편 시냇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길산은 예전처럼 긴저고리에

띠를 매고 패랭이 차림이었으며 운봉산의 박산돌이 곁에 지키고 서 있었다. 흥복이가 달근

이네 사람들을 끌어다가 길산의 면전에 꿇렸다.

"이놈이 고가의 행수 되는 놈입니다."

길산은 그에게 물었다.

"고달근이가 네 주인이냐?"

"예."

"네 주인이 오늘과 같은 부귀영화를 어찌 얻게 되었는지 알고 있겠지.""명화적 토포의 길라

잡이가 되었다고 들었소."

길산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같은 어조로 물었다.

"우리는 백성들을 위하여 관북 서북 해서 관동 등지에서 모여든 활빈도다. 네 주인은 안성

청룡 거사패의 모가비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대도 창우 출신인가?""예, 전에 그 밑의 거사였

습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알겠구먼. 나도 해서 광대였던 장길산이란 사람이다."박거사는 그제

서야 자기가 잡혀온 연유를 눈치채고 놀란 눈을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이구, 함자는 오래 전부터 들어 모시고 있사오나.....""고가는 일찍이 우리와 같은 동류로

서 신의를 어기고 같은 처지의 동무들을 관군에 팔아 넘겼다. 너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를 살려 둘 수가 있겠느냐.""저는 그저 그의 수하로서 평생을 밥 얻어먹고 살았습니다."길

산은 그의 뒷전에 앉은 다른 곁꾼들을 넘겨다보았다.

"내가 자네들을 해치겠는가. 다만, 천한 것이 자기 동류를 감싸고 돕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잡아먹고 해를 주어서야 언제 우리가 사람다웁게 사는 날이 오겠는가. 우리가 그를 징치하

여 먼저 죽거나 행방이 끊긴 이들의 포한을 풀고 아직도 천민들의 기개가 팔도에 살아 있음

을 천항에 알리며, 또한 스스로를 경계하여 앞날의 대사를 다지자는 뜻이니 자네들은 우리

를 도우라. 그 대신에 고가의 재물은 모두 탈취하여 그대들에게 줄 것이니 후환 염려 말고

솔가하여 다른 고장으로 떠나면 되겠지."

박거사가 주변머리는 없어도 길산의 나직한 말이며 그 정대함에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듣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흥복이 옆에 섰다가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말하였다.

"몇가지만 알려주면 되오. 그리고 우리가 부탁하는 대로 해준다면, 아주 손쉬운 일이오."박

거사는 흥복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이미 철원 읍내의 정탐을 오래 전에 끝냈소." 흥복이 말하였다.

"읍내의 군사가 모두 몇이나 되오?"

"글쎄요, 병방 이하 장교가 셋이고 군사는 일 초가 채 못 되는데 실은 십 오가 될까말까

합니다. 향군은 끌어모은다면 이삼백이 되겠으나 습진조련은 해본 지도 오래 전 일입니다.

대개 군포나 모으는 구실일 뿐입니다."

"고달근의 집에는 장정이 몇이나 있소?"

"하인들 칠팔 인에 서기사 하나 있는데 그중에 네다섯은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보다는 호종

드는 칼잽이를 고용했는데 고선달의 사랑채에 함께 기거합니다. 또한 한양 훈련원에서 장

교 하나가 오기루 되어 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장길산이 물었다.

"고가는 아직도 한양의 최형기와 왕래가 있다든가?"

"왕래가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수시로 사람을 보내어 문후하고 외방 소문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최형기가 훈련원 선전관임을 아십니까?"

"다 알구 있네."

최흥복이 다시 말을 꺼냈다.

"우리를 도와주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부내에 있는 관군을 꾀어, 아까 당신들이 우리에게

당하였던 갈마재로 끌어낼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오. 우리가 관가는 내버려두고 고달근

이 집을 들이칠 작정이오. 그의 가산을 적몰할 터이니 행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상단의

재물과 고가의 재산을 나누어 가지고 도계를 넘어 다른 고장으로 떠나면 되오.""도와드리겠

습니다."

"저희들도 고선달이 인색하여 불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송우점 시절부터 상단에서

일했으나 아지도 저희는 적수공권이올시다."

곁꾼들이 번갈아 말하자 박거사는 질세라 한술 더 떴다.

"장사들께서 그런 포한이 계시듯 저도 내심 고선달에게 앙갚음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사실

은 안성 시절부터 고가와 행중의 동무로 온갖 고생을 함께 치르며 살았고, 특히 무진년

미륵도 난리 때에 죽은 황거사와는 친동기간처럼 지냈지요. 이 자가 그때까지는 검계에도

들어 피눈물 나는 세월을 같이 고생하며 지내더니 이제 와서 선달 직첩은 또 무엇이며 언제

부터 저와 내가 반상의 유별을 따졌답니까. 속으로 아니꼽고 더럽지만 저는 중도아의 행수

요 집은커녕 식구도 없지요. 최모라는 무인이 줄을 대어 훈련대장 신여철이 그의 뒤를 보아

진다는데 철철이 봉물이 한양으로 올라갑니다. 장사들께서 오히려 저를 도와 고가가 망하는

꼴을 보도록 해주십시오."

박거사가 눈은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무는 것은, 다름 무엇보다도 고달근의 갑작스런 영

달에 대한 선망과 그의 재산을 바라는 욕심 때문임을 알 수가 있었다. 길산의 사람들은 그

런 모양을 물속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박거사 또한 기회가 있었다면 달근이와 같은 길잡

이를 자청하였을 터였다.

"좋소, 그렇다면 세 사람은 지금 부내로 돌아가서 관가에 적경을 알리시오. 갈마재에서 도적

을 만나 짐과 말을 빼앗겼는데 흥성산 부근에 유민들의 집결처를 뒤를 밟아 알아두었다고

이르면 필시 부사는 군사를 내어 도적들은 잡으라고 할 게요.""그야 손바닥 뒤집기지요. 관

가에서는 우리 얘기를 믿을 뿐만 아니라 고선달의 말이라면 부사도 듣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요."

최흥복이 일어났고 장길산이 박거사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명일 정오에 읍내로 쳐들어갈 작정일세. 관군이 오전에 떠나면 인명도 별로 다치지

않고 쉽게 볼일을 보고 떠날 수가 있을 걸세. 자네가 돌아가 오히려 관군을 도와주게 된다

하여도 우리는 별로 두려울 것이 없네. 읍 안에는 우리 쪽에 기미를 모두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멸칠 미루었다가 지척에 있는 여러 녹림의 무리를 모아서 쳐들어갈 게야. 그떼에

는 자네들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명심하겠습니다. 저희들게 유익한 일을 어찌 미리 망치겠습니까?"최흥복이 말하였다.

"자아, 어서 돌아가야지요. 관가에 삼현육간에 울려서 퇴청하기 전에 적경을 고하시우. 그리

고 나서 고선달에게 하소하면 그자는 분기하여 부사에게 가서 발병할 것을 요구할 게요."

그들이 일어나서 최흥복은 자기가 미끼로 썼던 인삼을 박거사에게 네 뿌리, 곁꾼들에게는

세 뿌리씩 나누어주었다.

"공연히 다리품 팔게 하고 우격다짐으로 예까지 끌고 왔으니 미안해서 인사를 차리는 게

요. 일이 성사가 되면 고가의 재산은 모두 댁네들 차지가 되겠지요.""예서 철원 읍내까지 걸

어가면 당도하기도 전에 해가 저물어버립니다."박거사가 말하자 장정들 가운데 젊은이 둘이

나섰고 최흥복이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당신들과 같이 갈 거요. 우선 마룡못까지 함께 갔다가 한 사람은 말을 거두어

돌아올 것이오. 그리고 이 사람은 댁네들과 함께 돌아가 객점에 묵으면서 동정을 살피다가

군사가 발정하면 돌아올게요. 우리는 그 뒤에 읍내로 짓쳐들어가게 되우. 물론 댁네들을 믿

지마는 사람의 일은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

빈틈없는 흥복의 말에 박거사는 질린 듯이 섰다가 운봉산 장정들의 뒤를 따라서 말에 올

랐다. 그들은 여러 가지 생각이 엇갈려서 아무 말도 없이 마룡못까지 달려 내려왔고, 장정

중의 하나가 그들을 말에서 내리도록 하고는 안장에 고삐를 일일이 잡아매어 몰고 돌아갔

다. 박거사 일행은 소이산 언덕을 넘어 읍내로 들어섰다. 박거사가 두 곁꾼들과 활빈도의 장

정에게 가만히 일렀다.

"내가 얼른 관가에 들러 병방에게 알림 터이니 자네들은 객점에 돌아가서 기다리게."장정은

박거사를 쏘아보며 다짐을 주었다.

"딴짓 하지 마우. 식구들이 지척에 있고 언제든 이 고을에 다시 올 수 있으니까""허, 입에

맞는 떡인데 내가 마다하겠소. 좌우지간에 내가 다 손을 쓸 테니까 두고만 보구려."

박거사가 큰소리를 치더니 곁꾼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자, 말을 맞추세. 우리가 전환을 당한 게 어디지?"

"그야 갈마재 아니우?"

"흥성산이라구 했수."

"그럼 되었네. 자네들이 먼저 객점에 가면 떠들어두게. 내가 곧 가서 선달을 만나 다시 자

세히 이를 테니."

그들을 보내놓고 박거사는 삼문 안으로 들어가 병방을 만나서 일렀고, 병방은 문서를 적

기 전에 먼저 철원부사 황진문(黃震文)에게 구두로 아뢰었다.

"고선달의 중도아 상단 행수로 있는 박생이란 자가 곡물을 가지고 말 등에 실어 갈마재를

넘다가 도적을 만났다고 합니다. 도적들은 몽둥이와 환도를 가졌는데 모두 칠팔 명이 된다

고 하였지요. 말과 곡물을 모두 빼앗기고 달아난 도적들의 뒤를 밟아 삭녕과 경계에 있는

흥선산 골짜기에 이르니 유민들의 움집이 여러 채인데 그들이 대개 노상에 행인을 노리는

도적들인 모양입디다. 군교를 내어 저들을 잡아달라고 하오니 어찌하시렵니까."부사는 한가

하게 앉아 먹을 갈아 글씨를 쓰고 있다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하였다.

"지금 같은 심한 재해에 팔도에 넘쳐나는 것이 굶주린 황민들인데 어디 흥성산뿐이겠느

냐. 한두 놈 잡아올 수도 있겠으나 그리되면 그 식솔과 혈족들이 모두 우리 고을로 몰려올

것이라 구황죽이라도 쑤어 먹이게 되면 귀찮을 뿐이다. 원래 실물을 하면 잃은 자의 탓이

더욱 크니 공연히 덧들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그러나 병방은 선달인 고달근에게는 평소부터 후의를 입었고 그가 한양에 나다닐 때 훈련

대장과도 막연하다 하였으니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오나 고선달은 본 부내의 부호요 유지입니다. 고선달이 한양 출입도 잦고 사대부들 가운

데 연줄이 있어 그냥 모른 척하기는 곤란합니다. 아이들 데리고 나갔다가 못 잡는 한이

있더라도 시늉은 해주어야 되겠지요."

황진문은 그 말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에 귀찮다 고선달이 명화적의 발고로 논상에 들어 선달 집첩을 받더니 평생 그 재미를 놓

을 줄 모르는고나. 군영에는 몇 사람이나 있느냐?"

"군노 사령배 합하여 서른쯤 되옵고 더 필요하면 향군을 동원해야 합니다만 유민지배 따위

야 아이들 스무 명쯤 데리고 가서 움집들을 뒤지면 될 겝니다.""하여튼 나중에 삭녕군수에

게는 따로이 알리기로 하고 내일 아침에 어른 해치우고 오너라."

병방이 부상에게 물었다.

"사또, 헌데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려면 아무래도 하루가 꼬빡 걸릴터이니 군량은 어찌할까

요?"

"군량은 따로이 낼 것이 없고, 자네가 가만히 선달에게 찾아가서 출병할 것을 알리고 군량

은 거기서 내도록 말해보아라. 토포의 군량은 다른 고을에서도 모두 관례가 되어 있느니

라."

병방이 박거가에게 나와서 부사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알리고 그들은 함께 고달근이네 집

으로 갔다. 달근은 아직 박거사 일행이 도적을 만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병방이 함께 당

도하니 의아하여 물었다.

"아니 박행수는 어찌 벌써 돌아오고 병방은 뭣하러 우리 집에 오는가?""제가 선다님 뵈온

지도 달포가 넘었는데 찾아뵙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소인이야 선다님 일이라면

심신을 다하여 뛰어다닐 준비가 다 되어 있사오나 어디 기회기 돌아와야지요."

고달근은 영리한 사람이라 박거사가 잔뜩 풀이 죽어서 윗목에 고개를 숙이고 앉은 꼴이며

병방이 공연히 왁자하게 사설을 늘어놓는 모양을 보가 대강 알아차렸다.

"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군."

"뚝하면 울 밑에 조롱박이라고 다 아십니다."

병방의 말은 못 들은 체하고서 고달근이 박거사를 재촉하였다.

"어디서 도적을 만났든가."

"면목없습니다."

"어디냐니까."

박거사는 기어들어가는 목고리로 대꾸하였다.

"저어 갈마재에서 고개를 넘는데 몽둥이와 칼 가진 놈들 일곱 명이 우르르 몰려나오서"고

달근은 보표 위의 장침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그래 어쩐지 삼밭이 어쩌고 하는 것이 너무 어수룩하더라니. 그자들 활빈도가 아닐까"박거

사는 속으로 흠칫하였지만 목전에 이익이 있는지라 침을 꿀꺽 삼키고 말하였다.

"저희들두 당하구 나서 하도 억울하고 은근히 부악 나서 숲속에 쪼그리고 있다가 놈들의

뒤를 밟았습니다. 비록 몽둥이나 칼을 가졌다뿐이지 제대로 휘두를 줄도 모르는 유민들이

틀림없었지요. 흥성산에 그것들을 움을 파고 모여 사는 곳까지 보고 돌아오는 길입니다."고

달근이는 안심이 되는지 담배를 담아서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병방이 말을 꺼냈다.

"바로 그래서 소인이 온 것입니다. 사또께서 군사들을 내어 도적들을 잡으라고 명을 내리셨

지요. 내일 아침에 그 동네로 가서 집뒤짐을하여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오렵니다. 하온

데....."

병방이 사이를 두자 고달근은 담배를 빨면서 생각에 잡겼다가 불쑥 말하였다.

"딴은 싹이 자리기 전에 뽑아버리는 것이 상책이지. 그놈들이 거기 모여서 한두 번 재미를

보다가는 더욱 큰 무리로 작당하여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지 않는가. 유민들이라야 장정

여남은 명에 딸린 식구 합하여 스물이 될까말까 할 것이니, 가만있자 작당하여 강도짓을 저

지른 자의 식솔은 모두 노비가 돼야 하지."

"바로 그렇습니다. 기민이 버린 아이들도 누구든 데려다 밥만 먹여주면 노빌 부릴 수가 있

지요."

"자네가 여기 온 것은 그러니까 양곡을 달라는 것이고 토포할 인정전을 달라고 왔겠구먼.""

좋아, 내 군량을 내지. 그리고 그놈들을 잡아오면 일 구당 닷 냥씩 상을 주겠네.""저는 길안

내를 할 작정입니다."

고달근은 박거사의 말은 건성으로 흘리면서 병방에게 다시 일렀다.

"갈 때에 우리 사랑채 아이들도 데리구 가게.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모조리 잡아 일단은 내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하네."

"물론입지요. 그런 것들이야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 있는 것만도 다행이요, 여기 와서 혹시

행랑에라도 들게 되면 오복을 차지하는 셈이지요."

병방과 박거사가 물러나오려 하니 고달근은 박거사에게 일침을 주었다.

"다음부터는 객점의 일은 내가 직접 안을 내어 하는 일 외에는 다시 저지를 생각을 말아.

그리고 요사이 별로 할 일두 없을 테티 송우점에나 나가 있든지" 박거사에게 말하는 품이

어찌나 쌀쌀맞든지 병방도 자라목이 될 지경이었고 고달근은 궤에서 따로 두어 냥 꺼내어

병방에게 휙 던져주었다.

"오늘 저녁에 군교들 데리고 탁배기라도 먹게."

온갖 세상 풍파를 다 겪은 고달근이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수십년래의 수하 사람인 박

거사에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몰랐다. 이는 그가 재물 맛을 들이면서부터 전보다 더욱 정없

이 사람을 대하였던 때문이었고, 특히 박거사의 경우는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하면서 나돌

아다닐 적부터의 왼팔이었음에도 그가 발신한 뒤에 아무 덕을 입힌 것이 없었던 까닭이었

다. 이름이 좋아 행수지 사실은 청지기에 지나지 앟았으며 고달근은 선달이 되고부터 그의

본출신을 아는 박거사를 귀찮게 여겼었다. 다만 그가 그래도 기중 믿을 만했고 충직했기 때

문에 내치지 못하고 수하에 거두고 있었으나 제 집에는 데리고 있지 않았으며 객점주의 자

리도 철원 토박이에게 맡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말응산 골짜기에서 기다리던 활빈도의 장정

들은 정오 무렵을 가늠하여 모두들 말에 올라 천천히 수청산을 휘돌아 마룡연까지 나왔다.

말은 모두 북방 호마였고 장길산은 칠흑 같은 사류마를 타고 머리에 패랭이 쓰고 긴저고리

돌띠에다 단검을 지르고 한 곳에느 장약이 재어진 화승총을 쥐었다. 곁에는 박산돌이 황색

깃발을 치켜들었는데 사명기 모양으로 붉은 술이 다렸고 붉은 글씨로 활빈도(活貧徒)라고

뚜렷하게 씌어 있었다. 다시 그 뒤 양족에 다른 장정 둘이 장창 끝에 청홍의 수기를 달고

따랐다. 그들은 이미 그해 봄부터 곳곳에 출몰할 때 말 타고 깃발을 세워 자신들이 어디에

나 있음을 세상에 널리 알려왔던 터였다. 북도 쪽은 장길산의 활빈도가 휩쓸고 있었으며, 전

국 팔도에 대략 여덟 개 파의 명화적당이 알려져 있었다. 한양 북쪽은 장길산을 중심으로

한 운봉산 활빈도가 핵심 세력이 되어 활비도의 깃발 아래 그들을 모아 서로 강력하게 연계

하였던 터였다. 그들은 일 대를 대략 삼십여 병으로 나누었으며, 작은 군읍으로 들어갈 때는

일 대를 쓰고 어떤 때에는 삼사 대를 합하여 동시에 출몰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분간할 수가 없어서 향군을 동원하여 토포하려 하여

도 모두들 억지로 군역에 응하거나 도피하는 형편이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도적이 전국에

들끓고 심지어는 백주에 도회 대처에까지 출몰한다 하여 어찌 수습할 바를 모르고 임금이

비망기를 내려서 호소할 지경이었다.

오호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할 수 없도다. 내가 바야흐로 묘당의 여러

신하들과 밤낮으로 생각하고 헤아려보아서 여러 비용을 줄이고 절약하여 제활(濟活)의 계책

을 강구하려 하니, 절실히 바라건데 너희들은 주림을 참고 추위를 참아서 처자를 보호하고

혹시나 이산하지 말고 혹은 도적이 되지 말라.

하면서 좌의정 유상운의 계청(啓請)에 따라 더 많은 토포사를 배치하였던 것이 꼭 한 달

전이었다. 마룡연에 당도하자 활빈도는 대를 나누어 한쪽은 박산돌과 최흥복이 이끌고 배이

산 쪽으로 돌아 철원읍의 서북로를 끊고 들어가며, 다른 한쪽은 장길산과 강선흥이 인솔하

여 그대로 철원의 북로를 따라 몰려들어갈 작정이었다. 기마부대는 거기서부터 말을 달려

빠른 속도로 진군하였다. 읍내가 바로 턱밑에 보이는 언덕 위에서 그들은 말을 멈추고 잠시

기다렸다. 전날 박거사를 따리 나섰던 장정이 뛰어올라와 길산에게 보고하였다.

"관병은 아침에 곁꾼의 안내를 받아 흥성산으로 떠낫으니 지금쯤에야 당도했을 것이고,

제가 행군하는 모양을 살피니 군기도 형편없고 고장 장창과 환도 등속의 보잘 것 없는 병장

기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총포를 몇방 방포하면 모두 흩어져버릴 오합지

졸입니다."

장길산은 오른쪽의 배이산 언덕을 내다보고 있다가 드디어 수기가 흔들리는 모양을 보자

화승총을 허공에 대고 방포하였다. 그들은 일제히 말을 몰아 아래로 내려갔다. 철원이 대처

라고는 하여도 산간의 읍이라 작은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읍내의 백성들은 깃발을 펄럭이

며 총을 쏘고 몰려들어오는 활빈도를 보자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집안으로 숨어버렸고, 대개

는 울타리 안에서 소문만 듣던 활빈도를 조심스럽게 살펴볼 뿐이었다. 사십명의 부대였으나

모두들 건장한 말 위에 타고 있었으며 화승총을 가졌고 깃발이 펄럭여서 관군은 그에 비하

면 오히려 잔약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들은 먼저 관가 앞에서 합대하여 강선흥과 박산돌이

말을 탄 채로 동헌으로 들어가 마당을 한바퀴 돌고 나왔다. 이를테면 관부를 제압하려는 행

동이었다. 이때에 육방 관속들은 모두들 마루 밑이나 뒷간이나 광 속에 숨었고 부사 황진문

은 문고리를 꼭 걸어 잠그고서 내다보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관가의 세곡 세포 재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노렸던 곳인 고달근의 집으로 몰려갔다. 고달근은 점심상을 받

고 반주를 들던 참이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총소리를 듣고 놀랐던 그는 밥상을 뛰어넘

어 장지문을 열고 다락 위에 기어올라갔다. 고달근은 말발굽 소리가 지척에서 멈추자 그들

이 바로 장길산의 무리임을 직감하였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길산의 무리가 몰려오는 악

몽에 시달렸고 한양의 최형기에게 여러번 호소했을 정도였다. 십여 명의 하인이 있다 하나

대문을 간단히 박살내고 들어서는 활빈도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행랑채는 텅 비고 남

녀 하인들은 마루 밑과 광에 처박혀다가 장정들에게 하나 둘씩 끌려나왔다. 길산은 아우들

과 함께 사랑채로 들어갔다. 집뒤짐을 하자마자 고달근이 다락에 끌려 내려 왔고 대번에 선

흥이의 우악스런 팔에 의하여 마당에 동댕이쳐졌다. 길산은 사랑채 마루에 올라앉았다. 박신

돌이 들어와 알렸다.

"안채의 식구들도 모두 끌어내어 행랑채 앞에다 모아두었습니다." 길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선흥과 최흥복은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댓돌 아래 꿇려진 고달근이를 노려보았다. 특히

선흥은 길산의 명이 내려지면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려는 기세를 엄파 쇠몽치를 들고 불불

떨고 있었다. 길산은 여느 때와 똑같은 어조로 간단히 말하였다.

"정자관을 벗겨라."

선달 시늉으로 머리에 얹은 정자관을 최흥복이가 뜯어냈다.

"얼굴 좀 보자."

강선흥이가 고달근의 상투를 잡아 뒤로 젖혔다. 달근은 얽은 얼굴을 일그리고 길산을 올

려다보았다.

"너 하나를 징치하려고 수백 리를 달려 내려왔다. 네가 무엇보다도 괘씸한 바는 본색이

우리와 같은 천 것으로 동류를 배신한 점이다. 너는 기와에 죽을 몸이다. 양덕에서 압송된

우리 가족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알고 있느냐?"

길산의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그때에 아내 춘천댁과 자식을 잃었던 강선흥이며 황주댁을

잃은 최흥복이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고, 강선흥은 달근의 멱살을 움켜쥐고 위로 바짝 치며

들었다.

"네 이눔, 너희 식구들은 무사할 줄 아느냐?"

강선흥은 엄파 쇠뭉치를 치켜들었다가,"말하게 하여라."

하는 길산의 목소리에 마지못해 손을 탁 놓아버렸다. 고달근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저는 평안감영에까지만 토포군과 함께 갔다가 돌아왔으므로 잡힌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는 모릅니다."

"최형기는 알고 있느냐?"

"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형기가 훈련원에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러하오."

길살은 잔뜩 움츠린 고달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제 네 목을 베려 한다. 너를 죽이는 것은 사사로운 원한을 갚고자 함이 아니라, 피붙이와

동기간을 저버리고 신의를 팔아 부귀를 얻은 씻지 못할 죄를 만백성의 이름으로 징치하려는

거싱다. 너는 특히 우리와 같은 천민으로 한때에는 검계에 들어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였

고 산에 올라가 녹림당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너는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

이 무엇 때문에 모였으며 우리가 피로써 맺어져 있었음을 잘 알 터이다. 네가 토포군의 앞

잡이가 되고 나서 목숨이나 부지하여 참회하며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너를 다시는 찾지 않았

으리라. 너는 동료들을 구몰시켜 재물을 빼앗아 차지하고 그 위에 선달 직첩까지 받아 예전

에는 자기와 똑같던 백성들을 억누르고 괴롭히고 있으니 살려둘 가치가 티끌만큼도 없는 놈

이다."

장길산은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댓돌로 내려섰다. 그는 반팔 길이의 단검을 눈앞에

쳐들어 푸르른 칼날을 겨누어보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고달근이 갑자기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더니 두 손을 모아 쥐고 애걸하기 시작하였다.

"두령, 살려주오. 저는 그저 목숨을 구해보려고 최형기에게 귀띔만 했을 뿐이우. 두령의

식구들이 양덕에 있음도 제가 발설한 게 아닙니다. 김선일이 잘못이오. 이 집 재산도 모두

드리고 시키는 대로 다 할테요. 최형기를 잡아 죽이려면 제 도움이 필요합니다. 두령, 다시

한번 생각하십시오."

길산은 낯을 잠깐 찌푸리고 섰더니 고달근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걸음 내디디며 위에서

아래로 칼날을 날렸다. 달근의 몸이 무릎 꿇은 자세대로 땅에 가서 쿡 처박히는데 이어서

끊긴 목이 어깨 근처로 굴러 떨어졌다.

"목을 관가 삼문 앞에 효시한다."

길산은 중얼거리고 나서 칼을 죽어자빠지 달근의 허리께에 대고 훑어서 칼집에 넣었다.

"가족들도 모두 도륙을 할 테유."

강선흥이가 말하였고 길산은 돌아서서 나가며 일렀다.

"그냥 놔두어라. 죄지은 놈만 벌을 준다. 그 대신에 재물은 모두 끌어내어 고을 양민에게 나

누어주어라."

행랑채 앞으로 나오니 달근의 가족들과 하인들이 한데 몰려서 꿇어 앉아 있었다. 최흥복

이 말하였다.

"재물은 모두 끌어내어 집 밖에 내다 두고 고을 사람들에게 알려 가져가도록 해라." 벌써

박산돌과 장정들이 집뒤짐을 하여 물건들을 끌어내는 중이었고 장정 십여 명은 다시 고달근

의 객점으로 나가 창고의 물건들을 모조리 끌어냈던 것이다. 먼저 객점에 불을 질러 철원

의 좁다란 읍내 의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찼다. 박거사가 최흥복에게 달려와서 하소하였다.

"선달의 재물은 모두 저희에게 내주시기로 약조하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것은 모두 저와

다른 두 사람 것이니 아무도 손댈 수 없습니다."

최흥복이 껄걸 웃으며 대꾸하였다.

"누가 가져가지 말라고 했든가. 다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가져가면 나중에 관부에서

추궁하더라도 우리와 내통한 사실을 발뺌할 수 있잖은가. 어디 멀리 달아난다 하여도 찾지

도 않을 테고."

박거사는 그 말을 듣자 어이가 없는지 아무 말도 없더니 그제서야 산더미처럼 쌓인 짐 가

운데 뛰어들어 값진 물건을 찾기 시작하였다. 흥복은 무릎 꿇고 앉은 하인들에게로 가서 일

러주었다.

"너희들도 이제는 이 집의 종이 아니다. 속량이 다 되었으니 얼른 노자나 마련하여 멀리

가거라."

하인들은 하나 둘씩 일어나 짐 속에 파묻힌 박거사와 합세하였다. 뒤늦게 달려온 백성들

은 삼삼오오 패를 만들어 곡물도 날라가고 무명도 지고 갔으며 차츰 사람들이 많아졌다. 길

산은 말에 올라 지시하였다.

"서둘러서 떠나자. 이 집은 형제를 팔아서 이루어진 허깨비의 집이니 없애버린다." 장정들

몇이 달려들어가 집의 사방에 맞불을 놓았고 이쪽 저쪽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다. 그들

은 말에 올라 깃발을 세우고 천천히 읍내의 한기로 달려나갔다. 강선흥이가 한 손에 고달근

이의 머리를 꽂은 장창을 들고 가더니 말을 돌려 관가 쪽으로 달려갔다. 강선흥은 관가의

삼문 앞에 이르러 장창을 땅에다 꽂았고 달근의 머리에는 찢겨진 정자관이 씌워져 있었다.

아무도 말에 오른 사십여 명의 활빈도를 가로막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두 줄로 열을 지어

먼지를 일으키며 철원읍의 북동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은 마식령산맥을 따라서 위로 올라

해서 노림당의 근거지인 입암상에 당도할 작정이었다. 이보다 앞서 계유(癸酉)년인 숙종 십

구년에 운부(雲浮)스님은 금강산 배운사의 옥정암에 머물고 있었는데, 길산의 혈당이 최형

기로부터 토포당하여 양덕을 탈출한 이듬해였다. 옥정암에는 예전 금화 천불산에서의 법

회 때와는 달리 수개월 동안의 법회가 열렸으니 참가한 승려는 운부를 비롯하여 옥여(玉

如), 일여(一如), 묘정(卯定), 대성법주(大聖法主), 풍열(風悅) 등의 스님들이었다. 연환스님의

미륵도 난이 실패로 돌아간 뒤로 드들은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를 모임의 기간으

로 삼아 각처에서 모여드는 장정들을 수습하고, 한양에의 근거를 마련해두기 위하여 애를

쓰는 한편, 민심에 부합될 만한 진인(眞人)을 찾기를 위하여 걱처에 사람을 보냈었다. 이는

백여 년 이상이나 민간에 떠돌고 있는 정진인 설에 부응하려는 뜻이었고, 실제로 새로운 나

라를 세우려면 온 백성이 그럴 듯하게 여길 중심 인물을 세워야만 보다 맣은 계층의 사람들

에게서 호응을 받으리라 여겼던 까닭이었다. 운부는 옥정암의 모임에서 그간의 승려 세력들

의 취합과 체결의 사정을 자세히 듣고 나서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산간에 은둔하여 불경이나 외우고 세속을 외면하여 스스로 도를이루

었다고 자족할 때가 지났고. 왜란 이후로 명이 망하고 나서 의리는 땅에 떨어지고 중원은

오랭캐의 땅이 되어버렸으나, 우리는 아국 백성의 명이 경각에 이르러 전 국토에 황민과 아

사자와 병사자가 수십만에 이르는 참화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벼슬아치들에 시달리는 백성들

마저 저버린지 오래였소. 이 나라를 새롭게 이룩하고 또한 북변의 옛 땅을 되찾아 중원에까

지 우리들의 뜻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압록강변에 해골을 묻는 편이 나을 것이

오."

다시 풍열이 말하였다.

"우리나라는 본래 군사가 강하다고 알려져왔습니다. 억지로 끌려나온 관군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난 민변은 왜란 때에도 각처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소. 이러한 강한 기세로 일어난

군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능히 중원으로 쳐들어가 나라를 세울 수가 있소이다. 다만 그것

은 먼저 아국이 평정되어 백성들의 환희작약하는 나라를 세운 뒤에야 가능하고 민심을 얻는

것이 우선입니다. 여러분 화상들이 팔도 승려들의 마음을 함께 모아두었으니 아국 평정의

길은 쉬울 것이나, 중원을 공략하는 것은 실로 어려울 것이오. 먼저 정성 지인을 얻고 최성

을 얻어야 합니다. 이것이 민심에 부응하는 길이오."

옥여가 풍열의 말에 응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아조를 뒤엎어버리겠다는 사류들이나 불평객들은 언제든 나라를 세운 이성계

를 질타하고 있으며 북선에서는 돼지비계를 성계육(成桂肉)으로 일컬어온 지 오래되었습니

다. 특히 백성들은 전조 고려의 충신이던 정포은(鄭圃隱)의 환생을 참서에 의탁하여 열렬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후손을 반드시 찾아내어 아국의 주(主)로 삼아야 하며, 또

한 중원에 세울 나라의 주인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백성들은 아직도 전조의 충신으로

중원으로 쳐들어가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려는 큰 뜻을 보였던 최영 장군을 잊지 않고 있

습니다. 그래서 조선조의 건국을 헛것이라고 여겨왔지요. 최장군이 언젠가는 신장(神將)이

되어 나타나 백성들의 묵은 포한을 갚아주리라 믿는 자가 한구이 아니올시다. 송도 덕물산

뿐만 아니라 북선지역의 포은의 후손을 찾아 헤매다가 철원 삭녕지간에서 그 십삼대 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성법주와 제가 그를 데려다가 고성(高城)에 숨겨두었으니 나이가 금년

아흡살입니다. 두 귀가 커서 귓바퀴가 마치 부침개와 같고 미간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데 별

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각처의 승군들이 규합되고 있는데 진인을 얻을 일은 바로 때를 만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성법주도 말하였다.

"운부스님께서도 잘 아시는 고성 수자리골의 정학 형제는 가산도 유족하고 용맹과 힘이

있어서 진인의 보호를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여염에 그를 숨겨두는 일이 위험하다 하여 내원통 뒷골의 오석골에 숨겨

두고 최헌경과 유징으로 하여금 왕래하며 보살피게 하였고, 계유년 팔월에 운부를 비롯한

승려들의 중심 세력이 모두 오석골에 가서 진인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구월

에 각자가 맡은 역할을 해내기 위하여 각처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정진인을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는 소식은 운봉산의 장길산에게도 전해졌고 옥여와 대성법주는 여러번 강원도와 함경

도와 평안도를 오르내렸다. 위에서는 묘향산의 도안(道眼) 해안(海眼)의 서북 승병으로부터

낭림산맥과 마식령산맥 일대의 길산의 활빈도와 태백산맥 일대의 산사의 승병 조직, 그리고

승병의 장수감으로 소제(宵濟) 취양(翠陽) 법징(法澄)을 얻었던 것이다. 운주 풍열 옥여 인

여 묘정 대성법주 외에도 도안, 해안, 소제, 취양, 법징 스님과 함께 각처의 혈기있는 승려들

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략 무변(無邊) 현성(玄聖) 일안(一 ) 도강(渡江) 월강(越江)세일(世

一) 도운(道雲) 도영(道英) 계탄(戒坦) 성주(聖珠) 명근(命根) 금벽(金碧) 실징(實澄) 능흡(能

洽) 세운(世雲) 원정(元井) 헌일(憲日) 죽무(竹茂) 지평(地平) 천수(天水) 은상(銀象) 초룡(草

龍) 직수(直守) 흑수(黑守) 희담(希淡) 황헌(黃憲) 장계(藏季) 운극(雲極) 한무(漢茂) 설제(雪

霽) 신원(新元) 개혜(開惠) 자징(字澄) 등이었으니 모두 마흔넷의 승려들이었다. 이들은 다시

갑술년 팔원에 금강산 옥정암에 돌아와 운부를 차례로 뵈었고 진인은 다시 부령(富寧)으로

옮기게 되어 정진인에 대한 예언이 삼변(三變)의 실현에 맞아떨어졌고, 이로부터 진인을 삼

변이라 일컫게 되었다. 을해년에서부터 그후 여섯 해 동안 계속된 흉황과 역질의 참변으로

백사십만에 달하는 백성들이 죽었고 마을과 읍이 텅 비워진 곳도 많았다. 이때의 기근은 당

시에 가장 심했다는 한양 도성 안에서도 아사자의 시체를 일일이 보고하기가 번거로울 지경

이었다. 버린 아이를 종으로 삼는다든가 송엽을 구황을 먹을 것으로 정한다든지 죽소를 설

치하든가 하는 미미한 일 외에 나라에서는 어찌 손쓸 바를 몰랐다. 진휼청에서는 죽소를 마

련했지만 죽을 나누어주는 일보다는 가마솥 앞에까지 기어와서 죽어가는 아사자를 묻는 일

에 더 신경을 쓰는 판이었다.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역질까지 극성하여 참회가 더욱

심하였다. 인육을 먹기도 하고 또한 먹기 위하여 맹수처럼 서로를 상해하였다. 천륜이 이미

끊긴 처지가 되고 말았다. 팔도에 군도 번성한다고 장계마다 보고되고 있었으나 백성들은

누구 하나 발고하는 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영상 남구만이 도적을 막기 위한 구포절목(購捕

節目)을 제정하여 도적을 발고하는 자에 대한 가자(加資)와 은급(銀給)의 논상(論賞)을 밝혔

으나, 오히려 사방에서 토포관이 살해되었다. 그러므로 승정원에서는 전국의 굽 읍에서 도적

들의 겁탈에 관한 장계가 날마다 쌓여서 거의 처리할 경황이 없다고 한탈할 정도였다. 조정

에서는 그저 오가작통(吾家作統)으로 도적을 막아보자는 소극적인 의논이나 할 뿐이었다. 병

자년에 이르러 장길산의 북선 활번도는 이같은 백성들의 참화 속에서 더욱 활빈행을 사방에

서 벌여 세가 곱절로 불어났다. 그의 군사는 마식령산맥의 입암산, 낭림산맥의 운봉산, 묘향

산맥의 묘향산과 낭림산 그리고 함흥의 백운산 등지에 각 대의 은거지를 갖고 있었다. 길산

의 각 대들은 대두를 비롯하여 군사에 이르기까지 노상에서 양식이나 탈취하는 좀도적이 아

니라 스스로 활빈도라는 백성의 군사임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활빈도의 깃발을 앞세우고

말을 타고 화승총을 쏘면서 각처에 출몰하였다가 일시에 사라졌다. 모두가 장길산의 이름을

각 대의 깃발과 함께 내세웠으므로 장길산은 하루에도 수백 리 떨어진 고장에 동시에 출몰

하거나 아니면 여러 명씩 나타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즈음에 훈련대장에서 병조판서가 되

어 있던 신여철은 최형기를 불러들여 장길산 토포의 건을 은밀히 논의하게 되었다. 신여철

은 특히 주상의 근심이 대단하니 이것은 비변의 가장 중대한 문제라 이르고 길산의 소문이

가장 낭자한 곳은 평안도 일대이며 특히 청천강 이북의 북변에서 활빈도가 빈번히 출몰하였

음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자네를 운산(雲山)군수로 내보내니 그곳은 은광이 있는 곳이라 무뢰지배를 기찰하

기가 쉽고, 또한 묘향산의 출구를 막아선 곳이요 위로는 의주와 강변 칠읍의 동행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즉시 임지로 나가되 훈련원에서 쓸 만한 장교들을 뽑아 데리고 가게. 지난

번처럼 토포를 은밀히 진행하여 장적의 목만 얻어낸다면 자네의 공은 조정에 이뜸이며 이제

까지 한미한 직에서 참고 견딘 보람이 있게 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지금 도서의 아이들까지도 입에 올리는 장길산을 잡게 된다변 오늘과

같이 팔도에 도적이 번성한 시국에 나라의 엄정한 법도를 세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찌

소장의 작은 공 따위에 견줄 일이겠습니까."

최형기는 병자 정월에 도목에 오라 운산군수가 되어 부임지로 떠나갔던 것이다. 이월 말

께가 되어 어름이 풀리고 새싹이 돋을 무렴하여 길산은 최흥복과 함께 운봉산 진대골의 은

거지를 떠나 경기도 쪽으로 향하였다. 길산은 가평 현등사에 있는 풍열스님과 옥여를 만나

기로 되어 있던 것이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무렵에 수원에 내려가 있던 모신을 통하여

양덕 토포 때에 관군에 끌려갔던 가족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흥복과 길산은 말을 타고 수

많은 마을과 군을 지나면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시체와 까마귀떼를 보았다. 어떤 곳에

는 수십 구가 있었는데 그나마 해어진 옷마저도 누군가가 벗겨가버렸는지 모두 벌거숭이였

다. 길산은 그런 모양을 보며 말없이 소매를 들어 눈시울을 닦고는 하였다. 그들이 화악산

줄기에 있는 현등사에 당도한 것은 포천서 굴치를 넘어 저녁때가 다 되어서였다. 현등사는

큰 절이었고 승려도 여남은 명이 있었다. 그들이 절문 밖에다 말을 매어두고 마당으로 들어

서니 상좌가 곧 그들을 풍열스님에게로 안내하였다.

"어서 오너라."

풍열스님은 마루 끝에 올라선 길산에게로 다가와 손을 마주 잡았다. 풍열의 삭발한 머리

는 하얗게 바위 위에 서리가 앉은 듯하였으며 눈위로 길게 늘어진 누썹도 갈꽃처럼 보였다.

길산과 흥복은 풍열에게 우서 큰절을 올렸다.

"그래 천재가 휩쓸고 있는데 어찌 살아가느냐."

풍여이 물었고 길산은 침통하게 말하였다.

"때를 기다리기도 이젠 지쳤습니다. 도대체 사승들께서는 언제나 거병의 하명을 내릴 작정

입니까?"

"올해부터 시작이니라. 위로는 이미 삼변의 징험을 보이신 진인을 받들었고, 세상은 바햐흐

로 말법(末法)의 시대이다. 산천을 보더라도 국맥(國脈)이 이미 진하였다. 옥여는 강원도에

나갔으니 곧 네게도 들를 것이니라."

"저의 활빈도의 군사가 도성을 쳐들어갈 제 선봉에 서겠습니다. 저희 기병은 모두가 일당

백입니다."

"거병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금은 우리 승병들을 모으고 통문을 돌려 대중의 마음을

합하고 있는 중이다."

"혹시 모신이란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까?"

"음, 그 사람은 오지 않았고 서기라는 이를 보냈더군. 지금 객방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하지 말거라. 일반 백성들도 저렇듯이 죽어가고 어미와 자식이 서로 버리고 버

림을 당하는 아수라의 지옥이 되었으니, 과노로 끌려간 사람들이 온전하리라고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는 이러한 세상이 안되게 되면 우리는 모두 여

길 떠나야 할 게다. 나는 더욱 깊은 산으로 들어가 열반할 것이며 너도 네 무리를 이끌고

변방으로 나가 인적 없는 곳의 빈 땅을 일구고 산을 개간하여 양식을 얻어서 참한 백성이

되야 할 것이다."

"스님, 밤에 곁에 모시고 많은 말씀 올리겠습니다."

길산이 무릎걸음으로 풍열의 면전을 물러나와 객방에 오니 모신이 보낸 자가 무료하게 기

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테 좁은 갓을 슨 사내는 꾸벅하며 인사를 올렸다.

"저는 모대인 댁 서기로 있습니다. 주인께서 직접 오시려 하였으나 때가 좋지 않다고 하여

그간에 당신이 알아본 일들을 낱낱이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삼은 잘 받아 비용으

로 썼다고 감사를 올리라 하셨습니다."

"임신년에 양덕에서 끌려간 죄인들의 행방에 대하여 알아보아달라고 하였는데.""예,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그는 소매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아 펼쳐들고 다시 말하였다.

"그때에 부녀자가 아홉, 아이들이 열두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적이라 하여 남자 세 사람이

잡혀왔습니다. 김선일이란 이는 전에 파주와 횡성 원산포 등지에서 잡힌 사람들과 함께 참

수되었습니다."

"선일이가"

최흥복이는 고개를 돌려 물기로 번진 얼굴을 감추었고 길산은 묵묵히 않아 있었다. 사내

는 다시 말하였다.

"형조의 기록에는 확실히 나타나지 않았고 당시에 처결하였던 서리의 말로는 삼남에 찢어

나누어 부임하는 지방 수령들이 신연맞이 아전들 앞으로 붙여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경상도

로 간 사람들도 있고 전라도로 내려보낸 사람도 있어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장두

령의 가족을 알아보았는데 계유년 정월에 신구 수령이 갈릴 제 부인과 아들 딸이 함께 전라

도 나주목으로 끌려갔다 합니다."

"그러면 생사는 모르오?"

"알 수 없지요. 나주목에 갔다고는 하여도 원래가 대전에 의하며 절도의 노비로 박는다

하였으니 나주목 관할의 어느 섬이 될 것인가는 직접 나주 관아에 가서 알아보아야 합니

다."

길산의 눈앞에는 아내 봉순이 수복이와 구월이를 옆에 끼고 부임 사또의 말꼬리 뒤로 비

틀거리며 쫓아가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수복이와 구월이의 울음소리가 귓전

에 쟁쟁하여 길산은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섰다. 길산은 먼 들판이 내다보이는

바위끝에까지 나아가 털썩 주저앉았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위 틈 사이로 파릇파릇한 초봄

의 풀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들판의 저쪽끝으로 겹겹의 산들이 나직하게 또는 높게 연이어

졌고 먼 산은 허공에 우뚝 솟았는데 그 위로 남쪽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길산은 그 산들이

차츰 흐려지다가 산과 산 사이가 겹쳐지는 듯함을 느꼈다. 두 어린 것을 양쪽에 껴안고 웅

크린 봉순의 얄팍한 어깨가 산 그늘 사이에 나타났다. 수복이 엄마,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

면서 길신은 그 짙은 산 그늘 속에 나타난 정경을 손에 잡을 듯이 두 손으로 그러쥐며 바위

에서 일어났다. 영상은 사라졌고 길산의 광태뼈 위로 축축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그는 입을

벌리고 머리를 하늘로 쳐들어 긴 숨을 토해냈다. 가슴을 짓눌렀던 슬픔이 숨에 섞여 밖으로

조금은 몰려나간 것 같았다. 바람이 골짜기를 스치며 마주쳐 불어왔고 길산은 옷이 펄럭이

는 듯한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길산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여보"

흰 무명치마를 발람에 날리며 봉순이 어린것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것은 헛것이 아니

었다. 길산은 나무 아래 서 있는 봉순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열 발짝쯤 앞에서 멈칫

하고는 잠시 서 있었다.

"그간 무고하셨는지요"

어찌 그 눈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있었으랴. 여자는 묘옥이었다. 길산은 서서히 아내의 잔

영 소에서 깨어나는 중이었다. 길산은 파주의 이경순네 객점이 고달근으 배신에 의하여 제

일 먼저 구몰되었던 것을 진장에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가끔 묘옥의 안위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으나, 오히려 그의 목전에서 관군들에게 끌려간 처자녀의 생생한 목습들 때문

에 뒷전으로 침몰해버리곤 했었다. 그는 묘옥의 전신을 한눈에 넣었다. 묘옥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고 눈가의 그늘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길산은 그제서야 묘옥에게로 천천히 다가섰

다.

"주인 어른에 대한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소. 그동안 여기에 와 있었구려."길산이 말하자 묘

옥은 발끝으로 땅을 공연히 휘적이면서 고개를 숙였다.

"저두 그 댁이 변을 당하셨다는 얘기를 옥여스님에게서 들었어요."길산은 허리를 굽혀 묘옥

의 아들 여문이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묘옥은 어린것의 손목을 놓았고 아이는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묘옥은 나뭇등걸 위

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것이 없었다면 저두 차라리 죽었을 거예요."

길산은 나무를 짚고 묘옥의 머리 위쪽에 서서 빈터를 뛰어 다니는 여문이를 내려다보았

다. 멧새들이 나무 위에서 무심하게 조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묘옥은 땅바닥으로 시선을

떨구 채로 말하였다.

"여문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요. 저희를 무사히 달아나게 하려고 구분은 돌아가셨지요.

그날 숯포로 해서 양주 거쳐서 포천까지 달아났었어요. 전생이 삼촌이 없었으면 저 혼자서

는 어찌할 바를 몰랐을 거예요. 가평 현등사에 풍열스님이 와 계시다며 저희 주인을 잘

아시는 스님들이라구 그래서 여기 왔어요. 저는 풍파가 드센 계집이라 주인을 모실 수가 없

나 봐요. 재인말에서두 그랬지요. 당신은 저를 알자마자 참형수가 되셨구요, 여문이 아버지

의 여주 집안이 관에 적몰되었어요. 그분의 전 부인께서 비명에 돌아가셨구요. 그리고는 끝

내 저희 모자를 지키시려다 자신까지 목숨을 끊으셨어요. 저는 여문이만 훌륭하게 키워줄

사람만 있다면 세간에 다시 내려가지 않겠어요. 그냥 삭발하여 비구니가 되어서 이 모진 풍

파를 잠재우고 싶어요."

묘옥이 경사가 완만한 계곡을 천천히 흘러가는 냇물같이 잔잔한 어조로 말을 이었으니,

이제는 모든 격정이 가슴 싶은 곳에 침잠되어 다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듯하였다. 길산

은 묘옥의 곁에 서서 묵묵히 듣기만 하였으며 오히려 그쪽에서느 재인말 시절의 아득한 옛

일들이 어제처럼 생생하여, 꺼내고픈 사연이 많아서 그 수많은 말 가운데 어떤 것을 골라내

야 할지 망설이다가 꿀꺽 삼키는 중이었다. 세상사에 대한 이 깊은 슬픔은 아내와 수복이

구월이에 연유된 것과 묘옥에 관한 회한이 겹쳐져서, 진눈깨비같이 되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눈이라고도 비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이었다.

"말씀 좀 해보셔요."

묘옥이 고개를 돌려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길산을 올려다 보았다.

"너는 당신이 해주에서 참수당하신 줄 알고 해주의 바다에서 죽으려고 했었어요. 지금 그이

도 세상에 계시지 않네요. 여환스님께서 저를 살리시고 재를 올려주셨지요. 그 뒤에 저는

안성 청룡으로 사당이 되려고 멀리 떠났어요. 처음엔 재인말에서의 당신을 잊을 수가 없었

어요. 그렇지만 여문이 아버지는 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으셨어요. 당신이 제 가슴에 넣어주

신 연비 자욱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여문이를 낳을 제 당신이 살아

계심을 알았지만, 이미 당신은 내 가슴속에서 영원히 죽었다고 믿었지요. 미륵도 난리 적에

당신이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를 송도로 안내하셔쓸 제 연비와 당신은 다시 살아나기 사작

했어요. 아, 아니에요, 그것 주인이 돌아가시기 전이지요. 이전 아무것도 되살아나지 않을 테

니까요."

여문이는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뭐라고 흥얼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새소리와 여문이

의 흥얼걸림이 어우러녀 주위는 한가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길산은 팔짱을 끼고 마른 나무

등걸처럼 서 있었다.

"민안하구료."

그는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모욕에 대해서만 하는 말이 아니었고, 그가 이 세상

에 나누어왔던 모든 정을 들어서 내놓은 말이었다. 그를 낳다가 길에서 죽은 어머니, 탑고밸

에서 관군에 당하신 장충 노인, 안무다, 봉순, 수복이, 구월이, 그리고 마감동을 비롯한 구월

산 식구들이며 여환의 미륵도와 살주계 검계의 동무들, 양덕 초천면에서 작별한 혈당들과

그 가족들, 흉황과 역질에 죽어간 수없는 백성들, 그리고 이제서야 멀고 먼 여정을 돌아서

그의 앞에 다시 혼자 와 있는 묘옥이, 이러한 인연들 앞에서 길산은 티끌처럼 작고 풀꽃처

럼 무력하였다.

"그렇지 않겠지요."

묘옥은 길산의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고 다음 말을 꺼내기까지 그런

동작을 계속하였다.

"사내들은 큰 뜻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요. 당신의 아내는 저 어느 깊은 골에

들어가 당신하고만 둘이서 화전을 갈며 세상사를 잊고 살아가고 싶었겠지요."묘옥은 일어서

며 고개를 세 개 흔들었다.

"아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당신들을 그렇게 살지 못해요." 묘옥은 쓰러지듯 길산의 가슴

에 머리를 묻었다. 길산은 묘옥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안고 딱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묘

옥은 길산의 가슴안에서 잠시 진정하려는 듯 기대고 있던 머리를 살그머니 떼어냈다.

"당신과 나는 이제 모두 잃어버렸지요. 당신과 내가 혈육들을 잃은 것처럼 우리도 속에

남아 있는 것들을 아무 흔적도 없게 지워버려야지요. 그러고 나면 노인같이 편온해질까요."

묘옥은 뒤로 물러섰고 길산은 팔을 툭 떨구었다. 묘옥이 길산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하였

다.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못할 거예요. 그전에 부탁이 있어요. 여문이를 맡아 길러줄 사람을

찾아주셔요. 당신들 같은 녹림당이 아니라 예전의 여문이 아버지처럼 제 집을 잘 정돈하여

살아갈 양민이면 되어요. 그런 분이 있으면 여길 떠나실 제 여문이를 데려가세요. 드렁줄 수

있겠지요?"

길산은 묘옥의 시선을 피하였다.

"당신은 아들 없이 살아가지 못할 거요. 그게 이도장이 바라던 바도 아닐 테고.""제 앞에는

세간에서 살아갈 두 가지 길이 남았을 뿐이어요. 하나는 개가하여 저 아이의 성을 사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도방 대처로 나아가 여인 혼자서 살 길을 찾아야 해요. 저는 자신을 잘

알아요. 제가 생계를 꾸리는 것이 여문이를 잘 기르는 것은 정반대쪽이어요. 그리고 저는 이

제 개가할 수 없어요. 저는 이미 이곳 형등사에서 삼 년을 보내는 동안 다시는 세속에 내

려가지 못하도록 되었어요. 당신이 여기 오신 것은 모두 미륵님의 뜻이어요. 여문이를 데려

가셔야 해요."

길산은 묘옥의 시선을 더 이상 피하지 못하였다.

"나는 내일 새벽에 떠날 거요."

"알겠어요."

묘옥은 말을 마치자마자 여문이에게로 달려가 손목을 잡아 길산의 앞으로 끌고 왔다. 아

이는 그제서야 총명한 눈으로 길산을 살폈다.

"여문아, 인사 올려라. 이분은 너희 아버님 동무란다. 내일 너를 아버지한테 데려가주신단

다."

아이는 꾸벅 절하고 나서 묘옥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같이 안 가나요?"

"같이 가지. 자 이젠 가서 놀아라."

아이기 어리둥절해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묘옥의 재촉하는 말을 듣고야 생각

났다는 듯이 다시 빈터를 쪼르르 내려갔다.

"제 부탁을 들어줄실 줄 알았어요."

길산은 묘옥을 꼭 끌어안아 가슴속에서 으스러뜨려고 싶은 격정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는

나루 밑을 떠나 발을 옮겼다.

"살아 계신 분은 꼭 찾으셔야 해요."

"고맙소."

길산은 묘옥의 어깨 옆을 지나쳐서 곧장 걸어 절 마당 쪽으로 들어섰다. 그쯤 걸어와 간

신히 돌아보니 바깥은 담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그들이 묵기로 하였던 객방에 돌아가니 흥

복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말하였다.

"어쩌면 가족들의 행방을 분며히 알게 될지두 모릅니다. 최형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

다."

"최형기는 훈련원에 있다든데"

"아니우, 아까 그 사람이 성님 나가시구 나서 모대인이 꼭 알려주랬다면서 말을 전합디다.

최형기는 지난 정초의 조보에 오르기를 운산 사또로 발령이 났답니다. 지금 운산에서 평안

도 일대와 압록강변 일대를 기찰하면서 우리 활빈도의 토포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운산이라면 묘향산맥 인근과 낭림산맥의 북쪽을 들여도볼 수가 있지요."길심은 눈썹을 모았

다.

"좋다, 돌아가자마자 그자를 도모한다."

"두령, 사로잡아야 합니다."

밤에 다시 풍열에게 찾아가서 미리 새벽의 작별 인사를 올리니 풀열은 단단히 일렀다.

"옥여가 운봉산에 곧 갈 것이니 운부스님의 뜻에 꼭 따르도록 하여라.""명심하겠습니다."

이튿날 동틀 무렵에 흥복이 먼저 깨어 길산을 깨웠고 그들은 등잔을 켜고 행장을 수습하

였다. 길산이 방문을 여니 먼저 깨어 방문 앞에서 서성이던 묘옥이 초췌한 얼굴로 그를 기

다리고 있었다.

"잠깐 기다리셔요. 아이를 깨워 오겠어요."

길산이 기다리는 사이에 뒤에 섰던 흥복은 궁금하여 물었다.

"저 연인은 누굽니까?"

길산은 사이를 두지 않고 답하였다.

"지난 임신 토포 때문에 문산포에서 죽은 이경순이란 이의 아내다." 묘옥은 졸린 눈을 부

비고 있는 아이의 손목을 이끌고 길산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한손에 작은 보퉁이를 들

고 있었다. 아이가 불안했는지 제 어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머니, 정말 같이 가시는 거예요?"

"그래 저어 산문 밖에 나가자."

"전생이 삼촌은 함께 안 가나요?"

"삼촌은 나중에 뒤따라오실 게다. 포천에 장보러 가셨으니 늦게 올거야." 길산과 흥복은 그

들 모자가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길산이 눈짓을 하여 먼저 앞서서 걷기 시작하였다. 묘옥은

뭐라고 종알대는 아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대꾸하여주면서 길산의 뒤를 따랐다. 현등사의

산문밖으로는 굴치 쪽이 내다보였고 앞으로 개천이 흘러내려가는데 조그만 돌다리가 걸려

있었다. 돌다리 못 미쳐서 오른편에 적목치 쪽을호 오르는 산길과 연골 나가는 길이 갈려

있었다. 꼬부라진 길, 비탈길, 굽이굽이 영을 엄는 높다랗게 먼길,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벌판 길, 숲길, 산길, 수천 갈래의 길을 그는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의 등이, 괴나리봇짐이,

행전을 친 다리가, 미두리가 멀어져간다. 그리고 먼 곳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광

대들의 풍악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지는 해를 향하여 걷는 나그네의 그림자와 같이 이 사람

의 자태는 쫓으면 쫓을수록 멀어져간다. 아, 이 사람은 저 물과 같은 사람이다. 저리도 밤새

껏 잠을 깨워놓고 두런두런 도란도란 하염없이 흘러내려가는 까막내의 물소리처럼 문득, 가

버릴 사람이다. 물아 흐르거라, 흘러가거라, 두런두런 도란도란, 두런두런 도란도란. 언제였

을까. 묘옥은 그 등을 돌린 사람이 장길산 혼자가 아니라 그녀가 애타게 주어왔던 모든 사

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산이 모조리 불태워진 잿더미 가운데서 봄이 오면 씀바귀

와 냉이꽃이 기적같이 피어오르듯 묘옥이 겪어온 세월은 새로 살아나고 지옥에서 다시 태

어나는 거듭남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묘옥은 이제는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기간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묘옥은 이제는 다시 봄풀이 돋지 않게 정적의 겨울 속으로 찾아들어

가 얼음 속에 깊은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둘 것이다. 그들은 다리 앞에 와

서 멈추었다. 장길상이 묘옥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영평 쪽으로 나갈 참이오."

묘옥은 아이의 키만큼 무릎을 굽히고 가슴속에 자식을 꼭 껴안았다.

"아저씨를 따라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전생이 삼촌이랑 곧 뒤따라갈 테니"아이는 본능

적으로 제 어미와의 이별을 직감하고 저고리 앞섶을 잡으며 울어댔다.

"싫어요, 싫어"

"어서 데려가셔요."

길산은 어찌할 자를 모르다가 흥복에게 일렀다.

"흥복아, 아이를 업고 먼저 가거라."

발을 구르며 뒤로 넘어지는 아이를 최흥복이 일으켜 세워서는 억지로 등에 업었다.

"어머니 함께 갈 테요."

아이는 흥복의 까지 낀 손아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등에 붙어서 고개를 돌리며

울부짖었다. 흥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산길을 걸어갔다. 묘옥이가 큰 소리로 여

문이에게 일러주었다.

"여문아, 아저씨 말쓴 잘 뜯고 아버지 성함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이, 경, 순, 네 아버지

서함이다. 여문아! 이담에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

길산은 묘옥을 바라보며 뒷걸음질로 발을 떼었다.

"평안하시오."

"잠, 잠깐만."

묘옥은 팔과 어깨와 머리를 허공에 간신히 붙들어매고 잠시 후에는 연기처럼 흩어져버릴

것 같은 자세였다. 무엇인가 매달아둔 끈을 끊으면 묘옥은 빈 자루처럼 무너져 내릴 듯하였

다. 그녀의 표정없는 창백한 얼굴 위로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려 턱에 맺혀 있었다.

"안아주셔요. 우리는 이승에서는 이제 마지막이어요."

길산은 천천히 다가들어 곧 쓰러지려는 묘옥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가볍게 안았다. 그

리고 격정적으로 가슴속에 넣으려는 것처럼 꼭 껴안았다. 그들의 귓전에서 그제서야 돌다리

아래를 흘러내려가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묘옥의 빗질도 않은 헝클어진 머릿

결이 소슬바람에 일어나 나부꼈으며 길산은 손을 들어 그것들을 재워주었다. 묘옥이 길산의

가슴속에서 얼굴을 들고 두 손으로 그를 살그머니 밀어냈다.

"됐어요, 가셔요."

길산은 제자리에 섰고 묘옥이 얼른 뒤로 몇걸음 물러났다. 멀어져간 여문이의 칭얼대는

울음소리가 끊겼다가 이어지고는 하였다. 길산은 멈칫거리다가 무력하게 돌아섰다. 그는 산

길을 향하여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으나 다시는 걸음을 뗄 수가 없을 듯하여 앞으로

내밀어지는 짚신 끝만보고 걸었다. 묘옥을 데려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 모자를 아늑한 마을

에서 살도록 보살펴주어야만 하나다. 길산은 다시 묘옥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산길 모퉁이에

서 돌아섰다. 그러나 돌다리 앞은 텅 비어 있었다. 묘옥은 그가 등을 돌리자마자 서둘러 길

위에서 떠났던 것이다. 길산은 묘옥을 찾아서 현등사로 다시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만

큼 멀어지고 또 그 자리가 비워진 것과 마찬가지로, 시냇물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과 같게

도 묘옥과 자기의 사이에는 이경순과 봉순의 처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길산이 흥

복에게로 쫓아가니 그는 말 위에 아이를 태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길산은 말에 올랐다.

"그 아이를 내게 태워다오."

최흥복이 아이를 번쩍 들어서 길산의 앞에 태웠고 아이는 아직도 슬픔이 가시지 않아 딸

꾹질을 하고 있었다. 길산이 고삐를 당기며 말하였다.

"울지 마라. 사내는 자주 울면 못쓴다."

그들은 천천히 적목치로 향하였다.

 

바로 그해 병자년 삼월에서 오월에 이르기까지 숙종의 명을 받고 황해도 암행어서가 되는

민정을 살핀 박만정(朴萬鼎)은 그의 해서암행일기(海西暗行日記)에서 흉황의 참상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돌아본 황해도의 굶주리는 백성들이 그나마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조정에서 특

별히 간수해온 곡식을 풀어 나눠주고 혹은 징수하는 것을 감해주는 등 진구(賑救)의 은택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리가 여물지도 않았으니 하물며 추수기까지는 너무도

요원하다. 만약 관아에서 베푸는 진곡마저 떨어졌을 때 종맥(種麥)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

은 구차하나마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어먹으며 다니는 유민들은 도저히 얻어먹

을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보리도 떨어지고 햇곡도 나오기 전에 관수미(官需米)마저 동이 나

버려 백성들이 입에 풀칠할 아무것도 없다면 과연 어찌하겠는가. 그때는 농토를 아무리 가

지고 있다 한들 소용없는 것이 될 것이며 백성들은 길고 긴 여름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전날에 나라에서 베푼 진구의 공도 끝내 허사가 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각 고을에는 모두 민간의 사사로운 대동계(大同契)가 있다. 또 그런 조직이 없

는 고을이라도 자수청(刺需廳)있어 아주 위급한 때에 대처하기 위해 전곡(錢穀)을 비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사로 하여금 각 고을 수령들에게 분부하여 현재 간수하고 있는 전곡을 요

령껏 출급(出給)하게 함으로써 굶주린 백성들의 삶의 길을 보장하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해

야 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밭과 들이 쓸쓸하고 촌락은 비어 있었다. 제 고장을 등진 사람

들의 떠도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고 백성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길거리마다 걸인 유민

들이 들끓는데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갓난아기를 길가에 버리는

가 하면 어미와 자식이 서로 길을 잃어 울고불고 하는 광경이 비일비재하였다. 그들의 용모

는 굶주림에 여위어서 흡사 귀신 형용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가 주막에서 음식을 먹으

려면 걸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둘러싸고 한 술만 다라고 사면에서 아우성이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으며 밥이 어찌 목구멍으로 넘어가리요. 만약 그들에게 남은 밥을 주면 그들

은 형제간이건 부부간이건 서로 조금도 사양함이 없이 다투어 한 술이라도 더 먹으려고 싸

움 반죽이었다. 이런 형편에 염치나 인륜 같은 것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힘이 센 자는

구걸하다가 얻지 못하면 주인에게 원한을 품고 불을 싸지르니, 집 가지고 사는 백성들조차

피해가 막심하였다. 실상 걸인들에게 줄 것이 없지만 또 안 주자니 보복이 두렵다. 걸인들은

소 말 닭 등 아무 가축이나 다치는 대로 잡아가며 명화적의 기습 대문에 새벽에 길 떠나는

것을 모두 삼가고 있었다. 어느 마을이든 외모가 번듯한 집이 있어 안에 들어가보면 밥을

해 먹은 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이 농사철임에도 종자마저 다 먹어치워 사실상

폐농상태의 농가가 태반이다. 나물을 뜯는 사람들로 산야가 뒤덮어 있으며 겨를 구하여다가

나물과 죽을 쑤어 배를 채웠다. 사람들은 부기(浮氣)가 들었으며 사람의 사는 즐거움을 잃은

지 오래였다. 이런 백성들에게 부역과 과세는 마땅히 감해줘야 할 것이다. 해서는 해마다 흉

황을 당한대다 특히 작년의 큰 흉년은 팔도에서 가장 참혹하여 산협에 사는 백성과 해변에

서 어업에 종사하는 부류들은 모두 유산(流散)되어 열 집이면 아홉이 비어 있는 형편이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약간의 전토를 가진 사람이거나 조정의 진휼 은덕을 입어 굶주림을

참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금년의 보리나 밀이 잘되지도 않았고 산협의 기장이

나 조는 작년보다는 낫다고 하나 평야 지대의 전답은 씨를 뿌리지 못한 데가 태반이요, 또

한 뿌렸다 할지라도 모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올가을의 수확도 예측하기 어렵다. 설사 추수

결과 풍작이라 할지라도 조정에서는 반드시 황세(荒歲)로 취급하여 여러 가지 부역을 감봉

치 않고서는 남는 백성들의 살 길을 열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이 조정이 벼슬아치가 근심을

하였으나 실상은 이보다 더욱 혹심하였으며 재난의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길산이 경기도 에 다녀온 뒤에 운산 기습의 계획은 바삐 진행되었다. 그는 묘옥의 아이를

강계에 보내어 윤덕이 부부가 기르도록 당부하였다. 장길산은 자신의 이름을 북선 활빈도의

각 대에 통문을 보내어 운산 기습의 준비를 해두도록 알렸다. 특히 길산은 묘향산의 서용이

에게 운산 정탐을 일러두고, 운봉산에서 강선흥 최흥복 박산돌과 기병 이백여 병을 이끌고

출발하였다. 때는 마침 신록이 앞을 다투는 철이라 산에 은거한 자들에게는 맞춤한 계절이

돌아온 셈이었다. 해서의 입암산 식구들은 동원하지 않았고, 낭림산의 식구들이나 함경도의

식구들에게는 정한 날짜의 달포 전부터 평안 함경 양도에 경계와 산협 지방에 활빈도의 깃

발을 날리면서 자주 출몰하라고 당부해두었다. 장길산과 운봉산의 일 대는 낭림산맥 연맥을

따라 올라 맹산과 영원 사이를 빠져서 덕천 북방으로 말을 달렸다. 산간의 백성들은 누구나

이들이 장길산의 활빈도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으나 어느 곳에서도 관군과의 충돌은 없었다.

그들은 일시에 묘향산의 동북 골짜기에 들어가 수십 리를 달려서 향산천이 시원하는 곳에

이르렀다. 골짜기는 좁고 양쪽의 암벽이 칼날처럼 가파른데 그들을 발견하였다는 군호인지

태평소를 부는 소리가 골짜기 안에 길게 이어졌다. 운봉산 일 대는 말을 그들이 가까이 다

가드니 두건을 머리에 매고 장창을 가진 자기 앞으로 나서며 인사하였다.

"대두령, 어서 오십시오. 산주께서 기다리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번소의 우두머리 장정이

그들을 골짜기 안으로 안내하였는데 안으로 들어서서 한참 들어가니 어느만큼에 가서 암벽

이 차츰 넓어지며 너른 못이 나오고 숲과 빈터가 펼쳐 있는데 비탈에는 귀틀집들이 큰 마을

을 이루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이 숲으로 나아가는데 사방에서 장정들의 몰려나와

병장기를 흔들어 보였고, 마을 가운데의 빈터에 서용을 비롯한 그의 소두령들의 철릭을

입고 환도를 차고 나와 서 있었다. 길산과 최흥복 강선흥 박선돌이 말에서 내려 그들에게

걸어갔다. 서용은 길산이 가까이 가지 두 손을 모아 올려 군례를 드렸다.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그래, 자네 식구들도 다들 무고한가."

대충 예기가 나누어지고 나서 그들은 서용의 거처로 들어갔다. 귀틀집이라고는 하여도 탁

자와 통나무 의자가 있고, 화덕이 구석에 있었다. 마치 엽사들의 사막과 같았다. 방은 좌우

에 둘씩 붙어 있었는데 바닥도 나무 판자에 마른 잎을 깔고 그 위에 거적을 덮은 것이었다.

그들은 산속에서 담근 술을 나누어 마시며 운산에서 기찰하였던 여러 가지 일을 얘기하였

다.

"최형기는 부임 이래로 각 진과 참에서 포수들을 조발하여 향군들과 함께 습진조련중입니

다."

서용이 말하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잠채 광부로 자라나 뼈대가 굵고 살결은 거칠었으며

턱과 목덜미가 참나무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우리 객점이 안주와 영변에 있고 토막은 개천에 있음을 다 아시지요. 영변 아이들이 운산

은광에도 줄을 대고 읍내에도 정탐꾼을 사서 살펴본즉, 최형기는 우리 활빈도를 토포 때문

에 부임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자는 묘향산 일대에 기찰 군사 둘씩 묶어서 세 패를 나누

어 희천, 개평역, 어천역 등을 기찰소를 열어두고 있습니다.""기찰소가 있는 집을 아는가?"

길신이 물었고 서용이 답하였다.

"알다뿐입니까. 인근에 아이들을 보내어 오늘은 무엇을 하였는지 또 내일은 어디로 돌아다

닐지 모두 알아내어 우리 경내인 동창골에 알려줍니다. 우리는 여기 앉아서도 관군의 움직

임을 훤히 비고 있습니다."

"수고하였네. 화승총은 몇 자루나 있으며 마필을 얼마나 되는가?""예, 지난번에 보내주신 총

포가 오십 자루 있고 마필은 함흥에서 이업복 두려이 여러 차례에 나누어서 보내어 삼십여

바리 됩니다."

"그만하면 우리와 같이 운산을 휩쓸어벌릴 수가 있네. 거병 잘짜는 사흘 뒤가 되겠군. 아마

도 달포 전부터 각처에서 활빈도가 출몰을 했을 게야.""아니 그러면 최형기는 미리 겁을 내

어 방비를 해둘 게 아닙니까?""그 반대일세. 낭림산 식구들은 희천의 동북에 있는 유원(柔

院)을 휩쓸고 봉단성 앞에서 수성 행군들을 건드리다 물러가게 되어 있었으며, 함흥 백운

산 식구들은 영흥과 고원을 휩쓸 것이다. 해서의 입암산 식구들은 신계로 나아가기로 되어

있네."길산이 말하자 서용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도 희천 북방에 낭림산 활빈도가 출몰하였다는 설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최형기는

미간을 곤두세우고 있을 텐데요."

"최형기는 우리의 근거지를 막연하게 평안 함경 양도의 경계 어름에 있다고 짐작하고 기찰

조를 내보내고 있을 테지. 그러나 작은 군의 수령인 그가 이와 같은 흉년에 향군을 수백

명 동원할 수도 없을 테고, 그는 아마도 정예 포수와 단병접전에 능한 훈령원 무사들만을

정병으로 가려 뽑아 은밀하게 산으로 스며들려는 계획일 것이다."최흥복이 서용에게 물었다.

"영변도호부의 부사가 병마첨사를 겸하니 병력이 많을 게 아니오?""물론 속읍으로 영변 개

천 운산 희천이 있고, 위곡진(委曲鎭) 유원진(柔院鎭) 금성진(金城鎭) 등이 있는데 모두 그

러모으면 원래는 일천육십 명이 되어야 합니다만, 지금이 어느 세월입니까. 지금 산협의 백

성은 모두 집과 마을을 버리고 떠나서 대처를 찾아가 삼문 앞의 죽이라도 먹고자 하는

판입니다."

"그들 유민들에게 밥을 주고 병장기를 쥐여주면 누구나 백성의 군사가 될 것이다."장길산은

말하였다.

"우리 활빈도의 천여 기병이 중심이 되고 유민들이 사방에서 호응한다면 우리는 곳곳에서

수천의 군사를 얻을 수가 있다."

서용이 말하였다.

"우리가 운산에 들어가면 최형기가 간시히 그러모은 백여 명의 포수와 관가의 군노 사령배

이십여 명, 그리고 향군들은 문도 열어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달려나오려 하여도 기운이

없어서 사립문 앞에서 쓰러질 지경입니다. 그러나 동헌에 함께 있는 다섯 사람의 경군(京

軍) 장교들은 주의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 점은 염려 말게, 강두령과 나와 구월산에서부터 자비령 그리고 초천말과 운봉산이 이르

도록 무예를 갈고 닦은 우리 식구들이 있네. 이들 십여 명의 두령들은 훈련원의 어느 무사

보다도 뛰어나다네."

"대두령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운산을 취하시렵니까?"

장길산은 이금니를 꼭 물었다가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마른 하늘에 번개 치듯이 일시에 짓쳐들어간다. 목표는 단 하나, 운산 관아로 곧장 달려

들어갈 것이다. 시각은 새벽 계명시(鷄鳴時), 기병과 보병이 어둠을 타고 동천 앞에서 기다

리다가 닭이 울자마자 기병이 먼저 읍내로 진격하고 보병은 읍을 둘러싼다. 그리고 잠든 최

형기를 사로잡아 강변으로 끌고 오는 것이다."

서용이 말하였다.

"좋은 안이십니다. 그러나 어려운 점이 있기는 합니다. 우리가 운산으로 가려면 청천강 상류

인 월림강(月林江)을 건너야만 합니다. 까짓 동천(東川)이야 가물었으니 발목에나 찰까말까

하겠지만, 월림강은 제법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릅니다. 강을 건너면서 우물쭈물하면 반드

시 운산 관아에 적경에 미리 들어갈 것입니다."

"희천 북방은 어떠한가?"

"예, 동강(東江)은 쉽게 건널 만하지요. 그러나 운산까지는 칠십여리 돌아가는 셈입니다.""자

네들 산식구가 기병 삼십을 빼고 얼마나 되는가?"

"예, 모두 이백 명 가까이 되지만, 산태를 지켜야 하니 백여 명쯤은 낼 수 있습니다.""주로

밤에만 행군을 시켜서 운산 희천 사이의 마유령에 묻어두었다가 기병과 합대하도록 하

지."

"대를 나누는 것이 합당한 안이올시다."

이렇게 운산 기습의 안이 정해졌다. 이튿날은 병력을 모두 쉬게 하고 저녁때에야 발병을

하는데 묘향산의 동북 산협을 빠져나가 북상하여 자정 무렵에 희천 북방의 동강을 건널 셈

이었다. 서용은 길라잡이로 자기 식구 중의 소두령을 내주었고, 그는 보군을 이끌고 곧장 향

산천을 따라 내려가 행정원(杏亭院) 앞에서 강을 건너 마유령에 당도할 셈이었다. 개평역과

어천역 등의 기찰소는 운산으로 쳐들어갈 때 십여명을 뽑아 보내어 물고를 내버릴 작정이었

다. 장길산 강선흥 최흥복이 이끄는 이백 명이 넘는 활빈도는 모두가 날랜 북방마를 타고서

인적이 끊긴 산협을 달려나갔다. 그들은 각종의 깃발을 안장에 세우고 어깨에는 화승총을

메고 허리에는 환도를 질렀다. 기마대는 문두사(文頭寺)의 어귀를 빠져나가 동강에 이르렀고

칠성은 아직도 중천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이백여의 말발굽이 자갈을 차면서 강을 건너

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활빈도의 기병은 희쳔 북방을 돌어서 천량재를 넘은 다음에 한길로

접어들어 두 줄로 질서 정연하게 달려나갔다. 서용이 이끈 향산 활빈도의 보병은 행정원 앞

의 월림강에서 작은 나룻배를 끌어다가 칠팔 명씩 강을 오르내리며 건너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군들은 야산에 웅기중기 엎드려서 잡담을 제하고 뒤에 처진 대가 모두 건너기를

기다렸다. 보군들이 모두 점검을 하고 나서 마유령에 당도하니 기병은 이미 먼저 와서 그들

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캄캄하던 하늘은 부옇게 날이 새어 산에서는 안개가 밀려 내려오는

중이었다. 길산이 서용에게 일렀다.

"이곳은 아무래도 행객의 눈에 뜨일 위험이 많으니 오늘 한나절을 은거하여 보낼 곳을 찾아

야 한다."

"대두령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여기는 영변부의 최북단 벽지올시다. 영의 줄기를 죽 따라 올

라가면 운대산(雲坮山) 깊은 골이 수십 군데나 있습니다." 그들은 골짜기를 따라 이십여 리

를 올라가 숲 사이에 들어갔다. 그들은 말을 한 곳에 매어두고 길양식으로 가져온 콩과 보

리 간 것을 물에 타서 마셨다. 길산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무 그늘에 누워 뒤척이는데

강선흥이 따라와 곁에 누웠다.

"성님 자우?"

"아니."

"나 청이 한가지 있수. 들어주시겠수?"

길산은 이마 위로 얹었던 팔을 내리고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뭘 말이냐?"

"최형기 말이우. 그놈을 잡으면 내가 그놈 목을 치도록 해주시우."길산은 다시 고개를 돌리

고는 바람에 낱낱이 떨고 있는 신록의 나뭇잎들을 올려다보았다.

"춘천댁의 원수를 갚겠단 말이로구나."

강선흥은 대꾸하지 않고 팔베개를 하고 그의 곁에 벌렁 누워 있었다.

"감동이가 그놈 칼에 죽었수. 만석이도 그렇고 김선비도, 말득이도""그만해두어라. 그냥 곱게

여럿의 힘으로 잡아다가 목이나 치지는 않으련다, 놈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다."

"모두들 그러지 않습디까? 놈은 우리하구 같은 천생이라 우리를 너무 잘 알아 무서운 상대

라구요. 최형기는 활빈도의 제일 첫 번째 적이우."

"놈에게 칼을 주겠다. 그리고 한 수를 겨루어 그를 패배시킨 뒤에 네가 목을 베렴.""범이 죽

은 고기를 어찌 먹우. 내가 최형기와 일전을 겨룰 테요.""그건 안된다."

길산은 상반신을 일으켰다.

"너도 이제 그만하면 엄파를 쓰는 데는 어느 장수도 당하지 못할 것이다. 감동이는 일찍이

무예의 고수였던 교련관 임태룡에게서 검을 배워 산간에 숨어 혼자 연습하여 일가를 이루었

다. 최형기는 어쨌든 감동이를 베었던 솜씨를 갖고 있다. 네가 위험하게 되면 필시 흥복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그러하니 공정하지 못하지.""그따위 독사 같은 놈에게 공정

이 다 무에요."

"이쪽이 공정해야만 그자를 완전히 패배시킬 수가 있는 게야. 최형기는 나를 잡기 위해

운산군수를 자원하였고, 공명심으로 온몸이 활활 타고 있다. 조정에서도 그자가 내 손에 죽

었음을 알게 되고 전국에 널리 퍼지면 감히 우리를 토포하겠다고 응모하거나 나서는 자가

없게 될 것이다."

"하여튼 그자의 목은 내가 베겠소."

"그래 네 몫은 남겨주마."

길산과 선흥이는 다시 나란히 누웠다. 길산은 최형기의 얼굴도 몰랐고 아직은 이름마저

생소하였으나, 그가 어렸을 때 재인말에서 무동으로 출행을 나가면 공연히 쫓아나와 놀려대

고 주먹다짐을 하던 양반가의 어린 하인들의 모습과 최형기가 겹쳐서 떠올랐다. 최형기는

부임하는 온 지 석 달 남짓 되는 사이에 간신히 방포를 제법 할 수 있는 화포군 백여 명을

조련시켰을 뿐이었다. 조련이 늦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향소 군사를 동원할 수가 없었으며

군역에 들어 있는 장정들은 갖은 핑계로 빠졌고 겨우 응소하였어도 끼니를 때우지 못하여

열도 바르게 서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비축된 진곡을 군량으로 쓰기로 하였으나 향군

들은 게걸스레 먹어댔다. 아무리 장적의 토포가 중하다고 하지만 군량을 얻기 위항 고을 부

자들에게는 걷어내기도 곤란한 시절이었다. 최형기는 하는 수 없이 사흘에 한 번으로 조련

습진의 날짜를 줄이고, 관가의 군노 사령배와 한양서 데려온 경군 장교들로 기찰조를 편성

하였던 것이다. 사방에 방을 붙여서 도적들의 소굴이나 혈당들에 관하여 발고하는 자에게

양곡과 은자를 내린다고 광포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알려오는 자가 없었다. 최형기는 기찰조

의 보고와 각 군현에 내려진 관찰사의 비관에 접하여, 희천의 유원진에 말 타고 화승총을

가진 활빈도가 나타나서 진장과 군졸 수십 명을 살해하고 봉단성 앞에서 관군과 한나절 동

안 교전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함경도에서도 기마부대가 백주에 군현을 휩

쓸고 다닌다는 사실과 해서에서는 내륙 산간 지방에 아예 관군은 들어가지도 못 한다는 말

도 들었다. 최형기는 이들이 모두 장길산의 활빈도를 자처하지만 길산이 집접 곳곳마다 나

타나는 것은 아니며 어딘가에 그의 지휘소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었다. 최형기는 장

길산의 지휘소는 틀림없이 묘향산이나 낭림산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자네는 다리를

끊어서는 안되고 대가리를 찍어 눌러야 하는 법이다. 북선의 벌떼 같이 일어난 명화적들을

잠재우는 길은 장길산의 목을 떼어 대처의 저자거리에 효수하는 길밖에 없을 듯하였다. 최

형기는 경군 셋을 가려 뽑아 강변의 역에서 기찰소를 운영하게 하였으며, 묘향산에 서모라

는 도적 두령이 있다는 것과 낭림산 소백산 사이에 수백 명이 있는데 모두 수백 필의 북방

마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며 함경도 쫄에는 더욱 세가 강고하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장길산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이웃집 드나들 듯 넘나들며 이들을 통솔한다는 것이었다.

최형기는 일 년 전에 장길산의 기마부대가 철원을 급습하여 양덕 토포 때의 발고자였던 고

달그늘 잡아 죽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최근에 각처에서 도적을 잡았던 토포사 축신의

무인이 죽음을 다하였고 어느 포도환은 가족들이 참변을 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최형기는

장길산이 언젠가는 자기에게 찾아오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런 정도의 대적이라면 구월산 이

래의 철천지 원한을 품고서 자신을 제거하기 위하여 꼭 찾아올 듯하였다. 유원진에 활빈도

의 기마부대가 쳐들어왔다는 급보를 듣고 최형기는 향군 포수 백여 명과 관내의 군사를 동

원하여 운산읍 주변에 살진을 쳐두고 장저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었다. 그러나 사흘 나흘이

지나고 열흘이 넘도록 각처에 발호하는 기마 도적의 소문만이 낭자할 뿐 운산 근처에는 쥐

새끼 한마라 나타나질 않았다. 기찰조들은 유원진과 봉단성에 나타났던 활빈도가 산으로 들

어간 거시 분명하다고 알려왔으며, 최형기는 그 많은 병력의 군량 때문에라도 한사바삐 진

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직속 상부인 영변 부사 겸 첨사에게 병력 동원이나 군

량의 지원을 해달라고 아뢸 처지도 아니었다. 영변부사는 이러한 흉황에 그가 황민의 구휼

에 힘쓰기는커녕 공연히 백성들을 동원하여 조련을 시키는 등 각박하게 다스리는 것을 못마

땅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가 아무리 병판의 명을 받고 부임했다 하여도 병력동원의 허락

은 부사에게서 받아야 하는데도 처음에는 아무런 장계도 올리지 않아 영변부사는 그를 본영

으로 소환하여 군율로써 문초했던 터였다. 그제서야 최형기는 병판의 밀명과 비국당상의 토

포 안을 알렸으니 영변부사는 진노한 가운데 그를 돌려보냈었다. 최형기는 그보다도 더욱

불리한 점이 있었으니 백성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백성들 쪽에서 보자면 활빈도는 각처

에 나타나 관부와 향반가를 습격하고 창고를 열고 대문을 부수어 기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

었고, 관은 조세 감면은커녕 흉황을 이용하여 비축미와 구휼미을 착복하고 겨우 죽솥이나

두어 개 문 앞에 벌여놓는 시늉을 하였던 것이다. 운산 군수는 부임하던 날부터 굶주린 백

성의 활인과 구제는커녕, 조밭갈이라도 겨우 해낼 기운이 남은 장정들을 뽑아다가 군사 조

련을 맹렬히 시켜왔었다. 유원진에 활빈도가 나타나자 운산군의 읍 주변에 철통같이 쳐두었

던 진은 열흘이 못 가서 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향군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그들의 술렁대

는 분위기로는 곧 총포를 진의 안쪽으로 돌리 것만 같았다. 향소 군사들은 장교들의 말은

듣지 않았다. 최형기는 백성들의 분위기가 그 정도라는 것은 모르고, 다만 먹고 살기가 곤핍

하여 사기가 보통 때보다 떨어져 있다고만 여겼다. 어쨌든 그는 열흘 동안의 살진을 풀고

당분간은 활빈도가 자신의 경내에 출몰하지 않으리가 믿고 있었다. 그러나 길산은 바로 그

의 발치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낮밤 동안 운대산 골짜기에서 쉬며 기다리던

장길산의 활빈도는 그대로 산줄기를 타고 넘어 구봉산을 돌아서 새벽녘에 동천에 이르렀다.

서용은 보군 중에서 날랜 자들을 이십여 명 뽑아서 개평역과 어천역에 보내어 기찰소를 덮

치도록 일렀다. 먼 데서 새벽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앞장섰던 장길산은 단검을

뽑아 위로 치켜들며 말의 배를 두 발로 내질렀다. 기병은 정연하게 열을 지어 동천을 건너

갔고 서용이 이끈 보병들은 외곽의 길을 끊기 위하여 읍의 남쪽으로 달려나갔다. 기병들이

먼저 읍내의 초입에 들어서자 관솔 햇불을 붙여 들었으며 그들은 더욱 속력을 내어서 곧장

운산 관가로 짓쳐들어갔다. 이백여 명이 넘는 기마부대였으나 각자가 맡은 대로 오를 나누

며 잽싸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가로 나아가면서 관가에 통한 샛길에마다 한 오씩 지

키고, 일 대는 먼저 관가 옆의 영으로 달려가 불을 질렀다. 자다가 뛰어나오는 관군 이십여

명은 장교든 군졸이든 모두 사로잡혔다. 관가 앞에 당도하자마자 칼을 빼어든 장정들이 말

위에서 담장으로 훌쩍 뛰어넘어가 대문을 열었고 반쯤은 밖을 포위하고 나머지는 말에서 나

는 듯이 뛰어내려 관가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각기 맡은 처소로 달려갔다. 장길산은 좌우에

강선흥과 최흥복을 거느리고 다른 운봉산 식구들과 더불어 동헌으로 뛰어 들어갔다. 때마침

최형기의 호종으로 남은 경군 장교 둘이 병장기를 들고 마당으로 뛰어내리는데 흥복은 가차

없이 방포하어 하나를 쓰러뜨렸고, 장창으로 찌르며 자신의 앞으로 다가든 자를 길산은 슬

쩍 비켜 나면서 한 손으로 창대를 잡고서 왼발을 들어 옆구리를 내질렀다. 맨 손으로 땅에

엎어지는 자를 뒤에서 쏟아져 들어오던 누구인가가 베어 버렸다.

"웬놈들이냐?"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모두 바라보니 동헌 마루 위에 속등거리 바람의 최형기가 칼을 빼어

들고 나와 섰다. 그는 자다가 일어났는지 맨상투로 발도 맨발이었다.

"그대가 운산군수 최형기인가?"

무리 속에서 길사이 물었다. 마당 안에는 장정들이 쳐든 횃불빛이 휘황하여 최형기는 얼

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마당을 꽉 채운 사람들의 어깨 위로 번쩍이는 칼날과 총포의

숲이 내려다보였다.

"내가 최형기다마는 너희들은 누구냐?"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길산은 무리 가운데서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갔다.

"누구라구 생각하느냐."

최형기는 패랭이를 쓰고 허리에 돌띠를 질끈 매고 단검을 차고 섰는 길산을 바라보며 잠

깐 침묵하고 있었다. 몸에서 수평으로 쳐들고 있던 칼을 똑바로 길산의 앞쪽으로 겨누면서

최형기가 부르짖었다.

"장길산인가?"

"그렇다."

길산은 아직도 맨손으로 서서 대꾸하였다.

"그대를 잡으러 수백 리 길을 달려왔다.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으라."최형기는 칼을 한번 허

공에서 흩뿌려보더니 껄걸 웃었다.

"내가 아무리 한미한 고을의 수형으로 있다 하나 국록을 먹은 관리다. 차라리 너희들에게

죽을지언정 도적에게 포박을 당하겠는가?"

길산은 담담하게 말하였다.

"과연 옳은 말이다. 밥을 준 주인을 잊어서는 안되겠지. 일단 칼을 버리라는 말은 그대에게

예를 차리게 하려는 뜻이다. 먼저 그대는 관복을 입고 위의를 갖추라. 다음에 동천 사장에

내려가서 그대에게 한수 배우고자 한다. 그대는 일찍이 내 아우 마감동에게 그러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던가."

최형기는 마당 안에 빈틈없이 들어선 장정들과 횃불빛에 번쩍이는 칼이며 화승총 등을 둘

러보았다. 활빈도가 이곳 고을을 완전히 장악한 이상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

였다. 이들은 최형기 자기를 바라고 쳐들어온 것이다. 최형기는 검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으며 더욱 상태가 장길산이라면 결국 승패는 반반인 셈이었다. 최소한 비긴다 할지라도

그를 죽이고 함께 죽거나 사지를 잘라 병신을 만들어 준다 하여도 공은 자신의 것이 아닌

가. 최형기는 쳐들었던 왜도를 천천히 내리고는 마루 위에 콱 꽂으면서 말하였다.

"고맙군, 나도 수년 전부터 그대와 한번 겨루어보기를 기다려왔다. 내가 옷을 입고 나올 동

안 기다려달라."

최형기는 방안으로 들어가서 강선흥과 흥복이가 마루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길산이 손을

들어 막았다. 잠시 후에 구군복을 상모를 쓴 최형기가 마루 위에 나타났고, 그가 꽂아두었던

칼은 강선흥이 뽑아들고 있었다.

"칼은 모래밭에 가서 주겠다."

강선흥이 퉁명스럽게 말하였고 최형기는 픽 웃었다.

"내 칼이 무서운 줄은 너희들도 아는 모양이구나."

길산이 강선흥에게 말하였다.

"칼을 돌려주어라. 관장이 어찌 비겁한 짓을 저지르고 달아나겠느냐?" 선흥이가 칼을 최형

기의 목줄기에 겨누었다가 휙 돌려서 칼자루를 내밀자, 최형기는 칼을 잡아서 그를 한번 힐

끗 보고는 허리에 찼던 빈 칼집에 넣었다. 동헌 마당을 지나는데 이미 관가를 점령한 활빈

도들이 창검과 기치를 세우고 늘어섰고 광의 문마다 활짝 얼려 젖혀져 있었는데, 최형기

가 화포군 편성을 위하여 마련해두었던 화승총과 장창들이 마당 위에 질서있게 세워져 있었

다. 그들이 중문을 나서자 서용이 다가와서 물었다.

"양곡과 무명이 많이 부축되어 있었습니다. 어찌할까요?""말꽁무닌에 매어서 운산 고을 곳

곳에다 뿌려두어라. 백성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갈 것이다."

하고 나서 길산은 곁에 나란히 걷고 있는 최형기에게 말을 걸었다.

"사또,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는 살아남더라도 고을을 점령당한 죄로 조정에서 파직 처분을

받게 되겠지. 우리를 토포하려고 준비한 군량은 모두 주인들에게 돌려주겠다." 최형기는 눈

꼬리가 빳빳해진 채로 거들떠보지다 않고 똑바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좌우에는 말에 올라

탄 강선흥과 최흥복 그리고 이십여기의 운봉산 장정들이 열을 지어 천천히 따라갔다. 읍의

외곽에는 병장기를 든 보병들이 곳곳을 막아서고 있다가 길을 터주었다. 그들은 고을 밖으

로 한참이나 내려와 동천 가의 모래밭에 당도하였다. 길산이 말에 탄 식구들에게 말하였다.

"원진을 만들어라."

최형기는 마감동과 싸우던 때가 생각나서 얼른 하늘부터 보았다. 부옇게 날이 새고 있었

다. 그 모양을 눈치채고 장길산이 빙긋 웃었다.

"땅바닥은 어디나 똑같은 모래밭이요, 때는 동트는 아침이다. 나는 자리를 가리지 않는 사람

이니 해를 받건 등지건 그대가 하고 싶은 대루 하여라." 최형기는 천천히 칼을 뽑아서 발

아래로 몇번 내리쳐보더니 봉두(鳳頭)의 자세로 평범하게 칼을 세워서 몸 앞에 내밀고 섰

다. 장길산은 단검을 빼어 그냥 팔을 내려뜨리고 섰는데, 팔을 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역으로

쥐었다. 길산의 단검은 그가 광대 시절부터 지니고 다니던 박달나무 봉에 반팔 길이의 날

을 박은 것이요, 최형기의 칼은 갑자년 이래로 그가 아껴온 동래의 왜검이었다. 왜검이 본

시 두 손으로 휘두르는 장검이지만, 쌍검을 쓸 때 다른 손에 쥐는 짜른 칼이니 최형기의

칼이 길산의 것보다는 두어 뼘 길었고 환도보다는 한 뼘쯤 짧았다. 그들은 칼자루를 두 손

으로 잡지 않았으니 대저 단검을 쓰는 자는 다른 한 손을 자유로이 놓여나게 함으로써 무기

의 방향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최형기는 길산이 팔을 내려뜨리고 섰는데 칼이 보이지

않아서 그가 역으로 쥐어 팔꿈치 뒤로 칼날이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감동이처럼

비도(非刀)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즉 범아재비가 자신의 접었던 팔을 먹이에게로 불시

에 내뻗는 것과 고양이가 쥐에게 뛰어오르면서 감추었던 발톱을 죽 내미는 것과도 같이 그

것은 음험한 공격의 자세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주위에는 말을 탄 장길산의 식구들이 둥글

게 원진을 만들어 둘러싸고 있었다. 말들이 가끔씩 콧김을 내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형

기는 강변의 남쪽에 장길산은 북쪽에 섰는데, 최형기가 봉두의 자세 그대로 길산의 왼쪽

인 동으로 서서히 걸음을 떼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떼었을 때에야 길산은 몸을 약간 돌

렸다. 그리고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최형기는 다시 몇발짝 더 움직였고 길산은 또 두어

발 나아가서 원진의 중심 부분에 나가 섰다. 최형기는 동쪽에서 뜨는 해를 자신이 등에 짊

어지는 지점에 이르렀는데 길산은 처음의 자세를 고치지 않은 채로 고개만 옆으로 돌려서

시선을 모래밭 위에 떨구었다. 최형기는 그가 분명히 마감동보다는 고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마감동이와 맞섰을 때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그의 속임수가 어떠한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길산이 이쪽의 태세에 방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일일이 응대하여 오는 것이었다. 최형기는 봉두의 자세에서 요략( 掠)으로 바꾸어 칼

을 옆으로 비스듬히 내리면서 말을 건넸다.

"내 목을 원하거든 어서 달려들어 취해보라. 갑자기 오금이 저리느냐.""나는 그대가 토포를

즐겨 하기로 사양하려 하였더니, 공격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 그 대신 삼

합 동안은 그대를 먼저 베지 않을 것이다." 병서에, 명장은 이로움을 복고 잃지 아니하며

시기를 만나면 의심치 않는다 하였다. 이로움을 잃고 시기를 놓치는 자는 도리어 재앙을

받는 셈이며, 지혜가 있는 자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싸움에 교묘한 자는 일각을 머뭇

거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돌연히 치는 벼락소리에 귀를 막을 사이가 없으며, 번갯불에 눈을

감을 여유를 주지 아니하며 적진으로 달려드는 것이 깜짝 놀란 광인과 같이 빠르고 속하게

타격을 주어서 이러한 예봉을 미처 막아낼 틈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길산이 먼저 공격하

겠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발을 구르면서 최형기에게로 달려드는데 최형기는 위로 솟구쳐오

르는 길산의 상반신을 은망(銀 )으로 칼을 수평으로 휘둘러 치면서 몸을 돌렸다. 구렁이가

몸을 틀어 상대편의 허리를 감듯 하는 자세였다. 그러나 챙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퉁겨

져 나오면서 눈앞에 불이 번쩍하면서 최형기는 앞으로 고꾸라질 뻔하였다. 최형기는 비틀

거리며 간신히 서자마자 다시 허공을 내리그으며 돌아섰고 그 동작은 등을 보이고 나서 얼

결에 방어의 몸짓으로 덮어놓고 해본 것이었다. 길산은 처음에 달려들었던 바로 그만큼의

거리에 위치만 바꾼 채로 서 있었다. 그것은 최형기가 대련 때에 잘 쓰던 기격(奇擊)의 일

종어었으나 또한 연결된 동작이나 변화하는 검술의 동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최형

기는 길산이 일찍이 광대였고 특히 태견과 살판을 어릴 적부터 놀이판에서 익혀왔음을 알

지 못하였던 터였다. 길산의 역으로 쥔 단검은 그러므로 결정적은 찰나 외에는 공격 무기

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단검은 상대방의 칼날을 같은 칼날로서 막아내거나 걷어내는 데

쓰고 있었다. 처음에 길산이 상반신을 솟구쳤을 때의 동작은 땅재주의 번개곤두였다. 길산

은 최형기와 그의 팔 끝에 뻗쳐진 칼의 기장을 가늠하여 그것을 그만한 길이의 줄로 생각하

였다. 길산은 번개곤두를 한번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겹곤두로 할 수가 있었고, 한번 솟구

쳐 돌며 남은 힘으로 퉁겨져 최형기의 머리 우로 지나면서 오른손으로는 단검을 들어 최형

기가 힘껏 휘두른 칼을 퉁겨주고 땅으로 내려서기 전에 보둠발을 엇갈려서 현각(懸脚)으로

뛰어 뒤차기를 하였던 것이다. 길산의 발뒤꿈치는 최형기의 꼭 뒤 급소를 타격하였다. 길산

은 땅으로 내려서면서 그 자세대로 역으로 쥐었던 단검을 뒤로 찔렀으면 최형기의 등판을

꿰었을 테지만 그대로 서너 발짝 나가서 돌아섰고 머리를 흔들고 난 최형기가 그제서야

비틀거리며 돌아서서 헛손질을 하였던 셈이다. 길산은 처음 자세대로 역으로 쥔 칼을 팔뒤

꿈치에 대고 두 손을 늘어뜨린 채로 섰다. 최형기는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그슬상모를 벗어

서 모래 위로 던져버렸다. 최형기 쪽에서 볼 때에 장길산은 검법을 쓰는 자가 아니었고, 검

술을 고르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그런 단계를 지나 있었다. 최형기는 차츰 자신을

잃었다. 마감동의 검에서 끊임없이 어떤 수상쩍은 냄새가 났지만, 이번의 검은 있는 그대로

였다. 마치 바람과 수면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강약에 따라서 연못의 물결

과 그림자는 응변한다. 그때마다 상대방의 검과 동작과 힘에 대응하여 천변만화하는 동작

이 나오는 것이다. 최형기가 이번에는 먼저 발을 떼었다.

그의 기격이 선공으로 들어가는 셈이었으며, 길산이 서 있은 위치에서 응해준다면 그를 부

상시킬 자신이 있는 형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는 백사농풍(白蛇弄風)으로 칼을 곧추 찌르며

달려들어갔다. 형기는 길산의 오른편으로 돌면서 금강보운(金剛步雲)으로 칼을 휙 쳐들어 자

신의 하반신에 허점을 보이면서 고권을 뭉쳐 오화전신(五花 身)으로 길산으 안면을 강타하

였다. 칼이 부딪는 수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의 주먹도 허공에서 바람소리를 내엇다. 최형기

는 동작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무릎이 콱 꺾이며 한 손으로는 모래를 짚고 다슨 손은 칼을

모래 박고 구부러졌다. 장길산은 그가 칼을 곧추 찌르며 달려들 때 그와 똑같은 속도로 뒤

로 물러났으며, 최형기가 일부러 하반신을 드러낼 때 옆구리로 파고 들어가는 자세만 해보

이고는 그의 고권이 뻗쳐지자 숭어뜀으로 뒤로 넘어갔다가, 최형기의 몸이 빠지는 순간 무

릎 뒤의 관절을 꺾어차며 다시 뛰어올랐던 것이다. 길산은 칼날을 옆으로 돌려서 최형기의

등판을 호되게 찰싹 내려차고는 뒤로 사뿐 물러났다. 최형기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서 눈썹에 번졌으며 그는 연신 눈을 껌벅이며 소매로 닦아냈다.

원진을 만든 기수들은 가끔씩 말을 뒤로 물리기도 하고 앞으로 몰아 진을 좁혀주기도 하면

서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검이다, 검으로만 상대를 쓰러뜰릴 수 있다.

최형기는 최소한 장길산과 비기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거나 함께 부상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

하였다. 그에게서 권과 검을 분리시킬 수가 없을까. 이번에는 기다리자. 그에게서 맞거나 또

는 자상을 당하면서 그를 찌르든지 사지의 하나라도 베어야만 한다. 최형기는 긴 숨을 천천

히 토해내며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요략세로 칼을 옆으로 비스듬히 늘어뜨리고

길산의 공격을 기다렸다. 길산은 잠시 최형기의 발끝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떼어 그

에게 다가섰다. 그러고는 전우(前羽)의 자세로 새가 양쪽 날개를 편 듯이 두 팔을 앞으로 벌

리고, 역으로 쥔 단검은 팔 앞에 수평으로 붙인 채 뛰어들었다. 최형기가 본 것은 칼날이 붙

지 않은 길산의 왼팔이었다. 그곳을 내려치고 다시 응변이 시작되기 전에 오른편 허리를 벨

작정이었다. 최형기는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전일격(前一擊)하면서 마주 달려들어갔다. 길산

이 팔이 잘렸는가 느낌을 되새길 사이도 없이 칼을 왼편으로 크게 휘두르며 상반신을 꾸부

린 최형기는 요격(腰擊)으로 상대의 혀리를 깊숙이 베었다. 챙그렁 하더니 끼꺽, 하는 날과

날의 맞부비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길산은 칼날로 그를 밀어내며 성큼 물러섰다. 최형기

의 칼이 위에서 내려올 때 길산은 옆시금으로 옆으로 넘어져 한바퀴 돌아섰고 이어서 허리

로 날아드는 칼날을 단검으로 받아 밀어냈던 터였다. 이번 공격은 실로 날카롭고 빈틈이 없

어서 길산의 살판 재주가 아니었다면 거의 피하지 못할 솜씨였다. 길산은 아직도 숨을 고르

게 쉬고 있었다. 방금 피했던 칼날 덕분에 그의 콧등에는 구슬땀이 송송 맺혀 있을 뿐이었

다.

"과연 훈련원의 교련관답다. 그대의 검은 삼 합까지 배운다고 말했다. 이제 단 한번으로 내

것을 가르쳐줄 테니 잘 배워두어라."

길산은 칼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긴 원을 그리며 모둘빼기를 넘는데, 놀이판에서 갓 쓴

열두 사람을 세워놓고 넘으면서 공중에 떠서 몸을 옆으로 뒤로 앞으로 틀어 방향을 자유자

재하며 바꾸는 동작이었다. 중간에 잰 발을 땅에 대었다가 다시 몸을 두 배로 띄우기도 하

는 것이다. 최형기는 무조건 칼을 쳐들어 유성(流星)으로 그어대느데 길산이 몸이 퉁겨지는

것만 보일 뿐 칼은 간혹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일 뿐이며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맞부디

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길산이 최형기으 몸을 뛰어넘어 아까오는 반대편 그만큼의 자리에

가서 떨어져 섰다. 최형기는 자신을 둘러보았다. 그의 구군복의 검은 전복이 좌우로 길게 찢

어졌고 허리에 두른 전대가 잘려서 땅에 끌리고 있었다. 최형기는 말라붙은 입술을 핥았다.

그는 칼을 내려뜨리며 부르짖었다.

"욕보이지 말고 얼른 나를 죽여라. 내 구천에 가더라도 혼백으로 돌아와 다른 토포장의 몸

에 붙어 너를 꼭 참수하고야 말리라."

길산은 눈이 날카로워지면서 모래밭으로부터 시선을 떼어 최형기의 미간을 찌를 듯이 노

려보았다.

"어리석은 놈, 일찍이 관가의 통인으로 자라나 약한 백성의 온갖 수모를 모두 겪고 보았으

면서 오히려 양반 사대부보다 더욱 우리 같은 천민을 미워한 자, 자신의 하찮은 출세를

위하여 이름없는 양민의 목숨을 벌레같이 알았고, 활빈도를 토포한다는 핑계로 병장기도 없

는 아녀자들을 살해한 죄로 천추에 씻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길산으로 허명이 있다 하나

이것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의 백성들의 역병과 굶주림에죽고 싸우며 이룬 이름이지 내 이름

이 아니다. 비록 이 작은 육신이 네게 죽어 썩어져버린다 한들 너는 장차 수없이 생겨날 장

길산과 활빈도를 어찌할 터인가. 너의 공명심으로는 저자의 왈짜배에게 칼질이나 할 터인즉,

개심하여 집에 돌아가면 유순한 가장으로 여생을 살아가거라, 그 대신에" 길산은 거침없이

성큼성큼 다가들었고 최형기가 틈이라도 엿보려고 내려뜨렸던 칼을 재빨리 쳐드는 것을, 툭

쳐내면서 연이어 전혀 다른 힘차고 살기 있는 동작으로 바꾸면서 아래로 내리쳤다. 으아,

하는 신음이 길게 들려왔다. 최형기는 한쪽 손으로 잘린 손목을 툴어쥐고 이빨을 악물며

고통을 삼켰다. 그의 잘린 손은 아직도 칼을 쥔 채 모래 바닥에 떨어져서 꿈틀거렸다. 최형

기의 손목에서 피가 솟구쳐 떨어졌다. 최형기는 입을 벌리고 무릎을 꿇었다. 길산은 칼을

넣고 돌아섰다.

"자 장길산."

길산은 그 자리에 멈추었다. 최형기가 이빨 사이로 말을 한마디씩 잘라서 토해냈다.

"네게 알려줄 것이 있다. 가족의 후문을 듣고 싶겠지"

"말해보아라."

최형기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도 돌아서라. 얼굴을 보여라. 얼굴을"

장길산은 천천히 돌아서서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네놈의 처와 아들과 딸이 있었지, 내가 형조까지 압송했다. 그것들은 전라도의 관노비로

끌려갔다."

최형기는 흐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쓰다쓰게 웃었다.

"명화율이다. 명화적의 혈족은 절도의 노비로 박는 게야. 나주목으로 끌려갔다. 장길산 잘

들어둬라. 내가 받은 관문에 위하면 네 아들놈이 먼저 남도의 먼 섬으로 끌려갔다. 그 이튿

날 네 처는 딸자식을 품에 안고 관가의 우물에 몸을 던졌다."길산의 눈까풀이 가늘게 떨리

고 있었다. 최형기가 다시 되뇌었다.

"살았으면 군사들에게 욕을 보았겠지. 다행이 아닌가. 네 아들놈이 지옥보다 먼 섬으로 끌려

갔단 말이다."

총성이 울렸다. 최형기가 멍청한 얼굴이 되더니 모래 위에 쿡 처박혔다. 길산은 고개를 돌

렸다. 최흥복이 총을 겨눈 채 꼼짝 않고 있다가 길산과 시선이 마주치자 천천히 총구를 아

래로 내렸다. 마상의 장정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길산이 주위를 둘러보니 강선흥이가

길산을 시커먼 사류마의 고삐를 잡고 있었다. 길산은 말 위에 올랐다. 모두들 강변을 떠났고

길산은 말을 돌리기 전에 모래 위에 엎어진 적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갈갈이 찢겨진 전복

자락이 바람에 부풀어 펄럭이고 있었다. 그들은 읍내로 달려가서 병력을 다시 모아 점검하

고 관가의 수레을 내어 운산의 군기(軍器)를 모두 실었다. 이 무기로 새로운 유민들의 일단

을 무장시키려는 것이다. 양곡와 포목이 읍내의 길바닥 곳곳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는데

사방에서 몰려나온 양민들이 바가지며 함지광우리 등을 들고 나와 흙이고 잡곡이고 가릴 것

없이 쓸어 담으며 희희낙락하였다. 운산에거 죽은 자는 꼭 세 사람뿐이었으니, 부임한 지 석

달밖에 안된 운산군수와 경군 장교 두 사람이었다.

 

종 장

묘정과 옥여스님은 전국 각처를 다니며 산간 승려들을 체결하였고, 운부 큰스님은 선비들

을 통하여 세공의 인재들을 묶어나가고 있었다. 묘정 옥여 대성법주 등은 서너 차례나 서북

과 북관을 오르내리면서 특히 장길산 활빈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강계에서느 박대근과

최윤덕을 통하여 자금과 군기에 소용되는 물건들을 묘향산과 금강산 등지에 반입하고 있었

다. 철월에 옥여는 거사 기일이 확정되어 강계로 오르는 길에 운봉산으로 장길산을 만나러

갔다. 청산말에서부터 안내인이 따라나와 장평령을 타고 넘어 운봉산 진대골로 들어갔다. 그

들의 산채는 운봉산에 세 군데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마장이 따로 있어 평소에는 안장과

굴레를 벗겨서 목책 안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게 하였다. 사흘마다 한번씩 북선의 여러 산채

를 내왕하는 파발이 내려가고 올라오고 하여 연락부적이었다. 옥여가 마을 한가운데 있는

길산의 처소에 가니 흙바닥에 자리를 깔았고 벽에는 단검과 총포만이 뎅그러니 걸려 있을

뿐이었다. 점심상이 들어오는데 조밥과 산나물이 전부였다. 옥여는 상이 나가자 오랜만에 장

길산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장두령이 운산 군기를 겁탈한 소문이 한양에까지 파다합니다. 최형기가 살해된 사실은 조

정에서도 쉬쉬한다고 그러든데."

길산은 그 얘기는 대수롭지 않게 흘리고 옥여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거사 일자가 삼월 이십일일이라더니 어찌 또 종무소식이 되어버렸소?""운부 큰그

님께서 반대를 하셨지요. 삼월이라면 농번기이니 백성들이 흉화을 모면하고자 씨를 뿌리

고 밭가는 시절이라 불가하다시면 십일월이 군사의 행군 내왕에도 좋다고 하십디다."

"원방에 있는 우리 기병이 얼어붙은 강과 시내를 건너기는 좋겠지만 시일이 끌게 되면 오히

려 관군에 유리하오."

옥여는 웃음을 지었다.

"한양이 문제요. 도성만 점령하고 진인을 옥좌에 앉히면 변방의 평정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별 문제가 없소."

옥여의 설명에 의하면 승려들 외에 세간에서도 많은 인사들이 거사 계획에 동참하게 되었

다는 것이었다. 경계부사 신건(申鍵) 첨사 신일(申鎰) 형제와, 금화 사는 부자 지대호(池大

豪) 엄준길(嚴俊吉) 진계종(秦戒宗), 함경도 사는 술사(術士) 주비(朱斐), 용인 역사(力士) 한

이태(韓以泰), 용인 사는 선비 조종석(趙宗碩), 부사 홍하신(洪夏臣), 양한석(楊漢奭), 금성

사는 충의(忠義) 안석명(安碩明) 등 삼형제, 전 군수 임동정(林東靖) 수원 군기감관(軍器監

官) 임필흥(林弼興) 등의 일차의 삼월 계획에 동의했었다.

"나는 묘향산의 도안 해안 스님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강고한 관서 승병을 이끌고 평안도에

서 기병할 제, 벽동에 있는 이학선과 그의 식구를 가짜 금부도사 모양을 시켜서 감사와

병사를 잡아다가 중도에서 처단할 뜻이었소. 박대인이나 측근 인사로 감사를 삼고 또 한 사

람은 의주부윤이 되어서 병을 이끌고 양철(良鐵)벌에 이르고 우대용 두령 등이 이끈 일 대

가 먼저 강화도에 상륙하여 강화유수를 목 베고 대첩기(大捷旗)을 마니산에 세우면 한양 성

내가 반드시 들끓어 난리 법석을 할 것이라, 양철벌의 대병이 그 틈을 타서 성중으로 짓쳐

들어오면 장두령과 대성법주는 북로와 강원 승병을 수습하여 진인을 받들고 입경한다는 계

획이오. 왜서(倭書)로 방을 써서 숭례문과 흥인문에다 걸고, 밤에는 남산에 봉화를 올리면

민심이 흉흉하여 한양의 내로라 하는 양반가와 사대부들이 피난을 하고 조정의 행정은 마비

가 될 것이오."

"좋습니다. 저희 활빈도는 선봉이 되어 근기 일대로 일시에 쏟아져 들어갈 것입니다.""세상

에 소문이 돌기로는 장두령의 활빈도가 기병 오천에 보병 천여명의 병력이라고 떠들썩한데

실상 얼마나 되겠소?"

"묘향 낭림 운봉의 병력과 함경도와 해서의 병력을 합하면 아마도 기마병이 천여 명은 되겠

지요. 활빈도가 북선에서 도처에 출몰하였다가 일시에 잠적하곤 하여 관군들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방 수령 관장들이 중앙의 문책을 두려워하여 우리의 병력을 관장

하여 장계를 올리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보병은 사실상 천여 명이 넘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전토와 고향 마을을 잃고 대처나 군읍에 떠도는 유민들이 수만 명이라 이들에게 병장

기를 들려주면 모두가 성난 물결처럼 관아로 밀려갈 것입니다.""딴은 맞는 말이오. 철원과

운산에서 활빈도가 출몰하였을 제 경기도 일대에서는 수천의 기마병이 고을을 휩쓸어 관

북 관서는 무인지경이 되었다고 소문이 돌아서 밥술깨나 먹는 부자들과 양반들이 삼남지방

으로 피난을 간다고 법석이었으니까."장길산은 옥여에게 물었다.

"운부 큰스님께서 선비들을 통하여 한양 성내에 내응 세력을 심었다고 하는 말씀은 무엇이

오니까?"

"나도 꼭 한번 본 적밖에는 없소만 이영창(李榮昌)이란 지사(地師)가 있소. 그가 한양 내의

불평객들을 하나씩 그러모으고 있는 중이오."

이영창이 거사를 위하여 한양에서 남인들과 접촉을 시작했던 것은 이미 삼 년 전부터의

일이라 하였다. 운부스님께서 안성 청룡사에 계실 때 이영창은 열세살이었고 공부를 하러

들어갔다가 그에게서 지술(地術)을 배우게 되었었다. 운부스님께서는 이리저리 절을 옮겨다

니면서도 이영창의 재주를 아껴서 설유징의 연락을 통하여 그가 계속 산사에 드나들드록 허

용하였다. 여환의 미륵도의 난이 실패로 끝난 뒤에 운부는 이영창에게 용화세상을 이루는

일이 대하여 발설하였고 한양으로 갈 것을 권유하였던 것이다. 운부는 이영창에게 당부하였

다는 것이다. 세상이 이미 말세이다. 산천을 보더라도 국맥(國脈)이 이미 진하였다. 그대는

재상가에 가지 말고 마땅히 서류(庶流) 중에서 의기가 있고 재능이 많은 자와 맺어 심복으

로 삼는 것이 좋겠다. 이영창은 처음에 남인들과 접촉하였으나 갑술환국 이후로 은을 모아

정권을 뒤엎으려다 환로에 나가지도 못하고 이용만 당하여 귀양에서 풀려오거나 낙배의 세

월을 보내고 있는 서인, 서얼, 중인 출신들과 더욱 가깝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번 거사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길산은 옥여의 말을 들으며 별로 흥겹지 않게 말하였다. 그는 미륵도 이래로 말 많은 선

비나 대처 한량들을 미덥워하지 않았다.

"큰스님께서는 반드시 조정의 실정과 벼슬아치들의 동향에 대해서 잘 아는 자들이 필요하다

는 생각이신 모양이오. 또한 그 사람들을 통하여 진인이 궁궐에 좌정한 뒤에 우리와 손을

맞잡을 조정 대신들의 명부도 만들고 있소. 주상의 동정과 재상의 어질고 모자란 점이며 시

사(時事)의 득실을 상세히 탐문하여 한양 성내에 서얼, 노비, 중인들의 힘을 규합하는 일이

그들의 소임이오."

"저는 돌아가신 김기 삼촌 외에 글줄이나 아는 자들을 믿지 않습니다."장길산은 고개를 저

으며 말하였다.

"우선 저들을 먹을 것이 있고 면전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혈족을 본적도 없습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이란 정병을 장악하는 일이요 정사에 참섭하는 자리입니다. 어제는 동편에 붙어

환국을 도모하고 날이 새면 다시 서편에 붙어 에제의 동류를 저버립니다. 정병을 다투는 자

들은 용화세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운부 큰스님께서 방편을 취하시어 집정의 방도로

세상을 바꾸려 하시지만 저희는 생각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오?"

"재물과 신분의 구별이 없는 대동세상은 가장 친한 것에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도대체

진인(眞人)이란 무엇입니까? 진인은 따로이 있는 게 아니라 역병에 쓰러져가는 팔도의 백들

이 다시 살아 환호하며 춤추는 세상에서 서로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이가 지인이

지요. 차라리 왕후정상의 씨를 새로이 만들 바에는 북관의 곳곳마다 널려 있는 무인지경으

로 들어가 우리끼리 용화세상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낫겠지요."옥여는 염주를 헤아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침울하게 되물었다.

"그러면 장두령은 거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저는 큰스님들로 하여 겨우 지각을 차린 자가 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산에서 경문과 참선

만 겪다 보면 먹고 훌쩍이고 살려고 기를 쓰는 여염의 삶을 먼 데서만 볼 수도 있습니다.

저희 활빈도는 참 활빈 하려면 땅을 모두 빼앗아 갈아먹는 이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야만 합

니다. 그 일이 근본이요, 겨우 양곡이나 재물 등속을 빼앗아 나누어주고 지방 수령들이나 징

치하는 것은 지엽말단이올시다. 근본이 서지 않는다면 집정은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저희 활빈도가 백성의 군사임을 알고, 참 용화세상을 이루는

일을 끊임없이 벌이고 다닐 것입니다."

길산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잃어버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옥여가 말하였다.

"그러한 뜻은 대성법주나 소승과도 같소이다. 우리의 목숨이 끝날때까지 한 번으로 안되면

몇번이든 다시 어느 진인이 거듭 나타난다 하여도 세상이 비뚤어지면 쓸어 없애야 하오."길

산은 그의 단검을 허리에서 끌러 옥여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제가 어린 무동 광대 시절부터 지녀왔던 물건입니다. 저는 이 칼로 저를 지키고

이것으로 저희를 둘러싼 양반들의 세상을 막아내려 하였지요. 또한 이 칼은 북선 활빈도는

물론이요 팔도의 녹림당을 움직일 수 있는 신표이기도 합니다. 저희 활빈도는 이번 일이 어

긋나더라도 실패로 여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뒤를 이어서 계속될 테니까요. 제가 이 칼을 신

표로 삼아 전국의 녹림당을 규합하라는 것이요, 도 한 가지는 이제 장길산이라는 이름을 버

리고 팔도 활빈도라는 수많은 무리들만 남기려는 뜻입니다." 옥여는 길산의 단검을 받았다.

그는 강계로 가서 인삼을 받아 돈으로 바꾸어 군복 군기 등물을 준비할 작정이었다. 유황

과 동철을 다량으로 준비하고 화승총과 창검을 만들어 금강산과 간성의 대성법주에게 장낙

해둘 것이었다.

"한양에서 십일월 중에 거사할 날짜가 정해지면 곧 파발을 보낼 터이니 대성법주의 강원도

병력과 철원에서 합대하여주오."

"명심하겠습니다. 하오나"

길산은 진대골에 들어앉은 포실한 마을을 둘러보더니 옥여에게 말하였다.

"저희들은 서수라와 백두산 인근 일대에 광활한 무인지경을 보아두었습니다. 일이 성사가

안되더라도 저희는 각처의 유민들과 더불어 그 곳에 가서 다시 시작하렵니다." 한달 뒤인

팔월에 옥여는 묘향산에 다시 들렀고, 묘향산과 낭림산 일대의 병력이 길산이네 운봉산 병

력과 합대하여 북관을 휩쓸었다는 소문에 접하였다. 병자년의 거사 계획은 동지가 다 지나

도록 미루어지다가 해를 넘겨서 숙종 이십삼년 정월 초열흘에 고변(告變)이 먼저 터지게 되

었다. 한양의 일을 맡았던 선비들 사이에서 배신이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인 열하루부터 추

국청이 열려 한양의 관련자들이 하나 둘 씩 체포당하였다.

그것은 장길산이 우려하던 대로 정병(政炳)에 대하여 집착하는 무리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반대파는 이를 이용하려 하였다. 금부도사와 토포 군사가

사방으로 풀려 나갔으나 그들은 죄인의 문초에 나온 동참자들을 거의 포득하지 못하였다.

한양에서는 너무나 먼 산과 골짜기에 산사들이 흩어져 있고, 승려들은 거의가 호적과 군역

에서 빠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활빈도는 그동안에도 끊임없이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양주 포천 여주 안성 등지의 경기도에까지 출몰하였으며 군관과 수령들이 난민들에 의하여

살해당하였다. 흉황은 그로부터 삼 년 동안이나 더욱 극심해져서 수만 명이 굶어죽거나 역

병에 걸려 쓰러져갔다. 임금은 장길산의 활동이 끊이지 않음을 알게 되자 스스로 탄식하며

비망기를 내렸을 정도였다. 극악한 도적 장길산은 날래고 표한함이 비할 자가 없어 여러 도

를 왕래한다는데 종적을 헤아릴 수가 없으며, 그의 도당(徒黨)이 이같이 번성하여 일 년 이

년 십 년이 이미 지났어도 아직도 못하고 있도다. 양덕에서 군사를 풀어 포위하였으나 끝내

잡지 못하였으니 역시 그 음흉한 행적을 알 수가 있구나. 죄인들의 초사(招辭)를 보면 더욱

극히 원통하도다. 비록 그 말을 믿기는 어려우나 이 도적이 나타나기 전에는 내 걱정 근심

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 반드시 여러 도에 비밀히 지시하여 소재를 상세히 탐지하고 따로이

군대를 풀어서 소탕하여 후환을 없게 하라. 그러나 장길산 활빈도는 날랜 북방마와 황색 바

탕의 깃발로써 일반 백성들은 누구든지 알아볼 수가 있었으나, 오히려 마을을 지날 때면 백

성들 쪽에서 관군의 동향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기찰에 나선 경군 장교들도 감히 그들이 은

거하여 있다는 소문이 낭자한 곳에는 들어가지도 못하였으니, 먼저 가서 돌아오지 않은 자

가 여럿이었던 까닭이다. 세상의 소문에는 장길산이 압록강변의 벽동 수백 리의 골짜기 안

에 깊이 숨었다고도 하고, 또는 두만강의 하류 서수라의 광활한 숲과 호수 사이에 대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 하였지만, 아무도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활빈도의 깃발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전라도는 옛적 백제의 땅이며 견훤이 일어났던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

하게 되자 백제인의 저항을 미워한 나머지 차령(車嶺) 이남의 물이 모두 배주(背走)한다고

하여 차령 이남 사람은 채용하지 말라 당부하였다. 호남 전도는 토지가 비옥하고 바다를 끼

고 있어 해산이 풍부한 고장이다. 특히 남해안에는 수백의 섬이 있어 예로부터 극변의 유배

지로 널리 알려졌다. 전라도는 평야가 광대하고 관개가 훌륭하여 이곳에 풍년이 들면 팔도

를 먹인다 하였으나, 예로부터 중앙에서 멀고 현달한 이가 적어 부임하는 수령들은 마음놓

고 조세를 과하여 부역과 작료가 가혹하였으며 지방 서리배들의 농간은 극심한 고장이라 민

란이 잦았던 곳이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수심도 많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고

굽이야 굽이야 눈물이 난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님은 가고 싶어 가느냐

말은 가자고 네 굽을 치는데

임은 붙들고 아니를 놓네

산천이 좋아서 내 여기 왔냐

님 사는 곳이라고 내 여기 왔지

칠산바다에 어선이 뜨고

월출산봉에 달이 솟아온다

오늘 같지 내일 갈지 모르는 세상

내가 심는 호박넝쿨 담장을 넘네

물을 쓰면 돌마 남고

님은 가면 나 온자 남는다.

낼 날 좋으면 홍어잡이를 갈란다

높은 산 올라가서 어둡도록 보아라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고 올 길을 왜 왔던고

 

 

노래는 끝이 없고 정은 샘처럼 깊다. 남도로 가는 들판 가운데 영산강과 월출산이 있으니,

영산강은 담양 추월산에서 시작하여 장성 백암산 능주 여함산 장성 황룡강 담양의 관방천

화순의 지석강이 합수하여 나주벌을 거느리고 서남해로 흘러가는데, 영암 월출산은 들판의

끈에 기이하고 아리따운 봉우리를 불꽃처럼 쳐들고 국토의 마지막 수문장처럼 서 있다. 영

조조 삼년에는 변산반도와 월출산을 근거로 하여 유민들이 난을 일으켰고, 이어서 육 년 뒤

에는 전라도 인근 해역의 섬들과 진도 나주 일대에서 노비들이 들고일어났다. 절도의 노비

들이야 말로 역률에 따라 내쳐진 죄인들 중의 생존자들이었으니 그들이 어찌 새 세상에 대

한 희망을 저버렸을 것인가. 인근의 능주 땅에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전설과 기묘한

석불들이 전하여 내려오는데 대개 이러하였다. 능주는 야산과 산줄기가 겹쳐서 오불꼬불한

비산비야(非山非野)를 이루어 들판 가에 쑥 빠져 물러난 곳이라 예전부터 의외로 귀 빠진

골이다. 화순 남방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울타리처럼 싸고 흘러 보성 유치에까지 닿는다. 또

한 맥은 남평 동남방에서 뻗어내려 능주와 두 겹의 산줄기를 이루어 곰재에서 만나고 장흥

쪽으로 빠진다. 두 겹의 산줄기 안에 천불산(千佛山) 협곡이 있으니 옛글에 나오는 대로 엄

택곡부(俺澤曲部)가 분명하다. 월출산을 근거로 하여 관군에 맞서 싸워오던 노비들은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산에서 포위된 채로 굶주리며 죽어가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이

천불산 계곡으로 빠져 스며들었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야산과 야산 사이의 황토에 밭을 일

구어 보리와 조를 심고 숨어 살면서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형

제가 어떤 이들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나라에 대적한 죄를 지은 혈족의

잘못으로 남해의 섬 가운데서 노비로 태어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어머니나 누이가 일에

지쳐 돌아와 거적 위에 쓰러져 잠들기 전에 속삭이며 해주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

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 삼촌같이 다시 일어나 해방되어야 한다. 네가 못하면 네 자식에게

또 그 자식에게 이 말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협곡 속에 숨어 살면서 미륵님의 계시를 들었

다. 이 골짜기 안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룻밤 사이에 세우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 온다

는 것이었다. 도읍지가 바뀌는 새로운 세상, 그들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하룻밤 사이

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노비들은 새벽에 깨어 일어나 보성만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았다. 우리는 이곳에 서울을 세우리라고 미륵님께 서원합니다. 여기가 염부제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황토뿐인 야산에서 바위를 찾으려고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들판을 달리고

강을 건넜다. 바위를 굴려오고 끌어오고 떠메고 오면서 그들은 북을 두드렸다. 집채만한 북

을 골짜기 어귀에 걸어두고 산천이 떠나가라고 두드리면서 미륵상과 탑을 쪼아 세우는 노고

를 온 세상에 알렸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그들은 보

리밭 밭고랑에 돌을 눕혀놓고 새기기도 하고, 산비탈에서 조기도 하고 암벽 중간에 매달려

서 정과 망치를 두드리기도 하였다. 고수는 망치 소리를 모두 뒤덮을 만치 우렁차게 묵을

때리고 또 때렸다. 천불천탑을 모시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는 부처님을 좌정시키려면 새 절

도 세워야만 한다. 늙은 노비가 일러서 계곡이 끝나는 곳에 새 절을 세웠으니 운주사(運舟

寺)라 하였다. 젊은 노비가 물었다.

할아버지, 절이름이 어째서 운주사요?

배를 부린다는 뜻이란다. 배가 물에 떠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니라.

젊은 노비는 더욱 궁금해졌다.

이 깊은 산골에서 배는 무엇이고 물은 또 무어요. 우리가 이제는 다시 죽지 못해 살던 섬으

로 쫓겨 간다는 뜻이우?

늙은 노비는 햇볕에 그을린 주름살 많은 눈을 감을 듯이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게 아니란다 얘야, 새로운 우리 세상이 바로 배가 되는 게야. 미륵님 세상이 배가 된다.

배는 물이 없으면 뜰 수가 없지 않으냐?

그럼 물은 또 무엇이우?

물은 우리 같은 천것들이고 만백성이란다. 우리 중생이 물이 되어 고이면 배가 떠서 나아가

게 되는 게야. 이제야 배가 되어 움직이는 절의 의미를 알겠느냐.

노비들은 다시 정신없이 돌을 쪼아 미륵상을 세웠다.

미륵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본 적이 있어야지.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어찌 알고 미륵님을 감히 새긴단 말이고.

석수질을 하던 사람들은 거기에 생각이 닿자 모두 낙망하여 일손을 멈추고 주저앉았다.

늙은 노비가 다시 나서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보게 미륵님을 못 보았다고? 이런 어리것은 사람 같으니 미륵님이란 자네 아닌가. 자네

모양과 똑같은 이가 미륵님일세.

어이구 그런 말씀 마시우. 저는 어릴 제 관차배에게 매를 맞아 콧대가 부러져서 이렇게

납작합니다. 다리는 절름발이구요.

저는 못 먹고 살아 그런지 키가 안 커요. 보시우, 항아리처럼 작달막합지요.

늙은 노비가 껄걸 웃었다.

하룻밤 사이에 천도되고 거기에 오시는 미륵님이란 모두 자네들 모습일세. 안심하고 꼭

그렇게 새겨드리게.

일손을 놓았던 노비들은 다시 용기가 나서 이번에는 자기 모습대로 각기 미륵님의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골짜기 안에는 자기네처럼 성도 없고 이름도 없는 제멋대로 생긴 백성들이

꽉 들어차고 있었다. 고수는 다시 힘차게 북을 두드렀다. 황혼녘이 되자 이 소문을 들은 월

출산, 해남 대둔산, 완도, 진도, 흑산, 추자도의 바위들까지도 모두들 스스로 미륵상이 되기

위하여 우뚝우뚝 서서 골짜기를 바라고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온 산의 바위가 밀려온다!

북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곳곳에 울려퍼졌다. 그들은 캄캄한 밤이 되었어도 횃불을 밝히고

일을 계속하였다. 구백구십구의 미륵상과 탑을 세웠다.

마지막 미륵님을 만들자.

노비들은 새로운 세상을 눈앞에 그리면서 산정으로 올라갔다. 산정에는 남도의 어느 곳에

서 달려왔는지 집채보다 더 큰 바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 있었다. 바위는 비탈에 누워

있어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상수하족(上首下足)일세. 비탈 위에 미륵님 머리를 새겨두고 아래쪽에 다리를 새겨야지.

하루 종일 가장 열심히 일하였던 사람이 아는 척하였다.

아닐세, 그렇지 않아.

늙은 노비가 또 나서서 일러주었다.

우리가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처럼 미륵님도 처박혀 있는 게야. 세상이 거꾸로 되었

으니 상수하족은 켜녕 상족하수(上足下首)가 맞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합쳐 바로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닌가.

모두들 그 말에 따라서 머리와 다리를 정하고 와불(臥佛)을 새겨 나갔다. 어떤 사람은 머리

를 코를 눈을 또 어떤 사람은 몸을 배를 어떤 이는 팔다리를 새겼다. 미륵님의 형상이 이루

어졌다.

자, 이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그들은 머리와 어깨와 몸에 달라붙어 힘을 썼다. 북은 그들의 힘쓰는 앞소리와 뒷소리에

장단을 맞추었다. 미륵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다가 미륵은 다시

넘어졌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미륵님을 밀어올렸다. 그때에 도저히 이 캄캄한 밤의 모

고를 참지 못한 사람 하나이 있어, 손을 대고 혼자 떨어져 나가며 거짓말을 외쳐버렸다.

닭이 울었다!

고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북채를 내던졌다. 미륵을 밀어올리던 사람들도 힘일 잃

고 주저앉아버렸다. 미륵산은 비탈 저 밑에 처박혀서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 미륵상

이 되기 위하여 우뚝우뚝 새까맣게 몰려오던 사방의 바위들도 소문을 듣고는 그 자리에 넘

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넘어지면서도 머리는 계곡 쪽을 향하였으니 먼 훗날에라도 와불이

바로 일어서면 다시 미륵이 되기 위해서였다. 바위들은 민병의 쓰러진 시체처럼 들판과 야

산의 곳곳에 넘어져서 오랜 비바람에 씻겼다.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있었으니 운주사의 대

문을 여닫을 적마다 서울 장안에서 우지끈대느 우렛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서울이 옮겨지지

않은 것을 한하여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이다. 그래서 대문을 떼어서 영산강으로 떠나 보냈다.

운주사는 그 뒤로부터 운주사(雲舟寺)가 되고 말았으며 이는 물이 차오르지 않아 세상이 머

물러버렸던 까닭이라 하였다. 중생의 물이 차올라 세상인 배를 띄울 때까지 와불은 굴렁에

처박힌 채 기다림이 장소에 머물게 되었다.

마을과 마을의 닭소리가 서로 접하여 있으며, 아름답지 않은 꽃과 과실의 나무는 말라서

없어지고 추하고 악한 것이 스스로 소멸하고, 기후는 화창하고 사시의 계절이 순조로우며

질병이 사라진 세상.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커지지 아니하고 은근하

며 사람마다 평등하여 모두 한가지 뜻으로 서로를 보게 되매 기쁘고 즐거워하며, 착한 말로

서로 오가는 뜻이 똑같아서 차별함이 없게 되는 사람들. 서로 싸우고 죽이며 잡혀가고 옥에

갇히고 무수한 고통을 가져왔던 부귀가 이제는 버려진 돌조각처럼 아끼고 탐내지 않게 된

그러한 곳은, 어느 숲속이든 산속이든 아니면 바다의 안개 속에 가려진 섬이든 실재하지 않

았다.

대동세상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목숨 가운데서 문득 빛나던 것이 있었으

니, 스스로의 가슴속에 이미 저러한 세계의 실상이 생생하게 담겨졌다는 깨달음이었다.

역(易)에 이르기를 미제(未濟)의 뜻이 해가 바닷속에 잠겨 있으므로 장차 밝게 떠오를 것

을 안다 하였으매, 티끌처럼 수많은 생령(生靈)들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지 않으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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