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9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최항석, 이성혜
제4부 역모(상)
제1장 미륵
1
신천의 오계준이는 월장사 사당골의 모가비 임가와 더불어 한때는 해서뿐만 아니라, 경기
도와 충청도의 해변에까지 출행을 다녔던 가장 활동적인 패거리의 모가비였다. 계준이가 모
가비 짓을 그만두게 된 것은 풍병 탓이기도 하였으나, 행중에 있던 그의 젊은 아내와 자식
의 원통한 죽음이 원인이었다. 오계준은 원래가 과묵하고 술이나 몇잔 들어가야 흰소리나
한마디씩 던지는 위인이라 절대로 그런 얘기를 자신이 꺼내어 지껄이는 법이 없었다. 그렇
게 평소에 말이 없는 계준이가 일단 판에 들어가 신명이 나면 물 흐르는 듯한 맑고 고운 소
리를 끝도 없이 풀어내는 것이었다. 계준의 재간은 소리뿐만 아니라 삼현육각을 다루는 데
에도 그 어느 떠들썩한 악공들이 넘보지 못할 솜씨가 있었다. 특히 계준은 해금의 명수였다.
그는 일찍이 연안에서 기루의 중노미 노릇으로 잔뼈가 굵었다는데, 주인이었던 퇴기가 풍류
를 제법 아는 이라 소리도 하고 거문고도 탈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 집에 드나들던 이들
중에 해서에서 가장 풍류객으로 알려진 파리의 명수 김공서라는 자가 있어 우연한 기회에
계준의 흥얼거리는 잡가의 소리를 듣고는 뛰어난 재질이 있음을 알고 음률을 가르치니 재간
이 대번에 드러난 것이었다. 계준은 특히 해금을 좋아하여 틈틈이 연마하고 스스로 곡을 지
어내기도 하였다. 김공서는 예전에 장악원에도 있었던 만큼 그 즈음에는 악공을 폐하고 가
산도 요족하여 밥 걱정이 없으며 친분 있는 기생의 집에 놀러 다니거나 음률을 아는 이들끼
리 모여서 조촐하게 놀곤 하였다. 오계준이 김의 눈에 띌 만큼 재간은 있었으나 음악의 기
초가 제대로 다져졌을 리 만무하였다. 하루는 김공서가 저희끼리 노는 자리에 계준을 불러
들여서 해금을 켜보도록 하였다. 오계준은 먼저 잡가 한 가락을 켜고 나서 스스로 지은 가
락을 켜 보였는데, 가을날 슬피 우는 풀벌레의 울음과 암수를 서로 찾아 지저귀는 산새의
울음이며 깊은 밤 애간장을 끊는 듯한 두견의 울음소리 등을 흉내내었다. 김공서는 술잔을
상머리에 대고 두드리며 말하였다.
허, 재주가 아깝고나. 내가 듣기에는 이것은 음률이 아니라 손재주에 지나지 않는다만 저
자의 시정배들은 아마 감탄할 것이다. 걸립하기에는 충분하겠지만 자리가 잡힌 가락은 아니
다. 그러나 해금을 만진지 반년 만에 이 정도라면 여기에 있는 우리들보다도 음감이 대단하
구나.
그런 말을 들었으나 계준은 별로 개의치도 않았다. 중노미 노릇으로 기루에 빌붙어 굶주
리지 않고 대궁밥에 식은 술로 살아 넘기는 신세에 자족하였던 터였다. 소년 적에 세 해를
연안 기루에서 보낸 계준은 어느날 해금 하나를 달랑 꾸려들고 그 집을 나와서 대처 저자를
떠돌아 다녔다. 그에게는 아악이네 속악이네 하는 구별이 따로 없었다. 어느때 어느곳에서나
새로운 가락이나 그가 못 배운 가락을 아는 이가 있으면 찾아가 간청하여 사나흘 만에 익혀
버렸다. 그가 머리통이 커지고 체면상 헛상투라도 틀게 되면서부터는 어느덧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음률을 성취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모기의 앵앵거리는 소리, 파리의 윙윙대
는 소리며, 장인붙이들의 뚝딱거리는 소리, 선비들이 글 읽는 개굴개굴하는 소리, 이 모든
천하의 소리가 모두 밥을 구하자는 것들이었다. 계준이 비록 저자바닥에 나가 앉아 들병장
수에게서 화주 몇잔 사먹고 장꾼들의 흥을 돋우어 양식이든 푼돈이든 구걸한다지만, 그의
음률은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이었다. 누구에게서 배워 똑같이 흉내내는 것이 아
니라, 가락을 얻고 나면 잠잘 때를 빼고는 언제나 그 곡을 피나게 연습하여 묘한 음률로 다
시 만들어냈던 것이다. 해금은 말총으로 활을 매고 송진을 칠하여 비사비죽으로 악기의 대
접도 못 받는 것이, 그가 악공들에게는 비렁뱅이 풍각쟁이 취급을 받는 거나 매한가지였다.
오계준의 손가락은 돌덩이처럼 못이 박혔고, 일단 해금에 통하자 어느것을 잡든지 북이나,
장고나 젓대나 그 격을 갖추었다. 계준은 저자에서 장꾼들을 상대로 양식이나 구걸할 뿐 그
이상의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어쩌다가 그의 해금소리를 제법 알아보고 신통하게 여겨 회
갑연이든가, 시회라든가 따위에 부르려고 청하여도 계준은 절대로 응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
은 한결같이 이러하였다.
여기 앉아 내 소리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음률을 깨우쳐주었던 김공서에게서 음악뿐만 아니라, 악공이라는 것이 어
떤 자리인가에 관하여도 배웠던 터였다. 또한 그가 저자에 나갔던 초년에 몇번 겪어본 바이
기도 하였다. 기술이 더욱 높아갈수록 그는 단순한 곡만을 하루 종일 켜댔고, 자신이 지어낸
오묘한 곡은 절대로 남들 앞에서 켜지 않았다.
오계준은 저 좋아 걸립을 하며 사는 터에 괜히 해금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구
월산 행중이 지나다가 우연히 그가 빌어먹는 저자에서 함께 머물게 되었고 오계준은 월선이
란 사당과 눈이 맞았다. 그때에는 갑송이의 처가 되었던 도화라든가 백련이 등등이 아직 애
송이 사당이었던 시절이었다. 월선이는 경기도 어느 고을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도망쳐서 행
중에 끼였던 여자였다. 그 무렵에는 임가도 중간쯤의 거사에 불과하였다. 지금은 저승패가
되어버린 모가비가 소리 잘하고 해금에는 명수인 오계준을 귀히 여겨 두말 없이 월선이와
짝을 이루어 주었던 것이다. 몇해 동안을 사당패에 섞여 떠돌아다니던 오계준과 월선이는
해주에서 행중을 떠나 강령으로 들어갔다. 때는 겨울이었으니, 아무것도 없이 양식 자루만
달랑 짊어진 그들 부부에게는 행중에 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무서운 계절이었다. 월선이는
만삭에 이르러 있었고 아무도 그들 부부를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계준은 강령 부민산 아랫
녘에 움을 파고 물길이가 되어 아침마다 밥을 빌어먹었다. 그는 닭 울 녘에 맑은 샘을 참아
가 물을 길어서는 그에게 식은 밥을 나눠주는 집에다 조달하곤 하였다. 간신히 연명하여 겨
울을 넘기자 월선이는 몸을 풀었고 예분 딸을 낳았다.
이제 계준은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짊어지고 강령 읍내를 지나다니면서 외쳐 팔곤 하였
다. 그의 재주를 아는 아내가 어찌하여 저자에 편히 앉아 해금을 켜서 돈벌지 않느냐고 하
였으나, 오계준은 답하였다. 나는 마누라와 여식을 정직하게 벌어 먹이겠네, 해금을 켜는 일
이 어째서 정직하지 못한 것이우? 하니까 계준은 다시 말하였다. 내 비록 천한 몸으로 세상
에 나와서 다른 짓은 모두 사람다웁게 이루어놓은 바가 없으나, 다만 해금에 있어서는 제법
깊은 음률의 이치를 터득하였소. 한때에는 저자에 나가 앉아 짐짓 재주를 속이고 일부러 천
박한 가락을 골라 타면서 양식을 구걸하였지. 마치 영감 할멈의 두 양주가 한탄하고 싸우고
웃고 지껄이는 소리도 냈고, 콩죽 먹고 배가 아파서 어이어이 우는 시늉이라든가, 빠른 소리
로 새앙쥐가 장독 밑에 들어갔다고 외치는 소리라든가, 남한 산성의 도둑이 이 구석으로 달
아나고 저 구석으로 달아나는 흉내를 낸다든가 하는 따위를 꼭 그럴 법하게 하였지. 이게
모두 내가 이룬 가락을 욕되게 하는 짓이었고 속임수였으니 어찌 그런 사기로 약간의 쌀을
빌어 자네와 어린것을 먹일 수가 있겠는가. 오계준은 보퉁이 속에 깊숙이 감춘 해금을 꺼내
어 켜는 적이 없었고, 언제든지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먹을 것을 사오고는 하
였다. 어느해 강령 일대에 마마가 창궐하여 계준의 딸도 병에 걸렸고 고열과 창으로 고통
받더니 새벽 무렵에 죽었다. 부부는 여식을 거적에 말아다가 해변가에 내다 버렸고 월선은
그 시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여 사흘 밤낮을 애통해하며 붙어 낮아 있더니, 돌연 이상스런
행동과 말을 하면서 간간이 정신을 잃고는 하였었다.
마원이 교지를 정벌할 적에 정체불명의 두창이 군사들에게 전염되어 지나 본부에까지 유
포되고 종내에는 아조에까지 전염된 것이 마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랑캐의 병이라고도
하고 호구별성이라고도 하였으니 해마다 번지기도 하고 해를 건너 번지기도 하여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었던 것이다. 아이가 병에 걸리면 강남호구별성사기라는 글을 써서 문패 위에
달고 무당을 데려다가 그 신을 보내었다. 호구라고 하는 것은 마마가 매 호구를 따라 한 사
람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전염시킨다는 것이고, 별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신의 사명이 특별
객성이라는 뜻이었다. 항간에서 두신을 손님이라 칭한 것은 바로 객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월선이 여식을 잃고 나서 홀연 정신이 흐릿하여지고 스스로 혼잣소리를 하더니, 그의 죽
은 딸과 간간이 애기를 나누는 형용을 취하였다. 혹은 미리 앞일을 짐작하여 일러주기도 하
였고, 또는 지난 일을 말하는데 어떤 이든지 한번 보고는 줄줄이 외워서 꼭 맞추고는 하여
강령일대에 소문이 나게 되었던 것이다. 태주가 붙었다고 하여 부녀자들이 계준의 움막에
무리를 지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오계준이도 여식을 잃고 애통하던 뒤끝에 아내까지 허랑
한 태도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아내가 여식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말을 붙이고 재롱
을 부리니 더욱 애간장이 녹는 듯하였다. 오계준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아내 곁에 앉아서 북
이나 장고를 잡아 무업을 도와주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가 사당이었던 월선은 가무음곡에
능하고 더욱이 태주의 영험이 몸에 들어 대번에 강령 인근에서 명무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오계준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가 되어갔던 것이다. 한해가 지나기 전에 그들은 초가
삼간이나마 삼신당을 조촐하게 지을 수가 있었고, 일년 해들이로 대굿도 벌이게 되었었다.
강령 읍내에 사는 좌수 집에서 아이가 병에 걸려 월선을 청하여 갔는데 배송굿을 해달라
는 것이었다. 중국으로부터 봉명 사신이 올 제관사 오 리 밖에서 도로 양편에 황토를 군데
군데 놓았으니, 무당이 역귀를 보낼 적에 이와 같은 제도를 그대로 본받게 마련이었다. 말과
마부도 형식으로 갖추었고 마치 관리의 행차를 전송하는 듯이 꾸몄다. 월선이 노래를 부르
고 계준은 박자를 맞추면서 굿을 하였다. 온 식구가 목욕재계하고 소식을 하면서 굿에 참가
하였는데, 아이는 어찌된 일인지 굿의 효험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좌수는 애통하고 분
한 나머지 군의 토옥에 월선을 하옥시키고 계준을 매질하였다. 월선이 무병을 앓고 무당이
된 것은 그 여식의 죽음에 의한 것이었고, 뭐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으나 신이 접한 것이
분명하였으나 좌수의 자식의 병에 있어서는 불능이었던 터였다. 그것은 오직 천수와 운명에
의한 것이라고 계준은 주장하였으나 좌수는 스스로 무당을 불러다 인근 사방의 백성들에게
알려지도록 굿을 벌였던 일이 창피하고 분하였던 모양이었다. 계준은 장형을 당하고 풀려났
으나 월선은 토옥에 갇혀서 두어 달을 지내더니 돈과 무명을 인정으로 들이고는 간신히 풀
려났다. 감옥 안에서 시름시름 앓던 월선이는 집에 돌아와서 태주가 된 아이의 혼령과 끊임
없이 헛소리를 주고받다가 어느날 숨결이 끊어졌다. 계준은 해금과 약간의 양식을 싸 짊어
지고 강령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전보다 더욱 말없는 사람이 되었고 술에 취하면 해금을 꺼내어 구슬픈 곡조로 남의
애간장을 끊는 듯한 음률을 끝도 없이 타는 것이었다. 가끔씩 마을 부근의 야산이나 저자의
다리 아래에서 그가 켜는 해금 소리가 들려오면 사람들은 계준이가 왔다고 여기게끔 되었
다. 그가 구월산 월정사로 찾아들어와 사당말에서 한겨울을 기식하였던 때가 있었다. 일찍이
풍열스님은 그의 해금 솜씨를 몹시 사랑하여 암자로 가끔 부르고는 하였다. 그는 예전처럼
사당패의 행중을 따라 돌아다니지 않고서 은율 문화 일대의 굿판을 기웃거리며 잽이 노릇이
나 시중꾼 노릇을 하며 돌아다니더니, 아예 무업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길산의 양어
미 안무당이나 사선골의 계화, 그의 마편 부엉이 박수 김승운 등과 잘 알게 된 것은 계준의
음률에 관한 솜씨가 뛰어나기도 하였으나, 굿의 주요한 맻대목쯤은 그가 능숙하게 연희할
수도 있었고 그의 아내에게서 배운 대로 살점도 신통하게 맞히는 영험을 보였기 때문이었
다.
신천은 산과 골짜기투성이인 은율 문화와는 달리 널찍한 어루리벌을 끼고 있어서 가세 부
요하고 한가한 집들이 많아서 소소한 푸닥거리에서부터 액막이 또는 기복 등등의 큰 굿에
이르기까지 잔치 겸하여 벌이는 집이 많았다. 오계준은 천사산이 올려다보이는 우산포 부근
에 총각 하나를 수하로 데리고 살고 있었다.
밤이 이슥하여 먼데서 밤새가 고즈넉하게 울고 있었는데, 계준은 언제나처럼 등잔을 돋우
고 앉아서 해금을 한곡조 켜고 있었다. 십리길 밖인 읍내로 나갔던 아이가 내왕하는 사람들
에게서 받은 약간의 미곡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해금 켜기를 멈추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오니? 읍내에는 별일 없더냐?"
무심코 물으니 아이는 자루를 내려놓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별일이 뭡니까. 시방 큰 난리가 났다구 가는데 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수군대구 있습니
다." "난리라니..."
"아이구, 무슨 일인지 모군들을 오늘 새벅에 몽땅 데려갔구요. 관아의 군관들은 한사람도
남김없이 병장기 들리어서 부처고개루 데려갔답니다." "부처고개라면 구월산 남녘이 아니
냐."
"그러믄요. 구월산 일대가 온통 어육이 되는 판이랍니다. 뭐 화적당을 토포한다는데 사람
들이 떼죽음 당했을 거라구 수군거립디다." 오계준은 안무당과도 잘 알았고 풍열스님이나
옥여스님이나 임가로부터 산사람들에 대하여 들어 구월산의 활빈도가 어떤 사람들인지 소상
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계준은 탑고개의 안무당네 집에 갔다가 길산을 대한 적도 있었다.
그가 비록 입을 열어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지나간 반생에 비추어 굶주리고 천하게 목숨을
붙여오는 백성들에 관하여는 뼈저린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 반대로 월선이의 죽음에서
비롯하였듯이 밥술이나 먹고 제 마음대로 천민을 다루는 양반 부호들에게는 깊은 원한이 있
었던 것이다. 계준은 문득 탑고개와 사선골을 뇌리에 떠울렸다. 그는 상위에 백지를 씌우고
앉더니 쌀을 집어서 몇번 뿌려보았다. 그는 다시 흩었다가 뿌리고 하기를 열두번 거듭하였
다. 쌀의 떨어진 모양으로 단 쌍 종 횡을 삼아 점의 효로 정하는 것이다. 낟알의 외톨과 붙
은 것과 바로 있는 것과 가운데 있는 것으로써 육효를 지어 음양의 이치를 정하였다. 오계
준이 구월산의 안위를 들어 점을 쳤는데 첫 패가 나오기를, 양이 셋이니 천이었고 음 하나
에 양이 둘이라 택이 나와서 이가 되었다. 즉 호랑이의 꼬리를 밟는 것과 같은 위험 상태였
다. 다시 사선골과 탑고개에 관하여 물으니 물이 둘이나 겹친 감위수가 나왔다. 위험이 겹쳐
있는 사대 난쾌의 하나였다. 소용돌이치는 몰 가운데 빠져 있는 것과도 같은 수였다. 오계준
은 떨리는 손으로 상 위의 쌀을 그러모으고는 밖으로 나가 뒤꼍 상석에 올라 옷을 벗고 찬
물을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안방 건넌방 사이에 신당으로 꾸민 마루에 나가 앉아 향촉을 켜
놓고 공을 들였다. 토포군이 구월산 인근으로 짓쳐들어 갔다면 많은 백성들이 죄없이 살육
을 당하고 마을이 불에 탔을 것이 뻔했다. 그는 관군이 어떤 짓을 저질렀을지 훤히 떠울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계준이 신당에서 기도를 드린 지 한참 지난 뒤에 삽짝이 열리면서 나
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계준이, 계준이 있나?"
"거 누구요?"
오계준은 문을 밖으로 밀고 마당을 내다보았고, 마당에는 첫눈에 맨상투에 흩저고리 바람
의 김승운과 그의 아내 계화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계화는 온통 흙과 그을음으로 더럽혀진
무명옷에 머리는 거의 헤쳐져 산발에 가까웠다. 그들의 엉거주춤한 두 어깨 사이에는 뭔가
짐 같은 것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니... 이게 웬 변고인가?"
계준이 황급하게 신발을 꿰며 내려서는데 계화는 맥이 다 빠졌는지 땅바닥에 스르르 주저
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김승운은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들의 어깨 사이에 매달렸던 것이 땅
에 풀써거 넘어졌다. 계준이 자세히 보고 옷이 찢기고 머리는 풀어 헤쳐진 여자였다.
"이... 이건 사람이 아닌가?"
"사람이 다 뭐야, 원향이야, 우리 만신 몸주 받은 원향이란 말여." 오계준은 달려들어 원
향이를 일으키는데 몸은 차가웠고 맥이 간신히 뛰고 있는 듯하였다.
"이리 와서 거들어라."
아이가 마당귀에 보이자 계준이 불러서는 원향을 끌어안아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곧 아
랫목에 자리를 깔고 뉘었으나, 원향이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지 사지를 던지고 늘어져 있
었다. 저고리는 풀어 헤쳐졌고 치마는 다 뜯겼는데 드러난 맨살에는 긁히고 찢긴 상처투성
이였다. 계준은 묻지 않아도 원향이 몸을 더럽혔음을 알아볼 수가 있었고, 혼자 혀를 차면서
이불을 재빨리 씌워주었다. 방안에 들어선 김승운과 계화는 차례로 무너질 듯 주저앉더니
벽에 기대었다. 김승운은 절로 스물스물 솟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앉
았고, 계화는 연신 코를 들이마시며 어깨를 떨고 중얼거렸다.
"온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가... 아이구 세상에..." 계준은 그들을 불러보며 물었다.
"사람 많이 죽었나?"
김승운은 그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찌된 일인가?"
계준이 재촉하여 묻자 그제서야 김승운은 천장과 벽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나서 여기가
신천의 오계준이네 집임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지옥이 따루 없데. 관군이 야차처럼 달려들어 사선골을 결딴내구 말았어. 간신히 목숨 부
지하여 살아 오는 길이야." "탑고개는 어떻게 되었어?"
"탑고개? 흥, 사선골서 살아난 게 아무 우리뿐일걸. 탑고개는 구월산과 더욱 가까운 곳이
라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월정사며 사당말은?"
"몰라... 간신히 살아서 모을산 굽이를 돌아 내고개까지 엎어지고 넘어지며 달아나며 보니
까, 하루 종일 연기가 오르더군. 산협 백성들은 보따리 지고 남부여대하여 난피하느라구 법
석이야. 오면서 보니까 군계의 길목마다에 군교와 사령배가 나와서 지키구 빠짐없이 짐수색
이며 호패를 조사하구 법석이야. 요로를 피하여 신길로 오느라구 죽을 고생을 했어. 지금 발
가락이 감각이 없는게 아마 얼음이 박혔을 게야." "활빈을 하는 녹림당들 몇사람으로 죄없
는 백성들을 그렇게 할 수가 있나." 계준이 분개하여 중얼거리자 계화가 울부짖었다.
"우리가 어디 양민 축에나 드는 줄 알아. 길에 버려져 아이들 손에 찢기는 제웅보다두 못
한 신세지." 김승운은 사선골서 살아남았을 때 하던 말을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다 봤어. 천인공노할 짓들이었어."
"그래요. 이 포한을 우린 안 잊을 거예요."
"어서 요기라두 해야지. 그리구 저 애는 아직 잔맥이 남았으니 살아 날 수 있겠지." 계화
가 그제사 원향이 생각이 났는지 이불 옆에 다가앉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면서
말하였다.
"에이그 가엾은 것. 제 몸이야 이렇듯 걸레 조각처럼 잔명이 붙어 살아남았건만 식구들은
모두 불에 타 죽었으니 넋을 잃기가 그나마 다행이지." 서둘러 저녁을 지어 생존자들은 간
신히 기운을 차렸고 원향에게는 미음을 끓여 넘겨주었으나 입을 벌리지 아니하여 입가로 흘
러넘칠 뿐이었다. 계화가 입을 벌려주고 승운이 숟갈로 흘려주어 간신히 미음을 조금 먹였
다. 열이 오르더니 원향은 곧 인사불성으로 불덩이가 되어 앓았다. 산간에서 약이 따로 없어
몸을 덥게 해주고 미음이나 넘겨줄 뿐이었고, 계화가 대강 더러운 몸과 얼굴을 씻어주었다.
그들이 오계준이네 집에 당도한 지 사흘이 지나서야 군병들이 돌아오고 모군들도 부역에
서 놓여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원향은 열이 많이 내렸고 눈도 뜨게 되었으나 그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다 계준이나 승운이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타는 듯한 분노의 눈초리가 되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는 까닭으로, 계화 외에 사내는 아무도 방안에
범접을 못하였다.
원향이 기동은 하게 되었으나 도무지 주위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전혀 의미도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만 하였다. 양지바른 툇마루에 나와 앉아서 처마에서 고드름이 녹아 떨
어지는 낙수를 넋없이 바라보고는 하였다. 계화가 깨끗한 옷을 갈아입혔건만 아무데나 주저
않고 뒹굴어서 곧 흙투성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넉넉지 않은 홀아비의 집에 군식
구가 셋이나 불어났으니 그들은 제각기 양식이라도 벌어야 했고, 계화는 어루리벌 인근 여
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녀자들을 방문하여 점도 쳐주고 작은 푸닥거리 일감도 얻어왔다.
오계준과 김승운도 번갈아서 신천 읍내로 나아가 경도 읽어주고 부적도 팔았다. 그래도 실
성한 원향이와 철없는 사동 아이만 두고 갈 수가 없어서 그들은 번갈아서 원향이를 돌보기
위하여 집에 남고는 하였다.
집에 남는 사람이 여자인 계화일 적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래도 계준이나 승운이
남을 때는 골칫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것이 꼭 어린아이와 같
아서 일일이 속곳을 끌어내려 뉘어주어야 하였고, 허탄한 말에 대꾸도 해주어야 되었던 것
이다. 대개 원향이의 하는 짓이 이러하였다.
하루는 계화 승운 부부가 소굿에 불려가고 오계준이 혼자 집을 보는데 툇마루에 앉아서
흥얼거리던 원향이가 갑자기 부르짖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죽이고 언니도 죽이고 엄마도 죽이고 준보도 죽이고 이번에는 누굴 죽이
랴. 원향이를 죽일까 말까." 계준이 측은하여 방문을 열고 내다보다가 얼결에 대꾸하게 되
었다.
"원향이는 안 죽인다. 너는 이렇게 온전하지 않으냐?" 원향이가 갑자기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 계준이 쪽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흥, 내가 속을 줄 알구?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잡아먹으려구. 불에다 구워 먹을 거지?
불, 불, 아아 뜨거워." 원향이는 두 팔을 허위적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계준이가 진정시키려
고 뛰어나와 원향이의 두 어깨를 잡으니 원향은 금방 울상이 되어 두 손을 맞부비면서 빌었
다.
"제발 살려주세요. 창으로 찌르지 마세요. 우리 준보두 살려주셔요. 시키는 대루 할게요."
원향이는 할 바를 모르고 섰는 계준의 발 아래 주저앉더니 스스로 치마를 위로 훌떡 걷어올
리며 뒤로 발랑 눕는 것이었다. 비록 속곳은 입었으나 처녀의 무릎과 허벅지의 속살이 드러
나 있었다. 계준이 민망하여 고개를 돌리니 원향이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자요... 살려달라니까요."
그러면서 원향이가 제 속곳을 풀어 끌어내렸다. 계준은 혀를 차면서 우악스럽게 원향이의
팔을 낚아채서 일으켰다. 다시 자빠지려는 원향이의 뺨을 후려치면서 계준은 꾸짖었다.
"네 이년, 아무리 고초를 겪어 실성했다지만 만신 몸주를 받았다는 년이 이렇게 심약하
냐?" 불이 번쩍하도록 따귀를 얻어맞고도 원향이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는 이내 목소
리가 달라졌다.
"그래, 나는 덕물산 장군님 영을 받으련다. 느이들 군관들이며 벼슬아치들은 모두 내 칼
아래 추풍낙엽이 될 것이로다." 오계준은 일찍이 그의 아내가 실성할 때 겪은 바가 있어서,
원향이 정신을 잃은 것은 너무도 깊은 포한이 맺혀서인즉 그 포한을 한곬으로 모아주든지
아니면 풀어주어야 함을 잘 알았다. 그러나 원향이가 예전부터 겪은 원한이란 모두가 이 세
상의 그릇된 제도로써 빚어진 것이라 이렇듯 모질게 맺힌 한을 풀어줄 길이 없을 듯하였다.
계준은 나름대로 꾀를 내었다. 원향이에게 용병놀음을 시켜서 분을 풀게 하려는 생각이 들
었던 것이다. 그는 마루의 신당에서 신칼을 삼지창과 쾌자를 꺼내왔다.
"그래, 장군님 넋을 받아 못된 군졸들 양반들 모조리 몰아내라." 계준이 원향에게 쾌자를
입혀주고 삼지창을 쥐여주니 원향은 눈은 이상스레 번들번들 빛나고 볼에 홍조가 번져갔다.
계준은 문득 생각이 나서 절구통을 들어다가 마당 가운데 놓고서 그 위에 삿갓을 씌워놓으
며 말하였다.
"자, 이것이 군졸을 보낸 해서 관찰사란 놈이다."
그러나 원향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것이었다.
"아니야, 감영 감사 따위는 아무 자리두 아니야. 우리 장군님이 그깟 놈에게 눈이나 돌리
실까." "그러하면 누가 맘에 차느냐?"
"임금이지."
계준은 순간 소스라쳐서 얼른 빈 마당을 둘러보고 나서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쉬이..."
"흥, 임금이란 것이 백성 알기를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더니 어디 우리 장군님 칼을 받아
봐라." 원향이가 한 손에 삼지창을 쥐고 번쩍 쳐들더니 어깨가 건들건들 고개는 좌우로 꺼
덕꺼덕 차츰 흥이 오르는 것 같았다. 발이 땅 위에서 노닐기 시작하다가 겅정대며 뛰어올랐
다. 원향이가 무업을 받으려고 몇가지 사설을 계화로부터 배웠으나 그리 익숙하지는 않았는
데 거침없이 가락에 실려서 나왔다.
"에에헤 어부엽던 군웅이며 두렵던 군웅님이 동에 청제 들어오는 군웅, 남에 청제 들어오
는 군웅, 서에 백제 들어오는 군웅, 북에 흑제 들어오는 군웅, 군웅님 맵시 호사 볼작시면
만산 천군 군웅님이 들어오는 것을 볼작시면 군웅 뒤에 수부가 없으리까, 상청 수부 중청
수부 하청 수부 문안 수부 문밖 수부, 기 들던 수부 영기 들던 수부님 네 들어올 적에 상목
은 쥐털 박어 수실 영띠 매고, 어부엽던 군웅님네 수부 군웅이며, 오방신장 토주지신 가신
가택 놀러 오는 군웅, 문밖 군웅 문안 군웅님네 무섭던 군웅님네 상마 물려 질끈 매고 앞뒤
걸쳐 질끈 매고 너른 모청색 옥색이 주라 줄목이 숱많은 의상이 고리비듬 색비단이, 무섭던
군웅이며 두렵던 군웅이며 거리 노중 군웅이며, 신수 사나우면 다 잽혀가는 군웅, 신수가 불
길허면 주당고두 걸려 가는 군웅, 신수가 해불길하면 노중고도 불려가는 군웅이며, 수부 군
웅 주당 군웅, 노중 군웅, 무섭구 두려운 군웅님네 옛날 옛적부터 혼인길에 많이 따르고 환
갑에도 가는 군웅, 노중에도 가는 군웅, 어디 사방 산천에 조선 팔도 팔만 장안에 억만 가구
여 수많은 가중 수많은 정중에, 솔잎으로 뿌린 듯이 무섭구 두려운 군웅님네다, 그 힘으루
사는 사람은 어디를 가랴 허면 날 일진을 받아가지고 가고 함부로 가면 군웅질이도 제껴 가
구 수부 고에도 제껴 가구 노중 고에도 제껴 가구, 어쨌든지 환갑에도 제껴 가구 혼인에두
제껴 가는 군웅님네, 무섭구 두려운 군웅님네 에헤어 에헤이 허어." 원향은 어디서 그런 총
기와 신명이 솟아나는지 삼지창으로 허공을 연신 찌르고 베면서 삿갓 씌운 나무 절구 주위
를 춤추며 맴돌았다. 역시 계준의 생각은 들어맞아서 그때에 원향의 이리저리 갈라지던 생
각들이 한곬에 모이는 듯싶었다. 원향의 뺨은 붉어졌고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쾌자 자락은
참으로 마상에 올라 달리는 장군의 전복처럼 나풀거리고 삼지창은 햇빛에 번득였다. 원향이
가 삼지창으로 절구를 똑바로 찌르듯이 하고서 외쳤다.
"어어허 우리 덕물산 장군님 나가신다. 욕심 많고 새암 많고 인정 없는 임금의 목을 베러
백마 타고 나가신다. 이 장군이 뉘시냐. 옛날에 위화도 훌쩍 건너 요동 삼천리 정벌하던 장
군이다. 어어허 구월산 삼성사에 올린 장군이다. 배고파 죽은 영산, 맞아 죽은 영산, 찔려 죽
은 영산, 갇혀 죽은 영산, 목매 죽은 영산, 복장이 터져 죽은 영산, 시름시름 앓다 죽은 영
산, 모두 모아서 천군 만마로 되어 질풍같이 짓쳐나온다. 헛쉬이, 쉬이." 원향이가 다가들어
삼지창으로 거세게 찔러대니 절구가 우쭐우쭐 춤을 추더니 드디어 삿갓이 굴러 떨어졌다.
원향이는 지체 않고 삼지창에다 삿갓을 꿰어 높이 쳐들었다.
"우리 천군이 마군의 목을 베었구나. 건곤이 바로 서고 천하가 태평이라. 이제야 팔도 백
성 살겠고나. 에라 이번엔 우리 몫이다." 원향이는 창에 꿰었던 삿갓을 내동댕이쳤다.
"이번엔 우리 어미 몫이다, 에잇."
다시 창에 꽂아 동댕이치고, "우리 언니 못이다. 우리 준보 몫이다."
하고 나서 원향은 제 몫이라며 아예 삿갓을 제 머리에 얹었다.
"나라님이 따루 있느냐, 내가 나라님이지. 어어허, 군사는 몽땅 병장기 버리고 바다에나
들어가라. 어어허, 벼슬아치들 모두 산에나 들어가라. 얼씨구 좋다. 절씨구나." 원향이는 삿
갓을 쓰고 겅정거리며 마당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지칠
줄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한참이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원향은 숨이 막혀오는지 가슴을 움
켜쥐고 섰다가 쓰러졌다. 오계준은 그만 얼이 빠져서 한쪽에 비켜선 채 멍하니 바라보다가
원향이를 안아다가 뉘었다. 원향이의 뺨에서 홍조가 가셨고 깊은 잠에 빠졌는지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준이 진작부터 여러 무당의 굿하는 광경을 보았으나 이번처럼 서슬이 푸
르고 엄숙하며 격렬한 굿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안마당이 내림굿을 열어주면서 원향이 큰
무당 될 자질이 있다던 말이 헛말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실감하였다. 저녁때 계화 부부가 돌
아왔고 계준이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계화는 무릎을 치며 기뻐하였다.
"참 좋은 생각을 허셨수. 그렇게 거듭 놀다 보면 제 신명으로 정신이 돌아오게 될 거유.
우리 아예 제웅으루 군졸두 만들어줍시다. 원향이가 신칼로 썩썩 베어 넘기게." 그러나 김
승운은 뭔가 꺼림칙한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글쎄... 정신이 돌아오는 건 좋지만 어느 관가 부스러기가 보면 탈이 날 게야." "실성하
여 입끝에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소리를 가지고 언놈이 뭐라구 하겠나. 제발 포한이 풀려서
제정신이 돌아오길 바래야지." 계준은 승운이 불안하여 걱정하는 말을 막았고, 계화가 중얼
거렸다.
"어쩌면 그럴지두 몰라요, 우리 원향이 데리구 대굿이나 한판 해볼까." 그러나 김승운은
커다란 부엉이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잖아도 세상이 어수선한데 공연히 사방의 구경꾼을 모아 원향이의 써늘한 헛소
리를 들려주자는 게야 뭐야. 이를테면 사선골과 탑고개서 죽은 온갖 귀신들을 불러들여 푸
념시키는 노릇이라, 혐의 지기 꼭 알맞지." "대굿을 벌일 필요는 없지. 하여튼지 원향이가
기왕에 몸주를 받았고, 이제 이 길로 들어섰으니 무업도 배울 겸 하여 실컷 놀게 해주어야
지. 정신이 오락가락할 적마다 굿을 시켜보아. 평소에는 못해내던 사설이며 소리도 큰무당
뺨치게 술술 읊어내더라니까." 계화와 김승운 부부가 원향이를 구명하여 오계준이네 집에
온 지도 어언 한 달이 되고 있었다. 그들은 신천서 문화까지도 나가보게 되었고, 구월산 인
근의 소문을 한가지씩 얻어 들을 수가 있었다.
토포군은 열흘 만에 물러갔고 많은 사람들이 해주감영으로 끌려갔다는 것이었다. 봉산 서
흥으로 가는 나루터나 요로마다 군병들이 나와서 왕래하는 백성들을 치밀하게 기찰하는데
폐해가 자심하다고도 하였다. 소문은 뒤이어 소문을 낳아 구월산 인근 마을은 개미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했다는 둥, 아직도 산속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둥하여 놀라서 수
십 리 밖으로 난피하였던 백성들은 길양식도 떨어지자 유리걸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계준이네서는 비교적 소상하게 돌아가는 사정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으니, 푸닥거리며 점을
하러 밥술 깨나 먹는 집으로 돌아다닌 탓이었다. 대개 그런 집들이란 관에 연줄이 닿게 마
련이라 향수나 길청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가 있던 까닭이다. 재령 쪽에
서는 구월산이 어육이 된 지 나흘 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병장기를 들고 당나루를
건너 들어왔다가 검산서 하룻밤을 새우고 물러갔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훨씬 오랜 뒤에 토
포군이 송화에서 나오는데 신천서 빠지는 길과 맞닿은 장호령 고개에서 작은 접전이 있었다
는 것이었다. 수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골짜기에 매복하였다가 군사들을 향하여 수십 방을
방포하여 많이 다치고 죽었다고 하였다. 관군이 전열을 수습해서 고개 위로 추적했지만 그
들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토포군은 장호령 아래 사거리서 행군을 멈추고 송
화와 신천에 파발을 놓아 요로에서의 기찰을 강화시키도록 하고 나서 학령을 넘어갔다는 얘
기였다. 송화 은율에서 심사를 받았던 백성들 가운데 구월산 화적당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
들도 풀려나지 못하다가, 풍천의 바닷가 쪽에 황무지를 정하여주고 개간하여 살도록 영이
내렸다고 하였다. 실로 탑고개와 사선골은 완전히 폐촌이 되어버린 것이다.
계화와 김승운 부부는 계준이가 도량이 넓어서 제 집에 함께 살도록 해주고 있지만, 언제
나 이곳은 그의 구역이라 인근에 나돌아다녀도 마음이 편하지를 않았다. 어떤 집에서는 계
준이가 와야 액땜이 되겠다고 그들을 물리치기도 했던 것이다. 하루는 계준이와 김승운이
일을 나가고 계화가 원향이를 데리고 집에 남아 있었다. 총각도 계준과 승운을 따라 일을
나갔고, 계화는 원향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참빗으로 빗질을 깨끗하게 해주었다. 양지쪽에 나
와 낮으면 제법 무릎이 다사로워지는 것이 봄기운이 가까워진 듯하였다.
"에이그 우리 용녀 애기 얌전두 하다. 어느 대감님이 짝을 채우실지 이만허면 당을 모셔
두 부끄럽지 않겠구나." 계화가 스스로 흡족하여 창백한 원향의 뺨을 토닥여주며 중얼거렸
으나. 원향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퀭한 눈으로 먼산만 바라볼 뿐이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니?"
"울든 재이 짖든 재이 마루 아래 수캐부랄이 덜렁덜렁하아네." 계화의 물음에 원향이는
오히려 손가락질을 하며 상대를 웃기려 들었다.
"그래 우습기도 하구나. 우리 탑고개 만신 성님이 계시면 네 얼을 찾아줄 텐데 어디 한번
놀아볼 테냐?" 계화는 문득 오계준이 일러주던 말이 생각나서 쾌자며 삼지창을 내왔다. 그
리고는 원향에게 입혀주었다.
"자 봐라, 너는 용녀야. 천군을 거느리고 사를 물리쳐야 한다." 다시 신칼을 한 손에 쥐
여주니 원향이 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창날을 보자 부르르
떨면서 위로 치켜들었다.
"옳지 옳지 그러고..."
계화는 오계준이 이른 대로 절구를 손가락질해주며 외쳤다.
"저게 나쁜 장수이니라. 저것의 목을 베어보아라."
원향이 우쭐우쭐 어깨를 들썩이며 마당을 한바퀴 돌더니 갑자기 계화 쪽을 한번 돌아보고
나서 삽짝을 빠져나갔다. 때마침 우산포의 이정을 보는 자가 서리와 나졸을 뒤에 끌고 은정
쪽에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요즈음 인근 군마다 호적에 빠진 자라든가 유민이나 수상한 자
들이 없는가 하여 호구 조사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화는 그들이 오고 있는 길을 마
주 달려가는 원향이를 보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서리의 번듯한 갓이 눈에 띄었고 나졸
의 더그레와 털벙거지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얘, 원향아 이리 돌아오너라."
계화는 소리지르며 뒤를 쫓아갔고, 원향은 삼지창을 허공에다 찔러대며 뭐라고 중얼거리
며 그들 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원향은 그제서야 관리들을 보았는지 처음에는 주춤 서버
렸다. 그러나 돌아서서 달아나지는 않고 그들이 가까이 올 때까지 못박힌 듯이 서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이르자 원향이가 삼지창을 쳐들더니 곧바로 달려들었다.
"에잇 이 마군들, 신칼 받아라. 쉬잇, 너희 임금이 어디 있느냐? 우리 군웅님 신력을 빌어
목을 베어주리라." 새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으니, 워낙에 미친 사람의 독기 품은 행
동이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을뿐더러 그 손의 삼지창이 날이 서지 않은 무구임에도 병
장기로 알아 관리들은 혼비백산하였다.
"아이쿠 나 죽네."
서리는 오금이 저린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졸은 엉겁결에
등을 돌려 달아났다. 사정을 아는 이정만이 길 옆으로 비켜났던 것이다. 원향이는 자지러지
게 깔깔 웃어대더니 주저앉은 서리에게 다가섰다.
"응, 네가 임금이로구나. 목을 베어 공을 세우리라." 원향이는 삼지창으로 그자의 번듯한
갓을 사정없이 찔렀다.
"아아, 사람 죽는다아."
서리는 목을 잔뜩 자라 모가지처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갓은 삼지
창에 꿰어져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마을 이정이 달려들어 삼지창을 쥔 원향이의 손목을 잡
아 비틀었고 연이어 뺨을 호되게 갈겼다.
"이런 미친것이 감히 누구를 욕보이느냐?"
계화가 뒤미처 달려와 원향이를 가로채듯이 얼싸안아서는 제 등뒤로 빼돌렸다. 계화는 두
손을 맞부비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정하였다.
"그저 실성한 것이 분별이 없어 그러하니 제발 덕분 너그러이 용서합쇼." 윗사람의 급한
지경을 버리고 달아났던 나졸도 이번에는 부끄러운 중에 결이 나서 되돌아왔다. 계화의 등
뒤에서 손뼉을 치며 웃어대는 원향이의 머리채를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
"이런 짐승만두 못한 년이 있나. 당장 관가로 끌고 가서 물고장을 내야겠다." "짐승은 사
람의 얼굴이라도 알아보지만 이것은 지금 넋이 없습니다. 한번만 살핍시오. 제가 무슨 벌이
든 받겠습니다." 계화가 뜯어말리며 사정하는데 원향은 머리채를 잡혔는데도 잘 참고서 두
손으로 나졸의 얼굴을 더듬어 할퀴었다.
"아이구, 이년 안되겠다."
나졸은 뒤로 잽싸게 물러섰다가 발을 들어 원향의 아랫배를 걷어차니 원향이는 숨이 콱
막혀 뒤로 나뒹굴었다.
"원향아, 우리 원향이..."
계화가 하얗게 질려 넘어진 원향이를 안는데 그제서야 정신을 수습한 서리와 두 사내들이
둘러쌌다. 서리는 분노 때문에 붓 같은 수염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고이헌... 이것들이 분명 이 마들 것들인가?"
이정이 뒤통수로 손이 가며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한 달포 전에 알지 못할 고장에서 왔습지요. 지금 오계준이라는 박수의 집에 얹혀 살구
있습니다." "달포 전이라... 그렇다면 혹시 구월산 명화적들과 내통된 것들인 지도 모르겠
군. 네 이년, 어디서 무엇하며 살다 왔는지 바른 대루 말하여라." 서리가 물었다. 계화는 애
가 달아서 이정과 서리를 번갈아 올려다보며 말하였다.
"업은 다른 게 아니라 만신이올시다. 흉년에 먹고 살 길이 없어 은율 송화 문화 등지로
떠돌다가 마침 일가뻘 되는 오박수가 잠시 춘궁이나 견디고 가라 하여 얹혀 살구 있습지
요." "허허 아직두 바른 말을 하지 않는구나. 저년들을 묶어라. 아예 모양을 내어 관가로
끌어다가 실토를 시켜야겠다." 서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졸은 허리에서 명주실 오라를
끌러 계화의 몸을 묶고 원향을 묶었다.
"제가 무슨 벌을 받아두 좋으나 이 아이는 지금 실성했사오니 용서하십시오." 이정이 아
무리 입장이 난처하기는 하여도 오계준과 그럴 수 없는 사이인지라 계화에게 물었다.
"계준이 지금 집에 있나?"
"마침 맞임개에 액땜굿이 있어서 오늘 식전에 나갔습니다. 어찌 이정 어른께서 잘 말씀해
주십시오." 서리가 곁에서 듣고 코방귀를 뀌었다.
"어림없는 수작 마라. 저년이 아무리 실성했다기로 할 말과 못할 말이 따로 있거늘 임금
의 목을 베겠다고 패설을 하였다. 너희 식구 전부의 몸으로도 때우지 못할 엄청난 발성이니
라." 아전과 나졸은 사정없이 두 여자를 꽁꽁 묶어서 신천을 둘러보며 키득거렸다. 계화는
아전에게 계속 사정하는 것이었다.
"나으리, 한번만 굽어살피십시오. 저것의 하는 양을 보셨겠지요. 금수와 다를 바가 없습니
다." 아전도 길 가는 동안에 원향의 광태를 보고 알아서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별반
대꾸가 없더니 드디어 입을 떼었다.
"아무리 미친것이라 하지만, 너무도 엄청난 발설을 하여서 어쩔 도리가 없다. 사또께 나아
가 아뢰면, 우리 안전께서는 워낙 사려 분별이 깊은 분이시라 방송하여줄 것이다." 곁에서
나졸도 한마디 하였다.
"보아하니 참 딱한 몰골이네. 그렇지만 말이 하도 엄청나서 나중에 이런 일이 이웃 사람
들 입에라도 옮겨져서 전해지면 자네들은 물론이요. 우리도 어육이 될 판일세. 저 어른이나
내나 향읍의 소리에 지나지 않으니 누가 감당을 한단 말인가. 잠시 고생이 되더라도 참아주
소." 계화도 그제는 더이상 애원할 맛이 없어 키들거리다가 또 주저앉아 발버둥치기도 하
는 원향이를 달래면서 관아로 갔던 것이다.
동헌 마당에 꿇어앉혀진 두 여자는 퇴청 시각이 가까울 무렵이 되어서야 나타난 신천군수
에게 잠시 문초를 받았다. 먼저 아전이 안으로 들어가서 무엇인가 아뢰었고 집장사령이며
형틀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군수는 통인과 책방만을 대동하여 동헌에 나와 앉았다.
"그래 너희들이 은율 백성이란 말이지?"
"예, 사선골서 난피하여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토포가 다 끝나고 각 고을의 수상자에 대한 심사도 모두 끝났는데, 어찌하여
본군에서 유민이 되어 남아 있느냐?" 계화는 묶인 채로 자꾸 일어나서 앞으로 나가려는 원
향이를 끌어 앉히느라고 애를 먹었다. 자신도 묶인 몸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드디어 원
향이가 벌떡 일어나 동헌 마루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에익 쉬이, 잡귀들 물러가라. 우리 군웅 대감의 서슬푸른 신칼로 네 목을 뎅겅 자르리
라." 마루 아래 섰던 나졸이 앞으로 나서면서 원향이를 우악스럽게 잡아 떼밀어버렸다. 원
향이는 다시 일어나려고 버르적거렸고 나졸이 그녀를 뒤에서 껴안고 힘을 쓰면서 내리눌렀
다.
"사또, 차꼬를 채워둘까요?"
"괜찮다. 잠시 하옥시켜두도록 하여라."
뭐라고 외치면서 울기 시작한 원향이를 나졸들이 달려들어 거의 떠메다시피 하여 밖으로
끌어냈고, 계화는 못내 안타까워서 뒤를 돌아보았다. 계화가 용기를 내어 말하였다.
"대매에 때려 죽인다 할지라도 저희는 입도 없고 할 말은 더욱 없습니다. 하오나 사선골
에서는 화적당이거나 양민이나를 가리지 않고 마구 살상하고 불을 질러서 그런 지옥이 없었
습니다. 저 애는 부모형제가 그 난리에 목전에서 창에 찔리고 불에 타 죽는 것을 보고 실성
을 하였지요. 그러니 어찌 구군복을 보고 헛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미친것이라 하나 상감께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패설 흉언을 하였다니 필시 이것은 평소에
누군가가 말이나 행동으로 가르쳐준 것이 분명하다. 네가 그렇게 지껄이지 않았더냐?" 군
수의 날카로운 질문에 계화는 소스라칠 듯이 어깨를 흔들었다.
"아이구머니 아닙니다요. 천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저희는 그저 궁벽한 산골에서 신당이나
세워두고 남의 궂은 일, 좋은 일을 들어주기도 하고 추수도 하여주며 양식이나 얻어다 근근
히 먹구 삽니다. 물론 국은이야 나면서부터 두터이 입고 살았다 하나 천지간에 분별이 없어
서 나라에 대한 일은 물론이요 관가에서 일어나는 일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물며 임금님
에 대하여는 입끝에 올린 적두 없습니다. 언감생심 저희가 팔천의 하나로서 그럴 리가 있겄
습니까." 군수는 다시 책방에게 무엇인가를 전해 받더니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업복이라는 자를 아는가?"
"모릅니다."
"사선골은 구월산 화적들과 내통하여 살았던 동네로 알려져 있다. 네가 어찌 그자를 모른
다고 하느냐?" "가끔 산에 사는 사람들이 내려왔고, 저희 동네에도 구월산서 밥술을 얻어
먹고 사는 집이 몇집 있긴 하였으나 저희는 그저 상관 않고 굿이나 하며 살았습니다." "김
기라는 자나 장길산이는 아느냐?"
"예 두 사람 모두 저희 동네에 가금씩 내려오곤 하여 얼굴은 압니다." "그들이 지금 어디
잇다더냐?"
"전혀 모릅니다. 산식구들끼리도 그런 말은 입 밖에 내질 않으니 저희가 어찌 알겠습니
가?" "자비령에 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느냐?"
"글쎄요, 하기는 봉산서 가끔 사람이 다녀가기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군수는 들고 있
던 서류를 한줄씩 짚어나가다가 갑자기 물었다.
"안무당이라는 것은 알겠군."
계화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 저 종이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를 모르니 망설이는 것은 오히
려 안다는 표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계화는 생각했다.
"얼른 대답해라."
"예, 알구 있습니다."
"그것이 장적의 어미인가?"
"예..."
군수는 노한 듯이 발을 굴렀다.
"이런 고이헌 것이 있나? 장길산의 어미 안무당이라는 것을 잘 안다는 년이 어찌 길산이
나 김기나 그들 혈당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는가?" 계화는 서슴없이 말하였
다.
"사또계서는 도련님의 동접 되는 이의 아내가 어느 댁 규수이신지를 잘 아십니까? 이는
그와 같은 말씀이십니다. 쇤네가 안무당을 아는 것은 그와 직업이 같아서 자연히 인근 동네
의 대소 굿에 동참한 적이 여러번이라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지요. 아무리 그의 아들이 녹
림의 수괴라 하나 저희가 굿을 하여 먹고 사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진작
에 저두 제 서방두 무업을 걷어치우고 화적당에 들어갔겠지요." 군수로서는 감영에 올리는
여러가지의 장계 속에서 이미 백성의 곤경을 수차례 알렸고, 특히 구월산 인근 마을이 입은
관군으로부터의 피해는 깊고 광범위하여 흉황의 백성을 진무하기도 어려운데, 엎친 데 덮친
격인 거병의 폐해는 참상일 뿐이라고 적어 올렸던 터였다.
군수의 이번 토포가 완전 실패였음을 알았고, 그것은 감영에서 책임을 져야 될 것으로 믿
고 있었다. 사실 구월산 사 읍 군수들의 견해로는 거병이 민폐만 극심하게 가져왔을지언정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는 참으로 무익한 것이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는 저들의 책
임도 모면하게 되는 일이요, 토포한 당사자에게 넘겨버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묵계가 이루어져 있었으니 본도 백성들의 참상을 낱낱이 조정에 아뢰고 이번
실패의 원인은 토포장의 경솔하고 무자비한 지휘에 있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그래, 저것의 부모는 무엇을 하고 살던 것들인가?"
"예, 원향의 아비는 원래 군관을 다니다가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사선골에는 저 애 어미
와 어린 동생이 살았지요. 애 어미가 일찍이 월정사 큰스님의 도움으로 아사를 면하고 나서
절의 여러가지 일을 맡아 품을 주어 양식을 얻어다 살았습니다. 남정네라고는 씨도 없는 집
이지요." "어린 남매와 사는 과부를 죽이기까지 했단 말이냐?" "그뿐이 아닙니다. 저희 동
네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아, 그만해두어라."
군수가 손을 들어 제지하고 나서 장교에게 일렀다.
"이것들은 은율 백성들이고 적당의 마을에 살던 것들이니 본현에서는 더이상 물을 것이
없겠다. 그 박수라는 자도 함께 하옥시켰다가 은율군으로 넘기도록 하여라." 이렇게 되어
김승운과 계화와 원향이는 신천군 토옥에 갇힌 몸이 되었다. 김승운을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느닷없이 나졸들이 나타나 묶어 거니 오계준이 아무리 이웃간의 정리가 있다 하여도
겁을 집어먹게 되어 그는 혼비백산 뒤뜰 장독대 사이에 숨어 있었다.
나중에 이정의 얘기를 듣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대강 짐작하여 밤이 이슥해서야 계준은 총
각 아이와 늦은 밥을 지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계화와 원향이가 염려되어 그
들은 바가지에 밥과 나물등속을 담아가지고 읍내로 나갔던 것이다. 계준은 따로이 인정을
쓰려고 돈 열 냥을 준비하였다. 관문 밖 향청 부근에 있는 신천 옥으로 찾아가 옥사정에게
인정을 집어주니 받아 챙겼고, 그들과 마음대로 얘기를 하도록 버려두었다. 계준이 읍내와
관가 부근에서 들어둔 얘기가 있어서 계화 일행의 앞일은 별로 걱정이 되질 않았다.
"저녁 가져왔네. 어이구 나는 어찌나 혼이 났는지 아마 사흘은 오줌도 못 쌀 게야." "뭐
별일 없을 테지. 아무려면 사선골에서두 목숨 붙여 살아 나왔는데, 난리 다 끝나구 죽기야
할라구." 평소에는 엄살이 심하던 부엉이 김승운이도 아내와 함께 갇혀 있어서인지, 제법
느긋하게 대꾸하였다. 계화는 제가 우선 밥 한술 떠넣고 원향이에게 먹여주곤 하는데 원향
이는 전보다 훨씬 얌전해진 듯하였다. 계화가 떠넣어주는 밥을 새새끼처럼 납죽납죽 잘 받
아먹는 것이었다.
"자, 물두 마셔가며 먹어야지."
계화가 물바가지를 입에 대주니 물은 싫고 밥을 다라는 시늉으로 밥바가지 쪽을 손가락질
하면서 칭얼거렸다.
"너무 염려할 거 없네. 지금 은율서는 온갖 사람들이 하도 많이 관가 출입을 하여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야. 어쨌든지 내가 노중에서 빼어낼 터이니 걱정 말어." "까짓 거 그
냥 놔두어. 죄없는 우리 같은 백성을 죽일 테야, 때릴 테야. 정말 이렇게 못살게 들볶으면
작당하여 관가를 들이쳐버릴 테다." 오계준이 말하자 김승운은 제법 결이 나서 두터운 눈
꺼풀을 치뜨며 중얼거렸다. 계화가 원향이의 입에다 밥술을 떠넣다가 참견하였다.
"놓여난다구 해두 도대체 어디루 가서 어떻게 먹구 산단 말이우?" 오계준은 잠깐 생각하
였다.
"까막내가 어떨지..."
"까막내라면 갖바치 박서방 집 말인가?"
김승운은 되몰었고 계화는 펄쩍 뛰었다.
"안돼요. 인근에서는 거기 마누라가 길산이의 누이인 줄을 다 알구 있을 거예요. 그리고
탑고개는 사선골보다두 더욱 끔찍하게 당했다는데, 틀림없이 관가에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
았을 거예요." "허허 하긴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오계준은 다시 안을 내었다.
"하는 수 없지 월정사로 찾아가 옥여스님이나 큰스님께 잠시 거두어달라구 사정드려봐야
지." "계화가 원향이의 얇은 어깨를 안으면서 말하였다.
"그게 좋겠수. 우리네야 아무데나 대처 가까운 곳에 가서 움이라두 세우면 살아가겠지만
얘라두 어디 마음놓이는 곳에 부탁해야겠어요." 오계준은 토옥의 통나무 칸살 앞을 떠나면
서 김승운에게 당부하였다.
"잠이나 푹 자구 가자는 대루 쫓아가게. 내가 오늘밤부터 손을 쓸테니까." 이튿날 등청
시각이 되자마자 형방은 계화 가족의 문초기록과 함께 압송할 사령 두 사람을 차출하였다.
형방이 그들을 은율로 보낸다는 것을 신천군수에게 아뢰고 나서 삼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오계준을 만났다.
"어찌되겠습니까?"
계준이 벌써 간밤에 그의 집을 찾아가 무명과 돈을 건넸던 터였고, 형방은 저들의 방송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형방은 자기가 빼온 문건을 계준에게 내주었다.
"은율의 형방 아무개와는 이런 일로 서로 빚진 게 많은 사이라, 내가 이 기록을 없애버리
고 저쪽에서 잘 인수하였노라는 문건만 보내주면 되는 걸세. 사실 사또께서도 이런 하찮은
일거리는 쉬이 잊어버릴 테니까. 신천 군계를 벗어나서 압송하는 아이들께 다만 몇푼 주어
탁배기라두 사먹으라구 하게나." "문화 어름이 어떨까요?"
"글쎄... 문화는 고작해야 여기서 이십리 지간이라 추산고개쯤이 어떨지. 거기서부터는 송
화 군내가 아닌가." 오계준이는 절을 꾸뻑 하였다.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 끝나구 나서 다시 찾아뵙지요." 오계준은 따로이 그들의 새
옷가지와 길양식 등을 준비하여 총각과 함께 먼저 떠났다. 사령 두 사람이 계화 부부와 원
향이를 오라로 묶어서 관가를 나섰다. 그들은 이미 형방에게서 지시를 받아서 결박도 그리
단단하지 않았고 욕설도 내뱉지 않았다. 그러나 원향이만은 마음이 놓이질 않는지 꽁꽁 묶
어서 앞선 자가 줄을 쥐고 끌고 갔다.
그들이 문화의 건지산 마루를 넘고 드디어 구월산의 남쪽 지류인 광대산의 아랫녘 추산고
개에 이른 것은 정오가 넘어서였다. 뒤따르던 사령이 투덜거렸다.
"이런 제미럴, 다 놓아주기로 약조를 하였으면 어서 나타날 것이지 공연한 다리품을 팔게
하는구먼." "이 고개에서 만나기루 되었다니 어디서 기다리겠지." 그들의 주고받는 얘기를
듣고 계화가 사정하였다.
"여보시우, 기왕에 풀어줄 작정이라면 우리 오랏줄이나 먼저 풀어주슈. 살이 배겨서 골병
들겠수." "에이 모르는 말 하지 마소, 그러다가 누구 눈에라두 띄면 우리는 된경을 치게 되
우." 사령의 대꾸에 김승운이도 사정하였다.
"이 깊은 산중에서 누가 본단 말입니까?"
"그러지. 이 사람들은 풀어주고, 저 실성한 것은 안되겠소. 저어기 어디 나무 밑에라두 가
서 쉽시다." 의논이 되어서 계화와 김승운이는 결박이 풀렸고 원향이는 묶인 채로 그들 옆
에 시름없이 앉아 있었다. 사령 한 사람이 길가로 노가 오락가락하더니 드디어 고개 아래서
기다리던 오계준이와 총각을 데리고 돌아왔다.
"여보쇼, 기왕 데려갈 것이면 고개 저쪽 아래서 기다릴 것이지, 여기까지 우리가 기어오르
도록 한단 말이우?" "미안허우. 그 고개 아래는 송화 군계가 아니라서 그리하였소. 혹시 문
화 고을 관리들이라두 보면 말이 나겠지요. 하여튼 수고많았습니다. 이건 얼마 안되지만 탁
배기라두 드시지요." 오계준이가 돈을 두어 냥 쥐여주었고 그들도 못 이기는 체 받아 넣었
다.
"자, 우린 갈 테요. 형방 어른 말씀이 큰길은 피하라구 그럽디다." "그런 걱정은 마시우."
신천의 관리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들은 원향이의 결박을 풀어주고 깨끗한 무명 치마 저고
리로 갈아입혔다. 계화 부부도 보퉁이를 끌러서 옷을 갈아입는다, 머리를 빗고 틀어올리고
얹는다, 미투리를 갈아 신는다 하면서 행장을 다시 수습하였다. 계준은 데리고 왔던 총각을
신천 우산포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내가 월정사에서 한 사나흘 묵어 갈 작정이니 집 잘 보구 있거라." "예, 다녀오세요."
오계준이와 계화 일행은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서 산길을 돌아서 들녘으로 나섰다. 곧 송
화 무더리로 흘러내려가는 까막내의 두 갈래 개천이 나왔다. 들판에는 흰눈이 덮여 있었으
나 개천은 녹기 시작하여 얼음 덩어리들이 여울의 이곳 저곳에 부딪치고 걸리며 흐르고 있
었다. 그들은 온정말을 우회하여 내고개를 넘어 막바로 구구월로 들어갈 셈이었다. 광대산
아랫녘에 당도하니 짧은 산협의 낮이 기울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가만있자, 여기서 까막내 박서방 집이 지척인데 내가 한번 슬그머니 들여다보구 올까?"
오계준이 말하자 계화가 나섰다.
"아니에요. 오서방은 남정네이니 누구의 눈에 띄든 수상쩍게 보일 거야, 내가 한번 가보구
오지." "그냥, 아무데서나 밤을 밝히구 가지."
김승운이 꺼림칙하여 반대하였으나, 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하여 노숙은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계화는 그들을 들판에 남겨두고 혼자서 까막내로 내려갔다. 마을에서는 불빛이 반짝
이고 있었다.
계화는 까막내로 들어서서 꼭 한번 가보았던 갖바치 박서방네 집을 찾았다. 싸리 울타리
너머로 감나무가 빙 둘러가며 섰던 것이며, 낮은 움의 말리고 있던 가죽과 도랑이 생각났다.
계화는 박서방네 집 앞에 이르러 삽짝을 밀어보았다. 놋쇠방울이 딸그랑거렸고 안에서 게
구가 왔소,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박서방이 틀림없었다. 계화는 반가워서 다시 삽짝을 급히
흔들며 말하였다.
"날세, 사선골 작은무당이여."
"뭐라고요..."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방문이 덜컹 열렸고, 방에서는 두 양주가 마치 쏟아지듯 뛰
어나왔다.
"살아 계셨구려."
삽짝에 걸린 나무 막대기 빗장을 뽑고 문을 열어주면서 박서방댁이 계화의 손을 잡았다.
계화는 어른 집안으로 들어섰다.
"성님은 어찌 되셨어?"
계화가 안무당의 안부를 묻자, 박서방댁은 나직하게 울먹이는 투로 속삭였다.
"온갖 고초를 겪으셨어요."
어디 계셔, 성님이 살아 계시다니."
계화가 마루에 오르기도 전에 건넌방 문이 열리고 안무당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불을 젖
히기는 하였으나 일어날 기운은 없었던지 문지방에 한 손을 받치고 엎드린 채였다. 머리는
흰 무명 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안무당은 볼이 움푹 꺼지고 초췌해 보였다.
"아이구 우리 만신 성님."
계화가 무릎걸음이 되면서 안무당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리자 박서방댁이 겨드랑이를
껴안아 안으로 들이밀었다.
"바람이 차요. 안으로 들어가셔요."
안무당은 젖은 눈을 옷고름으로 찍어내며 벽에 기대어 앉았고 박서방 부부와 계화가 둘러
앉았다.
"그 난리통에 용허게 살아 있었네."
안무당이 말하자 계화는 사뭇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살아난 게 다 뭡니까 성님, 우리 동네는 모조리 잿더미가 되고 사람들은 창에 찔려 죽었
지요. 우리는 신천 오서방네 가서 얹혀 있다가 쫓겨 오는 길이지요." 하고 나서 계화는 사
선골에 관군이 들어올 때 숲 사이에 숨이 있던 일이며, 욕을 당하여 다 죽어가는 원향이를
살려낸 것이며 오계준이네서 살다가 원향이의 광증으로 관원에게 잡힌 일 등을 이야기하였
다. 계화는 이어서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박서방에게 말하였다.
"요 너머 까막내 건너편에 우리 주인허구 오서방이 원향이를 데리고 기다리구 있어요. 내
가 살펴본다며 먼저 왔는데..." "어서 가서 데리구 오게.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꼬."
박서방이 나가고 나서 안무당도 탑고개서 살아 나온 이야기를 하였다. 물독 속에 숨던 일
이며 집이 타서 주저앉던 광경, 학살당한 사람들의 참상, 기어서 까막내까지 달아나오던 데
까지 이르자 안무당은 스스로 북받친 감정을 억제하느라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한꺼번에
토해냈다.
"헌데 어디 가셨수?"
"누구 말인가?"
"누구긴 누구요, 우리 큰박수 어른 말이지."
안무당은 차마 대답을 못하는데 곁에 앉았던 박서방댁이 조그맣게 말하였다.
"돌아가셨어요."
"그 피눈물나는 얘기를 어찌 다 할 수 있겠나."
안무당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장충이 죽어서 은율 관아 삼문밖에 전시되어 늘여놓
인 화적과 그 혈당들의 시신 틈에 끼여 있었다고 하였다. 관군이 사선골과 탑고개의 사람들
을 심사할 적에 처음에는 명화적의 식구들도 동률로 다룰 듯이 엄하게 찾아내고 하다가 어
찌 방침이 달리 감영서 내려왔는지 훨씬 누그러졌다고 하였다. 직접 화적당에 들지 않은 자
들은 따로이 양민으로 살도록 입적도 시켜주고 살 곳을 정하여준다는 것이었다. 안무당은
장충의 시신을 거둘 생각만으로 스스로 관가에 현신하였고, 토포장이라는 자로부터 문초를
받았었다. 의외로 토포장은 안무당을 정중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안무당은 그들이 길산
을 길에서 얻어다 키워놓기는 하였으나 그가 화적으로 저지른 짓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밝혔고, 토포장은 별로 대꾸가 없더니 그렇게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대의 양아들 장모에게 전하여라. 나는 최형기라는 사람이다. 비록 이번 거병으로 토포하
는 일에는 실패하였으나 내가 살아 있는 한 반드시 그 목을 베고야 말 것이다. 그대의 양아
들이 있는 곳이라면 최형기는 나라의 명이 없더라도 찾아갈 것이다. 비록 수십 년이 지나갈
지라도 언제가 한번 겨루어보기를 원한다고 전하라.
그가 특별히 명하여 안무당은 풀려났을 뿐 아니라 장충의 시신까지 거두게 해주었다. 관
군은 사선골과 탑고개의 사람들 중에서 도적의 식솔들과 산과의 내왕이 잦았던 사람들을 가
려내어 감영으로 압송하였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에게 죄를 묻자는 게 아니라, 일단
구월산 적당들이 다시 일어날 뿌리를 뽑아버리고 그들을 양민으로 순화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은 감영에서 직접 지시하는 일정 지역의 산간에 마을을 이루어 살게 될 것
이라는 소문이었다. 일단 해서를 벗어나 타도로 넘겨버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시신을 거두어 저 광대산 그전 재인말이 있던 들녘에다 모셨지. 나두 이젠 여길
떠나야지." 안무당이 말하였다. 계화는 자기도 어디론가 떠나서 거처를 정하여 살아갈 일이
막막하던 참이라 반기며 물었다.
"성님, 우리하구 함께 가십시다. 길산이를 찾아가보실라우?" 안무당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될 말이여. 이제 길산이는 내 혼자만의 자식이 아닐세. 어디 가서 촌사람들 쑥덕
거리는 소릴 들어봐. 구월산 장군님이 신통력을 써서 못 살게 된 백성들을 구하러 올 거라
구 수군거리지. 나는 그저 이런 난리가 있기 전에는 우리 아들이며 그 동무들이 나라에 큰
죄를 저지르고 세상에서 나쁜 놈 소리를 들어가며 사는 줄 알았어. 나는 나라가 무언지도
모르는 할멈이었지. 내가 길산이를 찾아가면 오히려 그 사람들 하는 일에 방해나 되고 거추
장스럽겠지. 나는 내 아들을 다시는 못 만날 거야. 우리 주인의 생각도 그러셨을 게야." "
나두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 어디루 가실라우?" "여기선 더 못 사네. 그렇잖
아도 가끔 은율이나 송화에서 장교가 나와 동정을 살피고 가는데, 이것들이나 살게 해주어
야지. 나두 탑고개 사람들이 나라에서 허가받았다는 동네루 찾아갈 생각이여. 이제는 노중에
서 죽는다 하여도 별루 여한이 없다네."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고 계화가 방문을 열었
다. 박서방이 김승운과 오계준이 그리고 원향이를 데리고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추위에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방으로 몰려들어왔다.
"우리 만신님이 여기서 이게 무슨 꼴이오."
"다 몸주님 덕분이네. 그애 이리 앉히게."
안무당이 멍한 시선으로 낮아 있는 원향이를 이끌어다가 아랫목에 앉히고 어깨를 두 손으
로 감싸안았다.
"에이그 가엾은 것, 네가 워낙에 큰 만신감이라 신장님들이 시련을 주시는 게다. 우리 용
녀는 앞으로 큰무당이 될 게야. 내가 영력 있는 사람은 제법 알아볼 수 있느니라." 원향이
는 얼이 없는 중에도 안무당의 따뜻한 말과 몸짓에 뭔가 느낌이 있었는지 얌전하게 품에 안
기더니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월정사 큰스님께 보일 작정이우. 그리구 우리 두 양
주도 어디루 떠나야지요." 김승운이 말하자 안무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나두 월정사엘 올라가봐야겠네. 그리구 나허구 함께 가세. 내가 자네들께 짐은 되지
않을 게야." "그게 무슨 말씀이우. 성님은 해서 무당의 제일 큰 몸주를 받고 계신 분인데,
짐이 다 무어요. 우리허구 함께 사십시다." 박서방댁이 말하였다.
"어머니, 길산이가 지금은 경황이 없어서 아우 소식이 없지마는 곧 전갈이 올 겝니다. 여
기서 사시는 게 불편하시면 길산이 있는 자비령으로 가시면 길산이가 다 알아서 편히 모시
겠지요. 며칠만 기다려보셔요." 안무당은 안색을 고치고 말하였다.
"아니다, 길산이는 공연히 사사로운 정에 매여서는 안될 사람이니라. 우리 같은 천생의 포
한을 풀어주고 진인을 모셔 미륵세상을 세워야 한다. 그애가 데려간다면 이 에미는 차라리
치마를 둘러쓰고 절벽에 떨어져 자진하는 게 나아. 너두 네 서방 모시고 다른 것에 정신 쓰
지 말구 살아라." 계화는 원향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래 원향아, 미륵세상이 온단다. 우리 같은 상것들의 원이 쌓이고 쌓여서 도솔천 용화세
상이 온단다. 어서 정신을 차려라." 그들은 관솔 등잔 불빛 아래 서럽고 피맺힌 원한을 씹
어가면서 새벽이 올 때까지 울고 또 웃었다.
이튿날 계화 부부와 원향이와 오계준과 안무당은 함께 내고개를 넘어 구구월로 들어갔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계곡에는 물소리가 가득하였고 봄을 준비하는 멧새들이 암수를 불러
우짖는 소리가 나뭇가지 사이에 가득 차 있었다. 월정사 아래 사당말에는 잿더미들이 말끔
히 치워지고 새로이 움막들이 생겨나고 집터가 다시 다져지고 있었다. 사당패들은 봄의 출
행에 나갈 준비를 하느라고 사당말의 너른 마당을 잡아 사물을 두드려 가락을 가다듬으며
춤사위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백련이가 계화와 안무당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어머님, 성님. 이게 꿈이요 생시요. 나는 모두 어육이 된 줄로만 알았어요." "이젠 다 끝
났다. 우리 용녀두 살아 있잖으냐."
백련이는 실성한 원향이를 보자 더욱 설움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월정사의 문루
로 들어서니 마침 옥여가 명부전에서 나오다가 황급히 다가왔다. 그는 침통한 얼굴로 안무
당을 향하여 합장 배례하였다.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제 고생이야 뭐... 죽은 사람이 한
둘입니까."
계화를 비롯한 김승운 오계준 등과도 인사를 나누다가 옥여가 뒤늦게 원향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원향이가 아니냐. 네 이 무슨 꼴이란 말이냐." 원향이가 어려서부터 제 어미
후례를 따라 월정사에서 자랐으니, 대뜸 옥여에게 농을 걸거나 웃음을 보여야 하건마는 시
선을 먼 곳에 보내고 아무도 바로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계화가 물었다.
"된목이골 장정들 가운데 살아난 이가 아무도 없습니까?" 오여는 고개를 떨구고 땅을 내
려다보았다.
"승려의 몸이 안타까웠지마는, 워낙에 관군의 토포가 급작스런 일이라서... 마두령과 오두
령도 죽었지요. 살아남은 사람들은 감영으로 압송되어 갔습니다. 꼭 한 사람이 무사했습니
다." "그게 누구요?"
"달마산 있던 업복이지요. 어제 월당나루를 건너 자비령으로 돌아가겠다며 떠났습니다."
안무당은 차마 길산의 안부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돌려서 말을 꺼냈다.
"자비령에서는 아무 전갈이 없었나요?"
"말득이가 왔었지요. 어제 업복이와 함께 떠났습니다. 구월산 식구들이 당한 일이며 장충
어른이 돌아가신 것과 모친께서 까막내에 계실 거라는 얘기를 전했지요. 자비령에서는 모두
들 죽더라도 문산고개를 지키든지 아예 감영으로 짓쳐들어가자고 의논이 분분했던 모양입니
다. 김선비가 극구 말려서 주저앉았답니다. 저도 분한 노릇이긴 하나 하루 이틀에 작은 싸움
한판으로 결판날 일이 아닌지라, 뒷날을 기다리자고 말을 전하였지요. 어서 들어가시지요."
안무당이 말하였다.
"큰스님께 뵈어야겠습니다."
"지금 그렇잖아도 죽은 이들을 위한 재가 올려지고 있습니다. 명부전에 계시니 곧 나오실
겁니다." 옥여가 그들을 바깥채에 안내하였다. 승려들 몇이 왔다 가고, 살림을 맡아보는 보
살들이 원향이가 실성하여 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눈물 바람을 하고 돌아가기도 하였다.
풍열이 언제나 그렇듯 잔잔하고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방에 들어섰다. 일행은 모두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풍열은 일행에게 한사람씩 안부를 묻고 나서 안무당에게 말하였다.
"장노인이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소. 평생 남에게 해악 끼친 바도 없고, 고생하여 살다 간
사람이니 극락에 들었을 게요. 불법이 행하여지지 않는 세상이라 어찌 부처님이나 산신 용
왕님만 바라구 살겠소. 중생이 저토록 간난 가운데 있으니 보살이 몸을 드러낼 때가 왔소이
다. 우리 길산이 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서 법력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오. 승속
의 구하는 바가 다르고 살고 죽음이 판이하지만 중생의 원하는 세상이 바로 부처님의 세상
이오. 이제는 불도에 귀의하여 여생을 여기서 보내도록 하시지요." 안무당은 머리를 조아리
고 말하였다.
"제가 아무리 만신 소리를 듣는 무당이라 하나 인간 세상의 복락을 걱정함은 부처님이나
서낭님이나 다르지 않지요. 스님께서는 우리 같은 것들에게도 언제나 넉넉하셔서 사당 광대
이든 괴뢰배이든 노비든 가리지 않고 일체 평등히 여기시며, 산간 백성들에게는 수십 년래
보시를 멈추지 않으시니 보살이 따로이 없는 듯합니다. 서낭님이나 우리 대감님들이나 신장
님들 또한 늘 그런 백성들의 환난 고초 가운데 계시니, 제가 어찌 작은 소임이나마 버릴 수
가 있겠습니까. 저는 길산이나 딸아이에게도 짐이 되기는 싫고, 또한 무업으로 만신 몸주를
섬기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답니다. 이 사람들과 해서를 떠날까 하지요." 풍열은 잠잠히 듣
고만 있었다. 그의 태도는 안무당의 말처럼 언제든 넉넉하고 평안해 보였다. 그러나 백성이
원하는 세상이 부처가 원하는 세상이고 보살이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할 때에는 눈이 빛나
고 목소리가 명료해졌다. 그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 박수나 무당들에게도 굳이 불법을 장
광설하지 않았고, 그들의 믿는 대상을 존중하고 해량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중생의 고통과 함께 한 것은 무엇이든 부처가 가운데 깃들여 있으며 부처의 다른 모습일 뿐
이라고 설한적도 있었다. 풍열은 이윽고 종알거리며 알지 못할 노래를 읊조리는 원향이의
손을 잡아 가만히 쥐고서 혀를 찼다.
"세상의 악이 네 성을 앗아가버렸고나."
계화가 풍열에게 말하였다.
"사선골이 불에 타고 촌민들이 학살될 적에 저 애는 관군에게 욕을 당하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간신히 구명해냈지요. 그 이후로 죽은 듯이 앓더니 몸은 회복되어서도 제정신이 돌
아오지 않습니다." 김승운과 오계준이도 신천서 원향이의 광증으로 관아에 잡혀갔다가 뇌
물을 쓰고 놓여난 것을 말하였고, 백련이는 곁에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훔치고 하는 것
이었다. 풍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빈 몸은 곧 불법이 떠나버린 나라와도 같도다. 미친 나라를 어찌 구하겠느냐. 나라의
성을 구해내려면 악을 선으로 채워 청정하게 해야 되느니라. 예부터 대각을 얻은 이들은 스
스로 살신하여 세상에 좋은 도가 펴지도록 하였으니 어찌 그것이 맺힌 원한으로 되었겠느
냐. 자비는 물과 같아서 뒤덮어쓴 티끌을 씻어주시고 지혜는 칼 같아서 맺힌 원한을 끊어
씻어주시니 일체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 세상이 구해져야 하느니라. 나무관세음보살."
풍열은 원향의 손목을 놓고 일어나 좌중에 합장해 보이고 나서 백련이에게 당부하였다.
"자네가 꼭 붙어서 원향이를 돌보아주고 아침 저녁 예불 때마다 데리고 나오도록 하여라.
기도하는 사이에 본성이 돌아올 것이니라." 사흘을 쉬고 나서 오계준은 먼저 돌아갔고 안
무당과 김승운, 계화등은 월정사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옥여가 계속 간곡하게 말린 탓도
있지만, 계화는 늙은 안무당을 모시고 먼길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날씨가 풀리
고 눈이 녹을 새달에나 하면서 그렁저렁 월정사에 얹혀 지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구월산 토포가 있은 지 두어 달이 넘어서야 길산은 자비령을 떠났다. 그는 김기, 말득이
그리고 선흥이를 데리고 월당강의 지초나루를 피하여 밤중에 작은 여울을 건넜다. 그들은
안악의 부처고개로 하여 구월산 동남로를 타고 잠입하였다. 이제 슬픔은 이미 스러져버리고
가슴 가운데 옹이가 되어 박혀 있을 뿐이었다. 업복이가 돌아와 된목이 골의 최후를 알릴
적에 길산이는 입을 꼭 다물고 얼굴을 위로 쳐들고 참다가 눈물만을 소리없이 흘렸고, 말득
이 선흥이는 주먹을 부르쥐며 당장 하산할 태세를 보였으며 흥복이와 선일이가 그들을 달랬
다. 김기는 마루에 엎드려 통곡하고 나서 며칠 동안 산채의 자기 처소에 박혀서 나오지 않
았다. 길산이는 그때에 처음으로 무사 최형기의 이름 석자를 뇌리에 새겼다. 그때만 해도 길
산은 최형기가 자기의 피맺힌 숙적이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하였다.
길산이 일행은 아사봉 된목이골로 올라섰다. 동루와 남루는 불에 타버리고 검은 통나무
기둥 몇개와 주저앉은 지붕의 타버린 잿더미만 남아 있었고, 된목이골의 분지 가운데에도
역시 산채가 타버려서 주춧돌이며 숯기둥만이 서 있었다. 그들은 언덕 위에서 묵묵히 된목
이골의 빈터를 내려다보았다. 그늘에 남은 눈이 아직도 두텁게 얼어붙었고 바람이 결을 이
루어 한차례씩 휩쓸며 지나갔다. 멀리 월정사 쪽으로 내려가는 조도의 위와 아래로 뾰족뾰
족한 잣나무와 소나무의 울울창창한 숲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소리도 목이 멘 듯이 우우하면
서 우는 듯하였다.
길산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고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정신이 났다는 듯 뒤를 따랐다. 김
기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으며 길산은 자꾸만 새파랗게 갠 차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
다. 폐허 가운데서 길산은 이리저리 거닐다가 발에 툭 채는 물건을 집어올려 보았다. 이가
여러 군데 빠진 사기 대접이었다. 길산은 대접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며 서성거렸다. 어쩐
지 낯이 익었다. 그와 감동이 만석이 등등이 둘러앉아 그 그릇에 탁배기를 따라 돌려 마셨
을 게 틀림없었고, 그들의 지분거리는 농지거리와 높다란 웃음소리들이 귓전에 생생하였다.
어디선가 성님들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선흥이가 울먹울먹하며 무
엇인가 들고 다가왔다.
"성님, 이것 보슈. 만석이 것이 틀림없수."
선흥이는 혈조에 녹이 잔뜩 슬고 봉이 부러져나간 장창의 창날을 주워 들고 있었다. 길산
이도 창날을 보자 오만석의 얼굴이 생각났는지 공연히 코를 훌쩍 들이마셨다.
"어디 보자."
길산이는 선흥이에게서 창날을 받아 몇번 만지작거리다가 품안에 소중하게 집어넣었다.
"이 포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갚아줄 테다!"
말득이가 중얼거렸다. 김기는 사방을 줄러보고 돌아와서 모사답게 말하였다.
"역시 된목이골은 퇴로가 없었소. 스스로 심장한다 하여 우묵한 곳에 숨기는 하였으나, 마
치 짐승의 굴혈 같아서 입구만 막히면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셈이오. 그에 비하
면 우리 자비령 산채는 골짜기가 서로 모이는 곳에 있어 유리합니다." "풍열스님께서 기다
리실 테니 어서 내려갑시다."
길산이 재촉하여 그들은 조도를 타고 월정사로 내려갔다. 만일을 염려하여 일행은 기다리
고 말득이가 먼저 월정사의 후문으로 들어가 옥여를 만난 다음에 별일이 없어 그들을 데리
러 와서 말하였다.
"성님, 모친이 여기 계십니다."
"뭐라구..."
길산이 반갑고 놀란 중에 마음이 급해져서 앞장서서 경내로 뛰어들어갔다. 길산이 온다는
말을 듣고 안무당도 바깥채에서 대웅전 앞마당으로 뛰쳐들어오고 있었다. 안무당은 마주 뛰
어들어오던 길산과 마주치자 멈칫 서버렸고, 길산은 달려들어 어깨를 감싸안았다.
"어미니..."
"그래, 그래, 아버지는... 얘기 들었지?"
"들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모르는 천하에 불효자올시다." "아니다. 내가 박서방하구 관가
출입을 하며 수습을 하여다가 재인말에 모셨다." "저 때문에 얼마나 핍박이 심하였습니
까?"
안무당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토포장이 그랬지, 너를 꼭 잡겠다구 그러더라. 너
를 잡지 못한 것이 가장 분한 것 같더라. 나는 어찌나 고소한지. 아버지도 네가 예사 명화적
당이나 되라고 그러신 게 아닐 게다. 넌 겪지 못했지만 토포군은 악귀보다 더하더라." "어
머니, 인제 염려 마십시오. 자비령 가서 사십시다." "아니다. 까막내 네 누이한테두 말했다
만 너는 우리 같은 식솔에나 얽매일 사람이 아니다. 대장부가 뜻이 있으면 곧장 가야지. 요
즈음은 꿈에 서낭님이 나타나셔서 여러가지 일러주시기도 하고 황천이 보이기도 한단다. 아
마 얼마 못 살 게야." 그들이 반기고 하는 중에 김기와 말득이 선흥이 그리고 옥여와 김승
운, 계화 등은 그들 뒷전에 서 있었다. 김기는 스스로의 감정을 누르지 못하여 소매를 들어
눈시울을 닦았다. 옥여가 곁에서 보기 민망하여 김기의 등을 밀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길산이 뒤늦게 안무당과 떨어져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김기가 노모와 아내를 탑고개에서
잃은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곧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먼저 자기 감정을 드러내기 전에
주위 사람들부터 보살피고 배려해야 될 그로서는 몹시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그는 자비령
산채에서 아무도 보고 듣지 않는 한밤중에 깨어 일어나 장충에 대한 사무치는 슬픔으로 가
슴이 찢어질 듯하였던 것이다.
그를 손수 받아내어 이빨로 탯줄을 잘라주고 돌림젖을 얻어먹여 살려낸 장충이야말로 길
산에게는 아버지 이상의 무엇이었다. 무동 노릇으로 소년기를 보낼 적에 장충은 어린 길산
이 낯선 고장의 장터에서 양갓집 아이들께 구박받고 몰매를 당하고 나면 언제나 속삭이던
말이 있었다. 저것들은 우리보다두 더 천한 것들이다. 사람을 인정으로 대할 줄 모르고 밥술
이나 겨우 먹는다고 자세하는 것들이니 얼마나 불쌍하냐. 그러면 길산은 참으로 복건에 까
치등거리 입은 아이들이 장바닥의 각설이보다도 못해 보이던 것이다. 장충은 그에게 땅재주
나 춤을 가르쳐주면서 택견의 기본 몸짓을 일러주곤 했었다. 생명과 생각과 재간 그 모든
것을 물려준 이였다. 안무당은 그에게 덤덤하게 대하였으나 그의 남편에게도 그러하였고 신
딸인 봉순이를 길산과 짝지어 수복이를 손자로 보고서도 자상한 할머니는 못 되었다. 이제
길산에게는 한분 남아 있는 한 맺힌 혈육이란 안무당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길산은 곧 흥
분을 가라앉히고 남자들끼리 따로 달마암으로 올랐다. 그들이 달마암에 오르니 풍열은 상좌
의 전갈을 받고 마루 끝에 나와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길산이 오느냐?"
길산을 위시한 김기 선흥이 말득이 등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합장배례를 올렸고 풍열스
님도 마주 합장하였다.
"어서 올라오너라."
그들이 방에 들어가 앉자 풍열은 따뜻한 시선으로 길산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그래 모친은 뵈었느냐."
"예, 방금 죄었습니다."
풍열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김기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식구들을 잃었으니 얼마나 애통한 일인가. 그렇지만, 여덟 가지 환난 중에 제일
마지막 난리를 겪고 있으니 불법이 있기 전이나 불법이 멸한 뒤의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일
세. 불법을 세우고 불법이 희게 빛날 세상을 준비하려면 우리가 가장 아끼고 애틋이 여기는
것들을 먼저 잃어버리고 보시하지 않으면 신념이 생겨나질 않는 게야. 더구나 김선비 자네
는 글을 아는 자로서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라야 천한 백성들의 업고를 깨닫게
될 테지." 김기는 묵묵부답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강선흥이가 볼멘소리로 대꾸
하였다.
"쳇, 큰스님은 언제나 지당하신 말씀이나 하구 계시면 그만입니까. 바로 발치에서 죄없는
사람들이 찔려 죽고 타죽고 끌려가고 하는 판이었는데, 법당에서 공염불이나 외었겠지요. 우
리한테 부처에 대한 장광설을 펴지 마우." 말득이도 그 말에는 진실로 동감이라 입을 비쭉
하며 옆으로 돌아앉았다. 풍열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좋은 말이니라. 사선골과 탑고개가 타오르는 연기를 똑똑히 보았으며 방포 소리도
들었느니라. 옥여를 시켜서 승병을 이끌고 나아가 관군과 싸울 수도 있었겠지. 총포와 갖은
병장기에 말에 탄 날랜 토포군 수백 명과 각 고을의 향군을 어찌 대적하겠느냐. 물론 의기
는 세울 수 있었겠지. 관군은 구월산 토포가 거병의 과녁이었다. 나는 오히려 월정사 대중들
의 분기를 가라앉히라고 타일렀다. 한판만 싸우고 말 것이냐. 저들은 고작 감영의 일개 도백
의 영을 받고 나온 장수와 군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풍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왕궁을 쳐야만 할 것이다. 산속에서 수도하는 승려로서 가당치 않은 말을 한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법을 이루는 길은 부드러운 말과 온화한 행실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라. 청천
에 뇌성인가 천봉이 화답하는도다." 풍열은 길산에게 말하였다.
"대성법주를 잊었느냐?"
"대성법주라뇨..."
"갑송이를 벌써 잊었구나."
길산은 깜짝 놀랐다.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승속이 다르니 아예 접어두고 있었지요. 그 사람이 월정사에 왔습
니까?" "아니, 어쩌면 올지두 모르겠다. 며칠 전에 금강산에서 사람이 다녀갔다. 운부대사
께서도 이번 일을 자세히 들으셨을 게다. 갑송이는 너희들 안부를 물어왔느니라." 길산이
탑고개를 떠나 운부대사를 찾아 입산 수도의 기간을 보낸 뒤로도 몇해가 지났으니, 실로 갑
송이에 대한 기억은 어릴 적에 재인말에서 함께 뒹굴던 시절의 것이 더욱 생생하였다.
"갑송이가 아직도 금강산에 있습니까?"
길산이 물었고 풍열이 말하였다.
"장안사에서 승병을 조련시키고 있다. 한다. 이번에 운부스님께서 사람을 보낸 것은 일단
각처의 뜻있는 자들을 한데 묶어보자는 데 있느니라. 해서, 서북, 관북, 관동의 사방에 흩어
져 있는 이들이 한번 모여서 의견을 나누어보자는 것이지. 이제가지는 근기지방과 삼남은
연줄도 닿지 않았고 다만 산간 승려들의 운수 행각에서 오고간 풍문이 전해질 뿐이었다. 여
환이란 승려와 이경순이란 사람이 경기도에서 오기로 되어 있다. 여환은 내 문하로 월정사
에서 상좌를 지낸 아이인데 아마 자네들도 생각이 날 것이다." 길산이 물었다.
"여환수좌라면 언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묘정 일여 옥여 스님과 함께 도반이었다구요.
헌데 이경순이란 사람은 어떤 분입니까?" 길산이 우대용과 더불어 가어사 학선이의 도움을
받아 해주 감영옥을 탈옥하여, 공수원에서 잠시 쉬어 갈 적에 만났던 괴승이 바로 여환이었
음을 알지 못하였다. 더구나 이경순은 그가 때때로 잊지 못하여 긴긴 겨울밤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돌아누울 적에 어둠속에 하얗게 떠오르던 묘옥, 그 사람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길산은 묘옥이 재인말서 자기를 찾아 해주로 떠났다가 다시 창기나 기루에 몸
을 던진 것으로 알았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경순이란 사람은..."
풍열이 말을 이었다.
"일찍이 관원을 여럿 살해하고 쫓기던 사람인데, 총포의 방포술은 물론이려니와 화포를
제작하는 데 신묘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사람이다." 강선흥이가 끼여들었다.
"대용이 성님이 여러번 말해주었지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네들도 송도 박좌장과 우
대용을 불러 함께 참석하도록 이르라. 장소는 구월산 인근은 워낙 환난을 겪은 곳이라 위험
하겠고..." 하자 김기가 안을 내었다.
"한번 난리를 겪은 곳이니 더욱 안전합니다. 월정사로 하지 말고 달마암의 반대편 계곡에
자리 잡은 오진암으로 정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오진암은 계곡도 깊고 암자라지만 본사에
못지않게 경내도 넓고 법당도 큽니다. 회합을 가지기에는 아주 적당하지요." "관가에서는
아직도 구월산 인근에 대한 경계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을 텐데 정말 괜찮겠소?" 길산이
말하였으나 김기는 자신있게 대꾸하였다.
"토포군이 물러간 지금, 관가에서는 다른 말썽이 생기는 것을 가장 꺼려합니다. 한번 찾아
본 곳은 다시 찾지 않는 게 정한 이치요. 구월산은 기실 자비령보다두 안전합니다." "그럴
듯한 안이다. 그러면 오진암에서 모임을 갖기로 통고해두지. 한달 뒤 보름날 밤에 모이는 것
으로 정하자." 풍열이 그렇게 단안을 내려서 더이상 반대의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자비령
에서는 길산과 김기가 오기로 되었고, 우대용과 박대근이도 참석하게 되었으며 금강산에서
는 대성법주와 설유징이, 서북에서는 승려 도안이, 근기지방에서는 여환과 이경순이 참석하
게 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김기가 다시 말을 꺼냈다.
"경기도 어느 곳으로 끌려갔는지는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탑고개와 사선골에 살던 이들에
게도 연결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집과 살 터전을 여러 차례나 빼앗겼고 식구들을 잃었
지요. 만약에 우리가 한양을 도모하게 된다면 큰 힘이 될지두 모르지요." 풍열이 빙긋 웃었
다.
"무당 광대는 팔천의 하나일세. 이제부터 해서, 경기 인근의 잡색들을 끌어모으는 일도 중
요하지." "제가 몇사람 천거할 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들어와서 묵묵히 앉아만 있던 월정사 원주 옥여가 입을 떼었다.
"지금 월정사에 와 있는 무녀 계화 부부는 사선골이 생길 적부터 들어와 살았지요. 탑고
개 괴로배들이나 광대들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천의 박수 오계준이는 무업으로
해서 일대에서 모르는 무당이 없지요. 그가 해주에도 오래 있었으며 송도 무당들과도 잘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계준이를 참석시키도록 허지."
이튿날 새벽 동이 훤하게 터오자마자 안무당과 길산은 재인말에 묻힌 장충의 묘를 돌아보
기 위해 월정사를 나섰다. 선흥이가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며 엄파 쇠몽치를 차
고 길산을 따라 나섰다. 그들이 문루를 지나는데 뒤에서 말득이가 달려왔다.
"성님, 잠깐 기다리슈, 김선비께서 동행하시잡니다." "성묘하려는데 우 하니 몰려갈 게 뭐
있겠느냐. 우리끼리 얼른 다녀오마." 할 제 안무당이 말하였다.
"아니다, 너는 먼저 다른 사람들 생각을 해주어야지. 탑고개와 사선골을 둘러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재인말을 살펴보아라." 길산이 듣고 보니 안무당의 말이 맞았고, 차라리 장충
의 묘는 살피지 못할지언정 김기는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고 마을을 달리 먹었던 것이다.
"어머니,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부족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성묘는 저
혼자 다녀오지요." "그러렴, 어디 있는지는 안 보고도 훤히 알아지겠지. 전에 우리가 출행
계회를 열던 마당 근처다. 잘 보아두었다가 나두 거기에 묻어다우. 박서방도 알구 있다."
길산은 모친을 들여보내고 선흥이와 함께 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옥여를 데리고 나
타났다. 길산이 물었다.
"스님은 웬일이오?"
"허허 나두 탑고개와 사선골에는 전에 지은 죄업이 많아서... 염불이라두 외며 극락왕생을
빌어드려야지." 옥여는 가사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김기가 길산에게 물었다.
"모친은 안 나오셨소?"
"우선 탑고개와 사선골을 둘러보구 나서 다시 수렛고개로 하여 광대산까지 나갈 참이라,
길이 멀어서... 성님 재 올리는 일이 오늘 할 일이우." "장두령, 공연히 나 때문에 번거로이
하는 듯하구료." "아니우, 우리 식구가 거기서 몰사 죽음을 하였는데 어찌 다른 급한 일이
있을 수가 있겠수." 그들은 사당말을 지나 탑고개를 향하여 내려갔다. 늘 다니던 소로를 빠
져서 나한암 바위넘이를 돌아 내려갔다. 계곡의 눈은 거의 다 녹아서 시냇물도 넘쳐 흘렀다.
탑고개의 폐허는 한마디로 처참한 것이었다. 시체는 모두 은율군의 백성들을 동원하여 치
웠으나, 무너져 내린 지붕과 잿더미며 타다 남은 기둥, 부서지고 깨어진 장독, 가재도구 등
속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흙담은 군데군데 무너졌으나 그대로 인가가 있었던 장소임을
나타내주고 있었으며 타버린 싸리 울타리가 섰던 자리에는 재만 남아 바람에 불리고 있었
다. 길산은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티나무를 찾아내고서야
간신히 그가 살던 집의 흔적을 알아보았다.
"어머니..."
자신의 집터를 발견한 김기가 비틀거리며 걸어가 마당에 무릎을 꺾고 풀썩 주저앉았다.
바람이 불어서 검은 재가 뿌옇게 일어났고 길산과 선흥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묵묵히 서 있
었다. 김기는 땅에 두 손을 짚고 엎드린 채 오열을 터뜨렸다.
"여보... 내가 왔소."
그의 입신 출세를 바라고 갖은 고초와 욕을 당하면서 온갖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나갔던
아내는 이제 장원은커녕 대역무도한 화적의 식솔로서 죽어간 것이 아닌가. 옥여가 그의 곁
에 가서 서더니 합장하고 나서 목어를 들었다. 그리고는 낭랑한 음성으로 경을 외기 시작하
였다. 사람은 언제든 태어나 한번은 죽게 마련이건만 뜻을 품은 자가 자기 생각으로 하여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나 자식을 해치게 되는 일처럼 안타까운 일이 있겠는가.
길산은 등을 돌려 마을길로 천천히 걸어나가보았다. 그는 풍문으로 탑고개의 마지막 저항
을 알았고, 그들의 장렬한 최후를 소상히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괴로배 총대의 의연한 죽음
을 알고 있었다. 관군의 말발굽 소리며 죽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절규가 골짜기 가득히 사무
쳐 오는 것만 같았다. 무심한 새떼들이 담이나 잿더미 사이를 포르릉 날아 오르내리며 지저
귀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길산이는 사금파리가 깔리고 군데군데 돌덩이가 수북이 쌓여 있는
마을 중심부에서 멈추었다. 나무에는 아직도 부러진 화살촉이 몇대씩 꽂혀 있는 게 보였다.
길산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끓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서낭님, 보살님, 미륵님... 자들의 혼을 다시 일깨우소서." 길산은 뜨거워진 눈시울을 부
릅뜨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언덕과 산과 바위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백성들의 나라가 오기 전까지 죽지 않도록 해주소서." "성님, 여기서 뭘 하는 게유?"
뒤따라온 선흥이가 길산에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묻기는 하였으나 그도 역시 길산의 마음
을 짐작하고 있었다.
"감사가 갈려 가기 전에 한번 해주감영을 들이칩시다." 길산은 바지를 털며 일어섰다.
"감영이 아니라 한양을 들이쳐야 한다."
"최모라는 토포장의 목을 벱시다."
선흥이가 으르대듯이 중얼거렸으나 길산은 조용히 말하였다.
"그자는 실로 가엾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영달을 바라고 저지른 짓이지만 종내에
는 그들 속에서 제거될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모가지 하나 바라고 세월을 갈고 있는 건 아
니야. 그는 내 목이 원이겠지만 나는 그런 따위 하급 무장에게는 관심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가 힘을 합쳐 세워야 할 백성의 나라이다." 그들은 탑고개를 떠났다.
사선골에는 읍에서 시오 리 지경이고 인근에 다른 마을이 있어서 눈에 띌 것이 염려되어 그
들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기로 하였다. 다만 사선골이 내려다보이는 사선대 부근에서 먼발치
로 합장 묵념을 올렸을 뿐이었고 옥여는 다시 경을 외었다. 일행은 구구월을 돌아서 구월산
서록을 타고 수렛고개를 지나 광대산으로 나아갔다. 멀리 온정말과 까막내가 보였고, 길산은
문득 어릴 제 자라던 눈에 익은 산천이 펼쳐지자 가슴이 뭉클하였다. 이미 몇해나 지나서
재인말은 얼른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당솔나무를 기준으로 하여 간신히 찾아냈고 그들이 계
회를 벌이던 마당은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길산은 몇아름이나 되는 당솔나무의 둥치를
가만히 쓰다듬어보았다. 뒤로는 제법 키가 넘게 자란 예전의 잔솔밭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
리가 물결치는 소리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다, 마지막 출행이 있던 전날 밤... 묘옥은 땀
에 젖은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었지. 그는 아잇적부터 들어왔던 도솔천 미륵세상에 대
하여 꿈결같이 중얼거렸다. 가슴을 헤치고 연비를 새겨 넣어달라던 여자.
"묘옥이..."
어디선가 까치가 먼 곳에서 부르짖었다. 그는 그리고 선흥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이가 여기 있습니다."
선흥이는 마당 위편의 높직한 비탈을 뛰어내려왔다.
"성님, 저어기 새로 쓴 묘가 있수. 그게 맞는 것 같소." 길산이 앞장서기를 기다렸고 김
기와 옥여는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나지막한 봉분이 보였다.
"저런."
김기가 짤막하게 중얼댔다.
봉분처럼 흙을 그러모아 높인 곳 위에는 둥그렇게 돌멩이들이 쌓아 올려져 마치 작은 탑
이 세워진 듯하였다. 둥그렇게 떼가 입혀진 그럴듯한 무덤이 아니었다. 그러나 길산은 아무
렇지도 않은지 오히려 주변에서 돌멩이를 주섬주섬 주워 들더니 그 위에 빈틈없이 쌓아올렸
다.
"자리가 아주 좋은걸."
옥여도 심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탈 아래로 보이는 마당이며 정면으로 까막내로
나가는 산길이 꼬불꼬불 흘러나가고 있는 것을 내려보며 덧붙였다.
"수광대의 안식처로 아주 명당일세."
길산은 돌을 올려놓고 나서 넋풀이가락을 아주 나직하게 천천히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그
의 넋이야, 넋이로다... 하는 앞소리를 받아나갈 뒷소리의 박자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는 간격
을 두었다. 길산의 귓가에는 얼른 행중 패거리들의 능숙한 뒷소리가락이 들여오고 있었다.
길에서 죽은 광대의 장례가 눈앞에 펼쳐졌다. 청계씨로 되어져 고갯마루나 산길을 지키는
도깨비가 될 광대의 혼은 돌무더기 아래 잠든다. 길산은 굴러 떨어진 돌을 집어서 다시 무
더기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길산은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나를 받아내고 태를 이빨
로 끊어낸 아버지, 세상에서 땅재주와 탈박춤을 가장 멋지게 해내던 수광대 장충 어른, 어느
향반이나 토호 못지않게 훌륭하고 넉넉하던 노인이시여, 나는 이 무덤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는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길을 걸을 겁니다. 왕궁의 문을 부수고 밀려들어가는 흰옷의 백성들과 그 함성 소리가
들립니다.
일찍이 여환이 해주를 떠나 경기도로 올라간 뒤에 정원태 황회 고달근 등의 검계 혈당과
중길을 비롯한 살주계원들과 연관이 맺어진 것은 양주에서였다. 그의 괴연한 풍모와 언행은
사람을 모으기에 충분하였고 특히 무뢰배들을 가리지 않으니 별의별 잡색들이 모두 그의 동
무가 되었다. 그는 양주 청송서 삼간초가를 짓고 민가 마을에 살았다. 그는 해주 송림방 사
자암에 기거하던 때보다 훨씬 방일하게 살아갔으니, 일찍이 그의 도반이던 해주의 묘정수좌
가 염려하던 대로였다. 그는 처음에는 완전히 걸승 노릇을 하였다. 아무데서나 잠자고 이 집
저 집에서 찬밥술을 얻어먹었다. 양주 고을에서는 여환이 괴이하지만 속세를 사랑함이 지극
하다는 소문으로 어느결에 저자 사람들의 혈육과 같이 되어버렸다. 여환은 범금에 피촉되어
장형을 맞게 된 사람 대신에 품삯도 받지 않고 대신 볼기를 맞아주기도 하고, 관가에 송사
를 하게 되면 꼭 약한 백성들 편에서 소장을 대필하여주기도 하였다. 그가 며칠 보이지 않
거나 하면 사람들은 모두 식구처럼 걱정을 하였고, 병이 나서 누우면 다투어 와서 음식을
주곤 하였다. 누가 옷이라도 주면 남녀의 의복을 가지리 않고 모두 이리저리 걸쳤다가 또한
누더기나 얇은 옷을 입은 저자의 유민들을 만나면 차례로 벗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향족이
나 벼슬아치들에게는 건방지고 불평 많은 중이었으나 또한 우부를 만나면 다정하게 식구들
의 안부를 물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 달려가 도와주어 힘을 덜어주고 행려병에 걸린
깍정이는 데려다 정성껏 간병하여 완쾌시킨 연후에야 보냈으며, 시체를 보면 몸소 염하여
짊어지고 가서 묻어주었다. 관음제석 제석관음이여 이 몸이 죽으면 완전히 지옥에 떨구소서,
하며 흥얼거리곤 하였다. 그의 노래 곡조는 농가와 비슷해서 어린아이들이 즐겨 따라 부르
곤 하였다. 이윽고 두어 해가 지난 뒤에 여환은 청송에다 산비탈 응달진 곳에 움막을 세우
고는 때맞춰 예불을 올리곤 하였다. 그때부터는 논두렁이건 장터가 됐건 가리지 않고 오륙
인이 모인 곳을 찾아가 틈틈이 설법하였다. 그의 설법은 뜬구름을 잡는 듯한 말이 아니라
짐승이나 나무나 돌을 들어 옛말 하듯이 쉽게 하는 것이라서 어린아이들도 재미있게 듣던
것이다. 여환은 장꾼들이 어쩌나 보려고 탁배기라도 권하면 동이를 비우기까지 마셔버렸었
다. 장난치려고 쇠오줌이나 뜨물을 항아리에 담아 주어도 꿀껄꿀꺽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한
번은 개천을 치고 천렵을 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어육과 화주를 어찌나 맛있게 들던지 식
자깨나 들었다는 이가 계율을 들어가며 그의 비도를 은근히 꾸짖었다. 그러나 여환은 껄껄
웃으며 대꾸하였다.
산채와 맑은 이슬만 먹고 마시는 자가 어찌 중생을 안다 하겠는가. 나는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려니와 지옥에 떨어지기로 작정한 지 오래니 그곳에 오는 이는 누구나
나를 만날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망령되이 사념을 일으켜서 이욕으로 서로 싸우며, 혹은
마음속에 포악함을 감추고 혹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명출가자도 또한 모두 이와 같아
서, 고기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서도 침흘리고 참으며,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음란한 마음
을 바로잡으려 애쓰니 제 몸 청정하기에만 급급하여 세상의 고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나는
그와 달라서 맛을 가리지 않고 먹으며 미추를 마다 않고 여인을 취하여 물이 흐르듯 하고
흙이 구덩이를 메우듯이 하여 물건과 더불어 마음이 없고 사도 모두 없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여래를 원치 않고 반드시 한 보살이 되기를 바라니 여러분들이 내게 가르침을 주는 것
이다.
여환은 청송 사람들의 도움으로 움이 있던 자리에 초가집을 짓고 법당을 세웠다. 법당이
라고 해야 흙바닥 위에 삿자리를 깔고 돌멩이 두 개를 아이들의 눈사람 모양으로 얹어놓은
것이 고작이었다. 아이들이나 촌부들이 들여다보고 배를 잡고 웃었으니 둥근 돌멩이 두 개
를 포개놓고 마주앉은 여환의 꼴이 제법 중 티가 나서였다. 그게 무슨 부처님이냐, 눈도 코
도 없고 형상은 없으니 차라리 벽에다 숯검정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게 어떠냐, 라고 말들이
많이 나왔다.
절에 앉아 있는 수염 달린 금부처가 아니야. 공양 귀신 돈 귀신이야. 부처님 모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리구 이건 아직 안 오셨지만 앞으로 우리네 같은 천덕꾸러기들을 위
해서 찾아오실 미륵님이야. 미륵님이 어떤 모양을 하구 있는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이
렇게 생겼을 밖에. 이제 두고 보아라. 우리 돌미륵님의 영험이 알려지게 될 테니. 정과 성을
들이면 돌멩이는 한 돌멩이가 아니야. 피와 살이 생겨서 어느날 벌떡 일어나셔.
여환은 알 듯 모를 듯하게 중얼거리고는 낭랑하게 미륵경을 외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
쨌든 달리 마음붙일 데 없는 상것들이 여환의 이상한 암자로 찾아들게 되었고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여환을 부르게 되니 여환은 양주뿐만 아니라 파주, 포
천, 교화, 영평, 연천 등지로 돌아다니게까지 되었다. 그는 특별히 절을 꾸며 사람들을 모으
지 않았고 아무데든 촌의 사랑이든 타작마당이든 법당으로 삼았다. 그가 정원태 등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던 것이다. 숙종 십년의 팔도에 걸친 흉황으로 유민이 구름같이 대처로
흘러들고 길에서 굶어죽은 자들의 시체가 뒹굴어다니고 하던 무렵에 여환은 청송으로 갑자
기 찾아든 해주 수양산 망해사의 묘정수좌를 만나게 되었다.
달마산에서 강선흥에게 내쫓겼던 승려 출신의 화적 심백과 묘정과 여환은 처음에 수양산
망해사 보경 큰스님의 문하였다. 그러다가 삼백은 그릇되어버렸고, 여환은 월정사에서 풍열
과 함께 있으면서 평범한 중들이 말하듯이 사도로 들어섰으며, 묘정만이 유일하게 산문을
지키고 들어앉아 있던 셈이었다. 여환은 묘정과 헤어진 지 벌써 십년 가까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여환은 마당에 돌을 둥그렇게 쌓아 화덕을 만들고 오지 그릇에다 밀
기울로 죽을 쑤고 있었다. 송홧가루로 한 끼를 때우고 하루에 한 번 먹는 식사였다. 사방은
어둑어둑하고 화덕의 불은 가물대며 잦아들고 있었다. 여환은 땅바닥에 질펀히 앉아서, 늘
뇌까리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세상 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는가, 여보시오 시주님네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이 세
상에 낳은 사람 뉘 덕으로 나왔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 아버님전 뼈를 빌고 어머님전 살을
빌려 칠성님전 명을 빌고 제석님전 복을 빌려 이내 일신 탄생하니, 혼잣몸이 아니로다.
여환, 예불하는가?
그의 노래를 툭 잘라내듯이 누구인가가 그렇게 던졌다. 여환은 불빛이 가물거리는 화덕에
서 시선을 떼어 뒤를 돌아보았다. 송낙을 깊이 눌러 쓰고 장삼에 바랑을 걸머진 중이 마당
에 서 있었다.
여긴 절이 아니외다. 박쥐가 사는 굴혈이오.
여환은 객승에게 대꾸하면서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스로 박쥐임을 자처하는
까닭은 그가 몸을 세속에 던져 계율을 저버리고 비승비속을 자처하던 때문이었다. 여환은
다시 노래하듯 중얼거렸다.
공중에서 그림자 붙잡아도 우스운데, 세상 밖에 뛰는 게 무에 그리 장한가.
객승은 천천히 다가와 여환이 쭈그린 화덕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도 음식은 끓고 있구먼.
한그릇에서 끓었으나 삭일 뱃속이 다르군 그래. 부엌에 가서 사발 두 개와 수저를 가져와.
여환은 객승에게 말하였고, 그는 시키는 대로 하였다. 밀기울죽을 떠서 내밀며 여환이 물
었다.
망해사에서 오는가?
아니... 금화에서 오네.
그들이 함께 공양을 하는 가운데 주위는 캄캄하게 어두워졌고 화덕 속의 불이 벌겋게 보
였다.
무슨 일인가, 내가 여기 있는 건 어찌 알았나?
여환이 물었다. 사실 그들은 한 스승 밑에서 불자가 되었으나, 수행하는 사이에 서로의 기
질과 행동이 달라서 헤어진 뒤 수년이 지나갔던 것이다. 여환은 보경의 문하를 떠나 풍열에
게로 갔었고, 묘정은 보경이 열반하기까지 망해사를 지키며 남아 있었다. 묘정은 수행법이
단정하고 정하여 스스로 망해사의 산문 밖에 나선 적이 없었고 운수 행각이나 만행 대신에
참선과 독경으로 날을 보냈던 것이다.
인거황천 명재가, 자네의 소문이 해주에까지 자자하더군.
여환은 관솔불을 붙여서 종지에 얹어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뒤를 따르는 묘정에게 중얼
거렸다.
허, 이러한 흉황에 굶어죽는 이의 명자보다 더 알려졌다면 죄업일시 분명하지.
사실은 월정사의 옥여수좌가 일러주어 찾아왔네.
자네가 옥여를 어찌 아는가? 그는 자네처럼 박학한 수도자가 아니라 나한 시늉을 내는 녀
석인데, 내가 보살 시늉을 내는 거나 한가지야. 그렇지만 자네보다는 훨씬 그가 좋아.
두 승려는 흙냄새 나는 토방의 법당에 앉았다. 묘정은 법당 안에 포개어진 돌멩이를 바라
보고 빙긋 웃었다. 벽 위에 찍혀진 돌멩이의 그림자는 등을 구부정히 하고 앉은 사람의 형
체와도 같았고, 관솔불이 일렁거릴 적마다 흐늘대며 움직였다. 마치 방안에는 세 사람이 앉
아 있는 듯하였다.
지난해 하안거에 금강산에 있었네. 유점사의 일여가 인도하여 큰스님을 뵈었지. 운부라고
능히 종가를 이룰 분이시데.
여환은 풍열스님에게서 운부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일여는 강원도에서 겨울 한 철
을 방을 함께 쓴 적이 있어 대뜸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보살 서원이라두 했다는 말인가? 운부가 나와 무슨 상관이야.
그이가 자넬 찾으니까...
묘정은 여환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어서 말하였다.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닐세. 망해사에는 떠난 지 이태가 되도록 한번도 돌아가지 않았네. 자
네가 박쥐중이라면 나는 까까머리일 뿐이야. 세간 백성들과 같은 일을 행하지도 못하면서
수도한답시고 경전에나 잡혀 있었으니 도대체 부처가 다 뭐란 말인가? 중생은 의지할 바 없
고 믿을 곳이 없으며, 중생은 불성을 잘 따르지 아니하며, 중생은 가난하고 선근이 없고, 중
생은 간밤의 생사에 유전하여 무명의 잠을 깨지 못하고, 중생은 불선법을 행하며, 중생은 오
욕에 결박되어 있고, 중생은 생사의 바다에 빠져 있고, 중생은 질병에 매였고, 착한 일을 하
고자 하는 마음을 잃었으며, 부처의 가르침이 닿질 않으며, 이런 것을 살피고 알아서 대비를
일으키고 보살은 이런 마음으로 중생을 본다고 하였지.
묘정의 긴 이야기에 여환은 껄껄 웃었다.
까까머리를 지나서 이제는 참새중이 되어버렸군.
여환이 짐짓 발을 들어 모셔놓은 돌멩이의 머리 부분을 밀어내니 돌멩이는 굴러 떨어져서
방 구석에 멎었다. 그림자는 다만 두루뭉실한 돌일 따름, 작은 돌과 큰 돌의 두 개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걷어치울 테니, 자네가 대자대비하여 생불로 거기 앉도록 하게나. 또 재재거리면 자
네의 대가리도 저쪽으로 굴려줄 테야. 우리 곡차나 한잔씩 드세.
여환은 밖에 나가 죽 퍼먹던 오지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돌아와서는 듬뿍 떠서
들이켜고 묘정에게 내밀었다.
꽤 독한걸, 천지가 주먹만하게 보일 게다.
그러나 묘정은 대꾸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그리고는 이내 잠들었다. 여환은
혼자 깨어서 항아리의 물을 계속 퍼마시며 스스로 지은 타령조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새벽
녘에 묘정은 예불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실눈을 뜨고 바라보니 작은 돌멩이는 다시 제자리
인 큰 돌멩이 위에 얹혀 있었고 여환은 그것을 향하여 단정하게 결가부좌하고 염불중이었
다. 묘정은 그의 예불이 다 끝날 때까지 모른 체하고 누워 있었다. 그가 일어서는 기척을 보
이자 여환은 냉수에 송홧가루를 타서 아침공양이라고 내왔다.
금화 수태사에 가면 대성법주라는 중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운부대사를 모시는
수좌인데 이번 하안거를 그 절에서 보낸다네. 운부 큰스님께서 전하시더군. 서천이 어디메
뇨, 연기 나는 마을이다.
여환은 문득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격자창이 훤히 밝아올 때
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묘정은 조용히 바랑을 챙겨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의 등뒤에서 여
환이 말하였다.
금화에 가겠네.
묘정의 단정한 걸음은 새벽 안개를 헤집으며 멀어져갔고, 여환은 창문을 열어두고 그쪽을
내다보았다. 정토가 어느 하늘 끝에 있으랴, 개 짖고 닭 울고 흐느끼고 껄껄대는 저 백성들
의 살가운 살림살이에 있으니 정토의 처음 자락은 그 초입에서부터 밟아나가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그냥 함께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정토를 이루어내야만 하는 강렬한 뜻이 거기에 있
음에랴.
여환은 산간의 청년 승려들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하였
다. 금강산 유점사를 중심으로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주위의 믿을 만한 수도
자들을 서로 이끌어 운부의 무릎 주변에 모이게 하였다. 옥여, 일여, 묘정 같은 승려들도 일
년에 한 철씩은 강원도를 내왕하면서 뜻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묘정도 뒤늦게나마 운부
의 가르침에 따르게 되었고, 이들이 얼마 안되는 사이에 서북과 관북의 청년 승려들과도 연
결짓게 되는 것은 임란, 호란 이래의 승병의 전통 탓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뜻에서 더욱 나아가 도를 잃은 지 오래인 조정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말법의 시대가 왔다고 여긴 그들은 백성들
을 살리는 길은 무턱대고 부처님께 합장 기도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세
상을 이루어 법을 세워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흉황의 폐해가 극에 달했던 그해 여름에 여환은 잠시 양주 청송의 토막을 떠났었다. 금화
는 철원 평강과 더불어 궁예가 스스로 미륵을 자처하여 후고구려를 일으켰다는 본거지였다.
궁예가 변을 듣고 도망하여 갑옷을 벗고 달아난 갑천이 평강에 있고, 그는 금화와 평강의
계를 이루는 수우산 철불산의 지류인 미륵산의 골짜기에 이틀을 숨어 지냈으며, 굶주림으
로 보리 이삭을 손으로 비벼서 먹고 연명하다가 살해당하였다. 금화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
인 고장이라 산협 사이에 한촌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곳이었다. 산이 고을을 포위하였다고
도 하며 뽕나무와 산뽕나무 쓸쓸한 사이사이로 집이 몇 채씩 박혔다고도 하였다. 쑥을 엮고
나뭇가지로 얽은 문에 잔약한 민호가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벽지의 한산한 곳으로 현이 이
루어진 것은 해서와 경기에서 영동과 영북으로 가는 경유지인 까닭일 것이다. 여환은 영평
까지 가서 배를 타고 곧은나루까지 올라가 수정산을 넘고 금화계로 들어섰다. 금화는 또한
금강산으로 가는 중간 길목이었다. 그는 뜻있는 청년 승려들이 운부를 중심으로 모여 하안
거를 수태사이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대성법주라는 중의 이름만을 외우고 갔던
것이다.
수태사는 금화 고을 북쪽 삼십 여 리를 올라가 수우산 천불산과 연맥하여 있는 오신산에
있었다. 검계 살주계의 혈당이 이루어지던 그 해의 여름이었다. 여환은 오신산의 준령을 올
라 골짜기에 은밀하게 처박인 수태사에 들어섰는데 숲 사이에서 에잇, 에라차 하는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법당 앞 마당에는 햇볕이 내리쬐어 텅비어 있는데 절 뒤편의 숲 그늘
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여환이 궁금하여 그쪽으로 들어서는데 뒤에서 느닷없이 묻는 소리
가 들려왔다.
어느 절에서 오시오?
얼핏 돌아보니 마치 경계의 번을 서고 있었던 듯 젊은 중이 한 손에는 참나무봉을 쥐고
있었다. 여환이 머뭇거리는데 그가 다그쳤다.
누굴 찾아왔느냔 말야.
대성법주를 만나러 왔소.
누가 말해줍디까?
여환은 조금 짜증이 생겼다.
부처님의 댁에서 불자에게 용무를 묻는다니 알 수가 없소.
그러나 젊은 중의 엄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우거진 나뭇가지를 헤치며 중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참나무봉을 겨누고 으르딱딱거리
던 중이 그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하였다.
덮어놓고 스님을 만나러 왔다길래...
그 중은 덩치가 컸고 어깨는 마치 바위처럼 탄탄해 보였으며 머리는 반들반들 배코를 쳤
으나, 귀밑과 코밑, 턱밑에서 가슴팍에까지 까실까실한 털이 수북하였다. 눈은 부리부리하여
범의 눈이었고 코는 주먹덩이 같고 입술은 부어오른 듯하였다.
여환은 옥여의 꼬락서니가 생각나서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하였는데, 갑자기 그 얼굴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였다. 부릅떴던 눈이 가늘고 길게 늘어났으며 입술은 양옆으로 쭉
찢어져 어긋난 이빨이 드러났는데, 꼭 장난꾸러기 아동의 모양이었다. 속세에서는 일찍이 제
인말의 곤두쟁이 광대였고 길산의 어릴 적 동무이며 화적이 되었다가 스스로 아내 도화를
죽이고 출가하였던 이갑송이가 바로 그 중이었던 것이다. 법주스님이 컬컬한 목소리로 말하
였다.
내가 법주요, 뉘시우?
양주 있는 여환이라구 하오.
법주는 덥석 여환의 손을 잡았다. 그 큼직하고 두터운 솥뚜껑 같은 손이 여환의 여린 손
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잘 왔수. 아주 안 오는 줄 알았구려.
이곳에 튼튼한 다리와 밝은 등불이 있다기에 찾아왔더니... 어째 병장기 가진 역사들뿐이
오.
여환이 다리와 등불을 들어 수태사의 하안거 모임을 암유한 것은 일찍이 보살행을 밝힌
열 가지의 비유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첫째로 땅은 그 본성이 평등하여 온갖 중생을 업고
있건만 중생의 보은을 바라보는 일이 없다. 보살도 저 땅과 같아서 마음이 평등하여 온갖
중생을 업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보은을 바라지 않는다. 둘째로 물은 그 본성이 널리 침투하
여 온갖 것을 다 적셔 무성하게 하지만 그들의 상대적인 보은을 바라지 않는다. 보살 역시
그러하니 자기 공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두루 편안케 하면서도 중생의 보은을 바라지
않는다. 셋째는 불이 온갖 과일을 성숙하게 하지만 그것들에 바라는 바가 없고, 보살은 자기
공덕과 지혜로 모든 중생의 선근의 과일을 성숙하게 하면서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다
섯은 공간이 무량 무변하여 장애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건만 그것들에 분별함이 없고
탐하고 집착함이 없듯이 보살행도 그러하다. 여섯으로 말하자면 명월이 공중에 빛나 깨끗하
고 원만해서 보는 이가 즐거움을 느끼고 빛이 세상의 온갖 형태를 비춰 어둠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듯이, 보살이 세상에 바타나매 공덕이 마땅히 구족하며 모두가 즐거움을 느끼고
세간을 구제하여 저 세간의 법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게 한다. 일곱째로는 해가 떠서 빛이
온 누리에 어둠을 깨고 가림이 없어 모든 중생의 해야 할 일을 깨고 지혜의 빛으로 널리 비
쳐서 중생의 착한 본바탕을 넓혀나간다. 여덟째의 것은 배가 튼튼하고 널찍하여 깨어지지
않아서 중생을 싣고 큰 바다를 건네주건만 값을 요구하지 않듯이, 보살 또한 지혜로 견후를
이루고 중생을 싣고 생사의 바다를 건넌다. 아홉은 다리가 사나운 물이 흘러 여울이 세고
험난한 곳에 걸려 중생을 건너가게 해주건만 건네주는 일을 분별하는 생각이 없듯이, 보살
이 건너기 어렵고 험난한 도중에 큰 다리로 걸려 중생을 평등하게 건너게 하여 해탈의 즐거
움을 주면서도 구제한 것에 대해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것과도 같다. 마지막 열째로 말하니,
크나큰 등불은 방안의 짙은 어둠을 다 밝히건만 제가 비쳤다느니 비친 것은 스스로의 작용
이라느니 하는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살은 무명의 어두운 방에 지혜의 등불을 켜
서 중생을 평등하게 두루 비춰주면서도 내가 비친다느니 비치는 것은 내 작용이라느니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여환이 슬쩍 밀어보았으나 법주는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나는 경문은커녕 염불도 모르는 땡중이오. 공연히 내 앞에서 문자쓰지 마우. 부처님에게는
설법할 세 치의 혓바닥이 있지마는 나는 밥 썩여 나온 기운밖에는 없수.
법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환의 팔을 잡아끄는데 손아귀 힘이 어찌나 억센지 팔의 중동이
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여환은 상을 잔뜩 찡그렸다.
지당한 소리나 지껄이구 앉아 있는 중보구 뭐라구 그러는지 알우? 여환은 서슴지 않고
말해주었다.
생불이라구 그럽디다.
부처에게 살고 죽은 것이 있을 수가 있으랴마는 덜 익어 선 것이라고도 하니, 선무당이
사람 잡듯 선중이 세상 도리나 꿰고 앉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세간에 나와 세간의 법도를
따르며 방편을 세워야 하는 자리의 중이 민생을 빼먹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악에 대하여
꾸짖고 가련한 것에 슬퍼하며 불선이 행하여짐을 막는 짓을 실지로 해내어야 할 것이다. 공
연히 크고 넓은 소리를 한다고 다 담아지는 것이 아닐 터이다. 아니, 오히려 광대무변한 하
늘 가운데 몇점의 별이나 소리내어 헤아릴까마는 마당 귀퉁이에 구르는 돌멩이들을 먼저 눈
여겨불 일이다. 독사가 사람을 물기 위해 대가리를 쳐들었을 때 독사의 식별법, 독사에게 안
물리는 법, 독사의 모양, 독사와 사람의 다르고 같은 점, 독사의 습성 따위의 잔소리나 늘어
놓기보다는 얼른 독사를 죽이고 나서 물린 사람의 몸에서 독을 빨아내어주어야만 할 것이
다. 풀섶에서 따뜻한 볕을 즐기며 또아리를 틀고 앉은 독사는 죽이는 독사가 아니요, 사람의
목숨과 생활을 해치려고 머리를 쳐들고 이빨을 내민 독사가 아니요, 사람의 목숨과 생활을
해치려고 머리를 쳐들고 이빨을 내민 독사는 죽여야 할 독사렷다. 그러한 방편 가운데 살신
의 보시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 아니던가. 불 속에 몸이 타서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처
의 혀가 움직인다.
내가 과거세에 상인들과 보배를 얻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많은 보물을 싣고 돌아오다가
풍랑으로 파선하여 더러는 표류하고 더러는 익사하였다. 그때 나는 작은 나뭇조각에 의지해
서 무사하게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표류하던 다섯 사람이 내게 구원을 청해왔다.
부목은 하나인데 사람은 다섯이라 모두 함께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걱정 말고 모두 내 몸을 단단히 잡으시오. 그들은 내 등에 올라타기도 하고, 어깨를
안기도 하고, 더러는 다리를 붙잡았다. 이때 나는 차고 있던 날카로운 칼을 뽑아 내 목숨을
끊었고, 그들은 내 시체에 매달려 험한 바다를 건너 육지에 닿을 수가 있었느니라.
잠깐 그늘에서 쉬시우. 우리는 오전 수도가 아직 끝나지 않았소.
법주스님은 여환과 더이상 콩이야 대꾸할 생각이 없는지 그를 숲 가운데의 마당으로 안내
하였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청년 승려들이 웃통을 벗어붙이고 봉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법
주는 그들에게 돌아가 다시 기합소리를 내지르며 새로운 형과 자세를 보이고 나서 따라하도
록 시켰다. 승려들은 봉을 추켜들거나 찌르거나 휘둘러 때리면서 마당을 오락가락하였고, 법
주가 열과 오의 사이로 다니면서 바로잡아 주었다. 절에서 한 동승이 나와 죽비를 때리니
조련은 끝나고 중들은 모두 의복을 단정히 하고서 법당으로 들어갔다. 참선이 시작되는 것
이었다. 여환도 오랜만에 결가부좌하여 참선에 들어갔다. 저녁공양과 예불을 마치고 나서 수
태사에 내려온 도안화상과 더불어 법회를 가졌다. 도안은 중앙에 앉아 조용하게 논설하였다.
불자는 길을 잃은 중생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길의 돌멩이들과 가시덤불을 치워주고,
건너야 할 물이나 험한 골짜기에 다리를 놓고 어두운 곳에는 등불을 달아야 할 것이다. 그
대들은 앞서 길을 치우며 만들어갈 사천왕의 현신들이며 보살의 손과 발과 짓이고 불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원하신 대로 세상 천지의 강물 줄기가 각각 다르되
바다에 들어가면 강의 이름이 없어지고, 사농공상의 차이가 있다 하나 사문이 되어서는 일
체 석종이 되듯이, 불법 아래에서는 만백성이 계급 없이 평등한 나라가 세워져야 할 것이니
라. 남을 천시하는 자 저를 해친다고 하였고, 천시하도록 버려두는 자 신심을 더럽힌다고 하
였다. 이제 아조는 일찍부터 불도를 사도라 하여 내몰았고 안으로는 썩고 밖으로는 무능하
며, 사대부는 백성 알기를 금수 초목보다도 더욱 업수이 여겨 흉황에 굶어죽고 버려져도 돌
보는 이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양반은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며 천민은 나고 죽음에 사람다
웁지 못하고, 위로 하늘의 도가 사라졌고 아래로는 인륜이 시행되지 않는다. 또한 바깥 오랑
캐들은 조정이 정도를 잃어 허약함을 틈타서 주인 노릇을 하니 왕권은 이미 저들의 노리개
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대저 하늘이 왕을 정하셨다함은 무슨 뜻인고. 왕이란 영화롭고 강대
한 세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백성의 부모로서 도리에 의거하여 사람들을 거두어 보
호하여 편안하게 해주는 까닭에 왕이라 부르는 터이니라. 왕자가 설 수 있음은 백성을 위주
로 하여 나라를 이루기 때문이라 민심이 정하여지지 못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왕이 된 자는 늘 백성을 걱정하되 갓난애라도 생각하듯 마음에서 떠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왕권을 빙자하여 주위의 몇몇 세력이나 만들어 비호하고, 탐람한 횡포로
써 권세를 부리고, 다스린다고 하여 이목구비를 막고 빼앗아 백성을 짓누르고, 소수의 강자
에게는 편한 세상, 다수의 약자에게는 무서운 세상을 만드는 자는 스스로 멸망을 등에 짊어
진 것과도 같나니라. 아무리 완권이 탐할 만한 것이라 하나 왕도에 어긋나게 취할 수는 없
는 것이니, 얻어도 될 만하여도 시기가 적절치 않으면 취하지 않고, 세상의 불화 빈자의 고
통 질병의 만연이 있을 적에는 선법으로 백성을 보호하여 자심으로 취하지 않을진대, 모래
위에 석탑을 세운 듯하여 미풍에도 넘어질 것이다. 방일하고 자비가 없는 자에게 나라를 맡
기는 것은 마왕에게 경서를 내주는 것과도 같나니, 무력으로 무력이 없고 해도 없는 사람을
해치면 가까운 장래에 열 가지 위난을 만난다고 하였다. 사나운 고통과 빠른 노쇠와, 몸의
부상이나 중병, 마음의 불안과 광란, 그 권좌의 위난, 엄한 쟁송, 친척의 파멸, 재산의 붕괴,
사고, 지옥에 떨어짐 같은 따위이다. 그러한즉 백성의 삶과 생활을 보살피는 자리의 막중함
이 이와 같나니 가슴속에 도가 있어 널리 펼치지 못함도 옛 요순과 같은 이가 통탄하였거
늘, 오늘과 같은 말법의 난세에서 세간을 다스리는 임금이 야심과 탐욕으로 권세를 지녔다
면 벌써 스스로 화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미륵이 밟고 오실 세상을 먼저 깨끗
이 하고 닦아두기 위하여 이 도량에 모인 게 아닌가. 진인께서 때를 준비하고 계신즉 그러
한 때를 앞당겨야 하느니라.
수태사의 하안거는 실로 안거가 아니었고 수도에 참가한 젊은 승려들에게는 전 영육을 사
르는 불의 번제와도 같은 기간이었다. 원하는 이는 금강산 유점사 뒤편의 운부암으로 불경
을 공부하러 떠났고 대부분 각자의 절로 돌아갔다. 해마다 금화 수태사에서는 동안거와 하
안거 동안에 그러한 수도가 준비되어 있었으며, 법주와 일여가 번갈아서 진행 예비하고는
하였다. 그때 여환은 법주와 더불어 사귀었고 길산에 대하여도 소식을 주고받게 되었던 터
였다.
이제 어디로 가시려오?
법주가 물었고 여환은 답하였다.
양주의 내 법당으로 돌아가겠소.
너무 서두르지 마우. 금강산서 일여스님과 대사께서 오신다 하였소. 묘향산의 도안스님도
남아 계시지요. 아마도 월정사의 풍열스님과 옥여도 올 거요.
무엇 때문입니까?
한양을 도모하기 위해서지요.
어떻게 궁성을 도모할 수가 있단 말이오?
글쎄... 그런 전갈이 왔을 뿐 우리가 어찌 자세한 것을 알겠소.
그런 일을 왜 소승에게 알리는 거요?
여환의 의아해하는 말을 듣고 법주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내 뜻을 모르지 않습니까?
여환이 말하자 법주는 씩 웃었다.
당신의 기행은 이미 묘정에게서 자세히 들은 바 있었고 우리 스승에게 말씀하신 것두 풍
열스님이오. 우리 큰스님께서 이르시기를 백성 가운데 행하고 살기를 그 정도 힘쓴다면 우
리가 뜻하는 바와 그리 멀지 않은 중이라구 합디다. 당신이 꼭 해야 될 일이 있어 부탁을
하려는 것이지요.
오신산에서 수우산까지는 여파령으로 이어져 있으니 산줄기가 동서로 달려 동쪽 끝은 금
성계의 진포나루에 이른다.
합곶강을 건너 통구까지 오르면 지척이 단발령이었다. 실로 금화는 해서와 강원도와 경기
도 지방을 사통팔달로 서로 연락시킬 수 있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수우산의 열한 봉우리에서 다섯째 봉우리를 이룬 천불산은 북으로 노루재와 닿았고, 서쪽
에 미륵산을 내다보며 동으로 금성을 들여다보는 형세였다.
법주와 여환은 뒤늦게 천불산으로 올랐고, 도안스님과 수태사의 주승 명도스님은 하루 먼
저 떠났던 터였다. 그들은 오신산에서 일단 내려와 정자내의 상류를 따라서 곧장 수우산 천
불봉으로 올랐다. 잎이 바래기 시작한 초가을이었다.
법주와 여환은 천불산의 계곡을 벗어나서 숲도 끊긴 바위와 반석들만이 둘러싸인 중봉으
로 올랐다. 드러난 땅은 거의가 돌이 부스러진 왕모래였고 작은 나무들이 띄엄띄엄 틀어박
혀 옹색하게 자라고 있었다. 메마르고 헐벗은 듯한 곳이어서 인적이 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가파르고 높다란 왕모래의 언덕을 거의 미끄러지면서 간신히 올랐고 산의 능선은 거
기서 돌연 끊겨서 널따란 바위가 정자처럼 놓여있었다. 바위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이었고
노랗게 또는 불그레하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이 문루의 단청처럼 현란하게 벌어져 있었
다. 그 아래로는 노루재에서 법수재까지의 산줄기가 연봉을 이루어 달음질치고 있었다. 법주
가 앞장을 서더니 반석의 옆으로 두어 발 디딜 만큼 까내려간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고 내려
갔다. 발디딤을 서른 개쯤 거쳤을까, 이제는 발을 디딜 곳도 없이 아예 빤빤한 바위가 낭떠
러지 위에 간신히 걸려 있었는데 법주는 그쯤에서 저쪽의 안을 향하여 훌쩍 건너뛰었다.
어서 건너뛰시우.
묘하게도 방금 건넌 법주는 그 불쑥 튀어나온 바위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만 들
려왔다. 여환이 내키지 않아 하면서 연신 아래를 내려다보니 꼭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어서 거기서 이쪽으로 뛰라니까.
법주가 재촉하여 여환이 벼랑의 끝까지 가서 발을 딛고 고개를 비죽 내밀어보니 간신히
발을 내어디딜 만한 자리가 보였다. 여환은 두 눈을 딱 감고 건너뛰었고 어느결에 법주의
곁에 서 있었다. 그곳에 이르자마자 여환은 깜짝 놀랐다. 웬만한 절의 대웅전이 있는 앞마당
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마당이 있었다. 위편에 걸린 반석은 마치 거대한 지붕의 처마 끝 모
양이라 아래로 오랫동안 떨어져 내린 낙숫물로 하여 팬 자국들이 줄지어 있었다. 더욱 놀라
운 것은 그 마당의 안쪽에 아래를 향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암굴이었다. 암굴의 높이는 거
의 열 길쯤 되어 보였고 사람이 올라가 매달릴 수 있을까 싶은 직벽 위에는 불상이 선명하
게 부조되어 있었다. 여환은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였다. 젊고 아리따운 모습에
관을 쓴 동자로서 미륵의 얼굴이었다. 영측이라는 두 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아래로 내려갑시다.
법주가 굴 안으로 내려간 뒤에도 여환은 멍하니 미륵상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가 굴 안으
로 들어섰다. 왕모래 큼에 굵고 작은 돌멩이가 있어서 딛고 내려가기에 맞춤하였다. 내려갈
수록 굴 안은 넓어져서 다시 마당 같은 평평한 곳이 되었다 안쪽 깊숙한 곳에 진흙으로 방
처럼 온돌을 놓고 위에다 자리를 깔았는데 향 냄새가 은은하였고 마치 절의 대중방과도 같
았다. 여환은 여러 노장들과 속인이 둘러앉았다가 일제히 그들을 돌아보는 바람에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위쪽에서 들어온 빛이 굴의 천장께서 훤하게 드리워져 있어서 굴 안은
제법 밝은 편이었다. 굴은 차츰 좁아져서 방 비슷도 하고 평상 비슷도 한 온돌자리에서 왼
쪽으로 훨씬 떨어져서 시커먼 구멍이 되어 계속되고 있었다. 그 안은 캄캄하여 얼마나 어느
쪽으로 길게 뚫렸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좌중의 사람들은 묵묵히 앉았다가 법주가 신을
벗고 오르자 비켜주었다. 여환은 뒤편에 섰고 법주는 가운데로 나가 넙죽 엎드려 절하였다.
법주는 두 손바닥을 펴서 이마 위에 모으며 큰절을 세 번 올렸다. 둥그렇게 모여 앉은 사람
들의 중앙에는 낡은 장삼을 입은 노승이 조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조금 자란 머리
는 완전한 백색이었고 푹 꺼진 눈두덩에까지 내리덮일 듯한 긴 눈썹도 하얀데, 깡마른 뺨과
턱은 가녀리게 보이면서도 입 근처가 주저앉지 않고 본 모양대로 다부지게 다물어져 있어
나이보다는 훨씬 젊고 건강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깨도 좁고 야위었으며 틀고 앉은 두 무
릎도 앙상해 보였건만 앉은 자세가 어쩐지 완강하고 빈틈이 없어서 괴목 뿌리가 박힌 것 같
은 느낌이 들었다.
대성법주가 이번 하안거에도 땀을 많이 흘렸다는구나.
노승은 법주의 문안 인사에 대꾸인 듯 중얼거렸다.
생업에 힘쓰는 백성들에 견주기나 하오리까마는.
노승은 고래를 희미하게 끄덕여 보이고 말하였다.
그 뒤에 섰는 중은 누군고?
여환은 법주의 눈짓에 따라서 오르지 않고 그대로 서서 합장하고 대답하였다.
양주 사는 여환이라고 하옵고, 중의 구실을 못하는 가승입니다.
노승은 이번에도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여 보였다.
어서 올라오너라.
노승이 웃는 얼굴로 말하였다. 여환은 올라가서 법주가 물러나 앉은 구석 자리에 앉았다.
좌중을 둘러보다가 그는 뒤늦게야 월정사의 동문 옥여와 그의 사승 풍열을 발견하였다. 그
들 외에도 수태사의 명도와 묘향산에서 온 도안과 유점사에서 운부대사를 모시고 온 일여와
청년 슬려 셋이 있었고 속인은 두 사람이 있었다. 풍열이 말하였다.
그래 양주 살림이 어떠하냐?
풍열은 먼 고장에서 집에 다니러 온 아들에게 묻듯이 말하였다.
깨가 서 말이올시다.
여환이 말하자 운부대사는 나직하게 기침하였다. 방심하면 제 자리를 얻지 못한다. 중 아
닌 중은 중 될 소용이 없느니라. 중이라야 중으로 쓸 수 있지.
풍열은 대사의 말에 따라 빙그레 웃으며 여환을 바라보았다. 운부대사는 이어서 여환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에게서 네 말을 들었다. 네가 부지런하다지?
소승 한몸 목숨 부지할 만은 합니다.
그래, 이러한 흉황과 역병 가운데 참으로 신통한 일이로다. 내가 네게 부탁할 것이 있어
보자고 하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중이 못할 일이 있느냐. 중질을 그만두는 게 어떠하냐.
여환은 갑자기 어리둥절하였다. 노승이 처음에 마음놓지 말라 하던 것은 방일하면 정지를
얻지 못하니 중 노릇을 철저하게 해야만 할 일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것이 중생을 위한다는
핑계로 되어져서도 안된다는 경계의 말인 듯싶었다. 방일한 행동을 삼가라고 해놓고는 중의
짓을 그만두라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지 애매하였다. 풍열이 말하였다.
달이 천강에 비친다고 하지 않더냐.
여환은 그제사 알아들었으니, 방편바라밀이 바로 그것이다. 수단의 완성, 교묘한 방편에
의해서 교화의 저 건너편으로 건너게 하는 적극적인 소행이 그것 아닌가.
부처는 중생의 심성과 사정이 다름을 알아 거기 맞추어 교화하며,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
몸을 나타낸다. 모든 행위가 더러움이 없어 때에 따라 범부의 몸을 나타내고 혹은 생사를
혹은 열반을 나타내기도 한다. 세상사를 잘 살펴 여러 장엄사를 나타내 보이되 탐내어 집착
하지 않고 중생이 업에 의해 생사를 반복하는 미혹의 세계에 몸소 두루 들어가 제도하니 이
것이 수단의 완성이라고 하였다. 운부대사가 중의 소용을 강조하고 나서 중을 그만두라는
것은 불법을 지닌 채로 불법이 허용치 않은 일을 하라는 뜻이었다. 계를 지키며 계를 파하
고 부처를 따르며 부처를 버리라는 뜻이었다. 운부는 처음 같은 어조로 말하였다.
임금을 죽이라.
예... 무슨 말씀이온지.
한양주변 백성들의 힘을 모으고 그들을 도와 궁궐을 깨뜨려라. 저 깊은 산간에까지 삼천
리에 널린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구나. 이때에 마땅히 중질하는 것은 저들에게 하늘
대신 부처님 대신 소매를 떨쳐 나서서, 밥을 주고 옷을 주고 기쁨을 주고 헤어진 것을 만나
게 하고 병든 것들을 낫게 하고 갇힌 것들을 놓여나게 하고 죄진 것들을 벌주게 하고 다친
것들을 간병하여주고 죽은 것들을 묻어 달래야 한다. 우리 중질하는 것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앉아 이밥에 나물 먹고, 목청 돋우어 염불하고, 중생의 고를 돌아보려 않고, 살찐 사대
육신을 빌어먹이기에 이승이 멀고, 스스로 곱게 화장하고 가꾸어 손거울이나 들여다보며 성
불한다 방긋거리는구나. 이제 차마 동네 언덕빼기 마을나무 그늘에 깃든 작은 귀신 서낭에
도 미치지 못하며, 샘가의 칠성당의 사신 하다못해 무당의 잡신 부엌 봉당의 조와 도깨비보
다도 백성의 생사에 근접을 못하고 허튼 말, 빈 글만 남아 공양만 그득하구나. 불도가 세워
질 초년에는 나라일에 참견을 않고 제멋대로 가게 버려두어 마음이나 잡자는 것이 방편이
요, 금시에는 나라도 바꾸고 불법이 널리 평등히 실현되게 하는 것이 또한 방편이다. 물에
빠진 자를 우선 구하고 맹수 만나 자를 살려내고 독화살 맞은 자에게서 화살을 뽑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부처님 역시 작고 연약한 나라의 공자이시더니 저희 사람끼리 차별하여 부
리고 억누르고 빼앗고 밟는 짓들을 어찌 용납할 수 있었으랴. 만왕의 코끼리가 창칼로도 석
가가 번진 화평을 깨뜨리지 못했거니와 그것이 당시의 방편이다. 이제 우리 중질하는 것들
은 왜란 호란 때에 병장기를 들고 산문을 나서서 바깥 도적을 쫓아냈거니와, 안의 도적도
몰아내주어야만 석종의 분임을 짓는 길이 될 것이다. 조정의 중신들과 양반 사대부들은 백
성이 만난 재난이요 맹수요 독화살과 같다. 우리가 모두 지옥불 가운데 떨어질지언정 여기
서 정토를 이루어내야만 하느리라.
운부는 억양없이 평지로 흐르는 얕은 물이 찰랑대며 흘러가듯 말하였고, 여환의 가슴속에
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조용하게 번져오는 것만 같았다. 여환은 머리를 조아렸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운부는 그때 처음으로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떠올렸다.
내가 들으니 너는 잘 알고 있더구나. 사방에서 가엾은 것들이 떼를 지어 산간으로 찾아와
숨고 의탁하니 잘 거두도록 해라. 서로 알고 지내도록 하여라.
풍열이 여환의 건너편에 앉은 속인을 바라보고서 말하였다. 그는 유건에 도포 입고 수염
이 잘 생긴 선비의 풍모였다. 여환이 합장 배례하였다.
소승 문안이오. 양주의 여환이라 합니다.
속인은 함께 합장하여 말하였다.
예, 잘 알구 있습니다. 광주 노적사 있는 정원태라구 하오.
나는 파주 사는 전생이우.
정원태 곁에 앉아 있는 자는 헐렁한 옷소매를 질끈 돌려 안으로 접어 넣은 것으로 보아
외팔이인 듯하였고, 한쪽 눈도 감겨 있는 외눈박이였다.
황회라구 하오.
그 곁에 앉은 눈 큰 자가 말하였다. 정원태가 진관사 있을 적부터 해서로 나다닐 때 구월
산 월정사에도 드나들었고 가평 현등사에서 옥여 일여를 만나 적도 있었으며, 그가 노적사
에서 광대배들이나 거사 사당배들과 더불어 미륵당 비슷한 계를 짠 것도 이들에게는 자세히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대충 인사들이 돌아간 다음에 검계 얘기며 장안 노속들의 살주계 얘
기도 나오게 되었다. 여환은 양주에서 경기도 북방 지역의 노속들을 검계와 살주계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일을 맡도록 되었던 것이다.
여환은 그 뒤로 천불산에 두 번 더 갔었고, 검계와 살주계가 한양서 포도청의 추적을 피
하여 은둔하고 나서는 양주 이북의 지역을 매우 중시하게 되었던 터였다. 그 무렵에는 여환
은 이미 파주 문산포에 있던 이경순과도 알게 되어 승속을 벗어나서 교우를 나누게 되었고,
그의 처가 되어 있는 묘옥과도 해후를 하게 되었던 터였다. 여환은 장길산이 어떠한 인물로
성장하였는가를 소문을 통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 즈음에는 벌써 우대용이도 문산포에
가끔 나타나게 되어 박대근 우대용 이경순 등등이 여환의 칠성암을 방문했었다. 연계는 그
렇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져가고 있었다. 운부가 해서 경기에서의 모든 일을 풍열스님에게 당
부하여, 풍열은 구월산이 함몰된 뒤에 통문을 돌려서 오진암의 모임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여환이 통문에 접한 것은 모임이 있기 꼭 달포 전이었다. 여환은 이경순보다 열흘 먼저 구
월산으로 출발하였다. 때는 정이월 다 간 삼월이라 초목에는 물이 오르고 멧새들은 짝을 찾
아 우짖으며 날아다녔다. 여환으로서는 실로 다섯 해가 넘어 해서를 찾아드는 격이었고, 구
월산 월정사를 떠나 만행에 나서던 일이 꿈만 같이 여겨졌다. 예성강의 콩깍지빛 같은 물은
수면에 금 하나 없이 잔잔한데 멀리 연백평야의 아득한 끝에는 비봉산 마루가 좌우로 문처
럼 서 있었다. 나루터를 벗어나 뱀내의 모래밭을 오를 때 향그런 풀 내음과 수초 냄새가 숨
결 속에 묻혀 들어왔고, 여환은 어느덧 삼십객이 되어 예전의 도량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이
감개스러웠다. 이제 겨우 뜻한 바의 초입에나 이르고 있을 것인가. 그는 한양 종루 네거리에
서 산지니의 최후를 지켜보던 생각이 났다. 일체세간불가락상... 하며 미륵경을 외웠을 때 희
광이들의 작두가 섬광을 그렸던 것이다. 그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구월산 혈당들의 죽음도
아프게 떠울렸다. 그에게는 이 봄의 소생이 다만 덧없어서 세상 가운데 가득 찬 질곡은 차
츰 번성해가기만 하는 듯이 여겨졌다. 봄이여 또 한번 가라, 언 당은 풀리고 뿌리는 소생할
지라도 정토는 영영 움트지 않아 온 세상이 빈집인 듯 깜깜하고나.
여환은 삼월 스무날께에 신천 문화를 지나 내고개를 넘었다. 그가 내고개서 구구월을 들
어서서 월정사의 붉은 산문에 이른 것은 마침 법고와 범종이 어우러져 은은히 울려퍼질 석
양녘이었다. 그는 기운 장삼에 다 떨어진 바랑 걸머지고 일그러진 송낙 차림이라 흉황의 걸
승 행색이 적실하였다. 여환이 경내로 들어서는데 마침 여인 하나가 맨발로 뛰쳐나오는 참
이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넘겨 말 꼬랑지 모양 무명끈으로 한 묶음이 되도록 질끈 동였고,
옷은 중의 회색 바지 저고리였다. 바짓가랑이는 그냥 걷어올려졌고 저고리고름은 풀어 헤쳐
져 뽀얀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대번 보기에도 미친 여자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으니 눈의
초점이 먼 곳에 있었다. 여인은 한 손에 나무 부지깽이를 들고 우쭐우쭐 춤추며 허공을 찌
르는 흉내를 냈고 다른 중년 여자가 허겁지겁 쫓아오고 있었다.
"이것아, 거기 못 서겠니?"
여환은 미친 여자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뒷전의 중년 여자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미친
여자는 눈썹을 곤두세우고 눈살을 찌푸리고는 작대기를 쳐들었다.
"비켜나라, 찌를테. 목을 베어줄테."
여환은 그때까지도 원향이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너무 자라 있었고 실성한 뒤로 예전의
곱고 순하던 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여환은 사자암을 떠난 뒤 양주 인
근에서 보내던 수년 동안에 수도행자 시절의 기억을 거의 잊었던 때문이기도 했었다. 원향
은 그 낯선 객승을 정말 때리려는지 작대기를 쳐들었다. 여환이 송낙을 뒤로 젖히고 단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목베기 장난이 하고 싶으냐."
어찌되었는지 원향은 여환의 눈빛에 닿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 때리기를 잊었는지 막
대를 떨어뜨리고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뒤미처 따라온 중년 아낙이 원향의 어깨를 잡
았다.
"어이구, 이건 잠깐 한눈 팔기만 하면 엉뚱한 짓을 저지르니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혼자 푸념하고서 아낙이 여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스님, 노여워 마시우. 얘가 실성한 아이라 큰 봉변당하실 뻔했지요." "괜찮소. 옥여스님
계시오?"
"예, 지금 대중방에 계십니다."
원향이는 계화에게 잡혀서도 여환만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계화는 원향이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쳐주면서 달래었다.
"우리 원향이 참 착하다. 어서 들어가서 밥 먹구 기도하러 가자." 여환은 그들 곁을 떠나
법당 쪽으로 가던 참이었다. 뭔가 그 미친 처녀를 바라보며 딱히 짚어낼 수는 없으되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였다. 그런데 등뒤에서 아낙이 원향이라고 이름을 불렀을 적에야
마치 찬물을 맞은 듯 소스라쳤다. 원향이... 그렇다, 저 눈은 바로 그 아이의 눈이었다. 여환
은 다시 돌아섰다.
"이 처자의 이름이 뭐라고요?"
"원향이라우."
여환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도 자랐단 말인가. 은율 장터에서 그애의 식구가 굶주
림으로 쓰러졌을 때, 실성한 어미와 죽어간 아비의 시신을 지키고 앉았던 당돌하고 침착했
던 계집아이의 얼굴이 무표정한 처녀의 얼굴에 겹쳐져서 떠올랐다. 여환은 몇걸음 다가들어
원향의 두 손을 잡았다.
"원향아... 네가 이게 웬일이냐?"
원향은 두 손을 맡기고 그저 표정없이 여환을 바라보았다. 여환은 눈물과 먼지로 얼룩진
원향의 얼굴을 사당말의 냇가에서 씻겨주던 생각이 났다. 착하다 네 이름이 뭐니, 원향이,
나는 여환이라구 한단다. 나두 너만한 누이가 있었다, 그랬었다. 어느 곳에 어린 노비로 팔
려가 누구의 아이를 낳고 살지는 모르나 누이동생이 켰다면 이만이나 할 것이었다. 원향을
데리고 산과 들로 쏘다니며 놀던 일이 생각났고, 은율장을 보러 풍열의 심부름을 나갈 적마
다 쫓아오겠다며 떼를 쓰던 원향이, 엿을 사다 주랴, 떡을 사다 주랴, 여러가지로 꾀를 내어
떼어놓고는 달아났던 것이 아닌가. 그래도 못내 마음에 걸려서 한달음에 돌아오면 원향은
제 어미 뒷방보살의 무릎에 쪼그려 잠들어 있고는 했었다.
"얘를 아십니까?"
계화가 의아하여 묻자 여환은 그제서야 멋쩍어져서 잡은 손을 놓았다. 이제는 가슴도 커
지고 달덩이 같은 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잘 압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지난번 관군의 구월산 명화적 토포시에 사선골서 온 가족이 구몰당하였지요. 에이그, 하
늘도 무심하시지." 여환은 준보와 원향의 어미 후례도 잘 알고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읊조리고 여환은 말하였다.
"나다, 여환이야. 네가 이렇게 되다니."
원향은 이상하다는 듯 여환의 장삼 자락을 잡아당겨보더니 다시 손을 찾아 잡았다. 그리
고는 묘하게 입을 일그러뜨리고 비죽비죽 울기 시작했다.
"너 이 스님 알아보겠느냐?"
계화가 신통하여 원향의 어깨를 잡아 흔드니 원향은 여환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조용하게
울었다.
"나를 알겠느냐?"
여환이 다시 물었으나 원향은 그러고만 있을 뿐 대꾸가 없었다.
"원 세상에 이렇게 얌전한 꼴은 처음 보겠네."
여환은 살며시 원향을 떼어놓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원향이 그를 따라잡으려고 하였으나
계화가 막무가내로 이끌어서 안채로 끌고 갔다. 여환이 중문간을 들어서니 마루에 앉아 있
던 옥여가 벌떡 일어섰다.
"어서 오게. 제법 이른걸."
"음, 토문 받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여기야 내 본가가 아니던가." "아직 공
양 전이지? 시장하겠네."
옥여가 행자승에게 밥 한 상을 당부하고 나서 여환이 물었다.
"큰스님 여전하시지?"
"요새는 달마암에서 꼼짝두 않으시네. 관군이 왔다 가고 나서는 산 아래엔 한번두 안 내
려가셨지." "문안 올려야지."
"낼 아침에 올라가세."
여환은 묵묵히 앉았다가, "들어오다 원향이 봤지."
불쑥 말하였고, 옥여는 우울하게 대꾸하였다.
"어떻게 알아봤군 그래. 직접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야 사선골과 탑고개의 일을 어찌 알겠
는가." 옥여는 덧붙였다.
"우리는 세상에 이렇듯 빚이 많단 말일세."
여환은 한숨을 쉬었다.
"사문은 정을 들이지 않는 법이지만 그 아이는 속세의 내 누이나 한가질세. 변한 모습을
보니 세상의 어지러움을 잘 알겠군." "원향이의 식구는 창에 찔리고 불에 던져졌다네. 관군
이 그애를 행음하고 길에 버린 것을 이웃 아낙이 구해냈다지. 나는 중이 되어 처음으로 예
불을 올리며 속인처럼 울었네. 구월산 식구들은 내 가장 가까운 동무들이었어." 여환은 원
향이가 난행당했다는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가 월정사를 떠나오던 날 구구월
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서 소리질러 그를 부르던 원향이의 낭랑한 목청이 생각났다. 여환스
니임... 처음 불렀을 때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어주었고, 두 번 불렀을 때에는 애써 참으며 얼
른 산모퉁이를 돌아버렸던 것이다. 다시 돌아보니 산굽이 저편으로 가리워져 원향이가 섰던
바위는 보이지 않고 그를 부르는 소리만이 들려왔었다. 봄 뻐꾸기가 가까이 멀리 옮겨 날아
다니며 울었다. 옥여는 관군이 월정사 문루에서 물러가던 얘기를 하였고, 구월산 마감동 오
만석 등의 최후에 대하여 전하였다.
그날 밤 객방에 누운 여환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에 섞
여 소쩍새가 목메어 울었고, 계곡을 흘러가는 물소리가 뭐라고 저희끼리 두런대고 있는 듯
하였다. 오누이는 높은 산으로 올라갔지. 산 위에서 두 손을 모아 하늘님께 빌었단다. 우리
는 오누이라서 혼인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오라버니는 수맷돌을 동쪽으로 굴
리고 누이동생은 암맷돌을 서쪽으로 굴려 보내고 나서 둘이는 산에서 내려왔대. 산을 내려
와서 보니까, 이상하게도 해가 뜨는 쪽으로 보낸 맷돌과 해가 지는 쪽으로 보낸 맷돌이 만
나서 합쳐져 있었다지. 그래서 오누이는 아, 하늘이 우리더러 혼인하라구 그러는구나 생각하
고는 그렇게 했단다. 그래서 예전부터 사람들은 부부를 오누이라고 말하는 거야. 여환이 원
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해주었던 옛날 얘기 소리가 시냇물 소리에 섞여서 흘러가고 또
흘러 지나갔다. 나두 크면 스님한테 시집갈 테야. 그건 안된다. 어째서 안돼? 전생 때문에
안된다. 전생이 뭐야? 아하 과거세여! 여환은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과거의 번뇌로 말미
암은 여러 업을 짓는다면, 내세에서 다시 거기에 해당하는 몸을 얻게 될 터이다. 모든 인연
이 결합되어 씨에서 싹이 트듯이. 씨에서 싹이 트려면 인연이 필요하고 싹이 자라나면 씨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될 테지. 씨와 싹을 보아라. 씨가 없어지는 것으로 보아서는 지속함이 없
겠지만, 싹이 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단절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자아가 없으면서도 업보의
어김없음이 씨와 싹 같을진대. 내세에는 길 위에 구르는 돌멩이나 되거라. 그래서는 산천의
호젓한 길 위에 굴러 세간의 무상한 흥망성쇠를 지켜볼 것인가.
여환은 풍열스님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달마암에 올랐고, 풍열은 여환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었다.
"원향이를 만났더냐?"
"어제 산문에서 잠깐..."
"네가 왔으니 그애가 넋이 돌아올지두 모르겠다. 애증의 원한은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풀
어지기가 어려운 법이니라." "계화라는 여인과 더불어 아침 저녁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으
로 아옵니다." 여환이 말하자 풍열은 혀를 찼다.
"한이 깊으니 기도로 풀어지지 않는구나. 차라리 저희들 식으로 실컷 노래하고 춤추는 굿
이나 벌이면 모를까... 그 아이가 어려서부터 너를 따랐지?" 풍열이 이윽히 들여다보았고
여환은 고개를 숙였다.
"스님과 유민을 구휼하러 나갔다가 제가 처음 그애를 수습하여 누이와 같았사옵기..." "그
래, 그동안에 속세에서 쌓은 법력으로 그애를 간병해보아라." "법력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허허... 양주 칠성암의 미륵이라는 네가 그깟 포한 들린 작은 계집아이의 가슴도 진정시
키지 못하겠느냐." 풍열은 웃으면서 말하였고 여환은 더욱 송구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
였다.
"제가 번민이 많아 그런 일은 못합니다."
"예끼..."
풍열이 웃음을 거두고 갑자기 힐난하였다.
"작은 처녀의 실성도 다스리지 못할 터인즉 그러한 번뇌를 가지고 어찌 양주 고을서 동분
서주하며 시늉만 하였더냐. 차라리 중질 못하겠거든 원향이의 서방이나 되어서 중이 못 되
겠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어야지." "잘 알겠습니다."
여환은 쫓기듯이 달마암을 내려왔다.
그는 더욱 원향이와 마주치기가 두려워서 안채에 있는 문간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녁께에 방안에 결가부좌하여 고요히 앉았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는 것이었다. 원향이는 먼
지와 흙투성이인 맨발로 뛰어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구석에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여환은
당황하여 일어났고 계화의 남편 김승운이가 마당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다.
"스님... 여기 우리 아이 안 들어왔습니까?"
김승운이 기웃하여 여환은 고개를 돌려 가리켰다.
"아이구, 마누라가 저녁공양을 준비한다고 저것을 내게 맡겨두었으니 이건 어디 뒷간에를
다녀올 수가 있나. 잠깐 한눈 팔면 법당에 들어가 소피를 보고 산 아래로 마구 달려 내려가
고... 얘, 원향아 이리 나온." 원향이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꼼짝도 않았다.
"이리 나오라니까. 여기는 스님 혼자 계시는 방이다. 스님 저 애를 좀 쫓아내슈." "괜찮다
면 그냥 두어보시지요. 내가 돌보고 있지요." "그래주시겠습니까. 이거 원 절에서 붙어 살
기두 미안한데 날마다 소동을 부리니...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장작을 뽀개놓아야 하니
까." 김승운이는 놓여나서 기쁜지 얼씨구나 원향이를 여환에게 맡겨두고 사라졌다. 여환은
그렇게 말은 했으면서도 어찌해야 좋을지 도무지 난감하였다. 그는 원향이 쪽을 힐끔 살폈
다. 원향이는 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여환은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먼저 열어젖혀진 방문을 닫았다.
"어디 보자, 저런..."
여환이 원향의 맨발을 살피니 발등은 터지고 발가락은 수없이 돌멩이를 차서 상처투성이
였다. 원향이는 여환이 살피는 대로 두 발을 맡기고 있다가 상처에 닿자 안면을 찡그리고는
하였다.
"가엾은 것!"
여환은 상처투성이인 원향의 맨발을 살피며 차마 어쩌지 못하여 혀를 찼다. 얼굴은 그래
도 계화가 스님들 뵙기에 민망하다고 아침마다 억지로 씻겨주어 볕에 그을리고 바람에 거칠
어졌을 망정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흙먼지로 더럽혀지고 빗기질 않아서 엉겨
붙어서 그야말로 미친년의 산발이었다.
"원향아, 이제는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다. 이 여환이가 너를 지켜 줄 테야. 비록 어머니
와 준보가 횡액을 당했다고는 하나 아무 죄없이 죽었으니 극락왕생하실 게다. 네가 어서 정
신이 들어야 우리 지난 예기를 하지 않겠니." 여환은 원향에게 타이르듯 말해주었다. 원향
이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런 때에는 원향의 눈이 한곳에 모아
지는 것 같았고 입술도 얌전히 다물어졌다. 여환은 이마와 뺨을 가리우고 흐트러진 머리카
락을 귀 뒤로 쓸어넘겨주면서 말하였다.
"자, 말해보아라. 여환스님, 네 오라비 여환스님이다." "여환..."
원향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잠깐 사람다운 표정이 떠오르는가 싶었다. 여
환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듣고는 원향이가 완전히 제정신을 차렸는가 싶어서 흥분하여 말하
였다.
"그래 여환이다. 은율장에서 만난 여환이야."
원향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더니 살며시 손을 뻗어 여환의 얼굴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여
환은 여자의 가녀린 손가락이 닿자 갑자기 살이 경련하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곧 얼굴
에서 가슴과 배와 그 아래로 빛처럼 번져갔다. 여환은 곧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러나 원향
이는 이번에는 두 손을 뻗치고 달려들더니 넘어지듯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다가들었다. 여
환은 원향을 붙안은 채로 뒤로 벌렁 넘어졌고, 그녀의 몸은 여환의 몸에 찰싹 휘감겨 있었
다. 여환은 가슴에는 원향의 부푼 가슴이 짓눌리듯 밀착해 있었고 배와 한쪽 다리는 그의
두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있었다. 여환은 문득 정신이 아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하마
터면 원향의 등을 꽉 끌어안을 뻔하였다.
"이러면 못쓴다."
여환이 원향의 몸을 밀어내고 일어나 앉자 원향이는 다시 그의 어깨를 안았고, 그는 여자
를 뿌리치며 일어서버렸다. 그는 자신의 불덩이 같은 뜨거운 느낌이 두려워졌던 것이다. 원
향이가 이번에는 그의 하반신을 붙안고 늘어졌고 여환은 두 다리를 잡힌 채로 탄식하였다.
"네가 어찌 약한 사문을 괴롭히느냐."
여환은 스스로 마군에 잡힌 듯하여 가슴이 울렁거리고 뺨은 달아올랐으며 정신이 혼미하
였다. 가까스로 다리를 한쪽씩 뿌리치고 방문 앞에까지 물러서니 원향이는 다시 아까처럼
벽에 가서 쭈그리고 앉더니 흐드득 느끼고는 비죽이 울기 시작하였다. 여환은 가엾은 생각
이 들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냥 우두커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저것이 실성한 중에도
어렴풋한 정의 끄트머리가 남아 나오는 짓거리이겠거니 싶었다. 여환은 중얼거렸다.
"아아, 사대육신이여, 어서 무너져라."
여환은 원향이를 내버려두고 방을 나왔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월정사
경내를 이리저리 거닐며 행선하였다. 주위가 어두컴컴해져서 여환이 돌아가니 계화가 안채
에서 나오다가 반색을 하였다.
"스님, 우리 원향이 돌보느라구 혼나셨지요?"
"예... 아니오. 얌전하게 있습니다."
여환은 얼결에 얼버무리는데 혹시 계화가 눈치챈 것이 아닌가 하여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하였다.
"공양때가 되었으니 세수라도 시켜야지요. 참 그런데 원향이를 어디다 두고 스님은..." 하
다 말고 계화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여환을 앞질러 가서 방문을 벌컥 열어보았
다.
"아이구 어두워서 통 뵈질 않아."
이리저리 살피다가 계화가 나직하게 웃었다.
"참 별일이네. 저렇게 얌전하게 혼자 자는 꼴은 처음이구먼." 여환은 계화의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원향이는 어두운 방구석에 돌아누워 잠들어 있었다. 조그맣게 웅크린 그녀의 야
윈 어깨가 보였다.
"어떡하나 밥을 먹여야 할 텐데... 깨워야지."
계화가 쫓아들어가려는 것을 여환이 말렸다.
"오죽 곤하면 저러겠소. 그냥 놓아둡시다. 내 저 애가 깨면 데려다 주겠소."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지금 잠들었다가 괜히 한밤중에 깨어 자지 않구 보채면 더 고생이지요." 계화는
방으로 쫓아들어가 원향의 어깨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얘야, 어서 일어나. 여긴 네가 올 방이 아니에요."
원향이는 부스스 일어나더니 계화의 얼굴과 마주치자 앉은걸음으로 재빨리 물러났다. 그
녀는 도리질을 하며 울기 시작했다.
"싫어, 싫어."
"너 이년, 이렇게 매일 떼만 쓸 테냐."
하면서 원향이를 끌어내려고 장삼의 앞섶을 잡아당기는데, 원향이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계화의 손목을 끌어잡고 손등을 깨물었다.
"애그그."
계화가 죽는다고 소리치며 얼른 일어났고 여환은 곁에서 말하였다.
"그냥 두어보시오. 내가 간병하여보리다."
계화는 일어서서 원향이를 삿대질하며 야단을 쳤다.
"미쳐두 곱게 미쳐야지. 그렇게 우리만 괴롭히다가는 네년 정신은커녕 몸두 온전하질 않
게 된다. 어이구 우리두 이제는 지쳐버렸다." "내가 며칠 동안만 곁에 두고 보살피겠소."
여환이 말했으나 계화는 믿기지 않는지 펄쩍 뛰었다.
"저 가엾은 것에게 내가 공연히 하를 내는구료. 아무리 그렇지만 스님께서 어찌 저 애를
곁에 두고 계시겠어요. 다 큰 애인데." "염려 마오. 내게는 누이나 매한가지이니..."
"너 안 갈 테냐?"
계화는 내심 반갑기 그지 없었으나 본인에게 묻는다는 식으로 원향에게 물었고, 원향이는
역시 도리질을 하며 완강하게 답하였다.
"싫어, 싫어."
계화는 함숨을 내쉬었다.
"그럼 하는 수 없군요. 저는 모릅니다. 옥여스님께만 일러두셔요." "다 말을 해놓지요. 그
리고 물이나 좀 데워주십시오." "물은 뭘 하시게요?"
계화가 물으니 여환은 그답지 않게 머뭇머뭇 답하였다.
"원향이를... 씻겨주려고요."
"스님이요?"
계화는 잘못 들었다고 여겼는지 되물었다.
"그애를 씻어주어요?"
"예, 발에 상처도 많고 머리를 감은 지도 오래인 것 같더군요. 기도를 드리려면 정결해야
될 테니까." 여환이 이번에는 부끄럼을 타지 않고 계화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꾸하였다.
"아유, 그렇다면 오죽 좋아. 세수 한번 시키는데두 우리 두 양주가 송아지 받아내듯 한다
오. 기운이 어찌나 센지 물박을 엎어놓기 일쑤라구요." "이제부터 차츰 넋을 찾게 되겠지
요."
"글쎄 우리가 월정사를 떠나기 전까진 그렇게 되어야 할 텐데." 계화는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서 벌쭉대며 중문간으로 사라졌다. 여환이가 마루에 앉았는데 원향이 부스스한 몰골로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다.
"배고파 밥 줘. 배고파 밥 밥."
꼭 서너살짜리 아이처럼 원향이는 떼를 쓰는 투로 칭얼거렸고, 여환이 달했다.
"어 착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보살님이 밥을 주신댄다. 그동안 스님하구 놀자꾸나." 원
향이가 알아듣기라도 하였는지 힘없이 방문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화가 나와 알렸다.
"스님, 물 다 데웠수. 응, 원향이가 저렇게 참하게 앉아 있는 건 또 이변일세." "그러면
데운 물을 동이에 길어다가 광에 갖다 주시오. 나는 애를 데리고 갈 것이니." "그냥 샘가에
서 시키지 않구요?"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계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 목욕 감기려우?"
"예, 기왕이면..."
계화는 하마터면 망측해라 하고 외칠 뻔하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부엌에서 물을 가득 채
운 가마솥에 불을 때다가 공양도 끝났는데 뭘 하느냐는 옥여의 물음에 답하였던 것이다. 여
환스님이 우리 원향이를 씻겨준답니다. 절에서 스님이 부녀자에게 그래두 되는 겁니까. 옥여
는 빙긋이 웃고는 나는 안되오마는 여환수좌는 됩니다, 하는 것이다.
"어서 길어다 주시오. 힘들어 그렇다면 여기서 얘를 지키구 있으시우. 내가 길어 나를 테
니까." 여환의 재촉에 계화는 하 어이가 없어져서 말이 새었다.
"아이구 우리 서낭님두 그렇게는 안허겠다."
"서낭이야 귀신이지만, 우리는 사람이 아니오?"
하면서 여환은 웃음을 지었고, 계화는 연신 중얼거리며 사라졌다. 잠시 후에 중문간에서
목소리만이 들려왔는데 자못 퉁명스러웠다.
"길어다 놨수."
여환은 맥없이 앉아 있는 원향의 손을 잡고 가볍게 당기며 말하였다.
"자아, 우리 이제 씻으러 가자. 이 고운 몸에 이게 무슨 꼴이냐." "배고파."
하면서도 원향이는 가축이 임자에게 그러듯이 고분고분 일어났다. 여환은 원향이의 손목
을 잡고서 안채의 광으로 갔다.
마당을 건너지를 때 바라보니 계화는 부엌 문 뒤에 숨어서 그가 저지르는 짓을 훔쳐볼 모
양이었다. 머리가 밖으로 비죽이 나왔다가 여환의 시선에 부딪치자 잽싸게 숨는 것 같았다.
광문을 밀고 들어가니 안은 캄캄하였다. 문을 조금 열어놓고 보니까 희미하나마 구석에 쌍
인 곡식섬이며 소금독들이 보였다. 바로 한가운데 물동이가 놓였고 동이 가운데 바가지가
떠 있었다. 여환은 광문 밖에다 대고 소리쳤다.
"보살님, 불이라도 좀 켜다 주오."
계화가 등잔에 불을 붙여서 조심스럽게 손바닥으로 가리우고 들어왔다. 계화는 여환을 똑
바로 보지 못하고 얼른 대독 위에 올려놓더니 또 아무 소리 없이 나가버렸다. 여환은 두리
번거리다가 먼지를 뒤집어쓴 자배기를 들어다 놓고 물을 부어 깨끗이 가셔냈다. 물의 온기
가 적당하게 따뜻하였다.
"이리 앉아라."
원향이는 물이 담긴 자배기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여환은 한 손은 원향이의 머리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물을 움켜 낯을 씻어주었다. 원향이는 상을 찡그렸을 뿐 그대로 견디었다.
"아, 원향이 이쁘다."
이번에는 뒤통수를 눌러 고개를 숙이게 하고 나서 뭉치고 헝클어진 머리를 자배기 속에
담그도록 하였다. 여환은 손가락을 갈퀴 모양 벌려서 원향이의 엉킨 머리카락들을 훑어내렸
다. 실성한 것에게도 시원한 기분은 있었는지 더욱 머리를 깊숙이 숙이면서 얌전히 쭈그리
고 있었다. 물이 대번에 검게 되었다. 여환은 자배기의 물을 갈아 다시 한번 머리를 헹구고
나서 허리춤에서 무명 수건을 풀어내어 얼굴과 머리를 대강 닦았다. 여환은 잠깐 원향이의
훤해진 모습을 바라보더니 대뜸 장삼을 젖혔다. 여몄던 앞섶이 열리며 뽀얀 젖이 봉곳하니
드러났고 아래로 처진 바지춤 위로는 도톰한 아랫배와 배꼽이 드러났다. 여환의 손은 불이
센 화로 위에 들이댔을 때처럼 조심스러워졌다. 손가락 끝은 물고기에 닿은 듯이 민감하게
파들거렸다. 여환은 차라리 손을 펴서 원향이의 살에 꽉 눌렀다. 그는 바지춤을 끄르고 아랫
도리 마저 벗겨버렸다. 빈 자루처럼 허물이 주욱 발목까지 흘러내렸고 원향이의 흰 속살은
물이 찰랑찰랑 자배기 위에 소담한 백국처럼 서 있었다. 여환은 떨리는 손으로 바가지에 물
을 떠서 원향이의 어깨에 부었다. 물은 핥듯이 가슴을 타고 젖무덤을 넘어 아랫배로, 허벅지
에서 발등으로 스쳐 내렸다. 여환은 또다시 물을 끼얹었다. 등뒤로 타 내린 물은 등마루를
지나 척추를 따라서 벌어진 볼기를 쓰다듬고 종아리를 때리며 떨어졌다. 원향이의 몸 구석
구석 젖었다. 여환은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한 손으로 원향이의 육신을 문질렀다.
"지심귀명례 사주지알표익 성승현옹자단의 섬부지지음미 선녀화류금쇄골 대비대원 대성대
자 성백의 관자재보살 마하살." 여환은 관음보살께 바치는 법요를 외우며 원향이의 목덜미
와 가슴께를 씻었다. 사주지알표익이라 함은 승가대사의 행적을 일컫는다. 승가대사는 서역
동북의 하국 사람으로 어려서 출가하였는데, 당나라 때 강회에 이르러 유화하였다. 여러가지
신기한 일이 많아서 다 전할 수는 없으되, 이러한 일도 있었다. 장안부마도위 무유가 병이
들었을 때, 조관에 물을 뿜어 즉시 나았다 하고, 그 후에도 병든 사람이 있으면 버들가지 털
어주며, 돌사자를 씻어 먹이며, 물병을 던져주며 모두 병을 낫게 하였다 한다. 한편 비를 내
려 가뭄을 구하고 사를 내려 죄수를 위로하였고 나한의 우물도 찾고 물에 빠진 배씨도 구했
다고 한다. 표익을 막았다는 것은 아마 배씨의 사실인 듯싶다. 화제가 만회대사에게 묻기를,
승가대사는 어떤 사람인가 하니 그는 관음보살의 화신입니다.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당나라가 융성하던 때에 불도가 천하에 성행하였으나 다만 섬부의 사람들은 활쏘기
말타기나 좋아하고 격투나 일삼으며 삼보를 믿지 않았다. 그때 한 여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풍모가 초연하고 자태가 아름다운데 아무 권속도 시종도 없이 오직 단신이었다. 그 여자는
말하였다. 부모도 형제도, 없습니다. 시집을 가야겠으나 저는 재물도 필요없고 오직 총명하
고 현철하며 능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경서를 외는 사람이면 그를 섬기겠습니다. 이 말을 듣
고 수많은 남자들이 모여들었다. 여자는 보문품을 내주었다. 이것을 하루 저녁에 외는 사람
이면 내가 따라가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 보문품을 외는 자가 스무 명이나 되었다. 그 여
자는 다시 말하였다. 나는 한 몸이요 우리 집안도 대대로 정결한 집이니 나 한 사람이 어떻
게 여러 남자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을 한번 더 외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 여자
는 금강경을 내주었다. 이튿날 역시 십여 명이나 외는 자들이 있었다. 여자는 다시 약속하고
법화경 일곱 권을 내주며 사흘 안에 외라 하니 다만 마씨의 아들 한 사람이 통달하였다. 그
여자는 일렀다. 그대 여러 사람보다도 월등하시니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그대의 부모님께 고
하여 예를 갖추게 하소서. 혼인은 인생의 큰 예절이니 어찌 함부로 따를 수 있겠나요? 이리
하여 마랑이 예를 갖추어 그 여자를 맞아 갔다. 잠시 후 여자는 몸이 괴롭다며 고요한 방에
서 몇시각 쉬겠다 하였다. 그리고는 다른 방에 들어갔는데 하객들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여
자는 죽어서 벌써 썩기 시작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마랑은 여자를 장사지냈다. 며칠 뒤에
한 노승이 지팡이에 장삼을 입고 찾아와 여자의 친척이라 하였다. 마랑은 노승을 여자의 묘
지로 안내하였다. 노승은 지팡이로 무덤을 마구 파헤쳤는데, 그 며칠 사이에 여자의 시체는
이미 사그라져 노란 뼈 몇점이 되어 있었다. 노승은 그 뼈를 강물에 씻어서 지팡이 끝에 둘
러메고 구경 온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이 여인은 바로 성자이니라. 너희들의 업이 무거움을
불쌍히 여기고 방편을 부려 너희를 교화한 것이니라. 너희는 이 좋은 인연을 생각하여 고해
를 면하라.
또한 연주 땅에서는 이러한 일도 있었다. 어느날 살결이 무척이나 희고 얼굴이 아리따운
한 부인이 홀로 시장을 떠돌아다니니 젊은이들이 따라다니며 친하게 놀기도 하고, 같이 자
자고 유혹하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그 부인은 조금도 사양하거나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수년 만에 홀연히 죽어버렸다. 그러므로 떠도는 인척 없는 여인의 시체는 길가에 묻혔다. 그
후 당나라 대력연간에 홀연 어떤 노승이 그 묘 앞에 좌구를 펴고 앉아서 분향하며 여러 날
동안 독경하였다.
그곳 사람들은 노승에게 말하였다. 이 여자는 아주 음란하던 여자이며, 죽은 뒤에도 거둘
이가 없어서 이렇게 길가에 묻혀 있거늘 화상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분향 독경하며 공경하십
니까. 노승이 돌아보며 대답하였다. 이 여자는 큰 성인이 자비희사를 행하느라고 세상 사람
들의 욕심에 순종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분은 쇄골보살로서 인연을 순종하다가 인연이
다해진 성자이시다. 이애 그 묘를 파보니 뼈가 금색이며 뼈와 뼈가 서로 사슬처럼 걸려 있
었다. 그곳 사람들은 죽은 여인을 위하여 제사를 베풀고 탑을 쌓아 뼈를 봉안하였다고 전해
진다. 이는 모두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다.
여환은 염불을 외우는 사이에 차츰 가슴이 진정되었다. 이제는 원향의 맨살에 닿는 손끝
이 떨리기를 멈추었다. 원향이는 붙박힌 듯이 벗은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여환은 원향이의
가슴에서 배로 다리로 씻겨 내려갔고 자연히 무릎을 구부렸다.
"단염하광신영정 소응월면모희기 관근두교불참차 설법이생함해탈." 불기는 놀빛처럼 고
와서 몸이 맑고 깨끗하며, 희기는 월면이 엉긴 듯이 얼굴이 희유하고 기이하구나. 근기를 보
아서 가르치심이 어긋나지 아니하고, 세상 누구라도 설법을 듣고 해탈을 얻는구나.
더운 물에 씻긴 원향의 몸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고 여환은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는 몸을 굽혀 상처투성이의 발등에다 물을 끼얹었다. 여환은 무명 수건을
내어 물방울이 돋은 원향의 육신을 닦아주었다.
"원공제중생 동입금강계 귀의불퇴전 대비보살승 원공제중생 동입금강계." 원컨대 모든
중생과 한가지로 금강계에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퇴전치 아니하시는 대비보살께 귀의하옵나
니 원컨대 중생과 한가지로 금강계에 같이 들어가렵니다.
원향은 여환의 염불을 알아듣는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다리를 닦아 내리는 여환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여환은 그녀의 허리를 안아 자배기 위에서 들어내어 바지와 장삼을 입혔다.
여환이 양주 칠성암에서 사방팔방으로 나다닐 때 곧잘 죽은 이들의 몸을 씻기고 수의를
갈아입히고 하였건만, 살아 있는 젊은 여인의 몸을 씻긴 것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정이 깃든
원향의 색신이 아니던가. 그러나 생사의 구별이 있다 할 뿐 그 몸이 어떻게 다르랴. 연이 끊
기면 모두 물이 되어 썩어 녹아 사라진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그대의 넋 없음이여 나를 깨
우쳐라. 그대의 몸이 무심하게 서 있었듯이 나의 목욕 보시도 무심하게 하여라.
"관세음보살."
여환은 원향이의 맨발이 다시 흙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중문을 돌
아나와 제 방의 툇마루 위에 올려놓았다. 원향이는 스스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환은 등잔을 켜고 나서 잠자리를 폈고 원향이에게 일렀다.
"어서 자거라."
원향이는 얌전하게 자리에 누웠으며 여환의 팔을 끌어당겼다. 여환은 가벼이 뿌리치고는
가슴을 토닥여주었다.
원향이는 이번에는 여환의 목을 끌어안고 잡아당겼다. 두 사람의 뺨과 빰이 맞닿았다. 여
환은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는 호흡을 크게 내쉬고 나서, "암께 자려느냐?"
물었고 원향이가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환은 자리 위에 원
향이와 나란히 누었다. 원향이가 돌아눕더니 여환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고 그는 원향이의
고개 아래 팔을 넣어 베개를 해주었다.
"어서 자거라. 육신을 너무 괴롭히면 못쓴다."
그는 다시 원향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원향이는 몇번 흠칠거리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 방
안을 둘러보기도 하더니 이내 여환의 품에서 안심한 듯이 잠이 들었다. 여환은 잠이 오질
않았다. 풍열은 자기에게 새로이 중생을 깨닫게 하려고 원향이의 간병을 당부한 듯하였다.
그까짓 포한 들린 작은 계집아이의 가슴도 진정시키지 못한다면 어찌 번뇌를 안고서 중생을
돌본다고 하겠는가. 원향이 지각없는 중에도 그 나름의 꿈길은 있었던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여환은 원향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바르지 못한 모든 번뇌여 사라져라. 마음이여 이제는 가슴에 돌아오너라." 여환은 원향
이를 꼭 껴안은 채로 어느결에 잠이 들어버렸다.
계화와 김승운은 서로 수군대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였다. 그들로서
는 여태껏 원향이의 보호자였고 또한 월정사의 식객인지라 아주 난처한 입장이었던 것이다.
계화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자못 분개한 어조였다.
"세상에... 나는 도무지 모르겠수. 아니, 아무리 오누이 같은 사이라 하여도 남녀유별하고
승속이 다른데... 글쎄 다 큰 것을 발가벗겨 목욕을 시켜?" 김승운은 제딴에도 쑥스러운지
입맛을 다시며 돌아앉았다.
"원 여편네두, 그럼 임자는 왜 그런 꼴을 훔쳐보구두 말리지를 못했나. 물은 누가 데워주
었길래." "나야 뭐 머리나 감기려는 줄 알았지 설마 정말 목욕을 시킬 줄이야 알았겠수."
"허허 해괴하군. 그건 그렇다 치고 중놈이 다른 데두 아닌 절간에서 계집을 끼고 자빠져?"
김승운의 무책임한 말에 계화는 발끈하였다.
"아무렇게나 내지르면 말이여? 계집은 누가 계집이야. 그애는 우리 딸이나 마찬가지요. 만
신 몸주를 받은 애기무당이라구. 가만... 내 이럴 때가 아니지. 옥여스님께 가서 고해야지."
김승운이 계화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허 이 여편네야, 뭐라고 고자질한단 말여. 그래 실성한 것을 제대로 간수 못해 여기 중과
자구 있다구 그런단 말인가. 이따 새벽에 예불 시간이 되면 그자도 일어날 테지. 그때 가서
소리없이 데려오면 시끄럽지두 않구 그 사람두 덜 챙피할 테지." 계화는 못 이겨 주저앉기
는 하였으나 이내 달싹거리는 것이었다.
"참 내가 아무리 불도에 못 미치는 무당이라지만 우리가 기도 한번 하려면 몸과 마음을
청정히 가지려고 엄동에도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하는데, 수행하는 중놈이 감히 저희 도량에
서... 에이그 원향이... 가엾은 것." 계화는 김승운이 잡기도 전에 재빨리 일어나서 법당 뒤
쪽에 있는 옥여의 방으로 쫓아갔다. 방에는 벌써 불이 꺼져 있었고, 옥여의 코고는 소리가
드높게 들려왔다. 계화는 망설이다 부르지는 못하고서 부러 밭은기침을 터뜨렸다. 역시 곤하
게 잠든 것 같아도 옥여는 월정사의 사천왕짜리라 금방 코고는 소리를 멈추고 숨을 가다듬
더니 나직하게 물었다.
"밖에 누구요?"
"예, 저 사선골 보살올시다."
"헌데..."
"스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하시오."
계화는 잠깐 주저하였다.
옥여가 물었다.
"원향이가 어찌되었소?"
"예, 큰탈이 났습니다."
방문이 벌컥 열렸다.
"뭐요, 어디서 떨어졌나. 나가버린 건 아니겠지요."
"그게 아니라, 양주서 왔다는 그 중이 말이지요..."
옥여는 안도하며 말하였다.
"여환이가..."
"예, 여환이란 스님이 우리 원향이를... 아이구 하두 망측해서..." 옥여는 이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여환의 일로 이 밤중에 깨우러 오셨소?"
"초저녁에는 물을 데워달래서 발가벗기고... 목욕을 시키더니... 시방은 데리구 한방에서 자
구 있지 뭡니까." "거참 잘되었군."
"잘되다뇨?"
"여환이가 중질 그만하고 아낙을 얻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지 않구." "스님... 아무려면 절
에서... 그렇게 해두 되는 겁니까." 옥여가 이번에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여환수좌는 보통 승려가 아니오. 그것이 다 원향이의 넋을 들이기 위한 공력을 올리는
짓이니 고마워하우. 여환이 그렇게 애를 쓰는데 나는 편안히 잠만 잤군." "공력이라뇨."
"나중에 굿 벌일 준비나 해두시오. 원향이는 며칠 안으로 정신이 들게요." 하더니 옥여는
방문을 닫았고 이내 코고는 소리가 드높아졌다. 계화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알쏭
달쏭한 기분으로 풀이 죽어 되돌아갔다.
여환과 원향이 한이부자리에서 같이 자고 일어난 다음날, 월정사의 보살들과 백련이 계화
등 등의 여인들 사이에는 쑥덕공론이 한참 오고갔다. 여환은 대웅전서 드리는 예불 대신에
절 뒤쪽의 암벽이 막힌 기도처로 원향이를 데리고 가서 소리없이 기도만을 드렸다. 계화와
백련이는 안무당이 기거하는 명부전 옆의 보살 방에 찾아가 미주알고주알을 다 까발렸던 것
이다.
"글쎄 우리 원향이야 실성하여 자기가 아니지요마는, 그 여환이란 중은 생김도 멀쩡하고
수행도 깊다는 이가 세간도 아닌 대도량에서 뻔뻔하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계화는 분하
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흥, 옥여스님까지도 제 도반 수좌라고 편을 들지 뭡니까. 여환이 원향이의 넋들임을 하노
라구 애를 쓴답니다." 백련이도 거들었다.
"어머니, 아까 살그머니 뒷전 기도처에 가보니까 여환스님과 원향이가 얌전하게 나란히
앉아 두 손은 합장하고 눈을 감고 있습디다. 꼼짝도 않는 것이 스님이야 그렇다 치고 원향
이 모습이 신통하던 걸요." 안무당은 머리에 두통 때문에 무명끈을 동이고 누워서 그들의
얘기를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 모르는 소리 하는구나. 원래가 넋이란 것은 육신에 따르는 것이니라. 원향이는 아
예 제 육신을 비우고 넋이 나가버린 것이 아니라, 넋이 상하여 변하였지. 상심이 지나치면
실성하는 것이 바로 그 이치다. 육신의 정과 마음의 정이 다른 것이 아니다. 여환스님은 먼
저 그 몸을 달래고 상한 넋을 생생하게 하여 몸에 담으려는 것이다. 나도 미친 사람과 더불
어 굿을 할 적에는 죄책으로 인하여 미친 사람은 풀리도록 때려주고, 정으로 하여 미친 사
람은 함께 곡하여 달래주고, 육신으로 하여 미친 사람은 안고 쓸어준단다. 우리 원향이는 참
으로 큰무당이 될 터이니 여환스님의 정성이 어찌 고맙지 않겠느냐." 안무당의 말에 계화
와 백련이는 더이상 씩둑거리지 못하고 곰곰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여환은 바깥채 객방에 원향이와 함께 기거하였다. 원향의 거동은 몰라보리만큼 차분해졌
고 말없고 다소곳한 태로 보아서는 전혀 미친 사람의 형용이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알던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자기 생각에 잡혀 남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
로, 아직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원향이가 가끔 마당에서 계화나
백련이를 만나면 방긋이 웃기도 하였으니, 계화는 너무도 기뻐서 여환에게 가졌던 쑥스러운
생각도 어느덧 사라져버렸다. 여환은 밤에는 어린아이처럼 원향을 품고 자고, 낮에는 뒷전
석불 아래 찾아가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여환이 하루는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보통 때 늘 그러듯이 혼잣말 비슷하게 원향을 향하여 중얼거렸다.
"네가 누구인지 오늘은 알겠느냐?"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향이는 방글거리면서 대꾸하는 것이었다.
"나는 만신 몸주를 받은 용녀라구요. 미륵님이 방금 말했어. 저하구 혼인하여 부부가 되어
서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라던데." 여환은 얼토당토않은 말이나마 그에게는 처음으로 말
문을 연 원향이가 하도 기특하여 다시 물었다.
"용녀말구 네 이름은 생각나지 않느냐?"
"왜... 나는 원향이야. 저 산아래 사선골 살던 원향이지." 말을 토해내자마자 원향은 소스
라치며 주위를 돌러보았다.
"엄마하구 준보가... 불 속에서 못 나왔어요. 그리구 군졸들이 나를 붙잡아서 아아, 무서
워..." "끼놈들 썩 물러가거라!"
여환은 벼락같이 소리치며 허공에다 주먹질 발길질을 해 보이고는 원향이를 잡아 일으켰
다.
"자 보아라. 내가 다 쫓아버렸다. 너는 긴 잠 자고 꿈을 꾼 거다." 원향이는 비로소 여환
을 찬찬히 올려다보더니 소스라쳐서 잡힌 두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또 한번 주위를 돌러
보았다.
"여기는 월정사란다. 여환이가 생각나느냐?"
원향이는 맑은 눈을 들어 여환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스님... 정말 여환스님이어요?"
"그래, 옛말 해주던 여환이다."
"왜 이제... 오셨어요?"
"네가 아프다구 그래서 몇백 리 길을 달음질쳐서 왔단다." 원향이는 자기가 남자 바지에
중의 장삼을 입고 있는 모양을 스스로 살피는 양이었다. 나중에 원향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서 사선골을 지옥으로 떠올렸고 자기가 미륵을 만나 몸을 씻기우던 일도 생각해냈다. 그녀
는 날마다 미륵님의 품에 안겨서 잤다는 것이었다. 원향이가 제정신을 되돌이킨 일은 경내
에 다 알려지게 되었고 풍열스님도 기뻐하였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것은 아니라서 가끔씩
원향이는 혼미한 세계로 돌아가려는 듯이 보였다. 여환이 안을 내어 원향을 위한 큰 굿을
사당말에서 벌이기로 의논이 되었다. 옥여가 제반 굿에 드는 미곡을 대기로 하였고 사당말
에서는 출행 나갈 액막이 겸하여 원향의 굿을 당굿으로 늘리기로 하였던 것이다. 굿하는 날
에는 제반 절차에서 스님들은 제외되었으나 마지막에 여환이 독경해주기로 하였고 옥여와
풍열스님도 마을로 내려갔다. 사당말 빈터에는 굿마당이 마련되고 잽이들 중앙에는 안무당
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앉았으며, 계화와 백련이 그리고 김승운과 모가비 임가 등이
각종 사물악기 등속을 잡고 앉았다. 그들의 뒤편에 월정사 승려들이 끼여 있었다. 원향이는
전립에 전복 차림으로 쾌자 자락을 날리며 춤추고 돌아가는데, 눈자위는 붉어지고 뺨에는
홍조가 가득 번졌으며 작게 오므린 입술에서는 사설과 타령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이마와
뺨에서 목으로 타고 흘러내린 구슬땀이 저고리 앞섶을 적셨고, 등뒤도 흠뻑 젖었건만 도무
지 지친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어라 이 혼백이 누구의 혼백이냐. 산에 올라 호환 맞던 혼백, 들에 내려서 객사한 혼백,
흉년에 굶어죽던 혼백, 만경창파에 고기밥 되던 혼백, 염병 앓다 땀흘려 가던 혼백, 낳고 가
고 배고 가던 하탈 혼백, 채어 죽던 혼백, 찔려 죽던 혼백, 맞아 죽던 혼백, 빌다 죽던 혼백,
미쳐 죽던 혼백, 불 속에 타서 죽던 혼백, 총 맞아 죽고 화살 맞아 죽던 혼백, 칼에 죽고, 창
에 죽고, 밟혀 죽고, 눌려 죽고, 엎어져 죽고, 자빠져 죽고, 기막혀 죽고, 숨막혀 죽고, 창 터
져 죽고, 등 터져 죽고, 팔 부러져 죽고, 다리 부러져 죽고, 피 토하여 죽고, 웃고 죽고, 울다
죽고, 뛰다 죽고, 외치다 죽고, 달아나다 죽고, 앉아 주곡, 서서 죽고, 가다 죽고, 오다 죽고,
이 갈며 죽고, 한숨 쉬다 죽고, 남 혼백에 여 혼백, 아이 혼백, 늙은 혼백, 그저 많이 먹구서
좋은 데로 천도를 허소사. 이도 풀고 저도 풀고 사인 생인 가릴없이 작별하게 헙소사." 원
향이 사설을 읊조리며 돌 때 마당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사선골과 탑고개에서의 아비규환이
새삼 생각나서 어느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안무당과 계화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냈
다. 굿이 밤늦게까지 계속되건만 계화가 간간이 뛰어들었을 뿐 원향이는 시종 대굿 열두 마
당을 지치지도 않고 뛰었다. 안무당은 몇번 사설을 가르쳐주고 순서를 정하여주었는데도 원
향이가 신묘한 총기로 그 수많은 말과 동작을 뱉어내고 지어내는 것을 보고 몸주가 완전히
원향의 작은 몸 안에 하강하였음을 느꼈다. 원향은 과연 큰무당이 될 터였다. 백련이나 계화
라면 아직도 먼 일이었다. 원향이의 굿은 어느 경험 많은 큰무당에 비해서도 결코 선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푹 익어 있었던 것이다.
"내 대감님네 거동 봐라. 한 나래를 툭탁 치면 일이나 만석이 쏟아지구, 또 한 나래를 툭
탁 치면 억조나 만석이 쏟아진다. 밑에 노적은 싹이 나구, 위에 노적은 꽃이 피구, 부엉덕새
새끼를 친다. 금구렁이는 구불치구 업족제비는 고리를 물구, 도와를 주던 내 대감님네, 산으
로 놀던 내 대감, 강으로 놀던 내 대감, 바다로 뜨던 내 대감, 청사초롱에 불 밝히구 계수나
무 능장 짚구 이리 깜짝 저리 깜짝 동네 지키던 개비 대감, 얼씨구 좋다. 절씨구나. 나갈 적
에는 빈 바리요 들어올 적에는 찬 바리구나,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나무아비타불, 구월산
내린 줄기 아사봉 데리고 절을 짓구, 삼불제석님 모셔다가 낮이나 되면은 염불동참, 밤이나
되면은 수두설법이요, 아미타루 밭을 갈구 염주 닷 말루 씨를 던져 절 아래 보살님네 염주
밭이나 매러 가세. 염주밭을 다 매고서 구월산 좋단 말 듣구 만인 중생이 구경을 가오, 산마
다 인물이요 골마다 가인이로다. 어어 허, 우리 중생 바라 시주 내려와서 도와주고 섬겨주고
어어허, 모두 이렇게 타령을 허구 좋아서 논 게 아니로다, 화가 나서 놀았지, 얼씨구나." 원
향은 온몸이 젖을 정도로 뛰고 춤추며 소리하였고, 안무당과 계화는 혀를 차며 감탄하였다.
원향이는 이제 완전히 제 본성을 찾았을 뿐더러 전보다 더욱 깊은 영험을 지닌 어엿한 만신
이 되었던 것이다. 열 마당이 지나고부터 뒤의 동제가지는 계화가 이어받아 놀았는데, 역시
원향이만한 힘과 신명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풍열스님은 시종 말없이 그들의 하는 양을 지
켜보다가 초저녁에 암자로 올라갔고, 옥여는 모가비 임가, 김승운 등과 더불어 곡차를 흠뻑
마셔서 나중에는 거사들이 절까지 떠메고 갔을 정도였다. 굿이 거의 끝나고 나서 멋대로 무
감에 나설 즈음하여 원향이가 탁배기를 표주박 그득히 따라 잽이들 틈에 끼여 앉은 여환에
게 올렸다.
"허, 내게 주는 잔이냐?"
여환이 머뭇거리며 말하니 계화가 곁에서 눙치는 것이었다.
"아따 남의 아이 데려다 품고 자며 계를 깨뜨릴 적은 언제고, 까짓 술 한잔에 남의 눈치
를 보슈?" "그러게나 말야. 원향이 정신이 돌아왔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사위를 삼
아버릴라구 하였지." 김승운이도 껄껄대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원향이는 자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두 손으로 표주박을 받쳐 올렸던 것이다.
"제가 성귀를 모시는 지성과 스님을 모시려는 마음은 같사옵니다. 어서 드십시오." "그
래..."
여환이 우물쭈물 술을 받아 마시자 김승운이가 다시 한바가지 떠서 내밀었다.
"내 것두 한잔 마셔보우."
여환이 이번에는 서슴지 않고 받아 마셨다. 안무당이 장고를 당기며 말하였다.
"자아, 우리 애기만신 배송 한번 놀아라."
원향이는 다시 마당 가운데로 발을 차며 나아가 뛰기 시작하였다.
"가만 가만..."
장고채를 잡았던 안무당은 뭔가 께름한 것이라도 있는 양 장단을 간간이 그치며 양미간을
찌푸리고 바르르 떨었다. 마치 으스스하여 소름이라도 느끼는 듯한 자세였다. 백련이가 얼른
눈치채고 물었다.
"왜요... 어머니, 한번 노시게요?"
"아니야."
"성님, 공수 받는 거유?"
"아니... 우리 영감이 보였어."
안무당은 부스스 일어나더니 무엇인가에 끌린 듯이 마당으로 나갔다.
"비켜... 비켜."
계화가 나직이 말하자 원향이는 가녘으로 물러났고 구경하던 사당말 사람들도 조용해졌
다. 마당 양쪽에 피운 모닥불의 불빛이 일렁거릴 뿐 장단은 모두 멈추어져 있었다.
안무당은 잠시 꽂힌 듯이 섰다가 어디선가 가락이 들려오는지 어깨를 움찔움찔 추스르며
팔은 늘어뜨린 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몸은 서 있는 채 그대로 있고 손가락들만 움직이는
희미한 동작에 지나지 않았으나 몸짓들의 움직임과 그치는 간격이 정확하여 저절로 장단이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김승운이가 장고를 잡아 장단에 붙였다. 안무당의 눈은 벌써 허
공을 쫓고 있었으며 발끝이 치맛자락 끝으로 살며시 오르는 중이었다.
깽쇠와 징이 어울려들었다. 안무당의 춤은 드높은 풍물소리 가운데 적막하게 시작되는 듯
이 보였다. 마치 불어오기 시작한 강풍에 나뭇잎만을 덜고 섰는 묵직한 노송과도 같았다. 안
무당의 춤은 매 동작마다 끊겼다. 그리고 발을 떼지 않고 정지한 사이에 조바심이 쳐질 만
하면 다시 움직였다. 드디어는 뜀과 미끄럼짐이 직선과 원형으로 이어지며 규칙적으로 변하
여 일순 마당 가운데에서 딱 멎었다. 멎은 안무당의 얼굴로 비오듯이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계화가 중얼거렸다.
"기를 다 쏟으시겠네."
"말려야지."
김승운이 속삭였으나 계화는 장단을 놓치지 않으며 답하였다.
"저건 성님의... 마감 판이우."
안무당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사지에 더욱 힘이 생겨난 듯하였고 마치 장수가
천군을 이끌고 행진하듯 무섭고 위엄에 가득 차있었다. 안무당의 눈은 위로 흡떠져서 흰창
이 드러나 보였으며 입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휘젓는 팔다리는 병장기를 쓰듯 하고 가슴
은 갑옷을 입은 듯 억세게 벌어졌다. 뒷방에 엎드려 앓던 노파의 어느 곳에서 그런 힘이 솟
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무당은 겅정거리며 몸을 솟구쳐 뛰었다. 한참이나 온몸을 허공으
로 찢어발길 것처럼 뛰더니 다시 몸을 풀어 낭창하게 늘어지며 동작의 선이 길쭘해졌고 치
맛자락을 끌면서 가녘을 돌아 나갔다가 다시 흐느적 돌아왔다.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려서
앞으로 뒤로 넘어갈 듯하다가는 두 팔을 올려 안간힘 쓰듯 끌어올렸다.
"하아아, 아."
무엇인가에 눌려서 쓰러질 듯하다가 그것을 부여안고는 일어났다. 일어나서 어깨를 들썩
이며 좌중의 원향이에게로 다가들었다. 계화가 원향에게 일러주었다.
"받아, 받아."
원향이 치마를 들치고 가랑이를 벌려 온몸으로 받는 시늉을 하는데 순간 무엇엔가 맞은
듯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안무당은 그런 동작을 마치자 볕에 녹는 눈더미처럼 아래로부터
흐느적 무너져 내렸고 대신 원향이가 발을 차며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원향이의 방울소리가
앙증맞게 울렸다. 그녀는 부채와 방울을 양손에 갈라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안무당은 삿자
리에 비스듬히 누워서 가냘픈 숨을 몰아쉬는 중이었다.
"성님, 괜찮우?"
계화가 안무당을 편하게 해주려고 옷고름을 풀어주며 물으니 안무당은 처녀처럼 배시시
웃었다.
"응, 나 냉수나 한대접 갖다 주어."
계화가 다시 소곤거렸다.
"성신이 오셨습디까?"
"그럼 언제나... 오시지."
안무당은 처음에 모닥불의 위쪽 캄캄한 하늘가로 나직하게 드리워진 허연 장충의 모습을
보았고, 그를 마중 나갔던 느낌이 들었다. 그 뒤에는 그가 구군복에 환도를 찬 대감의 모습
이 되어 불꽃과 더불어 휩싸여 보이더니 불빛 속에 녹아들어 안무당의 몸 위로 덮어씌워졌
고, 그녀는 온몸이 타는 것 같았었다. 그리고는 정신이 없다가 몸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간 듯
하여 쓰러졌던 것이었다. 안무당은 춤추고 있는 원향이의 모습을 흐려진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헌 굿과 새 굿을 다 마쳤네. 내가 이제 곧 염라국으로 갈 거야." 안무당은 계화가 떠다
준 냉수를 달게 마셨다.
그날부터 안무당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정신이 맑을 적에는 백련이나
계화와 얘기도 주고받았으나 거의 온종일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린 원
향이가 부엌일이며 환자의 시중을 들어주어 계화는 놓여난 셈이었다. 원향이도 정신이 들고
는 그간의 여러 얘기를 계화와 백련이에게서 들었는지 경내에서 여환과 마주치면 얼굴을 붉
히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러나 원향은 여환이 방을 비운 사이에 들어가 그의 봇짐을 뒤져
빨랫거리를 내오기도 하고, 그의 밥상은 제 손으로 차려다가 따로 내는 등 자신의 말대로
성귀를 모신 것과 같이 하였다. 여환이 쪽에서도 원향이가 실성하였을 때에는 예전의 어린
누이를 대하는 마음 같더니, 이제 온전해지니까 갑자기 거리가 생기고 낯설어져서 원향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사음계라도 범하는 듯 두렵게 여겼다.
통문에 지정한 날짜는 사월 열흘이니 바로 닷새 전이 되는 오일 점심때쯤 하여 이경순과
우대용이 월정사에 당도하였다. 우대용은 전에 해주감영 옥을 탈출하여 길산과 함께 구월산
에 오르기도 하였고, 몇번인가 혈당들의 모임에도 참석하여 월정사의 옥여스님이며 풍열 큰
스님과도 구면인 처지였으나, 경기도 사람인 이경순으로서는 해서로의 행보 자체가 난생 처
음이요, 구월산이며 월정사는 전혀 뜻밖에 오게 되었던 터였다. 우대용은 거침없이 대중방을
향하여 들어서는데 이경순은 이리저리 둘러보고 걸음을 멈추고는 하였다. 대용이 옥여스님
을 찾으니 옥여가 반기며 뛰어나왔고 여환이도 뒤미처 따라나왔다.
"어이구, 이거 해중거사가 심산에 오셨구려."
옥여가 예의 컬컬한 웃음을 웃으며 합장 대신 대용의 두 손을 덥석 잡았고, 대용이도 빙
긋이 웃었다.
"아직 열반하지 않은 걸 보니, 구월산 곡차가 좋기는 좋은 모양이군." "왜, 난 또 우두령
의 배가 깨져 고래밥이 된 줄 알았지." "허허 저 중 큰일날 소리를 하네. 내 먹은 고기가
바루 고래 등심이여." 이렇게 수작이 오가는데 여환과 이경순은 따로이 합장 예로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왔습니다. 부인도 안녕하시고 아기도 별탈이 없는지요?" "예 덕분에... 참 말만 들
었지만 구월산이 명산은 명산이올시다." 이경순은 그간 여러 모임에 자기 대신 전생이를
보내더니, 검계 난리 이후로는 전생이를 중길이에게 보내주고 스스로 나다니기 시작한 터였
다. 파주 문산포의 주막은 이제 번창하여 집채가 네 채나 딸린 큰 여각으로 자라나 있었던
것이다.
"어서 들어들 가십시다."
옥여가 청하여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 앉았고 낯을 모르는 이경순과 옥여가 인사를 나누었
다.
"소승 문안이오. 본사 원주를 보고 있는 옥여라 하오." "말이 중이지 저 생김새 좀 보슈."
곁에서 초를 치는 대용을 모른 체하며 이경순도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파주 사는 이경순이라 하오."
"전에 금화에서 황거사와 전생이를 통하여 자세히 듣고 있었소이다. 그간 얼마나 고초가
많았습니까." "뭐 별로 하는 일도 없지요. 다만 집사람이 이런 일에는 저보다 더 열심인지
라..." 우대용이 곁에서 말하였다.
"참, 우리 형수씨께서는 예전에 이 근처 광대산 재인말에서 사셨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구월산 탑고개며 사선골 이들이 모두 거기 태생인데, 잘들 알겠구먼." 이경순은
전후사정을 아내에게서 들어 알고 있으되 뭐라 달리 할 말이 없어 무뚜름하니 앉았고, 여환
은 길산의 일을 아는지라 대용이가 속없이 그런 얘기를 꺼내는구나 싶어서 얼른 말을 돌렸
다.
"송도 박좌장은 어찌하고 두 분만 오셨소?"
"오다가 들러서 하루 묵었지요. 각 임방에 밀린 일이 있어서 당일에 오시겠다구 하더구먼.
그리고 은율서 끌려갔던 사람들 삭녕인가 영평인가에 부락을 허가하였다는데, 대근이 성님
이 차인들을 보내어 탐지하도록 하였으니 알아가지구 올 게요." 우대용이가 그렇게 전하자
옥여는 허공을 보며 탄식하였다.
"우리는... 관군의 구월산 토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희 쪽에서는 한참 뒤에야 풍문
에 접하였고 송도 박대인에게서 자세히 듣고는 통분하여 잠을 못 이루었지요." 이경순이
말하자 대용은 곧 고개를 떨구었다.
"감동이와 만석이가 죽은 소식도 들었소. 나허구는 조읍포에서 헤어진 게 마지막이 되었
지요. 나는 하도 분하여 해주 용댕잇개로 배를 부려 감영까지 덮칠까 했었소. 토포장인가 했
다는 최모라는 마장은 우리 형제들이 꼭 찾아서 없애버려야 하지요." "최형기... 한양서 종
사관 해먹은 자요."
이경순이 말하였다. 그는 살주계와 검계가 깨어지던 전말을 소상히 알고 있던 터였다.
"우리 계에서 그자를 없애려고, 종루 배오개 근처에 목을 잡고 숨어서 방포까지 하였으나
운 좋게 살아났지. 빈틈이 없는 자요. 살주계를 모조리 적발하여 검계마저 위험에 빠뜨렸었
지. 그자가 서강 모서방의 계책에 말려들지 않았던들 검계는 완전히 포착되었을 게요." 옥
여가 물었다.
"최모가 신감사를 따라와 만호자리에 있다는데, 이번 토포 뒤에도 감영에 머물러 있답니
까?" "아니오. 해주 송방서 탐문한 바로는 스스로 자리를 물리고 한양으로 올라갔다구 그
럽디다." 대용의 말에 옥여는 혀를 찼다.
"야차 같은 중생! 무고한 양민의 원혼이 그냥두지 않을 터..." 하고 나서 옥여가 방문을
열고 사람을 찾더니 손님들에게 전심을 드리라 일렀다.
"자, 공양 들구 나서 큰스님께 뵙고, 오진암에 올라갑시다." 그들은 먼저 달마암에 올라
풍열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오진암으로 올라갔다. 오진암은
후미진 곳이고 경내도 깨끗하고 정밀하여 이러한 모임에는 적합한 곳이었다. 암자에 오를
때 이경순이 뒤처진 여환에게 나란히 다가서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장두령도 오기로 하였소?"
"예, 올 겁니다. 처음 상면이지요?"
"그렇소."
이경순은 더이상 말이 없었고, 여환이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튿날에는 장길산과 김기와 강선흥이 월정사에 당도하였다. 원래 통문에는 길산과 김기
만이 지목돼 있었으나, 선흥이는 중이 되어버린 이갑송이가 온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따
라가겠다며 앞장을 섰던 것이다.
길산이도 갑송이를 못 만난 지가 어언 일곱 해나 되었으니 이제 그가 대성법주라는 중이
되어 있는 꼴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재인말에서 광대로서 기쁨과 설움을 함께 하며 자라났
고, 땅재주며 춤이며 싸움질을 할 때에도 언제나 붙어다녔고, 해주서 명화율로 함께 쫓기던
때의 갖가지 생각들이 시냇물에 산천이 비춰 흐르듯 지나갔다. 그가 금강산으로 운부 큰스
님을 찾아갈 제 동구 밖에서 그의 아내 도화와 간통하던 자를 붙잡아 혼내주던 것이며 스스
로 탄식하였던 일 등등이 떠올랐다. 길산이 금강산에서 두 해, 낭림산맥에서 한 해의 수도를
마치고 구월산에 돌아왔을 때에는 갑송이는 이미 파가하고 산문을 찾아들어간 뒤였다. 다만
지나치는 풍문으로 그가 운부의 호종승이 되어 있으며 해마다 금화 수태사에서 승병을 조련
시키며 여름을 보낸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었다.
김기 또한 이갑송에게는 깊은 애정과 감회가 없지 않았으니, 일찍이 그가 한양에 환로를
열기 위하여 갔다가 사기만 당하고 가산 탕진하여 돌아올 적부터 삶이 바뀌는 계기를 갑송
이가 마련해주었던 터였다. 그는 갑송이의 우직한 말 몇마디로 문득 썩은 선비에서 백성들
의 편에서는 식자로 되었던 것이다. 김기가 주막에서 갑송이를 만나지 않고 목을 매어 죽었
더라면 그는 헛된 공부로 더러운 세상의 파락호가 되어 묻혔을 것이다. 다시 김기가 유생
가문의 체모 때문에 식솔들과 숨어 있을 때 갑송이는 찾아와서 그를 질타하였다. 이제 김기
는 녹림당의 모사가 되어 있음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떳떳하게 죽어간 노모와
아내처럼 어느 편에 서 있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활빈행을 계속해나가기로 하여 우선 자비령보다 더욱 안전하고 깊숙한 은신처를
몇군데 더 이룰 작정이었다. 만동이네 잠채업은 더욱 활발해져서 그들의 경비는 매우 요족
하였다. 그들은 서흥 관아에 출몰한 뒤로 구월산의 토포가 있고 나서 좀체로 활동을 하지
않고 지냈었다. 이제는 전국의 연계를 가지고 그 세에 호흡을 맞출 셈이던 것이다.
길산은 월정사에 당도하자마자 안무당의 병환에 대해 듣고는 명부전 옆 보살들 방으로 뛰
어갔다.
"어머니... 저 왔습니다."
길산이 방문을 벌컥 열고 외치니, 계화와 백련이가 입에다 손가락을 대며 쉬이하였다.
"방금 정신이 혼미해지시더니 잠이 드셨나 보우."
길산은 안무당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았다. 피와 살을 준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그를 태
아로 받아낸 장충과 더불어 길러주신 분이었다. 그저 만신 섬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
리라 여겼던 분인데 구월산이 토포되고 지아비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토포장과 대면했던 것
이며, 그 의연함과 용기는 길산을 감동케 했던 바 있었다. 더구나 그에게 대장부의 길까지
누누이 일러주시지 않았던가. 길산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뼈만 남은 듯한 안
무당의 잔약한 손을 잡아 그러쥐었다.
"어머니..."
"에이그 어머니 고집두... 까막내두 마다하시구... 또 장두령님께두 안 가시겠다더니 여하튼
잘 오셨어요." 백련이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수복이 보구 싶다구, 정신만 드시면 염불하듯 외십디다." 안무당은 요 며칠 사이에 기력
이 쇠잔하여졌는지 볼도 움푹 패고 눈꺼풀도 얇아 보였다. 길산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
계화가 말하였다.
"내가 노인네들 임종을 평생 보아와서 아오만, 성님 얼마 안 남으셨수. 그리구 당신두 아
시구 막음굿 겸하여 노셨다우." 길산은 하릴없이 고개를 숙이고 안무당의 손을 잡고서 꿇
어앉아 있었다. 손가락이 옴칠옴칠하더니 움직이기 시작하고 머리가 옆으로 움직였다. 길산
이 반가워서 손을 꼭 움켜쥐며 부르짖었다.
"어머니 저, 길산이 왔습니다."
안무당이 눈을 떴는데 이미 지난번 왔을 적의 총기는 걷혀 있는 것 같았다.
"응, 길산이로구나."
안무당은 배시시 웃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비령에 가시자니까 이렇게... 적막하게... 용서하십시오." "원 별소릴 다 한다. 너 자꾸
왕래하다 관에 포착되지 않겠느냐, 그저... 자중해야 하느니라." "제 염려는 마십시오."
"수복이 잘 있지야?"
"예, 할머니가 보구 싶다구 늘 그런답니다. 사람을 보내어 수복 에미랑 오라구 하겠습니
다." 안무당은 눈을 살핏 감았다. 뜨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난 안 봐두 다 볼 수가 있어. 너희 아부지두 매일 만난다. 내가 아무래두 염라국
으로 가려나 보다. 사자님이 지척에서 기다리시는 걸 잘 알지." "어머님, 더 오래... 사셔야
지요."
"오래?"
안무당은 다시 배시시 웃었다.
"나는 이승 저승간을 오가며 살아왔어. 오래 살아본들 무엇하며 이제 간들 또한 무슨 미
련이 있겠느냐. 나는 탑고개 살 적이 가장 좋았어. 느이 아부지 철마다 출행 나가지 않는 게
어찌 그리도 좋든지." 안무당이 말을 많이 하기가 힘겨운지 다시 눈을 감으며 소곤거렸다.
"우리 길산이... 가엾은 것."
안무당은 눈을 감더니 다시 호흡이 느려지며 잠시 후에는 혼미한 가운데 빠지는 모양이었
다. 길산의 뺨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성님이 이래 보여두 달포는 버틸 터이니 맘 느긋하게 먹구 계슈." "큰스님께서 진맥이라
두 잡아보셨습니까?"
"응, 스님은 웃으시데. 아주 편안히 가시겠다구 그럽디다." 밖에서 선흥이가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더니, "성님, 풍열스님께서 올라오라십니다."
하여 길산은 겨우 일어났다. 달마암에 김기 옥여와 더불어 오르니 풍열은 안무당의 심장
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아예 여기서 장사를 치르고 갈 생각을 해두라는 것이었
다. 오진암에 여환과 이경순과 우대용이 올라가 있다고 하여 길산과 김기 선흥이는 함께 올
랐다가 길산이만 아래로 내려와 지내기로 하였다. 길산은 여러가지로 마음이 착잡하였다. 이
번 겨울부터 봄까지 그는 정겨운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떠나 보냈던 것이다. 옥여의 안내로
그들은 산길을 올라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암자의 어귀 오솔길에 이
르렀는데, 경내 마당에서 서성이던 우대용이가 마주 달려나왔다.
"얼마나 염려들을 했다구... 이렇게 무사해서 다행이다." "평안도 있다는 얘긴 들었지."
길산은 형제 의를 맺을 적에 대용이 아우뻘로 정해지기는 하였으나 언제나 그렇듯이 동무
처럼 대하였다. 일찍이 그와는 해주감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함께 탈옥했을 뿐 아니라.
물과 뭍에서의 각기 다른 근거가 있던 까닭이었다.
"응, 강화에두 나가 있고 왔다 갔다 하지, 선비 성님... 소식은 들었수." 대용이 김기에게
인사를 하며 말하였고 김기는 받았다.
"그렇게 되었네. 무엇보다두 마두령과 오두령이... 아깝게 되었지." "글쎄 말입니다. 나는
해주에 나가 있던 아이들에게서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자비령은 괜찮을 줄 알았
고." 하고 나서 대용은 선흥이의 등을 두드렸다.
"너 아들 봤다며? 늦장가에 재미가 솔솔 나겠구나."
"성님두 헛상투 풀고, 이제는 장가를 드시우."
"그래 감동이나 만석이나 서른살이 다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죽었구나." 길산이 중얼거
리자 대용이는 빙긋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장가는 뭐... 갯것들은 그런 일에 별무관심이라."
그들은 암자에 들어 주승과 인사를 하고 둘러앉는데 우대용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헌데... 우리 문산포 성님은 어딜 가셨을까."
암자의 주지가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예, 산사에는 처음 오신다며 저 뒷봉으로 오르셨습니다. 거기서는 은율 안악 일대가 한눈
에 내려다보이지요." 김기가 물었다.
"문산포 사람이 누군가?"
"아, 이경순이라고..."
대용이 덧붙이자 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스님께서 얘기하던 사람이군. 그 살주계 검계 일을 뒷바라지했다면서." "우리 성미에
맞습니다. 그 사람 덕분으로 우리는 화포와 총포를 구비했수. 지난번에 흥복이한테 보낸 물
건 받았어?" 길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총 열 자루인데 왜총만큼 좋다구 하더라. 나는 어쩐지 맘에 안 들더군." "뭐 어디
고장난 데라두 있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칼 쥐고 뛰는 건 내키는데 바짝 엎드려서 부시 치고 노리는 것
이..." 김기가 말하였다.
"그래서 구월산 식구들이 함몰된 거요. 관군은 으레껏 범사냥에도 멀리서 몰아가지고 방
포하여 잡구 있소. 식구들 모두가 방포술도 조련해두어야 하오. 장두령도 배우시우." 우대
용도 끄덕였다.
"요즈음은 수군뿐 아니라 감영에 가도 포수가 백여 명씩 있단 말이야." 그들이 한참 지
난 얘기들을 나누는데 밖에서 기침소리가 들리며 갓 쓴 이경순이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밀
었다. 그는 좌중을 한눈에 둘러보았다.
"어서 들어오슈."
이경순은 우대용 옥여 외에는 모두 초면의 사람들이었고, 그의 눈은 자연히 길산에게로
가서 멎었다. 김기는 갓 쓰고 도포 입은 차림이었고, 나머지 선흥이와 길산이었는데, 아무래
도 선흥이에게서는 그가 막연하게 길산의 모습이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여겨왔던 면모가 보
이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선흥이의 우람한 어깨와 억센 뼈대 그리고 너부죽한 턱이며 순진
스런 눈동자에는 어떤 기민함이나 유연성이 엿보이지 않았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리구 있수."
우대용이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사람들이 많기에."
이경순은 본심을 들킨 기분이 되어 우물쭈물 얼버무리고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대용은 속
도 없이 다시 덧붙였다.
"주막 주인 초파일에 절 탓이라더니, 꼭 그 격이구려. 어서들 인사나 허시우." 김기가 먼
저 상체를 굽신해 보였고 이경순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봉산 김기라는 사람이오."
"여주 이경순올시다."
"존함은 우두령에게서 진작부터 듣고 있었소이다."
김기가 다시 말하였으며 이경순은 대용이 쪽을 돌아보며 답하였다.
"벌써 만났어야 할 텐데 이거 인사가 늦었습니다."
하고 나서 이경순은 길산에게로 몸을 돌렸다. 길산이 먼저 양손으로 방바닥을 짚으며 고
개를 숙였다.
"문화 장길산입니다."
이경순은 함께 머리를 숙였다.
"이경순이오."
그는 고개를 들며 다시 길산을 바라보았다. 길다랗고 가는 눈이 날카로웠고 광대뼈가 솟
았으며 콧날은 오뚝하였고 꾹 다문 입술에는 어딘가 위의가 있어 보였다.
그가 표정없이 경순을 조용하게 마주볼 적에 눈매는 부드러워져서 눈 아래에 그늘 짙은
주름이 생겨나 있었다.
경순은 묘옥의 오른쪽 젖가슴에 연비로 찍힌 길자를 볼 적마다 그를 수십 가지의 모습으
로 떠올려보곤 하였고, 묘옥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다만 아들을 낳았을 때 지나는 말 비슷이
표를 냈던 적이 있었다. 제 가슴의 연비는 한때 천첩의 정한이 깊어 병들었을 때 생겨난 것
입니다. 하지만 이제 도장님의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그때의 정한이 없었다면 제가 어찌 창
기를 벗어날 수가 있었겠어요. 경순이 문산포에서 떠날 때 묘옥은 그가 해서로 간다는 것을
알았고 구월산에 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경순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도 구월산에
가보고 싶지 않소, 하였더니 묘옥은 다만 아이를 추스려 경순의 턱 아래로 치켜주면서 대꾸
하던 것이다. 저 보구 싶으면 문산포루 빨리 오셔요. 그때 묘옥의 눈은 흐려져서 밖으로 넘
칠 것 같았다. 그러나 묘옥이 길산을 잊었을 리가 만무하였다. 대용이 강화로 내려가던 길에
파주에 들러 하루 이틀 묵어 가고는 하였으니, 구월산이 함몰되던 소식을 상세히 알려준 것
도 그였다. 우대용과 중길이와 전생이 그리고 이경순 등이 둘러앉아 서로 탄식하고 주먹을
부르쥐며 얘기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방 밖에서 요란하게 그릇 깨어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마침 술상을 차려 들고 섬돌에 오르던 묘옥이 상을 떨어뜨리며 넘어
지던 참이었다. 경순이 달려나가 부축하여 일으키니 묘옥은 안색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
경순은 묘옥을 사랑하는 그만큼 그러한 미세한 일에 언제나 부대꼈다. 이경순의 괴로움은
간혹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으니, 만취하여 들어와 어둠속에서 묘옥의 가슴을 슬그
머니 어루만져보고는 하였다. 손끝에 연비된 묵흔이 만져질 리 없건마는 창호의 뒷면에 번
진 듯한 글자의 모양이 전신으로 아프게 전해오는 것 같았다. 묘옥은 그런 때 분명히 깨어
나 있었고 호흡이 가녀리게 바뀌거나 규칙적인 숨소리가 멎고는 하던 것이다. 어둠속에서
묘옥은 손을 뻗쳐 이경순의 손을 잡아 가만히 쥐기도 하였다. 묘옥은 일 년 중에 두 번을
꼭 잊지 않고 해내는 제사가 있었다. 여주 양화나루에서 군졸의 칼에 맞아 죽은 이경순의
아내 제사와 해주 주내방 사거리서 참수되어 바다에 버려진 것으로 알고 있던 화적 장길산
의 제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으니,
구월산 자비령 녹림당들의 활빈행이 해서 각처를 휩쓸 적에 이미 장길산의 이름은 어린아이
들까지도 외우고 흉내내어 놀음하게 되었던 터였다. 이경순이나 묘옥은 한번도 길산에 관하
여 드러내놓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묘옥은 길산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장터에 왁자하게
그의 활동이 알려진 다음에도 그 두 번의 제사를 잊지 않고 해내는 눈치였다. 경순이 묘옥
의 괴이한 짓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여, 지난번에 먹은 음식은 날짜로 알겠거니와 오늘 이것
은 웬 음식인고, 당신 생일이 언제던가, 하였더니 묘옥은 말끝을 흐리지 않고 고개를 들어
분명하게 말하였다. 도장님과 저를 위해서지요. 연전에 은혜를 입었으나 그이가 이제는 영영
죽어 이를 잊지 않으려고 제사를 지내구 있습니다.
"장연 강선흥이우."
우람한 체구에 걸맞는 목소리로 선흥이가 인사하였고 이경순은 다시 황급하게 마주 인사
를 하였다. 길산은 경순을 무심한 듯이 보고 있었으나 워낙 눈썰미가 빠른지라 상대가 자기
를 건너다보는 시선이며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첫눈에 느끼고 있었다. 어디서 보았
던가. 그는 마치 경순에게 뭔가 받을 것이 있고, 장바닥에서 마주친 빚쟁이가 이쪽의 행동거
지에 조심스러워하는 것과 같은 기색이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고 관을 피하여 세상을 등지
고 사는 자라더니 상대를 살피는 게 버릇이 된 모양이군, 길산은 그렇게만 여겼다.
"여기들 계시구먼."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여환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제 석종이 하나 더 늘었으니 나는 슬슬 계를 작파하고 곡차를 들어도 되겠구먼." 옥
여가 술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이런 자리에서 맨숭맨숭하니 그들을 앉혀놓기가 미안하였는
지 그렇게 농을 던졌다. 김가와 길산과 선흥이는 무뚜름하게 그 낯선 중을 돌아보았고 우대
용이 길산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허 잊었군. 왜 감영서 학선이 도움으로 빠져나올 때 공수원에서 만났잖아. 생각이 안
나?" "글쎄... 공수원이라."
"소승 문안이오. 여환이라 합니다."
길산과 김기와 선흥이도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고 여환은 조용히 말하였다.
"인연이 전생에 엮은 줄이어서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요. 이렇듯 장두령과 몇해
만에 이런 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인연의 오묘함을 깨닫게 됩니다. 공수원에서 구월산
오는 안전한 길을 가르쳐 드렸던 중이오. 그때 우두령과, 송도 산다는 이가 같이 있었지요."
여환이 새삼스럽지만 길산의 묵은 기억을 깨우쳐주느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길산은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 내가 어째서 그걸 잊었던고. 해주 어느 암자에 계시다구 하셨지요." 길산은 저도
모르게 묘옥의 해사한 얼굴이 떠올라와서 뭐하고 얘기를 꺼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너무나
오래되어 이미 퇴색해버린 얘기가 아니던가. 자신의 아낙을 자처하며 대시수의 참수형이 끝
난 관문 밖을 헤매던 창기 묘옥, 그리고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죽은 영혼을 달래는 기도
를 드렸고, 여환은 그런 얘기를 공수원에서 전해주지 않았던가. 길산은 쓸쓸하게 중얼거리며
여환의 시선을 피하였다.
"참, 오래된 일이오. 세월은 유수가 아니라 저녁 구름처럼 덧없지요." 여환은 이경순이가
고개를 떨구고 버선코에 시선을 박고 있음을 흘낏 돌아보았다.
"강산이 삼천리라 하나, 길은 하나요, 물은 모이게 마련인 듯하오." 우대용은 여환과 길
산의 말 사이에 무슨 의사가 오가는지 알 법도 하건만, 돛의 용총줄같이 굵다란 사내의 신
경으로 그런 자잘하고 미세한 심리사를 어찌 알겠는가. 여환이만이 이경순과 길산의 가슴
가운데 일고 있을 작은 파문들을 가늠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 길산은 안무당 때문에 월정사로 다시 내려왔고, 옥여와 여환이도 밤늦
게까지 얘기를 나누다가 오진암을 나섰다. 여환이 마당에 내려서는데 이경순이 슬그머니 따
라나왔다.
"여환당..."
여환은 묵묵히 경순을 돌아보며 그가 먼저 얘기를 꺼내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경순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머뭇거리며 입을 떼었다.
"장두령에게... 알려야겠지요?"
여환은 침묵하였다.
"내 아내가... 그와 한마을 사람이오. 나는 알고... 그 사람은 모르고 있어서..." 이경순이
말을 끝맺지 못하는데 여환은 잠시 기다렸다가 나직하게 되물었다.
"알려야 될까요?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탁이오. 여환당이 넌지시 일러주시오."
여환은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되, 무심한 듯 말하였다.
"사대가 티글처럼 흩어질 터인즉, 잊으시지요. 오진암에 회합하는 뜻을 잘 아실 테지요."
"잘 알기 때문이요. 나도 어늘결에 그 사람과 한통속이 되었고... 어쩐지 불편하오. 여환당이
그렇게 해주는 게 홀가분하겠구려." "그러지요."
이경순을 어둠속에 남겨두고 여환은 앞서 간 옥여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옥여는 길모퉁이
에서 여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세의 업연이 또한 뒤엉킨 가시덤불과 같도다."
여환이 밑도 끝도 없이 중얼거리며 내려오자 옥여가 껄껄 웃었다.
"가시가 아니라 유황불이라두 장가는 들어야지. 자네 중 노릇 하기는 기왕에 틀렸고." "
어허 이런 마군의 찌끄러기를 봤나."
여환은 옥여의 농을 털어내느라고 혀를 차며 핀잔하였다.
길산은 혼수상태에 빠진 안무당의 머리맡을 지키고 혼자 앉아 있었다. 안무당은 미동도
앉고 잔 숨결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길산이 들어서자 계화와 백련이는 일찌감치 자리를
떴고, 원향이가 한번 들여다보고 갔다. 길산은 양모가 언제 운명할지 몰라서 아예 곁에 자리
를 깔고 함께 지낼 참이었다. 밤이 제법 깊었는지 먼 산과 앞 골짜기로 서로 화답하는 쪽박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득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장두령, 여기 계신가?"
하는데 도무지 낯선 목소리라 누군지 짚을 수가 없었다. 길산은 방문을 밖으로 빼꼼히 밀
어보았다.
"누군가..."
어슴푸레한 가운데 갓 쓴 머리가 보였다. 키 크고 마른 사람이었다.
"날세..."
"아니, 유학 어른 아니시우."
길산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원도의 설유징이 수염을 날리며 서 있었다. 길산은 유징의
내미는 손을 덥석 잡았다.
"고성서 헤어지고 몇해 만입니까."
"뭘 엊그저께 같은데."
"자, 들어가십시다."
길산은 돌아서다 말고 저편 객방 앞에 서 있는 종낙 쓴 중에 눈길이 멎었다. 설유징이 왔
다면 그게 누구겠는가.
"저건, 갑송이... 아닙니까?"
"아닐세."
설유징은 웃었다.
"들으니 여기 있다더군. 모친 병환이 위중하시다지? 저쪽으루 가서 어디 얼굴이나 보세."
설유징이 앞을 서고 길산은 따르는데 툇마루에다 바랑을 벗어놓고서 있던 중이 송낙을 뒤로
젖히면서 앞으로 마주 다가왔다.
"길산아."
"가, 갑송이 아니냐."
설유징을 젖히고 나서는 길산에게 유징은 말해주었다.
"허허 대성법주스님일세."
대성법주는 우람한 몸집을 우뚝 세웠고 길산이도 주춤 섰다. 역시 설유징의 말이 그의 뒤
통수를 후려쳤던 까닭이었다. 승속의 가운데 한팔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그 거리를 길산이
먼저 짓뭉갰다.
"이 자식아."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게 대성법주와 길산은 서로 팔을 벌려 와락 껴안았다. 얽힌 말뚝들
은 강철과 바위 같았다. 그들은 함께 그 팔을 풀었다.
"어디 얼굴 좀 보자."
대성법주가 텁석부리의 얼굴을 들이대며 길산을 살폈다.
"어서들 들어오시게나. 이러다가 나는 정말 객줏집 중노미가 될 판이로군. 정신이 없단 말
야." 옥여가 방에서 나오며 그들을 맞았다. 여환이는 목침을 치우고 일어나 앉았고 그들도
들어가 앉았다. 인사들이 오고 갔다. 불빛에 서로 바라보니 초로에 접어든 설유징의 머리와
수염은 서리가 내린 듯이 희끗희끗하였고, 선비답지 않게 그을은 얼굴에는 주름살이 전보다
더욱 깊게 팬 듯 보였다.
"많이 늙으셨습니다."
길산은 먼저 설유징에게 던졌고, 설유징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는 일 없이 그렇구먼. 자넨 그때와 다름없이 범 같네그려." "산 정기 탓이지요."
"이놈아, 내게두 말 좀 시켜봐라."
대성법주가 길산을 툭 건드리며 말하였다.
이갑송의 험악하게 이글거리던 눈동자는 대성법주답게 안정되어 상대편의 미간을 뚫는 듯
한 깊숙한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는 눈꼬리와 눈 밑 누당에 잔주름과 긴 주름이 잡혀
있었다. 법주수좌에게서는 사나움이 전혀 엿보이질 않았으며 묘한 쾌활함이 사람의 마음을
놓게 하는 데가 있었다. 길산은 법주의 말투가 예전 같았으나 안색은 전혀 다름을 보고 빙
긋 웃었다.
"이거, 부처님이 사람을 아주 버려놓았군."
옥여가 껄껄 웃었다.
"비구의 용모 단정하기로는 목련께서 처음이요, 비구의 용모 괴이하기는 소승 옥여가 처
음이며, 또한 용모 추악하기는 우리 법주 아우가 마지막인 듯하구려. 법주가 출가하지 않았
다면 천도가 종내 그런 지탄을 벗어나지 못했을걸." "허허, 여환수좌께 물어보우. 쌍언청이
가 외언청이 타령하네." 법주는 여환에게로 농을 넘겨주었다. 길산이 말하였다.
"운부스님은 어떠시냐?"
"응, 여전하시지. 요즈음은 더 꼿꼿하셔서 도무지 틈을 주지 않으신다. 모두들 잘 있지?"
"김선비와 선흥이가 위 암자에 와 있고, 대용이도 왔다. 구월산 소문은 들었느냐?" 법주는
고개를 떨구며 끄덕였다.
"탑고개가 어찌되었다는 걸 자세히 들었다."
"아버님도 그 난리통에 돌아가시고, 김선비는 가족을 잃었다. 감동이와 만석이가 관군에게
죽었다." "자비령 있다며?"
"만동이네 도움으로 산채는 열었다만 그리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
가든지 해야지 식구들도 많이 늘었고." "아주머니 별 무고하지?"
"그래 애가 둘이다."
하고 나서 길산은 옛 동무의 눈가로 스쳐가는 그늘을 놓치지 않았다. 대성법주는 그런 것
을 감추려는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길산과 같은 날에 갑송은 도화와 장가를 덜었고 그
날 길산과 아우들은 의형제를 맺었던 터였다.
"스님 얘기는 법주수좌에게서 여러번 들었소이다."
설유징이 여환에게 말을 걸었다.
"법주수좌가 그런 말솜씨도 있었나요."
"양주가 한양서 반나절 상거라 하니, 도방 대처겠구료." "장터가 제법 질펀하지요 승려가
있기에는 번거로운 곳입니다." "그래서 여환스님이 있는 게 아뇨."
"하긴... 그렇습니다만."
설유징은 다시 말하였다.
"학이가 자네한테 한번 다녀가겠다구 그러든데, 장가두 들었지." 길산은 정학 형제를 떠
올리며 반색하였다.
"신이와 노모도 잘 계시지요? 그리고 어계방 최서방은 지금 어떠시우?" "최헌경이는 배
를 여러 척 부린다네, 원산으로 드나들지. 명태철이 되면 고성 바닥서는 볼 수가 없다네."
대성법주가 예전 말투로 물었다.
"안무당 어머니가 병이 중하시다지?"
"며칠 못 가실 듯하여 아예 이 절서 눈치 보며 눌러앉았다가 장례 치르구 갈 참이다." "
재인말에는 가봤냐?"
"아버지를 거기 모셨다. 재인말은 이젠 집터도 다 없어져버렸다. 나무밖엔 낯익은 것이 없
더구먼." "탑고개나 한번 나가볼까."
대성법주가 중얼거렸고, 옥여가 말하였다.
"거긴 뭐하러... 산성에 군졸들이 나와 번을 선다는데." "내야 뭐, 행색이 중이라... 먼발치
서 보구 오지."
다른 이들은 알 리가 없건마는 길산과 옥여는 그가 탑고개로 뭣하러 가려는지 짐작할 수
가 있었다. 바위넘이 위에 있는 그의 모친의 산소를 찾아보려는 것이겠고, 또한 그는 아내
도화를 바로 그 자리에서 찔러 죽였던 것이다. 옥여는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렸다.
"개천이 아래루 흘러두 갈래는 다른 법이어든 옛 터를 보면 무얼 할꼬..." 길산과 법주는
나란히 누워 새벽이 될 때까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활빈행에 관한 것들을 묻
고 답하였으며, 여염의 생활에 대하여는 길산이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법주가 잠에 떨어지
고 길산은 여러 생각으로 몸을 뒤척였다. 북풍에 먼지 바람이 일어 모래알이 산지사방으로
날리듯, 그와 혈육 같던 사람들의 정겨운 사연들은 모두 하나 둘씩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가슴 귀퉁이에 그런 기억들이 금싸라기나 유리 먼지처럼 몇알 붙어 있어, 말 끝의 침묵 가
운데서 은은히 반짝거릴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공양을 끝내고 나서 오진암으로 오르려 할 즈음에 한발 먼저 해주의 묘정수좌
와 뒤이어 박대근이 당도하였다. 박대근과 길산은 금천 조읍포의 겁탈 이래로 처음 만난 것
이지만, 대성법주가 되어 버린 이갑송과는 실로 몇해 만이라 오히려 박대근 쪽에서 눈물이
글썽하였다. 대성법주는 반기는 안색이면서도 대근에게는 승속의 예를 고집하였다.
"소승 문안이오."
"이서방하구 헤어진 것이 탑고개였으니 벌써 네 해가 지났구려." "그렇지요. 법명은 대성
법주라, 산문에 든 비구이니 속명은 부르지 마십시오." "허허 그러십시다."
그러나 길산은 못내 이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원래 승속을 가릴 적에 혈육이나 동무를 만나도 중생으로 일반 대하는 것은, 그 생가고
가 뜻이 다름에 있지. 이제 여기 큰스님의 통문에 따라 모였으니 승속이 동참하자는 게 아
닌가. 법주수좌는 아무리 출가 승이라 하나 예전 내 동무요 대근이 성님의 의제다." 법주는
문득 고개를 갸웃하더니 기사를 떨치고 일어났다.
"제가 모자랐습니다. 성님, 아우 절 받으슈."
박대근의 글썽한 눈에서 물기가 비치며 그제사 마음놓고 법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만 그만 되었소. 이젠 내 마음이 후련하오."
"송도는 별일이 없지요?"
길산이 물었고 박대근은 유쾌하게 말하였다.
"좋은 일이 있소. 인제 송상은 판도가 바뀌게 될 거요. 인삼 재배에 성공했소이다. 올해
그 첫 수확이 나올 게요." "삼을 밭에서 거둔단 말인가요?"
"그렇지. 청과 왜에 얼마든지 팔 수 있으니 이제는 은자가 필요없게 되었소." 길산이 말
하였다
"성님, 큰 일을 해냈소이다."
"상권의 판도가 바꿘다는 것은 장사뿐만이 아니라, 우리 힘의 내실이 단단해진다는 얘기
요. 이를테면 무과를 거친 무관 가운데, 출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자들을 금력으로 뒤를
대어 병수사까지만 올려놓아도, 그 지역의 병력은 모두 우리 군사가 되는 게요. 까짓, 수년
안에 첨사 병사 진장 선전관까지 열 명쯤은 심어놓을 수가 있소." "인삼의 무역은 국가에
서 금단절목으로 못하게 하고 있으니, 잠상을 해야 되겠군." 그들이 얘기하는 중에 풍열스
님이 오진암에 오른다는 전갈이 있어서, 그들도 서둘러 골짜기를 올라갔다. 오진암의 법당에
는 승속이 모두 열세 명 모여 앉았다. 자비령 쪽에서 장길산, 김기, 강선흥이 왔고, 기순에서
여환, 이경순, 서해로부터 우대용이 왔으며, 해주에서 승려 묘정, 송도에서 박대근, 그리고
금강산의 운부 큰스님이 보낸 승려 대성법주와 유학 설유징, 구월산에서는 승려 옥여와 풍
열대사, 마지막으로 신천의 박수 오계준이 그 전부였다. 묘향산에서 승려 도안이 오기로 되
었으나 아직 당도하지 않고 있었다. 제각기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인사가 끝나고 나서 풍열
대사가 입을 열었다.
"일직이 수년 전에 금강산에서 몇몇 뜻있는 승려들이 모여서, 아조의 도를 잃은 정치와
벼슬아치들의 탐학에 관하여 탄식하고 백성들의 참상을 그치게 하는 방도를 논의한 적이 있
었소. 그때로부터 승단 내에 추상 같은 기운이 일어나 많은 젊은 수도자들이 뜻을 모아 무
리를 이루게 되었고, 여러 곳에서 백성들의 뜻을 위하여 환을 당하고 난을 겪기도 하면서
이같은 흐름에 합류하여 온 속인들도 많았소. 물론 승단 전체의 뜻은 아니지만, 훌륭한 법사
가 되어 불도를 다음 세상으로 전해야 할 기량을 지니고 있는 승려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도가 널리 퍼져 시행될 터전을 마련해야 할 승려들도 있는 것이외다. 우리들은 출가한 사문
으로서 세간에서 행하여지는 일에 관여없이 산간에 들어앉아 고요히 아묵 수도하고 있을 수
만은 없게 되었소. 나라는 오랑캐의 속국이 되었으며 자고로 그 줏대를 세워 스스로 떳떳한
자주의 나라임을 밝힌 적이 한번도 없었소. 또한 사대부는 제 혈족과 파벌의 이익만 도모하
면서 진창의 개처럼 다투어 백성의 곤경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배신하였소. 글을 배운다
는 자들이 사람이 되어 남을 돕겠다고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면 과거를 하고 환
로로 줄을 잡아 입신하여 백성의 고혈을 빨아낼까 하는 탐심으로 가득 차 있소. 지난 수년
간의 흉황으로 전토는 피폐하고 역병이 돌아 수없는 사람들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으며,
조정에서는 서로 다투어 쥐꼬리만한 허울만의 명분으로 파리 잡듯 서로 죽여대고 엎치락뒤
치락하는 판이오. 실로 이런 지경에 이르러 조정을 바꾸자는 자가 나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만이 바뀔 뿐 새로운 임금을 옹립한 자들은 공신훈적이 되어 더욱 못된 권세를 휘두르
는 것이오. 반정도 그렇거니와 입국이란 도대체 무엇이오. 군사를 가진 강자가 나타나면 실
세하여 낙백의 시절을 보내던 양반 음모가들이 그에 붙어서 헌 정권을 몰아내고는, 나라를
송두리째 중국에 들어 바치고는 천자의 윤허가 내리면 그제사 국본을 다진 듯이 안심을 하
오. 몇몇 고결한 선비나 맑은 마음을 가진 지사가있어 가냘픈 주먹을 부르쥐고 글을 쓰거나
대들어보기도 하오. 또는 실세한 사대부들이 권토중래를 기약하고 패당을 모아보기도 하지
만, 도대체가 백성들의 삶의 이로움과 해로움에는 애초 관심도 없어서 드디어는 저희끼리의
다툼에 그치는 게요. 그러니 중생의 뜻에 합당한 나라의 기틀이 이루어지지 않아 임진 병자
난리 적에 팔도에서 온갖 의병과 승병이 떨쳐 일어난 것은 이들에게 그러한 바탕의 힘이 있
었던 까닭이오. 그 힘은 수숫대 같은 관군이 대적하지 못할 힘이외다. 우리는 이들 비옥한
토양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하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반정이 아니라 입국이오. 궁궐 문 앞에
삿자리를 깔고 앉아 목을 늘이거나 붓을 날려 경계하거나, 몇몇 선비로 뜻을 모아 풍류 섞
어 재담하는 것이 아니라, 저렇듯 땅속에서부터 들끓는 기운을 등에 지고 일어나려는 것이
오. 백성은 저희 살아가는 일과 맞지 아니하면 오히려 우리를 저버리고, 효수된 외로운 목을
향하여 침 뱉고 조소하리다. 이제 승속이 동참하여 여기에 모인 뜻은 한시바삐 한양의 조정
을 뒤엎고, 도솔타천 용화세계를 이루어보자는 데 있소이다." 풍열이 말을 마치자 옥여가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지난 갑자년에 있었던 한양의 살주계, 검계에 관한 것이며, 지난 정
월에 겪은 관군의 구월산 토포를 놓고 여러가지로 논의를 해볼 작정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
떻게 한양을 도모하는가하는 안을 내어 논의하였으면 합니다." 설유징은 지필묵을 내놓고
오가는 말들을 빠짐없이 적어나가고 있었다. 옥여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여환과 그 옆에
앉은 이경순 쪽에 시선을 주고 말하였다.
"한양의 계에 대하여는 대강 들어서 아는 바가 있으나 직접 겪어본 일은 아니라, 좌중에
알려주셨으면 하오. 경기도에서 오신 두 분이 말씀해주시오." "도장께서 먼저 말씀하시지
요."
여환이 이경순에게 권하자 경순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글쎄 사실은 제가 양주계를 맡고는 있었으되 직접 일해본 적은 없고 황거사나 아우가 왔
다면 그 사람들이 한양 출입이 잦았으니 더욱 소상히 알 듯합니다." 이경순으로서는 해서
에 온 것도 처음이요 승려들이라면 여환말고는 말상대도 해본 적이 없었고, 더구나 이런 모
임은 난생 처음이던 것이다. 황회는 정원태와 더불어 수태사 하안거 때에도 자주 내왕하였
으며, 전생이는 양주계와의 연락차 경순을 대신하여 여러 모임에 참석하였던 터였다. 그가
저들과 연관되어진 것은 아내 묘옥의 예전 모가비였던 고달근이며 황회와 알게 되면서부터
였고 우대용과는 친교는 그를 더욱 저들에게로 밀착시키는 원인이 되었었다. 더구나 칠성암
의 여환은 이경순의 집에서는 가장 반가운 손님이기도 하였다. 묘옥은 여환과의 기연이 있
어서 그를 친척처럼 대하던 것이다. 그가 다른 계원들처럼 등에 낙인을 지지고 미륵 서원을
올린 것은 아니었으나, 황회나 고달근이나 살주계의 와주 중길이 등도 이경순이가 믿을 만
한 혈당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경순은 일찍이 여주의 아전과 정교를 쏘아
죽인 살인 법죄인이었던 때문이다. 그가 주막을 열어둔 파주 문산포야말로 육로와 수로가
촘촘히 잇닿아져 돌아가는 물산과 인심을 정확하게 판단해낼 수가 있어서, 검계에서는 가장
요긴한 근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가 알기로는 살주계와 검계는 몸은 한몸이었으되 얼굴이 달랐습니다. 살주계는 한양
성내에 사는 벼슬아치나 권세가의 노속들이 서로 맺은 당이었고, 검계는 저자 장사치들과
범법하여 죄를 저지르고 피해 다니는 자들이나 무뢰배들이 결당한 계였습니다." 계속되려
는 이경순의 말을 끊고 김기가 헛기침하고 나서 말하였다.
"우리가 알구 싶은 게 있소. 그들은 어찌하였으며 무엇 때문에 결딴이 났고, 지금은 어찌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어떤 점이 우리의 실리에 합당하고 어떤 잘
못이 우리를 반성하도록 하느냐 그런 얘기를 듣고 싶소." 이어서 장길산이 이경순을 바로
바라보며 말하였다.
"나는 나라에서 이르기를 명화적이라고 하우. 그러나 백성들은 의적이라고도 하고 녹림당
이라고도 부르며 또는 활빈당이라고도 불러줍디다. 우리 스스로 자처하여 활빈도라고 부르
지요. 우리는 이제부터 팔도 천민의 선봉군을 자처할 셈이요. 어찌 입국의 듯을 가지고 모였
다는 이들이 스스로 일컬어 관의 장계나 군관의 입술에 오르내리듯, 범법 죄인이라거나 무
뢰배라 칭할 것이오? 나라를 등진 사람, 아니면 전토와 향리를 잃은 유민, 도는 혈기와 의기
가 있는 장정이라 얘기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버릇을 들이지 못한다면 피아를 구
분할 수가 없고 뜻을 지닌 행동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찌 말하든 관군이 이런 자
리를 알고 우리를 잡으면 벌레처럼 발로 뭉개어버릴 것이오." 설유징이 붓을 멈추며 고개
를 들었다.
"그건 장두령의 말이 맞네. 그러나 이도장도 그리 틀린 건 아니라오. 무엇보다도 저이는
도방 대처의 객점주가 아닌가. 그런 말만을 쓴다면 대번에 기찰 장교나 포교의 눈을 끌게
될 게요." "그렇다면... 하물며 이런 자리에서는 말이 즉, 그 뜻입니다." 탑고개에서 온 가
족이 몰살당한 김기의 말이었다. 대저 사람은 겪은 상황만큼의 진실에 이르게 마련이라 하
였던가. 김기의 한마디는 그 때와 장소를 얻었다. 풍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좌중은
침묵하였다. 이경순은 한참 기다렸다가 다시 얘기를 계속하였다.
"제가 생각이 부족하여... 그 안에 따르지요. 살주계가 오랫동안 포청에 적발되지 않았던
것은 계원의 모두가 성내의 권문세도가에 몸을 붙이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눌려 살아온 포한으로 맺어져서 같은 종의 신분으로 혈족적인 의리가 강고하여 내부에서 발
고하는 자가 한사람도 나오지 않았지요. 저들은 낮에는 주인집에서 천예 노릇을 하며 보내
다가 밤에만 모여서 행동하였습니다. 살주계라는 명칭대로 상전에 원한을 품은 노비들은 은
근히 당에 들고자 하였지요. 그래서 누가 밀고한 것은 아니지만 노비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나간 겁니다." 설유징이 붓을 멈추며 물었다.
"계가 어떻게 짜여 있었소?"
"혈기방자한 노속 삼십 여 명에 그를 알아 도와주는 노비들이 백여명 남짓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들은 다시 외거노비와 대솔노비로 구분되는데, 일을 이끌어간 것은 비교적 행동거
지가 자유롭고 저자에 나가 난전을 쳐서 살기로 세상 일에 밝은 외거노비였지요. 제가 보기
에는 그들은 저희끼리만 똘똘 뭉쳐 있었던 것이 약점이올시다." "검계는 어떻게 짜여 있었
소?"
김기가 물었다. 여환이 이경순 대신 답하였다.
"맨 처음에 광주 근처에서 정원태라는 사람이 미륵당을 이루었소이다. 각처로 떠돌며 우
리 사찰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던 거사패들이 많이 엮어졌지요. 황회 거사도 실은 진관사 출
신이올시다. 고달근이라고 지금 천마산에 있는 이도 원래는 안성 청룡사의 사당패 모가비였
습니다. 여기에 경강을 중심하여 근근히 살아가던 유민들이며 장사치들이나 관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지요. 광주 묘적사를 중심으로 정원태를 위시한 검계가 있었고, 경강에서
는 서강의 모신이라는 객점주가, 그리고 양주에서는 여기 계신 이도장이 맡았고, 교하에서는
저 우두령의 아랫사람인..." 우대용이 말했다.
"홍천수라고 마포 동막과 칠패에서 거간하던 사람인데, 화수 범법으로 우리 패에 들어왔
지. 그도 역시 객점주요." 김기가 다시 물었다.
"검계는 그러니까 한양 인근에 퍼져 있었던 셈이고, 살주계는 도성 안에 심어졌던 셈이로
군. 그렇다면 그들 두 계가 어찌 연계를 맺을 수가 있었소?" "서강의 모신이란 사람 때문
이었지요. 나도 몇번 만났는데, 정말 경강내기로 그의 시세에 처변하는 머리를 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청파에 있던 살주계의 두령 중길이란 사람이 자주 내왕하였소." 이경순
에게 김기는 이어서 물었다.
"제일 먼저 이들 계들이 무엇을 하였으며, 어떤 일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여기시오?" "
잘 아시듯, 갑자년 왜국 국서로 하여 민심이 흉흉한 가운데, 검계에서 먼저 지방으로 빠져나
가는 양반들의 화물을 빼앗았지요.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검계와 살주계가 협력하여 성내
의 부잣집인 지사의 집을 야반에 털어냈고 한양 순라의 다섯 복처를 급습했다지요. 제가 알
기로는 전 참판 목내선의 집 수노 되는 사람이 발각되면서 계의 윤곽이 드러난 것으로 압니
다. 또한 성내에 있었던 살주계의 근거들이 다 밝혀졌고..." 여환이 덧붙였다.
"급박한 시기에 살주계에서는 성내의 곳곳에 양반들을 위협하는 방문을 써서 붙이곤 했었
지요. 그러나 다른 노비들이나 양민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고 소문만 낭자했소.
그때 검계에서는 기찰이 번개 같다는 종사관 하나를 죽이기 위하여 근거지가 탄로나는 실수
를 저질렀답니다." 박대근이가 곁에서 끼여들었다.
"그 종사관이 바로 최형기요. 훈련원 제일의 검객이며, 좌포청의 얼음 같은 포도 종사관이
지, 그리고..." "구월산의 토포장이던 최만호라는 자가 아니오?"
옥여가 물으니 박대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동헌에서 가통인으로도 있었다는 한미한 출신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울 수 있고 우리 속
내를 제 마음같이 아는 자요. 그자의 약점은 바로 줄을 댈 데가 없어 한때 김익훈의 호종
무사 노릇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지. 허나 그런 약점이 오히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점이
오. 무엇보다도 그자는 우리를 아니까." 설유징이 말하였다.
"자, 다시 검계와 살주계의 얘기를 정리하여야겠소." 김기가 말하였다.
"살주계는 노비들로 이루어진 당이었다. 따라서 저들은 특별한 별종을 이루었소. 마치, 성
균관 유생의 당이나 과천 시내들의 마을처럼 말이외다. 더구나 사방에 때가 되면 철통같이
닫히는 사대문의 안에서 별종들끼리 모이고 흩어졌으니 무슨 기반이 될 만한 실한 일이 이
루어 질 리가 없지. 날마다 생업을 위주로 만나고 흩어지는 장삼이사들과는 애초에 별무관
계였지요. 비록 그와 같은 노비들이 여러 세가와 부가에 많다고 하나 오히려 무슨 신비스런
소문이 났지, 실제의 일에는 소용이 없었소.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계의 이름 그대로 '양반
노주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다'로 약조하였다는데, 다만 그런 말로는 성내의 백성들을 납
득시킬 수가 없었을 게요. 특히 중길이란 사람은 오랫동안 도망하여 다니던 사람이라 하니,
혼자서 숨어 다니다 보면 별의별 신통한 생각이 많게 마련이외다. 생각은 일하고는 조금 거
리가 있는 거니까." 길산이 경순에게 물었다.
"검계에서는 부잣집을 털었다는데, 그 뒤로 성내의 빈한한 백성들을 도와주는 일도 함께
했습니까?" "못했던 것으로 압니다."
"뜻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백성들은 저들이 다만 사람이나 죽이고 재물을 탐내는 서적으로
여겼을 게 아니오?" 여환이 답하였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의논이 있었지요. 실은 그 무렵에 검계에서는 각 패거리마다 서로
강고히 결맹되었던 것은 아니라, 특히 묘적사와 솔부리에 근거를 두었던 정원태 도사며 황
거사 같은 이들이 저희 무리의 세를 키워가는 데 너무 힘을 기울였고, 그들에 동참한 서강
모신이란 사람도 아무리 뜻이 있다 하나 천래의 장사치인지라 장물의 이득에 먼저 마음이
앞섰던 듯합니다." 김기가 말하였다.
"차라리 가장 노비들의 원성의 대상인 장예원의 관리나 옥사를 대상으로 하든지, 아니면
계에 해를 끼칠 자에게 먼저 힘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요. 성내에 양반들을 위협하는 방문을
붙였다고 하나 그만한 위험이라면 차라리 말없이 직접 보여주는 게 낫소. 방문은 격하고, 다
만 먹이 마르지도 않은 종이에 불과하니 계원들의 기만 달래준 격이외다." 풍열이 곁에 놓
인 죽비를 두드려서 설왕설래를 그치게 하였다.
"자, 그러면 검계와 살주계의 활약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내
생각으로는 취할 점도 많은 것 같은데..." 박대근이 말하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결맹한 사람들 삼십여 명이 좌우 포청의 기찰을 완전히 마비시켰습니
다. 또한 거처가 한양 성내의 대가들이라 바로 조정의 코 아래까지 다가갈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사대문 밖에는 경기도의 사방 향리로 닿아 있는 검계의 근거가 있어 때에 따라서 외
응과 내응을 늦추고 당기고 할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종루시전이며 이현 칠패 청파
등의 난전과 마포 동막, 용산 삼개, 서강, 그리고 광주의 송파와 양주의 다락원 등지의 저자
는 서로 덤불처럼 얽혀 있어서 온갖 풍문과 소식을 주고받는 곳이라 포청에서도 그곳을 중
시하고 있소이다. 검계와 살주계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잔여의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
은 그런 까닭인 듯싶소이다." 김기가 말하였다.
"우리 글을 배운 자들의 생각은 늘 존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몇몇이 모여 대의와 명분
을 세울 적에도 정을 그 지식으로 삼아 이러쿵저러쿵합니다. 난이 입국에까지 이르는 데는
위의 두 생각이 없어져야 할 것이오. 처음에 큰스님께서도 밝혔듯이, 백성이 정에 대한 무슨
지식이나 앞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이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일에 함께 해주는
것이 가장 앞선 정이올시다. 탐학하여 원성의 대상이 된 자를 징치하고, 백성들의 살아가려
는 생업과 이익에 해를 끼친 제도나 관부에 타격을 주어, 도와 덕을 회복하는 것이외다. 이
를테면 흉년에 부정한 관리를 잡아내어 저자에 내놓아 솥에 찌던 고례는 통치술의 하나이지
요. 선비들이 역률에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나, 늘상 한줌에 지나지 못하는 것은 포부와 경륜
은 태산 같고, 그 세는 저희들 동류에만 그쳐 실로 지푸라기와 같소. 향리에서는 가끔 있는
일이지만 중지에 의하여 관가의 창고를 부수고 곡식을 나누어 먹는 일을 주동한 자보다도
힘이 없는 것이지요. 덕석몰이라는 삼남의 풍습이 있고, 한 마을에서 누가 보더라도 패악한
짓을 저지른 자를 마을 사람들이 판결하여 덕석에 말아 징치하고 쫓아내는 것이오. 그것은
거의 하늘의 뜻이므로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소이다. 천인공노가 바로 이런 힘의 원천이고
그 분함을 풀어주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가장 실한 정이외다. 고금을 돌아보아 이러한 공분
에 움직이지 않는 민심이 없소. 위의 두 계는 공분을 모으는 것에 게을리하였으니, 아주 특
별한 일이 되고 말았지요. 어느 때는 죄없이 먹고 살려는 착한 백성 한 사람의 죽음으로도
그런 공분이 일어나 조정이 무너지기도 하오. 선비가 공분을 모르고 정만을 앞세우니 백성
들이 무심하거나 기껏해야 형장으로 가는 수레 뒤에 물그릇이나 내밀 뿐이지요. 식자들은
어리석은 백성의 탓을 하나, 백성들의 도와 덕이 무엇보다도 그 생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
을 모른 것입니다." 여환이 말하였다.
"갑자년의 일로 또 한가지 기억이 나는 것은 산지니라는 검계의 계원이 잡혔을 때, 그의
계속되는 심문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조정의 당파 분쟁을 이용한 일입니다. 득세한 당에 줄
이 있는 듯이 공술을 시켜서 스스로 위험을 느낀 대신들이 포청에 압력을 넣어 죄수를 즉각
처형시켜버렸답니다. 즉 조정의 파벌과 내분은 저편의 약처이므로 언제나 소상히 알아둘 필
요가 있습니다." 옥여가 말하였다.
"그러면 이번에는 해서감영의 구월산 토포에 대하여 그 득과 실을 가지고 의논하여보겠
소." 설유징이 잠시 붓을 던지고 고쳐 앉더니 제안하였다.
"구월산의 불운에 관하여는 나도 멀리서 자세히 전해 들었소이다. 자비령에서 사람이 왔
었지요. 여기에 함께 결의형제를 하였고 또 그 형제들을 잃은 사람들도 있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있소이다. 우리에게 죽은 이들을 그리고 애도하는 글이 없을 수 없으며, 그들에 드
리는 묵도나 조촐한 제를 올려야 할 겝니다." "묵도는 할 수 있으나, 글은 회합이 끝난 뒤
에 작은 제와 함께 써서 읽기로 하지요." 옥여가 말하고 나서 스스로 합장하며 중얼거렸다.
"나무관세음보살... 승려는 승려대로 속인은 속인식으로 잠깐의 묵념 묵상을 올리기로 하
겠소이다." 열세 사람은 제각기 고개를 숙였다. 풍열을 위시한 승려들은 모두 합장하였고,
설유징을 비롯한 속인들은 무릎에 손을 얹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바람소리만 들릴 뿐 오진
암의 법당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그들의 뇌리에는 죽어간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씩 겹쳐
져서 스쳐갔다. 이곳 저곳에서 묵념을 마친 이들이 고개를 들었고 옥여가 확인한 뒤에 말하
였다.
"구월산 토포에 관하여는 저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만, 관군이 이곳을 지목하여 감영 군
사를 일으킨 것은 된목이골의 산채 때문이었으니 장두령이나 김선비께서 말씀을 해주시오."
"이번에는 내가 좀 묻겠소."
설유징이 길산과 그들 일행이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관군이 구월산 토포를 결정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게요.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다고 생각
하오?" 길산이 말하였다.
"우리는 계해년 이후로 산채의 기틀을 잡았고 활빈행을 시작했었습니다. 특히 구월산과
자비령으로 패가 나뉜 뒤에는 서로 분담하여 해서의 곳곳에서 소문이 낭자한 곳부터 시작하
여 토호와 고을 수령들을 징치했소. 벌써 이세백이 감사로 있을 때 저들은 자객을 보내 송
화 무더리까지 들어왔지요. 마두령이 베어 죽였으나 일단 감영에서는 구월산이 눈 속의 티
와 같았던 겁니다. 우리가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작년에 유민들과 힘을 합쳐 해서의
세곡이 모이는 금천의 조읍포창을 습격한 일 때문입니다. 갑자년부터의 흉황으로 백성들의
참상이 극에 달하였고, 재작년에는 정월부터 역병과 가축의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하여 여
름까지에는 많은 마을이 사라져버렸지요. 피해는 팔도 가운데서도 해서가 가장 혹심하여 우
리의 활빈행은 마치 단 솥에 물 붓는 것과도 같았소. 우리가 포창을 습격한 데에는 몇가지
의 이유가 있었소이다. 하나는 그 지방의 가장 큰 부자인 유가라는 자가 사병을 만들어 유
민들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었으며, 관과 결탁하여 세곡선을 부려서 막대한 거재를 쌓았던
것입니다. 그자의 재산을 털어서 해서의 남쪽에 모여든 유민들을 살릴 필요가 있었으며, 세
곡의 조세창을 습격하여 그러한 흉황에 권분이나 눈곱만한 구호미나 죽 몇사발로 구휼하는
시늉이나 매면서 여전히 수세를 하는 국가의 잘못을 백성들께 깨우쳐주기 위함이었지요."
설유징이 물었고 박대근이 대답하였다.
"어떻게 조정에서 그 일을 주목하였다고 알았소?"
"전 관찰사 임규가 그 임기를 채우기는커녕 두 달 만에 쫓겨 가고, 승지로서 임금의 무릎
아래를 떠나지 않던 신엽이 신관으로 부임한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었소." 다시 설유징이
물었다.
"그들이 토포군을 일으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저희 송방
에서는 거의 토포군의 조련이 끝날 즈음하여 알아내고 군사 습련장의 모습을 확인하였소.
그러나 실수하였지요. 산채가 두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장두령의 활빈당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어서, 그만 자비령이 토포 지역인 줄 알았던 겁니다. 실수는 관군 쪽에도 있었지요. 이세
백 이래로 감영에서는 해서 활빈당의 근거지가 구월산이라고 알려져왔던 겁니다. 관군은 호
랑이 사냥에 동원시킬 군사라고 소문을 냈었지요." 박대근이 자기 역할에 대하여 말하였고
설유징이 다시 물었다.
"관군의 편제는 어떠했으며, 토포장은 어떤 사람이었소?" 옥여가 말하였다.
"칼 쓰고 말 타는 유군과 창을 가진 보병, 그리고 포수와 궁수 합하여 이백여 명이었다구
그럽디다. 그리고 저들은 구월산 인근 사 읍에 비밀리 명하여 군병과 향리 민병을 동원하여
인성을 둘러 구월산의 퇴로를 막았소." 김기가 말하였다.
"특히 은율 안악과 송화에는 우리 식구가 내려가 주막을 하거나, 아니면 군의 향소나 장
교 중에 복심을 심어두어 미리 관의 동향을 알아내곤 하였는데, 토포군은 이미 한 달 전부
터 은밀히 기찰하여 저들을 모조리 잡아냈던 것이오. 내가 잘 알지는 못하나 아까 박좌장이
토포장에 대하여 잠깐 말했듯이 그는 매우 유능한 장수임에 틀림이 없소. 그자는 용병에 능
하고 또한 기찰에 빈틈이 없소. 그러나 그자는 양반들의 도구에 지나지 않소이다. 그의 약점
은 바로 아까도 말이 나왔듯이. 소신있게 일을 해나가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데 뒷힘이 되어
줄 세력을 조정 내에서 잡고 있지 못한 점이오."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이번 토포의 실패
에 책임을 지고 감영을 떠났지요. 아마도 다시는 같은 일을 수행하지 못할 거요. 그가 임시
의 토포용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등산곶 만호라는 직임이었는데도 줄곧 감영에서 군사조
련이나 습진에만 열중하였고 토포가 끝나자마자 상경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즉 신
엽은 토포하는 일 외에는 별로 최모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겠지요." "토포가 어떻게 진행되
었소?"
설유징의 물음에 옥여가 답하였다.
"그들은 대를 나누어 선진은 구월산 남록을 넘어 막바로 된목이골 산채를 급습하고, 후진
은 송화로부터 수렛고개를 넘어 산채의 정탐처를 유린하고 산채와 연줄이 닿아 있는 사선골
과 탑고개를 덮쳤소. 먼저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가차없이 살해하
였으며, 집에는 불을 지르고 모아놓은 사람 중에 산채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심
문하였지요. 토포는 해 뜨기 직전 미명에 시작해서 정오 무렵에는 다 끝냈습니다. 기찰이 한
달, 군사 조련에 한 달을 보낸 그들은 안개처럼 산밑에까지 스며들어와서는 일시에 덮친 것
이지요." "접전에서 이쪽이 불리했던 것은 급습을 받은 외에 또 어떤 것이 있소?" 옥여가
말하였다.
"총포가 없었던 점이지요. 그들은 먼 거리에서 숨어서 많은 사람들을 쏘아 살상시킬 수가
있었으며, 이쪽에서는 단병접전 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고 병장기도 없었소. 구월산 식구들
이 혼자서 능히 관군 한오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방포술에는 아무런 대처가 없었소.
또한 무엇보다도 세상에 활빈당의 은거지가 구월산이라고 왁자하게 소문이 났으면서도 관군
의 기습에 대하여는 전혀 마음을 놓고 있었지요. 물론 관찰사가 갈려 갈 때마다 미리 정탑
하지 않은 것은 아니로되, 관군이 한번 거병하려면 군비와 인마의 동원 등으로 인하여 반드
시 해서 일대가 떠들썩할 것이며, 이쪽에서는 자연히 알게 될 것으로만 여겼지요. 그러나 토
포장 최모는 그런 점까지 염두에 두어 조련받는 감영 군사들 자신도 그들이 범사냥에 나가
는 것으로 알았소이다." 설유징이 다시 물었다.
"관군이 사선골과 탑고개를 먼저 급습해야 할 이유가 있었겠지요?" 김기가 답하였다.
"사선골과 탑고개를 유민과 재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었고, 산채 식구들이 더불어
살았소. 마을 사라들은 월정사와 산채를 뻔질나게 왕래하였소. 즉, 산채로 가는 소식이며 퇴
로를 막고 끊으려던 것이지요. 일테면 사지를 잘라놓은 셈이올시다. 이제 와서 장두령을 비
롯한 저희들의 생각이지만, 일정한 산속에 산채를 두고 식솔들이 그 근방에 살며 마을을 이
루는 것은 마치, 머리를 독사의 구멍 앞에 들이대고 누운 것과도 같소. 그리고 발목에 철환
을 매어둔 죄수처럼 옴치고 뛸 수가 없지요. 여염 동네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살게 하든지
아니면 산속에 두세 집씩 흩어져 살게 해야 됩니다. 산채는 산지사방으로 맥이 닿은 큰 산
줄기의 요소에 나누어 두어야 할 게요. 내가 지난번에 된목이 골에 올라 뒤늦게 지세를 살
피니, 구월산이 마치 창천에 뜬 외기러기 같은 형세라 겨누어 살을 날리면 영락없이 떨어지
게 되어 있소. 그뿐 아니라 된목이골은 안에서 얼핏 보면 천험의 요새와 같으나, 수가 적은
녹림당으로서는 힘써 싸워 지키는 수성군과는 류가 다른지라, 한번 둘러싸이면 물독에 든
고기와 같았소. 그러므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여염에 녹아 들어가 있다가 때가 되면 무리
를 이루고, 불리하면 흩어져 숨으며, 빨리 치고 빨리 달아나며, 여러 대로 나뉘어 같은 목적
의 일을 행하고 그 모두를 같은 부류로 널리 알리면 쉽사리 토포당하거나 근거를 알리지 않
게 될 것이오." 장길산이 말하였다.
"나중에 들어서 알았으나, 우리가 배운 게 있습니다. 탑고개에서 관군은 마을 사람들의 강
한 저항에 부딪쳤소. 비록 병장기도 없이 깨어진 옹기 조각과 돌멩이뿐이었으나, 모두 죽기
를 한하고 싸웠지요. 탑고개 아닌 다른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백성의 원한이 쌓이면 저렇듯
강한 힘이 나오니, 우리는 사방에서 백성의 맺힌 바를 소상히 살펴서 그들의 힘을 밀어주고
그들을 끌고 나가면, 마치 돛에 거센 바람을 받아 노도 삿대도 없이 큰 바다를 건너는 배와
도 같을 것입니다." 김기가 다시 덧붙였다.
"그와 같은 일은 벌써 해서 도처의 활빈행에서도 겪었소. 굶주린 황민들의 뒤를 따라다니
기만 하여도 토호들의 창고는 저절로 열렸지요. 활빈행에서의 주된 힘은 오직 굶주린 사람
들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야간의 기량으로 그들의 행동이 훨씬 쉽고 적극적으로
되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조읍포에서도 조세창을 털어낸 것은 다름아닌 백성들 자신이었소."
설유징이 붓을 놓고 허리를 펴고 앉으면서 말하였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저마다 다른 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산간
과 평야에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백성들이 수없이 많소. 작은 개천이 모여서 대하를
이루듯이 이러한 갈래들을 한곬으로 합쳐야 할 것입니다. 한양을 도모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지요. 지방에서 변을 일으켜 감영을 점령한 뒤에 난민을 모아 세를 늘려가면서 상
경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반정의 예에 따라서 사병을 동원하고 사대부들과 결탁하여 궁을 직
접 들이치는 수가 있소." 박대근이 말하였다.
"한양은 금위영, 훈련도감, 어영청 등의 이른바 삼군문이 지키는데 특히 금위영은 오 년
전에 설치되었을 겝니다. 사부로 나뉘어 윤번제로 지키니 대개 천이백칠십여 명이 군과 성
문을 지키는 셈이오. 각 지방에서 역을 진 군병이 올라와 한달씩 근무를 합니다. 특히 농번
기인 넉 달 동안은 수를 절반으로 줄여서 번을 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삼사월과 팔구월에는
군사의 수가 육백여 명에 불과한 셈이지요. 기껏해야 천여 명이 되지 못하고, 명목상의 숫자
만 나와 있을 뿐, 임란 때에 어느 무장은 수하병 삼백을 구하지 못하여 사흘 동안이나 출발
하지 못하였다가 단신으로 남하했을 정도로 군역이 실제로 쓰여지지 않는 실정이오. 지난봄
에 마포 경강에 나가 있는 송방에서 올라온 소식에 의하면 별파진이라는 화포를 쏘는 별대
가 생겼답니다. 모두 백팔십여 명인데 방포술을 익히고 열두 분대로 나뉜다고 합니다." 설
유징이 말하였다.
"군사의 배치와 주변 향군의 병력도 자세히 알아두어야 할 게요. 아무래도 한양에 인접한
중요한 두 지방이 있으니 해서와 강원도일 것이오. 공홍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경강 수로
와 남한 산성을 굳게 지킨다면 삼남의 군사는 자연히 기회를 잃고 군사를 물릴 것이오."
풍열대사가 중얼거렸다.
"급소는 바로 한양의 궁궐이지. 막바로 궁궐을 치고 나서 해서와 강원도에서 거병하여 지
방군의 진격로를 끊고, 미리 대기하였던 민병이 나한산성과 강화를 점령해야 하오." 여태껏
잠자코 있던 대성법주가 말하였다.
"우리 강원도 쪽에서는 철원으로 하여 영평과 가평을 점령하여 동북로를 끊을 수 있습니
다. 승병 오백이면 충분하지요." "우리는 강화를 맡겠습니다. 성을 점령한 뒤에 수군진의
함선을 모두 불태워버리겠소." 우대용이 말하였다. 김기가 그들의 논의를 막았다.
"밥을 짓는 데도 준비와 그 역할의 분임이 있는 법이오.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불을 때
고 끊기를 기다리며 익은 뒤에 뜸을 들여야 하지요. 우리가 이미 한양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면, 경기 근방에 있는 사람들이 불때는 역을 맡아야 하며, 황해도와 강원도에서 쌀을 씻거나
물 맞추는 일을 해야 하며, 도성 내에 있는 사람들이 뜸들이는 역을 해내어야 합니다. 이미
검계와 살주계의 결당이 이루어져 있고, 일을 어찌하느냐에 따라서 한양 주위 수십리 지간
에서 많은 혈당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오. 내 생각으로는 한양 도모는 단 하루에 이루어지
지 않으면 실패요. 아까도 설유학께서 예를 들었으나, 지방에서부터 세를 모으며 한양을 향
하여 진격해 오르는 것은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외다. 왜냐하면 원래가 맨주먹인 백성들의
군사로는 지구전을 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산하에서 수천의 입에 양식을 넣어야
하고, 하나둘씩 공을 세우려는 지방 토반이나 풋내기 무장들을 의병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들게 만들 것이오. 한양을 치기로 하였다면 오래 준비하여, 그날 미명부터 해질녘까지에 사
대문 안의 모든 요새 문루 궁궐을 장악해야 될 게요. 장기 둘 때 외통에다 차를 들이대고
상과 말로 교란하는 것과도 같소. 물론 저들 조정의 도와 덕을 잃은 점을 지적하고 대의를
뚜렷이 세워야 할 것이오. 내 의견은 설유학께서 내놓은 두 안을 절충하자는 것이지요. 먼저
번개같이 궁궐을 점령하여 임금과 조정 대신들을 사로잡고, 경기도 바깥에서 외응하여 관부
를 점령한 뒤에 한양에 입성하는 것이오. 처음에는 반정이고 연이어 입국으로 나아가는 셈
이지요." 여환이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들 쪽에서 도성을 점령하는 일을 해내야겠군요." "일찍이 운부스님께서도
친민에는 교가 방편이다. 너는 칠성암의 미륵이 아니냐? 하셨지." 설유징이 풍열의 말에 이
어나갔다.
"바로 그렇습니다. 검계와 살주계의 혈당들이 주축을 이루고, 미륵의 가르침을 전파하여
은밀히 마을 단위의 연계를 지을 수가 있을 게요." 박대근이 말하였다.
"제가 알아보았는데, 해서의 은율 송화 등지에 있던 유민들을 강령과 경기도의 삭녕 등지
로 보냈다고 합니다. 물론 사선골과 탑고개에서의 생존자들도 그리로 갈려 나갔지요. 아마도
거의가 삭녕으로 간 듯합니다." 김기가 말하였다.
"그들은 절대로 관에 협력하지는 않을 거외다. 원한이 뼛속에까지 사무친 의붓자식들이니
까. 또한 그런 이들끼리야말로 그 연계가 마른풀에 불 번지듯 조용하고 빠르지요." 길산이
말하였다.
"내 본시 창우 재인으로 자라서 잘 압니다 전국에 수백여 대의 갖가지 재간을 익힌 광대
배가 많으나, 우리는 대개 그곳에서 누가 제일인지 성품이 어떠한지도 모두 알구 있었지요.
그만큼 천한 것들끼리는 가장 가까운 속내를 주고받지요. 오박수가 여기에 있는데, 그에게
물읍시다." 오계준은 구석 자리에서 고개를 떨구고 오가는 얘기들을 귀기울여 듣고만 있었
다. 그는 지적을 받자 좀 당황하였는지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글쎄요. 제가 무얼 알아얍지요. 그러나, 제가 해서에서 박수 만신하고 재간 팔아 사는 것
들은 모두 아는 사이입니다. 사실은 저보다두 이런 일에는 재인말 살던 큰돌이가 적격입니
다만, 지난번 난리에 송화서 잡혀 죽었습니다. 해서는 몰론이요 경기도 일대까지 제 동무가
많이 나가 밥 빌어먹구 있지요. 송도 덕물산 최영 장군 당에는 저하구 음률을 익히며 몰던
아이가 당주 만신이 되어 더부살이 중이올시다." 풍열대사가 말하였다.
"자네는 여환과 더불어 그런 이들을 미륵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도와주어라." 하고 나서
그는 옥여에게 지필묵과 간지를 갖다 놓도록 하였다.
"결맹서를 쓰겠소."
풍열이 붓을 들어 적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정묘 사월 초닷새 구월산 오진암에서 함께 회합한 사람들은, 뜻을 같이하여 썩은 나라를
뒤엎고 백성들의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죽기를 각오하고 맹세하며, 성사되기까지 서로의
나누어 맡은 일을 힘써 행하고 도우며 한시도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미륵의 도솔타천을 실
현할 것을 결코 잊지 않으리니 천지신명은 이를 굽어살피사 도와주시며 등돌리는 자 천벌을
내리시라." 적는 대로 읽고 나서 풍열이 그 옆의 흰 여백 가운데다 크게 누를 황자를 휘갈
겨 썼다.
"황은 대지요, 역사의 시원이며, 천하의 근본이고, 백성들이니라." 그리고는 그 아래로 풍
열이라 조그맣게 적어 넣고는 붓을 곁으로 돌렸다.
"사발 모양 둥글게 적어나가게."
옥여가 적어 왼편으로 돌려나갔다. 글을 못 쓰는 이가 강선흥, 우대용, 오계준이었고 대성
법주는 천자문이라도 떼었던지 제법 제 법명을 써넣었다. 선흥이는 김기가 대신 썼고 우대
용과 오계준은 박대근이 써 주었다. 풍열에게로 결맹서가 되돌아가니 그는 다시 한번 읽어
보고 나서 설유징에게 내주었다.
"운부 큰스님께 전하시오."
설유징이 두 손으로 받아 봉하여 품에 넣었다. 결맹이 끝난 뒤에 월정사 대웅전에서 구월
산 식구들을 위한 재를 올린다 하여 모두들 오진암을 내려갔다.
그날 밤이 되어 손님들은 명일 출발을 약정하고 오진암에서 하루 더 묵게 되었는데, 월정
사에는 길산이 안무당 때문에 내려와 있었고, 묘정, 대성법주, 여환, 옥여 등의 승려들은 모
두 큰절의 대중방에 들었다. 안무당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간신히 잠만 자는 형
식이라 길산은 머리맡을 지키다가 밖으로 나섰다. 마당에는 신록에서 풍기는 훈향이 그득하
였고, 처마 끝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땔그랑거리고 있었다. 길산은 정원 가녘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신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당을 건너서 누구인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공양은 드셨습니까?"
하여 보니 여환이었다.
"예, 바람이 제법 훈훈합니다."
길산이 인사조로 말하였고 여환은 곁에 걸터앉았다.
"모친께서는 어떠신지요?"
"보살님들 말씀이 아침결에 잠깐 정신이 들었다 합니다. 워낙 노환이시라 예측할 수가 없
지요. 한꺼번에 여러 환난을 겪으셔서..." 여환이 잠시 말이 없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흩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여환이 말하였다.
"참 묘한 일이지요. 저는 오래 전에 장두령의 넋을 달래는 기도를 벌써 드렸었지요." "감
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별탈 없이 지내온 듯하오. 이다음에 어느 깊은 골짜기에서 아무도 모
르게 죽어 멧새의 먹이가 되어 간다 하여도 기왕에 넋걷이 염불을 받아두었으니 극락왕생은
맡아놓은 셈이지요." 길산은 털털한 기분이 되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환은 거기서부터 뜸
을 들이지 않고 계속하였다.
"제가 기거하던 암자로 장두령의 참형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낙이 있었습니다. 아시겠지
만... 문화 재인말서 함께 사셨다는..." "알구 있소."
길산이 말하였다.
"기억할 거리가 많으면 수도에 지장이 있을 터인즉 스님도 대강 잊으시우." 여환이 조심
스럽게 대꾸하였다. 길산은 의아하여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의 윤곽만이 떠올라서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스님... 누굴 만나셨소?"
묘옥의 이름이 길산의 입끝에 나올 뻔하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그쳤다. 여환이 말하였
다.
"그 아낙은 정처가 없어, 살기 위해 그 무렵 관시놀이에 왔던 사당패에 들었지요. 안성 청
룡사 패거리였는데, 고달근이란 이가 모가비였소. 여주에서 도장 노릇으로 재산을 모은 이가
있어서 그 아낙을 은근히 좋아하더니, 자식이 없던 탓이기도 하였지요. 어느때 행중이 시골
토호에게 피침당하여 곤경에 빠지는 바람에 그 사람은 살인 범법하게 되고 가산은 적몰하고
아내를 잃었지요.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간신히 다시 만나 부부가 되었소이다."
하였다가 여환은 붙박힌 듯이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길산에게 분명히 말하였다.
"그들은 지금 파주 문산포에서 객점을 하며 살고 있소이다." 길산은 도장이었다는 말이
나올 적부터 그가 누구임을 알았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였으면 좋겠습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그저 알고 계시라는..."
길산은 고개를 떨군 채로 말하였다.
"알려주어 고맙소."
여환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마당을 다시 건너가려는 여환의 등뒤에다 길산은 말하였다.
"사실 나는 그러한 사연을 알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정한이 다소 있었다 한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은 이에 비하면... 내가 아느니 모르느니 하는 말조차 비추지 말아주십시오."
"그러지요."
여환의 신 끄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길산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대장부가 아무리 세상의
굵고 큰 것만을 가슴에 품는다 한들 어찌 속에 감추인 가녀리고 작은 것을 잊을 수가 있으
랴. 다만 그런 부분은 이미 해주 주내방 사거리에서 이름없는 대시수가 목으로부터 시뻘건
피를 뿜으며 참수될 때, 함께 죽어버렸을 뿐이다. 묘옥에게 자신은 벌써 죽어 황천에 가 있
는 혼령일 뿐이었다.
사당패가 걷던 수없는 갈래의 길이며 물과 산과 골짜기와 그를 따르던 어느 사내와, 그들
이 겪어왔을 슬픔과 고통은 살아 있는 현실 세계의 그것이었다. 어찌 죽은 것이 생생히 살
아 있는 것을 당하랴. 저 쓰린 정한이라는 것도 봉순과 수복이와 구월이의 살 부빈 혈육에
비한다면 한갓 환것일 뿐이다.
더구나 이경순과 장길산은 이제부터 뜻을 위하여 함께 목숨을 건 결맹한 동당이었다. 그
밖의 사연은 샘 밑의 모래처럼 저 밑바닥 깊숙이 가라앉혀버릴 것이었다. 문득 길산의 뇌리
에 수복이나 구월이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안고 객점의 울바자 밖에 나와 서서 이경순을 기
다리고 섰을 묘옥이 떠올라왔다. 이번 일은 한양 인근의 혈당들이 선봉이 될 것이며, 만약
그렇다면 길산은 한사코 이경순의 안전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할 생각이었다.
날이 새자마자 제일 먼저 떠날 행장을 차리고 오진암을 내려온 것은 설유징과 대성법주였
다. 돌아가며 인사가 오가고 나서 법주스님은 길산을 찾아 안무당의 방으로 왔다. 안무당은
그날따라 새벽부터 정신이 맑아지며 이야기도 주고받고 하던 중이라 대성법주가 뒤늦은 인
사를 올렸다. 안무당은 그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월정사에 새로 온 스님으로나 여겼는지
이불깃을 여미며 송구해하는 안색이었다.
"저 갑송이올시다."
"뭐야...?"
"재인말 살던 갑송이요."
안무당이 갑송이를 코흘리개 적부터 모를 리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들여다보다가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 우리 길산이 짝패이던 항우 같은 갑송이로구나." 길산이도 안무당의 총기가
돌아와 갑송이를 알아보는 것이 흐뭇하여 법주스님과 마주보고 싱긋이 웃었다.
"지금 금강산에서 수도중이랍니다. 아주 신실한 수좌가 되었지요." "응, 부처님께서 점지
하신 이는 종내 중이 되구야 만다는구나." 갑송이가 일어나려 하니 안무당이 말렸다.
"암 떠나야지. 재인말도 없어지고 탑고개도 없어지고... 돌아가면 우리 수광대 어르신하구
내가 저승에서 만나게 염불이나 올려주어." 법주가 말하였다.
"먼저 가 계시면 다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일어났고 길산이 따라 나섰다. 밖에서 설유징이 기다리고 있었다. 길산은 합장 대신
에 대성법주와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모두 되찾아서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한양에서 만나게 되도
록..."
승속은 헤어졌다. 설유징과도 인사가 끝났고 익숙하게 바랑을 짊어진 우람한 대성법주의
모습이 문루 밖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길산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법주는 그가 가정을 이
루고 살았던 탑고개며 모친의 무덤과 그 곁에 묻힌 도화의 묘도 함께 둘러보겠다는 의사를
비치더니, 끝내 휘적휘적 떠나왔던 산문을 향하여 승려답게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나서 해가 높직이 뜬 뒤에야 김기, 강선흥, 이경순, 우대용, 박대근 등
이 우르르 몰려내려왔다. 김기가 길산에게 말하였다.
"장두령, 산채가 휑하니 빈 듯하여 어서 가보아야 되겠소. 강서방하구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 모친의 병세를 보아서 며칠 더 있다가 오시지요." "글쎄, 좀 차도가 보이는 것도 같고
한 사나흘 보았다가 그저 그러시면 내 곧 뒤따라가리다." 대근이 길산에게 다가서서 말하
였다.
"먼저 얘기한 대로 인삼밭의 소출이 되고 나면, 내가 산채를 도와 힘을 보탤까 하오." "
전에 의논한 것처럼 호마가 필요합니다. 말과 총포가 있으면 관군은 얼마든지 쳐부술 수가
있소." "산채를 더욱 안전한 곳에 심장하여야겠더군. 산에 가기 전에 송도에도 좀 들러주
오." 길산은 그의 어깨 너머로 이경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산은 그에게로 다가서서 먼저 허리를 굽혔다.
"이번에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반가웠소이다.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
다." "언제쯤 파주에... 들르시겠습니까."
이경순이 말하였고, 길산은 조금 비켜서 답하였다.
"칠성암에 들르게 되면 여환스님을 통하여 전갈을 올리지요." 이경순은 감사하다는 양인
지 작별 인사인지 허리를 굽혀 보였다. 옥여와 여환 등도 그들을 배웅하러 문루에까지 나갔
다. 묘정도 함께 떠나갔다. 묘정은 문루까지 걸어가며 길산과 얘기를 나누었다.
"몇년 전에 제게 찾아오셨을 적에는 생각과 수행이 부족하여 허튼 소리를 하였지요." "허
튼 소리라뇨..."
길산의 반문에 묘정은 웃었다.
"여환을 사도라고 몰아붙인 일이 생각 안 나십니까?" "그러셨지요마는 양주 사비의 소생
이라고 스스로 거리낌없이 말씀하셔서 저는 정을 느낀 생각은 납니다." "아..."
묘정은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금강산으로 떠나시던 길이었나요. 생부의 이야기를 하셨지요." "추노를 피하여 입
산하신 어떤 분에 관해 물었습니다." 길산이 담담하게 말하였고, 묘정은 의아하다는 듯 그
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대장부는 그 외에도 잊어비릴 일이 많고 기억할 일도 많은 듯합니다." 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부께서는 승려가 되셨다 하니, 그분도 그렇게 여기실 겁니다." 묘정과 길산은 합장을
나누었다. 손님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가버리고 월정사 경내에는 여환과 장길산과 오계준 셋
만이 남아 있었다. 여환은 그가 머물며 커왔던 사찰이라 고향이나 다름없어 며칠 더 머무를
눈치였고, 오계준이는 그와 가장 가까운 김승운 계화 부부와 헤어지지 못하여 한 사날 머물
모양이었다. 원향의 일로 계화 부부는 여환과 식구처럼 친해져서 그의 권유에 따라 함께 양
주로 나가서 신당을 모시고 살아볼 계획이었다.
안무당은 그날 하루 총기가 되살아난 듯하더니 밤이 되자 길산에게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고, 봄풀 같은 손으로 길산의 손을 잡아 꼼지락거리며 매만지는 것이었다.
"원향이 좀... 불러주어."
하여서 길산이 보살들 방에 알리니 원향이뿐 아니라 계화와 백련이까지도 달려왔다. 안무
당은 원향이를 머리맡으로 다가앉도록 이르고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말하였다.
"저어기 서해바다의 용왕님은 원래가 대국에서 오는 잡신들을 막아 지키시는 분이시여.
이 바다 내다보는 구월산 산신님과 더불어서 옛적부터 이 터전 하늘님을 모시고 단군 성조
님을 보좌하던 분들이지. 네가 어미의 몸을 빌어 신을 받은 데가 풍천 바닷가요, 다시 한번
얼을 찾은 곳이 구월산이니 그 두 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북 묘향, 동 금강, 서 구월, 남 지
리, 사방에는 이 땅의 골골과 산맥의 혈을 둘러 지키는 큰 산신님들이 계시느니라. 이 가운
데 저어 아사봉에는 아사달 옛 터전 단군 성조님의 뜻이 새겨 있으니 너는 기중 가장 크고
깊은 신의 뜻을 이어 받은 만신이 되어야만 한다. 내 무구와 요령과 신칼을 네게 내린다. 우
리 수복 어미는 신심은 깊으나 영험이 깃들이지 않아 여염 아낙이 되었고, 내 이를 물려줄
신딸이 생기지 못하여 만신의 대가 옮겨 가는가 하였더니, 우리 몸주께서는 이렇게 큰 뜻으
로 너를 보내어 잇게 하실 줄을 미물인 내가 어찌 알았겠느냐. 원래가 박수란 몸주 받은 만
신의 호위 시중이나 들게 마련이라 네가 서해 용왕님의 지시하신 용녀이고, 구월산 산신님
의 몸주 받은 큰무당이니라. 이 땅의 서편에서는 너보다 더 큰 성주를 모신 이가 없다." 안
무당은 다시 큰 숨을 몰아쉬었다.
길산이 더이상 말씀하지 못하게 막고 싶었으나, 언중에는 그가 헤아리지 못할 깊고 간절
한 뜻이 담긴 듯하여 만류할 수가 없었다. 양모의 천직이 무당이니 일생을 그것에 바쳐 정
성을 들인 바에야, 이렇게 전하여줄 일만큼 중요한 것이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길산은
고개를 숙여 침묵하고 방바닥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안무당은 계화와 백련이의 손을 끌어다
모아서 원향에게 쥐여주며 당부하였다.
"자네들은 이제부터 해서의 제일 큰 만신의 시종으로들 알고 받들어 모시며, 정성덕을 입
히도록 잘 보살피게." "뉘 말씀이라 거역하겠수. 염려 마세요."
계화가 끄덕이며 말하였다. 안무당은 손을 휘저어 그들에게 돌아가라는 시늉을 하였고. 이
제껏 얌전하게 고개를 숙여 듣기만 하던 원향이는 역시 만신이 점찍어 대물림한 큰무당답게
입을 떼었다.
"어머님의 무구를 잘 물려받아 이승에 있는 동안 아프고 병들고 맺힌 사람들을 어루만질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잡된 것들을 싸워 물리치겠어요. 이제 눈을 감으시면 황천을 건
너기 전까지 부디 이 산중에 머물러 소요하시며 제가 드리는 공을 도와주시고, 저의 섬김을
받아들여 서낭님 산신님 용왕님들께로 맺어 안내해주시고, 그런 대사 끝난 뒤에 먼저 가신
만신님들같이 이 땅에 깊은 어둠 가운데 불로 살아 지켜보아주십시오." 안무당은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내 딸... 장하다."
원향이가 일어나더니 두 손을 이마에 모으고 큰절을 올렸다.
"어서..."
안무당이 다시 손을 내어 휘저었고 계화가 백련이와 원향이의 등을 두드려서 밖으로 나갔
다. 그들이 모두 나간 뒤에 방에는 안무당과 길산이만 남아 있었다. 안무당은 모로 누워 있
다가 천장을 향하여 반듯이 눕더니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아, 이젠 안심이다. 내가 다시는 우리 몸주님을 대하지 못할 줄 알았구나." 길산이 안무
당의 이불깃을 여며주며 말하였다.
"어머니, 쉬십시오. 이러다간 다시 병이 심해지십니다." 안무당은 또 빙긋 웃었다.
"길산아. 난 이제 갈란다."
"어머니... 누님 불러올까요?"
길산이 그의 귓전에다 대고 나직하게 말했으나 안무당은 웃는 표정인 채로 대꾸하였다.
"네가... 있잖으냐, 내 자식아."
표정이 지워지는 듯하더니 번갯불에 드러난 사물들이 찰나 가운데 떠올라 붙박혔다 사라
지는 것처럼, 동공이 멎었다. 길산은 양모의 아직은 따뜻한 이마에 얼굴을 묻고 삭정이같이
여윈 어깨를 가만히 안았다. 이렇게 그의 구월산 시대는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방안에는 촛불만이 일렁거려 길산과 긴 잠에 든 안무당의 그림자를 벽에다 붙여서 춤추도
록 하였다. 길산은 한참 만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눈가에 번진 물기를 소매 끝으로 두어 번
훔치고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보살들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길산은 조심스럽게 불렀
다.
"이모 보살님..."
"응, 성님이..."
아직 깊은 잠에 들지는 않았던지 계화가 얼른 대답하며 방문을 열었고, 김승운이도 깨어
일어났다. 길산은 툇마루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조금 전에 운명하셨습니다."
"아이구... 그러게 우리를 내몰더라니까."
계화는 울먹이며 나서서 옆방의 백련이와 원향이를 깨웠고 김승운이는 승려들을 깨우러
갔다. 길산이 안무당에게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 위까지 씌워드리고 앉았으려니 경내의 곳곳
에 관솔불이 훤하게 켜졌고 옥여와 여환과 계화가 달려들어왔다. 김승운이는 문간에서 칠성
판으로 쓸 널판을 가져다 놓고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날이 샐 텐데, 내가 까막내로 내려가 박서방네 알리구 와야지." "그렇게 해
주시렵니까."
길산은 칠성판을 안으로 들였고, 여환이 팔을 걷고 나섰다.
"내가 여염 동네에서 이런 일을 맡아두고 하였으니, 내게 맡기시우." 옥여는 불승의 다비
라면 절차 격식을 잘 알지만 세간의 것은 잘 모르는지라 곁에서 여환의 하는 양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여환은 길산의 도움을 받아 안무당의 몸을 칠성판 위에 올리고 두 손을 모아
무명으로 묶어나갔고, 홑이불을 머리 위까지 씌워서는 널판 아래 정석을 받쳤다. 병풍을 내
다 치고 향을 피워 빈소가 마련이 되었다. 서로 내왕하고 문상할 사람도 없으니 장의는 조
촐하게 치러지도록 길산이 안을 내어서, 까막내의 누이와 자형이 당도하면 하룻밤 새운 연
후에 재인말터에 있는 당나무 근처 장충의 무덤 옆에 새로 쓰기로 하였다. 원향을 비롯한
무당들은 저희 나름대로 초혼제를 지내느라고 안무당의 헌 옷가지들을 내갔다.
까막내 식구들이 온 다음에 함께 밤새우고 동이 부옇게 트일 즈음에 중은 옥여와 여환이
따라오고 속인은 김승운 오계준과 계화 백련이 원향이 그리고 상주인 길산이 재인말 옛 터
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상여는 꾸밀 엄두도 못내어 관 위에 상목을 싸고 색댕기로 묶어 늘
어뜨려 치장하였다. 길산과 자형 박서방이 상수의 밧줄에 봉을 꿰어 목도를 메었고 하족은
김승운과 오계준이 메고 따랐다. 여인네들은 각기 음식과 주찬이 담긴 함지를 이었다. 만장
도 만가도 없는 행렬이었다.
세상을 피하여 사는 이들의 장례인지라 오히려 초군이나 나그네의 눈에 띌 것을 염려하여
수렛고개로 나아가지 않고 산등성이를 타고 가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광대산 아
랫녘으로 내려갈 적에도 김승운이 먼저 가서 동정을 살피고 온 뒤에야 내려갔다. 작은 돌무
더기의 장충의 무덤에는 이제 새로운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산은 안무당의
관 위에 정겨운 재인말의 붉은 흙을 떨구면서, 새삼 연안의 봉세산 기슭 꽁꽁 얼어붙은 땅
에 묻힌 젊은 여비의 주검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안무당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 길산은 곧 월정사를 떠날 채비를 차렸다. 안무당이 누워 앓
던 방에는 박서방과 누이가 묵고 있었다. 그들도 까막내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제 언제나 송화 땅에 발을 들이려느냐?"
비록 피를 나눈 남매간은 아니었지만 박서방댁에게 길산은 하나뿐인 동생인 셈이었다. 그
녀는 길산이 짐을 챙겨 패랭이 쓰고 건너온 양을 보고 떠나려는 것을 알고는 금방 눈물이
글썽해졌다. 길산은 그저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고, 갖바치 박서방은 곰방대를 뻐끔댔다.
"글쎄 우리가 봉산이나 아니면 서흥에라도 이사갔으면 좋겠지만, 내야 잘 아다시피 신 꿰
어 먹고 사는 처지라 단골도 그렇고 저자도 그렇구먼. 거 길산이두 이제는 처자도 거느리고
하였으니 그만 산에서 내려와 살지." 박서방이 조심스럽게 말하였으나, 길산은 그저 빙긋하
였을 뿐이었다. 까막내댁이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나란히 함께 모시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너희는 언제까지 세상을
피해서만 살 테냐. 나두 재인말서 크고 시집가고 하였지만, 철마다 식구가 흩어지고 늘 관가
의 기찰에 쫓기고 하지 않더냐. 화전갈이를 하여도 그게 맘이 편하단다. 탑고개와 사선골을
봤지." 길산은 짐을 한쪽 어깨에다 걸치며 일어났다.
"걱정만 끼쳐드려서 두 분께 할말이 없습니다. 나중에 화전 갈며 살 테니까 염려 마세요."
까막내댁이 마루로 뛰쳐나와 길산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았다.
"아니... 이렇게 그냥 헤어질 거냐. 안돼, 오늘 우리하구 같이 내려가서 하루라두 묵어 가
야지." "남들 눈이 있잖아요."
길상이 중얼거리자 박서방은 잽싸게 말하였다.
"허 그건 그래. 하루가 멀다고 풍헌이 들러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웃에 물어보기도 하는
데..." "다 살다 보면 만날 때가 있겠지요. 제사는 제가 지내겠습니다." 까막내댁은 눈물 바
람이었다. 길산이 뒷걸음질치자 누이와 자형은 마루 끝에 섰다. 길산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좋은 시절이 되면 오며 가며 삽시다. 부디 유복하게들 사시우." "너두 그래라. 수복 어미
께 안부 전하고, 무엇보다도 네 한몸이 성해야 처자는 복이 있는 게야. 몸 조심해라." "활
빈당두 이젠 그만두어."
부부가 한마디씩 당부하였고, 길산은 마당을 건너서 바깥채로 나아가 옥여와 여환을 만날
까 하다가, 풍열스님께 먼저 하직 인사를 하고 내려오는 것이 순서일 듯하여 달마암으로 오
르는 골짜기 샛길로 향하였다. 암자 앞에는 분홍의 철쭉이 만개하였고 목련은 이미 지고 있
는 중이었다. 계곡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가 투명하게 들려오고 있었고, 저 너머 아사봉
위로는 안개가 너울처럼 걸려서 흐느적대고 있었다.
"스님 계십니까."
길산이 법당 앞에서 찾으니, 왼쪽의 미닫이가 열리며 상좌가 나와서 들어오시라는 시늉을
하였다. 마루에 오르니 벌써 차 끓이는 쇠주전자의 김 빠지는 소리가 송림을 헤집는 구월산
의 메마른 바람소리처럼 들려왔다.
"길산이 오느냐?"
안에서 풍열스님이 내다보며 건넸고 길산은 미닫이를 뒤로 닫으며 공손히 꿇어앉았다. 그
맞은편에는 도안이라는 풍열 같은 연배로 보이는 노승이 앉아 있었다.
머리는 풍열처럼 희끗희끗하였고 기골은 떡벌어진 것이 젊을 적에는 힘깨나 쓴 것 같았
다. 코가 뭉툭하나 입은 작고 눈도 작아서 어린아이처럼 오종종한 인상이었다. 도안은 엊그
제 분향 염불할 때에 빈소에서 얼핏 길산과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가 이번 오진암 집회를 바라고 왔었으나 이미 집회는 끝난 뒤였고, 엉뚱하게 길산의 어
미 안무당의 장례에 참석한 격이 되었었다. 길산은 그가 맨 처음에 구월산을 떠나 해주에
갔을 적에 묘정이 이르던 보경스님의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계 사람 보에 관하여 대사
께 물어보아라, 하며 장충은 그의 출생담과 함께 일러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길산은 묘정에
게도 그런 소리는 일부러 피하였다.
"장사는 잘 치렀느냐?"
"예, 염려해주시고 경내에서 여러가지로 보살펴주신 덕분인 줄 압니다." "재인말 옛 터에
모셨겠지?"
"아버님을 지난번 난리 때에 모셨기로, 함께 모시게 되어 다행이지요." "음, 그게 다 그이
들의 분복이다. 길에 묻힌 재인들도 많았으니까. 너희 모친은 참 훌륭한 보살이셨다. 생전에
적선을 많이 이루었으니 틀림없이 좋은 곳에 가셨을 게야. 특히 당신께서 모시는 몸주님께
들인 정성이야, 우리네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냐. 모두 한길로 통해 이
루어지느니라. 이번에 가게 되면 한양의 일이 무르익기 전에는 서로 만나기 힘들 것이야. 아
마, 거사할 무렵이 되면 한양에서 통기를 해줄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일을 맞추어나가면 될
듯하구나. 그전에 조련도 시키고 준비를 해두어야겠지." "예, 말씀드린 대로 저희는 총포를
더 장만해야 되겠습니다. 된목이골 동무들처럼 되지는 않을 겁니다." 풍열은 도안에게로 시
선을 주며 말하였다.
"드디어... 우리가 금강산에서 운부스님을 모시고 겨울을 나던 때의 결심이 조금씩 실현되
고 있네." 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나는 첫술에 배가 부를 게라고는 믿지 않네. 아마도... 궁성은 잠시 점거할
지 모르지만... 사대부의 뿌리를 뽑기는 어려울 걸세. 통기가 오기만 한다면 우리 향산의 승
병은 관서의 각처를 교란시켜서 평안감영의 군사가 남진하지 못하도록 날짜를 끌어볼 작정
일세. 우리 관서 승병은 왜란 때부터 그 용맹을 떨쳐 명나라까지 알려진 군사일세." 길산은
도안이 얘기할 적에 동안의 유순해 보이던 눈동자가 꼿꼿이 긴장하여 빛나는 것을 보았다.
도안은 저도 모르게 향나무 염주의 알을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향산 어느 절에 계십니까?"
길산이 묻자 도안은 말하였다.
"보현사에 속한 윤필암에 있소."
"거기 계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도안 대신에 풍열이 곁에서 말해주었다.
"해주 수양산 망해사의 원주로 계시다가 진작에 떠났었다. 그때 큰스님이 보경선사이셨느
니라. 사노비로서 그이가 거둔 승려가 많았지. 여환도 그분을 거쳤고 묘정 또한 그러하다."
길산은 공손히 말하였다.
"알아 모시겠습니다. 승병은 얼마나 되는지요?"
도안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답하였다.
"글쎄... 향산과 약산 이산 검산 등 영변부에서 천여 명을 모을 수가 있겠고, 개천 덕천 안
주 태천 박천 희천 운산 등지에서 천여명을 더 모을 수가 있을 게요. 그뿐 아니라 평안도의
대처로 알려진 의주, 정주, 강계 등지에서는 일반 백성들과 유민들을 삽시에 끌어모을 수도
있겠지요. 만약 한양의 도성이 일단 함몰되었다고 알려진다면 그들은 곧 관군에 대적하여
조군지로를 끊어줄 것이오." 길산은 듣고 나서 말하였다.
"북의 고원지대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으니 실로, 새로운 군사를 기르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없지요." "어디를 다녀보았소?"
"예, 낭림산맥을 타고 한 두어 해 다녀보았습니다."
"전인미답의 황무지나 같소. 향산에는 온 적이 없던가?" "예, 명산으로 알고 있으되 아직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나서 길산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도안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번에 논의한 첫번 거사가 실패한다면 어찌하실 의향이십니까?" 도안스님
은 풍열을 돌아보았다.
"글쎄... 운부 큰스님의 말씀처럼 대답할 수밖에 없구먼. 군사를 키워 변방에서부터 거병하
여 요충을 점령하면서 회동하여 오는 무리를 받아들여 세를 불리면서 쳐올라갈 방도가 있겠
지. 그러나 실패란 것은 실상 없다고 생각되오. 비록 거사를 일으켰다가 몇몇이 잡혀 역률로
죽는다 하여도, 그만큼 백성들 사이에는 씨를 뿌려 놓는 셈이 되니까." 풍열이 말하였다.
"나무아미타불... 좋은 말씀이네. 이번 거사는 철벽의 틈을 뚫고 나가는 첫번째 파도가 될
게야. 일단 흐름이 생기면 뒤를 이은 다른 물결이 끊임없이 일어나 몰아치게 될 것이고, 드
디어는 철벽이 무너지겠지." 길산의 얼굴은 밝아졌고 두 노승의 눈에는 따스한 빛이 담겨
그에게로 전하여지고 있었다. 범람한 물이 마른 땅 위로 넘쳐갈 때 그 물길의 선두는 스스
로 골을 찾고 감돌아 나가게 되나니, 뒤이은 물줄기가 이미 이루어지고 찾아낸 길을 따라서
흐름을 얻게 되는 법이 아니던가. 대저 역사를 논할 때, 도도한 물결의 끝없는 흐름은 잊고
서 잠시 암벽에 걸려 돌아가거나 웅덩이에 괴는 흐름의 한 끝만 보고서 꺾였다느니 멈추었
다느니 하게 마련이지만,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물의 본성이자 섭리인 것이다.
사람의 일은 늘상 그러하여 나아가게 되어 있으며, 전혀 없던 일을 시작하는 일에 실패란
없는 것이며, 그만큼 이루어진 것이 아니랴.
실로 풍열이 그들의 입국에 관한 뜻을 세운 일을 물길을 여는 것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였
다. 이러한 원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흐르면 드디어 장강대하가 산천을 변화시킬 것이었다.
보에서 터진 물줄기가 광야를 향하여 달음질쳐 흘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제 생각에는... 이제 월정사는 스님이 계실 만한 곳이 못 되는 듯합니다." 길산의 말에
풍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번 일을 보아서 옥여와 나는 떠나련다. 세간에 소문이 낭자하여 한 번 피한 재난을
두 번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서는 자고로 극적이 많이 나온다고 벼슬아치들이 수군
거린다네. 일부러 험한 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 도안이 덧붙였고 길산은 말하였다.
"저희도 팔도에 알려진 녹림당이 되어 사방에서 우리와 함께 하려는 산림처사들이 결맹하
고자 사람을 보내옵니다. 말득이를 보내어 묶어 나가고 있으니 수가 자못 불어나겠지요. 때
를 보아 산채를 흩트리고 이러한 결탁만을 베 짜듯이 맺어놓을까 합니다." "우리 중이야
별로 그런 일이 없으나, 장가들고 처자 거느린 자네들은 백성들과 더불어 여염 생활을 해야
할 테니 그게 걱정이로구나." 풍열의 말에 길산은 답하였다.
"뭐 송방에 나간 송상들은 섣달 그믐이나 되어야 귀향하여 처자를 만난답니다. 그래서 그
무렵에 생겨난 아이들이 많다지요. 저희들도 행상단처럼 때가 되면 이합집산을 자재로 하여
관이 포촉하지 못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장두령의 활빈행은 관서지방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소." 도안이 말하였다. 길산은 머리를 조아려 도안에게 감사하였다.
"오늘에사 스님을 뵈어 많은 것을 배웠으니, 마치 젖먹이가 태산을 오르고 초동이 장강을
건넌 듯합니다." 하고 나서 길산은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내었다.
"스님께서 보경선사를 모시고 계시다가 묘향산으로 옮기신 것이 몇 해나 되었습니까?"
도안이 풍열과 마주보며 웃음을 지었다. 도안은 풍열에게 되물었다.
"산사에서 바람소리와 차 끓는 소리만 들어서 그러한지 세간의 일월을 헤이지 못하겠구
먼. 풍열이 내 도반이라, 금강산에서 모인 것이 언제던가?" 풍열은 손가락을 짚어 헤아리는
시늉이더니 혀를 차는 것이었다.
"효종 임진년이었으니, 그해 정월에 팔도 승군을 제도에 나누어, 정하여 대를 이루게 하였
던 해였느니라. 네가 태어나기 삼 년 전의 일이다. 네 이제 서른셋이니 실로 서른여섯 해가
지났구나. 허허, 우리도 한창 기가 팔팔하던 수좌 시절이었지." 길산은 다시 물었다.
"혹시... 그 무렵에 보경선사께서 승려를 만드시고 도안스님께로 보낸 사람이 없었습니
까?" "무엇을 묻고 있느냐?"
풍열이 눈을 가늘게 뜨고 길산을 건너다보았고, 길산은 말이 나온 김에 아무런 감정도 드
러내지 않고 말하였다.
"제 생부에 관해 여쭙고 있습니다."
길산의 출생담을 잘 알고 있는 풍열은 속으로 헤아려보는 듯하더니 도안의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아마, 효종 연간 갑오 말께나 을미 초가 될 걸세. 네가 을미생이지?" "예, 생모께서 운명
하시기 전에 생부가 망해사에 소식이 닿는다구 하셨답니다." 도안은 한참 기억을 더듬는
듯하였다.
"을미년이라... 그러니까 그해에 추쇄도감이 열리고 노비들을 마구 잡아들이던 때가 아닌
가. 옳지... 그해에 보현사를 수리하였지. 출가한 행자들이 많아서 일이 빨리 끝났다네.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나. 가만... 망해사에서 보낸 이라면 셋이 있었지. 혹시 그이의 속명을
아오?" 길산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하였다.
"역노질 다녔답니다. 신계 사람이구 이름은 보자를 쓴다 하였지요. 보돌이라 불렀겠지요."
"허, 그... 명근스님 아닌가."
도안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고, 길산은 말을 잃었다. 도안은 염주 만지기도 잊은 듯 연신
허허, 소리만 내었다.
"그래 그 무렵에 보경선사에게서 행자 한 사람이 왔지. 신계 사람으로 역노였는데 달아났
다더군. 우리는 한형제나 마찬가지야. 명근은 안심사의 주승으로 있지." 풍열은 쏘는 듯한
시선으로 길산을 관찰하고 있었다.
"안심사의 주승이라면... 나도 예전에 향산에서 동안거를 보내면서 만난 적이 있네. 계행이
높은 승려였어. 길산아, 뭐 생각하느냐?" "예... ?"
길산은 펀뜻 정신을 차리고는 동요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머리를 숙여 방바닥을 내려
다보았다.
"공연히 쓸데없는 말을 하였군. 우리 도안스님은 중생의 사는 사정에는 맹목 스님이로다.
이미 문안과 문밖으로 갈라지기 삼십여년인데 뭣하러 아는 체를 하는가." 풍열이 도안을
은근히 꾸짖고 나서 정색을 하고 길산에게 말하였다.
"생부이든 사부이든 그분은 이미 그러한 인연을 떠난 선승이시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세
상이 이만큼의 취산의 인과를 지어낸 것인즉, 사람으로 태어나 짐승처럼 각처로 팔려 혈육
의 정이 끊기는 비리를 없애야 한다. 길산아, 너 혹시 향산으로 찾아가려거나, 혈연임을 앞
세워 그분에게 사실을 얘기하려거나 해서는 안될 게야." "아닙니다."
길산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하지만... 언젠가는 일이 있어 뵙게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얘기는 꼭 해드릴 생각입
니다." 도안은 옆으로 돌아앉아 딴청을 피우며 모른 체하는 양이었다. 풍열이 조용히 말하
였다.
"어서 내려가봐라."
길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분 스님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풍열은 말없이 내려다보았고
도안은 공손한 합장으로 예를 보였다. 길산은 머뭇거리지 않고 얼른 달마암을 나섰다.
길산이 떠나간 뒤에 남은 것은 여환과 신천 박수 오계준이와 김승운 계화 부부 그리고 원
향이었다. 백련이면 다른 사당들은 모가비 임가를 따라서 관서로 출행을 나갔던 것이다. 지
난해부터 나라에서는 송엽을 권유할 정도로 흉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월정사 사당패들은 메
조나 기장도 심고 하여 간신히 봄을 넘겼으나, 관군 토포가 있을 때 온 마을에 스스로 불을
질렀기 때문에 그 복구하는 일로 봄철 출행이 늦어졌던 것이다. 어쨌든 여름을 넘기고 늦가
을 찬바람이 불어야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한 대는 위로 올라 순안 법흥사 패거리와 함께
할 것이었고 다른 한 대는 아래로 내려가 진관사 청룡사 패거리들과 해변을 돌 모양이었다.
이제 월정사에는 승려 외에 속인은 그들뿐인 셈이었다. 오계준은 어루리벌과 나무리벌 일대
에서 무업을 하면서 미륵당을 이루어보기로 하였으니, 임가네 월정사 사당패는 해서를 돌면
서 자기네와 같은 천류들을 묶어나가기로 하였던 터였다. 오계준은 옥여와 의논하여 월정사
와 상관없이 그가 중심이 되기로 하였다. 계화 김승운 부부와 오계준과 원향이 등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고 여환은 대중방세서 건너온 참이었다. 계화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저어... 우리는 인제 사선골두 없어졌으니 가서 살 데도 없고, 스님만 믿고 따라가렵니
다." "아따, 스님께서 벌써 그렇게 허락하셨는데 어린애처럼 자꾸 보채기는..." 김승운은 여
환이 행여 딴소리라도 할까봐 조바심이 나서 앞질러 그렇게 말하였다. 여환은 웃으면서 대
답하였다.
"삭녕에 예전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던데 양주서 삭녕이야 반나절 길이지요." "아
니... 우리는 양주 대처로 갈라오. 무당질하려면 농투성이들보다는 그래도 장사치들의 행하가
후하니까." 여환은 내막을 아는 오계준이를 마주보며 눈짓하였고, 계준이가 일렀다.
"공연히 작은 암자 한채 짓고 공부하시는 스님의 수도나 훼방 말어.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주 내왕하는 거보다는 간격을 남겨두어야 한는게여." 계화는 여환이 은근히 눈치를 보이
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더구나 오계준은 아예 그들 식구가 여환의 짐이 될 것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화는 입을 삐죽거리며 받았다.
"흥, 뭐 양주 바닥이 월정사 앞마당만한 줄 아나베. 정 그렇다면 이쪽 말, 저쪽 말루 따로
떨어져 살면 되잖어." 그러고는 방에 걸린 괴나리봇짐을 내리더니 탈탈 털어내 뵈는 것이
었다. 엽전을 꿴 작은 꿰미가 있었고, 무명도 몇필 지닌 듯하였다.
"자아, 이것 봐. 우리가 뭐 당장 남의 신세를 질 줄 알구 그래? 오십 냥허구 상목 두 필이
여. 이거면 객줏집 들어두 몇달은 좋이 먹구살지. 우리는 가자마자 오막살이라두 지어서 신
당 먼저 모실 거라구. 신당이 있는데 성주님이 우릴 먹여살리지 않을 것 같어?" 오계준은
뭐라고 말을 덧붙이지 못하였고, 여환은 부드럽게 말하였다.
"그 보퉁이 넣어두시우. 제가 별루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미리 말씀드린 것이니, 고깝게
생각 마오." "그래두 스님, 저... 원향이를 봐서라두 그러시는 게 아니우." 말없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원향이가 불쑥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
"뭐라구?"
계화는 못 알아들었는지 원향의 말을 되뇌었다.
"여기 있다니... 뭐허러?"
"만신 어머님 말씀도 있고... 큰무당이 되려면 그냥 시늉으로는 안되지요." 계화는 원향이
의 큰무당이란 말이 고까운 모양이었다.
"저거 봐라. 덩더꿍 하자마자 영험 탓만 한다더니, 이제 겨우 내림 받은 년이 벌써부터 만
신 타령하누나." "명검도 벼르기 나름이고,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 앉는다지요. 제가 안무
당 어머님께 신딸 점지를 받았으나, 한번도 기도드린 적 없고 구월산 아사봉에 공 올린 적
두 없어요. 몸주님과 완전히 접하기 전에는 구월산서 안 떠날 거예요." 원향이는 계속되려
는 계화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듯 말하였고, 김승운이는 뾰족한 수염만 내리쓸었고, 오계
준이는 아주 타당한 말이라는 시늉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암, 암, 혼잣소리로 중
얼거렸다. 계화는 제풀에 사그라들어서 희미하게 대꾸하였다.
"그거야... 뭐 사람의 맘대루 되는 일이냐? 맘대루 해여. 우리는 떠날 테니까..." 원향이는
잔뜩 비틀린 계화의 마음을 달래듯 말하였다.
"제가 여환스님 도움으로 넋을 찾았고, 안무당 어머님의 마지막 당부까지 받았으니 아무
리 어린것이라 하나 소견이 없겠어요. 신명이 깃들이고 영험이 실린 만신이 되어 이모님 은
혜두 갚겠어요." "그래 그래라..."
계화는 안무당께는 아우뻘이요, 또한 딸 같던 원향이가 무가의 촌수를 따져 깍듯이 이모
님이라 부르니 섭섭한 중에도 대견하여 금방 울상이 되었다.
"구월산 만신의 계를 이은 네가 어딜 가겠냐."
원향이는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밖으로 자리를 피하였다. 여환은 묵묵히 앉았다가 계화 부
부에게 일렀다.
"내일 새벽에 떠날 것이니 일찍들 자두시우. 오박수는 나 좀 봅시다." 밖으로 따라나온
오계준에게 여환은 말하였다.
"금년 말까지 해서에서 혈당이 이루어지면 칠성암으로 찾아오시오. 해서에서 할 일은 감
영을 점거하는 일이니까, 서로 거사 기일을 맞추어야 하오. 망해사의 묘정스님과 통해두시
오." "벌써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미륵님께서 신통력으로 도우실 텐데 안되는 일이 있겠
습니까." "명년 봄에는 한번 거사의 대습련을 가져보십시다. 오박수도 경기도로 와서 같이
굿도 벌이고 기도도 드리고 합시다." "인원 동원이 잘 이루어진다면 거사에두 자신이 서겠
지요." 여환은 말머리를 돌렸다.
"저... 그리고 부탁이 있소. 원향이를 자주 찾아보고 돌보아주었으면 하오." 오계준은 어
리둥절하였다.
"원향이는 이제 나와 같은 무당입니다. 조카나 한가지인데요." "풍열스님이나 옥여스님도
조만간에 월정사를 떠날 거요. 원향이는 하늘 아래 혈혈단신 아니오?" 여환의 속내를 조금
은 알 것 같은 계준이 빙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기도가 끝나면... 스님이 데려가오."
여환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누웠으나 잠이 오질 않았다. 수태사 하안거부터 이번 오진암
의 회합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얼마나 변하였는가를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해주 사자암에서
양주의 칠성암에 이르기까지는 실로 무엇이라 짚어내지도 못한 채 만행의 연속이었으며, 다
만 온 세상의 사문과 등을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보살행을 실천하여가겠다는 막연한 생각뿐
이었다. 중으로서 세간에 몸을 던지기는 하였으되 아직은 그 의미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뜻을 세운 뒤로부터 연계는 착실하게 이루어져왔으나, 사실 궁궐을 장악한다
는 일은 바위를 삼키려는 짓만 같이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렇다, 까짓 그렇게 커다란 바위라
할지라도 귀퉁이부터 조금씩 쪼아나가다 보면 가루가 되어 허공중에 뿌려버릴 수도 있으리
라.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야 하고 잡은 마음들은 놓치지 말고 모아야만 하였다.
"의술을 익혀야 한다..."
그는 돌아누우면서 중얼거렸다. 시절이 흉황이요, 백성들은 지치고 병들어 자빠지고 코 깨
진 격이 되어서 그들의 마음을 붙일 데가 없었다. 병든 자를 치료하고 상한 마음을 달래주
어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서로 도와야 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돕는 가운데 힘이 생
겨남을 가깝고 쉬운 곳부터 시작하여 스스로 터득하게 할 일이었다. 작은 일부터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하려면 작료의 제도를 고친다든가, 관을 믿고 자세가 심한 자의
행패를 여럿이서 바꾸어준다든가 해야 될 것이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초생달이 만월로 익
어가듯 일은 점점 드넓게 뚜렷하게 자라날 것이 아닌가. 한번 마련되는 바탕은 결코 잃어버
려서는 안된다. 세가 불리하면 그 바탕을 꽉 움켜쥐고 유지시켜나가는 일도 귀중하다. 여환
은 이번의 월정사 방문이 그의 마지막 발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풍열스님과 옥여가 떠나
고 나면 사당패들만이 남아 옛날을 기억할 것이었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여 여러번 깜빡
하다가는 흠칫 깨어나곤 하면서 예불 때까지 뒤척였다. 범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고, 그
는 일어나 앉아 잠깐의 선정에 드는 데서 나아가 방문을 열고 법당으로 향하였다. 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법당 안에는 옥여와 다른 수좌 두엇이 단정히 앉아서 예불을 올리고 있었고,
여환도 그들 큼에 끼였다. 여환의 염불 소리는 그들 가운데 기중 낭랑하여 섞이지 않고 위
로 뛰어올랐다. 옥여가 때리기 시작한 목어 소리가 맑게 퍼져나갔다. 예불이 끝나고 나서 다
른 승려들은 절 주위를 돌며 염불을 계속하였고, 여환과 옥여는 나란히 걸어 옥여의 방에
들었다.
"어이구 졸려...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잠 좀 자야겠어." 옥여가 하품과 기지개를 한
꺼번에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나 오늘 떠나려네."
여환이 말하자 옥여는 평소처럼 또 농을 던졌다.
"저 중 말하는 것 좀 보게. 가면 가고 오면 오고... 죽으면 죽는 게지." "자네와의 악연이
끊기질 않으니 어쩌나."
"허허 악연이지."
옥여도 소리는 내었으나 웃는 기미는 전혀 없이 진지하게 받았다. 여환이 말하였다.
"부탁이 있네. 저 원향이가 사선골 보살과 함께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이라, 천상 월정사에
서 거두어야 할 걸세. 안무당에게서 내림을 받은 입장이고 보니 자기 소견에도 책임감이 있
어서겠고, 식구와 살던 곳을 뜨기가 싫겠지. 다른 데로 가지 못하게 만류하고 절 식구로 데
리고 있어주었으면 하는 부탁이야." "이건 언제든 꼭 되찾아갈 듯이 얘기하는구먼. 옛날에
도 자네 이 절 떠나며 어린 원향이 얘기를 하지 않았나." 옥여의 말에 여환은 머리를 저었
다.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네."
"다르기는 뭐... 꼭 같지."
"아니야. 그때는 아예 정을 끊자는 것이었고 지금은 자네 말처럼 되찾아가려고 하는 걸
세." 옥여는 여환의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에 쓰려나?"
여환은 빙긋이 웃었다.
"장가를 들어야지."
"어... 이 중 큰일났구먼!"
"우리는 부부가 되어야만 하네. 전생에 우리는 오누이였는지도 모르지. 칠성암에서 함께
살 거야. 그러나 잊지 말게. 나는 사음계는 절대로 범하지 않을 테니까." 옥여가 말하였다.
"나보구 새색시 수행하라구는 않는가?"
"성례란 세속의 일이니 승려가 앞장설 수야 있나."
"까짓 거 사음계란 다 무어야. 그냥 살게. 그렇지만 거사에 방해가 된다면 일찌감치 큰스
님께 말씀드리고 저 멀리 남도나 북관으로 빠져 버리는 것이 나을 게야." 옥여는 화내지
않았지만 냉정히 말하였고 여환도 침착하였다.
"더이상 농하지 말아. 원향이는 분명히 염험 있는 무당일세. 우선 부녀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가 있고 나는 원향이를 앞세워 장정들을 끌어모을 수가 있지. 그리고 의술도 익히려네. 그
동안 양주 있으면서 간병도 많이 하였고, 사자암 있을 적에 부적도 그려서 쌀됫박이나마 벌
어먹기도 하였지. 자네 말처럼 사음계란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인가. 설령 원향이와 내가 접하
여 아이를 낳은들 어떻겠나마는, 우리는 서로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네. 내생에서는 여염의
부부로 되어 열심히 일하고 서로 아끼며 자식 낳고 살게 될지도 모르지." 옥여는 여환의
말을 팔짱을 끼고 앉아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여환이 다시 물었다.
"이러한 생각에 티끌만한 것이 아니라 주먹만한 음심이 끼여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역시
사문의 길을 갈 걸세. 자네 무슨 말 좀 해주어." 옥여가 말하였다.
"언제 데리러 오겠나?"
"글쎄... 금년 말쯤에."
"그런데 큰스님과 나는 여길 떠날지도 몰라.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것은 내가 알고 큰스
님이 아시기를 바라는 게 아니던가. 이젠 되었어." 여환은 옥여를 남겨두고 일어났다.
"와선이나 하게."
그러나 옥여는 제 머리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번뇌 때문에 수마가 싹 가버렸는걸. 자네 병이 옮은 모양일세." 여환은 이어서 풍열대사
를 뵈러 달마암으로 올라갔다. 풍열은 어슴푸레한 박명 가운데 행선중인지 암자 앞마당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오늘 가렵니다."
여환이 합장 배례를 올렸고 풍열은 그에게로 돌아섰다.
"음, 내가 할 말이 있다. 잠깐 들어가지."
그들은 방으로 들어갔고 여환이 먼저 말하였다.
"이번에 사선골 무당 부부도 함께 가기로 하였습니다." "계화 말인가?"
"예, 원향이는 구월산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여..."
풍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우리 거사의 내용을 알구 있느냐?"
"아직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요." "미리 알려서는 안되느니라. 내가 네
게 이를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오진암에서 있었던 모임은 속으로 꾹 삼켜 씹어 넘겨
야만 한다는 얘기다." "명심하겠습니다."
"오서방에게도 그런 주의를 주도록 옥여에게 일러두었다만, 나중에 경기도에서 연계를 짤
때에도 검계의 계원들이나 미륵당에 끼인 사람들에게도 절대 함구하여라. 이 모든 일은 네
게 달렸느니라." 여환은 고개를 숙이고 잠깐 기다렸다가 말을 꺼냈다.
"제가 일을 그르쳐서 잡힐 경우에는 몸이 이기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이제부터 소승에게
는 이쪽의 소상한 일의 진행을 알리지 마옵소서." "알겠다. 매달 삭마다 양주로 사람이 갈
것이니 그편에 소식을 전하고 받고 하여라." 여환은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승 풍
열을 향하여 세 번 절하였다. 풍열은 합장으로 마주 예를 차렸다.
"평안하옵소서."
"평등한 도가 널리 퍼지고 아름다운 생활이 시행되는 도솔천에서 만나기를." 여환이 문
을 뒤로 닫고 나설 때까지 풍열은 그린 듯이 앉아 있었다. 벌써 일어나 살림살이를 시작한
심산의 날것들이 재빠르게 알 수 없는 음률을 주고받으며 계곡 위를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산 아래로는 안개가 차츰 걷혀가는 중이었고 비껴 떠오르는 햇살이 아직은 불그레하였다.
"여환이 월정사에 내려가니 계화 부부는 이른 공양도 끝내고 길양식도 마련하는 등 대강
의 행장을 차려두고 있었다. 계화는 새로운 고장으로 떠나는 것이 불안한 가운데도 기쁜 모
양이었다.
"에이그, 성주님께서 다 보살펴주시겠지만, 만신이란 제 터전을 떠나면 손님 받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우리는 그저 스님의 법력만 믿겠수." 그들이 드디어 월정사를 나서는데 옥여
와 오계준이와 원향이며 살림하는 절의 보살 등등이 따라왔다. 옥여는 여환과 나란히 걸으
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스님 잘 모시게."
여환이 당부하였다.
"아마 내가 찾아가거나, 오박수나 다른 이가 번갈아 들를지두 모르네." 하고 나서 옥여는
여환에게 말하였다.
"지금은 자네가 먼저 가지만, 나도 곧 그쪽 길로 뒤따라갈 걸세." 옥여가 산문 앞에 멈추
어 합장하였고, 여환도 마주 돌아보며 합장하였다. 옥여는 문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계
준과 원향이만이 계속해서 그들 뒤를 따랐다. 은율로 나가는 길이 내다보이는 바위가 높직
한 언덕까지 따라나온 원향은 예전에 여환이 월정사를 떠나던 날과도 같이 느꼈다. 그때에
여환은 돌멩이를 주워 이합회별의 덧없음을 알려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그가 자꾸만 원향이 쪽을 돌아다보았다. 아무 연유도 모르는 계화는 원향의 손을 마주 잡고
말하였다.
"에그... 널 두고 떠나려니 마음이 영 내키지를 않는구나. 하지만 어쩌느냐, 여기선 대들보
를 뽑혔으니 아무데라두 옮겨 가야지. 부디 성님에 못잖은 큰만신이 되거라." 계화의 눈에
는 벌써 벌겋게 충혈이 돌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향이는 정신이 들고부터는 아예 여러 삶
을 살아온 여인처럼 말수가 적고 눈은 안정되어 보였으며 도량 넓게 푸스스 웃고는 하였다.
"가서 잘 사세요."
계화가 코를 풀었고, 김승운은 곁에서 헛기침을 하며 거들었다.
"성신께서 다 보살펴주실 것이니 염려 마라. 오박수도 있는데 뭐 걱정이 있겠어." 김승운
이가 아내의 어깨를 두드려 재촉하며 먼저 언덕을 내려갔고, 여환은 오계준이와 뒤미처서
천천히 걸었으며 원향이는 바위 위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환이 계준에게 말하였
다.
"자주 만날 것으로 알고 있소. 해서에 있을 오박수만 믿겠습니다. 여차직하여 그르치면 오
박수의 몸 이상 번져서는 안될 게요. 잘라야 합니다." 계준은 무심한 듯 대꾸하였다.
"저두 음률을 고르다가 줄이 늘어져 가락이 변하면 곧 끊고 다른 줄로 잇습니다. 그쯤은
안심 놓으시우." "나두 금년 안으로 해서에 오게 될 겁니다."
"그동안 나는 사람 많이 모아 치성이나 열심히 드릴 테요." 여환은 바위 옆을 지나치려
다가 잠깐 원향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원향의 시선은 깊숙하고 평온해 보
였다. 골짜기를 스쳐온 맞바람이 가리마를 흩뜨려서 그녀의 이마 위에다 흩날려주고 있었다.
여환은 위쪽에 조그맣게 무릎을 꿇고 뭉쳐 있는 듯이 앉은 원향에게 말하였다.
"원향아... 곧 다시 만나게 될 게다."
"알아요."
원향이는 무릎 위에 턱을 괴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여환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여환이
계화 부부의 뒤를 따라서 내려갈 때 원향이는 바위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환은 길
이 굽어지는 저 아래 모퉁이에서 한번 뒤돌아보았고 원향이는 그냥 앉아 있었다. 그들이 굽
어진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자 원향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오계준이 말하였다.
"나두 내일은 신천으로 가야겠다. 날 따라가려느냐?" "아니오."
원향이는 그렇게만 답하고서 뒤편에 우뚝 치솟은 아사봉을 올려다보았다. 성주께서 그를
부르고 계신 것이었다.
2
초여름에 접어들었건만 작년에 이른 금년도 흉황이어선지 그 번잡하던 파주 문산포도 한
산하였다. 더구나 며칠째 궂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임진나루에는 배를 타고 건너
는 도강객마저 뜸하였다. 이경순은 안채의 사랑에서 미닫이를 열어두고 마당에 떨어져 몰려
내려가는 빗물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객점은 문산포에서 가장 크고 자리도 좋았다. 마방
이 바깥쪽에 십여 칸짜리가 달려 있었고 안으로는 술청과 봉노가 길게 연이어 있었으며 다
시 살림집과의 경계에는 광이 수십 칸 지어져 있었다. 살림집은 안방 건넌방 마루가 달린
본채와 툇마루에 널찍한 방 둘이 붙은 사랑채의 두 초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살림집
뒤꼍에는 풀뭇간이 있었는데 근년에는 별로 작업을 하지 않아서 찬광으로 쓰고 있었다.
중노미 하나와 세마 놓을 때 따라가는 마부 두엇이 봉놋방에 기거하였고 이제는 훤칠한
청년이 된 송파장의 깍정이 장쇠가 실제 객점주나 다름없었다.
장쇠의 할미는 손자와 함께 묘옥을 따라와 이 문산포 주막에서 살다가 이 년 전에 저승으
로 떠났던 것이다. 전생이는 집에 붙어 있는 날 보다도 솔부리에 나가거나 양주를 나다니는
일이 많아져서 이경순의 사랑채 아랫방은 늘 비어 있었다. 어린아이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가 마당 저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경순은 곰방대를 입에서 뽑으며 바깥채에다 대고 외쳤다.
"여문이 어디 갔느냐?"
아이를 업은 묘옥이 사랑채 마당에 나타났다. 묘옥은 서른의 나이에도 처녀처럼 가녀린
태가 있어 보였다. 객점 주인의 아낙답게 수수한 검은 무명 치마에 흰 저고리 입고, 머리는
댕기 없이 바짝 땋은 얹은머리를 하였는데, 비록 창기 생활을 보내고 사당까지 했으나 안색
은 말끔하고 청수해 보였다. 다마 눈가에 어린 푸른 기와 가늘게 이어진 눈꼬리에 비친 방
금 울고 난 뒤와 같은 그늘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묘옥은 아이를 업고는 제 등뒤에 우삼을 쳐들어 비를 가리고 있었다. 기름 먹인 우삼에
떨어지는 빗소리며 제 어미가 가끔씩 우삼을 들치며 고개를 돌려 깜짝, 놀릴 적마다 아이는
까르르 웃곤 하는 것이다.
"어허, 그러다 고뿔이라두 걸리면 어쩔려구 그러오." 이경순은 잠시 안채 마당으로 들어
서서 처마밑과 한데를 들락거리는 묘옥에게 핀잔을 주었다.
"요것이 선잠을 깨고는 어찌나 밖에 구경 나가자고 보채던지. 장쇠 삼춘이 한참을 데리구
놀았다우." "어서 이리루 들어오라니까. 어서..."
이경순은 애가 타 두 팔을 벌리며 애소하듯 말하였다.
"어이구, 여문아 느이 아부지 숨넘어가실라."
묘옥은 아이를 어르느라 상기된 얼굴에 피식 웃음을 떠올리고는 마당을 건너왔다. 묘옥은
툇마루에서 얼른 우삼을 젖혔고 이경순은 어미의 등뒤에서 무를 뽑듯 아이를 훌쩍 끄집어올
렸다. 아이는 이경순에게로 옮겨가자 곧장 상을 찡그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이경순은 은근
히 부아도 나고 아이를 놓기는 싫어서 제딴에 달래는 혓소리를 내보았다.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사내자식이 걸핏하면 울기만 하느냐..."
이경순은 아이를 다시 어미에게로 내어주기가 못내 섭섭한지 몇번 더 달래보려 하였다.
"금자동아, 은자동아."
좌우로 흔들며 어르다가 경순은 체모에 맞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두 눈을 크게 부릅떠 보
였다. 아이는 문득 울음을 그치고 멀뚱하니 바라보다가 얼굴을 돌리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
다. 묘옥은 그들 부자의 골이 우스워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이경순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만 어미에게로 아이를 다시 내밀어주었다.
"울려거든 아예 천지가 떠나가도록 울든지..."
경순은 아이를 바라보며 살가운 표정을 지우지는 못하고서 불평하였고, 묘옥은 입을 비쭉
해 보였다.
"여문아, 느이 아부지가 공연히 우리한테 시샘이 나서 저러신다." 그에게는 여문이가 늦
자식이자 유일한 한점 혈육이라 잠시도 곁에 두고 보지 않으면 애가 달아하였다.
"점심상 들일까요?"
묘옥이 아이를 안고서 토닥이며 물었다. 경순은 다시 곰방대를 물고 뻐끔거리면서 중얼거
렸다.
"으응... 그런데 오늘이 며칠이든가..."
"초이틀이어요."
"가만있자... 전생이가 어제 돌아오기루 되었던가?"
지난 스무날께에 나간 전생이가 솔부리에서 양주를 거쳐 문산포로 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
다.
"그래요, 초하루에는 뱃사람들과 송도 사람들이 온다며 꼭 돌아와야 한댔어요." "그쪽에
서두 아무도 안 왔지?"
"뱃사람들이야 물길로 오니까 꼭 정한 날짜를 지킬 수는 없겠지요." 하면서 묘옥은 고개
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으로 짚어보다가 얼른 손뼉을 쳤다.
"에그 내 정신 좀 보아. 할머니 대상날이 며칠 안 남았어요." 묘옥이 할머니라 일컫는 사
람은 물론 가족과 같았던 장쇠의 조모를 말하는 것이었고, 여문이쪽 항렬로 따져서 큰삼촌
은 전생이, 작은삼촌은 장쇠를 말하는 것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경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옥은 잠든 아이를 살며시 안아올리며 말을 꺼냈다.
"저어... 이번에 작은삼촌을 제주로 하여 넋굿이라두 하면 어떨까요?" "그래 송파에서 고
생만 하시다가 겨우 이곳에 안돈이 되시고는 곧 돌아가셨으니 장쇠가 얼마나 속으로 한스럽
겠는가. 쌀섬이라도 내어 굿 한판 해주어야지." 묘옥은 웃음을 지었다.
"아이 언제나 제 말에 끄덕이지만 마시구요. 뭐든지 제가 하자는 대루만 하실 작정이셔
요?" "임자 하는 일에 조리가 닿지 않는 점이 어디 있던가." "그럼 양주 사람들 청하실라
우?"
"물론 그래야 굿을 하지. 아무래두 이번에 한번 모여야겠다구 벼르고만 있었거든. 제 동무
들이 모여들게 되었군." 묘옥은 공연히 신바람이 났다. 그 여자에게는 아직도 사당 시절의
신명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배어 있었다.
묘옥은 계화 부부와 여환스님이 경기도 각처로 돌아다니며 불공과 굿판을 벌이고 있음을
전생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묘옥은 놀이판의 흥청거리는 활기를 못내 잊을 수가 없었
다.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곧 실절할 만큼 여염 아낙네의 정숙함을 지니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는 칼로 벤 듯하여 아무리 여각의 안주인이라 하나 내외의 법
도에 어그러짐이 없었던 것이다. 다만 가무음곡과 신명은 묘옥의 기질에 맞는 바가 있었달
뿐이었다. 묘옥이 그러한 기색을 보이니 경순은 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좀이 쑤시는 모양이지..."
"원님 뵙고 환자 타기라면서요?"
묘옥은 살짝 눈을 흘기고는 품안에 잠든 여문이를 살그머니 감싸안고 일어났다.
"방에 누이고 점심상 들일게요."
"장쇠 들어오면 먹지."
"아녜요, 곧 들어온댔어요."
묘옥은 여문이를 안방에 살그머니 눕혀놓고 나왔다. 부엌에서 솥 안네 그릇째 들여놓았던
주발을 꺼냈다. 손끝이 따가울 정도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라 컬컬하
겠거니 싶어서 뒤란에 나가 술을 한병쯤 걸렀다. 젓과 나물을 놓고 연평 굴비 굵은 놈을 노
릿 노릿하니 구워 올려놓았다.
"어이구, 비린내가 온 동네 풍기겠네."
어쩌구 하면서 이제는 떠꺼머리가 다 된 장쇠가 비오는 마당을 건너왔다.
"올라오너라, 밥 먹자."
"이건 뭐 되지두 않는 철에 비나 내리구 심심해서 죽겠네." 바깥채 객점을 보던 장쇠가
길거리 내다보는 일도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얘, 그래두 아무리 흉황이라지만 금싸라기 같은 비다." "올 농사두 다 망했다는데 이깟
한줄금으로 되겠어요?" "또 아냐? 몇년 망한 거 벌충하게 될지."
묘옥은 두 사람에게 웃어 보이며 상을 마루에 갖다 놓았다.
"당신두 같이 하지."
"아뇨 나는 이따 먹지요."
"누이두 하십시다."
묘옥은 이날까지 이경순과 겸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송파서 주모로 겪어온 생활
의 버릇이기도 하였고, 어쩐지 경순이 어려워서였다. 그런 어려움은 신분에 차이가 있었다거
나 그냥 이십 년 가까이의 나이 차이가 있다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어떤 죄책감 비슷한 데
서 오는 것이었다. 묘옥은 일찍이 정인을 찾아서 길에 나섰고, 그 죽음의 소문으로 하여 스
스로 사당으로 자신을 내쳤던 것이었다. 이경순은 묘옥을 행중에서 건져내느라고 드디어는
조강지처까지 횡액을 당하고 패가하였던 터였다. 묘옥은 물론 지금은 다 사그라져버린 재와
같이 흔적도 없지마는 목숨을 다하여 한 사내를 그리워했었다. 재는 풍편에 날아갈지라도
화인은 남듯이, 지금 그녀의 가슴팍에는 아직도 연비의 검은 자취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여문이가 태어나면서 그 불씨는 까무룩하니 꺼져버렸건만,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이경순은
묘옥에게는 은인이었고 한점 혈육을 낳게 한 분이며 그에게 새 생활을 가져다준 존경할 어
르신네였다. 그랬다. 계집이 사내를 목숨을 다하여 그리워하는 일도 있고, 그런 것이 변하면
이렇게 살아가는 따스한 정으로 자라나는 모양이다.
마루가 반들거리도록 걸레질하고, 놋그릇을 수세미로 닦아내고, 설거지를 하고, 하얗게 빤
빨래를 포구의 강언덕에 널어 말리고, 여문이를 젖먹이고 재우고 어르고, 그리고 등잔을 돋
우고 창가에 앉아 바느질하고... 이 모든 나날들이 참으로 고즈넉하였다. 바람소리도 천둥번
개도 없이 아득하게 먼 데서 들리는 빨랫방망이 소리며 늦도록 여문이를 위하여 부르는 자
장 노래며 묘옥은 자신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밤에 잠이 까무룩하
게 들기 직전에 얇은 눈까풀 안쪽으로 춤추며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고 너울대는 것 같기도
한, 소리는 빠진 동작들의 고즈넉한 연결이었다.
입가에는 침묵의 미소 비슷한 것이 어렸으나 그럴 듯한 감정의 실마리도 집어낼 도리가
없다. 모든 것은 저절로 절제되었거나 생략되어있다. 사무친 골짝을 지나면 어찌하여 이렇게
막막한 빈터로 나오게 되는 것일까. 이 빈터에는 안락하고 따사한 햇볕이 가득하고 모든 움
직임은 살풀이의 무명 수건처럼 고즈넉하다. 꽃가지 따위가 여울 기숡에서 물결에 부대껴
쉬운 부분은 이것저것 하나 둘씩 씻겨가고 어려운 부분만 꼭 그만큼 남은 것 같구나. 이제
묘옥에게는 남에게 표나는 구석이 없어졌다. 그녀는 여문이에게 가진 바와 똑같은 정을 가
지고 그 아비인 이경순을 바라보고 말하고 웃었다.
묘옥은 이담에 죽어 남편 곁에 묻히기가 원이고 넋으로 나란히 앉아 여문이의 제사를 받
게 되기가 원이었다. 사는 것이 슬픈 것도 맺힌 것도 아닌 그저 수수한 꼴이 아니랴. 신당에
올린 종이 연꽃처럼 한 장 두 장이 겹치고 모여 정형이 되면 시들지도 이지러질 것도 없다.
그러나 어쩐지 묘옥은 이러한 정이 경순에게는 죄송한 듯 여겨졌다. 묘옥이 여주 강변에서
죽은 그의 아내를 위하여 빠짐없이 제사를 지내는 것도 세상 도리에는 맞을지언정, 재인촌
을 떠나던 때의 그러한 열기와는 다른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경순이 없이 어찌 길산을 알게
되었으랴. 재인촌에서의 길산은 불안전하고 희끄무레하여 형체뿐이었고, 경순을 통해서 기억
들은 차츰 또렷하게 완성되었던 것이다. 여문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묘옥은 발을 재게 놀
려 방으로 들어가 칭얼대는 여문이의 입에 젖을 물리고 비스듬히 눕는다. 밖에서는 장쇠와
남편이 점심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동이 성이 어영청 군졸이 되었답니다."
"허, 그 참 부지런하군. 누가 그러더냐?"
"지난번에 중길이 아저씨가 그러던데요."
"전생이가 이거 또 늦는구나."
"이렇게 비가 오는데 뭣허러 길에 나서겠어요."
"돌아올 날짜가 지났어.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더
니, "이 집은 장사 폐했나. 야, 장쇠야."
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고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이가 건너편 객점의 청에 들어선 것이
보였다. 패랭이테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응, 홍서방 왔나?"
이경순이 수저를 놓고 일어났고, 장쇠는 아예 밥먹기를 치우고 신을 꿰었다.
홍천수가 말하였다.
"포구에 배 왔다. 짐 부릴 말이나 내어라."
"무슨 태산 같은 짐이라구 말을 내우?"
"부담 세 짝에 피륙이 두 짐이다."
홍천수는 장쇠에게 쾌활하게 일렀다. 장쇠도 활기있게 말을 끌고 나갔고, 천수는 마루 끝
에 나와 내다보는 이경순에게 인사하였다.
"평안하슈, 도장 어른."
"어서 오게. 요즈음 평안도에서는 왕래가 잦은가?"
"이제부터 바람 불 철이라 좀 뜸한 편입지요."
"자네가 호통을 지르는 걸 보니, 이번엔 당화인가?"
"예, 의주 부근에서 잠상을 덮쳤답니다."
"얼른 옷 갈아입구 밥 먹어야지."
"밥은 고사하고 으슬으슬하니 우선 장국에 한잔 걸쳐야겠수." "헌데 송도 식구들은 아직
안 왔구먼."
"물때 맞추는 놈들이 원래 제 날짜에 대는 법이지요." 홍천수가 사랑에 오르고 묘옥은
임진강 쏘가리로 탕을 끓이고 술도 걸러서 상을 들여왔는데, 장쇠와 뱃사람 물치가 말에 짐
을 싣고 안마당으로 돌아 들어왔다. 물치가 굽신하였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우두령도 안녕하신가?"
"예, 모두들 무고합니다. 이번에는 비단을 양주서 쓰라고 보내왔습니다." "우두령이 먼 데
서 양주를 잊지 않는구먼."
모두 방에 들어와 상머리에 둘러앉는데 홍천수가 수저를 들며 불평하였다.
"이건 뭐 갯가에 붙어 살자니 어딜 가나 비린 것만 먹는군." 묘옥은 마루 아래서 대꾸하
였다.
"솔부리서 우리 큰삼촌 돌아오면 천마산 송이며 산채를 맛나게 무쳐 드릴게요." 홍천수
가 물었다.
"전생이가 언제 당도합니까?"
"음, 원래 어제 온댔는데 좀 늦는군."
경순의 대답에 천수가 술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말하였다.
"에라, 요즈음은 객점두 한산한데 송도에 풍류놀이나 나갈까." "안되우, 나는 바람만 좋으
면 낼 새벽에라두 배를 띄울 작정이우. 곧 큰 바람 불면 평안도 가기가 당나라 가기보다두
어렵수." 물치가 고지식하게 버티었고 홍천수는 가만히 꼬드겼다.
"허 이 사람아, 날씨가 이렇게 궂은데 내일 강화루 돌아가기두 쉽지 않겠어. 그리고 자네
데리고 온 아이들도 강화에서 며칠쯤 쉬어야지." 물치는 코방귀를 뀌었다.
"킁, 강화야 뭐 볼 게 있나. 어계방서 투전이 고작이겠지. 우리 식구들은 대처 맛을 봐도
아주 짭짤하게 본 사람들이우. 평안도서 의주, 평양이면 한양 성내 못지않은 대처라오." 우
대용의 수적 일당들은 일찍이 초도를 떠나 선착지를 대동강 어귀의 가도로 옮겼고, 마지산
부근에 어촌 비슷이 마을을 이루었던 터였다. 그들은 해서에서 활동하다가 수군과 부딪치면
얼른 관서 경계로 넘어갔고, 위로는 의주로 하여 압록강 기슭에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대동
강을 타고 거슬러 오르면 평양이요, 급수문에서 남으로 꺾어지면 월당강에 닿으니 동선령과
자비령의 발치에 이르는 셈이었다. 그들은 평양의 여각에도 정탐꾼을 두었고, 강화에는 홍천
수의 여각이 있어 임진 수로와 경강 수로를 연결하고 있었다. 우대용의 일당들은 관서에서
모아진 장물을 송도로 먹일 때는 문산포 이경순네 객점을 이용하였다. 또한 한양으로 가는
물건은 경강 모신에게로 보냈다. 이경순은 일부를 떼어 솔부리패와 바꾸기도 하였고, 솔부리
패는 주로 도성 주변의 난전꾼들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산 솔부리 일당은 위로는
포천 송우점과 도봉산 아랫녘의 다락원, 그리고 남으로는 광주 송파 삼전나루 저자에까지
식구들이 풀려나가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검계의 계원들이었는데 칠패와 배오개에도 그
들의 식구가 있었다. 그들은 퇴계원에 예전의 돌곶이 주막과 같은 거점을 마련하고 각처의
패거리들과 연결하였다. 전에 도봉 부근에 있던 중길이네 살주계의 남은 사람들은 서쪽으로
나아가 혜음령에다 터전을 잡았고 그들은 벽제와 새원과 미륵산 너머 분수원 사거리를 근거
로 삼았다. 문산포는 바로 강 건너에 송도를 바라보며 이들의 손길이 가장 쉽게 닿는 곳이
기도 하였다. 난전의 연줄은 문산포를 거쳐서 송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터였다.
저녁이 되어 비는 뿌연 안개로 변하였고, 홍천수와 물치는 따뜻한 봉노에서 등을 지지며
단잠에 빠져 있었다. 앞의 점방으로 오지 않고 막바로 안채로 통하는 사립문을 밀치면서 박
거사가 들어섰다. 그 뒤에는 전생이가 따르고 있었다. 둘 다 온몸이 흠뻑 젖었고 등짐을 짊
어지고 있었다. 전생이의 상투는 젖어서 착 달라붙어 얼굴 위로 물이 흘러내리고 팔없는 왼
쪽 소매는 걸레쪽처럼 허리 아래 뭉쳐져 있었다. 장쇠가 얼른 달려나가 전생이의 등짐을 내
려주었다.
"이런 날씨에 하루 묵어 오지 않구 웬 고생들이람."
이경순은 마루로 나와서 그들이 광에다 짐을 부리는 것을 내다보았다.
"솔부리에서 곧장 오는 길이냐?"
전생이는 언제나 그렇듯 씩 웃기만 하였고, 박거사가 답하였다.
"아뇨, 어제 양주 칠성암에서 하루 묵었지요. 솔부리서 일이 빨리 끝났거든요." 박거사는
동의를 구하듯 전생이를 돌아보았고, 전생이는 느릿느릿 말하였다.
"황회 거사님이 양주 나오는 길이라 동행하여 오느라구 일찍 내려왔습니다." 묘옥은 무
명 수건을 내다 주었고 그들은 비에 젖은 머리와 얼굴을 대충 닦았다. 이경순이 말하였다.
"기왕에 일이 빨리 끝났으면 그냥 올 것이지, 양주서 여기가 반나절 거린데 쓸데없이 묵
어 오느냐?" "스님이 자꾸 잿밥 먹구 가라구 말리는 바람에 그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박거사가 대답하였다. 묘옥은 전생이의 등을 밀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내가 장국 말아줄게."
그들이 들어가 앉고 홍천수와 물치도 뒤늦게 사랑으로 건너왔다. 묘옥이 저녁상을 들여왔
는데, 솔부리서 보내온 산채며 버섯무침을 올려놓았다. 전생이와 박거사만 국밥을 허겁지겁
떠넣었고, 다른 이들은 속이 더부룩하다며 산채를 안주로 술만 먹었다. 묘옥이 박거사에게
물었다.
"칠성암서 무슨 일이 있었수?"
묘옥은 박거사와 안성 철룡사 행중 시절부터 같은 식구였던 터라 아저씨처럼 대하는 투였
다.
"무슨 일이라니...?"
"잿밥을 드셨다면서요."
"응, 묘한 일이 있었지."
박거사는 그렇게만 말하는데 전생이가 코를 훌쩍하더니 말을 꺼냈다.
"혼례를 올려준다구 하던데요."
"누구... 솔부리 식구가 장가라두 들었나."
이경순이 무심히 지나치며 중얼거리니 전생이가 다시 말하였다.
"아뇨,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맺어준답디다."
"죽은 넋을 맺어준다니 그게 무슨 얘기유?"
묘옥이 되묻자 전생이는 빙긋이 웃었다.
"낸들 알아요? 이름 쓴 지방을 태우고 옷을 태우고 그러던데요." 박거사가 덧붙였다.
"그전에 그 검계 혈당에 들었던 산지니라구... 종루저자에서 참수 당한 아이 생각나시우?"
"음, 벌써 네 해나 되었군. 그때 중길이네 식구들도 많이 잡혀 죽었고, 검계에서는 그 총각
한 명이었지?" "형조의 관문 밖에서 저희 누이가 목을 매어 자진했지요." 이경순은 박거
사의 말을 들으며 그때의 일들을 떠울리는 듯한 안색이었다.
"색시 넋은 또 누구요?"
묘옥이 다시 물었고 박거사가 말하였다.
"재작년 흉황이 오죽 심했나. 그때 중길이네 식구들이 견디다 못하여 혜음령으루 이사하
였지. 작년에는 또한 염병으로 아예 폐촌이 되어 버린 동네두 많았소." "지난 두 해를 어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두 작년까지는 죽으로 끼니를 때우다시피 했어요. 이젠 곡식두 나
돌구 장사도 다시 되니까 한시름 놓았지만..." "아직도 유민들은 각처로 몰려다니구 있지.
헌데 중길이네 식구들은 서로 단단히 뭉쳐 있어서 집털이도 하고 상고의 보따리도 뒤져서
근근히 넘긴 모양이더군. 작년에는 곡식이 귀하여 무영이나 은자를 가지고도 낟알 한톨을
씹기가 어려웠거든. 그래두 도성 안의 대갓집 가노들과 연줄이 있어서 땟거리는 끊이지 않
고 간신히 대었다더군. 그 무렵에 비명횡사한 처녀가 있답디다. 왜 그 중길이가 늘 어머니라
구 부르던 아주머니 생각나지요?" 이경순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쌍이문방에서 바침술집을 하던 모녀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여자가 남의 손금이나 상을 잘 본다구 그랬던가." "예, 맞습니다. 바로 그 아주머니
딸이지요."
"그래 딸이 있었지. 아마 살았다면 꽤 과년했을 게야." "중길이네는 차례를 두어 성내로
들어가거나, 곡식을 감춘 부잣집에 방물을 가져다 헐하게 바꾸어 오거나 하면서 식구들의
양식을 대었던 모양입니다. 그 처녀와 몇몇이 교하에 나가 메조 두어 되를 바꿔서 새원까지
왔다지. 처녀가 자루를 가지고 있었고, 일행들은 먼저 산굽이를 돌아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처녀가 쫓아오지를 않더라나. 그래서 허겁지겁 오던 길로 달려가보니까, 처녀가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져 있고 곁에는 다른 행인들 몇이 쓰러져 있었다지요." 이경순은 박거사의 말에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때는 그랬었지. 어미가 제 자식을 잡아먹을 시절이었으니까." "곡식 두 되라면 능히
사람을 몇이라도 죽일 때가 아니었습니까. 서로 뺏고 뺏기고 하노라니 고갯마루에서 돌로
치고 박아 서넛이 쓰러졌는데, 아직도 저 아래에서는 유민들의 무리가 자루를 빼앗으려 이
리저리 몰리면서 달려 내려가더랍니다." 이경순은 짧게 허공을 바라보며 웃음소리를 냈다.
"미륵의 세상을 이루겠다며 죽은 산지니의 넋과 백성들의 아귀 지옥 다툼에 죽은 넋이 혼
례를 올린 셈이로구나." 전생이가 고개를 떨구고 있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환스님이 그럽디다. 백성들을 위하여 죽은 산지니나, 백성들에게 죽음을 당한 그 처자
나 모두가 산 것들 때문이랍니다. 일테면, 혼례도 산 사람들을 위해 올려준다지요." 묘옥이
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일어서며 말하였다.
"세상에 사는 모든 것들이 다 죽은 것들 덕이라지요." 물치가 눈치도 없이 전생이에게
농을 걸었다.
"자네 같은 산 놈들두 장가를 못 가는데 그 총각 죽어서도 호강일세." "글쎄 산지니같이
살다 죽으면 그때에나 좋은 연분이 생길지..." 묘옥은 얼른 돌아서더니 이내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이경순은 모른 척하고 있었으나 묘옥의 감정의 변화를 너무도 잘 느끼고 있었
다. 어째서 이렇게 시시껍절한 여염의 생활을 해나가는 아낙네로서 수수하게 되어지지 못하
는 걸까. 젊어 죽은 넋들의 혼례는 그녀의 가슴 어느 구석을 건드렸던 것인가. 이경순은 미
간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아무도 그들의 기분을 알아챈 것 같지는 않았다. 묘옥이 안방으로
건너간 뒤에도 남정네들끼리 오랫동안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더니 밤이 이슥해서야 그들은
바깥채로 물러갔다.
이경순은 혼자 사랑에 남아 곰방대를 물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제 자신과 묘옥이 지어
낸 문산포에서의 삶의 자취가, 갑자기 덧없는 바람이나 수면의 파문처럼 스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한 자취나 짓이 일어난 것은 안개 자욱하던 여주 강변에서 숨져가던 아내의 비
명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청룡사에서 달근네 행중을 따를 적부터 있는지 몰랐다.
또는 묘옥이라는 창기가 해주 바닷가에서 참수 죄인의 넋과 이별하고 남녘으로 정처없이 떠
나올 적부터였을까. 아니, 여문이는 분명히 자신들의 살과 뼈로 이루어낸 생명이었다. 그런
데도 경순은 무슨 까닭인지 이것이 자꾸만 현실이 아닌 듯이 여겨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
쩐지 훅 불면 허공중에 흩어져버릴 연기처럼 이 생활이 믿어지질 않았다. 혹시 그들 두 사
람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나머지로 주어진 생활은 아니었던가.
그는 아까부터 묘옥이 안방에서 뒤척이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불을 껐고 미닫
이를 열었다. 캄캄한 가운데 차츰 마당이며 삽짝이며 먼 산의 거뭇한 모양이 눈에 익어왔다.
풀벌레가 울고 들녘에서는 요란한 개구리 울음 가운데서 맹꽁이들이 사이사이마다 장단을
넣고 있는 듯하였다. 벗겨지는 구름 사이로 한두 점씩 별이 가물거렸다. 맹꽁이는 흉황에 굶
어죽은 어린것들처럼 울다가는 그치고 그쳤다가는 다시 생각난 듯이 울었다. 저렇게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남기고 세상에 무수히 널려 있는 정한들이 별수없이 스러져가고 있는 깊
은 밤이었다.
경순의 등뒤에서 마루로 통한 미닫이가 살그머니 열렸다. 치마 스치는 소리가 멎었다. 이
경순은 그대로 밖을 향하여 묵묵히 앉아 있었다. 묘옥이 잠시 그의 뒤에 섰는 듯하더니 스
르르 주저앉아 경순의 등에 얼굴을 기대었다.
묘옥은 이제는 없어진 버릇이지만, 예전에는 단둘이 있게 되면 저도 모르게 경순을 도장
나으리라고 부를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하마터면 말의 첫마디에 도장 나으리라고 부
를 뻔하였다. 이경순은 곰방대를 놋재떨이에 소리나게 두드렸다. 요란한 소리가 울리니까 그
제서야 어둠속에 묻혔던 집과 방과 기물들이 제자리를 얻는 것 같았다. 이곳은 그들의 가정
이었다.
"여문이는 자나?"
경순은 예사롭게 그렇게만 말하였고, 묘옥은 잠시 경순의 등에 기대어 있다가 물러나 앉
았다.
"저는 어째 그런지 모르겠어요. 죽은 이들 얘기만 나오면..." 경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
았다. 묘옥은 이어서 말하였다.
"차라리 저승이 없었으면 싶어요."
경순은 어깨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면서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은 묘옥의 감정과 느낌에
관하여 알고는 있으되, 모른 척하고 있겠다는 표시이기도 하였다. 나는 다 안다, 그러나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몸짓이었다. 더 나아가 시조라도 한수 읊조리면 되겠건만,
차마 소리내지는 못하였다. 묘옥이 나직하게 말하였다.
"저는 천성이 사내를 안분치 못하게 하는 바가 있는 듯해요." 경순은 그제서야 뒤를 돌
아보았고, 묘옥의 작고 동그란 어깨를 감싸 안았다.
"누구 탓이 아니오."
경순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하였다.
"여문이를 잘 길러야지."
경순은 자기 말에 확신이 없는 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기가 아직도 여주의 이도장이
었더라면 거의 틀림없는 말이 될 것이지만, 일찍부터 세상을 등져온 삶이 아니던가. 처음에
여주를 떠나 안성으로 묘옥의 출행을 따라갔을 적부터 그의 생애는 정해져버렸던 것이다.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으되, 묘옥은 그를 범상한 세속의 삶에서 뿌리째 뽑아내
었던 것이 아닌가. 묘옥은 경순에게 품은 것이란 깊은 존경과 육친의 따뜻한 정 같은 것이
었다. 그들의 생활은 묘옥의 꺼진 불꽃이 이미 체념에 이르렀을 즈음하여 시작되지 않았던
가. 이경순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묘옥이 쪽에서도 그러한 경순의 어딘가 모자란 듯
한 마음을 짐작하였다.
경순은 구월산에서 만났던 길산의 어렴풋한 인상을 떠올렸으나, 확실하지는 않았다. 묘옥
이 그리워하였던 젊은 광대는 그 흔적이 없었으나 경순과 묘옥은 영영 그러한 처음의 마음
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것은 길산의 탓도 이들 두 사람의 탓도 아니었다. 그저
인생이 그러한 까닭이다.
"주무셔요."
"그래, 잡시다."
묘옥은 자리를 깔고 여문이가 자는 안방으로 가지 않고 경순의 곁에 누웠다. 이경순은 묘
옥과 나란히 누워서, 이 집채가 문산포의 격랑을 따라서 먼 바다로 한없이 흘러가고 있는
듯이 느꼈다.
홍천수와 물치가 다녀간 뒤에 닷새쯤 지나서 문산포에서는 예정대로 장쇠 조모의 대상을
치를 겸하여 굿을 벌이기로 하고 그 준비에 분주하였다. 혜음령에서 중길이네 식구들이 오
기로 되었고, 양주에서는 여환스님과 계화 부부가 온다는 약조가 되어 있었다. 이경순이가
장쇠 할미 탈상하는 일에 무슨 아랑곳할 바가 있으랴만, 그동안 시절이 어려워서 그야말로
하찮은 푸닥거리 한번 치르지 못하여 묘옥이 못내 섭섭해하는 눈치였던 것이다. 또한 묘옥
이 장거리의 깍정이였던 장쇠와 송파저자에서 만난 인연도 귀한 것이라, 묘옥은 장쇠를 친
오랍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 장쇠는 며칠 전부터 나무를 져나른다 떡을 친다 하면서 신이
나서 묘옥의 준비를 도왔고, 이경순은 여문이를 독차지하여 데리고 놀다가 기저귀도 갈아주
곤 하였다. 전생이는 이 소식을 알리러 혜음령에 다녀왔었다. 사실 이경순으로서는 구월산에
서 집회가 있고 나서 처음으로 여환의 일에 손발을 맞추는 내색을 하게 된 셈이었다.
음식을 지지고 볶는 냄새가 한창인데 먼저 혜음령 식구들이 들이닥쳤다. 중길이는 패랭이
에 등짐을 져서 꼭 보부상 행색이었다. 이경순은 사랑 문을 연 채로 아는 체하였고 전생이
가 나가서 맞아들였다. 중길이는 비슷한 또래의 맨상투잡이를 데리고 왔으며, 쌍이문방 살던
연천댁 아주머니도 동행이었다. 중길이는 부엌에서 나물을 버무리던 묘옥에게 꾸벅하고 나
서 등짐을 내렸다.
"변변찮지만 맛 좀 보시지요."
내미는데 장정 팔뚝만이나 한 연평 굴비 한두름이었다.
"이거 연평 굴비 아녀요?"
"길목이 좋아서 벽제서 구하였지요."
"어디... 내가 뭐 도울 일이 없나."
연천댁이 소매를 걷으며 봉당으로 들어섰고 묘옥은 반겨 맞았다.
"그렇잖아도 전을 지져야 하는데, 여기 포를 떠놓은 것이 있고 기름 종지는 저기에..." "
술이 아직 덜 되었군."
설왕설래하는데 그런 법석이 없었다. 포구의 이웃 주막에서 일손을 도우러 온 아낙들이
뒤꼍에서도 떡시루에 불을 땐다 술을 거른다 하는 중이었다. 중길이는 사랑에 들어 이경순
에게 큰절을 하고 나서 용삼이와 다른 식구도 인사를 시켰다.
"요즈음 산살림은 좀 어떠한가?"
경순이 물으니, 중길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하였다.
"뭐 살림살이랄 게 있습니까. 기실 한양 주인 댁에들 있을 때보다는 고생이지요." "그야,
편하기로는 오뉴월 개팔자, 잔치 전의 도야지 아닌가." "도장 어른 말씀이 맞습니다. 사람
이 남에게 매여 사는 것은 짐승보다두 못한 노릇입지요." 중길이는 곁에 앉은 낯선 자를
돌아보더니 말을 꺼냈다.
"지난번에 새로 들어온 식구올시다. 여환스님과 어르신께 인사 올리려고 데리구 왔지요."
"음, 그러한가. 자네 이름이 무언가?"
나이는 서른 안팎쯤 되어 보였고, 뼈대가 억세고 입술이 두툼하였는데, 힘깨나 쓰게 보였
다.
"영길이라구 허우."
"전 참판 댁 가노였으나, 도망하여 저희에게 들어왔습니다." "왜 도망하였누?"
중길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예, 사람을 죽였답니다."
이경순은 중길의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이미 그러한 경로로 패가하였던
처지였기 때문이었고, 검계 일당과의 교유에 의하여 산지니와 같은 이들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서 세상을 등지게 되었던가도 잘 알았던 것이다.
"왜, 죽였나?"
"죽일 만하여 죽였수."
영길은 두툼한 입술의 꼴대로 별로 말끝이 이어지질 않았다. 그 대신 중길이가 옆에서 거
들었다.
"한양서 우리 살주계 얘기가 노비들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 있었지요. 지금도 그렇답니
다. 이 사람두 진작부터 우리 얘기를 듣고 당에 들기를 원하였지만 줄이 닿질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같은 댁에 있는 수노를 때려 죽였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놈이 수노라고 하여
무슨 큰 벼슬이나 따낸 듯이 다른 행랑것들에게 침학이 심하였던 모양이지요." "식구는 없
었는가?"
"열살에 뿔뿔이 흩어졌으니, 어디서 사는지두 모릅니다." 다시 중길이가 말하였다.
"영길이는 전에 있던 주인 댁에서 아침 저녁으로 행차를 배행하여 검을 배웠답니다. 환도
를 아주 잘 씁니다." "좋은 식구를 얻었구먼."
"저하고는 이름도 그럴 듯하여 참말 죽은 아우가 살아온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밖이 왁
자지껄하더니 삽짝 안으로 회색 장삼 걸친 여환이 들어섰고, 그 뒤로는 무구와 옷보따리를
짊어진 김승운과 무당 계화가 들어섰다. 또한 황회도 젊은 아낙과 동행이었다. 이경순이 먼
저 여환에게 합장을 하며 인사하였다.
"이거 지척지간에 찾아가 뵙는다면서도 쉽지가 않습니다." "도장 어른은 우리 양주 미륵
도의 사천왕이시니 관문을 지키고 계신 셈이지요." 하고 나서 묘옥에게도 합장하였고 묘옥
은 홍조까지 띠며 반가워하였다.
"제가 스님이 뵙구 싶어 이렇게 큰 재를 올리자구 졸랐어요." "고서방은 안 오구 어찌 자
네 혼자 오는가?"
이경순이 황회에게 말을 던지니 그는 딴청을 하였다.
"참, 이거 우리 내자올시다. 성님께는 기별두 못하구 그냥 작수성례 하였수." 마당 위라
그냥 다소곳이 머리 숙여 보이는데, 또래는 묘옥이만이나 하였다.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오종
종한데 눈매가 길고 가는 것이 성깔깨나 있어 보였다.
문산포에서는 제법 내로라 하는 여각인 이경순이네 안마당에 어깨가 서로 부딪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원래의 뜻은 장쇠 할미의 대상에 있었으나 기실은 양주 어름
에 사는 이들끼리 모여서 술잔이라두 나누자는 데 있으니 제사 기분은 제대로 나질 않았다.
하여튼 포구에 사는 이들까지 모여들여 삼사십여 명이 마루 위와 마당에 차일 펼치고 멍석
깔고 둘러앉았다. 때는 초여름이라 모깃불로 쑥 태우는 냄새가 가득 차고 곳곳마다 관솔 횃
불이 밝혀졌다. 먼저 장쇠를 상주로 하여 제사를 올린 뒤에 고인의 넋을 저승으로 보내드리
는 풀이가 나오는 순서였다. 만신 계화가 홍철릭에 고깔 쓰고 방울부채 들고 나와 길닦음을
하는데, 황회의 처라는 젊은 무녀가 징을 잡고, 김승운이 장고 잡고, 묘옥은 소복 차림으로
상주 뒤에 가서 서 있었다. 계화가 마당을 몇바퀴 돌고 나서 대를 잡았고 신이 올랐는지 종
이술 달린 신칼을 쳐들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계화는 장쇠에게로 달려들어 전혀 다
른 목소리로 부르짖는 것이었다.
"아이고 내 새끼야. 사고무친 혈혈단신으로 할미는 떠나고 너는 남으니, 이 일을 어찌할
까. 세상에 살아 생전 목숨이 모질어서 네 걸립으로 할미가 연명하였으나, 그때는 그래도 함
께 있어 좋았구나. 이 할미가 북망에 간들 내 손주를 잊겠느냐. 너를 두고 못내 설워 아직도
황천을 못 건너고 있으니 오늘에사 떠날란다. 내가 가고 나면 네 장가는 누가 들여주겠느
냐." 어쩌구 하면서 계화는 그럴 듯이 엮어내리는데 벌써부터 입을 비쭉거리던 장쇠가 울
음을 터뜨렸고 묘옥이도 옷고름으로 눈시울을 닦아냈다.
"우리 맘씨 고운 안성댁, 그저 어미같이 누이같이 저것을 보살펴주고, 먹여주고 입혀주어
저만치나 장성을 하고 이 못난 것 저승길까지 닦아 보내주니 이런 정성 덕으로 큰복 받으리
다. 그저 이 집 안팎으로 복이 가득 차고 형통하고 평안하여 성귀께서 받들어주시리다." 계
화는 묘옥에게 치하를 드리고 나서 굿에 참례한 이들 가운데 적절히 골라내어 인사를 하고
는 저승길 닦음을 계속 이어나갔다.
"서낭당 뻐꾹새야 너는 어이 우느냐, 속 비신 고염나무가 새잎 나라고 우짖느냐, 새잎은
이울어지고 속잎이 날까, 서낭당, 성수를 베어 월죽마루에 배 띄워놓고, 임진강 여울 여울
띄워놓고, 힘들고 공들고 공드신 망제가 건널까, 박산 산에를 올라 장단 여울을 굽어보니,
천리소 만리소하니 장단 여울이 소위로다, 장단소 열세 위 하나 한데로 몰까, 오시는 길에
가얏고로 다리를 놓고, 가얏고 열두 주린데 어느 줄 받아 내려오나, 줄 아래 덩기덩 소리 노
리라고, 천수경 법화경 하니 시왕세계루 살으소사 연화대루 살으소사." 이어서 만신 계화는
사람의 넋을 잡아가는 저승차사마당인 사세삼성을 읊조렸다.
"밤이면은 산을 넘고 낮이면은 들을 타고 십대왕에 분명 났소, 채판관에 소지 났소. 성명
삼자 적어 들고 우수에다 철판 놓고, 쇠창 옷을 젖혀 매고, 오라 사슬 비껴 차고, 쇠패랭이
숙여 쓰고, 붕어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 거스리고, 유자 뺨을 뒤흔들리고, 곰배팔을 꼽아
들고, 전통 같은 팔뚝지에 무쇠 같은 주먹이요, 흑각 발톱 대못 다리 뛰던지며, 활등같이 굽
은 길을 설대같이 다다라서, 닫은 대문 박차 여니, 수문장이 산란하구, 마루 대청 때구르니
성주왕신 산란하구, 닫은 방을 박차 열구 방 문설주 바로 잡고 성명 삼자 외쳐대니 망제님
이 하는 말씀, 그 뉘라서 날 찾나 친구 벗님 많다 해도 날 찾을 이 전혀 없네, 일곱 사자 거
동 보소, 어서 나오 바삐 나오, 채판관에 소지 났소. 저승도 이승 같소 만조상을 뵈러 가세,
실낱 같은 목에다가 오라 사슬 걸어놓고, 한 번 잡아 낚아채니 맑은 정신 간 곳 없고, 두 번
잡아 낚아채니 열 손 열 발 맥이 없고, 삼세 번을 낚아채니 혼비백산 간 곳 없고, 정신 차려
들어보니 처자 권속 많다 해도 등장 들 이 전혀 없네, 하릴없이 나설 적에 자던 방을 비워
놓고, 신사당에 하직하고 구사당에 재배하고, 저승길이 멀다 해도 대문 밖이 저승일세, 문신
은 문을 열고 길신은 길을 섬겨, 산신은 산을 섬겨, 어사지옥 대사지옥, 아미타불 열두 고개
넘어서서 극락세계." 이어서 말미마당이 벌어졌다. 계화는 어른거리는 관솔 불빛 아래서 이
리저리 거닐며 사설을 읊조렸다. 아조 아무대왕께옵서 혼인하여 아들을 보려 하였으나 줄줄
이 딸만 일곱을 낳았다. 참다 못하여 일곱째 딸을 서해 용왕께 진상이나 보내리라 하고는
옥함을 짜게 하였다.
"대왕마마 하신 말쌈,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던질 것이니 바리공주라 지으시고, 금
거북 금자물쇠 흑거북 흑자물쇠 채워내어 계화에 신하 불러들여 어주 삼 배 먹인 후에, 탑
전을 안고 들쳐서 아미타불 염불이요 대세지 고개 넘어서니 앞으로는 황천강 뒤으로는 유사
강이요, 애옥 여울 피바다에 한 번 던지니 용솟음하시고, 두 번 던지니 재솟음이요, 세 번
던질 적에 하늘 아는 자손이라 금거북이 받아 지고 이렇게 될 즈음, 석가세존이 삼천 제자
거느리시고 사해도 구경하고 인간 제도하옵시려 나옵시다가..." 옥함을 보고는 돌배를 저어
서 건져다가 황천에 갖다 놓았다. 옥함에 아무 대왕 칠공주라 새겨 있어 여자라 제자도 못
삼고 공덕할미와 공덕아비에게 분부하여 키우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대왕이 점을
쳐보니까 그들 부부가 아무 날 아무 시에 죽을 패라 바리공주를 찾아야 산다고 하였다. 왕
이 근심에 빠져 있으려니 한 동자가 찾아와 바리공부를 버린 죄로 대왕 부부가 죽게 되어
삼신산 불사약과 봉래방장 무장승의 약수를 얻어서 마셔야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대왕 분부
받은 신하가 천신만고 끝에 겨우 바리공주을 찾아가 아뢰었다. 바리공주는 부모를 구하려고
미륵님의 약수를 구하러 나섰다. 무쇠 주령을 한 번 휘둘러 짚으면 천 리요, 두 번 짚으면
이천 리를 가는 것이었다. 삼천리를 가서 석가세존을 만나 길을 물으니 가르쳐주었다. 칼산
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물지옥 흔암지옥 무간 팔만사천 지옥
을 건너고, 무지개를 타고 건너니 무장승이 있었다. 무장승은 키가 하늘에 닿고, 눈은 등잔
같으며, 얼굴은 쟁반 같고, 발은 석 자 세 치였다. 바리공주가 약수를 원하니 무장승은 길값
약값 대신 함께 살자 하여 구 년 동안에 아들 칠형제를 낳아주고 약수를 얻어냈다. 바리공
주는 칠형제를 데리고 약수를 병에 담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피여울 피바다에 줄줄이 떠
오는 배에 염불 송자하고 아미타불 공부하여 사방에 피어 있고 거북이 받들고 청룡 황룡 끌
고 오는 배는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오는 망제는 세상 있을 적에 다리 놓아 만인 공덕, 원을
지어 행인 공덕, 절을 지어 중생 공덕, 옷을 벗어 시주하고, 배고픈 사람 밥을 주어 부엌 공
덕, 염불 공부 만인 시주하옵시고, 극락 세계 연화대로 소원 성취하러 가는 배로구나, 그 뒤
에 오는 배는 풍류도 열락하고 화기가 만발하여 웃음으로 열락하여, 고운 향기가 가득하여
맑은 기운 띄워 배는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오는 망제, 세상 있을 적에 부모에 효성 있고 동
기간에 우애 있고 일가에 화목하고 동네 사람들께 구순하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며 선심으로
평생을 살아, 초단에 사제삼성 진오기 받고, 이단에 새남 받고, 삼단에 법식 받아, 선왕제 사
십구재 백일재 바다 극락세계 시왕세계 왕생천도하여 가는 배로구나, 또 그 뒤에 오는 배는
활 든 이, 총 든 이, 창 든 이, 머리 풀어 산발하고 의복도 벗고 울고 결박하고 살기 충천하
고 모진 악기 가득하여 오는 배는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오는 망제는 세상 있을 적에 부모
에 불효하고 동기간에 우애 없고, 일가에 살이 세고 동네 사람에게 불순하고, 시주도 못하고
남의 음해 잘하고 남의 말 엿듣고, 억지 흥정하고 이간질하여 쌈 붙이기와 사람 죽이기와
탐이 많아 작은되로 주고 큰 말 퇴로 받고, 짐승 많이 살생하고 만법 공수에 비방한 죄로
하탕지옥 칼산지옥으로 가는 배로구나, 저기 돌 위에 얹혀서 불도 끄고 닻도 없고 임자 없
이 얹혀 있는 배는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있는 망제는 무자귀신과 해산길에 간 망제와 선왕
제 사십구재와 사제 삼성과 진오기 새남도 못 받고 길을 잃고 세계를 몰라 임자 없이 얹혀
있는 배로구나, 우여라 슬프다, 아무 망제 정성 받으신 자취에 바리공주가 천도하여 선상하
여 가는 배 위에 올라, 아미타불 지장보살님 염불받아 극락세계 시왕세계 연화대로 왕생천
도하소서." 도중에 부모님의 상여와 부딪치게 되었다. 바리공주가 부모님 시신을 내어 입가
에 약물을 흘려 넣으니 모두 소생하였다.
"에우 설어 설어 엊그제께 살았던 몸이 넋이 되고 혼이 되어서 영실이란 말이 웬말이냐,
우리 착한 효부 자손들아, 나는 오늘 극락 가고 시왕 가신다. 모두 큰 일을 했으니 내가 도
와주마 내가 받들어주마, 내 삼 년 곱게 나고 나 죽은 석 달 편안하게 도와주고, 우리 금같
은 자손들 높이 괴고 귀히 되고 아무쪼록 내가 늘려주고 불려주마, 염려 마라 나는 모두 자
손 덕에 극락 가고, 부처님의 기자 되어 훨훨 날아서 나는 극락 가고 시왕 가신다." 하며
넋을 보내고 나니 뒷전을 거쳐서 모두 끝이 났다. 묘옥은 상주인 장쇠와 함께 계화의 굿을
받으면서 몇번이나 가슴이 저리도록 감동을 느꼈다. 그것은 저 이상스런 힘을 가지고 엎어
지고 허우적대면서 지옥을 헤엄쳐 지나가는 바리공주의 환난고초 때문이었다. 무지개를 건
너서 지옥을 헤쳐 나와 캄캄한 죽음의 장막 위에다 생명의 물줄기를 퍼붓는 지장보살이 보
일 듯하였다. 굿판의 열기는 새벽이 가까워올수록 더욱 끓어 넘치는 것 같았다. 굿판은 끝났
으나 무감 차례가 되어 문산포 동네 사람들이 흥에 겨운 사람들 차례대로 판에 휩쓸려 들어
가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추고 놀았다.. 다음에는 황회의 마누라 무당이 판을 끌어갔고, 이어
서 계화의 남편 김승운이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읊조리는데 제법 화랭이 같았다. 화랭이란
무부를 일컫는 것이지만, 미륵님을 받드는 용화 향도라는 의미도 있었으니, 까마득한 옛적부
터 미륵님을 받드는 자들을 화랑이나 향도라고 부르던 까닭이다. 황회나 정원태 등이 시작
한 검계는 물론이려니와 중길이네 살주계도 실상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었던 향도계의 다
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던 터였다. 김승운은 구월산 일대의 화랭이들 사이에 잘 알려진 창세
가를 풀었다.
"미륵님의 세월에는 섬들이 말들이 잡수시고 인간 세상이 태평했으며 석가님이 내려와서
세월을 빼앗자고 마련하와, 미륵님의 말씀이 아직은 내 세월이요 네 세월이 아니다, 석가님
말씀이 미륵의 세월은 다 갔으니 내 세월이 분명하다. 미륵님 말씀이 네 내 세월인 줄 알겠
거든 내기를 시행하라." 하고 나자, 여환이 일어나더니 염불을 외웠다.
"지심귀명례 현거도솔 당강용화."
중길이를 비롯한 혜음령 식구들과 황회 부부, 계화 부부, 그리고 이경순 묘옥 전생이 장쇠
등등이 합장하며 뒤를 이었다.
"자씨미륵존여래불."
그들은 다 함께 절을 하였고, 문산포 사라들 중에서는 따라 하는 이들은 몇몇 있었다. 여
환의 송경과 회중의 절이 세 번까지 계속되었고, 그들이 무릎 꿇고 합장한 동아네 여환은
혼자서 송경하였다. 송경을 마치고 나서 여환스님은 마당의 한가운데에 앉았고, 조용해진 좌
중을 죽 둘러보았다.
"여러분, 미륵대성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까 노래에서도 나왔으나, 미륵님은 아
주 우리 곁을 떠나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여환스님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어느 아낙네
에게 물었다.
"미륵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
"기도하고 공들이면 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입지요."
"미륵님은 어떤 분입니까?"
이번에는 맞은편 늙수그레한 사공에게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답하였다.
"부처님 뒤에 오시는 새 부처라구 그럽디다. 중의 부처가 아니라, 상것들 부처라구 그러기
두 하지요." 여환은 빙그레 웃었다.
"네, 그렇습니다. 두 분 모두 맞는 말씀이십니다. 미륵님은 저 산위 절에만 계시는 게 아
니라, 여러분이 새벽에 정화수를 길어다 비는 집안 뒤뜰에도 계십니다. 어째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그 이전 오래 전부터, 온 백성들이 하소연할 데 없어 답답할 때, 의원 못 불러 아
플 때, 억울하고 슬플 때, 집안경사로 기쁠 때, 우리 미륵님만을 찾고 빌어왔는지 알 수 없
지요. 어째서 미륵님은 저 들판 가운데 밭고랑이나 동구 밖에, 산모퉁이 길가에, 엇비슷한
돌멩이에 대충 도끼로 쪼아져서 아무렇게나 계시게 되었는지 모르지요." 여환은 어느 아낙
의 가슴에 안긴 채 잠들어 있는 아기를 보자, 가만히 손을 뻗어 그 조막손을 쥐었다. 이곳
저곳에 부모를 따라와 굿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어미의 무릎과 품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여환은 아기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면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쉬이, 이 사바세계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어린아기의 손을 놓았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그 아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여환
이 말하였다.
"여러분, 아까 어느 향도께서 노래한 것처럼 석가님은 미륵님보다 앞서서 세상에 나타나
셨습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 수천 보살 스님들 남녀노소의 신도들 마왕 야차 용 잡신들까
지 있는 자리에서 장광설을 퍼셨는데, 거룩한 보살의 길고도 오묘한 자비의 법을 말씀하셨
습니다. 대중 가운데 있던 미륵보살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백만억의 법문을
대번에 얻으셨습니다. 미륵님은 원래 석가님의 젊은 제자로 두 분은 서로 깊이 사랑하셨습
니다. 석가님은 미륵님을 일컬어, 아일다야 너는 가장 완전한 부처를 이루리라 하셨지요. 그
러자 어떤 사람이 의아하여 석가님께 물었습니다. 아일다는 이렇게 범부의 몸 그대로여서
비록 출가를 하였으나 선정을 닦지 못하여 번뇌를 끊지 못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
이 틀림없이 성불할 것이라 하셨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장차 어느 곳에 태어나
어떤 중생들을 어떻게 교화하게 됩니까. 그랬더니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지요. 이제부터 자세
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너희들에게 더이상 없이 가장 옳게 모든 깨달음을 이루어낼 미륵불
에 대하여 말하리라. 미륵은 나보다 먼저 목숨을 마치고 반드시 도솔천에 왕생할 것이니라.
도솔천 오백만억의 천자들은 멀리 않은 내세에 가장 완전한 부처로 이루어질 미륵을 위하여
온갖 준비로 공양을 드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석가님과 미륵님은
조금의 전의 이 천도와 잠든 아기님과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석가님께서 그 전생에 사바세
계에 태어나기 전부터, 즉 도솔천에 계실 적부터 석가님과 미륵님은 스승과 제자 사이셨습
니다. 석가님께서는 법문을 펴시고 어지러운 세상을 다 제도하지는 못하고 가시지만, 미륵님
이 오실 적에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지럽고 더러
운 악세에 나타나셔서 꾸짖고 어루만지며 법문을 폈으나 다 이룰 수는 없어서, 다만 뒤에
미륵님을 만나도록 내세의 인연만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미륵님과 만나는 인연만을 심어주
신 것입니다. 미륵님과 만나는 인연에는 여러가지가 있지요. 어떤 이는 경전을 읽고 외고 남
에게 알려주며 법을 지니게 한 공덕 때문이요, 또 어떤 이는 옷과 음식을 남에게 베풀고 계
행과 지혜를 닦은 공덕으로써이고, 어떤 이는 부처님께 봉공 공양하여서이며, 승가에 공양하
고 자비를 베푼 덕이며, 어떤 이는 중생이 괴로움 당하는 것을 보고 깊은 자비심을 일으켜
스스로 그 괴로움을 대신 받고 저들에게 즐거움을 돌려준 공덕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인욕
과 계행을 지킨 공덕, 법회를 열고 강설한 공덕,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 이러한 공덕이
있어 미륵님과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덕을 쌓지 못한 우리 같은 힘도 없고 가진 것
도 없는 백성들은 미륵님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미륵님과 만나는 인연 가
운데 가장 귀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은 제일 마지막 구절에 적혀 있지요. 재
난과 횡액, 가난과 외로움의 고통을 받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종이 된 사람, 속세의 법률에
속박을 받거나 형벌을 당하여 죽게 된 사람, 여덟 가지 재난의 업을 지어서 큰 괴로움을 받
는 중생들을 보고 저들의 고통을 구제하여 벗겨준 사람, 서로 이별하고 패를 갈라 싸우고
송사를 일으켜 고통받는 중생들을 좋은 방편으로 화합시키는 사람, 이런 이들이 미륵님과
만날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륵님의 이름만 듣고도 스님뿐 아니라 남녀노유의 백성, 용,
마왕, 귀신, 야차, 아수라, 미물까지도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미륵님이 오시는
것은 말법의 때라 하였으니, 악과 고통이 세상에 가득 차는 때입니다. 여러분 재작년부터 작
년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참상을 겪어 잘 알겠지요. 과연 법도가 서 있는 태평성대라고
하겠습니까. 마을마다 굶어죽고 염병에 죽어서 산촌에 텅 빈 마을은 얼마나 되었으며, 한여
름에 제비가 얼어 죽고, 봄에 우박이 떨어지고 바다에서는 해일이 덮치고, 어미가 자식을 먹
으며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가장이 식솔을 버렸으며, 시체의 옷을 다투어 벗기고, 벼슬아치
들은 백성의 참상을 돌아보기는커녕 유민이다 명화적이다 하여 백성을 함부로 남형 살상하
고, 조정은 패가 갈려 서로 잡아 죽이고 서로 쫓아냈고, 위로 오랑캐와 아래로 왜적의 동태
가 심상치 않아 병란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들끓고, 사방에서 하리와 백성들이 벌떼같이 일
어나 지방 수령과 양반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해서뿐 아니라 영남과 호남에서는 골마다 작
당한 녹림당들이 활빈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수라의 세상이요 말세가 되었으니 미륵
님이 오실 때가 된 것이지요. 여러분, 일찍이 지장보살님은 서원을 하기를, 육도 중생계에서
중생의 고통이 제일 심한 지옥으로 가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하고 혹독한 지옥의 계로
내려가, 그들 지옥에 떨어진 중생들과 괴로움을 함께 하다가 그들이 모두 고통을 끝내고 부
처를 이룰 때까지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맨 나중에야 성불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장보살
께서 중생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성불해야 할 것을 스스로 가르쳐주신 것이라면, 미륵보살께
서는 말법의 때가 될 적에 당신이 오실 것을 우리 만백성의 실행으로 예비하라는 것이요,
그때에 비로소 미륵님은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실행이 없고서는 부처님도 용화
세계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당래하생 당래교주이신 미륵님은 우리 백성들이 이런 말법의
세상에서 고통만 당하다가 나중에 죽은 뒤에야 극락에 가도록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상을 바꾸어놓으라 하셨고 그때 오셔서 함께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역달중생공하여 본
성상여실이요, 영경무우고하며 자비무연이로다." 여환은 합장하면서 설법을 끝냈다. 이곳
저곳에 졸고 있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 이상은 여환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는 듯하였다. 어떤 사내가 물었다.
"스님, 세상을 바꾼다니 무슨 천지개벽이라두 일어난단 말입니까?" "미륵을 열성으로 믿
고 따르면 개벽이 일어나지요."
한번 말문이 터지자 사람들의 질문이 뒤를 이었다.
"양반들도 미륵님이 보살펴줄까요?"
"잘못을 뉘우치고 미륵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되겠지요. 비록 양반이라도 미륵님께서 개세
하였다고 들으면 반드시 마음을 돌릴 것입니다." "미륵님을 믿으면 병고도 없어지고 복도
생기나요?"
"목이니 병이니 하는 따위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백성들과 더불어 용
화세상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면 병도 없어집니다. 세상이 병들어 걸
린 것이요, 세상이 박복하여 우리가 복이 없는 것이요,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어 우리가 아수
라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스님께서는 미륵님을 만나보았습니까?"
"예, 만나뵈었습니다."
여환은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물었던 사람은 어이가 없어져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여환이
앞질러 말하였다.
"언제 어디서 뵈었느냐고요? 소승은 언제든지 미륵님과 만납니다. 저 뒤에 계십니다." 여
환은 사람들에게 똑바로 손가락질을 하였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서로 돌아보기도 하고 이
리저리 살피다가, 뒤에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하늘 저쪽에 부
연 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어느결에 날이 새어 동녘이 트고 있었던 것이다.
"미륵님은 하늘에 있는가요, 해가 미륵님인가요?"
제각기 물었으나 여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로 올 것은 모두 미륵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워지면 미륵
님은 반드시 현신하십니다." "미륵님은 귀신입니까?"
"아니오, 미륵님은 분명히 사람으로 현신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만신이 모시는 귀신은
무엇이어요?"
계화가 뒷전에서 대답하였다.
"내 비록 영험한 성귀를 모시기는 하지만, 단군 성조님이나 임장군신이나 최영 장군신이
라 할지라도 용화세계를 예비하려고 계십니다. 서낭당이나 칠성당이나 산신이나 하다못해
부엌 봉당의 조왕신이라 할지라도 인간 세사를 좋게 도와주시고 덕 입혀주시고자 계신 것이
요 해코지하려고 굿 받아 잡숫는 것이 아니라오. 미륵님이 오시는 용화세계에 이르면 미물
까지도 법을 깨친다는데, 귀신 성령이 어찌 다름이 있겠나요. 잉어와 흑어가 천 년을 기다려
이무기로 변신하고 이무기가 또한 수천 년을 기다려 용으로 변신하여 승천하는 것인데, 하
물며 인간 세상이 천지개벽을 이룬다면 어찌 사람의 정성이 귀신에 통하지 않겠어요." 주
위는 물을 끼얹은 듯이 잠잠하였고, 사람들은 서로 힐끗힐끗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을 들이려면 어찌해야 되나요?"
그것은 묘옥의 목소리였다. 여환이 묘옥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미 예전부터 알구 있지 않습니까. 진인도를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미륵은 참 인도
요, 인도에 어긋나는 것은 미륵이 아닙니다. 백성은 곧 미륵입니다. 진인도를 거역하면 승려
도 부처도 양반도 상한도 사대부도 조정도 나라도 온 세상 삼라만상이 그릇되게 됩니다. 그
릇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이 몸을 던져서라도 실행하는 것이 용화 향도가 할 일입니다. 언
제나 이를 잊지 말고 마음을 굳건히 지켜야만 합니다. 용화세계를 생각하면서 늘 염송하면
병고와 업이 사라지고 미륵님과 언제나 함께 있을 수가 있지요. 따라서 염송하시오. 나무현
거도솔미륵존불 나무당래교주미륵존불 나무삼회도인미륵존불." 좌중에서 그의 목소리에 뒤
이어 염송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아프고 괴로울 적마다 마음을 지켜 외우시오."
여환은 다시 몇번을 되풀이하였고 좌중에서는 외고 또 외었다. 이미 관솔불은 다 꺼져버
렸고 새벽의 냉기가 써늘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떴으며, 묘옥과 아낙네들
은 남은 자리를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느라고 다시 분주하였다. 혜음령 식구들과 양주 사람
들은 한데 어울려 이경순의 사랑에 몰려들어가 앉았다. 장쇠와 전생이는 묘옥을 돕느라고
방안에 들어앉을 틈이 없었다. 연천댁은 울었던지 두 눈이 충혈되었고 눈두덩이 퉁퉁 부어
올라 있었다. 황회가 말하였다.
"아주머니, 인제 굿이나 법회에는 따라다니지 마시우. 그러다가는 아예 장님 되시겠수." "
왜, 이렇게 한바탕 울구 나야 가슴이 후련해지지. 포한이 맺힌 채로 그냥 품고 있어두 죄가
되는 게여." "맞습니다."
여환스님이 연천댁 편을 들었다. 중길이가 말하였다.
"스님, 저희 식구 인사받으십시오."
그는 영길이에게 눈짓하였고, 엉거주춤하고 있던 영길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궁둥이를 쳐
들고 어색하게 큰절을 올렸다. 여환은 공손하게 마주 합장하였고, 중길이가 소개하였다.
"이번에 한양서 새루 왔습지요. 저희들께 시킬 일이 있으시거나 한양에 통기할 일이 있으
면 이 사람을 통하여 하시면 됩니다." "여환이라 하오."
"영길이라구 합니다."
황회가 중얼거렸다.
"그 참, 잘되었군. 자네 계 식구들은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도성 출입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이경순이 말하였다.
"오늘 스님 설법을 듣고 보니 문산포에서도 향도가 많이 나오게 생겼습디다." "처음에 잠
깐 도가 든다 할지라도 꾸준히 닦아주지 않으면 또 쉽게 잊어버립니다. 대개 몸이 아픈 이
들은 병 고칠려구 일구월심하다 보면 신실해지기는 하던데." 계화가 의견을 말하였고, 황회
가 말하였다.
"이 사람도 도를 깨친 것은 얼마 안됩니다. 그래두 포천서는 이름난 점쟁이였지요. 지금은
미륵도의 보살 구실 하노라구 사방으로 다니며 시주도 받고 법회도 열고 합니다. .이 댁에도
여문이 엄마 같은 훌륭한 보살이 계신데 무슨 염려할 게 있소?" 이경순은 말이 없는데, 계
화와 연천댁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 신통력이 뭐 별것인가. 신명이 그만한데 성귀께서 내버려두실 리가 있나." "보살
이지, 아 그만하면 대를 잡아도 족허지."
여환도 말하였다.
"오는 칠석에는 칠성암에서 크게 재를 올릴 모양이니 두 양주 모두 문산포 사람들 데리구
오셔야지요." "이 댁 마누라님은 그렇다 치고 도장님은 늘상 양주 와서도 뒷전에만 맴돌다
가시니, 그러다간 계두성에 못 들고 처자와 이별하시겠수." 계화가 이경순을 들어 농을 하
니 경순은 껄껄 웃었다.
"허허 그렇다면 이거 처자 덕으로는 갈 수가 없는 모양일세." "대신 살아달랄 수야 있
나."
황회가 말하자 경순은 시원스럽게 말하였다.
"마누라를 보살로 빼앗기느니 아예 내가 집에다 신당 배설하고 향도들을 모아야겠군." "
거 좋은 얘기요. 장단 파주까지만 닿아도 임진 남녘은 모두 미륵 향도 일색이 될 게요." 황
회가 기뻐하였고 계화도 신이 났다.
"향도만 모아놓아요. 내가 오든지 스님이 와서 주재할 터이니." 장쇠의 조모 대상을 빌미
삼아 벌였던 넋굿은, 의외로 문산포 주막에 미륵님의 신당을 모신다는 데로 진전되어버렸다.
전생이는 진작부터 천불산 법회에도 다녀오고 검계의 계원으로도 활약하였으므로 굳건한 미
륵향도의 당이었고, 장쇠도 계기가 좋아서 향도로 되기가 원이었던 터였다. 이경순은 비록
검계 살주계에도 깊이 관여하였고 지난번 풍열스님이 주도한 구월산 모임에도 갔었으나, 자
신이 진정한 미륵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시세에 민감한 상인 출신으로서
그들의 개혁하려는 뜻에 동조하였고, 그는 여주에서의 패가하던 일이며 아내를 잃던 일이며
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세상은 반드시 뒤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은 그도 분명하게 생각
하고 있었으며, 목숨까지도 흔쾌히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만 경순은 이러한 자신의
뜻이 박대근이나 우대용 같은 이들과 통하는 것이요, 미륵이건 성조님이건 석가건 그것은
방편에 불과하니 별로 문제 될 거이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묘옥은 달랐다. 그녀는 한
때 청룡사의 사당이었고, 몸속에 흐르는 신명의 피를 어찌할 수가 없었으며, 여환은 그녀에
게 진작부터 의미심장한 삶의 가치를 전하여주었던 것이다. 해주 송림방 바닷가 절벽 위에
서 묘옥이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을 적에 여환은 그 소매를 붙잡고 말해주었다. 목숨이란 돋
는 햇빛에 스러지는 이슬과 같은 것이지만 영롱하게 초목을 적시듯 아름답고 귀한 것이오,
부처님께 마음을 의지하고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일처럼 제 인생을 사시오,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나누어주어야 하오. 묘옥은 미륵을 얘기하는 여환의
열띤 설법 속에서 자신의 전생에서 찢긴 상처들이 따뜻하게 어루만져지는 듯한 감동을 느꼈
다. 묘옥에게는 천상과 지옥이 몇겹이듯이 두 겹의 전생이 있었다. 한 겹은 길산을 만나기
전의 삶이었다. 중화에서 집을 뛰쳐나와 색상에게 팔려가고 창기가 되어 광산과 갯가를 흘
러다니던 때의 아득한 기억들은 묘옥에게는 이승의 삶이 아닌 듯이 여겨졌다. 또 한 겹의
전생은 길산이 죽은 것으로 알던 날 밤 송림방의 말바위 위에서 자진하려던 순간부터였다.
묘옥은 그때에 죽었고, 이경순과 만나서 가정을 이루면서 다시 되살아났던 것이다. 묘옥은
사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뜻을 가졌건 알 바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살아가는 것의
가엾음을 품안에 넣어 녹여주시는 끝없이 크고 넓은 미륵님의 작은 아기가 된 것만이 소중
하였다.
양주 청송면 대탄은 읍치로부터는 북쪽으로 칠십여 리나 떨어져 있었으니 원래 양주목 경
내의 생김새가 긴 자루 모양 남북으로 뻗어나간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탄은 북쪽의 끝인 셈
이었다. 임진강 상류의 근원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영평현 백운산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강원도 철원의 체천에서 나와 합류하였다. 이를 한탄강이라 하니 대개 큰 여울이란 뜻이다.
강은 연천 영평을 지나 서남쪽으로 굽이쳐서 파주 문산포에서부터 조수와 만나면서 임진강
하류를 형성하였다. 대탄은 영근산 일대와 산내를 좌우에 두고 남쪽으로 거의 읍에 이르기
까지 뻗어간 초촌내에 닿아 있었다. 대탄은 동으로 영평 동남으로 포천 북으로는 연천과 삭
녕 서쪽으로 장단 파주에 통하였고, 그 사방에서 거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점이었다. 초촌내
좌우로는 너른 들판이 산줄기 사이로 펼쳐져 있고 대전리 부근은 그야말로 오방의 길이 만
나는 곳이었다. 또한 바로 심곡산이나 천보산 고개를 넘으면 송우 난전이었다.
여환의 칠성암은 대탄의 영근산 아랫녘에 있었다. 북쪽으로 강 건너 가사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한탄강의 강물은 속의 자갈이 떠 있는 것처럼 해맑았고 강원도 방향에서 흘러
내리는 체천이 만나서 물상이 거세게 굽이쳐 갔다. 초촌내는 바로 칠성암 지척에서 흰 포말
을 드러내며 콸콸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무덥게 찌는 불볕 더위였지만 칠성암 부근은 느티
나무와 밤나무 은행나무 떡갈나무로 짙은 숲이 이루어져 있었고 강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
다. 숲 아래 큰 바위들이 탑처럼 우뚝우뚝한데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새로 지은 제법 널찍
한 초가가 나왔다. 토담 위에도 짚이엉을 둘렀고 껍질도 벗기지 않은 소나무 기둥 위에 칠
성암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직 담벽의 황토흙이 마르지 않은 것처럼 붉었고 대들보와
기둥에서는 송진 냄새가 나는 듯하였다. 칠성암은 기역자의 집인데 법당 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이 있었고, 부엌과 여환의 방이 있었다. 단청은 물론이요 불화 영정 하나 보
이질 않았으며 불상도 모시질 않아서 사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실상은 이전의 초가
삼간 자리에다 방 두 칸을 늘려 지었던 것이었다. 법당으로 쓰는 마루 가운데에는 상을 놓
고 촛대와 향그릇을 올려두었는데 자씨미륵존불이라 쓴 목패를 중앙에 올려두었을 뿐이었
다. 대탄과 대전리 중간 어름의 산내 등성이가 두팔처럼 벌려진 곳에 시내비골이 있었는데,
시동이네가 수년 전에 진관사 아랫녘에서 이사와서 살고 있었다. 계화 김승운 부부는 은율
서 여환만 믿고 따라왔다가 처음에는 시동이네 헛간에 방을 들여 살더니, 칠성암을 늘려 짓
게 되자 그리로 옮겨갔던 것이다. 황회와 정원태가 가끔씩 방문하기도 하였고, 계화는 여환
과 함께 부근의 궁벌리 초성리 오동나무골 등지로 향도를 얻으러 다녔고, 차츰 혼자서 내문
면 인목면 동면에까지 나다녔다. 늘상 칠성암에 향도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니었는데 초하루
와 보름에 원하는 이들이 모여서 기도를 올렸다. 따로이 수도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사나흘
씩 칠성암의 기도방에 머물도록 하였다. 계화나 황회는 향도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일
단 칠성암으로 데리고 왔다. 여환은 처음에는 용화세계라든가 미륵의 출현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고, 보름에 한번씩 있는 수도회 때에나 잠깐 비출 뿐이었다. 계화가 데려오는 사
람들이란 거의가 인근의 농사꾼들이나 겨우 먹고 사는 행상들이거나 부녀자들이었고, 정원
태와 황
양주 청송면 대탄은 읍치로부터는 북쪽으로 칠십여 리나 떨어져 있었으니 원래 양주목 경
내의 생김새가 긴 자루 모양 남북으로 뻗어나간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탄은 북쪽의 끝인 셈
이었다. 임진강 상류의 근원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영평현 백운산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강원도 철원의 체천에서 나와 합류하였다. 이를 한탄강이라 하니 대개 큰 여울이란 뜻이다.
강은 연천 영평을 지나 서남쪽으로 굽이쳐서 파주 문산포에서부터 조수와 만나면서 임진강
하류를 형성하였다. 대탄은 영근산 일대와 산내를 좌우에 두고 남쪽으로 거의 읍에 이르기
까지 뻗어간 초촌내에 닿아 있었다. 대탄은 동으로 영평 동남으로 포천 북으로는 연천과 삭
녕 서쪽으로 장단 파주에 통하였고, 그 사방에서 거의 중간에 위치하는 지점이었다. 초촌내
좌우로는 너른 들판이 산줄기 사이로 펼쳐져 있고 대전리 부근은 그야말로 오방의 길이 만
나는 곳이었다. 또한 바로 심곡산이나 천보산 고개를 넘으면 송우 난전이었다.
여환의 칠성암은 대탄의 영근산 아랫녘에 있었다. 북쪽으로 강 건너 가사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한탄강의 강물은 속의 자갈이 떠 있는 것처럼 해맑았고 강원도 방향에서 흘러
내리는 체천이 만나서 물상이 거세게 굽이쳐 갔다. 초촌내는 바로 칠성암 지척에서 흰 포말
을 드러내며 콸콸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무덥게 찌는 불볕 더위였지만 칠성암 부근은 느티
나무와 밤나무 은행나무 떡갈나무로 짙은 숲이 이루어져 있었고 강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왔
다. 숲 아래 큰 바위들이 탑처럼 우뚝우뚝한데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새로 지은 제법 널찍
한 초가가 나왔다. 토담 위에도 짚이엉을 둘렀고 껍질도 벗기지 않은 소나무 기둥 위에 칠
성암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아직 담벽의 황토흙이 마르지 않은 것처럼 붉었고 대들보와
기둥에서는 송진 냄새가 나는 듯하였다. 칠성암은 기역자의 집인데 법당 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방이 있었고, 부엌과 여환의 방이 있었다. 단청은 물론이요 불화 영정 하나 보
이질 않았으며 불상도 모시질 않아서 사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실상은 이전의 초가
삼간 자리에다 방 두 칸을 늘려 지었던 것이었다. 법당으로 쓰는 마루 가운데에는 상을 놓
고 촛대와 향그릇을 올려두었는데 자씨미륵존불이라 쓴 목패를 중앙에 올려두었을 뿐이었
다. 대탄과 대전리 중간 어름의 산내 등성이가 두팔처럼 벌려진 곳에 시내비골이 있었는데,
시동이네가 수년 전에 진관사 아랫녘에서 이사와서 살고 있었다. 계화 김승운 부부는 은율
서 여환만 믿고 따라왔다가 처음에는 시동이네 헛간에 방을 들여 살더니, 칠성암을 늘려 짓
게 되자 그리로 옮겨갔던 것이다. 황회와 정원태가 가끔씩 방문하기도 하였고, 계화는 여환
과 함께 부근의 궁벌리 초성리 오동나무골 등지로 향도를 얻으러 다녔고, 차츰 혼자서 내문
면 인목면 동면에까지 나다녔다. 늘상 칠성암에 향도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니었는데 초하루
와 보름에 원하는 이들이 모여서 기도를 올렸다. 따로이 수도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사나흘
씩 칠성암의 기도방에 머물도록 하였다. 계화나 황회는 향도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일
단 칠성암으로 데리고 왔다. 여환은 처음에는 용화세계라든가 미륵의 출현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고, 보름에 한번씩 있는 수도회 때에나 잠깐 비출 뿐이었다. 계화가 데려오는 사
람들이란 거의가 인근의 농사꾼들이나 겨우 먹고 사는 행상들이거나 부녀자들이었고, 정원
태와 황회가 인도한 사람들은 예전 검계의 행수답게 지방 하리들이나 중인층도 많았다. 그
들은 따로이 약조하기를 때가 무르익기 전에는 절대로 뜻을 드러내지 않기로 하였으며 교세
를 늘려 믿음이 굳건한 향도가 천여 명이 되기 전에는 되도록 설법의 대집회는 피하기로 하
였던 것이다. 계화는 가끔 환자를 위하여 가호마다 방문하여 굿을 해주었고, 여환이 찾아가
밤새도록 독경을 하는 적도 있었다. 칠성암의 미륵인 여환에 다한 소문은 인근 사방에 차
츰 퍼져나가서 그는 매우 영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칠성암을 싸고 있는 높다란 나무에서는 철을 만난 매미들이 다투어 울어대고 법당은 고요
하게 가라않아 있었다. 법당 마루에는 남녀노유 십여 명이 앉아서 여환스님이 나와 착석하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신불수가 되어 입이 비뚤어진 노인이며, 정신병에 걸린 아낙네, 속
병 앓는 남자, 각종 고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또는 잦은 우환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었
다. 이러한 사람들이 입에 입을 건넌 소문을 듣고 줄을 이어서 칠성암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제 갓 선무당이 되어 영험을 받으려는 이들도 있었으며, 여러 군데의 불사를 찾아다니다
가 실망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세상살이에 지치고 붙잡을 데 하나 없는 이들이 대
부분 이었다. 계화가 가호를 방문하여 행여나 하고 찾아온 이들도 있었고, 이웃집의 권유를
받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여환은 법당에 사람들이 모두 모여 앉은 뒤에도 계화가 가르쳐준
주문을 외울 때까지 기다렸다. 계화가 말하였다.
"성신을 맞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해요. 여기 온 이들은 세상 잡것들에게 온통
시달림을 받아 마음이 어지러워져 있지요. 향도가 되려면 먼저 미륵 주문을 외우면서 마음
을 한 곳으로 모아야만 합니다. 나무현거도솔미륵존불, 나무당래교주미륵존불, 나무삼회도인
미륵존불."
한 구절의 염송을 할 적마다 합장을 풀고 절하였고, 삼배를 드린 뒤에 입속으로 되풀이 염
송하면서 통령에 들어가는데 잡념의 갈래를 자꾸 끊으면서 주문에만 집중하도록 하였다. 지
치고 곤고한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귀찮은 생각도 들고, 다른 절에서도 늘상 하던 일이라 별
반 기대없이 따라서 하였다. 여환도 아랫방에서 두 손을 모으로 영기를 끌어모으듯이 묵념
하고 있다가 사람들의 마음이 제법 가라앉았다 싶어지면 법당으로 나왔다. 여환은 먼저 좌
중에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고 나서 중앙의 미륵존불 위패를 바라고 예를 올렸고 계화의 지
시에 의하여 좌중 사람들도 예를 올렸다. 여환은 그제서야 일일이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
다.
"왜 여기 오셨습니까?"
"예... 저... 보살이 어제 집에 와서 여기 오면 잡병이 다 낫는다기에..." 더듬거리는 사람은
풍병이 걸려 얼굴이 비뚤어지고 왼손 왼발이 구부러진 노인이었다.
"어디 사시는 뉘십니까"
"임기동이로. 시내비골 삽니다."
"여기서는 모든 업고를 스스로 바로잡고 고쳐야만 합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소이다.
먼저 이제껏 살아온 모든 일을 미륵님께 고하시오."
노인은 영문을 몰라서 여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환은 다시 맞은편의 노인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어째서 칠성암에 오셨소?"
그는 곁의 노처를 돌아보았다.
"이 사람이 신병이 들어서..."
노인의 아내는 몸이 가랑잎허럼 여위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입술은 까맣게 죽어 있
었다.
"지금은 괜찮습니까?"
"예... 미리 알 수가 없지요. 아무때나 발작을 합니다." "어디 삽니까?"
"시내비골이오. 저 임서방과 이웃간이지요. 저는 이응남이라구 합니다." 여환은 다시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식으로 묻고 나서 말하였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이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게 하였고, 마음을 건강하게 갖지 않으면 몸
의 병도 낫질 않습니다. 칠성암에 오셔서는 누구든지 여태껏 살아온 기쁘고 슬픈 일을 미륵
님과 향도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짓없이 털어내어, 맺힌 바를 풀고 위무받고 새로운 마음으
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부지런히 수도하면 병은 쉽게 낫지요." 웥래가 병이 있어
굿을 하려는 이는 무당의 신들린 푸념을 빌어 자신의 포한과 아픔을 풀고 달래려는 것이
니, 여환이 병 낫기를 원하여 찾아온 이들에게 포한을 털어놓으라는 것 또한 그와 다름없는
이치였다. 실제로 몸도 건강하여지고 쾌활하게 일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칠성암
미륵의 권능을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는... 연천서 남의 고공살이로 컸습니다."
풍병 걸린 임노인이 더듬거리며 입을 떼었고, 사람들은 모두 방바닥에 시선을 주고 그의
말을 들었다.
"호란의 병화가 가시질 않아서 부모들이 저를 길에다 버렸기 때문이지요. 법에 따라서 저
를 거둔 집에서 다섯살부터 잔일과 나무하기로 밥을 빌어먹었습니다. 부모가 찾으려고만 했
다면 곡식을 배상하고 돌려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목숨이 산 것만도 다행이지요. 버려져서
길러준 집에 매인 몸이라 그쪽의 성을 따라 입안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양민이라 사천은 모
면하였는데 명색이 그 집 자식이고 실상은 머슴이었습니다. 그러니 새경은 한톨도 못 받았
지요. 스물세살이 되어서 그 댁에서 나와 처음에는 포천서 머슴을 살았습니다. 새경을 받아
서 논 두 마지기를 장만할 수가 있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도 저와 비슷한 처
지라 관가에서 물긷고 빨래하며 잡일을 하는 급비였지요.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여 그런대로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슬하에 자식을 셋이나 낳았지요. 예전 경술년 큰 흉년이 있을 때 루
히도 남들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갈라진 논밭 팽개치고 대처를 찾아 나섰습니다. 읍내마다
죽이나 끓여서 명맥을 겨우 이을 정도로 주는데, 죽솥앞에서 그릇을 든 채로 죽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저는 그때 우리 부모가 난리통에 어떤 참경을 겪었는가를 알았습니다. 저도 길에
버려졌지마는 제 아내도 젖먹이를 숲에다 던졌습니다. 울고 보채고 하는데 업고 다닐 기운
조차 진해버린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공연히 들판의 먼지 나는 메마른
땅도 파보고 나무껍질도 벗기고 했지요. 아내와 저는 일시 헤어졌다가 양주에서 다시 만났
습니다. 그때에는 아이들은 모두 노중에 버려지거나 병들어 죽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다시
시작을 했지요. 불곡산 아랫녘에서 남의 땅을 부치다가 이곳 대탄으로 나와 강변의 묵정밭
을 개간하였습니다. 관가에 올리고 밭 닷 마지기와 논 세마지기를 장만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아이를 낳았는데 딸 둘에 아들이 둘이었습니다. 딸 하나는 죽고 하나는 출가를 시켰고
아들 둘은 갑자년 흉년에 떠난 뒤 소식이 없습니다. 재작년에 산으로 송엽을 벗기러 갔다가
버섯을 따왔는데 그것을 삶아 먹고 풍병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며칠간 앓다가 일어났으나
저는 어찌된 것인지 그로부터 사지를 바로 쓸 수가 없습니다그려. 농사일도 못하고 있습지
요. 절에 가서 물었더니 우리 두 양주가 허욕과 탐심이 많아 죄를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내
평생에 손에서 농구를 놓은 적이 없고 일없이 넘긴 밥알 한톨이 없는데 무슨 죄를 많이 지
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야 별로 큰 원도 없습지요. 그저 두 부부 한날 한시에 죽어
양지바른 곳에 함께 묻히는 것과, 우리 죽기 전에 유민이 되어 떠나간 자식놈들이 돌아와
만나게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지요. 이까짓 풍병쯤이야 그래두 지난 시절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셈입니다. 얼마전부터 이곳 칠성암 미륵님이 영험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오려
고 별렸더니, 오늘은 아내가 보살님도 뵈었다고 자꾸 가보라고 하여 왔습니다." 임기동 노
인의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 자신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또 흔하게 겪는 일이라서인
지 아무도 감정의 변화가 없는 양이었다. 그런 정도의 고초 간난이라면 온 조선 천지의 백
성들 누구나가 겪고 있는 삶이었던 것이다. 여환이 말하였다.
"노인께서 열심히 근로하여 남부끄럽지 않게 부지런히 살아온 것을 누구나 알고 미륵님은
더욱 잘 아십니다. 그러나 부역은 또한 얼마나 무거우며 조세는 사정이 없지요,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참되게 살아가노라고 죄는커녕 눈돌릴 틈도 없는 이들에게 탐욕과 죄를 뒤집어씌
우는 것은, 포악한 수령이나 간교한 양반들처럼 더욱 꼼짝 못하게 지배하려는 잔꾀올시다.
혹세무민의 악귀나 재물만 아는 부처는 죄로 사람을 묶어 지배하려고 하지요. 다만 미륵님
께서는 노인의 진실을 알고는 있으시되, 깨우치지 않은 것을 탓하십니다. 이렇게 자생하여
끈질기게 상아온 것처럼 자력으로 병도 고치고 좋은 세상도 이루어내야 합니다. 지금부터
전념하여 주문을 외우고 마음이 비워지면 다른 이들에게도 눈을 돌릴 수 잆도록 스스로 힘
을 내어야 합니다."
여환은 그에게 염송하도록 이르고 자기도 함께 염송하면서 한참이나 노인의 경직된 안면을
쓰다음었다. 여환은 성심으로 노인을 생각하면서 쓰다듬었고, 남을 용서하는 마음과 삶을 사
랑하는 마음과 미륵의 끝없는 자비의 마음으로 노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염송하고 있는
노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땀이 구슬처럼 떨어지더니 일그러졌던 안면 근육이 차츰
바로잡히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환은 계속해서 노인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노인의 머리는 바로 돌아오고 비뚤어졌던 입도 가지런해졌다.
"나무 현거도솔 미륵존불."
살마들은 제각기 큰 소리로 염불을 외었다. 임노인은 믿어지지 않았는지 몇번이나 자기 턱
을 움직여보고 입을 벌려보고 하였다.
"날마다 경을 염송하고 미륵님께 예불하시오. 그러면 손과 다리도 온전해질 것입니다." 여
환은 소매로 땀을 씻으며 물러나 앉았다. 이번에는 광증이 있다는 처를 데리고 온 이응남
노인에게 말하였다.
"미륵님께 고하시오."
그는 제 눈으로 임노인의 굳어졌던 얼굴이 풀리는 것을 보았고, 좌중의 사람들은 모두들
두 손을 모아 경을 염송하고 있어서 감히 입을 뗄 수 없도록 엄숙한 분위기였다. 이노인은
그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 여자도 움찔하면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보다 못한 계
화가 말해주었다.
"아픈 사람이 스스로 고해야 합니다."
이노인의 아내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계하에서 전장이 수십 마지기나 되는 부농에서 호강하며 자랐습니다. 열일곱에 진군
장교로 다니던 주인과 결혼하게 되었지요. 진의 장교란 외관만 그럴 듯하였지 군문의 녹봉
은 보잘것이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거의 남의 집 삯일로 밥벌이를 했어요. 주인께서 일
시 군영을 떠나 마전에서 시집살이를 하였는데, 홀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하면서 우리는 미곡
행상도 하고 소작도 지냈습니다. 식구가 아홉이나 되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에 겨웠지요. 시
동생들이 올망졸망 넷이나 되었고 또 우리 슬하에는 아들 딸 둘을 보았지요. 결혼하고 사년
만인 무신년에 팔도에 역질이 번져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동생 둘과 저희 딸이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제 딸은 그때에 네 살박이였는데 어찌나 영리했든지 주인도 그애가 남자
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하였지요. 그때에는 성한 장정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역질을 앓고 있는 환자는 두말 없이 끌어냈습니다. 환자들은 따로이 동구 밖으로 쫓아내어
거기서 꼼짝도 못하게 하였지요. 죽은 사람의 시체는 기다릴 것도 없이 불에 태워버렸지요.
딸아이가 역병이 들어 온몸이 열에 끓으니 보다 못한 남편이 그애를 이불에 둘둘 말아서 안
고 나갔습니다. 저는 울며불며 매달렸지요. 그랬더니 그 어린 것이 오히려, 엄마 다 나아서
혼자 걸어올 테니까 염려 말어 하지 않겠습니까. 남편은 그애를 이불에 싸서 그 위에 새끼
줄로 동여매어 동구 밖 감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다 칭칭 메어놓고 왔다지요. 저는 밤마다
우리 그애가 부르는 듯하여 공연히 뒷산을 맴돌았습니다. 그해부터 저는 헛소리를 하며 시
름시름 앓곤 합니다. 가끔은 그 어린 것이 글쎄 색동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곱게 입고 아장
아장 걸어서 대문간에 들어서는 헛것이 보입니다. 저는 그때마다 달려나가지만 곧 쓰러져
까무러치고 말지요. 점도 쳐보고 굿도 벌이고 부적도 써붙이고 집에는 신당도 모셔보았습니
다만, 헛것이 보이고 온몸이 쑤시는 병은 낫질 않았습니다." 여환스님은 이노인의 아내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여식의 죽음이 너무 애처롭고 안타까워 병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아이를 정토로 보내줍시
다. 부인의 병은 곧 나을 것이오."
계화가 다시 일렀다.
"미륵님의 패를 적어줄 테니 집에 모시고 늘 기도하세요. 만병이 다 물러갈 거요. 다음 수
도회 때에는 건강하게 나오실 수 있을 거예요."
칠성암 수도회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는데, 여환은 신도들에게 자기자신의 원력이 가장 중
요하다는 점을 가르쳤다. 따라서 암자의 주승인 여환이 수도회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 스스로가 자기 고통을 말하게 하고 자기 병을 낫겠다는 성심을 가지고 염송만 부지
런히 하도록 일렀다. 무슨 독경이나 설법도 없었다. 원하는 사람에 따라서 기도가 사흘 밤낮
또는 열흘씩이나 계속될때도 있었는데, 신도들 중에는 미륵을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만나는
이들이 있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찬란하게 비치는 빛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이른봄의 새
풀이 돋아난 넓은 들판같이 보이기도 하였으며, 만개한 꽃송이처럼 나타나거나, 오색의 띠가
되어 바람에 하느적거리기도 하였다. 직접 말소리를 전해 듣는 이들도 있었고, 삼천세계를
날아다니다가 먼 곳에 도솔천의 따사한 양광과 봄바람 같은 훈풍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
을 보았다는 신도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들은 여환의 안내에 의하여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가 있었고 스스로의 고통을 벗어날 수가 있었던 셈이었다. 그들은 각자 흩어져 집에 가서
생업을 꾸려나가면서도 하루 세 번의 염송기도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한두 번 수도회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은 이들은 한번도 빠짐없이 재가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고해
같은 세상에서 전혀 잊혀졌던 각자의 삶에 대한 사랑이 한번 깨우쳐져 확신이 생기게 되자,
그들은 참으로 아무것도 두려울 바가 없는 꿋꿋한 백성으로 변하여갔던 것이다. 재가 신도
들은 인근에 용화 향도들이 여러 명 생겨나자 저희끼리 작은 회를 만들게 되니 사흘에 한번
씩 모여서 기도회를 갖는 것이었다. 여환이네서는 일단 몇몇 믿음이 굳은 신도만 생겨나면
전도라든가 모임을 그들이 주재하여 끌고 나가도록 하였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다는 일은
이처럼 그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확실하지도 않을 것이고, 전파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탄 영근산 아랫녘 칠성암 부근에 있는 시내비골에는 여환이네가 써준 미륵님의 위패를 모
시고 있는 집이 열세 집이나 되었고, 그들은 모두가 열성 향도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자기들
끼리의 모임을 이끌어 나갈 상좌를 뽑았는데, 시동의 아버지인 김돌손 노인이었다. 이응남
임기동 노인 외에도 시동이네 이웃에 사는 방의천등이 시내비골에서는 가장 신심 깊은 향도
들이 되었다.
진관사 아랫마을서 황회가 화주 노릇을 할 적부터 시동이는 떠꺼머리로 그를 따라서 나다
녔었다. 그릐 형 시금이와 더불어 시동이네 삼부자는 벽제서 서소문 밖으로 드나들며 청파
를 잇는 해물장사치의 일원이었다. 김돌손 노인은 젊을 적부터 청파와 종루시전에서 잔뼈가
굵은 행상이었고, 두 아들이 장성하면서는 말도 두필이나 사서 규모가 더욱 짜임새 있게 되
어갔었다. 그러나 시동이는 천성이 느긋하게 장사를 하여 원행의 다리 품앗이로 박한 이윤
이나 남겨먹는 일에는 맞지를 않았다. 그가 한때에 걸립패를 따라다닌 것도 워낙에 행상 다
니기가 지겨웠던 까닭이었다.
시동이는 처음에는 황회나 고달근이처럼 우연히 나라를 등지게 되었고, 죽은 산지니나 이
경순과 같이 범법자로 시작하여 어느결에 낡은 세상을 뒤엎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되었
던 터였다. 노적사에서 정원태, 복만이 식구들과 어울려 검계를 이룰 적부터 시동이는 어는
계원보다도 더욱 철저한 혈당이 되었다. 그는 한양의 검계 살주계의 난리 때에도 산지니 중
길이와 더불어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큰 활약을 벌인 계원이었다.
그는 계에 위협이 되는 종사관 최형기를 제거하기 위해 숨어서 방포하기까지 하였던 것이
다 무엇보다도 시동이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것은 산지니의 죽음이었고, 그들이 검
계의 활동을 그치고 각기 깊은 골짜기에 은거해버린 뒤에도 계원들을 계속 확보하여 혈당들
의 결속을 늦추지 않았던 것도 시동이였다. 시동이가 고달근 황회와 다투게 되었던 것도, 저
들이 솔부리의 게딱지만한 산채에 만족하며 명화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시동이의 공격 때문
이었다. 물론 황회는 시동이와는 생각이 달랐지만 고달근이와 의견이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달근이는 예전처럼 실리와 실속이 없는 짓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하려 들질 않았으나, 황회
는 여환과 내왕하며 강원도와 해서 출입도 하더니 갑자기 자기가 무슨 경천동지할 경륜이라
도 있는 도인처럼 행세하려 들었다.
정원태는 계에서 모두들 대덕이라고 부르고는 있었으나 황회와는 생각이 달랐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생각에 큰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동이는 그런 점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원태는 계속하여 검계의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나, 황회와 여환은 우
선 교세가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원태는 한양 성내에 중인층으로 계가 짜여져야
하고 적어도 저정과 밀접하여 내막을 훤히 아는 내관이나 벼슬아치 가운데 그들을 밀어줄
자들을 찾아내어야 하고, 아전이나 서리라든가 장교들 가운데서도 계원을 심어야 한다고 주
장하였다.
여환과 황회는 그전에 먼저 경조 인근의 백성들 가운데 광범위한 향도 조직이 생겨나야 하
고 고을마다 기도처가 하나씩 생기며 그것을 이끌어갈 상좌로 뽑히는 이가 모자라도 오백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솔부리의 정원태 고달근 황회 김복만 박거사 김시동 등은 팔도의
기근이 한창이던 작년 병인 겨울에 일단 산채를 나누기로 하였고, 황회는 포천으로 나왔다
가 영평에 주저앉아 지금의 무당 처와 성혼이 되었고, 시동이는 그냥 솔부리에 머물러 있기
도 하고 시내비골에 아버지와 형을 만나러 내려오기도 하였다. 결국 정원태는 산채의 일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않았으니 고달근이와 김복만이 두령이 된 셈이었고, 달근이도 천마산에
있기가 심드렁한 눈치여서 복만이의 뜻대로 이루어진 셈이었다.
지난봄에 구월산 월정사에서 풍열대사의 통문이 돌아 오진암 집회가 있고 나서 검계에서도
자체 모임이 있었던 것이다. 근기지방에서 구월산에 갔다 온 사람은 여환과 이경순뿐이었다.
처음에 검계가 짜여지고 살주계와의 연계가 이루어질 적에 천불산에서는 운부스님께서 직접
참석하신 집회가 있었으니, 그때에 이쪽에서는 정원태와 황회와 이경순 대신에 전생이가 다
녀왔던 터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갑자년 난리 이전이라 그들 사이에는 의견의 차이가 없
었다. 살주계와 검계의 뿌리가 드러나고 구월산이 토벌된 뒤부터 조금씩 틈이 벌어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사월에 구월산에서 이경순과 여환이 돌아온 뒤에 가졌던 예전 검계의 계회 때
에 시작되었다. 여환은 검계 살주계의 활동이 실상은 다른 백성들과의 제결이나 연루가 이
루어지지 않고서, 몇사람의 노비와 울분을 품은 장정들이 양반들에 대하여 포한을 풀어본
것에 지나지 않았는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검계는 보다 광범위하게 용화 향도를 얻기 위한
포교의 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검계를 끌고 나갔던 정원태와 모신과 황회, 고달근,
이경순 가운데서 경순은 참석치 않았고, 황회만을 제외한 모든 이가 오진암 집회의 결정에
반발하였다. 정작 피를 흘리고 고생하며 계를 이끌어온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가, 항양 도성
의 곳곳마다 그 강약처를 잘 알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기병 거사가 있더라도 선봉은 우리
라는 것이었다. 오늘 모였다가 내일 흩어질지 알 수도 없는 불확실한 오합지중을 모을 때까
지 기다릴 수도 없고, 그들을 이끌고 궁성을 들이친다는 것은 더욱 믿을 수가 없다는게 검
계원 대부분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소수의 믿을 만하고 용기있는 계원의 확보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여환이 절충안을 내놓게 되었다. 검계는 그대로 예전처럼 식구를 모으며 활
동을 하되 시기가 무르익을 때를 기다려 미륵 향도들의 결행과 보조를 맞추어달라는 것이었
다. 미륵 향도들의 새가 확장될 때까지 서로 도우며 기다리자는 예기였다. 설사 궁성을 점령
하게 된다 할지라도 외방으로부터 관군의 협공을 당하면 버티어낼 수가 없다는 것은 일찍이
이괄의 난리 때를 보아도 분명한 일이었다. 모신이 의견을 내었다. 계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한양의 도성과 궁궐을 지키는 군사로 들어가 그 편제며 지휘며 방위의 내력을 수상히 알아
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장교나 집사들 중에도 끌어들일 자가 없는가 알아보고, 경기도의 각
군현에 있는 아전 서리들 중에서도 계원으로 심어놓을 자를 구하며, 특히 한양의 오영은 반
수 이상이 지방에서 징집된 상번병들이라 그들은 향도나 계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모신은 주
장하였다. 모신의 그러한 의견은 가장 이치가 그럴 듯하고 실질적인 말이라 아무도 이의를
내놓지 못하였고, 정원태와 김시동은 그 일을 우선 실천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김시
동이 자진하여 군영에 입대하기고 하였다.
한양에는 왕성과 근기지방을 방위하기 위한 중안군 위주의 편제가 이루어져 자섯 군영이
있었으나, 총융청 수어청 어영청 금위영 그리고 훈련도감이 있었다. 그중에 수어청과 총융청
은 한양의 외과방어를 맡았으며, 도성을 직접 방위하는 것은 어영청과 금위영과 훈련도감의
삼군영이었다. 훈련도감의 군졸은 모두가 급료병이었으나 어영청과 금위영의 군졸들 반 이
상은 징집된 상번병이었다. 지방 군현에서 상번의 영을 받은 장정은 이삭상번으로 두 달 만
에 교체가 되거나 육식상번으로 여섯 달 만에 끝나기도 하였고, 농번기 넉달 동안에는 매삭
상번으로 달마다 교체가 되었다. 김시동은 양주 목에 나아가 진영에 군적을 넣고 징번에 응
하였다. 서로 안나가려고 하는 판에 번병으로 고하니 차례를 기다릴 것도 없었다. 양주 진영
에서는 양주목사의 보장과 치신장을 내주었고 군복은 스스로 갖추었다.
시동은 호패를 지니고 한양의 오위도총부를 찾아가 점고를 받으면 되었다. 경기도의 진영
군사는 경성의 궁성을 지키게 되닌 송도 양주 관주 수원 장단의 상번병이 입역하였다. 상번
병은 금위영과 어영청으로 배속이 되는데 시동은 어영청으로 군령이 떨어졌다. 어영청은 동
부 연화방에 있었는데 그에게는 실로 감개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였다. 바로 지척의 배오개
누렁다리께에 종사관 최형기네 집이 있었고, 그가 숨어서 방포하였던 느티나무도 그대로 서
있었다.
내수사 노비였던 옹장이 노인네 집은 점방으로 변해 있었다. 시동이에게는 도성의 곳곳이
제 손바닥 들여다본 듯 훤하였다. 어영청 상번병이 하는 일은 입직과 시위 순라의 직임이었
는데, 삼군영의 구역이 다르달 뿐 맡은 일은 모두 같은 일이었다. 시위는 임금이 성 밖으로
거동할 적에 각 영이 나누어 어가를 호위하고 또는 빈 궁성을 파수하는 일이었다. 군병의
수는 그때마다 변조에서 책임 구역을 분담하여 지시가 내려졌다. 임금이 성내를 행행할 때
에는 금위영과 어영청에서 각각 좌우로 나누어 담당하였고, 성내의 어느 곳에 머무르거나
행차중일 때에는 고봉척후와 통로복병을 세웠다.
또한 임금의 성 밖 행차에는 급료병이며 경군인 훈련도감의 정예가 전담하였다. 척후와 복
병은 장교 한 명과 병졸 네 명씩이 파송되었다. 성내에 머무를 적에는 척후가 각 성문루와
구릉 산협에 열네 군데였고, 복병은 여섯 군데에 있었으며, 호위할 때에는 임금의 동가는 경
군의 창검군이 직접 시위하고 금위영과 어영청 향군들은 척후를 다섯 군데에 서고 복병은
일개 요소에만 섰다. 종묘 거동과 사직 거동 등에는 척후 칠개 처와 복병 삼개 처였고, 사신
행차가 있을 때에는 수문 파수와 노상 시위, 그리고 대권 문 밖에서부터 경군 삼십, 향군 백
으로 구획하여 늘어서곤 하였다.
궁성 호위 때의 어영청의 담당구역은 홍화문에서 집춘문까지였으니 임금이 창덕궁에 있을
적이고, 경희궁에 있을 때는 무덕문에서 숭의문 까지였다. 이때 상번군들은 주로 성문의 파
수를 맡았다. 도성을 지키는 데에 있어 각 군영은 다섯 부처로 나누되 전좌중우후로 하였고
훈련도감의 군기는 노란색, 금위영은 푸른색, 어영청은 흰색으로 부처와 계를 쓰도록 하였
다. 경조오부가 동부는 배오개에서 문묘와 숭례문 혜화에 이르는 구역이요, 중부가 종루 운
종가를 포함하여 종묘 창덕궁과 다시 안국방에 닿는 구역이며, 북부가 삼청동에서 사직과
홍화문에 걸치고, 서부는 광통방에서 돈의문 소의문 숭례문에 이르는 지역이며, 남부는 숭례
문에서 회현방 목멱산 일대를 지나 남소문 하도감까지를 대체로 나누어놓은 것이다.
어영청은 주로 동부를 중심으로 한 구역을 맡았다. 어영청은 집춘영과 동영 군사가 궁성의
담 밖을 지켰고 대개 밤 사경과 오경에 순라를 돌았다. 삼군영은 각각 사흘마다 근무 교대
가 되었다. 상번병의 급료는 달마다 쌀 아홉 되와 여비 한 냥과 자장전 여덟 냥이 나왔으나
전량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밀리거나 떼먹히기가 일쑤여서 대개는 자비로 충당하
는 상번 입역자가 많았던 것이다. 면포를 내어 빠지거나 관가에 실낱 같은 연줄이라도 있는
자는 군역에서 모면하기가 쉬워서 군졸의 수는 서리들이 문서상으로만 채우는 때도 많았다.
김시동은 신영의 영문으로 찾아가 요령대로 신고하였다.
"양주 상번군 정병 김시동이 영전 대령하였소."
집사가 문 안의 왼편에 가서 점고를 받으라면서 우선 시동의 기를 죽이느라고 뺌부터 한차
례 갈겨댔다.
"이 자식 번 들러 처음 와봤느냐. 대가리에 종루 인경을 매달았니. 왜 군례를 안 드려."
시동은 성 밖이나 솔부리의 길목에서 만났더면 대번에 달려들어 마빡을 깨든지 코를 터뜨려
놓았겠지만, 어영 병졸이 되자는 속셈이라 그만 눌러 참았다. 그는 얼간이처럼 입을 헤벌리
며 그저 볼따구니를 내리쓸었다.
"양주서 농사짓던 놈이 군문에는 처음이라 용서허우." "농투성이가 어디 네놈뿐이냐. 번
들고 돌아간 너희게 동무들이 그런 것 하나 일러주지 않데?"
집사는 영문 안 마당에 운집한 자들을 돌아보고 나서 시동의 아래위를 훑고 봇짐을 뚫어지
게 노려보았다.
"좌우지간 너희들의 상번 두 달 동안 생살여탈권을 가진 사람은 바로 나여. 내 붓대 하나
로 천상과 하계가 맴돌이를 한다 그 말이다."
진관사 시절부처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로 한양 인근에서 장터 밥을 먹고 봉노 잠을 자며
자라온 종루 토박이 시동이가 집사의 그런 거동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말하자면 놈에
게는 오늘이 소경 초하룻날이라, 대목을 잡는 날인 모양이었다. 시동이가 두말 없이 괴춤에
서 엽전이라도 몇푼 내든가 상목이라도 끊어낼 일인데, 하도 같잖아서 슬슬 까슬러볼 모양
이었다.
"허, 그런 환술에 능하시면 큰돈을 벌 것이오. 내가 주선할 터이니 우리 재간을 팔러 저자
로 나갑시다."
시동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정말로 믿는 꼴을 지어 보이자, 군영집사는 이건 아주 모자
라기가 칠 홉 송장에다 흐리멍덩하기가 염병 앓고 설나은 놈으로만 여기고는 제풀에 속내를
다 드러내어 말하였다.
"얘얘, 어를 어느 영으로 보내주랴. 사대문 수문직은 장사치 상대가 많아 인정전이 그득하
고, 도성 파수는 민가에서 먹고 자니 집이나 다름없고, 순라로 나가면 색주가 기찰에 주효가
흔천이요, 군기 엄하고 고되기만한 궁궐 금문으로 사서 걸핏하면 장교에게 볼기를 맞겠느냐,
말썽 많고 먹을 것 없는 공궐직이나 묘직이나 능직에 가려느냐, 청계천 오간수 개천 치는
공사를 하려느냐, 산에 올라 척후를 서려느냐, 무너진 성벽 보수공사에 가려느냐, 노량진과
안암골에 습진조련을 나가 교련관에 시달리겠느냐. 봇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
다마는 사람은 다 자기 할 탓이니까."
시동이는 타이르듯이 주워섬기는 집사를 행하여 시쭉 웃고 나서 봇짐에서 짚신 한짝을 꺼
내어 내밀었다.
"옜수, 오늘 같은 흉년에 촌에서 뭐 할 일 있소? 마른 짚덤불 모아다가 이렇듯이 신을 삼
아 죽이라도 먹는다오. 한 켤레 가지슈. 한 보름은 넉넉히 신을 테니 그쯤 되면 어는 영문이
될지 시작이 반이라 두삭이 휘딱 가겠수."
집사는 시동의 짚신을 손끝으로 집어올려 문 안으로 집어던지며 중얼거렸다.
"어디 한번 견디어봐라. 다음..."
영문 안에서 쭈그려 앉아 장교를 기다리는 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시끌덤벙 일어났다.
시동이는 실실 웃으면서 그가 동댕이친 짚신을 주워서 무릎 위에다 탈탈 털어서는 봇짐 속
에 넣어버렸다.
"원주 양주는 저쪽이오."
하고 누순가 시동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들은 열의 후미에 앉아서 영문으로 점고받으러 들어
오는 자들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꼴이었다. 시동이는 그가 손가락질한 곳으로 가서 두리번대
며 물었다.
"칠번 군이 이줄이오?"
"시동이 너 웬일이냐?'
하며 비짓가랑이를 잡아당겨 엉거주춤 앉아보니 그는 바로 시동이의 작은삼촌 경립이었다.
시동의 외삼촌은 둘인데 위가 오계원이고 연천서 농사짓고 있었으며, 경립은 농사일을 돕기
도 하고 행상으로 나돌기도 하였다. 일찍이 시동과 함께 그 아버지 김돌손을 따라서 해물
행상을 다녔는데, 시동은 열여섯부터 아예 진관사 행중으로 들어가 황회를 따라다니게 되었
던 터였다. 오경립은 시동과 같은 또래였는데 진작부터 그가 수상한 자들과 당을 일어 다닌
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누님 댁이 밥술이라도 놓치지 않고 사는 것은 솔부리에서 양식을
날라다 먹기 때문이라는 것도 형 계원을 통하여 어슴푸레하니 듣고 있었다. 갑자년 살주계
검계 난리로 소문이 수상하게 들끓을 적에도 경립은 시동이가 혹시 그런 패거리와 어울렸는
가 하여 양주에까지 발길이 뜸하였던 터였다. 그래왔으니 군문에 입역하러 나타난 시동이를
보고 놀랐던 것이다.
"왜, 나는 상번 들지 말라는 나라법인가. 흉년에 요미라두 얻을까하여 치신장을 냈수." 경
립을 껄껄 웃었다.
"성인이 무덤에서 놀라 일어나겠다. 네가 국은을 갚으러 상번 들러 오다니." "국은이 따루
있수. 배부른 게 국은이지..."
"저 군복 꼴 좀 보게."
시동이가 걸친 검은 더그레는 맞질 않아서 소매가 잔뜩 팔꿈치 가까이 올라갔고 벙거지는
꼭대기가 푹 주저앉았으며 질끈 동인 노끈은 나달나달 해져 겹겹으로 매어져 있었다. 시동
이가 물었다.
"강화에 계신다더니 여긴 웬일이우?"
"글쎄, 해물장사야 가을이 제철이니 이번엔 납세 않고 몸으로 때우러 나왔지. 요새는 시내
비골 산다며?"
"예, 집에 있었지요."
경립은 마르고 잽싸게 생긴 몸집에다 얼굴도 행상답지 않게 해끔한 인상이었다. 그의 형
계원은 몸집이 크고 성미도 유순한 편이지만, 경립은 평소에는 얌전해 보여도 화가 났다 하
면 제 집에 불이라도 지를 정도로 철저한 구석이 있었다. 그도 시동의 형 시금이보다는 싸
돌아다며 자란 시동이를 더 좋아하여 어쩌다 만나게 되면 밤늦도록 얘기를 시키고는 하였
다. 경립이 제곁에 쭈그린 사람을 툭 치며 말하였다.
"여보게, 내 작은조카야. 언제 얘기했지..."
그는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눈이 작고 뼈대가 굵게 뵈는 사내였는데, 아까부터 두 사람의
오고가는 얘기를 실실 웃으면서 듣고 있었다.
"나 영평사는 정만일이우."
"양주 김시동이우."
"해물 하러 연평 갔다 오다가 만난 동무다. 아마 서로 뱃보가 맞을걸." 경립이 거들어주었
다.
"총을 잘 놓는다면서 화포군인 별파진에 갈 것이지 여긴 뭣하러 왔수?" 경립에게 시동이
가 방포할 줄 안다는 얘기를 들었던지 정만일이가 물었다.
"화포군에 둘면 날마다 조련이요 낙점하면 상체도 안해주고, 고작해야 남소영 화약고나 지
킨다니 그런 일을 두 달이나 한단 말요. 내가 총 놓는단 소리 아예 입 밖에 내지 마슈." 시
동이 제 본색이 드러날까 염려하여 주의를 주니 오경립은 만일의 자랑을 하였다.
"정서방 형제는 영평서 모르는 이가 없다. 큰정서방은 힘이 좋고, 이 사람은 활을 잘 쏜다.
우리는 전초요 여긴 중초지만 이사람은 대장이다."
"잘 부탁허우."
시동이는 그저 시큰중하니 중얼거렸다. 경립이 말하였다.
"번이 끝나도록 갈라지짖 말고 함께 지내자. 정서방은 교련관이나 기패관들하구두 잘 아는
사이니까 별 고생 없을 게야."
한 초가 백이십칠 명으로 오 초가 징번되었으니 경기도 일대의 행군 장정이 육백여 명 모
인 셈이었다. 다른 오 초는 강원도의 행군으로 편성되어 그들과 함께 두 달 동안 군무를 보
게 되는 셈이었다. 일 초에는 삼 기가 있고 일 기에는 다시 삼 대가 있는데 일개 대는 정군
십 명과 화병 일 명 마군 일 명의 편제로 되었다. 정만일이가 대장이라 하니 열두 명의 우
두머리인 셈이었다.
"내가 영문 초임에서부터 집사와 티격태격하였으니, 필시 저놈이 나를 못 살 데로 내칠 게
요."
시동이가 말하니 정만일은 코웃음을 날리는 것이었다.
"본영에서는 큰소리를 치나, 헤치면 두 달 동안 서로 코빼기 보기도 어려운데 제가 우리를
어찌할까. 염려 놓으소. 우리 대가 되어서 어디 수문직이나 나갑시다." "수문직이 괜찮은가
요?"
"궁궐은 귀찮고 사대문은 번거롭고, 광희문이나 혜화문 쪽이면 한가하고 통행인도 적당이
있어서 지낼 만하오."
정만일이 착실하게 징번에 나온 사람답게 말하였고, 시동은 다시 물었다.
"시위는 설 수 없나요?"
"얘. 말두 마라. 사방에 높은 사람이요 눈에 띄느니 궁것들이니 우리들이야 사람 취급도 안
한다. 군기는 또 보통 엄해야지."
경립이 말렸고 시동은 중얼거렸다.
"저놈이 나를 그리로 내치겠군."
"아니오, 아마 성의 수축 공사나 준천일에나 내보낼 거요. 어깨뼈 부서질걸." 하고 나서 정
만일은 시동이를 빤히 바라보며 이르는 것이었다.
"우리가 도성을 하루 이틀 드나드는 게 아니고 상번하러 한두 번 온 게 아니오. 도성 군사
의 내막은 내 손바닥 보듯 잘 알지요. 성미 급한 줄은 나두 잘 아오만..." 시동은 이놈이 누
굴 찔러보는가 하여 속으로 뜨끔하였다. 슬며시 고개를 숙이는데 정만일은 다시 덧붙였다.
"우리 언니가 뱃보 크기로는 영평서 제일이오. 한번 집에 놀러 오우." 시끌거리고 앉았는
데 각영의 장교들이 장정의 징번 명부를 가지고 나와 초와 대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어영청의 군사는 집춘영과 동영으로 나뉘어 구역을 맡게 하였으니, 집춘영은 함춘원의 북
쪽 문 앞에 있었고, 동영은 창경궁의 선인문과 개양문 아래 있었다. 슬며시 앞줄로 나갔던
정만일이가 군관에게로 가서 뭐라고 얘기하더니 서기가 호명하는데 김시동은 집춘영의 파수
로 떨어졌고, 초관의 인솔에 따라 근무처로 갔다. 나중에 보니 정만일 외에도 그와 같은 영
평 사람이며 먼 일가뻘이 된다는 정대성이란 사람도 같은 부대 소속이 되어 있었고, 시동이
경립이도 그의 대에 들었다. 만일이가 장담하던 대로 그들은 한오에 들게 되었으며 혜화문
수문직이 떨어졌다 수문직은 모두 일 대가 두 오로 나뉘어 오장 한 명에 다섯 명의 향군이
배치되어 두 번 교대를 하였다. 정만일은 혜화문의 수문장인 셈이었고 열두 명은 그의 수하
에 있었다. 그는 위로 기패관과 초관의 지시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먼저 궁궐 파수나
대문 파수를 하고 나서 행순하는 대와 바뀌게 되어 있었다. 즉 순라군이 되어 성 내외를 돌
아다니며 야범을 단속하는 것이다. 정만일 정대성 오경립 김시동 외에도 삭녕에서 왔다는
이시흥이가 있었고, 김성남이 있었다. 시흥은 삭녕의 장포에서 숯막도 하고 농사도 짓고 하
여 사람과 사귀기도 잘할뿐더러 순박하였다. 성남은 그의 이웃에 산다는데 역시 농사꾼이었
다. 정대성의 직임이 원래는 기병이라 전령을 맡든가 임금의 거동이나 능행에 호위하는 일
이었으나, 정만일을 따라서 대문 파수꾼으로 나왔던 것이다. 집춘영은 열여섯 칸짜리 막사인
데 반은 머무르고, 반은 근무에 임하였다. 혜화문은 수유재를 넘어서 곧바로 양주에 통한 길
이라 시동이는 아는 이들을 날마다 만날 수가 있었다.
대개 낮에는 둘씩 양쪽에 창검을 들고 지켜 서 있었고 마지막 조가 연이어 문을 닫고 나서
여섯이 지킬 때까지 파수하며, 어영청의 야순 시각인 오경에 교대하여 순행에 나선다. 실상
둘씩 파수하고 나서 남은 시간에는 자는 일이 첫째지만 요령이 생기면 요미를 팔거나 군포
를 팔아 성 밖의 난전에서 물건을 떼어다 행상하여 이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기중 손쉬운
것이 건어물 등속이었으니 북어나 굴비나 미역이나 하는 따위는 문밖 다락원에만 나가도 종
루나 배오개보다는 서너 푼 쌌던 것이다. 시동은 그러한 요령도 정만일이게서 자세히 배웠
다. 또는 근무하기가 싫거나 몸이 불편하면 성내에 나가 대군을 사서 자기 자리에 세우는
요령도 있었다. 영의 직속 장교는 가끔씩 술잔이라도 사주면 입직 장관고찰에 걸리지 않는
한 눈감아주었다. 황혼녘이나 새벽에 대문을 늦게 또는 일찍 나가려는 자들에게서 인정전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도성 출입이 엄금된 중이나 무당 판수도 있었고 장사치나 난전꾼들도
있었으며, 밀도살한 고기라든다 밀주라든가 하는 온갖 금령에 묶은 범금품이 드나들었다. 한
양을 드나드는 상고들이 말짐을 부리고 가는 때도 있는데 구린 데가 없어도 으레껏 인정비
가 있게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흥인문이나 숭례문같이 규찰이 심하고 번거롭지 않아서 시동
은 그야말로 상번군의 고참인 정만일의 덕을 단단히 보는 셈이었다. 오경립이야 삼촌이라서
두말 할 것도 없었지만 시동은 특히 영평의 두 정서방과 친척처럼 가까워지게 되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오경립, 김시동, 이시흥, 김성남, 정만일, 정대성이 한꺼번에 성문
파수에 서는 것은 문이 닫히고 나서 다음 오가 나오는 오경 무렵까지였는데, 어쨌든 밤에는
파수나 순행 때에 한오가 되어 모일 수가 있었다. 한달 이상이나 같이 먹고 같이 자게 되니
그야말로 단짝패가 되어버렸다. 처음 같으면야 혹시나 입직 장교의 도순에 적발될까 하여
꿈쩍도 못하고 번을 들고 서 있겠지만, 요령이 생겨서 전원이 근무하지는 않게 되었다. 즉,
규찰이 있는 때는 대개가 파루 직후거나 순행 돌기 직전의 사경 무렵이었다. 그래서 그맘때
에만 문루 위와 아래를 지켜 섰고, 슬슬 타락산 아랫녘 객점으로 내려와 탁주도 걸치고 다
른 수성 군졸들과 투전도 벌이며 시간을 때우고는 하였다. 일테면 혜화문 파수 열두 명과
금위영 서영의 입직 스무 명이 손님인 셈이었다. 타락산 아래 우물집이라면 대개 상번병들
이 빨래도 갖다 맡기고 인정으로 치러진 잡물 등 속을 넘겨주기도 하는 집이었다.
"오늘은 우리 차롄가?"
정대성이가 창대를 누마루 위에 눕히면서 하품을 하였다. 비가 부슬부슬 뿌려대는 을씨년
스러운 밤이었다. 정대성과 이시흥이가 문루에서 내려왔다.
"참 오늘 같은 날은 못해먹겠군."
김성남이도 어두운 성문의 처마 밑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경립은 아예 장창을 성벽에
기대어 세워두고 쭈그리고 앉아서 곰방대를 빠는 참이었다.
"우리 대장은 어디 기신가?"
"여깄네."
환도를 찬 정만일이가 소피라도 보았는지 바지를 추스르며 어둠속에서 나왔고 시동이는 문
루의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이런 날씨에 우물집으로 가서 노닥거리게 된 시흥
과 대성이를 부러워하였다.
"젠장맞을, 이런 날 구중궁궐 깊은 곳에는 꽃 같은 궁녀들이 예서 팔딱팔딱 제서 꿈틀꿈틀
할 텐데... 비단 금침에 향밀초 밝혀두고 이잔을 받으소서 또 한잔 받으소서..." 오경립이 호
들갑을 떨었고 정만일이가 짜증을 냈다.
"어 시끄러, 그렇게 급하거든 지금 당장에 월담해라." "이 사람 멸문의 화를 당할 사람일
세. 그게 바루 역적질이여." "잘 알면서 궁녀 타령은 왜 하누?"
"한양 성내에 수만 채의 지붕마다 제 계집 끼고 따스하게 늘어져 자는 판인데... 그러고 보
면 별것두 아냐."
김시동이가 넌지시 내밀어 보았다.
"뭐가?"
만일의 묻는 말에 시동은 천천히 말하였다.
"우리 여섯이 월담하면 죽기 똑 알맞지만, 이런 날 육백 명만 들어가면 사대문이 끝장나겠
지."
모두들 그 말이 하 엄청나서 입을 다물었고 만일이는 기침을 하는 척하였다. 시동이는 얼
른 어조를 바꾸었다.
"날씨가 나쁘니까 벼라별 농이 다 나오네."
"하긴 뒷전의 욕이 아닌가베."
"자 어서 싱숭생숭하게 만들지 말고 쉬었다 와."
그들은 서로 떨쳐내듯 하여 이시흥과 정대성의 등을 밀어서 쫓아버렸다. 그들이 성벽을 따
라서 어둠속으로 멀어져간 뒤에 정만일이가 뭐라고 혼자 투덜거리더니 시동이의 등을 두드
렸다.
"제미랄 거 못해먹겠군. 이건 뭐 장비 포청에 갇힌 꼴이라, 우리두 가세." "괜찮을까... 도
순에 걸리면 경치네."
"까짓 인왕산 호랑이가 목멱산 삽살개 무서울까."
정만일은 침을 퉤 뱉고 나서 시동의 앞을 질러가며 말하였다.
"내가 대장이니 물고장은 내가 쓰지. 아마 인정 치고 얼마 안되었으니까 파루 전에 와 있
으면 별일 없겠지."
"어이, 우리 없는 대신에 병장기 쳐들고 문 옆에 꿈쩍 말고 서 있어. 내일 우리도 자네들
몫까지 서줄 테여."
"연좌율은 아니니까 일진에 맡겨."
이렇게 수작이 오가고 나서 김시동과 정만일이도 문을 떠나 우물집으로 내려갔다. 초여름
궂은 비가 어느결에 그들의 땀내에 전 구군복을 흠뻑 젹셔버렸다.
"주모, 팔팔 뛰는 공덕골 화주 한병 주오."
정만일은 우물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호통을 내질렀고 먼저 가서 옷을 벗어 빗물을 쥐어
짜던 이시흥과 정대성은 놀라서 일어났다.
"아니 이거... 혜화문을 온통 비운 게 아닌가?"
"도총부 마당에 효시감일세."
그들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별무사나 당상관이나 초관이나 규찰하는 도순이
오면 대문에 둘이 섰다가 군호를 내질러 수하하고 다시 위를 부르면 문루에서 적당히 답하
는데, 대개 꼼꼼한 관장이 아니면 누 위로 올라와 살피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둘만 남
기고 모두 이탈해버렸으니 시흥과 성남은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었다. 주모는 늘 있던 일
이라 깎은 밤처럼 매끈하고 쌩쌩한 얼굴로 반겼다.
"에그 우리 수문장님 오셨네. 아무리 술 구하는 재주 가진 한양 토박이라지만, 요즘 시절에
화주가 어디 있수. 공덕골 화주나 옹막 소주는 은밀하게 양반 사대부가에 관혼상제감으루
들입지요. 괜히 그러시지 말고 안암골 습진장에서 유명짜한 우리 집 탁배기나 드시우." "
흥, 언청이가 옥통수 부는 격이라 그건가? 옜소..." 정만일이가 손바닥에 침을 퉤, 하더니
허리춤의 전대에서 명주에 꽁쳐두었던 은가락지 두 쌍을 꺼내어 툇마루에다 딱 때려 엎었
다.
"이거면 충분하지?"
아낙은 가락지를 잽싸게 집어 올려서 입으로 깨물었다가 손바닥에 떨구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요. 포천 송우점의 목구녕을 딱 틀어잡고 앉은 분인데 어련하시겠수. 반
촌에 입납할려구 둔 것이 꼭 한병 남았지요."
반촌이란 어영청의 고나할 구역이나 성균관이 있는 구역이라 군졸이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
었다. 상번병인 그들에게는 자못 기분이 좋은 말솜씨였다.
"자아, 오늘 파수는 이것으로 파루까지 우물집에서 입직한다." 정만일은 큰 소리로 개다리
소반을 탕탕 두들기며 즐거워하였다. 이윽고 화주와 너비아니가 나오는데 시흥은 얼른 두리
번거리고 나서 방문을 닫았다.
"누가 보겠는걸..."
"왜 겁나냐?"
시동의 말에 시흥이는 순한 얼굴을 일그려 웃음을 지었다.
"겁나지."
"도순이 여기엔 안 온다."
"그게 아니라... 화주 한병에 군입들 따라붙을까봐 그러지." "말 난 장에 도야지 끼우면 쓰
나. 아예 문 닫아 걸고 먹지." 정대성이도 한마디 뱉으며 방 문고리를 안으로 닫아 걸었다.
정만일이가 잔을 치는데 벌써 술냄새가 코끝에 짜릿하니 감돌았다.
"목젖이 팔팔 뛰는고나."
탁 털어 넣은 만일이가 다시 거푸 한 잔을 따르고 시흥이도 입술을 핥았다.
"삼 년 전에 파주 댁에서 일 거들고 한번 먹어보고는 이번이 처음일세." "비는 구죽죽히
오것다, 술맛 좋것다, 구들장군이 천하 장군이여." 을씨년스러운 밤에 사대가 맞아 한두 잔
하던 술이 탁주를 동이로 들여다 마시고는 넷이 모두 취해버렸다. 삼경이 지날 무렵 시흥
과 대성은 벽에 기대어 잠들었는데 시흥의 코고는 소리에 문풍지가 달달 떨릴 정도였다.
"상번은 좋은 법이 아닌가. 상것 팔자에 일년 내 굽신거리며 환자나 겨우 타다가 죽 쑤어
먹고 농사짓는 판국에, 이렇게 한양 올라와 군복 입으면 목구멍에 먼지라두 털 수 있으니
말야."
"그렇게 털벙거지가 좋으면 포청에라두 들어가지 그래." 시동이는 빈정대듯이 말하였다.
"나그네? 거 못할 짓이야. 나그네 동무삼지도 말란 얘기 들었지. 급하면 아무나 엮어가야
하거든."
"그럼 무과를 하든지..."
정만일은 그제사 시동이가 이죽거리고 있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 사람 시방 누굴 뜨물 먹은 당나귀로 아는 건가. 우리 따위가 거자 등록이 되는가. 적과
자는 절도의 노예로 한다지 않아."
"두어 달만 상번해봐두 다 안다니까. 농사짓고 장사하고 다 헛지랄이지. 벼슬이 좋지 인물
따루 있다든가."
"우리 사촌언니는 정말 아까운 사람이지. 영평서 정서방이라면 호마를 들어 던졌다구 유명
짜하다네."
"뭘 해먹구 사나?"
정만일은 픽 웃었다.
"청송면 면주인이라네. 난이라두 일어나면 우리 형제가 공을 세워 입신을 할 터인데..." "
태평성대에 난을 바라나?"
만일과 시동은 언간에 어물쩍하며 속내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시동이 중얼거렸다.
"두더지 마누라는 두더지가 제일일세."
어떤 두더지 한 마리 고혼을 택하는데 처음에 헤아리기를 하늘이 가장 높으신 이라 하여
드디어 이를 하늘에게 구하였다. 하늘이 이르기를 내가 만유를 겸포하되 일월이 없으면 내
덕을 나타냄이 없으리라 하니 두더지가 이번에는 일월에게 구하였다. 일월이 이르기를 내가
비록 널리 비추나 오직 구름이 나를 가리니 구름이 내 위에 있다 하거늘 두더지가 다시 구
름에게 구하였다. 구름이 이르기를 내가 일월로 하여금 빛을 잃게 하나 바람이 나를 흩어지
게 하니 바람이 내 위에 있다 하여 두더지가 바람에게 구하였다. 바람이 이르기를 내가 능
히 구름을 흩어지게 하나 오직 전간석불만은 넘어뜨리지 못하니 그가 나보다 위에 있다 하
거늘 두더지가 다시 석불에게 가서 구하였다. 석불이 이르기를 내가 바람을 두려워 않으나
오직 두더지가 내 밑을 뚫으면 곧 넘어지니 그가 나보다 나으리라 하니 두더지가 이에 비로
소 오연자약하여 이르기를 천하의 높은 것이 동류보다 나은 게 없다 하고 두더지와 혼인하
였다.
"나는 본시 농사꾼이라... 일 않구 밥 먹는 이들 못 믿네." 만일은 충혈된 눈으로 시동을
건너다보았다.
"그러한 백성들만 있으면 살기 좋지. 나두 원래가 땅 없는 농사꾼 자식일세 소싯적에 때려
치웠지만... 동류끼리만 산다면야 칠년 대한이 무서울까. 양반이 기중 무섭지." 정만일은 아
직도 시동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군포로 납세하여도 될 것을 뭣하러 다 늦게 징번에 응하였나?" "응, 한양 구경이나 할려
구..."
"거짓말 말어. 오서방한테서 좀 들었지. 무뢰배 동무들이 주위에 많다며?" 시동이는 속으
로 끝내 망설이면서 눈을 아래도 떨구었다.
"어려서 굶주리고 고된 일 하기 싫어서 거사패를 따라다녔네. 난전꾼들 하구두 어울리구."
시동이는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자네나 나나 우리 삼촌 같은 이가 술 한잔 먹구 지지벌겋게 되어 장터에서 가락이나 뽑으
면 왈자 무뢰배지 뭐 별것인가?"
"세상에 마음을 잃은 자들이 녹림에 많이 숨어 있다네. 그런 데나 찾아갈까." "번이 끝나
면 이제 자주 만날 테지. 청송이라면 시내비골서 지척이야." 시동이는 아직은 정만일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였다. 정가 형제와 같은 사람들이 더욱 많이 계원이 된다면 사실 정
원태의 말처럼 도성 궁궐은 이삿집 들어가듯 손쉽게 들어앉을 수가 있을 것이었다. 갑자
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시동아, 시동아, 어디있냐?"
다급하게 부르는 오경립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동이가 문고리를 벗기자마자 오경립의 여윈
얼굴이 쑥 내밀어졌다.
"크... 큰일났다. 별순이 왔네."
정만일은 술이 확 깨는지 눈을 번쩍 떴고 시동이는 이시흥과 정대성이를 깨웠다.
"아이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시흥은 털벙거지를 머리에 얹으면서 한 손으로는 젖은 채로 방 구석에 꿍쳐두었던 더그
레를 주섬주섬 챙겼고, 대성이는 아직도 졸음이 덜 깼는지 그냥 맨상투로 툇마루로 뛰쳐나
가고 있었다. 오경립이 안달이었다.
"출번초관이 나와서 모두 잡아오라고 난리가 났네."
주모가 내다보며 애걸하였다.
"에그 나는 술 안 팔았수. 그렇잖아도 금령이 내려서 버젓이 술파는 집은 하나두 없는데...
이번에 걸리면 우리 식구는 도성 밖으로 쫓겨날 게유." 그러나 정만일은 곧 침착해졌다.
"초관이라면 괜찮아. 가재는 게 편이 아닌가? 당상관의 도순에 걸렸다면 이 길로 군복 벗
어 던지고 줄행랑을 치겠지만... 어떻게 될게야. 자네들은 염려 말고 내가 다 감당을 할 터이
니 내가 이른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만 하게."
"자네 혼자 떠메고 나서면 벌이 중해질 게야. 우리 조금씩 나누어 지시로 하지." 김시동이
가 안을 내었다.
"정서방과 내가 처음에 적경을 받고 먼저 나왔네. 와보니 초상집에 싸움이 나서 뜯어말리
고는 탁주 한잔 얻어 마셨어. 그러다가 시간이 지체되어 이서방과 정서방이 우리를 찾으러
왔다가 주인의 간곡한 청을 못 이기어 탁배기를 두어 잔씩 얻어먹었는데 별순이 오았다는
전갈을 받았노라고... 어떤가?"
"우리가 먼저 왔는데?"
이시흥이 고지식하게 되물었으나, 정만일은 시동의 안에 따라서 결정하였다.
"기왕지사 이렇게 걸렸으니... 수문장인 내 책임일세. 벌을 받기는 마찬가지라 김서방과 내
가 감당을 함세."
그들은 다시 한번 말을 맞추어보고 나서 혜화문으로 내려갔다. 장교가 영군 다섯을 인솔하
여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저놈들을 모두 결박하라."
영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정만일 이하 네 사람을 꿇리고 오라를 지웠다.
"대장이 누군가?"
"예, 저올시다."
정만일이 고개를 들고 답하였다. 장교는 그를 꾸짖었다.
"오늘 입직 장관께서 일기가 부조하니 군병들이 직임에 소홀한 자가 많을 것이라 하여, 근
래 상번병들의 사기가 진작되어 그러한 일이 추호도 없을 것이라 아뢰었거늘... 네 감히 이
문이 어떤 문이라고 도피 이탈하였느냐?"
"어찌 도피할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조금 아까 이경 무렵 저희 관내에 있는 타락산 아랫말
에서 악소패들이 싸움을 벌여 민가의 집시를 부수며 소동한다기로, 그것이 포청 포졸이나
순라의 일임을 아오나 민원이 급박하여 제가 군사 한명만을 내어 출동하였습니다. 가서 본
즉 악소패의 싸움이 아니라 인근 상가에서 밤샘을 하다가 언쟁이 있어 그리되었다가 하옵기
내쳐 돌아오려는데, 상주가 나와 이르기를 날씨도 궂은데 번병으로 수고가 많겠다며 잠시
탁주로 몸이나 덥히라 하거늘 두어 잔 마셨소이다. 그러고 지체를 하는 동안에 저희를 부르
려 다시 두 사람이 내려온 사이에 별순께서 당도하신 모양이오니 선처하여주소서." 장교는
아무 말 없이 이시흥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턱을 한 손에 받쳐 위로 쳐들고는 얼굴을 가까
이 댔다.
"고이헌 놈들... 입에서 단내가 푹푹 풍기는 것이 동이술깨나 비운 모양이다. 금령을 어기고
주육을 판매하는 집이 어디인가?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줄 아느냐? 내 비록 훈련도감의
초관이라 하나 너희 영의 초관과는 같은 군관배로서 처벌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내가 아닌 높은 어른들의 도순에 걸렸다면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이려니와 너희 초관과 나
는 옷을 벗고 도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정일만을 장교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군령을 어겼으나 처분에 맡길 따름입니다. 하오나, 대의 모든 책임은 소관에세 있으니 다
른 자에게는 죄를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너희 셋은 교대가 올 때까지 문루를 지키고, 나머지는
이들을 영으로 압송한다."
초관은 인술한 군사를 나누었고 그들을 앞세워 집춘영으로 들어갔다. 입직 장교는 마침 자
다가 깨어나 이들을 맞았고 별순에 걸린 것을 알고는 일단 가슴을 내리 쓸었다. 두 장교는
서로 잘 아는 사이라 일단 크게 문제삼지는 않을 것 같았으나, 영의 군기가 엄정함을 다른
대에게도 보여줘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 듯하였다. 훈련도감의 출번 초관은 본영
장교에게 인계하고 돌아갔고, 아직 제 차례가 아닌 대가 투덜거리면서 일어나 수문 근무를
하러 나갔다. 장교는 곧 군령을 어긴 정만이리 일행을 영의 앞마당에 꿇어앉히고 날새기까
지 처벌을 기다리도록 하였다. 젖은 땅에 꿇어앉아 있기가 고역이었으나 시동이는 어쩐지
기분이 나쁘거나 초조하질 않았다. 정만일이가 워낙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
시흥이나 정대성이도 우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정만일이가 말하였다.
"설마 죽이기야 할라구. 우리 같은 착한 백성들 상번병까지 끌려와서 높은 나으리들 편한
잠 주무시게 지키노라구 벌써 몇해째던가. 까짓 거 군율의 최고 수형이랬자 효수감밖에 더
되겠나. 도깨비가 되어서 날마다 궁성 밖에 나타날 참이거든." "힛, 참말 이상하네. 내 석삼
년째 상번 올라왔어도 군령에 걸리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왜 그런지 후련하단 말야."
이시흥이가 킬킬 웃으면서 말하였고 정대성은 주의를 주었다.
"이 자식아, 말이야 목소리가 크나 하는 수 없지만, 그 웃음소리 좀 낮춰라. 이럴 줄 알았
으면 내 본색인 기병을 찾아들어 슬슬 전령이나 다니고 거동할 때 앞이나 설걸." "어이구
졸려, 무슨 기척이 있으면 깨워주어. 온 삭신이 노곤한데." 이시흥은 뒤로 묶인 채로 스르
르 모로 넘어졌다. 만일이는 픽 웃었고 대성이가 발로 궁둥이께를 건드렸다.
"고뿔이 들든지 허릿병에 걸릴라. 아무리 윗목에서 똥 싸고 아랫목서 밥 먹는 놈이라두 이
런 판국에 물바다 속에서 잠을 자냐?"
"그냥 두어."
김시동이 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 사이에 이시흥의 코고는 소리가 높다랗게 들려왔다.
이윽고 날이 밝아 각처로 나갔던 군사들이 돌아오고 교대하느라고 부산스러운데 초관이며
기패관이며 대장들이 모여들었고 군사들이 정열한 가운데 군령이 집행되었다. 집춘영의 영
장이 입직 장교에게서 상세한 전말을 듣고 나서 상번병들에세 주의를 주었다.
"궁성과 각 문의 입직 파수는 변방의 방비보다도 더욱 엄중해야 함을 상번병인 그대들은
잘 알고 잇을 것이다. 요사이 군기가 해이해져서 직임 처소를 무단 도피 이탈하는 자가 많
은데, 난리중의 군진이라면 즉결 참수하여도 그 죄가 오히려 가볍다 하겠다. 성문 수직에 있
어서 둘이 모두 결근한 경우에는 장 팔십에 처한다고 군령에 정하여 있다. 원래가 초관 이
상은 각 처벌에 한 등을 가한다고 되어 있으니 입직 장교는 물론이요 본영의 영장인 나까지
도 책임을 모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훈련도감의 별순에 적발되었으니 병조의 처벌은 면했
다 하나 본영의 처벌은 남아 있는 셈이다. 모든 장졸은 이러한 범률이 없도록 각별 신칙하
라."
영장의 말이 끝나자 입직 장교가 나와 판결을 내렸다.
"우선 수직 처소를 이탈한 네 명 모두에게 장 육십을 가한다. 그리고 특히 먼저 이탈하였
던 대장 정만일과 정병 김시동은 하도감 영창에 보름간 유치한다." 하고 나서 장교가 명하
였다.
"시행하라."
영을 받은 군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들을 형틀에 묶어 올리고 볼기를 까내렸다. 두명의
군사가 한 조가 되어서 번갈아서 매를 휘둘러 쳤다. 김시동은 이를 악물고 참았으며 정만일
은 끙끙 소리를 냈고 정대성이는 헉헉 큰 숨을 토했고 이시흥은 마음 턱 놓고 아이고 데고
소리를 마음껏 내질렀다. 그들이 아무리 한창때의 장정들이라고는 하나, 그야말로 매에는 장
사 없고 매가 튀는 몸이 따로 없으니 곤장 육십 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집장 군졸들
이 모두 한솥밥을 먹는 집춘영 동료들이라 에라차, 기합소리만 컸지 실은 반쯤 보아주는 매
였음에도 살이 터지는 것은 어쩌지 못하였다. 이시흥과 정대성은 동료 군사들이 양쪽 겨드
랑이를 부축하여 막사로 데려갔고, 정만일과 김시동은 잠시 그늘에 두었다가 장교들이 모두
청으로 물러간 뒤에 전초에 소속된 대장 몇이 와서 상처를 씻고 고약을 붙이고 무명베를 싸
주었다. 시동과 만일은 정오가 되기 전에 영에 따라서 하도감으로 인수되었다. 하도감은 남
부 명철방에 있었으니 집춘영에서 누렁다리를 건너 연화방의 어영청 신영을 지나 종루 초교
를 건너야 하였다. 초교란 흥인문서 들어오다 첫 번째 다리이니 그 건너편이 하도감이었다.
오간수문과 이간 수문 사이에 있는 삼백구십 칸짜리 대병영이었는데 그 안의 영창은 군사들
간에 흑방이라 하여 군기가 엄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하도감 흑방의 옥리들은 귀졸이라고
알려질 정도였다. 형조관할인 서린방 전옥서는 일반 백성들이 가는 감옥이라 포도청과 마찬
가지고 가족들의 음식 차입이 허용되지만, 병조 관할인 하도감 영창은 유치 기간이 두어 달
인 관계로 일체 잡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도감 흑방의 하루는 서린 전옥서
의 열흘과 같다고 할 만큼 괴로운 곳이었다.
정만일과 김시동이 비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대처 도깨비라고 하나, 볼기살이 터진 위에
소문에도 썰렁한 하도감 흑방으로 끌려오니 코가 석 자 가웃이요 고기눈이 희번뜩하였다.
그들은 데려온 동료 군사들도 그 어두컴컴한 영창으로 들어서더니 인수가 끝나자마자 줄행
라응ㄹ 놓아 버렸다. 하도감 흑방이란 높다란 장광 같은 옥사인데 바로 처마밑쯤에 창살이
나 있고 양쪽으로 굵은 칸살목이 계속되어 있었다. 그 칸마다 군 죄수들이 들어 있는 모양
이었다. 사정으로 보이는 자는 옥사의 입구에 평상을 놓고 앉았으며, 저쪽 끝과 이쪽에 옥리
두 명이 왕래하고 있었다.
"흠, 입직 처소를 이탈하여 음주한 놈들이군."
그는 잠깐 호적지와 성명 등을 확인하고 나서, "소지품은 없는가?"
물었고 정신없이 압송되어온 시동과 만일은 영문을 몰라서 바라보았다.
"이대로 끌려오는 길이올시다."
"허, 괘씸한 놈들. 여기가 무슨 다방골 화초방인 줄 알았더냐. 공으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가 아냐."
김시동이 얼른 눈치채고는 필요없이 고생하기는 싫어서 옥사정을 꾀었다.
"지금이라도 영에 통기를 하면 됩니다."
"그래 느이 멋대루 영에 심부름을 시켜먹는단 말이지. 우선 조련부터 시켜야 군기가 서겠
고나."
하며 사정이 손짓하자 통로에 섰던 옥리 둘이 달려나오더니 불문곡직 휘두르는데 쇠좆매였
다. 그들은 시동과 만일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는데 철푸닥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께가
질리면서 바닥에 나뒹굴 정도의 타격이었다. 대여섯 대를 정신없이 맞고 나서 목에 짧은 칼
을 쓰고 옥으로 들어가니 한 칸에 십여 명씩 앉았는데 모두가 생선 두름 엮이듯 하였다.
두 줄 또는 세 줄이 되어 앉았는데 모두가 목에는 짧은 칼을 쓰고 발에는 족쇄가 달린 길
다란 통나무에 칠팔 명씩이 달려 있었다. 정만일은 앞줄에 김시동은 뒷줄에 달렸다. 옥리는
돌아서서 나무 칸살에 쇠를 지르고는 사라졌다. 시동이 그래도 총기가 살아서 전후좌우를
곁눈질로 살피는데 모두가 군율을 범한 군사들이나 포도청 포졸이나 군노 사령배들이었다.
"여보, 그래두 운이 좋았소. 홍동지에 걸렸으면 거품 물고 들어왔을게여." 시동의 곁에 있
는 자가 소곤거렸다.
"그게, 언놈이요."
"시반 비번인 것 같소. 꼭 씹어 뱉은 대추씨처럼 생긴 옥사정이 있는데 조심허우." 시동이
앞쪽을 바라보니 그쪽에도 죄수들이 줄줄이 앉았는데 자기꼴은 볼 수가 없어 모르겠더니,
이제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꼭 방축 양지쪽에 남생이 늘어서듯 대가리 모으고 두 발 모
아 쪼그렸는데 때가 새카맣게 낀 상판때기에 두 눈알만이 반짝이는 꼴이었다.
"댁두 상번병이오?"
시동이 물으니 그는 한숨지어 답하였다.
"징번당했으니 끌려온 게지, 누가 집 떠나 한양 와서 이런 수모를 겪겠소. 나는 금위영 정
병이우. 집은 공홍도인데 대리 상번을 시켰다가 이 꼴이 되었소." "그러면 이 옥사 전부가
똑같은 사람들뿐이오?"
"아니지요. 저어 제일 끝쪽에 있는 두 칸은 장교들과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의 옥이지요. 그
칸에선 칼도 족쇄고 채우지 않는답니다."
"그 앞쪽에 조용허우. 공연히 연대로 처벌당하리다." 누군가가 뒷전에서 주의를 주었다.
시동이 힐끗 곁눈질하니 뒷자리에 편하게 벽에 기대앉은 자인데 목에 칼을 쓰지 않았다.
시동이가 입술을 오물거려 누구냐는 시늉을 하니까 곁의 사내가 소곤댔다.
"간장이우. 아마 곧 나갈 거요."
시동은 대략 눈짐작으로 옥사 안에 칠팔십여 명의 죄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밥은 안주나요?"
"하루에 두 번 주는데 풀떼죽 같은 서속덩어리에 장을 박았소. 그래두 여기서 죽는 사람은
없어요. 정 못 견딜 만gf 때 나가게 되니까. 흥, 죽을래야 죽을 겨를이 있어야지." 시동이
노곤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매맞은 상처가 쑤셔서 견디기 힘든 중에도 어느덧 앓는 소리를
내며 졸기 시작하였다. 자세가 흐트러져서 갑자기 상처를 심하게 자극할 때는 얼결에 애고
지고 하면서 눈을 떴다가는 다시 쏟아지느니 잠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옥사 안이 두런대는 듯하여 눈을 뜨니 옥리가 통로로 지나가며 외웠다.
"석식 들여라."
간장이란 자가 일어서더니 간살 앞에 가서 대기하였고 옥리가 문을 따주었다. 각 칸에서
나간 자들이 통로의 초입에 갖다 놓은 광주리를 들고 왔다. 과연 익은 곡식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죄수들은 모두 짧은 칼 위로 두 손을 모으고 어미의 부리를 기다리는 새새끼들처럼
위를 바라고 앉아 있었다. 간장은 광주리에서 밥덩이 하나씩을 내어 그들 손 위에다 올려놓
아주었다. 시동이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정만일이가 보고 씩 웃었다. 모든 죄수들이 밥을 먹
는데 칼 위에 두 손을 모아 들고 입에 대고 먹는 모양이 꼭 다람쥐나 쥐 꼴이었다. 죄수들
은 식사를 출입구에서 받아다가 날라다 주는 다른 칸의 간장들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한마디
씩 하였다.
"여보게, 한덩이만 더 주게. 내가 닷새 뒤에 나가면 무명을 들이 터이니." "왜 내 것은 반
이나 모자라게 작은가. 다른 걸루 주어." "장 좀 더 주게나."
그러나 사실 이런 말들은 하나도 보탬 될 것이 없고 간장이라 할지라도 제 마음대로 급식
할 수 없음을 누구나 알고는 있었다. 하도 허기가 져놓으니 기분이라도 나아지려고 밥때마
다 한마디씩 보태는 격이었다. 때로 간장은 주먹밥이 몇덩이 남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기 몫
을 남기고 나머지는 안면을 알 만한 이들에게 한두어 덩이 더 주는 요행수가 생기기도 하였
다. 그래서 으레껏 밥때가 되면 옥내가 술렁거렸다. 죄수들은 아무리 작은 소리로 소곤거린
다 할지라도 입 가진 이마다 한마디씩 하니 옥의 나무 칸살 앞은 작은 북새통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갑자기 꽥하는 고함소리가 나더니 옥내가 온통 소나기 갠 뒤처럼 잠잠해졌다. 시
동이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홍동지, 홍동지 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두들 밥을 덩이째로 아귀
아귀 틀어넣고들 있었다. 옥내의 통로 사이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와서 중간쯤 섰다. 시동
이는 뒷줄이라 그자가 보이지 않았으나, 맞은편 칸의 앞줄에 앉은 죄수들의 표정과 행동거
지로 그자가 사천왕과도 같은 놈인 것을 짐작하였다. 죄수들은 모두 바쁘게 밥덩이를 삼키
느라고 눈을 감고 껄떡거렸고, 어떤 자는 목이 막혔는지 몇번이나 고갯짓을 하고 간장들은
눈을 부라리며 꿈쩍 말고 있으라는 시늉을 하였다. 홍동지하는 옥사정이 소리를 질렀다.
"군령을 어기고 처벌을 받는 놈들이 여기가 종루시전인 줄 아는가. 너희게서 잔치 벌였니?
여기가 어디냐?"
"흑방이오."
죄수들이 목청을 합쳐 외쳤다.
"하도감 흑방이란 곳이다. 여기는 너희처럼 군기가 해이한 놈들을 정병으로 조련시키는 진
영 중의 진영이다. 싸움터에서라면 너희들의 죄는 십중팔구가 참수 효시형을 받을 놈들이다.
이런 시절에 시원한 그늘에 앉아 주는 밥이나 얻어먹으니 개골산 풍치를 즐기러 나온 줄 아
느냐. 이제부터 습진 조련을 한다. 어린진, 열!"
홍동지가 호령하자 죄수들은 발목이 장목에 일렬로 달린 채로 옥의 칸살 위에 발을 걸쳤
다. 앞줄은 칸살 바로 앞이라 등을 대고 누운 채로 몸을 새우처럼 구부려 발을 밖으로 내밀
었고, 뒷줄은 앞줄 사람들 사이로 똑같은 모양으로 내밀고, 맨 뒷줄은 앞사람들의 머리 위로
발을 뻗어 보다 높은 칸살 위에 발을 걸쳐 내미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목에 발목이
묶인 불편한 몸이라 각 칸마다 맞을 리가 없어서 툭탁거리는 소리가 제가끔 들렸다. 홍동지
는 혀를 끌끌 찼다.
"진퇴좌우를 명령대로 따르지 않은 자는 어떻게 하는가?" "참수요."
"목을 베지는 않고 너희 모두를 용서해줄 터이다. 그 대신 염라국 귀녀에게 장가나 가거
라."
시동이가 들으니 다른 죄수들은 그 벌이 어떠한가 잘 아는지 한숨을 쉬고 놀란 눈을 들어
서로 돌아보았다.
먼저 옷사의 입구 쪽에 있는 칸에서부터 철썩이는 소리가 들리며 어이구데이구 하는 신음
이 번져왔다. 시동이가 곁에 앉은 공홍도 상번병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이건 또 뭔가?"
"염라국에 장가 보낸다고 발바닥을 쇠좆매로 치는 것이지." 보아하니 옥사정과 옥리들은
지켜보기만 하고 밖에 번으로 나가 있던 간장들이 치는 모양이었다.
"저 옥사정이 아까 말하던 홍동지란 놈인가?"
"오죽하면 별호가 홍동지가 되었을까. 별감배로 나다니다가 포흠 진일로 귀양갔다 와서 하
도감 옥사정의 자리로 떨어진 모양인데 심보가 개차반일세. 저놈안 입번하여 들어오면 온통
물 만난 개미구녕이 되어 버리지."
짧은 칵ㄹ을 쓴 채로 구부렸으니 목은 나무에 아프게 걸쳤고 발이 허공으로 쳐들려서 궁둥
이만 땅에 간신히 걸친 자세였다. 시동이는 비록 베를 대고 고약은 붙였으나 군영에서 곤장
을 맞은 뒤라 하반신의 상처가 눌려서 진땀이 바작거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속으로 울화
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비록 계의 안이 한양 수직군영의 내막을 염탐하기 위하여 상
번에 응소하기로 되었지만 시동이는 당장에 뛰쳐나가서 군관들과 서리들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바로 옆칸에서 철썩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쇠좆매를 든 간장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
는 웃통을 벗고 죄수들의 발바닥을 치며 나오는데 가슴과 이마에 땀이 흘렀다. 뒤에 따라오
며 지켜보는 옥사정의 얼굴이 그제서야 보이는 것이었다. 시동의 상상으로는 몸집도 크고
두꺼비 같은 얼굴에 눈알이 불거진 험상궂은 놈이려니 했더니, 의외로 딴판이었다. 몸집은
작고 배가 똥똥하게 불거졌으며 볼도 아이처럼 통통한데 역시 목자는 불량하게 흰창이 보이
는 눈알딱지를 하고 있었다. 코와 볼이 붉어 보이는 것이 아마도 별호가 그 덕인 듯하였다.
옥사정은 잔뜩 흥이 나서 제 말대로 산천경개 구경이라도 나온 듯이 뒷짐을 지고 열중에서
매맞는 죄수들을 들여다보았다. 어이쿠 애고고 하는 소리들이 황새 물 건너오듯 전해지는
중인데 시동이의 입에서도 빠짐없이 신음소리가 나왔다. 불이 화끈 하는 듯한 느낌이 허벅
다리를 타고 뒷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사정없는 매였다. 맞자마자 시동이가 소리를 질렀
다.
"야, 홍동지인가 뭔가 너 이자식아."
매가 문득 멈추었다.
"내가 나가기만 하면 네 배때기에 대못을 박아서 숭례문 처마에 매달아 올릴 테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홍동지가 머리를 칸살 가까이 들이밀며 침착하게 물었다.
"언놈이냐?"
"나다, 이 너구리 좆알만한 놈아."
"허허, 그놈 아주 입이 걸기가 사복 개천이로구나. 너 암만해도 자는 범에 불침 놨다." 옥
사정 홍동지가 눈을 빛내면서 이죽거리는데 또 한 소리가 나간다.
"네 어찌 산중 왕을 자처하느냐. 생겨 처먹은 몰골이 가뭄 끝의 쥐참외 꼴이다 이 자식아."
옥사정은 이놈들 보라, 하며 놀란 얼굴로 재차 소리나는 곳을 향하여 눈길을 더듬으며 얼
굴을 들이미는데, 쇠줄 소리가 절걱이더니 어느 발인가가 보기 좋게 면상을 지러버렸다. 정
통으로 콧잔등이를 걷어채고 뒤로 발랑 까졌던 홍동지가 어릿어릿 두 손으로 코를 감싸쥐고
일어나 앉는데, 손가락 사이로 물기가 주르르 흘러 떨어졌다. 두 손을 펴본 홍동지는, "어
코피 나네."
하고는 발딱 일어서서 외쳤다.
"어서 저것들을 끌어내. 아주 곤쟁이젓을 만들어놀 테니까." 간장들을 젖히고 옥리들이 달
려들어 쇠를 따고는 나직한 칸살문을 열었다. 어둠속에서 똑같이 칼을 쓰고 똑같이 장목에
족쇄 채워져 발을 걸치고 있으니 평소에 안면 있던 놈이라도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렸
다. 칼을 안 쓴 간장에게 옥리가 물었다.
"어느 시러베아들놈이 그랬느냐? 잘못 건드렸다. 우리들 달달 볶게 생겼어." "글쎄 그것
이..."
간장이 알면서도 그들이 워낙에 대차게 나온 판이라 오금이 저렸는지 얼버무리는데, 시동
이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내가 그랬다 왜."
옥리가 불문곡직 달려들어 우선 머리통을 한번 지끈 밟고 나서 족쇄를 풀어 일으켜 세웠
고, 만일이도 앞줄에서 떠들었다.
"느이들 똑같은 것들끼리 이러기냐. 내가 발루 찼다." "저 자식이다."
다시 옥리들이 만일이를 쥐어박고 장목에서 끄집어 올렸다. 옥내가 술렁대기 시작하는데
코피를 닦는 홍동지는 잡혀나온 둘을 쓱 훑고 나서 옥에다 대고 말하였다.
"모두 해진."
죄수들은 우르르 발을 내리고는 각 칸마다 홍동지의 코피를 터뜨린 장본인을 보느라고 머
리를 칸살에 부비며 법석이었다. 홍동지는 앞서서 옥사의 입구 쪽에 있는 그들의 입직소로
가더니 벽에 기대어두었던 고무래 정 모양의 장판을 발로 차서 바닥에 늘어뜨려놓았다.
"응 그렇잖아도 요즈음 궂은 날이 많아서 온 삭신이 저리는데 오랜만에 몽둥이춤이나 추어
볼까. 치도곤을 내어라."
옥리가 병장기를 세워둔 선반에서 다섯 가지 몽둥이를 추리더니 기중 가장 굵은 치도곤을
골랐다. 치도곤은 길이가 다섯 자 일곱 치에다 넓이는 다섯 치가 넘고 두께는 한 치나 되는
버드나무 몽둥이였다. 싸움판 대소 수십 전에 안 가본 대처가 별로 없는 시동이가 눈치가
없겠는가.
기왕에 대차게 나왔으면 끝까지 가야 저쪽의 기가 꺾이고, 한번 꺾이면 사화를 붙어도 이
쪽이 당당한 법이라 저질러놓고 보자는 게 시동이의 생각이었다. 시동이는 으악, 소리를 내
지르며 벼락같이 달려들어 선반에 세워둔 장창을 잡아 그대로 창끝을 홍동지의 목줄에다 겨
누었다.
"그 몽둥이 못 내려놓니?"
옥리들은 슬금슬금 곁눈질하더니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정서방..."
시동이가 눈짓하니 멍청히 보고 있던 만일이도 그제서야 제정신이 나서 얼른 환도를 잡아
칼을 빼어들고 옥리들에게 칼짓하며 말하였다.
"얌전히 꿇어앉아라."
"하도감 흑방은 인제 우리 거다. 열쇠 끌러내."
정만일이가 시동이 이르는 대로 옥리의 허리춤에서 열쇠꾸러미를 낚아챘다. 만일이 먼저
시동의 칼을 벗겨내고 시동은 만일의 칼을 벗겨 주었다.
"꿈적 마."
시동이는 그들을 구석에 몰아넣고 창을 홍동지의 똥똥한 배에다 대고 지그시 눌러보았다.
"내 뭐라데? 대못을 박는다구 했잖아. 이건 참 아주 큰 대못이다. 임마, 내가 누구냐 응?
내가 누구여?"
홍동지는 눈의 흰창을 더욱 크게 까고 제 배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모...모르오."
"것두 모르는 자식이 하도감 흑방의 홍동지냐. 망할자식, 내가 누군고 하니 시동이다. 너
별감 다녔다지? 예전에 별감 다니다 난전꾼으로 몰려서 경친 천수 알어?" "홍천수 말이
우."
"그래 이 자식아, 그아이가 내 동무다. 저어 시전이나 배오개나 청파나 동막 삼개 나가서
누구나 붙잡구 물어봐라. 이게에서 누가 기중 독장군이오 하구 말이지. 그럼 그놈을 골라서
시동이 아느냐구 해봐라. 너 이런 왕가뭄 흉년에 탁주한잔 얻어 걸칠 게다. 내가 일찍이 한
강물 거꾸루 떠먹구 자란 놈이여. 어이구우, 이걸 단창에 꿰어서 산적꽂이루 구워 먹을까.
이 자식아, 내가 뭐 너처럼 세도 살려구 군영에 들어온 줄 아느냐? 우리 아저씨가 북병사루
북관에 나가실 때 따라가 비장이라두 해먹을려구 벙거지 물이나 먹어보려는 거다. 내 상번
두 이제 한 달이구, 영창은 보름이면 풀린다. 눈 딱 감구 참자 했더니 자가사리가 용을 건드
려?"
시동이는 다시 옥사정의 뺨에다 대고 슬슬 얼렀다.
"콧구멍을 쑤셔주랴, 눈구멍을 넓혀주랴? 네깟 놈이 어째 홍동지냐? 그 별호는 동막서 명
자깨나 있던 천수의 별호지."
별감 다니다 저자로 풀렸던 홍천수는 한양서 힘깨나 쓴다는 놈이면 대개는 아는 체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라 옥사정의 야코를 그냥 뭉개놓는 격이었다.
"내 말을 알심 있게 들었느냐?"
"예..."
"우리가 옥마다 문 따주고 풀어내놓으면 물론 우리는 죽지 않을 정도로 경을 치고 삼천리
유배 가겠지. 너는 어찌되겠느냐? 우리하구 함께 형을 받고 다정하게 동행이렷다? 저어 극
변에 가면 널 야금야금 씹어서 먹어버릴까."
"자...잘못되었으니 노염을 푸시우."
"가만있어. 이 정서방은 누군고 허니 백삼십 걸음 밖에서 화살 열다섯 대를 일렬로 꽂는
사람이다. 잘 보아두어라. 시절을 못 만나 밭고랑에 묻힌 옥이되 너 같은 잡놈이야 마음만
먹으면 느이 집 모퉁이에 섰다가 온 일가를 유엽전 한 대에 줄줄이 꿰인다. 그 말이여." 옥
사정은 눈을 희번뜩이며 정만일을 치켜보았다. 시동이는 창을 슬며시 늦추어주며 말하였다.
"자아, 그러니 공연히 장판 깔고 으름장 놓지 마라." "장기판 싹 쓸어버릴까, 빅장 부를 틈
을 줄까?"
시동이가 외우니 옥사정은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멀뚱하니 뜨고 올려다
보기만 하였다.
"우리는 이대로 옥에 들어가 푹 쉬고 싶으니까, 네 버르장머리만 고친다면 없던 일로 하겠
다는 소리다."
"예... 저 윗간으로 가시우."
옥사정은 다급하게 말하였고 시동이는 장난기 있게 씩 웃었다.
"힝, 옥사정 우리가 장난이 심했소이다. 군영에 들어와 흑방에까지 들어온 백성들 너무 들
볶지 말고 사정 좀 보아주시우. 술이 되나 쌀이 되나 인정이란 것이 가고 오고 하는데 아닙
니까."
"아무렴 그렇지요."
시동이가 먼저 창을 툭 내던졌고 정만일이도 시동이를 본떠서 환도를 절그렁 내던졌다. 시
동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칼 씌우시우."
옥리들이 멈칫거리다가 칼을 집어드는데 옥사정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만둬. 윗간에 넣어둬라."
시동이와 정만일이는 옥사정에게 꾸뻑해 보이고는 흑방의 맨 끝으로 앞장서서 걸어나갔다.
죄수들은 양쪽 칸살에서 그들을 자세히 보려고 서로 머리를 내밀며 다투듯 하였다. 이름을
대며 인사를 트려는 사람도 있었고, 시원하다는 사람, 더 혼을 내주지 그랬냐는 사람도 있었
다. 아무튼지 시동이와 정만일은 하도감 흑방에 들어오자마자 표를 내고만 격이 되었다. 그
들이 윗간에 있는 동안은 칼이나 족쇄도 차지 않고 지냈는데 이튿날 비번이었던 오경립과
이시흥이 찾아와 무명을 인정으로 썼으므로 윗간의 장교들과 함께 석식을 주막에서 대어 먹
을 수가 있었다.
그들의 징번이 끝난 뒤에 시동은 삼촌 오경립은 물론이고, 정만일, 정대성, 이시흥, 김성남
과 형제처럼 친해져버렸다. 경립은 형의 농사일을 거들고 나서 어물을 하러 떠나야 한다면
서 바삐 연천으로 돌아갔고, 이시흥과 김성남이도 나중에 만나기로 약조하고 삭녕 장포로
돌아갔다. 시동은 드디어 정만일에게 속내를 내비치게 되었는데, 그는 나라를 뒤엎는다는 데
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양반들은 혼내주고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는다는 일에는 눈을 빛
내면서 찬동하였다.
정대성이도 정만일과 한가지로 혈당에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시동은 아직 검계의 회합이나
또는 한양의 장물와주 모신에게는 데려갈 필요가 없지만, 기왕에 귀향길이라 일단 포천의
송우점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얼마 전까지 황회와 고달근은 송우점 난전에다 객점을 열어두
고 있더니 황회가 장가들고 영평으로 넘어간 뒤에 고달근이 혼자 객점주 노릇을 하고 있었
다. 난전꾼들 가운데는 예전 거사패 출신들이 많이 있어서 고달근은 가끔 예전 그의 터전이
었던 안성 여주 등지로 출타하기도 하였다. 천마산에는 복만이가 이름만의 두령 노릇을 하
고는 있었으나 역시 졸개들은 고달근이와 황회를 더 따르는 편이었다. 황회와 정원태는 천
마산에서 내려올 때 제법 재물을 나누어서 갈아먹을 만큼의 전장을 마련하였던 터였다. 정
원태는 영평 양문골에서 작은 글방을 내고 훈장 행세를 하고 파묻혀 있었다. 황회는 백호천
이 갈리는 금화산 아랫녘에 살았는데, 대탄 칠성암까지 이십 리 길이었다. 결국 검계의 집회
처는 송우점 달근이네 객점이었던 것이다.
삭녕 동면의 흥성산은 철원의 배이산 줄기가 마룡내로 뻗어나간 곳에 있었는데, 위로는 강
화벌을 바라보고 바로 앞으로는 철원의 고암산에서 비롯되어 손청탄으로 흘러가는 강화내가
굽이치고 있었다. 삭녕은 황해도와 강원도에 인접하고 있어서 결국은 경기도의 꼭대기인 셈
이니 삼도의 경계가 만나는 고장이었다. 산이 깊고 골짜기가 여러 갈래이며 징파강은 강원
도에서부터 황해도를 돌아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니 군계만 하더라도 일곱 고장이나 넘게 걸
쳐 있었다. 예로부터 이천 안협과 토산과 더불어 삭녕 철원 일대는 숨어 사는 자들이 많고
국가의 행정력이 고루 미치지 않아서 일찍이 명종조에 임꺽정의 잔여 산채들이 두루 흩어져
있던 곳이었다. 해서감영의 구월산 토벌이 있은 뒤에 사선골과 탑고개에 살던 유민들은 감
영에서 면밀히 분류가 되었고, 직접 구월산 혈당들과 관계 있던 식구들은 다시 명화율에 의
거하여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두 군데로 나누어졌다. 즉 예전 문화
재인촌서 탑고개로 옮겨갔던 광대들은 강령진의 둔전을 개간시키기 위하여 뱀내에 정착시켰
고, 탑고개에 살던 괴뢰배며 거사패들은 사선골 사람들 일부와 함께 삭녕으로 옮겨졌던 것
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따로이 갈아먹을 땅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고 그나마 개간하라는 곳
도 못쓸 갯가나 돌밭이었다. 그들은 어디엘 가나 천성을 숨길 수가 없어 아녀자들만 집에
남고 남정네들은 다시 재간을 팔러 출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강령에서도 가까운 해주로
송도로 나다녔고, 삭녕에 머문 이들은 흥성산에 있는 장군사 인근에 의탁하여 양주 포천 송
파 등지의 난전으로 나다녔다. 그들은 절 아래 마을을 이룬 대신에 행하로 받은 전량의 일
부를 불사에 보태기로 하였던 것이다 괴뢰를 놀리는 놀리라든가, 땅재주나, 줄타기, 소리 같
은 재간이라 거사패들처럼 남녀가 떼를 이루어 다닐 필요가 없었고, 멀리 출행을 나가지고
않았다. 왜냐하면 포천 송우점이나 양주 다락원 광주 삼전도 송파 등지에서 관대 물주가 그
들의 연희를 사러 오곤 하였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고달근의 예전 행중이었던 안성 청룡사
의 거사 사당패와 합류하기도 하고 복만이네 식구였던 동작나루 패거리와 같이 놀기도 하였
다. 역시 해서 재인이라면 그들간에도 알아주는 재주를 갖추고 있어서 지난 봄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단오까지 쉴새없이 경기도 일대를 돌아다녔다. 다른 때 같으면 여름철에는 농번기
를 피하여 바닷가로 어선을 찾아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들에게는 강화나 남양 방면이 구역
이 되겠으나, 무엇보다도 순 재간뿐이요 사당 오입 같은 짓은 팔지를 않으니 다른 행중에
붙어봤자 고깃점이나 얻어먹을 따름이었다. 처음에 흥성산에 옮겨왔을 적에 탑고개 사람들
은 모두 함하여 십여 가호 남녀노소 합한즉 삼십여 명이었고 그나마 그해 봄을 나면서 늙은
이와 아이들이 고생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해서감영의 토포군이 탑고개를 쓸어버릴 때
저항을 하였던 그들의 반수 이상이 죽었고, 직접 녹림당과 혈연이 있던 이들이 따로 압송되
어 가버렸으며 그들은 이제 생활의 작은 끄틀만을 움켜쥐고 모질게 살아가고 있었다. 가을
서리 속에 앙상한 가지 꼭대기에 간신히 달린 홍시와도 같은 생활이었다.
그들 중에서 처자를 잃은 사람도 있었고 아내나 남편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는데 전성달
은 난리통에 처자를 모두 잃은 사람이었다. 그는 원래 총대 노인에게서 괴뢰놀리기를 배웠
고 탑고개에서는 기중 재간 있고, 팔팔한 축이었다. 그는 일찍이 마감동과 이갑송이가 탑고
개로 들어와 살기를 부탁했을 때 제일 먼저 나서서 반대했었고, 나중에 풍열스님과 옥여가
중간에 들어 타이르는 바람에 고집을 꺾었던 터였다. 전성달은 재인말 사람들과 구월산 녹
림당의 가족들이 들어온 뒤에는 김기와 이갑송이를 삼촌이나 친언니 대하듯 하였다. 선뜻
구월산 패거리에 들지는 않았으나 먼 데로 출행을 나가서 좋은 풍문이라도 들리면 곧바로
큰돌이나 변두령에게 알려주고는 하였다.
탑고개가 어육이 되던 남 그는 총대 노인과 함께 끝까지 괭이를 휘두르며 저항하였고 총포
에 맞아 쓰러졌다가 깨어났다. 탄환은 그의 허벅지에 박혀 있었다. 그는 총대 노인의 마지막
말도 또렷이 기억했으며 길산의 아비 장충의 졸사도 목격했던 것이다. 그들이 개처럼 감영
으로 끌려가는 가운데도 몇몇 부상 입은 이들이 노상에서 죽었으나, 아직 감영의 신병 인수
가 끝나지 않아서 그들이 떠메고 가야 되었다. 전성달은 노숙 중에 나뭇가지를 꺾어 모닥불
에 태워서 상처를 지지고 그 뾰족한 끝으로 손가락 하나 깊이로 박힌 탄환을 후벼내었다.
그는 가슴이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렸을 뿐 손끝 하나 떨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제 살에 박
혔던 탄환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씩 밤에 잠자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나면 선반 위를
더듬어 담배쌈지에 간직한 탄환을 꺼냈다. 그리고는 손가락 사이로 만지기도 하고 입 안에
넣어 혀끝으로 이리저리 굴려도 보았다. 탄환의 녹은 떫고 신 듯한 맛이 났다. 죽은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생하게 그의 뇌리에 되살아오는 것만 같았다. 전성달은 자신이 이미 그
때 탑고개에서 죽고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반드시 크게 씌어질 자신의 목숨을 아껴야 한
다고 수백 번 다짐하였다.
그들이 흥성산에 들어오기 전에는 군에서 정하여준 대로 자릿재 아래 동대천 부근 갈밭에
다 움을 지었다. 그러나 개간도 할 수 없는 땅이었고 물난리만 만나자 향리에게 사정하여
흥성산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지치와 송이버섯을 채취하여 장에 내어 양식을 구하
더니 다른 약초도 캐게 되어 송도에까지 내다 팔았고, 동절에는 덫을 놓아 피물을 모았다가
송도 전가에 넘겼다.
차츰 형편이 풀리면서 다른 고장에서 흘러들어오는 이들도 있었으니 거개가 흉황을 만난
무전지민들이었다.
그들은 또한 소작지를 얻어서 인목면이나 내문면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여환과 계화가 송
우점에 나갔던 탑고개 사람들에 닿아서 방문하게 되었고, 계화는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더니 우선 눈물 바람이었다. 진작부터 숨어 살던 이들이고 관으로부터의 환난을 당했는
지라 앞 뒤 자르고도 얘기가 통하였다.
여환이 시내비골에 돌아가 뭐라고 전했던지 황회가 오더니 흥성산 골짜기에 있는 장군사에
올라 주승을 만나고 돌아왔다. 전성달은 자세히 들은 바 없으되 그 중이 여환과도 예전부터
잘 알고 솔부리의 황회네 식구들과도 안면이 있는 듯 하였다. 전성달은 황회의 안내로 가끔
씩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먼발치서 보던 암자를 찾아갔던 것이다.
"영평 거사 황서방 왔소이다. 스님 계시우?"
앞장 선 황회가 절 마당에서 이르니 부엌 쪽에서 한 중이 나오는데 온몸을 절룩거리고 있
었다. 오른발은 질질 끌고 있었으며 오른손은 구부러져 허리께에서 흔들렸는데 같은 편의
볼을 계속 일그리고 있었다. 머리를 깎고 회색 물들인 옷차림이라 중인 것은 알겠는데 몰골
이 괴이하여 황회는 잠깐 그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법호스님 어디 기시우?"
그는 성한 손을 들어 절 편을 가리킬 뿐이었다. 황회는 전성달에게 가자는 눈짓을 하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여환스님 아시우?"
말을 거니 그는 흠짓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황회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여환스님과 동기간 같은 사이지요. 스님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중은 물끄러미
섰더니 성한 손을 불편한 손에다 갖다 붙이며 고개를 구부려 보였다. 황회도 그제는 합장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성달과 황회가 절 뒤로 돌아드니 채소밭에서 김을 매는 중의 송
낙 쓴 머리가 보였다. 그들이 다가가자 중은 고개를 들고 송낙을 벗었다.
"어이구, 먼 대까지 오셨소이다."
키 작고 머리가 큰 중의 목소리는 잔뜩 쉰 것처럼 낮고 갈라지는 소리였다. 그는 먼저 황
회에게 말을 걸면서도 눈길은 날카롭게 전성달을 살피고 있었다.
"제가 전에 얘기하던 해서 사람을 데려왔수."
"아... 진작 오시지 않구."
"스님, 문안이오."
전성달과 중이 인사를 나누었다.
"방금 여환스님이 말하던 그 스님을 뵈었습니다. 칠성암에 들렀더니 그 스님 걱정을 하고
우십디다."
"아마... 그럴 테지요. 그이들은 함께 도반 사이니까." 법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암자
의 법당에 들어가 앉았다. 장군사라고는 하여도 초가삼간이니 법당은 토방에 자리를 깔고
중앙에는 나무로 쫀 불상 하나 모셔져 있을 뿐이었다.
법당과 방 한 칸과 부엌이 그 전부였다. 법당 윗방에는 몸이 성치 않은 아까의 그 중이 있
는지 간혹 밭은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은 바로 불타산에서 예전에 강선흥이네 패로부터
쫓겨난 심백과 법호 그 사람들이었다. 불타산 천불사의 목감원과 용두원을 끼고 천왕 노릇
을 하던 시노 소생 심백은 첫봉이네 밀상을 훼방놓고 원한을 사서 선흥이에게 산채를 내어
주고 말았던 것이다. 심백이 일찍이 여환 묘정과 더불어 보경선사 밑에서 수행하였거니와
그들 중에서는 가장 비뚤어지게 성장하여 태자원에서 살인하고는 산문을 떠났던 터였다. 법
호는 아직도 두통 발작증을 앓고 있었는데 실상 두 사람은 서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오던 중
이었다. 그들은 해서를 떠나 처음에 양주로 왔다가 더욱 큰 산채를 차리겠다고 작정하였으
나 수월히 보았던 심백의 부상이 깊어지고 살에 깊은 독이 들어 고약을 붙인다 탕을 달여
먹는다 하며 치료하는 중에 심백은 아예 몸을 망쳐버렸던 것이다. 법호의 정성은 지극하여
그를 부처님 모시듯 하였는데, 그가 청송 직사에 있을 적부터 양주의 두걸승으로 법호와 여
환은 저자에서 마주칠 때가 많았고 여환도 직사의 골방에서 병구완을 받고 있는 심백을 만
나러 갔었다.
먼길을 돌아서 여기 와 만났네그려.
앙상한 심백의 손목을 쥐면서 여환은 그의 귓가에 대고 말하였고, 심백은 얼굴을 일그리더
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난세의 맛이 어떻든가. 자네나 나나 죄 많은 육근이여. 사승께서는 자네 몸이 망가졌
으되 불심은 돌아올 것으로 아셨네. 묘정수좌가 말한 적이 있어. 자기는 똑바로 가다가 문득
벼랑을 만날 것이고, 여환이란 놈은 길 아닌 곳을 허우적거리며 헤매다가 벼랑을 만날 것이
고, 심백이 자네는 벼랑에서 떨어지다가 벼랑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네. 묘정과 나는 진작에
한길로 들어섰고 이제 자네까지 만났으니 벼랑은 멀지 않은 셈이로군.
심백은 다시 천잔으로 고개를 바로 세웠다. 그는 여환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조카, 뭐 말하구 싶은 게 있나?
법호가 물으니 심백은 고개를 간신히 끄덕여 보였다. 법호가 그의 손을 끌어다가 제 손바
닥에 놓으니 심백은 성한 손으로 뭔가 끄적였다. 법호가 말하였다.
자기 대신 큰스님께 재나 올려달라고...
여환은 그때에 심백이 정말로 큰스님의 말씀처럼 자신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법호는 그 뒤에 삭녕으로 옮겨와 흥성 산에다 장군사를 지었고, 심백은 다시 예전의
허심스님으로 돌아가 있던 참이었다. 여환이 먼저 삭녕에 오게 된 구월산 재인들에 대한 당
부를 법호에게 하였는데, 법호는 예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라 쾌히 응낙하였으며, 전에도
진관사에 오락가락하던 황회가 나서서 일을 주선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전성달이네도 절을
건립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재간을 팔 수가 있는지라 등을 댈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
고 또한 황회는 전성달에게 미륵의 향도를 끌어모을 것이며 그가 신당을 모시고 상좌가 되
어주기를 부탁하였다.
"지금 계시는 골이 어디쯤 됩니까?"
법호가 물었고 전성달이 답하였다.
"예, 이 아래로 쭉 내려가다가 철원으로 나가는 산줄기 밑입니다." "그렇다면 아주 적합하
군요. 읍내서 들어오는 길과는 반때쪽이 되니 까요." 전성달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였
다.
"이제 마음놓고 재간을 팔러 다닐 수가 있겠습니다. 호적 없는 저희 같은 것들은 절에서
보를 서주지 않으면 출행은커녕 걸립도 못합니다."
" 절의 송사는 장하게 할 것이 없습니다. 나도 여환스님의 뜻과 같으니, 기도 모임에 쓸 큰
방이나 한칸 들이면 되겠지요."
의논이 되어 탑고개 사선골의 잔민들은 출행을 나다니게 되었고 전성달이는 근기 일대와
해서의 오계준 등이 엮어온 미륵당들을 연결하는 일을 맡았다. 미륵의 용화 향도들은 각 지
방의 상좌들이 기도를 이끌었고, 이들은 황회나 계화나 여환이 번갈아 방문하여 지도하였으
며 한 달에 한번씩 큰 법회가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장군사 법회에는 전성달을 비롯한 예전 탑고개 재인들은 물론이요, 황회의 조카이며 지금
안협 상수리에 사는 이정명이도 참례하였으니 그의 형 이원명이 양주 익담에 살고 있어 내
왕이 잦아 연결하기에 편리한 때문이었다. 즉 황회는 정명 형제가 혈친이라 믿을 수 있었고
전성달은 호적 없는 역민이라 더욱 그러하였다.
또한 정원태, 모신을 비롯한 검계에서는 미리 논의가 되었던 것처럼 용화 향도로 입교가
된 사람들 가운데서 그 핵이 될 만한 사람을 골라 검계 계원으로 뽑았다. 주로 김시동이가
매매행상을 나다니며 계원 뽑는 일을 맡았고, 안협의 이정명은 나이 서른의 농민이라 혈기
왕성하였고 병역에 들어 있어 당연히 검계원이 되었다.
천마산 솔부리패들이 검계의 일원으로 혜음령과 벽제 새원을 근거로 한 살주계와의 긴밀한
연관 아래 있었는데, 정원태는 솔부리를 내려와 줄 포천 송우에 자리잡고 있었다. 송우는 광
주의 삼전나루 송파와 더불어 한양 외곽의 검계의 주요 활동 근거지였다. 시동이는 주로 배
오개 칠패에서부터 송우점 다락원 송파 삼전 퇴계원을 괴나리봇짐 차림으로 뻔질나게 내왕
하였다. 파주에서도 이경순네 주막의 전생이와 장쇠가 번갈아 양주와 각 난전을 내왕하기도
하고 송도의 박대근에게 소식을 전하고는 하였다.
송우점의 왕방산이 마주보이는 저자거리에 솔부리패가 열어놓은 객점이 있었으니 열 칸짜
리 널찍한 마방이 딸린 초가였다. 때가 마침 추석을 앞둔 한가위 장이라 흉황을 갓 벗은 철
임에도 도성 안에서 나온 장사치들이며 원산 강화 등지에서 올라온 지방의 물주들이 북적거
렸다. 고달근이도 솔부리에서 내려와 있었으며 정원태는 시동이와 함께 저자로 내붙인 툇마
루에 걸터앉아 누구인가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어... 닭이 천에 봉 하나라더니, 이건 나 혼자 가랑이 밑이 써늘허군." 곁꾼에게 북어짐을
지워 안으로 들어가던 달근이가 한가하게 앉은 두 사람을 보고 농을 던졌다.
"꽹매기가 앞잡이 아닌가. 우리 솔부리 살림을 자네 아니면 누가 하나?" 고달근이가 원태
에게는 뭐라지 못하고 시동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 자식아, 우린 시방 북어에 눌려 죽을 지경이다. 후딱 날르구 와서 중화상에 끼여 앉아
야지, 맨입에는 냉수도 없는 게야."
"까짓 거, 아저씨가 눌려 죽으면 원산 말뚝의 중군장 표신이나 마빡에 새기고, 한양 봉물짐
의 으뜸으로 내가 내다 팔 테니까 염려 놓으슈."
"저런 버르장머리없는 자식..."
"이리 앉아 좀 쉬지 그러나. 우린 새로 오는 계원을 기다리느라구..." 정원태가 점잖게 말
하니, 고달근이는 그제사 소매로 이마를 닦으면서 슬그머니 궁둥이를 걸치는 것이었다.
"요새 그런데 황가는 뭐가 그렇게 바뻐. 상판을 못 본 지가 여러 달 된 것 같소." "그 아
저씨 도인 다 됐습디다. 그댁 아주머니허구 삼각산에 백일기도 드리러 갔다든데." 시동이가
말해주니 고달근은 못마땅한지 엄지를 세워 코를 힝하니 풀어서 땅에다 휙 뿌리쳤다.
"글도 들은 풍월이 더 요란하고, 무당도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우리는 귀신하구 아예
담을 쌓아서 그런지 눈만 감으면 쇠만 보이더라."
"우리 계의 두령님이 그게 무슨 소린가?"
정원태가 말하였고 고달근이는 혀를 끌끌 찼다.
"검계두 이젠 다 되었소. 하다못해 시골 부잣집 내실에서 패물뒤짐이라두 하는 게 낫지, 이
제는 아예 비린내 쓰고 난전꾼이 되어버렸으니..."
시동이가 평소 같았으면 참지 않고 고달근에세 면박을 주었겠지만, 이제는 솔부리 산채는
온통 그와 김복만이 꾸려나가는 터라 모네 윷이네 끼여들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계의 줄이 있으니까, 이제껏 솔부리가 무사했지요." 시동이는 은근히 달근을 몰아넣었다.
"줄이 끊어지면 아저씨두 무사하지 못할걸."
"그게 무슨 얘기여."
달근이가 어리둥절했다 알아채려는 얼굴인데 정원태가 슬쩍 끼였다.
"아아, 고두령 때문에 계가 잘 지탱해왔다는 얘기 아닌가." "글쎄 알쏭달쏭한데. 굴비두름
으로 줄줄이 달린 신세가 된다는 겐지..." "셋이 올테니까 가가방에는 곁꾼들 들이지 말라
구 이르게. 그리고 우리 보살에게 점심 준비시키고."
"아저씨두 함께 대면하십시다."
고달근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시동이가 정원태에게 말하였다.
"나는 저 사람 안 믿습니다. 산지니두 그랬어요. 여차직하면 솔부리에 숨어서 쏴버리든
지..."
"그래두 황거사하구 고거사는 우리 계를 노적사에서 처음부터 일으킨 사람들 아닌가." "너
무 실리만 따지고 시속 눈치만 보아요."
"반대로 자네도 단처는 많다는 얘기가 되는구먼."
그때에 시동이가 마루에서 벌떡 일어섰다. 장꾼들 틈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지나가
는 키가 껑쩡하고 팔이 길다란 사내를 보았던 때문이었다.
"이서방, 여길세 여기!"
얼른 상대편에서 김시동을 보고는 씩 웃으며 달려왔고, 그 뒤에는 중년과 청년의 두 상한
이 따라왔다. 청년은 해물을 가윽 얹은 지게를 지고 있었고, 중년은 그냥 봇짐을 졌고, 이서
방은 뒤고 있던 나귀 고삐를 중년에게 넘겼다. 나귀 등에는 바릿짐이 그득히 얹혀 있었다.
"거 무슨 봇짐이 그렇게 많은가, 자못 대상부고로군." "응 대목 아닌가. 이게 내 업인걸."
시동이가 머뭇거리며 정원태를 바라보니 그는 고갯짓을 하면서 일렀다.
"전방으루들 들어가지."
"예, 저 나귀는 마방 앞에다 매어두고 짐은 안에 가져다 둡시다. 어서 들어가게." 시동이
가 낯 모르는 이서방의 동행들을 대충 훑어보며 말하였고, 그들은 시동이가 이른 대로 수걱
수걱 따라 하였다. 이서방이란 바로 삭녕서 행상과 숯막을 한다던 이시흥이었다. 김시동이
상번병으로 한양에 올랐을 때 그의 작은삼촌 오경립을 통하여 알게 되었던 동무였다. 시
동이가 가장 친했던 사람은 역시 하도감 흑방에서 같이 고생하였던 영평 읍내의 왈짜 정만
일이었으나, 이시흥과도 돈독한 우정이 생겨나 있었던 터였다. 그것은 물론 그를 검계원으로
끌어 넣으려고 시동이가 남다른 공을 들은 덕이기도 하였다. 시동이는 삭녕 장포의 시흥이
네 숯막에 달포가 멀다고 드나들었으며 그와 함께 남양이나 상화로 해물을 사러 나다니기도
하였던 처였다. 아직은 그에게 미륵도나 검계에 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으나, 서
로 상조하며 살자면 난전을 중심으로 한 장사치들끼리 계를 짜두는 것도 매우 유리할 것이
라고만 일러두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시골의 작은 행상에다 숯막 같은 임시 숙식업을 하고 있던 시흥이고 보면, 배오
개 다락원 송우 송파 등지의 큰 장사치들과 연줄이 없어서 한이었다. 또한 시동이가 그런
이들과 안면이 넓을 뿐 아니라 기개도 있고 울뚝 성미도 어지간하여 사내자식으로는 그만한
성품이 없다고 느꼈던 시흥이었다. 김시동은 진작부터 검계의 대덕 행세를 하였으며 실질적
으로 계를 꾸려가고 있는 정원태에게 그를 소개하리라고 작정하고 있었다. 정원태는 우성
그에게 어슷비슷한 장정들을 끌어들여 상조의 계 비슷하게 엮어 넣어보자고 일렀고, 김시동
은 이시흥에게 그런 얘기를 비치며 날짜를 약조해두었다.
"어유, 송우가 대처는 대처로군. 물화가 쌓인 것이 문안 뺨치겠데." 이시흥은 옷의 먼지를
털며 감탄을 하였고, 시동이가 받았다.
"뭘 흉황 뒤에 대목이라고 오랜만에 시끌덤벙하니까 그런 게지." 정원태는 이미 방안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서 말하였다.
"어서들 앉읍시다."
"예 예, 뭣들 허나 어서 들어가지."
이시흥이 동행들을 재촉하여 방안에 들어와 앉았고, 김시동이가 시흥을 정원태에세 소개하
였다.
"전에 말하던 삭녕 사는 동뭅니다. 상번 가서 사귀었죠." "이시흥이라구 헙니다."
"정원태요. 김서방이 여러번 얘기합디다."
"어이구 뭘 얘깃거리두 못 되는데..."
" 김서방은 노총각이라 저렇게 가상투를 틀었으니 그렇다 치고, 이서방은 식구가 어찌되
오?"
"예, 저도 여태 미장가올시다. 노부모 봉양허며 살지요. 말씀 낮추십시오." "음, 같이 온 동
행들은..."
두 중년과 청년이 함께 꾸뻑하였다.
"문안 올립니다. 장포 사는 조무인이라구 헙지요. 주로 행상을 다닙니다." "저두 장포 같은
말 사는데요, 이두완이라구 헙니다. 남의 땅을 부쳐먹습니다." "허, 그러면 모두가 우리 김
서방 모양 징번에 들어 있는가?" 정원태가 지나치는 듯 물으니 이시흥이 말하였다.
"그러믄요. 저는 아병이고, 조서방은 기병이고, 그리고 이 사람은..." "저는 상번은 않고 행
군역을 지구 있습니다."
이두원이 시흥을 앞질러서 답하였다. 인사가 대충 돌아가는데 정원태의 아내가 몸소 상을
들어다 방 문턱을 넘겨주었고 김시동이 받았다.
"탁주는 좀 있다가 장군사 전거사님 오시면 들여오겠어요." "장군사 총대가 대목은 안 보
구 저자 마실은 또 웬일이오?" 시동이 물으니 원태가 말하였다.
"임진 수로를 따라 파주까지 출행을 나갔다가 양주 거쳐서 다락원 퇴계원 다 놀고 여기 송
우점 들러 영평 철원 놀고는 삭녕 돌아가서 한가위 쇠고, 간령 옹진 패거리와 합대하여 가
을걷이를 따라서 들로 나가 걸립을 돌게 되지. 여기가 마침 지나는 길목일세." "대덕님은
어찌 그리 소상히도 아시우?"
시동이 또 물으니 원태는 빙긋 웃었다.
"내가 거사패나 괴뢰배 같은 재인 광대 뒤치다꺼리를 노적사에서 몇해나 한지 모르나?" "
장군사 식구들은 이제 자리를 잡아 농번기에는 줄창 산속에 틀어박혀 약초나 캐다 팔더
니, 때를 만난 셈이군요."
"자아, 밥 먹세."
조를 나우 섞었으나 그래도 제법 백미가 희끗희끗한 고봉밥이 상위에 그득하였고 송우 제
일의 객줏집답게 북어찜이며 보쌈이며가 맛깔스러웠다. 시흥이는 나물 등속을 붓고 장을 썩
썩 문대어 조밥을 비벼서는 한숟갈 그득히 퍼넣는다.
"헹, 이거 우리 생일 만났네그려."
"올부터 민생이 좀 피나 보우."
"물산이 모이는 근기 제일의 난전이니 그렇지 산간에 가보아. 먹는 중 마는 둥이 대부분이
고 벽촌서는 집 떠난 이가 한 무리여."
그들은 제각기 지껄이며 밥을 먹었고, 상을 물릴 즈음하여 왁자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재인 패거리들이 달려들어왔다. 워낙에 버나라든가 살판이나 어름 등의 재간을 파는
데, 특히 괴뢰배라 하여 덜미를 주로 재간삼아 다니던 탑고개 사람들이라, 사당은 따로이 끼
우지 않았다. 문화의 재인말 광대들과도 다른 것이 그들은 탈놀음도 놀았고, 소학지회도 벌
였으며 늘 난봉가나 배따라기 같은 타령소리도 하고 주로 여럿이 시끌덤벙하여 재간들이 출
중하였으나, 탑고개 괴뢰배는 인형놀림을 주업으로 삼았던 것이다. 풍물잡이 대여섯 명과 버
나꾼 살판꾼 어름꾼 도합 열 명이 넘을까 말까 하였으니, 오히려 저자서 나전 트기는 그런
패가 맞춤하여 재인 물주들도 연희패를 사자면 괴뢰배를 환영하였던 것이다. 정원태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마침 전성달이가 안성 사당패 모가비 출가비 고달근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정없고 차갑기로 알려진 고달근이도 웬일인지 저들 재인 광대들에게는 마음이 통하
는지 술밥도 사고 노자도 쥐여주곤 하던 터였다.
"처음 상면이던가?"
"아이구 첨이라뇨... 대덕님 안녕하셨습니까."
말대꾸와 문안 인사를 정원태에게 한꺼번에 올리면서 전성달이 말하였다.
"저희는 조선팔도에 흩어져 있어두 석삼 년만 이짓 하고 돌아다니면 모두 알게 됩니다. 해
주 관시놀이도 있고 연평 조기철에 용왕굿이 있는데, 거기서 남녘 분들을 모두 뵙게 되지요.
안성 청룡의 모가비님을 저희가 모르겠습니까?"
"어서들 들어오시게."
고달근이는 웃는 낯으로 전성달의 등을 밀어주고 나서 흥성산 장군사 식구들께 점심상 올
리라고 호기있게 외쳤다. 전성달이도 남의 밥 얻어먹는 예절이 있어서 살림 맡은 탁발에게
일렀다.
"찬이야 여기서 내오겠지만 양식은 우리 걸 꺼내어라." 그러나 고달근이는 손을 내저었다.
"허, 누가 공밥 먹여준댔나? 송우에서 저자에 깔린 것이 모두 구경꾼인데 한판 휩쓸어보아
야지. 화주는 길양식 아낄 생각 하게."
하여서 웃고 들어와 앉았고 시동이가 전성달을 몇차례 본 적이 있어서 아는 체를 하였다.
"진작에 오시든가 하실 것이지... 이제 상 다 물리고 배꼽이 팽댕그레한데 술 먹기도 때를
놓친 것 같수. 재담이라두 돌려서 목젖을 칼칼하게 말려두어야 짜르르 넘어가겠는걸." "헛
그 참! 술 꼬이는 말이로군."
이시흥을 비롯한 삭녕 장포 사람들과 전성달의 대면은 이렇듯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처음부
터 계획된 노릇이었다.
정원태 김시동 전성달은 조정에 대한 생각이나 백성이 무엇이라는 것쯤은 또렷하게 아는
편이었고, 그들이 겪은 세월 또한 바람과 구름의 그것이어서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만 보
아도 명치께가 울컥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시흥과 그의 동행들은 워낙 상민으로 체념하여
살아 온지가 오랜 세월이라 막바로 얘기의 중핵으로 질러들어갈 수는 없었다. 시동이가 대
강 행상이나 저자의 객점주나 공장이들간에 상조의 뜻으로 계가 짜여졌음을 설명하였고, 생
업에도 많은 보탬이 될 것이라고만 던져두었는데 이시흥과 그의 동행들은 서로 계원이 되련
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계가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염장에 가도 염간들의 행패가 자심하여 패
거리 없고 연고 없는 소매 행상들은 소금 한 섬에도 선계의 천도를 구하듯 합니다. 또한 작
당이 되어 어물을 구입하면 선주와 유리한 흥정을 할 수가 있건만 저쪽에서 넘기려는 가격
에 매이고야 맙니다."
"그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송상이란 게 뭐 별 재주가 있어서 송상인가요? 짜임새
가 있고 합심합력이 되니까 팔도의 향시를 틀어쥔 것이지요. 우리 기순 일대의 난전과 소매
상들이 계를 이루어 작대가 되면 서강이나 마포 동막 용산 삼개의 경강아치들도 후릴 수가
있습지요."
이두완이는 행상이 아니었으나 그에게도 좋은 생각이 있었다.
"우리네는 살림 가용을 위하여 빨래몽치도 만들고 싸리비도 만들고 무엇보다도 징파강에서
나오는 왕골 갈대로 짠 자리가 잘 알려진 명품입지요. 대부분 공납하거나 시전에 먹이니 제
값을 받나요. 땅 부쳐먹기야 관례가 정해져 있으니 반타작이라지만, 우리도 계가 짜여지면
훨씬 이득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해 실리가 백성의 마음을 보는 급소라던 정원태의 말은 일단 맞는 얘기가 되었
다.
"계가 뭐 별다른 게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살자는 얘기요." 하고 나서 정원태는 입을 떼
었다.
"그런데 무턱대고 이윤만 쫓아 움직이는 것 또한 직심이 오래 가지 못할 터인즉 우리 계는
교를 믿어 마음을 올바르게 해나갈 규칙을 세웠지요." 조무인이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교라니요, 절말씀인가요?"
"절은 절입니다만..."
정성달이 흥성산 장군사에 기댄 걸립패라 스스로 나섰다.
"부자들께 공양미 실컷 받아 처먹고 그들만 위하여 목탁 때려 기원하고, 돈이나 양곡 한줌
바칠 길 없는 우리네 상것들에게는 눈이나 흘겨대는 그런 절이 아니지요." 이두원이 말하
였다.
"그런 절이 있다면야 부처님의 본마음이 기신데 왜 저희가 마다합니까. 우리네야 믿을 데
가 없으니 절에는 생각도 못하고 기껏 서낭당에 축수나 올리고 무꾸리도 하고, 노인네들은
뒤란에 정화수 떠놓고 미륵님께 빌지요."
"바로 그... 우리 계가 마음을 지켜나가기로 정한 분이 미륵님이올시다." 정원태가 말해주
니 조무인은 그제사 마음이 놓이고 미륵님쯤이야 우리도 벌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난 또 무슨 공맹의 하늘 같은 도통이 있어야 될 줄 알았더니, 미륵님이라면 진작 어릴 적
부터 모친께서 애들 하루거리나 고뿔만 들어도 찾고 빌어놔서 귀에 굳은살 배길 정도루 들
었소이다."
"진작부터 우리 계에서는 법회도 가지고 수도기간도 정하여 모임을 끌어왔소. 마침 김서방
이 한양에 상번 갔다가 돌아와 새 동무들이 생겼다며 계에 끌어들이기를 청하니 주변에서
모두들 승낙이 된 것입니다. 연천 삭녕이 임진강 북로 징파강을 통하여 지척이니 장포 사람
들은 모두가 삭녕계에 속합니다. 마침 그곳 법회의 상좌 되는 이가 여기 전거사로 오늘 출
행의 귀로에 송우에 들르게 되었으니 인연이 든든합네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정원태는
앞쪽에 앉은 이시흥 일행을 슬그머니 살펴보았다.
"세 분이 모두 장포 분이시고, 향리에 가시면 친지들도 많겠지요. 원래가 미륵님의 뜻이라
하면 온 세상에 차별이 없고 질병이 없으며 상극이 없는 상생의 세상을 널리 펴자는 것이지
요. 그런즉 장군사에 의탁한 전거사로 상좌를 삼은 뜻도 잘 아실 겝니다." 전거사가 스스로
말하였다.
"저 같은 천출 재인이 어찌 여러분처럼 양민이니 상인이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허나 대덕
님 말씀처럼 미륵님의 뜻이 차별 없는 상생의 도에 있은즉, 종사께서 제게 삭녕 미륵도 상
좌의 임을 맡기셨습니다."
"아, 그러믄요. 요새 누가 저자에서 재간 팔았다고 능멸하는 이가 있습니까. 양반도 굶주리
면 들병이 술장수가 되는 세상인데, 벼슬아치 빼놓고는 온 천지가 천것들인 셈이오. 더구나
절에서 미륵님 모시려면 하다못해 염불 비나리도 우리보다야 댁네들이 능숙하겠지요." 이
시흥이 유쾌한 어조로 말하여 잠시 모쓱하던 자리가 편하게 풀어졌고, 전성달이 말하였다.
"달포에 한번씩 흥성산 장군사에서 종사님을 모시고 법회가 열립니다. 이번 보름은 명절이
라 그믐과 초하루 겹쳐서 대탄 칠성암에서 큰 재가 올려집니다. 시주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올시다."
"그게 다 정성 아니오?"
"정성껏 하면 되는 게지."
조무인이 걱정스레 말하였다.
"기왕에 믿는 일이라면 병도 고칠까요?"
"죽을 병도 살리지요."
김시동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였고 조무인 대신에 이두완이가 말하였다.
"이 아저씨 아주머니는 속병이 나서 미음이나 죽으로 연명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
삼촌네도 늘 질환이 떠나질 않습니다. 무슨 병이든 다 낫는단 말이오?" 이시흥은 믿기지
않는지 전성달과 정원태를 번갈아 뚜릿거리며 바라보았다. 김시동이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
었다.
"우리 미륵도의 종사님이나 만신님은 물론이고 신심 깊은 상좌들도 병을 고친다구. 역병으
로 다 죽어 거적에 싸다 내다 보린 사람도 살려 내시는 걸 이 두 눈으루 똑똑히 보았으니
까. 믿기지 않으면 대법회 큰 재 때에 참석해보아. 거기 그 사람이 나온단 말야." "어이구
살다 보니 별 신통한... 그런 조화 속이 있다면 이는 필시 우리 백성들의 가엾음을 아신 하
늘이 정토를 이루려는 모양일세. 나는 계에 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우리 아는
이들도 모두 끌어올릴 작정이우."
이시흥이도 조무인과 이두완이도 방바닥을 치며 뒤늦은 입교를 찬할 정도였다. 그들은 차
장 전에 장포로 돌아갔고 며칠 뒤에 전성달이 이시흥의 숯막을 방문하기로 약조가 되었으며
거기서 다시 시흥의 친지들과 상면하기로 되었다.
시동이는 대탄 시내비골로 가서 한가위를 지냈고, 그의 외삼촌들인 오계원과 오경립이 번
갈아 다녀갔는데 벌써 이시흥과 동행하여 삭녕 흥성산 장군사에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삭녕
장포 사람들과 연천 사람들은 이제 장군사를 중심으로 교세가 늘어날 모양이었다. 시동이와
정원태의 의논으로는 시동이의 혈친으로서 가장 밎을 만한 오경립을 검계의 장포 계주로 삼
기로 하였던 것이다. 전성달은 미륵도의 삭녕 상좌이니 황회에게 일임하면 될 것이고, 그들
은 미륵도를 내세워 계를 확장하고 그 가운데서 검계의 핵심이 될 만한 인원을 가려 뽑을
셈이었다.
지난번에 송우로 찾아왔던 이시흥 조무인 이두완은 병역으로나 나이로 보나 검계에 들 만
하였고, 영평 쪽에서는 시동이의 권유대로 기개있고 호방한 정만일 정호명 형제를 계로 끌
어들이기로 하였던 것이다.
대탄 시내비골에서 영평 읍내까지 삼십 리가 재 못 되는데 강변을 따라서 서쪽으로 곧장
나아가면 멀리 불곡산 머리가 보이고,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정원태는 김시
동의 안내로 정만일에게 찾아가는 길이었다. 김시동과 정만일은 지난번 한양에서 보낸 상번
의 군영 생활과 하도감 흑방에서 함께 이탈죄의 벌을 받은 뒤부터 죽마고우 샅은 사이가 되
어 있었다.
시동이가 세 번이나 영평에 놀러 갔었고, 정만일은 제 형 호명의 집에 다니러 왔다가 시내
비골 시동이에게도 들렀었다. 그들은 밤이 이슥하도록 살기 힘들고 천대받는 세상살이에 대
하여 초란을 주고받았고, 시동이가 실상 자신은 녹림당과 한패라고 밝혔다. 위험을 무릅쓰고
거기까지만 발설해보았는데 예상대로 정만일은 놀라기는커녕 시동이의 손을 마주 잡으며 반
기는 것이었다.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 뜻이나 재주도 펴보지 못하고 촌구석의 무지렁이로 끝날 바에야, 화
적이든 무뢰배든 간에 대적이 되어서 살다 간 흔적이라두 남겨야 할 게 아닌가.
시동이는 검계와 살주계의 남은 자들이 미륵도의 교세에 힘입어 조정을 뒤엎는다는 계획은
밝히지 않았으나, 그에게 말의 책임이라도 지우려고 넌지시 물었다.
대적이 되었다가 일을 그르치면 참형을 당할 것이오. 무리가 커져서 관군과 맞서면 역적이
될 터인데 일가 구몰하여도 좋단 말인가.
정만일은 껄껄 웃더니 갑자기 안색을 바꾸어 선반에서 단검을 내려 시동의 목에다 겨누었
다.
네가 의기를 나눈 동무 사이라더니 감히 누구를 떠보고 희롱하느냐. 지금 관가로 달려가
고변하기 전에 내 칼을 받고 죽어라.
정만일은 단검을 쳐들어 찌를 기세를 보였고 김시동은 다급하여 그의 손목을 잡으며 말하
였다.
자네 갑자년의 검계지변을 알고 있는가. 내가 바로 그 계를 짰던 사람이여.
정만일은 단검을 쳐들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픽 웃으며 칼을 내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자네가 여간내기가 아니라구 알구 있었어.
하고 나서 정만일이가 얼굴 하나 일그리지 않고서 손가락을 베어 흐르는 피를 술잔에 떨구
었다.
맹세를 어찌하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지.
정만일이 내주는 단검으로 시동이도 손가락을 베었고, 그들은 같은 잔에 섞인 피를 조용히
마셨다.
정만일이 잔을 들면서 말하였다.
홍길동과 임꺽정의 이름을 빌어 맹세한다. 서로 배신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을
함께 한다.
나중에 시동이가 그가 중얼거린 말 가운데 길동과 꺽정이란 또 무어냐고 물으니, 정만일은
경기도 일대의 난전 무뢰배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맹사라고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시동이도
소싯적에 노인들의 한담 가운데 여러번 들었으며 나중에 경강이나 배오개의 봉놋방에서 투
전을 벌이거나 술 한잔 먹으며 옛말삼아 나오는 예기들을 들었던 터였다.
해서 대적 장길산이는 아는가.
시동이가 모른 턱하고 물으니, 정만일은 더욱 아는 체를 하였다.
요즈음 길산이 이름 모르는 자가 어딨나. 관군이 구월산을 이 잡듯이 토포했어도 못 잡았
다던데. 금강산에서 수도하여 축지법도 쓰고 신병을 부린다더군.
시동이가 황회와 원태에게 들어서 길산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으되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정만일은 한숨 쉬어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손바닥만한 땅덩이에서 티끌보다두 못한 몇명의 벼슬아치들이 저희만 살아야겠다고 억
누르고 쥐어짜고 지랄들이니, 이제는 찍소리라도 지르고 가야 할 판이야. 우리도 예전 선조
기축 대동계 난리 때에 사돈의 팔촌까지 적몰되어 간신히 산간으로 피했던 집안 자손이지만
모두 부지런하여 근실하게 살아왔다. 이 골 상리 사는 대성이두 우리 먼 친척뻘인데 궁장토
의 작인으루 포한이 많지. 그리구 내가 언제 얘기했지? 청송사는 호명이 언니는 내 사촌인
데 나보다 한 살 위지. 그 골서 어린아이도 잘 아는 장사야. 호마를 들어 던졌다니까. 옛날
처럼 국란이 있었다면 평지 돌출하여 이름난 장수 노릇을 했을 걸세.
시동이는 진작부터 검계의 계주 노릇을 하는 정원태와 정만일을 만나게 할 작정이었으나,
삭녕의 일이 채 끝나지 않아서 추석을 넘기고 말았던 터였다. 정만일의 집은 백호천 건너
마전서 오는 길가에 있었으니 읍내의 서쪽 외곽인 셈이었다. 그들은 만일의 집에 들어서기
도 전에 들에서 손짓하는 그를 만났다. 그는 한찬 나락을 베는 중이라 동네 사람들과 함께
두레일을 거드는 참이었다. 시동이가 말하였다.
"허허, 내가 본시 농투성이면서 행상으로 떠돈 지 오래되어 농번기를 몰라봤구먼." "농번
기가 따루 있어? 땅 파먹구 사는 놈들이 늘 바쁘지. 이거 어쩌나 동동 팔월이랬으니 자네
들도 일복 터졌군."
"뭐 잘되었소. 보아하니 결속일인 모양인데 부슬비라도 내렸다가는 낭패 아니오?" 정만일
이가 원태를 바라보고는 다시 시동이에게로 눈길을 돌리니, "우리 대덕님일세."
인사를 시켰고 정만일이가 두 손 모으로 공손히 절하였다.
"존함은 여러번 들어 모셨습니다. 먼저 올라가 기십시오." "아니오. 기왕에 여기 왔으니 오
랜만에 들일 좀 해봅시다." 정원태와 시동이는 만일이네 두레 사람들과 더불어 추수하는
일을 도왔고, 저녁에 볏단을 묶어 논두렁에 널어놓고 돌아올 때는 이미 서로 검불을 털어주
는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고된 일을 하고 나니 밥은 입 안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하였고 고봉으로 먹고 나니 모두 온
몸이 녹적지근하였다.
정만일은 건넌방에서 원태 시동이와 이마를 맞대고 앉아서 비로소 계의 이야기를 꺼내었
다.
"본현은 원래 작은 고을인데 전지가 비옥하여 대개는 다른 곳보다 궁기가 덜한 고장이지
요. 뚜렷하게 세간에서 환로에 나가 출세했다는 사람도 없고 거의가 산간의 농군들입니다.
삭녕의 시흥이나 연천 사는 경립이는 그래도 매매 행상으로 대처에도 나다니고 하여 물정을
알지만, 여기서는 계원이 될 만한 자가 뚜렷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정원태는 만일이의 얘
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도 있소. 미륵도를 펴나갑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읍내서 땅 많고 부자인 이철신이를 넣는 것이 유리할 겁니다. 나하구
동갑내기인데 명당이라면 혹하지요. 그는 부농이지만 양반 못 된 것이 한이라고 하는 자입
니다. 그렇지만 철신이만 우리 패에 든다면 본현의 아전들은 한 손에 주무를 수가 있지요.
철신이네 사랑이 바로 그자들이 모여서 한담도 하고 투전도 노는 곳이지요." "음, 그런 사
람이라면 우선 내가 명당 얘기나 역학 얘기로 인사를 트고 나서 여환스님을 대어 용화 향
도를 삼으면 되겠군."
원태의 말에 시동이는 일어나려고 하면서 말하였다.
"쇠뿔은 단 김에 뽑으랬다고 지금 가서 만납시다."
"아니야, 정서방이 먼저 언질을 주고 나서 내가 못 이기는 체 찾아보는 것이 낫지." 원태
의 의견에 만일이도 찬동하였다.
"예, 원래가 촌부자라는 것들은 타관 사람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혹시 재물을 탐하여 곡식
이라고 툭내려고 꾀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우연히 놀러 간 듯이
하고서는 신을 잘 보는 이가 있다더라고 운을 떼겠습니다. 필시 이가는 현달한 조상이 없어
애가 달아 있는 판이라 선산을 보아달라고 조를 것입니다. 그때에 대덕님이 오셔서 몇마디
하시면 쉽게 마음을 잡을 수 있겠지요. 처음에 저는 전혀 소문만 들었지 서로 모르는 척하
겠습니다."
"그게 좋겠군."
"장군사 대법회 때에 영평 사람들도 좀 참례토록 할까요?" 시동이가 물었고 원태는 잠시
생각하였다.
"글쎄... 워낙 거리가 멀고 오히려 여기서는 대탄 시내비골이 더욱 가깝잖은가. 그리고 지척
에 황거사도 살고 있으니 그의 처를 시켜 따로이 법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겠네." "이러
면 어떨까요... 철신이가 가세가 부요한즉 마음만 내킨다면 틀림없이 그의 집안에 신달을
차릴 수가 있을 겝니다."
정만일이 말하였다.
"그의 집에 차려도 괜찮고 아니면 저희 집도 좋지요." "철신을 보고 나서 정하도록 하세."
"한번 더 오셔야 되겠습니다."
한번만 오겠나, 자주 와야지."
원태와 만일이는 주고받는데 시동이가 말하였다.
"자네 내일은 바쁘겠지."
"눈코 뜰 새가 없다네."
"그러면 사흘 뒤에 어떠한가?"
"무슨 일인데?"
"자네 사촌언니를 만나봐야지."
정만일이가 웃는 얼굴로 대답하였다.
"뭐 내가 없어도 청송 가서 정호명이네를 찾으면 다 안다네. 내가 보냈다면 반색을 할 것
이고..."
"우리가 뭐 하룻밤 유숙을 청하러 들르는 나그네인가. 마음을 통하자는 것인데 서로 믿지
못하면 말문도 열리지 않는 법일세. 자네가 다리를 놓아야지." "까짓 그러면 낼 저녁에 가
세나."
"추수는 어떡하고?"
"모레 중화참까지 돌아오면 되겠지. 그 대신 우리 집서 참을 내기로 하면 두레에서두 불만
들은 없겠지."
세 사람은 저녁 늦게까지 얘기하는 중에 갑자년의 검계와 살주계 얘기가 나오게 되어 시동
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설명하였다. 그는 특히 산지니의 얘기도 해주었고, 최형기를 맞히
려고 그의 집 앞에서 매복하던 얘기도 해주었으며, 한양 역관의 집을 들이치던 얘기들을 하
였다. 정만일은 신이 나서 연신 그래서를 연발하였고 산지니 등의 계원들이 참수되던 대목
이며 그의 누이가 자진하던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비분하였던 것이다.
이튿날 정원태와 김시동은 대탄으로 일단 돌아갔다가 저녁에 청송 정호명의 집에서 정만일
과 만나기로 하였다. 시내비골로 들어가는 길에 영근산 아랫녘 칠성암에 찾아가니 여환스님
과 계화가 반가이 맞이 하였다. 시동이는 대충 이제까지의 진행 과정을 말하였고, 여환은 벌
써 흥성산 장군사의 대법회 때에는 장포 사람들과 연천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마침 황거사의 작은 조카로 안협 사는 이가 우리 도에 들게 되었는데, 이정명이라
고... 해서 오는 소식은 그쪽으로 기별해주기로 되었소." "이 골 익담 사는 원명이 아저씨
아우 말인가요?"
시동이도 그의 형 원명은 황회와 함께 만난 적이 있어서 말하니, 여환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이가 다시 물었다.
"전거사와는 서로 아는 사이인가요?"
"아직 모르오. 나중에 차차 알게 되겠지. 장군사 괴뢰배들은 진작부터 해서 구월산 토포 때
에 쫓겨난 이들이라, 해서로부터의 연락을 직접 받는 것이 합당하지 않소. 그보다는 안협이
해서와 접하여 있고 평산 신계와 지척이니 이정명의 집이 해서에서 오는 손이 들기에 맞춤
하겠지요 전상좌는 기별이 있을 때 그 집으로 찾아가 해서 오박수의 연락이나 큰스님들 하
달을 받으면 되겠지."
정원태가 여환에게 물었다.
"황거사는 삼각산에서 내려왔습니까?"
"예, 진작에 내려왔지요. 오늘 이원명 향도의 집에 들렀다가 이리로 온다고 했습니다." "아
그러면 잘됐군요. 황거사가 오면 저희는 오늘 저녁에 청송 면주인 집에 있겠으니 꼭 들러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아, 그 소요산 아랫녘 산다는 장사 말이군요."
"그는 우리 계에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여환은 잠깐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내키지 않는 듯이 말하였다.
"필요하겠지요... 마는 서두르면 안됩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충실한 믿음을 지닌 향도가 되
어야만 합니다."
청송 면주인이라 함은 양주목의 관할지인 포천 영평 등지의 하리들과 파주 적성 장단 등에
서 오가는 관원들을 숙박시키는 소임으로 관문에 입역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일반 숙박
인은 받을 수가 없지만 양주 관아에서 눈감아주어 따로이 보행 객점도 겸하고 있었다. 경주
인들이라면 지방관의 봉물짐에서부터 은밀한 축재를 거드는 일을 담당하고, 신관에게 빚놀
이도 하고 현지의 토색질한 관리의 물품을 전매하는 수지도 맞추는 법이다. 그러나 면주인
이란 사실은 상대하는 것들이 벼슬아치들이 아니라 고작해야 세리나 아전 또는 양주를 지나
치는 지방관아의 연락을 맡은 기패관 장교 하리 따위가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해먹을 것도
없고 세의 부담도 없었으며 일정 기간에 양식과 부식류를 양주 관아에서 타다가 쓰게 마련
이었고, 그 이를 조금 남겨 식구들의 밥이나 얻어먹는 격이었다. 그리고는 숙박업을 따로이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서 시골서는 그래도 밥술깨나 먹는다 할 만하였다. 그의 집은 바깥
채와 안채를 따로이 지어두고 지방리가 오면 안채의 자기 사랑을 내놓았고, 바깥채에는 술
청과 큰 봉놋방 두 칸을 내어 일반 행객을 받았던 것이다. 호명은 그 사촌 아우 만일이가
표현한 대로 의기남아라고 일컬을 만하였다. 키는 구 척에 가까운 장신이요, 검붉은 얼굴에
눈썹 짙고 가지런한 수염이며 목소리가 굵고 부드러웠다. 그는 한때 양주 관아의 장교로 다
닌 적도 있었는데 구군복 차림의 그를 얼핏 보고 누구든 선전관쯤은 되는 인물로 알았었다.
소싯적에는 씨름에 능하여 양주는 물론이요, 임진강 북쪽에서도 호명을 꺾을 자가 없으리라
하였다. 특히 장창을 잘 썼고 몽둥이 하나만 지니면 수십 인을 당한다 하였다. 이제 병역은
면주인의 입역으로 제외되었으나, 요즈음도 도봉이나 오봉 혜음령 일대에 호환이 일어나서
향군을 발동하게 되면 패두가 되어 일패를 거느리고 나가도록 되어 있었다. 대개는 그를 모
르는 하리가 청송서 묵는다 치면 그 고을 아전은 호명의 얘기를 해주고, 그는 대정부이니
면박하거나 홀대하여 부리려 하지 말라고 당부해두는 것이었다. 이는 대개 호명의 성격이
아래로 천하고 가난한 이에게는 봄바람 같으나, 위로 거만하고 부요한 자에게는 그 약점이
보이면 추상같이 용서함이 없는 까닭이었다. 어떤 때엔 모부사의 부임행차에 다른 군뢰배의
무리가 묵게 되었는데, 마필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하여 녹양역에서 차출되어 온 역졸이
채찍에 맞는 꼴을 호명이 보았다. 그는 비장짜리나 되는 자를 멱살 잡아 말에서 끌어내려서
는 코가 연시가 되도록 두들겨버렸다. 동행한 장교들이 그냥 보고만 있을 리가 없어 왁자하
니 일어나는데 정호명은 웃통을 벗어붙이더니, 내가 일일이 너희들 상대로 주먹다짐을 하
기가 귀찮으니 내게 덤비면 어떤 골이 되는가 보여주리라.
하고는 강건하기가 쇠 같다는 오류 호마의 배 아래로 기어 붙어 한 팔은 배를 받치고 또 한
팔로는 앞다리를 움키어 그대로 힘을 써서 들어 던졌다는 것이었다. 말은 휘청 넘어가며 다
리를 분지르고 나뒹어버렸고, 모두 어이가 없어 구경만 하고 섰었다. 부사가 군마 살상죄를
들어 삼문 밖에서 쳐죽일 수가 있었으되, 그 힘과 기개를 보아서 장형 팔십 도에 말값을 물
어내는 것으로 처결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정호명은 한 인재이었음에도 백두에 행전 치고 숙박업이나 하는 면주인에 지나지
않았다. 정호명은 그의 성격이 호방한 대로 봄 가을에 열심히 장사하고 동절에는 매사냥도
다니고 제 사촌아우 정만일이와 더불어 호협한 시골 장정들과 사귀기를 즐겨하였다. 마침
한가위 지난 뒤라 행객도 뜸하고 지방 관리들의 충행은 아직 조세철이 아니라 호명은 무료
하던 판이었다. 시절이 좋을 때는 한양에 들어가 안면 있는 자들과 화초방 출입이라도 하겠
건만, 때가 흉황 뒤끝이라 모든 세간 인심이 각박하였다. 그저 끼니 안 놓치고 식구끼리 밥
상 받는 것만도 대견한 일이었다. 저녁상을 받는데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정만일이
었다.
"어, 니가 웬일이냐?"
대청에 앉은 채로 호명은 심드렁하게 내지르면서도 속으로는 의아하였다. 시방 철이 추수
할 시절 아닌가. 마당에 부지깽이가 걸리적거리며 한몫 한다는 바쁜 때에 그가 수십 리 길
을 저녁에 온 것이다.
"아이구 나 밥 좀 주우."
"원 자식두, 느이 논에 나락은 다 가을 멸구 만났냐? 여기 와서 밥찾게." "석삼 년 흉황이
라더니 이집 밥상을 보니 거짓말이로군." 호명의 아내가 아이들 사이에다 밥그릇과 수저를
놓아주며 배시시 웃는다. 아이들도 꾸뻑 인사들을 하는데, 만일이는 다시 물었다.
"사랑에 올 손님 없지?"
"너 잘 방 없을까봐 미리 맞추냐. 요샌 관것들 나다니지 않는 철이다." "잘되었군. 오늘 내
손님 좀 받우."
"우리 업이 객점인데 네 손님 내손님 가리겠니."
하면서 정호명은 무언가 낌새가 다르다고 느꼈다. 그가 공연히 동무들과 만나서 놀려고 농
사일 다 팽개치고 수십 리를 달려온 것은 아니리라 싶어졌기 때문이다.
"사랑방 좀 치워두지."
아내에게 그저 이르고는 호명은 사촌아우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들은 상을 물리고서
단둘이 사랑방에 앉게 되어서야 얘기가 오갔다.
"손님이 온다니... 어떤 작자들야?"
"내가 한번 얘기한 적 있지. 지난번에 한양에 한번 올라갔다가 마음에 맞는 놈 사귀었다
구."
"그래 이 골에 산다구 그랬든가."
"맞아 시내비골 살지."
"거긴 모두 드난살이들 아니면 타처에서 떠들어온 것들이나, 아니면 행상아치들이 살 터인
데."
정만일은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호명 언니, 그래 언니 같은 대장부가 이러한 말단 입역으로 남의집 시중이나 들며 평생을
마쳐야 옳단 말이우?"
"온 별 시러베자식 보겠네. 야, 임마 너 그따위 소리 지껄이려면 우리 집서 처먹은 밥값 내
구 얼른 영평골루 내쳐라."
"내가 지금 농하자는 거 아니우."
"나두 아냐. 아닌 밤중에 종주먹질이라고 공연히 남의 부아를 돋구는 거냐, 뭐냐. 그럼 어
떡허냐, 이직이라두 안허면 누가 새끼를 거저 먹여준대. 내가 속내를 다 알고 하는 말이지
만, 현감은커녕 찰방 만호 한 자리라두 얻어 나가는 놈치고 쇠도적 아닌 놈 못 봤다. 그래
그 시내비골 산다는 네 동무놈이 무슨 벼슬아치 끄나풀이라두 된다더냐." "끄나풀이 아니
라, 범 잡는 담비라고 양반 잡는 상놈이우," 만일이가 대꾸하니 호명은 같지않은 농인 줄
알고 코방귀를 날렸다.
"흥, 그 녀석 제명에 못 죽겠고나. 양반을 잡기는커녕 삿대질 한번 하여도 제고장서 사면초
가가 되는 판이니... 녹림에 들면 모를까."
"바로 맞았수. 그 아이가 녹림당이우."
정호명은 사촌아우의 말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겠지. 대장부 자처한단 놈들 가는 길이 종국에는 도적놈 아니더냐. 그러니까
핏줄 따라서 언놈은 무과에 들고 언놈은 화적이 되는 거야. 그래 그 화적놈들이 우리 집엔
무슨 공밥을 먹으러 온다든?"
정만일은 형의 시큰둥한 태도를 보고 좀 놀라게 해주려고 질러들어갔다.
"한양서 갑자년에 상놈 난리가 일어난 얘기 들었지?" "갑자년이라면... 무슨 종놈들 계와,
수상한 도적놈들이 혈당을 이루어 일어났다는 소문은 여러번 들었지. 그런데 만일이 너..."
정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계의 와주 되는 이들이 온단 말여."
"거, 검계 말이냐?"
"검계."
정호명은 되묻고 나서 비뚜름했던 앉음새가 꼿꼿해지고 눈꼬리가 빳빳해졌다. 그가 아무리
촌구석의 면주인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도, 그 당시에 백성들 사이에서 활기있게 퍼져나갔던
검계에 관한 소문은 그의 가슴을 뛰게 하였던 터였다. 한양 성내에서 이름난 부호의 집을
털었고 관군과 맞붙었으며 벼슬아치들을 괴롭혔고 종내 혈당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검계는
경기 일대의 백성들 가운데 실로 귀중한 것을 심어 놓고야 말았다. 그것은 이 세상이 장차
반상의 구별이 없는 천한 것들의 세상으로 변모하려고 천지개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
다는 느낌이었다.
"시내비골 사는 놈이 검계의 와주냐?"
정호명은 가라앉은 어조로 물었다.
"와주는 아니지만... 제일 먼저 계를 짰던 이들 가운데 하나요. 검계는 여느 녹림당과 달라
서 두령 와주가 따로 없고 모든 계원이 형제와 같다는군." "한데 어째서 그이들이 날 만나
러 오니?"
"내가 언니 얘기를 했지."
정만일은 사촌형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 언니 맘 다 알우. 그 속에 뭔가 불덩이가 들어 있는 걸 다 안다구." 정호명은 아우의
눈길을 피하듯이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호명이 고개를 들지 않고 물었다.
"너두 들었냐?"
"들었지."
하자마자 정만일은 뭔가 번쩍, 하여 고개를 들고 옆으로 비스듬히 넘어졌다. 정호명이 힘껏
따귀를 올려붙였던 것이다.
"이런 밥쇠 같은 자식!"
장사가 마음먹고 후려갈겼으니 손바닥으로 쳤는데도 만일의 볼때기 속살은 터지고 코는 비
틀어져 코피가 흘러내렸다. 정만일은 그러나 침착하게 대꾸하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언니는 제법 심지가 큰 인물인 줄 알았더니, 역시 평생 길가의 밥
장사나 하며 아전붙이들께 허리 굽혀 연명할 벌레 같은 목숨이로군." "그러는 너희들은 무
슨 수가 있느냐. 고작해야 남의 재물이나 노리는 도적놈이 되든가 기껏 쇠꼬챙이 휘두르며
협기나 달래겠지. 나는 그따위 짓을 할 바엔 밥장사가 제격이다. 진인을 만나 입국을 하지
못할 바에는 좀도적은 싫단 말야." 정만일이 형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며 부르짖었다.
"우리두 도적질이나 하자구 작당한 패거리가 아니야. 언니처럼 관가에서 던져주는 낟알에
목구멍이 간질려서 노중에 코 박고 엎드려져 되지 않는 포부만 키우고 있는 이들이 아니야.
모두들 제 목숨은커녕 온 식구의 명줄을 걸어놓구 여러 해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지낸 사
람들이야. 좋아, 언니가 제 안위 때문에 내가 혈당이 된 것이 두렵다면 지금부터 상종 않고
혈연을 끊자구."
정만일은 호명을 밀쳐내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가 방문을 열려는데 호명이 저고리 뒷자락
을 불끈 잡았다.
"좀 앉거라."
그는 벽에 걸린 무명 수건을 집어 만일에게 내밀었다.
"상판이나 닦아."
정호명은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정만일이도 호명에 못지않은 왈짜요 힘도 있건만, 말의 내
용이 워낙 엄청난 것이라 제 형을 받아치지도 못하고 수습도 못한 채로 엉거주춤 따라앉았
다. 그는 그제서야 코피가 터져서 턱을 따라 가슴팍까지 흘러내린 걸 알았다. 만일이 얼굴을
닦고 앉자 정호명은 먼저 담아서 몇번 빨던 곰방대를 그에게 내밀었다.
"피워, 니가 날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알겠지."
정호명은 이어서 말하였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수대 전에 대동계 난리로 구몰된 집안의 자손이다. 이제는 누가 누
군지도 분간이 안되는 세월이 흘렀지만, 해서와 경기도로 흩어진 혈족들은 입은 봉한 채로
대개들 그런 사연을 안다. 나는 말리지는 않아. 다만 믿기지 않아서 이러는 것이지. 내가 고
변은 않으리라는 걸 너두 알겠지."
"고변? 흥, 그러면 우리가 잡히기 전에 언니는 먼저 죽어." "이런 벽창호 같은 녀석. 죽기
는 다 매일반이다. 씨름판에 가봐. 메쳐서 이기거나 넘어져서 지거나 둘 중에 한가지밖엔 없
어. 그러니 이겨야 할 것이 아니냐." 정호명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하였다.
"네 동무들이 오면 내가 말을 건네보고 나서 결정을 하겠다. 내가 안 들기로 작정하면 그
때부터 너는 나하구 사촌의 의를 끊고 상종하지 않고 지낼 것이고, 들기로 한다면 이제부터
는 그냉 혈족이 아니라 결의동지가 되는 셈이다."
"좋아."
그리고 나서는 둘은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등잔불만 까물거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그
림자도 방 양편에 늘어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짝 밖
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인 계시오?"
하는 시동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호명이 일어섰고 만일도 뒤따라 나섰다.
"들어오시오."
마루에 서서 호명이 말하자 마당 안으로 시동이와 정원태가 들어섰다.
"시동이 오는가?"
"만일이 먼저 와 있었군."
시동과 만일은 서로 반겼다.
그들이 방에 들어서자 정호명은 먼저 정원태에세 엎드려 절하며 인사를 청하였고 원태도
황망히 마주 절하였다.
"정호명이라구 합니다."
"포천 사는 정원태요. 정서방에게서 사촌형의 얘기를 여러번 듣고 꼭 한번 상면하고자 하
였소."
"언니, 이 사람이 내 동무요."
정만일이 시동을 소개하여 이번에는 반절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요 너머 시내비골 삽니다. 김시동이라구 헙지요."
"아우가 늘상 노형의 얘기를 합디다."
정호명이 비록 만일의 사촌형이기는 하나 나이 차이라야 한두 살인지라, 시동이와는 동갑
내기인 셈이었다. 다만 시동이가 아직 미장가로 헛상투를 튼데다가 얼굴도 동안인 반면에,
호명은 기골이 장대하고 수염이 잘 나서 훨씬 위인 듯 보여 겉으로는 중년인 정원태와 비슷
한 또래로 보였다. 시동이가 곁에 앉은 만일에게 눈을 돌려 꿈벅해 보이니, 만일은 고개를
끄덕하였다.
"지난번에 상번 올라가서 만일이와 의기투합이 되었고 진작에 형의 얘기를 들어 만나뵈려
하였으나 차일피일하던 사이에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김시동은 넌지시 말을 꺼냈으나 정
호명은 묵묵부답이었다.
"저녁들은 드셨는지...?"
딴청으로 한단 소리가 이러하였고, 호명의 물음에 정원태가 말하였다.
"방금 시내비골에서 먹고 오는 길이올시다."
"우리 집이 비록 구차하기는 하여도 면주인 집이라, 보통 개점과는 다르지요. 술이 끊길 날
이 없소이다."
정호명이가 방문을 열고 안에다 이르니 그의 아내가 술 한 동이와 장떡이며 침채 등속을
소반에 올려 들여주었다. 말없이 술잔이 오고가는데 동이가 반쯤 비워지니 자연히 잔질의
사이가 뜨게 되었다.
"내가 무에 꺼릴 바가 있어 교묘하게 말을 돌리거나 회피를 하겠소. 댁네들의 내막은 아우
에게서 소상히 들었습니다."
정호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스럽게 말을 꺼냈고 정원태가 만일을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계의 얘기를 하였고, 제가 계에 들었다고만 하였습니다." 만일의 설명을 듣더니 정원태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글쎄... 그 얘기뿐이라면 소상하게 말씀드린 것은 아니외다." "나는 아우의 말을 듣고 오
히려 꾸짖고 힐난하였소. 검계의 소문이 근간에 사방 저자에 낭자하였으나, 내가 듣기로는
화적당에 지나지 않으니 대장부가 심곡에서 굽히어 숨어 살지라도 어찌 뜻없는 무리에 들겠
소이까. 비록 동당 입계하지는 않아도 관가에 발고하지는 않을 터이니 마음을 놓으시우."
정호명은 서슴지 않고 말하였다. 김시동이 참지 못하여 욱하고 대들었다.
"우리 계가 화적당 같고 뜻이 없는 무리라니 어떻게 보고 하시는 말씀이우?" 정호명은 껄
껄 웃었다.
"노비들이 제 주인을 죽여 포한을 풀겠다고 당을 이루었다는 살주계나, 그와 체결하여 양
반을 없앤다는 당신네 검계가 무슨 경륜이 있다는 게요? 저지른 일이란 부잣집을 겁탈하거
나 노상 강탈을 자행하고 포도 군사 몇 명을 살상한 외에 또 무슨 일을 하였소? 대저 큰 일
을 도모함에는 대의명분이 없어서는 성사하지 못하는 법이거늘, 한양의 노비 몇사람과 백두
의 상한 몇몇이서 양반을 죽여 포한을 갚자는 것이 어찌 명분이 되겠소. 그깟 일이라면 이
말단 행임으로 밥 얻어먹고 사는 호명이가 진작에 혈기있는 아이들을 모아 산간에 들어가
개호랑이 노릇이리두 하였겠소. 내가 아우 만일이를 보아 호걸 대접으로 술 한잔 내는 것이
니 이 술 마시고 돌아가우."
정호명은 기개있게 말하고는 단숨에 죽 들이켰다. 정원태가 다시 잔을 쳐주며 말하였다.
"그러면... 조카는 이조가 이 땅에 가장 가합한 왕조로 입국되었다고 믿으시오?" "가합치
않으면 어쩔 것이오? 승즉군왕이요, 패즉역적인바에 이태조가 이미 고려를 패망시키고 대명
에 복속하여 누백 년의 사직을 누려오지 않았소?" "명은 오랑캐인 충에게 중원을 내주고
패망하고 말았지요.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나고 자라고 멸하는 이치인 고로 세상에 사람이
지은 것으로 세세무궁하는 것은 없는 법이외다. 더구나 전조가 퇴폐하고 늙고 병들어 망할
시기가 되었다고는 하나, 저 삼한 이래의 비원이던 요동과 부여의 옛 땅을 정벌하겠다던
최영의 뜻은 이태조의 회군으로 꺾였지요. 중원으로 행하던 웅비의 큰 뜻이 창끝을 제 집
울안으로 돌린자에 의하여 비굴한 신하의 소국으로 바뀐 것이오. 송도 덕물산에서 최장군의
원혼을 받들어 모시는 까닭은 다 그러한 백성들의 안타까움 때문이오. 우리도 덕물산 큰굿
에 가면 언제나 성계육이라 하여 돼지비계를 나누어 씹지요. 요사이 사대의 명분을 말하
는 자들이 대명이 망했으니 북벌을 해야 한다고 저마다 주장들을 하나, 청이 광야에서 몸
을 일으켜 후금으로 중원을 도모한 사실은 잊고 있소. 이제 양란을 겪고 수차례의 흉년을
치러 아조의 다스림에 도와 덕과 인의가 말라버렸음을 아는데도, 오히려 백성들이 한줌도
안되는 사대부들에 눌려 살아 있으니 이는 천지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함과 같고 봇물 막힌
물줄기와 다름이 없으며, 바람이 거꾸로 부는 듯하오. 이를 바꾸어 천민의 나라를 이루어야
제자리가 이루어질 것이오. 우리 검계는 미륵의 도를 구하며, 미륵께서 세간에 나타나 눌린
자들의 도솔천을 이루어주실 때를 준비하여, 드디어는 썩은 것과 낡은 것을 쓸어내고 용화
세상을 이 땅에 세울 작정이오." 정호명은 원태의 말을 듣고 있더니 조용히 일어나 절하고
앉았다.
"소인이 견문이 없어서 큰 잘못을 저지를 뻔하였습니다. 청컨대 저를 장수로 삼아 크게 써
주십시오."
정원태가 정호명의 손을 잡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이제 보아하니 정서방은 실로 심지가 굳은 사람이오. 우리가 비로소 역성혁명과 입국의
뜻을 밝혔으니, 추호도 의심치 마시오."
"그렇게 믿어주시니 더욱 감격할 따름입니다. 나는 평소에 늘 최영장군을 홀로 흠모해왔더
니 오늘에사 그 신령께서 내게 진작부터 임해오셨음을 알겠습니다." 호명의 말에 김시동이
맞장구를 쳤다.
"정장사를 계에 들일 때, 따로이 최장군의 넋에 붙여 굿을 하여 공수받도록 하십시다." "
그 참 그럴 듯한 말이로군. 최영 장군께서 우리들 가운데 인도환생하신 것이니, 억눌리고
천대받는 백성들 가운데로 어지러운 세상을 뒤바꾸러 오신 게 아닌가. 미륵이 오실 적에는
또한 상천에 들지 못하고 백성들의 온갖 영산들과 더불어 캄캄한 하천의 암흑 허공을 떠도
는 관운장이나 최장군 같은 이가 앞장서서 길닦음을 하지 않으랴. 정장사가 최영 장군의 혼
령을 공수받는다면 나는 포은 선생의 넋을 받으려네. 일찍이 이조가 세워질 때, 정몽주와 최
영이 원한의 피를 흘려 아직도 그 자취가 지워지지 않고 있네. 보게나, 사대부들은 대를 이
은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를 참살하고, 왕족은 골육상쟁으로 궁궐에는 살과 피가 서로 물고
찢는 비명으로 가득하고, 천재지변으로 흉년과 역병이 파도의 굽이처럼 차례로 세상을 덮고
있으며, 산곡마다 시체요 저자마다 유걸이고, 어미가 자식을 먹는 참경이 벌어지고 있잖은
가. 이는 태조 이래의 국운이 이미 다하였음을 알리는 전조일세."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가
운데 문득 삽짝 밖에서 주인 계시오, 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호명이 눈을 빛내며
일어서는데 김시동이 먼저 미닫이를 열고 되물었다.
"게 누구요?"
"어, 시동이로구나, 나 황거사여."
칠성암에서 전갈을 듣고 찾아온 황회였다.
"우리 향도올시다."
김시동이 정호명과 함께 마루로 나아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황회를 맞았다.
"칠성암 들러서 오슈?"
"응, 여기 있다기에... 삼촌도 여기 계시다며?"
"예 대덕님하구 같이 왔지요."
황회가 들어오니 정원태가 반가워하였다.
"부인하구 삼각산에 올라갔다더니 뭐 수도에 진전이 있었소?" "차차 말씀드리지요. 이번
에는 저두 성신을 몸에 받은 느낌이올시다." 시동이는 황회의 그러한 말에 떨떠름해진 얼
굴이었고, 정원태는 그를 부추겼다.
"황거사 부인께서는 영평서 잘 알려진 성무이시니 부창부수가 된 셈이로군." 김시동이 정
만일과 정호명을 황회에게 인사시켰고 그들은 맞절을 하였다. 인사를 하자마자 시동이가 다
시 말하였다.
"고거사는 너무 저자의 속리를 밝히고 황거사께서는 이제 구름 속으로만 다니려 하니 우리
검계는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우."
황회는 시동이의 비양대는 말뜻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대꾸하였다.
"고달근이는 천생이 장바닥서 재간 팔아 반평생을 보낸 사람이니 그러려니 해라." "성님은
재간 안 팔았수? 나두 성님 따라 난장 트러 다녔수. 내 예기는 두 성님들이 하나는 골에
빠지고 하나는 위로 치솟았단 말이우. 그러니 보통 길바닥으루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어쩌란 말이냐 하는 얘기요." 황회는 그제서야 김시동의 옆구리를 지르
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초면인 정만일과 정호명을 돌아보았
다.
"우리... 식구가 되었소."
정원태가 웃으면서 말하였고, 황회는 입을 떼었다.
"나두 여환스님 뜻과 같소. 검계 가지곤 안됩니다. 우선 포교가 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
오. 대덕 말씀대로 석가의 세월이 진하여 미륵존불께서 마땅히 세상을 주장하게 된다면, 그
를 믿는 이들이 더욱 많이 생겨나야 하고 백성들 가운데 드넓은 개심이 일어나 개세할 바탕
이 생기게 되겠지요. 심지어는 양반들까지도 미륵이 세상을 이미 바꾸었음을 알게 되면 그
들도 스스로 마음을 돌리 것입니다."
"앞뒤가 바뀐 얘기유."
시동이 퉁명스럽게 황회의 말을 끊었다.
"이것 큰일이로군. 전에는 성님이나 스님께서 그 둘을 함께 해나가자더니 어느 겨를에 선
후를 두어 개세할 의논은 뒷발로 차던지구 말았네요. 오진암 법회 때 결정된 안과도 달라졌
수."
"달라진 게 아니라니까. 그러나 지금은 우선 교세를 확장해야만 할게야. 검계의 계원들을
상좌로 삼아도 좋겠지."
정원태가 김시동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황회의 말을 막지 말라는
표시였다.
"황거사의 말은 내가 듣기로는 이전에 솔부리서 모였던 계회 때에 꺼냈던 안과 달라진 바
가 없구먼. 여환스님이 절충안을 내지 않았던가. 검계는 식구들을 모으며 시기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미륵 향도들은 교세를 확충하면서 검계의 씨앗을 두껍게 싼다는 얘기였지. 내가
보기에는 김서방이나 황거사가 모두 같은 뜻임에도 자기의 일에 대하여 자만심이 생겨난 탓
인가 하오. 떡을 하려면 떡메로 치는 사람도 필요하고 물칠을 하는 사람도 소용이 되는 법
이지요. 그런 말싸움은 그만들 하고 어디 황거사 산에 올랐던 얘기나 들읍시다." "내가 본
시 진관사에서부터 드난살이로 타관을 이리저리 떠돌다가 정대덕을 노적사에서 만난 뒤로
미륵존불을 들어 알게 되었소. 그러니 나와 소싯적부터 형제나 다름없는 시동이나 달근이
가 내 아무리 성신에 접한다 한들 그럴싸하게 여길 리가 없지요." 그 말에는 시동이도 픽
웃음이 나와서 황회와 마주보며 웃었다. 시동이가 황회에게 말하였다.
"성님인지 거사님인지 똑바루 얘길 허시우. 우리네야 원래 먹을 것 없고 힘도 없어 절간에
의탁하고 걸립도 돌고 행상도 다니고 급기야는 몽둥이 들고 화적당이 되었지. 그러나 산지
니나 나두 어른이 많이 되었수. 흐르는 물처럼 인간사가 바뀌는데 성님이라구 거사님 안되
란 법이 있수?"
"맞았소. 내 별호가 원래 사당 거사패 동무들이 불러주어 대덕이지, 우리 마누라도 보살이
고. 허나 이제 모두 미륵님 앞에 다 같은 용화향도이니 너무 주장하지 마시오." 정원태도 그
렇게 말하자 황회는 우선 술 한잔을 죽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아내와 내가 원래는 삼각산에 오를 때 백일기도를 작심하고 갔지요. 그러다가 마흔한 날
을 채우고 내려오게 된 까닭이 있었소이다. 우리는 삼각산 북편의 멀리 도봉이 내다보이는
암굴에 자리를 잡고 날마다 목욕재계하고 분향하며 기도를 하였소. 내가 처음에 영험에 접
한 것은 기도처에서 밥을 하여 바위에 앉고 나서 실물을 겪은 것이올시다. 아내와 나는 새
벽부터 기도하고 해가 오른 참에 비로소 중화겸하여 밥을 지어 천신드린 뒤에 먹고는, 또한
저녁에 남은 것을 죽끓여 먹고서 잠들 때까지 기도를 하였지요. 기도를 드린 지 보름이 되
던 날에, 그날도 중화를 지어서는 우리가 공을 들이던 암벽 아래의 반석에다 올렸지요. 바로
지척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이 있었고 개천 건너편에서는 우리가 기거하는 암굴이 있
었습니다. 반석 위에다 밥을 천신하고서 그 자리에 엎드려 삼배를 드리고 일어나 보니까 밥
주발은 그대로인데 밥이 말끔히 비워져 있더란 말이지요. 나는 놀라서 주발을 들어 살폈습
니다. 밥알 한알 남기지 않고 물로 씻어낸 듯이 싹 비워져 있었습니다. 뭔가 짐승이 물어갔
다면 찌꺼기도 흩어졌을 것이고 소리도 들렸을 텐데 절 세 번 하는 사이에 없어졌으니 도무
지 귀신이 아니고야 될 법이나 한 일입니까. 아내가 신명께서 우리를 받아들일 모양이라면
기뻐합디다."
"원래가 실물이란 것은 신이 내리고 나서 두 번째로 오는 영험이요, 도중에 잡기가 끼이거
나 만신 스스로가 수행을 게을리하면 영험은 그치게 마련이지." 정원태는 진작부터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황회가 말하였다.
"한데 그날 밤 꿈에 나는 흰 수염에 도포를 입은 세 노인을 보았소. 나중에 아내가 삼신님
이었다고 일러줍디다."
"삼신은 우리 조상 신령님들이시지. 환인 환웅 단군 할어버님들이 그이들이오." "삼신께서
는 제게 이릅디다. 뒤에 제석께서 이르실 것이니 잘 모시라구 그랬지요. 아내가 이르기를
십이 제국의 조상신들 위에 삼십삼천의 주인 되시는 이가 제석이라 하였더니, 지난번에 여
환스님이 그분이 바로 도솔천의 미륵님이라고 하십디다. 여환스님과 은율 만신은 제각기
미륵님을 뵈었다지요. 미륵님은 눈이 화등잔 같고 몸에는 금수복을 떨쳐 입고 징을 치면서
북방에서 현신하여 용을 타고 남북을 오르내린다고 합디다." "즉 북방은 물이요 만물을 생
겨나게 하는 근본이고, 검은색은 현무이니 천지의 조화를 이름이요, 물과 상극하나 지나치
면 음을 내포한 채로 불이 되는 남방은 청룡이라 자비와 인을 이름이지요. 이는 개벽의 조
짐을 스님께서 비유를 들어 풀이한 모양이오." 황회는 정원태의 말을 듣고는 이어서 답하
였다.
"마흔한 날만 채우고 내려온 것은 천불산에서 신서가 와서 스님께서 우리를 급히 불렀던
때문입니다."
"신서라니?"
"삭녕 장군사에 의탁한 전서방 아시지요?"
"탑고개 꼭두각시패를 이끈 전성달이 말이오?"
"예, 그 사람이 시방 삭녕 미륵도의 상좌요."
김시동이가 덧붙였다.
"성님 작은조카 되는 정명이가 안협 상수리 살지요? 해서의 전갈은 그쪽을 통하여 전서방
에게 닿도록 되어 있습죠."
"응, 정명이가 제 형 원명이와 함께 왔더라. 여환스님께서는 그것이 물론 큰스님들께서 보
낸 것인 줄로 알고 같이 공부를 하시고 이번 칠성암 큰재 때에는 신서를 나누어주시고 함께
법문도 나누기로 하였소. 내가 대강 보았는데 언문과 진서가 섞여 있어서 뜻이 간추려지지
않아도 금당개세 미륵출래라는 구절이 있습디다."
정호명의 집에서 정만일과 김시동 황회 정원태는 밤을 새우며 얘기를 나누었고, 사촌아우
의 듸를 따라 검계와 미륵도의 향도로 들게 된 정호명은 최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어 듣게 되
었다
칠성암 큰재 때에는 그들이 늘 말해온 대로 미륵도라는 과육을 검계라는 중핵 위에 거죽을
싼다는 격식이 갖추어졌다. 여환이 미륵도의 종사를, 만신 계화가 수보살, 그리고 황회가 대
덕, 정원태가 대덕을 맡았고, 혜음령 중길이네 살주계 식구들이 보낸 최영길은 혜음령 상좌
를, 정호명이 양주의 상좌, 정만일이 영평의 상좌, 전성달이 삭녕 상좌 등을 맡았으며, 파주
의 묘옥이 이경순에 대신하여 수보살이 되었다. 시내비골 사람들 모두와 파주, 양주, 적성,
영평, 연천, 삭녕 사람들이 재에 참예하니 소문을 듣고 몰려든 인파가 거의 천여 명에 이르
렀다.
칠성암의 주봉은 감악산이니 영근산은 그 한 지맥인 셈이었다. 감악산은 풍수로 살펴도 그
조종이 귀하고, 그를 둘러싸고 호종하는 산이 두텁고, 앞뒤가 상응하고, 봉우리가 단정하며,
한탄강의 푸른 물을 굽어보니 징파와 합수되어 복룡이 되는 셈이라, 예로부터 송도의 덕물
산과 더불어 성산으로 알려져왔다. 영근산의 구름을 넘자마자 감악산 주봉을 중심으로 마차
산 설마치 옥돌산 등의 능선이 울타리 치듯 둘러선 가운데 아늑하게 내려앉은 들이 시오 리
쯤 펼쳐져 있었다. 이쯤의 솔밭 아무데나 멍석 차일을 치면 수백 명이 눕고 일어나고 뛰어
도 흔적이 보이지 않을 만하였다.
칠성암 큰재는 암자에서 모두 치를 수가 없어서 아예 감악산 들로 나아가 노천에다 솥을
걸고 차일을 치고 하였다. 만신 계화, 황회의 아내인 영평의 금방울 만신, 계화의 남편 박수
김승운 등이 굿을 벌이는 것을 처음으로 하여 여환스님이 미륵님께 치성을 드리고 설법하였
고, 만신들과 장군사의 전성달네 광대패들이 뭇 행도들과 어울려 한바탕 질펀하게 무감을
놀았다. 그동안에 정호명과 정원태는 재에 참예한 사람들의 거주지 성명을 일일이 적어두었
으니 천여 명이나 되었다. 재가 끝나고 나서 각 지역의 상좌들과 검계의 핵심이 모여 앉아
여환이 언문 토를 단 신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호남 간지에 깨알처럼 써내려간 신서의 첫머리에는 금당개세미륵출래라고 씌여 있었다.
시속이 승불경불하고 속즉경불하니 이같은 때에는 용이 아들을 낳아 주국하는데 풍우부조
하고 오곡이 불성하여 민인이 모두 굶어죽고 미륵이 현신한다.
이와같이 미륵이 꼭 나타나게 될 금세를 밝혀놓고 나서 감결을 적어두었으니, 이는 왜란과
호란을 전후하여 여러 지방에서 책자가 나돌아다녔고 뜻을 알고 모르고간에 널리 베껴서 백
성들의 손에 옮겨졌던 터였다.
천지에는 음양이 먼저 주장되는도다. 곤륜산으로부터 온 맥이 백두산에 이르고 원기가 평
양에 이르렀으나 평양은 이미 천 년의 운수가 지나고 송악으로 옮겨져서 오백 년 도읍할 땅
이 되나 요망한 중과 궁녀가 난을 꾸미고 땅 기운이 쇠패하고 하늘 운수가 비색하여지면 운
수는 한양으로 옮길 것이다. 전쟁은 평정되지 않고 충신은 죽었으니 건곤이 긴 밤중이로다.
내맥의 운수가 금강산으로 옮겨 태백산 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을 뭉쳐서 계룡산으로
들어갔으니 정씨의 팔백 년 도읍할 땅이니라. 어린 임금이 단신으로 의지할 데가 없어서, 가
가인삼이요, 촌촌수저요, 인인진사일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것이요 재물은 알고 몸 있
음을 모른다. 한강 물이 붉은빛으로 사흘간 끓고 치가 궁중에 흐르고 해와 달이 서로 싸우
고 검은 구름 안개가 이레 동안 하늘을 덮으면 진인이 남해도에서 나와 계룡산에 창업한다.
사자가 횡관하고 신인이 탈의하고 주변에 기를 비꼈다가 성인휘자에 가팔하고 계룡산 돌이
희어지고 청포에 대가 희어지고 초포에 조수가 생겨 배가 다니고 누른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가득 차 있고 혜성이 진성 머리에서 나와서 하간 혹은 북두에 들어가고 자미원에
범하고 두미에 옮기고 두성에 이르고 남두에 끝마치면 대중화 소중화가 함께 망할 것이다.
삼각산이 규봉이 되고 백악이 주산이 되고 한강이 허리띠같이 두르고 계락산이 충룡이 되고
안현이 백호가 되고 관악이 안산이 되고 목멱이 남산이 되었도다.
네 도둑이 들어와 도둑질하나 두 번 반드시 중흥할 것이요 관악산이 안산이니 왕궁이 세
번 화재를 당할 것이요, 단우에 불꽃이 일어날 것이요, 위에서는 근심하고 아래서는 흔들릴
것이요, 아전이 태수를 죽이고 삼강오륜이 영영 없어질 것이니라. 뒷사람들이 만일 지각이
있으면 먼저 십승지에 들어갈 것이니 가난한 사람은 살고 부자는 죽을 것이다 부자는 돈과
재산이 많기 때문에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 같고 가난한 사람은 일정한 산업이 없으니
어디를 간들 가난하고 천하게 살지 못하랴.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때를
보아서 행하여야 한다.
만일 말세에 이르면 아전이 수령을 죽여서 조금도 기탄이 없고 위와 아래의 분별이 없어지
고 강상의 변이 잇달아 일어나서 필경은 임금은 어리고 나라는 위태하여 대대로 국록을 먹
는 신하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 말세의 재앙은 아홉 해 큰 흉년에 백성들이 나무 껍질을 먹
고 살 것이요, 사 년 동안 인명이 반은 덜릴 것이요, 사대부의 집은 인심에 망하고 벼슬아치
의 집은 이익을 탐하는 데서 망할 것이다. 세간은 장구하지 못하리니 임금이 무사에 명산에
기불하니 종금 이후론 마땅히 이을 자가 있을 것이요, 이제 인간당경탕이라 십이 제국이 마
땅이 진함할 것이니 신병이 장구입성하리라. 비결에 이르니 기사에 쥐처럼 훔치는 도적이요
경오에 용이 울고 신유에 군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술해에 사람이 많이 죽고 자축에 오히
려 정하지 못하고 인묘에 일을 바야흐로 알 수 있고 진사에 성인이 나오니 오미에 즐거움이
당당하리라. 무기진사에 어지러운 용이 합문에서 일어난다. 세 전내가 내응하여 나라를 멸하
리라.
그해가 정묘년이요, 무진년은 바로 돌아오는 명년이라 뜻을 잘 모르는 향도들도 공연히 가
슴이 두근거렸다. 여환은 신서를 덮으면서 말하였다.
"명년에 국운이 크게 변할 것을 선인들은 이미 기록하여 남기고 있소이다. 미륵의 세상으
로 개세되리라는 것을 이 신서로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때는 무르익었으니 손을 뻗
쳐 따기만 하면 됩니다. 나무 현거도솔 당래교주 미륵존불..." 칠성암 큰재가 끝나고 나서
여환은 계화와 더불어 인근 미륵도들의 지역 법회를 방문하였다. 각 지역 상좌들의 보고로
는 차츰 행도가 늘어나고 있었으며 여환의 안찰 무마로 병이 나은 백성들 사이에는 성인
이 나왔다는 소문이 낭자하였다. 친민에는 교가 방편이요 교를 넓히는 데에는 다시 의통
이 법방이 된다던 얘기가 맞았다.
3
시월에 접어들자 만산홍엽이라 산천은 샛노랗게 누렇게 또는 갈색 혹은 다홍 자주 등의
색깔로 물들었고, 구월산은 이름 그대로 가을 산이 되어서 골골이 옥수요 봉봉이 불붙은 읏
하였다. 원향이는 여환 계화와 작별한 뒤에 일단 월정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사당말 밸련이
며 옥여스님이 말렸지만 원향은 자신의 수도를 위해서도 혼자 지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박수 오계준은 자기와 함께 신천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원향은 단군 성조님을 몸주로 모시었
으니 구월산 인근을 떠나기가 싫었다. 원향은 정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사선골 옛터를 찾
아가보았었다. 사방은 적막한데 길이며 타버린 집터며 마당의 분간을 못하도록 키 넘은 잡
초가 자라고 있었고, 타버린 서까래가 비바람에 씻기었으나 검은 숯의 형적은 그대로였다.
깨어진 장독, 무너진 돌담, 타다 남은 초가지붕들이 잡초들 사이에 흉칙한 도깨비처럼 숨어
있었다. 바람이 골짜기로 스쳐 지날 적마다 예전과 다른 소리로 변하는 듯하였다.
어머니, 준보야...
불 가운데서 외치던 모친의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아서 원향이는 흠칫, 사방을 둘러보고는
하였다. 마을 뒤편 둔덕에는 떠나던 생존자들이 시신 수습하여 이루어놓은 묘지들이 양지녘
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직은 떼가 이루어지지 않아 벌건 흙이 마른 채로 듬성 드뭇하
였다. 딱히 어느 뫼랄 것도 없이 그것들을 한데 싸잡아서 원향이는 중간쯤을 어림 짐작하여
바라고 섰다. 그리고는 엎드려 절을 삼세 번 올렸다.
고이 잠드소서.
돌아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골짜기 안쪽에는 불이 미치지 않았던지 성한 집이 두어 채 보
였고, 원향이는 아예 사선골에서 신당을 차리고 자리를 잡을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
터전서 떠도는 원혼들이 자기의 비나리를 받아 정토로 돌아갈 것이며 그들의 비원을 자신의
몸에 깃들이도록 해줄지도 몰랐다. 원향은 여환이 언젠가는 찾아오리란 기약을 진심으로는
믿지 않았다. 또 어느 십수 년이 흘러가게 될 것인가. 안무당의 내림굿 해주시던 정성이며
그녀가 내려준 신물은, 바로 이 구월산에서 가장 큰 만신으로 공을 이루라는 막중한 소임을
물려준 것이 아니었던가. 원향은 안무당의 마지막 말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사달 옛 터전 단군 성조님의 뜻이 새겨 있으니 너는 가장 크고 깊은 신의 뜻을 이어받은
만신이 되어야만 한다. 네가 서해 용왕님이 지시하신 용녀이고 구월산 산신님의 몸주 받은
큰무당이니라. 이 땅의 서편에서는 너보다 더 큰 성신을 모신 이가 없다.
원향은 등짐으로 져온 요령과 신칼 그리고 징과 바라를 이전 안무당의 낡은 철릭에 함께
싸서 눈여겨둔 집으로 가져다가 선반의 먼지를 털고 얹어두었다. 마당의 잡초를 뽑고 샘에
서 물을 길어다 툇마루에 켜켜로 앉은 먼지를 닦았고, 방에는 무선 마른 짚을 펴서 깔아두
었다. 사람의 손이 가니 제법 귀신의 형용은 사라진 듯하였고, 습기를 말리느라고 아궁이에
불을 때어 매캐한 청솔 타는 연기가 주위에 가득하니 제법 폐촌에 인적이 생겨난 것 같았
다. 봇짐에 가져온 곡식이 말 가웃이 되었으니 한되 남짓은 덜어내어 신당 차릴 선반에 얹
고 향촉은 준비가 없어 그대로 지내기로 하였다. 낯익은 샘에 찾아가니 역시 쑥밭 잡초 덤
불인데 왕개구리들이 놀라서 이리저리로 투닥거리며 뛰어 달아났다. 원향은 돌 위에 올라서
서 옷을 차례로 벗었다. 석양이 나뭇잎 사이에 발긋거리는데 물은 차갑고 투명하였다. 깨어
진 옹기로 물을 담뿍 떠서 목덜미께에 부었다. 머리끝이 쭈뼛하고 시린 느낌이 등골을 타고
내려 발뒤꿈치까지 뻗쳐 내려갔다. 다시 가슴에 부으니 젖을 타고 흘러내려 아랫배를 지나
무릎으로 흘러 떨어졌다. 원향이는 샘물로 온몸을 정히 씻고 머리를 감고 다시 이리저리 널
린 세간을 정돈하여 이 빠졌으되 형체는 그대로인 흰 사기대접을 내어 옥수를 떠서 신당앞
에 바치고 예전처럼 기도를 올렸다. 정신이 한 곳으로 쏠리면서 차츰 사위를 잊어갔고, 눈앞
에 무수하게 흰옷 입은 영산들이 흘러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들은 얼굴도 없었다. 다만 허
연 자취뿐이었다. 그들 가운데 준보와 모친이 섞여 있을지도 몰랐지만 이미 무덤들 앞에 섰
을 때와는 달랐다. 그것들과 원향의 사이에는 엷은 안개 같은 것이 막처럼 가로 쳐져 있었
고 원향이도 그 안으로 생각이 쏠리거나 넘나들지 않고서 그저 부동하여 흘려 보낼 따름이
었다. 다시 깊은 어둠이 계속되었다. 얼마나 되었을까, 눈낲이 다시 부옇게 되더니 밖에서
홀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원향아, 내 아기 원향아. 문살 틈으로는 어느결에 떠올
랐는지 달빛이 새어들어 방안이 훤하게 밝아 있었고, 원향이 문을 밀자 바로 허공에 웃음을
머금은 듯한 봉우리의 하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황토월이었다. 구월산의 제일봉인 사
황봉 위에는 단군 천왕당이 있었으며 만신들뿐 아니라 인근 백성들은 아직도 새봄이 되면
풍년을 비는 재를 올렸으니 하눌님을 그린다하여 사황봉이다. 사황토월은 동천에 높이 솟아
오른 달빛을 받은 봉우리가 인자한 하눌님의 얼굴로 나타나 뵈는 모양을 일컬은 것이다. 우
너향은 어릴 적부터 그 모습을 우러러뵈어왔으나, 이제 문득 자기를 부르는 소리와 더불어
대하니 산 전체가 고개를 수그리고 웃으면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것만 같았다. 온몸이
짜릿하며 불이 몸 속에 들어오는 듯하였다. 오너라, 아가야. 산은 우렁우렁하는 소리로 원향
을 부르고 있었다. 원향은 저도 모르게 풀과 잡목을 헤치고 눈에 익은 비탈을 오르기 시작
하였다. 정곡사 가는 길을 휘돌아 용못골로 올랐다. 돌 사이로 엇갈리며 부딪쳐서 흘러내리
는 물소리가 어둠 가운데 가득 찼는데 먼 데서부터 용연의 폭포 소리가 바람결에 뒤섞여서
쏴아 하는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큰 고함에 간간이 또랑또랑 쿨럭쿨럭 보쿰보쿰 하는 물
소리가 부르고 답하며 원향이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용연에 이르니 달빛에 반사된 폭포수
는 하늘에서 내리꽂힌 신칼처럼 번뜩이고 물 위에는 부서진 달빛의 조각들이 흩어지고 있었
다. 원향은 다시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을 점지하였다는 용왕님께 빌었다. 탑고개 만신께서
처음 원향이를 보자마자 용녀라고 불러주지 않았던가.
원향이는 폭포의 원류를 따라서 올랐고, 그 위에는 넓은 바위위로 맑은 물이 잔잔히 넘쳐
나고 있었다. 이곳이 알 자리라 용신께서 알 낳는 곳이어서 원향은 다시 기도를 드리고 사
황봉으로 올랐다. 길이 차츰 가팔라지고 험해져서 원향은 무릎이 깨지고 손바닥이 벗겨졌다.
밤새껏 기어올라 봉우리 꼭대기에 오르니 달은 벌써 져서 사방은 캄캄 칠흑인데 구월산 상
상봉은 자못 넓고 편편하였다. 원향은 동남쪽의 바위 끝에 가서 앉아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합장하여 일어나 천왕당 자리에다 대고 절하기 시작하였다.
홀연히 바람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그녀의 치마폭을 한껏 날리면서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원향은 입을 반쯤 벌리고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바람은 원향의 머리털을 날리고 뺨을
어루만지고 몸을 스치면서 다가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 가운데서 길
다란 놀의 띠가 나타나고 있었다. 새벽 바람과 더불어 빛이 번지고 있었다. 이 터전 백성들
의 자리를 살피시던 당군 할아비의 눈길이 지금 트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은 바
야흐로 원향의 고향 풍천 여기포 갯가에서 해를 맞아 들이쳐오는 바람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날은 밝고 있었다. 놀의 띠는 차츰 번져나가 치마폭에 떨군 꼭두서니 물감처럼
아니면 구월산 철쭉의 분홍에서 아기 무당의 볼에 번진 익은 복숭아의 도홍으로 이리 점점
저리 뭉클 번지고 뻗치고 새어나오는 참이었다. 바다며 하늘의 위는 아직은 야청과 쑥색, 그
리고 놀이 번져가면서부터 그 근처는 보라였다. 구름도 익고 어둠을 벗기 시작하는 봉우리
들도 무르무르익는다. 드디어 빠알간 해가 구월산 동편 드넓은 어루리벌의 실개천과 강줄기
들을 물들이며 떠올라왔다. 아득하게 구름 사이로는 연두와 진초록의 숲이 보이고 뒤로는
이제사 빛을 받기 시작하는 검은 바다 위로 빛의 반점이 번지기 시작한다. 낙엽송과 잡목들
은 햇빛 속에 너울대고, 저 아래 할아비께서 승천하신 단군대와 장재이벌의 너른 가슴팍이
보였다.
아사봉 단군대 사황봉, 기중에서 이 자리는 성조께서 나라의 터전을 잡기 우해 등람하신
곳이다. 산은 봉봉 맥맥이 꿈틀꿈틀 휙 돌아져 삐쳤다가는 스을쩍 굽어져 흐느적이다가 다
시 가파르고 또 흘러 축 처지면서 들판으로 숨는다. 동남향으로 안악 신천 재령의 어루리벌
장재이벌 나무리벌이 펼쳐있고 서북으로는 황해와 대동강 어귀가 바라보인다. 원향은 두 손
을 합장하고 섰다가 문득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온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며 뒤로 넘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위는 고요한데 바람도 그치고 그저
환한 대낮이 산정에 내려앉아 있었다. 원향은 비칠거리며 산을 내려왔다.
원향은 사선골에 마련한 신당을 그대로 둔 채 사황봉과 단군대와 아사봉을 번갈아 오르내
렸다. 자신의 몸주가 되는 단군 성조님께서 낳으시고 살으시고 승천하신 영처를 좇아 더욱
강한 힘을 물려받으려는 것이었다. 원향이는 사황봉 바로 근처에 바위 절벽이 처마 끝처럼
비죽이 솟은 곳에다 수도처를 잡았다. 원향은 샐 녘에 칠성을 살피고 일어나 먼저 알 자리
에 찾아가 목욕하고 사황봉까지 올라 해맞이를 하였다. 그리고는 바위 아래 고요히 앉아 합
장하고서 마음을 모았다. 어느 꿈결에 수염이 하얀 노인이 나타나 원향에게 책을 주었고 그
뒤에 섰던 이들이 차례로 나오는데, 청룡을 타고 오는 서해 용왕은 여의주를 주었으며 백호
를 타고 오는 구월산신은 염주를 걸어주고 말에 탄 최장군님은 청룡도를 내려주었다. 만신
할머니가 연꽃으로 치장한 가마에 타고 앉아서, 네 소임이 중하고 또 중하다. 모든 신명들의
인정을 받았으니 두려워 말아라, 하고는 사라졌다. 원향은 신어머니를 부르며 두 팔을 젓다
가 깨어 일어났고, 아래쪽에서는 숲을 흔들고 있는 폭포 소리뿐이었다. 백일기도를 드리는
사이에 가을이 저물어갔고 서리 내릴 무렵하여 원향은 그 사선골 폐허 가운데 있던 신당 차
린 오막살이로 돌아왔다. 이따금씩 약초 캐는 이나 나무꾼 또는 버섯 따는 아낙들이 지나다
가 새로이 생겨난 처녀 무당의 기도처를 보고 들르기 시작하여, 은율과 송화의 산촌에서 시
골 아낙네들이 곡식을 가지고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차츰 큰 굿을 천하는 여자들도 많았으
나 원향은 굿만은 아직 사양하였다. 거의가 병이나 환난을 액막이해줄 비나리 고사가 대부
분이어서 이른바 선무당인 셈이었는데, 신통하게도 원향이 아픈 이의 몸에 손을 대어 넋두
리하면 금방 나았다.
오계준은 오진암 법회 이후에 여환과 약조하였던 대로 우선 월정사 사당말의 임가며 백련
이 등과 더불어 관북 관서 쪽으로 흘러가는 동급들 가운데서 믿을 만한 광대패들을 찾았다.
먼저 평양 강계 의주로 나가는 패와 원산 함흥 등지로 나가는 패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주로
갯가 어부 선상들 또는 극변지의 군졸이나 만상을 상대로 하였고, 대도회라면 역시 평양 의
주가 으뜸이었다. 내륙으로는 운산과 희천 등지의 관산으로 나가는 패들도 있었다. 이들은
다시 연희철이 끝나면 거의 평양 근교나 원산 외곽에서 모이니 겨울철에는 휴면하는 까닭이
었다. 맞임개에서 조운선을 타고 월당강을 빠지면 이내 대동강이어서 내왕에 수월하였다. 오
계준은 천직이 박수이니 간단한 무구 챙겨 지고 해서의 곳곳을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그는
자비령 길산네 산채에도 갔고, 평산서 안협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즉 안혐 이정명이네르
르 통하여 흥성산 장군사에 의탁한 탑고개 유민들과 연락하였으니 전성달은 이를 받아서 다
시 해서 관서 쪽의 소식을 여환에게 전하여주었던 것이다. 역시 해서에서는 감영이 있는 해
주가 요지였으므로 강령에 떨어진 구월산 유민들과 송화 문화 신천 재령 등지의 천민들을
묶는 일이 중하였다. 주로 무업 또는 광대질 또는 행상 또는 산간의 승려들이었는데 대략
손쉽게 꼽아서 서른 남짓은 될 듯하였다. 이들이 다시 삼사십씩의 대를 이루면 천여 명 가
까이 될 것이고 감영은 쉽게 점령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오계준은 진작부터 원향이 무업을 벌인 것을 알고 있었으나, 워낙에 소메와는 팔구십 리
길이라 성큼 발길이 가지 않았던 터였다. 은율 조산틀에도 동당이 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들은 은근히 장길산이나 구월산 녹림당이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밖에 구
월산 인근 사 읍은 물룐이요 멀리는 재령 서흥 신계 평산에서까지 저들의 활빈행이 있어서
일반 백성들은 모두 그들 편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봉산 근처에서 은거하고 있음은 대개들 아는 눈치였다. 오계준이가 막바로 나라를 뒤집자는
말은 못 꺼냈지만 그저 벼슬아치들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풍류계를 짜서 서로 굿이나 동제
를 지낼 적에 협조하고 관의 침탈이 있으면 미리 방비하자 하였더니 우선은 무당 박수들이
너도 나도 들었고 이어서 각 촌락의 동제 맡는 이정이나 집사 맡는 이들도 서로 들었다. 그
짜임새는 굿패와 광대패들이 밑받침이 되었으니 연결은 그물코와 같고 내밀하기가 참빗 틈
새와도 같았다. 동제를 지내려면 적어도 그 지역에 사는 박수 무당은 거의 동원되어야 하고
서로 다른 구역으로 조력하러 넘나들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조정을 모두 오계준이가 하던 것
이다. 그는 굿패의 총대로뿐만 아니라 한 풍각쟁이의 잽이로서도 그의 음율과 가락을 따를
자가 없어 기능이 모자라는 조무들은 그에게서 며칠씩 밤새워 배우고 성무가 되곤 하였다.
당굿이나 풍어제나 산제나 하여간 어느 고장이든 제 바닥에 걸맞는 동제를 지내려 하여도
우선은 신천 소메의 박수 총대 오계준을 찾아와 논의를 하게끔 되었었다. 그러면 오계준은
대강의 굿 절차를 협의하고 나서 그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풍류계의 무당잽이들에게 통
기하고 그는 굿하기 며칠 전에 가서 제 비용이나 사례를 따지고 나서 그를 균등히 나누어주
고는 하였다. 오박수가 들어서면 공연히 행하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일도 없어지고 무당잽
이 곁꾼들에게까지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되므로 그는 눈코 뜰 새가 없이 불려다녔다. 어
떤 때에는 말썽을 조정해달라고 그를 부르는 촌락이 있을 정도였다. 그의 별호는 소매 큰박
수였다. 오계준은 아직까지는 그와 절친하고 가까운 무당 박수나 여염의 양민 동무들께 속
마음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때가 무르익으면 처음에는 셋 중 하나는 나설 것이
고 오히려 성사될 듯싶어지면 그 열 배로 늘어나리라고 믿고 있었다. 오계준은 자신들의 계
를 위한 큰 굿을 구월산에서 열리라 작정하고 있었고 이번에 원향이의 단풍맞이굿을 열어줄
작정이었다. 무당이 몸주를 받아 내림굿을 하고 나면 그 영험의 성장을 위하여 한해에 꽃맞
이와 단풍맞이 두 차례의 굿판을 열게 되는데, 판에서의 새 무당의 놀이 실력을 보아 그 영
럭의 성장도를 판단하는 것이었따. 오계준이 원향을 해서의 큰만신으로 올리려는 데에는 까
닭이 있었으니, 그가 길산의 양모 재인말 큰만신 안씨의 신딸이며 장차 미륵도의 종사스님
인 여환과 맺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계준은 여느 때처럼 맨손에 봇짐도 없이 중치막에 방갓 쓴 차림으로 집에서 나왔다. 가
는 데마다 계원 집이니 숙식은 한두 끼 걱정이 없었다. 그리 바쁜 길도 아니라 까막내 길산
네 누이 집서 하루 자고 이튿날 구구월의 사선골로 올라갔다.
늦가을에 접어들어 단풍 물든 나무들도 잎을 떨구기 시작하였고 마른 풀에는 서리가 뽀얗
게 끼었다. 오계준은 실로 오랜만에 사선골에 가는 길이라 폐촌된 꼴을 처음 보았다. 갈대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바람결에 날리고 있었으며 드문드문 산국이 취월색으로 피어 한들거렸
다. 이리저리 무너진 돌담과 차버린 집터를 지나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연기 나는 집
이 문득 보이는 것이었다. 계준은 새로 두른 청솔 울바자를 돌아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원향이 있느냐?"
마침 신당을 차려둔 안방에서 기도중이던 원향이 소스라치게 놀라 뛰어나왔다.
"삼촌께서 웬일로 원행이십니까."
"그래 수도는 진전이 많더냐?"
"아직 들인 공이 없지요."
오계준이 원향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얼굴에 신기가 깃들인 것을 보니 이 당이 명당인 모양이다." "구월산 정기 탓이지요."
계준이 보기에 원향에게서는 여인의 자색이 사라졌고 어딘가 냉랭하고 살기가 깃들여 보여
서 감히 범하지 못할 분위기가 감돌았다. 눈빛은 쏘는 듯하고 얼굴은 무표정하며 마치 백지
에 그린 것처럼 인상이랄 것이 없어 뇌리에 남지 않았다. 그가 좋은 말을 하여도 입가에 희
미한 미소가 지나가는데 표정은 역시 같을 뿐이였다. 아마도 사선골서 관군의 손에 죽은 착
한 백성들의 원령이 신통한 영력으로 그 여자에게 깃들였는가.
"안으로 드시지요."
원향이 청하여 오계준은 들어가서 신당을 마주하고 앉았다. 화상도 없고 향촉도 없으나 나
지막한 선반 위에 안무당이 내려준 요령과 신칼 그리고 징과 바라, 다 낡아서 퇴색한 홍철
릭 한벌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얹혀 있고 바가지에 정갈하게 담은 쌀 한되가 있을 뿐이다.
오계준은 방안을 한바퀴 둘러보고 말하였다.
"날 따라서 소메로 나가지 않은 게 오히려 네게는 좋은 일인 것 같구나. 나는 어느 당이든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으니 만신의 영험은 살에 끼치는 감으로 대번에 안다. 원향이가 성신
과 함께 있는 것이 분명하구나."
"어찌 오셨는지요..."
"응 그래, 네가 재인말 큰만신께서 내려준 내림굿을 했으나 이제는 진작을 할 때다. 마침
우리 해서 계원들도 꽃맞이를 못하였으니 이번에 단풍맞이로 축신굿을 해야겠다." 오계준
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계속해서 말하였다.
"너도 아직 세상이 어떠함을 모르는 연소한 아녀자라 하나 대충 어찌 돌아가는지 눈치는
있을 터이다. 내가 듣기로 네 가족은 풍천 살적부터 침학을 받아 유리하다가 월정사 풍열스
님에게서 건져졌다지. 구월산의 활빈당이 모두 토포되고 인근에 살던 백성들은 죄도 없이
죽고 다치고 쫓겨났다. 네 신어머니 되시는 안무당도 그런 포한을 지니고 돌아가셨다. 네가
일찍이 계화 부부에게 구원되어 신천에 찾아왔을 때 나는 네 실성한 꼴을 보고 수십 번 입
술을 깨물었느니라. 너는 비록 그 당시 실성했었다지만 여환스님을 비롯한 우리들의 결의를
눈치챘을 것이다."
"명심하구 있어요."
오계준의 장황한 이야기를 자르는 것처럼 원향은 조용하게 대꾸하였다.
"우리 무당들의 계에 대하여도 조금은 알지요."
"그래, 네 말을 들으니 내가 미리 염려하지 않아두 되겠구나." "저는 몸주님 되시는 단군
성조님께 맹세하였습니다. 천지를 개벽하는 일에 제 작은 몸을 던지겠다고요. 저는 장차 여
환스님과 함께 한양의 경조 인근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외응할 군사 노릇을
하게 될 해서의 장정들을 알아두어야만 할 거예요. 맞이굿을 해주신다니 좋은 기회입니다.
비용은 아끼지 마셔야 할 거예요." "월정사에 가서 옥여스님이나 풍열스님께도 아뢰고 의
논을 드려야겠지." "아니어요. 그이들이 비록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라 할지라도 이
일은 전혀 우리들의 일이지요. 미륵님은 한 미륵님이시지만 우리에게는 상제님도 제석님도
하눌님도 되시지요. 뜻이 같다 하여도 예는 다를 수가 있어요. 그래야만 우리의 둘레로 들
어오는 백성들의 연계가 튼튼해질 거예요."
오계준은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였다. 그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였다.
"오, 이제 보니 원향이는 어린 아녀자가 아니라 큰만신께서 이르신 대로 용녀로구나." 그
리고 그들은 굿터에 대하여 의논하였는데 구월산 시루봉에 있는 단군대에서 열기로 하였다.
수십 길의 절벽 위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만한 천연의 석대가 있는데 옛적에 성조께서
그곳에 오르셔서 국도가 될 곳을 전망한 곳이라 하였다. 시루봉 아래 패엽사가 있었는데 그
절 주승은 바로 풍열스님을 따르던 아우뻘 되는 스님이라 의탁하기도 편하였으나 원향의 의
견을 따라서 그냥 사선골서 준비를 해가지고 산에 오르기로 하였던 것이다. 오계준은 원향
과 함께 월정사에 올라가 보았다. 옥여스님이 반가이 맞는데 풍열스님은 얼마 전에 강원도
로 떠나셨고, 옥여는 여환스님을 기다린다 하였다.
"동짓달에 온다고 하였으니 여환당과 동행하여 금화로 갈 예정이오." 지난번에 말득이가
송도 가는 길이라며 들렀더군. 요즈음 은광 잠채 일에 몹시 바쁜 모양이던데. 장두령과 강
선흥이는 노상 산채를 비우고 김선비와 최흥복이가 지키구 있다구 합디다."
"저희는 시루봉 단군대에서 금년 맞이굿을 열까 합니다. 원향이 만신맞이굿 겸하여 저희
계원들이 한번 모여보려구요."
오계준이 말하였고 옥여도 반가워하였다.
"이건 뭐 되지도 않는 중노릇 하느라구 오박수 혼자 계를 짜는데 도와주지도 못하였구려.
모두 얼마나 될 것 같소?"
"글쎄요. 여기 임거사, 백련이하구 원향이 저, 그리고 사당말서 잽이들하고 우리 안무당 식
구만 하여도 열 가까이 됩니다. 이런 식구들이 십여 대가 모일 것이라 백 명은 족히 됩니다.
하긴 뭐 단골들이나 동제 식구들에게까지 알린다면 온 해서가 들썩들썩할 것입니다." "나
도 이 구월산의 생각 있는 승려들과 참례하려오. 암자를 빼고도 십구사가 되는데 한 도문으
로는 이십여 인이 되오."
"스님만 오시지요. 승속이 다르고 허니..."
오계준이 원향을 힐끗 쳐다보며 말하였다.
"음, 딴은 그렇군. 차라리 그전에 여환수좌가 온다면 그가 참례하는게 낫겠구먼. 자아, 그러
면 우리는 공양미나 조금 내리다. 성조님이나 제석님께 바치든 미륵님께 바치든 모두 중생
을 위한 것이라 석존께서두 시샘은 않으시리다."
옥여가 이렇게 말을 하여 셋은 모두 웃었다. 그들은 휴면중이라 모두들 출행을 쉬고 있는
사당말에 내려가 오랜만에 여러 사당 거사들과 만났다. 그들도 맞이굿에는 여럿이 나와 일
손을 돕기로 되었다.
오계준이 우선 송화에 들러 까막내 박서방댁을 통하여 장연 은율 문화 등지에 퍼진 안무당
의 신딸 신아들 등께 알리도록 해두고, 자신은 얼른 소메로 돌아가 풍류계의 통문을 돌렸다.
이 소식은 곧바로 안협의 이정명에게 전해졌고 곧 삭녕 흥성산의 전성달에게 닿았다. 전성
달은 탑고개 괴뢰배의 총대라 해서의 재인 무당패를 모두 알고 있어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
니었다. 그는 황회와 여환에게 해서의 맞이굿판에 대하여 알렸다. 원해 단풍맞이굿이라는 것
이 날짜가 늦어진 셈이기는 하였으나 원향의 기도가 끝나는 철을 잡아 맞이굿하는 핑계를
대는 셈이어서 이미 날짜는 입동을 지나 대성이 다가오는 십일월 초순에 잡혀 있었다.
여환은 기왕에 동안거를 들어가기 전에 구월산에 들러 원향을 만나려던 참이었고, 그맘때
에 찾아가겠노라고 원향이뿐만 아니라 옥여에게도 약조를 해두었던 터였다. 여환은 미륵도
의 남은 일은 계화에게 맡겨두고 황회 전성달과 함께 십일월 초사흗날에 구월산을 향하여
떠났다. 삭녕 거쳐 평산으로 하여 곧장 서북로를 타고 신천 소메의 오계준네 집으로 찾아들
어갔다.
"오박수 계시우?"
전성달이 먼저 삽짝 안으로 들어서며 부르자 오계준이가 뛰어나오며 반겼다.
"어이구... 이게 누군가. 아니 여환스님도 오시고."
여환은 계준의 집에는 처음이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초가삼간이었건만 뒤뜰에는 솔가지
와 갈대가 더미로 쌓였고 마루도 반들거리며 윤이 났다. 아낙이 없는 살림인데도 박수란 또
한 세심하기가 이러하여 절간의 조촐함에 비할 만하였다. 방안에 앉아서 여환이 황회를 소
개하였더니 저희끼리 연줄을 캐고 하는 것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우리 황대덕이 일찍부터 진관사에서 의탁하던 재인이었소. 부인도 영평서
무업을 하시고."
여환이 거들어주자 황회가 계준에게 물었다.
"전상좌에게 들으니 전에 월정사 사당패에 들었다던데 혹시 안성 청룡사나 동작진패를 아
시우?"
이를테면 그 줄에서 오계준이가 까마득한 성님 격이라 빙긋 웃었다. 사실 그는 초로에 접
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요... 구월산 식구 총대로 있는 임서방이 새파랗게 젊었을 적이니... 내가 알던 이들은
모두 저승패가 되었을 게요."
"고달근이나 김복만이 생각이 납니까?"
"예, 모두 알지요. 연평 조기철에 몽구미에서 함께 놀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 제 동
무들입니다."
"따져보니 한식구들이구먼."
전성달이는 까마득한 아우뻘이 되어도 이런 수작이 오가는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굿은 거의 준비가 되었나요?"
여환이 계준에게 물었다. 계준은 반닫이 속을 뒤적여서 책 한권을 꺼냈다.
"거기 점고된 것이 이번에 굿에 오기로 응낙한 계원들입니다." 여환이 대강 눈으로 짚어
보니 재령과 신천이 평야지대라 물산이 많아 그런지 십여 명이 넘었고 평산 신계 서흥 봉산
에서도 각각 십여명, 그리고 안악 문화 은율 송화 장연 등지에서 오륙 명, 끝으로 강령 배
천 연안이 한꺼번에 이십여 명이 되었다. 전성달이가 아는 체를 하였다.
"성명을 보아허니 예전 사선골 살던 동무들이로군. 그래서 머릿수가 많은 모양이우." "맞
소, 사선골 살던 이들이 시방 강령에 몰려 살지요. 동절이라 예전 살던 곳도 찾아볼 겸하여
서로 식구가 온통 나서겠다는 것을 실제계원으로 쓸모 있을 만한 이들로 추린 것이지요. 배
천 연안서 오는 이는 예전에 나와 함께 해주 교방밥을 먹던 잽이 동무들이고..." "그이들이
일대에서 모두 신도들을 이끌고 있겠지요." 황회가 말하고 오계준이 답하였다.
"그렇지요. 대개들 작으면 동네 서넛을 맡고, 크면 대처나 군이나 동네가 열 군데는 되겠지
요."
여환이 속으로 대강 추려서 짐작해보는데, 백여 명이 조금 못 될 듯하였다. 이들 무계는 거
의 해서 전역에 걸쳐 있는 연계였다. 한양이 뒤집어졌다는 통문만 전해지면 그들을 동원하
여 군과 감영을 점령하기란 손쉬운 일이었다. 진인께서 이미 한양 성내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문이 나고 보면 천민들은 제각기 자기 고을에서 양반들을 들이칠 것이고, 저들은 서로 향
병을 일으킬 틈도 없게 될 것이다.
이튿날 식전에 여환 황회 전성달은 소메를 나섰고, 오계준은 재령 계원들과 봉산 계원들이
오는 것을 기다려 뒤에 사선골로 찾아오기로 하였다. 그들은 은율 내고개를 넘어서 이미 노
루꼬리만한 겨울해가 지고 나서야 사선골에 당도하였고 깊은 골짜기에는 불빛 한점 보이지
를 않았다. 동네에 들어서자 전성달은 예전부터 탑고개서 사선골로 자주 마실을 다녔으니
길이 눈에 익어야겠는데 도무지 사위를 분간할 도리가 없었다.
"이거 원. 이렇게 달라지다니. 길이 있어야 갈 게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길은 마른 풀
과 갈대로 뒤덮였고 돌담은 무너졌으며 집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먼 데 산에서는
밤새가 울었고 스산한 바람이 골짜기 속을 스쳐왔다. 여환은 이리저리 살피는데 먼데서
뭔가 불빛 한 점이 보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여환이 그쪽으로 나서면서 일행을 끌고
갔다. 황회는 발을 헛디뎠는지 앞으로 고꾸라져서 무릎이 깨어졌다. 이런 낭패가 없었다.
"어이."
하고 입가에 손나발을 대고 여환이 외치니 불빛은 일렁이며 다가왔다. 그들은 잠시 어둠 가
운데 주저앉아 있었다.
"거기 누구셔요?"
원향의 목소리였다. 여환은 치켜올려진 관솔 횃불 아래로 흰 소복을 입은 원향의 모습을
보았다.
"나다... 여환이다."
원향이 그제사 잽싼 동작으로 갈대를 헤치고 다가들었고 세 사람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거기는 개천 자리여요. 겨울이라 물이 말랐지요. 이리루 올라오셔요." 원향이 내민 손을
여환은 잡았다. 손은 따뜻하였다. 여환은 위로 올라섰고 이어서 황회와 전성달을 끌어올렸
다. 위로 올라서고 보니 길이 있던 자리라 평탄하였는데, 갈대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았
던 것이다.
"어찌 알고 나왔느냐?"
"아니 그저... 혼자 앉았는데 조바심이 일어나서..." 원향은 그 무렵쯤 하여 여환이 온다는
것을 오계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저녁에 밥을 짓는데, 아궁이 앞에 앉았으려니 부지깽
이를 잡은 손이 자꾸 떨리고 명치 아래가 간질거려서 도무지 봉당에 앉아 있기가 불안하였
다. 내 신명이 왜 이다지 방정을 떨고 있는가 하여 원향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마당
으로 나갔다. 울타리 너머로 어둑어둑 저문 하늘이 보였고 갈대의 꽃은 하얗게 남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원향은 저 비스듬히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구구월의 연봉과 고개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원향은 알았다.
"양주서 그이가 오시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의 신명이 이렇게 깨어 일어나 안달을 일으킬 리가 없었다. 원향은
불을 대충 빼어 다른쪽 아궁이에다 잠재우고 소롯이 남은 밑불에 뜸을 들이면서 신당 차린
방에 들어가 일심을 모아 기도하였다. 그러나 귓바퀴에서는 연상 밖에서 갈잎을 스치며 지
나가는 바람소리가 발짝 소리처럼 들려왔다. 죄받을라. 이런 안달을 하다가는 내림굿 받은
영험을 다 거두어가실라. 원향은 밥도 먹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두 손 합장하고 앉아 있었
다. 눈앞에 뭔가 퍼뜩하는데 스스로의 가슴 복판에서 착 가라앉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님이 오신다, 네 오라비, 네 남편이 오신다. 원향은 하, 숨을 내쉬더니 눈을 감았다. 두 손
모으고 고개 치켜든 원향의 눈에서는 눈물이 스르르 흘러서 뺨을 타고 내렸다. 슬픈 까닭이
아니었다. 마음의 둥그런 곳에 여러 구석이 있건마는, 이제는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서 흘러
다니지 않고 가운데에 고요히 머물러 있는 줄로 알았다. 그 마음 한쪽에 상한 데를 잊고 있
었거늘 느닷없이 자신의 혼백이 상흔에 닿아 다시 이리저리 부딪쳐 흐르고 있었다. 마치 작
은 샘 위의 표주박처럼. 이 무슨 인연이랴. 여환의 손길에 닿았던 바로 그 상처 난 마음자리
가 여환을 부르라고 거칠게 뛰고 있었다. 원향은 비로소 밤이 이슥해졌음을 알고 관솔불을
밝혔다. 원향은 불을 밝혀 들고 몇번이나 마당을 서성거렸고, 이어서 꿈결에서인 듯 사람의
외쳐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여환과 황회 전성달은 방에 들어가서 한숨 돌렸고 원향은 서속에 쌀을 나우 섞어서 저녁을
지었다.
"아이구 하마터면 길 잃고 산속에서 얼어 죽을 뻔하였네." 전성달이 중얼거렸고 황회는
얼굴을 찡그리고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렸다.
"그래두 무릎이라 다행이군."
불빛에 살피니 황회의 무릎이 돈짝만하게 벗겨져 피가 맺혀 있었다. 여환이 말하였다.
"세상이 이와 같이 명명하거늘 신불은 언제나 이루어질 것인가." 전성달과 황회는 그 말
에 문득 서로를 쳐다보았다. 조금 아까 완전히 그들을 꼼짝도 못하게 붙잡아두었던 암흑이
새삼 다르게 여겨졌던 것이다. 바로 길을 찾으려고 수많은 백성들이 넘어지고 비틀거리며
구렁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원향이 저녁을 들여오는데 소반 하나 없어서 왕골로 엮은 채반 위에다 받쳐들었다. 그래도
서속밥이긴 하나, 사발 그득하고 마른나물 등속에 버섯국이며 장이 놓였다. 그릇이 모자라서
대충 표주박과 나무 그릇이 끼여 있었다. 황회가 다가앉으며 힐끗 원향을 올려다보았다. 머
리를 틀어얹지 않았고 그렇다고 귀밑머리로 땋아 늘이지도 않았으며 목 뒤에 흰 끈으로 삼
단 같은 머리를 잘룩히 매어두었으니 처자가 분명은 하였으나, 여환과의 사이가 애매하여
난처하였던 것이다.
"어, 이거 인사두 없이 그냥 먹을 수도 없고, 처자에게 내외하기도 뭣하고." 황회가 두 사
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리니 여환은 말이 없고 전성달이가 얼른 나섰다.
"응, 다 조카뻘이고 식구 같고 그러면 되지 뭘. 내야 사당말서 어릴적부터 보아와서... 이이
는 저어 영평 사는 황거사님이시고 안댁이 만신이라네." 원향이 윗목에서 다소곳이 앉은
채로 허리를 굽혀 보였고, 황회가 돌아앉으며 마주 꾸벅하였다.
"공양하였나?"
전성달이 여환이 대신 물었다.
"예, 어서 드십시오. 먼길 오셔서 시장하실 텐데."
원향이 권하자마자 그들은 제각기 밥을 들어 수저질을 시작하였다. 원향은 윗목에서 조용
히 앉아 있었다. 상을 물리니 군불은 따뜻이 넣은 방구들 탓인가, 식곤증인가, 셋은 몸이 녹
적지근하게 내려앉았다. 황회가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장딴지도 치면서 하품을 하였고 원
향이 얼른 일어났다.
"편히들 주무시지요. 저는 저 윗방으로 건너가겠습니다. 이불이 한채뿐이라 덮고만 주무셔
요."
"나일세. 우린 그냥 구들목 짊어지고 자면 되어. 봉노에서 자던 버릇이 배어 덮으면 답답해
못 자네."
전성달이 말하였지만, 원향이는 더 이상 대답 없이 윗방으로 건너갔다. 여환은 잠시 앉았다
가 방 윗목에 고리짝 위에 얹힌 뻘이불을 안아들더니 마루를 건너갔다.
"불은 넣었느냐?"
여환이 이불을 내려놓고는 방에다 손을 대보았고 원향은 이불을 밀어내듯이 하면서 말하였
다.
"아이, 손님들 덮으시게 그냥 두시잖고..."
"우린 괜찮다. 헌데 이제 맞이굿을 하면 백여 명이 들이닥칠 터인데 어디서 묵고 어디서
밥을 지으려느냐."
"동네가 반나마 부서졌다고는 하여도 이 윗골 쪽에는 토방이 성한 집이 여러 채니까 군불
만 넣으면 되어요. 그리고 정곡사에서 가마솥을 여러 개 빌려올 것이구요," 여환은 더는 뭐
라고 건넬 말이 없어져서 머뭇거리다가 말하였다.
"자거라..."
"주무셔요."
여환은 다시 신당방으로 돌아왔고 황회는 벌써 코를 고는 중이었다. 전성달이 말하였다.
"왜 건너오시우?"
여환이 대꾸 없이 그의 곁에 누우니 성달은 다시 말하였다.
"내가 오박수에게서 듣기로는 두 사람이 가약을 맺기로 하였다는데 뭘 우물쭈물허시우."
여환은 돌아누웠다가, "불 끌까요?"
하고는 일어나서 관솔불을 불었다.
새벽인가. 멀리 정곡사에서 치는 범종 소리가 구구월의 골짜기 가운데로 날아가고 있었다.
여환은 눈을 떳다. 윗방에서 미닫이를 여닫는 소리가 들렸고 원향의 발소리가 나더니 신당
방 앞에 와서 섰다. 여환은 슬며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원향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
다.
"스님, 이리나오셔요."
여환은 대답 없이 밖으로 나섰다.
"기도드리느냐?"
"예, 신당에서 드리지만 오늘은 스님이 오셨으니 제가 모시고 갈 곳이 있습니다." 원향이
앞서서 걷기 시작하는데 여환은 뒤를 따라 나섰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코끝에 끼쳐왔다.
그들은 사선골 오른쪽으로 돌아서 골짜기 위로 올랐다.
"어디로 가느냐?"
여환이 물으니 원향이 뒤돌아 기다려주면서 답하였다.
"제가 수도하던 곳엘 찾아갈까 해요."
"어디... 정곡사 근처인가."
"아뇨, 용연에 가는 거예요. 저를 점지하신 성신이 서해 용왕이고 저는 용녀가 아닌가요.
몸주님은 단군이시고 구월산에 내리시지요. 용의 몸을 받아 사황봉에 밝게 뜨는 해를 혼백
으로 태어났다지요."
여환은 원향의 뒤를 따르기만 하였다. 두 사람은 원래 산간에서 자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정곡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앞에 당도하였고 그 옆길로 빠져서 계속 올라갔다. 용연비폭이라
하나 절벽 가녘으로는 얼음이 하얗게 얼어붙어 기둥처럼 섰고 그 가운데 좁아진 물줄기가
마치 명주 수건처럼 휘날리는데 물 떨어지는 자리는 그대로요 못의 주위는 얼어붙었다. 여
환이 두리번거리니 멀리 동이 트고 있었으며 폭포가 마주보이는 병풍 같은 바위에 두 사람
은 서 있었다. 원향이 두 손 모으고 비나리를 하였고 여환은 나직하게 염불하였다. 드디어
컴컴한 하늘이 부옇게 밝아왔다. 그들이 각각 염불을 그쳤을 때 원향이 말하였다.
"저를 데리러 오셨나요?"
"그래. 내가 온다구 하지 않더냐."
"전생의 오누이가 아니라 부부 화합하는 것인가요?"
"지어미 지아비가 되어야지."
"아이를 낳게 되나요."
"동남 동녀로 살지."
"그럼 우리 여기서 목욕재계해요."
원향은 앞장서서 용알 자리로 올라갔다. 여환이 뒤를 따라서 올랐는데, 그는 어찌된 셈인지
실성한 원향이를 간병하던 때와는 달리 심신이 차분하였다. 그들은 옷을 벗었다. 새벽의 냉
기가 맨살에 와 닿았다. 원향과 여환은 나란히 얼음 위로 걸었다. 맨발이 떨어지는 것 같았
다. 그들은 반석 위에서 손으로 흐르는 물을 떠서 몸을 닦았다. 살갗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 위에 물을 부어주었다. 떠오른 햇살에 얼음 같은 물방울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반짝이며 부서져갔다. 여환은 장삼 자락으로 원향의 젖은 몸을 닦아주고 자신도
몸을 닦았다. 옷을 입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내왔다. 여환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차디찬 손
으로 움켜쥐며 원향이 말하였다.
"우리는 이제 부부예요."
내려오는 동안에 그들의 몸은 다시 더워졌다. 사선골로 돌아오니 신당 안에서는 아직도 전
성달과 황회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맞이굿을 이틀 앞두고 전성달과 황회는 사선골의 빈집들을 대강 치웠고 월정사에서는 옥여
가 사당말의 거사들과 백련이를 비롯한 사람 몇을 데리고 사선골로 내려왔다. 그들은 미곡
한 섬과 장을 가져왔다. 정곡사에서는 가마솥이 내려왔고 아낙네들은 장정들의 도움을 받아
돌위에 솥들을 걸었다. 옥여와 여환은 원향이네 옆집에 치워진 손님방에 앉아서 오랜만의
회포를 풀었다. 옥여가 말하였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풍열스님께선 지난 가을에 오진암을 떠나 금화 천불산으로 가셨
어. 한양에서의 거사를 기다려 근기 일대의 사찰로 다시 옮기신다구 하셨지. 나도 이번 동안
거는 천불사에서 보내고 구월산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일세." "미륵의 교세는 차츰
자라나고 있네. 지난번에 천불산에서 신서가 와서 모두들 다시 적어 나누어 가졌지."
"신서라니... 경문 말인가?"
"감결이라네. 선조조부터 널리 퍼져 있었던 괴서일세. 불가에서 볼 제는 취택할 바가 없으
나, 우리가 역성혁명을 도모하려면 백성들께는 꼭 필요한 책이 될 게야." 여환은 그러한 책
이 산문에서 흘러나오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천불산에서 보냈다고는 하나 나는 이 책이 고성의 설선비가 적은 것이라 여겨지는군." "
그럴 테지. 운부 큰스님께선 그러한 세간의 참서가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시니까." 하고 나
서 옥여가 말하였다.
"믿을 수 있다든가 없다든가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야. 말세에 이르러 약하고 가난한 백성
이 살아남고 탐욕스럽고 인의 없는 권세가와 왕조는 멸망한다는 예언이 우리가 취할 점이거
든."
그러나 여환은 웃지 않고 말하였다.
"나는 저들 백성들처럼 그 사실을 굳게 믿네."
"허어, 아무렴. 자네야말로 양주의 산 미륵이신데...." "여기 오던 날 새벽에 원향이하구 나
는 혼례를 올렸지." 옥여가 말하였다.
"드디어 사음계를 범하였는가?"
"우리는 용의 못에서 물로 가약을 맺은 셈일세. 동남 동녀의 부부가 되기로 하였지. 나는
이제 동녀인 원향과 연을 맺으면서 미륵으로 환생하려네. 건도에서 곤도로 가는 새 세상인
셈이지. 보살을 거치지 않고는 어미를 통하지 않고는 태극을 통하지 않고는 조화의 개벽은
이루어지지 않을 게야. 원향은 단군 성조를 몸주로 받아 수도하는 가운데 스스로 깨쳤던 게
야."
"자넨 이미 불가를 떠났군."
"아닐세. 내 한 아비의 혼백을 가지고 미륵에게로 나갈 테여." 옥여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여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환은 계속해서 말하였다.
"올해가 정묘년이고 내년이 무진년일세. 세상에서는 무진년에 양반은 상사람이 되고 천민
은 양반된다고 유언이 낭자하다네. 일찍이 단군께서 아사달에 무진입국하지 않으셨나. 우리
는 명년에 반드시 거사를 일으켜야 하네."
옥여가 말하였다.
"무슨 해가 되었든 거사는 해야지. 자네가 소식만 주면 우리는 사방에서 벌떼같이 일어나
산문을 박차고 나가게 될 걸세."
구월산 인근 사 읍인 은율 송화 문화 안악 등지에서는 전날 오전부터 사람들이 올라와 굿
준비를 거들었고, 오후가 되자 오계준이가 신천 재령 사람들을 데리고 떼지어 몰려들었다.
사선골은 구구월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요 때가 초겨울이라 관의 기찰은 없는 눈치였다. 설
령 있다 하여도 해서의 무계가 모여서 뒤늦은 맞이굿은 한다는데야 별 까탈이 있을 것 같지
는 않았다. 해서 무계의 총대 격이 오계준인지라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밖으로 나
와 인사하였다. 남자들이 쓰기로 한 원향이네 옆집 초가의 안방에는 각 지역의 나이 많은
박수들과 스님들이 있었고 건넌방에는 젊은 화랭이들이나 거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반
이상이 무부였다. 저녁참이 되어 평산 신계 서흥 봉산 사람들이 몰려왔고 봉산 사람들 틈에
는 강말득이도 끼여 있었다. 아마도 김기가 이쪽의 되어가는 사정을 보려고 보낸 듯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날이 저문 뒤에야 강령 배천 연안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황회와 전성달
은 전의 겅험도 있고 하여 동네 어귀의 길초입에다 화톳불을 크게 피워서, 밤에 오는 사람
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해두었다. 강령 채거리들이란 모두가 사선골서 쫓겨났던 구월산 난
민들이었고 배천 연안 장연 등 감영이 있는 해주 근처 사람들은 오계중이 예전에 교방밥을
먹으며 해금으로 날리던 시절에 사귀었던 악사 잽이들이었다. 사선골 살던 강령 사람들이
들어서자 원향이는 마주 달려나가 서로 손을 맞잡고 울었다. 백련이와 임거사도 그들과 서
로 안부를 물었다.
"여기가 얼마나 좋아. 구월산 소나무 잣나무 냄새에 절로 가슴이 후련해지는구먼. 강령이야
갯가라서 온통 뻘바탕이라 물은 짜지, 바람은 끈끈하지, 나무는커녕 갈대 물풀만 키 넘게 자
라는걸. 그저 굴 따고 조개 주워 먹는 맛으로 낙붙여 살지." 사선골 살던 광대의 아낙 하나
가 눈물을 찍어내며 말하였다.
"그래 원향이 자네가 탑고개 만신네 뒤를 이었다니 이런 경사가 어디 있나, 겸사겸사하여
우리게서는 죽은 이들 넋걷이라두 해주려구 이렇게 몰려왔지. 우리네야 동절밖엔 어디 집에
붙박혀 있을 수가 있어야지."
"저 혼자 동네로 돌아와 이 골 혼백들 모셔놓구 신당에 빌었지요." "그래 고맙다. 원혼들
이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을꼬." "맞이굿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해원굿부터 해줍시다. "
"가만있자. 이집이 누구네 집이었지. 오라 그러고 보니...." 아낙네는 울음을 먼저 터뜨렸
다.
"얼룩댁 집이 아녔어. 그 집 식구가 길로 나오다가 칼에 맞아 질질 끌려갔다지." 울음을
터뜨린 것은 아마도 얼룩댁이라는 광대의 식구들 때문이 아니라 집 잃고 가족 잃은 원한 때
문일 것이다. 옆에 섰던 이들이 제각기 등을 두드리고 달래면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전
성달이도 사선골 패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살아 있었구먼. 하긴... 우리두 얘기는 들었네. 이쪽이야 갯가라지만 그래두 해서의 울안인
데 자네들은 삭녕까지 끌려갔다니 얼마나 고생이 되었나." "고생이야 뭐 팔도 어딜 가든
고생길이지요. 저희는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거기 장군사라고 절에 의탁이 되어 걸립도
돌고 행상도 다닙니다." "어디 두고 보세. 우리가 이대로 늙어 죽나 저희들이 망하나. 여
기살 제 우리두 어엿하게 역을 진 백성이었어. 오랑캐나 왜인들에게는 꿈쩍도 못허구, 갯
가에 황당선이라두 와보게.
쌀 달라면 쌀 주고 물 달라면 물 주고, 그뿐인가. 당왜화를 주고받으니.... 그저 우리네 같은
천덕쇠들은 함부로 때려 죽이고 내쫓아도 된다 그말이지. 제 식구나 새끼들 때려 잡는 가장
치고 밖에 나와 사내 구실하는 놈 못 봤네."
전성달이도 하는 수 없이 강령서 온 광대를 달랬다.
"자, 아저씨. 그러니까 우리가 옛말두 하구 포한두 갚아보자구 이렇게 모이지 않았습니까."
"암, 갚아야지. 갚아야 하구말구."
"저어기, 풍류계 총대하는 오계준이라구 전에 구월산서 모가비하던 아저씨 아시죠?" "아다
뿐인가. 오박수 해서에서 모른다면 아예 쟁인이 아니지." 그들은 떠들썩하게 여기저기서 아
는 체를 하면서 손님방으로들 들어갔다. 아낙들은 국밥을 날라주느라 정신들이 없고, 오계준
은 계의 좌장들과 굿 준비들을 하느리고 정신이 없었다.
역시 주무는 오계준이 하기로 되었고 맞이굿의 주무는 원향이가 서기로 하였으며 조무는
각 자역의 만신 박수들이 제판을 한 대목씩 맡아나가도록 하였으며 바라지와 잽이들은 주로
광대 거사패들이 하기로 되었다.
밤에 곳곳마다 화톳불이 피워지고 우선 사선골의 원혼들을 저승으로 천도하기 위한 해원
수왕굿이 시작되었다. 계준이나 원향은 나서지 않고 사선골 사람들이 주동이 되고 산청굿
초부정 칠성굿에서 조상 수왕 마당굿으로 이루어진 열두 마당이 한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사
선골과 월정사 사당말 사람들은 간간이 서로 부여잡고 울기도 하였고 사람들이 말리기도 하
였다. 그들의 정경을 보아온 해서의 천민들은 그들의 형제가 구월산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
가를 훤히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을 서방 정토로 배송하고 나서 한동안 분위기는 침울하였다.
연이어 맞이굿이 시작되는데 계준은 잽이석에 앉아서 해금을 켰다. 오랜만에 듣는 오박수의
음률이라 하여 한동안 굿보다 풍악이 먼저 계속되었다. 홍치마에 전복 입고 띠를 매고 머리
에 꽃갓 쓰고 왼손에 삼지창, 오른손에 요령과 부채를 쥔 원향이가 굿판 가운데로 걸어나왔
다. 울긋불긋한 옷과 원향의 젊은 맵시는 불빛에 일렁여서 연꽃이나 모란이 피어난 듯하였
다. 좌중에서 서로 묻고 대답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저 만산이 어디 만신이래?"
"여기 사선골 살았다더군. 어미와 동생이 창에 찔리고 불에 타 죽었다지. 그 뒤로 신이 내
렸다더군."
"허어, 맵시 한번 곱다."
"나이는 어리고 저래보여도, 해서 만신 중에 가장 연로하고 영험 있다던 그 안무당 만신의
내림을 받았다데."
"안무당이라면 그 뭣인가... 구월산 된목이골의..."
"왜 아닌가. 활빈도를 이끌던 장장군님의 수양모친이지." "큰무당이었지. 내가 어려서 어머
니를 따라 구월산에 단군제 지내러 와서 뵈었네. 떡시루를 물고 두어 식경이나 겅정춤을 추
는데 기운도 천하장사여." 이같은 소리가 퍼져나가 원향이가 해서 만신의 가운데 기동이
되는 소임을 내림받았다 하여 다른 지역의 선무당들이 나와서 빌었다.
원향의 맞이굿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감이 되었다. 원향은 몇번이나 기절했다가 다시 깨
어났고 시루를 입에 물고 춤을 추어 안무당의 영험이 깃들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계준을
필두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남부여대하여 구구월의 능선을 타고 시루봉의 단군대를 향하여
올라갔다. 구월산성을 돌아 패엽사의 뒷길로 하여 수십 길의 낭떠러지가 깎인 듯 섰는 시루
봉 처마바위에 이르니 동이 트는 중이었다. 처마바위 밑은 수십여 명이 서 있을 만하였고
그 아래 사궁석이 있는 활터는 가히 백여 명이 모일 만하였다. 단군대에서 바라보니 멀리
아득한 곳에 장재이벌의 너른 평야가 펼쳐있고, 부처고개 돈산 건지산 천사산과 추산 광대
산 등의 구릉이 점점이 보였다.
오계준과 황회 전성달 여환과 원향 그리고 몇몇 박수와 무당들이 참례하여 단군대에 제물
을 마련하고 산제를 올렸다. 바람은 시루봉을 맴돌아 쏜살같이 퍼져나가더니 그들의 제사에
응답이라도 하는 양 빽빽한 송림을 파도처럼 휩쓸어갔다. 수억 천만의 솔잎 사이로 새어나
가는 바람이 결결이 합쳐서 상제의 신장들이 목청을 모아 궁음의 목구멍 소리로 낮고 길게
부르짖는 것 같았다. 구름이 짙고 어둡게 깔린 초겨울의 하늘 끄트머리에 붉고 노란 광명이
번져나가면서 해가 떠올라왔다. 오계준이 먼저 징을 잔잔하게 두드리면 나직하게 시나위를
창하였다.
구름이 이리저리 찢어지면서 빛은 사방으로 번지고 새어서 땅 위를 적셨다. 단군께서 여기
앉아 이 땅의 백성들이 살 터전을 살피시던 자리의 바위와 하늘과 시루봉은 여전하건마는
그때의 화평은 조선 천지에 찾을 데가 없다. 제 조상을 잊고 조상 대하기를 헌 짚신짝처럽
여기는 것들은 제 백성과 자식에게도 그러하니, 이제 저 벌판 아득히 먼데까지 미쳤던 이
땅덩이의 신명들은 어찌할거나.
활터에서는 오계준의 구월산 당제가 시작되었고, 각종 잽이들의 무악이 연주되었다. 부정거
리에서부터 가망청배를 하고 본향 바람으로 신의 공수를 받는데 부채와 방울 들고 홍철릭에
주립을 쓰고 먼저 단군대를 향하여 세 번 절하고 다시 사방에 절을 올리니 방울이 울리면서
신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삼지창과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오계준은 겅정거리며 춤을 추었
다. 그 뒤로 계속 춤이 이어지고 십여 거리가 지나서 모든 계원들이 활터에 얽히고 설켜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그들의 몸은 땀과 열로 젖고 뜨거워졌으며 어느덧 기나긴 굿거리가
끝날 즈음에는 하루 해가 저물고 있었다. 계원들은 사선골로 내려왔는데 신바람이 과한 사
람들은 아직도 기운이 펄펄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래기처럼 늘어져버렸다.
손님 방에는 오계준 황회 전성달 여환과 각 지역계의 좌장들이 둘러 앉았고 구월산 만신으
로 인정을 받은 원향이가 참석하였다. 오계준이 자리를 둘러보아 아는 이들이 빠짐없이 있
는가를 살피고 나서, 굿에 소요된 제수 비용이며 정곡사와 월정사에서 들어온 제물이며 각
지역에서 바친 미곡과 건어물 등속 은율 장림에서 사온 돈육 등등을 밝히며 확인하였다. 그
리고 오계준은 해서 무계인 풍류계를 짜게 된 연유를 말하였다.
"우리가 모두 한 신어머니 신아비를 모셔온 식구는 아니되, 이렇게 계를 이룬 것은 밥벌이
때문이 아니올시다. 관가에서뿐 아니라 유생이네 좌수네 향반에 토반입네 하는 것들에게서
침학을 받거나 괄시받은 이가 어디 한둘이겠소?"
계준이 둘러보니 모두들 떠들었다.
"허허 우리세서는 산신각을 때려 부쉈어. 그것두 인제 막 책씻이를 한 초립동이들이 말일
세."
"나는 지난번에 마누라가 향교 근처의 서낭당에서 사물을 잡혔다고, 유생들께 끌려가 대신
장형을 당했수."
"우리 동네 두레패들이 백중날 호미씻기를 하구나서 동제를 지내다가 좌수에게 혼쭐이 났
지."
계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와같이 양반들은 저희끼리 구름같이 높고 높은 생각과 성인처럼 고매한 학문을 주고받
아, 일찍이 오랑캐를 면하여 대국인과 같이 된답디다. 그래 양반 사대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내려준 것이 무엇이오. 약한 놈에게서 빼앗고 어리석은 자 후리고 논밭에 엎드려 거름
두는 농투성이 업신여기고, 흉황에는 멀건 죽사발이요, 외침 때에는 저희는 도망가고 우리는
산천을 지키거나 아니면 적의 천예가 되라 하오. 이러한 난세의 고난중에 마음도 몸도 붙일
데 없이 그저 병들어도 약 한첩 못 쓰고 의원 모실 돈도 없어 비나리 고사에 푸닥거리가 고
작이오. 바다에 빠져 죽고 못 먹어 부황 나고 아귀같이 다투다 죽고 애낳다 죽고 맞아 죽어
도 그저 수왕굿이나 오구굿이 고작이니, 이 천한 백성은 누굴 믿고 살란 말요. 양반은 저희
끼리 모두가 밖에서 떠들어온 것으로 젠척하고 안 척하며 말의 끝마다 씨마다 도깨비놀음하
는 격으로 모를 소리만 지껄입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나무에 서낭, 산에 가서 산신님, 바다
에두 용왕님, 부엌에 조왕님, 집터에 터주님, 다 받들고 이 터전서 발붙이고 맘붙인 생각만
믿구 있단 말이우. 이런 백성들을 오히려 능멸하고 음풍이다 사교다 미신이다 하여 내치며,
이제 더욱 누천 년이 되어 이 터전에 얼크러진 삼불 제석님 부처님까지도 업신여기니, 우리
단군 성조님 때부터 이 터전 지켜오고 이 백성 살펴온 우리 무당 만신이 남은 백성들 마음
을 보살펴야 하오. 사선골이나 탑고개같이 관재에 빠지거나, 지난 병인년처럼 흉황 역질로
생지옥이 벌어지면 언제든 힘을 합쳐서 물리치자는 것이오. 그래서 우리계는 사천 뿐만 아
니라 땅 없는 숱한 작인들, 행상아치, 유민, 갯가의 사공, 어부 모두 한식구로 알고 저들을
한마음으로 잡아야 합니다."
여환은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 입을 다물고는 있으되 과연 오계준이 해서 무계의 총대
가 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를테면 무계원 모두가 보살행을 이루자는 뜻이 아니
랴.
"우리 계에서는 시주나 걸립을 받아 아껴 쓰고 남겼다가 그러한 이들은 활인하는 데 쓰지
요."
전성달이 말하자 모두들 입을 모아 계에서 비용을 거두자고 다투어 말하였다. 원향이 말하
였다.
"박수님들보다는 부녀자인 저희 만신들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백성들 속사정을 잘 압니다.
계의 비용은 각 고을마다 젊은 만신이 주동이 되어 거둬서 좌장들께 전해놓도록 하십시오.
그랬다가 철철이로 구월산 맞이굿에 오실 때 여기 와서 모으면 될 거예요." 모두들 그것이
좋겠다고 찬성이었고, 그 뒤에 의논은 다음에 좌장들만이 여는 작은 계회를 어디서 갖느냐
는 것이 되었다. 무계의 모임이 모두 파하자 사선골은 갑자기 저승처럼 적막강산이 되었다.
전성달과 황회는 평산 가는 이들과 토산 거쳐서 삭녕으로 가겠다고 동행하여 먼저 떠났고
원향과 여환 두 사람만이 남았던 것이다. 이미 용연의 물로 가약이 맺어졌다고는 하나 둘
만 남게 되니 뭐라고 부부의 행세를 할지 난감하였다. 여환은 쓰다 달다 말이 없이 신당방
에 앉아 있었고, 원향이는 물을 긷는다, 마당을 쓴다, 마루를 닦는다, 굿판의 뒤처리를 하느
라고 부산하게 우왕좌왕하였다. 여환과 눈이 마주치자 원향이는 그저 배시시 웃었다.
"시장하시지요? 내 얼른 중화 지어 올릴게요."
여환은 이러한 여염의 부부가 하는 짓거리가 천지 조화 속임을 느꼈다. 이렇게 살면서 살
도 섞게 되고 아이도 생겨나고 늙어가고 죽어가고 세상의 영고성쇠를 만들게 되는 것이렷
다.
원향과 마주 겸상하여 중화를 드는데 여환은 밥을 먹다 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요.... 뭐 묻었나요?"
"아니다. 네가 내 아낙인 것이 하도 신기하여 그런다." "그러면...."
원향이가 머뭇거리며 말하였다.
"하게로 하셔야지요. 우리는 부부가 되었으니."
"이 길로 나를 따라서 금화 들러 양주로 나가겠느냐." 원향이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어요. 부부 일심동체라 하니 비록 떨어져 있어도 저는 당신의 아낙이고 당신은 제 남
편이십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미륵의 세상을 이루려 하면서 어찌 육근의 탐욕이며, 한시인
들 게을리하겠어요. 우선 저는 구월산에서 오박수 아저씨와 함께 계를 짜는 일을 할 것이나
당신은 양주에서 미륵대도를 이루셔야 합니다."
여환은 가라앉은 목소리가 되어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아예 살도 섞지 않고 정이나 그리움도 없이 이렇듯 돌멩이처럼 산단 말이
냐?"
"저승에 가면 이승의 모든 연은 하나같이 물거품이 된다구 합니다. 심지어는 모친을 찾아
저승에 찾아간 효자가 천신만고 끝에 그 어미를 잡고 반겨 울어도 모른 척했다지요. 새로
연을 맺고 새로이 부부가 되며 다른 삶은 살아간답니다. 우리 거기 가서 다시 성혼해요. 먼
저 전생에는 오누이, 이번 전생에는 겉만 부부, 다음 후생에 속까지 부부, 그리고 아주 먼
후생에는 연리지 한뿌리의 한몸이 되어 없어지지 말아요." 여환은 빙긋 웃었다.
"우리가 꼭 나른 나뭇등걸로 섰는 음양의 장승 같구나." "그렇잖아요."
원향이 눈시울이 그렁그렁하여 여환의 손에 수저를 쥐여주었다.
"나는 아무래도 명이 짧을 것만 같아요. 만신 어머님두 그러셨어요. 우리가 갈 때는 꼭 한
날 한시가 될 거예요."
그들은 밥이 식도록 먹지를 못하였다. 여환과 원향은 나란히 누워서 봉창이 완전히 어두워
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환은 가만히 여보라고 아내를 불렀다. 원향은 피곤했는지
그의 한뼘 옆에서 잠들어 있어 그 말을 이미 들을 수가 없었다.
여환이 금화 천불산에서 동안거를 지내고 온 뒤부터 용화 향도들의 세는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수태사에서는 여전히 대성법주가 승병들을 조련시키고 있었으며, 천불산 동안거
때에는 운부는 오지 않았고 오진암 집회 때처럼 풍열스님이 주도하였다. 오진암 집회 때와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경순과 길산이 빠졌다. 여환은 설유징에게서 다시 신서에
관하여 자세히 얻어 듣게 되었으니, 무진입국의 뜻도 중요하지만 주상이 장씨 성 가진 궁인
에게 빠져서 조정에 풍파가 일고 있다 하며, 삼남에는 흉황 뒤끝의 역질로 관민이 경황이
없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하였다. 여환과 계화가 칠성암에서 각 고을의 용화 향도들
을 이끌어갈 때, 황회도 또한 그의 아내와 더불어 근기 일대의 상좌들 집을 중심으로 교세
를 넓혀나갔고, 시동이와 정원태는 그 미륵도의 내부에 검계의 계원을 점찍어나갔다. 칠성암
과 직결된 집회소는 역시 시동이네가 사는 시내비골이었고 그 상좌는 시동의 아버지인 김돌
손 노인이었다. 시동의 형인 시금이도 아버지와 함께 미륵도의 신심 깊은 향도였다. 황회의
두 조카들인 이원명과 이정명은 형제였으나, 양주 익담에 사는 형은 미륵도였고 안협 상수
리에 사는 동생 정명은 검계에 뽑혔다. 그는 특히 해서와 강원도 쪽의 연결을 맡았다. 양주
청송 사는 정호명은 영평읍에 사는 사촌 정만일과 더불어 검계원이 되었다. 그리고 혜음령
의 살주계 중길이네 식구였던 최영길은 파주와 송도의 연락을 맡아서 칠성암에 드나들었는
데 시동이와 호형호제하였다. 또한 정만일의 소개로 들게 된 노비 말립이가 오계준이 찍어
준 해서의 외거 노비들과 연결하는 일을 맡았다. 중길이와 영길과 말립이 모두 기본은 살주
계로 굳게 다져져 있었던 것이다. 영평 상리 은현촌에 사는 정대성은 검계원이 되었으니 읍
내의 정만일과는 같은 향군의 대에 들었던 것이다. 시동이의 작은삼촌 오경립은 큰삼촌 오
계원과 더불어 미륵도에 들었으나 병역을 가지고 있던 경립은 시동의 권유로 검계에 들게
되었다. 그들은 연천에 살았다. 이와 같은 이들은 모두 미륵도의 중심을 이루었다. 그외에도
시내비골의 이응남, 임기동, 방승남, 방의천 등등은 연로한 신도들의 모임을 끌어나갔다. 전
성달은 법호와 심백이 있는 삭녕 흥성산 장군사의 구월산 유민들과 더불어 미륵도를 이끌어
나가는 상좌가 되었으니, 그는 해서의 오계준과 장길산 활빈도와 닿아 있었다.
삭녕에는 일찍이 시동이 만일이와 함께 한양 가서 상번병이 되었던 이시흥이 주막 주인을
하고 있었으니 그가 속으로는 검계원이었고 미륵도의 삭녕 상좌가 되었다. 다시 영평에는
황회와 정원태가 거주하였고 정만일과 정대성이 살았으니 그들은 만일의 안에 따라 부농인
이철신을 상촤로 삼을 수가 있었다. 따라서 철신의 사랑 손님이던 형방 전시우 예방 허시만
도훈도 정영과 철신의 소작인들인 민호길 이득견 이득내 등이 도에 들었다.
그중에서 봉수꾼인 이응화와 정영, 민호길, 이득견 이득내 형제는 검계원이 되었다. 그리고
위의 사람들 밖에도 일반 신도들은 두텁게 그 거죽을 싸고 있었으니 임진강을 상하 좌우로
하여 교세는 재빨리 번져나갔다.
해를 넘겨 그들이 되뇌이던 무진 여름이 되었다. 오계준으로부터 소식이 왔으니 해서 풍류
계는 이미 거병할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었고, 전성달에 의하면 강원도에서도 승병의 집결이
며 거병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여환은 한시바삐 원향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 시기가 무
르익었으니 원향이 한양 인근에 있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었다. 즉 원향은 해서에서
가장 큰 만신이며 구월산 단군대의 정기를 받은 이라, 해서의 군병이 쳐들어올 때 그들을
근기 일대의 군병과 합대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해서와 장길산의 부대는 원향을 표적
삼아 내응과 외응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바람과 조화의 진년 용의 해라, 원향은 그에 알
맞게 용녀의 별호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임무가 곧 병의 집결에 있었던 것이다. 미륵도의
회의처였던 칠성암에서 여환 계화와 황회 전성달은 원향을 데려오는 일을 놓고 의논하였다.
그것은 곧 여환과 원향의 혼례로 방편을 정하였으나 여환으로서는 이미 원향과 아무도 몰래
사선골 그녀의 신당에서 부부의 가약을 맺었던 터였다. 황회 전성달이 전도를 자처하였고
계화는 매파로서 새색시의 수종을 들기로 논하였으며, 영평의 노비 말립이가 마교의 견마를
책임지기로 하였다.
그들은 유월 초에 양주를 출발하였다. 사선골에 당도하니 그래도 지난 겨울처럼 도깨비가
나올 듯이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높은 나무위에서는 매미가 한창 울어대고 숲은 무성하였
으며 계곡의 물은 시원스레 흘러내렸다. 원향의 저소에 이르니 원향은 마침 신당 안에서 기
도중이다가 반색을 하여 달려나왔다.
"이모, 여기까지 웬 행보예요?"
"용녀부인 수종들러 왔지요."
계화는 전과 달리 공손히 말하였고, 원향은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아이 왜 이러셔요?"
전성달과 황회는 지난 겨울 이래로 원향과는 구면인 셈이었다. 전성달이 말하였다.
"해서 수만신이시니 그러지요. 우리 미륵도의 자당이 되시는 셈입니다." 여환은 그저 무덤
덤한 듯이 뒷전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 앉자 먼저 계화가 두 손을 모으고 다시 일어나
며 원향에게 말하였다.
"용녀부인께 문안 올립니다. 절 받으시지요."
계화는 깍듯하게 존대말을 쓰면서 살포시 큰절을 올렸으며 원향이 쪽에서도 하는 수 없이
맞절을 올렸다. 계화가 단정히 앉아서 말하였다.
"전에 돌아가신 큰만신님께서도 제게 당부하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제가 알던 원향이가 아
니옵고, 구월산 이서의 수만신이십니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 무도의 법도입니다. 제게 일을
이르시고 영험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원향이도 계화와 다른 이들의 엄숙함에 좌석을 흩트릴 수가 없어서 단정하게 앉았을 뿐이
었다. 여환은 딴전을 하며 묵묵히 수수방관하였는데, 다시 황회와 전성달이 일어났다. 황회
가 말하였다.
"우리 향도의 자당님께 뵈입니다."
그들은 원향이에게 넙죽 절하였다. 원향이도 이번에는 침착하게 일어나 맞절을 하였다.
"오박수께서도 전갈을 하였으니, 아마 곧 올 겝니다." 황회가 말하였다.
"용녀부인께서는 앞으로 소임이 막중하십니다. 이제 양주로 돌아가시면 인근 사방의 향도
들 집도 방문해야 하고 대소의 관혼상제마다 집례를 하셔야 될 겝니다." 그러자 원향은 정
색을 하고 말하였다.
"제가 어린 아녀자라고는 하여도, 오진암 법회의 뜻은 조금 알고 있지요. 어찌 제가 만신의
직임에만 그치겠습니까. 향도님들 하시는 일을 팔 걷고 나서서 도와야지요." "잘 말씀하셨
소. 부인께서는 구월산의 양민 참살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우리 탑고개 사람들은 모두 가족
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비록 삭녕의 궁벽한 골짜기에 숨어 살고 있으되, 그 포한을 잊은 이
는 하나두 없지요."
전성달의 말에 원향은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성달이 원향이에게는 아저씨뻘이 되나 이렇듯 예를 갖추어 간곡히 말하니, 원향의 눈가에
도 물기가 맺혔다.
이튿날 함께 길을 떠나 송화에서 갈려 신천 소메로 갔던 말립이가 오계준과 그 계원 두 사
람을 데리고 사선골 신당에 당도하였다. 또한 월정사 쪽에서도 임거사와 백련이 등의 거사
패 몇사람이 왔고, 먼저 작수성례로 여환과 원향의 혼례를 하고 나서 그저 술밥으로 대충
치르기로 하였던 것이다. 소반에 정화수 떠놓고서 여환과 원향이 맞절을 하였고, 이어서 계
화와 백련이가 사당말에 준비했던 탁주를 내었고 남녀가 한데 둘러앉아 밥이며 술을 먹었
다. 상은 따로이 없어 술만 소반위에 올려놓고 밥과 나물 등속은 그냥 토방 위 삿자리 위에
늘어놓았다. 제각기 흥이 나서 장고장단에 잡가가 앞뒤를 마주치고 가락이 낭창거렸다. 황회
전성달 계화 등등은 어차피 함께 떠날 사람들이라 건넌방에서 잘 요량을 하였으나 월정서
사당말 사람들은 어정어정하는 사이에 밤길을 갈 수 없는 시각이 되었다.
"아니... 남의 신방두 생각들 해야지 여기 무슨 색주가가 열렸나. 어서들 파흥하고 돌아가
요."
계화가 핀잔을 주었더니 임거사는 제가 지고 온 탁주에 스스로 취하여 장고를 놓지 않고
맞받았다.
"젠장 스님이 장가갔으면 천복을 얻어 극락에 사는 셈인데, 오늘 하루 미룬다고 월로가 맺
어준 인연줄을 다시 푼다구 그럽디까? 너무 그러지들 마시우." "저 말하는 솜씨 좀 보게.
우리 종도사님하구 용녀부인께선 월로의 인연이 아니라, 미륵존불의 점지라구. 그러니 극락
이 아니라 서방정토엘 가셔야지." 계화도 농반 진반으로 넘기는데, 여환이 말하였다.
"이 뒷집에도 토방이 깨끗하니 우리가 그리루 나가리다. 염려 말구 노시우." "허허 아주
미리 저희들만 꿀맛 보기로 작정을 하였구먼." 방안에서 오고 가는 농지거리들을 들으며
원향은 부엌에서 공연히 그릇만 달그닥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길고 긴 여름 해가 기울어 하
늘에는 저녁놀이 구름 사이에 비꼈는데, 산새들은 이리저리 지저귀며 저녁 숲을 찾아드는
중이었다. 원향의 앞에는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세간을 대충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백련이가 달라는 것은 내어주니 원향이 챙긴 것은
징과 바라, 신칼과 요령, 그리고 낡은 철릭이었는데 모두 큰만신 안무당의 물림이었다. 또한
원량의 집터에서 골라내어 써오던 이빨 성한 사기 그릇이며 소반은 정등 물건이라 말립이가
봇짐을 꾸려 가져가기로 하였다. 오계준과 그의 동행이었던 계원 두 사람과 황회 전성달 여
환은 따로이 집 아래 계곡의 물가에 내려가서 의논을 하였다. 오계준이 말하였다.
"여기서 양주가 수백 리 길이라 마실 다니듯 왕래하기가 어려우니, 큰 일은 물론 세밀한
데까지 미리 약조가 되었다가 다시 급주를 보내 서로 연락을 해서 일을 맞추어나가야 하겠
습니다."
"근래에 강원도 쪽에서는 별 전갈이 없던가요?"
황회가 물었고 오계준이 답하였다.
"예, 우리 계에도 신서 수십 권이 와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뭐 우리네야 글을 모르니 어디
보겠습니까. 그저 향임들이나 훈장하는 이들께 넌지시 내밀어 뜻을 물어볼 뿐이지요." "그
래, 반응이 어떻던가요?"
"깜짝 놀라며 당장 갖다 버리라는 이도 있고, 풀이를 해주고는 베낄 것이니 빌려달라거나,
아예 자기를 달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계준의 계원이 대신 말하였고, 계준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본 바로는 그런 책이란 별로 쓸 떼가 없는 듯합니다. 그보다 지난번 동안거 때에 우
리 계에는 해서감영이 맡겨지지 않고, 막바로 송도에 집결하였다가 같은 날짜에 한양으로
입성하게 된다는 전갈을 받았을 뿐입니다. 헌데 해서의 민병이 모이려면 아무리 적어도 이
삼천은 되어야 할 터인데, 무슨 수로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한양까지 간단 말입니까?"
황회가 말하였다.
"젊고 팔팔한 장정들로 삼백에서 오백 인만 모아도 됩니다." "장길산 활빈도가 자비령을
떠나 철원에서 대기하고 금화에서 집결한 승군 오백여 명이 그들과 철원에서 합류하여 남하
할 것입니다,"
전성달은 그가 삭녕에서 받았던 강말득의 전갈을 다시 알렸고, 여환이 말하였다.
"천불산 쪽의 생각으로는 무엇보다도 한양 도성이 먼저 점령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
고 나면 각처의 승병과 민병들이 일어난다는 거요. 해서에서도 대를 나누어 일대가 먼저 근
기로 잠행하여 오고, 나머지는 감영을 도모하도록 합니다. 송도에서도 일단 한양 번복이 되
고 나면 거병이 있을 것이며, 관북과 삼남은 맨 나중이 될 것이오. 여하튼 남쪽은 일단 남한
산성이 떨어지면 막아낼 수가 있습니다. 산성에는 이미 유점사 있던 일여라는 우리 도반 승
려가 가 있고, 묘정도 곧 그리로 옮길 것이며 풍열 큰스님은 가평 현등사로 내려가 계시다
가 이 모든 일을 통괄할 것입니다. 철원으로 집결하는 오백 승병을 통솔하는 이는 대성법주
입니다. 장길산 활빈도는 비록 백여 명에 지나지 않으나 모두 단병집전에 뛰어난 일당 백의
녹림당들이오."
오계준이 다시 물었다.
"좋습니다. 우리 계가 송도까지 가서 집결할 핑계는 많지요. 무엇보다도 덕물산 최영 장군
당산제를 지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러면 한양에서는 어찌할 작정이오?" 여환이 오계준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그의 계원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계준은 곧 눈치를 채고는 말
하였다.
"이 사람들은 어제 스님께 소개하였듯이 재령 문화의 우리 계원들이고, 전에 구월산의 마
두령이나 오두령과도 잘 알던 사이입니다. 이들은 저와 함께 계원들을 이끌고 상경할 사람
들이니까요."
"예 그렇다면.... 양주에서는 일단 대를 나누어 한양 점령과 동시에 양주목을 들이치게 되어
있습니다. 한양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등뒤가 되는 양주목이 먼저 점령되지 않으면 임진강
북로가 모두 끊기기 때문입니다. 도성의 북문이 가장 유리하니 험산과 협곡으로 인적이 끊
겨 있으며 백악과 인왕의 줄기를 타고 그대로 도성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성 안
에는 이미 살주계의 내응 세력과 검계가 요소마다 깔려서 혁명군이 들어오기만 기다릴 것이
오. 해서 군사는 파주로부터 연결을 받아 그대로 오르면서 혜음령의 살주계와 합대하고 그
들의 안내를 받으면 될 것입니다. 한편 장길산의 일기병과 승병들은 철원에서 천마산 솔부
리까지 나온 다음에 해서 군사와 발을 맞추어 흥인문을 지나 훈련원을 점령할 것이오. 양주
방면을 떠난 검계원들은 혜화문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도성 밖의 주 요새는 남한 산
성과 강화 방면이나, 산성은 수직 승군들이 일의 진행을 보아 그대로 선수를 쳐서 점령할
것이고 강화는 우두령과 그 이하 송도 쪽에서 감당을 할 것입니다.
"한양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안동이 되려면 시일이 걸릴 텐데요." 오계준이 말하였고 황회
가 다시 설명하였다.
"우리는 넉넉잡고 열흘은 견딜 수 있습니다. 벼슬아치의 혈족들이 모두 한양에 살고 있고,
궁인 왕족들은 모두 우리 수중에 있을 것이니 삼남의 지방군과 북관의 군사들은 함부로 움
직이지 못합니다. 백성들 사이에 방방곡곡 연계가 짜여진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세상이 바뀌
고 양반들이 역성 혁명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면 토호나 지방세가들도 마음을 돌릴 것입니
다. 실상, 관서 관북 백성의 인심은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계준이 흡
족한 얼굴이 되어 말하였다.
"우리는 칠월칠석에 큰 계회가 있으니 그 무렵이 좋겠습니다." 여환과 황회도 잇달아 그
안에 찬성하였다.
"천불산에서도 진년인 올여름을 지목했지요. 그리고 일이 어긋나면 올 시월 초에, 그러고도
어그러지면 내후년인 경오년을 준비하기로 되었습니다." "어정 칠월이라 하니 그때가 백성
들로서 아직 일없이 어중된 철이지요. 그 다음에는 역시 추수 끝내고 빈둥거리는 철인 시
월 조가 제격입니다." 전성달이 말하였다.
"오박수의 계원들과 강원도 장길산 일기병들의 합대는 용녀부인이 그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병하여 도성을 들이치는 것은 군호로 대우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 그것도 천불
산에서 결정되었지요. 저희들 외에는 일반 향도들에게는 천변이 일어나 큰 폭우가 내린다고
만 할 작정입니다. 소승의 내자가 용녀부인이 되어 그러한 천지조화를 일으킨다는 소문을
낼 것입니다."
여환의 말에 오계준을 끄덕였다.
"신서보다는 그것이 훨씬 적합한 방법이지요. 우리 조카 만신이 군복을 입고 군병을 이끌
면 더욱 신이하게 보일 것입니다."
"천도를 실행하려는 미륵의 군병이 백성을 위하며 일어섰다하면, 아무도 두려워하거나 뒤
로 빼지 않을 것이오."
여환은 말하고 나서 합장을 하였다.
"나무 현거도솔 당래하생 당래교주 자씨미륵존불...." 그들도 따라서 합장하였다. 그들이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올라오니 계화와 원향이 등은 신행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들을 기다
리고 있었다. 원향은 그냥 무명 치마 저고리에 무구를 싼 보퉁이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
었다. 말립은 꾸린 세간을 멜빵져서 등에 걸머졌다.
오계준이가 말립에게 송화 나가서 그의 계원 아무개를 찾아가 그에게 부탁하여 세마를 내
고 마교를 준비하도록 일러주었다. 계준은 그들을 따라서 구구월까지 나오며 시종 원향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가면 일이 성사되어 한양에서나 너를 만나볼지.... 아니면 구천에서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 그러나 이것은 속연이 아니라 전생의 연이니, 여환스님은 곧 네 육신이자 혼령
이니라. 잘 도와드려라."
"그분 곁에 있으면 칼산지옥을 헤매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내생을 기다리고 있
답니다."
"우리 모두가 내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더냐. 잘 가거라...." "곧 찾아뵙게 될지도 몰
라요. 아저씨, 한양서 못 뵈면.... 가는 길에 소메에 들르지요."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니
라."
오계준이도 눈앞이 흐려져서 얼른 외면하였다. 조산틀 어귀에 당도하여 계준은 문화 방면
으로 가야 하므로 거기서 여환 일행과 작별하게 되었다.
"용녀부인 잘 보살펴드리구, 승운이한테두 안부 전해주고." 오계준이 계화에게 인사하니
계화도 못내 섭섭하여 중얼거렸다.
"미적미적하지 말구 얼른 장가두 들구 해야지. 우리 신오라비는 언제까지 처량한 홀아비
신세로 지내려누."
황회 전성달이와 일일이 인사한 뒤에 계준은 여환에게 당부하였다.
"칠월이면 이제 한 달포 남았소. 거사 준비가 끝나면 날짜를 알려주시오." "칠석 어름이
될 것입니다."
하고 나서 여환은 말하였다.
"일단 날짜가 정해지면 우리 미륵 향도들은 비록 외응이 없어 어육이 되더라도 거사를 할
것입니다."
오계준은 들판머리에 서 있었고 그들은 논두렁길을 따라서 걸었다. 여환이 한참 걷다가 뒤
돌아보니 아득한 들판 저 멀리서 오계준은 그냥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계준의 준비대로 송화에서 마교를 세내어 말립이가 견마 잡고 원향이를 태웠다. 말
위에 가마를 얹었으니 타고 보면 편안하였으나 처음에 오를 때엔 아슬아슬하여 원향이는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올라앉았다. 원향이가 볼일이 있을 때엔 계화만 알아듣도록 가마의 발을
들치고 좀 쉬자고 하였고, 계화가 마교를 세우고 말립은 깍지 낀 팔 위에 원향을 들어 내리
고는 하였다.
그들은 해주 연안 송도를 거쳐서 사흘 만에 중화때쯤 하여 파주 문산포 이경순네 여각에
당도하였다. 전생이와 장쇠가 그들 일행을 먼발치에서부터 보고 달려나왔다. 묘옥은 여문이
와 마루에서 놀다가 반가워하면서 그들을 맞았다. 묘옥은 첫눈에 원향이가 새댁인 것을 알
아보았다. 여환과 황회 전성달은 이경순의 사랑으로 들어가고 계화와 원향은 묘옥의 안내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우리 도의 수보살님이시우. 이번에 여환스님과 성혼하신 용녀부인이십니다." 계화가 두
사람을 소개하여 묘옥과 원향은 앉은 채로 인사하였다. 묘옥은 여환스님이 부인을 데리고
온다는 것은 얼마 전에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원향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갸
름한 얼굴에 눈빛은 거센 편이었고 안색은 창백하였다. 이마가 도톰하고 둥글고 해맑아
보였다. 계화가 틀어올려준 얹은머리 아래로 작은 귀와 여린 귀밑살과 목이 드러나 있었다.
묘옥은 단정히 앉은 원향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여리고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여자라고 묘
옥은 생각하였다. 가만있어라, 꼭 이 여자는 누구한테든지 오래 전에 잃은 누이동생으로 보
이겠다. 묘옥이 어느 길 모퉁이에서 원향을 만나면 예전에 중화에다 남기고 온 동생들이 생
각나서 걸음을 멈추어 한참이나 돌아보게 될 듯하였다. 계화가 잠깐의 침묵이 거북스러웠
던지 묘옥에게 말하였다.
"참 우리 수보살님두 구월산 기신 적이 있다고 그랬지요?" 묘옥은 대답없이 눈으로만 웃
는 시늉을 하였다.
"용녀부인은 구월산 만신님의 큰 내림을 받았으니 덕물산 만신보다두 더욱 크고 영험한 만
신입니다."
계화의 호들갑에 원향은 조용히 꾸짖었다.
"이모님, 그만두셔요. 안무당 어머님의 영험을 좇으려면 저는 아직 멀었어요." 하고 나서
원향이 묘옥에게 말하였다.
"저를 용녀라고 지어준 이는 해서 큰만신 안무당 어른이십니다. 저는 아무것두 모르는 햇
것이어요."
묘옥이 물었다.
"안무당이라뇨...재인말 사시던..."
"그것 보슈. 구월산 사셨다더니 우리 성님을 알지 않우?" 계화가 말의 실마리가 풀리는
게 신기하여 손뼉을 두드렸다. 묘옥은 고개를 숙였다. 길산이 그이의 양모가 안무당인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터였다. 모욕은 눈을 감고서도 그 집의 마당에서 부엌의 작은 세간
까지 모두 떠올릴 수가 있었다. 장충 노인도, 그리고 불타는 집에서 미처 나오지 못하여
돌아가셨다는 총대 손돌 노인도, 그 기침소리, 까막내의 물소리, 구월산에 떠오른 달, 먼 데
서 들리는 깽매기의 맑은 소리, 이런 모든 것들이 묘옥의 머리 꼭뒤를 어루만지며 지나쳐
갔다.
"재인말 사셨나요?"
원향이 물었고 묘옥은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저희 신어머니를 아셔요?"
"예... 하두 오래 전 일이어서..."
하면서 묘옥은 저도 모르게 원향의 손을 꼭 쥐었다.
"여환스님두 그전부터 알지요."
"어디, 월정사 계실 적에요?"
"아뇨, 해주의 작은 암자에 계실 때..."
원향은 예전을 생각하듯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 그러면 만행을 떠나신 뒤군요. 저는 그때만 하여도 철이 없어서 저분이 주워준 조약돌
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요. 그 암자의 신도였나요?"
묘옥은 원향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웃었다.
"어떤 이가 참수당하여 바다에 버려졌다는 말을 듣고... 자진하려다가 만났답니다." "혈친
이었나요?"
묘옥은 더이상 원향의 곧은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미닫이가 열리며 사랑에서 건너온
여문이가 아장아장 걸어 들어왔고 묘옥은 얼른 아이를 잡아당겨 안았다.
"응 우리 여문이... 그 방에 가니까 안 놀아주데?"
원향이가 손을 뻗쳐 아기의 볼을 살그머니 만져보았다.
"그런 이들은 이렇게 가까운 이들 살을 빌려 환생한다던데." 원향이가 내민 손을 아기가
잡아 흔들어보더니 그쪽으로 갔고 점잖게 무릎에 앉았다. 계화는 아기가 낯가림을 않는다고
감탄하였다. 원향이 아기를 무릎으로 흔들어주면서 나직하게 읊조렸다.
"아강아강 우지 마라 오는 장날 장에 가서 엽전 한푼 얻거들랑 고초양념 엿 사줄라, 엿두
싫어 엿두 싫어 울어마니 젖을 내라, 아강아강 우지 마라 해를 따고 달을 따다 색동옷을 해
입고서 무지개로 다리 놓아 미륵님전 마중 가자, 산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물 깊어서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헴쳐 가지 길 몰라서 못 간단다 길 모르면 물어 가지." 묘
옥은 어느 사이에 고갯짓으로 노래의 가락을 따르고 있었다. 노래가 어찌나 맑고 슬픈지 묘
옥은 원향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중간을 잘랐다.
"꼭 내 동생 같아."
"예?"
원향은 웃으면서 그렇게 되물었고, 묘옥이 말하였다.
"아니어요. 이런 아이들이랑 여자만 사는 세상이 있다면..." "보살님, 우리네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랍니다. 하늘에서두 이와같지요." "내게 좋은 말 좀 해주어요."
원향은 칭얼거리는 아이의 장난을 받아주느라고 다시 무릎을 흔들면서 말하였다.
"좋은 말이 따루 있겠어요? 세상에 있는 어느것 한가진들 하늘에는 빠진 것이 없다지요.
꼭 그대루 다 있답니다. 그리구 산천초목 짐승벌레 미물까지두 거기선 엄마와 아기처럼 다
정하지요. 온갖 귀한 신 천한 신 할 것 없이 신령은 모두 같지요. 풀에 깃든 신령두 미륵님
이나 하눌님에 못지않아요. 모두가 귀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눌님 미륵님 뜻이지요. 이
렇듯 다정하게 지내는 세상을 지으려고 사람이 났지만, 사람은 하눌님 뜻을 지키지 않아요.
그전에는 하늘에서 사람에게 세상을 지으라고도 하지 않았지요. 지금 세상은 정이 지은 게
아니라 권세가 지은 것이랍니다. 그래서 세상 누구나가 어머니가 그립지요. 하늘 마음은 어
머니 마음이 맞으니까요."
묘옥이 원향에게 나직이 물었다.
"그런 것은 누구에게서 배웠어요. 스님이나 안무당께서 이르셨나요?" 원향은 무릎을 흔드
는 사이에 잠든 여문이를 살그머니 눕혔다. 그리고는 배시시 웃으면서 말하였다.
"마음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게 아니지요. 그냥 저 높은 산이나 물가에나 아니면 마당에 서
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자연히 알 수 있어요. 그냥 저절로 전해지거든요. 그렇지만..."
하면서 원향은 말을 흐렸다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저는 알아요. 이 터전의 많은 혼령들이 간 데가 있지요. 세상 지으려는 이들 말이어요. 우
리는 그이들께 연이 닿아서 지으려고 애쓰다 가게 되거든요. 이 뒤로도 수없이.... 그러는 사
이에 정이 지은 세상이 오게 되지요."
"언제쯤에나 오게 되나요?"
묘옥은 그 어린 만신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원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글쎄요. 마른 나무에 꽃 필 제 오려느냐고 상여 나갈 제 노래를 하지요. 세상에서 이루어
진 것들이 다 말라버릴 즈음에 그 속에서 새 속잎이 나오는 철이 되겠지요." "다 없어지고
말라 죽으면 어떻게 속잎이 나오나요?" 원향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몰라요. 그건 저두 잘 모르겠어요. 헌데 어찌 새봄에는 언 땅에서 보리가 피어나는지두 모
르겠어요."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할 텐데 뭣하러 세상을 지으려고 애를 써야 하나요." 묘옥의
물음에 원향은 다시 되돌려주었다.
"가뭄이 들어 천리가 적지가 되고 나서 소나기는 어째서 오지요? 단비가 내리지 않으면 산
천초목이 모두 죽어요.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비가 되어 떨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면 땅은 다
시 회생하고, 또 가물어 팍팍하고 또 비가 오고..."
묘옥은 중얼거렸다.
"참으로 용녀부인이십니다."
사랑에서 남정네들은 송도 얘기며 금화 얘기며 양주 얘기를 제각기 논의하고 있었다. 이경
순은 모시 적삼에 부채를 활활 부쳐 바람을 넣으면서 말하였다.
"그저께 송도서 사람이 왔습디다. 병장기와 군복은 거기서 준비하여 거사 전까지 우리 여
각에 장치한다 하였소. 해서 군사와 양주 사람들이 쓸 수 있을 겝니다." "아닙니다. 양주에
서는 공연히 무기를 나른다 어쩐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도 스무 자루면 충분합니다. 양
주목에 근기 일대의 백성들이 몰려들어 무기고와 양곡 창고를 털어 병장기 군량을 장만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한양이 문제지요." 황회가 걱정하니 이경순이 말해주었다.
"검계의 일은 아마 영평 정대덕이 시동이와 함께 조처를 할 모양입니다. 살주계에서도 한
양 은닉처를 정해두었다고 합니다. 아마 영길이가 전갈을 해주겠지만 한양에 주인가를 정한
모양입디다."
황회도 그제는 말하였다.
"응 시동이하구 정대덕이 손을 썼다면 모신이네 서강 객점밖에 더 있겠나. 검계는 그쪽으
로 정하면 되겠군."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우리 미륵도를 통하여 짜여지지 않으면 실착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상 살주계가 되었든 검계가 되었거나 모두 미륵 향도들이니까요." 하고는 여환이 덧붙였
다.
"제가 칠성암에 돌아가자마자 논의를 하고 나서 거사 일자와 세밀한 체결 내막을 통문으로
돌릴 터인즉, 이곳 파주에서는 송도와 강화 교하의 뱃사람들 주막에까지 일러두십시오." "
그게 좋겠구려. 차칠 없도록 맞추어나가려면 일을 주도하여나가는 쪽에서 미리 결정하고
알리는 것이 이롭지요. 내 그렇게 전갈하리다."
그들은 이경순네 여각에서 중화를 들고는 곧 강변을 따라서 적성으로 하여 칠성암에 당도
하니 긴긴 여름해가 기울어 있었다. 시동의 아비 김돌손 노인과 계화의 남편 김승운이 여환
과 원향이 쓸 방에 하얗게 도배를 해놓았고, 돌손의 노처는 밥을 짓고 있었다.
여환은 오계준이나 이경순과 언약했던 대로 칠성암에 당도한 지 며칠 지나서 작은 무임을
갖기로 하였다. 즉 미륵도의 통솔 아래로 검계와 살주계 및 일반 백성들의 힘을 모아 준비
할 일과 맡을 일을 분담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거사 일자가 결정이 안되었던 것이다.
모일 장소는 칠성암으로 하지 않고 시내비골 시동이네 집으로 정하였다. 무엇보다도 칠성암
은 영근산 아랫녘에 외떨어져 있었고 일반 향도들의 출입도 빈번하여 불편하였던 것이다.
계화와 원향이가 인근 사방으로 향도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암자에서 돈이나 미곡을 시
주받아 기도를 하여 자금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 무진년 봄부터 계화와 김승운이 여환을 앞
세우고 다녀서 누백 냥을 모아두었고 황회와 시동이가 여비로 많이 써버렸던 터였다. 시내
비골 시동이네 집에는 김돌손 노인부부와 시동의 형 시금과 그 처자녀가 살았다. 비록 땅뙈
기는 얼마 안 되어도 김돌손 노인과 시금은 농한기에는 남양과 인천 등지로 나가서 해물을
떼어다가 다락원 난전에서 팔아 돈냥을 만졌고, 시동이가 가끔씩 미곡이나 반찬이나 상목을
집어 떨구고 가던 것이다. 시동이가 무슨 벌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전부터 솔부리와 포천
을 오가며 고달근과 황회와 정태원에게서 갖다 쓰곤 했기 때문이다. 시동이네는 방이 셋이
고 소가 한 마리, 닭도 십여 마리 되었고, 광에는 양곡 떨어진 적이 없어 시내비골에서는 제
일 번듯하게 살았다. 시금이는 시동이보다 다섯 살 위였는데 맏아들이고 성격이 온순하고
색시 같아서 일찍이 집안일을 도우며 살았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시동이가 그렇게 일찍부터
집을 뛰쳐나가 부지거처로 무뢰배짓을 하며 살지 못했을 것이다. 시금이는 장가를 일찍 들
었고 집안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하여 시동이보다는 열 살쯤이나 더 먹어 보였다.
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시금이는 이웃집으로 나가버렸으니 그는 미륵도에 관하여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였으나 그의 아버지 김돌손이 시내비골 상좌라서 그의 집에서 기도 모임을
가질 적에 몇번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는 별반 관심은 두지 않았으나 아우와 아버지가 열심이라 그저 좋게 여기고 있었다. 시
내비골에 사는 모든 미륵 향도들 역시 미륵을 믿고 염송을 열심히 하면 백병이 물러가고 가
내에 우환이 없다는 믿음으로 열성을 내고 있었다. 시동이네 집에서는 종도사를 비롯한 대
덕들의 모임이 있다 하여 안방을 치워놓고 기다렸고, 시금의 처와 노모가 밥을 짓고 닭도
잡았다.
제일 먼저 정원태가 당도하였다. 그는 중치막에 갓을 쓰고 예전 노적사 시절과는 달리 부
고의 행세를 하고 있었으니, 지난 봄에 영평 상리 은현촌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는 정
만일에게서 영평의 부농 이철신을 소개받아 알게 되었고 곧 그와 막역한 동무가 되었었다.
이철신네 집에는 향임과 아전들이 드나들며 바둑도 두고 한담고 하여 정원태도 자연히 그들
과 허물없이 지내는 터였다. 그는 자신을 포천 송우점에 객점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상고로
소개하였던 것이다. 영평 있던 살주계원 말립이가 그의 옆집에 붙어 살며 그의 손발이 되어
주고 있었다. 정원태와 시동은 날이 갈수록 입술과 혀처럼 가까워졌던 것이니, 그것은 그들
이 검계의 확대와 그 체결에 함께 골머리를 써왔기 때문이었다.
"성님 오시우?"
"응, 날씨 덥군. 아직 안 왔나 다름 사람들은...."
그들은 진작부처 대덕님 자네 어쩌구 하는 거추장스러운 말투를 벗어 던지고 성님 아우로
주고받는 처지였다.
"아무도 안 왔어요. 왜 만일이 데리구 오지 그랬어요?" "아직 그쪽에는 알리지 말랬다며?
오늘 얘기를 해보고 나서 솔부리 식구들께도 알려주든지 해야겠어."
"그래 영평 아전들은 쓸 만합디까?"
"흥, 그 사람들이야 뭐 다른 데 관심이 있다던가. 그저 상이나 봐주고 산 쓰는 얘기만 하면
넋을 잃는걸. 찬 그래두 재인들이나 장바닥 사람들만한 이들이 없어. 기실 미륵님의 도는 진
작부터 우리 검계에서 모시지 않았던가."
"우리가 정말 용화 향도였지요. 이제 두고 보십시오. 거사가 일어나면 한양에는 우리들뿐일
거예요."
그들이 마루에서 얘기중인데 토담 밖으로 누군가 기웃이 넘겨다보았다. 황회의 머리였고
그 뒤로는 여환의 깎은 머리가 보였다. 그들의 뒤를 따라서 중길이가 영길이와 함께 삽짝
안으로 들어왔다. 시동이는 중길이를 만나는 것이 거의 반년 만이라 하도 반가워서 두 손을
덥석 잡아 흔들었다.
"어이구 이거 얼마 만이우. 혜음령서 아예 면벽도통하구 계신 줄 알았수." "도성 출입을
다니느라구 요즈음 바빴습니다."
살주계의 행수 중길은 패랭이에 봇짐 멘 것이 보부상 차림이었다. 영길이도 시동이에게 꾸
뻑해 보였다. 황회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동이에게 물었다.
"삭녕 전거사는 아직 안 왔냐?"
"온다구 그랬든가, 하여튼 안 왔수."
그들은 가끔씩 목덜미나 팔을 때리며 그냥 마루에 앉아 있었다.
"자, 들어갑시다."
여환이 말하였으나 황회는 그냥 앉아서 미적미적하였다.
"이거 뭐 날씨가 더워서..."
"그래두 담 밖이 지척인데 방에 들어가 두런거리는 게 낫지." 정원태가 말하였고 황회가
영길이에게 일렀다.
"얘, 너 담 밖에 가서 번 들구 앉았거라. 밥 먹을 때 들어오구." "아니, 그럴 필요 없소이
다. 시내비골은 모두가 우리 향도들이니 안심은 되오만 만사 불여 튼튼이라고 방안에 들어
가서 둘러앉지요."
여환이 그렇게 말하여 모두들 방안에 들어가 앉았고 모기 나는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으니 시동이가 소리를 질렀다.
"형수, 모깃불 좀 피워주슈. 다 빨리면 오늘 닭고음 먹어두 모기 잔치시키는 격이우." 둘
러앉으니 여환 황회 정원태 김시동 이중길 최영길 김돌손 노인까지 합쳐서 일곱 사람이었
다. 여환이 의논할 안을 내기를, "대우를 며칠로 잡았으면 쓰겠소?"
하였으니 대우란 군호로서 그들의 거병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정원태가 말하였다.
"칠석날 뒤라면 너무 촉박한 것 같소이다. 강원도나 해서의 사정을 생각해서라도 기간을
넉넉히 잡아야겠지요."
"좋은 생각일수록 오래 두고 썩이면 낭패가 되고 맙니다. 이제 우리의 세도 늘었고 말도
번다하게 오갔으니 어서 해치워버려야 기찰에도 걸리지 않고 빈틈없이 진행될 수가 있소."
정원태가 다시 말하였다.
"날짜는 우리 마음대로 정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타협을 보았습니다. 군사 발동의 상세한 계획은 기밀한 것이라 내 혼자 함부로 발
설할 수는 없으나 진작에 해서와 강원도의 강병을 은닉 포치하여두고 있소이다. 넉넉잡고
앞으로 달포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일반 백성들을 얼마나 동원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오."
여환이 말하자 정원태가 손을 꼽아보았다.
"그렇다면 오늘이 유월 열사흘이니 칠월 그믐께가 아니오?" "그렇지요."
여환이 짧게 대답하자 황회가 덧붙였다.
"스님 생각으로는 미리 성중에 들어가 있던 일부 병력과 바깥 병력이 그믐밤에 훈련원 마
당에 집결하여 일제히 궁궐로 돌입하자는 것입니다."
잠자코 있던 중길이가 물었다.
"군사는 얼마나 됩니까?"
"강원도와 해서의 군사 합하여 천여, 검계 살주계의 계원들 백여 명 그리고 양주의 일대가
삼백여 명 도합 이천을 될 것이고 일단 성사되면, 한양 성내의 노비와 장사치와 백성들은
모두 우리편이 될 게요."
황회가 자신있게 말하자 중길이가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조련도 못 받은 이들이 경군이 지키는 궁궐을 깨뜨릴 수가 있을까?" "아니 그 정도면 충
분하우. 내가 상번 서봐서 잘 알지. 궁궐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경기도의 상번들인데 일 초
가 백이십칠 명이고 오초가 징번되니 모두 육백여 명쯤이오. 그중에 반쯤인 삼백여 명이 근
무를 서고 나머지는 쉽니다. 그 삼백여 명 중에서 그저 일 초 정도가 궁궐 호의를 서니
이백여 명도 못 되오. 그보다는 조련도 잘 받고 병장기도 좋은 훈련원 급료병들이 문제지만,
가만 눈치를 보았더니 실직에 나선 자들은 고작 절반밖에 안되는 듯합니다. 먼저 훈련원을
잡아야 할 게요. 그리고 우리는 저들과 같은 군복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거사할 때 입고
나아가면 관군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날 겝니다." 시동이가 설명하였으며 정원태도 만일이
나 아전들에게서 얻어 들은 대로 얘기하였다.
"우리 미륵 향도들 가운데는 젊고 혈기있는 민병들이 있소이다. 저들은 모두 몇 달씩이나
한양 도성에 징번당하여 성채와 한양의 골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궁성 호위의 편제도 환
하지요. 그들 대부분이 검계 계원으로 들어 있습니다. 병의 각 대를 우리들에게 이끌도록 하
면 됩니다. 문제는 한양 도성 외곽을 지키는 총융청과 수어청입니다." 황회가 말하였다.
"염려없소. 다 준비가 되어 있소."
"그리고 그믐께가 좋은 것은 곧 추수기의 농번기가 되는 팔월이라 매삭상번으로 병력이 갈
리는 기간입니다."
시동이 말하자 모두들 내달 그믐께로 거사일을 정하자는 데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 여환이
말하였다.
"자, 그럼 대우 기일은 칠월 그믐이오. 무기와 군복에 대하여 논의 하지요. 해서와 강원도
의 병력은 따로이 청색 면포의 군복과 병장기를 준비할 것이지만, 우리들은 어찌하는 게 좋
겠소?"
"아까 나온 바와 같이 병역을 지고 있는 자들은 자기 군복을 입고, 병장기는 숨기기 쉬운
것으로 해야겠지요."
시동이가 말하였고 이런 일에 대하여 경험이 있는 황회가 말하였다.
"환도는 대처 풀뭇간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습니다." "파주에서 일부는 구할 수가 있
을 거요. 송도에서 준비가 되는 모양이니까. 그보다는 일반 향도와 백성들의 병장기로 무엇
이 좋겠느냔 것이오."
여환의 반문에 중길이가 말하였다.
"한양으로 입성할 이들은 환도가 꼭 필요할 것이니 들어가는 날 소지하지 말고 주인가를
정하여 상고의 상품인 듯이 말짐에 꾸려서 날라다 놓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저희는 살주계
의 연락처로 쓰는 객점이 있습니다."
시동이가 말하였다.
"한양에 들어가는 이들은 그렇게 하고 일반 향도들은 양주목을 점령할 것이니 몽둥이와 농
기구면 충분합니다. 까짓 삼문이야 돌팔매만 날려도 무너지지요." "그렇지, 안에 들어서면
무기고에 장창과 궁시가 그득할 테니까." 여환이 잠시 생각하는데 정원태가 물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동원할 작정이오?"
황회가 말하였다.
"칠월 그믐 이틀 전인 스무여드레에 날래고 도성 지리에 밝은 이들과 해서 강원의 군사들
과 체결하여 서로 낯익은 사람들이 성내로 들어갑니다. 살주계의 이서방은 파주 전생이의
전갈을 받아 해서 병력을 혜음령에 묻어두었다가 그믐 밤에 북록을 타고 창의문을 부수며
들어오게 되오. 강원도 병력은 따로이 삭녕 전서방과 연결이 있으니 되었고. 삭녕 양주 연천
양평 등지의 사람들은 그믐날 대우 군호가 떨어지자마자 사방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집결하
여 그대로 양주목을 점령하고 수유현을 넘어 혜화문으로 들어오면 됩니다. 우리가 그전에
사문을 모두 장악할 것이오."
여환이 물었다.
"어디에 모이는 것이 좋겠소?"
여태껏 아무 말도 않고 있던 김돌손 노인이 뒷전에서 말하였다.
"삭녕 연천 영평서 오는 이들은 강을 건너야만 할 것이니, 이쪽 우리 동네 앞 오거리가 좋
겠군요. 예서 읍내까지는 사십 리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좀처럼 눈치채지 못할 거요." "음,
대전리 오거리 말이군."
모두들 좋다고 하였다. 여환이 말하였다.
"부서를 정해야 할 겁니다. 여기에 우리 미륵도의 상좌들과 대덕 명부가 있으니 부서를 정
한 뒤에 논의하여 임명하면 따르기로 하지요. 이제까지 결안이 된 것은 한양으로 먼저 입성
할 사람들의 일과 양주목을 점령하고 뒤에 입성할 일의 두 가지입니다." 정원태가 말하였
다.
"여환스님과 황대덕은 처음부터 해서를 내왕하셨으니 먼저 입성하시오." "용녀부인은 꼭
가야 합니다. 해서 군병과 강원 군병의 합대의 표적입니다." "그럼 용녀부인하고... 도성 지
리에 밝고 무용이 있는 자로, 시동이, 또 정호명 정만일 사촌형제, 기병 다니던 정대성, 오경
립 오계원 형제 등이 상번을 다녔고, 향도들 중의 상번병 출신들을 움직일 수가 있소이다."
다시 의논이 중구난방이더니 황회의 조카 이원명이 추가되었고 중길이네 살주계의 주인가
를 연결할 영길이와 해서 노비들과 연결된 말립이가 따라가기로 되었다.
그리고 정원태가 영평 포천의 사람들을 휘동하여 뒤에서 움직이기로 하였으니, 이원명의
아우이며 안협 상수리에서 전성달과 해서를 연결하는 장소로 제 집을 내주었던 이정명이 그
의 막내 익명이와 더불어 삭녕 장초인을 휘동하여 대전리 오거리로 내려오게 되었다. 시동
의 동무가 되었던 숯막 주인 이시흥과 이성남은 상번병들을 이끌고 대전리로 오게 되었고
포천 난전꾼들은 영평 동촌서 내려오는 그들과 합대하여 양주로 나아가며, 시내비골 사람들
은 젊은 방귀선이 인솔하여 양주로 향하는데 원태는 이들을 순서대로 포치하고 지시한 뒤에
전 허 두 아전과 이철신을 데리고 양주목에 자리를 잡아 민심을 안돈시킨다. 그리고는 정명
익명 형제와 이시흥 방귀선 등을 지원하여 양주목에서 탈취한 병장기로 더욱 많은 상번병들
을 모아 무장시켜서 한양으로 올려 보낸다는 것이다. 대개 주요한 사람들의 부서는 모두 결
정된 셈인데 마침 오기로 약조된 전성달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삭녕 흥성산 전상좌는 어찌되는 거요?"
정원태가 물으니 황회가 대답하였다.
"전거사는 따로이 할 직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강원 병력을 이끌어 천마산에 묻어두었
다가 솔부리패의 안내를 받아서 흥인문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김시동이 침울하게 말하였
다.
"우리는 기왕에 처음부터 이마를 맞대고 계획을 함께 짰으니 그 누구도 돌아설 수가 없지
요. 하지마는 일이 사방으로 번지고 백성들을 동원하다 보면 한 입 건너 두 입이 금방 수천
으로 퍼져나갈 터인즉, 거사가 이루어진 뒤에라면 모르되 관에 먼저 기찰되면 일이 글러버
리게 됩니다."
"염려 마시오. 부서를 정한 이들 외에는 절대로 이 모든 상세한 기밀이 알려져서는 안됩니
다. 그러므로 우리의 군호는 대우요, 전언은 천변이요, 후언은 용녀올시다. 그믐날 무렵에 천
지가 개벽할 것이라는 소문을 내었다가 양반이 멸하고 상사람의 세상이 오며 석가가 멸하고
미륵이 오는 때가 왔다고 널리 알리고, 사방 십이 제국이 모두 멸망하고 용이 진인을 도와
용화세상을 이루려고 한양에 입성하였다는 소문을 내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믐날 아침부터
호별 방문하여 장정들을 모으면 쉽게 군중이 모일 것이요, 또한 양주의 양곡을 탈취하러 가
자 하면 너도 나도 따라 나설 것이외다."
여환의 개벽 소문에 대한 말을 듣자 정원태가 의견을 내었다.
"천재지변의 개벽이라.... 아예 지난번에 천불산서 보내온 신서와 비슷하게 우리 일을 참서
로 꾸며서 원근 사방에 돌리는 것이 어떨까요? 그 일은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그
문서는 포교하던 이들이 돌리는 게 손쉬울 겝니다."
민심을 움직이는 데 좋은 방법이라고 의견이 모아졌다. 해서 군사는 혜음령에, 강원 군사는
솔부리에 적어도 스무여드레까지는 잠복해야만 하고, 한양 성내의 내응을 준비하는 이들도
그때에 먼저 들어가 있다가 그믐날 밤부터 초하루까지 벌떼같이 일어나 궁궐을 점령하기로
통문을 정하였다. 그리고 양주 쪽에서는 선진과 후진이 따로 부서별로 모여서 지금 결안된
사항들을 더욱 상세히 따지기로 하였으며 모든 연락처는 칠성암이 그 중심이었다.
여환은 통문을 썼으니, 거사 일자와 체결 내역과 군병의 동원을 밝힌 것이었다. 뒤늦게야
전성달이가 시동이네 집에 당도하여 황회가 대략 간추려서 이제까지의 결안된 사항을 설명
하여주었으며 성달이 여환에게 넌지시 일러주었다.
"유점사의 일여스님과 묘정스님이 번군관승이 되어 남한산성의 개원사에 들어가 계시답니
다. 이번에 상번된 스님들은 거의가 관동 관서 관북의 각사에서 왔다는데 그 수는 좌우중
삼 초라 하니 사백 명 가까이 된답니다. 승병은 도총섭의 명을 중히 여겨 수어청의 관할을
받지 않으므로 산성의 점령은 죽비 한번 때리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랍니다. 이번의 도총
섭은 혜일 스님이니 풍열스님의 아우뻘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풍열스님은 천불산에서 내
려오셨다구 합디까?"
여환도 주위에서 듣지 못하게 물으니 전성달이 말하였다.
"풍열스님과 옥여스님은 가평 현등사에 계시답니다. 대성법주스님은 전과 같이 수태사에서
사자 노릇을 하구 계시지요. 강원 승병은 법주스님이 이끌 것입니다." "되었소, 이제 통문
을 보냅시다. 전상좌가 금화 쪽에 직접 전하고 해서에는..." "예, 안협 사는 이상좌가 한달
에 한번씩 평산 나가서 풍류계의 계원 집에 들른답니다." "그럴 틈이 없으니 어서 전하도
록 이르시오."
또한 최영길에게 슬그머니 통문을 내어주며, "파주 이도장께 이것을 전해주고 송도에서는
이 날짜에 맞추어 강화의 달곶진을 도모하도록 이르게. 그리고 송도 쪽에 알려서 환도 스
무 자루를 보내주도록 당부하게." 이렇게 동북과 서북 방면의 통문 발송을 처리하고 나서
그들은 저녁 먹고 집이 먼 사람들만 빼고는 양주 인근 사람들은 돌아갔다.
이튿날도 전성달은 통문을 가지고 삭녕 흥성산으로 돌아가서 하룻밤 쉬고는 금화 천불산과
안협 상수리로 전하였다. 안협의 이정명은 다시 통문을 받아 평산으로 전하였고 평산에서는
자비령 길산과 소메의 오계준에게로 전하였으니 사흘에서 나흘이 걸렸다.
최영길은 칠성암에서 돈 삼백 냥을 받아 파주로 향하였다. 문산포 여각에 이르러 경순을
만나 저간의 진행 사정을 낱낱이 아뢰고 돈을 내밀었다.
"스님께서는 송도에서 준비가 다 될 것이지만 이것은 성심이라면서 향도들에게서 시주받은
돈을 보냈습니다. 말 한 필과 환도 스무 자루, 전복 그리고... 여기 다 적혀 있답니다." 영길
이 통문과 물품 내역을 적은 종이쪽을 이경순에게 내밀었다.
"음, 말 한 필, 환도 스무 자루, 전복 열 벌, 전립... 도대체 환도는 병장기니까 필요하지만
전복 전립은 무엇이며 또한 말은 무슨 소용이 있어 구하던가?" "예, 잘 모르겠으나, 먼저
입경하는 이들이 밤에 성문 문루를 점령 할 때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훈련원에서 모여 거병
할 적에는 군복 입고 군마에 탄 용녀부인을 앞세워야 한답니다." 이경순은 그제야 알아듣
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생이를 불러 송도 사대전 임방 좌장 박대근에게 이것들을 전
하라고 일렀다.
"닷새쯤 기다리면 물건이 이리로 올 것이다. 우리도 풀뭇간이 있긴 하지만 환도 등속을 다
량으로 만들면 남의 눈에 띄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군사가 오백여 명이라면 삼사십씩 대
를 이루어 상단인 듯이 꾸미고 한 사흘에 걸쳐서 오게 될 것이다. 우리 여각을 통하여 너희
계의 혜음령에 가게 될 것이니 중길이에게 불비함이 없도록 일러두어라." "예. 그럼 닷새
뒤에 물건 가지로 다시 들르겠습니다." 최영길은 혜음령 중길에게 가서 빠짐없이 전하고
특히 성내에 선진이 가서 외병을 기다리며 묵고 서로 연락할 집을 정할 의논을 하였다.
"한양에 남아 있던 계원들 가운데 외거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거의가 도성 밖이나 마포 서
강에 나가 밥벌이를 하고 있으나, 김영선이가 아직 연골서 주막을 열어 먹고 살고 있으니
그에게 당부하면 될 것이다."
"그가 아직 남의 노비입니까?"
"내관 김아무의 내림 행랑것이었다가 우리 계에 들어올 무렵에 외거하고 면천하자마자 우
리 계에서 빠졌지. 영선이라면 믿을 만하겠다."
"저 혼자 가는 것보다는 성님이 직접 가셔서 일러야겠습니다." 하여 그날로 중길이와 영길
이는 성내로 들어갔다. 장사는 그저 그런 편인데 그의 아내가 앓아 누워 어린 딸과 밥 시중
손님 시중을 하느라고 고생이었다. 김영선은 중길이를 보자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나
서 길가에 내다 놓은 평상 위에서 일어났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초가를 두
채 따로 지었으니 안에는 방 둘에 마루가 딸렸고, 길가 쪽으로 길게 지은 초가에는 널찍한
봉놋방 둘과 작은 방 하나가 있고 곁에는 마구간이 있었다. 원래 마당이 있었던 것 같지만
두 집이 차지해버려서 안쪽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고 시원하였다.
그들은 마루에 가서 둘러앉았다.
"아니, 자네가 여태 살아 있었다니 믿어지지가 않네." 김영선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중길을
바라보았고 중길이도 시선을 피하듯 공연히 이리저리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수?"
김영선은 그냥 쯧하며 혀를 차고는 맥없이 중얼거렸다.
"저 안에 누워 있지. 얼마 못 살 것 같아. 인사불성이라네. 참 면천하느라구 고생두 많았네
만... 나는 자네들 모두 중흥골에서 관군에게 포살된 걸루 알구 있었네." "몇사람이 죽었수.
하지만 계원들 모두가 식솔들과 잘 살구 있어요." "아직도 살주계가 남아 있었던가?"
"우리 같은 공사천이 한사람두 남김없이 양인이 되기 전에는 계를 헤칠 수 없수." "그나저
나 이번에 무슨 일로..."
"우리 계에서 성중에 묵어야겠는데 성님이 좀 거두어주시우." 김영선은 잠자히 있더니 나
뭇짐을 나르고 있는 아이를 손가락질하였다.
"저것이 이제는 종의 자식이 아니라네. 나야 뭐 주막을 열어서 오가는 행객들의 쌀이나 돈
을 받아 살아가니 무슨 손님이든 상관없지만.... 계원들은 못 받네. 무슨 혐의가 생기면 나두
전에는 사노 출신이라 연좌를 피할 길이 없네. 그러면 저 녀석이 다시 평생 남의 종을 면할
길이 없잖은가?"
중길이는 침통한 얼굴로 앉았다가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그러면 하는 수 없군. 다른 집을 찾아봐야지. 하지마는 나중에 우리를 원망 마시우. 누군
가 잡히거나 일을 그르치게 되면 계원인 성님도 우리 일을 도왔다고 토설할 테니까..." "뭐
라구?"
중길이는 놀라서 일어나는 김영선의 옷깃을 틀어쥐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목대감네 광에서 맞아 죽은 북성이 생각나지? 성님하구는 친형제처럼 지냈지. 사옹원 노
비였던 독쟁이 아저씨는, 그 아들이며, 아주머니는... 종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살주계라는
말을 잊을 수가 없수. 다시는 이 집에 찾아오기 않을 테니 마음 탁 놓구 천년 만년 사시우.
관가에 적경났다구 발고해두 좋아."
하고는 중길이가 그의 멱살을 내던지듯 풀어주고는 영길에게 뱉었다.
"가자 종놈들이 면천한 놈 문턱을 밟아서야 쓰겠느냐." 그들이 돌아서는데 김영선이 중길
이의 소매를 잡았다.
"중길이.... 화내지 말게."
김영선은 그들을 다시 앉히고 입경하는 사람들의 숙식을 맡기로 응낙하였던 것이다.
황회와 김시동은 포천 객주에 나가 있는 고달근에게도 알리고 솔부리의 복만이에게도 둔병
할 것을 알렸다. 그리고는 서강으로 나가 모신네 객점을 찾아가 입경 일자를 알리고 나서,
청파 칠패 배오개 등지의 예전 검계원들에게는 자세한 내막을 말하지 말고 일단 거병된 뒤
에 동원하여 번병에 합세하도록 당부하였다.
어느결에 유월이 다 지나고 칠월에 접어들었다. 송도에 부탁하였던 물건은 벌써 칠성암에
와 있었고, 시내비골에서는 시동의 지시를 받은 귀선이가 한양 사거 군관의 복색을 사왔고
환도며 몽둥이를 숨겨두었다. 환도는 창포검이었고 몽둥이는 박달나무로 깎은 한팔 길이의
단봉들이었다. 최영검은 파주로부터, 이정명과 전성달은 장길산과 금화의 대성법주로부터,
각각 통문을 받고 알았다는 답보를 받아왔다. 정원태는 해전에 설유징이 작성하여 보냈던
신서를 빌려서 그들의 거사에 알맞는 여러 가지 참언을 덧붙여 배포할 문서를 만들었다.
장차 미륵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과, 승불경불하고 속즉경불하니, 용이 아들을 낳아 주국
하고 풍우부조하고 오곡이 불성하여 사람들은 모두 굶어죽고 미륵존불께서는 북방에서 나와
눈이 손만큼 크고 금수복을 입고 손에 큰 징을 쥐고 남북으로 오르내린다는 것이었다. 칠월
중에 대우가 폭주하여 산악은 허물어지고, 도성도 역시 탕진하여 국망시대가 될 것이다. 세
간도 반드시 역시 탕진하여 국망시대가 될 것이다. 세간도 반드시 타대가 나오며 우박 천하
하여 궁궐이 텅 비면 백성들이 마땅히 입성하여 귀히 될 것이다. 이 때에 백성들을 돕기 위
하여 사해 용왕의 딸 용녀부인이 흥운작우하여 신변이 불측이니 만사형통할 것이다. 금당개
세하면 성인지대면전 신법자연성이라고 원태는 적었다. 그는 문서를 사오십부 만들어 사방
향도들을 통하여 배포하였으니, 주로 계화가 나다니면서 또는 칠성암에 찾아오는 향도들에
게 나누어졌던 것이다. 소문은 은밀한 가운데 불이 번져가듯 차츰차츰 퍼져나갔다. 백성들은
천지개벽이 바로 눈앞에 당도했다고 술렁술렁하고 모여 앉기만 하면 공연히 밤하늘을 바라
보며 불안하게 소곤거렸다.
칠월 초닷샛날에 칠성암에서는 먼저 입경할 사람들이 모였다. 핑계는 내일 모레가 칠석이
라 제를 지낼 준비를 한다고 하였다. 여환과 황회와 원향과 계화 그리고 영평서 정원태가
왔고, 김시동 전성달 이정명 이원명 오계원 오경립 형제가 왔고, 정호명 정만일 형제, 영길
이와 말립이 정대성이 왔다. 이들 가운데 여환 황회 원향 김시동 이원명 정호명 정만일 이
말립 오경립 정대성이 한양으로 들어갈 사람들이었다. 김시동은 입경하여 검계원들을 이끌
게 되어 있었고, 정호명 정만일 형제와 정대성은 상번군 출신의 장정들은 지휘할 것이며, 최
영길과 말립은 중길의 지시를 받아 살주계와 공사천들의 결속을 맡고, 이원명과 오경립은
혜화문 앞에서 밀려들어올 양주 병력을 안내할 참이었다.
"스무여드렛날에 다락원에서 모여 입경하기로 하고 병장기와 군복은 영길이가 그전에 거적
에 싸서 종루 연골의 주인가에 장치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모이지 않고 변동이 있으
면 김서방과 영길이가 찾아가 전갈할 것이니 거사할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리시오." 여환이
일렀다. 정원태가 말하였다.
"우리 후진은 아흐렛날에 영평서 모이기루 되었습니다." "누구네... 이서방네 집인가?"
황회가 물으니 원태가 끄덕였고 황회는 말하였다.
"나두 참례해야겠군."
"병장기는 환도뿐인가?"
정호명이 물었고 여환이 답하였다.
"짐으로 꾸려서 성내로 들어가기에는 환도가 기중 안전합니다." 황회도 거들었다.
"성내에서 군변 일으키는 데야 단병접전이 주가 될 것이라, 활이다 총포다 모두 소용이 없
소이다."
정만일과 정호명이 말하였다.
"우리 언니는 장창을 잘 쓰지만 까짓 거 최영 장군의 용력을 가졌으니 맨손으로도 금군 대
여섯은 집어던질 게요. 나두 명색이 상번병의 수문장이요, 일대의 장인데 궁성이라면 내 손
금 보듯 허우. 경희궁의 담장은 인왕산 줄기를 타고 돌아서 사직골 쪽에서 넘으면 아주 감
쪽같지요."
"장창은 뭘, 작대기 하나만 있어두 된다. 사실 인조반정 때에두 실제 처음에 동원된 군사는
육백 명에서 천명이 못 되었습니다. 도감군이 나설 것이나 그전에 점령해야 합니다. 훈련도
감을 장악하면 한양은 우리 수중에 떨어집니다. 그 뒤에라면 한양과 근기지방에서 의병 삼
사천을 급히 징번하여 쓸 수 있으니 지방군은 그리 염려할 바가 못 됩니다." 황회가 말하
였다.
"지방에서는 천민들이 들고일어나 감영을 점령할 것이요, 우리는 주상을 사로잡아 그에게
효유토록 하고 나중에 진인을 세워 입국하면 됩니다." 모두들 그에 이르러 두리번거리다가
정대성이 우물쭈물 물었다.
"우리는 모두 상사람들이라 양반의 일을 모르는데, 과연... 우리 가운데서 누가 임금이... 되
는 것입니까?"
여환이 미소 지으며 답하였다.
"상사람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국의 창업주들은 모두가 평지에서 몸을 일으켜
돌출한 사람들이지요. 여기 계신 이들이 모두 장군 대신들이지요. 진인은 상원도에서 저희
사승의 보호를 받고 계십니다."
"궁궐을 깨치고 들어가 주상을 사로잡는 일은 내게 맡기시우." 정호명이 말하자 시동가
말하였다.
"최영 장군님 넋을 받은 분이니, 성님이 마땅히 선봉이 돼야 허우." 원향과 계화는 얼굴만
비쳤다가 나가서 칠석제 지낼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장작을 잘게 뽀개어 부엌 봉당에
쌓아주던 박수 김승운이가 들어왔다.
"종사, 나는 뭐 늘 칠성암이나 지키구 사는 거요? 나두 사선골서 원한이 등골에 박힌 사람
이라우. 이번에 입경할 때 마누라가 안간다 하니, 내라두 가야겠소." "허허, 김박수는 암자
에 남았다가 뒤처진 이들께 연락도 하고 행방도 알려주고 해야 할 텐데...."
"뭐 계준이는 장수가 되고, 나는 암자지기나 되란 말요?" 하는 데 계화가 얼른 남편을 끌
어냈다.
"내가 안 가는데 어딜 따라 나간다구 보채시우. 이럴려구 해서에서 스님 따라 나섰수?" "
나두 용화세상 좀 봐야지."
모두들 기분이 들떠 있었고, 애초부터 혈속도 재산도 변변히 없었고 잃을 것도 별반 없어
서 모역이란 것이 그리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는 그들이었다. 모두들 봄에 화전놀이 갈 채비
라도 하는 것 같았고 정만일이나 정호명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운장이나 한신 같은 호
걸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황회 김시동 정원태 같은 이들만은 비교적 냉정하
였던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갑자년 검계 살주계 난리 때에 살전을 겪었고 그의 동료들의
죽음을 지척에서 보았던 터였다.
칠월 열하룻날, 영평 읍내에 있는 이철신네 사랑에는 황회와 정원태가 와 있었고 원태가
부른 삭녕 장포의 주막 주인 이시흥과 안협의 이정명이 와 있었다. 포천에 나와 있던 고달
근이 황회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여 따라왔고, 시내비골의 방귀선, 도훈도로서 이철신의 절친
한 동무이며 같이 읍내에 사는 정영도 끼여 있었다. 정영은 도포에 갓을 쓰고 제법 위엄을
차리고 있었으나 실은 말단 향임이라 존칭은 하여도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터였다.
정영은 이철신을 통하여도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터였다. 정영은 이철신을 통하여
포천의 부고하는 정원태와 사귀게 되었고, 그는 다만 원태가 주역과 풍수에 밝고 남의 상을
잘 본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터였다. 그러다가 참서를 보게 되고 그에게 얼이 빠져버렸다.
정연은 이철신을 따라 집안에다 미륵존불의 목패를 모시고 있었다. 고달근과 이시흥은 객점
주로 소개되었고, 그들은 정영의 갓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정원태가 입을 떼었
다.
"우리 종도사 스님의 상통 천문 하찰 지리하시는 바에 의하면, 이달말에 폭우가 내리고 뇌
성 번개가 쳐서 큰 변이 날 것이라 하오. 이에 지기가 쇠진하여 산이 무너지고 궁궐은 쓸려
내려간다 하니, 마땅히 진인을 대동하여 입경, 나라를 세워 백성을 평안케 해야 할 것이오.
양주목사가 우리 말을 들으면 다행이나, 듣지 않으면 목을 쳐서라도 관부를 점령해야 합니
다."
"그런 일은 나와 정훈도에게 맡기시오. 우리는 관가의 일이라면 수청 기생의 속곳까지 아
는 사람들이오."
이철신이 한량인지라 여유있게 말하였고, 정영은 대답 없이 헛기침을 몇번 하였다. 정원태
가 그에게서 다짐받고 문서에 써넣었으니 정영쪽에서는 이미 발을 뺄 입장이 아니었다.
"지금 영평에서도 천지가 바뀐다고 민심이 들끓고 있소이다. 이렇게 나가다간 그믐이 되기
전에 먼저 무슨 일이 생기지. 아이들까지도 천변대우 천지개벽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형편이
오."
정영이 말하니 이시흥이도 말하였다.
"저도 들었습니다. 모두들 난리가 나면 대전리가 궁궁의 활지라고 거기에 가야 산도고 소
문이 났지요."
고달근이도 말하였다.
"포천 저자에서는 소문이 돌기를, 그믐께에 서해에서 용이 출래하고 일월을 감키면 하늘과
땅이 맞붙는다고 모두들 한양으로 들어가든지 해야 된다고 쑥덕거립니다. 이 무슨 도깨비
같은 말인고 하였더니 원태 성님 말장난 아니우?"
"이 녀석아, 말장난은 다 무에야. 입국이 되고 보면 너는 포도대장이나 되어서 예전에 쫓겨
다닐 적의 포한이나 실컷 풀려무나."
황회가 곁에서 농을 하였고, 고달근이는 돌아앉아 입맛을 다셨다.
정원태가 바닥을 두드렸다.
"자 그만 그만, 지금 날짜가 별루 남지 않았소이다. 이동지와 정훈도께서는 나와 함께 양주
목에 나아가 관가에 좌정키로 하고, 삭녕 사람들은 이서방과 이상좌가 이끌고 연천 사람들
과 합류하여 대전리로 모이고 영평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갈 것이며 시내비골에서는 방서방
이 앞장설 거요. 고서방은 포천서 그대로 양주로 향하여 불곡산 고개에서 기다리다가 대전
리서 가는 우리들과 합류하면 되오. 양주 관아로 가자마자 제일 먼저 동헌으로 몰려들어가
목사를 바로잡고 중군을 잡은 뒤에 영의 수직 군사들은 처치하고 번이건 비번이건 군졸과
군관을 잡아 옥에다 넣어야 할 것이오. 목사는 우리가 맡을 것이고, 중군과 군관들은 방서방
과 이서방이 하오. 우물쭈물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반항할 눈치가 보이면 가차없이 목을 베
시오. 또한 향임들을 다루고 토박이들을 잘 아는 이가 필요한 것이니 전형방과 허예방이 즉
시 목사의 관인을 사용하며 관문을 돌려서 영평 포천 적성의 현감들을 소집시켰다가 잡아두
고, 각 고을 아전들께 통지하여 그들을 얼른 우리 일에 동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철신이
말하였다.
"두 사람을 만나려거든 삼문 밖으로 잠깐 불러내어 이르시구려. 아니면 이따가 아이를 보
내어 저녁에 놀러 오라구 하든지."
"아니 그럴 큼이 없으니 내 직접 가서 만나야겠군."
이시흥 방귀선 그리고 황회 정원태는 함께 이철신네 집에서 나왔고, 고달근이도 말없이 나
서기는 하였으나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황회가 신신당부하기를, "아이들 몰고 불곡산 고개
로 나와야 한다. 우리가 이제서야 큰 일을 치르게 되는 게야." 하였으나 고달근이는 앞서 가
는 원태와 시흥의 등을 힐끗 바라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이봐, 검계는 인제 다 지나간 얘기야. 자네들 몇이서 쑥덕거린다고 한양을 뒤집어? 갑자년
에는 정말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가재와 게처럼 혈당을 지어 혀가 빠지도록 뛰었어도 공
연히 잡혀 죽기만 했어. 이봐 황서방, 너는 그만두어." "이렇게 준비가 착실하니 절대 실패
하지 않을 거야. 달근이 자네두 인제 속 좀 차려. 손해볼 것이 없지 않나. 첨부터 뭐 내노
랄 게 있었던가. 안성 청룡사에서 절밥 얻어먹고 잔뼈 굵고 사당 애들 행하로 목구멍에 풀
칠하였으니, 그만하면 호강하구 살았지. 두고 보게, 우리가 이대루 찍소리두 못하구 밥숟갈
놓게 되지는 않을 게야." 황회가 열을 내어 말하였고 고달근이는 전처럼 발끈하거나 욕지
거리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것은 황회에게는 남다른 정이 있어서였다. 그는 어느 점쟁이가 표현하였듯이 실리에 밝을
지언정 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진작 그런 것이 있었다면 달근이는 벌써 청룡사 사당
거사패에서 발을 뽑지 못하고 지금은 저승패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고달근은 면천
서 그와 함께 화적질을 하여 쫓긴 이래로 형제와 같이 붙어다녔었다. 황회가 노적사에서 정
원태를 만난 이래로 그는 차츰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달근이는 자기 앞가림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고달근은 지금이라도 대충 정리하여 어느 시골에 전장이라도 마련하고 숨어 살면
밥 세 끼는 놓치지 않을 만하였다. 황회는 검계가 잠행한 뒤로부터 더욱 미륵도에 열을 올
렸고 장가까지 들어서 달근이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시작하였다. 고달근은 아직도 대처 건
달에 지나지 않았다. 달근은 이런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쓸데없는 짓인가 생각했으며 황회
는 이제 돌이킬 수가 없다고 보았다.
"달근이 자네 송우 난전 애들 몰고서 불곡산으로 올 거지?" 황회가 물으니 달근이가 재빨
리 말하였다.
"하여튼... 자네 그릇이면 삼천리에 몸담을 곳이 없어지네. 안성에 아직도 내 동무들이 많이
있으니 숨어 지낼 만한 골짜기의 암자를 소개해주지. 마누라 데리구 그곳으로 가 있어. 내가
나중에 돈을 보낼테니..."
"쓸데없는 수작 말어. 오는 게야, 안 오는 게야?"
고달근이는 황회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았다.
"자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내가 어떤 놈인지."
하고는 고달근이가 황회의 팔을 잡더니 꽉 잡고 흔들다가 놓았다.
"이 밥쇠 같은 자식."
그들은 철신네 집 앞에서 헤어졌다. 이정명과 이시흥은 동행이 되어 연천 쪽으로 갔고 황
회는 집으로 돌아갔으며 정원태는 관가의 삼문 밖으로 갔다. 그는 사령에게 전형방과 허예
방을 잠깐 불러달라고 하였다. 바로 길 앞은 삼밭이었다. 전시우와 허시만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나왔다. 그들은 이미 자세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정원태는 그들에게 끝까지 병
력을 동원한 궁성 번복에 대하여는 말을 꺼내지 않고서 다만 그믐에 천변이 일어날 조짐이
별자리에 나타났다고만 이르고 그때에는 양반과 사대부가 모두 몰살할 것이니, 우리 같은
중인들이 행정을 맡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개벽이 일어나면 나와 함께 양주목으로 가서 병부 관인을 접수하여 민심을 안돈시키겠
나?"
전 허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안돈시킨다뿐인가. 내쳐서 한양으로 들어가 궁궐 좌정을 하여야지." "염려 말게. 우리두
다 경륜이 있다네."
칠월 열이틀, 오후부터 서북에서 짙은 먹구름이 일어나 하늘을 메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그저 여름 그맘때의 폭풍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훤한 대낮이었는데도 사방은 어두컴컴해졌
다. 먼 하늘 속에서 천둥소리가 징 치듯 울려왔다. 법당 안에 앉았던 여환은 마루 끝으로 나
가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코 끝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결이 부딪쳐왔다. 주위는 누
런빛을 띠었고 나뭇잎들이 발깃발깃 나부끼기 시작하였다. 아랫방에 있던 김승운이도 툇마
루로 나오며 여환에게 말을 건넸다.
"비가 올 모양이우."
여환은 금방 먼 산머리에서 뭔가 번쩍, 하는 빛을 보았고 이어서 천둥소리가 구름을 헤집
고 지나쳐 갔다.
"글쎄요... 큰비가 오려나."
"큰비는 아니우. 대개 비가 많이 오려면 처음에는 한줄금씩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다가, 바람
이 서남에서 불어오고 검은 구름이 멧돼지떼처럼 연이어 몰려오면 비록 갠 곳이 보인다 하
나 연일 장마가 들지요. 모아하니 한 이삼 일 소나기가 좋이 내리겠는걸." 여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저 진위뢰라 하였으니 우렛소리가 요란하면 앞은 급하나 뒤가 없으니
비는 많지 않을 것이다. 후두둑 후두둑 굵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바람이 거세
어졌다. 갑자기 누런 허공에 흰빛이 번쩍하더니 하늘을 찢는 듯한 뇌성이 들렸다. 채소를 담
은 소쿠리를 옆에 낀 원향과 계화가 허둥지둥 칠성암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고 무서워. 아무 죄두 없는데 이렇게 간이 뒤흔들리니 죄 많은 사람 천벌이 무서워
어찌 살꼬?"
계화가 처마밑으로 들어서며 호들갑을 떨었다. 원향이는 소쿠리를 부엌에 들여놓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천둥 번개가 이리저리 마치 작대기가 살아 꽂히듯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찢었고,
그 속에서 대가지 같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금방 뽀얗게 되었으며
소요산과 감악산은 하늘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빗소리는 귓바퀴 안에 왕모래가 들어 왈가
닥거리는 듯 요란해졌으며 사방에서 물 흘러가고 떨어지고 부딪치는 소리가 폭포 가까이 있
는 것 같았다. 뇌성벽력은 더욱 심해졌다. 지축을 흔들며 폭음이 들릴 적마다 계화는 에그머
니 소리를 연발하더니 드디어 방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이 사람, 번개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 거라구. 뭐가 무서워. 헌데 요즘 비는 별루 안 좋을
텐데. 나락이 다 익어가는데."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졌다. 여환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얼핏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
다. 저것이 혹시 정말 개벽의 조짐인가. 그는 이번에는 뚜렷한 근심을 가지고 비 오는 허공
을 바라보았다. 소나기에 불과하지만, 지금 민심은 뭔가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 하늘을
천변의 조짐으로 믿게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여환을 깨우쳐주려는 것처럼 요란한 벼락
소리와 함께 맞은편 산허리의 나무가 꺾여져 나가고 있었다. 비는 바람에 실려서 이번에는
비스듬하게 몰아쳐 내리기 시작했고, 승운은 괭이를 들고 나가 토담 밖에 긴 고랑을 팠다.
비는 그침없이 내렸다. 밤에 나란히 누워 있는 원향과 여환의 귓가에도 우렛소리가 들려왔
고 초가지붕을 따라 흘러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그들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열사흗날에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거세게 불었고 아직도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천변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월초부터 끊임이 없더니 드디어 뇌성벽력이 요란한 밤을
뜬눈으로 새우자마자 백성들은 서로서로 안부를 물으며 다시 소문에 소문을 덧붙이게 되었
다.
대개 그 소문은 대탄 근처 대전리 벌판이 활방이라 그리로 모여야 무사히 환난을 넘긴다는
데로 모아졌다. 먼저 연천 마전 영평의 백성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동네마다 떼를 이
루어 활방을 바라고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집안에 남아 있던 자들도 다른 동네 사람들이 길
을 하얗게 메우며 지나가자, 서로 묻고 대전리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자기도 미리 알고 있었
다고 맞장구치면서 이불을 짊어지고 행렬에 끼여들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났고 소문을 재빠
르게 번져나갔다. 무엇보다도 간밤의 폭풍우는 그들을 밤새껏 불안하게 하였던 터였다. 툭하
면 난리요 자칫하면 관과에 불려가 혼뜨검을 당하고 흉년은 해를 걸러 계속되고 역병은 철
마다 돌았으니 백성들은 차라리 천변이 일어나 이런 세상이 끝나고 착한 백성들끼리 오순도
순 사는 새 천지가 바로 서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떼를 지어 활방으로 찾아가는 이들은
향반이나 부호들을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그들은 불안한 가운데도 차마 도적이라도 맞을
까 하여 집을 비우지 못하고 솟을대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하인을 보내어 다급하게 물을 적
마다 백성들은 쾌활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재산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 났고 재산 났지. 재물로 사람을 업수이 여겼으니 곳간 열쇠
쥐고 살려달라지."
"첨지자리나 되는 모양일세. 하늘 앞에 임금인들 무슨 소용일까." "에이그, 권세와 돈은 이
바람에 싹 쓸어가버리구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네." 불안한 가운데도 일반 백성들의 이러한
활기는 차츰 전파되어 호기있는 자들은 제법 그 지주를 만나 지나칠 적에도 하정배를 드리
지 않고 뻣뻣이 말하였다.
"작료는 이제 끝이우. 산과 땅이 없어질 것이니 네 땅 내 땅이 없게 된다우. 잘 사시우, 우
리는 활방으로 가니까."
이렇게 민심이 들끓는 가운데 이를테면 양주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삭녕에서도 형편은 같
았다. 환갑이 넘는 노인들인 이유선과 백성완은 아침에 논을 보러 나왔다가, "이 사람아 양
주서 성인이 나와 만백성을 구한다네. 간밤에 용이 나타났다네." "나두 들었네. 활방은 양
주 대전리라면서. 거기 가면 목숨도 살 뿐 아니라 만병이 다 낫고 새 사람이 된다지. 내가
십여 년을 가슴앓이로 고생했는데 그 좋다는 이천 약수를 먹고도 효험을 못 봤어. 우리
속는 셈치고 가볼까."
젊은 이두완이는 허총 노인과 함께 배를 부려서 아픈 사람이나 노약자를 태우고 대탄으로
출발하였다.
또한 삭녕 동촌의 중년 농부 김천선과 임기읍은 불안한 가운데 논에서 물꼬를 손보고 있더
니 지나가는 소금장수가 말을 걸었다.
"댁네들은 대전리에 안 가슈? 지금 상리에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남부여대하여 양주 쪽으
로 발정하였는데 나두 이 장사 때려치우고 얼른 포천 들러서 활방으로 가려는 중이우." "
활방이 도대체 뭐요?"
남의 머슴으로 그런 일에 한눈 팔 겨를에 없던 임기읍이 물으니 소금장수는 가장 장한 듯
이 주워넘겼다.
"어젯밤 그 벽력소리두 못 들었수? 지금 양주 대전리에 용이 내려왔는데 묵은 세상은 끝장
이 난다는 거요. 그리로 찾아가면 새 세상에 살아남고 모두들 양반 상놈이 없이 똑같은 사
람이 된답니다."
소금장수는 바쁘게 달려가버렸다. 임기읍이 얼른 논에서 나와 달음질치니 멍하니 섰던 김
천선이가 따라가며 외쳤다.
"이 사람아 같이 가세. 하리 사람들 전부 불러모아야지." 영평 읍내에서는 마침 정원태가
아침 밥상을 받아 아내와 겸상으로 식사중이었는데 이말립이가 봉수꾼 이응화를 데리고 헐
레벌떡 마당으로 들어왔다.
"큰일났습니다. 산지사방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몰려가고 있습니다." 말립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원태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왜... 무슨 일이냐?"
"글쎄. 간밤에 폭우를 겪고는 그것이 천변대우의 시작이라고 난리들입니다." 말립이 말하
였고 봉수꾼 이응화도 거들었다.
"관가에서도 소문을 들은 모양인지 파발을 띄운다 만다 법석입니다." 정원태는 탄식하였
다.
"아뿔싸, 여름에 폭우가 많은 것을 어찌 생각 못하였던가." "지금 칠성암으로 달려가 날짜
를 앞당기도록 급히 안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정원태는 손으로 날짜를 꼽아보고
나서 말하였다.
"그 수밖에 없겠지. 당장이라도 입경을 해야만 한다." 김시동은 전날 정호명이네 집에 갔
다가 폭우로 붙잡혀서 호명과 같이 잤던 터였다. 호명이네 집이 면임 집이라 길가에 있었으
며 사람들이 술렁대며 지나가는 것을 온 가족이 보았다.
"하늘이 때를 주었으나 맞지가 않소. 우리가 이때를 타지 않으면 끝장이우." 김시동이 다
급하여 말하자 정호명이도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는 행전을 치고 맨저고리에 돌띠 매고
맨머리에 두건 두르고 나섰다.
"가세, 이 길루 한양에 들어가야지."
그들이 삼십 리 길을 잰걸음으로 달려가는데 초촌내의 정자 앞에 이르니 들이 온통 희끗희
끗하였다. 그들 모두가 대전리를 향하여 한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대전리에
이르니 벌써 먼저 온 사람들이 오거리 앞 하천의 지류가 모이는 둔덕 위에 하얗게 올라앉았
고, 시내비골은 마치 대처장이 선 듯하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몰려드는 중이었다.
시동이와 정호명이 집으로 들어가니 방귀선이가 수심에 잠겨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시동아, 이를 어쩌려느냐, 지금 시내비골 사람들은 남자면 늙은이고 어린것이고 가릴 것
없이 양주로 몰려들어가야 한다고, 환도를 내놓으라고 법석이다. 사람들은 점점 불어날 것이
니 대체 이 사람들을 다 어찌 통솔하냐."
시동이가 말하였다.
"염려 마라. 많이 모이면 더욱 힘이 커지니까 좋지. 우리 아버지 어디 가셨니?" "사람 구
경하러 나가셨다."
"누가 날 찾으면 칠성암 올라갔다고 일러주어라."
"우리는 어떻게 하구 있냐?"
방귀선이 답답한지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물었고 시동이는 침착하게 말하였다.
"걱정 말고, 시내비골 어른들 시켜서 느이 아버지나 응남이 아저씨든 기동이 아저씨든 인
총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천변은 이제 조짐이 보인 것이고 앞으로 닷새 안에 반드시 일어난
다구 소문을 내어라. 그리고 우리 미륵도의 염불을 가르쳐서 염송을 하도록 시켜라." 그들
이 바삐 동네 길로 내려오는데 마침 방의천과 이응남을 만났다. 그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어떡할 거냐. 어서 군중을 몰구 양주 관아로 가야지." 혈기있는 방의천이가 몽둥이로 땅
을 쿵쿵 찧으며 말하였다. 시동이는 화를 벌컥 냈다.
"그 몽둥이 치우지 못해. 아직은 덤빌 때가 아니야. 군중이 동요하지 않도록 미륵의 도나
일러줄 때란 말야. 설치지 말구 귀선이에게 가서 말을 들어." 정호명과 시동은 대전리의 들
판으로 다시 나왔다. 사람들은 아까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진 땅에도 앉았고 젖은 풀 위에
도 앉았으며, 아이들은 소리지르며 뛰어다니고 지휘자가 없는 백성들은 이곳 저곳으로 몰
리며 소문을 교환하고 있었다. 떠드는 소리, 왁자하는 웃음소리, 서로 찾고 부르는 소리로
대전리는 장바닥이 되어버렸다.
시동이와 호명이 칠성암에 당도하니 벌써 법당에는 혈당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암자 어귀
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몰려서서 그들을 가로막고 섰는 영길이와 이원명에게 항의하고 있었
다.
"우리두 향도들이우. 종도사님을 만나려는데 왜 막는 거요?" "천변이 일어나면 세상을 맡
을 사람들은 우리 향도들인데 암자에는 어째서 못 들어가게 하시우!"
그때마다 원명이 작대기로 그들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하였다.
"지금 상좌들이 논의중이오. 그 다음에는 향도든 누구든 마음대루 들어가슈." 여환은 벌써
아침에 연천서 헐레벌떡 달려온 오계원과 오경립 형체에게서 근기 일대의 소동을 자세히 들
었던 터였다. 정원태도 말립이를 데리고 영평서 당도하였고, 황회도 달려왔다. 정원태와
황회가 말하였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거사일을 당길 수밖에 없소이다. 날짜를 끄면 반드시 관가에서 기찰
을 할 것이오."
"통문을 새로 돌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내일 사이에 발정하지 않으면 이번 일은 낭패 보
구 맙니다."
여환이 말하였다.
"해서와 강원의 군사가 발동되려면 못 잡아도 닷새는 걸립니다. 오늘부터 따져서 열여드레
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안에 따라 통문을 새로 보냅시다. 우선 근기의 사람들 손발이
맞아야 할 것이니 이 길로 흩어져서 내일 모레 입경한다는 것을 알리시오. 선진은 모레 오
전에 다락원에서 모여 입경하고 후진은 오후에 대전리로 모여 기다렸다가 한양에서 변이 나
자마자 양주를 장악하시오. 정대덕의 힘이 많을 줄로 압니다." 곧 삭녕 전성달과 안협 이정
명에게로 새로운 통문이 가게 되어 송도에서 사온 말을 파발로 내게 되었고, 기병 출신의
정대성이가 전통을 맡았다. 비는 아직도 오다 말다 하였고, 모여드는 사람들은 오전보다는
좀 뜨막해지고 있었다.
정대성은 대탄을 건너자마자 그대로 말을 달려 황혼이 되기 전에 칠십 리 밖의 흥성산에
이르렀고 장군산 골짜기의 유민촌으로 찾아들어 갔다. 대성이 전성달을 급히 찾으니 그는
아직 대세의 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대성은 다급하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전상좌, 큰일이 났소이다. 폭우가 내려서 백성들이 먼저 작당하여 대전리에 모여들었소.
관가의 기찰이 시작되기 전에 거병해야 한답니다. 앞으로 늦어도 닷새 안에 병력이 모이지
않으면 우리 일은 실패로 돌아가우. 종도사께서는 내게 해서와 강원 방면의 전통을 당부하
였소이다."
대성의 말을 듣자 전성달은 안색이 변하였다.
"여기서 금화 천불산에 알리기는 쉬운 일이지만 승병을 그렇게 빨리 모을 수는 없을 거요.
대성법주스님은 이달 그믐께로 알고 계실 터이니 각 산사마다 그렇게 일렀겠지요. 다시 거
사 일자를 고쳐서 알리려면 여러 날이 걸립니다."
"나는 이 길로 안협 이상좌에게 알려야 합니다. 해서에도 즉시 연락해야 하니까요." 정대
성은 곧 저녁이 되는데도 쉬지 않고 삼십 리 떨어진 안협으로 달려갔다. 안협 상수리의 이
정명은 양주에서 차질이 나게 된 사정을 듣고는 전성달과 마찬가지로 걱정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곧 평산의 풍류계원에게 알려 신천 소메의 오계준과 자비령의 장길산에게 전하
는 일이 급하였다. 정명이 대성에게 말하였다.
"나는 말을 탈 줄 모르니 차라리 정서방이 평산에 가서 알리시오. 나는 그동안에 삭녕 사
람들 동원하는 일이나 맡겠수."
이정명은 정대성에게 평산의 오계준네 계원의 집을 상세히 일러주고 둘은 일단 정명의 집
에서 하루 묵었다. 이튿날 동이 트자마자 정대성은 다시 말을 타고 토산 방면으로 하여 해
서로 넘어갔고 이정명은 삭녕 장포로 사람을 동원하러 나왔다.
흥성산의 전성달은 대성의 연락을 받자마자 출발하여 철원서 하루 자고, 다시 오전 내내
걸어서 금화 천불산에 닿았다. 수태사에서 대성법주를 만난 전성달이 양주에서의 전갈을 알
렸다. 대성법주는 침착하게 물었다.
"해서 사람들에게 알렸소?"
"예, 안협 사는 향도가 평산으로 전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아무리 빨리 모아도 인근의 말사까지 쳐서 백여 명의 승도에 지나지 않소.
이제 바삐 금강산으로 알리려면 오며 가며 닷새는 걸릴 터인즉 그때가지 거병을 미룰 수밖
에 없겠소."
전성달이 말하였다.
"십오일에 먼저 향도들을 이끌 사람들이 입경하고 사흘 뒤인 십팔일에 거사를 한다는 것입
니다. 더 늦어진다면 이번 일은 실패입니다."
"운부스님과 남한산성의 일여와 가평 현등사의 풍열스님께서 어찌 결정할지는 모르나 승병
을 일단 모아보리다."
이정명이 삭녕 장포의 이시흥이네 주막에 당도하니 시흥은 벌써 김성남 송계망과 더불어
대전리로 떠나려고 행장을 꾸리고 있었다.
"날짜가 변경되었어. 내일 입경하고 열여드레까지 기다렸다가 거병을 할 모양일세." 정명
이 말하지 이시흥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잖아도 내가 지금 이 길로 양주에 나가려는 참일세, 장포와 동촌 사람들이 떼를 지어
활방을 찾아간다고 어제 대전리로 몰려갔다네. 그중에는 벌써 실망하고 돌아온 사람들도 많
아. 우리 삼촌두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서 대전리에 갔다가 하룻밤 노숙하고 아무 일이 없어
서 그냥 돌아왔다네.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될 거야." 이시흥은 조바심을 감추
지 못하였다. 이정명이 말하였다.
"까짓 걱정 말게. 오늘이라두 장정을 동원하여 대전리에 모이도록 하자. 일단 사람이 많이
모이면 서로 뱃보도 늘고 자연히 도모할 결심도 생기게 되는 게야. 한 이삼 일 먹일 양식이
없겠는가."
"양식은 각자 준비해도 되고 안되면 양주목의 창고를 열면 되겠지." 김성남도 말하였다.
그들은 함께 사람을 모으고 둘씩 짝을 지었으니 시흥은 송계망과 함께였고 정명은 김성남과
같이 나섰다. 이시흥은 행상 주대천 조한욱 조무인 등과 더불어 사람을 불러모았고, 그들은
상번 입역했던 자들이라 군장 군복을 챙겨서 나섰으니 거의 삼십여 명이 넘었다. 이시흥은
군복이 없어 초군 우광남에게서 빌렸다. 도중에 관노 검송이 시흥을 만나자 걱정하여 말하
였다.
"이거 이렇게 군장을 갖추어 나섰다가 실패하면 어쩌우?" "실패할 리가 없네. 해서와 강
원 양도의 군사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쳐들어올 거야." "군량은 어찌할까요. 지금 세 때 먹
을 양곡두 없습니다." "걱정 말게. 가서 모두에게 이르게나. 양주목에서 쌀을 나누어줄 테
니까." 그러나 검송은 시흥의 일행에 끼여들지 않고서 삭녕 좌수 윤여형에게 가서 가만히
일렀다.
윤여형은 곧 면주인이며 생원을 자처하는 현복명에게 찾아가 천변대우의 소문을 확인하였
다. 복명이 말하였다.
"글쎄 소문이 아니라 큰 변이 벌써 일어났네. 어제 주대천이가 찾아와 활방은 양주 방면이
라더니 오늘은 또한 양주서 보냈다는 이서방이란 자가 와서 군장을 마련하여 서울로 쳐들어
간다는 것일세. 송계망이가 그러는데 양주서 일단 모였다가 한양에 입성한다는군." "음, 하
여튼 우리네가 섣불리 나설 일은 아니고 돌아가는 형편을 잘 살펴두세." 하여튼 그때까지
는 관가에서도 천변대우가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소문에는 접하였으되 거병 입성에 관해서
는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비록 하리배와 아전들이 그런 소문을 들었어도 하도 엄청난 노
릇이라 감히 고변도 못하였다.
인근 백성들은 돌아간 사람들도 많았으나 다시 뒤늦게 당도한 이들은 더욱 늘어나서 대전
리에는 시내비골 사람들이 쳐놓은 멍석 차일이 수십 군데나 되었고, 주먹밥도 준비하여 나
누어주었다. 실상 시내비골의 동원 책임을 맡았던 방귀선이나 영평 일을 맡아 양주를 모두
지휘하도록 되어 있던 정원태 같은 이는 이대로 양주목을 급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다른 지역의 병력 동원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 무모한 생각이었다. 그날 밤이 되어서야
해서의 평산에까지 나갔던 기병 정대성이 급히 돌아왔다. 양주에서의 전통은 그대로 전하였
으나 시행이 착오없이 이루어질는지는 아직 모르는 노릇이었다. 불안한 가운데 십사일 밤을
넘기고 선진이 출발하기로 되었던 보름날이 되었다.
칠성암에서는 입경 준비로 부산하였다. 간밤에 혜음령과 파주를 거쳐서 전갈하고 돌아온
최영길은 환도 군복 등속을 여러 짐으로 나누어 꾸리고 있었다. 정대성은 이틀간 왕래한 피
로 때문에 황회가 급히 깨울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여환은 원향이 전립 쓰고 전복을 입고
나선 모양을 보고 말하였다.
"당신이 용녀부인의 표적이 될 것이라 노중에서 백성들을 만나면 엄숙한 기색을 보여야 하
오."
"염려 마세요. 입경한 뒤에 훈련원이 점령되면 제가 앞장서서 해서 군사를 이끌고 나갈 거
예요."
황회가 재촉하였다.
"종사, 어서 출발합시다. 대전리에서 지체될지두 모릅니다." 마당에는 안장에 온갖 색실과
치장을 올린 호마가 준비되어 있었고 원향이 올라앉으니 태도는 엄숙하고 위의가 있었으며
가히 사해 용왕의 딸이며 여장군이라 할 만하였다. 최영길이 용녀부인의 고삐를 잡았고 환
도와 군복이 들어 있는 짐은 각자 나누어 짊어졌다. 여환 황회 원향 최영길 오경립 정대
성 그리고 계화의 남편 박수 김승운이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은 바로 대전리 오거리로 나갔
는데 하얗게 모였든 군중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자 환호하며 길을 비켜주었다. 군중들 틈
에서 김시동과 정호명 정만일이 나왔다. 여환은 시동에게 물었다.
"모두들 천변을 기다리고 있소?"
"예, 어제까지는 활방으로 피해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한양에서 변이 일어나면
기다렸다가 입경하여 재화를 차지한다거나, 공을 세우겠다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우."
황회가 방귀선에게 알렸다.
"칠성암 김박수가 돌아와서 알릴 때까지 향도들을 잘 이끌어주게." "염려 마십시오. 우리
향도들은 미륵이 새 세상을 이루러 오신다고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종도사님과 용녀
부인을 먼발치서라도 뵙겠다고 원근 사방에서 몰려온 백성들입니다.
이들에게 신심을 넣어주어야만 합니다."
"염송하십시다. 나무 현거도솔 미륵존불 나무 당래교주 미륵존불 나무 삼회도인 미륵존불."
대전리에 하얗게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향도들은 치병을 기원하여 늘 외어왔는지라 여환
을 따라서 웅얼웅얼 염송하였고 그것은 마치 파문이 번져가는 것 같았다. 물론 변을 바라고
모여든 장정들도 많았지만, 다리에 종기가 난 사람, 곱사등이, 옴장이, 벙어리, 미친 사람, 풍
병 든 사람, 배냇병신, 절뚝발이, 곰배팔이, 냉가슴 앓는 이, 해수병 앓는 이, 폐병, 위병,
뱃병, 부황병 등등으로 못 먹고 못 살아서 이리저리 천대받고 학대받으며 사람 구실을 못하
는 이들도 수없이 몰려와서 대전리 활방의 이적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들은 제각기 염송
을 마치고는 목청을 달리하여 신음하고 부르짖었다.
"어서 미륵님께서 하강하도록 해주시우."
"미륵님이 오시면 세상은 곧 바뀐다 하였으니, 이 묵은 하늘을 벗겨주오." "천둥 번개와
홍수로 세상의 금력과 권세를 쓸어버리고 균등한 세상을 일으키소서." "용화세상에서는 주
림도 아픔도 질병도 모두 사라질 것이니 어서 신통술을 부리시우." 황회가 군중들을 향하
여 외쳤다.
"모두들 조용히 들으시오. 우리 종도사께서는 용녀부인을 모시고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 여러분이 소문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용녀부인의 사해 용왕의 따님으로 미륵의 인도에
의하여 여환종사님과 배필이 되셨소. 일찍이 바람과 비를 부르고 천지개벽을 하시는 재주를
가지시고 만병을 고치는 의통을 지니고 계십니다. 앞으로 사흘 안에 조선뿐만 아니라 중원
과 열두 제국을 번복하는 영험을 보이실 것이오. 우리 용화 향도의 큰어미 되시고 개벽의
시작인 태음이 되시는 용녀부인은 금오 기운 뒤의 옥토가 동에 뜨는 것과 같은 분이시오."
황회는 용녀의 입경을 떠오르는 달에 비유하였다. 원래 주역에서도 지천태라 하였으니 땅
은 위에 있고 하늘은 밑에 있어 오히려 제자리를 태평하게 지킨다 하였다. 그것은 만물만상
이 생동하여 움직이는 까닭이고 높은 것은 내려오고 낮은 것은 올려서 무등하게 한다는 이
치이며 태극이 변혁의 원천인 까닭이다. 용녀부인이 물의 상징이고 물은 개혁의 수단이며
시초요 새 세상의 근원이었다. 음은 모든 것을 낳고 창출해내는 까닭이었다. 용녀 원향은 구
군복에 전립 쓰고 말 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군중들은 미륵경을 염송하고 있었다.
여환은 대전리를 떠나기 전에 군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한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대우의 천변을 맞아 번복되는 도성을 구원하고
천민들이 스스로 나라를 세워 마음놓고 화평하게 사는 계두성 용화세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요. 장차 밝아올 미륵의 세계에서는 온갖 악한 것과 욕심 상극이 모두 사라지고 서로 사이
좋게 같이 사는 화평한 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재물은 나누어질 것이며 땀흘리고 수고하는
보람도 똑같아질 것입니다. 땅은 기름지고 풍족하며 병고와 가난이 사라져서 계두성에서는
누구나 문물의 혜택을 고루 받게 됩니다. 밤이면 늘 향기로운 자비의 비가 내려 서로 이웃
걱정을 해주며 원귀들도 스스로 한이 풀려 세상을 돕게 되고 정치와 교화는 일체를 이루어
하늘의 도가 땅에 내리게 됩니다.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은근히 잠재하
여 있을 뿐 크게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마음도 어긋남이 없이 평등하여 만나면 즐거워
하고 착하고 고운 말을 주고받으며, 뜻이 틀리거나 어긋나는 말이 없어서 온 세상이 성인의
도를 이룹니다. 금은 보화 진주 보석 마노 호박이 땅 위에 널려 있다 할지라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는 이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서로 이상히 생각하여 말하기를, 옛 사람들은 이것 때
문에 서로 싸우고 죽이며 아우성치고 잡혀가고 옥에 갇히는 등 수없는 고생을 하였으나, 용
화세상에는 이런 것들을 아름다운 땅이나 돌처럼 여길 뿐 재물로써 아끼고 탐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던져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에서는 여러분이 오랫동안 소문으로 듣던 정
진인이 출현해서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입니다. 진인께서는 다른 힘센 나라에 시달
리지 않게 일곱 가지 보배를 가지고 계십니다. 진인께서는 일곱 가지 보배를 세워 천하를
다스릴 뿐 무기나 권력으로 억누르지 않지만 모든 적을 저절로 항복받게 되십니다. 지상의
모든 보화와 곡식의 창고는 열려져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며 그 누구도 다시
는 쓰고 남을 만큼의 재화를 소유하지 않으며, 영원히 그 생각이 없어질 것입니다. 백성이
착하게 살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법밖에 필요가 없습니다. 남에게 베풀고 돕는 법과 스스로
계행을 닦는 법과 하늘나라에 살듯이 세상을 이루는 법과 욕심은 더러우니 버려야 한다는
법입니다. 온 백성은 누구든지 번뇌를 끊고 청정한 법안을 얻게 됩니다. 이렇듯 속진과 정교
가 일치하게 될 적에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도가 현세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의 성이 미륵님과 같이 자씨가 될 것이니, 누구에게나 태음이신 어머
니의 마음처럼 너그럽고 인자하고 어여삐 여기는 세상을 이루는 까닭입니다." 여환은 미륵
경의 설법을 빌어서 백성들에게 말하였는데 그는 도중에 스스로 열기에 차서 더 계속하려
는 것을 황회가 은근히 중지했을 정도였다.
"그만하면 이들은 적어도 사흘이 아니라 한 달은 버티게 될지도 모릅니다." 방귀선이도
그의 소임이 이곳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었는지라 자랑스레 말하였다.
"전에 신서에 활방은 궁궁이란 말이 있었다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동네 앞 대전리 오거리
라고들 합니다. 궁궁은 활활한 큰 전야를 의미한답니다." 여환과 원향은 백성들의 열을 가
르며 대전리를 떠났다. 그들은 내쳐서 다락원 주막거리까지 나갔고 큰 느티나무 아래에는
이원명과 이말립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평에서도 우리 정대덕님이 군민을 휘동하여 대전리 쪽으로 발정하였습니다." 이말립이
영평의 동정을 전하였다. 일행은 모두 열두 명으로 불어났고, 그들은 혜화문으로 입성하였
다. 연골 김영선네 주막에 여환 일행이 당도한 것은 오후가 넘어서였다. 마침 김영선이네
집에는 오랫동안 병을 앓던 그의 아내가 열하룻날에 죽은지라 삼우제 핑곗거리가 되어서 그
들이 은신하기에 앞뒤가 맞는 일이었다. 사처를 정하자마자 바빠진 것은 역시 검계의 일을
총괄할 김시동과 살주계 일을 맡은 최영길이었다. 정호명 정만일 형제는 해서 강원의 병력
이 당도하여 대기한다는 전갈만 떨어지면 검계 살주계의 병력과 더불어 사대문을 장악하고
양주 병력의 진입과 더불어 훈련원에 들어갈 참이었다.
김영선은 진작부터 살주계 행수 중길의 당부가 있어서 영길이가 내놓은 무기와 군복을 모
두 광 속에 감추어주었다. 시동은 일단 서강의 모신이네 객점에 나아가 검계의 계원들에게
은밀히 알리도록 하였고, 영길이는 혜음령으로 나가서 중길이와 더불어 해서의 병력을 인도
하도록 하였다.
여환은 방안에서 침착하게 염주를 헤어라고 있었으나 황회는 비좁은 주막집 안마당을 오락
가락하며 종내 불안한 기색이었다. 초조한 하루가 지나고 김승운은 여환의 지시에 따라 흥
인문 밖에 나아가 강원 승병의 당도를 알리게 될 전성달을 기다렸다. 성문이 완전히 닫히는
땅거미가 질 무렵하여 김승운이 돌아왔건만 그는 전성달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해서의 신천 소메에서 오계준이 양주 소식에 접한 것은 보름날 오후였다. 그는 여환의 새
로운 통문을 보자마자 구겨 쥐며 부르짖었다.
"이 중놈이 모든 일을 망치는구나. 거병에는 날짜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늘, 멋대로 이렇듯
촉박하게 다시 바꾸었으니 이번 일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뒤늦게 손을 쓰느니 차라리 내
가 먼저 피해버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다." 열엿샛날 아침, 자비령의 길산은
산채에서 양주 통문을 받았다. 봉산에 나가 있는 정탐소에서 만동이네 식구가 통문이 어젯
밤에 왔다면서 전해주고 갔던 것이다. 김기가 통문을 읽어보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실패입니다. 불가이진전 불화어전이란 오자의 글이 있거늘, 거병의 약속 날짜에
큰 혼란이 오게 되었으니 미리 상대방에게 기미를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원래가 역
성혁명이란 강대하고 기틀을 굳게 쥐고 있는 한 나라의 주권을 권모로 전격 급습하여 뒤바
꾸는 일입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캄캄한 그늘 속에 스스로 숨어서 해야만 합니다. 통문의 내
용으로 보아 급히 서두르는 이유가 양주 인근 백성들의 동요 때문인 것 같은데, 일단 수수
방관했어야 합니다. 오히려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어야 합니다. 우왕좌왕 틈을 엿보
는 자들까지도 내 편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모두 관가에 붙어버릴 빌미를 주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거병 일자를 맞추어 당도하기 전에 이미 관의 기찰이 시작될 것입니다.
불은 붙었으나 작은 불입니다. 맞불을 놓든지 발로 밟아 은밀히 꺼버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
습니다."
언제나 김기의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나서 결정하는 장길산도 한참이나 망설이며 생각하다
가 침통하게 말하였다.
"내가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운 일이고 더구나 큰스님들께서 당부하신 일이라, 식구
들 데리고 철원 거쳐 금화 천불산까지는 한번 가볼까 하오." 그러나 김기의 반대는 완강하
였다.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소이다. 구월산의 참패를 돌이켜보시
우. 군관과 정면으로 부딪칠 때가 아니외다. 이번이 기회였던 점은 분명하나 여환은 그것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의 고변이 들어갔다면 관군은 필시 요로를 끊고 복병을 묻
거나 천마산 솔부리나 혜음령과 같은 조군지를 둘러쌀지도 모릅니다. 오늘이 열엿새고 앞으
로 이틀 안에 급작스런 준비를 갖추어 외응할 수 있는 군사는 천군을 부르는 재주로도 모으
지 못할 것입니다. 정히 궁금하시다면 말득이와 선흥이를 데리고 천불산 수태사의 대성법주
를 만나보신 연후에 말득이를 통하여 기별하셔도 늦지는 않습니다. 그만한 기간에도 양주의
향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결속된다면 일은 꼭 이루어질 것이며 그전에 깨어진다면 우리가 식
구를 모두 데리고 나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두령은 산채의 가장이니 깊이 생각하시오."
길산은 김기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에 따르기로 정하였다.
"좋습니다. 삼촌의 말씀대로 말득이와 선흥이를 데리고 금화에 나가 보지요. 거기 가보아서
사정이 좋을 듯싶으면 말득이를 보내어 식구들을 동원하도록 할 터이니 삼촌은 그동안 산채
나 돌보아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장길산은 강선흥이와 강말득이를 데리고 그날 자비령을 떠났다. 그들은 봉산
만동이네 세마를 내어 타고 달렸어도 열이렛날 깊은 밤에야 수태사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대성법주는 길산이 두 아우와 함께 단출하게 온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고 당연하다
는 기색이었다. 흥성산 유민촌의 전성달이도 법주스님과 같이 있었다. 길산은 옛 동무 법주
스님에게 말하였다.
"오늘이 열이레인데 통문대로 한다면 거사일은 내일이 아니냐. 우리는 모두 그믐으로 알고
있었다."
"여환당이 너무 자신의 교세를 믿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네 얼굴이라도 이렇게 보고 나니
좀 답답한 마음이 풀리는구나."
대성법주는 이어서 말하였다.
"가평 현등사에서 아침에 풍열스님의 전갈이 왔었다. 절대로 동요하지 말고 끊으라는 게야.
다음을 위해서 힘을 아끼자는 것이지."
전성달은 길산과 대성법주의 안색을 번갈아 살피며 애타게 호소하였다.
"그럼.... 근기의 저 수많은 가엾은 백성들은 어찌되는 겁니까. 양주의 미륵도는 모두 어육
이 되고 맙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군사를 모으도록 하시지요." 길산은 대답이
없고 법주가 말하였다.
"안되우. 우리가 승병을 다 모으려면 앞으로 아무리 빨라도 닷새는 걸리지요. 이미 양주서
발정을 하였다니 우리가 잘못 움직이면 필시 기찰에 걸릴 거요. 처음 거병 날짜가 그믐으로
정해져 있어서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으니 지금 변경되었다는 기별이 다 닿을까도 의문입니
다. 몇몇 사람이 희생이 되어도 일단 씨는 뿌려진 셈이지요. 지금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어서
꼬리를 잘라야 하는 것이오. 여환당과 양주인들에게 우리의 거병 계획을 아는 사람들 중심
으로 뒷일을 수습할 책임을 맡겨두어야 합니다."
전성달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일단 피하겠습니다."
장길산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전서방이 이번 일에 깊이 연루가 된 것은 여러 미륵 향도들이 다 알고 있을 게 아니오?"
"그야.... 물론 저는 상좌를 맡았으니 양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삭녕 사람들도 다들 알겠지
요."
"전서방이 혼자 피해버리면 흥성산의 구월산 유민들은 모두 관의 침학을 면치 못할 것이
오."
성달은 곧 길산의 말을 이해하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침학의 결과를 잘 알고 있었으니 구월산의 토포 때에 이미 겪을 일이었
다.
"피하지 않으면.... 날 보고 잡혀서.... 죽으라는 거요?" 길산은 고개를 숙였다.
"다른 식구들을 생각해보시오. 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소. 전서방
이 오히려 함께 들어가 여환스님과 황거사 같은 이들에게 깨우쳐주시오." 거사일로 정했던
열여드렛날 새벽, 여환 황회 정호명 김시동의 네사람은 백악에 올라갔다.
혜음령에서 중길이가 해서 군사의 도착을 전해줄 것이며, 궁성의 곳곳을 미리 살펴둘 셈이
었다. 부서와 책임은 이미 정해졌으나 백악에서 사대문 안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전진로와
조군로와 우회로를 익혀두려는 것이었다. 여환은 이 날짜쯤이면 오계준의 해서 군사는 혜음
령에 당도하고 철원서 합대한 승병과 길산의 군사는 천마산 솔부리에 묻어두었을 것으로 확
신하고 있었다. 열여드레의 낮만 지나면 그 밤의 자정에 도성의 주인이 바뀌고 미륵의 세상
이 돌아오는 것이다. 백악 문수전에 오르니 한양 오부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듯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좌측에 창덕궁이, 우측에 경희궁이 보였으나 일단은 창덕궁이 목표였다. 그러
므로 해서 군사는 백악 줄기를 타고 삼청동을 지나 산길로 가회방 쪽으로 나오며, 양주 병
력은 혜화문으로 하여 문묘쪽으로 오는데, 강원 군사는 숭신방 쪽에서 오간수를 넘어 훈련
원에 와서 해서 병력의 일부와 모이도록 되어 있었다. 궁성 점령과 거의 동시에 사대문이
장악되어야 할 것이다. 여환의 제의로 네 사람은 한양 성내를 향하고 남면하여 사배를 드리
고 여환이 목청을 돋우어 송격하였으니 하늘이 우호하여 대사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들은 다시 눈 아래 보이는 동네와 길을 손짓하며 군사들의 진로와 집결처를 의논하였다.
그들은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중길이의 전갈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윽고 북록
등성이에 희끗희끗한 사람의 자취가 보이는가 싶더니 혜음령에 나가 있던 최영길이가 낯선
사람과 함께 나타났다. 여환이 바라보니 그는 장길산의 아우 강말득이었다. 영길이가 먼저
시무룩하게 말을 꺼냈다.
"해서 군사는 이미 송도까지 와서 은신중이지만, 강원 군사는 아직 당도하지 못하고 모으
는 중이라 일단 양주로 돌아가서 닷새쯤 더 기다려야 한답니다." 정호명과 김시동은 화를
벌컥 냈다.
"아니 닷새 기다리라니 약조는 철석같이 해놓고 이제와서 꽁무니를 감추자는 겐가." "양주
대전리의 군중은 아무 소득 없이 흩어질 것이고 다시는 모여들지 않을 거요." 그러나 황회
는 오히려 그들을 달랬다.
"만사 불여 튼튼이라, 물샐틈없는 준비로 거사하면 더욱 좋지 않겠나." 그러나 여환은 곧
눈치를 챘다. 강말득이는 주로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하고 연락하는 일을 맡은 사람인데, 지
금쯤 승병들과 더불어 솔부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문득 혜음령 중길이의 살주계 은신처에
간 것은 이미 일이 글렀다는 것을 나타내고 이었다. 아마도 강말득은 여환 자기에게 무엇인
가 중요한 말을 전하기 위하여 길산이 보냈음에 틀림없었다.
"강서방, 어찌된 거요?"
여환이 나직하게 묻자 말득이는 앞서 내려간 사람들이 십여 보나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말
을 꺼냈다.
"외응하기로 되었던 저희 성님들은.... 이번 일을 이미 실패한 걸루 보구 있습니다. 양주서
거사 일자를 바꾼 책임이 크다구 그러십니다. 이대루 조용히 돌아가셔서 때를 기다리시오."
"그럴 여우가 없소. 관가의 기찰이...."
부르짖는 여환의 말을 강말득이가 잘라냈다.
"잘 아시겠지요. 게는 다리를 떼일지언정 그 몸을 살립니다. 어려운 철을 만나면 나무는 새
봄을 위하여 잎을 떨어버립니다. 부디 시동이와 황거사 정대덕 같은 분들께 이런 절을 명심
시키랍니다. 특히 파주 송도의 연루 관계나, 해서 풍류계와 자비령 우리 산채 그리고 법주스
님의 승병에 대하여 잘라야 합니다. 아마도 나중에 누구인가 더욱 자세한 사정을 알려드리
기 위해서 관가로 자수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오지 않는 거요?"
"아무도... 안 옵니다. 약조를 어긴 것은 스님 쪽이지요." "잘.... 알겠소."
"스님, 그러면 뒷일은 스님만 믿고서 돌아갑니다. 그리고 대성법주 스님의 전해달라는 말씀
입니다. 길은 한곳이며 만날 곳도 같은 데라 나중 모두 거기 가신답니다. 부디 정토에는 가
지 마시랍니다."
"우리는 기왕에... 괜찮소... 다만 백성들이... 자씨 미륵존불께서 오시는 날에 다시 모이자구
전하시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합장하였다. 강말득은 우두커니 백악의 등성이에 서 있더니 여환
이 몇걸음 내려와서 뒤돌아보니 자취가 없었다. 여환은 영선네 주막에 내려와 일행과 의논
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천변대우의 징후가 나타나지 않아 그대로 돌아온 것으로 하되 다음
의 시월 초를 길기로 잡는다고 다른 사람들께 이르기로 결정하였다.
열여드렛날 아침에 이미 삭녕에서는 고변이 있었다. 좌수 윤여형이 하도 엄청난 일이라 감
히 겁이 나서 감히 발고하지도 못하고 있더니, 날짜가 지나자 용기를 내어 관문에 들어갔다.
그는 별감 최모와 더불어 군수에게 알렸고 군수는 양주목사에게 비관을 올린 뒤에 어느 수
령보다도 먼저 선수를 쳤다. 즉 아전 기찰과 장교들을 풀어 장포의 가담자들과 시내비골의
향도들을 수색, 체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때쯤에는 대전리에 모여들었던 군중들이 거
의 다 흩어졌던 터였다. 제일 먼저 칠성암에 남아 있던 계화가 잡혔고 시동의 아버지 김돌
손 노인과 그의 형 시금이가 잡혔으며, 이응남 임기동 방승남이 잡히고 대전리의 동원 책임
을 맡았던 방귀선은 안협 이정명을 찾아서 달아났다.
입경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그들은 서로 말은 주고받지 않았으나 뭔가 불길한 예
감을 각자 느끼고 있었다.
김시동이는 최영길을 데리고 시내비골로 돌아갔다. 여환과 원향은 먼저 칠성암으로 갔고
다른 이들도 못내 께름칙하면서도 별수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저녁때였는데
도 시내비골의 지붕들 위에서는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대전리 오거리는 썰렁하게 텅 비어
있었고, 동구 밖에도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질 않았다. 시동은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영길에
게 말했다.
"웬일일까.... 혹시 연락을 기다리다 모두들 참지 못하고 한양으로 몰려간 게 아닐까?" "다
락원이 한산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 좀 시끄러웠겠수." 그들은 주뼛거리면서도 어느결
에 시내비골의 동구로 들어섰고 집집마다 방문이 활짝 열려 있거나 옷가지와 식기 따위가
마당에 흩어진 것도 보였다. 영길이가 참지 못하고 시동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가만.... 아무래두 낌새가 이상허우."
그러나 시동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온 식구가 관가에 벌써 잡혀갔는
지도 몰랐다. 영길은 골목에서 주춤 서버렸고 시동이 혼자서 집 쪽으로 달려갔다. 집 앞에
가까이 가니 울바자 너머로 마루가 보이는데 그의 형 시금이가 얼굴을 보이며 단정히 앉아
있었다.
"시금 언니..."
시동은 반갑게 외치면서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뭔가 불 같은 것이 눈앞에 번쩍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혼절하였다.
군졸은 육모방망이를 쳐들고는 시동이가 꿈쩍만 하면 한 대 더 후려칠 기세이더니 다시 아
래로 내려뜨렸다. 군졸은 두 사람이었고 장교가 안방에서 걸어나왔다.
"네 아우냐?"
장고의 물음에 시금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금이로서는 처자가 인질로 잡혔고 아
버지 김돌손 노인도 옥중에 있었으니 몸을 빼칠 재주가 없었다.
"묶어라."
군졸들은 혼절한 시동이의 늘어진 팔을 뒤로 돌려서 포승으로 단단히 묶었다. 뒤이어 다른
군졸들이 달아나려던 최영길을 잡아서 포승을 지워 끌고 들어왔다.
"다음에... 정호명의 집을 알지?"
"예, 압니다."
"그리로 가자."
관군은 시내비골 사람들 거의 모두를 관가로 잡아가서 입경했던 자가 누구누구인가를 낱낱
이 파악했었다. 그들은 시동이를 잡기 위하여 한 오가 뒤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여환과 원향과 김승운은 산길로 하여 영근산 쪽으로 갔다가 고갯마루에서 허겁지겁 그들을
부르며 내려오는 이정명과 마주쳤다. 그는 여환을 만나자마나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구 스님, 말두 마슈. 시내비골 사람들은 다 잡혀가구요, 은윤 만신 어머니두 칠성암에
서 잡혀갔수. 나는 원명이 언니를 기다리구 있어요."
"아니 그럼 마누라 혼자 잡혀갔어, 이 사람이 얼마나 곤욕을 치를꼬?" 김승운은 입을 비
죽비죽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여환이 말하였다.
"김박수와 이서방은 어서 피하시오."
"그렇게는 못합니다. 여편네는 참수를 당할 텐데. 그래두 지아비라고 믿고 살아온 나 혼자
살아 도망가란 말이우?"
"두 양주가 잡혀 죽는 것보다는 그래두 한쪽이라두 살아남아야지요. 아주머니도 김박수가
살아남기를 원할 겝니다."
"두 분은 어쩌시려우...."
"나는 다른 향도들도 있고 하니, 그이들과 함께 있어야겠지요." 하면서 여환은 원향을 바라
보았다.
"당신두 아저씨 따라서 해서 쪽으루 피하지."
원향은 그저 조용히 웃을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원명이 김승운의 소매를 당기며 재촉하
는 바람에 그는 연신 소매로 얼굴을 씻으면서 여환과 작별하였다. 그들이 어둠속으로 사라
진 뒤에야 원향은 갑자기 여환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후생을 다시 기약할지언정 어찌 저를 갈라놓으려 하셔요. 우리 앞으로 사흘 동안만 이승
의 부부로 살아보아요. 저 감악산 굿터에 가면 움막이 있지요. 저를 그리루 데려가주셔요."
"의금부에 끌려가 어떤 고초라두 다 견딜 자신이 있소?" 여환은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물으
니 원향이 대차게 말하였다.
"저는 구월산 단군 성조님 몸주 받은 큰만신이고 용녀부인이어요." "그럽시다, 아무래두
우리가 가야 다른 백성들이 고생을 덜게 되오." 김승운과 이정명은 정대성과 어울려 달아
났고, 원향과 여환은 사흘을 기한하여 감악산 굿터에 숨어 있기로 하였다. 이러한 양주목의
토포 사연은 시내비골 외에는 매우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진행되어 처음에는 인근 백성들도
거의 눈치채지 못하였다. 양주 일대의 마을이 거의 폐촌이 되고 대전리에 찾아갔던 백성들
이 산지사방으로 달아난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였다. 오경립과 이시흥은 원래가 검
계에 들었던지라 솔부리로 달아났고 다른 이들은 거의가 잡혔다.
여환과 원향은 감악산 아래 굿터 움막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틀 동안이나 누워 있었
다. 캄캄한 밤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뿌려져 있었으며 산에서는 쪽박새가 쪽쪽쪽 쪽박 바
꿔주, 하는 소리로 새벽까지 울어댔다. 원향은 여환의 팔을 베고 누워서 새소리를 들었다.
"내가 옛말 하나 해드려요?"
"무슨 옛말...."
느닷없는 원향의 말에 여환은 까마득한 예전에 그가 월정사를 떠날 때 어린 원향에게 해주
던 오누이 얘기가 생각났다. 원향이 말하였다.
"저 새소리 좀 들어보셔요. 끼니를 놓치고 누우면 잠이 안 와서 밤이 무척 길다지요. 그러
니까 허기를 잊노라고 엄마는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옛말을 해주지요. 옛날에 한 부부가 있
었드래요. 남편은 나무하고 아내는 길쌈하여 포실한 초가를 짓고 살았는데 아기가 없었다지
요. 아내가 뒤뜰에서 날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더니 다행히 아기를 배게 되었대요. 그래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잘못되어서 엄마는 죽고 살덩이만 댕그라니 남았다지요. 아버지는 울
며불며 아내를 파묻고 나서 동냥젖을 얻어먹여 딸아이를 길렀드래요. 그러다가 아버지는 혼
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새장가를 들었드래요. 의붓어미는 겉으로는 얌전하고 남편에
순종하는 척했지만 속마음은 사납고 모진 사람이었지요. 아버지가 행상을 다니노라고 집을
비우면 떡도 해먹고 닭도 잡아먹고 하면서 데려온 딸이랑 흥청거리면서도 그 아이에게는 일
만 시키더래요. 그리고는 조갑지만한 작은 쪽박에다 조밥을 한숟갈 남짓 퍼주니 아이는 주
리다가 못해서 아버지가 집을 비운 날 죽고 말았지요. 의붓어미와 딸은 아이를 먼 산골짜기
에다 몰래 파묻어버렸대요. 아버지가 장삿길에서 돌아와 물어보니까 의붓어미는 고것이 소
금장수를 따라 도망가버렸다고 거짓말을 했대요. 배가 고파 죽은 아이는 쪽박새가 되었지요.
그래 죽어서도 배가 고파서 저렇게 밤만 되면 큰 쪽박에 밥달라고 울고 다닌대요." 여환은
잠자코 듣고 있었다. 어느 흉년의 긴긴 밤에 할머니나 엄마가 아이들을 재우느라 쪽박새
의 울음소리를 빌려 얘기를 엮는 장면이 생각되었다. 저렇게 수도 없이 죽은 백성들의 귀
신은 온 산천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끝내 용화세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환은 배고픔이
바로 온 세상을 적막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먼 숲 사이로 울려퍼지는 밤새의
소리처럼 주린 것들은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당신 배고프오?"
여환이 아픈 목구멍 속으로 꿀꺽 침을 넘기며 물었고 원향이 답하였다.
"아뇨... 이런 건 아무렇지두 않아요. 하지만 마음이 너무 쓸쓸해요.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없이 마른 바람만 휭휭 불어 지나가요."
여환은 원향을 꼭 끌어안았다. 원향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그의 얼굴을 더듬었다. 원
향은 삭발한 여환의 머리를 만지고 이어서 눈썹과 눈두덩을 더듬고 코와 입술을 만지작거렸
다.
"어젯밤 꿈에는 당신하구 나하구 새옷을 입구 강을 건너서 너른 벌판을 휘적휘적 걸어가는
꿈을 꾸었어요. 들에는 원추리꽃이 가득 피었어요. 먼 데 기와집이 보였어요. 종소리가 뎅뎅
울리고 엄마가 그 끝에서 어릴 적처럼 입에다 두 손을 대고 불렀어요. 원향아 저녁 먹어라,
깨어보니 샛별이 제일 먼저 보였어요. 당신은 자고 있구요." 여환은 문득 두 사람이 잡혀서
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그들은 손을 맞잡고 북이나 남으로 멀리 달아나 산골
에 파묻혀 살 수도 있었다. 그들은 남쪽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도 되었고 북쪽
의 준령으로 깊이 들어가 화전을 갈아먹어도 되었다. 옛말에 나오는 것처럼 삼간초가를
짓고 귀틀집을 짓고 나무하고 길쌈하고 덫을 놓고 약초 캐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도 낳고
그들을 기르면서 두 부부는 어슷비슷하게 늙어간다. 그러나 여환은 자신이 달아날 곳이 없
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온 천지에 백성들의 설움이 덮여 있거늘 어떻게 미륵님의 손길을 벗
어나겠는가. 미륵님은 한 손은 펴서 가슴에 대고 다른손은 바깥쪽으로 벌리고 있나니 온
세상의 고통과 설움을 다 내게 주면 내가 받겠다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에게 무한하고 큰
자비를 돌려 주겠다는 뜻이다. 그는 달아날 것이 없었다. 의금부의 혹독한 형벌을 견디고
공초의 줄기를 자신이 세워나가야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게 되는 셈이었다.
"우리 합환목이 되어요. 그러면 마른 바람도 그치고 원추리꽃 핀 들이 될 거예요." 원향이
여환의 목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말하였다.
"후생을 기약하자더니...."
"싫어요. 축생도에 떨어질지라도 내 살로 빚어 사람이 된 것처럼.... 지금은 사람으로 겪고
나서 이다음에 또 달리 되겠어요. 벌레도 자웅과 음양이 있으니 여기는 아직 이승인 까닭이
지요. 사음계는 없어요."
원향은 일어나서 쪼그려앉더니 그에게 다가앉으며 말하였다.
"이제 초례를 치르게 해주셔요."
여환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 원향의 옷을 벗겼다. 두 사람은 누워서도 서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끌어안고 있었으며, 원향이가 느낌으로 알아 몸을 열고 여환을 끌어들였다. 그
들의 등뒤에 갑자기 후생의 적막하고 가없은 길이 사라졌고 다만 대지가 생생하게 두 사람
의 육신을 둘러싸는 것이었다. 원향은 여환의 등뒤로 올린 두 손으로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
렸다.
"우리 예토에 남아요."
시동의 형 시금이는 혈당들의 은신처를 관군에게 일일이 안내하고 나서 여환과 원향이 피
하여 있음직한 굿터를 실토하였다. 황회 정원태 정호명 정만일 이말립 등은 잡혔고 시금은
관군 한 오를 이끌고 감악산 아래 움막으로 갔다. 원향과 여환은 관군이 오기 직전에 세수
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손가락 사이로 부서져 흘러내리는 개울물은 죽음의 반대쪽에 있는
무엇이었으나 그들은 이제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관군들은 잔뜩 긴장해서
숲 사이로 몸을 숨기며 다가섰고 일시에 왁 덤벼들었지만 두 사람은 놀라기는커녕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칠월 스무하룻날이었다. 여환과 원향은 원하던 대로 나란히
포승에 묶이었다. 며칠 동안을 매를 맞고 온 가족이 역적죄를 면할 수 없다는 절망에 시달
리던 시금이는 자진할 기회만 보고 있었다.
시금이는 원향과 여환을 관군에게 넘겨주던 날, 시내비골 사람들이 풀숲에 감춰둔 환도나
병장기들을 찾아낸다고 앞장을 섰다. 그리고는 군졸들이 무기를 찾느라고 논밭과 잡초속을
뒤지는 사이에 소나무 가지에다 허리끈을 매어 자결하였다.
수태사에서는 이정명과 정대성과 김승운의 도피를 통하여 양주가 결딴났다는 걸 알았다.
길산은 시동이와 영길이가 잡혔다는 사실이며 그들이 일찍이 파주에 연결됐었다는 말을 듣
자 즉시로 대성법주와 하직하여 파주로 향하였다. 강말득이 여환의 일행을 백악산에서 만나
외응 병력은 안 온다고 알렸을 때 중길이네 살주계 식구들은 일단 혜음령을 떠났던 것이다
혜음령서 양주까지는 지척이고 무엇보다도 최영길의 입이 어떠할지 믿을 수가 없어, 살주계
에서는 예전에 몇 년간 터를 잡았던 오봉 어름으로 피신하였다.
장길산은 성흥이와 말득이 두 아우를 데리고 삭녕과 연천 사이에 흐르는 징파강 시욱진에
서 나룻배를 탔다. 대탄을 지나 빠르고 거센 한탄강 물을 타고 파주 문산포에는 밤중에 당
도하였다. 이경순네 여각은 일찍이 강말득이 여러번 내왕한 적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
었다. 사방에는 풀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만 가득한데 경순네 주막의 객점을 알리는 등롱
불빛만이 장목 끝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길산은 전에 원정사 오진암 법회 때에 스스로 결심한 바를 돌이켜 생각하였다. 여환이 그
에게 묘옥은 이경순의 아내가 되어 있다는 얘기를 전했을 때, 이경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
면 그는 저들의 삶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고 작심했던 것이다. 그것은 묘옥에
대한 정한이 남아서는 아니었다. 그가 온갖 편력 끝에 봉순이의 남편이자 수복이의 아비가
되었듯이, 그는 이경순의 파가출향을 가슴아프게 여겼고 묘옥과 경순의 인연을 그 어느것보
다 귀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길산은 여염에 사는 경순과 묘옥 부부가 이러한 풍운에 휩싸이
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길산은 이경순만을 일념으로 바라고 파주까지 왔으나 그 집의
불빛을 보자 갑자기 저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묘옥이 바로 저기에 있다
하는 생각이 지나가자마자 그는 두려운 듯 우뚝 발을 멈추었다. 길산은 마지막으로 떠나오
던 재인말 까막내의 물소리 가운데서 묘옥이 먼 데서 자기를 부르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
려오는 것만 같았다. 해주감영 옥의 통나무 칸살 사이로 하염없이 나부끼던 눈송이들, 그리
고 수복 어미 봉순이의 잔잔하고 슬픈 눈길이며, 그 두 사람에 겹쳐서 재인말의 새벽 안개
가 떠올랐다. 묘옥은 거뭇한 자태로 들판 끝에 박힌 듯 서서 오랫동안 길산네 행중의 열 뒤
를 쫓아왔었다.
"성님, 왜 그러슈?"
곁에 따라 걷던 선흥이가 앞장서 가다가 멈춰서면서 물었다.
"응.... 아니다."
선흥이 아무리 무뚝뚝하고 덤덤한 성미라 하여도 눈치는 있어서 제 형의 마음을 짚는다고
한마디 하였다.
"거 대답이 아주 이상허우. 수복이 생각이 나슈? 이제 한 댓새 되었는데." 길산은 은근히
짜증이 일어났다. 그는 오히려 다른 식으로 자신의 순간적인 감회를 떨어버렸다.
"이런 집에 들어가러면 어떻게 할지 잘 알지? 마실 나온 게 아니다." 세 사람은 어둠속에
잠깐 서 있었다. 강말득이가 허리춤에서 자고를 꺼내어 쥐더니 그들에게 말하였다.
"성님들 여기 잠깐 계시우. 나는 뒷담을 넘어 들어갈 터이니." "나두 같이 가자. 나는 삽짝
으로 하여 앞으루 들어갈 테니까." 성흥이도 긴 저고리 안의 겨드랑이에 차고 있던 엄파를
꺼내 쥐면서 나섰다. 피하고 쫓는 짓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그들 녹림당인지라 만약의 경
우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말득이는 경순네 집 뒤로 돌아갔고 선흥이는 엄파를 장딴지 옆에
늘어뜨리고 천천히 문 앞으로 걸어갔다. 길산은 팔짱을 끼고 멀찍이 서서 기다렸다. 선흥이
가 안으로 사라졌다. 말득이가 토담을 가볍게 뛰어넘자마자 그의 등뒤에 날카로운 것이 꾹
찔러왔다.
"꿈쩍 마라!"
말득이는 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땅 위로 납작 엎드리면서 한 발을 상대편의
두 다기 사이에 질러 넣어 딴죽을 걸었다. 그의 몸이 말득에게로 넘어져 오는 것을 그대로
껴안고 한바퀴 돌아 비수 가진 팔을 한 손으로 누르고 자고를 들어 내리찍으려는데 뒷전에
서 불빛이 훤하게 비춰졌다.
"강서방...."
하는데 돌아보니 외팔이 전생이가 머리 위로 등불을 잔뜩 치켜들고 있었다. 말득이가 상대
를 내려다보니 장쇠였다.
"말득이 아저씨, 나유 나."
장쇠가 버르적거리며 중얼대었다. 그들은 툭툭 털며 일어났다. 전생이와 장쇠는 기찰이 올
까 하여 집의 앞뒤를 파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생이가 말하였다.
"벌써 문간에 척 들어설 적에 선흥이 성님인줄 알았지." 그들은 안채로 들어갔고 장쇠가
밖으로 나가서 길산이를 불러들였다. 이경순은 이런 작은 소란을 알고 미리 툇마루에 나와
서 있었는데, 장약을 잰 화승총 두 자루를 하나는 마루 끝에 두고 또 하나는 두손에 쥐고
있었다. 누구든지 삽짝으로 들어서자마자 미간을 쏘아 넘어뜨릴 작정이던 것이다. 묘옥은 여
문이를 안고 안방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어요?"
"손님들이 오셨군."
하는데 그들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전생이가 경순에게 알렸다.
"자비령 식구들입니다."
"평안하셨습니까."
허리를 굽신하는 것을 보니 강선흥이었다. 그 뒤로 강말득이가 따라왔고 이어서 장길산이
안마당으로 들어와 주춤, 멈추었다.
경순은 거의 본능적으로 아내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얼른 신을 꿰며 나섰다.
"장두령."
길산도 마주 나와서 이경순과 두 손을 잡았다.
"양주 소식은 들었습니다."
"예, 여환스님과 향도들은 거의 잡힌 모양입니다."
묘옥은 전생이가 자비령 식구들이 왔다고 할 적에 조바심 같은 느낌이 스치더니, 어둠 가
운데 그의 자태가 나타나자마자 그가 바로 길산이란 것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묘옥은 경순
이 자기에게 한번 눈길을 던지는 것을 알았고, 길산의 얼굴은 그늘에 덮여서 시꺼멓게 보였
으나 느낌으로 그가 자기를 바라보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묘옥은 길산과 남편이 함께 사
랑 쪽으로 가까이 오자 얼른 자리를 피하여 안방으로 들어섰다. 묘옥은 여문이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방문 곁에 앉았다. 사내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 가운데 길산의 음성은 따로이 분
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묘옥은 차츰 가라앉고 냉정해지고 있었다.
"살주계의 영길이란 아이가 날짜를 바꾼다는 통문을 가지고 왔을 제야 나는 사정을 자세히
들었소. 내가 먼저 알았다면 여환당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말했을 거요. 해서 군사를 기다려
보았지만 오박수 일행은 송도에도 연락하지 않았답니다." 이경순이 말하자 길산은 덧붙였
다.
"대저 이런 일에 과욕은 금물이올시다. 나도 대성법주에게서 들어 알았으나, 신서라든가 천
변대우의 낭자한 유언은 너무 지나쳤지요. 그런 방법으로 동원이 이루어진다 하여도 백성을
속여서는 오래 못 갑니다. 차라리 양주목을 들이치고 양곡 나누어 먹는 일부터 시작했더라
면 기찰을 빨리 시작되겠지만 널리 호응을 받을 수 있었을 겝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시렵
니까. 여환당과 황거사는 파주와의 연계를 너무도 잘 알지 않습니까?" "예, 그러하오마는
내가 지금 피하여 또 어디로 가서 이러한 여염의 터전을 잡겠소. 나는 그 사람들이 대장
부라는 것을 믿습니다. 이 골에도 미륵 향도가 많았고 안사람은 보살이었지만 여기서 그런
일로 발고할 자는 없을 것이오. 되어가는 대로 기다려볼밖에요." "안됩니다. 혹시 그러실
듯하여 우리가 여기 온 거요." 길산은 잘라서 말하였다.
"사람의 일은 모릅니다. 비록 여환당과 황거사가 스스로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라 하여도,
그들이 어느결에 입을 열게 될지도 모르고 그 누구보다도 우선 살주계 사람들의 왕래가 있
었지요?"
"중길이네 식구나 영길이란 아이가 자주 왕래하였소." "유유상종이라, 살주계는 뜻은 같으
나 이도장과는 패가 다르니 그 사람들 저희 무리가 급해지면 이곳 파주와 바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신의 이전에 그들 식구의 당연한 노릇이 될 겝니다."
이경순은 곰방대를 빨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러면 어디로 피한단 말이오?"
"송도 박좌장께로 가시면 됩니다. 거기라면 안전할 뿐 아니라, 이곳의 형편도 소상하게 들
을 수가 있겠지요. 지체할 때가 아닙니다."
이경순이 침묵하고 있더니 전생이가 길산을 거들어서 말하였다.
"두령님 말씀이 맞아요. 집은 장쇠와 제게 맡기시고 성님께서는 아주머니 모시구 피하십시
오. 저희들이야 관군이 온다 하더라도 달아날 재간도 있고, 홀가분합니다. 또 이쪽의 동정을
살필 사람이 남아야 하니까요."
경순은 곰방대를 물고서 빨리 결정짓지 못하고 앉았더니 뒤늦게 길산에게 치사하였다.
"우리 걱정을 하여 금화서 그 먼길을 달려오셨구려." "어이구 우리 성님의 재촉이 어찌나
바쁘던지...."
또 선흥이가 눈치없이 말하였다. 길산은 그냥 말을 흐렸다.
"파주가 드러나면 또한 송도가 위태롭겠기에...."
그때 밖에서 기침소리가 들리니 경순은 미닫이에다 대고 물었다.
"밖에 당신 있소?"
"예, 손님들 저녁은 어떻게 하실지요."
"어찌하긴 어서 바삐 지어 들여오우."
묘옥이 예 하고 물러가려는 기색인데 경순은 미닫이를 열었다.
"여보, 잠깐 게 있소."
하면서 그는 길산이보다는 선흥이 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내외할 손들도 아니고 친척지간인 셈이니 우리 내자 인사나 받으시우. 여보, 자비령 식구
들이오."
선흥이와 말득이는 차례로 꾸벅 반절을 올리고 길산이도 그들 뒷전에서 시늉을 따르는데
묘옥은 몸둘 바를 모르다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마주 인사하였다. 강선흥이가 소금
장사 행상 중에 부처고개서 만난 적이 있으나 아는 체도 못하고 우물쭈물해버렸고, 길산은
방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묘옥은 얼른 뒤로 물러서며 방 앞을 떠나는데 길산이 경순에게 말
하였다.
"지척이 송도인데 거기 가서 푸근히 쉴 요량하고.... 어서 떠나십시다." 길산이 자꾸만 재
촉하여 경순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묘옥에게 일렀다.
"송도에 며칠 다녀올 것이니 여문이 업고 나오게."
묘옥은 때가 때인만큼 얼른 남편의 말을 알아듣고 여문이를 등에 업고 한편으로는 옷가지
를 대충 꾸려서 봇짐을 만들었고, 이경순은 돈 오십여 냥과 무명 몇필을 꾸려서 행자를 준
비하였다. 길산은 휑하니 먼저 나서서 전생이에게 이르고 있었다.
"예서 보아하니 관군이 온다면 그 길은 저쪽 파주 읍내 쪽이 될 것이다. 뒤쪽이야 임진강
이라 누가 오겠느냐. 여차직하면 강을 건너 송도로 내빼 오너라. 며칠 동안 기다려봐서 괜찮
을 듯싶으면 장쇠를 내보내 관가의 동정을 잘 살피도록 하고." "염려놓으십시오. 뒷일은 저
희가 다 알아 하겠습니다." 길산과 말득이는 저만치 앞장서서 가버리고 강선흥은 마다하
는 이경순의 짐을 빼앗아 졌다. 묘옥은 경순의 곁에 그의 걸음을 따라서 부지런히 발을 놀
렸다. 먼발치 앞에 길산의 거뭇한 자태가 보였고 그것은 이제 여느 행인의 모습과 다를 바
가 없었다. 묘옥의 등뒤에서는 여문이가 가녀리게 내쉬는 숨소리와 심장 뛰는 느낌이 전해
지고 있었다.
수태사에는 십여 명의 승도가 있을 뿐이었고 대성법주는 아직 절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스무여드레에 가평 현등사 있던 옥여가 급히 달려왔고, 남한산성 쪽에서는 번군관승을 하고
있던 묘정이 혼자 왔다. 수태사에서는 이미 피해 와 있던 김승운과 정대성 이정명이 있었고
전성달은 흥성산에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대성법주는 옥여와 묘정을 자기 방으로 따로 불
러서 일의 실패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니 지금 어떤 이가 잡히고 어떤 쪽이 무사한지 전혀 알 수가 없소이다. 여환과 황회
가 잡혀간 것을 분명하오."
대성법주의 말에 옥여가 의견을 내었다.
"저들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만, 관의 추심에 대하여는 순전히 미륵도의 포교만을
내세워야 할 게요. 이러한 모역에 관하여는 몇몇 사람들밖에는 모르겠지요. 이런 방도가 있
습니다. 누군가 그들과 함께 잡혀가서 여환당과 그 몇몇 사람이 요술과 천변을 일으키는 영
이한 재주로 궁궐 번복을 위한 기도를 올렸고, 일반 백성들은 다만 우망하여 신병이나 고칠
요량으로 그를 믿었을 뿐이라고, 국문을 받도록 넌지시 일러주는 것이오." 대성법주가 되물
었다.
"그 일을 누가 한단 말이오?"
"물론 목숨을 거는 일이겠으나 우리 일을 모르는 자로서 유배형이나 받을 만한 이가 좋겠
지요."
묘정이 옥여와 대성법주에게 말하였다.
"글쎄.... 그럴 만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도 또한 우리 같은 불제자입니다." "그게 누
구요?"
"흥성산 장군사의 법호라는 승려지요. 그는 일찍이 달마산에서 심백과 더불어 명화적의 군
사 노릇을 했었지요. 삼백, 여환과 나는 해주 수양산에서 보경선사의 한문하 도반이었습니
다."
"나두 들었소. 우리 구월산 잔민들이 장군사에 의탁하였다구 그러더군. 하지만 어찌 그를
믿겠소?"
묘정은 눈자위가 붉어지면서 말을 이었다.
"심백은 악업으로 몸을 망치고 풍이 들어 누워 있어 법호의 구완을 받고 있소이다. 우리가
그를 맡기로 하고 법호에게 청한다면 그는 응낙할 것이오. 그들 두 사람에게는 상린의 정이
깊어 우리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묘정당이 수고 좀 해주시려오?"
옥여가 당부하였고 묘정은 대답으로 합장하였다.
"예, 그것은 어렵지 않으나, 남들을 사지에 보내고 우리는 무력하게 남아 있으니.... 그것이
한가지 여한이올시다."
옥여는 아무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였다.
"여환은 묘정당과 도반이라지만 나하고는 형제 사이가 됩니다. 우리가 큰스님들을 모시고
이 땅에 불국토를 세우고자 온갖 업을 지었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소이다. 모든 연을
끊고 서방정토에 열반 성불할 길은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용화세상
을 이 땅에 준비하리라 서원 발심하였고 정토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제 제석천의 부하들이고 아수라와 싸우다가 지옥에 떨어져야만 합니다. 나는 여환과 그의
아내 용녀를 잘 압니다. 그들의 인연과 전생 업을 짐작합니다. 저들이 비록 실패했다고는 하
나 근기 일대에는 미륵에 대한 소원이 쉽사리 마르지 않을 거외다. 우리는 그 일을 이어나
가야 합니다."
"제가 흥성산에 가지요."
옥여와 묘정 말을 듣고 있던 대성법주가 말하였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삭녕 상좌를 맡아보던 구월산 잔민 중의 정성달이란 재인입니다.
그가 지금 이곳에 피신하여 있습니다. 이 사람이 혼자 연계되었음을 밝히지 않으면 조정에
서는 강원 해서 양도의 병력 동원 문제에 대하여 끝까지 의심을 풀지 않을 것이오. 전상좌
는 이미 스스로 자수하여 자기가 지어낸 말이라고 자복할 결심을 했소이다. 묘정당은 전상
좌와 함께 흥성산으로 가서 법호를 만나도록 하시지요." 옥여가 물었다.
"법주당은 어쩌려우?"
법주는 껄껄 웃었다.
"나는 여기에 있을 겁니다. 관군이 오면 나 혼자서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오지 않을 거요. 수태사는 앞으로 근기 일대를 넘겨다보는 승병의 도량이오." 묘정은 전성
달을 데리고 흥성산으로 갔고, 그로부터 이틀 뒤에 법호는 청송에 나타나 괴이한 말로 설법
을 하다가 기찰 군관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전성달은 팔월 초닷샛날에 삭녕 관가에 자수하
였다.
대강 잡을 사람들은 잡힌 것으로 판단한 각 고을의 수령들은 죄수들을 일단 양주목에 모았
다가 그날로 한양의 금부로 압송하였으니 민심이 바야흐로 흉흉했던 까닭이다. 이제부터는
지방의 군졸들이 아니라 금부의 나장과 도사들이 여러 골을 샅샅이 수색하고 돌아다녔다.
어느 동네는 논밭의 작물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온 식구 솔가하여 난피한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때를 만났다고 대전리에 갔던 자들을 골라내어 사사로이 형벌을 내리는 지주들도 있었
다.
의금부에서 들어온 장계와 양주목과 금부가 주고받은 문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대신 금부당상 병명초 좌의정 조사석 빈청 출석. 조사중에 양주목사 최규서가 중군 최문징
편으로 일봉문서를 영의정에게 보내왔음. 신 김수흥이 뜯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나 병
중이라 아뢰지 못하고 문서만을 보내 아뢰라 하옵기 그 여러 사람의 조서내용을 살피니 흉
모정상이 극히 방자하여 요망하였음. 본주에 사는 죄인들을 도사를 파송하여 서울 옥으로
압송한 뒤에 의법 국문하도록 통첩함.
동일 양주에서 잡은 죄인 여환 원향 김돌손 김시동 황회 최영길 이응남 방의천 오계원 임
기동 이원명 계화 법호 방승남 등 십사 명을 잡기 위하여 도사 십사 명을 본주에 파견하여
구류된 사람들은 결말을 기다릴 것이며 잡힌 자들의 전후 추안이 본주에 있는 자는 수취견
봉하여 위로 올리도록 할 것. 동일 양주목사의 보고에 영평 죄인 황회 등을 잡아 옮긴 일과
전성달 등을 엄포한 건을 비밀히 보고하여왔으며 요즈음, 흉언이 빈발하여 사태가 비상하므
로 부득이 전말 사정을 보고하고 대명함.
지난 십팔일 삭녕군수의 비첨에 본주 청송 대탄 근처에 자칭 성인이라는 요사한 자가 있어
화복을 논하며 우민들을 유혹하여 불온한 도당을 모은다는 설이 있어 미덥지 못한 점이 있
으나 이들을 빨리 엄포 처결해야 함. 곧 군관 관리들을 파견하여 비밀리에 내사한 결과 오
십노동 김돌손의 집 근처에 이삼 명의 무녀가 있는데 자칭 성무라 하여 조화가 막측하다고
함. 돌손에게 물어볼 일이 있다고 관가로 유인하여 잡아 가둔 뒤에 중과 그 처를 독촉하려
하였으니 그들이 다 달아나고 없으므로 돌손의 아들 시금으로 그들의 은신처를 안내받아 요
승 여환과 그 처 양녀 원향을 촉래함. 그들이 간사한 말로 대중을 유혹한 것을 심문한 뒤
엄히 가두었다가 도당을 필포한 뒤에 사노 최영길을 포득하여 문초한즉, 전문 이백오십여
냥으로 중 여환이 원향의 치장물과 전복 전립 장검 등물을 구입하였으며 오십노동 촌민들이
소를 팔아서 칼을 사들였다 함. 관원을 파견하였으나 군장 무기 등은 사들인 지가 오래되어
장익의 우려가 있으며, 새로 지은 전복 칠팔 건과 새로 만든 전립 오륙 건과 장검 등을 초
중에 심장하여 한 건도 수득하지 못하였음. 장검을 찾을 제 관원들이 황당한 중을 잡았음.
양주목사 보고에 의하면 여환 황회 등이 실토를 아니하다가 법호의 흉언 정상이 드러나자
자복하기 시작함.
죄수들은 일간 심문을 정지하여 일각도 지체하기 말고 위로 아뢰어 조정의 처결을 기다릴
것임.
영이 엄하여 죄인들이 스스로 놀라 달아난 것은 목사의 처사가 불비한 실수임.
죄인 양녀 원향의 조서 내용은 간사하고 흉악한 것과 모흉 정상이 해괴하여 차마 원장에
적을 수 없으니 별지에 등서할 것.
요언망설이 우민들을 경혹시킬 만한 것이 있어 해서가 그들의 은거지로 전성달 및 오계준
이란 자를 수포하기 전에는 걱정거리가 되니 비밀리에 체포할 것. 이 사건이 여환 황회가
주장한 요언 때문이라 그 행적이 대단하지 않아서 크게 염려할 바는 없고, 적이 먼저 실토
하기 전에 상달하여 천총을 경동시키는 것은 송구한 노릇임.
모역한 것이 적실하므로 대명률 모반대역조에 의거하여 모반자 및 그 공모자는 수종을 불
문하고 능지처참하며 부자간 연 십육세 이상은 모두 교살하고 십오세 이하 및 모녀처첩 형
제자매 그 자식의 처첩은 공신가의 노속으로 하고, 재산은 관가 소유하고 남부 팔십세 및
병든 부인 육십세와 폐질자는 연좌죄를 면하며 백숙부 형제의 자식은 적의 동이를 막론하고
삼천 리 밖에 의리안치하고, 연좌의 사람으로 비동거자의 재산은 관가의 소유로 아니하며
만약 여자가 허혼의 처지라도 미거례의 자는 추좌하지 않는다.
원악, 승려 여환, 거사 황회, 무녀 원향, 무녀 계화, 거사 정원태.
동악, 어영아병 김시동, 농부 이원명, 면주인 정호명, 농부 정만일, 노 최영길, 이말립.
요술숭신 및 그 도당, 농민 김시금, 행상 김돌손, 유민 전성달, 농민 이응남, 임기동, 방승
남, 방의천, 오계원, 행상 주대천, 농민 송계망, 조한욱, 노검송, 농민 이유선, 이두완, 허총,
응사 백성완, 농민 김천선, 머슴 임기읍, 형방 전시우, 예방 허시만, 봉수꾼 이응화, 부농 이
철신, 도훈도 정영, 행상 민호길, 농민 이득견, 이득내.
미체포, 행상 오경립, 박수 김승운, 기병 정대성, 농민 이정명, 방귀선, 박수 오계준, 행상
조무인, 상인 이시흥.
무진 팔월 십일일에 좌의정 조사석이 죄인들을 인견입시하여 국가의 불행한 흉역의 변이
의외로 돌발하였다고, 원악거괴가 이미 복죄하였으며 기타 시수된 죄인들인즉 요숭의 망설
에 유혹된 탓으로 조서에도 별로 역모에 가담한 흔적이 없으나, 성상께서 대단히 염려가 많
았으므로 죄인들을 차례로 상의정죄할 것이라 하였음.
금부에 수재한 죄인들은 형조에 이송 처결토록 할 것이며 그중 전성달인즉 여환의 진술에
의하면 역모의 실상은 모른다 하니 엄하게 추궁하고, 모두 형조로 넘겨 의법 처단할 것. 법
호는 금부에서 처단할 것이며 외방 죄인들은 각기 본도에서 처단할 것.
상께서 이르시되, 금부도사 장계에 의하면 촌민들이 죄의 유무를 막론하고 도산하여 촌락
이 텅 비었다고 하니 심히 민망하다 하시고, 백성들에 대한 남형의 폐단을 염려하시는 뜻을
이르시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요술을 숭신하였을 뿐 역모에 참여한 것은 아니어서 무의식중
에 중죄에 빠진 것이니 매우 측은하다 하시었음.
형조로 넘긴 죄인들은 요술숭신죄로 장 백 도 삼천 리 유배에 처결하고, 수죄인은 처단할
것.
관에 고변한자, 포획한 자는 상금을 지급하고, 법호는 모역동참의 흔적은 없으나 적의 정상
을 알고도 관에 불고지한 죄로 의법 처단한다.
전성달 허시만 이철신 민호길 이득견 이득내 방의천 방승남 오계원 이응남 임기동 이유선
이두완 허총 백성완 김천선 임기읍 등은 성교에 의하여 형조에 이송한다.
참수당한 자들은 종루저자의 네거리를 베고 누워 오갈 데 없이 떠도는 원혼이 되었고, 살
아 유배당한 자들은 먼 낯선 사운데 남아 덧없이 스러졌다. 그들은 끝간 데 없는 서녘 하늘
을 바라보며 바람으로 더불어 노래하였으니, 정든 님 본판은 남이련마는
어이 그다지고 유정탄 말이냐
생각 사사로 세월 가는 것
아연하여 나 어이할거나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저 달이 솟누나
생각을 하니 세월 가는 것
아연하여 나 어이할까, 창망하구나 저 구름 속에
벗들의 소식은 돈절이로다
생각 사사로 세월 가는 것
아연하여 나 어쩌란 말가
청포도 늘어진 가지
덩그라니 매달린 멀구 다래
못 따먹는 사람에
심산들 좀 여북하며
가버린 님 그리는 사람에
심산들 좀 여북탄 말인가
사사로 님의 얼굴이
그리워 나 어이할까나
아 하 이리 가도 십 리요
저리 가도 십 리라
십 리 밖에서 님을 만나
님의 손은 내가 잡고
나의 손은 님이 잡고
님이 울면은 내가 울고
내가 울면은 님이 우니
이대로 갈린 길이라
죽어진들 영 이별하랴
님아 님아 우지 마라
너무 울면 정 떠나간다.
-10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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