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안영 편-제2회: 지혜로 새 군주를 보좌하다
제2회 지혜로 새 군주를 보좌하다
최저와 대부 경봉이 서로 물고 뜯으면서 추태를 보이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안영은 초(楚)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제 나라의 존엄을 찾아 귀국 후 경공에 의해 제 나라 재상인 상국(相國)이 되었다. 하지만 경공도 장공과 마찬가지로 과거 천하를 제패하던 제 나라의 위풍을 되찾기도 싶고 즐거움도 누리고 싶어하면서 백성의 질고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경공이 안영에게 물었다.
“지금 백성들이 잘 사는가?”
“의족이 아주 비싸고 신발이 아주 쌉니다.”
경공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안영은 경공을 안내해서 시찰을 나갔다. 그들이 임치 시장의 한 신발가게에 들어서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의족을 사느라 분주했고 신발은 들여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 놀란 경공이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가게 주인이 슬픈 어조로 대답했다.
“포악하신 우리 군주께서 걸핏하면 무슨 월형(刖刑)인가를 내리셔서 발목이 잘린 백성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발이 없는 사람들이 의족을 써야 살아 갈 수 있으이 신발대신 의족이 잘 팔릴 수밖에요.”
경공은 풀이 죽어 궁궐로 돌아왔다. 안영은 이 때다 싶어 간언했다.
“선 군주께서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우선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백성의 이익을 지켜주고 백성들이 잘 살게 해야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국력이 증진되며 그래야…”
“그만 하시오. 잘 알겠소. 이제부터 선 군주를 따라 배우겠소.”
안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공이 대꾸했다. 하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에 옮기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임치에 기근이 들어 안영이 식량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자고 하자 경공이 거절했다.
“안 되오. 관경대(觀景臺)를 축조해야 돼서 그 쌀은 노무자들에게 먹여야 하오.”
안영은 일단 자신의 식량창고를 열어 이재민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방법을 대서 관경대 축조에 이재민들을 우선 채용했다. 그는 또 멀리 가서 흙을 가져오도록 하여 최대한 관경대 축조시간을 연기함으로써 관경대가 완공될 무렵 이재민들도 무사하게 기근을 넘기도록 했다.
관경대가 축조되자 경공은 미녀들을 거느리고 단에 올라 7일 낮과 밤을 이어 잔치를 벌였다. 충신인 현장(弦章)이 죽음을 무릅쓰고 단에 올라 간언했다.
“이레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그만 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소신은 군주께서 주색에 빠져 옥체를 해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사오니 그만 하지 않으시려면 먼저 소신을 죽여주십시오!”
경공이 안영에게 말했다.
“현장이 감히 나의 음주를 막다니?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들으면 천지가 전도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충신을 죽일 수도 없고.”
그러자 안영이 현장에게 말했다.
“현장, 당신은 현명한 군주를 만났소. 만약 여기가 녹대(鹿臺)이고 당신의 군주가 포악한 주왕(紂王)이었다면 아마도 당신의 머리는 벌써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오.”
경공은 ‘녹대’니 ‘주왕’이니 하는 단어를 듣자 느낀 바가 있는지 소리 없이 관경대를 떠났다. 경공이 궁궐로 돌아오자 마구간의 한 관리가 달려와 보고했다.
“소신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붉은 말갈기의 준마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경공이 대로해서 외쳤다.
“그 말이 내가 가장 아끼는 말인 줄 몰랐느냐? 그 준마를 죽게 하다니! 여봐라, 저 자를 끌어 내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
시종들이 마구간 관리를 끌어내려고 하는데 안영이 나섰다.
“대왕께 아룁니다. 요순(堯舜)을 배우시겠습니까? 요순이 생체를 해부할 때 어느 부위부터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안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는 경공이 말했다.
“사지를 찢지 말고 형관처(刑官處)에 보내 사형에 처하게 하거라.”
그러자 안영이 또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확실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고 죽게 해야 합니다. 제가 그의 죄를 조목조목 말해주겠습니다!”
그리고 안영은 마구간의 관리를 향해 돌아서서 말을 이었다.
“군주께서 말을 사육하라고 하셨는데 말을 죽게 한 것이 첫 번째 죄이고, 군주께서 가장 아끼시는 준마의 목숨이 너보다 더 귀중한 줄 모른 것이 두 번째 죄이며, 네가 말을 죽였기 때문에 군주께서 하는 수 없이 살인을 하시고 이로부터 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악명을 가지게 되어 백성들의 원한을 사고 인국의 멸시를 당하게 한 것이 세 번째 죄이다. 너의 죄를 알겠느냐?”
안영의 말에 경공이 탄식했다.
“그를 풀어주거라. 그로 인해 나의 어진 명성을 더럽히게 할 수는 없다.”
안영은 자신의 지혜로 또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이 때 머나먼 진(晉) 나라의 군주가 장공이 암암리에 난영을 도와 주려 한 사실을 알았다. 화가 난 진 나라 평공(平公)은 줄곧 제 나라를 예의주시했다. 평공은 제 나라 장공이 시해를 당한지 몇 년이 지났고 그 뒤를 이은 경공도 향락에 빠지고 제 나라 귀족들도 취생몽사(醉生夢死)하며 백성들의 생활이 전에 비해 훨씬 못해진 것을 알고 동맹군을 거느리고 제 나라를 공격하려 했다. 평공은 먼저 제 나라 대부 범소(范昭)를 제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제 나라의 실제 상황을 알아오게 했다.
경공이 잔치를 차려 진 나라에서 온 귀빈을 환대했다. 술이 몇 순배 돌아 취기가 오르자 범소가 경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술 한 잔 더 주시지요.”
경공이 자신의 술잔을 내주며 시종에게 말했다.
“술을 따라 손님에게 드려라.”
시종이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주자 범소는 술잔을 받아 한 모금에 비우고 술잔을 다시 경공의 앞에 놓았다. 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안영이 범소의 생각을 알고 시종에게 말했다.
“그 술잔을 내가고 군주께 새 잔을 올리거라.”
시종이 안영의 뜻을 알고 즉시 새 술잔을 경공의 앞에 놓았다. 주례(周禮)의하면 군신의 품계는 아주 엄격하고 군주와 신하가 사용하는 주기(酒器)도 전혀 달랐다. 범소가 경공의 술잔으로 술을 마신 것은 주례에 어긋나는 행위였고 경공을 멸시하는 것으로서 경공에게는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범소는 경공의 반응을 보고자 의도적으로 이렇게 했다. 경공이 제 나라가 진 나라의 속국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보고자 한 것이다. 안영은 범소의 이 사악한 마음을 읽고 보완 조치를 취해서 경공의 존엄을 지켰던 것이다.
진 나라로 돌아간 범소가 평공에게 보고했다.
“지금은 제 나라를 정벌할 때가 아닙니다. 제 나라에 안영과 같은 현명한 신하가 있기에 제 나라를 공격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곁에서 제 나라 잔치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들은 대부 사광(師曠)이 탄식했다.
“자신의 백성도 생활고에 시달리는데 멀리 제 나라를 원정하러 간다고? 우리는 안영의 상대가 아닙니다.”
사광의 말을 들은 평공은 제 나라 공격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 “잔칫상을 떠나지 않고 천 리 밖의 일을 해결했다”고 안영을 칭찬했다. 잔치에서 몇 마디 말을 통해 천 리 밖의 적이 군사계획을 포기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뛰어난 외교 활동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절충준조(折衷樽俎)가 유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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