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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안영 편-제4회: 나라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다

一字師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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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안영 편-제4회: 나라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다

 

제4회 나라를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다

제 나라는 국력이 약해져 더는 진 나라와 대항할 수 없게 되었다. 국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제 나라는 혼인을 통해 관계를 강화하려 했다. 진(晉) 나라 군주의 부인이 별세하자 제 나라 경공은 진 나라 군주가 제 나라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도록 하기 위해 급히 안영을 진 나라에 보냈다. 혼인이 성사되어 안영은 진 나라의 초청으로 하객의 예우를 받게 되었다.

진 나라의 대부 숙향(叔向)이 배객으로 안영과 나란히 앉았다. 향기로운 술을 마시고 맛 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두 대부는 머리 아픈 나랏일을 논하기 시작했다.

먼저 숙향이 떠보듯 말했다.

“최근 귀국은 어떻소? 걱정이 많으시겠소.”

안영이 탄식했다.

“그렇소. 지금은 말세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소.”

“다 똑 같소. 나도 말세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먼저 귀국의 상황부터 들읍시다. 어떻소?”

“제 나라는 아무래도 주인이 바뀔 듯 싶소. 군주가 자신의 백성을 모두 진(陳)씨에게 떠넘기고 있소. 모두들 사악한 장사꾼은 큰 되로 받아서 작은 되로 판다고들 하지 않소. 지금 왕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스스로를 죽이는 거나 다름 없소. 하지만 진씨는 이와 정반대로 하고 있소. 그들은 백성들에게 식량을 빌려 주는데 큰 되로 주고 백성들이 식량을 반환하러 가면 작은 되로 받고 있소. 그들이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진씨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소? 지금 왕실이 폭정을 일삼고 가혹하게 세금을 걷어 들여 백성들은 소득의 2/3를 왕실에 내고 남은 1/3로 살아가고 있소. 왕실에는 쌀이 넘쳐나서 곰팡이가 끼고 천이 산처럼 쌓여 좀이 먹지만 백성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소. 두 발을 잘린 백성들이 하도 많아서 시장에서는 신발이 싸고 의족이 비싸게 팔리고 있소. 군주가 이렇게 민심을 얻지 못하니 진씨가 이 기회에 인심을 사려고 백성들의 질고를 헤아리고 백성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고 있소. 백성들은 부모를 공경하듯 진씨를 우러르고 온갖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 진씨를 따르고 있소. 그러니 언젠가는 제 나라의 주인이 진씨로 바뀌지 않겠소?”

안영이 말하는 진씨는 바로 백 년 전 진 나라 여공(厲公)의 아들 진완(陳完)의 자손인 제 나라 권신 진무우(陳無宇)가문을 말한다. 진씨 가문이 받은 땅이 전지(田地)여서 그들은 전씨(田氏)라고도 부른다.

숙향이 안영의 말에 대꾸했다.

“아하, 진(晉) 나라도 그렇소. 말세요 말세. 군주가 전차를 몰 줄 모르고 경(卿)이 군대를 통솔하지 못하며 전차와 지휘에 능한 사람이 없소.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으나 궁궐 안에서는 사치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소. 길가에는 아사자가 있는데 외척은 공이나 제후보다 더 잘 살고 있소. 백성들은 군주의 명령을 원수를 피하듯 피하고 8대 귀족의 자손이 모두 노역자로 전락되며 대권은 새 귀족의 손에 장악되어 백성들이 따를 사람이 없소. 군주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음탕함으로 우환을 덮어 감추고 있소. 진 나라도 곧 주인이 바뀔 것이오.”

안영이 관심조로 물었다.

“그럼 대부는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숙향이 탄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소? 군주와 같은 종족(宗族)은 전부 쇠퇴하고 왕실도 거의 망해가고 있소. 우리 종족만 봐도 원래 11개의 가문이 있었는데 현재는 양설씨(羊舌氏) 가문 하나만 남았소. 나에게는 능력이 좋은 아들 한 명 없고 왕실에는 좋은 법도가 없소. 나만 천수를 다해도 천만다행이오. 어찌 자손까지 바라겠소. ”

안영은 숙향처럼 마냥 비관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말세를 탄식하면서도 조금이라도 그런 상황을 돌려세우려고 애를 썼다. 안영은 노후에 복숭아 2알로 군주를 위협하는 3명의 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함으로써 경공의 우환을 제거했으며 그로부터 교묘한 책략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라는 성어도 전해지게 되었다. 후에 제갈량(諸葛亮)은 안영이 지혜는 뛰어나지만 너무 독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안영은 전씨가 이 세 장군을 장악하면 제 나라의 주인이 반드시 바뀌게 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인 전개강(田開疆)은 원래 전씨 가문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안영은 전씨 가문의 일원인 문무를 겸비한 인재 사마양저(司馬穰苴)를 경공에게 천거했다. 사마양저도 전씨 가문의 일원이지만 출신이 미천하고 군주에 충성하기에 중용할 수 있다고 안영은 판단한 것이다. 과연 안영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사마양저는 대사마(大司馬)가 된 후 군대를 이끌고 제 나라를 침략한 연(燕) 나라 군대를 대파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웠다.

사람들은 안영이 사마양저를 높이 보았기 때문에 계책을 써서 군주를 무시하는 전개강과 공손첩(公孫捷), 고야자(古冶子) 등 세 명의 무장을 제거했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총명한 안영이 무작정 나라를 지키는 장군 세 명이나 죽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영의 노력이 있었기에 제 나라는 몇 십 년 더 존속했다. 물론 이로 인해 제 나라는 재능 있는 군사가 손무(孫武)를 잃기도 했다. 뒷이야기지만 역시 전씨(田氏) 가문의 일원인 손무는 제 나라에서 전씨 가문이 판을 치는 것을 보고 이 나라에 반드시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해 그 화를 피해 스스로 오(吳) 나라로 도주했다.

어진 자는 장수한다는 옛말이 있다. 성격이 활달하고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한 안영은 검소하게 살고 백성을 사랑하며 선비들을 예우하면서 90여세를 넘기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번역/편집: 이선옥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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