逸話傳---人物傳記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노자 편-제1회:거인의 탄생

一字師 2024.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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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노자 편-제1회:거인의 탄생

(사진설명: 노자의 화상)

중국철학의 비조 노자

노자(老子)는 자신을 만나러 온 공자(孔子)를 비판했다. 노자의 일장연설에 공자는 노자 사상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여겨 감탄을 금하지 못했으며 그로부터 사흘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주(周)나라 왕실에 난이 일어나 많은 저서들이 유실되었다. 왕실의 부실한 관리로 많은 문화재가 사라지자 노자는 결연히 관직을 버리고 주 나라의 도읍인 낙읍(洛邑)을 떠났다.

낙읍을 떠난 노자는 소를 타고 가다가 함곡관(函谷關)에 며칠 머무는 동안 유명한 <도덕경(道德經)>을 지었다. 유네스코의 통계에 따르면 198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다국어 문자로 번역 출판된 세계문화저서 중 <도덕경>의 발행부수가 두 번째로 많다.

중국 철학의 비조 노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거인의 탄생

춘추(春秋)시기 초(楚)나라의 이씨(理氏) 여인은 물가에서 빨래하다가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자두를 보았다. 이씨가 자두를 집어서 입에 넣자 자두가 스스로 뱃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이씨는 임신이 되었고 때가 되자 하얀 눈썹에 하얀 머리, 하얀 수염을 가진 갓난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는 태어나자 자두나무를 가리키며 “나는 성이 이(李)가올시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아기에게 노담(老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바로 노자이다. 노자는 출생부터 신비로운 색채를 띠었고 외모도 남달랐다. 그의 신장이 8.8척에 달했다고 하니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바꾸면 2m가 넘는다. 그리고 어른이 된 후 노자의 눈썹은 노랗게 변하고 귀도 커서 두 귓불이 어깨까지 거의 드리웠으며 둥그런 두 눈도 아주 컸다고 한다. 그 뿐이 아니다. 또 이마는 아주 넓고 치아는 성기고 모난 입에 입술이 아주 두꺼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자는 어릴 때부터 무슨 일이든 궁금한 일은 끝까지 캐물었다. 늦은 나이에 득남한 이씨는 어린아이가 노인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 앉아서 생각에만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은 또 노자의 질문에 대답할 능력이 안 되는지라 덕망 높은 스승 상용(商容)을 찾아 노자에게 글을 가르치게 했다. 그때로부터 이씨는 더는 노자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지 않았지만 대신 스승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게 되었다.

스승이 가르쳤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인간이 가장 귀중하고, 뭇 사람들 중에서 왕이 근본이니라”.

노자가 물었다.

“하늘은 무엇입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하늘은 바로 머리 위의 저 맑은 곳이니라.”

노자가 또 물었다.

“맑은 저 곳 위에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

“맑은 저 곳 위는 우주이니라.”

“우주의 위에는 또 무엇입니까?”

“우주의 위에는 맑고 더 맑은 곳이 있느니라.”

“맑고 더 맑아 맑음이 다 하는 그 곳에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

노자의 끝없는 질문에 스승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렇게 마무리했다.

“선현께서 말씀하시지 않았고 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니 이 어리석은 스승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겠구나.”

저녁이 되자 노자는 밤하늘을 쳐다 보며 사색에 잠겼다. 저 하늘의 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하는 그 생각에 노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승이 새로운 지식을 가르쳤다.

“세상만물은 신이 만드셨느니라.”

노자의 물음이 또 시작되었다.

“신은 왜 만물을 만드셨습니까?”

“신은 변화의 능력과 조물의 기능을 가지고 계시느니라.”

“신이 가진 변화의 능력과 조물의 기능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스승은 답을 찾지 못하고 또 얼버무렸다.

“선현께서 말씀하시지 않았고 고서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니 이 어리석은 스승은 뭐라 대답하지 못하겠구나.”

스승이 말했다.

“군주의 출생은 하늘의 뜻이니라. 군주는 신이 보내준 것이니”.

그 말에 노자가 또 물었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왜 신은 성군만 만들지 않고 하(夏)의 걸(桀)왕이나 은(殷)의 주(紂)왕과 같은 폭군을 만들었습니까?”

그 말에 스승은 또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상용은 이씨를 찾아 말했다.

“담이 너무 총명하고 질문도 많아서 이제 나는 더 가르치지 못하겠으니 낙읍(洛邑)으로 보내서 학문을 닦게 하시지요.”

스승을 배웅하고 나서 노자는 주(周) 나라의 도읍인 낙읍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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