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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제세(忍辱濟世)의 여러 가지 설(說)

一字師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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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제세(忍辱濟世)의 여러 가지 설()

인욕수행(忍辱修行)

 

옛날 어느 사찰(寺刹)의 방장 스님이 있었는데 엄격하게 계율(戒律)을 지켜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인근 마을의 한 아가씨가 몰래 정을 통하다 임신(妊娠)해 그만 아들을 낳게 되었다. 아이 아빠는 과거를 보기 위해 멀리 타향으로 떠나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추궁(追窮)에 겁이 난 아가씨는 방장스님이 아이 아빠라며 거짓말을 했다. 방장 스님은 터무니없는 모함(謀陷)임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자신의 결백(潔白)을 주장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주변 백성들은 모두 전에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앞 다퉈 그를 비난(非難)했다. 방장스님은 또 아이를 인계(引繼) 받아 사찰에서 길렀다.

 

수년 후 아이의 진짜 아빠가 과거에 급제(及第)해 고향에 돌아왔고 자식을 찾았다. 방장스님은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친부모에게 돌려보내주었다.

 

백성들은 그제야 오해로 방장스님을 나쁘게 생각했음을 알고는 총애(寵愛)를 받거나 모욕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방장스님의 수련경지(修練境地)에 몹시 탄복했다.

 

인욕수행(忍辱修行)

 

인욕(忍辱)이 무엇인가요? 욕된 일을 당해도 참고, 억울해도 변명하지 않는다는 불가(佛家의 수행법이지요. 옛말에 ‘참을 인(忍), 자(字)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어원은 명확히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인내심(忍耐心)과 참을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됩니다. 일본의 선불교(禪佛敎)를 중흥시킨 ‘백은(白隱, 1685~1768) 선사(禪師)’의 일화에 <인욕이 생명을 살린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백은 선사가 ‘송음사(松蔭寺)’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백은 선사가 기거하던 절 입구 마을의 두부 장수 집 딸이 이웃 사내와 정을 통하여 아기를 갖게 되었지요. 그 사실을 안 딸의 부모는 크게 분노하여 몽둥이를 들고 심하게 추궁(追窮)했습니다.

 

“감히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다니, 어느 놈의 씨를 가졌느냐?” 살기 등등 한 부모님의 추궁에 딸은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청년도 죽고, 자신도 죽고, 뱃속 아기도 죽기 때문이지요.

 

몹시 화가 난 처녀의 부모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라고 딸을 심하게 추궁하였습니다. 딸은 얼떨결에, 윗 절의 ‘백은 스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평소 두부 장수는 백은 선사를 존경했고, 아니 모든 사람이 존경(尊敬)했습니다.

 

부모는 평소 존경했던 스님을 죽일 수는 없었지요. 그대신 스님을 향한 존경의 마음은 사라지고, 분노의 마음이 백은 스님에게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딸이 사내 아기를 낳자 부모는 아기를 안고 스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당신의 아들이니, 당신이 키우시오.” 그러자 스님은 ‘좋다 싫다’ 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아기를 안고 집집을 찾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였고, 똥오줌을 받아주며, 목욕(沐浴)도 시키며 정성껏 키웠습니다.

 

백은 선사는 온갖 욕설(辱說)과 비난을 받으며 젖동냥과 음식 구걸로 아기를 애지중지 잘 키웠습니다. 아기의 진짜 아버지는 대장간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두부 장수 딸과 청년은 결혼하게 되었고,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처녀는 마침내 부모에게 이실직고(以實直告)하였지요.

 

친부인 대장간 청년, 그리고 처녀의 부모들은 처녀를 데리고 백은 선사에게 달려가 전후 사정을 고하고 용서(容恕)를 빌며 아기를 돌려 달라고 간청(懇請)했습니다. 그러자 백은 선사는 순순히 아기를 내어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 그런가?” 백은 선사는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하지도 않고 부정(否定)하지도 않았지요. 단 한마디의 변명이나 꾸중도 없이 단지 ‘아, 그런가?’ 라고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백은 선사는 자신이 결백하였지만, 구차하게 자신을 변명(辨明)하거나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백은 선사의 인욕(忍辱)이 세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그 후로 그의 명성은 일본 전체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욕수행을 잘하려면 어찌하면 좋을까요? 인욕수행은 인내와 겸손을 강화하며, 어려움을 참는데, 중점을 둔 종교적(宗敎的)이거나 철학적인 실천입니다. 우리가 인욕수행을 잘하려면, 몇 가지 고려해야 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 통제와 인내력 강화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감정이나 분노를 통제(統制)하고, 어려운 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지요. 그리고 명상이나 심리적인 수련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타인의 관점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감(共感)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합니다.

 

셋째, 자기 성장과 겸손입니다.

자기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약점(弱點)을 받아들이며,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넷째, 실천과 훈련입니다.

인욕수행은 실천을 통해 강화되므로, 일상생활에서 지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각종 도전에 대해 자주 실천(實踐)하면서 참을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다섯째, 스스로에 대한 이해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理解)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 욕망, 목표 등을 명확히 이해하면 인욕수행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여섯째, 도움을 청하고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자신도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태도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호 협력(相互協力)과 이해를 통해 인욕수행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일곱째, 관용과 사랑의 실천입니다.

타인의 부족과 실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노력합니다. 사랑과 관용(寬容)을 통해 인간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요. 이렇게 인욕수행도 이 일곱 가지 항목을 가지고 훈련하면, 우리도 인욕도인(忍辱道人)이 되어 세세생생 영광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인욕 (忍辱)

 

정의

온갖 모욕을 참고 용서하면서 모든 일에 동요 없이 사물의 본성이 평등 무이(平等無二)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불교수행법.

 

내용

인욕은 참는다는 뜻도 있지만 욕됨을 용서한다는 뜻도 내포(內包)한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기꺼이 받는다는 적극적인 뜻과, 모든 일에 대하여 희로애락(喜怒哀樂)함이 없고 동요됨이 없이 사물의 본성이 평등무이(平等無二)함을 깨닫는다는 해탈에까지 확산된다. 즉, 이 인욕 없이는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이 인욕을 배우는 자는 남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였을 때 마땅히 참고, 마음속에 원수 갚을 마음을 품지 않으며, 자기를 이롭게 하거나 자기를 훼방(毁謗)하거나 칭찬하거나, 또 자기에게 고통을 주거나 안락(安樂)을 주더라도 모든 일을 참고 용서(容恕)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인욕에 대한 분류법(分類法)으로는 2 · 3 · 4 · 5 · 6 · 8 · 10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3인설과 4인설을 가장 널리 채택하고 있다.

 

3인은 내원해인(耐怨害忍) · 안수고인(安受苦忍) · 제찰법인(諦察法印)이다. 이때의 인은 모든 좋고 나쁜 대경(對境)을 향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뜻한다. 내원해인은 원수나 적의 해침을 받고도 복수(復讎)할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고, 안수고인은 질병이나 수재 · 화재 · 폭력의 고통을 달게 받는 것이며, 제찰법인은 진리를 자세히 관찰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이치에 마음을 안주하는 것이다.

 

4인은 복인(伏忍) · 유순인(柔順忍) · 무생인(無生忍) · 적멸인(寂滅忍)으로 분류된다. 첫째, 복인은 비위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먼저 성나는 그 마음을 조복(調伏)하여 억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역경(逆境)만 참아서는 아니 되며, 자기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순경(順境)도 참아야 한다. 그 이유는 역경을 참지 못하면 번뇌가 치밀어서 투쟁하기 쉽고, 순경(順境)을 참지 못하면 유혹에 빠져서 몸과 마음을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 유순인은 사람이 항상 참기를 많이 하면 저절로 조복되어서 역경이나 순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말한다. 셋째, 무생인은 참고 견디어 보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인욕행(忍辱行)으로서, 인생이 무상하며 세상이 허황함을 깨닫고 일체만법(一切萬法)이 인연으로 흩어지는 진리를 깨닫고 보면, 별로 성낼 것도 없고 참을 것도 없다는 것이다.

 

넷째, 적멸인(寂滅忍)은 부처님의 지위에 있어서와 같은 인욕행으로,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뛰어나서 본래부터 적멸한 열반(涅槃)의 경지에 서 있는, 한 물건도 없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인욕행을 애써 닦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한 생각도 일으킴이 없음을 체득(體得)하여 인욕을 완성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불교개론(佛敎槪論)』(김동화, 보련각,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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