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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예(禮)의 절제 미학(節制美學)에 대하여

一字師 2024.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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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의 예(禮)의 절제 미학(節制美學)에 대하여

                             图片来源 好客山东,建有世界最高最大孔子像,一场震撼心灵的演出令人难忘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는 '예(禮)'와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화(和)'라고 했다. 여기에 '예'와 '화' 두 가지 개념(槪念)이 있다. '예'는 예의(禮儀)와 의례(儀禮), 의식(儀式) 등을 가리킨다. 국가의 통일은 '예'를 통해 실현되고 그 목적은 바로 '화' 즉 조화(調和)와 적절함, 화합(和合)을 이루는 것이다.”

 

1. 예(禮)란 무엇인가?

예(禮)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자가 말하기를: “예의 시행은 조화로움을 귀함으로 삼는다. 선왕의 도는, 이(調和)를 좋은 일로 여기니, 작고 큰 것이 그(조화)로 말미암는다. (하지만) 행하지 않아야 할 바가 있으니, 조화로움만 알아서 조화롭고, 예로 그것(조화로움)을 절제하지 않으면, 역시 행해서는 안 된다.” [論語(논어)] <學而(학이)>

 

이는 예(禮)라는 것이 和(화: 조화로움)를 중시하지만, 節(절: 절제)이 내포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먼저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드러나지 않은 것, 그것을 중이라고 일컫고, 드러나지만 모두 절도에 맞은 것, 그것을 화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세상의 큰 근본(根本)이고, 화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도에 닿은 것이다. 중과 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 [禮記(예기)] <中庸(중용)>

 

상술한 내용(內容)을 정리하자면,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처신하는 태도는 바탕이 되고, 이러한 감정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것이 궁극의 도에 도달하는 것이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본능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아무 때나 쉬이 드러내지 않고 신중함을 보이는 것이 바로 “중(中)”이고, 또 이러한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표출(表出)시키는 것이 “화(和)”인데, 이 화(和)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니, 예(禮)의 중요한 목표가 바로 감정을 인위적으로 절제하고 통제하는데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예(禮)라는 것은 “도에 도달하기 위해서 和(화: 조화로움)를 통제하는 요소가 되는 것”, 다시 말해서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슬픔을 극진히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심지어 본인의 건강(健康)에 해를 끼치게 되면 이는 예(禮)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아래에 소개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관련된 일련의 내용들을 이해한다면, 예(禮)의 참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이 묻기를: “사(자장)와 상(자하) 중에,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사는, 지나치고; 상은, 모자란다.” (자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 [論語(논어)] <先進(선진)>

 

여기서는 불급(不及) 즉 모자람과 과(過) 즉 지나침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中)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이고, 화(和)는 중(中)을 바탕으로 나아가 양쪽의 모순을 없애고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 즉 먼저 중(中)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화(和)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여기서 중(中)과 화(和)라는 것이 예(禮)로 절제 및 통제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제 상술한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자하가 이미 상을 치루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그와 함께 거문고를 탔는데, 화답하기는 했지만 합치지 못했으니, 연주를 하기는 했지만 소리를 이루지는 못했다. (자하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슬픔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왕께서 예를 제정하신 것이라서 감히 지나치지 못합니다.” 자장이 이미 상을 치루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그와 함께 거문고를 탔는데, 화답하여 합쳐졌으니, 연주를 하여 소리를 이뤘다. (자장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왕께서 예를 제정하신 것이라서 감히 지나치지 못합니다.” [禮記(예기)] <檀弓上(단궁상)>

 

자하는 슬픔을 누르지 못해서 선왕의 예(禮)를 다하지 못했으니 부족한 것이고, 반면에 자장은 슬픔이 모자라서 선왕의 예(禮)를 다했으니 지나친 것이다. 즉 공자에게 있어서 불급(不及: 모자람)과 과(過: 지나침)의 기준은 다름 아닌 예(禮)라서, 예(禮)가 지나치거나 예(禮)가 모자라면 둘 다 중(中)과 화(和)에 이르지 못하니, 결국에는 같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예(禮)를 통해서 이성과 감성을 조율하는 중(中: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과 공정함)과 화(和: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조화로움)를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자공이 자장과 자하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현(賢: 현명함)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드러나니, 다름 아닌 “예(禮)로 이성과 감성을 조율하여 중(中)과 화(和)로 이르게 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고 있는 예(禮)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앵무새는 말할 수 있지만, 조류를 떠나지 못하고; 성성이(오랑우탄)는 말할 수 있지만, 동물을 떠나지 못한다. 이제 사람에게 예가 없으면, 비록 말할 수 있어도, 역시 동물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무릇 동물은 예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아비와 아들이 암컷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성인이 일어나, 예를 만듦으로써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으로 하여금 예가 있도록 함으로써, 스스로가 동물에 다름을 알게 한 것이다. [禮記(예기)] <曲禮上(곡례상)>

 

즉 위에서 공자가 말하는 공경함은 다름 아닌 예(禮)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바로 공경함의 예(禮)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2. 예(禮)와 정치의 관계

그런데 공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예라는 것은, 선왕께서 하늘의 도를 받드는 것으로 여기시고, 사람의 본성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기셨다. 따라서 그것(예)을 잃는 이는 죽고, 그것(예)을 얻는 이는 산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이러한 까닭에 예라는 것은, 임금의 큰 근본이다. 따라서 혼동하기 쉬운 것을 구분하고 어렴풋한 것을 밝히며, 귀신을 접대하고 제도를 살핀다. 어질음과 의로움을 구분하기에, 따라서 정치가 다스려지고 임금을 편안하게 한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공자가 이르시기를: “예와 겸손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어떤 것(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손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를 어찌하겠는가?(어디에다 쓰겠는가?)” [論語(논어)] <里仁(이인)>

 

공자에게 있어서, 예(禮)와 겸손은 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따라서 위 [논어]의 기록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도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지도자를 신뢰하고 지지할 터인데, 정치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또한 예(禮)의 궁극목표가 도의 실천에 있는데, 도로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러한 예(禮)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공자가 말하는 예(禮)는 사람간의 예의나 예절을 가리키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치과 직결된 “국가 예악제도(禮樂制度)에 있어서의 예(禮)” 즉 오늘날의 의전(儀典)이나 의식(儀式) 혹은 전례(典禮)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공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어찌해야 합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임금이 신하 부리기를 예로 하고,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정성스러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예(禮)는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를 뜻하므로, 정공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임금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인 신하에게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조화로움으로 절제하여 대해야 합니다. 또한 신하는 아랫사람으로서 정성을 다해서 윗사람인 임금을 섬기고 따라야 합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말하는 예(禮)를 종합해보면 다름 아닌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禮)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즉 詩(시) 書(서) 禮(예) 樂(악) 易(역) 春秋(춘추) 六經(육경)의 하나인 [예경(禮經)]인 것이다.

 

나아가 공자는 예(禮)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예의 사람에 의지함은, 술의 누룩이 있음과도 같다. 군자는 그럼으로써 (예에) 후하고, 소인은 그럼으로써 (예에) 박하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술에 누룩이 없으면 술이 될 수 없으니, 결국 禮(예)의 유무는 사람과 동물의 근본적인 구별기준이 된다는 위의 말과도 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3. 예(禮)와 검(儉), 예(禮)와 충(忠)의 관계

 

그런데 공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크구나, 물음이여! 예는, 사치하느니, 차라리 검소한 것이다. 상을 치름은 마음을 편안히 하느니,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임방은 노나라의 大夫(대부)이자 공자의 제자였다는 설이 있으나, 필자가 섭렵한 자료에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추후 좀 더 면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튼 본문의 상은 부모의 상을 뜻한다. 따라서 이는 공자가 예(禮)의 한 가지인 상례(喪禮)로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禮)는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인데, 여기서 공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예(禮)는 화려하기보다는 검소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또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선조들이 예악에 힘씀은, 야인이다.(꾸미지 않고 질박하다.) 후대가 예악에 힘씀은, 군자이다.(화려하게 치장한다.) 만약 그것(예악)을 시행한다면, 곧 나는 선조들의 힘씀을 따르겠다.” [論語(논어)] <先進(선진)>

 

본문의 야인은 벼슬을 하지 않는 평민을 가리키고, 군자는 도를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하는 올바른 지도자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군자는 [논어]의 다른 구절과 달리 소인(小人)이 아닌 야인의 반대말로 쓰였으므로, “벼슬이 높은 사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야인은 꾸미지 않고 질박함을 나타내는 표현임에 반해, 군자는 화려하게 치장함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즉 공자는 여기서 만약 자신이 예악(禮樂)을 시행한다면, 화려하게 치장하는 형식보다 정성을 다하는 내용에 더 힘쓸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서 임방의 질문에 공자는 또 진심을 다해서 정성껏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공자의 이렇듯 禮(예)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자는 상복을 입은 이, 면류관을 쓰고 의상(관복)을 입은 이, 장님을 돕는(부축하는) 이를 만나면, 그들을 만남에 비록 (그들이) 젊더라도 반드시 일어났고, 그들을 지나침에 반드시 추창하셨다. [論語(논어)] <子罕(자한)>

 

예(禮)는 도에 있어서 형식이 되지만, 이 역시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자는 상복을 입은 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애도하고, 관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가 왕의 명령으로 정사를 맡으므로 진심으로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장님을 부축하는 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동정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일어나 예(禮)를 표하고 또 예법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사를 지냄에 계신 듯이 하셨으니, 신령께 제사를 지냄에 신령이 계시는 듯이 하셨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이는 예(禮)의 하나인 제례(祭禮)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인데, 공자는 이를 통해서 예(禮)라는 것이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禮)는 비록 형식이지만 이러한 형식도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러한 공자의 가치관은 바로 다음의 기록에서도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공자는 상제 노릇을 함이 있는 이(상주)의 곁에서 먹으면, 일찍이 배불리 먹은 적이 없으셨다. 공자는 이 날(상갓집에 다녀온 날)에 곡을 하면(슬퍼하여 울면), 곧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論語(논어)] <述而(술이)>

 

이처럼 공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충(忠) 즉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몸소 실천한 것이니,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종묘의 제사는, 어질음의 지극함이다. 상례는, 충후함의 지극함이다. [禮記(예기)] <禮器(예기)>

 

선조를 잊지 않고 제사지냄으로써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은 인(仁) 즉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어질음이 지극해지는 것이고, 또한 부모상을 치름으로써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은 충(忠) 즉 정성스러움이 지극해지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상례와 제례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충(忠) 즉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역시 정성을 다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공자께서는 종묘에 들어가, 매사에 대해서 물으셨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누가 추 지역 사람의 아들(공자)이 예를 안다고 하였는가? 종묘에 들어가서는, 매사에 대해서 묻는다.” 공자가 들으시고 이르시기를: “이것이 예이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공자는 아는 것도 다시 한 번 물음으로써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예(禮)라고 말하고 있다. 예(禮)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말은 “제례는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인(仁)을 드러내는 형식이지만 반드시 정성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아는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물음으로써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서 아는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물어서 확인하는 태도는 다름 아닌 호문(好問: 묻기를 좋아함)의 자세를 일컫는 것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만하지 않는 愼(신: 신중함)을 갖춰야 함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7, 2014년 7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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