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선비 진사은이 중과 도사의 이야기를 엿듣다 | 홍학연구 제3교시

一字師 202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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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진사은이 중과 도사의 이야기를 엿듣다 | 홍학연구 제3교시

图片来源 } 红楼梦:甄士隐游太虚,被晴天霹雳吓醒

 

[본문] : 한편 공동도인은 공(空)에서 색(色)을 보고 색에서 정(情)을 낳고 정을 전해 다시 색에 들고 색에서 다시 공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이름까지 고쳐 정승(情僧)이라 하고 '석두기'를 고쳐 '정승록(情僧錄)이라 하였다. 그 뒤에 오옥봉의 손을 거쳐 '홍루몽'이라 이름하고, 동로(東魯)의 공매계(孔梅溪)는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 제목을 지었다.  다시 그 뒤에 조설근(曹雪芹)이란 사람이 도홍헌(悼紅軒)에서 다시 책을 10년 동안 연구하면서 다섯 번이나 고쳐 쓴 목록을 엮고 장회(章回)를 나누어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라 이름하고는 책머리에 시 한 수를 적어 넣었다.

 

满纸荒唐言,一把辛酸泪!

都云作者痴,谁解其中味?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실로 피눈물로 씌어진 것이어늘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오?

 

이야기의 유래를 이만큼 밝혔으니 이제부터는 그 바위에 씌여 있는 이야기를 직접 읽어보기로 하자.(제1회)

 

[해설] : 여기서 석두는 돌이란 뜻이다. 따라서 석두기란 돌(바위) 위에 씌어 있는 이야기, 바위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 보고 들은 이야기란 뜻으로 해셕된다. 또한 인간 세상에 내려간 바위(통령보옥)와 그 보옥을 몸에 지님으로써 그 바위로 상징되는 가보옥(賈寶玉) 주변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인연이 깊은 금릉성(오늘의 남경시)을 옛날에 '석두성'이라고 한 것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통령보옥(通靈寶玉) : 청경봉 아래의 돌이 도사와 중의 손에서 통령보옥으로 변하여 속세에서의 향락을 꿈꾸며 하계로 내려와 인간세상의 온갖 기쁨과 슬픔을 겪었다는 돌 이야기의 유래에 이어 본격적으로 그 돌에 씌어져 있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홍루몽(紅樓夢)'이란 글자풀이를 하면 '홍루'는 '붉은 누각, 즉 아녀자들이 사는 규방'이요, '몽(夢)'는 '꿈'이다. 그러니 '규방 속의 꿈'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서 '붉은 칠을 한 높은 누각'이란 뜻으로, 부잣집 여자가 거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은 청(淸)나라 건륭(乾隆) 때의 장편(長篇) 소설(小說). 모두 120회(回)로 되었는데, 전(前) 80회는 조설근(曹雪芹)의 작(作). 후(後) 40회는 고악(高鶚)의 속작(續作)이라고 전(傳)함. 다정다한(多情多恨)의 귀공자 가보옥(賈寶玉)과 그 주위(周圍)의 여성군(女性群)의 묘사(描寫). 명문(名門) 가부(賈府)의 몰락(沒落)의 경로(經路)를 썼음. 소설사적(小說史的)으로는 "금병매(金甁梅)"와 같은 계통(系統)임. 원명은 석두기(石頭記). 정승록(情僧錄). 금옥연(金玉緣). 금릉 십이차(金陵十二次)이다.

 

'풍월보감(風月寶鑑)'이란 '애정 이야기의 본보기'란 뜻이다. 역사 기록에 "조설근의 동생 당촌의 말에 의하면 조설근에게는 '풍월보감'이라는 저서가 있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풍월보감'은 '홍루몽'의 초고임을 알 수 있다.

 

[본문] : 그때 대지는 동남쪽이 움푹하게 꺼져 앉았는데 그 한 모퉁이에 고소(姑蘇)라는 지방이 있었다. 이 고소땅에서도 창문(閶門)이란 곳은 속세에서 부귀와 풍류로 제일가는 고장이었다.

이 창문성  밖의 십리가라는 거리에 인청항이라는 골목이 있고, 이 골목 안에는 또 오래 된 절이 하나 있었다. 워낙 터가 작은데다 비좁고 잘룩한 골목 안에 있다 하여 사람들은 그 절을 호료묘(葫蘆廟)라고 불렀다.

이 절의  바로 옆에 성은 진(甄)이요, 이름은 비(費)요, 자는 사은(士隱)이라고 하는 한 골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 선비의 부인 봉(封)씨는 성품이 현숙하고 예의범절이 바른 어진 부인이었다. 집은 별로 넉넉지 못했지만 그래도 문벌과 명망이 높은 집이라 인근 각처에서는 다들 존경하는 터였다. 이 집 주인인 진사은은 천성이 온화하고 벼슬에는 뜻이 없어 종일 꽃과 대나무를 가꾸거나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선 같은 민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그의 나이가 벌써 오십에 가깝건만 슬하에 영련(英蓮)이라는 세 살난 딸애가 하나 있을 뿐 아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진사은은 한여름의 긴긴 해를 세재에 홀로 앉아 한가로이 보내며 책을 보던 중에 팔다리가 노곤하여 잠시 보던 책을 밀어놓고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쉬었다. 그러다 그는 그만 소르르 잠이 들었다.

어느덧 꿈길에 들어선 그는 한 곳에 이르러 보니 어딘지는 알 수 없는데 문득 저똑에서 웬 중과 도사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은 그 어리석은 것을 가지고 어디고 가시려요?"

도사가 묻는 말이었다.

중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마침 결말을 지어야 할 풍류 사건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관계되는 당사자들이 아직 사바세계로 들어가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이 어리석은 것을 그들에게 끼워넣어 두루 세상 구경을 시켜주려는 거외다."

"허허, 워낙이 논다니패들인 걸 또 사바세계에 내놓아 더욱 놀아나게 한다는 말이시오? 그건 그렇고 그 어리석은 것을 어디로 보내서 누구의 배를 빌 작정이시오?"

도사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 중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정말 웃음거리치고는 고금에 드문 기담이라고나 할까. 저 서방의 영하(靈河)라는 강기슭에 삼생석(三生石)이란 바위가 있고 그 옆에 강주초(絳珠草)라는 풀이 한 포기 자라고 있었는데 마침 적하궁(赤霞宮)에 있던 신여시자(神瑛侍者)란 분이 날마다 이 풀에 이슬을 뿌려서 길렀더랍니다.  그때부터 강주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풀은 본디 천지의 정기를 타고난데다가 맑은 이슬로 자랐기 때문에 마침내 풀의 허울을 벗고서 사람으로 변했답니다. 그것도 우랍부락한 남자가 아니라 아련하고 어여쁜 여자였는데, 그녀는 날마다 이한천(離恨天) 밖에 나가 한가롭게 노닐면서 배가 고프면 밀청과(密靑果)를 따 먹고 목이 마으면 관수해(灌愁海)의 물을 마시고 살았다지요. 그러나 어렸을 때 이슬로 가꾸어 준 신여시자의 은혜를 미처 갚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장 속에 서리고 서린 시름이 풀리지 않은 채 맺혀져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얄궂은 운명의 장난이랄까 근래에 와서 신영시자는 속세로 내려가려는 허무한 생각이 간절해져서 이 태평성세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 허황한 인연을 이루어 볼 꿈을 품고 이미 경환선녀(警幻仙女)의 허락까지 받았다거든요. 경환선녀도 진작부터 그 강주초가 신영시자의 은혜를 입었으나 아직 갚지 못하고 있는 사정을 아는 터이라 이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던 차였는데 마침 강주선녀가 찾아와서 애원을 했습니다.

'그분은 단이슬로 저를 길러 주셨지만 저에겐 갚아 드릴 감로수가 없아와요. 그분게서 하계로 내려가서 인간이 되신다니 저도 함께 내려가 참다운 인간이 되어 제 일생 동안 흘릴 수 있는 눈물을 모두 그분에게 바친다면 전생의 은혜를 다소라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이렇게 호소하므로 마침내 경환선녀는 허락하였답니다...(제1회)

 

[해석] : 삼생석(三生石)은 바위의 이름이다. 당나라 때에 혜림사라는 절에서 원관이라는 중이 자기의 친구인 이원한테 13년 후에 항주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죽었다. 후에 그 약속대로 이원이 항주 천축사 뒷산에 가 보니 한 목동이 삼생석이라는 바위에 앉아 '삼생석 위의 옛정혼'이라고 시를 읊고 있었다. 그는 목동으로 모습을 바꿔 다시 태어난 원관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삼생석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장소라는 전설이 있다. 작자는 아마 여기서 어떤 암시를 받은 것 같다.

 

적하궁(赤霞宮)은 강 이름이다. 강은 붉은 색이다. 즉 적하궁의 '하(霞)'는 '허물이 있는 옥'이란 뜻이며, 신영시자의 '영(瑛)은 '빛나는 옥'이란 뜻으로서 여기서는 이 신영시자가 바로 여와(女媧)의 손길을 거쳐 영기가 통한 옥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지은 이름이다.

 

여와(女媧)는 국의 천지 창조 신화에 나오는 여신. 오색 돌을 빚어서 하늘의 갈라진 곳을 메우고 큰 거북의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치고 갈짚의 재로 물을 빨아들이게 하였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과 뱀의 몸을 한 여신으로 알려졌다.

 

강주초(絳珠草)는 풀의 이름이다. 그러니 강주(絳珠)는 피눈물을 말한다. 신영시자(神瑛侍者)가 단이슬로 길러 준 은혜를 피눈물로 갚아준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다.

 

적하궁(赤霞宮)에 있던 신영시자는 영하(靈河) 기슭의 삼생석(三生石) 옆에서 자라던 강주선초(絳珠仙草)에게 감로(甘露)를 주어 잘 기른다. 강주선초는 이 감로를 먹고 생명을 얻어 어여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정성스럽게 길러 준 신영시자의 은혜를 갚지 못하여 시름을 품던 중 속계(俗界)로 내려가 일생 흘릴 눈물로 신영시자의 은혜를 갚겠노라고 경환선녀에게 애원한다.

 

눈물로 은혜를 갚는다(還淚)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신영시자와 강주선초는 바로 본 이야기의 주인공인 가보옥과 임대옥의 전신(前身)이다. 조설근은 전생에서의 이러한 사연을 통해 주인공들이 전생에서 인연을 맺었지만 속계(俗界)에서는 일생을 눈물로 보내야 하는 비극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한천(離恨天)은 서른세 층으로 된 하늘의 제일 위층으로 서로 만나지 못하는 원통한 마음을 품은 채 갈라져 사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신화에 나오는 하늘 나라이다. 

 

밀청과(密靑果)의 '밀청'은 '달콤하고 푸르다'는 뜻인데 '청'은 '정'과 음이 같으니 '애끓은 정'이란 뜻이다.

 

관수해(灌愁海)의 '관수'는 '수심을 부어넣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강주선녀(絳珠仙女)가 이한천에서 신영시자를 만나지 못하는 원통한 마음을 품은 채 매일 밀청과로 애끓는 정을 기르고 관수해로 수심을 키워 가며 살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경환선녀(警幻仙女)한 태허환경(太虛幻境)의 지배자로서 인간 세상의 애정문제와 남녀 사이의 치정관계를 맡아보는 선녀이다. 

 

진사은(甄士隱) : 소설(제1회)의 제일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진사은(甄士隱)이다. 진사은의 꿈 속에 나타난 중과 도사의 대화(對話)를 통해 전달되는 또 하나의 짤막한 신화적 이야기는 바로 신영시자(神瑛侍者)와 강주선초(絳珠仙草)의 인연에 대한 전개이다. 이 신영시자와 강주선초의 이야기는 후에 주인공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것임을 미리 암시하는 작가의 교묘한 구상이다.

 

[본문] : ...이렇게 되자 다른 많은 풍류호사가들이 그들을 따라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이 사건을 결말짓게 되었단 말이외다.

"

"그건 정말 희한한데요. 눈물로 은혜를 갚는다는 이야긴 지금까지의 연애이야기들과는 달리 아주 아기자기한 맛이 있겠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풍류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기껏해야 등장인물의 약전()에다 시나 몇수 붙여서 두루 엮어 놓는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가정의 안방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세말사(世末事)에 대해서는 전연 그리지 않았지요. 그리고 연애이야기라는 것이 태반은 남의 눈을 속여가며 밀통(密通)을 하거나 계집 사내가 서로 배가 맞아서 장난칠을 치는 것밖에 없거든요. 청춘 남녀들의 순정을 그린 것이라고는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말한 이네들은 이제 속세로 내려가게 되면 아무리 치정적이니 색정적이니 또는 현명하니 우매하니 해도 지금까지의 사람들이 전해온 이야기의 인물들과는 판이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우리도 같이 속세에 내려가 그들 중에 몇몇이라도 속세의 고통에서 구원해 준다면 큰 공덕을 쌓게 되지 않을까요?"

"거참, 이 소승의 생각과 똑 같소이다. 그러면 이 길로 함께 경환선녀를 찾아가 이 어리석은 것을 넘겨주고 그들이 완전히 하계(下界)로 내려가거들랑 우리도 따라 내려가도록 합시다. 일부는 이미 속세로 내려갔지만 아직 다 내려가진 않았으니까요."

"그럼 나도 당신을 따라가리다."

도사의 대답이었다.

 

진사은(甄士隱)은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모두 엿들었으나 그 어리석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퍽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중과 도사의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절을 하고 나서 웃으며 말을 건넸다.

"황송합니다만 두 분께 하나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중과 도사는 비로소 진사은에게 얼굴을 돌리고 합장을 했다.

"무슨 말씀인지 어서 하십시오."

"사실인즉 방금 두 분께서 하시는 말씀을 소인이 모두 엿들었습니다만 모두가 이 세상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둔한 소인으로서는 그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군요. 무리한 청이옵니다만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저의 어리석고 아둔함을 깨우쳐 주신다면 소이은 명심해 새겨듣고 차츰 깨우쳐 속세의 타락(墮落)을 모면할까 하옵니다."

중과 도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천기에 속하는 말이어서 누설(漏泄)할 수가 없소이다. 앞으로 인연이 있을 테니 그때 가서 우리 두 사람을 잊지만 않는다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다."

진사은은 이런 대답을 듣고 더는 캐묻기가 거북하여 웃으면서 말했다.

천기를 누설할 수 없다고 하시니 별수 없습니다만 아까 말씀하신 그 어리석은 것이란 무엇인지 한번 보여줄 수 없을까요?"

"허허, 이건 당신과 인연이 전혀 없은 것도 아니니까... ... ."

중은 빙그레 웃으면서 찬란한 구슬을 꺼내 진사은에게 보였다. 진사은이 그것을 받아들고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옥돌인데 그 위에 '통령보옥(通靈寶玉)'이란 네 글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고 그 뒤면에는 또 깨알 같은 글자들이 몇줄 새겨져 있었다. 진사은이 곧 그것을 자세히 읽어보려 하는데 "아차! 벌써 환몽세계에 이르렀군!" 하며 중은 깜짝 놀라더니 진사은의 손에서 구슬을 툭 채어갔다. 그리고는 도사와 함께 돌문을 지나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한동안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진사은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돌문을 바라보니 문 위에 '태허환경(太虛幻境)'이란 네 글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고 그 야쪽에는 두 줄의 대련(對聯)이 씌어 있었다.

 

假作真时真亦假,无为有处有还无。

 

가짜가 진짜로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되는 곳엔

있는 것 또한 없는 것과 같도다

 

진사은은 그들을 쫓아갈 마음이 생겨 막 돌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려 했다.그 찰나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소리가 터졌다. 진사은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떠보니 창문밖 뜨락에는 한여름의 뙤약볕이 뜨겁게 내리쪼이고 더위에 시든 파초잎이 맥없이 축 늘어져 있을 뿐 그는 꿈에서 본 일은 벌써 절반은 잊어버리고 말았다.(제1회)

 

[해석]: 통령보옥(通靈寶鈺)이란 영기가 통한 보옥이라는 뜻이다.

 

태허환경(太虛幻境)은 아주 허무하고 환상적인 세계라는 뜻으로 홍루몽에서는 이른바 신선들이 산다는 환상세계을 말한다.

 

진가(眞假)의 비밀 : 홍루몽 소설은 진사은(甄士隱)에 관한 짤막한 줄거리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줄거리 속에 돌 이야기에서 등장했던 중과 도사가 진사은의 꿈에 다시 나타남으로 해서 줄거리인 ‘돌이야기’와 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꿈에서 중과 도사의 이야기 : 중은 도사에게 강주선초(絳珠仙草)가 신영시자(神瑛侍者)에게 빚져서 속세에서 눈물로 갚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엿듣지만 진사은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어안이 벙벙해진 진사은이 궁금하여 중과 도사에게 묻자 중과 도사는 천기누설이라며 대답하지 않는다. 이때 만약 중과 도사가 진사은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면 소설은 더 이상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진사은은 거북하여 캐어묻지 못하고 옥(소설 속에서는 ‘그 이상한 물건(蠢物)’)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옥(通靈寶玉)을 건네받은 진사은이 옥 뒤에 쓰여져 있는 글자들을 보려는 순간, 중은 얼른 옥을 빼앗아 태허환경(太虛幻境)으로 들어간다. 진사은은 쫓아가려다가 깨어난다.

 

이 진가(眞假)의 문제는 진사은(甄士隱)이 꿈에서 중을 쫓아 태허환경(太虛幻境)으로 들어가려 할 때, 태허환경 입구의 대련(對聯)에 씌어져 있던 ‘가짜가 진짜로 될 때는 진짜 또한 가짜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되는 곳엔 있는 것 또한 없는 것과 같도다’(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라는 모호한 구절과 일맥상통(通)한다. 사실과 환상,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흐려지고,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진실하며 꿈은 깨어있을 때보다 더 사실적이다. 이 점은 제5회에 소개되는 가보옥의 태허환경 에피소드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소설 혹은 더 나아가 예술 창조의 이야기에 대한 암시는 진사은과 가우촌의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진사은의 중국어 발음은 ‘진사은(眞事隱)’과 같은데 그의 에피소드는 그 이름처럼 ‘진사(眞事)’는 ‘감추어져서(隱)’ 짧고 집중된 이야기로 나타난다. ‘가어촌언(假語村言=賈雨村)’으로 사건을 돌리고 돌려, 즉 ‘꼬고 또 꼬고’ 부연(敷衍)하는 것은 ‘眞事隱(진짜 일은 감추어짐)’에 의해 남겨진, 비어 있는 상태를 채우는 확장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진사은이 소설의 처음과 끝 부분에 잠깐 등장하여 각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 반면, 가우촌(賈雨村)의 존재는 소설의 전개 과정 전체 속에서 부침(浮沈)한다. 그러나 인간의 모순과 진실은 역설적으로 허구적 언어, 즉 ‘가어촌언(假語村言)’ 속에서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후에 다시 언급할 내용이다. 오늘은 여기서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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