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 '수호전'의 모든 것!

一字師 202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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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 '수호전'의 모든 것!

 

안녕하세요, 시사중국어학원 기자단 2기 김혜빈입니다. 춥던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정말 따뜻해졌습니다:)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인 봄이 온 만큼, 오늘은 중국과 관련된 소설을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중국의 사대기서와 사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사대기서와 수호전

사대기서는 중국 소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소설 네 작품을 이르는 말입니다. 명대의 문학가인 풍몽룡이라고 하는 사람이 붙인 명칭으로, 사대기서에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그리고 금병매라는 소설 작품이 속해있습니다.

사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은 중국 송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방대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기존 사회에서 이탈된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수호전에서 '수호'라는 명칭의 의미

수호(水滸)란 말은 중국의 삼경중 하나인 시경의 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말인데요, 기존 사회를 의미하는 ()’에서 살짝 벗어나, 그 언저리()를 맴도는 것을 의미합니다. , 부패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떠돌 수밖에 없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수호지인가? 수호전인가?

우리는 수호전이라는 이름보다 수호지를 더 익숙해합니다. 하지만, 원래 명칭은 수호전이 맞습니다. 우리나라에 수호전이 전래될 때 이와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수호전보다 좀 더 유명했던 삼국지의 영향으로 수호전이 아닌 수호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호전의 작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수호전의 작자는 불분명합니다. 명대 이전의 소설과 희곡 등은 대부분 작자가 불분명합니다. 근대 이전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 장르는 시였기 때문에 소설, 희곡 등에 대한 수요는 있었으나 이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 작자를 밝히거나 드러내는 일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근대 이전의 소설 작품은 대부분 오랜 세월을 거쳐서 전해져 온 이야기들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편집되었기 때문에 작자를 분명히 하기에 더욱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수호전 작자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 중 가장 유력한 세 가지 설로는, 시내암이라는 설과 삼국지의 작자인 나관중이라는 설, 시내암과 나관중의 합작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는 만큼, 누가 수호전의 작자인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시내암나관중’, 두 사람은 수호전의 대표적인 편집자라는 것입니다.

 

수호전의 시대배경

수호전의 저술 시기는 명나라이지만, 수호전의 시대 배경은 송나라입니다. 송나라 시대는 대체로 상류 계급의 사람들은 살기 좋았던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없었으며, 학문이 크게 발전하였고, 중국의 4대 발명품 중 나침반화약인쇄술이 발명되었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전국의 물류가 모여들었다가 흩어져 중국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서아시아의 대상 및 지방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여 금은보화와 비단, 도자기, 그 밖의 많은 상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었고, 부유한 집안의 사람들이 비싸고 귀한 물품을 사들이며 상류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에 비해, 개봉부를 벗어나 지방의 시골로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개봉부에서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부유층이 늘어갈수록 지방의 농촌 사람들은 그 희생양이 되어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지방의 서민들이 이처럼 고달픈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북송은 이민족인 금나라의 침략을 받아 얼마 버티지 못한 채 멸망했습니다. 결국 수호전에 등장하는 휘종은 160년 이상 지속된 북송 왕조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부덕한 군주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수호전의 생성배경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했던 인물들로, 수호전을 대표하는 송강이라는 인물 자체가 송나라 시절 산동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도둑이었습니다. 이것은 송사라는 역사책에 간략하게 언급이 되어있는데요, 송강과 그가 이끌었던 무리는 당시 백성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고, 북송시절부터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공유되고 구전되면서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원래 없었던 인물들이 추가되면서 마침내 송대에 대송선화유사라는 책에 모여지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원대에 이르러서 통속 작가의 사회적 위치는 높아졌고, 문자가 없는 몽골족의 영향으로 인해 구술 문학이 발달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대의 대표적인 문학 장르는 희곡이 되었는데요, 수호전은 희곡의 소재 중 하나로 수용이 됩니다. 그리고 관객의 호불호에 따라 인물이 정형화되게 됩니다.

이처럼 수호전은 송대, 원대를 거쳐 형성, 발전되어 명대에 이르러 시내암과 나관중 두 사람에 의해 완성되게 됩니다.

 

수호전 줄거리

중국이라는 땅덩어리에 송나라가 들어서 있던 시절, 여러 호걸들은 양산박이나 이룡산 등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룡산의 호걸들은 모두 양산박에 모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부패 관군이나 그 외의 여러 적들과 싸우게 됩니다. 여러 호걸들이 모여든 양산박에는 어느덧 108명의 호걸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하늘을 대신해 의를 행하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연청이라는 자가 인맥을 통해 황제를 단독으로 알현하게 되면서 황제에게 양산박 호걸들의 뜻과 그동안의 사실들을 모두 올바르게 전해주자 황제는 기뻐하며 양산박 호걸들의 귀순을 허락합니다.

 

허나 4간신은 이들을 시기하여 그들에게 벼슬을 주는 것을 방해합니다. 허무하게 세월을 보내던 양산박 호걸들은 많은 토벌을 하게 되는데요, 동경으로 양산박 호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의 수는 처음 108명에서 27명으로 단번에 줄어들게 됩니다. 살아남았던 장수들 중 대부분은 관직과 벼슬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모든 걸 버리고 고향으로 떠납니다.

 

4간신은 음모를 꾸며 양산박 호걸들의 두령이었던 송강과 노준의를 죽이려 합니다. 결국 노준의는 음모에 빠져 사망했고 송강 또한 독주를 마시게 됩니다. 독주를 마시고 죽음을 앞둔 송강은 혹시나 이규가 반란을 일으키고 공적과 충성심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이규를 불러 같이 독주를 마시고 죽어 꽃동산에 묻히게 됩니다. 송강은 죽기 직전 오용과 화영을 만나고 싶어 했고 결국 송강과 이규의 혼령은 오용과 화영의 꿈에 나타나 자신들이 묻힌 꽃동산에 찾아와 달라고 합니다.

 

꽃동산에 혹시나 해서 찾아온 오용과 화영은 모두의 의리를 위해 같이 죽어 깨끗한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떠나리라 마음먹고 그들 또한 자살을 합니다. 꽃동산에는 그리하여 4개의 무덤이 생겨났고, 그 후 꽃동산 근방의 초주성 주민들은 그들의 인덕, 충성심에 감격하여 사당을 짓고 매년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사대기서 중 하나인 수호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수호전은 한국에서 유명한 삼국지연의나 서유기와는 달리 만화나 영화로 쉽게 접하기 어렵고, 수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작품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읽게 되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번 기사가 수호전을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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