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설근은 '진사은'과 '가우촌'의 입을 빌려 홍루몽을 이야기 했다 | 홍학연구 제1교시
사람을 볼 때 얼굴을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을 때 먼저 제목을 보게 됩니다. "붉은 누각의 꿈" 즉 홍루몽(紅樓夢)은 제목부터 눈길을 끕니다. 그래서 우선 먼저 부언해 둘 것은 여기에 올린 글은 어디까지나 "홍루몽"의 애독자의 한사람으로서의 제가 취미로 올린 만큼 전문성을 띤 글이 아님을 재차 천명합니다. 다만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재미 삼아 올린 글이므로 전문성이나 지식성 그리고 과학적 근거도 없는 단순히 제 감정일 뿐입니다. 그러니 문장이 난삽하여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 있으니 많은 이해와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조설근은 이야기의 첫머리에 먼저 허무한 꿈길을 더듬고 나서 일부러 진짜 사살을 감추고 '영기가 통한 돌의 이야기'를 빌어 이 '석두기(石頭記)'를 지었다.
주해(註解)에 의하면 중국말에서 '진사은(甄士隐)'은 사실을 숨긴다는 말(眞事隐)과 음이 같으며 가우촌(贾雨村)은 가짜 이야기를 남긴다(假語寸)는 말과 음이 같다. 이처럼 작가는 진사은과 가우촌이란 두 이름을 빌려 이 책을 지을 때 사실을 숨기고 가짜 이야기를 남겼음을 암시했다. 그래서 진사은이라고 했고 가우촌이라 했다.
아래에 홍루몽 제1회 "진사은은 꿈길에서 기이한 옥을 알아보고 가우촌은 속세에서 꽃다운 여인을 그리다"를 발췌하여 소개해 드린다.
[본문] : 이야기의 첫머리에 먼저 말해 두거니와 작가는 허무한 꿈길을 더듬고 나서 일부러 진짜 사실은 감추고 '영기가 통한 돌의 이야기'를 빌려 이 석두기(石頭記)를 지었다. 그래서 진사은(甄士隐)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씌어진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의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평생 세속에 쫓기며 분주히 지냈건만 이루어 놓은 일이란 하나도 없다. 문득 지난날 함께 노닐던 아녀자들에게 생각이 미치어 그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그들의 언행이나 식견이 모두 나보다 월등지 않은가. 내 당당한 남아로 태어나 어찌하여 치마 두른 아녀자들만도 못했단 말인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실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 오늘 짐짓 붓을 들어 지난날 하느님과 조상의 은덕을 입어 명주비단으로 몸을 감고 산해진미로 배불리던 그 시절에 부모와 동기들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스승과 벗들의 충고를 듣지 않아 덧없는 반생을 헛되이 보내다보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다 할 아무런 일도 해놓지 못한 이 허물을 이제 이야기로 엮어 세상 사람들 앞에 내놓으려 하는 바이다. 나의 허물을 씻을 길 없다 할지라도 흉허물을 덮어감추려는 나의 불찰로 하여 규방 속의 재간 많은 아녀자들의 존재가 매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추한 오막살이에 몸을 두고 옹색한 나날을 보내는 처지요, 아늑한 자연의 꽃밭 속에 묻혀 있는 몸이건만 한 번 사려먹은 뜻을 버릴 수가 없고 한 번 든 붓을 놓을 수가 없다. 내 비록 학문이 짧아 글을 지을 만한 위인은 못 되나 항간의 속된 말로라도 두루 이야기를 더러 풀어 줄 수는 있으리라. 그래서 '가우촌... ... ... '이라고 한 것이다. '꿈'과 '환(幻)'이란 말도 역시 그래서 썼다.(제1회)
[해석] : 보다시피 여기까지는 '홍루몽' 소설의 서두이다. 이미 위에서 서술했듯이 작가는 '영기가 통한 돌의 이야기'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고 시도를 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서두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혹은 독자가 느껴줬으면 하는 '감정'인 것이다. 바로 조설근은 이런 집필의도를 가지고 이야기의 의문을 제시했으며 앞으로 전개될 스토리의 주제를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그럼 아래에 계속 본문을 읽어보기로 하자.
[본문] : 그러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이제 그 근원을 말하게 되면 모름지기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다시 그것을 차근차근 따져보면 과히 흥미가 없지 않을 것이니 먼저 이야기의 유래부터 밝혀서 독자들의 의혹을 풀어주리라.
멀고먼 옛날, 아득한 태고적이니 여와(女媧)가 돌을 깎아 하늘을 떠받치던 때의 일이다. 여와는 대황산(大荒山) 무계애(無稽崖)라는 곳에서 높이 1백2십 척, 둘레 2백4십 척이나 되는 큰 돌을 3만6천5백1개를 만들었다. 여와는 그중에서 3만6천5백 개만 쓰고 한 개가 남은 것을 청경봉(靑硬峰) 아래에 버려 두었다.그런데 그 돌은 여와의 손길을 거친 뒤부터 영기가 통하여 마음대로 걸어다니기도 하고 큰 바위나 작은 옥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돌들은 모두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룩한 존재로 빛을 내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재간이 모자라 버림받은 것을 생각하니 여간 억울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돌은 늘 울적한 심화를 누를 길이 없었고 마냥 눈물과 한숨으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날도 돌은 자기의 기구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문득 저쪽으로부터 웬 중과 도사가 다가왔다. 얼핏 보기에도 그들은 자못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하였다. 그들은 청경봉 밑에 이르러 그 돌 옆에 걸터앉더니 다리를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그들은 티없이 맑고 아름다운 옥을 발견하고 그것을 집어 부채꼭지에 꿸 수도 있고 허리띠에 찰 수도 있으며 손바닥에 굴릴 수도 있게 줄였다.
중은 그 옥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굴리면서 웃었다.
'이래 놓고보니 생김새만은 보물 같아 보인다만 별로 쓸모가 없으니 내 이제 한손 더 보아서 그럴 만한 글자라도 몇자 새겨놓아 누가나 보면 영물인줄을 알도록 해 주지. 그래야 자네를 저 번영하고 창성한 나라, 학문의 향기 짙은 고귀한 가문, 울긋불긋 꽃동산에 뒤덮인 변화한 땅, 인심이 후하고 부유한 고장으로 데려다가 분에 맞는 향락을 누리게 하는 데도 편리할 테니까.'
옥은 이 말을 듣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중에게 물었다.
' 스님께서 저에게 누리게 해준다는 향락은 어떤 향락이며 데려다 준다는 곳은 어떤 곳인지 똑똑히 알려줄 수 없는지요? 그러면 저도 궁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허허, 단 듣는 게 맛이야. 때가 되면 자연 알게 될 테니까.'
그러더니 중은 옥을 소매 안에 넣고 나서 도사와 함께 표연히 사라졌다. 그들이 과연 어디를 바라고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
그 뒤로 몇 세기가 지나고 또 몇 겁이 지났는지 모른다. 하루는 공공도인(空空道人)이 훌륭한 도사를 찾으려고 각지를 돌아다니던 끝에 우연히 대황산 무계에 청경봉을 지나다가 언뜻 절벽 같은 큰 바위에 선명한 글자들이 씌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인이 그것을 처음부터 읽어 보니 태고적에 하늘을 떠받칠 자격이 없었던 이 바위가 옥으로 변하여 세상에 태어났는데 망망대사(茫茫大士)와 묘묘진인(渺渺眞人)의 인도로 속세에 내려가 인간 세상의 이별의 슬픔과 상봉의 기쁨, 온갖 세태와 인정의 쓰고단 맛을 죄다 맛보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에는 또 다음과 같은 시가 한 수 새겨져 있었다.
无材可去补苍天,枉入红尘若许年。
此系身前身后事,倩谁记去作奇传?
이 몸이 하늘을 받칠 재주가 없어
속세에서 해매기를 몇몇해이던고
전생 후생의 기구한 이 운명을
누구의 손을 빌어 세상에 전하리요?(제1회)
[해석] : 작가는 이처럼 '전생 후생의 기구한 이 운명을 누구의 손을 빌어 세상에 전하리요?'라고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진사은'과 '가우촌'의 입을 빌어 이야기를 전하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흔히 대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조설근도 이 수법을 도입하여 즉 남의 입을 빌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특히 사람이 아닌 것을 인격화해 사람들에게 비유하는 수법을 의인법(擬人法)이라 한다. 오늘은 홍루몽에 여기까지 공부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나가려 한다.
오늘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조설근, 고악 작/ 안의운, 김광렬 역 "홍루뭉(1993년 12월 1일 초판 제1쇄, 1994년 4월 20일 초판 제3쇄/삼성출판사)" 구매 후 이용해 주세요.
第一回:甄士隐梦幻识通灵 贾雨村风尘怀闺
此开卷第一回也。作者自云:因曾历过一番梦幻之后,故将真事隐去,而借“通灵”之说,撰此《石头记》一书也。故曰“甄士隐”云云。但书中所记何事何人?自又云:“今风尘碌碌,一事无成,忽念及当日所有之女子,一一细考较去,觉其行止见识皆出于我之上。何我堂堂须眉,诚不若彼裙钗哉?实愧则有馀,悔又无益之大无可如何之日也!当此,则自欲将已往所赖天恩祖德,锦衣纨袴之时,饫甘餍肥之日,背父兄教育之恩,负师友规训之德,以至今日一技无成,半生潦倒之罪,编述一集,以告天下人:我之罪固不免,然闺阁中本自历历有人,万不可因我之不肖,自护己短,一并使其泯灭也。虽今日之茅椽蓬牖,瓦灶绳床 ,其晨夕风露,阶柳庭花,亦未有妨我之襟怀笔墨者。虽我未学,下笔无文,又何妨用假语村言,敷演出一段故事来,亦可使闺阁昭传,复可悦世之目,破人愁闷,不亦宜乎?”故曰“贾雨村云云。
此回中凡用“梦”用“幻”等字,是提醒阅者眼目,亦是此书立意本旨。
列位看官:你道此书从何而来?说起根由虽近荒唐,细按则深有趣味。待在下将此来历注明,方使阅者了然不惑。
原来女娲氏炼石补天之时,于大荒山无稽崖炼成高经十二丈,方经二十四丈顽石三万六千五百零一块。娲皇氏只用了三万六千五百块,只单单剩了一块未用,便弃在此山青埂峰下。谁知此石自经煅炼之后,灵性已通,因见众石俱得补天,独自己无材不堪入选,遂自怨自叹,日夜悲号惭愧。
一日,正当嗟悼之际,俄见一僧一道远远而来,生得骨格不凡,丰神迥异,说说笑笑来至峰下,坐于石边高谈快论。先是说些云山雾海神仙玄幻之事,后便说到红尘中荣华富贵;此石听了,不觉打动凡心,也想要到人间去享一享这荣华富贵,但自恨粗蠢,不得已,便口吐人言,向那僧道说道:“大师,弟子蠢物,不能见礼了。适闻二位谈那人世间荣耀繁华,心切慕之。弟子质虽粗蠢,性却稍通;况见二师仙形道体,定非凡品,必有补天济世之材,利物济人之德。如蒙发一点慈心,携带弟子得入红尘,在那富贵场中,温 柔乡里受享几年,自当永佩洪恩,万劫不忘也。”二仙师听毕,齐憨笑道:“善哉,善哉!那红尘中有却有些乐事,但不能永远依恃,况又有‘美中不足,好事多魔’八个字紧相连属,瞬息间则又乐极悲生,人非物换,究竟是到头一梦,万境归空,倒不如不去的好。
这石凡心已炽,那里听得进这话去,乃复苦求再四。二仙知不可强制,乃叹道:“此亦静极思动,无中生有之数也。既如此,我们便携你去受享受享,只是到不得意时,切莫后悔。”石道:“自然,自然。”那僧又道:“若说你性灵,却又如此质蠢,并更无奇贵之处。如此也只好踮脚而已。也罢,我如今大施佛法助你助,待劫终之日,复还本质,以了此案。你道好否?”石头听了,感谢不尽。那僧便念咒书符,大展幻术,将一块大石登时变成一块鲜明莹洁的美玉,且又缩成扇坠大小的可佩可拿。那僧托于掌上,笑道:“形体倒也是个宝物了!还只没有实在的好处,须得再镌上数字,使人一见便知是奇物方妙。然后携你到那昌明隆盛之邦,诗礼簪缨之族,花柳繁华地,温 柔富贵乡去安身乐业。”石头听了,喜不能禁,乃问:“不知赐了弟子那几件奇处,又不知携了弟子到何地方?望乞明示,使弟子不惑。”那僧笑道:“你且莫问,日后自然明白的。”说着,便袖了这石,同那道人飘然而去,竟不知投奔何方何舍。
后来,又不知过了几世几劫,因有个空空道人访道求仙,忽从这大荒山无稽崖青埂峰下经过,忽见一大块石上字迹分明,编述历历。空空道人乃从头一看,原来就是无材补天,幻形入世,蒙茫茫大士渺渺真人携入红尘,历尽离合悲欢炎凉世态的一段故事。后面又有一首偈云:
无材可去补苍天,枉入红尘若许年。
此系身前身后事,倩谁记去作奇传?
诗后便是此石坠落 之乡,投胎之处,亲自经历的一段陈迹故事。其中家庭闺阁琐事,以及闲情诗词倒还全备,或可适趣解闷,然朝代年纪、地舆邦国,却反失落无考。
空空道人遂向石头说道:“石兄,你这一段故事,据你自己说有些趣味,故编写在此,意欲问世传奇。据我看来,第一件,无朝代年纪可考;第二件,并无大贤大忠理朝廷治风俗的善政,其中只不过几个异样女子,或情或痴,或小才微善,亦无班姑蔡女之德能。我纵抄去,恐世人不爱看呢。”石头笑答道:“我师何太痴耶!若云无朝代可考,今我师竟假借汉唐等年纪添缀,又有何难?但我想,历来野史,皆蹈一辙,莫如我这不借此套者,反倒新奇别致,不过只取其事体情理罢了,又何必拘拘于朝代年纪哉!再者,市井俗人喜看理治之书者甚少,爱适趣闲文者特多。历来野史,或讪谤君相,或贬人妻 女,奸婬凶恶,不可胜数。更有一种风月笔墨,其婬|秽污臭,屠毒笔墨,坏人子弟,又不可胜数。至若佳人才子等书,则又千部共出一套,且其中终不能不涉于婬滥,以致满纸潘安、子建、西子、文君、不过作者要写出自己的那两首情诗艳赋来,故假拟出男女二人名姓,又必旁出一小人其间拨乱,亦如剧中之小丑然。且鬟婢开口即者也之乎,非文即理。故逐一看去,悉皆自相矛盾,大不近情理之话,竟不如我半世亲睹亲闻的这几个女子,虽不敢说强似前代书中所有之人,但事迹原委,亦可以消愁破闷;也有几首歪诗熟话,可以喷饭供酒。至若离合悲欢,兴衰际遇,则又追踪蹑迹,不敢稍加穿凿,徒为供人之目而反失其真传者。今之人,贫者日为衣食所累,富者又怀不足之心,纵然一时稍闲,又有贪婬恋色,好货寻愁之事,那里去有工夫看那理治之书?所以我这一段故事,也不愿世人称奇道妙,也不定要世人喜悦检读,只愿他们当那醉婬饱卧之时,或避事去愁之际,把此一玩,岂不省了些寿命筋力?就比那谋虚逐妄,却也省了口舌是非之害,腿脚奔忙之苦。再者,亦令世人换新眼目,不比那些胡 牵乱扯,忽离忽遇,满纸才人淑女、子建文君红娘小玉等通共熟套之旧稿。我师意为何如?”
空空道人听如此说,思忖半晌,将《石头记》再检阅一遍,因见上面虽有些指奸责佞贬恶诛邪之语,亦非伤时骂世之旨;及至君仁臣良父慈子孝,凡伦常所关之处,皆是称功颂德,眷眷无穷,实非别书之可比。虽其中大旨谈情,亦不过实录其事,又非假拟妄称,一味婬邀艳约、私订偷盟之可比。因毫不干涉时世,方从头至尾抄录回来,问世传奇。从此空空道人因空见色,由色生情,传情入色,自色悟空,遂易名为情僧,改《石头记》为《情僧录》。东鲁孔梅溪则题曰《风月宝鉴》。后因曹雪芹于悼红轩中披阅十载,增删五次,纂成目录,分出章回,则题曰《金陵十二钗》。并题一绝云:
满纸荒唐言,一把辛酸泪!
都云作者痴,谁解其中味?
出则既明,且看石上是何故事。按那石上书云:
当日地陷东南,这东南一隅有处曰姑苏,有城曰阊门者,最是红尘中一二等富贵风流 之地。这阊门外有个十里街,街内有个仁清巷,巷内有个古庙,因地方窄狭,人皆呼作葫芦庙。庙旁住着一家乡宦,姓甄,名费,字士隐。嫡妻封氏,情性贤淑,深明礼义。家中虽不甚富贵,然本地便也推他为望族了。因这甄士隐禀性恬淡,不以功名为念,每日只以观花修竹、酌酒吟诗为乐,倒是神仙一流人品。只是一件不足:如今年已半百,膝下无儿,只有一女,乳名唤作英莲,年方三岁。
一日,炎夏永昼,士隐于书房闲坐,至手倦抛书,伏几少憩,不觉朦胧睡去。梦至一处,不辨是何地方。忽见那厢来了一僧一道,且行且谈。
只听道人问道:“你携了这蠢物,意欲何往?”那僧笑道:“你放心,如今现有一段风流 公案正该了结,这一干风流 冤家,尚未投胎入世。趁此机会,就将此蠢物夹带于中,使他去经历经历。”那道人道:“原来近日风流 冤孽又将造劫历世去不成?但不知落于何方何处?”那僧笑道:“此事说来好笑,竟是千古未闻的罕事。只因西方灵河岸上三生石畔,有绛珠草一株,时有赤瑕宫神瑛侍者,日以甘露灌溉,这绛珠草始得久延岁月。后来既受天地精华,复得雨露滋养,遂得脱却草胎木质,得换人形,仅修成个女体,终日游于离恨天外,饥则食蜜青果为膳,渴则饮灌愁海水为汤。只因尚未酬报灌溉之德,故其五内便郁结着一段缠绵 不尽之意。恰近日这神瑛侍者凡心偶炽,乘此昌明太平朝世,意欲下凡造历幻缘,已在警幻仙子案前挂了号。警幻亦曾问及,灌溉之情未偿,趁此倒可了结的。那绛珠仙子道:‘他是甘露之惠,我并无此水可还。他既下世为人,我也去下世为人,但把我一生所有的眼泪还他,也偿还得过他了。’因此一事,就勾出多少风流 冤家来,陪他们去了结此案。”
那道人道:“果是罕闻。实未闻有还泪之说。想来这一段故事,比历来风月事故更加琐碎细腻了。”那僧道:“历来几个风流 人物,不过传其大概以及诗词篇章而已;至家庭闺阁中一饮一食,总未述记。再者,大半风月故事,不过偷香窃玉,暗约私奔而已,并不曾将儿女之真情发泄一二。想这一干人入世,其情痴色鬼、贤愚不肖者,悉与前人传述不同矣。”那道人道:“趁此何不你我也去下世度脱几个,岂不是一场功德?”那僧道:“正合吾意,你且同我到警幻仙子宫中,将蠢物交 割清楚,待这一干风流 孽鬼下世已完,你我再去。如今虽已有一半落尘,然犹未全集。”道人道:“既如此,便随你去来。”
却说甄士隐俱听得明白,但不知所云“蠢物”系何东西。遂不禁上前施礼,笑问道:“二仙师请了。”那僧道也忙答礼相问。士隐因说道:“适闻仙师所谈因果,实人世罕闻者。但弟子愚浊,不能洞悉明白,若蒙大开痴顽,备细一闻,弟子则洗耳谛听,稍能警省,亦可免沉伦之苦。”二仙笑道:“此乃玄机不可预泄者。到那时不要忘我二人,便可跳出火坑矣。”士隐听了,不便再问。因笑道:“玄机不可预泄,但适云‘蠢物’,不知为何,或可一见否?”那僧道:“若问此物,倒有一面之缘。”说着,取出递与士隐。
士隐接了看时,原来是块鲜明美玉,上面字迹分明,镌着“通灵宝玉”四字,后面还有几行小字。正欲细看时,那僧便说已到幻境,便强从手中夺了去,与道人竟过一大石牌坊,上书四个大字,乃是“太虚幻境”。两边又有一幅对联,道是:
假作真时真亦假,无为有处有还无。
士隐意欲也跟了过去,方举步时,忽听一声霹雳,有若山崩地陷。士隐大叫一声,定睛一看,只见烈日炎炎,芭蕉冉冉,所梦之事便忘了大半。又见奶母正抱了英莲走来。士隐见女儿越发生得粉妆玉琢,乖觉可喜,便伸手接来,抱在怀内,斗他顽耍一回,又带至街前,看那过会的热闹。
方欲进来时,只见从那边来了一僧一道:那僧则癞头跣脚,那道则跛足蓬头,疯疯癫癫,挥霍谈笑而至。及至到了他门前,看见士隐抱着英莲,那僧便大哭起来,又向士隐道:“施主,你把这有命无运、累及爹娘之物,抱在怀内作甚?”士隐听了,知是疯话,也不去睬他。那僧还说:“舍我罢,舍我罢!”士隐不耐烦,便抱女儿撤身要进去,那僧乃指着他大笑,口内念了四句言词道:
惯养娇生笑你痴,菱花空对雪澌澌。
好防佳节元宵后,便是烟消火灭时。
士隐听得明白,心下犹豫,意欲问他们来历。只听道人说道:“你我不必同行,就此分手,各干营生去罢。三劫后,我在北邙山等你,会齐了同往太虚幻境销号。”那僧道:“最妙,最妙!”说毕,二人一去,再不见个踪影了。士隐心中此时自忖:这两个人必有来历,该试一问,如今悔却晚也。
这士隐正痴想,忽见隔壁葫芦庙内寄居的一个穷儒──姓贾名化、表字时飞、别号雨村者走了出来。这贾雨村原系胡 州人氏,也是诗书仕宦之族,因他生于末世,父母祖宗根基已尽,人口衰丧,只剩得他一身一口,在家乡无益,因进京求取功名,再整基业。自前岁来此,又淹蹇住了,暂寄庙中安身,每日卖字作文为生,故士隐常与他交 接。
当下雨村见了士隐,忙施礼陪笑道:“老先生倚门伫望,敢是街市上有甚新闻否?”士隐笑道:“非也。适因小女啼哭,引他出来作耍,正是无聊之甚,兄来得正妙,请入小斋一谈,彼此皆可消此永昼。”说着,便令人送女儿进去,自与雨村携手来至书房中。小童献茶。方谈得三五句话,忽家人飞报:“严老爷来拜。”士隐慌的忙起身谢罪道:“恕诳驾之罪,略坐,弟即来陪。”雨村忙起身亦让道:“老先生请便。晚生乃常造之客,稍候何妨。”说着,士隐已出前厅去了。
这里雨村且翻弄书籍解闷。忽听得窗外有女子嗽声,雨村遂起身往窗外一看,原来是一个丫鬟,在那里撷花,生得仪容不俗,眉目清明,虽无十分姿色,却亦有动人之处。雨村不觉看的呆了。
那甄家丫鬟撷了花,方欲走时,猛抬头见窗内有人,敝巾旧服,虽是贫窘,然生得腰圆背厚,面阔口方,更兼剑眉星眼,直鼻权腮。这丫鬟忙转身回避,心下乃想:“这人生的这样雄壮,却又这样褴褛,想他定是我家主人常说的什么贾雨村了,每有意帮助周济,只是没甚机会。我家并无这样贫窘亲友,想定是此人无疑了。怪道又说他必非久困之人。”如此想来,不免又回头两次。雨村见他回了头,便自为这女子心中有意于他,便狂喜不尽,自为此女子必是个巨眼英雄,风尘中之知己也。一时小童进来,雨村打听得前面留饭,不可久待,遂从夹道中自便出门去了。士隐待客既散,知雨村自便,也不去再邀。
一日,早又中秋佳节。士隐家宴已毕,乃又另具一席于书房,却自己步月至庙中来邀雨村。原来雨村自那日见了甄家之婢曾回顾他两次,自为是个知己,便时刻放在心上。今又正值中秋,不免对月有怀,因而口占五言一律云:
未卜三生愿,频添一段愁。
闷来时敛额,行去几回头。
自顾风前影,谁堪月下俦?
蟾光如有意,先上玉人楼。
雨村吟罢,因又思及平生抱负,苦未逢时,乃又搔首对天长叹,复高吟一联曰:
玉在椟中求善价,钗于奁内待时飞。
恰值士隐走来听见,笑道:“雨村兄真抱负不浅也!”雨村忙笑道:“不过偶吟前人之句,何敢狂诞至此。”因问:“老先生何兴至此?”士隐笑道:“今夜中秋,俗谓‘团 圆之节’,想尊兄旅寄僧房,不无寂寥之感,故特具小酌,邀兄到敝斋一饮,不知可纳芹意否?”雨村听了,并不推辞,便笑道:“既蒙厚爱,何敢拂此盛情。”说着,便同士隐复过这边书院中来。
须臾茶毕,早已设下杯盘,那美酒佳肴自不必说。二人归坐,先是款斟漫饮,次渐谈至兴浓,不觉飞觥限斝起来。当时街坊上家家箫管,户户弦歌,当头一轮明月,飞彩凝辉,二人愈添豪兴,酒到杯干。雨村此时已有七八分酒意,狂兴不禁,乃对月寓怀,口号一绝云:
时逢三五便团 圆,满把晴光护玉栏。
天上一轮才捧出,人间万姓仰头看。
士隐听了,大叫:“妙哉!吾每谓兄必非久居人下者,今所吟之句,飞腾之兆已见,不日可接履于云霓之上矣。可贺,可贺!”乃亲斟一斗为贺。雨村因干过,叹道:“非晚生酒后狂言,若论时尚之学,晚生也或可去充数沽名,只是目今行囊路费一概无措,神京路远,非赖卖字撰文即能到者。”士隐不待说完,便道:“兄何不早言。愚每有此心,但每遇兄时,兄并未谈及,愚故未敢唐突。今既及此,愚虽不才,‘义利’二字却还识得。且喜明岁正当大比,兄宜作速入都,春闱一战,方不负兄之所学也。其盘费馀事,弟自代为处置,亦不枉兄之谬识矣!”当下即命小童进去,速封五十两白银,并两套冬衣。又云:“十九日乃黄道之期,兄可即买舟西上,待雄飞高举,明冬再晤,岂非大快之事耶!”雨村收了银衣,不过略谢一语,并不介意,仍是吃酒谈笑。那天已交 了三更,二人方散。
士隐送雨村去后,回房一觉,直至红日三竿方醒。因思昨夜之事,意欲再写两封荐书与雨村带至神都,使雨村投谒个仕宦之家为寄足之地。因使人过去请时,那家人去了回来说:“和尚说,贾爷今日五鼓已进京去了,也曾留下话与和尚转达老爷,说‘读书人不在黄道黑道,总以事理为要,不及面辞了。’”士隐听了,也只得罢了。
真是闲处光陰易过,倏忽又是元宵佳节矣。士隐命家人霍启抱了英莲去看社火花灯,半夜中,霍启因要小解,便将英莲放在一家门槛上坐着。待他小解完了来抱时,那有英莲的踪影?急得霍启直寻了半夜,至天明不见,那霍启也就不敢回来见主人,便逃往他乡去了。那士隐夫妇,见女儿一夜 不归,便知有些不妥,再使几人去寻找,回来皆云连音响皆无。夫妻二人,半世只生此女,一旦失落,岂不思想,因此昼夜啼哭,几乎不曾寻死。看看的一月,士隐先就得了一病,当时封氏孺人也因思女构疾,日日请医疗治。
不想这日三月十五,葫芦庙中炸供,那些和尚不加小心,致使油锅火逸,便烧着窗纸。此方人家多用竹篱木壁者,大抵也因劫数,于是接二连三,牵五挂四,将一条街烧得如火焰山一般。彼时虽有军民来救,那火已成了势,如何救得下?直烧了一夜 ,方渐渐的熄去,也不知烧了几家。只可怜甄家在隔壁,早已烧成一片瓦砾场了。只有他夫妇并几个家人的性命不曾伤了。急得士隐惟跌足长叹而已。只得与妻子商议,且到田庄上去安身。偏值近年水旱不收,鼠盗蜂起,无非抢田夺地,鼠窃狗偷,民不安生,因此官兵剿捕,难以安身。士隐只得将田庄都折变了,便携了妻子与两个丫鬟投他岳丈家去。
他岳丈名唤封肃,本贯大如州人氏,虽是务农,家中都还殷实。今见女婿这等狼狈而来,心中便有些不乐。幸而士隐还有折变田地的银子未曾用完,拿出来托他随分就价薄置些须房地,为后日衣食之计。那封肃便半哄半赚,些须与他些薄田朽屋。士隐乃读书之人,不惯生理稼穑等事,勉强支持了一二年,越觉穷了下去。封肃每见面时,便说些现成话,且人前人后又怨他们不善过活,只一味好吃懒作等语。士隐知投人不着,心中未免悔恨,再兼上年惊唬,急忿怨痛,已有积伤,暮年之人,贫病交 攻,竟渐渐的露出那下世的光景来。
可巧这日拄了拐杖挣挫到街前散散心时,忽见那边来了一个跛足道人,疯癫落脱,麻屣鹑衣,口内念着几句言词,道是:
世人都晓神仙好,惟有功名忘不了!
古今将相在何方?荒冢一堆草没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金银忘不了!
终朝只恨聚无多,及到多时眼闭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姣妻忘不了!
君生日日说恩情,君死又随人去了。
世人都晓神仙好,只有儿孙忘不了!
痴心父母古来多,孝顺儿孙谁见了?
士隐听了,便迎上来道:“你满口说些什么?只听见些‘好’‘了’‘好’‘了’。”那道人笑道:“你若果听见‘好’‘了’二字,还算你明白。可知世上万般,好便是了,了便是好。若不了,便不好;若要好,须是了。我这歌儿,便名《好了歌》”士隐本是有宿慧的,一闻此言,心中早已彻悟。因笑道:“且住!待我将你这《好了歌》解注出来何如?”道人笑道:“你解,你解。”士隐乃说道:
陋室空堂,当年笏满床 ,衰草枯杨,曾为歌舞场。
蛛丝儿结满雕梁,绿纱今又糊在蓬窗上。
说什么脂正浓,粉正香,如何两鬓又成霜?
昨日黄土陇头送白骨,今宵红灯帐底卧鸳鸯。
金满箱,银满箱,展眼乞丐人皆谤。
正叹他人命不长,那知自己归来丧!训有方,保不定日后作强梁。
择膏粱,谁承望流落在烟花巷!因嫌纱帽小,致使锁枷杠;昨怜破袄寒,今嫌紫蟒长:乱烘烘你方唱罢我登场,反认他乡是故乡。甚荒唐,到头来都是为他人作嫁衣裳!
那疯跛道人听了,拍掌笑道:“解得切,解得切!”士隐便说一声“走罢!”将道人肩上褡裢抢了过来背着,竟不回家,同了疯道人飘飘而去。当下烘动街坊,众人当作一件新闻传说。封氏闻得此信,哭个死去活来,只得与父亲商议,遣人各处访寻,那讨音信?无奈何,少不得依靠着他父母度日。幸而身边还有两个旧日的丫鬟伏侍,主仆三人,日夜作些针线发卖,帮着父亲用度。那封肃虽然日日抱怨,也无可奈何了。
这日,那甄家大丫鬟在门前买线,忽听街上喝道之声 ,众人都说新太爷到任。丫鬟于是隐在门内看时,只见军牢快手,一对一对的过去,俄而大轿抬着一个乌帽猩袍的官府过去。丫鬟倒发了个怔,自思这官好面善,倒像在那里见过的。于是进入房中,也就丢过不在心上。至晚间,正待歇息之时,忽听一片声打的门响,许多人乱嚷,说:“本府太爷差人来传人问话。”封肃听了,唬得目瞪口呆,不知有何祸事。| 원작 조설근, 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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