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운은 왜 보옥에게 가모를 통해서 자기를 데리러오게 했을까?
襁褓中父母嘆雙亡 (강보에 싸였을 때 부모가 다 죽어)
縱居那綺羅從 (여자들에게 맡겨 놓았더니)
誰知嬌養? (응석받이로 자랄 줄 뉘 알았으리요?)
이것은 『홍루몽紅樓夢』의 가곡歌曲 『악중비樂中悲』의 서두에 나오는 두 가락으로, 사상운史湘雲이 어려서 부모 모두가 세상을 떠나서, 숙부네와 같이 살면서 생활상으로는 비록 부유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러나 사랑은 많이 받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또 교류할 수 있는 어머니의 형제자매가 없고, 집에서는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바느질 같은 것도 자신이 해야 해서, 그녀는 때때로 삼경三更이 될 때까지 일하는 등 매우 피곤하게 살았으며,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해주어도, 숙모와 할머니는 모르는 척했다.
바로 탐춘이 말한, “우리 같은 집안은 바깥에서 우리를 보면, 천금만금 같은 아가씨들이 즐겁지 않을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예상외로 우리가 있는 이곳은 말하기 어려운 번민이 더 심하다”라는 것과 같다.
사상운도 마찬가지로, 관료대신의 가정에서 태어난 천금같이 귀한 아가씨이나 부모가 없으니, 고뇌가 여러 가지로 많았을 것이다. 자기 집안의 하인들 면전에서는, 감히 불만의 감정을 표출하지도 못했는데, 하인들이 외삼촌댁에게 고해 바쳐 학대를 받을까 두려워서였다.
이렇게 볼 때, 상운으로서는 대관원大觀院은 낙원인 셈이다. 그녀에게는 가모가 후원자인 것이다. 가모가 사상운을 데리러 사람을 보내면, 그녀의 외숙모도 당연히 막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상운은 어려서 보옥寶玉과 가모賈母 곁에서 같이 생활해서, 그들은 사이가 좋은 오빠와 여동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가보옥은 늘상 “여동생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사상운의 머리를 빗기기 위하여 얼러대곤 했었기 때문이다.
보옥은 또 가모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직 보옥만이 사상운을 데리러 사람을 보내라고 제의할 수 있었고, 가모도 거절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언젠가 사상운은 가부賈府를 떠났다가 돌아올 때, 특별히 보옥에게 불러달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때때로 보옥에게 부탁하여 가모가 자기를 데려오게 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자매들은 해당시사海棠詩社를 창립하게 되었다. 보옥은 사상운을 잊은 것을 생각해내고, 즉시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했는데, 밤이 깊었기 때문에, 내일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일찍, 보옥은 가모를 재촉하여 데리러 보냈는데, 과연 정오쯤에 사상운이 왔다. 사상운의 성격은 호방하고 시원스럽고 솔직하여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또 시詩에 재주가 뛰어났다.
만약에 사상운이 없었더라면, 대관원의 시사詩社도 손색이 있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직 대관원 안이기 때문에, 사상운은 시에 대한 흥취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해당시사海棠詩社”에 참석하러 온 그녀는 막 들어서자마자 운韻에 맞춰 두 수首를 지은 것이다.
모두들 말하길, “우리는 4 수를 지었더니, 생각이 끊어진 것 같아 더 이상은 한 수도 못 짓겠는데, 너는 한 번에 2 수나 짓다니, …….”라고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사상운의 숙부가 승진하여 변방으로 가족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가모는 사상운에게 따라가지 말고 대관원에 와서 설보채薛寶釵가 거주하는 형무원蘅蕪苑에 같이 있게 했다.
이때가 아마도 그녀가 혼인하기 전에 비교적 마음 편하게 생활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아름답고 원만했던 혼인은 확실히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관원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다고 말할 수 있다.
红楼梦曲《乐中悲》写的是谁原文及赏析
千面之神种一棵树最好的时间是十年前,其次是现在
【导语】:《红楼梦曲十四首(其六)》乐中悲 乐中悲 襁褓中,父母叹双亡。纵居那绮罗丛,谁知娇养?幸生来,英豪阔大宽宏量,从未将儿女私情略萦心上。好一似,霁月光风耀玉堂。厮配得才貌仙郎,博
《红楼梦曲十四首(其六)》乐中悲
乐中悲
襁褓中,父母叹双亡。纵居那绮罗丛,谁知娇养?幸生来,英豪阔大宽宏量,从未将儿女私情略萦心上。好一似,霁月光风耀玉堂。厮配得才貌仙郎,博得个地久天长。准折得幼年时坎坷形状。终久是云散高唐,水涸湘江。这是尘寰中消长数应当,何必枉悲伤!
这支曲子是咏史湘云的。写史湘云不幸的身世,豪爽的性格,预示其曾有短暂的美满婚姻,但好景不长,很快便“云散”、“水涸”,最终还是乐中生悲的结局。全曲以史湘云自伤自叹的第一人称写出。
史湘云是《红楼梦》中仅次于贾宝玉、林黛玉和薛宝钗的主要人物之一。她出身豪门,是贾母史太君的娘家侄孙女,自幼父母双亡,由叔父忠靖侯史鼐抚养。因为这时的史家已非“阿房宫,三百里,住不下金陵一个史”的时代,加之婶娘待她不好,所以这位侯门千金“在家里竟一点儿作不得主”,甚至连日常针线活儿也靠自己动手。叔父迁升外任,贾母才将她接到贾府暂住。史湘云生性开朗,爽直,待人热诚,坦荡,天真烂漫,胸无城府,大声说笑,毫无顾忌,又常作男孩儿打扮,与宝、黛等人饮酒、行令,捋袖划拳,只要有她在场,大观园内总是欢声笑语。史湘云这种浑金璞玉般的性格使她在这女儿世界中别具一种风采。芦雪庵割腥啖膻时,那番“是真名士自风流”的高论,醉卧芍药裀那娇憨不羁的情态,更是足以令一切迂阔矜持的假清高者自惭形秽。有人称“宝玉须眉而巾帼,湘云巾帼而须眉”,正道出了史湘云性格中这种丈夫气概、阳刚之美的特点。但是,同《红楼梦》中众多女子一样,史湘云最终也逃不脱悲剧的结局,在她乐观、豁达的背后正隐藏着悲苦的厄运。
首二句“襁褓中,父母叹双亡”,写史湘云还在婴儿时期即失去了父母,足见其身世之苦。襁褓,包裹婴儿用的衣、被之类。“父母叹双亡”应作“叹父母双亡”读。“纵居”二句,写寄养叔家之苦。湘云虽然出身于豪门贵族,但因父母早逝,寄人篱下而无缘享受到父母般的爱抚。绮罗,绫罗绸缎的泛称。绮罗丛,是对富贵人家优裕生活环境的形象化说法。以上四句具体描写湘云幼年的不幸。
“幸生来”之句,写湘云性格豪爽、豁达、天真无邪,从未把儿女私情放在心上。史湘云在大观园的日子里,与众姐妹相处坦然,毫无心机,即使在与宝玉的往来中也是两小无猜、一片纯情。她是大观园中一位坦坦荡荡的真君子、伟丈夫。“好一似,霁月光风耀玉堂”句,比喻其胸襟坦荡、光明磊落犹如雨过天晴后的风和月,洁净无比。宋·黄庭坚《濂溪诗序》:“舂陵周茂叔(敦颐),人品甚高,胸中洒落,如光风霁月。”雨后或雪转晴为霁。全句是说,史湘云品格高洁、胸怀坦率,就像雨过天晴后月光照耀下的白玉殿堂那样洁美无瑕。
“厮配得”句,是说湘云也曾有过短暂的美满婚姻,嫁给了一位“才貌仙郎”。厮配,匹配之意。“博得”二句,则是史湘云对婚后生活的向往。她希望能与这位才貌双全的仙郎天长地久,白头偕老,永远相爱,以此来抵销她幼年时代所经受的艰辛与坎坷。准折,二者折价相抵的意思。坎坷,原指道路崎岖不平状,引申为人生经历的艰难、曲折。史湘云幼年丧失父母,被叔婶收养,过着寄人篱下的日子,故曰“幼年坎坷”。“终久是云散高唐,水涸湘江”句,暗寓湘云的名字,预示湘云的婚姻悲剧。高唐,用宋玉《高唐赋》中楚怀王游高唐,梦中与巫山神女相欢会的典故。湘江,用舜帝之妻娥皇、女英二妃死后为湘水之神的典故。此处用“云散”、“水涸”来比喻男女欢乐成空,暗示史湘云婚后幸福生活极其短暂,很快便夫妇离散了。
末二句“这是尘寰中消长数应当,何必枉悲伤”,是史湘云自我宽慰语。湘云虽则心胸开阔、性情豁朗,但对其自身这种悲惨遭际最后也只能以命中注定来宽解自己。尘寰,即尘世。消长,指事物的增减、盛衰、盈虚、生死等现象。数,即气数、命运。数应当,是说气数已尽,在劫难逃。既然消长有定,气数已尽,枉自悲伤又有何用呢!依然是史湘云旷达豁朗的性格表现。
全曲悲壮、豪放,挥洒自如,颇具史湘云风姿,堪称曲如其人。脂砚斋称赞它“悲壮之极,北曲中不能多得”。这话是不错的。
曲中说“厮配得才貌仙郎”,那么这“才貌仙郎”是谁呢?他们的结局到底怎样的不幸呢?续书未作精细描述。对此,红学界历来说法不一。有人根据原稿第三十一回的脂评“后数十回若兰射圃所佩之麒麟,正此麒麟也”等有关材料,推测史湘云后来“厮配”的这位“才貌仙郎”即第十四回曾出现过的颇有侠气的贵族公子卫若兰。既称“才貌仙郎”,当然是一对称心如意的美满姻缘,可惜为时不久,便由于某种原因而“云散高唐”、“水涸湘江”了。他们并从第三十一回“因麒麟伏白首双星”的回目上推断史湘云与卫若兰一直到老都过着双星分离的生活。也有人根据有关材料推测说,史湘云后来沦为乞丐,嫁给了落魄后以击钵为业的贾宝玉,最后又分了手。更有人进一步推断,史湘云嫁给贾宝玉可能是在宝玉第一次出家还俗之后,但不久贾宝玉又一次受到打击,终于被迫与史湘云分手,再一次出家,并被茫茫大士、渺渺真人点破尘缘,带回到青埂峰去“复还本质,以了此案”了。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불경일사,부장일지不經一事,不長一智(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일에 대한 지식을 늘릴 수 없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他娘笑道: “小蹄子, 你走罷. 俗語道: ‘不經一事,不長一智. 我如今知道了. 你又該來支問着我.” (第六十回)
[해석문]
그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년아, 가기나 해라. 속담에 말하기를, ‘불경일사,부장일지’不經一事,不長一智(경험하지 않고서는, 그 일에 대한 지식을 늘릴 수 없다/한 가지 일을 겪으면 한 가지 지혜가 생긴다)라고 하지 않더냐. 나도 이젠 알았는데, 너는 나한테 또 따지는 거냐.” (제 60회)
[명언고사]
보옥寶玉의 거처에 있는 어린 하녀 춘연春燕과 그녀의 모친이 옥신각신했는데, 보옥이 권고로 의문을 풀렸다. 두 사람은 걸어 나오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춘연이 자기 엄마에게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어머니한테 권했지만, 언제나 믿지 않더니, 쓸데없이 망신을 당하고 말았잖아요.”
그녀의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년아, 어서 가기나 해라. 속담에 말하기를, ‘한 가지 일을 겪으면, 지혜도 하나 느는 법이다’라고 하잖아. 나도 이젠 알았는데, 너는 나한테 또 따지는 거냐.”
춘연이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분수를 지키면서 여기서 오래 잘 있으면,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거예요. 알려드릴 말이 있는데요. 보옥 도련님은 늘상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안에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우리 모두를 마님께 말씀드려서 본인들 부모와 함께 살도록 다 풀어준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되면 좋겠지요?”
그녀의 모친은 그 말을 듣고 “정말로 그렇게 해준다더냐?”라고 물었다.
춘연은,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모친은 기뻐서 연신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홍루몽이야기
탐춘探春 등이 시사詩詞에서 지은 별호는 무슨 뜻을 지니고 있나?
『홍루몽紅樓夢』 제 37회에, ‘대관원 안에 있는 자매들은 탐춘探春의 제안으로 시사詩詞를 결성하여 동산東山에서 모임을 계속했는데, 참여자는 거의 여자들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비록 힘 있게 말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규방에 있는 규수들의 시사여서, 모두들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심리적으로도 약간은 주저하는 바가 있어서, 자매들과 시동생 형수들의 별호를 각기 지었다.
탐춘探春이 취한 별호는 “초하객蕉下客”인데,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 오동나무와 파초가 있기 때문이다. 기실 “초엽부록樵葉覆鹿”의 전고典故를 암시하고 함축하고 있는데, 이것은 임대옥林黛玉이 지은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주周 왕조 때의 정鄭나라에서 한 나무꾼이 사슴 한 마리를 죽여서, 파초(蕉파초 초, 樵땔나무 초) 아래에 감추어 놓고는, 사슴을 감춘 장소를 잊어버리고는, 자기가 한 바탕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초록蕉鹿”은 세상사의 변환이 예측할 수 없다는 비유로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임대옥의 별호는 탐춘이 “소상비자蕭湘妃子”라고 지어 주었는데, 탐춘은 취한 뜻을 분명하게 말했다.
“당시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흘린 눈물이 대나무에 점이 되어, 그래서 반죽班竹의 이름을 상비죽湘妃竹이라고도 불러요. 현재 그녀가 소상관蕭湘館에 살고 있는데다, 울기를 잘하니, 장래에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그리워하게 되면, 이 대나무들도 반죽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이니, 이후로 그녀가 지은 작품을 모두 “소상비자”라고 하면 될 거에요”
탐춘의 말로 대옥이 눈물을 다 흘리고 나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빗대고 보여준 것이다.
설보채薛寶釵가 취한 별호는 “형무군蘅蕪君”인데, 그녀가 “형무원蘅蕪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안에도 전고典故를 함유하고 있는데, 전해지는 말이 있다. 한무제漢武帝가 세상을 떠난 이부인李夫人을 그리워하다가 꿈에서 만났을 때, 이부인에게서 받은 “형무지향蘅蕪之香”은 꿈을 깨고서도 그 향기가 달포나 없어지지 않아서, 무제는 그 방을 “유방몽실遺芳夢室”이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로써 설보차의 앞일을 알 수가 있겠다.
가보옥賈寶玉의 별호는 “강동화왕絳洞花王”이다. 지연재脂硯齋는 그가 쓴 지비脂批에서 『홍루몽』의 결말은 원래 하나의 “정방情榜”이라고 제시했는데, 12 명의 규수와 36 명의 이름이 있는데, 이 36 명을 모두 각기 꽃으로 표현하여, 보옥을 정방의 선두에 놓았는데, 이것은 바로 “화왕花王”에 내포된 뜻으로, “강동絳洞”(강絳은 진홍색을 말함)은 그의 전신前身이 “적하궁赤瑕宫”에 있었던 것을 빗대고 있고, 또 그가 현재 “이홍원怡紅院”에 살고 있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사상운史湘雲이 사용하게된 별호는 “침하구주枕霞舊主”로, 외조모인 가모賈母의 친정 사가史家의 정원 연못에 “침하각枕霞閣”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가모는 자기가 어렸을 때 그 연못에 빠졌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상운도 침하의 옛 주인이라고 할 수가 있기에, 그래서 별호를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제 62회에, 상운이 “작약꽃이 그려진 베개를 보자기에 싸서 안고서”, 몸은 “반쯤은 낙화에 파묻혀서”라고 한 것은 일종의 “침하枕霞”인 것이다. 아마도 이 또한 무슨 함의含意가 있을 것이다.
가보옥의 형수 이환李紈의 별호는 “도향노농稻香老農”이고, 영춘迎春의 별호는 “릉주菱洲, 석춘惜春의 별호는 “우사藕榭인데, 그들이 사는 장소에서 이름을 취한 것이다. 대체로 이환, 영춘, 석춘은 시사를 잘 짓지 못했지만, 다만 시사를 돋보이게 하고자, 간단하게 별호를 지었던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칭심여의称心如意 (마음에 꼭 들다/자기 마음에 완전히 부합되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紫鵑笑道: “倒不是白嚼蛆, 我倒是一片眞心爲姑娘. 替你愁了這畿年了, 無父母無兄弟, 誰是知痛着熱的人? 趁早兒老太太還明白硬朗的時節, 作定了大事要緊. 俗語說, 老健春寒秋後熱, 倘或老太太一時有个好歹, 那時雖也完事, 只怕耽誤了時光, 還不得趁心如意呢.” (第五十七回)
[해석문]
자견이 웃으면서 말했다. “쓸데없이 지껄인 것이 아니고요. 저는 정말로 진심으로 아가씨를 위하고 있어요. 아가씨를 위해서 몇 년 동안 근심하고 있는데, 부모님도 안계시고 형제도 없으니, 누가 아파하며 잘해 주겠어요? 노마님께서 아직 정정하실 때, 하루빨리 대사를 결정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속담에도, ‘노인네 건강은 봄날 추위나 가을 더위처럼 그저 잠시일 뿐’이라고 했는데, 혹시라도 노마님께서 나쁜 일이 있게 되면, 그때도 비록 대사를 정할 수는 있다 해도, 그저 시기를 놓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 57회)
[명언고사]
자견紫鵑은 대옥黛玉에게 자매와 같은 정으로 대하며, 한시 한때도 떨어져 지내지 않았다. 그녀는 대옥이 고아이고 또 보옥과 서로 아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일심으로 보옥과 대옥의 혼사를 빨리 정해서 대옥이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임林씨 댁에서 대옥을 고향인 소주蘇州로 데려간다는 말로 보옥의 마음을 떠보고, 또 대옥에게는 노마님이 정정할 때 보옥과의 혼사를 결정해 놓으라고 권했다. 그날 야심해서 사람들이 조용해졌을 때, 자견은 대옥과 마음속 얘기를 했다.
자견은 혼잣말로 말하기를, “자극하는 것이 조용히 있는 것보다 나아요. 우리가 사는 이곳은 좋은 집안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른 것은 다 쉬운 편이에요. 가장 어려운 것은 어려서 한 곳에서만 커서, 피차 서로 성격을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대옥이 한 마디 했다.
“넌 요새 피곤도 안하니? 쉬기나 할 것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자견이 웃으면서 말했다.
“쓸데없이 지껄이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진심으로 아가씨를 위하고 있어요. 아가씨를 위해서 몇 년 동안 근심하고 있는데, 부모님도 안계시고 형제도 없으니, 누가 아파하고 누가 잘해 주겠어요? 노마님께서 아직 정정하실 때, 하루빨리 대사를 결정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속담에도, ‘노인네 건강은 봄날 추위나 가을 더위처럼 그저 잠시일 뿐’이라고 했는데, 혹시라도 노마님께 나쁜 일이 있게 되면, 그때도 비록 대사를 정할 수는 있다고 해도, 그저 시기를 놓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세상에 많고 많은 귀공자나 왕손자손들은 누구나 첩을 둘 셋은 다 둔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동쪽에 내일은 서쪽으로 오가며 그냥 선녀 같은 미인만 취하려고 하지요. 그래봤자 삼사일 저녁이면 싫증내고 뒤도 안돌아보고 잊어버리고, 심지어 첩이나 시녀 때문에 본처와는 원수처럼 되거든요. 만약 친정집에 권세가 좀 있으면 그래도 괜찮지만요. 아가씨와 같은 처지라면, 노마님이 계시는 동안에는 잘 지내겠지만, 노마님께서 안 계시게 되면 사람들이 업신여기게 될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요, 빨리 방법이 내야 되요. 아가씨는 사리가 밝은 분이면서, 어떻게 속담도 들어보지 못하셨어요? ‘황금 만 냥은 얻기 쉽지만,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구하기는 어렵다’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들은 대옥은 대단히 비감해져서, 자견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또 밤새도록 흐느끼며 울었다.
왕부인王夫人은 왜 매달 자기 “월전月錢”에서 2 냥을 습인襲人에게 떼어주었나?
보옥寶玉의 시녀 습인襲人의 성은 원래 화花 씨이고, 이름은 진주珍珠인데, 영국부榮國府에서 낳은 아이가 아니고 밖에서 사서 들여온 시녀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가모賈母의 시중을 들었는데, 사상운史湘雲이 가모와 같이 있었을 때는, 사상운도 보살폈었다. 습인이 주인을 섬길 때에 전심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가모는 그녀를 손자 가보옥賈寶玉에게 보냈던 것이다.
가부의 풍속에 의거하여, 남자 주인이 자라서 정식으로 아내를 취하기 전에 먼저 두 명의 시녀를 첩으로 삼아 시중을 들게 했는데, 체통이 있는 시녀로 부르거나, 혹은 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보옥이 태허환경太虛幻境의 꿈을 꾸고 난 뒤에, 습인에게 경환선고警幻仙姑가 가르쳐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해보자고 했을 때, 습인이 마다하지 않은 것은, 가모가 자기를 가보옥에게 주려고 한 것을 알고 있어서, 가보옥과 몰래 시험해 본 것이었다.
습인은 시녀들 중에서, 근면함으로 가모와 왕부인의 환심을 샀는데, 가보옥의 평소 생활에 대한 것은 습인에게 맡겨야 그녀들은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 영국부에서 원소절元宵節에 연회를 열어서, 습인이 어머니의 상례喪禮에 가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가모는 조금 기분이 불쾌했다.
왕희봉이 설명하기를, 그녀는 세심하게 대관원을 보살피고 있어서, 만약에 그녀가 참석한다면, 모두가 마음이 안 놓일 터이고, 보옥 도련님이 연회가 파하여 거처로 돌아갔을 때. 이불은 데워놓지 않아 차가울 것이고, 찻물도 준비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해서, 그제야 화가 풀린 가모는 습인이 그렇게 한 것을 칭찬까지했다.
노복들을 대할 때는, 습인은 그들의 말에 동조를 잘했는데, 가령 다른 사람이 그녀를 오해해도 그녀는 참으면서 화를 내지 않았다.
예를 들면 보옥의 유모 이마마李嬷嬷가 잘못을 저질러도 습인은 줄곧 그녀의 잘못을 덮어 주었다. 한번은 설보채薛寶釵의 집에서, 이마마가 보옥에게 술을 못 마시게 했는데, 화가 잔뜩 난 보옥은 돌아와서는 곧장 가모에게 가서 당장 쫓아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습인은 보옥을 막으며 못가게 했다.
또 가보옥이 습인에게 주려고 요구르트 한 그릇을 남겨 놓은 적이 있는데, 이마마가 습인에게 남겨 놓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홧김에 마셔버렸다. 보옥이 또 화를 내니까, 습인은 속이 안 좋다고 하면서, “그분이 잡수신 게 더 나아요, 안 그러면 공연히 버릴 뻔 했잖아요”라고 말하면서, 보옥이 까준 밤을 먹으면서, 상황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또 다시 예를 들면, 청문晴雯이 보옥과 말씨름을 한 적이 있는데, 화가 난 보옥이 왕부인에게 그녀를 내쫓으라고 말하러 가려고 했을 때도, 보옥을 달래며 격화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서, 시녀들 사이에서는, 습인은 현명한 사람으로 이름나 있었다.
왕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보옥에 대한 마음 씀씀이나, 혹은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아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나서는, 원래의 생각이 조금 바뀌어서 좋은 인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왕부인이 습인을 중시하게 된 것은, 보옥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뒤에, 습인이 왕부인에게 마음속의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완전히 그녀를 신임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습인이 왕부인에게 가보옥을 대관원에서 내보내라고 제의했는데, 이유는 아가씨들이 다 컸다는 것이다. 보옥과 그녀들이 밤에 같이 있는 것은 좋지 않으므로, 만약에 생각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보옥의 품행에 대한 명성을 지키는 것이어서, 만약에 이 방면에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왕부인도 남편 가정賈政에게 설명하기가 곤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습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왕부인은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바로 왕부인 스스로 말했듯이, “아들을 잘 보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보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부와 같은 봉건가정의 관계에서는, 왕부인이 비록 정실부인이기는 하나, 장남인 가주賈珠는 이미 죽고 없고, 맏딸로 황제의 비妃가 된 원춘元春의 지위가 존귀하지만, 집안일에는 결정은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일한 의지는 바로 아들 가보옥인 것이다.
오직 보옥이 뜻밖의 일만 일으키지 않고, 품위를 보전하게 되면, 설사 관료로서 출세를 하지 못한 다고 해도, 집안에서 입장을 제대로 세울 수가 있고, 왕부인도 영국부에서의 지위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안 그러면, 다른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왕부인은 당연히 다른 종류의 국면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왕부인은 엄마와 아들의 체면과 명성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우쳐준 습인에게 감격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왕부인은 마음 놓고 보옥을 습인에게 맡기고, 또 자기 “월전月錢”에서 매월 2 냥을 떼어서 습인에게 주고, 습인의 대우를 첩과 똑같게 한다고 제의했는데, 사실상 습인을 첩의 신분으로 묵인한 것이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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