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함蔣玉菡의 땀수건은 어떻게 습인襲人의 수중에 오게 되었나?
가보옥賈寶玉은 선비이며 벼슬아치 집안의 공자公子지만, 그는 낮은 층의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좋아하는 천성을 지녔는데, 예를 들면 유상련柳湘蓮과 장옥함蔣玉菡 같은 사람이다.
유상련도 본래는 명문의 자제이나 부모를 일찍 여의어서 학문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창검으로 검무를 잘 추고 주색을 즐기며, 외모는 젊고 준수하고 연기하기를 좋아했지만, 그러나 난봉꾼은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다.
장옥함으로 말하자면, 또 다른 사정이 있다. 그는 충순친왕忠顺亲王이 자신의 신변에 있도록 한 사람이다. 충순친왕은 집안에 연극반(戱班)을 가지고 있는데, 장옥함은 연극반에서 소단小旦(중국전통극에서 젊은 여자 역의 칭호)역을 맡아 노래하는 사람인데, 예명이 기관琪官이다.
장옥함과 같은 이런 전통극 배우의 칭호를 폄하하여 “유령优伶”이라고 불렀는데, 당시 중국사회에서는 걸인이나 창기와 같은 사람으로 간주하여 아주 비천한 대우를 받았다. 풍자영馮紫英의 집에서 마련한 연회에서 가보옥은 그와 사귀게 되었다.
주연에서, 보옥이 주령酒令(술자리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하는 벌주놀이)놀이를 할 때, “비수희락悲愁喜樂”을 써서 네 구절을 말하는 규칙을 제의했다. 술자리에서 놀 때는 저속한 노래를 하는데, 술자리에 있는 물건으로 고시古詩나 고문古文과 상관있게 불러야했다.
장옥함은 자기 차례가 되자, 그는 “비수희락”을 써서 노래를 마치고는 술 한 잔을 마시고, 농담을 했다.
“이 시사詩詞는 제게는 오히려 한계가 있습니다. 다행이도 어제 한 대구를 읽은 것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구절만 기억납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 물건이 여기에 있습니다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술을 다 마시고는, 서목나무 꽃봉오리를 집어 들고, 읊었다. 시 구절은 남송南宋 시인 육유陸游의 ⌜촌거희서村居喜書⌟에 있는 구절이다.
“花氣襲人知晝暖” (꽃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들으니 따뜻한 대낮인줄 알겠구나)
장옥함이 막 말을 마치자, 설반薛蟠이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이 자리에는 보배도 없거늘, 그대는 어떻게 보배를 읊느뇨?”
풍자영과 장옥함이 모두 무슨 연고인지 몰라 하자, 기녀妓女 운아雲兒가 말해 주었다. 원래 보옥의 신변에 “습인襲人”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녀가 있다는 것이다.
“화기습인지주난”은 가보옥이 습인에게 이름 지어 줄 때에 이 시 구절을 근거로 한 시 구절인데, 습인의 성씨가 화花이었으므로, 일부러 그녀를 화습인花襲人이라 한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장옥함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옥에게 사과했다. 보옥이 화장실에 가기를 기다린 장옥함은 따라가서 재차 잘못을 청하였다. 그렇게 해서 비록 처음 만났지만, 의기가 투합하여 지기知己가 되기로 하였다.
그래서 가보옥이 가지고 다니던 부채에 달린 옥을 풀어서 선사하자, 장옥함은 차고 있던 붉은 비단 수건을 끌러서 보옥에게 주면서, 북정왕北静王이 그에게 준 것인데, 천향국茜香國 여왕의 공물貢物이라고 말했다. 보옥은 또 자기가 지니고 있던 땀수건을 그에게 주었다.
그날 밤에 보옥이 진홍빛의 땀수건을 차고 있는 것을 본 습인은 자기가 만들어준 땀수건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원망하자, 보옥은 그 붉은 비단 수건을 살그머니 습인의 허리에다 매주었다.
소설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曹雪芹이 작품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후인들에게 많은 의문점을 남겨 주었는데, 사람들은 추측을 그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왕왕 제 5 회에서 태허환경太虛幻境의 “박명사薄命司” 안에 있는 책자의 판결문과 『홍루몽』 의 가락으로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결말을 추단하고 있다.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우부책又副冊의 제 2 페이지에, “画着一簇鲜花、一床破席”( 한 무더기의 신선한 꽃과 망가진 돗자리가 있는 침대가 그려 있고)에 나오는 글귀 몇 마디가 있다.
枉自温柔和顺 (온순함과 상냥함이 쓸모없고)
空雲似桂如蘭 (향기로운 난초와 계화는 헛된 말이었네)
堪羨优伶有福 (결국에는 배우에게 복이 되었으니)
誰知公子無緣 (공자와는 인연이 아닌 것을 누가 알았으리)
책자에서 “선화鮮花”(신선한 꽃)과 “파석破席”(망가진 돗자리)는 “화습인花襲人”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판결문에 있는 “온유温柔”는 가보옥에게 따뜻하고 순종적으로 대하는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 “사계여란似桂如蘭”은 계화나무 같고 난초 같은 화습인의 성품을 표현한 일종의 방법이다.
이런 사람은 결국에는 연극배우와의 인연이 있고, 공자公子와의 인연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복이 있는 연극배우는 누구란 말인가? 유상련은 다만 아마추어로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니, 연극배우는 아닌 것이다. 책에서 신경을 써서 묘사한 이는, 바로 장옥함인 것이다. 공자는 더욱 다른 사람이 아닌, 즉 가보옥이다.
설령 습인이 가보옥에게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하여서, 심지어 왕부인王夫人은 말은 안했지만, 실제상으로는 첩의 신분을 주었는데, 공자와는 인연이 없는 바가 되었으니, 습인도 결국은 가보옥의 신변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만약에 이런 분석과 추측이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붉은 비단이 가보옥을 통하여 습인의 허리에 매어지게 된 것도, 아마도 이런 운명적인 인연이 있음을 암시하여 준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전와以訛傳訛(헛소문이 꼬리를 물고 번져 가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李紈又道, “況且他原是到過這个地方的. 這兩件事雖無考, 古往今來, 以訛傳訛, 好事者竟故意的弄出這古迹來以愚人. 比如那年上京的時節, 單是關夫子的墳倒見了三四處. 關夫子一生事業皆是有据的, 如何又有許多的墳? 自然是後來人敬愛他生前爲人, 只怕從這敬愛上穿鑿出來, 也是有的.” (第五十一回)
[해석문]
이환이 또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이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얘기는 와전되어 근거가 없는 것인데도, 호사가들은 일부러 이런 유적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도성으로 올라오면서 보니까 관부자(關羽)의 묘만 하더라도 서너 군데나 되더군요. 관우의 일생의 사적은 그 사적이 뚜렷한 근거가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묘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요? 그건 모두 후세 사람들이 관우의 생전의 사람됨을 존경하고 사모하여서 자연히 그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제 51회)
[명언고사]
보금寶琴은 설이마薛姨媽의 조카딸로 설과薛蝌의 여동생이다. 그녀는 상당한 미모를 지녔는데, 가모賈母 등이 그녀를 대단히 좋아했다.
보금의 부친은 황상皇商이어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친을 따라 다닌 곳이 많고, 그녀는 또 천성적으로 영민하여 지식이 있고 시를 잘 지었는데, 대관원大觀院에 온 뒤에 각 성省의 고적古迹을 제목을 제목으로 하여 『회고절구십수懷古絶句十首』를 지었다. 사람들은 이 십수十首의 시를 보고 모두 정말로 참신하고 절묘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그 중에 한 수 ⌜포동사회고蒲東寺懷古⌟를 쓴 것이 있다
小紅骨賤最身輕(홍낭은 비천하지만 민첩하게 행동하여)
私掖偸携强撮成(살며시 두 손을 끌어 만나게 만들었네)
雖被夫人時弔起(부인에게 들켜서 혼찌검이 났지만)
已經句引彼同行(이미 어느새 깊은 인연이 맺어졌네)
또 ⌜매화관회고梅花觀懷古⌟를 쓴 것이 있다
不在梅邊在柳邊(매화 곁에 있어도 버들 옆에 있어도)
个中誰拾畵嬋娟(그 속에서 예쁜 모습 거둘 것이네)
團圓莫憶春香到(님과의 만남에 봄의 향기 잊게 되니)
一別西風又一年(서풍에 이별한지 또 일 년이 되었네)
모두들 보고서 기묘하다고 칭찬했다. 보채寶釵가 먼저 말했다.
“나머지 여덟 수도 모두 역사에 귀감이 되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인데, 이 두 수는 근거할 고증이 없으니, 우리도 제대로 잘 알 수는 없으니, 차라리 두 수를 더 짓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대옥黛玉은 이 두 수가 비록 역사에 귀감이 되는 근거는 없으나, 이미 널리 전해지고 있으니 다시 새로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탐춘探春은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했다. 이환李紈이 또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이곳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에요.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 얘기는 와전되어 근거가 없는 것인데도, 호사가들은 일부러 이런 유적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예전에 도성으로 올라오면서 보니까 관부자(關羽)의 묘만 하더라도 서너 군데나 되더군요. 관우의 일생의 사적은 그 사적이 뚜렷한 근거가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묘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지요? 그건 모두 후세 사람들이 관우의 생전의 사람됨을 존경하고 사모하여서 자연히 그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홍루몽이야기
청허관清虚觀에서 낙점落點하여 공연한 세 가지 연극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나?
조설근曹雪芹의 소설 『홍루몽紅樓夢』에 나오는 가부賈府는 녕국공寧國公과 영국공榮國公의 누대에 걸친 출세로 인해, 부귀를 이어 받은 지 이미 백년이나 되어, 몇 년이면 운이 다 할 시기에 이르러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큰 사건 하나가 일어났으니, 바로 영국부榮國府의 가정賈政의 맏딸 원춘元春이 현덕비로 채택된 것이다. 그런데 진가경秦可卿이 죽으면서 왕희봉王熙鳳의 꿈에 나타나서, “순식간의 영화에 지나지 않고, 일시적인 기쁨이다”라고 깨우쳐 주었었다.
비록 당시는 가부와 원춘이 모두 영화롭고 부귀한 바로 그런 시기에 있어서, 원춘은 여전히 복을 구하기를 희망하고 있었지만, 이루어진 부귀영화는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특별히 궁궐에서 은자를 내어서 하태감夏太監을 보내어, 청허관淸虛觀에서 삼 일간의 평안기도로 제물을 바치고 연극공연을 올리라고 하였다.
어떤 연극이 공연되었을까? 평안기도는 신을 향하여 복을 구하는 것으로, 신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고, 연극도 신이 듣게 노래하는 것인데, 그래서 또한 신이 강림하여 연극을 점찍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가진賈珍은 가모賈母에게 와서, 신께서 먼저 점찍은 것이 모두 세 가지인데: 제 1본이 『백사기白蛇记』, 제 2본은 『만상홀满床笏』, 제 3본이 『남가몽南柯梦』이라고 하였다.
가진이 이렇게 말씀드렸을 때, 가모의 반응은 달랐다. 제 1본에 대하여, 가모는 “『백사기』는 어떤 내용이냐?”라고 물었다.
제 2본을 보고는, 가모는 웃으면서, “이게 제 2본이란 말이지? 알았다. 신께서 이런 걸 원하시니, 그대로 따라야지”라고 말했다.
제 3본에 대해서는, ‘가모는 듣고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가모는 금릉에서 이름난 대가문의 출신이니, 무슨 연극인들 안 보았겠는가? 그녀의 친정인 사부史府에는 집안에 연극반을 두고 있었기에, 이런 연극들은 가모로서는 당연히 모두 상세히 잘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반응은 자연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 1본인 『백사기』는 한고조漢高祖가 백사를 칼로 베고 의병義兵을 일으킨 내용이다. 이것은 역사고사로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에 모두 그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유방劉邦이 한 떼의 무리를 압송하여 여산驪山으로 복역하러 가는 도중에 그들을 석방하여 주었지만, 그중의 십여 명이 그에게 복종하여 따르기를 원하였다. 그날 밤, 술을 마신 유방이 좁은 길로 가는 중에, 그 길에서 커다란 백사를 보고 검을 빼어 백사를 두 토막을 내어 버렸다.
나중에 어떤 이가 알려 주었는데, 한 노부인이 길에서 울면서, 백제자白帝子가 그 길에 있던 뱀인데, 오늘 적제赤帝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백제자는 진秦나라를 비유한 것이다. 진은 서쪽에 위치하여, 서방西方의 신을 “백제”白帝라고 칭한다. 적제자赤帝子는 유방을 비유한 것인데, 유방은 패沛 지역 사람으로, 지금의 강소성江蘇聲이고, 초楚나라에 속하며, 남방 쪽이어서, 남방신은 “적지赤地”라고 한다.
이 고사는 유방이 진秦을 멸하고 황제가 된 것을 빗대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방이 백사를 베고 난 후에, 마침내 진을 멸하고, 항우项羽를 이기고, 한조漢朝를 세웠던 것이다. 이것은 대업이 시작되는 고사로, 가부賈府의 선조가 천자의 건국역사에 관련되었던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제 2본 『만상홀』은 당唐나라의 곽자의郭子儀가 “안사의 난”(安史之亂)을 평정하여, 당 조정을 중흥시킨 공과, 당의 숙종肅宗과 덕종德宗 양 대를 위력으로 누른 것을 공연한 내용이다.
그는 아들이 일곱이고 사위가 여덟인데, 모두 높은 지위에 있었다. 아들과 사위들은 집에 오면, 홀笏을 상 위에 가득 얹어 놓았다. 홀은 상아나, 옥이나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정대신이 황제를 알현하여 일을 아뢸 때 들고 있는 물건이다.
고사에서 집안에 고관이 있으면 부귀가 번창했기 때문에, 그래서 가모는 듣고서 매우 기뻤지만, 제 2본은 공연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제 3본은 『남가몽』인데, 명明나라의 탕현조湯顯祖의 전기傳奇 『남가기南柯기』이다. 고사의 내용은 실의에 빠져 집에 있던 동평인東平人 순우분淳于棼이 꿈에 괴안국槐安國에서 부마가 되어, 태수에 봉해지고, 또 재상까지 되어 권세가 아주 뛰어났다. 아들딸을 낳고 부귀를 이십여 년 동안 누리다가 깨어나 보니, 한바탕 꿈에 불과하였다는 내용이다.
순우분은 마침내 “인간 세상에서의 임금과 신하, 가족이 개미와 다를 게 무엇인가, 모든 고락과 흥망은 남가일몽南柯一夢과 같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만약에 세 책을 연관시켜서 본다면, 바로 “흥興, 성盛, 쇠衰”의 과정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신께서 점지한 연극이니, 그래서 사람의 염원으로 변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비元妃가 승진한 것은 가부가 이미 일시적으로 번성함이 극에 달한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남가몽』의 결말은, 가부가 쇠衰하고 패敗해질 것이라는 흉한 예언이다. 그래서 가모가 듣고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이유인 것이다.
『홍루몽』 곡曲의 ⌜수미收尾⌟에는 가부의 몰락을 비춰준 구절이 있다.
好一似食尽鸟投林 (먹기를 다한 새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니)
落了片白茫茫大地真于净 (망망한 대지는 하얗게 깨끗해지고 말았네)
진사은甄士隐이 ⌜호료가好了歌⌟를 풀이한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陋室空堂 (누추한 방과 텅 빈 집은)
当年笏满床 (당년에는 상위에 홀이 가득 놓였더니)
衰草枯杨 (시든 풀과 마른 버드나무는)
曾为歌舞场 (예전에는 가무장이었다네)
蛛丝儿结满雕梁 (대들보에는 거미줄이 가득 쳐 있고)
綠紗今又糊在篷窓上 (봉창에는 푸른 잡초들로 가득 메워있네)
이런 것들을 해석해보면, 바로 『남가몽』의 광경이고, 또 가부의 결말을 예언한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차반무심茶飯無心(구미가 당기지 않다/식욕이 없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香菱聽了, 喜的拿回詩來, 又苦思一回作兩句詩, 又舍不得杜詩, 又讀兩首. 如此茶飯無心, 坐臥不定. (第四十八回)
[해석문]
향릉香菱은 듣고서, 좋아하며 시를 가지고 돌아와서, 한참동안 고민하며 생각하다가 시 두 수首를 지었다. 또 두보杜甫의 시를 놓을 수 없어 두 수를 읽었는데, 밥이나 차를 마실 생각도 들지 않고 앉아도 누워도 시 생각에만 골몰했다. (제 48회)
[명언고사]
영련英蓮은 본래 진사은甄士隱의 딸이다. 그녀가 세 살 때의 원소절元宵節, 즉 정월 대보름에 진사은이 하인에게 그녀를 안고 민속놀이를 구경시키라고 내보냈다가, 뜻밖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영련은 설반薛蟠에게 팔려서 영국부榮國府에서 살게 되었는데, 보채寶釵는 그녀에게 향릉香菱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황실의 물품을 조달하는 일을 하는 설반이 집을 떠나 멀리 가자, 보채는 향릉을 자기 거처로 데리고 와 같이 지냈다.
본성이 영리하고 지혜로운 향릉은 시 짓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옥에게 시 짓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리고 또 대옥과 탐춘探春에게는 그녀에게 시 제목을 내주고, 자기가 지은 것을 그녀들이 보고 수정해 달라고 간청했다.
대옥이, “어젯밤에 달빛이 아주 좋아서, 내가 한 수를 지으려다 짓지를 못했는데, 그럼 네가 한 수 지어보렴. 십사한운十四寒韻의 네 마음대로 글자를 사용해서 말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향릉은 대단히 기뻐하며 시집詩集을 들고 거처로 돌아와 한참을 고심하며 시 두 구절을 지었는데, 잠시 후에 또 부족하여 내버리려다가 다시 또 읽어보며 시 짓기에 고심하여 식욕마저 없어질 정도였다.
보채가, “너는 왜 스스로 걱정거리를 만들고 그러느냐. 본래 아둔한데다가 이것까지 더했으니, 더욱 멍청이가 되겠구나”라고 놀려댔다.
향릉은 오히려 개의치 않으며, “아가씨도 참, 그러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시를 지어서 보채에게 보여 주었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소요자재逍遙自在(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鳳姐兒道: “太太必來這屋里商議. 依了還可, 若不依, 白討个臊, 當着你們, 豈不臉上不好看. 你說給他們炸鵪鶉, 再有什麽配幾樣, 豫備吃飯. 你且別處逛逛去, 估量着去了再來.” 平兒聽說, 照樣傳給婆子們, 便逍遙自在的往園子里來. (第四十六回)
[해석문]
봉저鳳姐가 말했다.
“어머님이 틀림없이 상의하러 이리 오실 것이고, 그 애가 허락한다면 좋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괜히 창피만 당할 터인데, 너희 앞에서 어찌 체면이 서겠니. 너는 사람들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튀기고, 또 몇 가지 요리를 만들어서 밥을 준비하라고 하고, 너는 다른 곳에 가서 바람이나 쐬다가 대충 댁으로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되면 들어오너라.”
평아平兒는 봉저의 말을 듣고 나서 그대로 할멈들에게 이르고 나서, 유유자적하게 대관원大觀院으로 놀러갔다. (제 46회)
[명언고사]
형부인邢夫人은 원앙鴛鴦의 방으로 왔을 때, 원앙은 바느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들어가서 먼저 원앙이 수를 잘 놓는다고 칭찬을 하고, 또 아래위로 원앙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또 원앙의 손을 끌어당기며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가사가 그녀를 첩으로 삼겠다는 말을 설명하고, 원앙에게 노마님께 가서 아뢰자고 했지만, 원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이 일을 알고 있는 왕희봉은 살그머니 평아에게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평아는 고개를 끄떡이며 웃었다.
“제 생각에 이 일은 타당하지 않아요. 평소에 우리끼리 말할 때 보면, 원앙은 절대로 첩이 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는걸요. 이 일은 그냥 말이나 해보고, 두고 보는 거지요.”
왕희봉은 평아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틀림없이 상의하러 이리 오실 것인데, 그 애가 허락한다면 좋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괜히 창피만 당할 터인데, 너희 앞에서 어찌 체면이 서겠니. 너는 사람들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튀기고, 또 몇 가지 요리를 만들어서 밥을 준비하라고 하고, 너는 다른 곳에 가서 바람이나 쐬다가 대충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되면 들어오너라.”
평아平兒는 봉저의 말을 듣고 나서 할멈들에게 그대로 이르고 나서, 유유자적하게 대관원大觀院으로 놀러갔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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