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보옥寶玉이 오선기悟禪機라고 한 게어偈语는 무슨 뜻일까?

一字師 202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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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옥寶玉이 오선기悟禪機라고 한 게어偈语는 무슨 뜻일까?

 

 

게偈란 범어梵語의 “게타偈陀”로 본래 불경佛經의 頌辭 노래인데, 정제된 운문으로 작사하고, 간략한 문자를 사용하고, 내용은 철학적인 뜻이 다분하다.

 

제 22회는 가보옥賈寶玉이 설보채薛寶釵의 생일을 지내는 내용인데, 보채가 『기생초寄生草』의 일 부분을 읽는 것을 듣는 장면이 있다.

 

漫搵英雄泪, 相離處士家。

(영웅은 눈물을 다 닦고는, 함께 선비의 집을 떠나네)

 

謝慈悲, 剃度在蓮臺下。

 

(자비에 감사드리며, 연화대 아래에서 머리를 깎네)

 

沒緣法, 轉眼分離乍

(연분이 없어, 홀연히 눈을 돌리고 떠나네)

 

赤條條來去無牽挂。

(빈 몸으로 오고가니 근심도 없구나)

 

那里討烟蓑雨笠卷單行。

(인가가 있는 곳을 도롱이와 삿갓을 쓰고서 홀로 가는데)

 

一任俺芒鞋破鉢隨緣化

(나를 짚신과 바리때에 맡기니 쉽게 인연이 생기누나)

 

또 상운湘雲에게 눈짓한 것 때문에, 상운과 대옥黛玉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스스로 “아무 것도 안하면 근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바로 아래의 여섯 마디이다.

 

“你证我证, 心证意证。是无有证, 斯可云证。无可云证, 是立足境。”

“니증아증, 심증의증. 시무유증, 기가운증. 무가운증, 시립족경”

 

대체로 그 의미는, ‘너와 내가 모두 마음으로는 서로 접촉하여 알지만, 상대방으로부터 감정적인 검증을 받고 싶다. 그러나 정이 없어지고 그 뜻이 단절되어, 그래서 검증할 도리가 없게 되어서야, 검증의 말을 하게 되었는데, 다만 그렇게 검증할 수 없는 철저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자기가 설 곳을 찾을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이 게어는 당연한 것을 감정적으로 말한 것인데, 보옥과 대옥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서로 시도하고 탐구하며, 상대방이 자기의 진심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매번 대옥의 비꼼과 푸대접을 받았다.

 

분명하게 상운과 대옥을 위한 것인데도, 도리어 두 사람 다 자기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보옥은 자기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방법이 없음을 느끼게 되었는데, 바로 위에서 언급한 “철저한 깨달음”의 게어인 것이다.

 

그런데 “천성적으로 타고난 일단의 치정癡情”을 지닌 가보옥은 또 어떻게 해서 철저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일까? 그래서 대옥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못한 것인가 보다.

 

그리고 대옥은 도리어 그를 대신하여 “철저한 깨달음”을 “발 디딜 곳이 없게 되니, 비로소 깨끗하게 되었구나”라는 게어로 분명하게 이어서 대답했다. 대옥이 말한 게어의 뜻은 발 디딜 곳조차 없게 되었으니, 그때서야 정말로 깨끗해졌다는 의미였다.

 

보옥의 게어와 대옥이 보충한 구절은 선종禪宗 스님 혜능慧能과 신수神秀가 만들어 낸 게어인데, 작가는 보채寶釵의 입을 빌어서 소개하였다.

 

남천축南天竺 사람 달마達摩 보살이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일종의 불립문자不立文字(오도悟道는 문자나 말로써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이심전심과 함께 선종의 입장을 나타내는 표어임)의 유파로, 중국에 영향이 매우 큰데, 선종이라고 부른다.

 

그 시조로 추존 받은 달마는 죽은 후 가사 한 벌과 바리때 한 개만 남았다고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데, 누가 가사와 바리때를 얻었는지, 누가 그 다음 대의 선종을 이어 받았는지는 모른다.

 

제 5대의 홍인년弘忍年에 이르러서 가사와 바리때를 전할 때에, 절의 스님을 불러 각각 게偈를 짓게 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불법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으로 전해 받았는 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절의 수좌首座(고급 승려직으로 다음 차기 장로가 되는 지위임)인 신수가 게어 한 구절을 지었다고 한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몸은 보리수이지만, 마음은 명경대여서)

 

時時勤拂拭, 莫使有塵埃

(언제나 마음을 닦아 정진하여, 속세의 때를 없애려 함이네)

 

디딜방아로 쌀을 찧던 혜능 스님이 듣고 말하기를, “좋기는 좋은데, 철저히 없애도 또 철저히는 안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네 마디의 게어를 읊었다.

 

菩提本非樹, 明鏡亦非臺

(보리수는 나무가 아니고, 명경대 역시 대가 아니니)

 

本來無一物, 何處染塵埃?

(본래 물질이 없을진대, 어찌 먼지가 있을쏜가?)

 

홍인년에 즉시 가사와 바리때를 혜능에게 전하였으니, “둔오顿悟”(불교의 참 뜻을 문득 깨달았다는 의미임)를 선종남파禪宗南派의 표방으로 창립하였다.

 

작자 조설근은 이것으로 한 단락의 글을 썼으니, 물론 선종의 안건을 착안한 것은 아니고, 본 소설의 인물의 운명을 착안한 것이다.

 

어떤 비평가는, “보채의 생일 이전에, 보옥이 선종의 도리를 마음속에 굳건히 한 것은 아니나, 이로부터 ‘화상和尙’이라는 두 글자를 입에 담았던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다 이때 직전에도 보옥의 출가를 암시하는 글자는 없고, 소설 『홍루몽』의 내용에 나오는 노래가사에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고, 불문에 들어가다”는 일반적으로 석춘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홍루몽』의 前20회(실제로는 21회)에는 “풍월風月”에 대한 것을 비교적 많이 썼는데, 아마도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고 부르는 구원고舊原稿와 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 22회에는 “풍월”에는 냉담해지고, “출가出家”의 내용이 누차 나오는데, 작가가 이때서야 보옥을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버리게 하는 것”으로 설정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애성탄기唉聲嘆氣 ((슬픔과 고통으로) 한숨을 쉬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 본문]

賈政道, “好端端的, 你垂頭喪氣, 嗐些什麽? 方才雨村來了要見你, 叫你那半天你才出來, 旣出來了, 全無一点慷慨揮灑談吐, 仍是葳葳蕤蕤. 我看你臉上一團思欲愁悶氣色, 這會子又唉聲嘆氣. 你那些還不足, 還不自在? 無故這樣, 却是爲何?” (第 三十三回)

 

[해석문]

가정이 말했다.

 

“멀쩡한 놈이 까닭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뭘 그리 상심하고 있느냐? 방금 전에 가우촌賈雨村 선생이 오셔서 너를 보자고 해서 불렀더니 한참만에야 나오고, 또 나와서는 기운차고 시원스럽게 말씀을 올리지도 못하고 그저 우물쭈물하고만 있었잖느냐. 내가 보니까 너는 얼굴에 온통 근심어린 기색이 가득하고 한숨만 내리 쉬고 있는데, 도대체 네 놈은 무엇이 부족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나? 까닭도 없이 그러는 것이라면, 뭐 때문에 그러는 거냐?”

 

[명언고사]

보옥寶玉은 금천아金川兒가 자기와 농담 한 마디 한 것 때문에 부끄러워서 자진한 것을 알고 있어서 대단히 마음이 아팠다. 그는 왕부인王夫人에게 일일이 잘못을 열거하며 한바탕 꾸지람을 듣고 밖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망연하여 그저 손을 뒤로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탄식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대청에 이르러 막 병풍문屛風門을 돌아섰을 때, 뜻밖에 맞은편에서 정면으로 걸어오던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게 섰거라!”하고 대갈일성大喝一聲하는 소리에 놀란 보옥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그의 아버지 가정賈政이 걸어오는 지라, 보옥은 얼른 숨을 죽이며 두 팔을 늘어뜨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서있었다

 

가정은 보옥을 질책하며 물었다.

“멀쩡한 놈이 까닭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뭘 그리 상심하고 있느냐? 방금 전에 가우촌賈雨村 선생이 오셔서 너를 보자고 해서 불렀더니 한참만에야 나오고, 또 나와서는 기운차고 시원스럽게 말씀을 올리지도 못하고 그저 우물쭈물하고만 있었잖느냐. 내가 보니까 너는 얼굴에 온통 근심어린 기색이 가득하고 한숨만 내리 쉬고 있는데, 도대체 네 놈은 무엇이 부족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나? 까닭도 없이 그러는 것이라면, 뭐 때문에 그러는 거냐?”

 

홍루몽이야기

머리가닥 하나가 일으킨 파란은 어떤 심오함을 머금고 있나?

 

제 21회는 가련賈璉과 다多씨댁과의 머리가닥에 대한 일인데, 이들의 관계가 가련의 아내 봉저鳳姐의 시녀 평아平儿에게 들통이 난 것이다.

 

이 머리가닥을 둘러싸고, 가련, 봉저와 평아는 각각 멋들어진 연기를 보이는데, 남편과 아내와 첩 세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봉저는 자기 눈앞에서 막 사라진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일부러 남편 가련에게 시비를 걸고, 평아에게 가련이 가지고 나가려는 물건을 찾게 하여, 반지, 손수건, 향주머니와 심지어 머리카락과 손톱까지 찾아보라고 하였다.

 

가련과 평아가 단둘이 있는 것을 보고는, 무관심한 듯이 “아무도 없어야 좋아”라고 말하는데, 한 마디로, 규방 안을 엄격하게 통제하려는 투기가 극도로 강한 봉저의 형상을 그려내었다.

 

가련은 여자관계가 복잡하여, 도둑이 제발 저린 듯이 행동하였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 증거가 평아에게 발견되자, 부드럽게 달래서 빼앗으려고 생각하였는데, 봉저가 묻는 것을 듣고는, 얼굴이 노래질 정도로 놀랜다.

 

가련은 난처한 일에 처했을 때, 평아가 그의 잘못을 덮어주어 지나갈 수 있게 해주자 기뻐했는데, 무덕하고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세도가 자제의 악랄한 면모를 가진 사람이다.

 

평아는 합판 사이에 끼여 있는 것처럼 가련과 봉저 사이에 끼여서 진퇴양난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이 머리가닥을 잘못 처리하게 되면, 그녀에게 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봉저가 심문을 할 때에, 그녀는 가련을 엄호했고, 가련이 그녀에게 동침을 요구할 때는, 그녀는 도망가기도 하여, 봉저의 “미움”을 피하였던 것이다.

 

교묘하게 동풍을 빌어 빙설을 녹이듯이, 전쟁을 평화로 바꾸는 것을 잘하여서, 평아는 봉저의 위력과 가련의 음란함 사이에서 평형을 이루는 역할을 하였다.

 

지연재脂硯齋는 비어批語에서, ‘이 머리가닥이 일으킨 파란은 즉 하나의 매복이다’라고 하였다.

 

지연재는 가련이 평아 수중에서 머리가닥을 뺏어 온 것을 ‘절묘하다. 평아로 하여금 가 가지고 있게 하였다면, 다시 누설되지도 않았을 터인데, 일부러 가련이 다시 빼앗게 했다가, 또 뒤에 분실하여서, 그 맥을 이어가게’ 하였다.

 

나중에 가련이 또 이 머리가닥을 분실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아마도 봉저에게 발견되었을 것인데, 크나큰 풍파를 야기하여 가련과 봉저의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지연재는 장회章回의 앞부분에 비어를 쓰기를: ‘이날의 봉저의 영리함과 기백은 여느 때 같지 못하여, 그녀의 생활은 순탄치 않은 쪽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었으니,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세상사란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것이다’라는 것으로 보아, 이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봉저의 장래의 결말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루몽』 중에는 작은 물건으로 그 맥을 이어가는 종류가 적지 않은데, 예를 들면 가보옥이 주은 기린麒麟에 대해, 지연재도 “수십 회 뒤에 난초가 있는 화원에서 기린을 줍게 되는데, 바로 이 기린인 것이다. 요점이 그 회回에 숨어 있다”라고 게시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지금 작가 조설근曹雪芹이 남긴 후30여 회분의 원고를 이미 볼 수 없으니, 지연재 비어의 게시에 의하여 대강을 추측할 뿐이다.

 

기타의 것을 예를 들어보면, 가보옥이 임대옥에게 쓰던 손수건을 준 것과 기관琪官이 가보옥에게 주고, 또 보옥이 습인에게 준 붉은 명주를, 고악高鶚은 속서續書에서 설명하였다.

 

가운賈蕓이 홍옥紅玉의 손수건을 줍고, 설보채薛寶釵가 부끄러워하던 붉은 팔찌, 황금색 꾀꼬리와 매화를 교묘하게 연결 지웠는데, 나중에 교묘하게 사용하려 했는지는 추측할 길이 없다.

 

홍루몽이야기

가보옥의 젖유모 이마마李嬤嬤는 어떤 사람인가?

 

이마마李嬤嬤라는 유모는 소설 『홍루몽紅樓夢』에서 3,4 차례 나오는데, 적지 않은 일을 불러일으키는데, 전적으로 먹을 것을 가지고 싸워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같이 보인다.

 

첫 번째는 보옥寶玉이 술 마시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하여, 대옥黛玉에게 타박을 받는다.

 

두 번째는 보옥이 마시려고 타놓은 풍로차楓露茶를 마셔서, 보옥은 찻잔을 깨뜨려버리고, 천설蒨雪이를 내쫓는다.

 

세 번째는 보옥이 시녀 습인襲人에게 주려고 남겨놓은 설탕을 넣어 찐 치즈를 먹어버린다.

 

네 번째는 이마마가 습인에게 일부러 화를 낸 것인데, 그녀가 보여주는 보옥, 습인과의 갈등에서 여러 가지로 뒤엉킨 영국부榮國府 내의 복잡한 관계를 반영하여 보여주는 하나의 측면이다.

 

이마마는 보옥의 유모로 젖유모(奶嬤嬤)라고도 불렀는데, 그녀의 남편은 보옥의 젖아버지(嬤嬤爹)이고, 아들은 젖형제(嬤嬤兄弟)여서, 젖형(奶哥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옥이 공부하러 가는데 같이 간 이귀李貴가 곧 이마마의 아들이며, 보옥의 젖형이기도 하다.

 

작자 조설근曹雪芹의 증조모 손孫씨는 강희황제康熙皇帝의 젖유모였었는데, 그의 조부 조인曹寅은 바로 강희황제와 젖형제로서, 황제와 공부도 같이 하였다.

 

이런 관계로 말미암아, 젖을 먹여 키운 주인 앞에서 젖유모인 그녀의 지위는 비교적 특수하다. 그녀는 젖을 먹여 키우는 책임뿐만 아니라, 주인이 어렸을 때는 훈육의 책임도 있어서, 그 지위는 자연히 하녀들보다 위였기 때문에, 그래서 이마마가 습인을 나무랄 때에, 습인은 변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보옥은 이마마 면전에서는 화를 못 내서 울화통이 터진 나머지 찻잔을 내동댕이쳐 깨뜨리고, 천설이를 내쫓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젖을 먹여준 유모에 대하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기껏해야 가모에게 가서, 유모에 대한 상황을 일러바쳤다.

 

이마마가 습인을 조롱할 때에도, 보옥은 그 면전에서는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는데, 고작 습인이 병이 나서 약을 먹은 것이라고 변명을 하였다.

 

그러나 이 젖유모는 비록 아무리 체면을 세워도 역시 노예인데, 그녀의 체면은 주인이 주는 것이어서, 주인이 당연히 회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마마가 주인의 차를 마셔버린 것이 어린 주인을 크게 화를 내게 한 것으로 보아, 그녀의 체면이 얼마나 대단치 않은 지를 알 수가 있다.

 

소설에서 보옥이 가모에게 가서 고했는지 아닌지는 설명이 없으나,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이 유모는 “노령으로 퇴직한다”고 그만둔 것을 보면, 역시 보옥이 고해바친 것으로 보이는데, 손자를 예뻐하는 노조종은 유모의 체면을 더 이상 봐 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주인이 싫어하고, 하녀들도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있어서, 비록 그녀 앞에서는 들이받지는 못할지라도, 뒤에서는 “못된 늙으니 같으니라구!” 하며 은밀하게 수군거렸던 것이다.

 

『홍루몽』의 작가는 관찰자와 사람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묘사하여, 작품에서는 비록 영국부榮國府만을 묘사하였는데도, 오히려 사회교과서를 공부하는 것 같다.

 

이 아주 작은 세계 안에는 현실 세상의 복잡한 사람들의 관계가 여러 가지로 뒤엉키어 있는데, 주인과 주인, 주인과 노복, 반은 주인이고 반은 노예간의 관계, 노복 간의 관계로 주인을 받쳐주며, 일을 집행하는 이와 집행하지 않는 이들, 밖의 일을 맡은 이와 안의 일을 맡은 이들, 가부에서 태어난 노예와 밖에서 사서 데려온 노예, 시집올 때 데려온 노예와 본가의 노예, 노파와 하녀, 큰 하녀와 어린 하녀, 큰 하녀들 간의 관계 등등이 있다.

 

노파들 하나를 보더라도, 뢰賴유모와 같은 사리가 분명하고 체면도 차릴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이마마처럼 정황을 소홀히 하여 세력을 잃는 경우도 있고, 춘연모春燕母처럼 내실에는 들어오지도 못하는 …… 사람들의 갖가지 모양을 다 쓰려면, 세치의 붓으로는 너무나 부족했을 것이다.

 

홍루몽이야기

원비元妃가 성친省親 때에 관람한 네 개 연극에는 각각 어떤 우의寓意가 있나?

 

원비元妃 원춘元春은 친정나들이(省親) 때에 네 개의 연극을 선택하여 감상하였다. 제 일 먼저 나온 것은 『호연豪宴』, 두 번째는 『걸교乞巧』, 세 번째는 『선연仙緣』과 네 번째는 『이혼离魂』이 나온다.

 

지연재脂硯齋는 비어批語를 “원비가 선택하여 감상한 연극에는 네 가지의 사건이 매복되어 있는데, “큰 줄거리이고 큰 관건이 되는 것들이다”라고 달았다.

 

네 가지 연극에는 어떤 내용과 또 어떤 일이 매복되어 있는 지를 보기로 한다.

 

제 일 먼저 나온 『호연豪宴』은 청나라 초기의 이옥李玉의 전기傳奇 『일봉설一捧雪』에 나오는 내용이다.

 

명가정明嘉靖 때의 태복사경太仆寺卿 막회고莫懷古가 표구공예가 탕근湯勤을 권세 있는 간신 엄세번嚴世蕃에게 추천하였다. 배은망덕한 탕근은 엄세번을 충동질하여 막회고의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옥배玉杯 “일봉설一捧雪”을 달라고 하여, 모회고의 집안을 망하게 하고 사람을 죽게 하였다.

 

지연재脂硯齋는 비어批語에서 “가부의 패망의 매복되어 있다”고 평어를 달았는데, 가부가 몰수당한 것은 가부의 추천을 받은, 예를 들면 가우촌賈雨村 같은 사람의 음해였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여 준다.

 

두 번째의 연극 『걸교乞巧』는 청나라 초기의 홍이洪異의 『장생전長生殿』 전기傳奇중에서의 한 단락(원래의 연극에서는 『밀서密誓』임)이다.

 

당명황唐明皇과 양귀비楊貴妃는 7월 7일에 장생전에서 새의 날개나 나뭇가지라도 되겠다며 영원한 사랑을 굳게 맹세하지만, 직녀성織女星은 오히려 “그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에 이르기 어렵고, 생이별을 면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정말로 양귀비는 마외파馬嵬岥에서 목매어 자진하라는 당명황의 명령을 받고 죽는다.

 

지연재의 비어에서 “원비元妃의 죽음이 매복” 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원비도 사약을 받고 죽은 것이 아닌지? 지금은 이미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세 번째 연극 『선연仙緣』은 명나라 때에 탕현조湯顯祖의 『한단기邯鄲記』 중의 『합선合仙』의 한 단락이다.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에 가는 길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꿈을 꾸었는데, 여동빈吕洞賓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그를 천상으로 데려가더니, 어떤 선녀를 대신해서 하늘 문전에 떨어진 꽃을 청소하게 하였다.

 

지연재는 비어에서 “진보옥甄寶玉이 통령보옥通靈寶玉을 보내온 것이 매복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조설근의 원저原著인 전前80 회 이후에 있는 내용인지라, 상세한 내용은 어림짐작할 길이 없다. 전80 회에 비록 진보옥이라는 이름이 나오기는 했느나,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묘사했다.

 

유서裕瑞가 『조창한필棗窓閑筆』에서, ‘보옥이 태허환경太虛幻境에서 꿈을 꿨다고 운운한 것은, 사실은 진보옥甄寶玉이 진짜이고 가보옥賈寶玉은 가짜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신선에 관한 글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가보옥의 통령보옥은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진보옥이 보내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네 번째 연극 『이혼离魂』은 탕현조의 『목단정牧丹亭』을 개편본에 있는 한 단락인데, 두려랑杜麗娘이 꿈속에서 서생書生 유몽매柳夢梅와 서로 사랑하였는데, 꿈에서 깬 후에 병이 나서 죽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지연재는 비어에서, “대옥의 죽음이 매복되어 있다”고 하였다. 대옥도 애정의 고통으로 인하여 요절하는데, 그녀는 이향원梨香院의 창밖에서 노래를 듣는데, 바로 『목단정』의 노래가사이다.

 

原來姹紫嫣紅開遍 (원래 아름다운 꽃은 한번 피면)

似這般都付與斷井頹垣 (황폐해지는 종류이기 때문에)

良辰美景柰何天 (좋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데)

賞心樂事誰家院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일은 뉘 집의 것인가)

 

대옥이 “마음이 동요되어 잠 못 이룬” 것도 일종의 민감함이리라.

원춘이 가부賈府에 성친省親하여 연극을 골라서 감상을 할 때, “천자를 찬양하여 천자의 명령을 받드는 내용으로” 연기를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설근은 이런 묘사로 아마도 가부와 중요한 인물의 종말의 의도를 암시했거나, 혹은 80회 이후의 내용을 탐구할 수 있는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하였을 수도 있겠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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