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 제3회에서는 왜 눈을 사용하여 본다라고 하였을까?

一字師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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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제3회에서는 왜 눈을 사용하여 본다라고 하였을까?

 

 

가령 어떤 이가 “『홍루몽』의 제 3 회에서는 눈으로 ‘보아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이 말은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홍루몽』 제 3 회는 확실히 임대옥林黛玉의 시선을 통해서 층층으로 서술을 시작했는데, 그녀가 가부에 들어오면서 본 것과 느낌을 통하여, 한쪽으로는 녕국부寧國府와 영국부榮國府 저택의 건축 모양을 영화의 렌즈가 돌아가듯이 한발 한발 뚜렷하게 독자에게 전시하여 주고, 다른 한쪽으로는 가모賈母, 왕희봉王熙鳳, 가보옥賈寶玉 등의 주요 인물을 차례로 잇달아 등장시키면서 그 인물들을 잠시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이 회의 배경은 임대옥이 모친을 여의고, 가우촌賈雨村을 따라 배를 타고 북상하여 친척집에 의탁하러 온 것이다.

 

먼저 임대옥은 가부의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요 며칠 동안 만난 몇 사람의 노복과 하녀들이 먹고 입은 것을 보니, 보통이 아니다.”

 

임대옥의 눈에 비친 하인들이 걸치고 있는 옷을 통하여 가부의 부귀와 사치를 보여주어, 뒤에 나오는 글의 내용에 사전에 복선을 깔았다. 이어서 대옥이 성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문득 북쪽 길에 이르니 두 개의 큰 돌사자가 보인다.”

 

품격이 뛰어나고 크고 우람한 녕·영 두 저택이 대옥을 따라서 독자의 시야에 뛰어든다. 독자는 멀리서 이 심성은 오만하나 부득불 의탁하러 온 소녀의 눈을 통해 그녀가 영국부의 서변에 있는 쪽문으로 들어가, 수화문에서 가마를 내리고, 또한 임대옥을 따라 함께,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은발의 할머니가 맞으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부에서 가장 높은 권력을 누리고 있는 노마님 즉 “사태군”(史老太君)이 등장한 다. 이어서 또 임대옥의 눈을 통해서 영춘迎春, 탐춘探春, 석춘昔春 자매 세 사람을 본다:

 

첫 번째 사람은 “피부와 근육이 조금 풍만하여, 몸매가 아름답고, 뺨은 여지같이 둥글고, 코는 윤기가 있고, 온유하고 말이 없으며, 보기에 친밀감이 느껴진다”;

 

두 번째 사람은 “매끄럽게 흘러내린 어깨와 가는 허리에, 호리호리한 몸매, 오리 알 같이 갸름한 얼굴, 영리한 눈매와 수려한 눈썹으로 좌우를 돌아보는데, 우아한 광채가 나서, 세속적이지 않다”;

 

세 번째는 “몸매는 다 자라지 않아 아직 작았다”라고 보여 주었다.

 

작가는 가장 간결하고 몇 마디 안 되는 필치로 세 아가씨의 귀족적인 면모의 형상을 그려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글에서는 농후한 필체로 영국부 안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귀족적인 젊은 부인 “봉 말괄량이”(凤辣子)의 형상을 선명하게 대조했는데, 들쑥날쑥한 농담으로 생생하게 빛나게 묘사하고 있다.

 

“내가 늦게 와서, 먼데서 온 손님을 영접하지 못했어요”라고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말소리를 먼저 들려오게 하면서 등장시킨다:

 

“한 무리의 부녀자와 하녀에 둘러 싸여 한 사람이 방문 뒤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 사람은 다른 아가씨들과 차림이 달라, 휘황하게 색실로 자수하여, 꼭 선녀같이 빛났다”.

 

그 다음에는 왕희봉의 복식, 언어, 표정과 태도와 동작에 대하여 모든 것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는데, 모두 임대옥의 시각을 통해 완성하여서, 그래서 비평에서 “전부 임대옥의 시각으로 묘사하였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뒤로도 임대옥의 시선을 통하여, 영국부의 건축 격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은 가을밤의 달과 같이 둥글고, 얼굴색은 봄날의 꽃과 같은” 가보옥賈寶玉을 보여준다.

 

읽어 가면서, 제방의 물을 거울에 비추어 주듯, 차례로 비추어 주는데, 하늘의 구름이 비치며 같이 배회하는 듯하여, 작가가 가슴 속에 얼마나 크고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도리어 표현은 마치 소금을 물속에 집어넣은 듯 그 흔적은 없다.

 

이 회의 독특한 시각은 임대옥의 시선을 따라 독자로 하여금 가부가 살고 있는 저택과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간결하게 마치 사진으로 보여주듯이 볼 수 있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한 가지로 뚜렷한 인상이 남게 된다.

 

真小人贾雨村面对刚帮助自己的甄士隐,为什么要不告而别

来源:网友投稿 

《红楼梦》之所以伟大,主要就是话外之音非常巧妙,他和《金瓶梅》一样未尽之意是后人读它的关键所在,两个人都是写文章的高手,只不过兰陵笑笑生敢于去写,人家不露名就行,曹先生就不行,深处时代是清代,文字狱相当严厉。所以书中,画外之音多次出现。第一章里边不辞而别就是第一个。

为什么会出现不辞而别这一出?

第一点贾雨村是个非常小心眼的人,两人交往初期,甄士隐已经得罪了贾雨村,真是躺着也中枪。第一次去邀请贾去甄府,两人没聊几句,言老爷来了,贾雨村说没事,我们已经这么熟了,你去吧,贾雨村正说着话呢,甄已经迈着步子往外走了,贾雨村这时候就认为言老爷比他重要。再到后面贾雨村一直没走在屋里看书时候,下人过来,贾雨村问了前面怎么样了,丫鬟说正在留言老爷吃饭,但是没提到留他,于是贾雨村自己就回去了,两人家挨得挺近的,可是后面甄老爷连叫他都没有,这时候贾认为甄看自己就是狗肉包子不上桌的主。所以大家也要记住小人记仇不记恩,你对别人做了九十九件好事,错了一件,人家就能记你一辈子。

第二点再说甄老爷一生没什么建树,与他的情商低有很大关系,中秋之夜,甄贾两人吃饭,贾吟诗表示自己是玉就等着一飞冲天,甄就像小伙子有抱负,你不就是缺钱吗,我给你出了。这个时候文中笔锋一转,贾只是略谢。大家想想,五十两在当时都可以买一个房了,贾雨村无动于衷,说明贾雨村根本不承他的情,认为甄情商低,活该。甄这个时候还没看出来那人竹山狼的表现,所以说以上两点就预示着后面不辞而别这一出。

贾雨村为什么要不辞而别?

1害怕甄老爷把钱要回去。好不容易把钱给我,没暖热呢你再给我要回去,我三十六计走为上计,这你就要不回去了

2害怕甄老爷要他以后回报。真的是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真小人啊贾雨村,不过也是头脑机敏,其实他也是现代社会基层人员往上爬不择手段的缩影,如果大家看过法国司汤达《红与黑》,你能够看到余莲身上有贾的影子。而甄老爷第二天日上三竿要起来给贾写两封推荐信的时候,下人告诉他人已经走了,这个时候甄恍然大悟,所帮非人啊,可是人已经走了,他又能做什么。很多人说甄的霉运是从丢闺女的时候开始,其实是从他帮了不该帮的的人贾雨村这一刻开始的。

最后希望大家多看书看好书。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抱负不凡(포부불범 ): 포부가 범상하지 않다

 

[명언이 나오는 본문]

恰值士隐走来听见, 笑道:“雨村兄真抱负不凡也!”(第 一回)

 

[해석문]

마침 그때 진사은甄士隱이 들어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우촌雨村 형은 포부가 정말로 대단합니다!”

 

[명언고사]

고소姑蘇 사람인 진사은甄士隱은 이름이 비費인데, 집안은 부귀하지는 않으나, 그 곳에서는 명문집안이라고 할 만 했다.

 

그는 천성이 세상에 물욕이 없고 출세할 생각도 없이 매일 그저 화초를 기르고 대나무를 가꾸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사람됨이 선량한 그는 부근의 호로암葫蘆庵에 기거하는 유생 가우촌賈雨村이 곤궁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자주 도움을 주었다.

 

중추절이 되자, 진사은은 집안의 연회를 마치고, 사람을 시켜 서재에 주연을 마련하고 암자에 있는 가우촌을 초청했다.

 

가우촌은 그때 달을 보며 오언시五言詩 한 수를 즉흥적으로 감흥을 토로하고 있었다:

 

未卜三生愿 (삼생의 인연을 점칠 수는 없지만)

烦添一段愁 (그리움으로 근심만 더해가네)

闷来时敛额 (심란하여 이마를 찡그리며)

行去几回头 (몇 번이나 뒤돌아보던 그 모습을 떠올리네)

自顾风前影 (이 몸은 바람 앞에 있는 그림자)

谁堪月下俦?(누가 있어 월하노인을 대신해 주겠나?)

蟾光如有意 (달님이 내 마음과 같다면)

先上玉人楼 (먼저 님이 있는 곳을 비추기를)

 

시 읊기를 마친 가우촌은 자기의 일생의 포부를 펼칠 기회를 떠올리고, 하늘을 향해 장탄식을 크게 탄식하며 대련 한 구절을 읊었다:

 

玉在匱中求善價 (구슬은 궤 안에서 좋은 값을 구하고)

𨥁於匳內待時飛 (비녀는 장 속에서 때를 만나기를 기다리네)

 

이때, 공교롭게도 진사은이 들어오다가 듣고 찬탄의 말을 했다. “우촌 형은 정말로 포부가 보통이 아닙니다!”

 

가우촌이 얼른 웃으며 말했다.

 

“우연히 그저 나오는 대로 옛사람의 시구를 읊은 것뿐이지, 감히 어떻게 오만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께서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오늘 저녁이 마침 추석날 밤이니, 보통 단원절團圓節이라고도 말하는데, 존형尊兄이 승방에 기거하고 계시니, 적적하고 쓸쓸할 것 같아서 특별히 작은 주안상을 마련하고 같이 한잔하려고 모시러 왔는데, 거절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 말을 들은 가우촌은 사양하지 않고, 진사은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美中不足(미중부족) :대체로 좋으나 아직 부족한 데가 있다

 

[명언이 나오는 원문]

二仙师听毕,齐憨笑道:“善哉,善哉!那红尘中有却有些乐事,但不能永远依恃,况又有‘美中不足,好事多魔’八个字紧相连属,瞬息间则又乐极悲生, 人非物换,究竟是到头一梦,万境归空,倒不如不去的好。”(第一回)

 

[해석문]

두 선사는 그 말을 듣고서 함께 껄껄 웃었다.

 

“좋은 일이야! 좋은 일이야! 거기 인간세계에는 정말로 즐거운 일이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건 오래할 수는 없다고. 더구나 옛말에 ‘아름다운 것에는 부족함이 있고,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라는 여덟 글자는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또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기게 되어, 결국은 한바탕의 꿈이 되고, 만사가 공공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네.” (제 1회)

 

[명언고사]

여와씨女娲氏가 돌을 다듬어서 하늘을 메울 때에 36,501개의 오색 석두石頭를 찾아서 하늘을 메웠는데, 마지막에 하늘의 구멍을 다 메우고 한 개의 석두가 남게 되자, 여와는 그것을 청경봉靑埂峰 밑에다 버렸다.

 

뜻밖에도, 이 돌멩이는 천만년 동안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면서 영성靈性이 생기게 되었는데, 혼자서 스스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크기도 적게 크게 마음대로 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가 여와가 하늘을 메우다가 버려져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며 슬픔 마음으로 매일 원망과 탄식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석두는 또 큰소리로 탄식을 하고 있는데, 멀리 전신에 신선의 기운이 충만한 화상和尙과 도사道士가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청경봉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홍천에 있는 각종 부귀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속된 생각이 든 이 석두는 곧 두 신선에게 자기를 휴대하고 속세로 가달라고 간청했다.

 

그의 말을 들은 두 신선은 일제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재善哉로다, 선재로다! 그 속세에 즐거운 일이 좀 있기는 하나, 영원히 기댈 수는 없고, 더구나 또 ‘미중부족美中不足, 호사다마好事多魔’(아름다움 중에 그래도 부족함이 있어, 즐거운 일에는 마魔가 많이 낀다)이 있어 이 여덟 글자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순식간에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비극이 생겨나는데, 사람이 바꿀 수는 없으니, 결국은 한 바탕의 꿈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공空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

 

그런데 이 석두는 속세에 가려는 생각이 십분 가득했기 때문에 전혀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여전히 재삼 간절히 부탁했다.

 

화상과 도사는 억지로 인간세계에 들어가려는 그것의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즉시 그것을 휴대하고 인간세계로 가서 누리게 해주고, 마지막을 기다렸다가 다시 그 본질을 회복시키겠다고 응락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솜씨를 부려서, 즉시 이 큰 돌을 아름다운 옥으로 변하게 하여 부채에 달고 다니는 크기로 축소시키고, 글자 몇 자를 새겨 넣고 소매 속에 넣고 인간세계로 향했다.

 

홍루몽이야기

『홍루몽紅樓夢』: 개편사략改編史略

 

처음으로 나타난 『홍루몽』 극(戱)은 “정갑본程甲本”이 간행된 이듬해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건륭乾隆 57년(1972년)에 중진규仲振奎가 만든 『장화葬花』 일절一折이다.

 

그 뒤에 각종 『홍루紅樓』극이 나날이 증가했다. 아영阿英 선생이 편성한 『홍루몽희곡집紅樓夢戱曲集』에는 작품 10 종이 수록되어 있다.

 

가경嘉慶과 도광道光 이후로, 희곡戱曲 외에, 또 허다한 설창說唱 작품이 출현했다. 호문빈胡文彬 선생이 편성한 『홍루몽자제서紅樓夢子弟書』와 『홍루몽설창집』에는 127 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

 

저명한 경극京劇 배우 매란방梅蘭芳의 조부 매교령梅巧玲은 동광同光 연간에 『홍루紅樓』 극을 공연한 바 있다. 사상운史湘雲과 임대옥林黛玉의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근래 수십 년 동안에, 각종 개편 작품이 끝없이 차례로 출현했다.

 

예를 들면: 원미운袁美雲, 주선周璇, 왕단봉王丹鳳이 주연한 영화 『홍루몽』이 있고; 서진徐進 극본의 서옥란徐玉蘭, 왕문연王文娟 주연의 월극越劇(중국 절강성浙江省 성현嵊縣 지방에서 나온 민속극과 그 음악으로, 기본 표현 수단은 노래이며, 필요한 대목에서는 대사도 쓰고, 절강 지역, 상해, 소남蘇南 등지에서 유행함) 『홍루몽』, 화극話劇 『강동화주絳洞花主』, 경극京劇 『우삼저尤三姐』, 『청문晴雯』, 『습인襲人』, 『왕희봉대료녕국부王熙鳳大鬧寧國府』, 곤곡昆曲 『홍루몽』, 『시정試情』, 『장화葬花』, 『청문晴雯』, 평극評劇 『홍루몽』, 황매희黃梅戱 『홍루몽』, 민극閩劇 『대옥분고黛玉焚稿』, 『청문晴雯』, 월극粵劇 『홍루몽』, 『대옥장화黛玉葬花』, 『보옥곡령寶玉哭靈』, 『청문보구晴雯褓裘』, 『홍루이우紅樓二尤』, 천극川劇 『왕희봉王熙鳳』, 『보옥곡령寶玉哭靈』, 회극淮劇 『홍루쌍옥紅樓双玉』, 『우이저여우삼저尤二姐輿尤三姐』, 석극錫劇 『홍루몽』, 소극蘇劇 『금옥연金玉緣』, 검극黔劇 『대옥장화黛玉葬花』, 전희滇戱 『보옥청금寶玉聽琴』, 『대옥장화黛玉葬花』, 하남곡극河南曲劇 『홍루몽』, 민족무극民族舞劇 『홍루몽』, 파뢰무극芭蕾舞劇 『임대옥林黛玉』, 매화대고梅花大鼓 『추창풍우석秋窓風雨夕』, 경운대고京韻大鼓 『보옥탐청문寶玉探晴雯』 등등이 있다.

 

불완전한 통계이나, 『홍루몽』의 개편 작품 중에는 곤곡이 26 종種, 피황皮黃(중국 전통극의 곡조로, 서피西皮와 이황二黃을 함께 일컫는 말) 경극이 33 종, 越劇이 6 종, 천극川劇이 5 종, 상극湘劇이 3 종, 평극評劇이 1 종, 월극粵劇이 27 종, 계극桂劇이 1 종, 전극滇劇이 3 종, 화극話劇이 16 종, 영화가 20 부部, 드라마가 3 부部, 설창說唱 작품이 500여 편이 있다.

 

20 세기世紀 80년대 이래로, 예술 표현의 수단의 개발과 제작 기술의 향상으로, 『홍루몽』을 소재로 한 개편 작품이 대량으로 한꺼번에 생겨났다.

 

1987년에 유주뢰由周雷, 유경로劉耕路, 주령周岭의 각본으로 왕부림王扶林이 연출한 36 집集 텔레비전연속극 『홍루몽』이 세상에 나왔는데, 사회에 강렬한 반향反響을 일으켜,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국내에서는 이미 700여 번이나 방송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이 드라마의 방영권을 구매했다.

 

그 중에서 왕립평王立平이 작곡한 연속극 삽입곡은 더군다나 전국에서 불려졌는데,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철려謝鐵驪와 사봉송謝逢松의 시나리오로 사철려가 연출한 6 부部 8 집集의 영화 『홍루몽』이 촬영을 완성하여 전국에 방영되었다.

 

그밖에 북경군구전우문공단北京軍區戰友文工團이 각본을 써서 연출한 대형 무용극 『홍루몽』 등이 있다.

 

『홍루몽』으로 소재로 제작한 형형색색의 공예품은 더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예를 들면 유명한 초소형 조각물 예술가 팽조술彭祖述의 『홍루몽』 소형 조각, 천진天津의 민간공예가 왕적王玓의 금릉십이차金陵十二𨥁의 면소面塑(물들인 찹쌀가루나 밀가루로 빚은 소상塑像) 채석彩石으로 상감하여 만든 대형 『홍루몽』 병풍, 호남湖南에는 석조石雕 『홍루몽』, 사천四川에는 비단에 『홍루몽』의 인물을 수놓은 것이 있고 또 여러 가지 소재로 대관원大觀院과 영국부榮國府의 경관의 모형을 만든 예술 공예 등등이 있다.

 

홍루몽이야기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20)

 

고증파考證派

호적胡適을 대표로 하는 신홍학파新紅學派의 한 종류로, 대량의 사료史料와 필기筆記 등의 문자를 조사하거나 혹은 실물實物 재료材料를 기반으로 하여 엄격한 고증 방법으로 『홍루몽』 작가의 생애와 가세家世, 판본 등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파의 일종이다.

 

자전설自傳說

처음으로 “자전설”을 창시한 청나라의 강순이江順怡는 『독홍루몽잡기讀紅樓夢雜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루몽』은 오서悟書이다. 타인을 만나 겪은 경험, 겪은 일의 서술, 그 정情과 경景으로 겪은 정情과 경景이다. 마치 백발의 궁인宮人이 흐느끼며 천보天寶를 얘기하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남녀의 애정이나 사치하고 화려함을 얘기하나, 세심한 고의로 여러 차례의 핏자국을 살펴 볼 수 있다.’

 

‘『홍루몽』에 서술한 일은 모두 작가가 자신의 평생을 얘기한 것이다. ....... 수십 년을 겪으며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를 원망하고 한탄하며 참회하면서 타인에게 견줄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의 관점이 영향을 일으키는 데는 제한이 있다. 나중에 호적胡適은 『홍루몽고증』에서 “자서전설”을 제기하고, 『홍루몽』이란 소설은 조설근의 “자서전”이고, “그 안에 있는 진사은甄사隱, 두 사람의 가보옥은 즉 조설근 자신의 화신이고; 진사은과 두 곳의 가부賈府는 즉 당시의 조가曹家의 그림자이다”라고 했다.

 

유평백兪平伯은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작가가 창작한 『홍루몽』에 대해 “자전설自傳說”을 제기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관념은, 『홍루몽』이 작가의 자서전을 토대로 한 것이고, 경험의 느낌을 푸념한 것에 불과하다. 내가 설자楔子(근대 소설에서 본 이야기 앞에 나와, 어떤 사건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따로 설명하는 절節)로부터 미루어 짐작한 바로는, 상투적인 동양 사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전에 닥친 환난 때문에 신세가 처량해져서 뼈저린 후회로 갈피를 잡지 못하며 통곡해마지 않다가, 문장으로 표현하여 스스로 원망하고 스스로 해소시킨 것이다.”

 

근래에 와서, 홍학 연구가 점점 깊이 들어가고 독자의 문학적인 소양도 계속해서 수준이 올라가게 됨에 따라, 더욱 많은 홍학 애호가가 문학 작품과 작가의 경험과의 관계를 인식하게 되어서 찬성하고 지지하는 주장이 차츰 감소되고 있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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