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무협소설 소오강호8 완결편 김용

一字師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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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 소오강호8 완결편 김용

 

소오강호 제 8 권

영호충은 화산의 조양봉에서 항산으로 온 그날 이후로 이미 낙심이 되어 의기가 소침하여 있었다. 두 눈으로 일월교의 기세를 똑똑히 보았으므로 항산파는 결코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하리라 단정하였다. 단지 임아행이 공격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가 모두 같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나마 어떤 자가 소림, 무당, 여러파에게 구원을 요청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영호충은 '설사 소림 무당 두 파가 일제히 우리를 구하러 온다손치더라도 마교에 대항할 수 없은 것이다'라고 그 제안을 일축하여 그 방법을 건의한 자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산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소림무당의 많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힐 필요가 있겠는가.'

그는 마음속으로 임아행, 상문천 등과 싸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싸움을 하게 된다면 그들과원수지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영여과의 관계는 이것으가 영원히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포자기하게 되고 세상살이가 무의미해졌으며 극단적으로는 일찌감치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방증 등 일행이 풍청양의 부탁을 받고 모두들 도와주러 오자 마음이 크게 진작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일월신교의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그리 마음이 가지 않았다.

방증은 또 말하였다.

 

[영호 장문, 출가한 사람들은 자비로움을 그 목표로 삼고 있읍니다. 소승은 절대로 싸움을 좋아하는 무리는 아닙니다. 이 일이 마무리가 잘 된다면 그 이상 좋을 것이 없겠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한발짝 양보하고 임교주가 한발짝 양보한다면 말입니다. 문제는 결코 우리가 한발짝 양보하려 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임교주가 우리 정교의 각 파를 궤멸하려고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모두는 그에게 절을 하고 큰 소리로 성교주님이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라고 높이 외치는 길 밖에 없읍니다. 아미타불.]

 

방증이 성교주님이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라는 말끝에 아미타불이라는 말을 붙이자 매우 우스웠다.

영호충은 자기도 모르게 웃고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성교 무슨 성교주라든가 또는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한다 라는 말을 들으면 온몸이 근질근질하고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읍니다. 저는 몇단지의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나 그 무슨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한다 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가 아주 어지러워지고 금방이라도 취해서 쓰러질 것 같습니다.]

방증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 일월교의 저주받은 말은 정말 듣기도 싫소이다.]

잠시 멈췄다가 도 말했다.

 

[풍선배께서는 조양봉에서 영호 장문인이 고통받는 장면을 목겨하시고 특별히 도곡육선편으로 내공의 구결(口訣)의 한편을 보내왔읍니다. 소승더러 영호 장문에게 전해 주라고 하시면서요. 도곡육선들의 말투는 너무나 얼토당치 않지만 입으로 전하는 내공의 비결은 퍽이나 조리가 있고 분명했읍니다.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데 풍선배님께서는 그들 여섯형제에게 숙달되게 외우라고 진정 어떤 방법을 쓰신 것 같습니다. 자, 영호 장문께서는 길을 인도하십시오. 내당에 가서 구결을 전수해 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공손히 방증대사를 모시고 조용한 실내로 들어갔다. 이것은 풍청양이 방중대사에게 명하여 대신 전해주는 구결이었지만 마치 태사부님이 눈 앞에 있는 듯하였다.

즉시 방증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풍태사숙님의 은혜는 산과 같습니다.]

 

방증도 매우 겸양을 하여 그의 예를 받더니 말을 했다.

 

[풍선배님께서는 영호 장문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십니다. 구결대로 열심히 연마를 하시기 바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녜, 제자는 그 며에 따르겠읍니다.]

 

즉시 방증은 구결을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영호충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암송을 하였다.

이 구결은 그리 길지가 않았다. 앞 뒤가 한 천여자 정도 되었는데 방증은 한번 일고 영호충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암기하라고 하였다. 또 한참 지나자 한번 더 읽어주었다. 앞 뒤 해서 모두 다섯번을 읽으니 영호충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외웠고 하나도 틀린 데가 없었다.

방증은 말했다.

 

[풍선배님이 전한 이 내공의 심법(心法)은 비록 천여 자에 불과 하지만 그 속에는 오묘한 이치가 담겨져 있읍니다. 이곳에는 우리 둘 만이 있으니 소승이 한마디 충고를 하겠읍니다. 영호 장문인은 검술은 정묘하나 내공은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내공은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대사님은 저버리지 마시고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방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풍선배님의 이 내공 심법은 소림파의 내공과는 퍽이나 다릅니다. 그러나 천하의 무공은 모두가 하나로 귀속되고 그 가운데 근본 요지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읍니다. 영호 장문인께서 거절하지 않는다면 소승이 해석을 해 드리겠읍니다.]

 

영호충은 그가 현존 무림의 첫째 둘째 가는 고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의 가르침은 풍태사숙이 친히 전수해 준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풍태사숙이 그를 대신해서 전수하게 한 것은 물론 그의 내공이 정묘하고 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기꺼이 대사님의 가르침을 받겠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그렇게 승낙을 해주니 고맙소이다.]

 

즉시 그 내공심법에 관해서 한마디 한마디 해석을 하고 분석을 해주었다. 또한 여러가지의 호흡, 운기, 토납, 반운(呼吸, 運氣, 吐納, 搬運)의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영호충은 그 구결을 외울 때 억지로 외웠으나 방증대사가 이렇게 해석을 해주고 이해를 드와주자 비로소 구결중에는 무수히 정묘한 이치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영호충은 깨달음이 워낙 빠른 사람이었으나 이 내공의 정묘함은 그가 한참 동안 생각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방증대사가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자 그는 금새 무학중에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또 다른 경지를 보았던 것이다.

그는 탄식을 하며 말했다.

 

[저는 몇년 동안 강호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고 다녔읍니다. 그것은 실로 자기자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을 생각하니 낯이 뜨거울 따름입니다. 비록 제가 오래 살 수 없어서 풍태사숙이 전해 주시는 정묘한 내공의 이치를 다 깨우칠 수 없다 하더라도 음 거 뭐였드라 아침에 큰 이치를 들으면 설사 저녁에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는 옛 사람들의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방증이 말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를 깨우치고 저녁에 죽는다 할지라도 아무런 여한이 없다 하셨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저는 그 말을 사부님께 들은 적이 있읍니다. 오늘 태사부님의 가르침을 받고 마치 봉사가 눈을 뜬 양 광명천지를 보는 듯하여 제 마음속에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우리 정교 각 파는 이미 항산 부근에 운집해 있고 각처 요로를 지키고 있읍니다. 마교가 공격해 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두 합심하여 막으면 반드시 진다고 할 수는 없읍니다. 영호 장문께서는 어찌 그리 소심하십니까? 이 내공의 심법은 한 두해 연마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루를 연마하면 그만큼 보탬이 되고 한시간을 연마하면 한시간 연마한 만큼 잇점이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며칠 동안은 아무 일이 없으테니 영호 장문인께서는 연마에만 정진하십시오. 제가 이곳에 함께 있는 동안 같이 연마를 하고 연구를 해 봅시다.]

 

영호충은 말했다.

 

[대사님의 정성에 저는 실로 감격하고 감동을 했읍니다.]

방증은 말했다.

 

[아마 지금쯤 충허도인께서는 오셨을 것이오. 우리 나가서 살펴보는 게 어떻겠소?]

 

영호충은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충허도장께서도 오셨군요. 제가 너무 태만했읍니다.]

즉시 방증대사와 영호충은 외당(外堂)으로 나왔다. 불당 안에는 이미 촛불이 켜져 있었다. 두 사람이 내공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동안 이미 날이 저물었던 것이다.

 

세명의 도인이 방석에 앉아서 방생대사 등과 말을 나누는 것이 보였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충허도인이었다. 세 도인은 방증과 영호충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제히 일어났다.

영호충은 인사를 하며 말했다.

 

[항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 도장께서 천리를 멀다 않으시고 이렇게 찾아주시니 항산의 모든 사람들은 실로 어찌 다 보답을 해야할지 모르겠읍니다.]

 

충허동인은 즉시 몸을 바로 세우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일찌감치 왔읍니다. 방증대사께서 동생에게 내싱에서 내공의 정묘함을 전수해 주는 것을 알고 미리 알리지 않았읍니다. 동생은 내공의 정묘함을 배워서 임아행이 올라오면 그에게 한번 본 때를 보여주어야 하오.]

 

영호충은 말했다.

 

[이 내공의 심법은 그 경지가 오묘하고 대단하지라 며칠동안에 어찌 제가 그 어려운 것을 배울 수가 있겠읍니까? 듣건데 아미, 곤륜, 공도 여러 파의 선배님들도 오셨다는데 응당 이곳으로 모셔와서 함께 상의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러 선배님들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충허는 말을 했다.

 

[마교의 염탐꾼들에게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이 발각될까봐 그들은 지금 매우 은밀한 곳에 숨어 있읍니다. 만약 산을 오르게 한다면 아마 비밀이 새어 나갈지도 모르지요. 우리가 산에 올라올 때도 모두가 변장을 했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귀파의 제자들이 먼저 통조를 하지 않았겠읍니까?]

 

영호충은 맨처음 충허도인을 만났을 때 그가 나귀를 타는 노인으로 변장을 하였고 또 다른 두 명의 사내가 따르고 있었으므로 사실 모두 무당파의 고수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때 자세히 두분의 도인을 보니 그 옛날 호북(湖北)의 길에서 자기와 검시합을 한 두 명의 사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웃으면서 말했다.

 

[두 분 도장의 변장술은 정말로 기가 막힙니다. 만약 충허도장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정말 짐작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두 늙은 도인은 그때 시골농부로 변장하고 있었다. 한사람은 땔나무를 짊어지고 있었고, 또 한사람은 배추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매우 숨을 헐떡거려 마치 몸에 병이 있는 듯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 모두 정신이 멀쩡하고 건장해 보였다. 단지 다시 한번 살펴보니 그때의 눈의 형태만 희미하게 기억났다.

충허는 그 댈나무를 짊어진 사내로 분장했던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이 바로 청허(淸虛) 사제입니다.]

 

그때 배추를 가지고 있었던 사내를 가리키며 또 말했다.

 

[이분은 바로 나의 사질입니다. 도호는 성고(成高)라고 합니다.]

 

네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청허와 성고는 모두 말했다.

 

[영호 장문인의 검술은 매우 고명하십니다.]

 

영호충은 겸양을 하며 연신 말을 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읍니다. 죄송했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나의 사제와 사질은 검술에는 정통하지 못하나 젊었을 때 그들은 서역(西域)에서 한 십여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읍니다. 그때 서역에 살면서 특별한 기술을 배웠는데 한분은 매복시키는 기술이 뛰어나고 또 한분은 폭약을 매우 잘 다루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기술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형제, 내가 그들 두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은 다른 의도가 있어서입니다. 그들 두 사람은 우리들에게 중대한 일을 해줄 것입니다.]

 

영호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보기를, [중대한 일이라니요?]

 

충허는 말했다.

 

[노도는 실례를 무릅쓰고 한 가지 물건을 이곳에 가지고 왔읍니다. 영호 형제는 한번 보시겠소?]

 

원래 충허도인은 성격이 소탈했고 방증대사보다 구김살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영호충을 영호 형제라고 허물없이 불렀는데 반면 방증대사는 영호 장문이라고 불렀다.

영호충은 퍽이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품속에서 도대체 어떤 물건을 꺼내나 쳐다보고 있었다.

 

[이 물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작으나 실로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있지요. 청허사제, 당신이 그들에게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시오.]

 

청허는 대답을 하고 나갔다. 금방 네명의 시골농부 차림을 한 사내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들은 모두 맨발이었고 모두가 배추를 짊어지고 있었다.

청허는 말했다.

 

[영호장문인과 방증대사에게 인사를 드리시오.]

 

네명의 사내는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틀리없이 무당에서의 신분이 그리 낮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라고 영호충은 짐작했다. 그래서 즉시 공손하게 예로써 대하였다.

청허는 말했다.

 

[이제 그 물건을 꺼내서 조립하시오.]

 

네명의 사내가 짊어지고 온 배추와 무우를 걷어내니 그 안에서 몇개의 보따리가 나왔다. 보따리를 풀자 거기에는 나뭇조각, 쇳조각, 나사못, 대나무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네명의 행동은 극히 민첩하였다. 이 몇개의 물건들을 서로 조합하고 꾸미더니 순식간에 한개의 태사의자(太師椅子)를 만들어 내었다.

영호충은 매우 이상해서 깊이 생각하였다.

 

(이 태사의자에는 많은 비밀장치가 부착되어 있는데 무슨 용도가 있는지 모르겠구나. 설마 하니 내공을 수련하는데 쓰이는 것은 아니겠지.)

 

의자가 만들어진 후 네명은 두 개의 보따리에서 의자를 덮는 덮개를 꺼내어 태사의자 위에다 내려놓았다. 어둠침침한 실내에 갑자기 광채가 번쩍거렸다. 그 태사의자를 덮는 덮개는 담황색의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금황색의 비단실로 아홉마리의 금룡(金龍)이 수놓아져 있었고, 이 금룡은 막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들고 있었다. 좌측에는 중흥성교 택피창생(中興聖敎澤被蒼生)의 여덟 글자가 수놓아져 있고, 우측에는 천추만재 일통강호(千秋萬載一統江湖)가 써 있었다. 아홉 마리의 용은 마치 살아 있는 듯했으며 이 열여섯 글자들은 모두가 은색으로 수놓아져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하게 하여 탐이 날 정도였따. 글자의 주위에는 많은 명주, 금강석과 많은 비취보석들이 꽂혀 있었다. 누추한 작은 암자에 갑자기 보석의 빛이 가득찼다.

영호충은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조금 전에 청허가 서역에서 기계장치에 대해 배웠다고 한 말이 생각 나 물어봤다.

 

[임교주가 이 의자를 보면 반드시 앉지 않고는 못배길 겁니다.

임교주가 이 의자에 앉으면 의자의 장치가 발동되어 그의 생명은 사라져 버리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충허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임아행은 임기웅변에 능하고 행동 또한 번개처럼 빠릅니다. 의자에 비록 기계장치가 되어 있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을 느낀다면 즉시 몸을 날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를 없앨 수가 없읍니다. 이 의자의 다리에는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장치는 폭약을 건드리게 되어 있읍니다.]

 

이 말이 나오자 영호충과 방증대사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하였다.

방증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충허는 또 말했다.

 

[이 장치의 장점은 잠시 이 의자에 앉아 있는다면 누구든지 아무탈 없이 앉을 수 있읍니다. 즉 이 의자는 차 한잔 마실 시간을 앉아 있어야만이 비로소 폭약이 터지게 되어 있읍니다. 임아행은 의심이 많고 또한 세밀한 사람이므로 항산 견성봉에 이러한 의자가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곧바로 앉지는 않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부하들에게 먼저 앉아 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의자에는 금룡이 하늘을 떠받들고 있고, 또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글자가 써 있으므로 마교의 두목은 그 누구도 오래 앉아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단 한번 앉기만 하면 틀림없이 내려오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도장의 생각은 정말 용의주도하십니다.]

 

충허도장은 말했다.

 

[청허사제는 또 다른 계획이 있읍니다. 만약 임아행이 곧바로 앉지 않고 사람들에게 의자의 덮개나 방석을 내려놓으라고 하거나 심지어 의자를 일일이 뜯어보려고 한다면 그때를 대비하여 의자를 풀기만 해도 똑같이 장치가 작동되게 해 두었읍니다. 성고 사질이 이번에 여기에 가져온 것은 총 이만근의 폭약입니다.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영호충은 내심 가슴이 철렁하였다. 깊이 생각하기를, (이만근의 폭약이라. 이 많은 폭약이 폭발을 하면 옥석을 가릴 것 없이모두 죽는 것이다. 임교주 뿐만 아니라 영영과 상형님도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충허는 그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는 것을 보자 말을 했다.

 

[마교는 공공연하게 항산파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항산파를 멸한 다음에 또 다시 우리 소림, 무당을 공격하여 무림에서의 화근을 뽑아버리겠다고 하였읍니다. 우리가 이런 계획을 짜내어 임아행을 상대하는 것은 조금 자니친 처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번 기회에 마교의 괴수를 제거하여 무림 수천만의 생명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방증대사는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우리는 자비로움을 가지고 중생을 구하고 또한 벽사항마(酸邪降魔)를 해야합니다. 한 사람을 죽여서 수천 사람을 구할 수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대자대비의 뜻입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의 얼굴 표정은 장엄했으며 모든 스님들은 일제히 일어나 합장하면서 말했다.

 

[방장대사의 말씀이 심히 옳습니다.]

 

영호충도 방증의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월신교가 항산파를 씨도 남기지 않고 없애려고 하기 때문에 정교의 각 파는 자연히 임아행을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이치이고 그 누구도 그 말에 반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영호충은 임아행을 죽이는 것을 내심 원하지 않았고, 상문천을 죽이는 것 또한 차라리 자기가 죽을망정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영영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함께 살고 함게 죽기로 맹세한 이상 그것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여러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고는 약간 주저하더니 말했다.

 

[일은 이미 시작되었읍니다. 일월신교가 우리들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했으니 어쩔 수가 없지요. 충허도장의 계획은 어떤 면에서는 이쪽의 인명피해를 최소한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충허도인은 말했다.

 

[영호 형제의 말씀이 맞는 말이오. 인명피해를 최대한 줄이려는게 우리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저는 견문이 얕고 아는 것이 없으니 오늘부터 항산의 일은 방증대사와 충허도장께서 맡아서 해 주십시오. 단지 저는 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함께 도울 것입니다.]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절대 그럴 수는 없으빈다. 당신이 항산의 주인인데 나와 방증대사가 어찌 주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영호 장문의 뜻이 그러하니 도형께서는 그리 사양하지 마시오.

지금의 대사는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도형께서는 명령을 내리고 우리들이 거기에 호응하는 것으로 합시다.]

충허는 몇번이고 사양하다가 대답을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항산에 오르는 각 길목에 우리는 이미 매복하고 있읍니다. 마교가 이곳에 공격해 오면 사전에 우리는 알 수가 있읍니다. 그날 영호 형제가 군웅들을 이끌고 소림사에 왔을 때 우리들은 좌랭선의 계략에 따라 공성계(空城計)를 썼었지요......]

 

영호충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그때는 제가 너무나 모르고 섣불리 행동을 했었읍니다. 정말로 죄송하기 짝이 없읍니다.]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요. 우리들은 다시 공성계를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임아행이 의심을 할 테니까요. 저의 소견으로는 항산파는 모두 산에서 방어를 하고 소림과 무당 두 파는 각각 수십명을 선출하여 파견하는 걸로 합시다. 마교의 사람들이 공격해 오는 것을 알면서 소림과 무당 두 파가 만약 누구도 사람을 파견하여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논리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아행 이 교활한 자는 틀림없이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방증과 영호충은 모두 말을 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 나머지 곤륜, 아미, 공동 등 여러 파는 모습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고 모두들 산동굴에 매복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교가 공격을 해오면 항산, 소림, 무당 삼파의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대항해야 하고 반드시 진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우리 삼파의 고수들은 모두가 일류 고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많이 죽일수록 좋고 우리들은 될 수 있는대로 손해를 피해야 합니다.]

방증은 탄식하며 말했다.

 

[마교의 고수들은 마치 구름과 같은 무사들인데 이번에 틀림없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쳐들어 올 것입니다. 이번 싸움은 틀림없이 쌍방에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오.]

 

충허는 말했다.

 

[우리들은 몇군데 깎아지른 절벽에다 밧줄과 사닥다리를 설치 할 것입니다. 한참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우리가 질 것 같으면 하나하나 그 밧줄과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적이 더이상 뒤쫓아 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임아행은 승리를 한 후에 다시 이 의자를 보면 매우 의기양양하게 앉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폭약은 폭팔하게 됩니다. 임아행이 아무리 크나큰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 화를 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어서 항산의 산길에 서른 두군데의 지뢰(地雷)를 설치하여 동시에 폭파하면 마교의 교중들은 그 누구도 산아래로 내려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서른 두군데의 지뢰라니요?]

 

충허는 말하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고사질은 내일 아침 일찍 산에 오르는 여덟 개의 길목에다 제일 위험한 네개 장소를 선택하여 강력한 지뢰를 묻을 것입니다. 지뢰가 폭발하면 산에 올라가 든 내려가든 그 길이 완전히 끊기게 됩니다. 만약 마교의 교중들 만명이 산에 오른다면 만명 모두가 굶어 죽을 것이고 이만명이 산에 오르면 이만명 모두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운 것은 좌랭선이 옛날에 쓰던 그런 계략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절대로 그들이 지하갱도를 통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는 없읍니다.]

 

영호충은 말하였다.

 

[그때 소림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지하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나서 억하고 소리를 질렀다.

충허는 물어보았다.

 

[영호형제 우리들의 계획에 잘못된 점이 있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저의 생각으로는 임교주가 항산에 와서 그 의자를 보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심할 것입니다.

어째서 항산파가 이러한 의자를 만들었으며 또한 천추만재일통강호라는 여덟 글자를 수놓았는가 하고요. 일을 잘 처리해 놓지 않으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 계획에 말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그 점은 나도 생각을 해 보았읍니다. 사실 임교주가 그 의자에 앉고 안 앉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읍니다. 그가 굳이 의자에 앉지 않더라도 우리는 암암리에 다른 폭약을 장치할 것이고 똑같이 이 폭약들은 터질 것입니다. 단지 그가 의기양양하게 천추만재 일통 강호 어쩌고할 때 죽음을 당한다면 그것으로서 충분히 무림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겠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그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성고도인은 말했다.

 

[사숙님 저에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보시렵니까?]

충허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직접 방장대사님과 영호 장문인에게 말씀드려 가르침을 받게나.]

 

성고는 말했다.

 

[소인은 영호 장문인과 임교주의 따님께서는 예전부터 혼인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정과 사는 같은 길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포기 했다는 소문을 들었읍니다.만약 영호 장문인께서 두 명의 항산제자를 임교주에게 파견하여 임소저와의 관계 때문에 손재주가 좋은 목수를 시켜 특별히 이 의자를 만들어 교주에게 선물하는 것이니 이제 두 집안이 휴전을 하고 화기를 되찾았으면 한다고 하면 어떻겠읍니까? 임교주가 대답을 하든 안 하든간에 그가 항산에 와서 그 의자를 보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로 묘안이네. 첫째로는......]

 

영호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 됩니다.]

 

충허는 멈칫하고 이미 그방법이 채택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물어보기를, [영호형제는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신가?]

 

영호충은 말했다.

 

[임교주가 우리 항산의 모든 사람들을 죽인다고 한 이상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막을 것이고 우리가 가진 지혜로 정정당당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가 그곳에 온다면 우리는 그를 죽이면 그만인 것입니다. 절대로 거짓을 꾸며 이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충허는 말했다.

 

[좋소이다. 옳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합시다. 임아행이 의심을 품든 품지 않든 그가 항산에 와서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면 그때 가서 본때를 보여줍시다.]

 

모든 사람들은 즉시 적을 맞아 싸울 방법을 논의하였다. 어떻게 적과 대항하고 어떻게 엄호를 하고 어떻게 퇴각을 하고 어떻게 폭약을 장치하며 어떻게 지뢰를 묻는가에 대해 하나하나씩 서로 상의 하였다.

충허는 매우 조심스런 사람이라 적이 공격할 때 폭약을 맡은 책임자가 만에 하나 어떤 변고가 일어날 때를 대비해 또 다른 조수를 정해 두었다.

다음날 아침 영호충의 인도하에 여러 사람들은 여러 곳을 두루 살피며 지형을 관찰하였다. 청허와 성고 두 사람은 폭약을 묻고 폭약을 폭파시키는 장치와 지뢰를 묻을 곳을 선정하여 각각 작업에 들어갔다. 충허와 영호충은 아주 험한 장소를 네곳 선정하여 퇴각의 길로 삼았다.

방증, 충허, 영호충, 방생 네 사람은 각기 한곳씩 맡아 지켜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적과 마주 싸우는 사람들이 모두 밧줄과 사닥다리를 타고 깊은 계곡으로 퇴각을 하면 이 네 사람이 최후로 계곡으로 퇴각을 하여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러 끈을 자르고 사닥다리를 끊어 더이상 적이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작전을 짰다.

그날 오후 무당파 중에 열 사람이 시골농부와 나무꾼으로 변장하여 산을 오르는 길목을 정하여 청허와 성고의 지시로 폭약을 장치하였다. 항산파의 여제자들은 각 처의 산 입구를 지켜 자기들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일월교가 밀정을 파견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삼일동안 바삐 움직이자 모든 것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갔다. 그래서 조용히 일월교가 대거 진격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임아행이 조양봉에서 각 파의 사람들을 모이라고 한 날부터 한달이 가까왔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틀림없이 실펀을 하는 사람이므로 절대로 기한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동안 충허, 성고 등 사람들은 바빴으나 영호충은 오히려 편안하였다. 날마다 묵묵히 방증이 전해준 내공의 구결을 읽고 구결의 법칙대로 연마를 하면서 모르는 것은 방증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날 오후 의화, 의청, 의림, 정악, 진견 등 여제자들은 연검청(練劍廳)에서 검을 연마하고 있었으며 영호충은 옆에서 지적을 하고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따. 진견은 나이가 제일 어렸으나 검술의 요지에 대해서 퍽이나 깨우침이 빨랐다. 그래서 칭찬하기를, [진사매는 정말로 총명하구료. 이 일초를 벌써 다 통달했으니 그러나......]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단전이 매우 아파왔다. 삽시간에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여러 제자들은 깜짝 놀라 달려와서 부축하며 일제히 물어보았다.

 

[어찌하여 그러십니까?]

 

영호충은 자기 몸 안에서 또 진기가 발작하고 있음을 알았다. 고통은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황 가운데 갑자기 퍼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마리의 비둘기가 똑바로 대청으로 날아 들어왔다.

여러 제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어머나!]

 

항산파는 편지를 나르는 비둘기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그 옛날 정정사태가 복건(福建)에서 적을 만났을 때와 정한, 정일 두 사태가 용천 주검곡(龍泉鑄劍谷)에서 곤욕을 당하고 있을 때도 이 비둘기를 보내어 구급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지금 대청으로 날아온 비둘기는 산아래서 지키고 있던 본 파의 제자들이 보낸 것이다. 비둘기 등에는 빨간색의 물감이 묻어 있는데 그것을 보자 일월교가 공격해 오고 있음을알았다.

방증대사, 충허도장이 항산에 온 이후로 여러 제자들은 만반의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모두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이렇게 어려운 때에 영호충의 병이 발작하자 모두들 우왕좌왕하였다.

의청이 외치기를, [의진, 의문 빨리 가서 방증대사와 충허도장께 알려라.]

두 사람은 명령을 받고 나갔다.

의청은 또 말했다.

 

[의화 사저님은 종을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의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몸을 날려 대청을 나가더니 종루(鐘樓)를 향해서 달려 나갔다. 종루에서는 땡땡땡 땡땡 세번은 길고 두번은 짧게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종소리는 모든 산에 전해졌고 이어서 통원곡, 현공사, 흑룡구(黑龍口)에 있는 각 암자에서도 일제히 종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방증대사는 사전에 적의 공격 기미가 있으면 세번은 길고 두번은 짧게 종을 울려서 알리도록 미리 분부를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종소리를 낼 때는 반드시 침착하게 쳐서 초조한 내색을 내지 말도록 분부를 했었다. 그러나 의화는 성질이 매우 급하고 또한 때가 때인 만큼 마음이 너무 조급해져 종소리는 매우 급박하고 초조하게 들리고 있었다.

항산파, 무당파, 소림파 삼파의 사람들은 즉시 사전에 안배를 한데로 자기 위치에 가서 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을 많이 죽이고 자기편의 사상자를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기 위해서 산에서 견성봉 정상까지 모든 곳에는 아무 사람도 배치시키지 않았고 아예 문을 크게 열어 적이 봉우리에 올라오면 접전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종소리가 멈추자 온 산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였따. 곤륜, 아미, 공동 여러 파 사람들은 모두 다 봉 아래 은밀한 곳에 몸을 숨기고 마교의 교중들이 봉우리에 올라와 명령이 떨이지기만 하면 그들의 퇴로를 막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충허는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산길에 지뢰를 매설했다는 일은 일체 다른파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마교의 사람들은 발이 넓어서 곤륜파 등 다른 파의 제자들 가운데 그들의 밀정을 숨겨둘 수 있기 때문에 만일 그 일이 알려지면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영호충은 종소리를 듣고는 일월교가 공격해 옴을 알았지만 아랫배가 마치 수천개의 칼로 일제히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이 뱃가죽이 너무도 아팠기 때문에 자기 배를 거머쥐고 땅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의림과 진견은 그런 모습을 보고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의청은 말했다.

 

[우리는 장문님을 부축해서 무색암(無色庵)에 모셔 놓읍시다. 그리고 방증과 충허도장의 분부레 따르기로 합시다.]

 

즉시 우수(于嫂)와 또 다른 나이 먹은 비구니가 팔을 내밀어 영호충의 옆구리를 끼고 끌어서 무색암으로 부축해 갔다. 막 암자에 도착하자 봉우리 아래서는 펑펑펑 하고 폭죽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이어서 호각소리가 쩡쩡 울리고 북소리가 둥둥 울려 왔다. 일월교는 과연 당당한 진열로 대거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방증과 충허는 이미 영호충의 병이 발작했음을 알고 헐레벌떡 암자로 뛰쳐들어 왔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형제, 안심하고 이곳에서 몸이나 돌보고 있게, 나는 이미 능허사제(凌虛師弟)에게 부탁을 해서 무당파의 퇴각을 엄호라도록 분부를 하였네. 항산파 일행을 엄호하는 일은 이 빈도가 맡겠네.]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방증은 말했다.

 

[영호 장문은 아무래도 먼저 깊은 계곡으로 퇴각을 하는 것이 좋겠소. 모든 일은 준비가 튼튼해야 하는 것이오.]

 

영호충은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럴 수는 없읍니다. 검을...... 검을 가져오너라.]

 

충허는 몇마디 더 권했으나 영호충은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호각소리가 멈추고 이어서 우뢰와 같은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성교주님은 천추만재하시고 일통강호하십니다.]

 

소리를 들어보니 못 되어도 사오천명은 되는 것 같았다. 방증, 충허, 영호충 세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진견은 영호충을 부축하여 장검을 건네 주었다. 영호충은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했으나 우측 손이 벌벌 떨려 오면서 검을 똑바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진견은 검을 그의 허리에다 묶었다.

갑자기 함성소리가 울리더니 음악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나 그리 살벌한 소리는 아니었다. 수명이 일제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월신교의 성교주님께서는 견성봉에 와서 항산파의 영호 장문인을 친히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일월교의 여러 장로들이 말하는 소리였다.

방증은 말하였다.

 

[일월교가 먼저 예를 갖추고 나중에 공격을 할 모양이니 우리가 너무나 인색할 필요는 없지 않소. 영호 장문은 그들로 하여금 봉우리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배는 또 한차례 극심하게 아파왔다.

방증은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것을 보고 잔잔히 말했다.

 

[영호 장문, 단전의 고통이 매우 심한 모양이구료. 풍사숙님이 전해준 내공의 심법을 써서 한번 돌려보는게 어떻소.]

 

영호충의 몸에는 수십개의 진기가 서로 부딪치고 충동을 하고 있었다. 만약 그 진기를 돌린다면 화약을 끌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고 고통속에 고통을 더 하는 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고통이 극점에 도달했으므로 나중의 결과를 생각지도 않고 법칙대로 한번 돌려보았다.

과연 진기가 부딪치는 가운데 아랫배의 통증은 아까보다 더욱 아파왔다. 그러나 몇번이고 진기를 돌리자 수십여개의 진기는 마치 가느다란 지류가 되고 지류는 또한 큰 냇물을 이루어 정삭적으로 운행이 되는 듯하였다. 비록 통증은 똑같았으나 서로 부딪치지 아니했고 마음은 약간 편안함을 느꼈다. 방증대사가 천천히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항산파 장문인 영호충과 무당파 장문 충허도인, 소림파 장문인 방증은 일월교 임교주의 가마를 기다리고 있소.]

 

그의 소리는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그 목소리는 멀리까지 보낼 수가 있었다.

영호충은 암암리에 내공의 심법을 운행하자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아예 무릎을 괴고 앉아서 눈은 코를 바라보고 코는 단전을 향하고 한쪽 손은 가슴을 쓰다듬고 또 한쪽 손으로는 배를 누르고 방증대사가 전수해준 법문을 연마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심법을 연마한지 불과 며칠이었고 비록 방증이 날마다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나 연마한 기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법칙대로 진기를 인도시키자 십여 개의 진기는 점점 한군데로 모여졌다. 그는 어찌 조금이라도 태만하겠는가.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한군데로 돌리었다. 처음에는 귓가에 무엇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아니했다.

방증은 영호충이 전심전력하여 공력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귓가에는 음악소리가 크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월교의 교중들은 외쳤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창생하신 성교주님의 가마가 항산에 오십니다.]

 

한참 지나자 음악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왔다. 견성봉을 모르는 산길은 매우 멀었다. 일월교 교중들은 발걸음이 빨라 한참 올라왔으나 음악소리는 아직도 산허리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항산 여러 곳에 매복해 있던 정교 문하의 사람들은 내심 암암리에 욕을 해대었다.

 

(못된 교주 같으니라고. 죽은 사람도 아닌데 꽹과리를 치고 북을 치고 무엇을 하는 짓거리란 말인가.)

 

적을 맞이하여 일전을 하려고 준비했던 사람들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모두는 마교의 교중들이 산에 올라오면 즉시 몸을 내밀어 한바탕 싸움을 하고 교중들을 죽인 후에 많은 적들이 모이면 바로 끈을 타고 깊은 계곡으로 퇴각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 임아행의 거동은 마치 황제가 순시를 나가는 것처럼 웅장하게 북을 치고 꽹과리를 울리며 봉우리를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먼저 선제 공격을 할 수가 없어서 마음만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한참 지나자 영호충은 단전에 있던 진기가 천천히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이 점점 가시었으며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즉시 생각하기를, (임교주가 봉우리에 올라온다고!)

 

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방증은 웃으면서 말했다.

 

[좀 나아지셨읍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지금 한바탕 붙었읍니까?]

 

방증은 말했다.

 

[그들은 아직 오지 않았소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거참 잘 되었읍니다.]

 

그리고는 즉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방증, 충허 등의 손에는 아무런 병기가 들려 있지 않고 의화, 의청 등이 무색암 앞에 넓은 공지에서 여러 겹으로 항산검진으로 서있었으나 장검은 허리에걸려져 있음을 보고는 임아행이 아직 산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기의 행동이 너무나 경솔했음을 깨닫고 껄껄껄 웃더니 검을 다시 칼집 속에 집어 넣었다. 함성소리와 북소리가 멈추자 소적 호금과 같은 작은 소리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임교주는 정말로 못 봐줄 짓만 하는구나. 음악이 울리는걸 보니 이 노인네 가마가 봉우리를 오르고 있나 보구나.)

 

그의 괴상하고 변화무쌍한 행동은 볼수록 더욱 비위가 뒤틀렸다.

가느다란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일월교의 교중들은 두 줄로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교중들은 하나하나의 차림새가 모두가 암산한 검녹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허리에는 흰 띠를 차고 있어서 그 화려함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앞에는 사십명이 앞장서고 있는데 이 사십명의 손에는 모두 쟁반이 들려 있고 쟁반 위에는 비단보자기가 덮혀 있었다. 그 안에는 어떤 물건이 담겨 있는지 그 누구도 몰랐다. 이 사십명은 허리에 무기를 차고 있지 않았다.

사십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들은 봉우리에 올라오자 멀찌감치 우뚝 섰다.

이어서 한무리의 이백명 정도가 되는 악대가 다라오고 있었다.

모두들 역시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은은히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호수(號手), 고수(鼓手)와 큰북, 작은북, 꽹과리 등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영호충은 매우 흥비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내심 생각하기를, (잠시 후에 싸움이 시작되어 북과 꽹과리가 울린다면 마치 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것 같겠구나.)

 

음악소리에 맞춰 일월교의 교중들은 한무리 한무리 봉우리로올라왔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소속에 따라 옷의 색깔을 달리 했다.

노란 옷, 파란 옷, 남색 옷, 검은 옷, 하얀 옷들은 화려했으며, 무대에 오른 배우들보다도 하려하였다. 단지 모든 사람들은 허리에 각각 하얀 띠를 두르고 있었다. 봉우리에 오르는 자는 적게 잡아도 삼사천 명은 됨직 하였다.

충허는 내심 생각했다.

 

(그들이 당도하기 전에 단숨에 없애야만 우리들이 우위를 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놈들이 무슨 농간을 부리려고 이렇듯 당당하게 올라오고 있는가. 우리들이 먼저 손을 쓴다면 약간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구나.)

 

영호충은 히히덕거리며 아무 일없다는 표정이었고 방증은 못본척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충허는 또 생각하기를, (영호충과 방증대사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내가 이렇듯 긴장을 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각 교중들은 한무리를 지어 자리에 멈추어 선 후 열 명의 장로가 올라오더니 다섯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각각 우측과 좌측에 섰다.

음악소리가 갑자기 멈추어지고 열 명의 장로는 일제히 말했다.

 

[일월신교의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조를 창생하신 성교주님의 가마가 도착하였소.]

 

한 개의 파란 비단을 두른 큰 가마가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이 가마는 열여섯 명의 가마꾼이 매고 있었는데 움직임이 빠르고 퍽이나 안정되어 보였다. 단지 가마가 마치 경고을 하는 고수처럼 가볍게 봉우리에 오르고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이 열여섯 명의 가마꾼들은 무공이 모두 강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호충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니 그들 속에 조천추, 황백류, 계무시 등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노두자는 몸체가 너무 작아서 조천추 등과 가마를 맬 수 없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도 틀림없이 가마꾼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영호충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내심 생각하였다.

 

(조천추 그들은 모두가 당세의 호걸들인데 임교주는 그들에게 가마를 매는 보잘 것 없는 이릉 시키고 있구나. 이렇득이 천하의 영웅들을 대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란 색의 비단을 두른 가마 좌우에는 각각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좌측은 상문천이었고, 우측은 한 명의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얼굴이 매우 익어 영호충은 멈칫하였다. 자세히 보니 낙양성에서 그에게 금타는 방법을 가르쳐 준 녹죽옹(綠竹翁)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영영을 나이먹은 노파로 착각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낙양성을 떠난 후로 그와는 한번도 만나지를 못하였는데, 오늘 임아행을 따라 견성봉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두근두근 뛰어 내심 말하였다.

 

(어찌 영영은 보이지 않을까?)

 

갑자기 무엇인가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눈앞의 일월교의 교중들은 모두 허리에 흰띠를 두르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상복과 같았다. 설마 하니 영영이 아버지가 교중들을 이끌고 항산에 가자, 결국 자살을 했단 말인가.

영호충의 마음에는 뜨거운 피가 치밀어 올랐다. 단전에 몇번인가 통증이 느껴졌다. 즉시 달려가서 상문천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임아행이 가마 속에 있었으므로 꾹 참고 견디었다.

견성봉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고 있었으나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그 큰 가마가 멈추자 모든 사람들은 가마의 휘장을 쳐다보면서 임아행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무색암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빨리 비켜라! 내가 그 자리에 앉겠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모두들 떠들지 마라. 크든 작든 모두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 차례로 앉자.]

 

바로 도지선과 도화선의 목소리였다.

방증, 충허, 영호충 등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도곡육선이 무색암에 뛰어들어 아홉마리의 용이 수놓아진 의자에 서로 먼저 앉으려고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의자에 앉아 기계가 작동되면 어찌한단 말인가?

충허는 급히 암자로 달려들어 갓다.

그가 일갈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빨리 일어나시오. 이 자리는 일월교 교주의 자리입니다. 당신들은 앉을 수 없소.]

 

도곡육선의 목소리가 암자에서 흘러나왔다.

 

[어째서 우리가 앉을 수 없단 말이오. 우리들은 꼭 앉아야겠소.]

[빨리 일어나거라. 내가 앉아야겠다.]

[이 의자는 정말 편안하고 부드럽구나. 마치 뚱뚱한 자의 엉덩이에 앉은 거와 같구나.]

[너는 뚱뚱한 자의 엉덩이에 앉아 본 적이 있느냐?]

 

영호충은 도곡육선들이 다투어 의자에 앉으며 의자 속에 장치 되어 있는 기계가 압력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무색암에 숨겨져 있는 수만근의 폭약이 폭발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견성봉의 일월교와 소림, 무당, 항산파의 무리들 모두가 가루가 될 판이었다. 그는 처음에 암자에 들어가 말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마음속으로는 그 폭약이 폭발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차피 영영이 이미 죽었으니 자기도 더이상 살 생각이 없었다. 모두들 한순간에 동시에 죽는다면 그 어찌 깨끗하지 않겠는가. 언뜻 의림의 두 눈이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자기와 눈빛이 마주치자 즉시 피하였다. 그래서 내심 생각하기를, (의림 소사매 같은 나리가 어린사람이 폭약이 터져 죽는다면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어찌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설사 오늘 아무 일 없다고 해도 백년이 지나면 견성봉의 모든 사람들은 그 누가 백골로 변하지 않겠는가?)

 

도곡육선들이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이미 두번이나 앉았는데 나는 아직 한번도 앉지 못했읍니다.]

[나는 지금 막 앉았다. 그런데 금방 나오라고하니 안 될 말이다.]

[나에게 방법이 하나 있읍니다. 우리 여섯형제가 일제히 의자에 앉읍시다. 자 우리가 앉을 수 있는지 없는지 봅시다.]

[좋은 방법이다. 찬 좋은 방법이야. 모두들 함께 앉아보자.] [당신 먼저 앉으시오.]

[당신 먼저 앉으시오.]

[큰 사람은 위에 앉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아래에 앉아라.]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먼저 앉고 나이가 적은 사람일 수록 제일 높은 곳에 앉아야 합니다.]

 

방증대사는 위기가 눈 앞에 닥쳐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말하여비밀을 누설시킬 수가 없었다. 즉시 빠른 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귀빈이 밖에 계시는데 절대로 싸우지 말고 떠들지 마시오.]

그는 이 떠들지 말라는 소리를 지르면서 소림파 최고의 내공인 금강선사자후(金剛禪獅子吼)의 공력을 썼다. 한 줄기의 세찬 내공을 도곡육선들을 향해서 뿜어댔다.

충허도장은 현기증이 나 하마터면 쓰러질 뻔하였다. 도곡육선들은 이미 동시에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했다. 충허는 크게 기뻐 손의 동작을 질풍처럼 내밀어 먼저 의자에 앉아 있는 두사람을 끌어당기고 바로 여섯 사람의 혈도를 찍었다. 모두들 끌어다가 관음보살을 모셔 놓은 탁자 밑에 쑤셔박고 머리를 숙여 의자밑에 소리를 들어봤다. 다행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단지 두 손이 떨려 왔으며 이마네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방증이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왔다면 장치가 작동을 했을 것이고 모두가 한줌의 재로 변했을 것이다.

 

충허와 방증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오면서 말했다.

 

[임교주께서는 암자로 들어와 차를 드시오!]

 

그러나 가마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가마속에도 별다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충허는 크게 노해서 내심 생각하기를, (마교 고주인 주제에 몹시 건방지구나. 나와 방증대사, 영호장문 세 사람이 지금 무림에서 얼마나 숭앙을 받고 있는 어떤 위치인데 이곳에 서서 기다리게 해놓고 제까짓게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들은 체도 하지 않는구나.)

 

만약 의자의 함정이 없었다면 그는 즉시 장검을 뽑아들고 가마의 휘장을 젖혔을 것이다. 그리고는 즉시 임아행과 한 판의 승부를 겨루었을 것이다. 그는 떠 한번 말을 하였다. 그러나 가마 속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상문천은 허리를 숙이고 가마 옆에 다가각 귀를 대더니 가마속의 지시를 듣고 있었다. 상문천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똑바로 세워 말을 했다.

 

[임교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소림사 방증대사님과 무당산 충허 도장 두분의 무림 선배님을 기다리게 한 것은 극히 무례하여 앞으로 친히 소림, 무당에 가서 사과를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상문천은 또 말했다.

 

[임교주께서는 오늘 항산에 온 것은 전적으로 영호장문인을 만나러 오신 것이라 하였읍니다. 그래서영호 장문인 한 사람과 암자에서 만나보시겠다고 합니다.]

 

말을 하면서 손으로 신호를 보내자 열여섯 명의 가마꾼들은 가마를 들쳐메고 암자의 관음당에 내려놓았다. 상문천과 녹죽옹은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곧 가마꾼들과 물러나왔다. 암자에는 한 개의 가마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충허가 내심 생각하기를, (틀림없이 흉계가 있을 것이다. 가마에는 어떤 장치가 숨겨져 있을 거이다.)

 

방증과 영호충을 쳐다보았다. 방증은 임기웅변에 약했으므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영호충은 말했다.

 

[임교주께서 저와 만나보시겠다고 하시니 두분께서는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충허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조심하시게.]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걸음으로 암자로 들어갔다.

무색암은 단지 작은 한 개의 기와로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관음당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면 밖에서도 분명하게 들으 수 있었다. 영호충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후배 영호충은 임교주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임아행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들리지않았다. 이어서 영호충이 악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충허는 깜짝 놀랐다. 영호충이 임아행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었다. 단숨에 들어가 도와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심 생각하기를, (영호 형제의 검술은 정묘하여 이 세상에는 대적할 자가 없다.

그가 암자에 들어갔을 때 장검을 휴대하고 있으니 절대로 임아행에게 걸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마수에 걸려들었다면 내가 달려들어가 손을 쓴다 해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임교주가 영호충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만약 영호충이 이미 마수에 걸려들었다 해도 마교의 두목은 혼자서 관음당에 남아 있다가 틀림없이 의자에 가서 앉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들려들어 간다면 오히려 큰 일을 망칠 수가 있다.)

 

일시에 마음이 두근두근 안정을 하지 못하고 깊이 생각했다.

 

(마교의 교주는 아마 지금쯤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잠시 후면 즉시 작동될 것이다. 이 견성봉은 아마 반정도는 날아가버리겟지.

그렇다고 지금 내가 이 자리를 피한다면 내 자신이 너무나 비겁하게 될 뿐 아니라 상문천이 알아차려 즉시 소리를 질러 경고한다면 성고할 수가 없다. 그러나 폭약이 폴발을 하면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이냐?)

 

그는 애당초 일월교가 공격을 하면 어떻게 접전을 하고 어떻게 물러날 것인가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고, 또한 임아행이 의자를 앉았을 때는 소림, 무당, 항산 세파는 미리 계곡으로 퇴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예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월교가 뜻밖에 이렇듯 공격해오면서 즉시 손을 쓰지 않고 꿍꿍이 수작을 벌여 임아행이 영호충을 단독으로 암자에서 만나자 모든것이 예측불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방증대사도 국면이 매우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고 심히 영호충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수양이 깊고 통달을 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있어 생과 사, 영예와 치욕, 복과 화근, 성패는 실로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고, 모든 것은 사람이 계획을 하지만 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달려 있으며 모든 것은 인과응보인 것이지, 구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고 이었다. 그래서 그의 마름은 약간 불안했지만 초연할 수가 있었다. 정말 폭약이 터져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인간의 껍데기가 결국은 가야할 길인데 어지 두려움에 떨겠는가.

용이 수놓아진 의자에 설치되어 있는 폭약에 관한 일은 지극히 기밀이었다. 방증, 충허, 영호충을 제외하고, 직접 설치한 청허, 성고 등은 지금 산봉우리 정상에서 폭약이 터져 즉시 지뢰를 터뜨리라는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견성봉의 나머지 사람들 가운데 이 내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림, 무당, 항산 세파의 사람들은 임아행과 영호충이 무색암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결렬되면 즉시 검을 들어 일월교의 교중들과 상대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충허는 한참 기다리다가 암자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소리가 나지 않자 즉시 내공을 운행시켜 귀를 기울여 안의 동정을 살피었다. 은은하게 영호충이 낮은 소리로 무엇인가 물어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심 안심이 되어 생각했다.

 

(영호 형제는 아무런 일 없이 무사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자 내공이 흩어져 일시에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자기가들은 목소리가 영호충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어떻게 하난 하고 걱정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째서 그의 말소리가 밖에서는 들리지 않겠는가?

또 한참 지나니 영호충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상형님, 형님께서는 임교주님의 가마를 암자 밖으로 모셔가시오.]

 

상문천은 대답을 했다.

 

[녜.]

 

녹죽옹과 함게 열여섯명의 가마꾼들을 이끌고 무색암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파란색 비단을 입힌 가마를 밖으로 들고 나왔다. 암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월교의 교중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성교주님의 가마가 도착하셨다.]

 

그 가마를 맨처음 머물던 곳에 내려놓았다.

 

상문천은 말했다.

 

[성교주님께서 소림사 방장에게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두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이 쟁반을 받쳐들고 방증의 면전으로 걸어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쟁반을 올렸다.

방증은 쟁반 위에 놓여져 있는 매우 낡은 향기가 나는 염주가 담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다른 한개의 쟁반에는 손으로 적은 경이 놓여져 있었는데, 껍데기에는 법문이 써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금강경(金剛經)임을 알 수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솟구쳐 올라싼. 그는 불법을 연구하고 있었으므로 금강경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자기가 읽은 것은 동진(東晋)때의 고승인 구마라즙(鳩摩羅汁)이 중국어로 번역한 금강경을 읽었으로 그 중에 난해한 곳이 있어서 평생동안 법문의 원경을 읽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원(中原) 천지에는 원문의 금강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에 이르러 금강경을 눈 앞에 대하고 보니 정말로 솟구쳐 오는 감격을 누를 수가 없었다. 즉시 합장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노승이 이 금강경을 보게 되니 정말 그 감동이야말로 형용할 길이 없소이다.]

 

공손히 두 손을 내밀어 법문으로 된 금강경을 받쳐들고 그리고 나서 염주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임교주님의 선물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실로 무엇을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료.]

 

상문천은 말했다.

 

[교주께서는 우리 교가 지금까지 천하의 영웅들에게 무례하게 대해 깊이 죄송함을 느끼고 있고 방장대사님께서 책망을 하지 않으신다면 실로 감격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또 다시 고개를 약간 돌려 말을 했다.

 

[임교주님께서 무당파 장문인인 충허도장 어른께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두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은 대답을 하고 앞으로 나왔다.

충허도장 앞으로 걸어가더니 공손하게 쟁반을 받쳐들었다. 구 사람이 가가이 다가오기 전에 쟁반 위에 가로 놓여진 것이 한 자루의 장검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자세히 보니 장검의 칼집에는 구리색과 녹색이 어울려 있었는데 가느다란 구리로 진무(眞武)라는 두 개의 전문(篆文)이 상감되어 있었다. 충허는 악 하고 외마디 비명소리를 질렀다. 무당파의 창시자인 장삼봉선사(張三 先師)가 썼던 패검의 이름이 진무검(眞武劍)이었다. 이 진무검은 무다파의 진산지보(鎭山之寶)였다.

팔십여 년 전 일월교의 몇명의 고수들이 밤중에 무당산을 습격해 와 그 보검과 장삼봉이 친필로 쓴 태극권경(太極拳經)을 훔쳐갔던 것이다. 그때 당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 무당파에서는 세명의 고수가 죽었으며 비록 일월교의네명의 장로를 죽였지만 검과 경은 빼앗아 올 수 없었다. 그것은 무당파의 크나큰 치욕이었으며 그래서 팔십여 년 동안 매대의 장문인마다 임종을 할 때 유언을 하며 반드시 이 검과 경을 찾아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흑목애는 깍아지른 절벽에다 경비가 삼엄하여 무당파는 여러차례 빼앗으러 했으나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왔고, 오히려 갈 때마다 흑목애에서 아까운 생명만 잃었던 거싱다. 그런데 생각도 못하게 이 검이 견성봉에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또 살며시 다른 한 개의 쟁반을 보았는데 쟁반에는 한 개의 손으로 쓴 책자가 놓여 있었느며 종이는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표지에는 태극권경 네 글자가 씌어 있엇다. 충허도인은 무당산에서 장삼봉이 친필로 쓴 글씨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보자마자 그것이 태극권경의 진본임을 알 수가 있었다.

그는 두 손이 떨려왔으며 장검을 받쳐들고 우측손으로 검자루를 거머쥐고 천천히 반 정도 꺼내자 차가운 한기가 번쩍거렸다. 그는 삼봉조사(三 祖師)가 만년에 이르러서는 검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러 어지간해서는 김을 사용하지 않고 설사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과 겨룰 때는 단지 평상적인 철검(鐵劍), 목검(木劍)을 사용했으며 이 진무검은 그가 중년 때 사용해던 별기로 사악한 무리들을 소탕하고 강호에 위명을 떨칠 때 사용했던 날카로운 병기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속지난 않을까 염려되어 다시 그 태극권경을 살펴보았다. 그 태극권경을 살펴보자 틀림없이 삼봉조사가 쓴 책자였다.

그는 그 경서를 다시 쟁반 위에 올려놓고 땅에 엎드려 검과 경을 향해 연속 여덟번을 절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말했다.

 

[임교주의 아량은 하해와 같아 무당 조사야의 유물을 다시 진무관에 되돌려 주시니 충허는 몸이 가루가 되어도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것입니다.]

 

경과 검을 받아들고 마음 속이 격동되어 두 손은 계속 떨려왔다.

상문천은 말했다.

 

[교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저의 교가 옛날에 무당파에 몹씁 짓을 많이 하였고, 그래서 송구한 마음이 끝이 없으며, 오늘 원벽귀조(原璧歸趙)를 하시어 무당파 모든 분들께 용서를 빈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충허는 말했다.

 

[임교주님은 정말 겸손한 분이십니다.]

 

상문천은 또 말했다.

 

[성교주님께서 항산파 영호 장문께 드리는 선물을 올려라.]

방증과 충허는 모두 생각을 하였다.

 

(그가 영호 장문인에게 무엇을 주는지 모르겠구나. 아마 그것은 고귀한 선물이겠지.)

 

이번에는 모두 이십여 명의 비단옷을 입은 교중들이 손에 쟁반을 받쳐들고 영호충의 몸 가까이 다가왔다. 쟁반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은 옷, 모자, 신발, 술주전자, 술잔, 찻잔 등의 일상용구였다. 비록 모두가 정교하고 명품이었으나 그리 희귀한 물건은 아니었다.

우직 쟁반 하나에는 옥소(玉蕭)가 하나 놓여져 있었고 또 다른 쟁반에는 고금(古琴)이 놓여져 있어서 그것들은 비교적 진귀했으나 방증, 충허에게 준 선물과 비교를 할 때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와 다름이 없었다.

영호충은 공수를 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항산파의 우수 등에게 명하여 받도록 하였다.

상문천은 말했다.

 

[저희 교주께서는 이번에 항산에 와서 많은 분들께 송구스런 짓을 하여 심히 죄송해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래서 항산파의 모든 출가한 사태에게는 새옷과 장검 한 자루를 드리고 줄가하지 않은 속가의 사저 사매들에게 각각 비단옷 한 벌과 장검 한 자루를 드리는 것이니 받아 주시기 바란다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저의 교에서는 또 항산 밑에 있는 좋은 논밭 삼천묘를 사서 무색암에 드려 자산으로 삼으시라고 하셨읍니다. 자 그만 우리들은 여기에서 물러나겠읍니다.]

 

말을 하면서 방증, 충허, 영호충에게 깊이 예를 올리고 몸을 돌려 걸어갔다.

충허는 외쳤다.

 

[상 선생님!]

 

상문천은 몸을 돌려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도장께서는 무슨 분부가 계십니까?]

 

충허는 말했다.

 

[교주께서 우리들에게 이런 귀중한 물건을 주셨짐나 우리들은 받을 이유가 없읍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읍니다.

어떤...... 어떤......]

 

그는 몇번이고 말을 더듬거리며 잇지를 못하였다. 그는 그런 물건을 준 것은 어떤 이유에서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문천은 웃더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도장께서는 어찌하여 불안하다고 하시는지요?]

 

몸을 돌려 일갈을 했다.

 

[교주님의 가마를 모셔라!]

 

음악소리가 나더니 열 명의 장로가 길을 인도하고 열여섯명의 가마군들이 비단을 두른 가마를 매고는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에는 악대가 따랐으며, 각각의 교중들은 모두 봉우리 아래로 내려갔다.

충허와 방증은 일제히 영호충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생각하기를, (임교주가 어찌해서 마음을 바꾸었는가, 그 원인은 오로지 당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오.)

 

영호충의 얼구에서는 조금도 이 사실을 엿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마치 기쁨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마치 우수가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일월교중들이 간 지 한참이 되자 음악소리는 멈추었으며, 무슨 천추만재 일통강호라는 외침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올 때는 위풍당당하게 왔으나 잘때는 조용하게 간 꼴이었다.

충허는 참을 수 없어서 물어보았다.

 

[영호 형제, 임교주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우리들에게 이런 귀중한 물건을 준 것은 틀림없이 영호 형제의 체면 대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영호충에게 임교주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까닭은 영호충이 말하고 싶으면 할 것이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더 계속하지 않고 입을 막았던 것이다.

영호충은 말했다.

 

[두 분의 선배님은 용서해 주십시오. 조금 전 저는 임교주에게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잠시 말씀드릴 수가 없읍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눈 말에 무슨 숨길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분께서는 나중에 자연히 아시게 될 것입니다.]

 

방증은 껄껄껄 웃더니 말했다.

 

[오늘 피비릿내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실로 무림의 복입니다. 임교주가 오늘 행동을 멈추고 정교의 각파 사람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표시한 것을 보니 그것은 실로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충허는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마음속으로 근질근질하였으나 방증이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자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도 그리 걱정만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단지 일월교는 간사하고 꾀가 많은 자들이라 우리들은 아무래도 신중을 기울여야만 옳을 것입니다. 어쩌면 임교주는 우리가 튼튼하게방비를 하고 폭약을 쓸까봐 염려되어 그래서 우리들에게 환심을 사고 우리의 방비가 풀어질 때 다시 복수를 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두분의 견해는 그렇지 않습니까?]

 

방증은 말했다.

 

[이건...... 사람의 마음이란 예측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방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영호충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충허는 말했다.

 

[영호 장문인께서 오지 않는다고 단정하시니 다시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읍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퍽이나 의구심을 떨쳐 수가 없었다.

한참을 지나자 산 아래에서 일월교 일행이 이미 산허리에서 물러갔으며 길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연락을 받지 못해서 공격을 하지 아니했고, 또 지뢰를 터뜨리지 않았다고 보고가 들어왔다. 충허는 사람을 보내어 청허, 성고에게 통지를 하여 의자와 여러 길목에 뭍어 두었던 지뢰의 신관을 모두 제거하도록 명령을 전했다.

 

영호충은 방증, 충허 두 사람믈 모시고 무색암에 돌아와 과음당에서 휴식토록 했다. 방증은 법문으로씌어진 금강경을 읽고 있었고 충허는 진무검을 휘두르고 또 태극권경을 몇줄 읽고는 너무나 기쁜지 좀전까지 품고 있던 의심이 말끔히 가시었다.

갑자기 관음 보살상을 모셔두고 있던 탁자 아래에서 사람이 말했다.

 

[악, 바로 당신이!]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충 오라버니, 당신...... 당신......]

 

바로 도곡육선들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악 하고 놀란 소리를 지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탁자 아래에서는 부단히 말소리가 들려왔다.

 

[충 오라버니 나,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읍니다.]

[어지 돌아가셨읍니까?]

[그날 화산 조양봉에서 당신이 봉우리를 내려간 지 얼마 후에 나의 아버지는 갑자기 선인장에서 떨어졌읍니다. 상 좌사와 제가 그의 몸을 붙들고 잠시 지나자 즉시 숨을 거두셨읍니다.] [그럼...... 그럼...... 어떤 사람이 그 어르신을 죽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상 좌사가 말씀하시기를, 그 어르신은 이미 나이를 많이 먹고 또한 서호의 밑바닥에서 십여 년 동안 고초를 당하셨을 뿐 아니라, 요즘 들어 내공을 연마하여 억지로 몸 안의 진기를 제거하려고 하셔서 진기가 너무 소모되었다고 하셨읍니다. 또한 이번에 오악검파를 소멸시키기 위해서 신경을 쓰셨읍니다. 그 어르신은 이미 천수를 다하신 것입니다.]

[정말 뜻밖이구료.]

[그날 조양봉에서 상 좌사와 열명의 장로가 상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저를 일월신교의 교주로 추대를 하였읍니다.]

[알고 보니 임교주가 임소저였구료.]

 

조금 전에 도곡육선들은 서로 다투어 의자에 앉으려고 하자 방증은 사자후(獅子吼)라는 불문의 최고의 내공을 써서 정신을 잃게 했던 것이다. 충허는 비밀이 누설될까봐 염려되어 도곡육선의 혈도를 찍어 탁자 아래로 쑤셔 넣었던 것인데 뜻밖에 여섯 사람의 내공은 상당하여 얼마 안 있어 정신이 깨어 영호충과 임교주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던 것이다. 이대 그들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흉내를 내고 있었다. 방증과 충허는 이미 임아행이 죽고 영영이 교주의 자리를 이어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그 나머지 모든 일들을 자연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놀래고 기뻤다. 영영이 두 사람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고 영호충에게 일상용구를 준 것은 두 사람이 예물을교환한 것이었다.

도곡육선들이 아직도 주고받는 말이 계속됐다.

 

[충 오라버니, 오늘 제가 항산에 당신을 보러 왔는데 만약 정교의 사람들이 안다면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웃을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읍니까? 당신은 너무나 부끄러움을 잘 타는구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됩니다.]

[좋소. 내가 당신의 요구에 승낙을 하겠소.]

[나는 교중들에게 큰 소리로 그 무슨 문무를 겸비하시고 억종창생하신 성교주, 또는 무슨 천추만재 일통강호 라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였읍니다. 그래야만이 다른 사람들이 알 수가 없을 테니까요.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당신의 항산파와 방증방장, 충허도장에게 무례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염려할 필요가 없소. 대사와 도장께서는 그것을 모를 것이오.]

[더우기 일월교와 항산파, 소림파, 무당파가 적의 관계에서 친구가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의 생각임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강호의 호걸들은 틀림없이 제가...... 제가 당신과의 연고 대문에 그랬다고들 입방아를 찧을 테니까요.]

[히히,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소.]

[당신은 얼굴 가죽이 두거우니까 아마 염려가 되지 않겠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일월교중들에게는 모두 비밀에 붙였읍니다. 바깥 사람들은 나의 아버지가 항산에 오셔서 당신과 이야기를 하여 양쪽의 관계가 원만해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의 아버님에 대한 명성도 좋아질 것입니다. 내가 흑목애에 돌아가면 그때가서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겠읍니다.]

[알았소. 나도 사위나 마찬가지이니 장례식 때 조문을 해야겠군요.]

[당신이 오실 수만 있다면 좋겠지요. 그날 화산 조양봉에서 아버님은 본래 친히 우리의 혼례를 허락하시려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의 혼사는 잘례식이 끝난 다음으로......]

영호충은 그 여섯사람이 점점 그와 영영과의 혼인 이야기를 한 것을 흉내내자, 즉시 일갈을 했다.

 

[도곡육선, 당신들이 나오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해서 떠든다면 나는 당신들의 가죽을 벗겨놓고 당신들의 살을 도려내 버리겠소.]

그러나 도간선은 은은하게 탄식을 하면서 영영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을 하였다.

 

[저는 당신의 몸이 염려가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에게 그 진기를 화해시키는 법문을 전수해 주지 못했읍니다. 사실은 전수해 주었다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읍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도간선은 목청을 내려깔고 매우 슬픈 듯이 말을 했다.

방증, 충허, 영호충 세 사람은 그의 흉내내는 말을 듣고는 모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임아행과 같은 일대괴걸(一代怪傑)이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러나 이렇게 끝맺음을 하자 모든 사람들은 탄식을 하고 측은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영호충은 임아행에게 대한 마음이 더욱 유별났다. 비록 그가 위세를 부리고 독불장군처럼 행세한 것을 미워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의 문무가 겸비된 재능과 특히 무서움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그런 성격을 마음속으로부터 탄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임아행의 성격과 자기와는 퍽이나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단지 자기는 일통강호의 야심이 없을 뿐이었다.

일시에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동시에 한가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자고로 황제나 장군이나, 성현이나, 호걸이나, 간웅대도(奸雄大盜)라 할지라도 그 누구 죽지 않는 자가 있단 말이냐?)

도실선은 목청을 더욱 돋구더니 말을 했다.

 

[충 오라버니, 나는......]

 

충허는 그들이 계속해서 말을 한다면 영호충의 체면이 손상될까봐 웃으면서 말했다.

 

[여섯분의 도형에게 조금 전에는 실례를 하였읍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이미 말씀을 하고 싶은 대로 했지 않았읍니까? 그만큼 했으면 되지 않습니까? 만약 계속해서 말을 하여 영호 장문인이 화가 나면 당신들에게 종신아혈(終身啞穴)을 찍으실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도곡육선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물어 보았다.

 

[종신아혈이 무엇입니까?]

 

충허는 말했다.

 

[그 종신아혈이 찍히면 평생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읍니다.]

도곡육선들이 일제히 떠들었다.

 

[말하는 것이 첫째이고 밥먹고 술 마시는 일은 그 다음이다.]

충허는 말했다.

 

[당신들이 조금 전에 했던 말은 한마디도 다시 해서는 안 됩니다. 영호 장문이 당신은 방증대사와 빈도의 체면을 봐서 그들의 종시아혈을 찍지 마십시오. 방장대사와 이 빈도가 그들 여섯형제가 탁자 아래서 당신과 임소저가 말하는 말을 훔쳐 들었는데 절대로 한글자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보장합니다.]

 

도화선은 말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우리는 훔쳐들은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가 귀속으로 들어오니 무슨 방법이 있었겠읍니까?]

 

충허는 말했다.

 

[당신이 들었다 해도 탓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읍니다. 그러나 듣고 나서 함부로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됩니다.]

도곡육선들은 일제히 말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들은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겠읍니다.]

 

도근선은 말했다.

 

[그러나 일월교 성교주의 그 여덟글자를 바꾸었는데 그것도 말을 할 수가 없읍니까?]

 

영호충은 크게 일갈을 하였다.

 

[말할 수 없소. 그 말은 더욱 말할 수 없소.]

 

도지선은 중얼중얼 대었다.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겠읍니가. 당신과 임소저는 말할 수가 있고 우리는 말할 수가 없읍니다.]

 

충허는 내심 답답하였다.

 

(일월교의 그 여덟글자가 이미 바뀌었다니 그 여덟글자는 틀림없이 천추만재 일통강호일텐데 임소저가 교주가 된 후 일통강호를 하지 않겠다면 무슨 글자로 고쳤단 말인가?)

 

삼년 후 어느날 항주 서호에 고산매장에는 초롱불과 오색실이 매달려 있었고 울긋불긋 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날은 바로 영호충과 영영이 결혼하는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이때 영호충은 이미 항산파 장문인의 자리를 의청에게 물려 주었다. 의청은 강력하게 의림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였다. 의림이 항산의 복수를 갚고 사부님의 원한을 갚았으니 당연히 장문인의 자리는 의림이 맡아야 한다고 극구 사양했었다. 그러나 의림은 아무리 뭐라해도 대답을 하지 않았고 너무 당황해서 울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호충의 의도에 따라서 의청이 장문인의 자리에 앉고 항산문호를 관리하였다. 영영 또한 일월교의 교주 자리를 사양하고 상문천에게 물려주었다. 상문천은 비록 호탕하고 야심에 찬 인물이었으나 여러파를 병합시키는 그런 야심은 없었다. 수년동안 강호에서는 태평하고 아무 큰일이 없었다.

이날 축하를 하려고 온 강호의 호걸들은 매장에 꽉 들어 차 있었다. 예식이 끝나고 주안이 거의 끝나가려고 할 때 군웅들은 신랑과 신부에게 검무를 추어보라고 요구하였다.

영호충의 검법이 절묘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으나 축하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 그의 검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영호충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칼을 쓰고 검을 쓴다면 너무나 살풍경하지 않습니까? 제가 신부와 함께 한곡을 연주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군웅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갈채를 보냈다. 즉시 영호충은 요금 옥소(搖琴玉蕭)를 꺼내더니 옥소를 영영에게 건네주었다. 영영은 면사포를 걷어올리지 않고 섬섬옥수를 내밀더니 옥소를 받아들고 영호충과 함께 합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곳은 바로 소오강호(笑傲江湖)의 곡이었다.

삼년 동안 영호충은 영영의 가르침을 받아 금타는 이치를 더욱 터득하게 되어 신운(神韻)의 경지에 이르렀다.

영호충은 그날 형산성 밖 황량한 들판에서 처음으로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교의 장로인 곡양(曲洋)이 곡을 합주한 때를 생각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막연한 사이였으나 교파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서로 친구로 합해지지 못하고 결국은 둘다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오늘 자기는 영영과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교파는 다르지만 그들처럼 불행하게 되지는 않았다. 이 곡을 지은 사람과 비교해 볼 때 퍽이나 행운이었다. 또, 유정풍, 곡양 두 사람이 합심하여 이 곡을 지은 원인은 바로 두파가 화목하게 지내고 그동안 맺혔던 원한을 풀 수 있기를 어느 정도 바라는 마음에서였는데 지금 부부가 합심해서 연주를 하니 결국은 유정풍, 곡양 두 사람의 소원을 풀었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두 사람의 연주는 더욱 화기애애하였다. 군웅들은 모두가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이 곡을 마치자 군웅들은 너도나도 갈채를 보내고 신방을 물러나왔다.

영호충은 일일이 그들과 인사를 하고 방문을 걸어 잠궜다. 그런데 갑자기 담밖에서 은은하게 몇차례의 호금(胡琴) 소리가 들려왔다.

영호충은 기뻐서 말을 했다.

 

[막대사백께서......]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마세요.]

 

호금의 소리는 간드러지고 퍽이나 멋졌다. 그것은 봉구황(鳳求凰)이라는 곡이었다. 그러나 곡속에는 처량하고 애수가 담뿍 들어 있었다.

영호충은 내심 무안하게 기뻤다.

 

(막대사백께서는 돌아가시지 않았구나. 그가 오늘 이곳에 와서 곡을 연주하는 것은 영영과 나의 결혼을 축하하러 오신 것이다.)

금소리는 점점 멀어졌다가 나중에는 곡이 끊나면서 금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영호충은 가볍게 몸을 돌려 영영의 얼굴에 쳐있던 면사포를 걷었다.영영이 살짝 웃으니 새빨간 촛불 아래서 정말로 아름답기가 옥과 같았다. 갑자기 일갈을 하였다.

 

[나오시오.]

 

영호충은 멈칫하여 내심 생각하였다.

 

(누굴 보고 나오라고 하는 것인가?)

 

영영은 웃으면서 일갈을 했다.

 

[계속 안 나오시면 나는 물을 처 부어버릴 거예요.]

 

침대밑에는 여섯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도곡육선들이었다.

여섯사람은 침대밑에 숨어서 신랑과 신부의 말소리를 엿듣고 그리고 나서 대청에 나가 군웅들에게 으스대려고 하였다.

영호충은 피로하고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주의를 하지 못했다. 영영은 세심한 사람이라 그 여섯사람의 호흡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영호충은 껄껄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여섯 도형 하마터면 당신들의 함정에 걸려들 뻔했소.]

도곡육선들은 신방을 걸어나와서 목소리를 크게 하고 외쳤다.

 

[천추만재 영원히 부부가 되기를 빕니다. 천년만년 동안 영원히 부부가 되시오.]

 

충허는 마침 대청에서 방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도곡육선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빙긋 웃었다. 삼년 동안 마음속에 묻혔졌던 수수께끼가 비로소 풀리었다. 알고 보니 그날 영호충과 영영이 관음당에서 천년만년 동안 영원히 부부가 되기를 맹세하였는데 도곡육선들은 그것을 일월신교의 새로운 구호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 개월 뒤 바로 꽃들이 만발한 봄의 계절이었다. 영호충과 영영은 신혼의 재미를 만끽하고 함께 손을 잡고 화산에 갔다.

영호충은 아내를 데리고 가서 태사숙 풍청양을 만나뵙고 그가 검을 전수해준 은혜에 감사를 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화산의 오봉삼령(五峯三嶺)을 다 뒤졌지만 결국 풍청양의 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영호충은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영영이 말했다.

 

[태사숙은 정말로 도인이십니다. 그의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셨겠지요.]

 

영호충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태사숙께서 검술이 신통할 뿐 아니라 그 어른의 내공의 수양은 참으로 이 세상에서 둘도 없을 겁니다. 삼년 동안 나는 그 어르신께서 전해주신 내공을 연마하여 몸속에 들어있던 다른 진기를 거의 없앨 수 있었읍니다.]

 

영영은 말했다.

 

[그건 소림사의 방증대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풍 태사숙을 뵙지 못할 바에는 내일 소림사에 가서 방증대사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방증대사께서 신공을 대신해 전수해 주셨고 또한 많은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에 그 역시 사부님이라고는 할 수 있지요. 응당히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영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충 오라버니 당신은 오늘까지도 모르고 있군요. 당신이 배운 것은 바로 소림파의 역근경(易筋經)의 내공입니다.]

 

영호충은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켜세우더니 말했다.

 

[이건...... 내가 배운 것이 역근경이란 말입니까? 당신이 그걸 어찌 아시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날 나는 당신에게서 이 내공이 바로 풍태사숙께서 도곡육선들로 하여금 구결을 가지고 방증대사에게 알려서 전수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에 의심이 일었지요. 이 내공은 정묘라고 오묘한 것이라 연마를 할 때 약간이라도 비뚤어지게 나가면 마치 기름을 가지고 불속을 뛰어드는 것과 같고 곧바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데 어찌 도곡육선들은 입만 살고 정신들이 맑지 못한 사람들인데 어찌 그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가 있겠읍니까? 방증대사는 비록 풍태사숙이 그들로 하여금 강제로 외우게 했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처사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그 여섯 형제에게 물어보았죠 그들은 틀림없이 사실이라고 딱 잡아떼었읍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몇마디 외워 보라고 하자 한명은 벌써 깨끗하게 잊어버렸다고 하고 한명은 방증대사에게만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여섯 사람은 계속해서 말하자 앞뒤가 맞지 않았고 무엇인가 헛점이 나왔읍니다. 나중에는 그들은 자기 꾐에 빠져 잡아뗄 수가 없었읍니다. 비로소 방증대사께서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랬다고 말을 해주었지요.

그런 사실을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풍태사숙을 빌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당신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않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영영은 또 말했다.

 

[그러나 풍태사숙께서 그들로 하여금 소식을 전하라고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읍니다. 풍태사숙께서는 그들 여섯형제로 하여금 일월교가 항산을 공격하려고 하니 소림, 무당 두파가 도와주라는 말을 전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도 정말 나쁜 사람이군요. 벌써 그런 일을 알았다면 어째서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고 오늘에서야 말을 합니까?]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옛날 소림사에서 당진의 고집이 너무나 세었읍니다. 방증대사께서 당신보고 소림사에 들어오라고 하고 그래야만이 당신에게 역근경을 전수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읍니까? 그러나 당신은 그 누가 뭐라해도 승낙하지 않고 소림사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읍니까? 방증대사가 다시 역근경을 전수해주겠다는 말을 다시 거론하면 당신의 고집이 발작하여 차라리 생명을 버릴망정 배우지 않을 것이라는걸 방증대사께서 아셨지요. 그렇게 된다면 어찌 큰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방증대사는 어쩔 수 없이 풍태사숙의 이름을 빌려 당신으로 하여금 화산파의 내공인 줄로 여기게 하고 역근경을 배우도록 하였읍니다.]

 

영호충은 말했다.

 

[음, 맞소이다. 당신이 줄곧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은 내 고집이 발작하여 배우지 않을까봐 염려되어서 그랬겠지요. 지금 내 몸 안에 있는 진기가 모두 없어져 버렸으니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털어놓는군요.]

 

영영은 또 입을 삐죽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당신의 그 고집은 누구도 꺽을 수가 없읍니다.]

 

영호충은 한숨을 길게 쉬고 그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영영, 그때 당신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소림사에 간 것은 방증대사에게 나에게 역근경의 내공을 전수해 달라고 부탁하러 간 것이 아니오. 당신은 비록 죽지 않았지만 방증대사께서는 당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여기셨겠지요. 그분은 무림에서 약속을 제일 중히 여기시는 분이어서 결국 이렇게 그분은 나에게 심공을 전수해 주신 겁니다. 이것은 당신의 생명과 바꿔 얻은 공력인데 내가 아무리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 당신의 정성을 저버릴 수 있겠읍니까? 그 어찌 내가 당신의 정성을 저버리고 연마하지 않겠소?]

 

영영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 단지 마음속으로 염려가 되었지요.]

 

영호충은 말했다.

 

[우리 산을 내려가 소림사로 갑시다. 역근경을 배웠으니 별수 없이 소림사로 출가를 하여 중이 되어야 하겠군요.]

 

영영은 그가 우스개소리로 하는 것을 알고 말했다.

 

[당신 같은 땡중은 어떤 절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소림사는 계율이 엄하고 깨끗한 곳이라 아마 한나절도 못 가서 당신과 같은 땡중은 쫓겨나올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정답게 손을 잡으면서 길을 재촉하였다.

영호충은 영영이 계속해서 두리번 거리며 마치 무엇을 찾는것 같은 모습을 보자 물어보았다.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잠시 당신에게는 말을 하지 않겠읍니다. 찾게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화산에 와서 풍태사숙을 만나 뵙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까운 일이지요.]

 

영호충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우리가 또 한분을 만나뵈야 합니까? 그분은 누구입니까?]

영영은 웃기만 할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있다가 말을 했다.

 

[당신이 임평지를 매장의 지하 감옥속에다 가둬두신 일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당신 소사매가 임평지의 일생을 보살펴 달라고 했을 때 당신은 승낙을 하지 않았읍니까? 그는 컴컴한 감옥 속에 있지만 먹을 것도 있고 입을 것도 있고 그 누구도 그를 해치는 자가 없으니 확실히 그의 평생을 보살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다른 당신의 친구에게 아주 특별히 보살피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지요.]

 

영호충은 더욱 이상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나의 또 다른 친구라니 그 친구가 누구란 말인가?)

 

그는 자기 아내가 엉뚱한 짓을 잘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말을 하려 하지 않자 더이상 물어봐도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영호충이 옛날에 묵던 방에서 달을 벗삼아 술을 마셨다. 영호충은 비록 어여뿐 아내를 앞에 두고 있지만 옛날 일이 떠오르자 퍽이나 슬픈 감정이 되었으며 열몇 잔의 술을 마시자 비로소 취기가 올라왔다.

영영은 갑자기 기쁜 표정을 짓더니 술잔을 내려놓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마 그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 가서 구경이나 해봐요.]

영호충은 맞은편 산에서 몇마리의 원숭이들이 울부짓는 소리를 들었다. 영영은 누가 왔다고 했는데 그는 누가 왔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영영은 원숭이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맞은편 언덕에 올라갔다. 영호충이 그녀의 뒤를 따라가 보니 달빛 아래서 일곱 여덟 마리의 원숭이가 함께 있었다. 화산에는 원숭이가 많이 있었으므로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노덕약이었다. 그는 기쁨과 노여움이 교차되어 몸을 돌려 집에 있는 검을 가지러 가려고 하였다.

영영은 그의 발목을 잡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조금만 더 다가 가서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합시다.]

두 사람이 다시 십여장 가까이 다가가니 노덕약은 두마리의 크나큰 원숭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마리의 원숭이는 그를 질질 끌고 있었으며 노덕약은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무공이 높아 두 마리의 원숭이를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나 항거할 힘이 없어 보였다.

영호충은 깜짝 놀라 물어 보았다.

 

[저것은 무슨 연고이오.?]

 

영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쳐다보기만 하세요. 천천히 말씀드리겠읍니다.]

원숭이들은 성격이 난폭하여 이리저리 뛰며 조금도 쉬지를 않았다. 노덕약은 두마리의 원숭이에 잡혀서 이리저리 끌려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신음소리라도 나면 두마리의 원숭이는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영호충은 이때서야 분명하게 볼 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노덕약의 우측손은 우측 원숭이의 팔목, 좌측손은 좌측 원숭이의 팔뚝과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쇠사슬 따위인 것 같았다.

그는 무엇인가 깨닫더니 물어보았다.

 

[이것은 당신이 만들어낸 걸작품이오.]

 

영영은 말했다.

 

[어떻습니까?]

 

영호충은 말했다.

 

[당신이 노덕약의 무공을 없애 버렸읍니까?]

 

영영은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원숭이 무리들은 사람소리가 들리자 꽥꽥 몇번이고 소리를 지르더니 노덕약을 데리고 재를 넘어 사라져 버렸다.

영호충은 본래 노덕약을 죽여 육후아의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 보니 목에다 칼을 꽂는 것보다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이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다. 내심 생각하기를, (네놈은 간계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그 악독함이야말로 임사제를 능가하는 놈이다. 응당히 네놈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줘야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알고 보니 며치 동안 당신은 줄곧 나에게 이자의 꼴을 보여주려 했군요.]

 

영영은 말했다.

 

[그날 나의 아버님이 조양봉에 계셨을 때 이자가 올라와서 벽사검법의 검보를 아버지에게 드리겠다고 아양을 떨었읍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무슨 마음으로 벽사검보를 주려느냐고 하자 그는 일월교에 장로가 되고 싶다고 하였읍니다. 아버지는 그와 말할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보고 그를 지키라고 하였지요.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두들 한참 바빠서 그 누구도 그를 살펴보지도 못했읍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흑목애를 갔었지요. 얼마나 지나자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나서 그를 데려다 물어보았지요. 알고 보니 그는 스스로 그 검법을 연마 했는데 익히는 요령을 몰라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무공을 없애버린 결과가 되었지요. 이 사람은 바로 당신 육사제를 살해한 원흉입니다. 당신 육사제는 원숭이를 좋아했으므로 나는 사람들 보고 두마리의 원숭이를 데려와 그와 함게 묵도록 하였고 화산에 풀어놓아 주었읍니다.]

 

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어 영호충의 손목을 거머 쥐더니 탄식을 하며 말했다.

 

[뜻밖에 나 임영영도 한마리의 크나큰 원숭이에게 목덕리를 잡혀서 더이상 헤어질 수가 없게 되었읍니다.]

 

말을 하면서 피식 웃는 영영의 귀엽고 아름다운 모습이란 뭐라 형용할 길이 없었다.

 

- 소오강호 제 8 권 끝 -

[출처] 소오강호 8 완결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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