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

一字師 2023.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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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

 

 

색은파索隱派

구홍학舊紅學의 중요한 한 지류이다. 그 주된 특징은 『홍루몽』 중에서 한두 마디의 말, 어떤 사람의 이름, 어떤 물건, 어떤 장소나 경물, 모종의 사건이나 이야기 등에서 역사적인 생활 중에서 실제로 있던 인물과 사건을 억지로 연계를 시켜 최대한으로 자기의 “상상想象”을 발휘하여 억지로 비교하여 대조했다.

 

그리고 자기의 관점에 불리한 재료는 고려하지 않고 놔두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이해하는 척하며 주관적인 임의성으로 주제와 거리가 멀고 극히 황당한 견해를 제기하였다.

 

예를 들면 왕몽완王夢阮과 심병암沈甁庵의 『홍루몽색은紅樓夢索隱』에서는, 『홍루몽』이 순치황제順治皇帝와 동악비董鄂妃 즉 동소완董小宛의 애정 고사로, 보옥寶玉의 원형은 순치황제를 그려, “명주가사설明珠家事說”을 주장한 것인데, “금차십이金𨥁十二” 모두가 납란시어納蘭侍御 즉 납란성덕納蘭性德으로 상객上客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화신가사설和珅家事說”을 제기한 『담영실필기譚瀛室筆記』가 있는데, 하나 뿐이 아니고 아주 많다. 근래에 와서, 또 새로운 색은풍索隱風이 흥기했는데, 『홍루해몽紅樓解夢』에서는 조설근曹雪芹과 아내가 옹정황제雍正皇帝에게 암살당했다는 등등이다.

 

색은파의 대표작으로는 왕몽완과 심병암의 『홍루몽색은』, 채원배蔡元培의 『석두기색은石頭記索隱』 및 등광언鄧狂言의 『홍루몽석진紅樓夢釋眞』 등이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18)

 

평점파評點派

광범한 사회적 영향을 지니고 있고 예술적 가치가 비교적 높은 문학 작품에 대해, 특별히 명작과 명저에 평점評點을 진행하는 것은, 중국 문학사에서 일찍부터 보편적으로 나타난 현상인데,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평점자는 작품에 자기의 견해, 체험하여 터득한 것, 감상을 깊이 있게 혹은 심도 있게, 혹은 전면全面이나 분산되게, 혹은 계통적으로나 국부적으로 예술 창작의 경험과 규율을 총결總結하고 개괄했다.

 

예를 들면 저명한 『삼국三國』을 평評한 모종강毛宗岡, 김성탄金聖嘆이 평한 『수호水滸』, 『서상기西廂記』, 『두시杜詩』, 장죽파張竹坡가 평한 『금병매金甁梅』 등이 있다.

 

『홍루몽』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점 방식으로 『홍루몽』에 대해 자기의 각종 견해를 발표했는데, 통칭 “평점파”라고 했다.

 

가장 일찍 『홍루몽』에 평점 방식으로 논평을 가한 사람으로는 지연재脂硯齋와 기홀수畸忽叟 등이 있다.

 

그들은 원작의 참여자의 신분으로 전80회의 작품에 전면적이고 계통적으로 깊이 있게논평하였다.

 

그 평어評語에 포괄되어 있는 중요한 것으로는, 평어를 回회 앞에 써 넣는 회전비回前批, 회回 뒤에 써 넣은 회후비回後批, 위쪽 여백에 평어나 주석을 써 넣은 미비眉批, 행간에 써 넣는 행간측비行間側批, 행行과 행 사이의 여백에 단 평어인 쌍행협비双行夾批 등이 있다.

 

그들의 평어는 대단히 높은 연구 가치를 구비하고 있다. 소설 『홍루몽』이 널리 전파되면서, 평점가들이 벌 떼처럼 일어났는데, 평점의 대상은 대부분 120회에 대한 것으로, 평점파 대다수가 작품 중에 있는 인물, 줄거리, 인물의 언어, 경물景物 묘사, 중요한 구성, 예술적인 구성, 창작 구도, 작가의 구상 등의 방면에 논의를 전개하여 견해를 발표했다.

 

그 중에는 뛰어나고 핵심을 찌르는 언어가 많이 있는데, 작품의 사상에 담겨진 내용과 층층으로 깊은 심미적인 형상을 파고들어 발굴하고 개척하여, 독자가 소설을 읽고 감상하고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나, 평점자로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어서, 어떤 평점자는 사상적으로 진부하고 견식이 얕아서, 심미審美를 받아들이는 능력의 수준이 떨어져서 평하는 것이 핵심에 이르지 못하고, 심지어 견해 차이가 매우 커서 소설의 원래 의도를 왜곡했다.

 

영향이 비교적 큰 『홍루몽』의 평점본으로 중요한 것은 왕희렴王希廉의 평본 『신평수상홍루몽전전新評綉像紅樓夢全傳』, 장신지張新之의 평본 『묘복헌평석두기妙復軒評石頭記』, 왕희렴, 요섭姚燮이 함께 평어한 『증평보도석두기增評補圖石頭記』 및 왕희렴, 장신지, 요섭이 함께 평한 『증평보상전도금옥연增評補像全圖金玉緣』 등이 있다.

 

浅析《红楼梦》研究派别中的索隐派,有其合理性,也有研究瓶颈

少读红楼|文化领域创作者

红学研究派系众多,其中索隐派当属其中很有特色的门派。所谓索隐,即是指认为红楼梦中所讲的故事情节和人物形象隐喻着历史上的真实政治事件和真实人物。大体而言,有的人认为红楼梦是一部影射明朝被清朝取代的悼明作品,也有人认为红楼梦影射的是康熙年间九龙夺嫡的乱局。

我个人对于索隐派一直持有一种单纯的感情上的排斥。理由很简单,把一些“清清静静的女儿”与那些明史清史上的油腻大叔甚至皇上太监联系到一起,令我感到很违和。然而最近,阅读过一些索隐派的理论以后,我也受益良多,获得了一些新的看法。

一、索隐思路的合理性

理智地说,红楼梦含有政治色彩,甚至含有某种意义上的政治隐喻,几乎是不争的事实。

第一条理由是脂批的亲自“招认”。红楼梦最著名的“故弄玄虚”之处,便在于出现于第1回的脂批:“真事隐去、假语村言”,以及出现在第12回的另一条脂批:“观者记之,不要看这书正面,方是会看”。这意味着索隐派所想要揭秘的“真事隐”,一定是存在的,并且作者实际上想要表达的东西与书中明面上的内容不一样,甚至可能完全相反。

第二条理由是作者具有“真事隐”的动机。红楼梦成书年代乃是乾隆年间,文字狱兴盛,凡涉及政治的作品,或者被疑涉及政治的作品,其作者大都下场凄惨。红楼梦如此谨慎,费尽心机隐藏真正想表达的内容,可能是因为什么呢?恐怕大概率是政治原因。

第三条理由便是,作者的行文的确存在一些怪象,哪怕一般的读者也能从书中看到,存在几个非常明显的事件细节,几乎明示了红楼梦此书的政治含金量。

最引人注目的便是作者在整部书中超乎寻常的求生欲。作者在全书当中,几乎一有机会就拍当权者马屁。空空道人检阅《石头记》时,借作者之笔对全书盖棺定论,其中提到“及至君仁臣良父慈子孝,凡伦常所关之处,皆是称功颂德,眷眷无穷”。

此外,神瑛侍者下凡之时乃是“乘此昌明太平朝世,意欲下凡造历幻缘”,说起林如海之父袭爵时提到“当今隆恩盛德,额外加恩”,提到宝钗待选时说的是“今上崇诗尚礼,征采才能,降不世出之隆恩”,凡此种种,不一而足。

但与此同时,作者嘴上说着歌功颂德,实际上却描写了官场内种种乱象,包括但不限于贾家为了自身人脉关系操纵官场安排贾雨村,贾雨村不顾大量人证物证和人命关天之理乱判葫芦案,龙禁尉这类五品官职被明码标价拿出来卖,等等。

从小说情节来看,曹公显然非常不认同红楼梦中的政治生态,甚至借宝玉的口说他们都是“禄蠹”,但在写小说时却不遗余力地在各处安插明确而且浮夸的称颂之词,这显然是为了规避文字狱之用。

此外,书中还有一些奇怪的细节值得我们深思。其一,对于芳官的更名,作者几乎是非常生硬地借宝玉之口长篇大套说了一堆什么“大舜之正裔”的话,又详细地描写了芳官奇怪的名字和装束,违和感强到程高本直接予以删除。

如果说别的地方还可以认为只是在描写贾家的家事,与政治无关,那么此处就几乎是明示地夹带私货了,完全无法抵赖。其二,紧接其后,对于贾敬的死亡,书中的说法居然是“宾天”。这个用词在古代是专指帝王之死,怎么会加到贾敬这样一个烧丹炼汞的道士身上?这也是一个作者几乎明示政治色彩甚至政治隐喻的细节。

另外一个重大的不合常理的情节便是秦可卿,她的出身、行事、病亡、葬礼,甚至死亡的岁数,都是重重迷雾,难以捉摸,要说这里面没有另含深意,决然说不通。这一点其他文献多有报道,此处就不赘述。

综上而言,将红楼梦的“真事隐”解释为政治事件,或与政治事件相关的事,可以说是有理有据,不承认也不行。

二、索隐派现状与研究瓶颈

然而,现实当中,索隐派的研究现状却不容乐观。前文已有表述,对于红楼梦希望描述的史实究竟是哪一段,这样一个最基本的前提,索隐派的各类学者们竟然莫衷一是。甚至于到了后来,红楼梦到底是谁写的,究竟是否出自一人之手,都已经被辩得模糊不清。

既然红楼梦实实在在与政治时事相关,怎么会出现这样一种扑朔迷离,众说纷纭的现状呢?

出现这样困境的根本原因就是,红楼梦文本当中指向性明确的细节少之又少。也许凤姐口中的“太祖南巡,甄家接驾四次”算得上一个,而绝大多数的细节即便能确认有政治隐喻,也是语焉不详。

例如,虽然贾敬之死称作“宾天”,可以算是明示他指代皇帝,但他指代的究竟是哪位皇帝呢?有的人认为是雍正,有的人认为是嘉靖,还有的人认为是指顺治。但红楼梦并未对此多加解释,也没有非常明显确凿的旁证支撑大家的推测。——当然,如果真的用贾敬来影射某位皇帝,而作品中又叙述得无比清楚,那估计红楼梦现在也难以呈现在世人面前了。

既然找不到指向性明确的证据,想要索隐便只能从各种文本细节入手探求。然而不幸的是,作为一部最初以抄本形式流传的小说,红楼梦的十几个不同版本之间可能存在不小的差异,这些差异可能是作者本人批阅十载的成果,但也可能是书商抄手的杰作。所谓细节,未必能够真的靠谱。

同时,作为增删五次的巨著,红楼梦的情节不合理之处也有相当的概率能够归因为作者寿数有限,没能活到定稿,又或者因为最初的设定与后文的改动相矛盾,出现难以拼接的情节谬误,而未必是因为作者在故弄玄虚,想向读者暗示什么。

此外,红楼梦卷帙浩繁,达到近百万字,细节可以说是多如牛毛。如果从一万个细节当中,能找出一百个细节印证了论者的猜想,那么论者便可以振振有词地说自己“自圆其说”了。然而这样一来,剩下的九千九百个细节却都被抛诸脑后,或者由论者根据想象进行生挪硬凑,如此解读未免有失偏颇。

还有一个令人细思恐极的因素,有没有一种可能,作者压根没有想要在小说中埋藏一个完整的,成体系的,大家都知道的,历史故事呢?说不定作者只是偶然顺口骂一骂官场黑暗,只是挑一两个角色影射一下历史人物,借此渲染一下末世氛围呢?果然如此的话,索隐派的多年研究之功,岂非都是笑谈?

基于这些原因,我认为光就目前人们手头有的资料,想要“索隐”出作者真事隐去以前的故事全貌,几乎是不可能实现的,即便有人自证其说,其他人也恐怕难以达成一致。因此,人们陷入一种被动的局面:红楼梦犹如一个谜一样,但这个谜的谜底,却由于各种原因失落无考,且大概率永远不得而知了。

三、索隐学的实际意义与文学价值

但是,跳出这个谜团,我同时还在考虑另一个新的问题:倘若红楼梦真的是一个隐去了史实的谜,我们为何需要去揭开这个谜底?

需要确认的是,红楼梦作为一部虚构成分相当大的小说,即便真的影射朝局历史,也不能向我们提供比现存的历史资料更多的事实。我们不可能通过一个影射某历史人物的书中角色,去对该历史人物进行更深彻的了解,甚至发掘他的秘史,而顶多是通过史实与角色的比对来印证影射关系确实存在。

此外,对于生活在新中国的我们来说,不论是悼明还是九子夺嫡,这类政治事件早就已经尘埃落定,不是我们所关心的重点。即便不能索隐出那些史实,也既不会影响我们对小说的判断,也不会影响我们对历史的判断。还是印证了《好了歌》里的那句话:“古今将相在何方?荒冢一堆草末了。”既然都已经是前尘往事,又何须对一些莫须有的影射关系汲汲而求?

因此可以说,索隐工作几乎不可能成功,即使做出来也未必是真的,即使是真的也未必有用,即使有用我们也未必关心。既然如此,几乎没有实际意义的索隐派为何还要做?

我想,其中一个原因,当是因为索隐派能够生动地再现红楼梦撰写时的情形。不论曹公当年想要往小说中埋藏怎样的秘密,他恐怕都是顶着被文字狱砍头凌迟的风险,小心翼翼来做的。当权者连一句“清风不识字,何必乱翻书”都不肯放过,若是要写一部家国血泪史,该是多么危险的事!然而曹公戴着这沾血的镣铐,不仅写了,而且还写出了一部旷世奇文。他所想要隐去的故事,不论是什么,都已在这文坛巨匠的雕琢之下,成为了红楼梦“贾雨村言”之下的筋骨与支柱。

因此,红楼梦索隐派的存在,本身就是一种红楼梦的文学价值体现。它提醒着世人,红楼梦作为一部冠绝全国乃至全世界的小说,是在怎样艰难和压抑的氛围之下写出,是顶着怎样的压力才能够代代流传,直至今日。它也留给人们无数遐想,假如曹公当日能抛开文字狱的风险,放手一写,又将写出怎样瑰丽辉煌的巨作呢?

作者:泥娃娃,本文为少读红楼原创作品。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17)

 

탐일학探佚學

홍학紅學의 새로운 한 지류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홍루몽』 전前80회는 조설근曹雪芹이 창작한 원작原作이고. 후後40회의 속작續作은 고악高鄂(혹은 정위원程偉元의 보완)이 계속해서 보완한 것인데, 이미 홍학가들 역시 공인하였다.

 

원작자 조설근과 속작가 고악의 출신과 경력, 정치적 경향, 창작 사상, 사회현실의 생활과 현실 관계에 대한 이해 및 예술의 재현 능력과 예술적 풍격은 모두 크게 다르다.

 

건륭乾隆과 가경嘉慶 시기이래로, 후40회 속서가 전80회에 비해 현저하게 못하다는 것이 부단하게 제기되어 왔고, 노신魯迅 선생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비평을 했는데, 이 점도 이미 기본적으로 홍학가들의 인식의 일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이 후40회 속서의 묘사와 인물의 운명의 귀결과 고사의 결말에 대해 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80회에 뚜렷하게 드러낸 작가의 전체적인 구상에는 이미 다져 놓은 인물의 성격적 특징과 기조基調는 전80회에 이미 매복해 놓은 복필伏筆과 복선伏線인 금릉십이차金陵十二𨥁의 도책圖冊, 판사判辭, 판곡判曲 및 많은 시사詩詞, 수수께끼(謎語), 주령酒令, 화주花籌 세부 묘사, 호칭 등으로 은유隱喩와 암시暗示한 인물과 고사의 최종적인 결말이 있다.

 

또 지연재脂硯齋가 평어評語 중에서 80회 뒤의 줄거리를 내비치고 있고, 그리고 80회 원고를 본 적이 있는 몇몇 사람이 한두 마디의 간단한 말로 조설근의 산실된 내용을 드러내는 것을 시도하고, 전前80회 원작과 후後40회 속서 인물의 성격의 형상화, 고사 줄거리의 구상, 사상의 경향, 심비적인 의지와 취향, 예술적 풍격, 표현 수법, 인물의 운명적 결말, 시사곡부詩詞曲, 언어의 풍격 등의 방면의 차이를 연구와 토론을 진행했다.

 

대개 상술한 연구의 범위는 일반적으로 탐일학探佚學리라고 불리고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16)

 

조학曹學

홍학紅學의 중요한 한 지류로, 전문적으로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曹雪芹을 연구하는 하나의 과목이다.

 

그 연구의 범위는 주로 조설근 및 그 선조의 생애와 경력, 가정의 문화적 배경, 조씨 집안의 오랜 옛 친구의 정황, 조설근이 처한 정치와 생활환경 및 『홍루몽』을 창작할 때의 상황 등을 포괄하고 있다.

 

그밖에, 지연재脂硯齋, 기홀수畸笏叟, 당촌棠村 등은 생활 소재素材를 제공하고, 수정하기 위해 읽고, 글자의 교정에 참여했는데, 창작한 원고를 베낀 작가의 친척과 조설근 생전에 친한 친구 등의 상호 관계, 생활 경력, 생존 상황 등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20 세기이후로, 약간의 중요한 기록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데, 여러 홍학가가 게으르지 않게 조학曹學을 연구하여 비교적 큰 발전을 보이고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어휘 전고典故(15)

 

신홍학新紅學

호적胡適 선생의 『홍루몽고증』은 구홍학이 종결되고, 신홍학이 탄생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그는 조설근의 가세와 생애에 관한 사료史料를 수집하고, 고증을 통해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서전自敍傳”이라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 후, 유평백劉平伯은 고힐顧頡과 통신 방식을 채택하여 『홍루몽』을 토론하고 연구하여 홍학 발전사에 중요한 『홍루몽변紅樓夢辨』을 저술했다.

 

이 책은 호적의 『홍루몽고증』 및 끊임없이 출현한 허다한 홍학 연구저작과 공동으로 신홍학의 토대가 되는 저작으로 존중되었다.

 

그 외에, 저명한 학자 왕국유王國維의 『홍루몽평론紅樓夢評論』은 최초로 서방철학과 미학사상을 운용했는데, 『홍루몽』에 대해 구홍학과는 완전히 다른 계통적이고 전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신홍학의 범주에 부합하여 홍학 발전사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신홍학은 학술적인 관점은 물론이고 연구 방법에서도 구홍학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었는데, 구홍학이 통일한 세계를 타파하여 홍학 연구를 정확한 궤도로 회전시켜서 홍학을 발전시켜 하나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고, 정확한 방향과 경로를 과학적으로 제공했다.

 

예를 들면 작가의 가정 배경과 생애의 경력 및 그 사회와 연관하여 대량의 고증을 진행하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많이 제공했는데, 80 회의 소설 뒤를 이어 고악高鶚이 속작續作을 보충했다는 것을 밝히고, 아울러 지연재脂硯齋와 지연재비어脂硯齋批語에 대한 연구를 사람들을 위해 『홍루몽』을 깊이 연구하여 견실하고 확실한 기초를 다졌다.

 

신홍학도 약간의 결함이 존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지나치게 “자서전설自敍傳說”을 강조하여 소설을 완전히 작가의 가세家世와 자서전에 상당하게 하여, 가부賈府와 조가曹家, 가보옥賈寶玉과 조설근曹雪芹에 일일이 부합시켰다.

 

사상에 내포된 것을 대단히 깊이 연구하고 농축했는데, 가부賈府와 대관원大觀院의 광활한 생활 장면을 위주로 한 조曹 씨네 한 집안의 가정사를 사회 전체로 여김으로써, 이로부터 『홍루몽』의 사회 인식의 가치와 예술적이고 심미적인 가치를 내려가게 했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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