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에 나오는 호칭 예의와 풍속 및 오락

一字師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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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에 나오는 호칭 예의와 풍속 및 오락

 

 

삼매륙빙三媒六聘

옛날의 혼례제도로 남녀는 반드시 중매인을 통해서 혼인을 말을 전했는데, 배우자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를 취할 때는 반드시 중매인을 초빙해야 했다. 옛날에는 보통 세 사람에서 여섯 사람 등 다수였기 때문에 삼매륙빙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작품에서는, ‘원앙鴛鴦이 말하기를, “바로 부인(가모賈母를 가리킴)께서 돌아가셔서, 그분(가사賈赦를 가리킴)이 삼매륙빙으로 저를 정부인으로 삼으려고 할지라도, 저는 갈 수 없습니다.”’라는 대목이 있다.

 

一对鸳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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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방圓房

옛날에, 이미 혼인은 했지만 잠시 아직 동방同房하지 않은 부부를 말하는데, 그 후에는 적합한 때에 동방하는 것을 원방(민며느리가 약혼자와 정식으로 부부가 되다)이라고 했다.

 

경첩庚帖

예전에 약혼할 때에 남녀 양가에서 서로 붉은 색의 간첩柬帖을 교환했는데, 연경첩자年庚帖子라고도 부른다. 남첩男帖과 여첩女帖으로 나누어 정혼자의 성명, 원적지, 생진팔자生辰八字(속칭 사주팔자), 조상 3 대의 이름과 관직, 모친의 성씨 등을 적는다. 여첩에도 렴전奩田(부동산)과 렴구奩具(혼수)를 적어 넣는다.

 

배당拜堂

옛날에 결혼 의식 중의 하나로, 결혼할 때 신랑신부가 천지天地에 절한 뒤에, 남자 쪽 부모를 향해 절을 올리는 예를 배당이라고 하고, 배고당拜高堂이라고도 한다. 이 의식은 오랫동안 하고 있으나, 행하는 시간과 방식은 똑같지는 않다.

 

결리結縭

신부가 집을 떠나기 전에, 그 모친이 몸에 수건을 묶어주는 것을 결리結縭라고 한다. 결리는 옛날에 여자가 시집가는 의식 중의 하나인데, 여자가 결혼이 이루어졌다는 뜻을 대신하는 말이기도 하다. 리縭는 부녀자가 차던 수건으로 위褘라고도 한다.

 

정우丁懮

부모의 상을 당하는 것을 정우라고 하고, 정간丁艱이라고도 하는데, 또 수제守制라고도 부른다. 정丁은 맡게 되다, 맞닥뜨리다의 뜻으로, 정우는 삼 년인데, 자녀는 반드시 문을 닫고 내방객을 사절하고, 결혼하지 않으며,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과거시험을 보지 않으며, 관직을 맡지 않는다.

 

홍루몽에 나오는 호칭, 예의와 풍속 및 오락 (2)

 

봉건시대의 상례제도에 의거해 거상居喪하는 것을 수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의 상을 입거나, 손자가 조부모의 상을 입는 것으로, 상喪을 당한 날로부터, 반드시 집에서 3 년을 수효守孝(부모의 상을 당해서 탈상하기 전까지 오락과 교제를 끊고 애도를 표시하는 것)하여 일이나 교제하는 것을 사절하고, 관직, 과거 응시, 결혼과 연회와 오락을 즐기지 못한다. 또 예를 들어 관리 및 서민 백성은 황제의 황후나 후궁의 상을 당하면, 모두 반드시 작위와 품계의 지위에 의거해 수효해야 하고, 연회나 오락과 결혼하는 등의 것은 필히 예禮에 의거해서 각종 제한을 두고 실행했는데, 만약 상례제도를 위배할 경우에는 징벌을 받게 된다.

 

기명쇄寄命鎖

옛날에 미신적인 풍속인데, 어린아이가 요절할 것을 두려워하여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거나 절의 영험한 부처의 이름으로 양녀나 제자를 삼는 것을 기명寄命이라고 한다. 기명을 받은 집안이나 절에서는 자물쇠 모양의 작은 장식물을 어린아이의 목에 걸어주는데, 기명쇄 혹은 장명쇄長命鎖라고 부른다. 자물쇠가 어린아이를 요절하지 않게 재화를 면하도록 기원하는 것이다.

 

호신부護身符

옛날에, 불교와 도교 및 무당 등이 사람들에게 경전, 신상神像과 부적과 주문 등을 몸에 지니게 했는데, 그것으로 재앙을 면하게 하려는 것으로 호신부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호신부라는 말은 세도에 의지한다는 의미로 통칭하게 되었다.

 

개검開臉

옛날에, 여자는 출가하기 전에는 얼굴의 솜털과 눈썹을 뽑지 않았는데, 속칭 “모두녀毛頭女”(애송이, 철부지의 뜻)라고 했다. 시집갈 때나 혹은 시집간 후 삼일 째 되는 날에 얼굴에 난 솜털을 다 없애고, 두 눈썹과 양쪽의 귀밑머리를 손질하는 것을 개검, 호검薅臉이라고 말하고, 또 개면開面, 전면剪面이라고도 칭했는데, 처녀가 출가할 때에 반드시 개검을 했기 때문에, “개검”은 처녀가 시집간다는 별칭이 되었다. 홍루몽에서, ‘그 계집종의 이름은 향릉香菱인데, 설대사자薛大傻子의 첩이 되어서 개검을 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향릉이 이미 설반薛蟠에게 시집갔다고 말한 것이다.

 

교배잔交拜盞

옛날의 결혼의식 중의 하나이다. 신혼부부가 술잔을 교환하는 것을 교배잔이라고 하고, 또 교배주, 합근주合巹酒(옛날에 혼례 시에 합환주合歡酒를 마실 때 호리병박 하나를 두 쪽을 내어 신랑과 신부가 각각 하나씩 잡고 마시던 술), 교근주交巹酒라고도 불렀다. 즉 혼례를 거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상두上頭

예전에 여자는 15 살에 계笄(여자가 15 살이 되어 성년이 되었다는 의미로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음)를 하고, 남자는 20 살에 관冠을 썼다는데, 모두 상두라고 불렀다. 후세에도 여자가 출가할 때에 머리를 틀어서 쪽을 짓는 것을 상두라고 했는데, 이미 아가씨에서 부인이 되었다는 표시였다. 이것은 소설에서 청문晴雯이 말한 먼저 “교배잔”을 마신 뒤에 나중에 “상두”한다는 옛날 결혼의식과 꼭 들어맞는다.

 

사주팔자(年庚八字)

고대에는 간지干支(천간天干과 지지地支. 천간의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의 10 가지와 지지의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의 12 가지를 60 가지로 조합하여 연월일을 표시하며 순환하여 사용했음) 로 연대를 기재하여 짝이 맞는 간지로 사람의 출생 연월일의 간지명干支名을 두 글자로 표시했는데, 예를 들어 갑자甲子(년年), 병인丙寅(월月), 정미丁未(일日), 경자庚子(시時)의 모두 여덟 글자를 “사주팔자”라고 하고, 또는 “생진팔자生辰八字”라고도 했다. 옛날에는 사람의 사주팔자는 그 사람의 일생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고, 성명술사星命術士는 더욱 사주팔자로 그 사람의 길흉화복과 남녀의 혼인의 상극相剋과 상합相合의 운명을 점쳤다. 그 때문에 옛 풍속에서 약혼을 하려면 먼저 반드시 경첩庚帖(사주단자)을 교환하고, 팔자를 맞춰보는데, 팔자가 서로 부합하면 혼인이 성립되고, 부합하지 않으면 배우자로 삼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작품 중에서 마도파마도파가 무술무술로 저주를 할 때에도, 저주할 사람의 사주팔자를 적었던 것이다.

 

종사宗祠

옛날에, 동종同宗 자손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묘우廟宇를 사당祠堂이라고도 한다. 고대에는 천자에서부터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廟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서민은 없었다. 명대에 이르러 조상을 집에다 사당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기 시작했으므로 종사라고 했다. 그러나 작위가 있는 귀족 집안에서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종사자宗祠者라고 불렀다. 작품 중에, ‘그날 종사宗祠와 가모賈母에게 인사드렸다’라는 대목이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호칭, 예의풍속 및 오락 (1)

 

적처嫡妻

정처正妻, 정부인正夫人으로 봉건 종법宗法 사회에서는 본처를 정처正妻라고 불렀다.

 

노야老爺

구시대에 관리와 지방토호나 권세자의 호칭인데, 나중에는 대개의 문무 관리의 집안에서 노비들이 그 주인을 “노야”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아환Y鬟

하녀로, 그 머리 꼭대기에 “Y”자 모양의 쪽을 틀어 올렸으므로 야아이라고 부른 것인데, Y는 아鴉라는 뜻이고, 환鬟은 옛날 사람들이 머리를 틀어 올려 쪽을 지었기 때문에 환이라고 부른 것이다.

 

동종同宗

고대의 종법제도에 의거하면, 본래 같은 원조元祖(고조 이전의 먼 조상)를 동종이라 했다. 그러나 후세에는 동족同族 동성同姓인 사람을 동종으로 통칭하고 있다.

 

천형賤荊

또 졸형拙荊(우처, 자기 아내), 산형山荊으로도 부르는데, 옛날에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부를 때 낮춰서 부르던 호칭이다. 형荊은 싸리나무로 만든 비녀를 말한다.

 

마마嬤嬤

嬤嬤(마마媽媽와 음이 같음)는 마마媽媽와 같은 뜻이고, 유모 혹은 노년의 여자를 통칭한다.

 

련종聯宗

옛날에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서로 빌붙어서, 비록 동성同姓이나 동종同宗은 아니나 종족으로 인정하는 것을 연종이라고 부르고, 또 련종聯宗이라고도 했다.

 

배방陪房

옛날에 부귀한 집에서 시집보낼 때, 그 남편의 집으로 따라가는 남녀 하인을 배방이라고 불렀는데, 또 “배송陪送”이라고도 했다.

 

통방Y두通房Y頭

주인과 같은 방에 살기는 하나, 정식 이낭姨娘이 아니고, 그 지위는 이낭의 하녀보다 낮다. 통방은 수방收房이라고도 불렀다.

 

업사業師

옛날에, 자기에게 학업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업사라고 했다.

 

청객淸客

관료나 부귀한 가문에 빌붙어서 일을 돕거나 즐겁게 하는 사람을 청객 즉 문객이라고 하는데, 문객이라고도 부르며 문하의 하객을 속칭 멸편蔑片이라고도 하고, 하는 일도 없이 기식寄食하기 때문인데, 생김새는 고상하나 실제로는 주인의 콧김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칭하는데, 경멸의 뜻이 다소 있다. 청나라 때의 양장거梁章鉅의 『귀전쇄기歸田瑣記』 7 권에 『청객淸客』이 나온다: ‘그 밑에 청객이 가장 많은데, 그러나 역시 재주와 인품 약간 있어야 자립할 수 있다고 숫자로 표현했다: “일필호자一筆好字, 이등재정二等才情, 삼근주량三斤酒量, 사계의복四季衣服, 오자위기五子圍棋, 육출곤곡六出昆曲, 칠자왜시七字歪詩, 팔장마조八張馬弔, 구품두함九品頭銜, 십분화기十分和氣.”

 

숙장塾長

옛날에, 사가私家의 학당을 사숙私塾 혹은 가숙家塾이라고 부르고, 사숙에서 교육 업무와 기타의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을 숙장이라고 불렀다.

 

고명誥命

여기에서는 조정에서 봉작 명령을 반포한 것을 가리키고, 또 고명 봉작을 받은 부인을 가리킨다.

 

좌사座師

좌주座主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때에 진사進士로 주임 시험관을 좌사라고 칭했다. 명청의 거인擧人과 진사의 그 본과本科 주임 시험관을 좌사로 삼았다. 청나라의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 17 권의 『좌주문생座主門生』에 나오는 말이 있다. ‘공거지사貢擧之士는 유사有司로 좌주가 되어 자칭 문생門生이라고 하는데, 당나라 이후에 붕당朋黨의 화가 있은 뒤에 없어졌다가, 명나라에 이르러서 점차 공개적으로 좌사와 문생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는데, 당나라 때의 붕당의 화 역시 없어지지 않았다.’

 

홍루몽에 나오는 관직제도官職制度에 관한 간략한 설명 ⑤

 

구성도검점九省都檢点 :

‘왕자등王子騰이 구성도검점으로 승진했다.’ (제 53회) ‘누가 나의 외삼촌인가? 내 외삼촌은 설 전후에야 구성검점이 되었다.’ (제 55회) “도검점”은 “도점검都点檢”으로도 부르는데, 오대五代 이후 주세종周世宗 시영柴榮이 설치했고, 황제친군皇帝親軍의 최고 장관으로 실권이 크다. 송 초기에 폐지되었다. “구성도검점”은 작가가 허위로 기탁한 것이다.

 

대사마大司馬 :

‘가우촌賈雨村에게 대사마를 수여했다.’ (제 53회) 한나라 때에 “대사마대장군”을 설치하고, 후에 “대사마”라고 칭했는데, 실권은 승상보다 높았다. 수나라 때 폐지되었다. 명·청 시기에는 “병부상서”라는 별칭을 사용했다.

 

군기軍機 :

‘가우촌은 ....... 협리군기協理軍機로 조정에 참여하여 협조했다.’ (제 53회) 청나라 옹정雍正 때에 “군기처軍機處”를 창설했는데, 처음에는 군무軍務에 제한을 두었다가, 나중에는 군국대정軍國大政을 관장하여 실권은 내각보다 위였다.

 

장두庄頭 :

‘어린 남자종이 .......대답했다: “흑산촌黑山村의 오장두烏庄頭가 왔습니다.” (제 58회) ‘가용賈蓉이 말했다: “제 외할머니가 전 남편과 살 때, 우리 이모(우이저를 말함)를 황실 장원 관리하는 장張 장두네한데 시집보내기로.........’ (제 64회) 청대에 황실 및 만한滿漢의 기적旗籍을 둔 귀족 가문을 위해 경영하고 기지旗地를 관리하는 대리인을 “장두”라고 부른다. 소작인을 감독하고 소작료를 독촉하여 받아내고 노역을 할당하는 등의 일을 관장했는데, 어떤 장두는 자신이 바로 지주이기도 했다.

 

태비太妃 :

‘앞서 말했던 그 노태비 마마께서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제 58회) ‘북정왕부가 서원西院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데, 태비와 소비少妃가 매일 그 곳에서 쉬고 있다가 .......’ (제 58회) ‘영국부에서는 남안왕南安王 태비太妃와 북정왕비北靜王妃 그리고 대대로 교분이 있는 공작과 후작의 고명부인들이 찾아왔다.’ (제 71회) 황제의 부친의 비빈을 “태비”라고 하고, 당나라 중엽이후에는 제왕諸王의 모친 역시 “태비”라고 칭했다.

 

포쾌조례捕快皂隷 :

‘우리가 곧장 궁으로 가서 만나면, 포졸들에게 잡히지 않을 겁니다.’ (제 68회) “포쾌”는 즉 “민첩하게 체포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수색하여 체포하고 형을 집행하는 등의 일을 담당한다. “조례”는 아문의 심부름꾼이다.

 

찰원察院 :

‘찰원의 관리가 공당에서 안건을 심의하는데, 가련賈璉의 일을 설명하고 있다.’ (제 68회) 여기에서 “찰원”은 “도찰원都察院” 장관長官을 가리킨다. “도찰원”은 명·청의 관공서의 이름이다. 한나라 이후에 대대로 “어사대御史臺”가 없다가, 명나라 초에 “도찰원”을 설치했는데, 가장 높은 장관長官은 “좌도어사”, “우도어사”이고, 그 밑에 좌부도어사와 우부도어사를 두었다. 또 13 도道(감찰구監察區)를 나누었는데, 명·송 때에는 15 도道로 늘리고, 각 도道에 “감찰어사”를 두었다. 주현州縣을 순회하여 위문하고 관리를 고찰考察하고, “순안巡按”이라고 속칭했다. 청대에는 장관을 “좌도어사”로 개칭하고, 그 “우도어사”는 각 성省의 총감독이 겸직하고, “첨도어사僉都御史”를 철폐하고, 육과六科에 “급사중給事中”을 편입시키고, 기관을 탄핵하는 최고의 감찰을 구성했다.

 

관매파官媒婆 :

‘바로 관매파인 그 주朱 씨 아주머니입니다.’ (제 72회) ‘전아 관매官媒가 사주단자를 가지고 청혼하러 왔습니다.’ (제 72회) 관아에서 여자 범죄자를 공당에 보내고, 감시하고 압송하고, 안배하는 일 등을 맡은 여자 아역을 “관매파”라고 부른다. 중매를 업으로 하는 부녀자도 역시 “관매파”라고 불렀다.

 

시랑侍郞 :

‘그것은 양시랑楊侍郞이 보내온 것입니다.’ (제 78회) 명·청대에서는 중추육부中樞六部의 부장관副長官을 “시랑”이라고 부르는데, 정이품의 관리로 좌이시랑左二侍郞과 우이시랑右二侍郞이 있고, 각부의 “상서尙書”는 부部의 “당관堂官”이 된다.

 

지휘指揮 :

‘지금 손孫 씨 집에는 오직 한 사람만 도성에 있는데, 지휘指揮 직을 물려받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손소조孫紹祖입니다.’ (제 79회) 명대에 답습하는 관직으로 지휘사指揮使, 지휘동지指揮同知, 지휘첨사指揮僉事가 있다. 청대의 경사병마사京師兵馬司는 정육품의 지휘指揮와 정칠품의 지휘가 있다.

 

홍루몽에 나오는 관직제도官職制度에 관한 간략한 설명 ④

 

수비守備 :

‘금가金哥는 이미 원래 장안수비長安守備의 공자公子에게 시집가기로 정해졌다.’ (제 15회) 명대에서는 “남경수비南京守備”를 설치하여 그 지역을 보위하는 중요한 군대의 직무인데, 병사를 총괄하는 직을 “수비守備”라고 했다. 청대에는 녹영綠營(청대의 병제兵制에서 한인漢人으로 편성하여 지방에 주둔한 녹기綠旗의 군영軍營을 말함)의 총병관總兵官으로 “영수비營守備”를 두었는데, 정오품의 무관이다.

 

봉조궁상서鳳藻宮尙書 :

‘우리 집의 큰 아가씨가 승진하여 봉조궁상서가 되었습니다.’ (제 16회) 동한東漢 및 삼국 시기의 위魏나라에서는 황궁에 여상서女尙書를 설치하여, 궁 밖의 일을 아뢰는 일을 관장했다. “봉조궁”은 작가가 허위로 만든 관직명이다.

 

통판通判 :

‘다만 그는 돈을 기부하고 얻은 통판通判(조정의 신하 가운데 군軍에 나아가 정치를 감독하던 관직 이름) 직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제 24회) ‘보옥은 통판通判으로 있는 부시傅試 댁에서 할멈 둘을 보내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제 35회) 송대에 설치된 “통판”은 주부장관州府長官의 좌이관佐貳官으로 실권을 가진 직분인데, 주부州府의 공무를 집행할 때 반드시 통판의 연서連署를 받아야 한다.

 

도위都尉 :

‘처음에 그 구仇 도위都尉의 아들이 다쳤는데 .......’ (제 26회) 전국 시기에 “도위”라는 이름이 있었다가, 당대에 와서는 유공자의 칭호로 대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무의도위武義都尉”, “무익도위武翼都尉”, “소무도위昭武都尉”, “선무도위宣武都尉” 등이 있다.

 

학차學差 :

‘그 해에 가정賈政은 또 “학차學差”에 임명되었다.’ (제 37회) “학차”는 즉 “학정學政”이다. 송대에는 “제거학사사提擧學事司”를 설치하고, 명대에는 “제거어사提擧御史”와 “제거학도提擧學道”를 두었다. 청대에는 “제독학정提督學政”을 설치했는데, “학정”이라고 약칭하고, 각 성에 파견하여 생원生員(수재秀才) 선발 고시를 관장했다. 학정은 조정에서 시랑侍郞, 경당京堂, 한림翰林, 과도科道 등의 관직에 있는 사람 중에서 진사進士 출신자로 선발하여 파견하는데, 임기는 3 년이다. 관리 본인本人의 등급의 높고 낮음을 묻지 않는데, 학정에 임명되어 맡은 기간에는 대등하게 감독하고 돌본다.

 

태의원太醫院 정당正堂 :

‘가모賈母가 말하기를, “예전에는 태의원 정당으로 계셨던 왕군효王君效라는 분이 진맥을 잘 봤었는데........”’ (제 42회) 진秦대에 “태의령太醫令”을 설치하여 의원 사무를 관장하게 했는데, 한漢대에서 수隋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고치지 않고 답습하여 태상사太常寺에 속한 관직이다. 당나라는 “태의서령太醫署令”을 두고, 송대에는 “의관원사醫官院使”로 이름을 고쳤으나, 여전히 태상사에 속했다. 원元대에 이르러 “태의원太醫院”으로 독립된 관서가 되었는데, 주관主官은 “의사醫使”를 삼았다. 명·청대에는 그래서 관직 계급이 정오품이 되었고, 관서의 정무를 처리하는곳을 “정당正堂”이라고 불렀다. 명·청대에서는 지부知府와 지현知縣을 “정당”으로 불러서, 좌이관佐貳官과 구별되게 했다. 작품에서는 태의원의 장관에 비유하여 가리킨 것이다.

 

한림翰林 :

‘그 당시 부친이 도성에 있을 때에 이미 설보금薛寶琴을 임신해서 매梅 한림翰林의 아들과 혼인시키기로 허락했기 때문이다.’ (제 49회) 당나라 이후로 문학시종文學侍從을 “한림翰林”이라고 칭했다. 청대에는 과거에 진사로 합격한 자 중에서 조고朝考로 “서길사庶吉士”를 선발했는데, “한림”이라고 불렀다. 또 한림원의 수찬修撰과 편수編修 등도 역시 “한림”이라고 칭했다.

 

통사관通事官 :

‘나의 아버지께서 통사관 한 사람에게 사정하여 ........’ (제 52회)“통사관”은 즉 번역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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