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대하소설 | 임꺽정 피장편 1 - 홍명희

一字師 202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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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임꺽저 피장편 1

홍명희

임꺽정. 2: 피장편 | 홍명희 | 사계절 - 교보eBook

제 1장 교유

1

동소문은 원이름이 홍화문인데 동관대궐 동편에 홍화문이 있어서 이름이 섞이는 까닭으로 중종대완 당년에 동소문 이름을 혜화문 이라고 고치었다. 홍화문이 혜화문으로 변한 뒤 육칠년이 지난 때다. 혜화문 문턱 밑에 초가집 몇 집이 있고 갖바치의 집 한 집이 있었다.

그 갖바치가 성명이 무엇인지 이웃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 까닭에 그 사람이 듣지 아니 할 때 갖바치라고 말할 뿐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고 말할 때까지도 갖바치라고 부르고 양민들이 잦바치라고 부를 뿐이 아니라 관 사람들까지도 갖바치라고 말하였다. 갖바치가 곧 그사람의 성명인 것과 같았다.

그 갖바치가 사람은 투미하지 아니하나 신 솜씨는 투미하여 맞춤은 고사하고 막치도 변변히 짓지 못하므로 그 지은 신을 신는 사람 중에 진중치 못한 사람은 “이 신은 옥견이가 발로 맨든 것이야.” 하고 실없이 말하는 일까지 있었다 전에 이옥견 이라고 신 잘짓기로 유명하던 사람이 있어서 당시 서울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잘 하는 것을 보면 옥견이의 솜씨 같다고 말하였다.

그 갖바치가 갖바치의 벌이로는 내외와 아들 세 식구 살림이나마 부지할 수가 없지만 홍인문 밖에 사는 이판서 집에서 시량 범절을 돌보아 주는 까닭에 이웃 사람이 부러워 할 만큼 의식 걱정이 없이 살아었다. 이판서 댁 하인이란 사람들이 한 달에도 몇 번씩 올 뿐이 아니라 한골 나가는 양반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종종 찾아오는 까닭으로 이웃에는 갖바치를 우러러보는 사람까지 없지 아니하였다.

갖바치에게 오는 손님 중에 나이 사십 가량 될락말락한 점잖아 보이는 손님이 하나 있었다. 그 손님이 흔히 초저녁에 왔다가 밤든 뒤에 가는데 혹간 밤에 왔다가 이튿날 식전에 가는 일도 있었다. 갖바치의 집 이웃 사람이 그 손님의 데리고 다니는 아이를 붙들고 “오신 양반이 누구시냐?” 하고 물으면 그 아이는 “영감이시오.” 하고 대답하고 “뉘댁 영감이시냐?” 하고 재치어 물으면 “우리댁 영감이시지요.” 하고 모호하게 대답할 뿐이고 그 외에는 더 자세히 말하지 아니하였다. 이웃 사람은 고사하고 갖바치 이외의 갖바치 집 식구 까지도 그 손님이 누구인것을 잘 알지 못하였다. 알지 못하였기에망정이지 알고 보면 놀라지 아니하지 못할 만한 희한한 손님이었으니, 그 손님의 성은 조씨요 이름은 광조요 자는 효직이요 호는 정암이니 그때 벼슬이 사헌부 대사헌 이었다. 선비들은 우리의 선생이라고 존중하고 시정 사람들은 우리의 상전이라고 공경하던 사람이니 무주 구천동에 사는 나무꾼까지라도 서울 조재상이 갸륵하다고 말할 만큼 그의 명망이 팔도 에 가득하였다.

조재상이 갖바치를 찾아오기 시작하기는 부제학으로 있을 때 일이니, 조제학이 어느날 성균관에 왔다가 돌아갈 때에 대사성과 같이 관 어귀까지 걸어나오다가 키 큰 제상 하나가 미복을 입고 앞길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조제학이 손을 들어 가리키며 “저게 가는것이 희강이 아니라고?” 하고 대사성을 돌아보니 대사성이 “글쎄요, 키 큰 것은 이판 같소.”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조제학이 데리고 왔던 상노아이를 보내서 따라가서 보라고 하였더니, 그아니가 돌아와서 과연 홍인문 밖 이판서가 혜화문 안 어느 초가집으로 돌아가더라고 말하였다. 시임 이조판서 이장곤이 초가집에 있는 사람 찾아가는 것을 조제학은 괴상히 생각하며 관 어귀에 세워두었던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 왔었다. 며칠 뒤에 조제학이 이판서를 만나서 “일전 편복으로 혜화문 안에 행차하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찾아 갔었읍니까?” 하고 물은 즉 이판서는 적이 얼굴을 붉히며 “아니야, 그 무어 누구할 것도 없어. 나의 선생이야.” 하고 우물우물 대답하다가 조제학이 “문식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 말을 듣고는 이판서가 “문식이야 놀랍지. 그 사람이 미천할 뿐이지.” 하고 우물거리지 아니하였다. 조제학은 혹 숨은 인재가 아닌가 생각하여 친히 찾아볼 생각이 났었다.

얼마 뒤에 조제학이 일부러 틈을 만들어 가지고 미복으로 찾아와서 보니 사람은 비록 갖바치일망정 우선 언어 거동이 사대부와 다름이 없고 경사자집을 외어 가며 말하는 것이 드물게 보는 큰 선비라, 조제학은 첫번부터 수작에 재미를 붙이어해가 지는 것을 잊었었다. 그리하여 일어설 때 처음에 말하지 아니하였던 자기의 본색을 말하고 나서 그 사람의 성명을 물으니 그사람은 “갖바치가 무슨 성명이 있소이까.” 하고 성명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2

조제학이 갖바치와 상종하는 동안에 갖바치가 학문이 섬부할 뿐 아니라 식견이 투철하여서 앞일을 요량하는 법이 범상치 아니한 것을 알고 학문을 토론하는 때보다 일을 문의하는 때가 많았었다.

조제학이 부제학 되던 해에 벼슬길이 또다시 올라서 대사헌이 되었는데, 대사헌은 풍기를 바로잡는 직책이 있는 벼슬이라 예사 관원과 달라서 함부로 나다니지 못할 처지이나 그러나 조대헌은 밤저녁에 미복으로 나서는 때가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때는 갖바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한 삼 년 상종하는 동안에 서로 정분이 깊어져서 갖바치가 조대헌을 대하여 맘에 있는 말을 기이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전무후무한 현량과가 있은뒤, 어느날 밤에 조대헌이 갖바치를 찾아 왔는데 현량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이야기가 한동안 길었었다. “이번 현량과를 자네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과거의 방목이 있으니까 소인들이 모함할 때 죄줄 사람의 당적을 꾸미기가 힘들지 아니할 줄로 생각합니다.” “그게 다 무슨 소린가? 국가의 성사를 그렇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씀하다가 말씀을 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희한한 성사가 패사의 장본이 될까 영감을 위하여 두려워 하는 맘이 없지 못합니다.” ‘얇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것이 자네 말을 두고 이름일세.” “지금까지 영감께서 대사헌 되신 지가 햇수로 불과 삼 년인데 그동안 세상 풍기가 일변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고만두라고도 청촉이 없어지고 뇌물이 끊어졌으니 그것이 여간 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뇌물이나 받아먹고 청촉질이나 하던 사람들이 그 심장이야 갑자기 변하였습니까? 그 사람들이 활을 들고 영감을 과녁삼아 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감도 아니겠지요?” “그렇기도 하지요.” “말씀하는 길에 한마디 말씀을 여쭐 것이 있습니다. 영감의 재주가 일세를 경륜하실 만하나 임금을 만난 뒤에라야 그 재주를 다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한데 지금 상감께서는 영감의 명망은 아시겠지만 영감의 재주는 아시지 못할 것입니다. 통히 말하자면 영감의 영감의 사람을 알아주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에 소인들이 사이를 타서 농간하게 된다면 영감이 화를 면하실 수 있습니까? 한번 급류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결단하실 용맹이 있습니까?” “용맹은 있고 없고간에 남의 신자된 도리가 오직 충성을 다할 뿐이지 다른 말이 왜 있겠나?”“영감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고 갖바치는 입을 다물고 다른 말이 없었다.

달포가 지난 뒤다. 조대헌이 성균관 대사성 김식이를 보러 왔다가 가는 길에 갖바치에게 들러서 “내가 월전에 자네말을 들은 뒤에 노천하고 의논하고 양근 미원이란 데다가 밭뙈기를 장만하고 나무 주를 심게 했네. 차차 한번 용맹을 내볼 작정일세.” “노천이 누구신가요?” “김사성의 자야.”“네, 현량과의 장원으로 뽑히신 양반이로구먼요.” 하고 갖바치가 머리를 흔드는 것을 보고 조대헌이 “왜 머리를 흔드나?” 하고 물으니 갖바치가 이윽히 말이 없이 앉았다가 “영감이 혼자 하신다고 하여도 될 것 같지 아니할 일인데 더구나 김사성 영감과 공론해 가지고 하신다니 양근 밭은 헛사셨습니다.” 하고 말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빛이 보이었다. 조대헌이 이 말을 듣고 한두 번 한숨을 쉬더니 “십여 일 전에 내가 여러 친구들과 노천에게 모이어 앉았자니까 최수성이란 사람이 밖에서 들어오며 인사도 변변히 아니하고 노천더러 술 한 그릇을 달라고 하여 한숨이 들이마시고 나서 하는 말이 ‘썩은 배를 타고 물에 빠질 뻔하여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니 술을 먹으니까 진정이 되는군’ 한마디 하고 인사도 아니하고 나가버리는데, 그때 좌중에 앉았던 사람들이 괴상히만 생각하는 것을 내가 그 사람의 말을 풀어서 썩은 배를 탔다는 것이 우리를 두고 비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제일 첫째 노천이 그렇다고 말하고 여러 친구들이 간 뒤에 나를 보고 양근이 육지니 속히 썩은 배에서 내리자고까지 말하든걸.” 하고 말하니 갖바치는 “최수성이라니, 열아홉 살 때부터 산천 구경 잘 돌아다니는 양반 말이지요? 나 보기에는 영감네뿐 아니라 그 양반은 그 양반대로 자기의 썩은 배를 타는 모양입니다.” 하고 적이 웃었다.

 

3

조대헌이 갖바치 찾아다니는 것을 김사성이 알고 하루는 조대헌을 향하여 :“갖바치가 아무리 숨은 인재라고 하더라도 영감이 찾아다니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오. 조정 재상으로 미천한 사람과 교유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고 또 대사헌으로 미복을 입고 출입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즉 영감 한번 다시 생각하시오.” 하고 갖바치를 찾아다니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조대헌은 그의 권하는 말을 듣지 아니할 뿐이 아니라 “영감이 그 사람을 보지 못한 까닭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니 나하고 한번 같이 갑시다.” 하고 뒤집어 권하여 김사성도 한번 갖바치를 찾아와서 보게 되었다. 김사성은 갖바치의 위인이 심상치 아니한 것을 친히 보아 알았으나, 종시 남의 이목을 꺼리어서 한번 외에는 더 오지 아니하였다.

김사성이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둘째아들 덕순이는 색시같은 형님과 달라서 나이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아니 된 젊은 사람이 기운이 장사였다. 성질도 형제가 딴판으로 달라서 그 형님이 책상머리에 앉아 글을 읽을때 덕순이는 밖에 나와서 돌을 들거나 뛰엄을 뛰었다. 덕순의 처유모의 아들 박연중이가 역시 기운이 절등하므로 덕순이는 연중이를 데리고 겨룸을 하는 때가 흔히 있었다. 어느 날 김사성이 출입한 동안에 덕순이와 연중이가 큰사랑 뒤꼍에 와서 뛰엄뛰기 내기를 시작하였는데 연중이가 덕순이보다 몸이 더 날쌘 까닭으로 둘이 나란히 서서 뛰면 연중이는 한두 발씩 더 멀었다. 덕순이가 연중이에게 지는 것이 분하여 “이애, 맨손으로 뛰는 것은 신통치 아니하다. 우리 다듬잇돌을 갖다가 들고서 뛰어보자.” 하고 안에 들어가서 묵직한 다듬잇돌을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둘이 번갈아가며 다듬잇돌을 들고 뛰엄질을 하는데 연중이가 기운이 좀 못 미치는 까닭으로 뛰는 금이 덕순이와 비등하였다. 연중이가 “여보, 서방님. 우리 높이로 뛰기해봅시다.” 하고 뒷마당 담을 가리키며 “우리 힘자라는 대로 몇번이든지 저 담을 뛰어넘어 봅시다.” 하고 도전하니 덕순이는 “그리하자. 우리 둘이 함

께 뛰어갔다 뛰어들어왔다 하느니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뛰고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뛰어보자.” 하고 방법을 정하였다. “너 밖으로 나가거라.”“언제 돌아가고 있단 말씀이오. 내가 첫번 한번 뛰는 것은 접어드리리다.” 하고 연중이가 먼저 몸을 솟치어 담을 뛰어넘어갔다. 그 뒤에 덕순이가 뛰어넘어가며 연중이가 뛰어넘어오고, 또 연중이가 뛰어넘어가며 덕순이가 뛰어넘어왔다. 두서너 번 재미나게 뛰어넘어 다니다가 둘이 일시에 뛰게 되었는데 안팎에서 뛰는 자리가 공교하게 맞질러서 담 위에 두 사람이 마주 닥뜨리며 안에서 뛰던 연중이는 안으

로 떨어지고 밖에서 뛰던 덕순이는 밖으로 떨어졌다. 담밖에는 다행히 풀밭이라 덕순이는 별로 다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몸을 털고 다시 담을 뛰어넘어오니 연중이가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뒤통수가 돌부리에 다치어서 피가 흘렀다. 덕순이가 손으로 상처를 비비는 연중이를 보고 “많이 다치지나 않았느냐? 맨 나중에 내가 한번 혼자 뛰었으니까 접힌 적이 없다. 이 담날 다시 뛰자” 하고 사랑으로 들어갔다.

김사성이 집에 돌아와서 덕순이와 연중이가 뛰엄질을 하다가 연중이가 다치었다는 말을 듣고 덕순이를 불러서 “사람의 자식이 나이 열칠팔 세나 된 것이 밤낮 상없는 장난으로 날을 보낸단 말이냐!” 하고 준절히 꾸짖은 뒤에 “혜화문 안에 갖바치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심상한 사람이 아닌 모양이니 더러 찾아가 보아라.” 하고 일렀다. 그리하여 김덕순이가 갖바치를 찾아오게 되었는데 처음 만나던 때 갖바치가 고리삭은 글 이야기나 하였더면, 덕순이도 그 아버지 김사성과 같이 한번 외에 더 오지 아니하였을 것이지만 갖바치가 덕순이의 좋아하는 술수 이야기를 한 까닭에 덕순이가 첫번 오던 길로 갖바치에게 반하게 되어 그 좋아하던 뛰어질도 별로 아니하고 자주 갖바치에게 놀러오고 박연중이도 덕순이를 따라다니는 때가 많았다.

 

4

김덕순의 안해 이씨는 나이 열아홉 살인데 인물이 얌전하고 범절이 무던하여 김사성 내외가 사랑할 뿐 아니라 덕순이와 내외간 금실이 여간 좋지 아니하였다. 덕순이의 안해 방을 밝히는 것이 김사성 집 하인들 사이에는 조명이 났었다. 그 아버지가 취침할때쯤 되면 덕순이는 그 형님과 같이 큰사랑에 올라가서 한동안 뫼시고 섰다가 그 아버지의 입에서 “가서들 자거라.” 하고 말이 떨어지면 형제가 함께 절하고 나와서 그 어머니를 뵈러 같이 안으로 들어왔었다. 그 어머니의 방에서 혹 무슨 이야기가 나서 곧 일어서지 못하게 되면, 덕순이는 졸린 모양을 보이느라고 거짓 하품을 하는 때도 없지 아니하였다. 이런 때는 대개 그 어머니가 “졸린데 그만 나가서들 자거라.” 하고 말하여 형제 같이 나오다가 그 형을 보고 “형님, 먼저 나가시오.” 하고 안해의 방인 뜰아랫방으로 들어가서 밤을 지새고 첫새벽에 형제 쓰는 사랑으로 나가는 것이 거의 버릇이 되다시피 하여서 그 형은 덧문을 지쳐만 두고 자는 때가 고리까지 걸고 자는 때보다 많았었다.

덕순이가 갖바치에게 놀러다니게 된 뒤에 어느날 밤 뜰아랫방에서 내외 앉아 잔사설 이야기를 하다가 갖바치의 이야기가 났었다. “아버님이 어련히 생각하시고 찾아가 보시라고까지 말씀하셨을라구요만 갖바치를 찾아다니는 것이 창피하지 않아요.” “나는 고만두고 조참판장 같은 점잖은 어른이 다 찾아다니실라구.” “조참판 어른 말씀을 들으시고 아버님이 당신더러 가보시라고 말씀하신게요 그려.” “아니, 아버지도 한번 가셨더래.” “그사람이 무슨 별재주나 가졌습디까?” “별 재주는 가졌는지 모르지만 아는 것은 많아. 점을 모르나 사주를 모르나 의술을 모르나 모르는 것이 없습디다.” “그러면 술객인가 보구려.” “아니야, 술객이 다 무어야. 점잖은 사람이야.” “당신이 말을 무어라고 하시오.” “말이라니?” “갖바치더러 무어라고 하셔요?” “선생이라고 하지.” “그러고 보면 당신이 갖바치의 문인이요 그려.” “그러니 어째? 신 잘 짓던 옥견이는 종반 이가야. 당신의 일가야. 갖바치의 일가를 안해로 데리고 사는 사람이 갖바치의 문인되는 것이 창피할까?” “창피하거든 창피하다고나 하시지 왜 남을 끌고 들어가려고 그러시오.” “갖바치의 일가는 오히려 창피할 것도 없지. 당신네 먼 조상은 고리백정이야. 아이구, 다치는 데가 있군. 쉬, 쉬.” “쉬쉬할 걸 왜 말을 하시랍디까?” “고리백정의 자손이요 갖바치의 일가로 양반의 집에 시집와서 호강한다.” “나는 무식한 여자이니까 우리 조상이 고리백정인지도 몰랐세요. 이 담 친정에 가거든 아버지에게 물어보지요. 당신 말씀만 듣고야 믿을 수 가 없어요." "오, 남을 역적으로 몰리게 할라구." "우리더러 고리백정의 자손이라고 말했기로 역적될 것이야 무어 있어요?" "나라 임금에게 다치니까 걱정이지." "그렇기에 보시오. 금지옥엽의 자손을 놓고 마구 말할 것인가." "금지니 옥엽이니 계집의 이름 같구려." "쉬쉬말고 말조심하시지요." "한 말도 지지 아니하는구려. 당신이 칠거지악이 두가지 있는 것을 당신이 아시오? 말 많은 것이 한가지야." "또 한 가지는?" "아들 없는 것." 절은 내외의 잔사설이 한이 없었다. 자리에 누운 뒤에야 말이 그치었었다.

 

5

덕순의 안해 이씨의 친정에서 유명한 장님에게 덕순이 내외의 사주를 본 것이 있었는데, 내외가 백년해로하지만 자손궁이 부족하여 아들이 없으리라는 말이 있었다. 덕순이가 이씨에게 있는 사주 적은 것을 본 뒤에 "첩을 두어야겠다." "아들을 못 낳으면 출처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이씨의 골을 지른 일이 한 두번이 아닌 터이었다. 그날 밤에 이씨가 베개 위에서 "여보세요, 주무세요?" 하고 덕순의 몸을 건드리니 이때껏 가만히 소리 없이 누워있던 덕순이가 갑자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이씨가 덕순의 몸을 흔들며 "아이구, 곤하게도 주무시네. 다 새었어요. 고만 일어나 나가시지요." 하고 소리를 죽이어 가며 웃었다. 자는 체하던 덕순이가 "닭도 울기 전에 날이 새어? 가짓말이 일쑤로구려." 하고 머리를 이씨에게로 가까이 옮기어 숨기운이 이씨의 얼굴에 끼치니 이씨가 성낸 목소리로 "가짓말이 다 무어요. 어떻게 그렇게 낮잡아 말하시오. 내가 다신더러 가짓말로 코를 곤다고 말이나 해보아. 당신은 화를 산같이 내실 것 아닌가." 하고 덕순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게서가 성을 내신다면 이곳이 말씀을 잘못했소.” 하는 덕순의 말에 “낮잡아 말하고 게다가 빈정거리기까지 하시는구려.” 하고 다시 덕순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덕순이가 자는 체하듯이 이씨는 성내는 체한 것이라

풀 것도 없고 풀릴 것도 없었다.

“여보세요. 갖바치가 사주를 잘 안다셨지요? 장님 사주에 있는 말이 맞나 아니 맞나 한번 물어보시구려.” “아들이 없다는 말을 물어보란 말이지? 나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들 말을 묻기가 좀 창피해.” “갖바치 선생은 창피치 않고 아들 말은 창피하시담 아들이니 딸이니 말씀하실 것 없이 장님의 사주를 가지고 가셔서 이 사주가 잘 본 것이냐고 물으면 자연 말이 있을 것 아니에요?” “되었소, 그렇게 합시다. 나는 그 생각은 못하고 사주를 한번 보아 달래려고 맘을 먹고 있었지.” “그것도 좋지요.” “그렇지만 장님 사주를 보이고 묻느니만 못해. 게서의 것돠 내것을 내일 다 나를 주시오.” “내일은 고만두고 지금 곧 달라셔도 불 켜놓고 찾아 드릴 터이에요.” 이날 밤 내외간 수작한 것과 같이 이튿날 덕순이는 장님의 사주 두 장을 가지고 갖바치를 찾아왔다. 처음에 이 말 저 말 하다가 덕순이는 말을 사주 편으로 가까이 끌려고 점 이야기부터 시작하였다.

“홍계관이 점은 참말 용하던 모양이지요. 홍계관이 살던 골목을 홍계관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만 보더라도 당시에 유명하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지요만, 홍윤성이를 보고 그가 뒤에 귀히 될 것을 미리 알 뿐 아니라 그 아들이 홍윤성이 손에 죄를 당하게 될 것까지 미리 알고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당부하였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니오? 지금도 이 홍계관이와 같은 점쟁이가 있을까요?” “점쟁이는 왜 묻소? 무어 점 쳐주고 싶은 일이 있소?” “아니 요사이 점쟁이니 사주쟁이니 자칭하고 다니는 것들은 모두가 거짓말쟁이 같습디다. 그래서 지금 세

상에도 홍계관이 같은 사람이 있나 하고 말씀을 물었소.” “홍계관이는 고사하고 관로, 곽박, 이순풍같은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지요.” “점도 점이지만 사주를 잘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겠지요.” “사주를 볼 줄 아신다지요? 이 사주가 잘 본것인가 못 본것인가 좀 보아주시오.” 하고 덕순이가 장님의 사주 두장을 내놓으니 갖바치가 그것을 받아서 한 번씩 휙휙 보고 접어서 무릎 앞에 놓으며 “내외가 백년해로하면 아들 없을 리 없지요. 되지도 못한 사주쟁이의 사주가 종작이 있겠소. 얼마 아니 있으면 용한 사주쟁이 하나가 서울을 올 터이니 그 사주쟁이에게 사주를 한번 보시오.” 하고 빙그레 웃고서 “나도 사주 볼 줄을 짐작하지만 이때까지 사주 한 장을 본 적이 없소. 대체 사주란 것이 꼭꼭 다 맞는다면 보는 사람이 볼 재미가 없을 것이오. ‘설마’나 ‘혹시’를 믿고 사는 사람들이 덧정이 없어질 것이 아니겠소.” 하고 허허 웃었다. 덕순이가 “그 용한 사주쟁이가 언제 서울 올까요? 오거든 꼭 알으켜 주시오.” 하고 부탁하니 갖바치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내가 알으켜 드리지 아니하여도 자연 보시게 되리다.” 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눈으로 덕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

갖바치가 김덕순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중에 행길로 난 방문 밖에서 “주인 있소?” 하고 곧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덕순이가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치어다보더니 얼른 몸을 일어 그 사람 앞으로 나아와서 공손히 절을 하고 “어르신네께서 어찌 행차를 하셨습니까?”하고 물은즉 그 사람이 “자네는 어째 왔나?” 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덕순을 따라 일어섰던 갖바치가 “저리 앉으십시오.” 하고 아랫목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여 그 사람이 앉은 뒤에 갖바치가 그 사람을 향하여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를 숙이고서 “제가 이 집에 사는 갖바치올시다.” 하고 다시 고개를 드니 그 사람이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갖바치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허허 웃고 나서 “나는 최원정이란 사람이오. 원정이래서는 모를까? 최수성이라면 혹 들었겠지?” 하고 “압니다. 함자를 들어 뫼신 지 오랩니다.” 말하는 갖바치를 여전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최원정이 서 있는 김덕순이를 흘긋 치어다보더니 “자네도 거기 앉게.” 하고 말하는데 덕순이가 “시생은 온 지가 오래라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하고 말하다가 “거기 앉게. 좀 있다 나하고 같이 가세.” 하는 최원정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여 한 옆에 꿇어 앉았다. 최원정이 또다시 갖바치를 바라보며 “효직이가 가끔 온다지?” 하고 덕순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의 어르신네 노천에게서 말을 들었어.” 하고 말하여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이고 곧 말을 이어서 “효직이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았소?” 하고 물으니 갖바치는 “물으시는 뜻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최원정이 이윽히 잠자코 앉았더니 “내가 초면이라도 믿고서 말을 묻는 터이야.” 하고 “내가 효직이의 사람됨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학문의 힘이 좀 부족하지 아니한가 의심하는 까닭에 묻는 말이오.”하고 갖바치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갖바치가 “무엇으로 학문의 힘을 말하오리까?” 하고 돌이켜 물은즉 “글쎄, 나도 의심뿐이야. 그러나 지금 예판으로 있는 남곤이라든지 작년에 형판을 지낸 심정이라든지 이와 같은 자들과 동조하여 벼슬 다니는 것을 보든지 일을 좋아하는 젊은 간관들의 납뛰는 것을 누르지 못할 뿐이 아니라 도리어 탄핵을 당할 뻔한 것을 보든지 효직이의 학문의 힘이 부족해서 그렇지 아니한가 하는 의심이 생기오그려.” 하고 말을 그치자 갖바치가 적이 얼굴을 붉히며 “조대헌 영감은 산으로 치면 태산이고 별로 치면 북두올시다. 때를 못 만나신 양반이라 일의 성패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인물은 길이 천추에 빛날 줄로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조대헌 영감이 학문의 힘은 조금도 부족하시지 아니하시지만 임금사랑은 너무 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험절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겠지요.” 하고 최원정의 의심이 부당한 것을 말하니 최원정이 “조대헌에게 반했군. 실상은 나도 반한 사람이야.” 하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효직이가 아무래도 화패는 면치 못하지.” 하고 최원정이 조대헌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가만히 앉았는 덕순이를 바라보며 “너는 너의 아버지 덕에 썩은 배를 타고 나서게 되었다. 너 힘이 장사라더구나. 위태할 때 배에서 뛰어내리겠니? 어, 위태한 일이야!” 하고 어깨를 웅숭그리는데 갖바치가 “남들이 큰 소매옷을 입고 다니는데 팔이 간신히 들어가는 옷을 입는 것도 썩는 배를 타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니 최원정이 좁은 소매옷을 들어보이며 “이것이 위태하단 말이지? 그래도 내 소매가 이 세상보다는 넓디고 하고 평안도 하지.” 하고 일어서서 같이 가자고 붙든 덕순이를 바라보고 “나는 먼저 가네.” 하고 방문 밖으로 나가는데 그의 허허 웃는 소리가 멀리 가도록 방안네 들리었다.

 

[출처] 임꺽정 피장편 1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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