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돌아가는 글로벌 공급망 시계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세계는 지금 l 미-중 무역전쟁
우리 주위에서 중국산이 아닌 제품은 얼마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중국산 제품 없이 하루라도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비단 최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이 두 자릿수대 경제성장률을 이어가던 2007년 무렵, 미국인 저널리스트 사라 본지오르니는 실제 가족과 함께 1년간 중국산 제품을 거부하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A Year Without ‘Made in China’)를 발간해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무렵 우리나라에서도 한·미·일 공동 프로젝트로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방영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기
그로부터 약 10년 뒤 미국 정부는 이와 비슷한 도전을 시작한다. 2007년이나 2018년이나 중국 위협론은 여전히 존재했으나 중국의 경제 규모는 훨씬 커졌으며 국제경제에서의 위상, 발언권 역시 강해졌다. 중국 자신도 더는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리는 자세’만을 취하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50년까지 종합 국력, 국제 영향력 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최강국이 되겠다고 했다. 중국 내외 연구기관은 2030년도 되기 전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의 빠른 성장은 미국이 다시 한번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감행하는 요인을 제공한다.
2018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출발이었으며 또 다른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가 국가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산 제품 500억달러 규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여기에는 중국의 10대 핵심산업 육성 프로젝트 ‘중국제조 2025’에 해당하는 다양한 하이테크 품목이 대다수 포함됐다. 중국은 똑같이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수입품 106개 품목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반격했다.
반격의 반격이 몇 차례 더 반복됐고 그사이에 무역전쟁은 환율전쟁, 기술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는 인권전쟁이 가열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지역에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제재를 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에 서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을 떼어내고 싶어 하는 미국의 의지가 결국 출구 없는 전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경제로부터 중국을 떼어놓으려는 미국의 노력이 진화할수록 중국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가고 있다. 물론 방향은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최강국이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힘겨운 노력이 이어졌으나 중국이 가장 공들이는 것은 바로 ‘쌍순환 전략’이다. 지금까지 수출에 의존했던 중국의 경제구조를 수정해 대외경제를 촉진하는 내수 위주의 전략적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지속했던 대외교역 강화 정책에서 크게 선회한 전략이라 중국 안팎으로 큰 충격을 줬다.
또한 중국은 지금껏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동안 생긴 많은 폐단을 지적했는데 그중 하나로 기술 발전의 ‘목을 누르는’ 문제를 꼽고 있다. 중국은 목숨 걸고 국산화해야 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답을 찾고 있다. 핵심기술을 장악하지 못하고 외국산에 의존하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기술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 의지를 더욱 북돋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1960년대의 중-소 관계와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의 갈등으로 기술자립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단기간에 원자폭탄, 수소폭탄, 인공위성을 자체 기술로 만든 바 있다.
목을 누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7대 과학기술 선도 분야(인공지능, 양자정보, 집적회로, 뇌과학, 유전자 바이오, 임상의학 헬스케어, 우주·심해·극지 탐사), 8대 제조업 핵심 경쟁력 분야(고급 신소재, 주요 기술장비, 지능형 제조로봇, 항공엔진, 베이더우항법시스템, 신에너지자동차, 첨단의료기기·신약, 농업기계장비)를 명시하고 핵심기술 개발을 가속하고 있다. 대다수 실물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야다.
이와 동시에 핵심기술 개발을 위해 다양한 육성 전략을 지속적으로 세우고 세부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반도체만 해도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구분 없이 반도체산업 생태계의 기본 틀을 완비하고 자급률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육성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는 등 기술자립 없이는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산업 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중 분쟁으로 인한 디커플링(탈동조화) △코로나19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수급 불안정에 따른 공급망 문제가 부각됐다. 이에 따라 공급망 안정화는 중국 정부 최대 화두가 됐다. 실례로 중국의 각 부처에서 공급망 안정화 강화와 관련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21년 6월 원자재 가격 안정화 조처를 발표하며 시장의 수급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산업용 광물의 정부 비축량 방출 계획을 발표했다. 상무부는 제14차 5개년 계획 기간인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대외무역의 발전 계획을 발표했는데 식량, 에너지자원, 핵심기술 및 부품의 수입처 다변화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금융 당국은 공급망 관련 지원 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지방정부 차원에선 산업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지방의 수장들이 앞장서고 기업이 포진돼 공급망을 더욱 완전하고 강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제도를 중국에서는 ‘연장제’(鏈長制)라고 한다. 각 지역 산업사슬의 책임자를 지방정부 수장이 맡고 기업은 산업사슬의 중심이 되어 경쟁력을 잃은 분야는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산업사슬 전반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연장제는 2017년 11월 후난성 창사시가 처음 실시했다고 한다. 각 성급 이상 공단에서 22개 산업사슬 추진 사무소를 설립하고 20개 시 단위 리더가 산업사슬 책임자로 지정돼, 해당 지역 소재 기업들과 함께 지방의 산업사슬을 더욱 완벽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위기로 이 프로젝트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아직 그 실체나 구체적인 성공 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의 공급망 관리는 지방의 클러스터 단위부터 세세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중국은 자체 공급망과 내수시장으로 자력갱생의 길로 출발했다.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의 행보는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작용할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 열풍으로 많은 기업이 글로벌 아웃소싱과 함께 글로벌 가치사슬에 깊숙이 참여하며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왔다. 그 중심에서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 등으로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며 전세계 공급망에 균열이 생겼고, 이후 코로나19로 그 파열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중 갈등 과정에서 글로벌가치사슬(GVC)의 가장 대표적 산업인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중국은 고립무원에 갇히게 됐다. 미-중 갈등이 1차 무역협상으로 다소 안정될 무렵 갑자기 터진 코로나19는 전세계 공급망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렸다. 중국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이 조업을 재개하지 못하자 우리나라 완성차 생산 공장이 멈춰버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도로 같은 구실을 하는 물류는 여전히 꽉 막혀 있다. 중국 상하이 등 주요 항만 대부분의 유럽이나 미국 운송률이 현재 만재(滿載) 수준에 근접했으며 지속적인 운임 급등으로 일부 기업은 수출할수록 오히려 적자를 내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중 분쟁 격화에 따라 공급망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내놓는 각종 통상규제도 글로벌 공급망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발생을 기점으로 급성장하는 4차 산업과 하이테크 산업에선 전력을 비롯해 각종 원자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중국 정부는 각종 원자재와 부품 소재 등을 자국 시장에 우선 공급하는 방향의 정책을 내놓아 글로벌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공장 가동 중단 사태
중국의 환경규제와 산업 구조조정 등으로 원자재와 일부 품목의 생산량 감축, 공급가 급등도 글로벌 공급망을 흔든다. 중국은 탄소중립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종 세부 과제를 내놓고 있다. 치솟는 전기 사용량을 제어하려는 에너지 통제 정책도 세부 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극단적 조처로, 중국 동부 연안에 있는 공장들이 2021년 가을 가동을 중단하는 아찔한 일도 벌어졌다.
저렴한 비용을 찾아 중국에 공장을 둔 많은 외국 기업들이 이제는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아세안 등 새로운 장소를 찾고, 앞으로 이런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가 결국 수십 년간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의 시간을 뒷걸음치게 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구축에 약 30년이 걸렸다면 재편에도 그 못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작업이 수반된다. 우리는 과연 ‘세계의 공장’과의 분리불안을 감내할 수 있을까.
거꾸로 돌아가는 글로벌 공급망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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