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逸話傳---人物傳記2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우임금 편-1, 치수의 시작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우임금 편-1, 치수의 시작 (사진설명: 우임금의 석상) 치수의 달인 우임금 하(夏)나라의 창시자 우(禹) 임금은 군주가 되기 전에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에 혼신을 쏟아 부으며 8년 동안 집 앞을 세 번이나 지나면서도 손꼽아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과 만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방방곡곡을 다니며 중국을 9개 주(州)로 나누었고 그로부터 중국은 구주(九州)라고도 불린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이르고 가장 분명한 행정구역의 분류이다. 중국은 고대로부터 양조업이 발달했고 풍부한 술 문화가 형성되었으나 우임금은 음주가 일을 그르친다고 인정해 중국 최초의 금주령(禁酒令)을 내리기도 했다. 치수의 달인 우임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본다. 1. 치수의 시..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4, 영원한 농관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4, 영원한 농관 4. 영원한 농관 그 때 중화대지의 동쪽과 남쪽에는 큰 물이 지고 북쪽과 서쪽에는 가뭄이 들어 우가 몇 년째 물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후직이 여전히 농사를 가르치며 황하(黃河)의 하류에 이르니 홍수가 바다로 흘러 들도록 도처에서 물길을 파고 있었다. 우가 후직에게 말했다. “여기는 물이 많아서 벼를 심는 것이 좋은데 물이 많은 곳에서도 잘 자라고 가뭄이 들어도 소출이 좋은 종자를 찾아보게.” “물도 싫어하지 않고 가뭄에도 잘 자라는 종자를 찾으라니,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후직은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몸은 벌써 움직여 홍수지대와 가뭄지대의 모든 곡물을 돌아보며 우량 종자를 찾아 몸소 재배하면서 논밭 관리의 기술을 도출해냈다. 곧 재해지..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3, 농경의 신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3, 농경의 신 3. 농경의 신 농관이 된 후직은 매일 여러 곳을 다니며 농사를 가르쳤다. 그는 한 부락에 이르면 사람들을 모아 놓고 먼저 이론을 알아 듣기 쉽고 자세하게 강의했다. “농사의 풍작을 거두려면 땅에 맞는 좋은 씨앗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봄에 파종을 잘 하고 여름에 제초를 잘 하며 가을에 수확을 잘 하고 겨울에 내년의 준비를 잘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 후직은 이론 강의를 마치고 나서는 사람들을 데리고 몸소 밭에 나가서 씨앗을 뿌리고 김을 매며 수확을 하는 전 과정을 몸소 실천하면서 일일이 가르쳤다. 후직이 알아 듣기 쉽게 잘 가르치고 몸소 농사과정을 보여주었기에 후직이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은 단번에 농경기술을 익혀 모두 배를 곯지 않았고 아..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2, 오곡의 군주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2, 오곡의 군주 2. 오곡의 군주 기는 과연 신인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벌써 곡식을 재배하고 돼지와 소, 양, 말 등을 사육했다. 하지만 소출이 적어서 야외에서 채집하는 것보다도 적었다. 기는 씨앗만 뿌리고 전혀 관리를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일 밭에 나가서 세심히 관찰하면서 어떤 곡물의 씨가 어떤 땅에서 잘 자라는지를 파악했다. 4천년 전에 기는 벌써 어떤 산에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떤 밭에 어떤 곡식을 심어야 하는지를 알았던 것이다. 그 때는 곡 임금은 별세하고 요(堯) 임금이 새 군주가 되었다. 강원은 아들이 매일 토지와 곡식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땅은 땅이다. 하필 땅을 분류하느라 너 고생이 너무 많구나.” “땅도 서로 ..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1, 신묘한 출생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후직 편-1, 신묘한 출생 농경의 비조 후직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노란 좁쌀로 만든 죽을 아침식탁에 많이 올린다. 맛도 일품이고 영양분도 많으며 위장에 좋은 이 좁쌀은 고대에 직(稷)이라 불렀고 속칭 률(栗)이라고도 한다. 이 좁쌀이 바로 4천여년전 후직이 재배하기 시작한 오곡 중 한 가지이다. 농경의 비조, 오곡의 신 후직(后稷)이 있었기에 이 세상 사람들은 배를 곯지 않고 자자손손 삶을 영위하고 있다. 농경의 비조 후직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1. 신묘한 출생 중국 인문의 비조 황제(黃帝)의 증손자 곡(喾) 임금에게 강원(姜嫄)이라는 이름의 왕비가 있었다. 전한데 의하면 강원이 하루는 숲에 가서 산나물을 따다가 곰의 발자국을 밟았는데 그만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4, 영원한 동반자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4, 영원한 동반자 (사진설명: 창힐 문화원) 4. 영원한 동반자 창힐은 목탄으로 자작나무 껍질과 도자기, 짐승 가죽에 자신이 만든 글자를 기록해서 황제에게 가져다 보였다. 황제는 그림 같기도 하고 문자 같기도 한 그 글자를 보고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창힐이 문자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들으면서 황제는 이렇게 생각했다. “창힐이 문자를 창제한 것은 정말로 위대한 발명이다! 우리 화족은 이제 새끼에 매듭을 지어 사건을 기록하는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구나. 우리 화족은 가장 문명한 민족이다! 창힐이 이렇게 총명하고 능력이 있고 이렇게 큰 기여를 했으니 내가 자리를 내놓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 황제는 창힐이 설명을 마치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3, 다양한 조자법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3, 다양한 조자법 (사진설명: 창힐의 석상) 3. 다양한 조자법 총명한 창힐은 모친이 손으로 칼날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지사(指事)라는 새로운 조자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칼 도(刀)에 한 점을 더 그어 칼날 인(刃)자를 만들고 나무 목(木)자에 한 획을 더 해서 근본을 나타내는 본(本)자와 끝을 나타내는 말(末)자를 만들었다. 이 지사법에 근거해 창힐은 윗 상(上)자와 아래 하(下), 석 삼(三) 등 글자를 만들어냈다. 지사법에 의해 만든 글자가 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한적이었고 이런 글자는 단순한 상형문자가 아니라 추상적인 부분도 가지고 있었다. 황혼이 지자 온 하늘에 붉은 놀이 가득했다. 바위에 올라 앉아 하늘을 덮은 노을의 무궁한 변화를 바라보는 창힐의 생각..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2, 상형한자의 창조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2, 상형한자의 창조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창힐의 한자 창조) 2. 상형한자의 창조 “세상 만물은 모두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을 중심으로 모두가 알아보는 그림을 그린다면 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창힐은 한자 창제의 길에 올라섰다. 홀로 움집에 남은 창힐은 늘 바위에 올라 앉아 낮에는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고 밤이 되면 밝은 달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태양도 달도 모두 둥근데 어떻게 이 둘을 분간하지? 맞다. 태양은 영원히 둥글지만 달은 차고 기우는 것을 무한 중복하니 태양은 둥글게 표기하고 달은 조각달로 표기하면 되겠다.” 자신의 생각에 만족하고 기뻐하던 창힐은 순간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이 세상에 둥근 모양의 물건이 ..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1, 한자 창조의 시작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창힐 편-1, 한자 창조의 시작 (사진설명: 창힐의 조각상) 한자를 창제한 창힐 역사의 발전여정에서 중국은 문자의 창제로 인해 새끼에 매듭을 지어 사건을 기록하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고 그로부터 몽매한 시대를 벗어나 문명 시대로 진입했으며 중화문화도 그로부터 끊임 없이 존속하고 전승되고 있다. 문자를 창제한 창힐(倉頡)의 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창힐은 사물의 모양에 따라 상형문자를 만들었고 후에는 또 회의(會意) 문자를 창조했다. 사실상 후에 사람들이 귀납한 상형과 회의, 지사(指事) 등 ‘육서(六書)’ 문자 창제법을 창힐은 벌써 그 때 기본 장악했던 것이다. 오늘은 한자를 창제한 창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1. 한자 창조의 시작 창힐은 황제(黃帝)..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4, 누조로 남다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4, 누조로 남다 (사진설명: 누조 문화원의 일각) 4. 누조로 남다 천하 통일의 기반을 다진 황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서릉씨는 황제를 위해 차남 창의(昌意)을 낳은 뒤였다. 황제는 아들을 품에 안고 자세히 들여다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귀엽게 잘 생겼군, 나를 닮았소. 다만 눈이 나를 닮지 않고 촉인(蜀人)을 닮았군 그려. 당신들 촉인은 눈이 모두 커서 촉에 사는 서릉씨만이 이렇게 잘 생긴 아들을 낳을 수 있소. 나와 유웅부락의 사람들은 모두 눈이 작았는데 눈이 이렇게 크니 더 잘 생기고 더 좋구려.” 탁록성을 한 바퀴 돌아본 황제는 여인들이 모두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지 않고 치마를 입은 것을 보고 더욱 기뻤다. “당신은 정말 대단하오. 남자들을 가르쳐서 ..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 3, 황제와의 혼인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 3, 황제와의 혼인 (사진설명: 그림으로 본 양잠을 가르치는 누조) 3. 황제와의 혼인 서릉씨의 명성은 치우(蚩尤) 정벌 준비를 하던 황제(黃帝)의 귀에도 들어갔다. 아름답고 착한 서릉씨가 양잠기술을 발명해 서릉부락을 야만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작은 부락들간의 관계도 잘 조율해 서릉부락을 번창에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들은 황제는 서릉씨가 여중호걸과 여장부라고 판단했다. 그녀와 혼인하면 향후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황제는 구혼차 서릉부락에 가기로 결정한다. 서릉씨와 혼인을 하려는 사람은 황제 한 사람뿐이 아니었고 서릉부락의 두령은 양녀인 서릉씨의 미모와 지혜, 선량함에 어울리는 영웅을 배필로 찾아 주리라고 작심했다. 그리고 그날 황제가 도착..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 2, 리더의 능력 [중국명인 비하인드 스토리] 누조 편 2, 리더의 능력 (사진설명: 누조 문화원) 2. 리더의 능력 하늘은 구천(九天)의 누각이 보일 정도로 씻은 듯 맑았고 푸른 하늘 아래 서릉의 벌판에는 녹음이 설렜다. 봄바람이 산들 산들 불어오고 끝없이 펼쳐진 뽕나무 밭에서는 푸른 가지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서릉씨는 부락의 처녀들을 데리고 뽕나무 잎을 땄다. 무성한 뽕나무 숲에서 땀을 흘리며 뽕나무 잎을 따는 처녀들을 바라보며 서릉씨는 “뽕나무 잎을 따지 말고 뽕나무 숲에 누에를 직접 키울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했다. 결정을 하면 바로 행동하는 것이 서릉씨의 성격이었다. 그녀는 즉시 두 처녀에게 집에 가서 누에를 가져다 무성한 뽕나무 밭에 풀어두라고 시켰다. 그런데 하얀 누에가 뽕나무에 오르자 어디서 날아왔는.. 逸話傳---人物傳記 2024. 2. 29. 이전 1 ··· 15 16 17 18 19 20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