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인은 첩이 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보옥을 교화하다
습인의 성姓은 화花, 원래의 이름은 진주珍珠인데, “습인襲人”이란 이름은 보옥이 시詩에 나오는 구절 “花氣襲人知晝暖”화기습인지주난(꽃의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드니 따뜻한 대낮이네)에 근거하여 그녀의 이름을 “습인”으로 바꿔주었다.
그녀는 가정이 빈한하여 유년시절에 빈곤 때문에 부모가 그녀를 가부賈府에 팔았다. 그녀는 원래 가모賈母 밑에 있던 시녀였는데, 나중에 가모는 습인이 마음씨가 순수하고 선량하여 맡은 일을 극진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그녀를 보옥에게 보내서 보옥의 시중을 드는 첫째가는 큰 시녀로 삼았다.
경환선고警幻仙姑-홍루몽 채도본
보옥은 꿈속에서 태허환경太虛幻境에 살고 있는 경환선고警幻仙姑를 따라 박명사薄命司에 들어갔다가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우부책又副冊의 두 번째에 있는 습인의 판사判辭를 보게 되는데, 그림에는 싱싱한 꽃(花) 한 다발과 낡은 자리(席)이 그려져 있었다. 습인의 원래의 성이 화花씨이고, 돗자리를 뜻하는 석席(xí)는 습襲(xí)와 발음이 같아, 그림 속의 꽃다발과 돗자리는 습인을 가리킨 것이고, 시의 후반부 두 구절은 습인의 이러한 운명을 말해준 것이다.
枉自溫柔和順왕자온유화순 (온순함과 얌전함은 보람이 없고)
空雲似桂如蘭공운사계여란 (향기로운 난초 계화가 헛말이었구나)
堪羨优伶有福감선우령유복 (결국에는 배우에게 복이 가고 말았으니)
誰知公子無緣수지공자무연 (공자와는 인연이 없는 것을 누가 알았으리)
다정다감한 성격인 습인은 보옥에 대해 지극히 세심하게 뒷바라지를 했는데, 보옥을 위해 물건 배치와 음식 등 일상생활에서 작은 일이나 큰일에 모두 전심전력을 기울여 보살폈다. 보옥의 “명근자命根子”(가장 귀중한 물건)인 통령보옥通靈寶玉도 습인은 매번 잠들기 전에 친히 간수했고, 보옥이 외출에서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오면 그녀는 문에 기대어 기다리거나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보옥이 몹시 더운 여름날에 낮잠을 잘 때면, 다른 시녀들은 다 자지만 습인은 그래도 그 옆에서 세심하게 마음을 써서 시중을 들었다.
보옥이 “첫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가 육체적으로 나누는 사랑)을 시도”한 대상은 바로 습인이었는데, 그녀는 시녀 중에서 보옥과 관계를 맺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습인은 일찍부터 보옥의 모친 왕부인王夫人이 이미 자신을 보옥에게 허락한 것을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필생의 염원은 바로 보옥의 첩이 되는 것이어서, 그래서 이를 위해 온갖 계략을 다 썼던 것이다.
또한 명문대가의 공자公子인 보옥이 가진 나쁜 습성에 대해 습인은 부드러움으로 교화시키서 가문의 계승자로서 당당해지기를 바랐는데,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그녀는 입신양명을 권고하는 설보채薛寶釵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원칙을 사용해서는 보옥을 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보옥에게 권고할 때면, 그녀는 먼저 에둘러서 그의 말투를 탐색한 다음에 그에게 권고하곤 했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 보옥을 보게 되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보옥에게 다시는 여자 아이들과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또 습인은 보옥 신변에 있는 다른 시녀들을 덕으로 복종시키는 것을 잘했다. 그녀는 청문晴雯처럼 어린 하녀에게 대단한 기세로 이러쿵저러쿵 따지면서 대하지 않고, 친절하고 온화하며 공정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에 어린 하녀들 모두가 그녀에게 고분고분했다.
가부賈府의 주인들에게도 습인은 온갖 방법을 다해서 호감을 얻었는데, 그녀는 보채寶釵에게는 망태기를 만들어 주고, 사상운史湘雲을 위해 물건을 보내주기도 하고, 또 가부의 살림을 관장하는 봉저鳳姐가 병이 났을 때에는 병문안도 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왕부인에게 보옥을 위해서 의견을 제기한 것인데, 습인은 남녀가 유별하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옥을 아가씨들이 거주하는 대관원大觀院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 왕부인의 신임을 획득한 것이다. 습인의 모친이 병이 위중하여 자기 집으로 문병을 갈 때에도 가부에서는 그녀를 상당한 신분으로 대우해서 보냈다.
온유하고 얌전하나 처세를 잘하는 습인襲人은 적극적으로 봉건의 전통사상을 옹호했다. 그녀는 보옥寶玉의 확실한 첩의 신분이 되어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별의별 궁리를 다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했지만, 애석하게도 하늘은 농간을 부려서 그녀의 염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가부의 몰락과 함께 보옥이 세상을 포기하고 출가出家하여서 정실부인인 보채조차도 독수공방을 하게 되자, 명분이 없던 습인은 더욱 그대로 있을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죽을 수도 없게 된 그녀는 할 수 없이 불만스럽기 했지만 우령优伶(연극배우의 옛 명칭) 장옥함蔣玉菡에게 시집을 간다.
소위 “襲乃釵副습내채부”라고 말한 것은, 습인이 바로 제 2의 설보채薛寶釵라고 간주한 것인데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습인은 보옥의 첩에 해당되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보옥을 대할 때면 여자아이들과 하루 종일 시시덕거리지만 말고 공부에 진력하라고 권유했다. 대인관계에서는 주인이든 어린 하녀이든지 간에 모두에게 중시되었다. 또 예교禮敎에 대해서는 진심을 다해서 봉건도덕을 신봉하고 자신과 타인을 엄격하게 단속하고, 같은 처지의 노비의 지위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상당한 동정심을 가졌다.
보옥의 아내 보채는 분수에 맞게 처신하는 사람인데, 보옥에게 벼슬길에 나가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권고한다. 대인관계에서 인심을 잘 얻고, 예교에는 봉건도덕을 성실하게 신봉하고 규율과 예를 잘 지켰는데, 이러한 점은에서 두 사람이 비슷하다. 그러나 보채는 이성적이고 냉담하여 동정심이 없는데, 이것은 습인과는 다른 점이다.
홍루몽이야기: 가부賈府의 수석 큰 시녀: 원앙鴛鴦이 첩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머리를 자르다
원앙鴛鴦은 가부賈府의 “가생여아家生女兒”(집안 노비의 딸)인데, 재간이 뛰어나서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정도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녀의 항혼抗婚(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주는 결혼을 거부하다) 맹세는 일반적인 견식을 가진 나리, 부인네들에게 하층의 딸이지만 기개와 존엄을 보여주었다.
형부인이 원앙에게 권고하는 장면-홍루몽 채도본
원앙의 부모는 남경南京에서 가賈씨 집안의 집을 관리하고, 오빠는 가모賈母 거처에서 구매를 담당하고, 형수는 가모 거처의 옷 세탁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안 노비의 딸”, 즉 대대로 주인을 위해 일하는 노비가 낳은 자녀여서 신분은 당연히 일반 노비보다도 더 천했지만, 그러나 원앙이 시중드는 사람은 바로 가부의 노마님 가모賈母이고, 시녀들 중에서도 큰 시녀였다.
가부의 규정에 의하면, 부모를 모시거나 혹은 연장자의 노복奴僕은 존중을 받아서 젊은 주인보다도 더 체면體面을 봐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가부의 많은 시녀 중에서 원앙의 지위와 대우는 대단히 높았다. 원앙은 가모에게 매우 신뢰를 받아 가모의 재물을 관리했기 때문에, 봉저鳳姐와 가련賈璉도 그녀에게는 어느 정도는 예우와 양보를 했는데, 심지어 그녀에게 빌려서 변통할 때도 있었다.
원앙이 왕희봉王熙鳳(봉저)의 거처에 오면, 봉저와 가련은 모두 얼른 일어나서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고, 봉저는 그녀를 “원앙언니”(鴛鴦姐姐)라고 불렀다.
원앙은 가모의 일상생활을 시중드는 외에, 가모를 모시고 심심풀이를 해서 즐겁게 해드렸다. 유노파(劉姥姥)가 두 번째로 가부를 방문했을 때, 대관원大觀院에 들어와 본적이 있었다. 원앙은 유노파를 골려주어서 노마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특별히 자신이 삼선아패령三宣牙牌令의 영관令官(주석酒席에서 흥을 돋우기 위하여 하는 여러 가지 놀이의 사회자)를 맡아 유노파에게 시골의 속된 얘기를 하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한 바탕 웃으며 즐겁게 놀았다.
또 한 번은 가모와 설이마薛姨媽, 왕희봉 등이 마작麻雀을 했는데, 원앙이 몰래 가모가 필요로 하는 패牌를 봉저에게 손짓으로 표시하자, 봉저는 일부러 그 패를 가모에게 양보하여 이기게 해서 가모가 즐겁도록 비위를 맞추었다.
생김새가 단아한 원앙은 꿀벌처럼 가는 허리에 어깨는 약간 처졌고, 얼굴은 갸름하고 포동포동하고, 까맣고 반지르르한 머리카락에 코는 오뚝하고, 두 뺨에는 희미하게 주근깨 몇 개가 있다.
원앙의 성격적 특징은 세심하게 살뜰히 보살피고,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으며, 충성스럽고 진중하며, 강렬한 정조관貞操觀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강한 횡포에 두려워하지 않고, 하층 계급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했다.
가모의 큰아들 가사賈赦가 원앙을 마음에 들어 하여 그녀를 첩으로 삼으려고 했다. 가사의 부인 형부인邢夫人은 주동적으로 나서서 원앙에게 중매를 서려고 하자, 원앙은 의사 표시를 하지 않고 침묵으로 대했다. 오빠의 아내 즉 올케가 이익을 미끼로 그녀를 유혹했을 때에는, 원앙은 사정없이 신랄하게 야유를 퍼부었다.
또 평아平兒와 습인襲人이 농담으로 축하한다고 말하자, 원앙은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경고의 말로 대꾸했다.
平兒道:“你的父母都在南京看房子,沒上來,終久也尋的着.現在還有你哥哥嫂子在這里.可惜你是這里的家生女兒,不如我們兩个人是單在這里.”
(평아가 말했다. “네 부모는 모두 남경에서 옛날 저택을 지키고 이곳에는 오지 않으셨지만, 결국 찾게 되겠고, 현재는 그래도 네 오라비와 올케가 여기 있잖아. 그런데 너는 안타깝게도 이 집안 노비의 자녀이니까, 홀로 몸만 들어와 있는 우리와는 다르잖아”)
鴛鴦道:“家生女兒怎麽樣?‘牛不吃水强按頭’?我不願意,難道殺我的老子娘不成?”
(원앙이 대답했다. “이 집 노비의 딸이면 어떻다는 거야? ‘물 안 마시려는 소 대가리를 억지로 누르겠다는 거야?’ 내가 원하지 않는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가사는 그녀를 첩으로 취하기 위해 그녀의 오라비 김문상金文翔에게 이익을 내세우며 유혹하고 위협까지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곧장 가모 면전에 가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형부인이 어떤 말을 했고, 자신의 올케와 오라비가 한 말을 하나하나 다 폭로하고 하소연했다.
“因爲不依,方才大老爺越性說我戀着寶玉,不然要等着往外聘,我到天上,這一輩子也跳不出他的手心去,終久要報仇.我是橫了心的,當着衆人在這里,.......橫竪不嫁人就完了!就是老太太逼着我,我一刀抹死了,也不能從命!........日後再圖別的,天地鬼神,日頭月亮照着嗓子,從嗓子里頭長정爛了出來,爛化成醬在這里!”
(제가) 따르지 않으니까, 방금 전에는 큰 대감님께서 제가 보옥 도련님한테 마음을 두고 있거나, 아니면 밖에서 번듯한 신랑감을 구하려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제가 하늘에 간다고 해도, 한 평생 대감마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에는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저는 독한 마음을 먹고 여기에 계신 여러분 앞에서,........ 일 평생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바로 노마님께서 저를 억지로 보내신다면, 저는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테고, 말씀에 복종하지도 않겠습니다! ........ 앞으로 딴 마음을 먹는다면,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의 빛이 제 목구멍에 비춰서 목구멍 안에 독창이 퍼져 문드러지고 고름이 잔뜩 고이게 될 거예요!)
말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가위로 머리카락을 한 줌 잘랐는데, 다행이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저지하여 그녀에게서 가위를 빼앗았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원앙은 모든 것을 대할 때 경솔하게 지껄이거나 농담을 하지 않았고, 보옥寶玉을 피하며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과연 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 원앙은 자기의 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여,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홍루몽이야기: 십이부책十二副冊 ③ : 령관齡官이 울면서 비녀로 땅에 글씨를 쓰다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연극공연은 대단히 저속한 직업 중의 하나로, 공연하는 연예인은 사회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 어린 연극배우 령관齡官은 생김새와 성격이 대옥黛玉과 비슷했지만, 다만 신분이 비천한 연극배우여서, 대관원大觀院 안에서 애지중지하며 생활하는 부용芙蓉(부용은 대옥을 말함)에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름답지만 그저 들의 길가에서 주의를 끌지 못하고 조용히 피어 있는 꽃이었다.
『홍루몽紅樓夢』에는 12 명의 연극배우 소녀들이 나오는데, 모두 “관官”이라는 글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었고, 령관은 그 중의 하나이다. 령관은 춘령椿靈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연극반에서 소단小旦(연극의 처녀역)의 역을 맡았다.
갸름한 얼굴에 허리가 날씬한 령관은 눈매가 호수처럼 맑고 눈썹을 잘 찡그렸는데, 연극에서 연기도 대단히 잘 했다. 가장賈薔과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그녀는 소설에서 모두 다섯 차례 나오는데, 그 중에 네 번은 가장과 관계된 내용이다.
첫 번째는 현덕귀비賢德貴妃 가원춘賈元春이 친정인 가부賈府에 와서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는 “성친省親” 때이다. 가장이 고소姑蘇에 가서 연극을 배우고 있는 여자아이 12 명을 사왔는데, 령관은 바로 그 중의 하나였다.
성친 온 원비가 가모와 상면하다-홍루몽 채도본에서
두 번째는 원비元妃의 성친 때, 령관의 공연을 본 원비가 태감에게 금쟁반에 과자와 떡을 담아 보냈다.
“誰是齡官?”
(누가 령관이냐?)
賈薔便知是賜齡官之物,喜的忙接了,命令官叩頭.太監又道:
(가장은 령관에게 주는 하사품인 것을 알고, 기뻐하며, 령관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인사를 올리게 했다. 태감이 또 말했다)
“貴妃有諭,說‘齡官極好,再作兩出戱,不拘那兩出就是了’.”賈薔忙答應了.
(“귀비께서 ‘령관이 대단히 잘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두 편을 더 고르는데, 제목은 마음대로 골라서 공연해도 된다’라고 하셨다.” 가장은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가장이 령관에게 『유원游園』 『량몽凉夢』을 하라고 했지만, 령관은 그 곡들이 본래 자신이 부르던 곡이 아니어서, 『상약相約』 『상매相罵』를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가장은 그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냥 따라 주었다. 령관의 공연을 본 가비賈妃는 매우 칭찬하며 또 상을 하사했다.
“不可難爲了這女孩子,好生敎習.”
(저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고, 교습을 잘 받게 해라)
세 번째는 제 30 회에서, 령관의 중요한 활동이 나오는데, 때는 5월 초나흘로 바로 그 다음날이 단오端午여서, 연극을 배우는 여자아이들이 휴가를 받아 대관원 안으로 놀러 왔다. 그들은 뙤약볕이 쬐는 날이어서 나무그늘에 앉아 매미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보옥寶玉이 대관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방금 전에 어머니 왕부인王夫人의 거처에서 시녀 금천아金釧兒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낮잠에서 깬 왕부인에게 들켜서 공연히 금천아만 쫓겨나게 되자, 멋쩍어져서 대관원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장미꽃 화단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다가 보옥은 그 시렁 밑에서 비녀로 땅바닥에다 “장薔” 자字를 쓰고 또 쓰고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는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갑자기 내리는 여름 소나기에 온 몸이 다 젖는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 번째는 한번은 보옥이 갑자기 령관이 부르는 『목단정牧丹亭』을 듣고 싶어서, 령관 옆에 앉았는데, 령관은 즉각 몸을 피해버리면서, 목이 쉬었다고 노래하기를 거절했다.
다섯 번째는 가장이 참새를 사가지고 와서 령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을 때, 뜻밖에 영관은 신세한탄을 했는데, 가장이 참새로 자기를 골려주려는 것이고, 또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질책했다. 그러자 가장은 좌우지간 잘못했다고 하면서, 또 맹세를 하고, 또 참새를 날려 보내고, 또 가서 의원을 데려오겠다고 말했는데, 령관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站住,這會子大毒日頭地下,你賭氣請來了我也不睄.”
(멈춰요. 지금 대낮이라 뜨거운데, 고집부리며 데려와도 나는 진료를 받지 않을 거예요)
령관의 결말에 관해서는, 소설에는 분명하게 언급한 것은 없지만, 대략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가부를 떠났거나, 아니면 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홍루몽이야기: 『홍루몽紅樓夢』 십이부책十二副冊 ② : 절개가 곧은 낭자 우삼저尤三姐
우삼저尤三姐는 신분이 비천하여 귀족자제들의 심심풀이의 대상이었지만, 그녀는 목숨을 걸고 진실한 애정을 추구한 곧고 고귀한 절개를 가진 여인으로, 마치 들판의 차디찬 제방堤防 수로의 진흙더미 속에서 피어난 깨끗한 붉은 연꽃과 같았다.
우삼저와 우이저尤二姐는 녕국부寧國府 가진賈珍의 부인 우尤씨의 여동생들인데, 우씨의 계모가 우씨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성씨姓氏에게서 낳아 데리고 온 딸들이다. 그래서 가진賈珍의 아내 우尤씨와는 아버지도 다르고 어머니도 달라 전혀 혈연관계는 없다.
그녀들은 보잘 것 없는 출신이고 가난했는데, 가모賈母는 우이저의 생김새가 왕희봉王熙鳳보다 더 예쁘다고 했고, 가보옥賈寶玉도 우삼저는 “절색絶色”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젊고 아름다운 미모는 그녀들에게 불행의 근원을 조성했다.
가부賈府에서 호강스럽게 자란 부잣집 자식 가진, 가련賈璉, 가용賈蓉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미인인 우씨 자매를 보고 제멋대로 경박하게 희롱했다. 성격이 연약한 우이저는 늘 지위가 높은 사람과 관계를 맺어서 높이 올라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부의 공자公子 가련 첩이 되었던 것이다.
우삼저는 그러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형식의 굴욕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익을 탐하여 굴욕을 받으면서 강한 권세가를 두려워하며 아첨하는 금과부金寡婦와는 같지 않고, 보옥寶玉의 신변에 의탁하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는 유오아柳五兒와도 달랐고, 또 당연히 보옥의 시첩侍妾(귀인이나 벼슬아치의 시중을 드는 첩)의 지위에 오르려는 온유하고 순종적인 습인襲人과는 더욱더 같지 않았다. 그녀는 차라리 변변치 않는 차나 음식을 먹는 검소한 생활하며, 자존심과 절개를 지키려는 곧은 성격을 가진 여성이었다.
가련은 질투가 많은 아내 왕희봉王熙鳳이 두려운 나머지, 가부에서 가까운 곳에다 몰래 집을 구해 우이저를 살게 하고, 우씨의 계모와 우삼저도 함께 맞이하여 거주했다. 우씨 일가가 전부 가부에 의지하여 생활하게 되자, 가진은 방자하게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했는데, 그는 그곳을 즐기는 장소로 생각하여 기회만 있으면 와서 빈둥거리며 우삼저를 넘보려고했다. 곧 누군가의 핍박으로 깊은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삼저는 즉각 다른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우삼저는 가진과 가련의 희롱에 대해 심히 분노하고 혐오감을 가졌다. 그리고 자기의 처지를 바꿀 힘이 없었는데도, 그녀는 절대로 그럭저럭 양보하여 보전을 꾀하거나 자기 뜻을 굽혀서 남의 의견에 영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먼저 선수를 쳐서, 가진과 가련에게 지독하게 욕을 퍼부었다.
“花幾个臭錢,拿我們姉妹權當粉頭兒來取樂.”
(더러운 돈을 써서, 우리 자매를 임시로 기생으로 삼아 즐기는 것이다)
유상련柳湘蓮에게 마음을 둔 우삼저는 유상련에게 말로 하기에는 어려운 일종의 공명共鳴을 느꼈는데,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런 말까지 했다.
“自己說了,這人一年不來,他等一年;十年不來,等十年;若這人死了再不來了,他情愿削了頭當姑子去,吃長齋念佛,以了今生.”
(저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 사람이 저에게 오는데 1년이 걸린다면, 저는 1년을 기다릴 수 있고, 10년이 걸린다면 10년도 기다릴 거예요. 만약 그 사람이 죽어서 다시는 오지 못하게 되면, 저는 삭발하고 비구니가 되어서 재계하며 염불을 외우며 생을 마감할 거예요)
그러나 그녀의 치정癡情은 상대방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하고 말았는데, 유상련이 떠도는 소문을 믿고, 우삼저의 품행에 의심을 품은 것이다. 혼인을 치를 날이 다가왔을 때, 유상련이 파혼을 요구하며, 정혼예물로 준 원앙검鴛鴦劍을 돌려달라고 했다. 방안에서 그 말을 분명하게 듣고 있다가 뛰쳐나온 우삼저는 비분한 나머지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단호하게 원앙검 중에서 자검雌劍을 뽑아들었는데, 왼손으로는 원앙검과 칼집을 유상련에게 건네고, 자검을 쥔 오른손 팔꿈치를 들어 올려 자신의 목을 그었다!
揉碎桃花紅滿地유쇄도화홍만지 (복사꽃이 흩어져 온 땅을 붉게 물들이니)
玉山傾倒再難扶옥산경도재난부 (미녀가 쓰러지니 붙잡을 수 없게 되었네)
평민이면서도 권세 있는 자에게 나아가 아첨하며 빌붙지 않고, 강호江湖를 떠돌아다니던 유상련도 원래는 이런 겁쟁이였던 것이다! 작자는 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본질적으로 다정多情하고 용감한 이 젊은이를 속세에 환멸을 느끼며, 원앙검의 웅검雄劍을 꺼내 삭발하고 절름발이 도사를 따라 출가出家하는 길로 향하게 했다.
우삼저는 빈궁하고 외롭고 힘이 약해서 모욕을 당하고 침해를 받는 처지가 되자, 용감하게 몸을 일으킨 “小家碧玉”소가벽옥 (가난한 집의 예쁘게 생긴 소녀)이었다. 그녀는 단순하고, 대범하며, 자존심이 있고 매우 성깔이 있는 낭자였다. 그녀는 『홍루몽』에서 “부귀하다고 지나쳐서는 안 되고, 빈천하다고 변해서는 안 된다”는 열녀烈女 인물형상으로 나온다.
끝이 없는 아득한 암흑의 늪에 빠지게 되면, 많은 사람이 타락을 선택하고 말지만, 그녀는 자기의 추함과 죄악을 한줌의 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정정定情과 신물信物
중국의 고대풍속 중에, 남녀 사이에 정정定情(남녀가 서로 언약의 물건을 주고받으며 결혼을 약속하다)를 하게 되면 서로 신물信物(증표)를 준다. 이렇게 우삼저와 유상련처럼 쌍방이 서로 만나지 못한 정황 아래에서 혼약을 맺을 때, 도물사인睹物思人(물건을 보고 그 사람을 생각하다)으로, 신물을 통해서 자기의 사념思念의 정을 담아 보여준다.
『홍루몽』에서는 두 종류의 정情을 표시한 신물이 나오는데, 바로 동심여의同心如意와 원앙검鴛鴦劍이다.
동심여의는 가부의 대관원大觀院을 수색할 때, 시녀 사기司棋의 상자에서 동심여의를 색출했을 때 나온 신물인데, 필시 그녀와 마음을 주고받은 번우안番又安이 선물한 신물일 것이다. 동심여의는 두 사람의 마음의 형상을 연결하는 도안을 새긴 여의如意이다. 본래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장식물의 일종으로 청나라시기에 “기인旗人”(만주인으로 팔기八旗에 속한 사람)들은 종종 청혼용으로 사용했는데, “동심여의”는 “마음을 합쳐 뜻을 이루다”라는 의미를 내포한 신물이다.
상하이 옥불사 소장 금칠삼다여의-미술대사전
멀리 출장을 가는 도중에 우연히 설반과 유상련을 만나게 된 가련은 5년 동안이나 간직해온 우삼저의 뜻을 이루러 주려고, 유상련과 우삼저의 혼약을 성사시켰다. 원래부터 절세가인을 원하고 있던 유상련은 그 자리에서 당장 집안에서 대단히 귀중하게 여기는 가보 중의 하나인 원앙검을 가련에게 주었는데, 우삼저와의 정혼예물의 징표로 준 것이다.
원앙검은 즉 쌍검雙劍인데, 하나는 웅검雄劍이고 다른 하나는 자검雌劍으로 한 쌍을 이루어 “원앙鴛鴦”이라고 했는데, 이런 쌍숙쌍비雙宿雙飛(남녀(부부)가 함께 기거하다)의 수조水鳥는 항상 배필의 상징으로 여겼다.
홍루몽이야기: 『홍루몽紅樓夢』 십이부책十二副冊 ① :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재능이 출중한 향릉香菱
향릉香菱은 소설 『홍루몽紅樓夢』에서 가장 먼저 박명녀薄命女로 나오는 박복한 운명을 가진 인물이다. 향릉은 본명이 진영련甄英蓮, 본적은 고소姑蘇이고, 벼슬을 하다가 고향에 내려와서 거주하고 있는 진사은甄士隱의 딸로 태어났다.
부귀한 가정의 아가씨로 태어난 향릉이었지만, 어려서 유괴되어 팔려가서, 이로부터 운명이 바뀌게 되어 가엾게 된다. 향릉香菱의 배위排位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부책副冊 첫 번째에 있다.
향릉은 원소절原宵節(정월 대보름날)에 하인이 그녀를 데리고 사화社火(집단으로 하는 명절놀이로, 사자춤 따위가 있음)와 꽃등놀이 구경을 나갔다가, 하인이 소홀한 틈에 사기꾼에게 유괴되었기 때문에, 자기 부모, 출생지, 이름, 실제 나이조차도 거의 다 기억하지 못했다.
12,3 살쯤 되었을 때, 한 소향신小鄕紳(퇴직 관리로서 그 지방에서 학문과 덕망이 있는 사람)의 아들 풍연馮淵이 향릉을 보고 마음에 들어 첩을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 유괴범은 “태패왕呆覇王”(아무 것도 모르면서 횡포만 부리는 자) 설반薛蟠이 그녀를 보고 탐을 내자, 할 수 없이 되팔았다. 자연히 시비가 붙게 되자, 설반은 자기네 권세를 믿고 하인을 시켜 힘으로 그녀를 빼앗는데, 풍연은 심하게 구타당하여 죽고 만다.
설반은 그녀를 첩으로 삼고, 이름을 향릉으로 개명하고, 도성의 가부賈府로 데려갔다. 설薛씨네가 가부에서 살게 되자, 향릉도 가부의 영국부榮國府의 이향원梨香院에서 거주하며 설반의 시중을 들었다.
가보옥賈寶玉이 꿈속의 태허환경太虛幻境에서 열어 본 금릉십이채 부책에는 향릉의 애달픈 운명을 암시한 그림이 나온다. 흙더미(圭)에 나무 한 그루(木)가 그려 있는 그림인데, 흙더미와 나무는 “계桂” 자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바로 설반薛蟠의 정실부인 하금계夏金桂를 가리킨 것이다. 그녀의 판사判辭는 이러하다.
根並荷花一莖香근병하화일경향 (연뿌리와 연꽃은 한 줄기로 향기로운데)
平生遭際實堪傷평생조제실감상 (한 평생의 처지는 정말로 애달프구나)
自從兩地生孤木자종양지생고목 (두 흙더미에서 외롭게 한 그루가 생겨나)
致使香魂返故鄕치사향혼반고향 (향기로운 혼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네)
향릉의 성격은 온유하고 선량하며, 천진하고 사심邪心이 없고, 일을 행할 때는 부드럽고 조용하며, 좋아하는 것은 강렬하게 동경하며 집중해서 추구하려고 했다. 외모가 날씬하고 섬세하게 생긴 향릉은 가부의 녕국부寧國府의 가용賈蓉의 부인 진가경秦可卿의 풍모를 약간 닮았다. 순진하고 선량한 향릉은 비록 설반의 성격이 거칠고 저속해서 그녀를 전혀 가엾게 여겨주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설반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태도로 대했다.
『홍루몽도해紅樓夢圖解』 중의 향릉의 삽화
『홍루몽』 제 48, 49회에 향릉이 시 짓기를 배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소제목으로 표현했다.
“濫情人情誤思游藝,慕雅女雅集苦吟詩”람정인정오사유예,모아여아집고음시
(오패왕 설반은 일을 보러 집을 떠나고, 시를 사모한 향릉은 시를 짓는데 고심하다)
“향릉학시香菱學詩”는 『홍루몽』에 들어 있는 삽입곡에 불과하나, 이 삽입곡의 묘사는 향릉의 일생의 처지를 작자가 매우 공을 들여서 안배한 것이다. 지연재脂硯齋는 지비脂批에서 이에 대해 깊고 예리하게 분석했다.
“향릉의 사람됨을 홍루紅樓 여아女兒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와 대조해서 자세히 살펴보면, 품행이 가영춘賈迎春과 가탐춘賈探春에 못지않고, 용모는 봉저鳳姐와 진가경秦可卿에 뒤지지 않으며, 단아하기는 이환李紈이나 설보채薛寶釵에 비길 만 하고, 풍류風流는 사상운史湘雲과 임대옥林黛玉에 견줄 만하고, 지혜와 덕은 시녀 습인襲人과 시녀 평아平兒에 버금가는데, 애석하게도 어린 시절에 화를 당하여, 그녀의 운명은 기구하게도 측실側室이 되고 말았다. 잠시 시를 짓는 공부를 했지만, 대관원 아가씨들이 만든 해당사海棠社 시모임의 임대옥이나 사상운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출중한데도 향릉은 감히 대관원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대관원에 들어가려 했으나, 결국은 여러 번 기회를 만들려고도 했지만, 설반薛蟠이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보채寶釵가 데려가서야 대관원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지연재가 뛰어나게 총명하고 이해력이 우수하며 겸허하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향릉의 품격을 이렇게 평한 것이다.
평소에 향릉은 설반의 시중을 들어야 해서 한가할 틈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향릉은 설반의 시중을 들어야 해서 한가할 틈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설반이 장사하러 집을 떠난 동안에, 보채寶釵는 향릉을 대관원大觀院에 들어오게 해서 말동무를 삼아 함께 지냈다. 가부賈府의 아가씨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게 되자, 향릉은 우아한 것을 동경하는 본성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바쁜 일상이지만, 시를 배우고 싶어서, 그리하여 그녀는 대옥黛玉을 찾아가서, 대옥이 가르쳐주는 대로 시가詩歌를 열심히 반복해서 연습하며 정신없이 열중했다.
처음에 지은 시를 인정받지 못하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그녀는 연못가에 있는 나무 밑 돌 위에 한참동안 멍청하게 생각에 잠겼다. 두 번째로 지은 시의 주제가 본제本題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자, 그녀는 주변 사람의 말이나 일어나는 일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오직 시 짓기에만 열중했다. 마침내 세 번째의 시는 모두에게 인정받았는데, 다들 그녀의 집중력에 탄복해마지 않았다.
아래의 시는 그녀가 지은 시 작품 『음월삼수吟月三首』 중의 하나인데, 그 중에서 모두에게 인정받은 세 번 째 작품이다.
精華欲掩料應難정화욕엄료응난 (맑고 고운 달빛은 가리려고 해도)
影自娟娟魄自寒영자연연박자한 (아름다운 그 모습에 혼백마저 차게)
一片砧敲千里白일편침고천리백 (다듬이 소리가 천리 땅에 퍼져나가비치네)
半輪鷄唱五更殘반륜계창오경잔 (새벽녘 닭이 울 때엔 조각달만 남았구나)
緣蓑江上秋聞笛연사강상추문적 (강 위의 어부가 가을 피리 소리를 듣는데)
紅袖樓頭夜倚欄홍수루두야의란 (어찌하여 영원히 둥글지는 못하나)
博得嫦蛾應借問박득항아응차문 (아득한 하늘의 항아님께 묻노니)
緣何不使永團圓연하불사영단원! (인연은 어이해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하나!)
그러나 그러한 좋은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설반이 얼마 뒤에 또 하동사河東獅 하금계夏金桂를 정실부인으로 취한 것이다. 질투심이 대단한 하금계는 생김새가 여리 여리하고 날씬하며 행동이 섬세하고 조용한 향릉을 온갖 방법으로 학대를 가하며 괴롭혔다. 하금계는 향릉의 이름을 제멋대로 “추릉秋菱”으로 바꾸고, 또 독약으로 향릉을 독살하려고까지 했다.
하금계는 향릉에게 독약을 먹여서 해치려다 도리어 잘못하여 그 독약을 그녀 자신이 마시고 말았다. 그렇게 하금계가 죽은 뒤에, 설반은 향릉을 정실부인으로 앉혔고, 나중에 향릉은 아기를 가졌으나 결국 난산難産으로 죽고 만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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