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때려잡았지만 덫에 걸린 무송武松
글: 독서삼미
무송(武松)이라는 인물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는 거의 <<수호지>>의 등장과 더불어 굳어져버린 것같다. 절대로 사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송의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것은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민간전설에서의 무송을 <<수호지>>의 무송으로 대체해서 생각하기 때문이고, 민간전설의 무송과 수호지의 무송은 서로 별개이다. 만일 작품은 작품이고 인물은 인물이라는 각도에서 본다면,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이 사나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점에서 의문스럽다: 과연 사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시은(施恩)을 위하여 쾌활림(快活林)을 빼앗아 오는데, 무송은 힘을 다했다. 그는 시은에게 살인방화를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다. 무송이 시은을 도운 것은 실제로 살인방화를 도운 것과 차이가 없고, 조금 문어적으로 표현한다면 조주위학(助紂爲虐)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시은은 쾌활림에서 주점을 열었는데, 실제로 정상적인 거래는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무예와 영안의 팔,구십에 이르는 죄수들에 의지하여, 쾌활림에서 두목으로 군림한 것이다. 그러면서 백십곳의 객점, 이삼십곳의 도박장, 환전장이 누구도 그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손님이나 기녀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시은을 만나본 후에 시은이 다시 각 점포나 도박장으로 분배했다. 그리고 점포나 도박장은 매월 시은에게 "보호비"로 이삼백냥은자를 납부해야 했다.
봐라. 시은이라는 이 지두사(地頭蛇)는 바로 오늘 날의 조폭세력이 아닌가. 그러나, 좋은 시절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장문신(蔣門神)이 온 이후에 시은은 제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첫째는 장문신의 무예가 시은보다 높았다. 그래서 시은은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조폭세계라는 것이 왕왕 이렇다. 누가 더 세고, 누가 더 강한가에 따라 두목이 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시은의 부친인 시관영의 상사인 장단련(張團練)이 바로 장문신의 결의형제였다. 관직이 한급이라도 높으면 그걸로 누를 수 있는 것이다. 장단련이 장문신을 감싸고 있는 한, 시은은 보호막이 없다고 보거나 그의 부친의 보호막이 무력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억울하지만 자리를 장문신에게 양보해야만 했었던 것이다.
분명히 이 쾌활림은 장씨의 것도, 시씨의 것도 아니다. 시은과 장문신의 갈등은 어찌되었던 관청과 결탁한 조폭세력들간에 물고 물리는 다툼에 다름아닌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누가 정(正)이고 누가 사(邪)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반백성들의 말을 빌리면 자라 두 마리를 고아도 맛은 같다. 둘 다 좋은 놈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송이 시은을 위하여 쾌활림을 빼앗아온 것이 무슨 정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의 이러한 무원칙적인 가담은 협의정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가 나선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시은이 베푼 자그마한 은혜에 감복하여, 사나이인 척 한 것일 뿐이다.
원한에는 상대가 있고, 채무에는 주인이 있다는 좋은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은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호에서 생활하는 사나이들은 이 점을 믿는다. 이 점은 그들이 협의를 행하는 하나의 숨은 철칙처럼 되어 있다. 이 숨은 철칙을 어긋나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한다. 그런데, 무송은 이런 숨은 철칙에 어긋나는 짓을 한 것이다. 그가 복수를 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다. 그러나, 혈천원앙루(血濺鴛鴦樓)에서 연속 15명을 죽였는데, 무고한 사람들까지 얼마나 많이 포함되었는가. 이러한 행동은 사나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사하고 강도보다도 못한 짓이며, 그저 마귀의 짓거리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시은을 위하여 쾌활림을 빼앗아 오는 것이 원칙은 없더라도 그래도 약간의 사나이의 기개는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면, 원앙루를 피로 물들인 사건에서는 무송에게 이러한 점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고, 그저 암당무광(暗淡無光)일 뿐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무송이 사나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왜 그는 사람들을 죽인 후에 벽에다가 "살인자는 호랑이를 죽인 무송이다"라고 썼겠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하기 간단하다. 무송이 일곱번째 사람을 죽인 후에 이런 말을 한다: "한번 했으면 끝장을 보는 것이다. 백명을 죽이더라도 한번 죽는 거다" 분명히 무송이 자기의 이름을 남긴 것은 첫째는 이렇게 함으로써 화를 푼다는 점이고, 둘째는 복수를 위한 것이고, 사람을 많이 죽였으므로 붙잡혀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정서가 흥분되어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당시의 미친듯한 심리상태로 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기준은 사람이 사나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그가 "호색한"인가 아닌가를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송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송이 사나이인 이유는 그가 반금련의 유혹에 조금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든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반금련의 유혹앞에서도 무송은 확실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전제를 잊어서는 안된다. 반금련은 그의 형수라는 점이다. 자기의 형수를 존경하는 것은 자기의 형을 존경하는 것이다. 특히 부모가 없는 경우에 형수는 모친과 비슷하다. 이런 관념은 봉건시대에 더욱 강했다. 그래서 무송의 반금련에 대한 태도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도덕인 것이고,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이것만 가지고 그를 사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송이 사나이라고 하는 것중에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호랑이를 때려잡은 쾌거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호랑이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무송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저 힘이 셌다는 것뿐이다. 한발 물러서서 말하더라도 무송의 호랑이를 잡으러 가는 길은 그저 술김에 간 것일 뿐이고, 억지로 밀려서 간 것이다. 만일 맑은 정신이었다면 100% 호랑이가 지키고 있을 장소 즉 죽을 장소인 경양강에 그가 갔을 리는 없는 것이다.
사실 그가 경양강으로 올라간 것이 사나이라는 증거일까? 만일 호랑이가 그를 잡아먹었다면 누가 그를 기억하겠는가. 그저 일개 필부라고 여길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백성을 위하여 위해를 제거하기 위하여 경양강에 올랐다면 의미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비록 호랑이에 잡아먹혔다고 하더라도 사나이는 사나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그러나, 김성탄이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호지는 어쨌든 소설일 뿐이다. 문학예술적인 이미지의 무송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로 다르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무송을 읽을 것이다. 무송이 사나이인가 아닌가? 이것은 각자의 판단에 따를 일이다.
덫에 걸린 무송
어느덧 무더위가 물러가고 날씨도 한층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마도감 장몽방(張蒙方)의 수하가 찾아왔다.
“이곳에 경양강 고개에서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무 도두가 머물고 계시다던데, 지금 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무 도두는 무슨 일로 찾소?”
“저희는 장도감님의 수하에 있는 자들로서 도감님의 분부를 받들어 그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도감님께서 왜 그분을 찾는다고 하시던가?”
시은이 의아스런 얼굴로 물었다.
“상공께서는 그분이 뛰어난 호걸이란 소문을 들으시고 직접 만나뵙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타고 가실 말까지 준비해서 보내셨습니다. 여기에 상공께서 내리신 글도 있구요.”
시은이 친서를 받아 보니 봉투의 뒷면이 큼지막한 관인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시은은 그 글을 읽고 나서 생각했다.
‘이것 참 난처하게 됐군! 병마도감 장몽방은 우리 아버님의 상관뻘 아닌가! 무송 형님을 안 보내드릴 수도 없고….’
그리하여 무송은 채비를 한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군졸들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탔다.
맹주성 안에 이르자 그들은 곧장 도감에게 무송이 왔음을 알리자, 장 도감은 대청 위에 앉아 있다가 무송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자네의 이름을 들은 지 이미 오래일세. 그런데 도무지 만날 기회가 없었지 뭔가? 그런데 오늘에야 비로소 그 소원을 풀게 된 걸세. 과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자네는 의기가 넘치는 장부 중의 장부로군! 내 수하에는 자네 같은 인물이 없어 그러는데 어떤가, 자네 앞으로 내 곁에서 함께 일할 생각은 없나?”
그 말을 듣자 무송은 뛸 듯이 기뻤다. ‘어차피 맹주 땅 뇌성으로 귀양 온 몸이다’ 그런데 도감이 그렇게 청하니 잘하면 귀양 온 죄도 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무송은 털썩 무릎을 꿇으며 도감에게 아뢰었다.
“한갓 귀양 온 죄수에 지나지 않으나 상공께서 써 주신다면 이 몸이 부서져서 흙이 되는 날까지 몸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장 도감은 크게 기뻐하며 무송을 데리고 후당으로 들어가 술을 권했다.
다음 날은 시은의 집에서 짐을 옮겨 오게 하고 바깥채의 행랑방 하나를 내주어 그곳에 거처를 정하고 머물도록 했다.
그후 장 도감은 무송을 마치 한 집안 식구처럼 허물없이 대했다. 그리고 자주 후당으로 불러들여서 술과 음식을 권하곤 했다.
무송은 가끔 시은을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 장 도감님은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다. 나를 이처럼 따뜻이 대해 주시다니! 그러나 어쨌든 시은에게 안부를 전해야 할 텐데….”
그러나 장 도감이 늘 곁에 붙들어 두고 있던 탓에 무송은 시은에게 안부를 전할 시간이 없었다. 또 시은은 시은대로 맹주성 안에 사람을 보내서 무송에게 안부를 전하고자 하였으나, 장 도감댁 문지기가 그들을 들여보내 주지 않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무송은 장 도감댁에 온 이후로는 넉넉하고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장 도감은 무송의 말이라면 무엇이건 마다하지 않고 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공사(公事)에 관한 일을 부탁하려면 일단 무송을 찾곤 했다. 무송도 자기가 들어 줄 수 있는 것이면 상공께 말씀드려 들어 주었다. 그 바람에 무송에게 제법 많은 재물이 들어왔다. 무송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금, 은, 비단을 커다란 궤짝 속에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팔월 한가위가 되었다. 장 도감은 후당 깊숙한 곳에 있는 원앙루(鴛鴦樓)에 잔칫상을 마련했다. 장 도감은 그 자리에 무송을 불러서 술을 권했다.
무송이 술잔을 받으면서 살펴보니 도감의 부인과 딸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인 자리였다. 무송은 송구스런 마음이 일어 술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지금 어딜 가려고 그러는가?”
“가족과 함께 오붓한 자리를 즐기시려는데 제가 끼여서 불편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자 장 도감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나의 마음을 전혀 몰라서 하는 말이네. 나는 자네를 의사(義士)로서 여기며 또한 한 가족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네. 그러니 조금도 불편하게 생각지 말게.”
“저는 한낱 죄수에 지나지 않는 몸입니다. 어찌 감히 상공과 한자리에 앉겠습니까?”
무송이 그렇게 사양했으나 장 도감은 그런 무송을 놓아주지 않고 커다란 은잔에 술을 연거푸 거듭 따라 주었다. 무송은 장 도감이 따라 주는 대로 마다하지 않고 모두 받아 마셨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휘영청 밝은 달이 솟아올라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무송은 이제 제법 취기가 도는 것 같았다. 무송은 열 잔을 연거푸 더 받아 마신 다음 혹시 실수라도 할까 봐, 장 도감과 부인에게 인사하고 그곳을 물러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누웠다. 그때 후당 쪽으로부터 여자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도둑이야!”
무송은 그 소리를 듣자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때 마침 수양딸 옥란이 허겁지겁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무 도두님, 도둑이 저기 꽃밭 속으로 숨었어요!”
무송은 즉시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꽃밭 속을 향해 뛰어들었다. 봉을 한 손에 꽉 움켜쥔 채 한 바퀴 휙 둘러보았으나 사람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송은 다른 곳을 찾아보기 위해 얼른 몸을 돌이켰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늘 속에서 의자 한 개가 휙 날아오더니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무송은 그 자리에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꼼짝 마라, 이 도둑놈!”
그 소리와 함께 어느새 군졸 예닐곱 명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무송을 묶었다.
“날세, 이 사람들아! 나야!”
무송이 그렇게 소리쳤으나 군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송을 후당으로 끌고 갔다. 무송이 바라보니 후당에는 어느새 불이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고, 장 도감이 엄한 자세로 대청 위에 앉아 있었다.
“어서 그 도둑놈을 이리 데려오너라!”
장 도감이 명하자 강제로 끌려온 무송은 꽁꽁 묶인 채 소리쳤다.
“접니다! 저 무송입니다!”
무송은 장 도감이 자기임을 알아보면 풀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장 도감은 무송을 보자 버럭 화를 내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이 귀양살이 온 죄수놈아! 네가 원래 도둑의 마음을 가진 건 어쩔 수 없구나. 나는 그래도 너를 어떻게 사람으로 만들어 볼까 해서 가까이 부렸다만 네놈은 어찌하여 나를 거스르고 도둑질을 하였느냐? 천하에 나쁜 놈 같으니라구!”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라 무송이 외쳤다.
“저는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도둑이 들었다기에 도둑을 잡으려고 꽃밭에 뛰어들었을 뿐입니다! 사내대장부로서 어찌 감히 그런 낯뜨거운 짓을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장 도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소리쳤다.
“저놈이 그래도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는구나! 어서 저놈의 거처를 살펴보아라!”
그러자 군졸들은 무송을 끌고 행랑채에 있는 그의 방으로 갔다. 방의 한쪽 구석에 커다란 궤짝 하나가 있었다. 군졸들은 그 궤짝을 열어 젖혔다. 속에는 무송이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받아서 넣어 두었던 금, 은, 비단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궤짝이 열려지고, 그 속의 물건들이 드러나자 무송은 그만 기가 콱 막힌 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꼼짝없이 올가미를 쓰게 될 판이었다.
군졸들은 그 궤짝을 끌어 낸 다음 무송을 이끌고 장 도감에게로 갔다.
장 도감은 그 물건들을 보자 펄펄 뛰며 무송을 꾸짖었다.
“이런 뻔뻔스러운 놈이 있나? 네가 훔친 물건이 네 방에서 나왔는데 이래도 거짓말을 하겠느냐? 옛말에 이르기를 ‘짐승을 기르기는 쉬워도 사람은 기르기 어렵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바로 네놈을 두고 한 말이었구나! 겉만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썼을 뿐 속은 시커먼 도둑의 심보였구나.”
무송을 꾸짖고 난 장 도감은 다시 군졸들에게 명을 내렸다.
“여봐라, 이 장물을 봉해 두고 저놈은 당장 감방에다 처넣어라!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부중(府中)으로 넘겨서 법으로 엄중히 다스리게 할 것이니라!”
그리하여 무송은 꼼짝없이 감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장 도감은 그날 밤 사람을 부중으로 보내서 부윤에게 그 일을 알리는 한편, 압사(押司)공목(孔目) 등 관리들에게는 많은 돈을 나누어 주었다. 무송을 도둑으로 몰기 위함이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무송은 증거물과 함께 즉시 부중으로 넘겨졌다. 부윤이 관아에 나와 높은 자리에 앉자 좌우 집포관찰(緝捕觀察)이 무송과 방 안에 있던 궤짝을 끌어냈다. 그리고 장 도감의 집에서 보낸 증인들이 무송이 도둑임을 고소하는 문서를 바쳤다.
그 문서를 대강 훑어본 지부(知府)는 무송을 앞으로 끌어 내어 형틀에 묶은 다음, 곤장을 들어 빗발치듯 엉덩이를 내리쳤다.
무송은 이제 꼼짝없이 장 도감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곤장이 거듭 내리쳐질수록 참지 못하게 된 무송은 결국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훔쳤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올 일이지! 여봐라, 저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지부는 무송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큰칼을 씌워 죽을 죄를 지은 죄수들이 갇힌 감옥에 가두게 했다.
‘억울하고 분하구나! 장 도감 그놈이 미리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다니! 내가 어떻게든 살아 나가서 이 복수를 꼭 하고야 말리라!’
무송은 감옥에 끌려가면서 그제야 모든 걸 짐작하고 이를 갈았다.
무송이 옥에 갇히자 옥졸이 들어와 두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두 팔마저 묶어 버렸다. 그렇게 되니 무송은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한편, 시은은 무송이 도둑으로 몰려서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황급히 맹주성으로 달려가서 아버지와 그 일을 의논했다.
아들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난 관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장 단련이 장문신의 앙갚음을 하기 위해 장 도감을 끌어들인 게 틀림없다. 즉, 장문신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장 단련이 장 도감을 시켜 무송을 함정에 빠뜨리게 한 것이다. 거기다 장문신이 여기저기 돈을 뿌려 부탁을 해 두었을 테니, 아무도 무송의 말을 들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피건대 고작 물건을 도둑질한 죄에 지나지 않으니 그게 어찌 죽을 죄가 되겠느냐? 양원(兩院)의 압뇌(押牢)와 절급(節級)을 구워삶으면 그를 다른 곳으로 귀양 보낼 수 있을 것이니, 우선 그렇게 일을 꾸민 다음 다시 의논하기로 하자.”
시은이 그 말을 듣자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버님, 마침 그곳 감옥의 절급 중에 강(康)씨 성을 가진 자가 하나 있는데, 저와는 옛날부터 친한 사이입니다. 그자와 의논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다면 마침 잘된 일이다. 무송은 알고 보면 우리 때문에 잡혀간 게 아니냐? 그러니 어서 빨리 손을 쓰도록 해라!”
관영이 그렇게 재촉하자 시은은 즉시 강 절급의 집으로 찾아가 무송의 일을 자세히 들려준 후 방책을 물었다. 그러자 강 절급은 시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즉, 장 도감과 장 단련은 서로 성이 같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의형제를 맺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 쾌활림에서 쫓겨난 장문신은 이곳 맹주 땅을 떠나지 않고 장 단련의 집에 숨어 있으면서 관리들에게 뇌물을 바쳐 무송을 죽여 없애달라고 청하자 장 단련은 장 도감에게 그 일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 도감은 한 가지 계략을 짜냈으니 그것이 바로 무송을 불러들여 도둑으로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이었다.
부중의 부윤에게까지 뇌물을 듬뿍 먹여 놓으니 무송은 독방에 갇힌 채 그들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무송을 우선 옥에 가둔 후 죄를 무겁게 해 소리 없이 없애 버리기로 했는데, 그만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섭(葉)씨 성을 가진 공목(孔目)이었다.
그는 원래 충직한 데다 의를 무겁게 여기는 사람이라 그만한 일로 무송을 죽이려 들지 않았다. 장 도감이 은근히 당부하고 장문신으로 하여금 뇌물을 건네게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따라서 무송은 그 사람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시은은 강 절급에게 감사한 다음, 은자 백 냥을 강제로 떠맡기다시피 하고 영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섭 공목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을 시켜서 은자 백 냥을 보내는 한편, 되도록 하루빨리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부탁했다.
섭 공목은 원래부터 무송이 의기로운 호걸임을 알고 있었다. 장 도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부윤이 무송에게 무거운 판결을 내리게 했으나 듣지 않고 판결을 늦추면서 무송을 살릴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시은으로부터 백 냥의 은자가 전해졌다. 섭 공목은 무송의 무죄를 믿고 있었으므로 즉시 조서를 고쳐 썼다. 그리하여 죄를 가볍게 하는 한편 빠른 시일 안에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문서를 꾸몄다.
다음날 시은은 무송을 면회하여 밖의 사정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옥리들에게도 일일이 은자를 듬뿍 뿌려 무송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는 사이, 미결수를 가두어 둘 수 있는 기간인 60일이 다가오자 섭 공목은 무송을 감옥에서 끌어 내어 즉시 판결을 내렸다.
<죄인 무송은 죄수의 신분인데도 남의 재물을 훔쳤으므로 척장 스무 대를 쳐서 은주 땅 뇌성으로 유배시킨다. 또한 동시에 장물은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준다.>
그리하여 무송은 두 공인과 함께 유배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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