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 여아 가족의 사랑이 부족한 가석춘

一字師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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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여아女兒 가족의 사랑이 부족한 가석춘賈惜春

 

 

가부賈府의 넷째 아가씨 석춘惜春은 어려서 가족의 사랑을 잘 받지 못하여, 그녀에게는 불문佛門이 지극히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춘元春, 영춘迎春, 탐춘探春 세 사람의 언니가 잇달아 집을 떠남에 따라, 석춘도 도피를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석춘은 녕국부寧國府의 가경賈敬의 딸이고 가진賈珍에게는 친동생인데, 가부의 자매 서열로는 넷째가 된다.

 

녕국부는 편벽된 기호를 가진 괴벽한 남성 위주의 세계였는데, 석춘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아버지 가경은 불로장생한다는 연단煉丹(도가道家의 단약丹藥으로 불로장생의 약)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집을 떠나 생활하며 집안일은 듣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오빠 가진은 대단히 후안무치한 사람이어서, 이 때문에 석춘은 녕국부에서 생활하지 않고, 줄곧 영국부榮國府의 가모賈母 신변에서 지내며 자랐던 것이다.

 

금릉십이채 아가씨 모습의 빗-위키백과

별칭이 우향사藕香榭인 가석춘賈惜春홍루몽紅樓夢에서의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에 일곱 번째의 배위排位에 있다.

 

석춘의 외모는 어려 보이고 체격도 작다. 교육은 어려서부터 언니들과 함께 할머니 가모의 거처에서 공부해왔고, 그림에 재능이 있어서 가모는 그녀에게 대관원행락도大觀院行樂圖를 그리라고 말한바 있다. 시사詩詞에 그리 능하지 못한 석춘의 주요작품으로는 문장조화文章造化가 있다.

 

그녀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마음씨나 말씨가 냉혹하여, 일을 처리할 때도 냉담하고 무정하여 여지餘地를 두지 않았다. 결국 석춘은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푸른 등불 밑에서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영국부 안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에도, 석춘도 내내 다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로 취급을 받아 전혀 중시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녕국부의 정실부인의 소생으로 태어난 가부의 아가씨이지만 석춘을 대하는 집안의 태도는 외갓집인 영국부에 얹혀서 살고 있는 임대옥林黛玉이나, 이모인 왕부인王夫人에게 의탁하고 있는 보채寶釵네 식구보다도 못했는데, 서출庶出인 탐춘도 석춘에 비하면 관심과 배려의 눈길을 끌었다.

 

사람의 따뜻함과 사랑은 거의 석춘과는 인연이 없어서, 인간의 온화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한 석춘은 그렇게 점점 냉담해져서 온정으로 남을 대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냉담과 무정은 대체로 석춘의 성격을 개괄하는 가장 전형典型이 되어, 그녀의 올케 우씨조차도 그녀 면전에서 그녀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心冷口冷心狠意狠的人

(마음이 냉랭하고 말도 매몰찬 냉혹하고 잔인한 사람이에요)

 

탐춘은 그녀를 이렇게 말했다.

 

孤介太過,我們再做不過她

(속세의 일에는 잘 관여하지 않으니, 우리 앞으로는 그냥 지나쳐요)

 

대관원大觀院을 수색할 때, 석춘의 시녀 입화入畵의 물건을 뒤졌을 때, 문지기로 있는 그녀의 오빠가 상으로 받은 물건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견되었을 때도, 석춘은 먼저 그녀의 계모 우씨가 엄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무라더니, 이어서 우씨에게 데리고 가라고 하고는, 마지막에는 매몰차게 말했다.

 

或打,或殺,或賣,我一槪不管.”

(때리거나, 죽이든지, 또 팔아버리거나, 나는 전혀 간섭하지 않겠어요)

 

봉저鳳姐가 권고하고 입화가 눈물로 그녀에게 애원해도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또 이렇게 말했다.

 

我只知道保得住我就够,不管你們.”

(나는 오직 나만 보호하면 족하지, 너희는 관계하지 않아)

 

타인에게 배려와 사랑을 받지 못해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일에는 상관하지 않으려는 석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불문佛門이 그녀에게 가장 흡인력을 가지게 된 것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린 비구니 지능智能을 대단히 좋아해서 농담을 한 적도 있다.

 

我明兒也剃了頭,和知能兒做姑子去.”

(나도 이다음에 삭발하고, 지능과 같이 비구니가 될 거야)

 

석춘은 다 자란 뒤에는 또 묘옥妙玉과 비교적 말이 잘 통했다. 가부가 몰락하고, 언니 세 사람의 불행한 결말을 친히 목도하고 나자, 그녀는 더욱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세상을 포기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석춘의 출가出家는 자진해서 원한 선택이고, 또 어찌할 수밖에 없는 도피이기도 한 것이다.

 

홍루몽이야기 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여아女兒 여자 영웅英雄 가탐춘賈探春

 

왕국유王國維홍루몽紅樓夢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탐춘探春을 꼽았다. 그는 그녀가 독립적이고, 자강自强하며, 서방西方이 추구하는 민주적인 형상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탐춘은 지분脂粉을 바른 여인 중의 영웅으로 특별한 풍격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가부賈府에서 셋째 아가씨인 탐춘은 가정賈政의 첩 조이낭趙姨娘의 소생으로, 가환賈環의 친누나이고, 정실부인 왕부인王夫人이 낳은 보옥寶玉과는 이복남매 사이이다. 그녀는 총명하고 유능하고, 계략이 있고, 과단성이 있어서, 가정의 왕부인과 왕희봉王熙鳳조차도 그녀에게는 얼마간 양보할 정도였다.

 

홍루紅樓의 아가씨 가탐춘賈探春은 별칭이 매괴화玫瑰花(장미꽃), 초하객蕉下客이고,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의 세 번째 배위排位에 있다. 깎은 듯 갸름한 어깨와 가는 허리의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는 계란같이 타원형 얼굴에, 준수한 눈에는 정기가 넘치고, 눈썹도 아름답다.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서, 그녀의 글을 보면 속된 생각을 잊게 한다. 어려서부터 자매들과 함께 할머니 가모賈母의 거처에서 공부했는데, 시문詩文을 잘 짓고, 서예를 매우 좋아한다. 소설에 나오는 주요작품으로는 초보옥결시사첩招寶玉結詩社帖, 영백해당咏白海棠, 잠국簪菊, 잔국殘菊등이 있다.

 

탐춘은 분명한 것을 좋아하고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며, 자신의 모든 예기銳氣와 재주를 모두 드러내 보인다. 안목이 원대한 그녀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용감하게 책임도 지는데, 자기의 존엄을 보호하려고 하고, 자신이 조이낭趙姨娘이 낳은 자식인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한다. 탐춘의 명운命運은 진해총제鎭海總制의 아들에게 시집가서, 골육들과 헤어진다.

 

탐춘은 추상재秋爽齋에 거주했는데, 밝은 것을 좋아하여 방에 가로막아 놓지 않았다. 벽에는 미양양米襄陽연우도烟雨圖가 가운데 걸려 있고, 좌우에는 안진경顔眞卿의 글씨가 걸려 있는데, 글자체가 단정하고 장중하고 짙고 중후하며, 힘이 있고 웅건하다.

 

바닥에는 화려한 대리석의 큰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각종 명인名人의 법첩法帖(체법體法이 될 만한 명필의 서첩書帖)이 쌓여 있고, 채색 붓통과 벼루가 놓여 있고, 붓통 속에는 붓이 수목樹木처럼 꽂혀 있는데, 이것은 탐춘이 지분脂粉을 바르는 여인네 기질을 경시하는 여장부인 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자단가紫檀架 위에는 큰 관요觀窯의 반이 놓여 있는데, 안에는 연노랑색의 불수감 열매가 소복하게 담겨 있다, 방 전체에 일종의 광대하고 호방한 기운이 가득하여, 남자의 풍격과 대장부의 기풍을 풍기고 있다.

 

탐춘은 첩의 지위에 있는 생모 조이낭에게 대단히 불효하고 냉랭하게 대하고, 나쁜 일을 일삼는 친동생 가환에게는 더욱 아무런 정이 없었다. 한 번은 탐춘이 한가한 틈을 타서 보옥寶玉에게 신반 한 켤레를 만들어 주었다. 조이낭이 그 일을 알고 탐춘을 원망하자, 탐춘은 화를 냈다.

 

正經兄弟,鞋搭拉,袜搭拉的,沒人看的見.”

(진짜 형제는 신발도 찢어지고, 버선도 떨어진 것을 신어도, 봐주는 사람이 없구나)

 

怎麽我是該做鞋的人麽?”

(내가 무슨 신발을 만드는 사람인가?)

 

또 한 번은, 봉저鳳姐가 아기를 유산해서 집안일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음이 조급하여 잠시 이환李紈과 탐춘을 대신 맡아서 처리하고, 옆에서 보채寶釵가 도와주도록 했다.

 

탐춘은 집안일에 권리를 행하는 기간에 공정하게 집안 규정을 집행했는데, 자기 생모 조이낭에게 먼저 손을 대서, 신속하게 집안 전체에 위신威信을 수립했다. 탐춘은 또 가부賈府의 가세가 나날이 쇠미해지고 있는 것을 감지하고, 대담하게 이로운 것은 더 일으켜서 폐단을 제거하자는 주장을 제기하며, 가부의 새로운 수입이 될 만한 출처를 찾아냈다.

 

왕선보王善保댁 등이 왕부인을 선동하여, 대관원大觀院을 대대적으로 수색을 시작했을 때, 탐춘의 거처 추상재秋爽齋를 수색하러 오자, 탐춘은 이렇게 말했다.

 

我的東西倒許你們搜閱,要想搜我的丫頭,這却不能.”

(내 물건은 너희가 수색하여 봐도 되지만, 내 시녀의 것을 수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하는 왕선보댁이 탐춘 앞으로 와서 짐짓 옷을 뒤지는 척하자, 탐춘은 곧장 그녀의 따귀를 때리며 욕을 했다.

 

你是什麽東西,敢來拉扯我的衣裳!”

(네가 뭐 길래, 감히 내 의상을 끌어당기느냐!)

 

그렇게 욕을 하고는, 그 자리에서 치마를 벗어서 봉저鳳姐를 잡아당기며 뒤져보라고 하자, 이에 놀란 왕선보댁은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

 

예리한 탐춘은 벌써부터 가부가 머지않아 쇠락해질 것을 감지했는데, 그리하여 그녀는 집안이 먼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철저히 실패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말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百足之蟲,死而不僵’,須得先從家里自殺自滅起來,才能一敗塗地.”

(많은 발을 가진 지네는 죽어도 금방 뻣뻣해지지 않는데, 반드시 먼저 집안에서부터 자멸이 일어나게 되고, 철저히 실패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되지요)

 

즉 권세가 있던 사람이나 집안은 몰락하여도 여전히 실력이나 영향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녀는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세상을 구제할 재간과 원대한 포부를 아무 것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큰 힘을 들여 위험한 국면을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

 

주령酒令 놀이를 할 때, 탐춘이 뽑은 행화杏花 화첨花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得此籤者必得貴婿

(이 첨자籤者를 득한 사람은 반드시 귀한 남편을 얻는다)

 

과연, 홍루몽紅樓夢40속서續書에는, 탐춘은 마지막에 해문海門을 수비하는 총제總制 주경周琼의 아들에게 시집가게 되어, 곧 붕괴될 이 대가족을 멀리 떠난다.

 

탐춘探春의 제안으로 시사회詩社會를 결성하다

소설 홍루몽紅樓夢37회에는 秋爽齋偶結海棠社추상재우결해당사(추상재에서 우연히 해당사海棠社를 결성하다)라고 소제목을 달았다.

 

보옥寶玉은 탐춘에게서 화전花箋(무늬 있는 편지지)를 받자, 서둘러서 탐춘이 거주하는 추상재秋爽齋로 서둘러서 갔다. 추상재에 도착하니, 보채寶釵, 대옥黛玉, 영춘迎春, 석춘惜春은 이미 모두 와 있었다. 이환李紈이 문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자신이 회장을 맡겠다고 나서자, 대옥이 말했다.

 

旣然要起詩社,咱們就要先把這些姐妹叔嫂的字樣改了才不俗.”

(기왕에 시모임을 만든다고 하니, 우리는 자매들과 시동생과 형수들의 자를 먼저 바꿔드려야 속되지 않을 거예요)

 

대옥의 제안에 모두가 찬성하자, 이환부터 자기는 도향노농稻香老農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탐춘이 자기는 추상거사秋爽居士라고 부르라고 하자, 보옥은 쓸데없이 덧붙인 것이어서 마땅치 않다고 해서, 탐춘은 또 초하객蕉下客을 생각해냈다. 그러자 대옥은 웃으면서 그녀를 포를 떠서 술에 넣으라고 말했는데, 모두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니까, 대옥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古人曾說蕉葉覆鹿’,她自稱蕉下客’,可不是一只鹿了?”

(옛날에 蕉葉覆鹿초엽복록’(파초 잎으로 사슴을 가리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녀가 자칭 초하객이라고 하니 사슴이 아니겠어요?)

 

대옥의 말을 듣고 그때서야 모두 웃었다. 그리고 탐춘은 대옥에게 소상비자瀟湘妃子라는 아호雅號를 지어주었다.

 

當日蛾黃,女英酒泪在竹上成斑,所以斑竹又名湘妃竹.如今她住的是瀟湘館,又愛哭,以後都叫她作瀟湘妃子就完了.”

(예전에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눈물을 흘린 것이 대나무 위에 떨어져 반점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반죽은 또 상비죽湘妃竹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지금 대옥 언니가 사는 집이 소상관瀟湘館이고, 또 잘 울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그녀를 소상비자라고 부르면 되겠어요)

 

탐춘의 말을 듣고 모두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이환은 또 보채寶釵를 위해서 아호雅號형무군蘅蕪君으로 지어주었다. 보옥이 모두에게 자기를 위해서 아호를 생각해 달라고 하자, 일부러 골려주려고, 예전부터 있었던 별호 무사망無事忙이 딱 맞겠다고 놀렸다.

 

이환은 옛날의 별호 강동화주絳洞花主가 더 낫겠다고 하고, 보채는 또 보옥에게 부귀한인富貴閑人으로 부르라고 해서, 보옥은 할 수 없이 여럿이 부르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이환이 영춘과 석춘에게는 어떤 아호를 짓는 것이 좋겠느냐고 묻자, 보채는 이렇게 제안했다.

 

迎春住的是紫菱洲,就叫她紫菱’;四丫頭在藕香榭,就叫她藕榭.”

(영춘은 자릉주紫菱洲에 사니까, ‘릉주菱洲라고 하고, 넷째 아가씨 석춘은 우향사藕香榭에 있으니 우사藕榭로 해요)

 

이렇게 사람들의 아호를 모두 잘 지은 뒤에 모두 백해당白海棠을 제목으로 하여, 즉시 시 모임을 열었다. 시사詩社도 이 때문에 해당사海棠社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홍루몽이야기 불고전후不顧前後(전후를 돌아보지 않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不是說句不顧前後的話,當初東府里太爺倒是修煉了十畿年,也沒有成了仙.這不是更難成的. (第一百二十回)

 

[해석문]

앞뒤를 살피지 않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부의 대감님께서는 십년도 넘게 수련하셨지만, 신선이 되시지 못하셨잖소. 부처가 된다는 것은 신선이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오. (120)

 

[명언고사]

설반薛蟠이 가부賈府에 인사를 하러오면서, 설이마薛姨媽와 보채寶釵도 함께 건너 왔다.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때마침 가정賈政이 보낸 사람이 와서 서신을 올리며 말했다.

 

老爺不日到了.”

(대감마님께서 며칠 안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왕부인王夫人은 가란賈蘭을 불러 서신을 사람들에게 읽어주어 듣게 하라고 했다. 가란은 편지를 읽어 가정이 직접 보옥을 만난 대목에 이르자, 사람들은 다 통곡하며 울었는데, 왕부인, 보채, 습인襲人은 특히 더욱 심하게 울었다. 모두 또 가정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不必悲傷,原是借胎.”

(슬퍼하지 마시오. 보옥은 원래 태를 빌려 태어난데 불과했던 것이오)

 

與其作了官,倘或命運不好,犯了事壞家敗産,那時倒不好了.寧可咱們家出一位佛爺,倒是老爺,太太的積德,所以才投到咱們家來.說句毫不顧忌的話,當初東府里太爺倒是修煉了十畿年,也沒有成了仙.這佛是更難成的.太太這麽一想,心理便開朗了.”

(벼슬을 했다가 운이 좋지 않으면 잘못을 범하여 패가망신하고 재산을 다 말리면, 오히려 더 안 좋은 것이오. 차라리 우리 집안에서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 도리어 낫지 않겠소. 그동안 대감님과 부인이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집안에 그런 일이 찾아들게 된 것일 게요. 앞뒤를 살피지 않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부의 대감님께서는 십년도 넘게 수련하셨지만, 신선이 되시지 못하셨잖소. 부처가 된다는 것은 신선이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부인의 마음이 좀 편해질 것이오)

 

왕부인이 울면서 설이마에게 말했다.

 

寶玉抛了我,我還恨他呢.我嘆的是媳婦的命苦,才成了一兩年親,怎麽他就硬着脹子都撂下了走了呢!”

(보옥이가 나를 버린 것을 난 이제는 원망할 것도 없어. 내가 한탄하는 것은 며느리의 신세가 처량해져서야. 혼인한 지 겨우 일이년 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모진 마음으로 다 버리고 떠날 수 있느냐 말야!)

 

그 말을 들은 설이마는 더욱더 가슴이 쥐어짜는 듯 아팠고, 보채는 통곡하다 못해 인사불성이 되었다.

 

홍루몽이야기 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紅樓 여아女兒 이목두二木頭가영춘賈迎春

 

가영춘은賈迎春은 부친 가사賈赦의 첩이 낳은 딸로, 가련賈璉의 이복여동생이고, 가부賈府의 여러 아가씨 중에서는 둘째이다. 그녀의 별칭은 자릉주紫菱洲, 작호綽號는 이목두綽號二木頭인데,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 예언시의 열두 여인들의 배위排位는 제 여섯 번째로 나오는데, 험악하게 생긴 이리 한 마리가 아름다운 여인에게 달려들어 잡아먹으려는 형상이 그려져 있다.

 

子係中山狼자계중산랑 (너는 중산의 이리 같은 자인데)

得志便猖광득지변창광 (뜻을 이루니 곧 미쳐 날뛰는구나)

金閨花柳質금규화류질 (명문가의 규수로 꽃과 버들 같으니)

一載赴黃粱일재부황량 (일 년 만에 황천길로 가고 말았네)

 

그녀의 외모는 피부가 약간 풍만하고, 중간 정도의 키에, 얼굴색은 방금 피어난 여지荔枝(붉은 색이 나는 과일) 같고, 매끈한 콧날에 연지를 바른 얼굴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돌고, 말없이 조용하여 친근미를 준다. 교육은 어려서 가부의 아가씨들과 함께 가모賈母의 거처에서 공부했는데, 재능이 평범한 영춘은 언제나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읽는 것을 좋아했다.

 

태상감응편은 도교道敎의 선서善書(선을 행할 것을 권하는 책), 책이 만들어진 연대는 분명치 않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의 어조로 천인감응天人感應을 선양宣揚하여, 악행을 억누르고 선을 널리 알려 선교宣敎했다. 내용에는 선악善惡의 조문條文을 상세하게 열거했는데, 모두 26 가지의 선한 일과 악한 일 170 가지가 있다. 홍루몽속에서 그녀가 지은 작품으로는 광성이정曠性怡情이 있다.

 

영춘의 성격적 특징은 온유하고 말이 없으며, 성실하지만 유약하다. 또 그녀는 세상만사에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며, 오로지 인내하며 양보한다. 나약한 아가씨 영춘은 집안일에 대해 일률적으로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남에게 묻지도 않았다. 매번 하인이 문제를 일으키고 고집을 부리며 양보하지 않을 때면, 그녀는 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책을 꺼내 읽으며 막아내는 자세를 취했다.

 

영춘의 부친 가사는 황음무치한 사람으로 함부로 세도를 부리는 사람으로 유명하고, 양모 형부인은 박정하고 야박하여, 아예 이 딸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녀에 대한 모성애가 전혀 없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영국부榮國府의 귀한 아가씨이나 생모를 일찍 여윈 영춘의 이런 가정환경은 그녀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순종하며 참고 양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형부인은 그녀를 야무지지 못하고 무능하게여겨 자주 꾸짖었다.

 

如今你娘死了,從前看來,你兩个的娘,只有你娘比如今趙姨娘强十培的.你該比探丫頭强才是,怎麽反不及他一半!”

(지금 네 엄마는 죽었지만, 예전의 네 두 엄마를 비교해보면, 네 엄마가 조이낭趙姨娘보다도 10 배는 강했으니, 너도 탐춘探春보다는 강해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그 아이의 반도 못 따라가는 거냐?)

 

또 집안의 하인들은 안 보는 데서는 그녀를 이목두二木頭라고 부르며, 침으로 찔러도 아야소리도 낼 줄 모른다고 말했다. 영춘은 자신의 금실봉황비녀를 하인이 몰래 임시변통하여 노름밑천으로 하려고 가져갔을 때도, 그녀는 따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녀를 위해서 되찾아오려고 해도, 그녀는 그만두라고 말했다.

 

,,,省些事罷.寧可沒有了,又何必生氣!”

(그만둬라, 그만둬. 공연한 일 만들지 말고,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굳이 말썽을 일으킬 필요가 있겠어!”)

 

대관원大觀院을 수색할 때, 영춘의 시녀 사기司棋죄증罪證이 색출되어 쫓겨나게 되었는데, 사기는 백방으로 영춘에게 자기를 위해 말해주기를 애원했지만, 영춘은 비록 속으로는 시녀 사기에게 미련이 남았지만, 어찌해보지를 못했다.

 

自然不止你一个,想這園子凡大的都要去呢.依我說,將來終有一散,不如去吧.”

(응당 너 하나로는 그치지 않을 것이고, 이 큰 대관원을 거의 다 잃게 될게야. 내가 보기에는 장래에 결국은 다 흩어질 것이니, 차라리 가는 게 낫다!)

 

영춘은 다른 방면에도 비교적 평범했다. 원소절에 가비賈妃 원춘元春이 궁중에서 등미燈謎(음력 정월 보름이나 중추절 밤에 초롱에 수수께끼의 문답을 써넣는 놀이)를 보내와 모두에게 수수께끼를 맞춰보게 했을 때, 모두 정답을 맞추었지만, 오직 영춘과 가환賈環만 답이 틀렸다. 할멈이 두 번째로 가부를 방문하여 대관원에 들어 왔을 때에, 사람들과 함께 아패령牙牌令 놀이를 했는데, 영춘은 고작 한 구를 짓고는 바로 운이 틀리고 말았다.

 

영춘의 부친 가사는 손씨 집에 빚진 5,000 량을 갚지 못하여, 영춘을 손소조孫紹祖에게 저채抵債(채무를 다른 물건이나 노동력으로 상환하다)를 대신하여 시집을 보내려고 했는데, 가부賈府의 상하上下 사람 모두가 일찍이 손소조가 잔학하고 불초不肖하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을 대면한 영춘은 그래도 부모의 결정에 복종하여, 결혼해서 인내하며 자기의 청춘을 상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혼인한 지 1년 남짓한 동안에 영춘은 줄곧 남편 소노조에게 학대를 받다가 죽고 말았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백리도일百里挑一(백에서 하나를 고르다/매우 출중하다/ 매우 드믈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본문]

王夫人問畿句話,花自芳的女人將親戚作媒,說的是城南蔣家的,現在有房有地,又有鋪面,姑爺年紀略大畿歲,幷沒有娶過的,况且人物兒長的是百里挑一的. (第一百二十回)

 

[해석문]

왕부인王夫人이 몇 마디 묻자, 화자방花自芳의 아내는 성남쪽에 있는 장씨네에게 친척이 중매를 섰는데, 현재 집도 있고 전답도 있으며, 또 점포도 있는데, 신랑 될 사람이 나이는 비록 몇 살 더 많지만, 이전에 결혼한 적도 없는 사람이고, 생김새는 백 명 중에서 뽑힐 정도로 출중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120)

 

[명언고사]

보옥寶玉이 출가出家한 뒤, 왕부인王夫人은 습인襲人을 시집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화자방花自芳의 아내를 내세워서 그녀의 친척에게 중매를 서게 했는데, 남쪽의 장씨네에게 혼담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집도 있고 전답도 있으며, 또 점포도 있는데, 나이는 비록 몇 살 더 먹었지만, 이전에 결혼한 적도 없는 사람이고, 인물은 백 명의 사람 중에서 뽑힐만한 생김새라고 말했다. 왕부인은 그러한 사실을 듣고, 화자방댁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가서 승낙한다고 하고, 며칠 뒤에 다시 와서 습인을 데려가게나.”

 

또 사람을 시켜서 사방으로 알아보았더니, 그 집안이 괜찮은 게 틀림없다고 해서, 왕부인은 이 사정을 보채寶釵에게 얘기하고, 또 설이마薛姨媽를 만나서 습인에게 상세히 얘기해주라고 부탁했다.

 

습인은 그 말을 듣고 한없이 슬펐지만, 또 감히 마님인 왕부인의 말을 거역하지도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보옥이 그녀의 집을 찾아왔던 일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일을 떠올리며, 울면서 말했다.

 

마님께서 이렇게 주장하시는데, 만약 제가 반드시 보옥 도련님을 위해서 수절하겠다고 하는 것은 명분이 없는 것이고, 또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조소할 것인데, 만약에 시집을 가더라도, 이것은 정말로 제가 마음으로부터 원한 것은 아닙니다.”

 

설이마와 보채 등이 간곡하게 타일러서야, 습인은 할 수 없이 시집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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