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 여아궁중 내전에서 적막하게 지낸 현덕비賢德妃 가원춘賈元春
『홍루몽紅樓몽』 중에서, 가부賈府 안에서 지위가 가장 높은 인물은 가모賈母가 아니고, 서술한 내용이 많지 않은 큰 아가씨 --- 가원춘賈元春이다. 소설에서는 재능과 덕을 겸비한 그녀는 여사女士로 선발되어 입궁한 뒤에 봉조궁상서鳳藻宮尙書로 승진했다가, 나중에 또 현덕비賢德妃에 봉해진 인물로 나온다.
가원춘은 별칭이 귀비貴妃마마이고, 그 배위排位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에 판사判詞가 두 번째로 나오는데, 활(弓) 하나를 그려놓고, 그 활 위에 향연香櫞(레몬)이 걸려 있는 그림이 있다.
二十年來辨是非이십년래변시비 (이십 년을 고이 잘 자라서)
榴花開處照宮闈류화개처조궁위 (석류꽃이 궁중에 피어 있구나)
三春爭及初春景삼춘쟁급춘경 (삼춘이 초봄의 정경을 따르랴마는)
虎兎相逢大夢歸호토상봉대몽귀 (호랑이 토끼가 서로 만나니 큰 꿈이 지고 말았네)
가원춘은 별칭이 귀비貴妃마마이고, 그 배위排位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 두 번째이다. 그녀의 외모에 관해서는 소설 중에 표현된 바가 없으나, 어려서부터 재능이 출중한 그녀는 할머니 가모賈母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주요작품으로는 『제대관원정전액대題大觀院正殿額對』과 『제대관원題大觀院』이 있다.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재능과 덕을 지닌 그녀는 비록 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떠벌리지 않았다. 그리고 늘 가족을 염려하고 그리워했는데, 특별하게 보옥을 아꼈다. 그러나 그녀의 명운命運은 마치 칸나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가, 병으로 그만 요절하고 만다
그녀로 인해서 가부는 황제의 국척國戚(제왕의 외척으로, 주로 후后·비妃의 가족을 가리킴)이 되어서, 진정으로 “白玉爲堂金做馬”백옥위당금주마(백옥으로 집을 짓고 금으로 말을 장식하다)라고 말하는 명문귀족이 된 것이다. 가원춘이 봉조궁鳳藻宮으로 발탁되었을 때, 말하자면 가씨 집안의 가세는 불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더욱 흥성해졌고, 비단으로 감싼 신선한 꽃처럼 가장 왕성한 시기였다.
가원춘은 가정賈政과 왕부인王夫人의 장녀長女로, 가보옥賈寶玉의 친 누나인데, 그녀가 음력 정월 초하루 날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이름을 원춘元春이라고 지었다. 남동생 보옥寶玉과는 연령 차이가 현저하게 큰 누나이지만, 원춘은 보옥이 서너 살이 되었을 때부터 곧 그에게 글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원춘과 보옥은 비록 누나와 남동생의 관계이나, 실제로는 모자母子의 정情을 가졌다.
현덕비 원춘의 성친省親
『홍루몽紅樓夢』 제 16회에서, 가부賈府의 장녀 원춘元春은 황궁에 들어간 뒤에, 봉조궁상서鳳藻宮尙書에 봉해지고, 현덕비賢德妃에도 봉해진 그녀는 황제로부터 친정에 가서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는 성친省親을 허락을 받는다.
『홍루몽』의 16, 17, 18 회는 모두 원춘이 친정에 돌아가 성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원소절元宵節인 그날에 어슴푸레 날이 밝아 오고五鼓를 쳤을 때, 가모는 영국부와 녕국부의 상하上下 사람 모두를 데리고, 일찍부터 대문大門 입구에서 성친 하러오는 어가 행렬을 맞으려고 기다린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이 되어 등불을 켤 때까지 시간을 끌더니,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열 몇 쌍의 태감이 서로 마주서서 시립하고, 멀리서 은은하게 북소리가 들리며, 8 명의 태감이 굽은 자루에 봉황 일곱 마리를 새긴 황금우산을 받쳐 들고 천천히 줄을 지어 왔다. 현덕비의 가마가 도착한 것인데, 가모는 즉각 사람들을 인솔하여 전부 무릎을 꿇었다.
『홍루몽』은 현란하게 부귀영화를 보여주려는 책은 아닌데, 아마도 작자는 부귀영화의 배후에 황당무계한 쓰라림을 전달하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 18 회에서, 원춘이 가례家禮를 행하려고, 자신의 조모, 모친에게 무릎을 꿇고 절하려고 했으나 모두 저지당한다. 그녀는 집안 식구와는 더 이상은 “부녀父女”, “모녀母女”, “조부모와 손녀”의 관계가 아니고, “군신君臣”이었던 것이다.
가족을 만난 원춘은 첫 마디를 미처 다 말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當日旣送我到那不得見人的去處.......”
(그때 저는 사람을 만나볼 수도 없는 곳으로 보내졌지.......)
『홍루몽』의 작자 조설근曹雪芹은 “귀비마마”를 낸 이런 눈부신 집안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유하고 화려한 겉치장의 이면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한 아가씨가 이처럼 부귀해졌으나 청춘을 상실하여, 그 배후에는 서민은 다 누리는 부모 자식의 천륜을 향유할 방법이 없어 마음아파 하는 거대한 비극을 보여주었다.
가부는 귀비貴妃마마가 친정에 와서 부모를 문안하는 성친成親 행차를 영접하기 위해서, 특별히 막대한 돈을 들여 성친 별장을 건축했다. 이 호화로운 별장의 아름다움은 귀비 본인조차도 너무 지나치게 사치하고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원춘은 정월 보름날 술시戌時 초에 궁에서 출발하여 영국부榮國府에 도착해서, 축시丑時 삼각三刻에 순행을 마치고 돌아갔는데, 가씨 집안에는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 머물렀을 뿐이다. 가족을 만나는 동안에 원춘은 가족 앞에서 울면서 말했다.
“田舍之家,雖齏鹽布帛,終能聚天倫之樂;今雖富貴已極,骨肉各方,然終無意趣!”
(시골의 농사꾼 집안에서는 비록 소금에 절인 채소를 먹고 거칠게 짠 옷을 입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모 자식의 천륜을 누릴 수 있는 낙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부귀를 마음껏 누리고는 있지만, 골육지간은 각각 지내야하니, 결국은 아무런 낙이 없네요!)
성친을 마치고 떠날 때가 되자, 그녀는 또 당부의 말을 했다.
“以後不可太奢,此皆過分之極”
(다음에 또 오게 될 때는, 이렇게 사치하고 화려하게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 성친을 온 뒤로 원춘은 다시는 출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홍루몽』 80 회의 뒤를 이어서, 고악高鶚이 『홍루몽』 후後40회回 속서續書를 써서 완성시켰는데, 그 중에 원춘을 문병하는 장면이 있다. 원춘이 병이 났을 때, 궁중에서는 가부에 입궁하여 문병을 하라는 통고를 받고, 가모, 가사賈赦, 가정 등이 입궐한다.
가모 등 여자식구들이 가비賈妃의 침궁에 이르러, 침상 앞에서 문안을 여쭙자, 가비는 가모와 여러 자매들의 안부를 물은 뒤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탄식했다.
“父女弟兄,反不如小家子得以常常親近.”
(부모형제이지만, 오히려 늘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가난한 집보다도 못하네요)
가부에서는 원춘의 병이 다 낫자, 안심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교지를 받들어 가모, 왕부인 등이 궁에 들어갔을 때는, 귀비 원춘은 가래에 목이 막혀 침을 흘리며 이미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가족을 본 그녀는 그저 슬픈 얼굴로 눈물만 흘렸다.
얼마 뒤에 어린 태감이 가부에 와서 “가비賈妃마마께서 훙서薨逝하셨습니다”라고 원춘의 죽음을 전했는데, 그 날은 바로 갑인년甲寅年 12월 19일이었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수성정과修成正果(정과를 완성하다(불교)/깨달음을 얻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探春道:“大凡一个人不可有奇處.二哥哥生來帶塊玉來,都道是好事,這麽說起來,都是有了這塊玉的不好.若是再有畿天不見,我不是太太生氣,就有些原故了,只好譬如沒有生這位哥哥罷了.果然有來頭,成了正果,也是太太畿輩子的修積.”(第一百一十九回)
[해석문]
“대체로 사람은 남다른 기이한 데가 있으면, 좋지는 않지요. 둘째 오라버니가 태어날 때부터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났다고, 모두들 상서로운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말하자면, 그 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에 며칠을 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머니의 화를 돋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이니, 하는 수 없이 아예 오라버니를 안 낳은 셈 치시지요. 정말로 그럴만한 내력이 있어서 깨달음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어머니께서 몇 대에 걸쳐 쌓으신 공덕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제 119회)
[명언고사]
보옥寶玉과 가란賈蘭은 집안 식구에게 인사를 하고 과거시험에 참가했다. 시험장을 나올 날이 되었는데, 단지 가란 혼자만 집으로 돌아와, 울면서 보옥이 행방불명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석춘惜春이 위로한답시고 왕부인王夫人에게 “어떻게 다 큰 어른이 실종될 수 있겠어요. 아마도 세상살이를 파기하고 불문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정말로 그렇다면 오라버니를 찾기 어렵겠네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부인 등은 또 다시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이환李紈이 “옛날부터 성불成佛하거나 신선이 되는 사람은 정말로 작위爵位나 부귀를 모두 버리는 사람이 허다했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왕부인은 울면서 “그 애가 만약 부모를 버렸다면, 정말로 불효하는 것인데, 어떻게 성불하여 부처가 되거나 신선이 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자, 탐춘이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사람은 남다른 기이한 데가 있으면, 좋지는 않지요. 둘째 오라버니가 태어날 때부터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났다고, 모두들 상서로운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말하자면, 그 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만약에 며칠을 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머니의 화를 돋우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이니, 하는 수 없이 아예 오라버니를 안 낳은 셈 치시지요. 정말로 그럴만한 내력이 있어서 깨달음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것 역시 어머니께서 몇 대에 걸쳐 쌓으신 공덕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보채寶釵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있었지만, 습인襲人은 전혀 참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홍루몽이야기
골육이 물로 만들어진 홍루 여아 철완낭자鐵腕娘子 왕희봉王熙鳳
왕희봉王熙鳳은 권모술수에 정통하고 강경하게 관리를 잘하는 철완낭자鐵腕娘子(낭자는 아내, 처녀 또는 중년부인의 존칭)으로, 그녀는 수백 명이나 되는 가부賈府에 군림하여 집안일을 관리하고, 또 그 권세를 이용하여 재물을 수탈하고 사취하여 부를 축적했다. 또 계책을 짜는데 힘을 써서, 그녀는 온갖 계략을 지나치게 썼기 때문에, 오히려 그 반대로 자기가 죽게 되는 결말을 초래하고 만다.
왕희봉은 아명이 봉가아鳳哥兒이고, 별명은 봉랄자鳳辣子이다. 그녀는 사대가족四大家族 중의 하나인 “금릉왕金陵王” 가문 출신으로, 영국부榮國府 왕부인王夫人의 조카딸이고, 가련賈璉의 정실부인이다. 그녀는 왕부인을 대신하여 집안일을 처리했는데, 영국부의 살림을 관리하는 “관가管家” 마님으로, 소설에서는 그녀를 봉저鳳姐라고 부른다.
녕국부寧國府에서 며느리 진가경秦可卿의 장례를 치를 때, 안팎의 일을 잘 처리할 사람이 없자,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어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가진賈珍은 영국부에 있는 봉저에게 부탁을 했다. 그 결과는 봉저가 가서 일을 맡자마자, 곧 일체의 사무事務를 빈틈이 전혀 없이 완벽하게 요리한다.
가서賈瑞가 봉저에게 애정을 표시했을 때도, 봉저는 서두르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고 그를 보내고 나서, 치밀하게 “상사국相思局”(남녀가 서로 사모하는 계략)을 계획하여, 먼저 가서를 올가미에 걸려들게 만들고, 그 다음에 또 그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다.
또 철함사鐵檻寺에서는 왕희봉은 권력으로 농간을 부렸는데, 3,000 량의 은자를 자신의 손에 넣기 위해서, 장금가張金哥와 장안수비長安守備의 아들을 압박했는데, 그 때문에 그 한 쌍의 연인은 모두 자살하고 만다.
시아버지 가사賈赦가 노마님 가모賈母의 큰 시녀 원앙鴛鴦에게 반하여, 시어머니 형부인邢夫人이 그녀를 찾아와 의논했을 때, 봉저는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노마님을 노하게 할 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녀는 말리지 않고, 게다가 자신은 멀리 다른 곳에 피해 있으면서 조용히 사태事態가 격하게 되는 것을 관망한다.
집안에서 여는 모임에서는 봉저는 언제나 분위기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영국부에서 정월 대보름날인 원소절原宵節 밤에 연회를 열었을 때, 봉저는 노마님을 웃겨서 재미있게 하드리기 위해서 설서設書(송대宋代 이래의 통속 문예의 하나인데, 옛날에는 ‘강사講史’라고도 했으며, 창昌과 대사를 사용하여 ‘삼국연의三國演義’, ‘수호전水滸傳’ 따위의 시대물·역사물을 이야기함)을 하는 사람의 어조를 흉내 내어, 친히 노마님에게 『변황기辨謊記』를 읊어서,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껏 웃게 만들어드린다.
남편 가련의 외도에 대해서는, 그녀는 각종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일인 바로 그날 가련과 포이鮑二댁의 간통을 알게 되자, 대성통곡하며 한 바탕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치욕을 느낀 포이댁은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만다.
또 가련이 집밖에다 몰래 우이저尤二姐를 첩으로 취한 사실을 알게 된 봉저는 서둘러서 결판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먼저 기뻐하는 얼굴빛으로 우이저를 가부로 맞아들인 다음에, 천천히 그녀를 괴롭히고 학대하여, 결국은 뱃속에 아기를 임신한 우이저를 계략으로 공략하여, 우이저는 금金을 삼키고 자살하는데, 봉저는 그렇게 그녀의 목적을 달성한다.
후後40회回 중에서, 왕희봉은 교묘하게 “조포계調包計”(가짜를 진짜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살짝 바꾸는 계략)을 사용하여 가보옥賈寶玉을 재촉하여 순조롭게 설보채薛寶釵와 결혼예식을 마치도록 한다.
그러나 병이 위중해진 그녀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지쳐서,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스스로 깊이 후회하다가, 마침내 일순간에 최후를 마쳐 황천길로 간다.
홍루紅樓의 여인 왕희봉王熙鳳의 배위排位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에 여덟 번째로 판사判詞가 나오는데, 온통 얼음으로 된 산이 그려져 있고, 거기에 봉황새 한 마리가 있다.
凡鳥偏從末世來범조편종말세래 (어찌 봉황새가 말세에 왔는지)
都知愛慕此生才도지애모차생재 (모두가 그 재주를 알고 사랑했다네)
一從二令三人木일종이령삼인목 (따르라고 누르더니 결국은 내쳐져서)
哭向金陵事更哀곡향금릉사경애 (울면서 금릉으로 떠나니 슬프도다)
용모가 아름다운 왕희봉의 생김새는 “붉고 삼각진 봉황같이 생긴 한 쌍의 눈에, 두 눈썹은 버들잎 모양으로 곱고, 몸매는 호리호리하고 체격은 날렵하며, 분바른 얼굴은 봄을 머금었으나 드러나지는 않고, 붉은 입술은 열리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먼저 들리는 듯하다.
그녀의 성격적 특징은 호쾌하나 성질이 사나운데, 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는 방법으로 처세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교활하며, 마음씨가 잔인하다. 행위의 특징은 권세 있는 자에게 나아가 아부하며 빌붙고, 윗사람에게는 영합하여 알랑거리기를 잘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고 마음이 모질었다. 그녀의 운명은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다 지쳐서 죽게 된다.
누구에게나 두루 곱게 보이도록 처세하는 왕희봉
가모賈母: 노조종老祖宗이라 부르며, 바둑의 행마법으로 농담하여 즐겁게 해드리다
보옥寶玉: 소조종小祖宗으로 생각하여, 더욱 아껴주다
왕부인王夫人: 권리를 쥔 사람으로 대하다
가정賈政: 성실하게 복종하다
가사賈赦: 시아버지의 예로 대하다
형부인邢夫人: 앞에서는 받드는 체하나, 뒤로는 명령을 어기다
가련賈璉: 남편인데, 위세로 압도하다
우씨尤氏: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지만, 또한 경시하는 태도로 대하지는 않다
이환李紈: 동서(妯娌축리, 형제의 아내끼리 서로 부르는 호칭)로 대하다
보채寶釵: 가능한 한 만족하게 대하다
대옥黛玉 등의 아가씨들: 어린 아가씨로 대하다
조이랑趙姨娘: 가정賈政의 첩인데, 멸시하며 훈계하다
가환賈環: 만인萬人이 싫어하다
봉저鳳姐의 “일계해삼현日計害三賢”의 계획
1. 우이저尤二姐를 듣기 좋은 말로 속여 가부로 들어와 살게 하다
2. 우이저 신변에 있는 심복 시녀를 제거하다
3. 우이저의 약혼자 장화張華가 남편 가련賈璉을 사주하여 고소하고, 또 관부官府에서 장화의 죄를 판결하게 하다
4. 녕국부에 소란을 피워서, 우尤씨 등에게 죄를 묻다
5. 가모賈母에게 거짓으로 가련이 우이저를 취하게 해달라고 하다
6. 장화를 죽음에 이르게 하다
7. 헛소문을 퍼뜨려 우이저의 명예를 훼손시키다
8. 추동秋桐을 이용하여 우이저에게 대응하다
9. 우이저가 낙태하자 거짓으로 상심傷心하는 체하다
10. 우이저가 자결한 뒤 또 남은 재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뺏어, 완전히 승리하다
봉저는 어찌하여 그렇게 권력을 좋아하나?
자고이래로, “권權”과 “전錢”은 모두 함께 생기는데, 권력이 있게 되면 곧 더욱 많은 재부財富를 움켜잡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봉저의 재산을 늘리는 방법도 권력의 장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직접 뇌물을 요구하다: 봉저는 정허凈虛를 도와 장張씨 집의 장금가張金哥와 수비守備 집안의 혼약에 관한 일을 처리해주겠다고 하고, 3,000 량의 은자를 보수로 요구한다.
2. 암암리에 뇌물을 받다: 가운賈蕓은 영국부 동북 모서리에 나무와 화초를 심는 공사를 도맡을 수 있게 봉저에게 뇌물을 준다.
3. 관계를 이용하여 서로 혜택을 주어 이익을 챙기다: 가장賈薔은 고소姑蘇에서 매입을 할 때, 실질상으로는 가진賈珍, 가용賈蓉, 가장이 녕국부를 대표하여, 영국부를 대표로 하는 가련과 봉저와 권익權益을 교환한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적자지심赤子之心(갓난아이처럼 천진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紅樓夢』 본문]
寶玉也沒聽完,把那書本擱在旁邊,微微的笑道:“据你說人品根柢,又是什麽古聖賢,你可知古聖賢說過‘不失其赤子之心’.那赤子有什麽好處,不過是無知無識無貪無忌.我們生來已陷溺在貪嗔痴愛中,猶如汚泥一般,怎麽能跳出這般塵網.” (第一百一十八回)
[해석문]
보옥寶玉은 (보채寶釵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한쪽 옆에다 놓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인품의 뿌리가 어떠니, 옛 성현의 말씀이 어떠니 하고 말하고 있는데, ‘불실적자지심不失赤子之心’(적자(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다)란 말을 알고 있겠지. 그러면 적자赤子에게는 어떤 좋은 점이 있소? 무지無知하고, 무식無識하고, 무탐無貪하고, 무기無忌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소? 우리는 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이미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사랑에 탐닉하여, 마치 더러운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한 속세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말이오?” (제 118회)
[명언고사]
보채寶釵는 보옥이 결혼한 뒤에, 보옥이 한층 세상일에 싫증내는 것을 발견하고 대단히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보옥이 『추수秋水』 1편篇(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가 지은 『장자莊子』에 들어 있는데, 철학적 이치가 풍부한 우언寓言이 실려 있다)를 꺼내들고 깊이 음미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로 마음속에 번민이 되어서, 보옥 옆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보옥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자, 곧 물어보았다.
“당신은 왜 또 그러고 있어?”
보채는 “저는 당신과 이미 부부가 되었으니, 당신은 제가 평생 의지할 사람이지, 정욕情欲의 대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부귀영화로 말하자면, 원래 부질없는 것에 불과해요. 그러나 자고로 성현께서는 인품의 뿌리를 중요시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보옥寶玉은 다 듣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한쪽 옆에다 놓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인품의 뿌리가 어떠니, 옛 성현의 말씀이 어떠니 하고 말하고 있는데, ‘불실적자지심不失赤子之心’(적자(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다)이란 말을 알고 있겠지. 그러면 적자赤子에게는 어떤 좋은 점이 있소? 무지無知하고, 무식無識하고, 무탐無貪하고, 무기無忌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소? 우리는 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이미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과 사랑에 탐닉하여, 마치 더러운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한 속세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 말이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취산부생聚散浮生’(모이고 흩어지는 것이 마치 뜬구름 같다), 이 4 글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소. 옛 사람이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아직 깨달은 이가 한 사람도 없단 말이오. 지금 인품의 뿌리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과연 누가 태초의 경지에 도달했느냔 말이오?”
보채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적자지심赤子之心’은 본래 옛 성현께서 충효를 적자지심이라고 하셨지, 속세를 떠나 모든 것에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을 적자지심이라고 하신 것은 아니지요.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왕禹王, 탕왕湯王 주공周公, 공자孔子께서 어느 한시라도 백성을 구하고 세상을 구제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적자의 마음이란 원래 ‘불인不忍’이란 2 글자에 불과한 것이지요. 만약 당신이 방금 말한 것처럼 모질게 천륜을 끊어버린다면, 그게 어디 이치에 맞는 말이 되겠어요?”
보채는 언제나 이런 도리道理의 말들로 보옥을 권고했지만, 보옥은 이미 속세에 대한 아쉬움이 없어서, 결국은 출가出家하여 불문佛門에 귀의하고 말았다.
홍루몽이야기
물로 골육이 만들어진 홍루 여아 산중고사山中高士 설보채薛寶釵
설보채薛寶釵는 임대옥林黛玉과 비교하면, 본분에 상응하여 때를 따르고, 다른 사람의 의중을 잘 이해했지만, 그녀는 시종 보옥寶玉과는 마음이 서로 통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인생이 완전한 것 같으나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믿게 되었는데, 설사 거안제미擧案齊眉(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존경하다/부부가 서로 존경하다, 후한後漢의 양홍梁鴻의 처 맹광孟光이 남편에게 밥상을 올릴 때, 눈높이까지 받쳐 들었다는 데서 온 말)를 해도, 끝가지 뜻을 이루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보옥은 여전히 산중고사山中高士 즉 보채에 대해 차가운 눈처럼 냉랭하게 대하며 겨를을 주지 않았는데, 세상 밖에 있는 선매仙妹 대옥을 끝내 잊지 못했다.
설보채는 설이마薛姨媽의 딸이고, 설반薛蟠의 친누이동생이며, 보옥의 이종사촌누이이다. 그녀는 금릉사대가족金陵四大家族 중의 한 집안인 백만장자의 부를 지닌 설薛씨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소설 속에서 가우촌賈雨村의 문지기가 가지고 있는 호관부護官符에는 설씨 집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豊年好大雪珍珠如土金如鐵”풍년호대설,진주여토금여철
(풍년에는 대설이 내리는데, 진주와 금을 흙이나 쇠같이 쓰다)
그래서 가부賈府 사람들은 그녀가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 그녀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밖에, 그녀는 또 미려한 용모를 지녀 아름다운 골격과 윤기 있는 피부에다 행동거지도 고상한데다가, 또 분수에 맞게 자기 할 일을 때에 따라서 했는데, 이러한 모든 것은 그녀가 나설 때마다 가부의 상하上下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했다.
가모賈母가 보채의 생일잔치를 열어주면서 좋아하는 연극과 음식에 대해서 물었을 때도, 보채는 노인들이 떠들썩한 연극을 좋아하고, 달고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가모가 평상시에 좋아하는 것들로 대답했던 것이다.
한 번은 보옥의 시녀 습인襲人이 상운湘雲에게 그녀를 위해 바느질을 좀 해달라고 간청했는데, 보채는 숙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상운이 언제나 밤늦도록 집안일을 거드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녀는 곧 자진해서 완성한 수공예품을 가지러 갔다.
또 한 번은 상운이 시사詩詞 모임을 주관하려고 하자, 보채는 상운이 돈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숙모에게서 원망을 들을까봐, 보채는 게를 몇 바구니나 제공하여 게요리 연회를 차리도록 도와주었다. 성정이 호방한 상운은 진심으로 보채를 칭찬하여, “보채언니보다 좋은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바로 대옥조차도 보채가 자진해서 시녀를 시켜 제비집 죽을 쑤어서 자기에게 보내준 일을 계기로 보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자신이 그녀를 잘못 생각했다고 생각했다.
왕부인에게 야단을 맞은 금천아金釧兒가 우물에 투신해서 죽었을 때, 왕부인王夫人은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보채는 왕부인을 위로했다. 금천아가 만약 정말로 자살했다면, 은자나 좀 많이 쥐어주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또 주동적으로 새로 지은 자기의 의복을 금천아의 수의로 내놓았다. 이 일은 보채가 다른 사람의 의중을 잘 이해하는 면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고, 또한 그녀의 냉혹하고 무정한 “냉미인冷美人”의 개성을 더욱 알 수 있다.
보채는 때와 장소에 따라 봉건부덕封建婦德으로 자기의 언행의 규범을 삼았는데, 심지어 사람들에게 봉건사회 숙녀의 본보기라고 불렸다. 그녀는 여러 차례 “여자는 재능이 없는 것이 곧 덕德”이라는 그런 류의 말로 대옥 등의 자매들에게 충고를 했고, 동시에 보옥에게도 벼슬길로 나가서 경제를 돕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로 나가라고 여러 차례 권고해서, 보옥에게 극도의 반감을 일으키게 했다.
혼인 문제에서, 보채는 근본적으로 마음속으로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서 봉건규범에서 말하는 “부모의 명령과 중매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고악高鶚이 쓴 『홍루몽』後40회回의 속서續書에서, 왕부인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보채는 결국 보옥에게 시집을 간다. 비록 “금옥양연金玉良緣”은 성취되었지만, 오히려 좋은 때는 오래 가지 않았는데, 애정이 없는 두 사람은 인생에 대한 태도도 같지 않았다. 또 지기知己 대옥을 아무리 해도 잊지 못하던 보옥은 혼인한 뒤 얼마 되지 않아 화상和尙이 되려고 출가出家하고 만다. 그리고 보채는 어쩔 수 없이 독수공방하며, 유명무실하고 혼인을 유지하며 한을 품고 일생을 보내게 된다.
설보채薛寶釵는 별칭이 “형무군蘅蕪君”, “냉미인冷美人”이고, 그 배위排位는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 정책正冊 제일第一이다. 윤기 있는 피부를 가진 그녀는 행동거지가 우아하며, 얼굴은 은銀 세숫대야 같이 희고, 눈은 살구같이 생기고, 작고 붉은 입술에 눈썹은 그리지 않아도 예뻤다. 보채는 많은 책을 널리 읽고, 정통으로 숙녀 교육을 받았다.
해당시사海棠詩詞 모임에서 지은 그녀의 시사詩詞 작품으로는 『억국憶菊』, 『화국畵菊』, 『방해영螃蟹咏』, 『유서사柳絮詞·임강선臨江仙』이 있다. 단정하고 자중自重한 성격을 가진 보채는 다른 사람의 의중을 잘 알고, 분수에 맞게 때에 따라서 일을 잘 처리했다. 또 그녀는 천성적으로 자신을 잘 억제하고, 봉건예교封建禮敎를 충실히 지키며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구슬렸다. 보채의 명운은 비록 보옥과 금옥양연金玉良緣을 맺어 결혼했지만, 도리어 독수공방하며 적막하게 일생을 보내는 운명을 지녔다.
보옥과 보채 두 사람의 관계
보옥의 어머니 왕부인은 설보채의 어머니 설이마薛姨媽의 친정언니인데, 그래서 보옥과 보채는 이종사촌의 관계이다.
보옥의 통령보옥通靈寶玉
보옥은 태어날 때 통령보옥通靈寶玉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 그 통령보옥에는 앞면과 뒷면에 글자가 새겨있다.
“莫失莫忘,仙壽恒昌”막실막망,선수항창
(잃지 말고 잊지 말고, 선녀를 영원히 노래하리) (앞면)
“一除邪崇,二療寃疾,三知禍福”일제사숭,이료원질,삼지화복
(첫째는 미신 숭상을 제거하고, 둘째로 억울한 병을 치료하며, 셋째는 화복을 안다) (뒷면)
보채의 금쇄金鎖
설보채의 금쇄金鎖는 머리에 부스럼이 있는 화상의 덕담을 금목걸이에 새겨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不離不棄”불리불기(헤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앞면)
“芳齡永繼”방령영계(평생토록 계속되리) (뒷면)
나비 잡는 보채寶釵
『홍루몽紅樓夢』 제 27회回에 나오는 장면이다. 보채는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소상관瀟湘館이 있는 곳까지 와서, 대옥과 놀려고 생각했다.
“忽然擡頭見寶玉進去了.寶釵便站住底頭想了想:寶玉和林黛玉是從小一處長大,他兄妹間多有不避嫌疑之處,嘲笑喜怒無常;況且林黛玉素習猜忌,好弄小性兒的.此刻自己也跟了進去,一則寶玉不便,二則黛玉猜疑.”
(갑자기 고개를 드니 보옥이 들어가는 것을 보였다. 보채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보옥과 임대옥은 어려서부터 한 곳에서 자라서, 그들 남매간에는 서로 기피하는 것이 없이 웃고 농담을 하는 스스럼이 전혀 없는 사이인데, 게다가 임대옥은 평소에 남들을 꺼려하며 피하고, 성질을 부려 너그럽지 못한데, 이때 자기가 보옥과 함께 들어가게 되면, 첫째는 보옥이 편치 않을 것이고, 둘째로는 대옥이 의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곳을 벗어나 돌아갔다. 여기에서 작자는 보채의 이런 복잡한 내심을 드러내서, 온화하고 신중하며 아주 작은 데까지 세심하게 헤아리는 보채의 성격을 묘사했다.
그러나 보채의 성격은 단편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어서 작자는 보채의 다른 면도 묘사했다.
“剛要尋別的姊妹去,忽見前面一雙玉色胡蝶,大如團扇,一上一下迎風翩躚,十分有趣.寶釵意慾撲了來玩耍,遂向袖中取出扇子來,向草地下來撲.”
(막 다른 자매들을 찾아가려는데, 갑자기 앞에서 부채만큼 커다란 옥색 나비 한 쌍이 아래로 날다가 위로 날아오르며 날갯짓을 하는데 대단히 흥미로워 보였다. 보채는 나비를 잡아서 놀아보려고, 소매 속에서 부채를 꺼내서, 풀밭을 두드렸다)
이 단락의 묘사는 인물의 성격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주는데, 보채가 비록 온화하고 진중한 성격이지만, 그러나 그녀도 결국은 소녀이기 때문에 소녀의 그런 천진스럽고 활발한 모습도 당연히 그녀에게서 표출되어 나올 수 있는 모습인 것이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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