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賈珍은 왜 진가경秦賈卿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었을까?
제 13 회는 가진賈珍이 진가경秦賈卿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다고 하여도 나는 모든 것을 다 하겠다!”
속죄를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기도 하고, 또 좋은 관을 사기도 하고, 돈을 들여서 관직을 사는 등 힘껏 마음대로 호화스럽게 하여 극도로 벅적벅적하였다.
봉건시대의 예禮에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의 예절이 대단히 엄격하다. 그런데 가진은 부친의 생신에는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 며느리가 병중에 있을 때에는 근심걱정으로 애를 태우고, 가경의 죽음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것 같았고”, 장례를 치르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돈을 아끼지 않고 구입했는데, 그중에는 수상쩍은 것도 있다.
작품 중에서는 수상쩍은 것은 한 가닥의 단서도 은밀하게 찾을 수 없다. 먼저 제 5 회를 보면, 경환선자는 보옥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내게 여동생이 한 사람 있는데, 아명이 겸미兼美이고, 자는 가경可卿인데 결혼했어요”,
“운우지정의 일을 가르쳐 줄 거에요”.
이어서 제 7 회에서는, 초대焦大가 만취하여 함부로 이렇게 욕한다.
“재 위를 기는 놈은 재 위를 기고, 시동생과 밀통하는 년도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파회爬灰”란 재 위를 기어가 무릎을 더럽힌다는 표현인데, 그 말을 뜻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간통하는 것을 금물로 여기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녕국부寧國府의 가장 어른인 가경賈敬은 성 밖에서 거주하며 신선이 되기 위해 도를 닦고 있으니,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간통”이 있을 수가 없을 터이고, 남은 것은 바로 가진과 그의 며느리인 진秦씨인 것이다.
진씨가 죽었다는 소식은 이때 두 집안이 모두 알고 있어서 하나도 놀랄 것은 없었으나, 또 의심이 가는 점이 있기는 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진씨가 죽은 후에, “갑자기 진씨의 하녀 서주瑞珠라는 아이가 진씨가 죽은 것을 알고는, 스스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양쪽 집안사람들 모두가 칭찬하고 감탄한다. 가진은 하녀 서주를 손녀의 예로 거두어서, 같이 회방원會芳園에 있는 등선각登仙閣에 안치하였다.
또 보주寶珠라는 어린 하녀는 진씨가 소생이 없는 것을 알고, 수양딸이 되기를 자청하여 영구를 지키는 임무를 하기를 결심한다. 가진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즉시 이때부터 보주를 ‘아가씨’라고 부르게 했다.
그 보주는 아직 시집가지 않은 채로 상을 당하였으므로, 영전 앞에서 매우 애절하게 슬퍼하였다.
이것은 경환선자가 꿈에서 운우지정을 가르치고, 진씨가 봉저鳳姐의 꿈에 나타나 부탁한 장면보다 더욱더 기이한 줄거리이다. 특별히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역시 조설근과 같이 생활한 적이 있는 지연재脂硯齋와 기홀수畸笏叟가 그 속사정에 더 정통하다고 하겠다.
갑술본甲戍本에 “無不納罕,都有些疑心”(놀랄 것은 없으나, 모두들 약간의 의심을 하였다)라는 아홉 글자 옆에, “아홉 글자는 천향루天香樓의 일을 쓴 것으로, 쓰지 못한 것을 쓴 것이다.”라고 비어批語를 달아놓았다.
그리고 정본靖本에서는 기홀수는 더욱 직설적으로 썼다.
‘진가경이 음란으로 천향루에서 목매어 죽다”라고 작가는 사필史笔을 이용하여 개관적으로 써넣었다. 진씨의 죽게 된 혼령이 봉저에게 와서 가부賈府의 장래를 위해 후사後事 두 가지를 부탁하였는데, 평안하고 부유하게 지위가 높은 집안에서 영화를 누려온 사람인데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말은 일리가 있어서 사람을 매우 감동시켜서 죄를 용서할 만하니까 그래서 작가 조설근에게 “유잠遺簪”과 “갱의更衣”라는 글자를 삭제하라고 하였다.’
바로 제 5 회에 나오는 『금릉십이채정책金陵十二釵正冊』에서 큰 저택의 높은 누대에 한 아름다운 여인이 대들보에 목매어 자살한 그림을 그려서 진가경의 운명을 예언한 것을 연상케 한다.
“『홍루몽』 십이곡十二曲”에서 진가경을 노래한 [호사종好事終]에는 “화량춘진락향천画梁春盡落香塵”(화려한 들보에 봄은 가고 천향루에 티끌 떨어지네)이라고 노래했는데, 대강 감추어 진 의미를 알 수가 있어다. 시아버지 가진賈珍과 며느리 진씨가 간통한 것을, 공교롭게 하녀 서주가 보게 되고, 서주는 또 하녀 보주에게 말했던 것이다.
진씨가 천향루에서 자진한 후에, 서주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서 기둥에 부딪쳐 죽고, 어린 하녀 보주는 수양딸이 되기를 자원하여 진씨의 출상出喪 때 영구 앞에서 질그릇을 깨는 의식과 영구를 앞에서 인도하는 일을 맡아 화를 면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红楼梦:秦可卿为何不反抗公公贾珍?一个耳熟能详的绰号里有答案
一个家族走了下坡路之后,往往会发生的许多不可思议的事情。查抄大观园时,精明的贾探春就哭着说过,家族要败一定是先从家族内部乱起。事实上,贾府里最先乱的是宁国府。
宁国府里的贾敬一心想修道成仙,所以把家族事务交给了贾珍。
贾珍不肯读书,不走正道,一味高乐竟把宁国府翻了过来,也没有人管他。在这种情况下,许多不可避免的丑事发生了。宁国府的老仆人焦大醉后痛骂:“爬灰的爬灰,养小叔子的养小叔子。”
这两件丑事中,谁养小叔子没法定论,爬灰之事却被一致认为是贾珍和秦可卿。
秦可卿是一位妙龄女子,长得风流袅娜,贾宝玉在太虚幻境里看到她鲜艳妩媚有似乎宝钗,风流袅娜则又如黛玉,薛宝钗和林黛玉并列为金陵十二钗之首,她一人兼两人之貌,可想而知长得非常美。
与她相比,贾珍虽然是世袭的将军,又是一族之长,但是年龄渐大,行为不端,不仅风流成性,更与儿子贾蓉有聚鹿之诮,甚至还在父亲热孝之中,以练习射箭为名聚赌嫖娼。
两人不仅年龄上有差距,更有辈分伦理上的差别。在这种情况下,贾珍为何会把“黑手”伸向秦可卿呢?
难道是他做人没底线?
其实不然,贾珍做事情其实是有底线的,而且对后辈子侄们乱搞男女私情是很痛恨的。
春节之前,贾珍吩咐人将年货一分一分的堆在月台下,分给族中的子侄们。
贾芹来领物时,贾珍当场训斥道:“你作什么也来了?谁叫你来的?”贾芹垂手回说:“听见大爷这里叫我们领东西,我没等人去就来了。”
贾珍先骂他不知好歹后又冷笑道:“你还支吾我。你在家庙里干的事,打谅我不知道呢。你到了那里自然是爷了,没人敢违拗你。你手里又有了钱,离着我们又远,你就为王称霸起来,夜夜招聚匪类赌钱,养老婆小子。这会子花的这个形象,你还敢领东西来?领不成东西,领一顿驮水棍去才罢。等过了年,我必和你琏二叔说,换回你来。”
贾珍训斥时贾芹规规矩矩站在一边不敢答应。
由此看来,贾珍还是一个多多少少有底线的人。
贾府里的高级奴才赖嬷嬷也曾经说过贾珍管人很严。原文如下:
“还有东府里你珍哥哥的爷爷,那才是火上浇油的性子,说声恼了,什么儿子,竟是审贼。如今我眼里看着,耳朵里听着,那珍大爷管儿子倒也像当日老祖宗的规矩,只是管得到三不着两的。”
既知祖宗规矩,也能在众目睽睽之下管教贾芹,这都说明贾珍还是有底线的。所以,贾珍和秦可卿之间的“爬灰”之事,问题不是全部出在他一个人身上。一个巴掌拍不响,既然责任不全在贾珍身上,那么秦可卿身上肯定会有责任。
秦可卿会有什么责任呢?她的一个绰号里暗藏着答案。
秦可卿未嫁之前是秦业从养生堂里抱养出来的孩子,嫁入宁国府后是贾蓉之妻,这些身分都是现世里的。她的前世却并非如此,原是个钟情的首座,在警幻仙子座下管的是风情月债。
“首座”这个绰号大家耳熟能详,它原是一个佛教称谓,是指居席之首端,处众僧之上,后来一般是指首席首领。秦可卿作为钟情的首座,管的又是风情月债,行为举止自然异于常人,贾宝玉梦游太虚幻境时,她化身兼美教其云雨之事;从她房间的摆设情况看,无论是杨贵妃的东西,还是赵飞燕的金盘,包括两位公主使用的床榻,都从侧面证实她是一个风流之人。
贾珍原本就是一个专门在女人身上下功夫之人,秦可卿又是一个管风月债的“首座”,两人在一起,自然是一拍即合,至于是谁主动谁妥协根本就分不清。
事实上,从脂砚斋留下的信息看,“秦可卿淫丧天香楼,作者用史笔也。老朽因有魂托凤姐贾家后事二件,岂是安富尊荣坐享人能想得到者?其事虽未行,其言其意,令人悲切感服,姑赦之,因命芹溪删去“遗簪”、“更衣”诸文,是以此回只十页,删去天香楼一节,少去四五页也。”其实就是暗示,贾珍爬灰与秦可卿自身风流有莫大的关系。
在仙界里秦可卿是钟情的首座,在现世里她是还风月债的人。所以,贾珍敢在她身上打主意,把“黑手”伸到她身上,其实责任不仅仅在贾珍一人身上,而是与她下世“还债”有莫大的关联。
声明:本文资料重点引自《乾隆庚辰四阅评本脂砚斋重评石头记》《周汝昌校订批点本石头记》《胡适藏乾隆甲戌脂砚斋重评石头记》《蒙古王府本石头记》《郑振铎藏本》【文/小涵读书】
심신부정心神不定 (안절부절 못하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 본문]
那時賈母正心神不定,在大堂廊下佇立,那邢夫人,王夫人, 尤氏, 李紈, 鳳姐, 迎春姉妹以及薛姨媽等皆在一處。聽如此信至, 賈母便喚進賴大來細問端的。(第 十六回)
[해석문]
그때 가모는 안절부절 못하며 대청 낭하에 서 있고, 형부인, 왕부인, 우씨, 희봉, 영춘 자매 및 설부인 등도 모두 소식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가모는 곧 뇌대를 불러 상세히 물어보았다. (제 16회)
[명언고사]
원춘元春은 영국부榮國府의 가정賈政의 장녀로, 그녀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 태어나서 이름을 원춘이라고 지었다.
현명하고 효성스러우며 재덕才德으로 이름이 나서 그녀는 황궁에 여사女史로 선발되었는데, 바로 궁 안에서 일을 기록하는 일을 맡은 여관女官인 것이다.
그날은 바로 가정의 생일이었다. 녕국부寧國府와 영국부 사람은 모두 함께 모여 축하하며 매우 북적거렸다.
갑자기 문지기가 아뢰기를, “황제의 성지가 곧 도착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가정 등은 무슨 일인지 몰라 놀라서 즉시 노래를 중지하고 주연을 파하고 향안香案(향로를 놓아 두는 탁자)을 거두어 놓고 중문中門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맞았다.
태감이 읽는 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성지를 받들어, 가정은 즉가 입조入朝하여 임경전臨敬殿에서 폐하를 알현하라.”
읽기를 마치고 가자, 가정 등은 무슨 일 때문인지를 추측하지도 못한 채 서둘러서 옷을 갈아입고 입궐했다.
가모 등은 모두 안절부절 못하며,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게 했다. 두 시진 쯤 지나서 집사 뇌대賴大가 소식을 가져왔다.
“소인은 그저 황궁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궐 안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夏태감이 나와서야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큰아가씨께서 황상으로부터 봉조궁상서鳳藻宮尙書로 봉해지고, 추가로 현덕비賢德妃로 봉해지셨답니다. 나중에 나리께서도 나와서 그렇게 분부하셨습니다. 현재 나리는 또 동궁東宮에 가셨는데, 노마님께서 마님들을 인솔하여 입궐하셔서 황상께 은혜에 감사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가모 등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소식이 전해지자, 가부賈府의 상하 안팎 사람들은 모두 기쁜 얼굴로 만족하게 웃으며 오래도록 떠들썩했다.
홍루몽이야기
“철함사鐵檻寺”와 “만두암饅頭庵”은 무슨 의미를 내포하고 있나?
『홍루몽紅樓夢』 제 15 회는 “王熙鳳弄權鐵檻寺, 秦鯨卿得趣饅頭庵”(왕희봉이 철함사鐵檻寺에서 권력으로 농간을 부리고, 진경경秦鯨卿은 만두암饅頭庵에서 재미보다)를 쓴 것이다.
이 “철함사”와 “만두암”은 어떻게 이름을 지었을까? 책에서는 이렇게 소개했다.
“원래 이 철함사는 녕국부寧國府와 영국부榮國府의 두 분의 공公께서 당시 건축하여 현재까지도 향을 사르고 보시를 하고 있는 절인데, 북경에 있는 식구가 죽으면 안치하여 놓기가 편리하도록 준비하여 놓은 것이다.”
철함사는 가부賈府의 집안의 가묘이다. 만두암은 바로 수월사水月寺인데, “그 절에서 만두를 잘 만들어서, 이 휘호를 지은 것으로, 철함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철함사”와 “만두암”의 명칭의 유래는, 작가가 “거짓된 말과 촌스런 말”을 빌어 되는대로 지은 것이다.
초당初唐 시기에 왕범지王梵志이라는 시인이, 스님은 아무래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참선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통속시를 많이 지었다. 그중에 두 수의 시 구절이 있다.
世無百年人(백년을 사는 사람은 없는데)
强作千年調(억지로 천년을 조정하려 하누나).
打鐵作門限(쇠를 두들겨 문지방을 만드는데)
鬼見拍手笑(귀신이 보고 손뼉을 치며 웃누나)
城外土饅頭(성 밖에서는 흙으로 만두를 빗고)
餡草在城里(성 안에서는 풀로 소를 넣는다네)
一人吃一个(한 사람이 한 개를 먹어보았는데)
莫嫌沒滋味(그 맛을 아주 싫어하였다네)
천년을 조절한다는 것은 장구한 계획을 가리키는데, 문지방, 즉 문턱을 말한다. 그 의미는 사람은 천년을 살 수 없으니, 억지로 장구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즉 쇠를 두들겨 문지방을 만든다고 해도, 음과 양의 세계를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만두土饅頭”는 분명히 묘지를 비유하여 가리킨 것으로, 그 흙만두 안에 있는 소(전설에는 제갈량諸葛亮이 교화시킨 남만南蠻은 만두소에 고기대신에 사람 머리를 넣어 제사를 드렸다로 하는데, 그렇게 해서 옛날부터 만두에 소를 넣게 되었다고 함)는 바로 성 안에 사는 사람인데, 한 사람씩 묻어서, 누구라도 도망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송대에 이르러, 시인 범성대范成大도 이 두 구절의 시를 한 연에다 녹여 지었다.
縱有千年鐵門檻(설사 천년의 쇠문지방이 있다해도)
終須一个土饅頭(마침내는 하나의 흙만두가 되리니)
뜻은, 사람이 설령 천년을 가도 부서지지 않는 쇠문지방을 만든다고 하여도, 사망이 오는 것은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가부에서는 가묘의 이름을 “철함鐵艦”이라고 하고는, 북경에 있는 식구가 죽으면 영구를 안치하는 곳으로 이용하여 왔고, “만두饅頭”암은 철함사에서 멀지 않은데, 문지방을 건너서 문지방 밖에 있는 문지방 안으로 오니, 바로 흙만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니, 재미있게 관련을 지은 것이 아닌가?
묘옥妙玉은 그 이치를 깊이 깨달아서, 그래서 보옥의 생일에 카드에다 자신을 자칭 “함외인檻外人이라고 표기하였으니, 소위 “쇠문지방” 밖을 이미 디딘 것이라고 하겠는데, 애석하게도 “생과 사는 누구도 피할 수가 없고”, “결국, 여전한 것은 본심과는 다른 세상의 더러운 욕망”인 것이다.
공교로운 것은, “흙만두” 시를 지은 왕범지는 젊었을 때는 부유하였다.
我富有錢時(내가 부유하여 돈이 있을 때는)
婦兒看我好(여인들이 나를 잘 대하였다네)
悶見奴吹笛(갑갑할 때는 하인에게 피리를 불라하고)
閑令婢唱歌(한가할 때는 하녀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지)
나중에 몰락한 왕범지의 시에는 또 이런 구절이 있다
草屋足風塵(초가집은 바람과 먼지가 가득하고)
床無破氈臥(의자도 없이 찢어진 담요 위에 앉아)
白酒瓦鉢盛(술은 토기사발에 붓고)
饓子兩脚破(솥단지는 두 발이 부서졌다네)
대강 조설근의 “와조승상瓦灶繩床”(흙 부뚜막과 끈으로 얽어 만든 침대)와 상당히 비슷한데, 세상 인심을 간파하고 권세를 풍자하며 노래하였으니, 그 의도는 대강 조설근이 찬술한 『홍루몽』과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원수구불득근갈遠水救不得近渴 (멀리 있는 샘물로는 당장의 목마름을 풀 수 없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 본문]
智能道, “你想怎樣? 除非等我出了這牢坑, 離了這些人, 才依你.”
秦鐘道, “這也容易, 只是遠水救不得近渴.” (第 十五回)
[해석문]
지능智能이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간 뒤에야 도련님을 따르겠다고 했잖아요!”
진종秦鐘이 대꾸했다. “그거야 쉽지만, ‘멀리 있는 샘물로는 당장의 목마름을 풀 수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 (제 15회)
[명언고사]
지능智能은 수월암水月庵의 어린 비구니로 어려서부터 영국부榮國府를 왕래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또 보옥과 진종하고도 늘 농담하며 지냈다.
큰 다음에 점차 남녀의 정을 알게 되자, 진종의 인물과 풍류에 반했는데, 진종도 그녀를 좋아했다.
진가경이 죽어서, 진종과 보옥은 수월암에 영구를 안치하는데 따라갔다. 진종은 어두워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지능을 찾아 밀회하려고 했다.
그가 뒤에 있는 방으로 들어오는데, 지능이 혼자 방에서 차 잔을 씻는 것을 보고 쫓아가서 껴안으며 입을 맞췄다.
지능은 놀라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또 그러면 소리 지를 거에요!”
진종이 애걸했다.
“예쁜이, 나는 급해 죽겠다고. 오늘도 내 말을 안 들으면, 난 여기서 죽어버리고 말래.”
지능이 대답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간 다음에야 도련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잖아요.”
진종은, “그거야 쉽지만, ‘멀리 있는 샘물로는 당장의 목마름을 풀 수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라며 말하며 등불을 훅하고 불어 꺼버리고 방바닥에 지능을 눕혔다.
진종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 감기에 걸려서 기침을 하며 몸져눕고 말았는데, 음식도 잘못 먹을 정도였다. 지능은 몰래 진종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뜻밖에 진종의 부친 진방업秦邦業에게 발각되어 지능은 쫓겨나고, 진종은 매를 맞았는데, 스스로 화를 못 이겨 숙환이 재발하여 며칠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
진종은 본래 유약한 성격에다 병도 낫지 않았는데 매까지 맞고, 또 연로한 부친마저 화로 세상을 떠나자 더욱 여러 가지 병이 덧나서 며칠 만에 죽은 것이다. 가련한 진종과 지능의 이런 열렬한 사랑은 결국 처량한 결말을 맞고 말았던 것이다.
홍루몽에 나오는 명언
애애욕절哀哀欲絶(애절하게 계속 곡을 하다)
[명언이 나오는 『홍루몽』 본문]
小丫鬟名寶珠者, 因見秦氏身無所出, 乃甘心愿爲義女, 誓任摔喪駕靈之任, 賈珍喜之不盡, 實時傳下, 從此皆呼寶珠爲“小姐”. 那寶珠按未嫁女之喪, 在靈前哀哀欲絶. (第 十三回)
[해석문]
시녀로 있던 보주寶珠라는 여자애가 진秦씨의 몸에 소생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의녀義女가 되겠다고 했다. 보주는 영구 앞에서 잠시 상주 노릇을 하게 되었다. 가진은 대단히 기뻐하며 이때부터 조부를 “소저小姐”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 보주는 아직 시집 안 간 딸의 입장에서 상주가 되어 영전에 엎드려 애절하게 곡을 했다.
[명언고사]
진가경秦可卿이 죽자, 녕국부寧國府에서는 장례를 크게 준비했다.
원래 진가경을 시중들던 서주瑞珠라는 어린 시녀가 주인이 죽은 것을 보자, 사람들이 부주의한 틈을 타서 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었는데, 집안 식구 전체가 탄식해마지 않았다.
가진은 서주를 손녀의 예로 시신을 염해서 회방원會芳園의 등선각登仙閣에 영구를 같이 안치해 놓았다.
또 다른 시녀 보주寶珠라는 여자애는 진가경이 낳은 자녀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스스로 그녀의 의녀義女가 되어 영구의 가마를 인도하는 임무를 맡겠다고 나섰다.
가진은 대단히 기뻐하며 곧 그 말을 전하며 그때부터 집안사람들에게 보주를 “소저小姐”(아가씨)라고 부르게 했다.
그 보주는 그리하여 출가하지 않은 딸의 예로 진가경의 영전에서 애절하게 계속해서 곡을 했다.
전 가족과 집안에 있는 하인들은 각자 맡은 일에 따라 전통적인 의례에 따라 장례를 빠짐없이 준비했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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