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홍루몽 제 8회 대옥이 낙화를 장사지내다

一字師 2023. 9. 30.
반응형

홍루몽 제 8회 대옥이 낙화를 장사지내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보옥은 대옥을 찾았으니, 대옥은 도리어 그를 아는 체 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보옥은 뒤쫓아 갔으나 그녀를 찾을 수가 없어 침울하게 풀이 죽어 있을 때, 산비탈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임대옥이 가부에 온 후, 가모는 그녀와 보옥을 자기 신변에 가까이 두고, 낮에도 같이 다니고, 밤에도 같이 자게 했는데, 두 사람은 정말로 소꿉동무로 천진난만하게 허물없이 어울렸다.

 

그날, 대옥이 혼자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보옥이 커튼을 젖히고 침상으로 올라와 그녀를 밀며 말했다.

 

“어찌 밥을 먹자마자 또 낮잠을 자다니!”

 

대옥은 보옥인 줄 알자, 눈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오빠, 다른 데 가서 놀다가 와.”

 

“나보고 어디로 가라고? 나는 다른 사람은 좋아하지 않거든.”

 

“그럼 여기에 있으려 거든, 저쪽에 가만히 좀 앉아 우리 얘기나 해.”

 

“나도 누울래.”

 

“그럼 누워.”

 

“나는 베개가 없는데, 우리 같이 베자.”

 

대옥은 자기의 베개를 그가 있는 쪽으로 조금 밀고,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고 누워서 얘기했다.

 

임대옥은 보옥이 가정에게 불려갔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저녁밥을 먹고 났을 때서야, 보옥이 돌아왔다. 대옥은 곧 이홍원으로 그를 보러갔지만, 방금 전에 벽흔碧痕과 말다툼하고 기분이 나빠 있던 청문晴雯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누군지 묻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들 자고 있으니, 내일 다시 오세요.”

 

대옥은 시녀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문을 두드렸다.

 

“난데, 왜 문을 안 여는 거죠?”

 

공교롭게도 청문은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고, 성질을 냈다.

 

“당신이 누구든지 간에, 도련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어요.”

 

화가 치민 대옥이 그 자리에 잠시 그대로 서있는데, 안에서 나는 한바탕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보옥과 보채 두 사람의 소리였다. 대옥은 화도 나고 슬퍼서, 밖이라 냉기가 있는데도 나무그늘 아래 혼자 서 있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음날은 망종절芒種節(24 절기 중의 하나임)인데, 대관원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소란스럽게 여자 애들은 꽃잎과 버드나무 가지로 가마를 만들고,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색실로 나무 가지나 꽃에 매달아, 온 정원을 수놓아 나부끼게 했다.

 

보채, 영춘, 탐춘, 이환, 봉저, 향릉香菱과 시녀들은 정원에서 마음껏 놀며 장난치고 있는데, 오직 대옥만이 보이지 않아 보옥은 그녀를 찾으러 갔다.

 

보옥이 방으로 들어오자, 대옥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홀로 방을 나섰다. 보옥은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나왔다. 가는 길에, 보옥은 탐춘에게을 만나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대옥을 다시 찾았지만 이미 종적이 보이지 않았다.

 

침울해진 보옥이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 무의식중에 풍선화와 석류꽃이 많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손으로 조심조심 움켜쥐어, 옷섶에 싸서는 냅다 그날 대옥과 복숭아꽃을 묻었던 자리로 뛰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산비탈 쪽에서 누군가 구슬프게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흐느껴 울면서 책망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보옥이 들어보니, 그 사람은 대옥이었는데 대단히 상심해 있었다.

 

“그대가 오늘 꽃을 장사지내면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웃을 테지만,

 

어느 해엔가 그대를 장사 지낼 지를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봄이 다하면 꽃은 떨어지고, 붉은 얼굴은 늙어 죽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보옥은 그 중에서 들은 특별한 몇 마디의 말에 슬픔을 참지 못하고 산비탈에 넘어지고 말았는데, 가슴에 품고 있던 낙화들도 땅바닥에 흩어졌다.

 

대옥이 보옥을 보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모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구먼......”

 

울음을 그친 보옥이 고개를 들어보니, 대옥은 이미 가버리고 없어 황급히 찾으러 나섰는데, 여러 곳을 찾아본 후에야 대옥을 찾았다.

 

“거기 서, 내가 한 마디만 할 게.”

 

대옥은 할 말이 있다는 말에 멈추어 섰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봐요.”

 

보옥이 웃으며 말했다. “두 마디인데, 들어볼래?”

 

대옥이 돌아서서 가자, 보옥이 뒤따라가며 탄식했다.

 

“오늘 이럴 거면, 당초에 왜 그랬어?”

 

뜻밖에 이 두 마디 말에 대옥은 그만 멈춰 섰다. 보옥은 앞으로 와서, 어제 밤에 대옥이 오해한 것에 대해 변명을 하며 간절하게 자기의 진심을 말하자, 상심했던 대옥의 마음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追忆经典87版《黛玉葬花》

 

蟋蟀爱拍照:追忆经典87版《黛玉葬花》 - VV

蟋蟀爱拍照,VV,追忆经典87版《黛玉葬花》

music.51vv.com

 

조설근曹雪芹에 대하여

조설근은 이름이 점霑, 자는 근포芹圃, 호는 설근雪芹, 몽완夢阮, 근계거사芹溪居士이다. 대략 청나라 강희康熙 54년 을미년乙未年(1715년)에서 건륭乾隆 29년 갑신甲申年(1764년) 사이에 살았는데, 40 살에서 49 살로 생각된다.

 

호적은 양평襄平(지금의 동북東北 지역의 요양遙陽)으로, 조상은 본래 한족漢族이다. 명나라 천계天啓 원년(1621년)에 조가曹家는 후금後金에 귀순했는데, 나중에 순치順治 8 년(1651년)에 내무부內務府 정백기正白旗 한군漢軍에 기적旗籍을 올리고, 황제의 포의가노包衣家奴가 된다.

 

명나라 숭정崇禎 17년(1644년)에 조설근의 고조高祖 조진언曹振彦이 산해관山海關으로 입관하면서 군공이 탁월하여 관직이 누차 승진되면서 명문이 되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강희황제가 등극한 이듬해에 진언의 아들 조새曹璽는 근신近臣이었기 때문에 “흠차欽差”가 되어 남경南京의 강녕직조江寧織造로 부임한다. 그 후에 조가는 강남에서 특수 임무를 맡으면서 3 대에 걸쳐 4 명이 “직조織造”를 57년 동안이나 맡았다.

 

옹정雍正 5년에 직조를 맡고 있던 조가는 적자를 냈다는 이유로 북경으로 소환되고 파직당하고 가산도 몰수된다. 이때부터 명문귀족은 철저히 붕괴되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설근은 그 말년에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누리고 있던 번영이 갑자기 닥친 거대한 변화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진회강秦淮江(남경을 흘러가는 강)의 옛 꿈은 슬픈 노래가 되어 순탄치 않은 인생을 두루 다 겪으면서, 마침내 알아차릴 것을 모두 꿰뚫게 되었다. 그 때문에 그는 쓴웃음 짓는 것을 포기하고, 냉소冷笑로 인생을 직면했던 것이다.

 

세상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구속을 받지 않고 사랑에 눈먼 다정다감한 사람이, 천리天理를 가지고, 사람의 욕망을 없애는 그런 환경 안에서 얼마나 곤란했을 것인가!

 

그러나 탁월한 인재는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모종의 형식으로 우뚝 일어났다. 모든 길이 다 막혀서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는 길을 버리고 황야로 도망쳐서 절대로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은 것이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술은 --- 막다른 골목에 이른 자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고의 불후의 명저를 창작하여 남겼다.

 

그렇지만, 우리는 작자의 생년生年, 졸년卒年, 기타의 저술, 심지어 낳아준 부모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확실하게 알 방법이 없는데, 이것은 절대적인 비극이다!

 

홍루몽 제 7회 : 왕희봉王熙鳳이 녕국부의 장례를 돕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가용賈蓉의 아내 진가경秦可卿이 중병에 걸려, 백방으로 치료했으나 호전되지 않았는데, 왕희봉은 평소에 그녀와 대단히 친했기에 매우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밤 왕희봉은 꿈속에서 진가경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그녀에게 고하기를, 녕국부의 진가경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진秦 씨는 평상시 사람들을 잘 대하고 총명하며 현명하고 지혜로웠는데, 위아래 사람들 모두 그녀가 젊어서 요절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시아버지 가진賈珍은 특히나 더욱 애통해 했는데, 집안의 모든 재산을 장례를 위해서 써도 하나도 아까울 게 없다고 했다. 그는 봉저를 찾아와서 그녀에게 장례에 관한 집안 일 일체를 맡아 처리해줄 것을 부탁했다.

 

집안일을 맡은 봉저는 하인들에게 대단히 엄격하게 대했는데, 이튿날 새벽에 봉저는 모든 하인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기왕에 내게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니 내 말에 따라 일을 행할 것인데, 한 치의 잘못이라도, 일체 엄하게 처리할 것이다.”

 

말을 마치고, 하인들을 몇 명씩 나누어 조를 짜서, 각 조에서 한 가지씩 일을 책임지고 맡게 했는데, 잃어버리거나 혹은 기물을 훼손시키게 되면, 그 책임 맡은 조에서 배상하게 했다.

 

내승來升 씨 댁에게 감찰의 책임을 맡기고, 또 출근 시간을 정하여 매일 새벽에 시간에 맞춰 집합해서 출석을 점검했다.

 

그날 아침, 봉저가 출석을 부를 때, 친지와 귀빈을 맞고 보내는 조에서 한 사람이 아직 오지 않자, 즉시 사람을 보내 찾아오게 했다. 봉저는 그 사람을 힐끗 보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는데 누가 감히 늦었나했더니, 너였구나! 네가 잘나서, 그래서 내 말을 안들은 거지, 그러냐?”

 

“소인은 매일같이 일찍 왔는데, 다만 오늘 아침에 좀 일찍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드는 바람에 한발 늦었으니 마님께서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네 말대로라면, 내일은 다른 사람도 깜빡 잠들 것이고, 그 뒷날은 또 내가 그럴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시간에 맞춰 오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본래 너를 용서해주고 싶지만, 내가 한번 느긋하게 하면, 다음번에 다른 사람을 관리하기 어렵게 될 터이니, 지금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봉저는 말을 마치고, 잠시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목청을 돋구었다.

 

“데리고 가서, 곤장 20 대를 쳐라!”

 

그러면서 또 녕국부의 목패木牌를 건네주며 말했다.

 

“감독 내승에게 일러라. 그의 1 개월의 월급을 주지 말라고 해라! 내일 또 그러면, 곤장 40 대를 때릴 것이고, 그 다음날은 60 대, 누구든지 맞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직 실수하기만 하면 된다! 자, 모두들 돌아가거라.”

 

사람들은 이때서야 봉저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깨닫고, 그때부터 감히 게으름 피우지 못했다.

 

며칠 뒤, 봉저는 위풍당당하게 사람들을 부리며 진 씨의 장례에 대한 일을 마치고, 만두암饅頭庵에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노비구니 정허淨虛 스님은 일찍부터 방 2 개를 청소해 놓고, 봉저를 암자로 맞아들였다. 정허가 말했다.

 

“제게 한 가지 일이 있어, 댁으로 마님을 찾아뵈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봉저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정허는 일의 경과를 다음과 같이 전부 다 말했다.

 

원래, 정허는 예전에 장안長安의 선재암善才庵에서 비구니로 있었는데, 장張 씨 성을 가진 대 부호가 자주 선재암에 돈을 시주했었다. 이 부호에게는 금가金哥라는 딸이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암자에 향을 사르러 왔다가 장안부의 지사나리의 나이 어린 처남 이아내李衙內를 만나게 되었다. 이아내는 보자마자 금가의 미모에 첫눈에 반해, 사람을 보내 장 씨 댁에 청혼을 했다. 그 장 소저는 이미 전임 장안 수비守備(명·청 시대의 무관의 명칭임)의 아들과 정혼하여, 곧 택일하여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아내는 여전히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권세에 의지해, 반드시 금가와 결혼하려고 했다. 장 씨 집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수비 집에서는 장 씨 집에 와서 다짜고짜로 욕을 해대며,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한다고 하며, 결단코 납폐를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하여서, 두 집안은 소송을 하게 되었다. 부호 장 씨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이 나 사람을 보내 연줄을 찾아, 고집을 부리며 소송에서 이겨, 납폐를 돌려보내서, 딸을 이아내에게 시집보내려 했다. 장 씨 집은 이전에 이 비구니와 내왕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이 일이 성사된다면, 장 씨 집에서는 가부에 사례를 할 것이라는 등의 얘기였다..

 

봉저가 말했다.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그냥 둘 수가 없겠는 데요.”

 

노비구니가 말했다.

 

“가부에서 이 일을 관여치 않으시면, 장 씨 집에서는 가부가 시간이 없다고 여길 겁니다. 댁에서 이런 일을 처리해 주시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봉저는 이 말은 듣고 흥미를 금치 못하며, 노비구니에게 말했다.

 

“저승의 지옥에서 응보를 받는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고, 나는 어떤 일이든지, 한다고 말하면 반드시 해요. 장 씨 집에게 3천 냥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말을 해보겠어요.”

 

노비구니는 듣고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봉저가 말했다. “내가 돈을 탐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이 3천 냥은 보내는 하인에게 줄 여비에 불과해요. 나는 한 푼도 필요치 않아요.”

 

노비구니는 얼른 맞장구를 쳤다.

 

“이왕에 그러하니, 내일 바로 마님께 폐를 끼치겠습니다.”

 

봉저가 말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지 보셨죠? 언제 잠간이라도 틈이 나던가요? 그러나 기왕에 응했으니, 당연히 빨리 해결을 해야겠네요.”

 

다음날, 봉저는 이 일을 살그머니 하인 내왕來旺에게 처리하라고 보냈는데, 내왕은 서둘러 사람을 찾아 대신 편지 한 통을 써서, 밤을 도와 장안으로 가서, 가련賈璉의 명의로 장안절도사 운광云光에게 친히 일을 처리하도록 했다.

 

운광은 내내 가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부에서 편지를 가지고 온 것을 보자, 어찌 처리를 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당장에 답장을 썼다.

 

수비는 운광의 권세가 두려워, 할 수 없이 울분을 참으며 아무 말도 못하고 납폐를 돌려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권세에 의지해 재물을 탐내는 장 씨의 딸 금가는 의를 알고 정이 많았다. 금가는 부모가 퇴혼을 한 것을 알고서, 삼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 수비의 아들도 금가가 목을 맸다는 소식을 듣고, 그도 역시 강물에 투신하여 죽고 말았다. 두 집안사람들은 자식과 재물을 다 잃고, 이득을 본 사람은 봉저 한 사람이었으니, 3천 냥의 은자는 그녀의 허리춤에 있는 돈주머니로 들어갔다.

 

제 6 회 : 원춘元春이 친정을 방문하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보옥寶玉의 누나 원춘元春이 현덕비賢德妃에 봉해졌을 때, 두 집안의 어른들은 상의하여, 두 저택 사이에 길이가 3.5 리里(500 미터를 1 리로 했음) 정도의 대관원大觀園을 지어 원춘이 친정집에 오게 되면, 부모에게 인사드리는 성친省親(친정에 와서 부모를 문안함) 별장의 장소로 삼기로 했다. 그리하여 각종 공인들이 조수처럼 집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1 년이 지났을 때, 가부의 성친 별관이 낙성되었다. 황제는 정월 대보름날을 가비賈妃의 성친으로 비준해 주었다.

 

정월 15일이 되자, 그날은 아침 일찍부터 한 떼의 인마가 가부에 왔는데, 태감 여덟 명이 담황색의 봉황이 수놓인 금빛 나는 큰 가마에 바짝 붙어서 느릿느릿 걸어왔다.

 

가모는 사람들을 데리고 얼른 꿇어 엎드렸다. 귀비 마마 가원춘은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봤는데, 대관원 안에는 오색찬란한 연기가 맴돌고 있는데, 말할 수 없이 태평해 보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가비賈妃는 가모의 거처로 가서 집안 식구들의 인사를 받았다. 원춘은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걸어와, 한손으로는 가모를 부축하고, 또 한손으로는 왕 부인을 부축했다.

 

세 사람은 가슴속에 담아둔 말은 있는데도 오히려 말을 못하고 그저 서로 바라만 보며 눈물만 흘렸다. 형邢 부인, 이환李紈, 봉저鳳姐와 영춘迎春 자매들도 옆에 빙 둘러서서 아무런 말없이 눈물지었다.

 

가정賈政이 가모賈母의 거처 문 앞에 서서 커튼 밖에서 문안 인사를 했다. 원춘은 커튼 사이로 눈물을 머금은 채 부친에게 말했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비록 조악한 차에 맛없는 밥일지라도, 아침저녁으로 모여서, 가정의 단란함을 누릴 수 있지만, 현재 저는 비록 지극한 부귀를 누리고 있지만, 골육과는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무슨 의의가 있겠습니까!”

 

가정은 머릿속에 부귀영화의 저속한 생각이 가득 차 있어, 딸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원춘의 말을 듣자, 도리어 군신간의 공경하는 말을 하며, 원춘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황제를 잘 모시라고 했다.

 

원춘이 또 물었다. “보옥은 어째서 오지 않았습니까?”

 

가모가 대답했다. “말씀이 없어,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춘은 빨리 그를 데리고 들어오라고 하며, 보옥이 앞에 오기를 기다려, 황급히 그의 손을 끌어당겨 가슴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전보다 키가 많이 컸구나.....”

 

그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눈물이 빗방울마냥 떨어져 내렸다. 원래, 보옥은 어렸을 때 원춘과 가장 가까웠는데, 두 사람은 비록 누나와 남동생이지만, 기실 모자지간이나 같았다.

 

원춘은 보채와 대옥 등을 접견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원춘은 또 대관원의 몇 군데 가장 아름다운 곳에 이름을 하사했다.

 

보옥이 지은 “소상관瀟湘館”, “형무원蘅蕪苑”, “이홍원怡紅院”, “완갈산장浣葛山莊” 등의 4 군데 아름다운 장소의 이름을 가지고 오언률시五言律詩를 짓게 했는데, 가비 자신이 보옥이 어렸을 때 고심하여 가르친 것에 대하여 위안을 삼았다.

 

웃고 말하는 동안에, 원춘이 궁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 원춘은 떨어지고 싶지 않으나 식구들과 고별을 고하고,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가마에 올라 궁으로 돌아갔다.

 

제 5회 유劉 노파가 영국부를 방문하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중국어 홍루몽 통행본(보급형)"은 1,605 페이지에 달하나, 여기에는 홍루몽을 읽지 않은 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120회분을 26회로 줄여 대강의 줄거리만 소개합니다)

 

가부의 먼 친척이 되는 유 노파가 손자를 데리고 다니러 왔는데, 가모는 그녀를 집에 며칠간 머물게 했다. 밥을 먹으면서, 유 노파는 내내 사람들을 웃겼다.

 

유 노파는 도성의 교외에 살고 있는 딸네 집에 같이 살고 있었다. 사위는 이름이 구아狗兒라고 하는데, 그의 선조가 예전에 왕 부인의 부친 밑에서 하급 관리를 지낼 때에 왕 부인의 부친을 숙부로 삼았던 것이다. 구아의 조부는 이미 세상을 떠나서, 수아는 왕 씨 댁과 이미 몇 년째 왕래를 끊고 지내왔다.

 

구아는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들은 판아板兒, 딸은 청아靑兒이고, 그들은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유 노파는 이런 형편을 보고, 왕 부인의 집과 왕래를 하려고 서울로 들어 가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날, 외손자 판아를 데리고 영국부에 도착한 유 노파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주서 댁을 찾았다.

 

주서 댁은, “요즘 집안 살림은 연蓮 마님이 하고 있으니, 제가 마님께 모셔다 드릴 게요”라고 말했다.

 

그 처소로 들어가자, 온 몸에 보석으로 치장을 한 연 마님은 주머니 난로의 재를 휘젓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주서 댁이 데리고 들어온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쳐다봤다. 유 노파는 여러 번 절을 하며, 왕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연 마님이 웃으며 말했다.

 

“친척 간에 자주 왕래를 하지 않으면, 소원해지기 마련이지요. 아셔야할 것은, 그쪽에서 우리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멀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모르고 계신다는 거예요.”

 

유 노파는 연거푸 말했다.

 

“저희가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와서 뵙기가 어려웠어요. 여기에 오려고 해도, 아무 것도 고모님께 드릴 게 없었어요.”

 

그 말을 들은 연 마님은 웃으면서 주서 댁에게 왕 부인에게 보고했느냐고 물었다. 주서 댁은 몸을 돌려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마님께서는, 오늘 시간이 없으니, 연 마님이 모시라고 하십니다. 말씀하실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얀 마님께 하시랍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 노파에게 눈짓을 했다. 유 노파는 주서 댁의 뜻을 알아챘는데, 막상 생각한 것을 말로 하려니 얼굴이 붉어졌지만, 염치불구하고 말했다.

 

“오늘 제가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집안에 먹을 게 아무 것도 없고, 날은 추워오는데 솜옷조차도 지을 돈이 없어서예요.”

 

연 마님은 알아듣고 말했다. “더 말씀 안하셔도, 잘 알겠어요.”

 

그리고는 그들을 동쪽 방으로 데려가 밥을 먹게 하라고 했다. 얼마 후, 식사를 다한 유 노파를 연 마님이 불렀다.

 

“우리같이 대부호는 밖에서 보면 기세가 드높아 보이기는 합니다. 의외로 대부호에게도 큰 어려움이 있어요. 마침 제게 20 냥의 은자가 있으니, 적다고 생각마시고, 우선 받아가지고 가서 쓰세요.”

 

유 노파는 그녀가 먼저 어려움을 얘기하는 것을 듣고, 주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는데, 나중에 은자 20 냥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가을이 되자, 유 노파는 판아를 데리고 두 번째로 영국부를 찾아와, 봉저를 만나고 또 가모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가모는 그녀의 농촌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여, 그들에게 며칠간 머물라고 했다.

 

아침에 유 노파는 영국부를 돌아보다가 도향촌稻香村에 들어서자, 하녀들이 큰 쟁반을 들고 서 있었는데, 여러 가지 색깔의 국화에 쟁반에 놓여 있었다.

 

가모는 자기 머리에 국화 한 송이를 꽂고 나서, 유 노파에게도 권했다. “와서 국화를 꽂게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저는 쟁반 위에 있던 꽃을 어수선하게 그녀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가모와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몸을 흔들어 대며 웃었다.

 

유 노파도 웃으며 이죽거렸다.

 

“내 머리가 언제 호사를 해봤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좀 면목이 서겠습니다.”

 

그 말에 또 사람들은 웃었다.

 

“유 할머니, 어서 빼버리세요. 마님이 요정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나 봐요!”

 

가부 식구들과 밥을 같이 먹는 자리에서, 유 노파는 젓가락을 집었지만, 매우 묵직해서 잘 쓸 수가 없었다.

 

“이 젓가락은 우리 집의 삽보다 더 무거우니, 이것보다 더 강한 게 있겠습니까!”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원래, 이것은 봉저가 일부러 그녀에게 금으로 상감한 젓가락을 주어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봉저는 또 비둘기 알 한 그릇을 유 노파의 상에다 갖다 놓았다.

 

가모가 “먹어보게나”하고 말하자 유 노파는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유 할멈은 배가 소같이 커서, 늙은 암퇘지 한 마리를 먹어도 끄떡없습니다요.” 말을 마치고는 볼이 땡땡하게 음식을 집어넣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잠시 생각해 보고는 상하 사람이 모두가 “하하하”하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사상운史湘云은 참지 못하고, 입안에 든 차를 내뿜고 말았고, 대옥은 옆구리가 결려 탁자에 엎드려 내내 “아이구”소리를 연발했고, 보옥은 이미 가모의 가슴에 안겼으며, 설 부인도 참지 못하고, 입속에 든 차를 탐춘의 치마에 뱉고 말았고, 석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유모에게 가서 “창자 좀 문질러 줘”라고 했다. 오직 봉저와 원앙만이 웃지 않고, 유 노파에게 요리를 들라고 권하고 있었다.

 

유 노파는 젓가락을 잡고 쓰기가 쉽지 않자, 비둘기 알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엄마 닭은 준수한데, 낳은 알은 이렇게 작으니, 저는 먼저 이걸 하나 먹겠습니다요!”

 

봉저가 웃으면서 말했다.

 

“1 개에 은자 1 냥짜리이니, 빨리 드세요. 식으면 맛이 없어져요.”

 

유 노파는 젓가락을 내밀어 집으려 했으나, 어찌 집을 수가 있겠는가! 한참을 온 그릇을 다 휘저어서, 힘들게 하나를 집어 들어, 막 입 앞에까지 왔는데, 그만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유 노파가 얼른 젓가락을 놓고 집으려고 하자, 벌써 누군가가 집어 내버린 후였다. 유 노파는 탄식을 했다.

 

“1 냥 은자가 쨍그랑 떨어지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밥 먹을 생각이 없어져버려, 모두들 그녀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가모는 그녀가 이렇게 재미있게 하자,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져 자기의 요리까지도 그녀에게 건네주며 먹으라고 하고, 또 여러 가지 요리를 판아에게도 가져다주라고 했다.

 

밥을 먹고 나서, 가모는 또 사람들을 후원으로 데리고 나가 밖에서 즐겼다.

 

유 노파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날, 시녀 평아平兒는 108 냥의 은자와 몇 필의 비단을 그녀에게 주며, 당부의 말을 했다. “

 

“이 은자들은 우리 마님과, 왕 부인이 주시는 겁니다. 가지고 가셔서, 이것을 자본으로 해서 장사를 하시거나, 토지를 좀 사시거나 하시고, 이후로는 친지들에게 다시 기대지 마세요.”

 

평아의 이 말에 유 노파는 아미타불을 외며, 가모와 왕 부인, 봉저에게 일일이 하직 인사를 했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반응형

댓글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