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은 다른 별명이 있는가?
우리가 『홍루몽』과 관련 있는 글을 읽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홍루몽』을 논할 때에, 때때로 “석두기石头记” 세 글자를 보거나 듣게 된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홍루몽』 제 1 회에 이런 설명이 있다 : ‘이로부터 공공도인空空道人으로 인하여 색色을 보고, 색에서 정情이 생기나니, 다시 정이 전해져 색으로 들어가면, 자연히 색에서 헛됨을 깨닫게 되어서, 스스로 이름을 바꾸어 정승情僧이라고 하고, 제목을 “석두기”에서 “정승록清僧录”이라고 고쳤다. 동로东鲁의 공매계孔梅溪가 다시 제목을 “풍월보감风月宝鉴”으로 하였다. 그 후에 조설근이 붉은 초가집에서 슬퍼하며 책을 펼쳐 읽은 지 10 년 동안에, 보태고 삭제하기를 5 차례나 하여서, 목록을 만들고, 장회를 나누어, 제목을 “금릉십이차金陵十二钗”라고 붙였다.’
조기에 나온 한 필사본 중에서, “정승록”에서 몇 마디가 더 언급되었는데, ‘오옥봉呉玉峰에 이르러 제목을 『홍루몽』이라고 붙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홍루몽』이 결코 이 책의 유일한 명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원고를 만드는 초기에 초기에, 조설근과 그의 친구들이 이 책에 약간의 명칭을 설계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홍루몽”이란 이름을 취했는데 (이것은 주로 정위원程伟元의 각본刻本에서 효과를 주었다), 다른 것은 별명이나 이름을 더 늘이는데에 사용하였다. 이런 명칭들도 의미가 매우 있으며, 간략하게 진술해도 무방하다.
“석두기”로 이름을 지은 것은 이해하기가 좋은데, 이 책은 본래 하늘을 메우는데 쓰이지 못한 돌맹이에 가탁假托하여 세상을 경험하게 된 “석두기”를 쓴 것인이고, 게다가 서술한 인물들은 또 금릉성에서 으뜸가는 여자들이었다.
금릉金陵, 즉 지금의 남경은 옛날에 손권孙权이 건축한 성인데 공교롭게도 이름이 “석두성”이었다. 석두가 기재한데다가 또 석두성에서의 일을 기재하여,“석두기”란 이름을 교묘하게 취득한 것인데, 그래서 조기에 전해진 판본에는 『석두기』나 『지연재중평석두기脂砚斋重评石头记』란 제목이 많다.
판본은 모두 “홍루몽”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다. 홍루는 여자들이 화려하게 거주하는 집의 대명사이다. 제 5 회에, 가보옥은 그런 홍루紅樓(진가경秦可卿의 침실 안)에서 태허환경太虛幻境의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들은 십이지곡十二支曲의 이름도 “홍루몽”이다.
이 십이지곡은 책의 주요 인물의 운명과 결말의 요점을 집어서 예시한 것이다. 작자 스스로“몽환을 한바탕 겪은 적이 있다”라고 말해서, 그에게 닥친 큰 변화를 연상하게 하였는데, 그렇다면 “홍루몽”의 책이름도 심오한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겠는가?
조설근은 생전에 이미 “홍루몽”이란 책이름을 사용한 흔적이 선명한데, 정위원이 이 이름을 판본에 취하여 풍미의 기세를 얻게 되어서, 사람들은 오로지 “홍루몽”이란 이름만 알고, “석두기” 등과 같은 이름은 그다지 모르게 된 것이다.
“풍월보감風月寶鑑”은 이 책이 가장 먼저 사용한 이름인 것 같은데, 조기 필사본의 평어 중에, ‘설근雪芹이 예전에 “풍월보감”이란 책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그 제당촌第棠村의 서문에서 언급하였다.
어떤 이는 『홍루몽』은 바로 “풍월보감”의 옛 원고에 첨삭을 더하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맞는지 안 맞는지에 상관없이, 서둘러 정설로 하기는 어려운데, 『홍루몽』 제 12 회에 보면, “정면으로 비출 수가 없어, 다만 그의 뒷면을 비추는 거울”로, 마지막에 가서贾瑞의 목숨이 요구된 것이다.
풍월이란 당시의 양성관계兩性关系 즉 연애의 대명사로, 『홍루몽』의 전前 제 20 회에 “풍월”에 관한 일을 확실히 많이 묘사하고 있는데, 그 예로 가보옥과 진가경, 보옥과 습인, 가련과 왕희봉, 가진과 진가경, 진종秦种과 지능智能 등등이 있다. 이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바로 “풍월보감”에서 삭제하지 않고 남겨놓은 흔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외에, “정감록情僧录”과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도 이름으로 쓰려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러나 정식으로 채용하지 않은 것 같다.
위에 조설근이 채용한 이름과 채용하려고 한 적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홍루몽』은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금옥록金玉缘”의 명칭을 쓴 적이 있었다. 『홍루몽』이 청대淸代에서 처벌을 받는 금서禁书 명단에 올랐기 때무네, 공개적으로는 인쇄될 수 없었다. 서적상들은 이익을 얻기 위하여, 『홍루몽』을 『금옥록』으로 몰래 개명하여 인쇄하였는데, 이것 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红楼梦》为什么有那么多别名?细品不简单
『홍루몽』의 전前 다섯 회의 구성에는 어떤 오묘함이 있나?
앞의 논제에서 『홍루몽』은 제 6 회가 “첫머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은 황당하게 보이나,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인다. 『홍루몽』의 전前 다섯 회는 책 전체의 대강이다.
조설근은 “환상, 듣기, 보기, 서술과 노래”의 5 종의 다른 표현 수단으로 나누어 운용하여, 창작의 연고, 인물의 관계, 지리적 위치, 줄거리의 개요 등을 설명하여, 높은 건물을 건축하고, 전체의 국면을 총괄했다. 그렇게 조설근의 견식이 깊고 높음과,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말하는 요점을 체험시키고, 또 독자로 하여금 구체적인 줄거리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독자의 뱃속에 몇 가지 높은 견식을 진입시켰다.
그리고 나서 제 6 회에서부터는 계속해서 자세한 필력으로, 끊임없이 수다스럽게 묘사하여, 영국부 안의 복잡하고 풍부한 생활의 화면을 충분하게 묘사하고 전개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제 6 회의 그 일단의 내용에서 “첫머리”라고 말한 것인데,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제 6 회 이후는 말하지 않고, 다만 전前 다섯 회의 구성의 안배에 대해 말하겠다.
작가가 제 1 회에 쓴 것은 주로 고소姑苏의 낙향관리인 진가甄家의 “소영고성쇠小荣枯盛衰”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견사은은 본래 집안 형편이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인데, 자연 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재앙으로 천천히 당시의 세상 모습을 노출하고, 마지막에는 절름발이 도인과 같이 표연히 떠나고 만다.
진가의 “소영고성쇠”는 가부贾府의 “대영고성쇠”의 축소판으로, 작가는 허와 실의 변화를 사용하여 상징적인 필법으로 가부의 번영이 극에 달하여 몰락하는 결말을 암시하였는데, “나무가 넘어지니 원숭이들이 흩어지다”의 결말과 주인공 가보옥이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다”로 표현했다.
진사은이 주석한 ⌜호료가好了歌⌟는 이 작품 전체의 주제사상의 예술적인 개괄이기도 하다. 이 1 회는 “료了”로 “호好”를 해석하고, “진甄”으로 “가贾”를 비유했는데, 척료생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상대방를 주해하여 이것을 묘사하여서, 눈은 돌아가는 기러기를 전송하며 손으로는 오현금을 뜯듯이 사물의 처리방식이 안팎으로 잘 배려되었다.”
제 2 회에서 가우촌은 냉자흥冷子兴을 끌어내어, 냉자흥의 입을 빌려 녕국부와 영국부의 주요 인물을 소개하였는데, 그 회 앞에 있는 지비의 평어는 이러하다:
‘영국부의 전체를 말하는데, 집안이 크고 사람은 많아서, 만약에 작가가 하나하나 서술해 나가면, 한 두 회의 서술로는 다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 어떤 내용으로도 못할 것이다! 일부러 냉자흥 한 사람을 빌려 사용하여, 간략하게 대강을 소개하게 하여, 독자의 마음속에 이미 영국부를 마음에 두게 하고는, 그리고 나서 대옥과 보채 등을 몇 차례 부딪치게 하여, 마음과 눈에 다 담을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작가는 화가가 색칠하듯이 세 번을 칠했던 것이다.”
조설근이 세 번씩 물들이는 필법을 쓴 것에 대한 지연재의 그 비평은 매우 뜻 깊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는 냉자흥의 입을 빌려, 독자로 하여금 심중에 이미 영국부를 마음에 두게 하고 나서, 제 3,4 회 두 곳에는, 가우촌의 벼슬길의 번영성쇠를 줄거리로 하여, 임대옥과 설보차 두 사람을 천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가부로 끌어 들여, 임대옥의 눈을 빌려서 녕국부와 영국부의 건축 격식과 영국부 인물의 생생한 초상을 그려내고, 문지기의 “호관부护官符”를 빌려서 가贾, 설薛, 왕王과 사史 씨의 4 대 가문을 비아냥거리며, 그 뒤섞인 관계로 그들이 누리는 영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여기에 이르니, 무대배경은 이미 골격이 갖추어지고, 주요 인물도 이미 두드러진 형상으로 등장시켜서 회금도옥怀金悼玉의『홍루몽』은 정식으로 연출된 것이다.
이때, 작가는 또 가보옥을 꿈속에서 태허환경으로 가게 안배하였다. 제 5 회에 연극 줄거리의 설명서에서, 십이차十二钗의 정正, 부副와 우부又副의 3 종류의 책冊과 『홍루몽』십이지곡十二支曲을 통하여, 작품 전체의 중요한 줄거리와 중요한 인물의 운명과 결말을 설명하였다.
이렇게 전체를 개괄한 후에, 작가는 필묵을 힘차게 질주하여, 아주 상세하게 실마리를 찾아, 가볍게 북을 두드리고 천천히 노래하여, 영국부 내의 일상생활을 안배하여 묘사하였다.
이것으로 조설근이 전前 다섯 회의 구성의 안배에 대해 고심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높은 건축물을 구성하고, 원근으로 상응하게 하고, 구름과 물이 흘러가듯이 쓰고, 교묘하게 자연스럽게 하여서, 척서본의 제 2 회의 앞에는‘용과 코끼리의 힘을 갖지 않고는, 그 누가 할 수 있겠나!’라는 평어가 보인다.
이 다섯 회는 우리가 책 전체를 파악하고,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데 큰 작용을 한다. 그러나 처음 읽는 독자 중에는 『홍루몽』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부족으로 이 다섯 회가 조금 혼란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갑자기 남쪽에 있는가 하면, 홀연 북쪽에 있기도 하고, 갑자기 허구였다가 돌연 사실이었다 하여, 들여다볼 수 없게 겹겹으로 막혀 있어서, 그래서 어떤 이는 여기에서 책을 포기하게 되니, 정말로 안타깝다!
『홍루몽』을 읽는 것은 마치 감람나무 열매를 먹는 것 같아, 처음 한입 먹으면 약간 떫은데, 참맛을 보면 그 기묘함이 무궁하다. 바로 임대옥이 농담한 말에 대해 설보차가 한 말과 같다: ‘임대옥의 말을 자세히 생각해 보니 좀 담담하기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도리어 재미있더군.”
우리는 조금 인내심을 가져도 무방하고, 일단 헷갈리는 것을 벗어나게 되면, 훌륭한 것이 많아서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고 느끼게 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와같은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경진본庚辰本”과 “척서본戚序本” 등은 무슨 뜻인가?
최초의 『홍루몽』은 손으로 필사하여 여러 제목의 『석두기』로 80 회만 전해졌는데, 근거에 의하면 한 부에 가격이 “황금 수십 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1791년 건륭 56년부터 120 회의 활자본 『홍루몽』이 세상에 나왔는데, 이 필사본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서, 심지어 사람들은 원본이 원래부터 120 회인 줄 알고 있기도 하다.
1911년 상해에서 경서와 사서를 발간하는 정서국正书局의 사장 적보현狄葆贤이 한 벌의 80 회 필사본 『석두기』를 구입하였다. 윗면에 건륭 때 사람 척료생戚蓼生이 쓴 서문이 있고, 회전回前과 회후回后에 모두 비어가 두 줄로 사이에 넣어져 있으며, 『국초초본원본홍루몽国初钞本原本红楼梦』을 제목으로 하여 석판 인쇄로 발행한 것이다.
이것은 『홍루몽』의 필사본으로는 근대에 들어 제일 먼저 발견되어 인쇄된 것이다. 그러나 필사본의 평어에는 서명이 없어, 적보현은 자기도 전前 40 회의 책 페이지의 위쪽 여백에다 비어를 더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비어들은 모두 후인들이 더하였다고 오해하여, 그래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1927년 호적胡适이 상해에서 필사본 한 벌의 잔여분을 또 발견하였는데, 제목은 『지연재중평석두기脂砚斋重评石头记』로, 대흥大興에 있는 유전복刘铨福이 소장한 것이었다.
원본 80 회의 잔본 16 회로, 윗면에 “지연재”라는 서명으로 빨간색으로 평어와 주해를 쓴 것인데, 제 1 회에 “지연재가 갑술년(건륭 19년, 1754년)에 베끼고 검토하여 다시 비평하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와 같은 발견으로 『홍루몽』연구에 최고의 가치가 있는 하나의 영역을 개척하게 되었다. 나중에 또 잇따라 이런 몇 개의 조기필사본을 발견하여, 구별과 명칭상의 편리를 위하여, 연구가들은 그들을 분별하여 간단한 명칭을 취하였다.
위에서 말한 정서국이 석인石印한 척료생이 서문을 쓴 책은 “척서본戚序本” 혹은 “유정본有正本”으로 부르고, 호적이 발견한 “갑술사열재평甲戍抄阅再评”이라고 쓰인 책은 “갑술본甲戍本”이라고 명칭을 붙였다.
지금까지, 발견한 『홍루몽』의 12 가지 종류의 필사본은 각종 명칭으로 부르던 이름이 있는데, 아래에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기묘본已卯本, 원래는 강희의 제 13 번째의 아들 이친왕怡亲王 윤상允祥의 가정소장본(필사본에서는 아들 이름의“상祥”자와 홍효弘晓 “효晓”자를 피함)인데, 제목도 『지연재중평석두기』로 지었고, 책 속에는 “기묘년(건륭 24년, 1759년) 동짓달 정본”이라는 책의 머리말이 있다. 이 책의 34 회의 회말回末에 “『홍루몽』 제 34 회 끝”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조설근이 생전에 『홍루몽』을 한때 책 이름으로 지었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경진본庚辰本, 제목은 같고, 책 속에 “경진년(건륭 25년, 1760년) 가을 정본”이라는 책 머리말이 있는데, 조설근의 생전 필사본 중에 비교적 완전한 한 부(78회가 남아 있는데, 64회와 67회가 없음)이다. 인민문학출판사의 1982년 전前 80회 교주본校注本은 바로 이것을 원본으로 하여 만든 것이다.
갑진본甲辰本, 『홍루몽』을 제목으로 한 완전한 80 회이다. 1953년 산서山西에서 발견하였는데, 책 앞에 몽각주인梦觉主人라는 사람의 “갑진년(건륭 49년, 1784년) 음력 9월 중순”이라고 쓴 서문이 있어서, 또 “몽서본夢序本이나 “몽각본夢觉本이라고 부른다.
몽고본梦稿本, 가장 이른 소장자는 양계진杨继振인데, 책 제목은 『난서태사수정홍루몽고兰墅太史手定红楼梦稿』(난서는 고악高鶚의 자)이고, 영인할 때 제목을 『건륭사본백입회홍루몽고乾隆抄本百廿回红楼梦稿』라고 바꿨는데, 유일한 120 회 건륭필사본으로, 정위원程伟元이 간행하기 전에 이미 120 본으로 전해진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 1960년에 북경에서 발견된 몽고왕부蒙古王府의 소장본이 더 있는데, 간략하게 “몽부본夢府本”이라고 부르고; 책에 서원휘舒元炜가 건륭 기유년己酉年(1789년)에 서문을 쓴 “서서본舒序本”(혹은 “기유본已酉本”)이 있다.
쿠알양덕채부库尔梁德采夫가 러시아로 가져간 “열녕격륵소장본列宁格勒藏本”과 남경도서관에 소장된 “남도본南图本도 척료생이 서문을 쓴 것이다.
원본은 이미 유실되었으나, 겨우 비어가 남아 있는 양주扬州 정응곤靖应琨의 소장본(약칭 “정본靖本” 혹은 “정장본靖藏本”) 및 고작 2 회의 잔여본만 있는 “정진봉郑振锋”의 소장본이 있다.
그 후에 어떤 연구가는 이런 命名 방법은 과학적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다른 한 벌의 계열화된 명칭을 취하였다.
예를 들면: 갑술본은 “지전본脂铨本”, 기묘본은 “지이본脂怡本”, 경진본은 “지경본脂京本”, 갑진본은 “지진본脂晋本”, 척서본은 “지척본脂戚本”, 몽고본은 “지고본脂稿本”등등인데, 그러나 보편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다.
“지비脂批”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나?
이 지비脂批는 하나의 큰 제목이 될 수 있는데, 거침없이 써 내려가 방대한 문장의 큰 책 한 권을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는 잘게 쪼개어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고, 임대옥이 농담하는 방법으로 할 수 밖에 없는데, “필요한 것을 긁어모으거나, 많은 것은 삭제하거나”로 그 개략의 줄거리를 소개하겠다.
1. 지비에서 『홍루몽』이 생활을 근거로 하여 창작한 것이 드러나다
『홍루몽』의 비평가는 『삼국연의』의 평점자 모종강毛宗岗과, 『수호전』의 평점가 김성탄金圣叹과는 세대가 같지 않다. 그와 조설근은 친한 친구로, 작가의 생활 경력에 대하여 대단히 잘 알고 있는 것이 평어(批语) 속에 자주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13 회에서 쓰기를, 진가경秦可卿이 왕희봉王熙鳳의 꿈에 나타나‘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들이 다 흩어진다’라고 했는데,
지비脂批에서는:‘“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들이 다 흩어진다”는 말이 지금도 여전히 귀에 남아 있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5년을 애달파 하고 슬퍼하였으니,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구나!”’라고 하였다.
제 17 회와 18 회에서는 쓰여 있기를:‘그 보옥은 학당에 들어가기 전에, 3,4 살에 이미 가비贾妃의 손에 이끌려 말로 배워서, 책 몇 권과 글자 몇 천자를 알고 있었다.’라고 쓰여 있는데,
지비에서는:‘평어를 다는 사람이 받아 이것에 평어를 달 때, 큰 소리로 울고 말았다. 누이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안 그러면 어찌 폐인이 되게 두었겠소!’라는 평어를 썼다.
또 예를 들어 제 22 회에는:‘봉저鳳姐는 가모賈母가 떠들썩하게 노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재치와 유머가 있는 동작이나 말은 더욱을 좋아하시니, 『유이당의劉二當衣』를 낙점하였다’라는 문구가 있다.
지비에는:‘봉저는 연극을 낙점할 때에, 지연脂硯에게 적으라고 하였는데, 지금 그러한 것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라고 평어를 달았다.
제 38 회에 “그 자귀화를 넣어 술을 중탕한 주전자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다”에서,
지비는:‘슬프도다, 작가는 이미 20년이나 지났는데, 자귀화로 술을 빚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구나.’라고 말하였다.
이런 종류의 비어는 더 많은데, 책 중에 써있는 수많은 일은 작가와 비평자가 친히 경험한 것으로, 조설근이 창작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생활에서 경험한 것과 생활에서 느낀 것을 섞은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에 근거하면 지연재는 책 중에서의 가보옥이 확실하고, 조가曹家의 고지식하고 조금도 융통성이 없는 아무개인 것이다. 가보옥에게는 지연재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고 또 조설근의 그림자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도 있지만, 가보옥은 곧 가보옥으로, 그는 그 중에 지연재와 조설근을 포함한 많은 생활의 원형 속에 예술 형상을 개괄해냈다.
태허환경의 한 대련에서 말히기를,‘거짓이 진짜가 될 때 진짜 역시 거짓이니, 무위가 있는 곳에 유는 역시 무이다’라고 했으므로, 우리는 예술 창작과 생활의 진실을 같이 섞어 말하여, 조공曹公의 신묘한 글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지비에 『홍루몽』의 저작 정황이 드러나다
연도의 서명이 있는 가장 이른 지비의 하나는 갑술본甲戌本의 제 1 회의 책의 머리말에‘지연재가 갑술년에 베껴서 다시 평하였는데, 여전히 『석두기』를 사용하였다’라고 했는데, 건륭 19년 갑술년(1754년)에 조설근의 소설은 이미 원고를 완성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지연재가 제 2 차로 검토하고 평가를 하였다는 것은, 소설 원고를 사용했거나 다른 이름으로 된 것을 사용한 적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는데, 이때의 필사에는 여전히 『석두기』란 이름을 사용했다.
5년 후(건륭 24년, 1759년), 기묘본己卯本에‘지연재가 대략 4 번을 읽고 평한 적이 있다’라는 문구가 보이고, 그 기간에 조설근은 2 번 수정했다고 설명하였다.
다시 8 년이 지난 건륭 32년, 1767년에, 기홀수畸笏叟가 평어를 달았다:‘
예전의 비평을 아는 이가 적은데, 불과 몇 년이 안 되어 근계芹溪, 지연脂砚, 향재杏斋 여러분이 연달아 세상을 떠나, 현재 정해년丁亥年 여름에는 폐물 하나만 남았으니, 죽느니만 못하구나!’
당시에 조설근은 이미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그러나 평점가는 계속해서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던 것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7년이 지난 건륭 39년 1774년에,‘갑오년 8월의 눈물의 글’이라는 서명이 있는 한 원고의 평어가 있다:
“임오년 섣달 그믐날 밤에, 책을 완성 못하고, 근芹은 눈물이 다하여 서거하였다. 근은 눈물이 다하여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 역시 근의 죽음에 통곡하며 눈물이 다하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서명 연도가 있는 최후의 평어인데, 조설근이 세상을 떠난 시간(이것이 조설근의 사망 년도가 임오년이라고 말하는 직접적인 근거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그때 조설근은 사망한지 이미 10년이 되었다(“갑오년甲午年”을 “갑신년甲申年”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다).
조설근은 『홍루몽』외에, 한두 마디의 간단한 것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많은 『홍루몽』의 애호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미치고 싶게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비가 우리에게 조설근의 창작 년도를 알려 주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3. 『홍루몽』의 사상과 내용을 제시하였다
이런 종류의 비어는 기타의 평점가에게서도 늘 나오는 것인데, 그러나 지연재와 작가의 관계는 매우 깊어, 같은 성질의 비어도 다른 평점가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그 예로 서두에서‘조설근은 나중에 도홍헌悼红轩에서 책을 펼쳐 읽기를 10년, 증감하기를 5 차례나 하였다’라고 썼기 때문인데,
지비의 평어에는:‘만약에 설근이 책을 펼쳐 읽고 증감하였다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책에 있는 설자楔子(근대 소설에서 본 이야기 앞에 나와, 어떤 사건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따로 설명하는 절節을 말함)는 누가 지었단 말인가? 작가의 붓이 심히 교활하다고 하기에 충분치 않은가!’라고 하였다.
독자를 깨우쳐 이해시키기 위하여 조설근은 진실과 거짓이 섞인 필법을 썼지만, 작자에게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설근에 대해서 매우 깊이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천기天機”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또 17, 18 회에는 대옥이 보옥과 염낭을 가지고 말다툼하는 대목에서,‘화가 목에까지 치밀어 올라, 가득 고인 눈물이 굴러 내렸다’라고 했는데,
지비에는:‘원망이 극에 달한 것은 애정이 그만큼 깊은 것이다’라고, 독자가 대옥이 성깔을 부린다고 오해하는 것을 깨우쳐 주었는데, 이것은 바로 풍부한 감정심리를 가진 임대옥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26 회에서는,‘홍옥红玉이 듣고, 차갑게 웃었다’라고 쓰여 있다.
지비에서는 : ‘홍옥은 가슴 속에 억울하여 분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몸이 이홍원에 있어서 마음먹은 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니, 독자 여러분은 운아芸儿가 상사병에 걸렸다고 잘못 생각하지 마시라’라고 평어를 달았다. 이것 역시 홍옥의 사람됨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에 대담하게 평어를 쓴 것이었다.
4. 『홍루몽』의 예술적 수법에 대하여 제시하다
이런 종류의 평어는 지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작품 전체에 대한 창작 기법의 평론이 많다.
예를 들면, 제 1 회에, 석형石兄은,‘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 흥함과 쇠함 생기고, 또 흔적을 뒤따라 쫓아가는 것 역시 억지로 끌어다 붙이지를 않았다’라고 하였다.
지비에서는,‘일은 오히려 실제의 일을, 문장의 구성하여 서술하는 데는, 곡절曲折과 순역顺逆이 있게 하여 서로 어울리게 하거나, 감추기도 하고 보이게도 하여, 정正과 윤闰이 있게 하여서, 풀 속에 있는 뱀을 잘 안 보이게 숨겨 놓았다가, 반응을 빠르게 하여서, 한 번에 두 마리의 새를 잡았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게 하여, 구름 속의 용이 안개와 비를 만나는 것처럼, 마치 두 산이 대치하고 있는 듯이 해서, 주위의 것을 받침으로 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주체를 두드러지게 하고, 뒷면에는 분을 발라 치장하여 놓고, 여러 군데가 터지게 하여 감염되게 하는 등등, 기이한 창작 수법을 적지 않게 반복하였다’라고 평어를 썼다.
문장에 대한 평론이 많은데, 그 예로 제 15 회에서 녕국부에서 장례를 치를 때의 장면이다.‘봉 누이의 마차에서 멀지 않은 저쪽에서 두 마리의 말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모두들 일제히 뛰어 내렸다’라는 구절이 있다.
지비에서는,‘기세 있고, 우렁차며, 모양이 있고, 멋이 있다’라는 평을 썼다. 세련된 어구의 단언도 많은데, 예로 14 회에,‘소식을 전해들은 보옥은, 곧 원숭이를 봉 누이를 쪽으로 향하고, 즉각 비를 세워달라고 했다.’
지비에는 “후猴”글자 밑에다:‘시문의 어귀를 잘 다듬을 줄 알아서, 『석두기』 중에는 의외로 기묘한 데가 많이 있다’라는 평어를 달았다.
“지비”에서 우리는 지연재와 그의 평점자는 필사나, 교정이나, 평점의 업무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창작에도 참여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예로 정본靖本 13 회에 비어가 하나 있다:
‘⌜진가경음상천향루秦可卿淫丧天香楼⌟는 작가가 역사적 사실을 사용하여 쓴 것이다. 귀신이 되어 가부의 후사를 위해 봉저에게 두 가지 일을 부탁한 것인데, 어찌 존귀하게 영화를 누리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말의 뜻은 사람을 비감하게 하고 감복시켜 용서하겠다는 것이다. 설근에게 삭제하게 한 “유잠遺簪”(비녀를 떨어뜨리다),“갱의更衣”하(바람피우다) 부분은, “천향루”전체 10 쪽 중에서 4,5 쪽이나 차지하는데, 삭제한 것이다.’
조설근 원고 중에서 제 13 회의 원작 제목은 “진가경음상천향루”인데, 역사적인 기록으로 쓴 것으로, “유잠”과 “갱의” 등은 글의 분량이 4,5 쪽인, 나중에 지연재의 의견을 수긍하며 받아들여, 그 부분의 글을 삭제하였던 것이다.
어떤 것이 “지비脂批”인가? “지연재脂砚斋”은 무슨 뜻인가?
이 문제를 대답하려면, 반드시 먼저 연석砚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명나라 만력万历 연간에, 북경성 안에는 시화를 잘하는 설소소薛索索라는 유명한 기생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단연端砚(단계端溪의 벼루로 최상급의 벼루인데, 광동성의 단주端州, 지금의 조경肇庆에서 생산되어 유해한 명칭)에서 만든 한 윤기가 반지르르한 손바닥만한 벼루가 한 개있는데, 지연脂研(연砚과 음이 같다)이라고 이름을 짓고 애지중지했다. 거기에다 당시의 명사 왕치등王穉登이 쓴 시 한 수까지 새겨 놓았다.
나중에 전문가들이 보고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작은 벼루는 상등품은 아니나, 만약에 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아무도 그것을 언급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한편 1927년에, 상해탄上海灘에서 불완전한 한 부가 발견되었는데, 제목이『지연재중평석두기脂砚斋重評石頭記』라고 되어 있었다. 『석두기』의 이름은, 공부를 한 사람은 알 것인데, 정위원程偉元은 당초에 『홍루몽』을 조판하여 인쇄하면서, 서문에 분명하게 알도록, “소설 『홍루몽』의 본명은 『석두기』이다”라고 밝혔다.
“지연재”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와 같은 아호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아무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그가 『석두기』에 쓴 평어에 근거하여, 그가 조설근과 대단히 친밀한 관계이고, 아마도 조설근이 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그는 곧바로 필사하여 읽고 책에다 평어를 쓴 것 같았다. 책에 쓴 모든 사건은, 어떤 것은 그가 친히 경험한 것으로, 평어에 언제나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그의 신분에 관해서는, 어떤 사람은 그가 조설근의 숙부이거나 외숙이라고 생각하고, 사촌형제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조설근의 부인으로, 즉 책 중의 인물인 사상운史湘云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으나, 줄곧 정설은 없다.
이런 분분한 논쟁 중에, 엇갈린 부분이 바로“지연脂砚”에 대한 해설 부분이었다. 혹자는 “지脂”는 “연지胭脂”의 “지脂”이므로, 그것은 여성의 이름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혹자는 “지脂”는 “지옥脂玉”의 “지脂”로 주인主人은 당연히 남성이라고 하였다. “지연脂砚”은 단번에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1955년에 어떤 이가 사천성의 중경重慶에서 우연히 골동품 벼루 하나를 발견하고 상자를 열어보았는데, 본문의 시작에서 말한 바로 그 “지연脂研”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은“쇠로 된 신발이 닳도록 안 찾아본 데 없이 다 찾아,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이 벼루의 발견은 지연재의 신분을 분명하게 밝힐만한 진전은 가져오지 못했지만, 단 “지연재脂砚斋”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고는 분명해졌다고 하겠다. 원래 이 벼루가 유출된 후에 조가曹家가 몰락했는데, 그것을 매우 아끼던 조가의 어떤 이가 자기 서재의 이름을 “지연재”로 짓고, 그래서 그것을 호로 사용하여 『석두기』를 수정해서, 후인들이 “지연”이 어떤 것인가 하고 깊게 연구하는 풍파를 일으켰던 것이다.
“지연재”를 서술했으므로, “지비脂批”를 소개하기가 쉬워졌다. 소위 “지비”는 곧 조기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온 『홍루몽』에 첨가한 평어評語를 말한다. 이런 비어는 모두 3천여 개나 되는데, 어떤 것은 1 회의 앞이나 혹은 1 회 뒤에 있어, “회비回批”라고 부르고; 어떤 것은 책의 윗부분의 공백에다 평어를 써넣어서 “미두眉头”라고 부르며; 본문의 행간이나 혹은 본문 아래에 작은 글씨로 2 줄 쓴 것도 있는데, “협비夹批”라고 부른다.
이런 평어는 비록 “지비”라고 통칭하나, 그러나 지연재 혼자만 한 것은 아니어서, 서명이 더 있는데, 기홀수畸笏搜(혹은 노후老朽, 후물朽物로 서명했음), 상촌常村, 감당鉴堂, 매계梅溪, 기원绮园, 송재松斋, 입송헌立松轩, 옥란파玉蓝坡 등이다.
그 중에 지연재의 평어는 174 개로 가장 많고, 게다가 조기 필사본에는 “지연재중평”이라고 앞에다 덧붙인 것이 많이 있어, 그래서 이 평어를 “지비脂批”나 “지평脂评”이라고 통칭했다. 그리고 이런 평어의 조기필사본을 “지비본脂批本” 혹은 “지평본脂评本”이라고 부르고, 간략하게 “지본脂本”이라고 부른다. [출처] |작성자 중국 문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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