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里眼---名作評論

대하소설 임꺽정 봉단편 6 -홍명희

一字師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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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임꺽정 봉단편 6

-홍명희

임꺽정 : 봉단편:벽초 홍명희 소설

제 7장 반정

1

김서방이 다시 처가로 들어온 뒤에 집안에 있어서 게으름뱅이란 별명을 듣고 밖에 나가서 백정 사위란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해 겨울 돌림감기로 사람이 많이 상하였다. 주삼의 집의 중늙은 내외 젊은 내외 제 식구는 다행히 무사하였으나 주팔의 안해가 죽고 돌이 집에서는 돌이의 아버지가 죽었다.

주팔이는 상처한 뒤에 안해가 누중에 큰 누라고 재취할 생각이 없어서 그의 오막살이 살림을 걷어치우고 형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고, 또 돌이는 상제 된뒤에 당시 금법으로 삼년상을 입지 못하였으나 전 같으면 겹상제의 몸이라 성취가 급할 것이 아니라고 주팔이가 말을 일렀을 뿐이 아니라 당사자가 이쁜 색시를 만나기 전에는 총각으로 늙어도 좋다고 장가를 들지 아니하여 떠꺼머리 총각이 혼자 살림하기어려워서 고모의 집에 기식하게 되었는데, 돌이의 집이 방이 많은 까닭으로 주삼이가 외딴 마을집을 비워두고 돌이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세집이 합솔한 뒤에 김서방은 장모의 구박 외에 간간이 돌이의 퉁명을 받지만, 봉단의 위로와 주팔의 두둔을 함께 받게 되어 모든 것이 합솔 전만 못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세는 들면 박대요, 나면 천대라 그가 뱃심을 부리며 하루를 보내고 구역을 참으며 이틀을 보내는 동안에 지리한 세월이 지나가서 김서방이 주삼의 집에 데릴사위 노릇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

기러기 남으로 날아가고 국화꽃이 피려 하는 구월 초생이다. 어느 날 저녁때 돌이가 읍에 갔다 돌아와서 방에도 들어오지 아니하고 마당에 선 채 “다들 이리 나와 이야기 좀 들으시오.” 소리를 지르니 저녁밥을 먹고 방에들 들어앉았던 주삼의 내외와 김서방이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아래윗방에서 각각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이때 주팔이는 영흥 땅에 볼일 보러 가서 집에 없고 봉단이는 밤다듬이하려고 일지의 집으로 홍두깨를 빌리러 가서 집에 없었다. 주삼의 안해는 돌이가 소리지른 데 홧증을 내어 “갑자기 미쳤니? 무슨 소리를 그렇게 지르니! 사람이 초풍을 하겠구나.” 돌이를 나무라니 돌이가 무정지책을 듣는 데 속이 상한 듯이 입을 삐죽하고 “내가 무슨 소리를 질렀어요. 아주머니는 공연히 남을 나무라는구려. 미치기는 읍내 사람들이 모두 미쳤습디다.”나무람을 받고 발명하는 동안에 이야기하려던 흥심이 꺽인 듯이 "옵이 법석한 소문을 이야기할랬더니 고만두시오.“ 하고 자기의 방으로 가려고 할 때, 주삼이가 “이애!” 불러서 “무슨 소문이냐?” 물었다. 돌이는 조금 불쾌한 기운이 있는 말로 “무슨 소문이 무어요. 읍내는 지금 야단법석입디다.” 하고 주삼의 방으로 가까이 와서 “새 상감이 났다고 옥문을 열어제치고 죄인들을 내놓고 야단인데 옥에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도 경사가 났다고 들뛰어서 부중 안이 와글와글합디다.”

주삼이가 미처 무어라고 말하기 전에 김서방이 자기 방에서 뛰어나와서 돌이에게 말하는데 “무어, 새 상감? 이야기 좀 자세히...” 뒤를 채지 못하도록 말이 급하니 돌이는 어기어 천천히 “그래요, 새로 상감이 났대요” 하고 웃으며 김서방의 모양을 바라보았다. 돌이가 어기대는 바람에 김서방도 찬찬한 말로 “새 상감이 나다니, 국상이 나고 새 임금이 섰단 말이지?” 물으니 돌이는 고개를 가로 흔들고 “국상은 무슨 국상. 국상이 나면 천하상을 불게. 망한 상감은 내 쫓기고 새로 상감이 났대.” “새 상감이거나 헌 상감이거나 우리에게야 무슨 상관이 있어? 망한 상감이 내쫓긴 건 해로울 것이 없지만 경사가 났다고 뛸 것까지야 없지그려.” “읍사람들 하는 꼴이 하도 우습더라니. 김서방, 내일이라도 들어가 구경 좀 하라구.”

혼자서 내리 지껄이고 김서방은 한참 동안 얼빠진 사람같이 아무 말이 없이 서 있다가 미친 사람같이 홀저에 껄껄 웃으며 도로 자기 방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돌이는 김서방의 뒤에 손가락질하며 “뛰는 사람들보다도 한술 더 뜨네.” 하고 주삼의 안해에게 향하여 “아주먼, 내 밥 어디 있소?” 물어 “너의 방 웃목에 상을 차려놓았다.” 하는 대답을 듣고서 돌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2

그날 아랫말에서 읍에 갔다온 사람이 돌이뿐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의 입에서 임금 갈리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여 “세상이 변했단다.” “천하 죄인을 모두 백방했답디다.” 와 같은 말이 잠깐 동안에 동네를 돌았다. 봉단이가 얻으러 갔던 홍두깨는 얻지 못하고 “잠깐이라도 앉았다 가야지.” 하는 그 집 여편네에게 붙잡히었다가 뜻밖의 소문을 얻어들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그 어머니를 보고 “그 집에서 쓴답디다.” 홍두깨 못 얻어온 것을 말하고 곧 뒤를 이어서 “오빠 왔세요?” 돌이 온 것을 물으니 그 어머니가 “왔다.” 대답하고 “홍두깨가 없으니 오늘 밤 다듬이는 다했구나.” 일이 밀리는 것을 걱정하는데, 봉단이는 듣고 온 소문이 진적한가 알려는 맘이 급하여 “무슨 소문 들었다고 이야기합디까?” 묻고 그 어머니가 대답도 하기 전에 “오빠더러 물어볼까?” 말하니 그 어머니는 봉단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어보긴 뭘 물어보아. 읍내서는 야단이라더라.” 신통이 여기지 않는 나무람과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 대답을 함께 끼어 하였다.

봉단이가 자기 방에 들어오니 김서방이 번듯이 누워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한다. 봉단이가 서서 김서방을 내려다보며 “사람이 들어오는데 어쩌면 저렇게 모른 체하고 누워 계시오?” 성을 내는 듯이 나무라나, 김서방은 말이 없이 손으로 자기 누운 옆을 가리키어 앉으라는 뜻을 보일 뿐이다. 봉단이가 김서방에게 가까이 와서 쪼그리고 앉으면서 “어디가 아프시오?” 물으니 김서방은 고개를 흔들며 봉단의 손을 덥석 쥐고 일어 앉는다. 앞으로 기울어지는 봉단의 몸이 김서방의 품으로 들어가니 김서방은 그대로 끌어안으려는

듯이 한 팔을 봉단의 뒤로 돌리다가 고만두고 봉단을 일으켜 앉힌다.

봉단이가 김서방의 눈치를 보며 “서울 소문을 들으셨소?” 물은즉 김서방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여보.”하고 입을 열어 “서울을 가야 할 터인데 어찌할까 생각중이오.”말을 하니 봉단이는 “내일이라도 나하고 같이 떠나십시다.” 하고 방긋이 웃는다. 김서방이 손을 맞비비고 앉았다가 “내가 읍에를 들어가서 진적한 소문을 알아보고 감사를 볼빡에.” 하고 양미간을 흉상스럽게 찌푸리고 머리를 긁으니 봉단이가 얼굴 빛을 고치며 걱정스러운 듯이 “감사를 보아도 좋겠세요? 감사를 보실 수 있겠세요?” 연거푸 묻고 김서방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의 얼굴빛이 불그레하여 술취한 사람과 같다. “감사를 보는 수밖에 없어. 내가 내일 식전 일찍이 읍에를 갈 테야.” “아침도 아니 잡숫고?” “아침은 먹든지 말든지.” “어떻게라니?” “의관을 아니해도 좋은가요?” “아, 참말! 의관을 어찌하나?” “그러기에 보세요. 아침 일찍이 못 가세요.” “아침 일찍이 가든 못가든 의관을 어찌하면 좋아? 내가 쓰고 왔던 망건이 있지?” “있을걸요.” 하고 봉단이가 손그릇 속에서 망건을 찾아내니 앞뒤 당 편자 할것 없이 곰팡이가 앉고 좀이 집어서 거의 손을 대기가 어렵게 되었다. 망건은 그나마 손질하여 쓰기로 하고 또 도포는 혼인 때 입던 것을 쓰기로 하더라도, 정작 의관 중에 중요한 갓이 없다. 김서방이 한걱정을 하다가 봉단이가 “내가 돌이 오빠를 졸라서 하나 얻어보리다.” 말하여 겨우 안심이 되었다.

봉단이가 김서방을 따라서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이튿날 식전에 돌이를 보고 정답게 ‘오빠, 오빠’하며 갓 하나를 얻어 달라고 조르니 돌이가 처음에는 “갓은 무엇할라나?” “김서방이 감사를 보러 가?” “감사를 보려다가 볼기나 맞을라구?” 하며 듣지 아니하다가 나중에는 졸리다 못하여서 “누이의 청으로 하나 얻어 보지?” 하고 얻으러 나갔다. 주삼의 내외가 이것을 알고 주삼이는 “가사를 보다니, 세상이 변하였다니까 감사를 길가의 개똥같이 굴러다닐 줄 아는 게로군?” 빈정거리고 주삼의 안해는 “볼깃살이 가려운 게다. 지랄한다.” 욕설하나 둘이 다 말리지는 아니하였다. 돌이가 양이 쪼개지고 모자가 찌부러진 갓 하나를 얻어왔다. 김서방이 노끈 당줄로 그 헌 망건을 어름어름 만져 쓰고, 또 노끈 갓끈으로 그 헌 갓을 졸라 쓰고 구기어주름투성이가 된 청베 도포를 입고 띠는 띠지 아니하고 초군 짚신을 신고 읍에를 가려고 나섰는데, 이때 해는 벌써 아침 새때가 기울었었다.

 

3

김서방이 함흥읍에 들어와서 소문이 적실한 것을 안 뒤에 다시 생각하기를 보기 어려운 감사를 보려느니 힘이 덜 들 원을 볼리라하고 홍살문 안을 들어섰는데, 이때 해는 벌써 점심때가 지났었다. 한참 동안 삼문간에서 어리대다가 사령 하나를 보고 “원님을 보러 왔으니 서울 손님이 왔다고 통기하여 주게.” 해라는 못하고 하겟말을 붙였더니 그 사령은 한번 흘긋 김서방의 꼴을 보고 “서울 손님은 다 무어야?” 하며 김서방을 한옆으로 떠다박질렀다. 김서방이 두말 못하고 물러서서 삼문 안을 멀리 바라보고 있다가 늙은 아전 하나가 문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고 앞을 막아서서 “여보, 나는 서울 사람인데 원님을 좀 보아야겠으니 통기해 주실 수 있겠소?” 김서방이 아까 하게로 낭패를 본 뒤라 하오를 깍듯이 하고 좋은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아전이 한참 물끄러미 김서방을 보더니 “이 사람, 저리 비키소.” 하고 손을 저어서 길을 틔우라고 하나, 김서방이 그대로 서서 꼼짝도 아니하니까 삼문 밖에 있던 군노 한 사람을 손짓하여 불러서 “이 양반의 말을 좀 들어봐라.” 하여 김서방을 군노에게 떠맡기고 옆에 있는 길청으로 들어갔다.

김서방이 다시 그 군노를 보고 자기가 원님을 보러 왔다는 뜻을 말하고 또 자기는 서울 손님이로라고 말하니 그 군노가 “무어, 서울 손님? 너울 손님은 어떻구? 손님 좀 볼라는가?” 하며 바른손을 김서방의 코밑에 내밀더니 곧 다시 끌여들여서 손바닥에다 침을 뱉어 가지고 눈에 불이 나도록 김서방의 뺨을 쳤다. 김서방이 백정의 사위 된 뒤 삼년간에 못 당할 곤욕을 다 당하여 곤욕에는 집이 나다시피 되었건만, 이번에 맞은 뺨은 살점이 떨리도록 분하였다. 여짓 맞손질을 하려다가 속으로 ‘참아라, 조금만 더 참아라.’생각을 돌리어서 분을 억제하고 그 군노를 피하여 홍살문 밖으로 나오며 원 볼 방책을 생각하였다.

김서방이 ‘하늘 천 따 지’ 소리가 나는 어느 집을 찾아들어가서 주인에게 인사를 청한 즉 주인은 숙식하고 가려는 과객인 줄로 알고 대번에 “내 집에는 잘 데가 없소.” 하고 상을 찌푸리더니 “잘 데 없는데 재워 줍소사 말하지 않을 터이니 고만두시고 글씨 안 쓴 종이쪽 하나만 주시오.” 하는 김서방의 말을 듣고서 상을 펴며 “어디 종이쪽이 있을라구?” 하고 노끈을 꼬려고 베어놓은 것 같은 좁은 쪽종이를 찾아주었다. 김서방이 그 종이를 받아들고 먹 찍은 붓을 빌리라 하여 전 교리이장곤이 보이러 와서 밖에서 기다린다는 뜻을 써가지고 그 집에서 나와서 다시 홍살문 안을 들어섰는데, 이때 해는 거의 승석때가 다 되었다. 김서방이 삼문 앞 큰길가에 서서 문안에 들락날락하는 사령 군노의 얼굴을 모조리 살펴보다가 그중에서 사람이 순하여 보이는 사령에게로 가까이 가서 “내가 책방과 서로 아는 터인데 청할 일이 있어 왔으니 이것을 좀 들여주겠소?” 하고 종이쪽을 내보이니 그 사령이 선뜻 받아들기는 하였으나, 들어갈 맘은 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이더니 마침 안에서 나오는 아이를 보고 “이애, 방자야. 이 양반이 책방과 아는 터수란다. 이 종이쪽을 갖다 책방 좀 주려무나.”

방자가 볼일이 있어 밖에 나가는 길이라고 다시 들어가지 아니하려다가 사령이 우기는 바람에 종이쪽을 받아가지고 돌아서려고 할 때, 김서방이 “이애, 책방이 그것을 보고 무슨 말을 하나 좀 들어다 다오.” 부탁하니 방자가 “거기서 기다리구려.”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들어갔다. 김서방은 삼문 밖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방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뒤에 나오는 방자는 기다리는 김서방을 찾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가벼리려고 큰 길로 나선다. 김서방이 일어서 쫓아가서 “책방이 무어라시디?” 물으니 방자는 성이 가신 듯이 “지금

책방 서방님이 안전께 불려서 동헌에 가 계시기에 통인보고 들여달라고 주고 왔으니까 좀더 기다려 보시구려.” 하고 다시 말 물을 사이가 없이 잰 걸음으로 가버렸다. 김서방이 할일없이 앉았던 구석에 다시 와 쪼그리고 앉아서 이때나 소식이 있을까, 저때나 소식이 있을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나 소식은 나오지 않고 해는 벌써 저물었다.

방자가 귀찮아서 통인을 주지 아니하였나? 통인이 잊고 책방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나? 책방이 보고 원을 보이지 아니하였나? 또는 원이 보고도 귀찮아서 본 체하지 않는 것인가? 김서방이 이리 생각도 하고 저리 생각도 하는 중에 삼문 안에서 “사령 부르랍신다.” 는 소리가 들리며 문간에 있던 사령들이 ‘네이’ 긴 대답을 하며 거위목같이 고개를 내밀고 병아리같이 고개를 내밀고 병아리같이 종종걸음을 쳐서 문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땅거미가 다 되었었다.

 

4

등촉이 휘황한 함흥 동헌에 관원 두 사람이 나란히 같이 앉았다. 한 사람은 원인 줄 알려니와 한 사람은 누구인가 묻지 않아도 문 밖에서 어리대던 김서방이다. 원이 ‘전 교리 이장곤이 밖에서 기다린다’고 쓰인 종이쪽을 보고 일변 의관을 정돈하며 일변 이교리 나으리를 인도하라고 수통인을 내보냈었다. 수통인이 나갔다 들어와서 “이교리 나으리가 아니 계십디다.” 말하니까 원이 괴상히 생각하여 사령을 불러서 종이쪽의 출처를 묻고 이교리 나으리가 어디 계신가 알아들이라고 분부하였었다. 사령이 나와서 쪼그리고 앉았던 김서방을 보고 “이교리 나으리가 어디 계시어?” 뻣뻣하게 묻다가 내가 이교리노라고 나서는 김서방을 보고 사령은 어찌 놀랐던지 한참 동안 말구멍이 막히도록 기가 질렸다. 나중에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공손히 말하고 들어가더니 통인이 문간으로 나오고 책방이 문안에서 인도하여 들이고 원이 뜰 아래서 맞아올려서 김서방이던 이교리가 동헌에 앉게 되었었다.

이교리가 원과 수인사하고 조정 소식을 대강 들은 연후에 그 동안의 소경력을 대강대강 이야기하니, 원도 놀라고 책방도 놀라고 통인도 놀라고 이야기 듣던 사람으로 놀라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었엇다. 원이 우선 의관을 바꿀 일이 급하다고 자기의 입을 의복과 자기의 여벌 관망을 내어다가 이교리를 주었었다. 이교리가 다시 세수하고 관망을 바꾸어 쓰고 의복을 갈아입고 나니 신수 좋은 관원이라, 옆에 있던 사람들은 아까 보던 폐포파립 속에 저러한 인물이 감추어 있었던가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아니할 이 없었었다.

이교리가 처음 도망하던 때 벌써 삭탈관직을 당하였을 것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원에게 사실을 들어 알고는 자기의 교리 칭호를 가지는 것이 외람한 일이라고 말하여 원은 이급제라고 부르고 통인 등속은 이급제 나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급제가 지금 원과 같이 앉아서 담화하는 중이다. 원이 자기의 들은 대로 반정 이후 서울 소식을 자세히 이야기하는데 “주상 전하께옵서는 진성대군으로 잠저에 계실 때부터 성덕이 드러나신 터이지만, 우선 폐주 연산군을 처치하옵신 것만 보더라도 요순의 자품이 백왕에 탁월하옵신 것을 알겠습디다. 정국공신들 중에 그 중에도 더욱이 폐주에게 총애를 받다가 반정 당일에 반연으로 돌아붙은 공신들이 폐주에게 사약하자고 주장했더라는데 위에서 말씀이 의로는 군신이요, 정으로는 형제라, 그리할 수 없다고 하옵셔서 교동에 안치하게 되었답디다. 서울 안에 그 많던 기생들을 더러는 공신에게 나눠 주시고 나머지는 모두 고향을 내려쫓으셨답디다. 선성위패를다시 성균관에 봉안하시고 또 언문금법과 삼년상 금법 같은 부당한 금법을 모두 폐지하셨답디다. 무오년과 갑자년에 화를 당한 사람들은 대개 다 신원이 되었다는데 노형도 지금 무사히 생존한 것을 위에서 아시게 되면 특별한 은전이 계실 것이오.”

이급제가 원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말 틈을 타서 알던 친구의 일을 묻기 시작한다.

“정희량 정한림이 살았나요, 죽었나요?” 물으니 원은 “정한림 일이야 괴상하지요.” 하고 “죽기는 풍덕서 강에 빠져 죽었다는데 시체를 못 찾은 까닭인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문이 낭자하지요. 죽지 않았으면 노형같이 나올는지 모르지요.” 하고 허허 웃는다. 이급제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정희량이 죽지 않았을 터이지. 친구에게 피신할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자기가 얼뜨게 죽었을 리 없지.’ 하고 자기가 거제 바다에서 자살하려던 광경과 북방길이란 정한림의 적어 준 것을 믿고 북도로 도망할 때, 도중에서 고생하던 경상이 꿈같이 생각이 나서 말이 없이 앉았다.

“무얼 그렇게 생각하시오?” 하는 원의 말에 비로소 생각을 그치고 저으기 웃으면서 “아니오.” 하고 “권달수 권교리는 어찌 되었나요?” 물으니 “응, 권교리? 죽었지요. 참혹히 맞아죽었지요. 박수찬 같은 아까운 젊은 친구도 참혹히 맞아죽었으니까.” 하고 원은 박은이와 서로 친하여서 풍월까지 같이 지어 본 일이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면 이행이도 아시겠구려.” “이응교 말씀이오? 좌상안면은 있지요.” “그 사람은 어찌 되었나?” “이응교는 운수 좋은 사람이라 지금 살았지요. 처음에 충주로 귀양 갔다가 박수찬 옥사에 연루로 잡혀 올라가서 죽을 뻔하고 살았지요. 그 뒤에 관노로 박혀 함안가서 있다가 또다시 잡혀 올라가서 노형이 가셨던 거제로 귀양을 가셨지요. 근일 소식은 못 들었지만 그 동안 벌써 풀렸겠지요. 그 사람의 팔자가 기구하다면 기구하지만 구경 말하자면 운수 좋은 사람이지요.” 잠깐 수작이 동안이 그치었다가 이급제가 갑자기 생각나는 듯이 “그 유명한 김처선이 증직되었답디까?” 물으니 원은 “아아, 내시 김지사 말씀이지? 증직되었단 말 못 들었소.” 대답한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의 묻고 대답하는 이야기는 그쳤다 이었다 끝이 없이 나가고 밤은 들어 퇴등때가 지났다.

 

5

그날 밤 이급제의 사처는 책실의 방으로 정하였었다. 이급제가 원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고 일어설 때, 원이 내아에 들어가려고 같이 일어서며 “오늘 곤하시지 않겠소?” 물으니 이급제는 머리를 흔들며 “곤하다니요. 곤할 까닭이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영감이 너무 오래 앉아 계시게 되면 미안하여서 일어섭니다.

” 하고 이야기를 더하면 좋을 듯한 의사를 보이었다. 그리한즉 원이 “내가 조금 있다 사처방으로 가리다.” 하고 등불을 켜들고 있는 통인과 책방을 시켜서 이급제를 사처로 인도하게 하였다.

원이 이급제의 사처에 와서 좌정한 후에 내아에서 주안상이 나왔다. 두 사람은 상을 앞에 놓고 앉고 상머리에는 그날 밤 이급제에게 수청들 기생이 앉았다. 이급제가 오래간만에 기생의 부어주는 술을 마시며 백정의 집에서 사위 노릇하는 동안에 받은 박대와 천대를 자세히 이야기하고 나중에 “내가 고리 백정의 식구가 되어서 갖은 천대를 받고 지내는 동안에 천대받는 사람의 억울한 것을 잘 알았소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나 천대하는 사람이 사람으로는 천대받는 사람보다 나으란 법이 없습디다. 백정에도 초초치 아니한 인물이 있다뿐이겠소? 영감도 이것만은 알아두시오. 천인도 사람입니다. 도연명이 종을 사서 아들에게 보내며 이것도 사람의 아들이니 잘 대접하라고 했다더니 천인도 사람의 아들이니까 우리가 절 대접할 것입니다.” 하고 옆에 있는 기생을 돌아보며 술을 쳐라 하니 원이 술 치는 기생을 보고 “너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지만 사람의 딸이니까 오늘 밤에 이급제 나으리께 잘 대접을 받아라.”하고 한바탕 웃고 나서 “여보, 백정에 인물이 있다니 그 인물을 무엇하오?”하고 이급제를 돌아보니 이급제는 거나한 술기운에 “할 것이 없으면 도적질이라도 하지요. 백정의 집에 기걸한 인물이 난다면 대적 노릇을 할밖에 수 없을 것이오. 내가 억울한 설움을 당할 때에 참말 백정으로 태어났다고 하고 억울한 것을 풀자고 하면 무슨 짓을 하게 될까 생각해 본 일이 여러 번 있었소이다.”

이급제의 말이 여기 미쳤을 때, 영창문 밖에서 고양이가 ‘야웅야웅’ 소리를 하니 기생이 일어서 영창문을 열치고 “이 괴 이 괴.” 하고 쫓는다. 이급제가 다시 말을 이어 “괴가 쥐를 잡지요. 그렇지만 큰 쥐가 괴를 잡는 데도 있답디다. 사람도 쥐에게 물리는 일이 있지 않소? ‘이 괴’ 한마디면 괴가 무서워 피하는 사람을 쥐가 무니 쥐라고 우습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원이 빙글빙글 웃는 것을 보고 이급제는 “웃으실 말이 아닙니다.”하니 원은 갑자기 웃음을 거두며 “아니요, 나는 노형 말씀을 웃은 것이 아니오. 괴 말이 나니까 장순손의 일이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소.” “장순손이라니 과거한 성주사람 말씀이오? 그 사람의 얼굴이 도야지와는 근사하지만 괴와야 같기나 한가요.” 원은 ‘아니오’ 하고 일전에 서울 친구에게 편지로 알았다고 장순손의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연산군이 총애하던 성주 기생이 있었는데 종묘 제향의 준여로 궐내에 들어온 도야지 머리를 그 기생이 보 고 웃었더라는구려. 연산군이 그 웃는 데 의심을 내어 가지고 웃는 까닭을 대라고 종주먹을 대니까 그 기생의 말이 저의 골 사람 장순손의 얼굴이 도야지 머리와 같아서 장도야지라는 별명이 있는데, 연산이 장가가 너의 머리를 보고 우연히 생각이 나서 웃었다고 했더니, 연산이 장가가 너의 애부로구나하고 화를 내서 장순손을 잡아오리라고 도사를 보냈었다오. 장순손이가 그 집에서 잡혀 올라오다가 함창 공갈못을 지날 때에 괴 한 마리가 지름길로 건너가는 것을 보고 압상하는 도사더러 내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괴가 길을 건너더니 등과하게 되었는데, 지금 괴가 저 길로 건너가고 또 저 길이 마침 질러가는 길이니 저리 가자고 해서 지름길로 조령까지 왔을 때 반정이 되어서 죽지 않게 되었다오. 그런데 잡아오지 말고 목을 베어 올리라는 명을 받아 가지고 뒤미처 도사가 또 내려갔었는데, 그 도사는 큰길을 좇아 상주로 들어가서 서로 만나지 않게 되었다니 구경 괴의 덕을 본 것이 아니오?” 이야기를 끝마치고 “장순손이가 반정된 뒤에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고 시비하는 사람이 있답디다. 그렇지만 일이 춤이라도 추게 되지 않았소?” 장순손의 이야기 끝에 운수 이야기가 나오고 운수 이야기 끝에 술수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가 이와 같이 변하여 나가는 중에 밤이 깊어 졌다. 원이 술상을 치우게 하고 이급제에게 그만 취침하라고 말을 하고 동헌으로 돌아갔다.

 

6

이튿날이다. 원의 대접이 융숭한 까닭에 이급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부터 먹는 빛이다. 사처방에서 자리 조반으로 양즙을 먹고 늦은 조반으로 깨죽을 먹었고 동헌에 가서 열두 접시 쌍조치의 갖은 반상으로 아침밥을 먹고 국수장국 떡 실과를 늘어놓은 다담상으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 끝난 뒤에 이급제가 원을 보고 관아에서 오래 묵는 것은 공사의 방해라 나가겠노라 말하니 원의 말이 오늘 보장을 감영으로 올려보냈은즉 감사가 곧 서울로 장계할 것이나, 조명이 내려오기까지는 한동안 기다려야 할 것인데 아중에서 묵는 것이 비편하면 읍중에 사처를 정하여 주마고 하고 뜰 위와 뜰 아래에 섰는 아전들을 내다보며“이급제 나으리의 사처를 정하여 드릴 터인데 깨끗한 집이 있겠느냐?” 물었다. 아전들이 ‘뉘 집이 좋을꼬’ 하며 서로 돌아볼 때, 늙은 호방이 앞으로 나와 엎드리며 “소인의 집이 누추하오나 사처로 쓰신다면 치우겠습니다. 하니 이 호방은 곧 김서방이 원에게 통기하여 달라고 청할 때 ‘이사람 저리 비키소’ 하고 거절하던 아전이다. “네 집에서 지공을 잘하겠느냐?” 원이 물으니 “지성껏 하옵지요.” 하고 벌써부터 지성스러운 모양을 보이었다.

이때 이급제가 원을 향하여 “여보, 영감. 사처는 좀 생각하여 보십시다. 그 전 있던 데로 도로 나가서 며칠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 말하니 원이 웃으면서 “백정의 사위 김서방은 촌백정의 집에 가 있어도 좋지만, 함흥군수의 손님 이급제는 촌백정의 집에 가지 못할 것이오.” 이급제가 원의 말을 듣고 역시 웃으며 “김서방이 이급제요, 이급제가 김서방이니까 가지 않아도 좋고 가도 좋지요.” 웃음의 말로 대답하고 나서“아무렇든지 만나야 할 사람들이니까 내가 나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편할 것 같소이다.” 말하였다. 나중에 원이 생각대로 하라고 주삼의 집에 나가기로 작정되었다. 호방은 자원하는 사처를 이급제가 싫다 하는 것이 어제 일을 치부하는 것으로 알고 틈을 타서 이급제 앞에 나가 눈이 무딘 까닭으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사과하니, 이급제는 사과까지 할 것이 없는 일이라고 웃고 용서하였다.

얼마 뒤에 이급제가 관 교 군을 타고 관 교군을 타고 관 하인을 데리고 고생으로 들어갔던 삼문을 호강으로 나왔다. 주삼의 집에서는 김서방이 읍에 들어간 뒤에 종일 기다려도 나오지 아니하니까 저녁밥을 먹으며 여러 사람이 모여 앉아서 공론이 분분하였다. 주삼이는 “감사를 본다고 바로 간 게로군.” 하고 주삼의 안해는 “읍에서 원님을 보려고 덤비다가 주리경을 쳤는지 모르지.” 하고 돌이는 “사람이 경치기 꼭 알맞지라오.” 하고 모두 봉단이의 얼굴을 돌아보니 봉단이는 천연스럽게 앉았는데 조금도 근심하는 빛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봉단이가 남에게 근심하는 빛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봉단이가 남에게 근심하는 모양을 보이지 아니하였으나, 그날 밤에 혼자서 고시랑고시랑하여 밤을 새우고 이튿날 식전에 돌이를 꾀어서 김서방의 소식을 알아 달라고 하니 돌이는 어디 가서 알아보나, 김서방을 알 사람이 있나 하고 나가지 아니하려다가 봉단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거절할 힘을 잃어서 ‘갔다 오지’하고 읍으로 들어갔다.

백정 양가의 사이 김서방이 전날 이교리요, 오늘날 이급제로 지금 원님의 우대를 받는다는 소문이 이때 읍중에 자자하였다. 돌이가 읍에서 이 소문을 듣고 뛰어나오다시피 하여 발을 집에 들여놓기가 급하게 “누이 어디 있나? 큰일났네. 김서방이 아니라데.” 하고 소리를 질렀다. 주삼의 안해는 돌이를 붙잡고 “이애, 그게 무슨 소리냐? 김서방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놀라는데 봉단이는 방에 있다가 쫓아나와서 김서방이 아니라는 것은 캐어묻지 않고 “그가 지금 어디 있습디까?” 있는 데만 알고자 한다. 돌이가 읍내에 자자한 소문을 이야기하니 주삼의 내외는 놀라서 말이 없고 봉단이는 그리 놀라는 빛도 없이 “그러면 그가 지금 읍에 있겠구려.”말하고 돌이의 얼굴을 치어다본다. 주삼의 집 식구들이 일이 손에 붙지 아니하여 모여 앉아서 김서방 이야기로 판을 짜던 때, 동네가 시끄러워지며 “에라, 비켜라!” 소리가 연하여 들리며 관 하인들이 앞뒤에 옹위한 교군 한 채가 주삼의 집으로 들어왔다.

7

“와료!” 소리가 나고 교군이 마당 중간에 놓이며 교군 안에서 이급제가 나왔다. 이급제가 마당에 서서 우선 주삼의 내외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다음에 관 하인들을 돌아보며 ‘수고하였다. 빨리들 들어가거라’ 말을 이르는데, 그 동안에 주삼의 안해는 안방에 들어가서 일변 방을 치우며 새 자리를 내서 깔고, 주삼이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손을 맞비비며 공연히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고, 돌이는 수선 틈에 어디로 가버리고, 봉단이는 머릿방에 들어앉아 나오지 아니하였다. 이급제가 관 하인을 돌려보내고 잠깐 동안 마당에 서성거린즉, 안방에 있는 주삼의 안해가 그 남편을 내다보며 “여보, 무엇하오? 이리 들어오시라지 못하오?” 인도 아니한다고 나무라니 주삼이가 이급제 앞에 가까이 와서 “안방으로 들어가시지요.” 하고 여전히 손을 맞비빈다. 이급제가 “아니, 내 방이 좋지.”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아니하니까 주삼의 안해가 방에서 뛰어나와서 “천만의 말이지, 이리 들어갑시다.” 하고 이급제를 붙들어들였다.

이급제가 아랫목 새 자리 위에 앉고 주삼의 안해가 앞치마를 휩싸고 앉으려고 할 때, 방 밖에 있는 주삼이가 손뼉을 쳐서 그 안해를 오라고 하여 “이 사람아, 존전에서 그렇게 앉는 법이 아니야. 그리하고 자기 말을 할 때는 쇠인네라고 하소.” 가만히 이르는데 주삼의 안해가 화를 벌컥 내며 “그가 우리의 사위나리가 아니오. 앞에 가서 앉지 못할 것이 무어 있수. 또 쇠인네란 다 무어요?” 큰 목소리로 주삼의 말을 되받으니 주삼이가 “이 사람아, 떠들지 말아. 들으시네.

” 안해를 꾸짖는다. 주삼의 가만히 이르는 말도 주삼의 안해의 떠드는 말과 같이 이급제 귀에 들리었다. 이급제가 혼자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리들 들어와서 앉으우.” 소탈하게 말하니 주삼의 안해가 남편의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저것 사위 나리 말씀 좀 들어보오. 앉지 못하기는 왜 앉지 못해?” 하고 “들어갑시다.” 하고 남편을 끌었다. 주삼의 안해는 앞을 휩싸고 동그마니 앉고 주삼은 앉기가 종시 황송하여 두 팔로 방바닥을 짚고 엉거주춤 앉았다. 이렇게 세 사람이 한 방에 앉기는 하였으나, 별로 말들이 없어서 자리가 싱거웠다. 주삼의 안해가 “봉단이는 어디 갔누?” 혼잣말하듯이 말하고 거북살스럽게 앉은 주삼을 바라보는데 주삼은 말이 없고 이급제가 “좀 불러 주우.” 말하여 주삼의 안해가 일어서 나가니 주삼이도 그 뒤를 따라 일어섰다.

머릿방에 들어앉았던 봉단이를 그 부모가“왜 잔뜩 들어앉아서 나오지 않니?” “나리가 부르신다.” 불러내서 안방으로 들여보냈다. 봉단이가 방에 들어와서 고개를 들지 않고 입으로 옷소매를 지그시 물고 그린 듯이 서 있으니 이급제가 눈짓으로 가까이 오라 하다 못하여 “이리 와.” 하고 입을 벌리었다. 봉단이가 가만가만히 발을 떼어놓아 아랫목 가까이와서 모를 꺾어 앉으려 할 때, 이급제가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긴 팔을 늘이어 봉단의 손을 잡으며 “새색시인가?” 하고 자기 옆으로 앉히었다. 사실로 봉단이는 첫날밤보다도 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잘 들지 아니한다. 이급제가 입을 봉단의 귀에 대고 가만히 “백정의 딸로 양반의 안해가 되려고 습의하는 모양이지.” 하고 웃으니 봉단이는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고개를 치어들었다.

봉단이가 이급제의 모양을 보니 양에 윤이 나는 칠색 좋은 갓에 궁초 갓끈을 매어 쓰고 취월명주 창의 위에 회색의 술띠를 느직이 늘여 띠었다. 노끈 갓끈으로 찌부러진 갓을 쓰고 주름투성이 베도포에 띠도 띠지 아니하였던 김서방과는 딴 사람같이 보이었다. 이급제가 봉단을 돌아보며 “웃옷을 좀 벗고 앉아야지.”하고 일어서니 봉단이도 일어서서 끌러주는 띠를 받고 창의를 벗기어서 횃대에 걸쳐놓고 또 벗어주는 갓을 받아 횃대모에 걸어놓았다. 이급제가 탕건 바람으로 봉단이와 같이 앉아서 원을 보느라고 애쓴 것과 원이 우대하던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나중에 명주 저고리와 세목 바지를 가리키며“이것이 다 원의 옷이라 내게는 조금 작아.”하니 봉단이는 저고리를 만져보며“웃옷감만은 좀 못해도 상길 영흥주구먼이요.”하고 또 바지를 만져보며“열두 새야요.”한다.

이때 주삼의 안해가 저녁밥을 짓느라고 부산히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리니“나가서 어머니 시중을 들어야겠어요.”하고 봉단이가 일어서려는 것을 이급제가 손을 잡아 말리고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여보 장모, 혼자 바쁘지 않소?”말하니 주삼의 안해가“아니오.”대답하고“봉단아, 너는 거기 사위 나리 뫼시고 앉았거라.”말하는데 목소리가 전날같이 거세지 아니하다.

 

8

이급제의 저녁상이 들어왔다. 전날 김서방의 상과는 대단히 다르다. 우선 소반에다가 외상으로 차려놓은 것이 다르고 하얀 입쌀밥이 다르고 무나물,배추 겉절이의 한두 가지 반찬이라도 먹게 하여 놓은 것이 다르다. 주삼의 안해가 상머리에 앉아서 술을 드는 이급제를 바라보며“원님에게서는 잘 잡수셨을 터인데 찬이 무어 있어야지.”하고 나서 이급제의 밥 먹는 시중을 끝까지 들어주니 이급제가 양껏 먹고 술을 지우며 “대접이 너무 과해서 손복할 것 같구면. 원의 대접이 아무리 융숭해도 오늘 저녁같이 밥을 달게 먹기는 처음이어.”말하여 주삼의 안해의 입이 벌어지게 하였다. 이때 밖에서 빙빙 돌던 주삼이가 수저 놓는 소리를 듣고 창문을 조그만치 열고 들여다보며 “저녁을 얼마나 잡수셨습니까?” 인사로 물으니 이급제는 “오늘 저녁 참 잘 먹었어.” 대답하고 얼마 동안 있다가 “여보, 주팔이가 어느 날쯤 온댔어?” 물은즉 주삼이가 말할 사이 없이 그 안해가 “오늘 안 왔으니까 내일은 올걸요.” 대답하였다.

그날 밤부터는 이급제 내외가 윗방을 쓰고 주삼의 내외가 머릿방을 쓰게 되었다. 이급제가 방문을 닫고 봉단이와 마주 앉아서 서울 갈 일을 이야기하는데, 봉단이가 “가시는 날은 나하고 같이 가게 하시겠지요?” 하고 이급제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방그레 웃으니 이급제는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못될 것이야.” 하고 조금 동안을 띄어 “내가 조명을 받고 올라가자면 내외 동행은 못하게 될 것이야. 내가 서울 가서 집안 살림을 정돈해 놓고 기별하거든 삼촌과 같이 오게 하지.” 하고 또다시 조금 동안을 띄어 “내가 주팔이와 의논해 두고 갈 것이니

걱정 말아.” 하고 세 도막 대답을 하였다. 봉단이가 이급제의 첫마디 대답에 웃음을 거두고 다음 두 마디가 끝나도록 새침하고 앉았더니 “나는 생각이 두가지에요. 서울을 갈까 말까 두 다지에요. 그런데 두 가지가 다 어려워서 삼촌과도 의논하려니와 제일 첫째 의향을 여쭈어어보고 어떻게든지 작정할랍니다. 대체 내가 서울 가면 당신 전정에 방해되지 않겠어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여자지만 저의 호강만을 생각하고 남편을 우세시키고 망신시키러 서울가겠다고는 하지 않겠세요. 그렇다고 부모밑에서 그대로 지내기도 어렵지요.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는 생각이 올지말지 해요.” 하고 고개를 숙인다. 이급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듯 마는 듯 끄덕이고 “그래,서울을 못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려우니 무어니 하여도 부모 밑에 있게 될 터이지.” 봉단이가 숙이었던 고개를 잠깐 들고 이급제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죽든지 승이 되든지 해야지 부모 밑에서 그대로는 못 있세요. 내가 죽는대도 당신이 박정하다고는 원망할 리 없고요,승이 된다면 다시 백정의 집에 태어나지 않도록 후세 발원이나 해보지요.” 하고 두 눈에 눈물이 어린다. 이급제는 빙그레 웃으면서 “좀 어렵지만 내가 맹세한 일도 있고 하니까 데려가지. 그렇지 만서도 백정의 딸을 정실로 정한다면 일가친척이 시비할 뿐아니라 하인들이라도 아씨라고 부르기를 싫어할 것이니까 첩으로 데려가지. 첩이라도 승되느니보다는 나을 것 아니야.” 하고 봉단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어리었던 눈물이 방울로 맺히고 방울로 맺힌 눈물이 줄로 흐른다. 이 급제가 봉단을 앞으로 끌어 당기어서 손으로 눈물을 씻어주며 “소명한 사람도 속을 때가 있군. 지금 말은 실없은 말이야. 내가 벌써부터 작정해 둔 일이 있어. 내가 우세도 아니하고 망신도 아니하고 내외 잘살게 될 수 있을 터이니 염려말고 기다리오. 내가 전정을 내버릴망정 정다운 안해는 저버리지 아니할 것이야.” 위로하여 얼마 뒤에 봉단은 다시 웃게 되었다.

이튿날 식전에 봉단이도 전날 밤에 잠 못 잔 까닭으로 좀 늦게 일어났지만, 이급제는 해가 높이 뜬 뒤에야 간신히 기침하였다. 주삼의 내외가 윗방 문 밖을 지나다닐 때 신발 소리도 내지 아니하는데, 주삼의 안해가 주삼을 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게으름뱅이는 게으름뱅이야.” 하고 웃으니 주삼이도 쉬쉬 하면 웃었다. 이급제가 소세한 뒤에 관 하인들이 찬수를 가지고 나왔는데, 쇠내장 곰거리며 도야지의 업진이며, 이러한 고기 찬수가 있을 뿐이 아니라 김치와 젓무까지도 있었다. 원의 사람이 찬찬한 것보다도 원의 부인이 “촌 백정집에 김치나 젓무가 있겠소.” 하고 내보낸 것이다. 이급제가 원의 전갈을 받고 원에게 보내는 답전갈을 이르는 중에 영흥 갔던 주팔이가 돌아와서 삽작문 밖에서 집안의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9

관하인들이 이급제에게 ‘물러납니다’고 고하고 삽작 밖을 나서며 저희들끼리 지껄인다. “이급제 뒤에 섰던 것이 주삼의 딸이지? 잘생겼데.” “이급제가 상투 끝까지 빠진 모양이야.” “진작 알았더면 빼다가 관비나 박아줄걸.” “관비를 박았더라도 네나 내게 차례가 오니? 계집이라면 침을 흘리는 수도놈에게 좋은 일이지.” 주팔이는 길 옆에 비켜섰다가 관 하인들이 지나간 뒤에 집안으로 들아왔다. 주팔이가 형과 형수를 보고 날 사이 별 연고 없느냐고 인사하니 형은 “별 연고 있지그려. 김서방이 이급제 나으리가 되었어.” 하며 싱글벙글하고 형수는 “사위 나리가 어제도 아재 말합디다. 어서 가보오.” 하고 손으로 윗방을 가리킨다. 주팔이가 형수를 보며 “아주머니, 사위 나리가 전날 받은 박대를 속에 치부해 두지나 않았습디까?” 하고 웃으니 형수가 말소리를 낮추어서 “내가 아재더러 말이지 처음에는 혹시 오금이라도 박히지 않을까 조금 걱정스럽더니 지금 내가 너무 위해 주니까 과해서 손복하겠다지. 봉단이하고 내외 사이가 경치게 좋으니까 모두가 덮이는 게야.” 하고 목을 움츠리고 웃고 난 뒤 말을 이어 “여보 아재, 관가에서 찬수를 내보냈지. 쇠고기 도야지고기 김치 젓무까지 내보냈어. 정작 제일 긴한 쌀은 아니 내보내고. 우리도 자기네와 같이 입쌀밥만 먹고 지내는 팔자인 줄 아는 게야.” 하고 쩍쩍 혀를 찬다. 주팔이가 “쌀이 없거든 바꾸어 오지요.” 말하니 그 형수는 “아재도, 바꾸어 올 사이나 있든가요? 어제 윗말 간난이집에 가서 쌀 한 말을 꾸어왔어요. 그전 같으면 없으니 못 주겠느니 말썽부리고 급기 줄 제라도 속히 갚으라고 열 번 스무 번 당부하고 줄 사람이 사위 나리 대접한댔더니 두말없이 내줍디다그려.” 하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윗방에 있던 이급제가 주팔이가 온 것을 알고, 와서 보기를 기다리느니보다 나가 보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하고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서서 “여보, 주팔이?” 부르니 주팔이가 형수의 이야기를 듣다가 말고 이급제 있는 곳으로 오는데 이급제가 마주 나가서 주팔이가 인사할 사이도 없이 주팔의 손을 잡으며 “기다렸네.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 하고 손을 잡은 채 윗방 문앞까지 같이 와서 방문을 열어 주며 먼저 들어가라고 하니 주팔이가 몸을 빼고 이급제를 돌아보며 “귀천이 다르니 상하를 차립시다.” 하고 웃는데 이급제는 “이 방은 잠시라도 내방이오.” 하고서 주팔의 말투를 본받아 “주객이 다르니 선후를 차립시다.” 하고 웃는다.

이급제와 주팔이가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이급제가 자기의 전후 내력을 대강 이야기하고 반상의 신분이 드러났다 하더라도 정분이야 어디 갈 것이 아닌즉 될 수 있는 대로 전날과 같이 지내자고 부탁하니, 얼굴에 웃음빛을 가득히 띄고 이야기를 듣고 앉았던 주팔이가 그 부탁을 받을 때는 고개를 외치며 “전이라고 양반이신 것을 짐작 못한 것이 아니지만 남의 눈에 괴상히 보이도록 미리 짐작하는 체할 까닭이 없으므로 그렁저렁 지냈습니다만 지금도 벌써 전날과 다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갈수록 더할 것이니까 정분은 정분대로 속에나 두고 지내지요.” 하고 정색한다. 이급제는 ‘주팔이 같은 인물이 천인으로 썩다니, 널리 말하면 국가의 불행이야.’ 혼잣말로 한탄하다가 주팔을 바라보고 “내가 서울 가서 기별하거든 질녀를 데리고 오게. 그리하여 서울서 같이 지내 보세. 자네 형님 내외는 내 가만히 생각해 본즉 서울 와서 산다고 해야 별수 없을 것이요, 두 집 사이에 서로 비편만 할 듯하니 시골서 그대로 살게 하지. 두서너 식구가 먹고 지낼 것은 내가 담당함세. 그러고 내가 아는 수령이 올 때마다 부탁이나 해두게 되면 이때껏보다는 낫게 지내겠지.” 하고 말을 그치었다가 다시 이어 “어련할 것이 아니나 내가 떠난 뒤의 일은 자네만 믿네.” 말하니 주팔이도 고개를 공손히 끄덕이어 그 부탁을 받는다는 뜻을 보이었다.

그때 주삼의 안해가 이급제의 아침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급제가 외상을 받고 앉아 “밥 한 그릇만 여기 더 갖다놓아 주팔이와 같이 먹지 무어.” 하니 주삼의 안해가 주팔이를 돌아보며 “아재, 그러시지.” 하는데 주팔이는 “아니요, 형님하고 같이 먹지요.” 하고 이급제를 향하여 “많이 잡수십시오.” 하고 일어서 방 밖으로 나갔다.

 

10

돌이는 게으름뱅이 김서방이 이급제 나리로 변한 데 대하여 공연히 심정이 사나웠다. 엊그제까지 여보 저보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나리 마님이니 나리 아씨니 말하기가 맘에 창피하였다. 저의 고모가 비루먹은 개같이 구박하던 김서방을 칙사같이 대접하는 것도 맘에 우스웠다. 이급제가 오던 때는 수선한 틈에 슬그머니 나갔었고 저녁밥은 들어와 먹었으나 먹고 난 뒤 또 슬그머니 나갔다가 밤 늦게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때껏 이급제아 대면하지 아니하였다.

주팔이가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돌이를 보고 “나리 매부가 대접 잘 하디?” 하고 웃으며 물으니 돌이는 “대접이고 주발이고 누가 보기나 했습디까?” 하고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옆에 있던 주삼이가 “그러면 네가 생전에 아니 볼 터이냐? 친남매같이 지내는 봉단이가 섭섭타고 아니하겠느냐?” 하고 몇 마디 나무라니 돌이는 봉단이가 섭섭히 아는 것은 맘에 좋지 아니하여 “가보지요.” 말하고 주팔을 향하여 “가보고 무어라고 말할까요?” 묻는 것을 주팔이가 웃으면서 “방 밖에 가서 소인 돌이 문안드립니다, 말하려무나.” 대답하니 돌이는 고개를 야단스럽게 흔들며 “나는 싫소. 아니 가볼라오.” 하고 아니꼽고 비위 상하는 듯이 입맛을 다시었다. 주팔이가 돌이의 하는 꼴을 보고 웃다가 “여보게 노총각, 거정 말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게. 나리 매부가 사람이 소탈해서 역정은 아니 낼 것일세.” 실없은 어조로 말하고 나중에 “이애 나하고 같이 가보자.” 말하여 주팔이가 돌이를 데리고 윗방으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돌이가 주저주저하며 말을 잘 아니하였지만 “어서 방으로 들어오너라.” “너 저리 앉아라.” “돌이가 줏으라고 기생이 혹 떨어졌을지 모르지.” 이와 같이 이급제가 정답게 웃음의 말까지 붙이는 바람에 돌이는 말문이 열리어서 “기생은 왜? 내가 장가 들러 서울갈께 이쁜 색시 하나 중매해주시오.” 하고 너털웃음까지 웃게 되었다.

이급제가 주팔이와 이야기로 낮을 보내고 봉단이와 웃음으로 밤을 보내는 동안에 두 가지 새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는 주팔이가 술수를 짐작하는 것이니, 주팔이와 같이 앉아서 말말 하다가 “내가 풍파를 당한 뒤로는 조복 입고 나설 생각보다도 농의 입고 숨을 생각이 많아진 까닭에 이번에 서울 가서는 형편을 보아 조정에 나서지 아니할 생각일세.” 말하니 주팔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지요. 환수가 터지는 것을 억지로 막지 못하리다. 앞으로 한참 동안은 환로가 험하다 하더라도 별 풍파없이 나가게 되시리다.” 무슨 짐작이 있는 것같이 말하고 “자네가 음양술까지 짐작하나?” 다그쳐 물어야 “짐작은 무슨 짐작이에요.” 하고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평일에 지망지망히 말하지 않는 주팔이라 짐작하는 것이 없이 그렇게 말할 리 없을 것을 알았고, 또 한가지는 봉단이가 태기 있는 것이니 봉단이와 같이 누워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봉단이가 “요사이는 가끔가끔 헛구역이 나서 못견디겠세요.” 하는 말이 고동이 되어 “무어 체했남?” “모르겠세요.” 문답이 있은 뒤에 입을 귀에다 가까이 대고 가만히 “구실하오?” 물으니 봉단이는 처음에 못 알아듣고 “구실이라니요?” 하다가 “경도 말이야.”해석을 듣고는 한참 아무 말이 없더니 “서너 달째 없세요.” 하고 컴컴한 속에서도 얼굴이 보일까 부끄러운 듯이 살짝 돌아누웠다. 평일에 봉단이가 말이 적고 몸을 잘 간직하는 까닭에 아직 그 어머니까지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았다.

이급제가 주삼의 집에 나온 지 벌써 삼사 일이 되었다. 그 동안에 이급제에게는 사위 나리라는 별명이 생겼다. 처음에 주삼의 안해가 사위 나리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주팔이와 돌이까지도 사위 나리라고 말하게 되고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까지도 사위 나리 사위 나리 하게 되었다. 게으름뱅이 사위라는 별명이 곧 사위 나리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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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나리가 서울로 떠나게 될 날도 가깝고 하니 집안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어 조석을 같이 먹자고 주장하는 윗방이 조석 먹는 방이 되었는데, 구미 잃은 봉반이가 험한 밥 먹는 것을 사위 나리가 딱하게 여기어서 자기의 입 쌀밥을 주고 싶으나 여러 사람 보는 곳에 유난스러워서 주삼의 안해를 보고 “혼자서 좋은 밥을 먹자니 첫째 염치가 없어. 이 밥 좀 나눠들 자시지.” 하고 위만 헐다가 만 밥그릇을 내어주니 주삼의 안해가 “고만두고 더 잡수시오.” 하고 권하다가 사위 나리가 정히 고만 먹겠다고 하니까 “네나 먹어라.” 하고 봉단을 내주었다. 사위 나리 맘에는 봉단이가 “네.” 하고 받아 먹었으면 좋겠는데 봉단이는 남의 맘도 모르고 “아버지 잡수세요.” 하고 주삼을 주고 주삼은 “나는 조밥이 좋아. 당신 자시오.” 하고 안해를 주고 주삼의 안해는 “아재 자시오.” 하고 주팔을 주고 또 주팔은 “나도 조밥이 좋아. 너 먹어라.” 하고 돌이를 주었다. 입쌀밥 담은 밥그릇이 한 차례 식구 앞에 조리를 돌아 돌이에게 간 뒤에 돌이가 “다 싫다면 내나 먹지.” 하고 처치하게 되니 사위 나리의 소료와는 틀리었다. 사위 나리가 쌀을 얻어다가라도 다같이 입쌀밥을 지어 먹어야 하겠다고 발론하고 원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 사연에는 찬으로 고기는 있으되 반에 백옥이 귀하니 한이라고 하였다. 그 편지는 돌이가 가지고 가게 되었다.

원이 이급제의 편지를 받아보고 이방을 불러 쌀을 보내게 하라고 지휘하려다가 이급제가 도집강에게 동고리 값으로 쌀을 달라다가 매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이방을 내다보고 “향곳말에 도집강이란 자가 있다지. 그자가 견디느냐?” 물으니 이방은 원님이 이때껏 아니하던 홀태질을 시작하려는가 생각하며 “부사로 사옵니다.”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자를 지금 좀 들어오라고 불러라.” 하고 원이 이방에게 이르더니 얼마 뒤에 도집강이 관가로 들어왔다. 도집강이 원에게 절하고 꿇어앉은 뒤에 원이 대번에 정색하고 “향곡에서 무단하는 기습은 인민의 부모된 나로서 알고 그대로 둘 수 없는 일이야.” 호령기 있게 말하니 도집강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민이 득죄하온 일이 없사온데...” 하고 벌벌 떨며 발명도 채 다하지 못하여서 원이 눈을 부릅뜨며 “무슨 잔소린고. 양주삼의 동고리를 빼앗은 일이 없는가?” 호령하였다.

도집강이 주삼의 사위가 전날 이교리란 소문을 듣고 알아보니 주삼의 사위는 외사위로 자기에게 매맞은 사람이 적실히 이교리라. 이교리를 가서 보고 사과를 하여 볼까? 사과를 하러갔다가 봉변하지 아니할까? 망상거리고 지내던 차라 지금 원의 호령이 이교리의 청으로 대신 분풀이하여 주려는 거조인 줄로 알고 얼굴빛이 채수염빛같이 하얘지며 “민어 무지하오나 주삼의 사위가 이교리이신 줄 알았더면 언감 생심이옵지요만, 그때백정의 사위로 언어 행동이 완만하옵기에 모르고 작죄하였사오니 성주 덕택을 입어지이다.” 채수염이 마루청에 서리도록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을 맞대어 치어들고 비니 원이 속으로 웃으면서 “동고리 몇 벌을 빼앗았던고?” 대답이 거의 우는 소리와 같다.

원이 도집강에게 고개를 들라하고 평탄한 말소리로 지나간 일이기에 과히 추구하지 아니하나 속죄는 하여야 할 것인즉 동고리 한 벌에 쌀 한 섬씩 석 섬을 주삼에게로 실려 보내되, 보내는 것을 내가 보아야 할 터이니 지금 나가 곧 실려서 관가로 들여보내라 이르고, 또 이후에는 반명이라고 행패하지 말라고 일러서 보냈다. 도집강이 형문 개나 좋이 맞을 줄 알았다가 쌀 석 섬에 타첩된 것이 도리어 다행하여 집에 나오며 곧 소 세 바리에 쌀을 실렸다. 돌이가 원의 답장을 받고 쌀바리를 영거하여 가지고 나왔다. 사위 나리가 원의 답장을 뜯어보니 그 사연에 이 쌀은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요, 형의 매품을 도집강에게서 추징한 것이라고 하였었다. 사위 나리는 “원이 실없은 사람이로군. 도집강은 내가 애자지원을 갖는 사람으로 알았으렷다.” 하고 편지를 주팔에게 보인 뒤에 서로 바라보고 웃었다. 주삼의 안해는 이것을 알고 몇 번이나 시원하다 고소하다 외치고, 또 입쌀밥을 지어서 식구가 돌아앉아 먹을 때에 이 밥은 별달리 맛나다고 떠들었다.

 

[출처] 임꺽정 봉단편 6 - 모이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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