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대하소설
임꺽정 봉단편 7
-홍명희
임꺽정 : 봉단편:벽초 홍명희 소설
제 8장 상경
1
며칠 뒤에 사위 나리가 속이 거북하다고 아침밥을 설친 일이 있었다. 주삼의 안해는 사위 나리가 시장하겠다고 부지런히 이른 저녁을 지었다. 식구들이 윗방에 모이어 밥을 먹을 때에 홀저에 삽작 밖에 떠들썩하는 소리가 나며 여러 관 하인이 웅긋쭝긋 마당에 들어섰다. 내다보고 알은 체하는 이급제에게 여러 사람이 함께 문안을 드린 뒤에, 그중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조명이 내리셨으니 지금 급히 읍으로 들어오십시사고 하인들을 보냅니다." 하고 원의 전갈을 전하였다. 사위 나리가 몇 술 뜨지 아니한 밥상을 그대로 치우게 하고 총총히 서울길을 떠나게 되었다.
"진지나 더 좀 잡숫고 떠나시지요." 주팔이가 자기 뿐 아니라 집안 식구들의 대리 격으로 말한즉 사위 나리는 "속이 편치도 않고 또 속이 덜렁해서 먹을 수가 없어." 대답하고 "전에도 말해 두었지만 뒷일은 믿네." 일변 말하며 일변 윗옷을 입으니 주팔이도 풀어놓았던 수건으로 다시 머리를 동이며 "나도 읍에까지 가서 떠나시는 것이나 보입지요." 하고 일어섰다. 주삼이는 아우와 같이 읍에까지 가기로 하고 주삼의 안해도 간다고 하는 것을 주팔이가 "아주머니는 고만두시지요." 말리어서 중지하게 되었다.
사위 나리가 주삼의 안해를 보고 작별인사하고 돌이를 보고 작별 인사하는 동안에도 눈은 자주 봉단에게로 가더니 나중에 방에서 나가려고 할 때, 봉단의 옆에 잠깐 발을 멈추고 “몸을 조심하오. 곧 만나게 될 것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오.” 넌지시 당부하고 나와서 마당에 놓인 가마 속에 들어앉았다. 이때 해는 서산을 넘어갔고 어둠빛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봉단이가 그의 어머니와 같이 삽작문 밖에 나서서 가는 가마 뒤를 바라보다가 저녁 안개와 연기 속에 가마가 보이지 않게 되니 “어머니, 가마도 보이지 않네.” 하고 머리를 그 어머니의 팔에 의지하였다. 주삼의 안해가 “이애, 고만 들어가자. 바람이 선선하구나.” 말하여 봉단을 데리고 윗방으로 들어왔다.
돌이는 혼자 앉아서 먹던 밥을 마저 먹다가 “혼자서라도 먹어치우려고 먼저 먹습니다. 아주머니는 누이하고 같이 잡수시오.” 하고 고모에게 말한 뒤에 “누이는 첫이별이라 섭섭할걸.” 하고 봉단의 얼굴을 치어다보니 봉단은 치워놓은 사위 나리 밥상을 바라보는데 눈에 눈물이 어리었다. “저런, 우네.” 돌이의 조롱에 봉단이가 “밥이나 먹우.” 대답하는데 전에 없이 말소리가 날카로웠다. 나중에 주삼의 안해는 밥을 먹고 봉단은 그 어머니의 권에 못이겨 먹는 체하다가 말았다.
이튿날 아침때가 지난 뒤에 주삼의 형제가 읍에서 돌아왔다. 주삼이가 방에 들어와 앉으며 “기구가 장하더라.” 밑도끝도 없이 말하니 그 안해가 “무슨 기구요?” 묻다가“무슨 기구라니, 사위 나리 행차가 떠나는 기구 말이지.”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도 골을 내지 않고 “이야기를 좀 자세히 하시구려.” 청하였다. 주삼이는 “원님이 나오고 육방 관속이 쏟아져 나오고 말머리에 사람이 들어엉기어서 우리 형제는 작별인지만지 하게 간신히 작별하였어.” 말하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으니 주삼의 안해가 갑갑하여 주팔을 돌아보고 “아재가 좀 처음부터 이야기하시오.” 말하여 주팔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위 나리 구명도생하였다는 소식이 조정에서 알게 되어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예문관 응교라는 벼슬을 특별히 제수하고 역마를 주어 올라오게 하라고 조명이 내리었답니다. 그래서 오늘 식전에 역마를 타고 떠났어요. 이야기는 고만이지요. 무슨 다른 이야기가 있나요? 아차, 참 우스운 이야기 하나 들은 것이 있어요. 사위 나리 발이 어떻게 엄청나게 큰지 원님이 함흥바닥을 덜어서 그중 큰 신을 구해놓은 것이 발에 마치어서 할 수 없이 버선의 솜을 빼고야 신었답디다. 그전에 함흥으로 도망올 때 장교에게 잡힐 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발 큰 것이 양반 아니라고 장교가 놓고 간 일까지 있었답디다. 지금 읍에서는 이교리 이야기가 나면 발 크다는 이야기도 따라서 나는데 말에 말이 보태어서 별로 허풍치지 않는 사람이 이교리의 발은 한 자 몇치라고 말한답디다. 발이 한 자 몇 치면 병신이지, 허허허.” 주삼의 안해는 고사하고 경황이 없어 하던 봉단이까지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2
이교리가 승소비전의 급한 길이라 감영에서 감사를 만나 하룻밤을 지낸 외에는 별로 지체없이 역마다 역마를 갈아타고 함흥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교리가 홍화문 안에 들어와서 우선 거접할 고슬 전날 관주인의 집으로 정하고, 친족과 친구에게 기별하여 입을 관복과 부릴 하인과 탈 말을 빌려온 뒤 예궐하여 숙배하고 유순, 김수동 이하 시임재상과 박원종, 성희안 이하 정국공신들에게 문후하고 그 외에 친척 고구를 심방하였다. 이리하여 이교리가 분주히 몇 날을 지내는 동안에 재생한 사람으로 대접도 잘 받았거니와 백정의 사위 노릇하던 이야기를 싫도록 되풀이 아니하지 못하였다. 이 며칠 동안에 이교리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반정 당시의 자세한 이야기를 얻어듣게 되었다. 첫째 반정할 꾀는 성희안에게서 시작이 되었는데 성희안이가 이조참판으로 연산주의 총애를 받다가 일조에 낙직된 뒤에 꾀를 내어서 박원종과 연락을 맺어 가지고 거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과, 구월 초하룻날 정밤중에 의병들이 훈련원에서 모이는데 이 소문을 빗밋이라도 들은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훈련원으로 몰려들어서 길이 멜 지경이었다는 것과, 또 초이튿날 식전에 창덕궁앞 파자교 근처에 의병이 결진하엿을 때 박원종이 부채를 들고 지휘하는 것이 대장 같아 보이었다는 것을 이야기로 들었고, 군사들이 잠저를 옹위하러 갔을 때 그때 진성대군이던 지금 전하께서 무슨 다른 변이 난 줄로 알고 자결하려고 하셨는데 그때 대군 부인인 신씨께서 말머리가 집안으로 향하면 무슨 변이 난 것이지만, 말머리가 밖으로 향하면 보호하러 온 것이니 조금 참으시라고 말렸다는 이야기와 공신들이 신씨의 아버지 되는 신수근이는 죄가 있다고 죽이고 죄인의 딸을 왕비로 두는 것이 불가하다고 하여 고정을 못 잊어하시는 전하를 우기어서 왕비를 폐하게 되었는데 대전에서는 지금도 항상 중전을 생각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또 연산주가 궁에서 쫓겨나올 때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이 홍포자락을 적시더라는 이야기와 연산주 부인이 궁문 밖을 나올 때 비단신이 발에 붙지 아니하여 헝겊 오라기로 신발을 동이었더라는 이야기와, 청파 무당의 집에 나가서 자라는 전날까지 세자이니 대군이니 하던 아기들 중에 어린아이 하나가 오늘 저녁에는 꿩고기 반찬을 왜 아니 주느냐고 물어서 연산주 부인이 눈물을 흘리더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시임 영의정 유순이는 반정 당일에 진중에 불려와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박원종을 보며 영감이 용상에 앉으려오? 성희안을 보며 영감이 용상에 앉으려오? 하였다는 웃음거리 이야기도 얻어들었고, 시임 우의정 김수동이는 공신들이 반정할 일을 알리고 나오라고 한즉 처음에는 목을 내어밀며 베어가라고 하고 진중에 나온 뒤에도 대체를 잘 잡더라는 칭찬하는 이야기도 얻어들었다.
이교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에 이래저래 개연한 맘을 금치 못하여 벼슬을 버리고 어느 시골로 내려가서 봉단과 같이 일생을 안온하게 지내려는 생각이 불현듯이 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직 상소 한 장을 올리었는데, 상소의 대지는 아래와 같았다.
“신이 비록 전고에 드문 은전을 입사와 다시 천일을 우러러보게 되었사오나 국법을 범한 죄는 도망할 길이 없삽고, 또 화를 겪은 뒤로는 모든 세념이 사라져서 은퇴하올 생각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사오니 전하께옵서는 천지하해와 같은 도량으로 신의 벼슬을 갈아 주시기를 바라오며, 또 신이 북도로 도망하와 구명도생하옵노라고 천인의 딸과 육례를 갖추었삽는데 지금 데려오자 한즉 신 같은 불사한 것도 조선의 하나이라 전하의 조정에 부끄럼을 끼치올까 두렵삽고 버리자 한즉 고를 같이 하고 낙을 같이 아니하옴이 인정에 어렵사올 뿐 아니라 신이 어리석사와 서로 버리지 않기를 맹약까지 한 일이 있사오니 천지부모는 구구하온 사정을 내리 살피사 신이 물러가서 천인의 안해와 같이 일생에 성대를 구가 하옵소서. 신은 황공함을 무릅쓰고 말씀을 아뢰옵나이다.
3
이교리가 사직 상소를 올리던 이튿날, “알았다. 사직은 허락치 아니한다” 는 뜻으로 간단한 비답이 내리었다. 이교리가 며칠 뒤에 다시 상소를 올리리라 마음 먹고 있는 중에 홍문관 하인이 나와서 번을 들어달라고 말하였다. 이교리가 “나는 사직하려는 사람이라 번을 들지 못하겠은즉 다른 양반께 가서 보아라” 하고 거절한즉 그 하인은 “다른 양반이라니요? 한바탕 줄달음박질을 치고 나으리께로 왔습니다. 나으리가 못 드신다면 오늘 또 맷복이 터지는 겁니다”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교리가 “그러면 네가 오늘 내 아들이란 욕을 많이 하였겠구나” 하고 웃으니 그 하인은 조금도 황송하여 하는 모양도 없이 “황송합니다만 나으리 아시다시피 번들라고 해서 아니 드는 양반은 모두 내 아들이지요” 하고 역시 웃었다.
“지금 나으리가 누구냐?” “장교리 나으리입니다. 나으리 아시겠지요? 장돼지라고 돼지같이 생긴 양반이에요. 그 양반도 화는 나겠지요. 처음번에 아흐레동안 장번입니다. 소인들이 아무리 여러 댁을 쫓아다니어야 돼지가 좀더 들게 내버려 두라고 하고 번을 갈아 주시지 않습니다그려. 소인들만 죽어나지요. 그 돼지 같은 양반이 매끝이 되어요. 소인들이 날마다 그 양반의 화풀이를 받느라고 참말 죽을 지경입니다. 내 아들이란 욕마디로야 셈이나 됩니까? 또 오늘 저녁에도 번을 갈아 주시는 나으리가 없고 보니 소인의 매는 떼논 당산입니다. 여보십시오, 나으리. 사직을 하시더라도 그 전에 오래 계시던 홍문관에 한번쯤은 들어왓 보시고 사직하시지요”
이교리는 하인의 말에 맘이 솔깃해져서“그래라, 오늘 저녁 한번 번을 들어 주마” 허락하게 되었다. 이교리는 장교리를 만나서 괴 이야기나 하고 한번 웃으려고 하였더니 장교리는 장번 끝에 번을 갈아 줄 사람이 들어온 것만 다행하게 생각하며 총총히 수인사하고 나서 “처음에 멋모르고 선뜻 번을 들지, 알고는 여간 맘 아니 가지고 들기 어렵겠습디다. 이번에 아흐레 동안 사람이 갑갑해서 죽을 뻔 하였소이다”하고 도야지 같은 얼굴을 치어들고 한번 씽긋 웃고는 총총히 나가버렸다. 그날 밤에 이교리가 홍문관에 번든 것을 위에서 알게 되었
다. 이교리는 편전에 불려들어가서 북도에서 고생하던 일을 일장 이야기하여 아뢰고 나중에 상소의 대지를 되풀이하여 사직할 뜻을 아뢰니 왕이 “너의 일은 전고에 듣지 못한 드문 일이라 내가 그 뒤를 아름답게 하여 주리라” 말씀하고 한참 있다가 “너의 의가 좋은 안해를 천인의 딸이라고 버리지 마라” 말씀하였다. 이교리가 편전에서 물러나온 뒤에 술이 내리어서 이교리는 임금의 은혜를 감격하게 생각하며 혼자서 취하였다.
그 이튿날이다. 위에서 특지를 내리었다. 이교리의 직품을 돋우어서 동부승지를 제수하고 그 안해 양씨에게 숙부인 직첩을 내리라는 특지이다. 이교리가 이러한 은명을 받은 뒤에는 망극한 성은을 저버리고 굳이 조정에서 물러가려 함은 신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사직할 맘을 그치고 출사하게 되었는데, 숙배하러 들어온 이승지를 왕이 인견하고 “너의 안해는 인제 천인이 아니요, 조정의 명부이다” 말씀하며 면상에 웃음빛을 나타내더니 나중에 웃음빛을 거두며 한숨을 짓고 “너는 나보다 낫다” 하고 말씀하였다.
다른 때같으면 사헌부와 사간원의 간관들이 이승지의 벼슬이 까닭없이 갑자기 올랐다고 다투고 또 더구나 백정의 딸 숙부인은 변이라고 떠들었으련만, 일반 조정에서 이승지에게 동정하던 때라 양사 간관들이 별로 다른 말이 없었을 뿐이 아니라, 백관 중에서는 미사로 칭송하는 사람이 도리어 많았었다. 그리하여 이승지가 교리로 백정의 사위 노릇하였다는 이야기는 벌써 팔도에 자자하고 백정의 딸이 지금 숙부인이 되었다는 소문은 서울 안에 가득하게 되었다.
4
이승지의 집과 종과 세간은 거제에서 도망한 뒤에 적몰을 당하였었다. 그때 적몰한 것을 조정에서 도로 내어주고 또 호화롭게 사는 선배와 제배들이 이것저것을 보내주고 갖다 주고 하여서 이승지는 북부 안국방 대안동에 새로 와가 한 채를 장만하여 이사하고 살림살이를 떡 벌어지게 차리었다.
이승지가 거처하는 큰사랑에 대병풍 소병풍이 둘러치이고 방 윗목에 이른 매화분까지 놓일 뿐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아직 주인도 없는 세간살이가 미비한 것이 없이 갖추었다. 부엌에 큰솥, 작은솥이 늘비하게 걸리고 장독간에 대독, 중두리, 항아리가 보기 좋게 놓이고 대청에 뒤주와 찬장이 쌍으로 놓였는데 뒤주 위에 용중항아리까지 쌍을 지어 놓이고 안방에는 문채 좋은 괴목장과 장식 튼튼한 반닫이가 겉자리 잡아 놓였는데 장 위와 반닫이 위에는 피죽상자, 목상자가 주섬주섬 얹혀있고 이불장 위에는 이부자리가 보에 싸여 있고 재판 위에는 요강, 타구, 화로뿐이 아니라 놋촛대, 유기등경까지 놓여 있다. 그리하고 집에 있는 사람들이 수가 적지 아니하여 큰 집이 커 보이지 아니한다. 안에는 의복을 맡은 침모 중에 관복을 짓는 관디 침모가 따로 있고 살림의 권을 쥔 차집의 아래 원반빗아치, 곁반빗아치와 원동자치, 곁동자치가 갖추어 있고, 그 외에 상직꾼, 아이종, 다듬이꾼, 솜 피는 할미까지 있어서 안방 외에 여러 방에 주인 없는 방이 없고 사랑에는 세간 청지기, 수청 청지기와 큰 상노, 작은 상노가 두 수청방에 나뉘어 있고 차차로 드나드는 문객들이 작은 사랑에 모여 있어서 사랑에 쓰지 않는 방이 없다. 행랑에 내외 가진 종들과 행랑사람이 있고 하인청에 교군을 메고 말을 모는 구종들과 교군 뒤나 말 뒤를 따라다니는 별배들이 있는 중에 안을 드나들며 안심부름하는 안별감이 따로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은 이렇게 많지만 한 달 삼십 일에 번을 들다 볼일 못보는 동부승지 영감 외에 원주인이 하나도 없으니 사랑은 세간 청지기의 살림이요, 안은 차집의 살림이라 이승지가 틈이 있는 대로 세밀하게 총찰하나 안살림은 자연히 사랑살림만큼 규모가 짜이지 아니한다. 그리하여 안주인을 맞아올 일이 급하였다. 이승지가 함흥으로 하인을 보내는데 주팔에게 편지를 부치는 외에 함흥 군수에게 편지하여 전날에 자기가 힘입은 것을 치사하고 내행이 올 때 힘을 빌려달라고 청하였다.
이교리는 함흥을 떠난 뒤에 두 달이 가까웠다. 봉단이는 서울 소식을 기다리며 하루 이틀 보내는데 배는 조금 불러지고 얼굴은 몹시 야위었다. 하루는 원이 주삼을 관가로 불러들이어서 “이교리 나으리가 그 동안 동부승지로 승직이 되어 이승지 영감이 되시고 너의 딸이 숙부인이 되었다”일러주고 “숙부인이라는 것이 나라에서 주시는 귀한 칭호라 시골 백정의 딸은 고사하고 서울 양반의 집 딸도 저마다 못하는 것이다. 너희 같은 고리백정의 집에서 숙부인이 나다니 전고에 없는 일이다. 너의 딸은 인제 조정에서 부인을 봉하여 주신 사람인즉 너의 동네 사람, 아니 너희들 내외까지도 아무개야 하고 이름을 불러서는 못 쓸 것이니 그리 알고 위하여라”가르쳐 보냈다.
주삼이가 “숙부인 마님, 숙부인 마님” 중얼거리며 미친 사람같이 뛰어나와서 집에 들어서며 “경사가 났다. 집안에 큰 경사가 났다”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마당을 도니 주삼의 안해도 “무슨 경사요?” 주팔이도 “무슨 경사요?” 묻고 봉단이까지도 “무슨 경사입니까?” 묻는데 돌이만이 저의 고모부가 한 발은 짚신 신고 한 발은 맨발로 껑충거리고 돌아다니는 꼴을 우두머니 보고 있었다. 주삼이가 간신히 진정하고 봉단의 숙부인 된 기별을 들려 주니 주삼의 안해가 봉당 위에서 마당으로 껑충 뛰어 내려와서 “내 딸이 숙부인이야” 소리를 지르더니 두 활개를 벌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얼싸 좋다, 내 딸이 숙부인이다. 숙부인이 내 딸이다. 얼씨구좋다” 하고 내어놓는 소리가 그대로 노랫가락이다.
진정하였던 주삼이가 “내 딸이 숙부인이야, 내 딸이 숙부인이다” 하며 그 안해의 뒤에 서서 다시 어깨를 으쓱거리었다. 춤이 끝난 뒤에 주삼이가 원의 가르쳐 주던 말을 옮기고 “인제는 봉단이라고 이름을 부르지 맙시다” 하고 안해를 돌아보니 그 안해는 별안간 화를 벌컥 내며 “숙부인이거나 무슨 부인이거나 내 밑구멍으로 나온 것을 이름도 못 부를까? 부르거나 말거나 내 맘이지 누가 이래라저래라 한단 말이오” 하고 여러 사람의 얼굴을 점고하듯이 돌아보니 주삼은 무료하여 말이 없고 주팔은 빙그레 웃고 있고 숙부인 당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이때껏 아무 말이 없던 돌이는 “아주머니 말이 옳소, 옳아”하고 대답하였다.
5
그날부터 며칠 동안 주삼의 집에는 치하하러 오는 사람에 문이 메었다. 주삼의 결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 왕래가 없던 양민까지도 많이 왔고, 한번 온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두서너 번 온 사람까지도 적지 아니하였다. 그중에 여편네들이 많이 와서 윗방에는 늙은 여편네, 젊은 여편네가 사오 인 칠팔 인씩 함께 몰려 앉을 때가 흔하였다. 말하자면 한동안 주삼의 집 윗방이 동네 여편네의 도회청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여편네가 모이면 종작없는 잔소리가 많다.
“여보, 따님을 밸 때 무슨 치성을 드렸소?” “이 집 따님같은 딸은 열 아들로 바꾸지 아니할 딸이니까 무슨 치성이든지 드리셨겠지” “백일동안 북두칠성님꼐 정화수를 올리셨소?” “백일동안 산천기도를 올리셨소?” “기린산 신령님이 영검하시답디다그려” “산신령님이 부처님만 한가요? 천불산 중천사 부처님은 참말 영검하시답디다” “떵기떵기떵선아 날아가는 학선아, 노구메 진상 내 딸아를 들어보지 못했소? 기린산 가도 천불산 가는 이 꽃섬 사당집에 노구메 진상이 첫째지요” 이렇게 치성 이야기가 한바탕 벌어지기도 하고 “여보, 따님을 밸 때 무슨 태몽을 얻었소?” “주인댁 따님 같은 딸을 낳는 데는 태몽도 정녕 좋았겠지” “달을 삼켜 보면 귀한 딸을 낳는답디다” “뱀은 아들이고 구렁이는 딸이랍디다그려” “가락지도 딸이래요” “가락지뿐이가요? 구멍있는 것은 모두가 딸이지요” “윗동네 간난이 어머니는 간난이 밸 때 꿈에 쌍동밤을 따먹었더라오” “쌍동밤 가지고야 숙부인 딸을 날 수 있소?” “그래도 간난네는 간난이가 나며 집이 늘기 시작했답디다” “용호댁네는 용꿈을 꾸고 아들을 나서 귀히 된다고 떠들더라니 그 아들 몽룡이가 지랄쟁이가 되어서 부모의 걱정만 시킵디다” 이렇게 태몽이야기가 한판을 짜기도 하였다.
수선스러운 여편네는 머릿방에 가만히 들어앉았는 봉단을 쫓아가서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마님을 바치더니 얼굴이 전보다 환하구려. 사내로 나서 영감을 바쳤으면 좀 좋을 뻔했나” 하고 정이 뚝뚝 듣는 듯이 봉단의 손목을 잡으며 “서울은 언제 가요? 한양 천리 한번 가면 다시 보기 어려우니 여기 있는 동안이나 자주자주 만납시다” 하고 수다를 떨었다. 이렇게 수선한 며칠 동안 봉단이는 성가시고 귀찮아서 얼른 서울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더니, 그 뒤에는 부모를 떠날 생각과 서울 가서 지낼 생각이 슬픔과 걱정으로 변하여서 도리어 하루라도
고향에 더 있게 되기를 바랐었다.
이리하여 별로 서울 기별을 기다리지도 않는 중에 서울 하인이 도착하였다. 주팔이가 이승지의 편지를 보고 서울 사정이 급한 모양이니 하루바삐 떠나야 한다고 재촉할 뿐이 아니라 원이 이승지의 청으로 치행 절차를 차려 보내며 곧 떠나라고 말하여 봉단이는 할 수 없이 총총히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때는 벌써 동지달 초생이라 흰 눈은 들에 덮이고 눈 위에 찬바람은 칼날같이 매서웠다.
주삼이가 “이 치운 때 홀몸도 아닌 사람이 어찌 가겠느냐?” 걱정하니 주삼의 안해는 “칩거나 덥거나 갈 사람은 어서 가야지” 하고 주삼이가 “보교 안바람에 발이 시려서 걸어가는 것만도 못할걸” 걱정하더니 주삼의 안해는 “솜 두둑이 둔 보선을 신겨 보내면 고만이지”한다. 이렇게 주삼은 걱정만 하고 다니는데, 주삼의 안해가 치행하는 일을 이것저것 모두 보살피고 봉단이가 눈물을 흘리며 하직할 때까지도 어서 보교에 타라고 씩씩하게 굴다가 봉단이가 보교안에 들어앉고 동네 여편네가 둘러선 중에 교군꾼이 보교를 메고 삽작문 밖으로 나갈 때는 따라나올 생각도 아니하고 봉당에 주저앉아 한바탕 울음을 내놓았다. 주삼이와 돌이는 5리 가량이나 따라와서 주삼은 “잘 가거라. 내년 봄쯤 한번 가마” 하고 돌이는 “이담에 가거든 외대나 말게” 하고 봉단과 작별한 뒤에 각각 배행하는 주팔과도 작별하고 돌아갔다. 주팔이는 머리를 수건으로 동인 위에 패랭이를 젖혀 쓰고 동저고리 바람에 짚신 감발하고 서울서 내려온 하인과 함께 걸어서 보교 뒤를 따랐다.
6
봉단의 일행이 서울서 도착한 뒤 달포 동안 이승지 집 안팎 하인들 사이에는 봉단의 근본을 들추는 뒷공론이 그치지 아니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인영감을 꺼리어서 겉으로 대접하나 겉대접 대신에 뒷공론이 말 아니게 심하였다.
“정수리에 감쪽을 붙인 꼴이라니 천생 시골 백정의 딸이야” “입은 옷 꼬락서니라니 보병것이나마 제도가 되었어야지” “그 삼촌 명색을 보지, 시골 백정놈 주제에 조카딸 자세하고 점잔빼는 꼴이라니 눈이 시어 못 보겠어” “백정의 딸년더러 마님이라고 부르자니 작년에 먹은 올벼 송편이 되살아 올라올 지경이야. 도망이라도 해야지, 이 집에서 못살아” 달포 지난 뒤에 뒷공론이 조금 변하였다.
“감쪽을 떼고 머리를 쪽지니까 이쁘장스럽던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시골 백정의 딸이라 태가 나지 아니해” “동이 짧은 회장저고리를 입은 것이 대단히 거북살스러워 보이든군. 긴 치마를 늘이니까 마당발이 가려져서 흉 하나가 덮이겠지?” “말수가 적은 것이 잔소리는 심하지 아니할 모양이야. 차차 지내보면 알겠지만 백정의 딸로는 사람이 제법이야” 달포가 가까워진 뒤에는 뒷공론이 처음과 아주 딴판으로 변하였다.
“이쁘고 맘씨 좋고 시골 사투리 외에는 훌륭한 젊은 마님이야. 어디가 백정의 딸 같기나 해?” “그 삼촌도 여간 유식하지 아니한 모양이야. 함흥서는 백정학자라고 유명하더라지?” 뒷공론을 받고 지내는 동안에 봉단이는 남모르게 애도 많이 태우고 속도 많이 상하였다. 주팔이는 이승지가 따로 방을 하나를 치워 준 까닭에 옷 입고 주는 밥 먹고 가만히 방에 들어앉아서 심심하면 책자나 떠들어 보고 지낼 뿐이니까 별로 견디가 어려운 일이 없었지만, 봉단이는 그렇지 못할 것이 천생은 아무리 총명하여도 병신 구실을 아니하지 못할 처지다. 침모, 차집 이하 여러 사람에게 둘러 지내며 서투른 것을 익히고 모르는 것을 배우노라니 견디기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할 것이 정한 일이다. 이승지가 번나와서 내외 단둘이 마주 대하여 앉게 되는 밤 저녁이외에는 일시라도 맘을 놓고 지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애를 태우고 속을 상하는 대신에 문견이 나날이 늘어갔다. 워낙 소명한 재질이라 남이 하는 일을 한두번 눈여겨 보면 못할 것도 없기도 하였지만, 관디 침모가 나이 지긋하여 아는 것이 많고 더욱이 사람이 좋은 까닭에 바느질도 배우고 언문도 배우고 서울 풍속도 배우고 또 양반집의 봉제사 접빈객하는 범절까지도 배웠고 차집은 성미 있는 사람인 까닭에 비위를 맞춰가며 음식 만드는 법을 아무쪼록 골고루 배웠다. 그리하여 한달이 채 못 되어서 바느질이나 또는 음식 만드는 것이나 거의 막힐 것이 없었다. 번상을 차릴 때 “저 명란 접시
에 움파를 곁들여 놓는 것이 좋지 않소?” 차집보고 말하고 옷을 지을 때 “이 저고리 깃은 모를 좀더 동글리는 것이 보기 좋지 않겠소?” 침모보고 말을 하여도 침모나 차집이 고개를 외치지 않을 만큼 되었다. 부리는 사람에게 대한 말은 아이종 이외에는 곁동자치에게까지도 ‘해라’를 쓰지않고 ‘하오’를 쓰던 것을 이승지가 그리 말라고 말하여 아랫도리에 도는 하인에게 간혹 “해라”도 쓰지만 대개는 말끝이 없는 반말을 쓰고 솜 피는 할미 같은 늙은이와 관디침모나 차집같은 대접할 사람에게도 깍듯이 ‘하오’를 쓰던 것이다.
하루는 이승지가 감기기운이 있어 공고에 탈하고 집에 누웠는데, 아무리 하여도 사랑은 부산하여 성가시다고 안방 모방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서 부인이 안방에 나가 있을 사이가 없이 마님 여쭈라고 불러들이었다. 심부름하는 아이종들은 나가고 내외만 있을 때 누운 이승지가 앉은 부인의 배를 가르키며 “밥을 하루 몇 끼나 먹기에 배가 저렇게 부른고?”하고 웃다가 그치고 손가락을 꼽아보며 “일곱 달로는 배가 부르지 아니한 셈이오. 예사 밥 좀 많이 먹은 사람의 배밖에 아니 되오그려” 하고 치마 밑으로 배를 만져보려고 하니 부인은 몸을 피하며 “이승지 영감이 안해 대접을 김서방같이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눈으로 웃는데 이승지는 가만히 “이승지도 봉단이 생각은 놓지 못한다던데”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날 내외가 조용히 이야기하는 중에 부인이 섣달 그믐이 멀지 아니하였다고 설쇨 준비를 걱정하다가 이승지가 “우리 살림으로 설 쇠기가 처음이니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하는 말에 “뒤에 딴 말씀은 못하십니다.” 하고 뒤를 다져두었다. 며칠 지난 뒤 이승지 부인이 차집을 데리고 집안 사람들에게 세찬 줄 것을 의론하는데, 모든 것을 과하도록 후하게 정하여 주인 영감에게 말하니 영감이 처음에는 너무 과하다고 말하다가 “딴 말씀 아니하신다더니” 한마디에 웃고 부인의 말을 좇았다. 그 뒤로는 하인들 상에 백정을 들추는 뒷공론이 그치었다.
7
설이 지나가고 경칩 추위까지 새봄이 돌아왔다. 그 동안 주팔이는 이승지의 명주옷까지 얻어 입고 입쌀밥으로 배를 불리고 지냈으나, 아무 할 일도 없이 나돌아다니다가 하인들에게라도 망신을 당하면 자기의 조카딸은 고사하고 주인 영감의 안면까지도 깎일 것이라 갑갑한 것을 참아가며 가만히 방구석에 들어앉았었다. 조카딸의 얼굴을 보기는 한 달에 한 번이 어려웠고 주인영감과 한 방에 앉아보기는 열흘에 한번이 드물었다. 말벗이 되어 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까닭으로 종일 말하는 것이 마디수를 헤아릴 만큼 적었었다. 주팔이는 자기가 겨울 벌레의 신세와 방사하다고 생각하여 겨울 벌레를 두고 글귀까지 지은 일이 있었다.
주팔이가 남창을 열어놓고 눈 녹은 뒤 남산의 부드러운 자태를 바라보고 앉았다. 종남산 새봄이라는 글제로 귀글을 지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울적산 심사가 글구멍을 막았던지 글이 한 구도 잘되지 아니하여 뜰 아래로 내려와서 이리저리 거닐었다. 얼마 뒤에는 뜰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낙수받이의 모래를 두 손가락으로 집었다 놓았다 하였다. 그리하는 중에 꼬물꼬물 돌아다니는 개미들이 눈에 뜨이었다. 댓돌 밑에 있는 개미굴을 찾아와서 드나드는 개미를 들여다보느라고 다시 쪼그리고 앉았는데, 개미들은 혹 혼자 따로 떨어져서 앞발로 수염을 닦달하는 놈도 있고 혹 오다가 다시 서로 만나서 수염으로 인사하는 놈도 있고 그 외에 양기를 받아서 기운을 내려는 듯이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놈이 많았다.
주팔이가 종남산 새봄도 잊어버리고 잠착히 개미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날 번을 나와 집에 있던 이승지가 안에서 주팔의 방으로 나오는 일각문을 나서서 쪼그리고 돌아앉은 주팔을 보고 “댓돌에 대고 대죄할 일이 있는가?” 하고 껄껄 웃으니 주팔이는 놀라 일어나서 돌아서며 별로 의미도 없이 “아니올시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승지는 그 대답이 우스워서 또다시 껄껄거리고 주팔이는 운에 딸리어서 입을 벌리고 웃었다. 이승지가 창문 앞 툇마루에 걸터앉은 뒤에 주팔이가 그 앞에 서서 “그러지 않아도 영감을 뵈옵고 좀 여쭐 말씀이 있었는데
오늘 마침 한가하신가 보오이다그려”말하니 이승지는 섰는 주팔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무슨 말인가?” 하고 물었다. 이리하여 주팔이와 이승지 사이의 문답이 한참동안 길게 계속되었다.
“간단히 말씀하면 영감께 잠깐 하직을 여쭈려는 것이올시다” “하직이라니? 왜? 무슨 불만이 있나?” “아니올시다. 등 덥게 입고 배부르게 먹고 지내니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만, 원래 산야에서 자란 것이라 서울이 갑갑할 때가 많습니다.” “서울이 갑갑해? 차차 있어나면 갑갑증이 없어지지” “다시 서울을 오더라도 시골 가서 돌아다니다 오겠습니다” “아니야, 시골 갈 생각 말고 서울 있어. 내가 내외간에 의론한 일도 있지만 자네가 일생을 홀아비로 지낼 까닭이 있나. 그러니까 내가 여편네 하나를 구해서 서울 살림을 차려 줄 작정이야” “그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할 수 없을 것이 무엇인가? 남의 정을 막지 말게” “영감께 정이 들지 아니하였다면 서울을 올 까닭도 없고 천한 종적으로 거북한 것을 무릅쓰고 서울서 한겨울을 날 까닭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겨우살이를 마친 벌레와 같이 꿈실거릴 생각이 나서 잠깐 하직을 여쭈려는 것입니다. 뵈옵고 싶은 정이 간절하면 또다시 오겠습니다” “허허, 고집 아니할 것을 고집하네그려. 그래 가면 함흥으로 가려나?”
주팔이는 다리가 아프든지 툇마루 한끝에 올라앉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고향에 가려는 것이 아니올시다. 평생에 명산대천을 구경하려는 소원을 가지고 이십 안에 명천 칠보산과 회령 두만강을 구경하고 이십이삼때에 회양 금강산을 구경한 외에는 다른 유명한 산천을 구경하지 못하였습니다. 인제 차차 좀 소원을 풀어볼까 합니다” “산천 구경이 소원이거든 우선 북한 가서 삼각산이나 구경하게” 하고 이승지가 웃는데 주팔이는 웃지도 않고 “삼각산은 구경할 기회가 앞으로 많이 있을 듯하니까 먼 데 있는 산천부터 구경하렵니다. 우선 남으
로 내려가서 지리산, 한라산을 구경하거나 또는 서로 가서 묘향산을 구경하거나 하렵니다”하고 결심한 것을 말하였다. 이승지가 주팔의 결심을 돌리기 어려운 것을 본 뒤에 “그러면 지금 영변부사가 나의 친한 사람이라 편지를 해줄 것이니 묘향산이나 곧 올라오도록 하게” 허락하였다. 며칠 뒤에 주팔이는 왕반 두 달을 작정하고 묘향산 구경을 떠나갔다.
8
주팔이 떠난 뒤에 얼마 되지 아니하여 이승지 집의 객식구가 다시 하나 생기었다 그 객식구는 이승지의 유모의 아들이다. 그전에 거제 배소에까지 전위하여 찾아갔던 삭불이다. 어느 날 저녁때, 이승지가 사랑방에 혼자 누웠는데 젊은 수청지기가 방으로 들어와서 “어떤 젊은 자 하나가 밖에 와서 영감마님을 뵙겠다고 한답니다”말하였다. 이승지는 누운 채로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지 않았단 말이냐? 젊은 자가 누구란 말이냐?” 청지기를 나무라니 청지기는 “어디서 왔는냐고 물어야 그것은 대답하지 않고 삭불이라고 여쭈면 영감마님께서 아시다 하더랍니다” 말하자마자 이승지가 “무어 삭불이?” 하고 벌떡 일어 앉으며 “어디 있는냐?” 하고 급히 물었다. “하인청에 있답니다” “어서 불러라”.
청지기는 삭불이가 누구인데 주인 영감이 저렇게 반색하나 속으로 괴상히 생각하며 수청방으로 나온 뒤에 설렁을 쳐서 하인을 불렀다. 이승지가 앞미닫이 한 짝을 열어놓고 앉았는데 삭불이가 들어와서 뜰 아래에 문안을 드리니 이승지가 내다보며 말하였다.
“너 어디 가서 있었느냐? 너를 한번 만나서 싶어서 그동안 더러 알아도 보았다만 어디 알 수가 있드냐?” “소인은 그동안 경상도 문경땅에 가서 있었습니다” “문경은 어째서?” “영감님도 아시지만 소인의 동무 한치봉이가 연전에 죽었습니다. 그 뒤로는 서울서 생화가 잘 되지 아니하는 까닭에 문경까지 불려갔었습니다” 이승지는 삭불이의 말을 듣고 “생화, 생화” 두서너 번 뇌고서 “문경가서는 무엇하였느냐?” 하고 물으니 솔랑솔랑하던 삭불이는 낫살을 먹어도 별로 전과 다름이 없어서 몸을 잠시 가만히 두지 아니하고 깝신거리면서 “그저 그럭저럭 지냈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럭저럭이라니? 그럭저럭 그 생화란 말이지?” 하고 이승지가 맘에 마땅치 못한 듯이 “으응” 하고 입을 다무니 삭불이는 두 손길을 마주 잡고 “영감마님꼐 기망하올 길이 있소이까?” 하고 허리를 굽신하였다. 이승지는 다소 화가 나는 어조로 “그런 생화를 두고 어째 또 서울을 왔느냐?” 하고 삭불의 얼굴을 노려보니 삭불이가 또 허리를 굽신하며 “작년에 새로 온 원님이 너무 까다로운 까닭에 생화가 시원치 않으와요. 그래서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하고 머리를 까댁하여 갓을 빼또롬하게 쓰고 다시 한번 허리를 굽신하였다. 그날 밤에 이승지가 조용히 삭불이를 불러세우고 나무라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한 뒤에 아직 자기 집에 있으라고 말하여 삭불이가 이승지 집의 객식구 노릇을 하게 되었다.
주팔이가 돌아온다던 두 달 기한이 되었다. 그러나 주팔이는 오지 아니하였다. 한 달 두 달 지나가서 주팔이가 서울을 떠난 뒤 반년이 넘었다. 그래도 주팔이는 오지 아니하였다. 그 동안에 주삼의 내외가 서울 올라와서 얼마 동안 묵었는데, 주삼이는 주팔을 만나보고 가겠다고 더 묵으려고 하였으나 주삼의 안해가 거북살스럽고 토심스러운 것을 참지 못하여 남편더러 가자고 재촉하여 도로 내려갔고, 이교리를 배소에서 도망시켜 주던 거제 집주인이 서울 올라와서 이승지의 후대를 받다가 오래는 묵을 수 없다고 돌아갔고, 또 이승지의 부인이 사월 초생에 아들을 낳아서 그 아이가 지금 백일이 지났다. 이승지가 처음 두 달이 지났을 때는 주팔이가 구경에 팔리어 늦는 것이라고 그다지 걱정을 아니하였으나, 두 달이 석 달이 되고 석 달이 넉 달이 되어 차차 오래 되어갈수록 차차 걱정이 더 되어서 내외가 앉으면 “길에서 화적에게 죽었나? 산에서 범에게 죽었나?” 걱정이 한이 없었다.
이승지가 영빈부사에게로 알아본 즉 당초에 편지를 가지고 온 사람은 없었다는 기별이 왔다. 이승지는 자기도 걱정이 되려니와 그 삼촌이 어디서 죽은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는 부인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기로 작정하고 또 보낼 사람은 삭불이로 작정하였다. 이승지가 주팔의 용모와 거동을 세세히 일러준 뒤에 삭불이를 묘향산으로 떠나보내었다.
9
주팔이는 이월달에 서울을 떠난 뒤에 급할 것이 없는 길인만큼 중로에서 달소수를 넘어 허비하고 삼월 망간에 묘향산을 들어서게 되었었다. 모향산은 희천, 영변, 여원, 덕천 네 고을 사이에 사백여 리 동안에 웅거하고 서리어 있는 겹산이라 상봉인 비로봉 외에 석가봉, 관음봉, 원만봉, 향로봉, 법왕봉이며 미륵, 칠성, 지장, 시앙, 가섭, 아난이란 이름 가진 봉이 첩첩이 싸이어 이곳저곳에 솟아 있고, 팔만구암자라는 말이 나고 내산에 삼백육십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도록 절과 암자가 많은 곳이라 서도 대찰로 일국에 이름이 높은 보현사 큰절 외에도 도승의 유적이 많기로 유명한 안심사와 폭포의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상원암 같은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짝마다 봉우리마다 토굴이나 암자가 없는 곳이 없는데, 금강굴이다 불영대다 또는 내원암이다 하는 중이 있는 곳도 많지마는 상중하 도솔암이나 또 상중하 비로암이 있다고 하는데 중이 없어 퇴락한 곳도 많고, 무슨 암자 무슨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 빈터만 남은 곳도 적지 아니하였다.
주팔이가 만세루에 올라앉아 천주암이 높은 솟은 탁기봉을 바라보기도 하고 단군대에 올라가서 조선 시조 단군님이 나셨다는 단군굴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주팔이가 큰절에서 얻어먹고 작은 암자에 와서 자기도 하고 이 암자에서 얻어먹고 저 암자에 가서 자기도 하여 이리저리 왕래하는 중에, 낮은 땅의 복사꽃과 높은 산의 진달래를 신기하게 보지 않고 낮에 우는 접동새와 밤에 우는 소쩍새를 예사롭게 듣도록 묘향산 안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다.
주팔이가 일간 떠나서 서울로 돌아가려고 맘을 먹고 있던 때에 삼성대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있는 조그마한 암자에서 이상한 사람 하나를 만나보았다. 그날 주팔이가 비로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수미대, 백운대를 거치어 삼성대에 와서 다리를 쉬고 앉았다가 우연히 이 암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암자 밖에 서서 퇴락한 것을 보고“여기도 중이 없는 모양이로군”하고 혼자 탄식하며 안을 들어가 보지도 아니하고 그대로 길을 찾아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암자 안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아이구, 사람이 있네” 하고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간즉 겉은 퇴락한 암자지만 안은 정결하다.
마당에는 비질을 깨끗이 하였고 마루에는 걸레질을 깨끗이 하였다. 볕에 말리려고 뜰에 널어놓은 송엽외에는 티끌 하나가 없어 보이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방을 들여다본즉 두 사람이 마주 대하여 앉았는데 한 사람은 책상다리로 앉았고 또 한 사람은 꿇어앉았다. 책상다리한 사람은 머리는 깎았으나 수염은 남겼고 참선하는 수좌가 입는 것 같은 누더기옷을 입었는데 나이가 사십 가량 되어 보이고 꿇어앉은 사람은 머리도 깎지 않고 옷도 반반하게 입었는데 나이가 이십이 못 되어 보이었다. 주팔이는 들여다보아도 방안에 있는 사람은 내다보지 아니하는 까닭에 주팔이가 사람이 온 것을 알리려고 기침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은 흘끗 한번 내다보고 말이 없이 책상다리한 사람의 얼굴을 치어다보고 책상다리한 사람은 여전히 모른 체하고 앉아서 내다보지 아니하였다. 주팔이가 널린 송엽을 피하여 뜰에 올라서
며 “구경 다니다가 잠깐 다리를 쉬러 들어왔습니다.” 말을 통하니 책상다리한 사람이 그제야 내다보며 “그 마루에 앉아 쉬어가시오.” 대답하고 나서 젊은 사람에게 향하여 “나가 있다 오너라.” 이르고 젊은 사람 앞에 펴놓았던 책을 접어 치우니 그 젊은 사람이 일어서 마루로 나왔다. 주팔이 그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다리를 쪼그리고 앉으니 그 사람이 편히 앉으라고 권하였다. 주팔이는 어려워하는 빛을 보이며 "저는 천인이올시다. 이렇게 앉았기도 황송하오이다." 말하고 다리를 더욱 쪼그리니 젊은 사람이 웃으며 "관계없소. 편히 앉으오. 아까 선생님께서 오늘 신시에 점잖은 천인이 찾아오리라 말씀하시더니 지금 신시 때나 되었을걸." 하고 해를 치어다보려고 고개를 기울이는데, 방안에 앉았던 선생님이란 사람이 "윤아, 입을 가볍게 놀려서는 못쓰는 법이야." 하고 젊은 사람을 나무라서 그 사람도 말이 없고 주팔이도 말이 없이 한참 동안 앉았었다. 주팔이가 너무 오래 앉았기가 미안하여 일어서며 그 젊은 사람을 보고 "가겠습니다." 하고 뜰에 내려와서 방안을 들여다보며 "다리를 잘 쉬어 가지고 갑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선생님이란 사람은 말없이 고개만 한번 끄덕이었다.
10
주팔이는 산길로 내려오며 생각하였다. '그 사람이 무엇일까? 도승일까? 이인일까? 내가 갈 것을 미리서 알고 있었다지! 도기가 있는 외모만 모더라도 분명히 이상한 사람이야! 내가 그 사람 밑에 가서 제자 노릇이나 해보겠다. 제자 되겠다고 청하면 선선히 들어줄까? 지성감천이라니 어디 정성을 들여보지.' 주팔이는 중 있는 어느 암자에 와서 그날 밤을 지나고 이튿날 첫새벽에 일어나서 채 잘 보이지도 아니하는 산길을 더듬더듬하며 올라갔다.
그 암자의 문은 열리어 있었으나 암자 안은 쾨쾨하여 인기척이 없었다. 암자 안에 들어와서 본즉 방문은 닫혀 있다. 아직 기침을 아니한 것이거니 주팔이는 생각하며 가만가만히 비를 가지고 달그락 소리도 나지 아니하도록 조심하며 마루를 정하게 닦아 놓았다. 날은 환히 밝아서 해도 들 때가 되었는데 방문은 아직도 열리지 아니하였다. 주팡이는 마루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방안에서 기침하기를 기다리다가 문 앞길이나 쓸어놓으리라 생각하고 뜰 아래로 내려오는데, 그때 "손님이 와서 집안을 치워노셨군." 말소리가 먼저 들리며 젊은 사람이 문밖에서 들어왔다. 주팔이는 깜짝 놀라며 마주 나가서 "어디를 이렇게 일찍이 갔다오십니까?" 물으니 젊은 사람은 선생님이 행기하러 가시는데 뫼시고 갔었소.” 대답하고는 “새벽에 행기하로 가셔요?” 묻고 또 “선생님은 다른데 가셨습니까?” 물어야 젊은 사람은 말 많이 하기를 피하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어 그렇다는 뜻을 보이고 뒤를 돌아보아 뒤에 온다는 뜻을 보일뿐이었다.
얼마 아니 있다가 선생님이란 사람이 들어왔다. 주팔이가 집안 치워놓은 것을 짐작하련만도 말 한마디가 없고 공손히 인사하여도 역시 말 한마디가 없었다. 젊은 사람이 방문을 열어놓고 선생이란 사람이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주팔이가 뜰 아래에 서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하고 허리를 굽히고 “말씀 여쭙기가 외람하오나 제자로 두시고 가르쳐 주시기를 소원입니다.” 하고 공손히 절하였다. 그 대답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었으나 대답이 없다. 주팔이는 다시 공손히 절하고 일어나서 “하인으로 두시고 부리어 주시기라도 하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말하니 “하인 쓸데 없소.” 간단한 대답으로 거절한다. 주팔이는 서 있었다. ‘옛사람은 선생의 집 문앞에서 석 자 눈이 쌓이도록 서 있었다하니 나도 그만한 정성을 보이리라.’ 주팔이는 속으로 생각하며 두 손길을 맞잡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다리에 피가 내리도록 서 있었다. 다리가 떨리었다. 그래도 그대로 서 있었다. 다리가 남의 것 같이 되었다. 그래도 그대로 서 있었다. 나중에는 주팔이가 쓰러지지 아니하려고 애를 쓰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아니하여 썩은 나무같이 쓰러졌다. 방안에서는 내다보는지 아니 보는지 말 한마디가 없고 선생과 제자가 수작하는 나직나직한 말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주팔이가 맨땅에 주저앉은 뒤에 젊은 사람이 방에서 나와 가엾게 여기는 눈치로 주팔을 바라보면서 선생님이 올라오라신다고 말하였다. 주팔이는 인제 허락이 나는가 보다 생각하며 기어올라가다시피 하여 마루로 올라갔다.
젊은 사람이 쌀가루 한 봉지와 맑은 물 한 그릇을 주어서 먹었으나, 기다리는 선생의 허락은 나지 아니하였다. 그날은 마침내 선생의 허락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 중에게 와서 자고 이튿날 또 첫새벽에 올라가서 마당 쓸고 마루 치고 선생이 행기하고 들어온 뒤에 뜰 아래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날도 역시 전날과 같이 선생의 허락하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사흘 되던 날 첫새벽에 주팔이가 ‘정성이 부족한 탓이다. 오늘은 그 암자에서 밤을 새우더라도 선생님의 허락을 받도록 정성을 들이리라.’ 생가가하고 올라오니 그날은 선생이 행기하러 나가지 아니하고 암자에 있다가 들어오는 주팔을 보고 곧 “너의 정성이 무던하다. 이 방으로 들어오너라.” 말하였다. 이것이 주팔이의 기다리던 허락이다. 이리하여 주팔이는 머리 깎고 수염 있는 그 이상한 사람에게 제자 노릇을 하게 되었다.
11
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에 주팔이는 여러 가지 일을 알았다. 선생의 성명은 이천년이라 일컫고 나이는 기축생으로 금년 삼십구 세라는 것을 알았고 어느 도사람인 것은 말한 일이 없어서 그 젊은 사람까지도 알지 못하나, 그 쓰는 말이 경사인것으로 모아서 경기 사람인 것을 짐작하였고 선생이 처음에는 수월당 노장중의 상좌로 출가한 까닭에 수월당 스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노장의 말인 것을 알았고 그 젊은 사람은 강원도 태생으로 성명이 김륜이라 선생이 ‘륜아, 륜아’ 부르는 것을 알았다. 안 것이 이뿐이 아니다. 이외에도 또 많이 있다. 수월당 스님이 쌀·쌀라구, 지, 필, 묵을 대어주되 달라는 대로 쓰는 대로 군소리 없이 대는 것을 알았고, 선생이 주장으로 쌀가루·솔잎가루를 가지고 생식하는데 간간이 밥을 지어서 화식도 하고, 또 삼사 일씩 절곡하고 물만 마시기도 하는 것을 알았고, 선생이 행기하러 암자 밖에 나가는 때가 해진 되가 아니면 첫새벽인 것은 산에 오라다니는 사람을 마나보기 싫어하는 까닭인 것을 알았고, 또 김륜이는 남의 서자로 천대받기가 싫은 까닭에 삼 년 전에 집에서 뛰어나와서 산천 구경을 다니다가 작년에 묘향산 구경 왔던 길에 선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지금 십팔세의 소년인 것을 알았다.
주팔이가 처음 한 달 동안 선생의 심부름은 고사하고 김륜의 심부름까지 하느라고 별로 공부한 것이 없이 지나고 그 다음달부터 선생의 저술하는 삼원명경이란 책을 얻어보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사람의 상중하 삼원 명수를 추구한 것이니, 말하자면 사주책의 전서라고 할 것이다. 선생의 저술하여 놓은 삼원명경의 권수가 벌써 오십여 권이나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데 선생의 말로 보면 나중에 백여 권이 넘는 음양술수에 대하여 책권을 좋이 보았고 또 자기대로 다소 짐작이 있는 터이라 삼원명경이 어렵지 아니하였다. 간간이 의심나는 곳이 있어 선생에게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대개는 익숙한 책을 보듯이 내려보았다. 그리하여 참깨 같은 글씨로 적은 삼원명경 오십여 권을 한 달 안데 다 보고 나서 본것을 가지고 선생과 같이 이야기 하게 되었다. 선생이 그 재분을 칭찬할 뿐이 아니라 일 년동안에 십팔구 권밖에 보지 못한 김륜이는 놀라지 아니하지 못하였다.
어느날 선생이 김륜에게 대하여 “주팔이가 나에게 오기는 너보다 뒤졌으나 첫째 사람이 너보다 낫고 둘째 나이가 너보다 많고 셋째 재주가 너보다 앞서니 너는 주팔이를 형으로 대접하여라.” 말한 가닭에 김륜이는 주팔이를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팔이는 책을 많이 본 사람이라 선생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 하는데 삼교구류에 말이 막히지 아니하므로 말 적던 선생이 자연히 말을 수다히 하게 되었다. 선생이 주팔이를 보며 “주팔아, 너는 나를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 온 뒤로 내가 말이 많아졌다.” 말하고 웃은 일까지 있었다. 선생이 주팔을 사랑하는 까닭에 자기의 아는 천문지리와 음양술수를 아끼지 않고 가르쳐 주어서 불과 사오 삭 안에 주팔의 재주가 거의 선생을 따르게 되었다..
늦은 봄에 온 주팔이가 여름을 다 지내고 가을을 맞게 되었다. 팔월 추석날 밤이다. 선생, 제자 세 사람이 밝은 달이 비치는 마루에 나앉아서 역리를 이야기 하는데 건너편 산에서 여우가 울었다. 한 번 울고 마를 것이 아니라 괴상하게 여러 차례 울었다. 이편을 향하여 우는 것 같았다. 캥캥하는 소리에 김륜이는 상을 찡그리며 왼손을 펴서 들고 엄지손 끝으로 제 손가락의 마디를 짚어보더니 주팔을 보며“여보 형님, 저 여우가 오늘밤 안으로 죽겠구려.”주팔이가 이 말을 듣고 한참 있다가 “이 시각에 죽겠는데.” 대답하고 선생을 보며 “선생님, 괴상합니다. 점사를 내자면 불인불시에 토혈즉사라고 하겠은즉 칼을 맞아 죽는 것도 아니요, 화살을 맞아 죽는 것도 아니데 무슨 까닭으로 피를 토하고 곧 죽게 되겠습니까? 까닭을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이 “무슨 까닭?” 하고 몇 마디 주문을 입안으로 중얼중얼 외며 여우가 우는 편을 항하여 손을 내밀고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더니 이때껏 캥캥 하고 울던 여우가 외마디로 캥하고 뚝 그치었다. 세 사람은 역리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밤이 늦은 뒤에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식전에 김륜이와 주팔이가 건넛산에 가서 본즉 크기가 종개만한 불여우가 입으로 피를 토하고 죽었었다. 앞섰던 김륜이가 주팔을 돌아보며 “형님, 이여우가 분명히 선생님 주문에 죽은 것이 아니겠소? 그 재주만 가지면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지 않소? 우리 가서 선생님께 가르쳐 줍시사고 졸라봅시다.” 말하는데 주팔이는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아우님, 고만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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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륜이와 주팔이가 건넛산에서 돌아오니 선생은 삼원명경을 또 새로 한 권 쓰기 시작하려고 책을 매고 있었다. 김륜이가 선생의 앞으로 나아가서 새삼스럽게 절을 하고 꿇어앉았다. 선생은 고개를 들고서 김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번 혀를 차고 다시 고개를 숙이었다. 김륜이는 주문을 배우고 싶은 생각을 차지 못하여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뫼시고 지내는 동안에 배운 것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 음양술수에 능란하다고야 말할 수 있습니까만 조박을 짐작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꼐서 주문에 까지 놀라운 재주를 가지신 것은 오늘이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인제는 그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거두어 두신 본의 로 보아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다시 일어나서 절은 하니 선생이 매던 책과 책구멍을 뚫던 송곳을 놓고 김륜의 얼굴을 바라보며 “륜아, 너의 지금 배우는 술수를 몇 해만 더 익히면 일생에 의식을 걱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부질없이 주문 같은 것을 배울생각 마라.” 타이르는데 김륜이는 또다시 일어나서 절을 하고 "선생님, 다른 술법은 다 고만두시고 그것만 가르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고 조르니 선생이 '허허‘ 하며 한번 천정을 치어다보고 다시 김륜의 얼굴을 바라다보며 "내가 너의 맘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고 기이한 술법만 가르친다면 나의 죄가 적지 않을 것이다. 너는 아직 나에게 있어서 맘을 바로잡도록 공부하여라. 정심공부가 주문 공부보다 너의 몸에 이로울 것이다." 준절하게 말하였다. 김륜이가 속에는 아앙한 맘이 없지 아니하나 선생의 말을 거역할 길이 없어서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주문 배울 생각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종시 그 생각이 속에 남아 있어서 그날 저녁에 주팔이와 같이 암자 밖에 나섰다가 "여보, 형님?" 불러가지고 "그 술법은 선생님이 대단히 아끼시는 모양이야. 그러나 그 까짓것 못 배운다고 죽을까." 하고 선생에게 대한 불만한 의사를 보이었다. 주팔이는 아무 말도 아니하였지만, 속으로는 선생이 가르치지 아니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심지가 요양미정한 사람이 그러한 술법을 배우는 것은 세상에 해될 뿐 아니라 그 사람 당자에게도 이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날부터 이삼 일 뒤의 일이다. 선생이 붓이 모지라져서 쓸 수 없다고 붓을 얻으러 김륜을 수월당에 보내고 주팔이와 둘이 암자에 있었는데 선생이 "주팔아!" 부르더니 "너는 나에게 오래 있지 못할 사람이다. 수이 이별하게 될 터인데 너 같은 사람을 놓치고는 나의 아는 것을 전수 할 곳이 없을 것이다." 하고 자리 밑에서 휴지책 같은 책을 두 권 꺼내서 손에 들고 "나의 아는 재주로 지금 너 모를 것은 이 책 두 권에 다 들었다. 륜이가 배우기를 원하는 술법도 이 책 속에 적혀 있다. 네가 이 책 두 권을 가지고 공부하되 륜이를 알리지 말고 가지고 세상에 나간 뒤에도 어느 누구에게든지 보이지 마라. 네가 익숙한 뒤에는 불에 넣어 없이 하여라. 전수할 재목이 못되는 사람에게 전수하지 못할 것이매 대개 너에게까지 가고 그치게 될 것이다. 보다가 모르는 것은 륜이 없는 틈에 몰아 물어라." 하고 주팔을 내어주니 주팔은 공손히 절을 하고 받았다. 책 제목이 한 권은 부주비전이요, 또 한 권은 망단기결이다.
주팔이가 두 권 책을 큰 보배와 같이 품에 품고 다시 일어나서 절하고 앉은 뒤에 선생이 "이승지가 너 찾으러 보내는 사람이 벌써 서울을 떠났다. 그러나 그 사람이 중로에서 병으로 지테가 되어 달포 뒤에나 이 산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때는 네가 이 산을 떠나야 할 것이다." 말하는데 주팔이가 "저는 일평생이라도 선생님을 뫼시고 지내기가 원이올시다. 오는 사람은 그대로 돌려보내겠습니다. 말한즉 선생은 고개를 외치며 "아니다. 네가 나가야 한다. 만일 아니 나가고 이승지의 편지가 영변 절도사에게 오게 되는 날이면 너는 붙들려나가고 나도 따라 소조를 치르게 될 것이니 너는 나가야 한다." 하고 한참 있다가 "내가 조용한 때 너에게 말할 것이 있다. 내가 이천년이가 아니고 정희량이다. 내 별호는 허암이다. 내가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이다. 이것은 너만 알아라. 입 밖에 내지 마라." 말하는데 어조가 엄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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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부터 주팔이는 틈만 있으면 암자 밖으로 나가서 숲 사이나 바위 아래에 혼자 앉아서 부주비전과 망단기결을 공부하고 김륜이 없는 사이를 엿보아서 선생에게 모르는 것을 물었다. 거의 한 달이 되는 동안에 주팔이는 두 권 책에 있는 것을 책 없이 외지는 못하나마 책 보고는 다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주팔이가 너무 자주 암자 밖에 나가는 것을 김륜이가 수상하게 생각하여 “형님, 어디를 혼자서 그렇게 나가시오?” 묻기까지 하였으나 주팔이가 “가을바람 난 뒤로는 공연히 울적할 때가 많아서 암자 안에 들어앉았고 싶지 않아.” 말하여 김륜이도 “그러면 형님은 산중에 오래 있지 못할 사람이오.” 하고 웃어버리었다. 어느 날 식전에 선생이 주팔을 불러앉히고 “주팔아, 너는 오늘 가거라. 육칠 삭 같이 지내던 정에 섭섭한 맘이 없지 아니하나 갈 사람인 바에 하루 이틀 더 있어서 무엇하느냐, 떠나가거라.” 말한 뒤에 한참 있다가 다시 “오늘 오시에 만세루에 가서 있으면 자연 만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오시 전에 주팔이가 그 암자를 떠나게 되었다.
주팔이가 눈물을 머금고 선생에게 하직하니 선생은 “오냐, 잘 가거라. 연분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사오년 후에는 륜이를 내보내고 나도 향산을 떠날 터이다. 나는 머리를 다시 기르고 거사 노릇하며 산천 구경을 다닐 터이다.” 말하고 마루 끝까지 나와서 주팔을 어서 가라고 재촉하더니, 주팔이가 떨어지지 아니하는 발을 억지로 몇 발짝 떼논 뒤에 갑자기 잊은 말이 생각나는 듯이 “주팔아!” 불러서 주팔이가 돌쳐서는 것을 보고 “아니다. 잘 가거라.” 말하는데 섭섭하여 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다. 주팔이는 다시 한 번 하직하고 눈물을 뿌리며 암자 밖을 나왔다. 주팔이는 따라나오는 김륜의 손을 잡고 “아우님, 따라나오지 말고 들어가오. 선생님이 혼자 계시니 어서 들어가오. 아우님, 선생님을 잘 뫼시고 지내시오.” 하고 김륜과 작별한 뒤에 한 걸음 두 걸음 걸어서 산을 내려왔다.
삭불이가 팔월 초생에 서울을 떠난 뒤에 개성 와서 며칠 동안 유련하였고, 또 평양 와서 연광정과 부벽루로 돌아다니며 놀던 중에 밤늦도록 술을 먹은 탈이든지 우연히 병이 나서 한 보름 동안이나 시름시름 앓았었다. 삭불이가 보현사 큰절에 와서 여러 중들을 보고 주팔의 용모를 대며 “이런 사람이 온 일 있소? 혹시 본 사람이 있나요?” 물어야 한 사람도 보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삭불이는 주팔이가 범에게라도 물려죽지 않았는가 생각하여 중을 보고 “그러면 올 봄 이후에 혹시 이 산에서 호환을 당한 사람이 없는가요?” 물으니 중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호환 없소이다. 호환은 고사하고 달리라도 오사하는 사람이 없소이다. 금강산 같은 명산에도 간혹가다 제 명에 죽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지만 이 산만은 자초로 그런 일이 없소이다.” 하고 향산이 영산인 것을 자랑하였다. 삭불이는 주팔의 종적을 찾으려고 헛애를 쓸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서울 가서 이승지를 보고는 “묘향산을 구석구석 다 뒤지다시피 하였건만 주팔의 그림자도 못 보았습니다.” 말하면 고만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삼 일 동안 삭불이는 큰절에서 묵으면서 중 하나를 앞세우고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었다. 삭불이가 향산 들오온 지 나흘 되던 날이다.
구경곳을 지도하던 중이 어디 가고 없어서 삭불이는 구경을 나서지 못하였다. 삭불이가 점심 먹고 심심하여 만세루에를 올라오니 먼저 와서 앉은 사람이 있다. 삭불이가 한참 동안 그 사람의 아래위를 훑어보다가 가까이 와서 “인사 청합시다.”하고 말을 붙이니 그 사람은 저으기 웃으며 “네” 하고 대답할 뿐이다. 삭불이가 재차 “뉘댁이시오?” 하고 물으니 그 사람은 탐탁치 않아 하는 모양으로 “뉘댁이랄 것도 없지요. 나의 성은 류가요.” 하고 말하기를 피하려는 듯이 고개를 밖으로 돌려 천주암을 바라본다. 인사하려던 삭불이가 조금 무료하여 ‘그 자식 못 배워먹은 자식이다. 남이 인사하자는데 고 모양이란 말이.’ 속으로 생각하며 “여보 이분.” 하고 말을 붙이는데, 말투가 시비가락을 차리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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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불이는 일어선 채 앉지도 않고 앉았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인사하다 말고 외면하는 것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하고 주먹을 쥐는데 그 사람은 바로 앉아서 삭불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배운 버릇이 아니올시다.” 하고 빙그레 웃는다. 그 말대답은 공손하나 웃는 모양이 사람을 같잖게 여기는 것 같다. 삭불이는 그 웃는 데 열이 났다. “못 배웠어? 좀 배워야지.” 하고 쥐었던 주먹으로 그 사람을 치려고 하였다. 그 사람이 어느 틈에 손을 내밀어서 삭불의 팔목을 쥐며 “이것이 무슨 짓이오.” 하고 여전히 빙그레 웃으니 삭불이는 열이 바싹 올랐다. 그 사람에게 쥐인 팔을 채쳐 빼려고 하니 그 사람은 팔목을 놓으며 쪼그리고 앉는다. 삭불이가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에이 자식.” 하고 쪼그리고 앉은 사람을 나동그라지라고 발길로 질렀더니 그 사람이 동그라지기는 고사하고 슬쩍 몸을 가로 비킨 까닭에 발길이 헛나갔다. 삭불이가 헛발길을 하고 몸이 잠깐 휘뜩거리는 동안에 그 사람이 삭불의 디디고 섰던 다리를 잡아당기었다. 삭불이는 궁둥방아를 찧었다. 다시 일어나려고 하는 삭불이를 그 사람이 잡아 앉히며 “여보, 인사가 너무 과하였으니 인제 고만두고 앉아서 이야기나 합시다.” 하고 정답게 말하나 삭불이는 말도 아니하고 일어나려고만 한다. 일어나려면 잡아 앉히고 잡아 앉히면 일어나려고 하여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동안에 삭불이는 얼굴의 핏대가 삭기 시작하여 얼마동안 잡아 앉히는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그제야 아까 말대답으로 “인사가 너무 과하것다. 아따 그래 그만두자.”하고 싹싹하게 웃었다. “유서방이랬지? 여보 유서방, 어디 사오?” “고향이 함흥이오.” “함흥? 여기는 무엇하러 왔소?” “구경 왔소.” “구경? 언제 왔소?” “삼월에 왔소.” 삭불이가 번번이 그 사람의 말을 한마디씩 뇌고 말끝을 달아 묻더니 “삼월?” 하고 고뇌서는 낯이 간지럽게 그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사람이 빙글빙글 웃으며 “왜 그렇게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시오?” 물으니 삭불이가 “내가 댁 화상을 좀 볼 일이 있소. 댁이 정말 유가인가, 아닌가?” 말하고서 역시 빙글빙글 웃는다. “그래 화상을 보니 유가 같소?” “유가 같지 않소. 양가 같소.” “화상 보는 법이 용하구려.” 삭불이는 이 말을 듣더니 버썩 대어들어 그 사람의 손을 잡으며 “댁이 양주팔이 아니오?” 물은즉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소.” 대답한다. 삭불이가 찾으러 온 사람을 찾았다. 삭불이는 맘에 기뻤다. 주팔이를 찾은 일보다 이승지 내외에게 생색날 일이 맘에 기뻤다. 삭불이가 “잘 만났소. 잘 되었소. 나는 이승지의 젖동생 김서방이란 사람이오. 댁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소. 어제까지 사흘 동안 중 하나를 앞세우고 이 암자 저 암자로 댁을 찾아다니었소. 암자도 경치게 많습디다. 오늘은 길라잽이 중놈을 놓치고 찾아나서지 못했더니 못 나선 것이 잘 되었구려. 처음에 이목구비를 보든지 앉은키 대중으로 보든지 서울서 듣고 온 말과 맞는데 그래도
몰라서 사실로 기연가미연가했어요. 성만 외대지 아니하였더면 쓸데없는 시비도 아니 날걸. 아무렇든지 잘 되었소. 어, 잘 만났소.” 하고 한바탕 수선스럽게 말한 뒤에 두 사람 사이에 몇 마디 수작이 있었다. “대체 그 동안 어떻게 지냈소?” “이 암자 저 엄자로 다니며 얻어먹고 지냈지요.” “무얼 하고 지냈단 말이오?” “날마다 산에 올라다니는 것이 일이었소.” “그러면 별로 한 일도 없이 이승지 내외분 심려만 시켰구려. 지금 이승지 내외분은 심려하느라고 밤잠을 못 잘 지경이오.” “미안하게 되었소.” “서울 가면 이승지에게 핀잔깨나 좋이 받으리다. 나는 이번 길에 죽을 고생하였소. 평양서 병이 나서 하마터면 객사할 뻔하였소.” “불안하오.” 나중에 식불이가 “우리 내일쯤 떠납시다.” 말하니 주팔은 “나는 오늘 산 밖에를 나갈 작정이오. 당신은 향산 구경이나 더 하시고 뒤에 오시구려.” 말한다. 삭불이는 일껏 찾은 생색거리를 놓칠까 보아 “구경이 다 무어요. 떠나려면 같이 떠납시다.” 말하여 그날 해가 거의 신시 때나 된 뒤에 삭불이가 주팔이와 작반하여 향산을 떠나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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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팔이와 삭불이가 먼 길에 별 연고 없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이승지 내외가 주팔을 보고 반가워하여 기한 어긴 것도 나무라고 소식 끊은 것도 원망하고 주삼의 내외가 와서 기다리다 간 것도 이야기하고 첫아들 낳은 것도 자랑하고 또 향산 구경 이야기도 여러 차례 물어보았다. 그리하고 특별한 반찬을 해먹인다, 새옷을 지어 입힌다, 여러 가지 정다운 대접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하였다. 삭불이는 이승지에게 칭찬을 받았을 뿐이 아니라 부인의 몸 받아 나온 계집 하인에게 부인의 치사를 받아서 생색이 바라던 이상으로 나게 되었다. 주팔이는
전날 거처하던 방에 삭불이와 같이 있게 되었는데, 그 전 혼자 있던 때와 달라서 성가신 일도 없지 않지마는 말벗이 있는 까닭에 심심치 아니하고 또 그 동안 이승지의 벼슬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옮기어서 전같이 번을 들지 아니하므로 밤저녁 손님이 없는 때는 가끔 주팔의 방에 내려오기도 하고 주팔을 큰사랑으로 불러올리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이승지가 낮에 집에 있게 되었는데 기어다니게 된 어린 아이를 처네로 싸서 안고 주팔의 방에를 나왔다. 주팔이는 아랫목을 피하여 윗목 한구석에 앉고 삭불이는 마루로 나와 앉았다. 이승지가 안았던 어린아이를 방바닥에 내려놓으며 “이놈이 한두 칸은 훌륭히 기어다니네.” 하고 아이를 주팔에게로 향하여 엎치어 놓으니 주팔이가 손을 내밀며 “아가 이리 온 이리 온.” 하고 불렀다. 어린아이가 주팔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기어돌아서 “아빠.” 하고 이승지에게 매어달리니 이승지가 웃으면서 “오, 낯이 설어? 그렇지만 사내자식이 낯을 가려서야 쓰나.” 하며 두 손으로 아이를 붙들고 주팔을 바라보며 “얼마 전까지도 엄마, 맘마밖에 모르던 것이 인제는 제법 아빠, 아빠 하네.” 하고 귀엽게 여기는 눈으로 아이를 들여다보다가 다시 주팔을 바라보고 “전수히 외탁이야. 눈매든지 콧날이든지. 입 큰 것이나 찬탁이랄까?” 말하니 빙그레 웃으며 보고 있던 주팔이가 “잘생겼어요.” 하고 아이를 칭찬하였다. 이승지가 어린아이를 붙들고 가동가동하다가 주팔을 보며 “자네도 얼른 장가를 들어서 이런 재미를 보아야 할 터인데.” 하고 창문 밖을 내다보며 “삭불아.” 불러서 삭불이가 “네.” 하고 영창문 밖에 와서 섰다. 이승지가 “주팔이 재취가 급하니 상당한 곳을 너도 좀 일러보아라.” 말하니 삭불이는 “글쎄올시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주팔이가 “급치 않습니다. 아직 고만두시지요.” 말하는 것을 이승지가 “급치 않다니, 자네 나이가 사십이 내일 모레야. 그리고 자네를 잡아앉히자면 살림을 차리게 하는 것이 제일 상책이라고 우리 내외가 공론했네. 자네는 딴소리 말게.” 하고 삭불을 불러 내다보며 “네 생각에 물어볼 만한 데가 있겠느냐?” 물으니 삭불이는 또 “글쎄올시다.” 하고 한참 있다가 “한치봉의 첩노릇하던 계집이 있는데 사람도 얌전하고 나이도 지긋합니다. 올에 서른네 살인가 그렇습니다. 치봉이 죽은 뒤에 친정 어미에게 가서 있다가 얼마전에 그 어미가 죽었습니다. 올케 되는 계집사람이 사나워서 지금 하루를 같이 지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라나요. 그래서 몸만 의탁할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좋으니 한 곳 지시하라고 소인에게 부탁한 일까지 있습니다. 그 계집이 어떻습니까?” 하고 이승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승지가 “한치봉의 첩?” 하고 상을 찡그리다가 “대관절 사람이 어떠냐? 네가 잘 아느냐?” 말하는데 주팔이가 이승지를 보고 “남의 첩노릇하던 계집이 고생살이를 잘하겠습니까? 그 계집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고만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승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어린아이가 상을 찡그리며 끙끙거리었다. “이놈이 행실을 하는 것이로군.” 하고 아이를 포대기에 도로 싸안고 일어서며 “그것은 이따 다시 이야기하세.”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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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에 이승지가 손님도 없고 한가하여 다시 주팔의 방에를 내려왔다. 삭불이는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이승지가 거기 앉으라고 말하여 주팔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며 “어린 놈이 푸른똥을 눈다니 간기겠지? 무엇을 먹일까?” 하고 어린아이 먹일 약을 의논하니 주팔이는 “대단치는 않지요?” 묻고 나서 “포룡환 한 개쯤 먹여 두시지요.” 말하는데 주팔의 말이 끝나자, 삭불이가 아는 체하고 나서서 “아기네 간기에는 떨어진 배꼽을 살라 먹이는 것이 제일이랍니다.” 말하니 이승지는 대답이 없이 웃기만 한다. 삭불이는 자기의 말을 그 웃음 속에 묻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상약이 방문약보다 나은 수가 많습니다. 우선 무사마귀 같은 것도 방문약으로야 뗄 수 있습니까만, 마늘쪽에 낙숫물을 받아서 문지르면 곧잘 떨어진답니다.” 하고 상약의 효험을 주장한다. 이승지는 듣기 싫은 눈치를 모이면서"그래 그래." 하고 삭불의 말을 대답하고서 잠자코 앉았는 주팔을 보면서 "자네 묘향산 간 동안에 약 때문에도 자네 생가 많아 하였네. 우선 어린 놈 날 때만 하더라도 초사이라 그랬든지 아이가 커서 그랬든지 산모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을 두고 신고하는데 그때도 자네 생각을 많이 했네. 자네만 있었더면 의원 댈 까닭도 없지". 하고 잠깐 동안 말을 그치었다가 "이 사람 묘향산 구경 같은 길은 다시 할 생의도 말게. 참, 그때 내가 편지해 준 것은 왜 전하지도 않았던가?" 하고 나무라듯이 물으니 주팔이는 저으기 웃으면서 "편지를 해주시기에 가지고는 갔습니다만 영변절도사 영문에 발 들여놓기가 무서워서 고만두었습니다. 그 편지는" 말이 채 끝나지도 아니하여 승지가 "그 편지는 어째? 찢었거나 물에 띄웠거나 했겠지. 에이 사람. 자네 소식은 그치고 궁금해서 내가 영변다 알아보기까지 했었네. 이 사람 다시는 구경 못 갈 줄 알게. 삼각산을 간대도 혼자는 안 보낼 테야." 하고 허허 웃으니 주팔이는 "그러면 일평생 나수를 당한 셈이 되겠습니다그려." 하고 역시 허허 웃었다. 이승지가 웃음을 그치고 "여보게, 아까도 말하다 두었지만 자네 장가 말일세.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당하게 재취 장가를 들려면 여러 가지 비편한 일이 많아서 얼른 상당한 데를 구하기가 어려우니 헌계집이라도 하나 얻어가지고 살림을 시작해 보게나. 사람이 맘에 들지 않거든 버리고 다른 것을 얻어도 좋을 것이 아닌가? 그래 자네 생각이 어떤가?" 하고 주팔의 얼굴을 바라보니 주팔이는 "헌계집이고 새계집이고 간에 긴할 것도 없거니와 더구나 급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재취고 첩이고 모두가 아니한 의사를 보인다. 이승지는 고개를 흔들며 "안 되네, 안 되네." 하고 곧 이어서 "재취장가를 들겠느냐, 우선 첩이라도 얻겠느냐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정해 말하게." 하고 '응' 소리로 주팔의 대답을 재촉하니 주팔이는 대사로 여기지 아니하는 모양을 보이면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매양 일반입니다. 살림살이를 하고 엎드려 있기가 싫달 뿐입니다. 계집을 얻는다면 버리기 쉬운 첩이 나을는지도 모릅니다. 이렇든 저렇든 영감께서 해주시면 해주시는 대로 가지요. 나수된 죄인의 신세로만 생각하면 고만 아니겠습니까?" 하고 웃었다.
이승지는 주팔의 의향을 잘 알지마는 주팔이를 서울에 붙들어 두려고 맘을 먹은 터이라
"그만하면 자네 말은 더 들을 것이 없네." 하고 말을 자르고 주팔이와 삭불이에게 잘들 자라고 말하고 일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승지는 그날 밤에 내외 공론하고 이튿날 삭불이더러 한치보의 첩노릇하던 계집을 불러오라 하여 이승지 내외가 같이 선을 보고 아직 가서 있으라고 돌려보내고 나서 이승지는 "그것이 기생 퇴물 같군." 말하고 부인은 “눈이 단정치 아니해요." 말하여 이승지 내외 맘에는 그다지 들지 아니하나, 삭불이가 '사람이 신통하다, 일을 잘한다, 부지런하다, 알뜰하다' 갖은 칭찬을 다 하다시피 하여 이승지는 그 계집을 주팔에게 얻어주기로 작정한 뒤에 주팔을 보고 "사람이 삭불의 말과 같이 신통해 보이지는 아니하나 우선 그대로 데리고 지내보게나." 말하니 주팔이는 "영감께서 사람을 갖다 공연한 생고생을 시키시렵니다그려." 하고 별로 다른 말이 없었다.
17
이승지는 자기 집에서 가까운 어느 실골목 안에 조그마한 초가집을 사서 주팔의 살림을 차려 주었다. 주팔이가 남의 대어 주는 시량으로 놀고 먹는 것이 맘에 미안하여 고리일을 시작하였더니 그 골목에 전에 없던 고리장이가 남의 눈에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불과 얼마 동안에 골목 안에 사는 사람은 고사하고 골목 밖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고리장이 고리장이 하게 되고 고리장이가 산다고 골목 이름까지도 고리장골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상없는 아이들은 떼를 지어 가지고 고리백정, 시골백정, 대보름 뒤, 윷노는 백정. 하고 노래를 부르면 주팔의 집 문밖으로 돌아다니었다. 주팔의 첩이 창피한 것을 참지 못하여 그 골목을 떠나자고 주장한즉 주팔이는 어디를 가나 일반이라고 잘 듣지 아니하는데, 그 첩이 이승지의 부인을 보고 말하고 이승지의 부인이 이승지를 보고 말하여 이승지는 성균관 동편 반수 건너로 주팔의 집을 이사시키었다. 이리하여 고리장이는 반 년 남짓이 살고 떠났건만 골목 이름은 고리장골로 남아 있게 되었다. 주팔이가 이승지에게 누를 많이 끼치지 아니하려고 고리일을 시작하였으나, 서울에서는 버들을 구하기가 극난하여 역시 이승지의 힘을 빌게 되는 까닭으로 내처 계속할 생각이 적던 차에 고리장이가 말썽이 되어 이사까지 하게 되니 고리 일이 더욱 재미없어서 그만두기로 하고 새집으로 옮아온 뒤에 새로 갖바치 일을 시작하였다.
주팔이가 동촌 한구석에 떨어져 살게 된 뒤에는 집에 들어앉아 신을 만들거나 성균관 뒷산으로 소풍하러 다니거나 하고 북촌 이승지 집에 발이 뜨게 된 까닭에 이승지가 미복으로 찾아오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불러가게 되었다. 삭불이는 자주 찾아다니는데 주팔이가 없을 때는 주팔의 첩과 시시덕거리다가 저녁 준비가 되면 주팔이와 겸상으로 밥까지 먹고 가는 때가 흔하였다.
함흥에 있는 돌이는 삼년상 금법이 풀린 뒤에 새삼스럽게 거상을 입기 시작하여 주팔이가 살림을 시작하던 해 겨울에 삼년상을 마치고 봄이 되거든 서울 간다고 한두 번 말하지 아니하더니 개춘하며 곧 간다고 주척대는 것을 주삼의 안해가 일기나 더 따뜻하거든 떠나라고 붙들었다. 삼월이 보름이 지난 뒤에 돌이가 인제는 간다고 말하고 길 떠날 행장을 차리는데, 그 고모를 보고 "아주머니, 이번 내가 서울 가서 누이 덕에 장가나 들면 함흥은 고만 하직이오." 말하는 것을 옆에 있던 주삼이가 "네가 서울 가서 어름어름하다가는 누이 얼굴도 보지 못할라." 말하니 "못 보면 고만이지요.” 하고 돌이는 증을 냈다.
"보지도 못하면 장가를 들여달랄 수가 있어야지." "아저씨도 딱하오. 그래 누이의 힘이 아니면 자가 못 들 줄 아시오?" 하고 돌이는 큰소리를 하였다. 돌이가 고모의 내외에게 하직하고 길을 떠난 지 십여 일 만에 서울 안에 들어왔다. 길을 욱걸은 까닭으로 발병이 나서 걸음을 잘 못 걸었다. 돌이가 동소문 안에서부터 대안동을 물어 오자니 묻기도 여러 차례 물었거니와 처음 오는 길에 멀기가 몇십 리나 되는 것 같았다. 돌이는 주팔이가 동촌에서 사는 것을 알았다면 가까운 것만 취하더라도 대안동을 찾아오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주팔이가 대안동 있는 줄로 알고 온 터이다. 돌이가 마침내 대안동을 찾아왔다. 이승지 집 솟을 대문 앞에 서서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넓기가 마당질할 만한 행랑마당에 말도 매였고 보교도 놓이었다.
돌이는 들어서기가 서먹서먹한 것을 억지로 참고서 문간을 들어서니 문간 옆에 있는 하인청에서 벙거지 쓴 사람 하나가 나서며 "너 어디서 왔니?" 물었다. 돌이가 "나 함흥서 왔소. 이승지 보자면 이리 들어가오?" 하고 안중문을 향하여 들어가려고 하니 그 사람이 "건방진 녀석일세. 어디로 들어간단 말이야?" 하고 그 말씨가 좋지 못한 바람에 돌이가 돌치어서며 새삼스럽게 "이승지를 보자면 어디로 가야 좋소? 이승지 좀 보게 해주시오." 말하였다. "지금 손님이 많이 기시어 보입지 못한다." "손님이 있으면 잠깐만 이리 나오라고 말해 주시우." "이 자식이 누구하고 말을 해보자나? 누구더러 나오래? 이 자식." "왜 이 자식 저 자식 하오? 그저는 말 못하오?" "무엇이 어째! 이 자식." 언왕설래하던 끝에 그 사람이 "아따, 이 자식." 하며 무식한 손으로 돌이의 귀싸대기를 내갈기었다.
18
돌이는 분하였다. 사촌 매부의 집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맘에 분하였다. 분김에 나는 생각으론 이승지의 멱살을 들고 한번 휘둘렀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돌이는 그 하인보다 이승지가 미워서 "제미." 하고 침을 뱉었더니 그 하인이 자기에게 욕하는 줄로만 알고 "망할 자식 누구더러 욕이야!" 하며 슬슬 피하는 돌이에게로 달려드는데 갓 쓴 사람 하나가 하인청에서 나와서 "이 사람 고만두게." 하고 그 하인을 말리고 돌이에게 향하여 "함흥서 왔다지?" 하고 물었다. 돌이가 "함흥서 왔기에 함흥서 왔다지요." 하고 온공스럽지 못하게 대답하니 그 사람은 "말이 대단히 퉁명스럽구나." 하고 웃고서 "날 따라 이리 오너라." 하고 돌이를 데리고 수청방으로 들어와서 함흥서 온 총각이 영감마님을 뵈려 한다고 말하였다.
젊은 수청 청지기가 "이 사람아, 지금 손님이 계신 줄 알면서 그러나. 하인청에라도 들여앉혀 두지." 하고 데리고 온 사람을 나무라는데, 나이 지긋한 청지기가 그 젊은 청지기를 보고 "하인청에 들여앉혀도 좋을지 잠깐 여쭈어 보고 나오게나." 말하여 그 젊은 청지기가 상을 찡그리면 큰사랑으로 들어갔다. 돌이가 이승지가 사랑에 손님이 있어 들어오라기가 어려우면 자기가 쫓아나오기라도 하려니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젊은 청지기가 나오더니 "김서방 있는 방에 데려다 앉혀 두시라네." 말하여 데리고 들어온 사람이 "총각 이리 오게." 하고 하게로 말하며 돌이를 삭불이 있는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돌이는 분하였다.
이승지가 잠깐이라고 나와서 잘 왔느냐 말 한마디를 아니하고 하인 시켜서 이리 갖다 앉혀라, 저리 갖다 앉혀라 하는 것이 아까 하인에게 뺨맞은 것보다 더 분하였다. 돌이가 솟아나는 분를 억지로 참고 앉았을 때 삭불이가 "총각." 하고 말을 붙이며 이 댁 영감을 잘 아느냐? 부인과 어떻게 되느냐? 여러 가지 말을 물으니 돌이가 간단간단히 말을 대답하다가 여보시오, 양주팔이란 이가 지금 어디 있나요?”하고 물었다. "내가 지금 주팔이게 놀러갈 터일세. 같이 갈라나?" 말하여 삭불이가 돌이를 데리고 주팔의 집에를 오게 되었다.
주팔이가 돌이를 보고 반겨하여 함흥 떠난 날을 묻고 형의 안부를 묻고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묻는데 돌이는 대강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오늘 이승지 집에서 분한 일 당한 것을 말하며 "이런 법이 어디 있소?" 하고 주팔에게 하소연하니 주팔이는 "이승지가 너 올 줄 알고 미리 하인더러 뺨을 때리라고 이르기야 안 했겠지." 하고 이승지를 두둔하는 것같이 말하였다. 돌이가 새삼스럽게 증을 내며 "손질하는 것을 하인의 잘못이라고 합시다. 그래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을 잠깐 내다도 보지 못한단 말이오? 내다보고 잘 왔느냐 말 한마디 물으면 양반이 떨어지우?" "점잖은 손하고 이야기하다가 일어서 나오기 쉬운가? 네가 몰라서 원망이지, 이승지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김서방 적부터 두둔하기에 골이 배겼구려. 당신이 무어라고 하든지 내가 그놈의 집에 다시 발을 들여놓으면 개자식 쇠자식 말자식이오." "너무 과하다." "과하기는 무엇이 과하단 말이오? 누이 보고 싶은 생각까지 천리만리 달아났소." 하고 돌이가 주팔의 말을 뒤떠가며 떠들었다. 옆에 앉았던 삭불이가 "총각이 골날 만도 하지." 하고 돌이의 비위를 맞추며 "그놈 저놈 할 것이야 없지." 하니 돌이는 "양반놈들을 놈이라고 아니하면 누구를 놈이라겠소?" 하고 눈망울을 굴리었다.
그 뒤에 돌이는 주팔이의 집에서 유숙하면서 서울 구경을 다니는데 삭불이가 맘이 내키면 같이 다니며 모르는 것을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돌이는 며칠 돌아다니는 동안에 종각 속에 달린 인경도 들여다보았고 경복궁 대궐 앞에 있는 해태도 구경하였고, 또 중부 경행방에 있는 원각사와 서부 황화방에 있는 홍천사도 돌아보았다. 홍천사에서는 태조대왕이 수라를 진쪼시려고 저녁종을 일찍일찍이 쳤었다는 이야기고 들었고, 해태는 과천 관악산의 불기운을 진압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또 종각 창살을 빼지 않고 겹세지 않고 외로 한 번, 바로 한 번 두 번만 세면 학질이 떨어진다는 말과 인경 속에 어린 아이 피기 들어서 어미 부르느라고 인경 소리가 어밀레, 어밀레 한다는 말도 들었다.
돌이가 이와 같이 서울 안을 돌아다니면서도 이승지 집에는 가지 아니하였다. 이승지가 불러도 가지 아니하고 이승지 부인이 만나자고 청하여도 가지 아니하였다. 어느 날 저녁에는 이승지가 상노아이 하나만 데리고 주팔의 집에를 찾아왔는데, 상노아이가 영감마님 오신다고 선통한즉 이때껏 방에 앉아 너덜대던 돌이가 뒷문으로 나가버리었다. 주팔이가 나가지 말고 거기 있으라고 말하는데도 듣지 아니하고 나가버리었다. 이승지가 주팔을 보고 "돌이 어디 갔나? 그놈 나를 아니 와보는 법이 있나? 자네가 좀 꾸짖게그려." 하고 말하는데 주팔이가 "일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던 길로 댁에 가서 하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까닭으로 골이 난 모양입니다." 하고 빙그레 웃으니 이승지는 "그랬다네. 나중에 알아본즉 새로 들어온 구종놈이 손찌검까지 했다네. 그놈도 모르고 한짓이니까 큰 죄 될 것이야 없지만 마누라의 청으로 일전에 내보냈네." 하고 허허 웃었다.
돌이는 뒷문 밖에서 방안의 수작하는 말을 들었다. 구종인지 별배인지 자기에게 손질한 사람이 손질한 죄로 내 쫓기었다는 것은 맘에 싫지 아니하였다. 자기를 푸대접한 이승지가 푸대접한 죄로 조정에서 내쫓기기까지 하였으면 두말할 것 없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지금도 이승지가 자기 말하는 데고 그놈, 그 구종 말하는 데도 그놈 하는 것이 자기를 구종과 같이 여기는 까닭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승지가 돌아간 뒤에 돌이가 주팔을 보고 말한즉 주팔이는 "네가 몰라 그러는 것이다. 어리 이 다음 두고 보자." 말하는데 돌이가 "당신이 몰라 그렇소. 이 다음 볼 것은 무어요? 그는 그고 나는 나지." 말하니 주팔이는 “너의 입으로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할 때가...” 하고 웃음으로 말끝을 흐리었다.
19
몇 날 뒤의 일이다. 주팔이가 소풍하러 나간 사이에 삭불이가 와서 돌아와 같이 이야기하다가 주팔의 첩이 얌전하고 다정하다가 칭찬하는데, 돌이가 저 보기에도 그렇다고 동의하고 나서 “이승지가 얻어 주었겠지요?” 하고 물으니 삭불이가 “내가 얻어 준 셈이다.” 하고 자기가 중매한 것을 일장 이야기하여 돌이가 이야기 들은 끝에 “여보 김서방, 나도 장가 좀 들어보게 이쁜 색시하나 중매해 주시우.” 하고 웃으며 청하였다. 삭불이가 “자네 장가 늦었지. 그래 이쁜 색시라야만 하겠나. 이쁜 색시? 가만 있거라, 어디 생각해 보세.” 하고 혼처를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옳지 되었다. 좋은 데가 있다.” 하고 무릎을 치고 나서 자기가 전에 동무 장사하던 사람이 있는데 성은 피가고 이름은 선이고 별명은 작대기다. 사람이 꿋꿋하고 남의 말은 잘 듣지 아니하고 게다가 키가 커서 작대기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사람이 무남독녀의 외딸이 있는데 이름이 애기다. 자기가 여남은 살 되기까지 보았는데, 얼굴이 이쁘기라니 보는 사람이 꼴딱 집어삼키고 싶도록 이뻣다. 그 피작대기가 양주 본바닥 백정인데 서울 와서 살다가 장사에 밑천을 대던 주인이 죽어서 장사를 못하게 된 까닭에 고향으로 도로 내려갔다. 자기가 못 만난 지가 오륙 년 되니까 애기가 시집갈 나이가 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시집만 안 가고 있으면 자기의 중매로 꼭 될 것이다. 삭불이가 길게 이야기하고 나중에 “내가 틈이 나거든 한번 양주를 갔다 옴세.” 하고 돌이를 보고 웃으니 돌이는 “내 눈으로 색시를 보아야만 맘을 놓을 터이니까 나하고 같이 가십시다. 내일 떠나시려우?” 하고 말하자, 주팔이가 들어왔다. 돌이가 혼처 이야기를 하려고 한즉 주팔이는 “노총각이 장가들 수가 터지는 게지.” 하고 앞질러 말하고 돌이가 “밖에서 들으셨구려.” 한즉 주팔이는 “그래” 하고 허허허 웃었다.
20
그 뒤로 돌이는 삭불이만 보면 “색시 선 좀 보러 갑시다.” “어느 날 양주 가시려우?” 조르기도 하고 다지기도 하는데 삭불이는 “아따, 틈이 나지 않네그려.” “일간 가도록 해보세.” 핑계도 하고 미루기도 하여 그럭저럭 십여 일이 지났다. 이 말이 어떻게 이승지 귀에 들어가서 어느 날 이승지가 삭불이를 불러 세우고 “네가 돌이 장가를 들여 준다고 같이 선보러 가자구 했다더구나? 가자고 했거든 얼른 갈 것이지, 무슨 일이 있어서 틈이 없느니 있느니 하고 내일 모레 미루기만 한단 말이냐? 양주가 멀지도 아니한 곳이니 속히 한번 갔다오너라.” 하고 준절히 일러서 삭불이는 다시 핑계도 못하고 미루지도 못하게 되었다. 삭불이는 그날로 돌이에게 와서 내일은 정말 떠나자고 말하여 두고 이튼날 식전에 주팔의 집에서 이른 아침을 얻어 먹고 돌이를 데리고 양주길을 떠났다.
양주읍내에는 서울서 오십여 리 길이라 삭불이와 돌이가 노량으로 길을 걸어 다락원 삼십 리 와서 점심참을 대고 해가 높다랗게 있을 때 양주읍을 돌어왔다. 피선이의 집을 찾는데 포주 두 군데에 선이의 포주가 큰 것이라 두 번도 묻지 않고 찾아오게 되었다.
삭불이가 문간에 들어서서 “작대기 집에 있나?” 하고 소리를 쳤다. 허여멀겋게 생긴 얼굴에 새까만 수염이 돋보이는 사나이가 열리어 있는 되창문으로 내다보더니 “나는 누구시라고!” 하며 짚신을 미처 다 꿰지 못하고 뛰어 나왔다. 이 사람이 피선이다. 선이가 삭불이를 보고 “이거 왠일이오? 무슨 볼일이 있어 왔었소?” 하고 묻는 품이 삭불이가 전위하여 찾아온 줄로 알지 아니하는 모양이라 삭불이가 선이의 묻는 대로 “무어 조그만 볼일이야. 이왕 온 길이기에 좀 찾아보려고 들렀어.” 하고 웃으니 선이는 큰 키를 구부슴하고 삭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오륙 년 동안 대단히 노창해졌소그려.” 하고 뒤미쳐 말을 이어서 “반갑소. 좀 들어앉아서 이야기합시다.” 하더니 고개를 안으로 돌리고 “이애 아가, 안방 좀 정하게 치워라. 서울 손님 오셨다.” 하고 다시 돌이켜 삭불을 향해 때에 삭불이가 “동행 하나가 있는데 같이 들어가도 좋겠지?” 하고 물으니 선이는 선뜻 “좋고 말고.” 하고 문밖에 섰는 돌이를 가르키며 “저기 섰는 총각이오?” 하고 묻고야 삭불이가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는 돌이를 향하여 “총각 이리 들어오.” 하며 손을 쳤다.
이리하여 주인 손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데 애기가 안방을 치워놓고 마루로 나오며 어떤 손이 들어오나 하고 바라보다가 총각 하나가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숙이고 얼른 건너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얼른이라 하여도 돌이의 볼 동안이야 없었으랴. 돌이는 들어오면서 눈을 놓아 살피던 차이라 애기의 얼굴을 보았고 애기의 옆태를 보았고 또 애기의 뒤태를 보았다. 잠깐 동안에 많이 보았다. 얼굴 바탕이 조금 갸름한 듯한데 이맛전은 반듯하고 눈은 속이 배어 보이나 눈찌가 곱고 코는 파고 안친 것 같은데 콧날은 오똑하고 입은 자그마하고도 나부죽하고 턱은 밭았다. 살쩍은 그린 것 같고 머리는 삼단 같다.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모두 두말할 것이 없이 어여쁘다. 돌이는 첫 눈에 마음이 가득하였다.
봉단이와 같이 복성스럽지는 아니하나 이쁘기로만은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아직 머리를 늘인 것이 돌이 맘에 든든하였다. 세 사람이 방에 들어와 앉은 뒤에 선이와 삭불이가 서로 지금 지내는 형편을 이야기하다가 삭불이가 “애기 어머니 어디 갔나?” 물으니 선이는 “장날 팔다 남은 고기를 가지고 나간 모양이오. 얼마 아니 있으면 오겠지요. 김서방 말을 나보다도 자주 하는 사람이라 여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말한 뒤에 “전에 우리가 한집안 식구같이 지냈으니까...” 하고 서울서 지내던 이야기하려는데 삭불이는 거북살스럽게 앉은 돌이를 바라보며 “좀 편히 앉게그려.” 말하여 선이의 이야기를 가로막으니 선이도 “왜 편히 앉지 그러우.” 하고 돌이를 보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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