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逸話傳---人物傳記210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1회 도장에서 떠오른 활자 [비하인드 스토리] 필승 편: 제1회 도장에서 떠오른 활자 (사진설명: 필승의 동상) 활자인쇄술을 발명한 필승 제지술, 지남침, 화약과 함께 고대 중국의 4대 발명인 활자인쇄술은 인류의 인쇄역사에서 이정표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위대한 발명의 주인공은 고대 중국의 평범한 백성 필승(畢勝)이다. 백의(白衣)의 신분으로 필승은 사서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북송(北宋)의 위대한 과학자 심괄(沈括)이 자신의 저서 에서 필승의 활자인쇄술을 설명함으로써 이 위대한 발명과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이 발명가를 후세에 전했다. 북송의 회남로(淮南路), 오늘날의 호북(湖北) 출신인 필승이 평생의 지혜와 피땀으로 엮은 이 발명이 글자를 새긴 작은 도기 조각에서 시작된 것임은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활자인쇄술을 발명한.. 逸話傳---人物傳記 2024. 4. 16.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4회 두 눈을 감은 포청천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4회 두 눈을 감은 포청천 (사진설명: 포증의 무덤) 제4회 두 눈을 감은 포청천 포증의 회갑 때 선물을 보내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단 황제가 포증에게 술 한 단지를 하사하고 시도 덧붙여 보내왔다. 그대는 덕망 높은 일품 경(德高望重一品卿)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니 위징과 같구려(日夜勤政似魏征) 오늘 짐이 축하주를 보내니(今日朕把壽酒送) 문밖에서 거절하면 도리가 아닌 듯하오(如拒門外理不通) 황제가 사람을 시켜 보내온 술을 바라보던 포증은 잠깐 생각 끝에 시 한 수를 지어 황제에게 올렸다. 공정무사는 소신의 충성이오(鐵面無私臣心忠) 관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공을 드러냄이네(爲官最忌自恃功) 열심히 일하는 건 본분이니(勤政本是分內事) 선물을 거절함은 청렴기풍 열기 위해서.. 逸話傳---人物傳記 2024. 4. 13.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3회 강직한 성품의 대신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3회 강직한 성품의 대신 (사진설명: 연극화 된 포증의 이미지) 제3회 강직한 성품의 대신 문단의 거두 구양수(歐陽脩)는 기분이 언짢았다. 도 아직 다 쓰지 못했는데 절친 두 명이 연이어 면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구양수는 서재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포증이라는 놈이 정말 안하무인이야. 지가 무슨 위징(魏征)이라도 된 듯 언감생심 위징의 상소문 3편을 올려 그것을 좌우명과 역사적 교훈으로 삼으라고 폐하께 요구하니 말이야. 또 조정의 7가지 폐단을 열거하면서 형전(刑典)을 올바르게 하라고 진언했어! 폐하께서는 그의 간언을 받아 들였지 뭐야. 물론 이 일은 좋은 일이고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했어. 조정의 중신(重臣)들을 여러 명 제거하니 너무 지나치다는 말이지. .. 逸話傳---人物傳記 2024. 4. 8.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2회 端硯과 청렴한 관리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2회 端硯과 청렴한 관리 (사진설명: 포증의 동상) 제2회 端硯과 청렴한 관리 단주(端州)는 좋은 벼루가 나는 곳이다. 단주에서 나는 벼루를 말하는 단연(端硯)은 호주(湖州)에서 나는 붓을 말하는 호필(湖筆), 선성(宣城)에서 나는 종이를 말하는 선지(宣紙), 휘주(徽州)에서 나는 먹을 말하는 휘묵(徽墨)과 함께 문방사보(文房四寶)라 불린다. 당시 단주부는 해마다 황제에게 가장 좋은 벼루 100개를 공물로 바쳤다. 단주에 부임한 포증은 단주에서 단연이라는 보배가 나지만 단주 백성들의 생활은 아주 어렵고 관아의 소득도 아주 미미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포증이 부하와 백성들을 찾아 사연을 알아보는데 한 아전이 몰래 상황을 설명했다. “단주의 지부가 공물을 빌미로 해마다 수천 개.. 逸話傳---人物傳記 2024. 4. 3.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1회 효자이자 신들린 판관 [비하인드 스토리] 포증 편: 제1회 효자이자 신들린 판관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포증) 백성의 靑天 포증 성품이 강직하여 아첨을 모르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청렴하기로 유명하여 ‘포청천(包靑天)’이라 불리는 포증(包拯)은 청렴한 관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북송(北宋)의 유명한 판관인 포증은 탐관의 사정은 전혀 보지 않고 백성은 따스하게 배려했으며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여 민심을 얻었다. 중국의 문명사에서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의 문화를 창조한 포증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예술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끊임 없이 신격화되고 있다. 예술작품에서 포증은 늘 검은 얼굴이고 이마에는 조각달 모양의 기호가 있다. 하지만 사실상 포증은 얼굴이 전혀 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포증을 흑검포공(黑脸包公)이라 불.. 逸話傳---人物傳記 2024. 4. 1.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4회 큰 공덕으로 길이 이름을 남기다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4회 큰 공덕으로 길이 이름을 남기다 (사진설명: 한유 기념관 일각) 제4회 큰 공덕으로 길이 이름을 남기다 아침에 조정에 한 마디 상주했다가(一封朝奏九重天) 저녁에 조주로 귀양을 가니 가는 길 팔 천 리로다(夕貶潮州路八千) 팔 개월 동안 백성을 위해 네 가지 좋은 일 하니(八月爲民興四利) 그 땅의 강산은 모두가 성이 한씨로다(一片江山盡姓韓) 이 시의 첫 두 구절은 한유가 쓴 것이고 마지막 두 구절은 조주(潮州)인들이 쓴 것이다. 이 두 구절에서 한유가 조주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고 조주인들이 천 년이 넘도록 길이길이 한유를 기린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주에서 8개월 동안 자사로 있으면서 한유는 네 가지 좋은 일을 했다. 첫째, 수리시설을 건설하고 농업과 양잠업을 발전시..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9.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3회 직언을 했다가 좌천되다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3회 직언을 했다가 좌천되다 (사진설명: 한유의 서예) 제3회 직언을 했다가 좌천되다 원화(元和) 12년(817년), 한유는 재상 배도(裴度)를 따라 회서(淮西)와 채주(蔡州) 평정을 나가 대승을 거두었다. 그 공으로 한유는 형부시랑(刑部侍郞)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한유는 여전히 우울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 아내 노씨(盧氏)가 물었다. “또 무슨 일이세요? 지난 번에는 궁중에서 백성의 물자를 싸게 사들이는 ‘궁시(宮市)’를 비판하는 소를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산양현(山陽縣)으로 좌천되는 바람에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번에는 승진했잖아요? 그런데도 왜 우울하세요?” 아내의 말에 한유가 탄식조로 대꾸했다. “폐하께서 나더러 를 쓰라고 하셨소. 이는 천고에 길이 남을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6.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2회 제자를 가르치고 인재를 발굴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2회 제자를 가르치고 인재를 발굴하다 (사진설명: 한유의 석상) 제2회 제자를 가르치고 인재를 발굴하다 …처음에는(始者) 삼대와 양한의 글이 아니면 감히 보지 않았고(非三代兩漢之書不敢觀) 성인의 사상이 아니면 감히 마음에 두지도 않았습니다(非聖人之志不敢存). 집에 있을 때는 자신조차 잊은 듯 했고(處若忘) 행동하면 잃어버린 듯 하며(行若遺) 조용할 때는 생각하는 것 같고(儼乎其若思) 멍할 때는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습니다(茫乎其若迷). 마음에서 취하여 손으로 집중해서 써 내려갈 때(當其取於心而注於水也) 진부한 말을 힘써 제거하였는데(惟陳言之務去) 이리 저리 맞지 않아 어려웠습니다(戞戞乎其難哉)… 한유는 를 다 쓰고 나서 제자인 이고(李翺)에게 말했다. “근래 배움을 구하..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4. 항아분월(嫦娥奔月)에 대한 여러 가지 설(說) 항아분월(嫦娥奔月)에 대한 여러 가지 설(說) 후예(后羿)가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는 ‘산해경(山海經)’과 ‘회남자(淮南子)’에서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요(堯)임금 시대에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나타나 강과 바다가 마르고 풀과 나무가 메말랐으며 각종 괴수(怪獸)들이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 10개의 태양은 본래 모습은 모두 삼족오[三足烏 다리가 세 개 달린 신조(神鳥)]로 천제(天帝)의 아들이었다. 천제는 하계(下界) 중생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후예를 세상에 내려 보냈다. 예가 활을 이용해 9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리고 또 사람을 잡아먹는 각종 괴수들을 죽이자 대지는 다시 생기를 되찾고 백성들도 편안히 생업(生業)에 종사할 수 있었다. 천제는 원래 예를 보내 자신..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3.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1회 자만을 극복하고 벼슬길에 오르다 [비하인드 스토리] 한유 편: 제1회 자만을 극복하고 벼슬길에 오르다 (사진설명: 한유의 화상) 문장의 대가 한유 그는 ‘문장으로 팔 대에 걸쳐 부진했던 쇠약한 기운을 일으키고(文起八代之衰) 도로는 천하의 가라앉음을 구제했으며(而道濟天下之溺) 충성심은 임금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지 않고(忠犯人主之怒) 용맹은 삼군의 장수를 빼앗을 수 있었다(而勇奪三軍之帥)’. 송(宋)나라 문장가 소동파(蘇東坡)의 그에 대한 이 평가는 그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당(唐)나라 문장가이자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인 한유(韓愈)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으뜸인 한유는 고문운동(古文運動)으로 형식이 경직되고 문자가 부미(浮靡)하며 내용이 텅 빈 변려문(騈儷文)을 대체해 ‘팔 대에 걸쳐 부진했던 문장의 쇠약한 기운을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3.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4회 <茶經>을 쓰고 茶神이 되다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4회 을 쓰고 茶神이 되다 (사진설명: 육우 문화원 일각) 제4회 을 쓰고 茶神이 되다 교연 스님이 입적한 후 육우는 상저옹(桑苎翁)이라 자처하며 소계(苕溪) 기슭에 지은 초막에서 편찬에 몰두했다. 그때까지 육우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많은 자료는 모았으나 이라는 대작을 써내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육우는 황막한 벌판을 홀로 거닐며 큰 목소리로 시를 읊거나 미친 듯이 달렸으며 혹은 목놓아 울었다. 혹은 미친 듯, 혹은 멍청한 육우를 본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경릉(竟陵)의 저 괴인(怪人)은 초(楚) 나라의 광인 접여(接與)가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가?” 당시 육우는 벌써 명성이 자자해서 호주(湖州)의 신임 자사(刺史) 이계경(李季卿)의 특별..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2.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육우 편: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제3회 벗을 사귀고 차를 연구하다 당숙종(唐肅宗) 상원(上元) 원년(760년), 육우는 스승 추부자(鄒夫子)와 작별하고 화문산(火門山)을 내려 관중(關中)의 난민들과 함께 강남으로 갔다. 당시 19살의 육우는 나이는 어려도 가슴 속에 중국인들에게 차의 기원을 알려주고 제다법과 탕법, 음다법 등을 가르치고자 을 쓰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가 강남으로 향한 것은 찻잎의 생산을 돌아보고 차선별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기분파인 육우는 성격이 좋지 않았고 특히 자주 화를 냈다. 그럼에도 강남에 이른 그는 장원으로 과거시험에 급제한 명인 황보염(皇甫冉)과 망년지교를 맺어 그의 후원을 많이 받았으며 또 남조(南朝) 사령운(謝靈運)의 제10대..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21. 이전 1 2 3 4 5 6 ··· 18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