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逸話傳---人物傳記210 [비하인드 스토리] 손사막 편: 제2회 약물과 심리치료를 동반하다 [비하인드 스토리] 손사막 편: 제2회 약물과 심리치료를 동반하다 제2회 약물과 심리치료를 동반하다 장손황후(長孫皇后)가 세상을 뜨고 양신(良臣) 위징(魏征)이 별세하고 심지어 현명한 군주 당태종(唐太宗)마저 붕어했다. 하지만 손사막은 여전히 건강하게 살며 약초를 채집하고 사람을 구했다. 태종제의 뒤를 이은 고종(高宗)제가 즉위한지도 20년이 지난 함형(咸亨) 3년(672년) 고종제가 손사막을 불렀다. “선생이 간의대부(諫議大夫) 벼슬을 거절한 것은 짐도 참았소. 하지만 지금 짐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치료해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거절할 셈이시오?” 고종제의 말에 손사막은 할 말이 없어서 황궁에 남아 황제의 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종제는 큰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공처가로 두려움이 심해 병에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4.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한무제(漢武帝)와 이부인의 사랑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한무제(漢武帝)와 이부인의 사랑 글 : 넉두리 서한(西漢) 때에는 황제와 황후의 릉을 나란히 배치를 하였는데 황제릉은 서쪽에 황후릉은 동쪽에 위치했다. 그런데 무릉(한무제의 무덤)만은 동쪽에 있어야 할 황후릉이 없다. 한무제에게 진황후와 위황후 두명의 황후가 있었다. 하지만 진황후는 폐위되었고 위황후는 억울한 고소를 당해 자살하고 말았다. 이런 까닭에 황후의 릉이 없고 대신에 한무제가 말년에 의지했던 이부인의 묘가 있다. 그런데 이부인은 황후의 서열(序列)에 오르지 못했기에 그녀의 무덤은 동쪽에 위치하지 못하고 무릉의 서북쪽에 위치해있다. 이부인은 비천(卑賤)한 출신이었다. 그녀의 오빠인 이연년(李延年)은 노래와 춤에 뛰여난 배우였다. 작곡에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 감미로운 선율로 변..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4. 주은래(周恩來)가 병세가 위급할 때 털어놓은 비밀(秘密) 주은래(周恩來)가 병세가 위급할 때 털어놓은 비밀(秘密) 글 : 넉두리 그것은 1975년 12월 20일 오후의 일이였다. 주은래의 체온은 38.7로 올라갔다. 그는 갑자기 중앙조사부 부장 이청장을 만나겠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당시 중앙에서는 중앙정치국위원(中央政治局委員)이여야 주은래를 만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때문에 사업일군을 전화로 상부에 지시해줄 것을 청하였다. “4인방(四人幇)”은 서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밀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는 등소평(鄧小平)한테까지 가게 되였다. 등소평은 “총리께서 중병에 계신데 그의 요구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시오”하고 말했다. 사업일군은 다음날에 주은래의 분부대로 승용차를 파견해 나청장을 병원에 모셔왔다. 나청장이 갓 병실에 들어서자 주은래는 혼미상태(..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4회 자손의 불운과 행운을 지켜보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4회 자손의 불운과 행운을 지켜보다 (사진설명: 이광장군의 발자국이 찍힌 곳) 제4회 자손의 불운과 행운을 지켜보다 비장군 이광의 순탄치 않은 운명은 전염이라도 되듯 그의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광의 삼남 이감은 표기장군 곽거병을 따라 흉노의 현왕(左賢王)과 결전을 벌여 좌현왕의 군기와 전고(戰鼓)를 노획하고 많은 흉노군사를 죽여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으며 부친의 직무를 이어 받아 랑중령(郞中令)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감은 부친 이광이 죽은 것은 위청이 부친을 동쪽으로 보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대장군의 저택에 달려가 위청을 구타했다. 위청은 이 사건을 덮어두었으나 어떻게 하다 보니 곽거병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젊은 혈기의 곽거병은 황제의 중..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3회 무공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지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3회 무공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지다 (사진설명: 이광 장군의 무덤) 제3회 무공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지다 이광 장군은 언변에는 능하지 못했으나 군중에서 대인관계는 아주 좋았다. 그것은 그가 청렴하고 특히 병사들을 아껴 상을 받을 때마다 혼자 챙기기 않고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장군의 신분이지만 별도로 식사를 준비시키지 않고 하루 세끼 장병들과 함께 식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40년 동안 해마다 2천 섬의 높은 봉록을 받았지만 집에는 남아 도는 자산이 없었고 자산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할 때에도 사막에서 수원을 찾으면 모든 병사들이 다 물을 마시기 전에는 수원지 근처에 가지 않았고 군량이 부족할 때에도 병사들이 다 먹기 전에는 군량에..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2회 실패를 딛고 다시 영광의 자리에 올라서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2회 실패를 딛고 다시 영광의 자리에 올라서다 (사진설명: 별돌 조각으로보는 이광) 제2회 실패를 딛고 다시 영광의 자리에 올라서다 세월이 흘러 유철이 성인이 되었다. 무력을 숭상하는 이 젊은 황제는 국가의 무력이 날로 강해지고 백성이 풍족하며 나라가 부강한 것을 보고 빈번하게 국경을 범하는 흉노를 더는 봐주지 않고 무력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한나라의 장수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위위의 신분으로 상장군(上將軍)이 된 이광은 마읍(馬邑) 전투에 참가했으나 오랫동안 변경을 지키기만 해서 방어에만 능하고 공격에 약한데다 또 운도 따르지 않아 사막에서 방향을 잃고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광의 액운은 이제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광은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1회 전설적인 영웅의 서사시를 쓰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광 편: 제1회 전설적인 영웅의 서사시를 쓰다 (사진설명: 이광 장군의 조각상) 비운의 비장군 이광 서한(西漢)의 명장 이광(李廣)은 백 명의 기마병으로 흉노의 몇 천명에 달하는 기마병을 퇴각시킨 비장군이며 흉노인들은 비장군 이광이 두려워 몇 년이나 한나라의 국경을 범하지 못했다. 이광은 무장의 가문에서 태어나 줄곧 변경을 지키며 평생 수차에 걸쳐 큰 무공을 세웠지만 끝까지 제후에 책봉되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명장이다. 때를 만나지 못해 재능을 펼 기회를 찾지 못한 주인공의 대표 이광은 일당백 영웅의 레전드로 후세에 널리 전해지며 역사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桃李不言) 그 아래에는 스스로 길이 나진다(下自成蹊)”라고 말로 그를 높이 평가한다...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4회 죽어서 혼백이 고향으로 가다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4회 죽어서 혼백이 고향으로 가다 (사진설명: 유방의 동상) 유방은 태자의 신변에 상산사호(商山四皓)가 있는 것을 보고 태자의 날개가 이미 굳어 그를 교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 속으로 척희의 내일을 걱정했다.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는 척희를 보고 유방이 말했다. “슬퍼하지 마시오. 아마도 운명인가 보오. 과거에 누군가 여치의 팔자가 아주 좋다고 말했소. 아마도 그녀는 황후가 될 운명도 가지고 있고 태후(太后)의 운명도 가지고 있는가 보오. 후에 여치를 더욱 공경하게 대하고 조심하면 될 것이오. 그만 하고 우리 기분 전환을 합시다. 초(楚)나라 춤을 추시오. 내가 초나라 노래를 부를 테니.” 유방은 말을 마치자 즉흥적으로 지어 불렀다. 고니새 높이 날아 한 번에 천..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3회 나라와 백성에 이로운 정책을 펴다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3회 나라와 백성에 이로운 정책을 펴다 (사진설명: 유방과 측근들의 석상) 또 회남(淮南) 왕 경포(鯨布)가 역모를 일으키자 그 삼족을 멸하고 자신의 아들 유장(劉長)을 회남 왕으로 봉했다. 그러는 중에 화살을 맞은 유방은 상처에서도 피가 흐르고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다. 3명의 공신을 모두 멸했으니 이렇게 넓은 강산에 전란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라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경포를 멸하고 장안으로 돌아오던 유방은 패현을 지나다가 고향에 조용히 며칠 머물 생각이었는데 지방의 관리들이 유방의 귀향 소식을 알아버려 온 동네가 시끄러워졌다. 유방은 황제의 권위를 내려놓고 패궁(沛宮)에서 큰 잔치를 베풀어 고향 사람들을 초대했다. 고향마을의 사람들과 친지, 벗들..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2회 공신들을 제거하고 눈물을 흘리다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2회 공신들을 제거하고 눈물을 흘리다 (사진설명: 유방의 석상) 그 날 조정에 나가자 누군가 초(楚) 왕 한신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발했다. 유방은 마음이 너무 슬펐다. 한신은 그가 황제로 등극한 후 가장 큰 마음의 병이었다. 유방은 장래 자신의 아들이 한신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역모를 꾀한다고 누가 고발한 것이다. 유방의 머리 속에는 과거 한신을 제(齊) 왕으로 책봉했다가 후에 다시 초 왕으로 고쳐 책봉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 때 초(楚)와 한(漢)은 홍구(鴻溝)를 사이 두고 대치했다. 인내성이 없는 항우(項羽)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몇 년간 이어지는 전란은 모두 우리 둘 때문이오. 내가 도전장을 던질 테니 우..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1회 건국 축하연에서 과거를 돌아보다 [비하인드 스토리] 유방 편: 제1회 건국 축하연에서 과거를 돌아보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유방) 최초의 서민황제 유방 한(漢) 나라 개국황제 유방(劉邦)은 농부의 아들로 성품이 활달하고 대범하다. 그는 진(秦)나라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수하에 많은 인재를 두어 역전승으로 강적을 이기고 중국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한 왕조를 세웠다. 유방은 군사적 재능에서 한신(韓信)에 미치지 못하고 전략제정에서는 장량(張良)보다 못하며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소하(蕭何)를 따르지 못했다. 하지만 유방은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잘 임용하는 능력을 가졌으며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르는 굳은 의지도 갖추었다. 유방은 중국 역사상 많은 제일을 창조했다. 그는 중국 최초의 서민 황제이고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비하인드 스토리] 장량 편: 제4회 벼슬을 내놓고 천수를 누리다 [비하인드 스토리] 장량 편: 제4회 벼슬을 내놓고 천수를 누리다 (사진설명: 장량묘의 일각) 제4회 벼슬을 내놓고 천수를 누리다 장안에 이른 후 몸이 허약한 장량은 늘 질환을 앓아 집에서 기공(氣功)을 연습하고 벽곡(僻谷)을 배우며 두문불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라 조정에 대사건이 발생했다. 유방이 장남인 태자를 폐위하고 어린 황자를 태자로 세우기로 작심한 것이었다. 이는 한나라 사직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라 신하들은 분분히 장남 대신 어린 황자를 태자로 두었다가 난을 유발한 사례들을 설명하며 황제에게 간언했다. 하지만 유방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태자는 나약해서 중임을 떠멜 수 없소. 강산을 조(趙) 왕 여의(如意)에게 물려주어야 짐이 안심할 수 있소.” 조 왕이 확실히 태자보다 총명할 .. 逸話傳---人物傳記 2024. 3. 3. 이전 1 2 3 4 5 6 7 8 ··· 18 다음 💲 추천 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