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갑송10 장 길 산 10 장 길 산 10 지은이: 황석영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 봉사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 상 윤, 양 선 희 제4부 제2장 송도 사재전 임방회의는 오전부터 시작되어 중화참이 훨씬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있었다. 비록 한양이나 관서의 상인들과 경쟁할 때에는 송상들이 일심 협력하여 상권을 장악하는 것이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상리를 놓고 다툼이 그치질 않았다. 물론 그런 연유로 임방이 있던 것이었다. 좌장 박대근을 비롯하여 송도 각 상단의 접장들이 나와 앉았는데 그들 중에 는 대근이처럼 상단의 행수를 겸하고 있는자도 있었고, 배대인같이 상단의 전주인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박대근이 배대인의 뒤를 이어 접장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임방의 좌장은 그보다 나 이 많고 점잖은 이가 되게 마련이라 대근으로서는 회의가 조..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30. 장길산 9 장길산 9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최항석, 이성혜 제4부 역모(상) 제1장 미륵 1 신천의 오계준이는 월장사 사당골의 모가비 임가와 더불어 한때는 해서뿐만 아니라, 경기 도와 충청도의 해변에까지 출행을 다녔던 가장 활동적인 패거리의 모가비였다. 계준이가 모 가비 짓을 그만두게 된 것은 풍병 탓이기도 하였으나, 행중에 있던 그의 젊은 아내와 자식 의 원통한 죽음이 원인이었다. 오계준은 원래가 과묵하고 술이나 몇잔 들어가야 흰소리나 한마디씩 던지는 위인이라 절대로 그런 얘기를 자신이 꺼내어 지껄이는 법이 없었다. 그렇 게 평소에 말이 없는 계준이가 일단 판에 들어가 신명이 나면 물 흐르는 듯한 맑고 고운 소 리를 끝도 없이 풀어내는 것이었다. 계준의 재간은 소리뿐만 아니라 삼현육각을 다루는..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9. 장길산 8 장길산 8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 비평사 봉사자:윤동식, 김봉섭 제3부 잠행(하) 제 2장 구월산 1 갑자에 시작된 흉황은 이듬해인 을축년에도 계속되어 한양에 난민이 나타난 지 몇 달이 안되어 황해도에는 염병과 소의 전염병이 창궐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문화와 안악 등지가 가 장 심하였다. 황해도 관찰사 이세백은 해서의 참상을 계언하여 수안, 곡산, 서흥 등지의 읍 이 거리가 멀어 전세의 운반에 비용이 많이 들어서 백성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수가 없으니 면포로써 대봉해주지 않으면 더 이상 다스리기도 힘들다고 아뢰었다. 삼월에는 황해도 관 찰사로 윤반이 나아갔으나, 이미 거칠어져 난민으로 변해가는 백성들을 다잡지 못하였다. 이 세백이 재임할 적부터 구월산 일대에서 일어난 명화적이 활빈당을 자처하며 해서의 ..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8. 장길산 7 장길산 7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 비평사 봉사자:김선용, 임흥태 제 1장 황민(계속) 4 경조를 중심으로 하여 이전부터 행정의 그늘 아래서 여기저기 사는 터전 나름으로 패거리 를 가져오던 천류와 무뢰지배자들은, 드디어 조정이 혼란해지고 왜국이 재침한다는 소문으 로 양반들이 동요하자, 제각기 천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모여들게 되었던 것이다. 검계에서도 한양에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의 모임은 따로이 살략계를 이루었다. 난리 때에 왕궁에 불을 지르고 부잣집을 습격하던 난민들이 실상은 다 이러한 무리들이었으니, 고금에 대처 저자란 모두 이러한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었다. 겉으로는 눌려서 눈도 제대로 치뜨지 못하고 대청 아래에서 설설 기며 죽는 시늉을 하고는 있으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태어나..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7. 장길산 6 장길산 6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민형석,최의성 제3부 잠행(상) 제1장 황민 1 곡산 수안 방면에서 뻗어 내려오는 큰 산령이 서흥 봉산을 지나서 황주 극성진에 이르러 끝나는데 서흥 쪽의 북방로는 절령을 지나고 봉산 방면의 길은 동선령으로 향하여 있었다. 원래가 절령의 통로를 국도로 썼으나 너무 험준하고 여름 장마철과 겨울의 강설기가 되면 행로에 매우 곤란하여 결국은 동선령으로 옮겨 절령역은 봉산의 검수역말과 합치게 되니 자 연히 절령길이 두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절령은 봉우리가 높고 험하며 골짜기가 깊어서 병마가 접근하기 어려운 오새지였으니 그야 말로 일부당관 만부막적의 고장이었다. 이곳이 자비령으로 불려지게 된 것은 절령 북쪽에 나한당으로도 일컫는 자비사라는 절이 있었던 때문이었..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6. 장길산 5 장길산 5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 비평사 봉사자:조정현, 신중갑 제 2 장 귀 소 1 은을 장림은 구월산 서쪽에서 흘러내린 물과 묵산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져 한내 를 이루고 가녘에 보를 쌓았는데 그 위로 자라난 숲을 이르는 것이다. 이 숲은 울창하기가 큰애기의 삼단 머리카락 같아서 햇빛도 들지 않도록 빽빽한데 바람맞이인지라 나뭇잎과 가 지가 서로 비벼대는 소리가 항상 파도와도 같다. 곳곳에 소로가 있기는 한데 휘늘어진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젖히며 근 오 리 사방의 승을 헤집어 나가야만 하였다. 봄에 답청철이 되면 숲가에는 술자리가 여기저기 벌어지고 여름철 에는 더위를 피하는 한량들이 모여들었고, 가을 또한 단풍이 그럴 듯하여 좋은 정치를 이루 던 곳이다. 또한 그뿐이랴, 활달하고 거칠 데 없..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5. 장길산 4 장길산 4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 비평사 봉사자:김일민, 진석호 제2부 군도(중) 제1장 대소두령(계속) 6 해주서 신천, 송화 방향으로 넘어가는 학령 못미처 해지점에는 주막이 서너 채 있었는데, 그중에 마방까지 달린 나무리집이 제일 컸다. 나무리집에는 특히 중화참에 손님이 많이 끓 었으니, 해주서 오다 보면 그때가 맞춤하였기 때문이었다. 봇짐장수, 등짐장수는 물론이요 마바릿짐을 실은 상고들이 들락날락이며 술과 밥을 청하였다. 그들은 한둘씩 학령을 넘지 않고 스물 남짓 모여서 학령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어이 떠날 동무들 안 계시우?" "예, 여기 나갑니다." "거긴 몇이우?" "다섯이외다." "아직......좀더 기다립시다." 등짐장수들 한 패거리가 지게를 모아놓고 길동무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4. 장길산 3 장길산 3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우상영 제1장 대소두령 1 안성은 삼남의 육로가 합치는 지점에 있는 대도회요, 위로 수원, 과천에 닿고, 아래로는 천안, 청주에 통하며 서쪽으로는 해로가 뚫렸는데 아산 앞바다를 거쳐서 물길이 진위, 양성 평택, 안성에 닿으니 사통팔달이다. 동으로는 남한강의 지류가 광주를 지나 여주를 거쳐 충주, 청풍, 단양에까지 닿으니 실로 삼남과 경기의 장꾼들이라면 안성을 제 집 드나들 듯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안성의 동촌은 연일 각처에서 모여든 장사치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데, 한양의 거간꾼들도 들끓었다. 청룡사가 있는 사당골에는 사당패 삼 대가 모여 있어는데 그 수가 근 오십 명에 이르고 있었다. 원래가 화주 출신의 모가비 고달근이는 사실상 그들의 총대나 마찬가지..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3. 장길산 2 장길산 2 지은이:황석영 출판사:창작과비평사 봉사자:유선호,이동현 제2장 수초(계속) 옥은 객사 건너편에 있었는데, 원래 영에서 군기고로 쓰던 것을 개축하여 옥으로 바꾼 건 물이었다. 일자로 길게 지어진 두 채의 기와집이 마주보고 섰는데, 사방에 돌담을 쌓아 막아 놓고 네 귀퉁이에 옥리들이 번을 서고 있었다. 죄수들의 가족들이 감옥 부근 일가에 들어 밥을 붙이면서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옥전거리는 언제나 음식장수들이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관에서 죄수에게 먹일 양곡을 내는 법이 없으니 가족이 없는 죄수들은 동료나 옥리들이 먹 다 남은 찌꺼기 음식으로 겨우 연명하다가 굶어서 죽는 수밖에 없었다. 좌옥 우옥이 있는데 우옥은 좀도둑이나 부녀자들이 갇힌 곳이요, 좌옥은 전과자와 강도와 살인자들의 옥이었다. 창고로 쓰..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2. 장길산 1 장길산 1 지은이: 황석영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봉사자: 김영준, 삼성자원봉사팀 서장 노상 황해도는 동으로 황해도에 인접해서 마식령 산맥의 산세에 닿고, 남은 예성강을 지경으로 경기도의 들판과 만나며 북은 대동강을 건너 평안도를 바라보는데 서쪽으로는 바다로 솟아 나가 중국의 산동을 마주보고 있다. 들판도 있으나 험한 산에 골짜기도 깊고 ,오랫동안 경부 에 가까워서 예부터 관의 혹정에 민감했으며, 도둑이 많아 조정을 괴롭히곤 하였다. 팔대 명산의 하나이며 태곳적 단군의 도읍지인 구월산은 그 줄기가 남서쪽으로 우회하여 추산을 따라 불타산에 이르고, 막바지로 그친 곳에 장산곶이라는 험한 해안 마루턱이 있으니 옛 노 래에,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님 만나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千里眼---名作評論 2024. 1. 21. 이전 1 다음 💲 추천 글 반응형